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학 벌레
베트남 전쟁에 대한 한국 개신교회의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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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말 1970년대 초, 베트남 전쟁 파병 때 한국 개신교회에서는 어떤 이야기들을 하였는가? 다음 인용문들은 한국기독교역사학회 2004년 학술 심포지엄에서 발표된 류대영 교수의 “베트남 전쟁에 대한 한국 개신교의 태도”에서 뽑은 것이다.
(처음 참전한 부대의 부대장이 공교롭게도 개신교 신자였다) 이소동 백마부대장은 “하나님을 공경하고 선한 싸움”을 싸울 것이라고 다짐하였다.
NCC 전도부장 김활란은 “인간의 자유”를 지키고 “인간의 존엄성”을 보호하기 위해. 그리고 “위장 없는 영구한 평화를 아시아에 심고자” 몸 바치고 나선 그들을 “자유의 십자군”이라고 부르며 신의 가호를 기원했다... 김활란은 백마부대 장병들이 “우리가 곤고할 때” 위로하고 도와준 “우방들의 태산 같은 신세”를 갚기 위해 “어려운 처지의 이웃나라를 돕고자” 나섰다고 칭송하였다.
한국대학생선교회 대표 김준곤도 전쟁 그 자체는 악한 것이지만, 공산주의자들과는 대화가 불가능하므로 베트남 전쟁을 “공산 노예화로부터의 해방, 인류의 노예화 방지”를 위한 것, 즉 더 많은 희생을 방지하는 것이라고 의미부여 했다.
지명관은 동남아 기독교협의회를 비롯한 아시아 지역의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을 비판하면서... 한국처럼 “공산주의에 의한 국토의 분할과 무서운 공산주의자들이 침략”을 겪어본 사람들만 공산주의가 “극악한”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는 논리를 폈다.
유호준은 백마부대 장병들에게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악을 누르시는 하나님”이 월남, 한국, 아시아의 생명과 재산을 수호하기 위해 그들을 베트남에 보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1966년 8월 20일자 [기독공보]: 무신론자의 군대, 적마의 마수를 분쇄하는데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무장을 한 군대이기에 그 이름은 더욱 빛날 것으로 자유세계의 국군은 높이 평가되고 있다.
비둘기부대 군목이었던 박민수는 귀국 후 [기독교사상]에 기고한 글에서 베트남에 가서 “공산주의자들의 만행과 악랄한 수법”을 보면 “반공사상과 애국심”이 생기고 “민주적 사상”까지 자라게 되며 “자유세계의 일원”으로 활동한다는 자신감도 갖게 되므로 “가능한 한 많은 군대가 더 갈 수 있게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금의 상식에서 본다면, 베트남 전쟁은 자유를 지키는 숭고한 전쟁이 아니라 미국의 정치적 목적 때문에 많은 한국인들이 피를 흘린 전쟁(베트남인들의 고통은 물론이고)으로 많은 이들이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35년 전 한국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교회에서 전쟁을 지원하는 발언을 한 것 자체가 그리 놀라운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눈여겨 볼 점은 한국 개신교회가 한 목소리로 전쟁을 지지했다는 사실이다. 위의 인용문에는 보수적인 개신교인의 목소리도 있지만 진보적 개신교인의 목소리 또한 있다. 그들의 주장은 매한가지이다. 베트남 전쟁 파병을 공산주의자를 무찌르는 성전으로 칭송한다.
당시 세계 개신교회들의 움직임들에 비교해 본다면 한국 교회의 태도는 확실히 예외적이다. 많은 나라의 교회협의회들이 전쟁에 반대되는 성명을 발표했다. 심지어 전쟁을 일으킨 미국의 개신교회에서도 전쟁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분명히 존재했다. 근본주의적 성향을 지닌 교단에서는 전쟁에 찬성하는 입장이 확고했지만, 다른 교단에서는 찬반이 엇갈리고 특히 라인홀드 니버와 같은 기독교 지성인들은 전쟁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한 사례들과 비교할 때 한국 교회는 예외적일 정도로 일치된 목소리로 전쟁에 찬성하였다. 당시 한국 개신교회는 반공주의의 틀을 벗어난 사유가 불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 반공의 논리 안에는 미국에 대한 의존도 숨겨져 있다. 공산주의 치하의 사람들이 악이 아니라 외세에 맞서 베트남의 독립을 지켜낸 세력이라는 사실이, 당시 한국 개신교인들에게는 승인 불가능했을 것이다.
류대영 교수는 당시 상황이 “기독교적 이성과 가치관이 이데올로기에 의해 압도당한 것”이라고 잘 정리해주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기독교적 이성과 가치관은 무엇인가? 그것이 이 땅에 있었던 적이 있단 말인가? 오늘날, 기독교적 이성과 가치관이 다시 시험받고 있는 시점, 한국 교회는 어떤 것을 갖추어 나가고 있는가? 살펴볼 일이다.
(검색해보니 베트남 스님의 분신 장면 사진을 구할 수 있었다.
베트남 불교와 한국 개신교가 "종교의 이름으로" 생각한 것이 이처럼 달랐다.)
베트남 전쟁에 대한 한국 개신교회의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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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말 1970년대 초, 베트남 전쟁 파병 때 한국 개신교회에서는 어떤 이야기들을 하였는가? 다음 인용문들은 한국기독교역사학회 2004년 학술 심포지엄에서 발표된 류대영 교수의 “베트남 전쟁에 대한 한국 개신교의 태도”에서 뽑은 것이다.
(처음 참전한 부대의 부대장이 공교롭게도 개신교 신자였다) 이소동 백마부대장은 “하나님을 공경하고 선한 싸움”을 싸울 것이라고 다짐하였다.
NCC 전도부장 김활란은 “인간의 자유”를 지키고 “인간의 존엄성”을 보호하기 위해. 그리고 “위장 없는 영구한 평화를 아시아에 심고자” 몸 바치고 나선 그들을 “자유의 십자군”이라고 부르며 신의 가호를 기원했다... 김활란은 백마부대 장병들이 “우리가 곤고할 때” 위로하고 도와준 “우방들의 태산 같은 신세”를 갚기 위해 “어려운 처지의 이웃나라를 돕고자” 나섰다고 칭송하였다.
한국대학생선교회 대표 김준곤도 전쟁 그 자체는 악한 것이지만, 공산주의자들과는 대화가 불가능하므로 베트남 전쟁을 “공산 노예화로부터의 해방, 인류의 노예화 방지”를 위한 것, 즉 더 많은 희생을 방지하는 것이라고 의미부여 했다.
지명관은 동남아 기독교협의회를 비롯한 아시아 지역의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을 비판하면서... 한국처럼 “공산주의에 의한 국토의 분할과 무서운 공산주의자들이 침략”을 겪어본 사람들만 공산주의가 “극악한”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는 논리를 폈다.
유호준은 백마부대 장병들에게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악을 누르시는 하나님”이 월남, 한국, 아시아의 생명과 재산을 수호하기 위해 그들을 베트남에 보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1966년 8월 20일자 [기독공보]: 무신론자의 군대, 적마의 마수를 분쇄하는데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무장을 한 군대이기에 그 이름은 더욱 빛날 것으로 자유세계의 국군은 높이 평가되고 있다.
비둘기부대 군목이었던 박민수는 귀국 후 [기독교사상]에 기고한 글에서 베트남에 가서 “공산주의자들의 만행과 악랄한 수법”을 보면 “반공사상과 애국심”이 생기고 “민주적 사상”까지 자라게 되며 “자유세계의 일원”으로 활동한다는 자신감도 갖게 되므로 “가능한 한 많은 군대가 더 갈 수 있게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금의 상식에서 본다면, 베트남 전쟁은 자유를 지키는 숭고한 전쟁이 아니라 미국의 정치적 목적 때문에 많은 한국인들이 피를 흘린 전쟁(베트남인들의 고통은 물론이고)으로 많은 이들이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35년 전 한국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교회에서 전쟁을 지원하는 발언을 한 것 자체가 그리 놀라운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눈여겨 볼 점은 한국 개신교회가 한 목소리로 전쟁을 지지했다는 사실이다. 위의 인용문에는 보수적인 개신교인의 목소리도 있지만 진보적 개신교인의 목소리 또한 있다. 그들의 주장은 매한가지이다. 베트남 전쟁 파병을 공산주의자를 무찌르는 성전으로 칭송한다.
당시 세계 개신교회들의 움직임들에 비교해 본다면 한국 교회의 태도는 확실히 예외적이다. 많은 나라의 교회협의회들이 전쟁에 반대되는 성명을 발표했다. 심지어 전쟁을 일으킨 미국의 개신교회에서도 전쟁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분명히 존재했다. 근본주의적 성향을 지닌 교단에서는 전쟁에 찬성하는 입장이 확고했지만, 다른 교단에서는 찬반이 엇갈리고 특히 라인홀드 니버와 같은 기독교 지성인들은 전쟁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한 사례들과 비교할 때 한국 교회는 예외적일 정도로 일치된 목소리로 전쟁에 찬성하였다. 당시 한국 개신교회는 반공주의의 틀을 벗어난 사유가 불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 반공의 논리 안에는 미국에 대한 의존도 숨겨져 있다. 공산주의 치하의 사람들이 악이 아니라 외세에 맞서 베트남의 독립을 지켜낸 세력이라는 사실이, 당시 한국 개신교인들에게는 승인 불가능했을 것이다.
류대영 교수는 당시 상황이 “기독교적 이성과 가치관이 이데올로기에 의해 압도당한 것”이라고 잘 정리해주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기독교적 이성과 가치관은 무엇인가? 그것이 이 땅에 있었던 적이 있단 말인가? 오늘날, 기독교적 이성과 가치관이 다시 시험받고 있는 시점, 한국 교회는 어떤 것을 갖추어 나가고 있는가? 살펴볼 일이다.
(검색해보니 베트남 스님의 분신 장면 사진을 구할 수 있었다.
베트남 불교와 한국 개신교가 "종교의 이름으로" 생각한 것이 이처럼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