리링 (지은이),황종원 (옮긴이)글
항아리2011-08-03
원제 : 論語縱橫讀
양장본552쪽
책소개
리링 저작선 제1권.『논어』를 제대로 맛있게, 통쾌하면서도 깊이 있게 읽어주는 책이 나왔다. 리링 베이징대 중문과 교수가 “훨씬 깊어졌다”라는 자부와 함께 세상에 내보낸 것이다. 번역은 베이징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한국어문화학과에 재직중인 황종원 교수가 맡아, 자유분방하게 구사된 옛 북경 사투리까지 섬세하게 고려하는 등 고심 끝에 결실을 맺었다.
제1부 ‘『논어』위에서 아래로 찢기’는 ‘인물’ 편이다. 총 8개장으로 이뤄진 인물 편은 논어를 위에서 아래로 찢는다. 즉, 리링 식의 해체적 독법으로 읽은 『논어』의 통시적 재구성이다. 제2부 ‘『논어』 옆에서 옆으로 찢기’는 ‘사상’ 편이다. 공자의 말과 제자들의 입으로 전해진 말을 최종적으로 귀납해서 공자의 핵심사유를 소개하고, 벼슬을 찾아 돌아다닌 공자의 경험을 통해 내면 깊숙한 곳의 모순을 들여다보았다.
제3부 ‘『논어』 성전으로서의 이미지 찢기’는 ‘공자가 성인이 된 역사적 과정’과 리링 교수의 전작 『집 잃은 개喪家狗』를 둘러싼 논쟁에 대한 해명, ‘『논어』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로 구성되었다. 특히 마지막 장 ‘논어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에서는 오늘날 공자의 가치가 결코 도덕선생, 정치가, 종교 지도자로서 지닌 가치가 아니라며, 세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목차
제사題詞
머리말
서론-『논어』 독법
제1부 『논어』 위에서 아래로 찢기(인물편)
1장 공자에게 다가가기
2장 공자의 이미지
3장 공자의 ‘조국’과 ‘부모의 나라’
4장 7세의 자술自述
5장 70제자
6장 공자 문하 13명의 현자
7장 공자의 인물 품평(상): 옛 성현 및 그 외의 인물
8장 공자의 인물 품평(하): 당시의 정치가 및 은자들
제2부 『논어』 옆에서 옆으로 찢기(사상편)
9장 주공을 향한 꿈
10장 천명과 인성
11장 성인과 인한 사람
12장 군자와 소인
13장 공자, 덕을 논하다
14장 공자, 예를 논하다
15장 공자는 무슨 책들을 읽었을까
16장 공자는 어떤 곳들을 가보았을까
17장 공자의 정치적 번뇌
3부 『논어』 성전聖典으로서의 이미지 찢기
18장 공자는 어떻게 성인이 되었을까
19장 ‘집 잃은 개’ 논란에 대하여
20장 『논어』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주註
『논어』 원문
역자 후기
==
책속에서
중국의 전통과 서양의 전통은 사실 다‘구분‘을 말하고 있으나, 정치와 종교, 승려와 속인의 관계가 다르며 구조도 완전히 상반된다. 저들의 전통은 정치와 종교의 합일이다. 즉 종교는 통일되었고 국가는 다원화되었다. 반대로 우리의 전통은 정치와 종교의 분리이다. 즉 국가는 통일되었고 종교는 다원회되었다. 만일 기어코 천일합일을 논해야... 더보기 - 별족
공자는 지식인이었기에, 내가 그를 최대한 존중하는 방법은 그를 지식인으로 대하는 것이다. 지식인의 천직은 군중을 선동하고, 민의를 조작하며, 지도자에게 유세하여 그들을 위해 아이디어를 내고 처방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여러 의견을 물리치고 참말을 하는 데 있다. -p493 - 별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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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리링 (李零)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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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와 『논어』 연구의 명실상부한 최고 권위자 리링 교수는 1948년 중국 허베이성에서 태어나 베이징에서 성장했다. 1977년 중국사회과학원 고고연구소에 들어가 금문金文 자료의 정리와 연구에 참여했고 중국사회과학원 고고학과정에서 은주殷周시대 청동기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다시 고고연구소에서 고고학 발굴에 매진하다가 농업경제연구소로 옮겨 선진先秦시대 토지제도사를 공부했다. 오랜 참여적 연구를 통해 빚어낸 명철한 지성으로 여러 고전 해설서를 펴내어 선풍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특히 철저한 고증과 참신한 시각으로 『논어』를 새롭게 풀어낸 『집 잃은 개』는 각종 도서상을 휩쓸고 큰 논쟁을 불러일으키면서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기록됐다. 1985년부터 현재까지 베이징대 중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고고학, 고문자학, 고문헌학을 종횡하는 ‘삼고三古의 대가’로 통한다.
국내에 소개된 주요 저작으로 『논어, 세 번 찢다』 『집 잃은 개』 『전쟁은 속임수다』 『유일한 규칙』 『호랑이를 산으로 돌려보내다』 『리링의 주역 강의』 등이 있다. 접기
최근작 : <중국고고학, 위대한 문명의 현장>,<노자>,<꽃 사이에 술 한 병 놓고> … 총 11종 (모두보기)
황종원 (옮긴이)
성균관대 유학과를 졸업하고 베이징대학에서 철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베이징대학 한국어문화학과에서 부교수를 지냈으며, 현재는 단국대학교 철학과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중국 유가철학, 한중 근현대 철학을 주로 연구하고 있는데, 주요 논저로는 『장재철학』(2010),『한국에 영향을 미친 중국 근대 지식과 사상』(2019), 『한국을 다시 묻다: 한국적 정신과 문화의 심층』(2016),「이택후 서체중용론의 정치사상적 함의와 기술철학적 토대」(2019),「최시형의 생태학적 사유와 평화」(2018),「하린의 지행합일신론 연구」(2017)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 『논어, 세 번 찢다』(2011), 『손 안의 고전』(2010),『중국의 품격』(2016) 등이 있다. 접기
최근작 : <시대 속의 맹자, 주제 속의 맹자>,<동아시아 전통 지식 이론의 발전과 그 근대적 굴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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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고고학, 고문자학, 고문헌학 3고학의 대가
리링李零 교수가 들려주는, ‘있는 그대로의『논어』’
나의 연구는 지난 20여 년 동안 중국 사회에 분 복고의 광풍을, 거의 미친 듯이 보이는
이 기이한 현상을 겨냥한 것이다. 나는 일찌감치 누군가 나와서 몇 마디라도 해야 했다고,
‘그것은 아니다’라는 한마디라도 해야 했다고 생각한다. _ 머리말
내가 ‘집 잃은 개’로 내 전작의 제목을 정한 것은 공자를 욕하기 위함도, 이를 나 자신에게
빗대기 위함도 아닌, 공자의 진짜 처지, 지식인이 종종 맞닥뜨리게 되는 처지를 설명하기 위함이었을 따름이다.
나는 그의 처지를 매우 동정한다. 그에게 정신이 있고 이상이 있었음은 그 누구도 부정하지 못한다.
문제는 그 정신이 의탁할 곳, 이상이 실현될 곳이 없었다는 데 있다. 이는 사실에 대한 진술이지,
공자의 얼굴에 먹칠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_ ‘집 잃은 개’ 논란에 대하여, 472~473쪽
드디어 나왔다, 리링의 『논어』강의
고전 열풍이 불고 있는 한국에 드디어 나와야 할 책이 나왔다. 고전의 맏형 『논어』를 제대로 맛있게, 통쾌하면서도 깊이 있게 읽어주는 책 『논어, 세 번 찢기』(원제: 論語縱橫讀)가 그것이다. 중국에서 2008년 출간된 이 책은 삼고학三古學(고고학, 고문헌학, 고문자학)의 대가로 새로운 고전읽기 문화를 이끌고 있는 리링李零(63세) 베이징대 중문과 교수가 “훨씬 깊어졌다”라는 자부와 함께 세상에 내보낸 것이다. 번역은 베이징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한국어문화학과에 재직중인 황종원 교수가 맡아, 자유분방하게 구사된 옛 북경 사투리까지 섬세하게 고려하는 등 고심 끝에 결실을 맺었다.
2006년 발생해 그 후 몇 년간 지속되며 ‘문화적 사건’으로까지 기록된 ‘상가구喪家狗(집 잃은 개) 논쟁’ 상가구 논쟁이란? 지난 2006년 출간된 『상가구』(리링, 중화서국)를 둘러싸고 철학계 뿐만 아니라 전체 지식계가 벌인 논쟁. 공자를 “집 잃은 개”에 비유했다는 것을 포함해 『논어』의 주요 대목을 기존 학설과 다르게 해석한 이 책은 정통 유가학계의 엄청난 반발을 불러일으켰으며 극한의 찬반투쟁이 잇따랐다. 저자 리링은 일체 대응을 안 하다가 2년 뒤에 펴낸 『논어, 세 번 찢다』를 통해 세간의 비판과 지지에 답했고, 미흡한 부분을 보완했으며, 책은 읽지도 않고 인신공격하거나 자신의 입장만 되풀이하는 논쟁의 무익성을 지적했다. *‘상갓집 개’라는 말도 돌봐줄 주인을 잃어 돌아갈 곳 없는 신세가 됐다는 점에서 뜻이 상통하지만 ‘상가구’의 정확한 번역은 ‘집을 잃어버린 개’이다. 이는 뜻을 펼치기 위해 열국을 주유했지만 이루지 못한 공자가 자신의 처량한 신세를 긍정한, 『논어』에 직접 등장하는 말이다.
이란 것이 있다. 1990년대의 ‘인문열(인문학논쟁)’ 이래 가장 많은 중국 인문학자들이 직간접적으로 뒤얽힌 이 ‘대논쟁’의 중심에는 리링 교수가 있었다. 그가 펴낸 『상가구』가 논쟁의 계기를 제공했는데, 이것은 결코 공자를 비판한 책이 아니었다. 그것은 공자와 『논어』를 매개로 하여 밀가루 반죽처럼 부풀어오른 시대정신, 알튀세르가 이데올로기라고 부른 그것을 찌른 일침이었다.
경직된 주자학에 반기를 든 17, 18세기의 이토 진사이伊藤仁齊와 정약용이 그랬듯, 이 책은 중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새로운 문화이데올로기로 급부상하고 있는 ‘공자열 현상’에 날린 찬물 세례이다. 공자의 뜻과는 달리 성전화 된 『논어』를 해체하고, 오늘날의 시각에서 그 고의古意를 음미했고, 『논어』 읽기의 방법론부터 그 효과까지도 재구성한 문제작이다. 저자는 십여 년 전부터 『논어』를 매년 1회 두 학기에 걸쳐 학생들과 읽어왔는데, 『상가구』 출간 이후 공자가 걸어 다녔던 수천 킬로미터를 직접 답사한 자신의 인문지리적 경험과 융합시켜 이 골리앗의 중층 해체 작업을 마무리했다. 그것은 바로 공자연보 및 연관 인물들의 통시적인 계보학을 찢고, 철학적으로 공고화된 의미망을 찢고, 다양한 『논어』 성전화 시도의 허위성을 찢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저자는 원체가 춘추시대 백화문으로 쓰여진 이 대화록의 쫄깃쫄깃한 주고받기[問答] 미학을 되살려놓았고, 독자들에게는 청량감 가득한 ‘세속 논어의 즐거움’을 만끽하게 한다.
글항아리의 「리링 저작선」은 모험인가?
이 책은 글항아리 출판사가 펴내는 총4권으로 기획된 「리링 저작선」의 제1권 글항아리의 리링 저작선은 『논어, 세 번 찢다』를 제1권으로 하여 2012년까지 『병이사립兵以詐立-나의 손자 읽기』(제2권) 『상가구』(제3권) 『유일한 규칙唯一的規則』(제4권) 등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이다. 리링에 대한 글항아리의 관심은 노승현 기획위원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시작되었는데, 이처럼 국내에 잘 알려지지도 않은 인물의 저작을 네 권이나, 그 가운데 두 권은 1천 페이지가 넘어가는 거질을 주저없이 펴내기로 결심한 이유는 무엇보다 리링이라는 저자의 특출함 때문이었다. 그를 통해 고전읽기의 시작과 끝을 맛볼 수 있다는 확신이 섰다. 또 이를 통해 고전 읽기 문화가 아직 미성숙한 한국 독자들에게 참신한 자극을 주기에 충분하다는 판단을 세웠다. 그걸 몇가지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고전을 제대로 읽어내기 위한 최적의 조건이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리링 교수는 고고학 발굴에 참여하고 출토된 청동기 명문과 죽간을 해제하는 일로 청장년 시절을 통째로 바친 인물이다. 우리가 『논어』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상식은 기본적으로 조선시대의 산물이다. 조선시대의 논어 읽기는 이러한 고고학 발굴을 통한 사료비판과 잘못 알려진 역사적 사실이 반영되지 못한 것이다. 물론 한국 학자들의 연구논문이나 학술서는 이러한 현대 고고학 발굴결과를 반영하고 있지만, 이것을 대중들에게 종합하여 소개해준 책은 여지껏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둘째, 리링이라는 인물의 매력이다. 1948년 베이징에서 태어난 그는 문화대혁명 기간에 네이멍구 등에서 7년 동안 노동활동을 하며 모진 고생을 했고, 1975년 학계에 진입한 후에도 필드에서 오랫동안 학문을 익혔으며, 그 결과 ‘원문의 달인’이 되었다. 특히 그의 손자孫子 주석은 ‘손자십일가주’를 뛰어넘는 업적으로 인정받는다. 이런 면모의 반대편에는 서양문헌에 대한 르네상스적 섭렵이 자리 잡고 있다. 그는 중국 철학계의 고리타분한 코스워크를 밟지 않고, 자유분방하게 독서해온 독서가다. 이런 책읽기는 그에게 자유주의적 지식인의 정체성을 확립케 했으며, 그의 고전 읽기에도 십분 반영되고 있다. “삼고선생이라니, 케케묵은 것 아니냐?”는 선입견은 책을 읽는 순간 단숨에 불식된다. 고문헌학자이자 독서가로서의 고전 읽기! 이것이 또 하나의 리링의 차별화 포인트이다.
셋째, 객관성을 획득한 주관성이다. 리링은 고전을 읽어나갈 때 한 글자 한 글자 고증하고, 고증한 결과에 대한 판단과 주장을 펼친다. 여기서 ‘고증’은 객관성에 해당하고 ‘판단’은 주관성에 해당한다. 고증에 숨는 법이 없으며 장광설에 매몰되지 않는다. 그래서 독자들은 주석서로 믿고 읽을 수 있고, 주석서를 넘어 인문서로 읽고 음미할 수 있어 좋다.
넷째, 해체적 독법의 중요성이다. 한국의 인문학에서 그간 ‘해체’는 데리다적 의미의 포스트모던적 행위였다. 하지만 리링의 고전 해체는 그런 맥락과는 무관하다. 물론 특정 고전의 공고화된 랑그 체제를 무너뜨리는 붕괴 전략은 존재하지만, 그보다는 훨씬 실용적인 의미에서 ‘독서의 유용성’을 위한 해체이다. 리링은 말한다. “공자의 사상은 체계적이지만 『논어』는 체계적이지 않다”라고 말이다. 따라서 우리가 『논어』를 읽고 그 안에 들어있는 공자의 사상을 하나의 지식으로 축적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하나하나 해체해서 재배열하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그래야 ‘나의 말로 논할 수[論語]’ 있다. 또한 리링은 “『논어』는 경經이 아니고 자서子書(제자백가서)”이며 “논어는 엘리트를 위해 쓰여진 책”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논어를 읽기 위해 그것의 장르와 독자대상을 다시 되새겨야 한다는 그의 주장에 귀 기울일 수밖에 없다.
이 책의 구성과 핵심 내용
제1부 ‘『논어』위에서 아래로 찢기’는 ‘인물’ 편이다. 총 8개장으로 이뤄진 인물 편은 논어를 위에서 아래로 찢는다. 즉, 리링 식의 해체적 독법으로 읽은 『논어』의 통시적 재구성이다. 공자라는 역사인물의 내력부터 그가 속했던 시공간, 공자 문하의 제자들, 『논어』에 등장하는 옛 성현과 당시의 정치가와 은자들의 면모를 시대순으로 고증하면서 기존의 잘못 알려진 것들, 왜곡된 이미지가 무엇인지 따져 묻는다. 특히 「서론-나의 논어 독법」은 리링 교수만의 논어 읽기 방법 10가지가 소개되어 있다. 여기서 그는 『논어』의 원래 장르가 무엇인지, 어떤 독자를 대상으로 펴낸 책인지 등을 밝혔고, 『논어』를 읽을 때의 주의사항, 금기사항, 참고할만한 서적 등에 대해 조목조목 들려준다. 이것은 분명 토론거리이며 그를 통해 우리시대 『논어』 읽기의 가장 기초적인 표지석이 마련될 가능성도 있다. 그 가운데 몇가지를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자서이니 자서로 읽으라’는 말은 『논어』를 읽을 때 편안한 마음을 가지라는 것이다. “그것은 공자 문하에서 남긴 대화록으로 일부분은 선생님의 말이고, 일부분은 학생들의 말이다. 우리가 이 책을 읽는 것은 그들의 한담을 듣는 것으로 꼭 정식 경전으로 볼 것만도 아니고 부들부들 떨 만큼 감동적인 것만 있는 것도 아니다. 공자와 학생들의 한담을, 춘추 말기 당시의 백화白話로 된 한담을, 당시 사람들이 아무리 공자를 크게 숭배했다손 치더라도 경전으로 삼을 수는 없었다”는 것이 리링의 생각이다. ‘『논어』는 엘리트를 대상으로 한 책’이라는 것도 중요하다. 즉, 이 책은 귀족의 자제 혹은 몰락한 귀족 자제들 가운데 뜻을 품은 자들을 위한 것이지 일반 백성들을 위한 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외에 그는 ‘길고 두서가 없으니 인내심을 갖고 읽어라’ ‘어록체이니, 흐트러뜨려 읽어라’ ‘연대에 따라 종縱으로 읽어 156명의 등장인물과 그 배경을 이해하고, 인의효우충신관서공경 등 개념들을 엮어 횡橫으로 읽음으로써 단서들을 채록하고, 약간의 심리적인 분석도 하라’ ‘이해하기 어려운 구절은 제쳐놓아라’ 등이 있다. 또한 『논어』를 읽을 때 참고할 책으로 『논어정씨주』(정현 주), 『논어집해』(하안 집해), 『논어집주』(주희) 등을 추천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출토문헌의 발견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곽점 초간의 13종의 유가 전적 가운데 3종의 어총이 매우 중요하고, ‘상하이박물관 초나라 죽간’에도 『논어』의 많은 인물이 언급되어 있어 중요하고, 팔각랑 한나라 죽간도 중요한데 여기엔 한 선제 때의 『논어』 결본 등이 있다고 했다.
제2부 ‘『논어』 옆에서 옆으로 찢기’는 ‘사상’ 편이다. 공자의 말과 제자들의 입으로 전해진 말을 최종적으로 귀납해서 공자의 핵심사유를 소개하고, 벼슬을 찾아 돌아다닌 공자의 경험을 통해 내면 깊숙한 곳의 모순을 들여다보았다. 그를 위해 저자는 9장 ‘주공을 향한 꿈’ ‘ 천명과 인성’에서 공자의 기본 세계관을 짚어보았고, 그가 추구한 핵심사유를 ‘성인聖人과 인자仁者’ ‘군자와 소인’으로 개괄한 뒤, 이를 세부적으로 ‘10대 덕’과 이를 구현하는 ‘예제’로 나누어 상술했다. 그런 다음 다시 공자 개인에게로 돌아와 ‘공자가 읽었던 책’ ‘공자가 배웠을 만한 스승’을 살펴본 뒤, 그가 노나라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정치적 상황, 15년의 외유가 남긴 ‘정치적 번뇌’를 통해서 선천적으로 정치에 민감했던 한 지식인의 내면의 무늬를 읽어냈다.
우리는 이 장을 통해 공자의 사상을 훨씬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가지 예를 들자면 공자의 인물품평 기준이다. 공자는 인물을 품평할 때 도덕과 지적 능력으로 나눠서 살펴보았다. 도덕에 따라 나누면 성인, 인자, 군자, 소인 등 넷으로 나뉜다. 지적 능력에 따라 나누면 ‘가장 지혜로운 사람[上智]’, ‘중간 정도의 지혜를 가진 사람[中人]’, ‘가장 어리석은 사람[下愚]’ 등으로 나뉜다. 리링은 공자는 주로 ‘도덕’을 기준 삼아 사람을 군자와 소인으로 구분했다며 이를 14가지로 다시 세분해서 살핀다. 14가지 중 하나를 예로 들자면 “군자는 자기에게서 구하는 데 비해, 소인은 남에게서 구한다”이다.
특히 저자는 공자의 계급적인 입장과 역사관을 살펴보았는데 “공자의 사상은 귀족 중심적”이라는 것, 현재의 귀족이 아니라 앞선 세대를 살았던, 법도를 갖추고 예의를 알았던 귀족들의 삶을 부러워했다는 점을 말했다. “우리는 공자가 출신을 중시하지 않고, 노동인민을 인정했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 사실상 진정으로 공자를 이해한다면 그가 귀족들보다 더 귀족적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224쪽)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제3부 ‘『논어』 성전으로서의 이미지 찢기’는 ‘공자가 성인이 된 역사적 과정’과 리링 교수의 전작 『집 잃은 개喪家狗』를 둘러싼 논쟁에 대한 해명, ‘『논어』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로 구성되었다. 특히 마지막 장 ‘논어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에서는 오늘날 공자의 가치가 결코 도덕선생, 정치가, 종교 지도자로서 지닌 가치가 아니라며, 세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하나는 공자는 학식이 가장 깊은 사람이었다는 것, 둘째는 공자가 뛰어난 사회평론가였다는 것, 셋째는 백가쟁명의 시대를 연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또한 리링 교수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공자의 열 마디 말’도 소개했다. “군자는 단결하되 당파를 만들지 않으며, 소인은 당파를 만들되 단결하지 않는다”(「위정」), “마을 사람 중에 선한 사람이 좋아하고, 선하지 않은 사람이 미워하는 것만 못하다”(「자로」) 등이 포함된 이 10문장은 모두 ‘지식인을 겨냥한 말’들이다. 리링은 말한다.
“공자는 허위에 반대했는데 나는 그것을 좋아한다. 공자는 남과 함께 선을 행하고, 될 수 있는 한 남을 이해하며, 남에 대한 편견이 생겨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나는 그것을 좋아한다. 공자는 향원鄕愿(수령을 속이고 양민을 괴롭히던 촌락의 토호)에 반대하고, 좋고 나쁨이 여론에 좌우되는 것에 반대했는데, 나는 그것을 좋아한다. 공자는 패거리를 짓는 것에 반대했는데, 나는 그것을 좋아한다. 공자는 아부하지 않고 홀로 설 것을 강조했는데, 나는 그것을 좋아한다.” (495쪽)
리링 『논어』 읽기의 새로움과 즐거움
1. 공자는 복고파이지만 오래된 것을 좋아한 것은 아니다
공자는 옛것을 회복하려고 했지만, 그가 꼭 집어서 회복하고자 했던 것은 하나라나 상나라가 아니다. 그는 두 나라를 공경하되 멀리했으며, 다락에 넣어놓고 사용하지 않았다. 그가 회복코자 한 것은 주공周公의 나라였다. 주공은 노나라의 조상이며 서주西周를 만든 이다. 공자가 서주를 좋아한 것은 그것의 문명화된 정도가 높아, 문화적 수준이 높고 군자의 냄새가 진하게 났기 때문이다. 공자에게 서주는 오래된 과거가 아니라 가까운 과거였다. 고대가 아니라 근대였다.
2. 공자 사상은 ‘천인합일天人合一’이 아니다
전국시대부터 진한시대에 이르기까지 옛사람들이 가장 즐겨 말했던 것은 ‘하늘과 사람의 합일’이 아니라 ‘하늘과 사람의 구분’이고 이를 바탕으로 한 둘의 ‘관계’이다. 천인합일을 강조한 것은 장재張載(장횡거)를 비롯한 송나라 이후의 일이다. 리링은 최근 20년 동안 천인합일 사상이 동양 고유의 것이라며 서구근대에 맞서는 녹색-평화사상으로 거듭난 일을 개탄한다. 모든 일들이 중국은 천인합일, 서양은 천인분열이라고 했지만 리링은 오히려 서구가 천인합일에 가깝고 동양은, 공자가 속했던 시대는 “땅의 백성과 하늘의 신이 통하는 것을 끊어버린” 시대라고 강조한다. 즉, 공자의 사상은 천인분열의 시각에서 읽어야지 천인합일의 시각에서 읽으면 오류를 범하게 된다.
3. 여성관념 등 ‘공자의 생각’을 미화하려는 무익한 시도
공자가 내린 소인의 정의에는 계급적 편견이 담겨있다는 게 리링의 생각이다. 마찬가지로 그의 여성에 대한 관점에도 성적 차별 관념이 담겨 있다. 공자는 “여자와 소인은 다루기가 어렵다. 가까이하면 불손해지고 멀리하면 원망한다”라고 하여 수많은 여성들에게 그다지 예의를 차리지 않았다. 공자가 여성들을 한군데에 모아 그 전체를 소인과 동류라고 한 것, 이것은 『논어』에 명명백백히 쓰여 있는 말이다. 그런데 학자들은 공자의 말씀이 공자의 이미지를 손상시킨다고 생각해 이 걸림돌을 제거하려 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논어』에 나오는 ‘여자女子’라는 단어를 ‘여자汝子’(아랫사람을 부르는 말)로 읽거나 ‘사내아이 종竪子’으로 읽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한 ‘소인小人’을 어린아이로 이해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곡해는 헛수고가 될 뿐이며, 강변은 무익할 따름이다. (308~309쪽)
4. 역사에서 공자를 떠받든 세가지 방식
리링은 말한다. “역사적으로 공자를 떠받드는 방법은 세가지였다. 첫째는 정치적 정통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는 한나라 유자들이 취한 방법이었다. 둘째는 도통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는 송나라 유자들이 취한 방법이었다. 셋째는 유학을 종교로 삼는 것으로, 이는 근대 이후 기독교의 자극을 받아 형성된 구세救世설이다. 그런데 이 세가지는 모두 이데올로기로 공자를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공자를 해치는 짓이다.”(34쪽) 리링은 이와는 반대되는 방향으로 간다. 공자를 정치화하고 도덕화하고 종교화하는 것에서 벗어나려 한다. 그는 “백성을 우매하게 만드는 자는 그 자신이 반드시 백성을 위해 우매해진다”고 강조한다.
5. 성인聖人은 죽은 사람이고 제왕이다
공자는 성인을 피라미드의 가장 상위 클래스로 보았다. 공자가 살아생전에 성인이 되었다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공자가 인정한 성인은 모두 이미 죽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또한 공자는 성인은 반드시 최고 권력자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기 몸을 바르게 닦아서,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 바로 성인의 역할인데 권력이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고대의 신하들은 그런 힘이 없었다. 그들은 왕에 예속된 인물이며, 신하의 어원도 따지고 보면 ‘노예’에서 뻗어 나왔다. 그런고로 성인=죽은 제왕이다. 살아있는 왕은 성인이 될 수 없다. 공자는 자신이 성인은커녕 인자仁者도 아니며 군자君子도 못된다고 보았다. 공자는 자신을 “배워도 늘 모자라고, 가르치는 데 싫증을 내지 않는 사람”이라고 인정했을 뿐이다. 리링은 이처럼 공자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자고 주장한다.
6. 서恕는 ‘너그러이 용서한다’가 아니다
리링은 옛사람들이 말한, 공자가 강조한 ‘서恕’라는 것이 너그러이 용서한다는 뜻이 아님에 유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공자가 말한 ‘서’는 이 마음으로 저 마음을 바꾸어 헤아리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을 사람으로 대한다”는 뜻의 ‘인仁’과 대등한 관계에 놓이는 개념이다.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고, 이 마음으로 저 마음을 헤아리는 것은 동일선상의 마음의 운용이다. 여기서 파생되는 것이 바로 “등치되는 것으로 원한을 갚고 덕으로 덕을 갚는”(「헌문」)다는 『논어』의 구절이다. 이는 사실 원한으로 원한을 갚는다는 말이다. 공자는 결코 ‘덕으로 원한을 갚으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런 말은 『노자』와 관련 있다는 게 리링의 생각이다. 즉, ‘서恕’라는 말을 제대로 알아야 “모든 것을 용서할 수는 없다”는 공자의 생각을 제대로 알 수 있다.
7. 공자의 禮‘ - 조화’ 이전에 ‘구별’을 중시했고, 번다함을 싫어했다
공자가 말하는 예에서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구별別’이다. 조화는 구별의 기초 위에서 추구되는 것이다. 공자의 인仁 또한 그 사랑에는 차등이 존재한다. 그것은 평등이나 박애가 아니다. 유가는 예를 높이는데, 예란 필연적으로 번잡스러워진다. 하지만 정작 공자는 번잡한 예에 반대했다. 그가 즐겨한 한마디는 “글을 널리 배우고 예로 요약하라”는 것이다. 이 말이 『논어』에 세차례 나온다고 리링은 강조한다. 공자는 독서는 ‘넓게’ 해야 하지만 예를 익히는 것은 ‘요약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예에 관한 문제에서 그는 ‘넓지만 요약됨이 부족한 것’에 반대했다.
8. 공자의 스승은 누구일까
리링은 공자가 특정한 누구에게 배우지는 않았다고 본다. 다만 살펴볼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공자에게 음악을 가르친 악사樂士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예컨대 사양자는 그의 선생님이었다. 공자는 평생동안 음악을 벗했고, 음악을 배우려고 노력했고,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직접 음악을 연주하기도 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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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분포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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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를 종횡으로 해체. 논어를 읽고자 하는 분은 서문은 꼭 읽어봐야 함.
madwife 2017-12-03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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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링...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저자다. 고전 읽기의 전범을 보여줄 수 있는 책이다.
雨裝愚齋 2011-07-26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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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엉망이다.
- 세미나를 위해 책을 읽고 있다. 일단 4장까지 읽었으니 이에 대한 평.
- 중간에 영 엉망인 부분이 많아 읽는데 많이 거슬렸다.
- 먼저 서론에 붙은 주석 번호와 미주에 내용이 서로 다르다. 번호가 밀렸다. 편집의 문제였던 듯.
- 엉터리로 기록된 부분이 있다. 리링이 몰랐거나 역자 황종원이 몰랐다는 건데, 사소한 실수라고 치부하기엔 너무하다. 43쪽: "사실은 콘스탄티노플이 기독교를 선택했듯이 한 무제가 공자를 선택한 것이다." 콘스탄티노플은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의 이름을 딴 도시 이름이다. 당연히 콘스탄티노플은 콘스탄티누스가 되어야 한다.
- 번역의 일관성이 없다. 한자를 현대 중국어 음으로 옮길지, 우리식 한자 읽기로 옮길지 정하지 못하고 마구 뒤섞여 있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다. 47쪽 "취푸 동쪽에 있는 량공린梁公林이다. 이곳은 공자의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형의 장지로 알려져 있다. 량공린은 방산防山 일대에 있으며, 방산은 곡부 노고성魯故城의 동편에 있다." 앞에서는 '취푸'라고 했다가 뒤에서는 '곡부'라고 한다. '방산', '노고성' 등은 우리식으로 읽은 것은 일관성이 없어 보인다. '취푸'와 '곡부'가 섞여 쓰이는 경우는 이 밖에도 많다.
- 3장. 공부가孔父嘉는 '공보가'로 옮겨야 하는거 아닌가…? '부父'가 인명에서는 '보'로 읽어야 한다고 알고 있다.
- 일관성이 없는 부분이 자주 눈에 띈다. 97쪽: "송나라 수도는 지금의 허난성 상치우商丘에 있었으니, 곡부에서 멀지 않았다. 그의 집은 상구에서 북상하여 노나라로 이주한 것이다." '상치우'가 뒤에서는 '상구'가 되어 있다. '곡부'가 다시 등장한 것도 문제.
- 마무리가 덜 되었는지 괄포, 쉼표, 작은 따옴표 등이 빠져있다. 89쪽에는 닫는 괄호 ')'가 없고, 99쪽 두번째로 인용한 원문에는 시작하는 작은 따옴표가 없다. 100쪽 첫째 줄에는 '<열선전><신선전>'이라고 표기했다. 쉼표를 넣어야 할듯.
- 109쪽. 부자동굴夫子洞은 앞에서는 '부자굴'로 옮겼었다.
- 이런 실수가 툭툭 튀어나오니 책 읽는데 많은 방해가 된다. 채 마무리가 안된 책을 읽는 기분이다.
- 이 이외에 내용에 대한 부분을 이야기하면.
- 서론 '논어 독법'이 가장 좋다. 저자의 몇 가지 포인트는 <논어>를 읽는 많은 사람들이 염두해 두어야 할 사항이다.
- 1~4장까지 공자의 삶을 언급한 부분은 의외로 치밀하지 못하다. 많은 부분을 공자의 고향 '취푸'를 설명하는데 할애하며, 공자의 성적도를 이야기하는 부분도 지나치게 많다. 설명은 장황하니 예리한 맛이 없다.
- 이렇게 된 가장 큰 문제는 기존의 기록, 특히 사마천의 기록, <공자세가>를 맹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10쪽: "사마천은 한 무제 시대에 공자를 지극히 경모한 대학자였다."라고 평가한다. 더 나아가 103쪽: "오체투지를 할 정도로 공자를 숭배했던 사마천이 고의적으로 성인을 모멸했을 리도 없다."라고 말한다. 최술을 비롯한 청대 학자들의 비판, 특히 앞서 읽었던 시라카와 시즈카의 책과는 전혀 다른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러다보니 리링이 그리는 공자의 모습은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는 공자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주목해볼 수 있는 부분 가운데 하나는 출토퇸 죽간본에 대한 연구를 가지고 논어를 설명한다는 것이다. 들고 다니기 쉬운 어록체로 된 책, 마치 명언 카드를 뒤섞어 정리한 것 같다는 그의 이야기는 흥미롭다.
- 방대한 분량에 비해 다루고 있는 내용은 좀 평범하다. 일본 저자나 서양 저자의 날카로움이 보이지 않는다. 미주를 꼼꼼하게 읽지는 못했으나 중국 이외의 연구 성과를 참고하지 않는다는 것도 큰 단점이라고 할 수 있다.
- 머릿말을 읽으며 중국에 저렇게 공자붐이 불었던가 하고 놀랐다.
- 책이 나온지 오래 되어 서평이 있을거 같아 찾아보았다. 생각보다 몇 편이 없다. 1) 프레시안에 실린 김갑수의 글 '누가 공자를 '권력의 앞잡이'로 만들었나?'(클릭) 리링의 전작 '상가구'를 번역할 역자가 쓴 글이다. 온통 리링과 공자 이야기만 있고 이 책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2) 교수신문에 실린 신정근의 서평(클릭). 밥상이야기는 여기서도 나온다. 서평이라고 부르기엔 글이 무디다. 3) 블로거 노는 사람의 글(클릭) 적절한 판단이라 생각한다. 마지막 '정리'에 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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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사랑취두부 2012-03-08 공감(1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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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절박함으로 돌아가기
공자는 “천하에 도가 있으면 드러내고, 천하에 도가 없으면 은거하라”고 했다. 하지만 그 자신은 도가 없음이 명백한 시대에 살면서도 자신을 드러내지 못해 괴로워했다. 결국은 학생을 가르치는 것이 그의 삶이자 낙이 됐다지만, 그는 제자들에게 도가 없는 천하에서 백이와 숙제가 그러했듯 은거하는 도리를 설파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까닭에 가난을 마다하지 않고 어지러운 조정에 출사하지 않고 은거한 안회를 아꼈다. 그렇지만 정작 공자는 본인의 포부가 실현될 수 있는 가능성을 끝끝내 포기하지 못했다. 그에게는 제자들에게 옳은 삶을 가르치는 교육자로서의 삶만으로는 충족되지 않는 정치가로서의 번뇌가 떠나지 않았다.
심지어 공자는 아무도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는다는 답답한 마음을 담아 경쇠를 친 것만으로도 비난을 받기도 했다. “천하구나. 경쇠 치는 소리가! 자기를 알아주지 않으면 그만두면 될 일이다. (하략)” 공자의 경쇠 소리에 그의 마음이 들어있다며 이렇듯 혹독하게 퍼부은 사람은 실은 그 앞을 지나던 행상이었다. 뜻을 펼치지 못하는 답답함을 음악으로 풀 수밖에 없었던 공자의 처지는 물론, 그 깊은 심정이 문 밖의 행인조차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확연했다는 점은 자신의 뜻을 실제 현실에서 펼치려는 그의 의지가 얼마나 강했는지를 보여준다. 여기서 단순히 시대에서 인정받지 못한 공자에 대한 안타까움만 느낀다면 그것은 독자의 감정과잉이다. 어떤 감정인가. 성인으로서의 공자에 대한 일방적인 숭배다.
그는 자신의 시대가 난세라는 것도, 이런 시대에 나서지 않는 것이 군자의 처세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기회만 있으면 끊임없이 현실 정치에 나섰다가 실패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그는 군자이자 선생이며 동시에 정치가였다. 춘추시대라는 난세는 이 두 가지 역할의 도리가 충돌할 수밖에 없는 때였다. 공자가 그의 이상과 포부가 높았음에도 실패했다는 사실보다 이런 결과를 그가 충분히 예측했음에도 언제나 현실에 발을 내디뎠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심지어 제자들의 반발을 사면서까지 한낱 주인을 배반한 가신에 불과한 양화, 필힐의 초빙에 응하려하기도 했다. 공자가 논어에서 보여준 은거의 도리와 집요한 출사 시도 사이의 괴리를 외면하면 그의 정치적 시도는 신화가 된다. 공자가 실패할 줄 알면서도 세상에 대한 사명감으로 출사하려 했다는 오해가 이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공자는 실패를 ‘각오하고’ 나섰을지언정, 실패를 ‘예견하고’ 나서지는 않았다.
이 책이 던지는 문제의식은 오늘날 공자를 그가 살던 시대의 관점에서 보지 못한다는 데 있다. 가장 단적으로 말하자면 공자가 그가 살던 현실에 받아들여지지 못했다는 사실이 공자 자신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모른다. 공자는 춘추 시대의 어느 누구보다도 현실에 깊이 발을 담근 인물이었으나 후세인들은 오히려 정반대로 공자에게서 그가 살았던 시대의 특수성과 그의 시대인식을 지우는 데 몰두한다. 어떻게든 그의 한마디 한마디를 공자가 아닌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에 부합하게 해석하던 노력은 결국 그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성인으로 재창조하는 것으로 귀결됐다. 공자가 살면서 입었던 수많은 상처와 실패 그리고 괴리는 모두 성인이 되기 위해 당연히 겪어야만 했던 통과의례로 떠받들린다. 난세에는 몸을 피해야 한다고 제자들에게 몸소 가르쳤던 공자가 이를 거스르는 선택을 할 때의 고뇌와 결국 실패를 거듭할 때의 괴로움은 은폐된다. 마치 그는 이 모든 시련을 자신이 세상을 구하는 성인이 되기 위한 필연적인 과정으로 받아들인 것처럼 포장한다. 하지만 그는 분명 세상에서 상처받았고 그런데도 세상을 끝내 포기하지 못해 더 상처받아야 했다.
이 책은 공자가 잊어서는 안 되는 위대한 사상가라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대신 그의 말과 행동을 기록한 논어의 모든 구절들이 어디까지나 중국의 춘추 시대라는 특정한 시대를 공자라는 개인이 받아들인 방식이라는 전제를 항상 기억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고 외칠 뿐이다. 이 사실을 잊는 순간, 우리가 논어에서 읽는 구절을 말한 공자는 사라지고 이 짧은 단편들을 자신의 시대와 주장에 임의대로 끼워 맞추려는 우리 자신 혹은 특정한 시대의 권력과 욕망만 남는다. 물론 공자라는 인물과 그의 언행에는 너무도 오래전부터 수많은 인간과 권력에 의한 해석이 덧씌워져 이미 수많은 시간이 흐른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마치 그것이 공자 자신의 생각처럼 보일 지경이다. 주자의 해석을 공자의 의도 자체와 동일시해 정치 투쟁도 불사했던 역사가 한국에도 있었다.
따라서 저자인 리링이 강조하는 공자에 대한 역사적 관점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공자의 성인화’가 이뤄진 과정까지 포괄할 수밖에 없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공자의 삶과 흔적, 그리고 논어에 드러난 그의 언행을 공자 본인과 그 당시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좁은 수준을 넘어섰다. 각종 문헌에 기록된 공자의 외모를 토대로 신화화의 중요한 수단인 공식적인 초상과 공자의 핵심 제자와 도통(道統)의 흐름을 의미하는 이른바 4배(配)12철(哲)이 형성된 과정을 밝히는 부분은 이런 접근 방식의 가치가 가장 잘 드러난 대목이다. 공식 초상의 형성은 공자를 그의 시대로부터 분리해 어느 시대에나 적용될 수 있는 준칙을 세운 사표로서의 이미지를 완성시키는 과정이었다. 공자 당대에 기록된 그의 모습이 후대 인간들이 성인에게 기대하는 표상으로 확대돼 공자가 시대를 초월한 숭배의 대상으로 확고해지는 흐름이 확인 가능한 자료를 중심으로 치밀하게 전개됐다.
이에 대해 4배 12철의 확립은 공자를 둘러싼 학파와 그 정통성의 구축을 위해 어떤 작위적인 노력이 가해졌는지를 보다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저자는 특히 4배 12철이 공자가 성인으로서 추앙받을 대상으로 확립된 이상 그가 갖게 된 권력, 이른바 도통(道統)을 물려받을 직선적인 계보로 이용됐다는 문제를 지적한다. 공자의 제자 13인 외에 자사, 맹자, 주희를 공자와 함께 존숭 받을 성현으로 높이고 이들이 공자로부터 그의 제자 증자를 거쳐 이어진 유학의 정통성을 물려받았다는 주장은 실상 역사적 정당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단지 이제는 그러한 가상의 정통성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질 정도로 오랜 시간이 흘렀을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역대 중국 왕조가 직접 나선 이러한 공자 학파의 편성이 공자 당대의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고 오히려 각 시대의 필요에 따라 작위적으로 이용된 정치적 고려의 결과였다는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물론 그러한 과정 자체를 유학의 역사적 흐름으로 이해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오늘날까지 그대로 승계돼야 할 유학적 전통, 혹은 공자의 가르침 그 자체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애초 공자에게는 대대손손 물려줄 권력 따위는 없었다. 그는 성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가 논어에서 자신이 성자였음을 부인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를 성자로 보는 순간 그가 수없이 시도했던 현실 정치의 참여에서 난세에는 몸을 감춘다는 스스로의 신조를 거스르고 실패의 부담까지 감수해야 했던 공자의 절박성과 진정성이 사라진다. 공자를 성인으로 본다면 공자가 아니라 이후에 그를 그렇게 볼 수밖에 없었던 역대 동양의 역사를 이해할 수는 있을 것이다. 게다가 공자 생전에 자공 등의 제자들에 의해 공자의 성인화가 시도될 때부터 이미 성인이라는 단어는 공자와 맞지 않고 붙일 수도 없는 칭호였음을 이 책은 집요하고 치밀하게 반복해서 강조한다. 이에 대해서는 춘추 시대 당시 성인은 천부적으로 총명한 과거의 지도자를 뜻하는 것으로 혈통으로 증명된 지배자이며 동시에 이미 죽은 자였다는 사실을 충분한 전거를 통해 드러낸다. 이러한 부분에서 고고학, 고문자학, 고문헌학의 이른바 삼고(三古)의 대가라는 저자의 역량이 단적으로 읽힌다.
비록 이미 공자 생전부터 그 개념을 수정해 공자에 부합하도록 하려는 시도는 있었지만 무엇보다 공자 자신이 생전에 자신이 성인이 아니라는 전제를 확고하게 세웠다는 사실이 더욱 중요하다. 다시 말해 공자 당대에 성인이라는 단어가 함의하는 바를 이해하지 못한 채 사전적 의미만으로 그가 성인이라고 본다면 공자 자신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를 성인으로 숭앙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후 학자들을 바라보게 되는 셈이다. 공자를 성인이라고 보는 관점은 단순히 그의 학문적, 정신적 위대함을 높이 평가한다는 의미 이상의 역사적, 정치적인 의미가 있음을 이 책은 끊임없이 강조한다. 그리고 그러한 의미는 결국 공자의 언행을 그가 의도하는 바와 달리 해석하도록 유도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 책의 저자처럼 공자가 성인이 아니라는 학설이 그를 비하하는 것이 아니듯, 공자를 성인으로 떠받드는 주장이 그를 존숭하는 것만은 아니다. 단지 공자를 그렇게 봐야만 했던 역대 중국 왕조의 이념을 일방적으로 답습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주장은 더 나아가 공자 자신이 세웠던 자기 인식의 기반을 일방적으로 부정하고 그의 언행을 공자 본인의 의도와 정반대로 해석할 위험성이 매우 크다. 오늘날의 중국에서 성인인 공자가 여성을 비하하고 계급적인 주장을 했을 리 없다는 전제 하에서 논어를 해석하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음을 저자가 비판하는 대목 역시 이러한 문제의 단면이다. 비록 지금까지 오랫동안 공자를 그런 식으로 해석해왔고 공자 당대부터 어떻게든 그를 성인으로 모시려했을 정도로 그가 위대한 사상가라는 점에서 그런 주장에 일정부분 정당성이 있고, 무엇보다 그런 인식이 정치, 사회, 학문적으로 상당히 효과적이었음은 부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제 공자와 유학의 위상이 근본적으로 달라진 사회 체제 하에서 공자를 바라보는 관점이라면 공자에 대한 후대의 평가가 아닌 그 자신의 의도와 시대에 바탕을 둘 필요가 있다. 더 이상 공자는 그가 반드시 성인이어야만 정통성이 유지되는 아시아 사회의 유일무이한 준칙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논어의 해석, 공자에 대한 인식을 공박하고 그 근거를 찾아서 오랜 전거들을 거침없이 들춰내는 리링의 집요함은 감탄할 만 했다. 이러한 노력이 보기에 따라서는 다소 지나치다고 여겨질 수도 있고, 한편으로는 논어의 문면에 집착하는 과격한 근본주의로 비춰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공자의 언행을 오늘날에 그대로 적용하거나 재현하자고 주장할 정도로 어리석지 않다. 오히려 공자라는 개인과 그가 살았던 춘추 시대의 특수성이라는 바탕 위에서 공자의 언행을 해석하고 그 한계를 냉철히 인식해야 한다고 말할 뿐이다. 공자가 설파한 덕과 예의 보편성과 그가 이를 실현하기 위해 내세웠던 구체적인 내용이 갖는 역사성을 성인의 가르침이라는 미명 아래 손쉽게 뒤섞는 일방적으로 확대된 논어 해석에서 그동안 덧칠된 부분을 조금이라도 덜어내기 위해 노력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만약 그의 표현에서 다소 과격한 부분이 있었다면 그동안 쌓인 공자에 대한 후대의 더께가 그만큼 두터운 탓에 거칠게 비질을 했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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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초의시종 2011-09-26 공감(2) 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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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읽어 볼때 현존 가장 독특한 논어 해설서
논어에 대해서 분명 좋은 역주서와 해설서가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리링의 논어 해설서는 정말 독특합니다. 기존에 몇몇 말이 안되는 너무 앞서나간 논어 해설서보다는 분명 수준이 다릅니다. 리링의 해설서는 독특하면서도 기발합니다. 또한 수준이 있습니다.
소나무 2012-08-05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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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강하다
누군가 종교를 물으면 '유교'라고 대답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인간세상을 평화롭게 하는 방법은 역시 정치라고 생각하는 인간이고, 사람의 마음이 복잡하고 다루기 힘들다고 생각하는 인간이고, 모순되게도 겸양이라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또. 무엇보다 내 자신이 강하다고 생각한다. 아더왕연대기의 드루이드교신자가 기독교에 대해 '여자나 아이들이나 좋아할 종교'라고 말하는 태도로 모든 결정과 책임을 신께 미루는 태도가 싫다.
별족 2019-05-28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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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06 오후 9:31:00 저장된 글입니다.
논어 세번찟다.
세번 찢는 것은 아마 기존의 공자의 인식에 대한 잘못 된 오류를 저자 나름대로 재해석하고자 하는 의미에서 책 제목을 그리 정했다는 생각이든다. 그 세가지를 인물,사상 계파로 분류해서 기존의 공자에 대한 이미지를 재 정립하고자 한 저자 나름의 해석이 일견 많은 공감으로 다가온다.. 사실 공자는 매우 정치적 성향이 강한 인물이지만 그런 성향이 자신의 일신적 영달을 위함 보다도 당시 사회의 근본을 일신 하고자 하는 목적이 우선의 과제가 아니었을까? 당시의 질풍노도의 시기에 오직 폭력의 힘에 의존해 절대 패권을 유지해야 한다는 명분을 일축하고 비폭력의 사회통합을 예기했다는 것은 오늘날 우리가 흔히 하는 너무 시대를 앞지른 감이 있는 진보적 전형의 사례에 속한다. 하지만 그 이후 진 제국이 유가적 원리와는 너무 상반 된 법가적 통일에 의해 중국 최초의 위업을 이루지만 단명한 제국의 예에서 보여지듯 오늘날에 와서야 역설적으로 유가와 공자의그 진가가 발휘 됨은 진 제국의 일시적 통일을 가능케 햇던 상 형벌의 논리보다 화해 와 상생의 논리를 우선했던 유가사상이 보다 더 보편적인 정서에 더 맞았기 때문이다. 자유주의자였던 공자를 위해 성인의 지위문제,에 대해 우리가 왈가왈부 하기보다 그냥 우리시대에 엄청 큰 반향으로 다가오는 그런 공자이길 저자는 원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일종의 고착화 된 아니 화석화 된 공자가 아닌 지금 현재도 우리와 호흡하고 소통이 가능한 그런 이미지의 재현을 저자는 원하는게 아닐까 생각한다.
작금의 우리 사회만 보더라도 공자의 유교적 영향이 미치지 앉은 곳이 없을 만큼 광대하다. 우리의 현실에 지대한 영향을 갖는 것은 조선의 정치적 선택으로 인한 바가 크지만 공자가 우리와 맞았기 때문에 마치 우리의 문화이듯 단절없이 우리의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정착했다. 어떤 부분에선 중국보다 더 유교화됐다. 오히려 당대의 중국은 경제성장만이 최고인 듯 또 한번 춘추전국시대의 공자의 충고를 외면하는 것 같다. 중국이 세계의 패권을 이어받기 위해서는 공자가 우선 그에 맞는 대접을 받는 것이 우선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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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jjoung0070 2012-02-09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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