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02

7] 지구운화 내 공존재(共存在)로서의 인간 야규 마코토(柳生 眞)*

 7] 지구운화 내 공존재(共存在)로서의 인간 야규 마코토(柳生 眞)*

15)

요약문   중국을 찾아온 천주교 선교사들을 통해 한국에서 땅이 둥글다는 지구설(地球說)이 수용된 것 은 17세기의 일이었다. 이후 김석문(金錫文, 1658-1735)・이익(李瀷, 1681-1763)・홍대용(洪大容, 1731-1783) 등 이 땅이 하루에 한 번씩 돈다는 자전설(自轉說)을 수용했다. 그리고 최한기(崔漢綺, 1803-1877)에 이르러 지 구설, 자전설과 더불어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을 일괄적으로 소개했다. 최한기는 단지 새로운 서양 천 문학적 지식을 소개한 것이 아니라 서양인들이 그 학설들을 몸소 증험한 사실을 매우 중시하고 “카노가 비로소 지구를 한 바퀴 돌았던 것은 바로 천지의 개벽이다.”(嘉奴, 始圜地球. 是乃天地之開闢也. 神氣通 권1, 「天下敎法就天人而質正」)라고 말했다. 카노(엘카노라고도 함)는 탐험대장인 마젤란이 죽은 후 살아남은 선원들을 이끌고 스페인까지 돌아온 선장이다. 최한기는 카노들이 땅이 둥글다는 사실을 증험했을 뿐만 아 니라, 그가 지구를 한 바퀴 돌고 돌아온 것으로 동서의 항로가 개척되고 진귀한 물건과 기계, 지식, 교법까 지 오고가게 되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그는 카노의 지구일주로 지리학적 가설이 증명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것에 의해 지구화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고 역사적 의미까지 꿰뚫어본 것이다. 최한기가 1857년에 엮은 지구전요(地球典要)는 천문학과 지리학과 해양학, 세계 각국의 지리와 역사, 위치, 산물, 문화풍속 등을 소 개한 책이다. 이 책은 단순한 지리학 서적이 아니라 태양계 안에 지구가 있고, 지구 안에 세계가 있으며, 그 태양과 지구의 활동에 의해 인간사회도 국가도 문화도 종교도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밝히려 한 책으로 볼 수 있다. 최한기의 기학적(氣學的) 세계관에서는 ‘기(氣)’가 우주 천지에 빈틈없이 가득 차 있고, 그 기 는 끊임없이 활동운화(活動運化)하고 있다. 해도 달도 지구도 모두 그 기 속의 하나의 사물이다. 그에 의하 면 “무릇 사람이 지구 표면에서 공생(共生)하면서, (해와 달과 지구가) 뱅뱅 도는 것에 의지하고, 기화(氣化) 를 타면서 평생을 돕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다.”(夫人共生於地球之面. 資旋轉而乘氣化. 以度平生. 古今無異. 地球典要 序) 인간이란 항상 운화하는 기의 은혜를 받으면서 지구 표면에서 타자와 더불어 사는 존재이다. 말하자면 ‘지구운화 내 공존재(地球運化內共存在)’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활동이 지구환경에 도 크나큰 영향을 미치게 된 시대의 도래, 즉 ‘인류세(人類世)’가 거론되는 오늘날, 인간을 ‘지구운화 안’에서 ‘더불어 사는’ 존재로 본 최한기의 인간관은 사람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 다 시 생각하게 만든다. 주제어 : 최한기, 기학, 지구전요, 운화, 지구운화

 

*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연구교수

차 례

Ⅰ. 머리말

Ⅱ. 최한기의 지구개벽(地球開闢)

Ⅲ. 최한기의 신기(神氣)적 세계관

Ⅳ.‘기화(氣化)’‘운화(運化)’를 따르는 인간

Ⅴ. 서양근대과학의 자연관과 그것이 가져온 지구의 위기

Ⅵ. 맺음말

Ⅰ. 머리말

조선에서‘지구(地球)’가, 다시 말하면 땅이 둥글다는 사실이 인식된 것은 중국에 입국한 예수 회 선교사들이 소개한 지구설이 전래된 17세기 무렵의 일이었다. 이어서 김석문(金錫文, 1658-173 5), 이익(李瀷, 1681-1763), 홍대용(洪大容, 1731-1783) 등이 땅이 하루에 한 바퀴 돈다는 자전설(自轉說)을 언급했다. 그리고 19세기에 최한기(崔漢綺, 1803-1877)가 1857(丁巳)년에 엮은 지구전요(地球典要)에서 지구설, 지전설, 지동설을 총체적으로 소개했다.

최한기는 이 지구전요에서 프톨레마이오스[多祿畝], 티코 브라헤[的谷], 메르센[瑪爾象], 코페르 니쿠스[歌白尼]의 천체모델을 차례로 소개하면서 앞의 세 모델은 지구가 움직이지(자전하지) 않았 으나 오직 코페르니쿠스만은 태양이 움직이지 않고 지구가 움직인다는 생각을 근본에 두고, 천체 운동의 계산이 잘 부합 되었다고 소개하고 있다.

다만 최한기에게 그것은 단지 서구에서 중국을 경유해서 전래된 최신의 천문학설이라는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지구가 태양계의 다른 행성들과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다는 것, 사람 이 실제로 지구를 한 바퀴 돌아오고 땅이 둥글다는 사실을 스스로 확인한 것이 아주 중대한 역사 적・사상적 의미가 있다고 보았다. 이 글에서는 최한기의 지구 인식과 지구에 사는 인간에 대한 생 각, 그리고 현대적인 의미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Ⅱ. 최한기의 지구개벽(地球開闢)

최한기는 인류가 실제로 지구를 한 바퀴 돌고 돌아옴으로써“땅이 둥글다”는 사실을 증험한 것 은 인류의 인식 지평과 행동 범위를 넓히는 역사적 획을 긋는‘천지의 개벽’으로 보았다.

 

대개 천하가 두루 통하게 된 것은 대명(大明)의 홍치(弘治)년간에 유럽 서쪽 바닷가의 포르트갈인 카노[嘉奴](또는 엘카노; Juan Sebastián Elcano, 1476-1526)가 비로소 한 바퀴 돌았는데 이것은 바로 천지의 개벽(開闢)이다.1)

명나라 정덕(正德) 연간의 포르투갈 사람[葡萄牙人], 이름은 카노[嘉奴]라는 자가 상소를 올려서 청 하고 5척의 배로 출발하고 동쪽으로 가다가 서쪽 땅에 일러 한 바퀴 돌고 돌아왔다. 돌아온 날 왕은 은으로 주조한 작은 지구 위에“비로소 땅을 한 바퀴 돌고 돌아온 자가 바로 이 카노로다!”라는 글 자를 세긴 것을 하사해 주었다. 지금은 바닷길에 더욱 익숙해지면서 서양의 배가 동쪽에서 서쪽으 로 가거나, 혹은 서쪽을 지나서 동쪽으로 지구를 한 바퀴 돌고 돌아오는 데 불과 8, 9개월간밖에 걸 리지 않는다. 즉 전 지구를 두루 다닐 수 있게 된 것은 모두 앞사람이 길을 개척한 공로인 것이다.2)

여기서 엘카노가 돌아온 연대 등에 약간의 착오가 있지만3) 카노의 지구 일주를 최한기가 중요한 역사적 전환점으로 본 것은 사실이다. 왜 그런가? 최한기에 의하면 그 이후부터 배가 바다를 두루 오가게 되면서 사신들과 상인들이 번갈아 보내졌고, 진귀한 물산이나 편리한 기계, 문화와 사상, 종교 등이 널리 전파되면서 그것들이 모두‘성내(城內)의 젖’이 되었기 때문이다.4) 다시 말하면 최한기는 카노의 지구 일주를 지구화 시대의 시작으로 보고, 그 이후 동서의 항로가 열리면서 통 상, 외교, 문화 등의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진 것을 세계가 풍요로워진 일로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이다.

Ⅲ. 최한기의 신기(神氣)적 세계관

최한기는 인류가 지구를 한 바퀴 돌아보고‘지구’─땅이 둥글다는 사실─을 실제로 확인한 것 을 역사적으로뿐만 아니라 사상적으로도 크나큰 의의가 있는 사건으로 보고 있었다. 그는 1837년

 

1)“盖天下之周通, 粤在大明弘治年間. 歐羅巴西海隅, 布路亞國人, 嘉奴, 始圜地球, 是乃天地之開闢也”, 神氣通 권1, 體通, 「天下敎法就天人而質正」 

2)“明正德年間, 葡萄牙人, 名嘉奴者, 稟請發船五隻. 東行旋續, 至西圜而返. 返之日, 王賜以銀鑄小地球上刻字云始圜地而旋者其嘉奴乎. 今則海道益習, 洋船自東往西, 或由西返東圜地而返. 計不過八九月之間, 卽可周行全地. 皆前人開創之功也.”, 地球典要 권1, 「海陸分界」 

3) 카노(엘카노)가 3년간의 항해 끝에 출발지로 돌아온 것은 1522년 9월이므로 명나라 嘉靖 원년이며, 弘治 (1488-1505)도 아니고 正德(1506-1521)도 아니다. 또 엘카노는 스페인의 바스크인이었는데 당초의 탐험대 총사령관이자 포르트갈인인 마젤란과 혼동한 것으로 보인다. 혹은 지구전요에서 카노의 지구일주를 정 덕 년간으로 기술한 것도 마젤란이 필리핀에서 죽은 연도(1521년 4월 21일, 正德16년)와 혼동해서 전해진 가능성도 있다.

4)“自玆以後, 商舶遍行, 使价遞傳, 物産珍異, 器械便利, 傳播遐邇, 禮俗敎文, 爲播越傳說者, 所附演, 無非城內之乳也.”,  神氣通 권1, 體通, 「天下敎法就天人而質正」 

에 쓴 신기통(神氣通)에서 천지의 이치가 밝혀지면 인사(人事)가 이에 따라 밝혀진다고 주장했다.

역세(歷世)의 경험으로 저명해진 것에 이르러서는 역법의 이치와 지구보다 큰 것은 없다. 천지의 이 치가 점차 밝혀지면 인사(人事)가 이에 따라 밝혀지는 길이 있다. 즉 이것이 천인(天人)의 신기(神氣)이다. 만약 역법의 이치와 지구가 점차 해명될 수 있다 하더라도 인도(人道)가 더욱 밝아지는 것 과 상관없다면 이것은 하늘은 저절로 하늘이 되고, 땅은 저절로 땅이 되며 사람은 저절로 사람이 되어서 서로 상관이 없게 된다. 어찌 이럴 수 있겠는가? 천・지・인・물은 곧 한 신기의 조화(造化)이

다. 천지의 이치가 점차 밝혀지면서부터 기설(氣說)이 점차 발전되고, 하늘・땅・사람・사물은 갈수록 증험하고 시험할 길이 있게 된다. 사람은 구규(九竅) )와 지체(肢體)를 갖춤으로써 하늘・땅・사람・사 물의 기를 통한다. (……) 만약 신기가 통하는 것에 말미암지 않고서 도(道)를 말함이 이와 같다면 이것은 근거 없는 말이고 사람을 속이는 짓이다. ) 

최한기에게 천지와 인물의 이치를 밝히는 것은 바로‘천인(天人)의 신기(神氣)’를 밝히는 것이 었다. 다만 이러한 주장을 단순한 전통적인 천인합일(天人合一)적 세계관과 동일시할 수는 없다. 왜 냐하면 최한기는 천(자연)에는 사물의 천리가 있고, 인(인간)에는 인간의 천리가 있다고 보고 사물 과 인간의 이치를 다르게 보았기 때문이다. 

무릇 사람과 사물에 대해 그 천리(天理)를 가리켜 논한다면 모두 하늘[天]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인천

(人天)이란 사람에 있는 천리이고, 물천(物天)이란 사물에 있는 천리이다.  ) 

이렇게 최한기는 사람의 천리(인천)과 사물의 천리(물천)를 구별했지만 둘을 갈라놓은 채 놓아두

지는 않았다. 물천과 인천, 즉 천지자연과 인간세상이 차등이 다르다고 보고, 그러면서도 그것은 신기(神氣)의‘운화(運化)’라는 축으로 일관되어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는 사회나 공동체를 가리키는‘통민운화(統民運化)’라는 영역을 일신운화(一身運化), 즉 인간 

개체와 대기운화(大氣運化), 즉 천지만물 사이를 매개하는 영역으로 설정했다. 

통민운화(統民運化)는 기학(氣學)의 추뉴(樞紐)가 된다. 통민운화를 준거해야 진퇴하는 바가 있게 되 고, 대기운화(大氣運化 또는 天地運化, 一氣運化)는 통민운화에 통달해야 그릇된 바가 없게 된다. 만약에 일신운화가 통민운화에 준거하지 않으면 인도(人道)를 제우고 정치와 교화[政敎]를 행할 수 없으며, 대기운화가 통민운화에 통달하지 않으면 표준을 세우고 범위를 정할 수 없다.8)

최한기는 대기운화・통민운화・일신운화를 통틀어서 삼등운화(三等運化)라고 불렀다. 그 규모로 보

면 대기운화가 가장 크고, 일신운화는 가장 작고, 통민운화는 그 중간이다. 그리고 이 셋을 기의 본성인‘활동운화(活動運化)’가 꿰뚫고 있다는 것이다.  ) 그리고 최한기는 지구전요를 편찬하면서 천문학, 자연학, 인문지리학의 지식을 기(氣)철학에 의

해 하나의 체계로 종합시키려 했다.

땅(지구)은 우주[宇內]에 있으면서 행성들이 뱅뱅 도는 것과 연계해서 체계를 이루는 것으로 온전해 지고, 기화(氣化)는 역법이 지구에서 제대로 일어나게 한다. 옛날부토 지구를 논한 책들은 각국의 영토[疆域]・풍토・물산・인민・정체[政]・풍속[俗]・역사[沿革] 같은 것들을 많이 말했으나 지구의 전체 운화(全體運化)는 오직 지구도설(地球圖說)만이 간략하게 밝히고 있으므로 (지구전요) 첫 권으 로 채록(採錄)한다.10)

지구도설은 프랑스인 선교사 베누아(Michel Benoit, 중국명: 蔣友仁)가 지은 지구도설(地球圖說)(1799년)을 가리킨다. 이 책은 천주교회에서 금서가 막 해제된 코페르니쿠스 태양중심설을 재빨 리 중국에 소개한 책으로도 유명하다. 

그리고 각국의 지리학에 관한 내용은 지구도설 범례(凡例)에서 주로 해국도지(海國圖志)(魏源 

엮음, 초판1843)와 영환지략(瀛環志略) 청 서계여(徐繼畬) 엮음(1849)에서 채록했으나, 다만 일본에 관한 기술이 둘 다 너무 소략한 것이 많기 때문에 해유록(海游錄)(조선 신유한申維翰 지음)에서 취하고 보태었다고 밝히고 있다.

또 지구전요 권11 「해론(海論)」에서는 서양의 선박과 해양생물의 소개와 조석, 바닷물이 짠 이

유에 대해 논하고, 「중서동이(中西同異)」에서는 서양과 중국의 별자리를 비교하고 중국에 전래된 서역(西域; 인도 및 이슬람)역법과 서양 역법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서양의 알 파벳에 대해서도 소개하면서“26자모는 흩어지면 무궁(無窮)하고 합치면 유한(有限)하며 그 용(用) 은 헤아릴 수 없으나 삼척동자(三尺童子)도 학습할 수 있다. 대개 천하의 사물은 모두 26자에 의지 해서 자세하게 논한다. )” 고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이어서 지구전요 12권에서는 「전후기년표(前後紀年表)」에서 서기[敎門紀年]와 중국 제왕의 재위기년을 대조시키고 있다. 그리고 「양회교문변(洋回敎文辨)」에서는 기독교와 이슬람, 그리고 그것을 중국에 소개한 주요 서적에 대해 비판적으로 소 개하고 있다. 또 각국의 역사와 문화도 모두 기화로 본 최한기는 지구전요 서문에서 기화(氣化)와 인간과의 관계를‘사문(四門)’으로 제시했다. 

대개 천인(天人)의 도(道)에는 다 기괄(氣括)이 있으니 어찌 맥락이 없겠는가? 지구운화(地球運化)는 행성들[諸曜]이 서로 비치는 것[照應]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사는 도리가 이루어지고, 지구의 운화 (運化)로 말미암아 기화의 사문(四門)으로 나눠서 배정한 (항목이) 생기게 된다. 항목[門]에도 각각 조목이 짜여 있고 우내(宇內) 각국의 역사의 자취를 이룬다. 이것을 읽는 자는 기화를 보고 인도를 세우며 인도를 행하면 인도가 정해진다. (하지만) 지구 표면[球面]에만 치우쳐 통달하고 기화를 보 지 못하고 지도를 말하고 인도를 생각하면 인도가 정해지지 않으니 지구 표면에 치우쳐 통달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12)

여기서 최한기는‘기화’와‘인도’의 관계성을 강조하고 인도를 제대로 세우고 실행하자면 지

구 표면에 대해서만 편협하게 통달해서도 안 되고, 인도만 생각해서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가 말한‘사문(四門)’ 즉 네 가지 항목의 내용은‘기화생성문(氣化生成門)’,‘순기화지제구문 (順氣化之諸具門)’,‘도기화지통법문(導氣化之通法門)’,‘氣化經歷門(기화경력문)’의 네 가지이다. 먼저‘기화생성문’은 천지의 기화=자연환경이 이루어낸 국토・기후풍토와 거기서 살고 있는 인구 및 생산되는 물산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다음으로‘순기화지제구문’은 천지의 기화=자연환경에 순응해서 살아가기 위해 만들어진 생활

문화와 주된 산업을 가리킨다. 

이어서‘도시화지통법문’은 인간의 기화기 통하도록 인도하는 여러 제도들, 정치, 학술, 군사, 

법률, 예법, 종교, 외교 등의 정치적・사회적 제도들을 가리킨다. 

마지막으로‘기화경력문’은 천인의 기화가 겪어온 역사와 국내의 각 지역 및 소속하는 섬, 해

외식민지 등을 가리킨다. 地球典要의 四門(항목) 

범주 氣化生成門 順氣化之諸具門 導氣化之通法門 氣化經歷門

내용 천지의 기화=자연환 경이 이루어낸 국토・기 후풍토와 거기서 살고 있는 인구 및 생산되는 물산 천지의 기화=자연환 경에 순응해서 살아가 기 위해 만들어진 생활 문화와 주된 산업 인간의 기화기 통하 도록 인도하는 여러 제

도들, 정치, 학술, 군사, 법률, 예법, 종교, 외교 등의 정치적・사회적 제 도들 천인의 기화가 겪어

온 역사와 국내의 각 지역 및 소속하는 섬, 해외식민지 등

항목 疆域, 山水, 風氣, 人民(戶口, 容貌), 物産. 衣食, 宮城(都), 文字, 

歷 農(業), 商(市埔, 旗

號), 工, 器用(錢, 礮, 船, 財, 田賦). 政(王, 官, 用人) 敎, 學, 禮(樂, 葬), 刑禁(法, 兵), 俗尙(外道, 鬼神), 使聘(程途). 各部(島), 沿革.

 

12)“盖天人之道, 儘有氣括, 豈無脈絡. 地球運化, 由諸曜之照應, 而成人生道理, 由地球之運化, 而生排定氣化之四門. 門各有條織, 成宇內各國之史蹟. 讀之者, 見氣化而立人道行人道ㅡ 則人道定. 而可偏達于球面, 不見氣化而淡人道思人道. 則人道未定, 不可偏達于球面.”, 地球典要 序. 

Ⅳ.‘기화(氣化)’‘운화(運化)’를 따르는 인간

이 네 가지 항목들에 모두‘기화(氣化)’의 두 글자가 들어가 있는 것을 보아도 자연의 기후풍토

와 인간사회가 모두‘기’의 작용임을 잘 나타나 있다. 

활동하는 운화의 기는 천지 사이에 가득 차고 천지의 정액(精液)과 인물(人物)의 호흡이 되는 것이 니, 조화가 이로 말미암아 생기고 신령(神靈)이 이로 인해서 생긴다. 온 세상의 생령(生靈)들은 모두 이 활동운화의 기를 얻어서 활동하는 운화의 형체를 이룬 것이니, 비록 이 기와 서로 떨어지려 한 들 떨어질 수 있겠는가? 기화인도교(氣化人道敎)는 바로 옛날의 이른바 천인교(天人敎)이다. 옛날에 는 기화를 잘 알지 못해서 그것을 천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기이다.13)

기화인도교란 말 그대로‘기화’와‘인도’의 둘을 바탕으로 한 가르침이다. 그가 말하는‘인

도’의 주된 내용은 윤리도덕과 사회질서[倫綱政敎], 생업[士農商工], 상식[日用常行] 등이다. 이에 대해‘기화’는 우주천지를 가득 채우고 있는 기의 조화, 변화, 활동이며 천체의 운행부터 기후변 화, 풍토 등 온갖 자연현상, 심지어는 인간의 몸과 마음의 생리에게까지 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 래서 기화와 인간은 결코 대등한 관계일 수 없다. 

최한기는 또한“운화의 기가 항상 (우리 몸속에) 스며들어 적시고 있는 것은 마치 어머니 뱃속에

서 태아가 어머니에서 자양(滋養)을 받아가면서 날마다 몸을 키우고 있는 것과 같다14)”고 말했다. 사람은 (그리고 만물도) 대기운화에 의지하고 그 혜택을 받고 사는 존재로 보았다. 그뿐만 아니라 인간의 기술도 대기운화(大氣運化) 즉 우주천지의 신기에 의지하고 따르는 것이

다. 사람이 만드는 도구가 아무리 정교하다 하더라도 따지고 보면 그 물건은 대기운화에서 나온 소재를 가지고 만들어지고 대기운화의 기세를 본뜬 것일 뿐이다. 

기괄(機括)을 작동시켜서 기의 힘을 유통시키는 것도, 사물의 모양과 소리와 빛을 모방하는 것도 장 인(匠人)의 숙련된 솜씨가 금속이나 목재나 물과 불을 가지고 제작하는 속에서 기를 체득한 것이 다.15) 

사람의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그것은 그의 솜씨가 기의 흐름・성질을 잘  따랐을[承順] 따 름이라는 것이다. 최한기에 의하면 원래 사람은 자기가 몰라도 일신운화(一身運化)가 는 대기운화

 

13)“活動運化之氣, 充牣兩間, 爲天地之精液, 人物之呴游, 造化由此而生, 神靈緣此而發, 四海生靈, 得此活動, 運化之氣, 以成活動. 運化之身, 雖欲與此氣相離, 其可得乎, 氣化人道之敎. 卽古所謂天人敎也, 古者氣化未暢, 故惟謂之天, 而其實則氣也.”,  人政 권8, 敎人門, 「氣化人道敎」 

14)“運化之氣. 常漬洽焉. 便是胎中之兒. 藉母精液. 有日日之滋養.”,  人政 권12, 敎人門, 「身運化爲本」 

15)“人造之器. 雖極巧妙. 必因大氣運化之材. 又效大氣運化之勢. 機括運動. 氣力流通. 摹傚物象聲色自然. 是乃工匠之鍊熟. 得氣於金木水火制作之中也.”, 人政 권13, 敎人門, 「巧妙生於氣」 

(大氣運化)를 따라서 운화한다. 다만 그것을 모르면 망령될 수 있다. 또 그것을 알고 있어도 역시 일신운화는 대기운화를 따라서 운화하는데 그것을 알고 있으면 능히 그것을 받들어 따를(承順) 수 있고, 또 그 방법을 남에게 가르쳐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 ) 

결국 최한기에 의하면 사람은 원래 대기운화에서 마치 태아가 어머니에서 영양을 공급받고 몸을 

키우듯 기를 공급받고 살고 있다. 물건을 만드는 장인도 기에서 재료를 받고, 그 솜씨도 대기운화 를 잘 본받아서 따르는 것으로 몸에 익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기와 인간의 관계에서 인간이 가져야 할 태도로 최한기가 강조한 것이‘효(孝)’였다.

그는 흔히‘효’라고 일컬어지는 것에는 크고 귀한 것과 작고 평범한 것이 있다고 말한다. 작고 흔한 효는 부모를 봉양하는 것이고, 크고 귀한 효는 신기에 섬기는 것이다. 부모님을 모시는 효와 하늘을 모시고 섬기는 효는 모두 “아래에게 나쁜 것으로 위를 섬기지 말고, 위에게 마땅한 것으 로 아래로 미쳐야” 한다는‘혈구지도(絜矩之道)’가 있다고 한다.  ) 여기서‘위’는 대기운화(大氣運化)를 의미하고,‘아래’는 인도(人道)의 효를 의미한다. 부모를 만족시키는 인도의 효를 소홀 히 해서 대기운화에 승순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대기운화──자연의 이치──에 맞는 방식으로 부모를 봉양하고 만족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부모가 평생토록 받들어 따르는[承順] 것은 하늘과 사람의 운화이고, 자손이 평생토록 승순하는 것 도 또한 하늘과 사람의 운화이다. 따라서 하늘과 사람의 운화에서 효를 찾으면 온갖 선(善), 수많은 덕행은 모두 그 속에 포함된다. 하늘과 사람의 운화를 버리고서 효를 하고자 하는 것은 모두 시시 한 풍속이요 겉보기만의 말초적인 예절에 지나지 않는다. 하늘과 사람의 운화에 거역하여 효하고자 하는 것은 근본과 말단이 서로 어긋난 짓이다. 만약 천지와 부모가 태어난 본체(즉 신기)가 나에게 갖추어져 있다고 하여 정(情)이 가는 대로 제멋대로 행동하고 남의 비판을 돌아보지 않는다면 그것 은 불효(不孝)이다. 만약 하늘과 사람의 운화에 승순하는 것을 효와 무관하게 여긴다면 그것은 운화 도 효도도 모두 모른다는 말이 된다.18)

최한기는 하늘과 땅을 섬기는 효에 통달한다는 것은 (흔히 돌아가신 부모님에게 제사지내듯) 향 을 피우고 축문을 낭독하며 절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하나의 효를 확충시켜서 대기운화를 밝 히고 크고 절실한 덕을 베푸는 것이어야 하늘과 땅을 섬기는 효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천지의 공덕을 아직 모르는 백성들을 깨우치고, 법도를 어긋난 자는 지도해서 감화시켜야 한다. 수많은 백 성들이 모두 위대한 천지의 자손임을 알리고, 만사를 잘 처리해서 백성 모두가 위대한 신기의 자 양을 느끼게 하는 것이 인간 세상에서 가장 큰 효라는 것이다.19)

Ⅴ. 서양근대과학의 자연관과 그것이 가져온 지구의 위기

이와 같은 최한기의 인간관・자연관・기술관은 서양근대과학의 그것과는 아주 대조적인 것이었다. 과학사상사 연구자인 이토 슌타로(伊東俊太郞)는 서양근대과학의 두 가지 특징으로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가 추진한 자연의 기계론적 비인간화와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이 외친 자연의 조작적 지배라는 특징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이것은 근대에 와서 갑자기 나타난 주장이 아니라 서양의 고대에서 중세로,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오면서 점차 준비된 것이라 고 설명한다.

고대(그리스)에서는 신・인간・자연을 일체의 것으로 감싸는‘자연(피시스physis)’를 생각했는데, 

중세 기독교 세계로 넘어오면서 이러한 그리스적인 피시스적 세계관이라 할 수 있는 범자연주의 (汎自然主義)가 무너지고 신과 인간과 자연의 분명한 계층적 구조로 변했다. 거기서는 자연도 인간 도 신의 피조물이고 신은 창조주로서 그것들과 완전히 초연하게 존재한다. 그리고 자연은 인간을 위하여, 인간은 신을 위하여 존재한다. 즉 이 셋은 각각 그 상위의 것을 위해 존재한다고 여겨졌 다. 이제 인간과 자연은 동질적인 것이 아니라 낯선 타자가 되었다. 이것이 근대로 넘어오면서 기 계론적(機械論的) 자연관으로 이어진다. 이어서 이토 슌타로는 중세와 근대를 가르는‘과학혁명’의 특징으로 다음 네 가지 특징을 들었 다. 첫째, 중세까지 전해 내려온 아리스토텔레스적 우주상(宇宙像)이 해체되었다.

둘째,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생기론적 자연관에서 근대 원자론적・기계론적 자연상(自然像)

으로 전환되었다. 셋째, 수학적 방법과 실험적 방법이 결합되었다.

넷째, 중세에서는 주로 신학자가 피조물로서의 세계 전체를 정합적으로 생각하기 위해 오늘날의 

자연과학적 문제도 다루었다. 이에 대해 과학혁명 이후에는 그런 문제를 세계 전체의 사변적 고찰 과 분리시켜서 하나의 특수한 영역의 특수한 현상에 문제를 한정시키고 실험실에서 실험적 조작을 통해 그러한 문제들을 지적으로 해결하려 하는 근대적‘과학자’가 등장했다.

이상과 같이‘세계상’‘자연관’‘방법’‘담지자’의 네 가지 국면에서‘과학혁명’은 중세에 서 스스로를 구분시키는 새로운 특징을 가졌다고 한다.20) 고대에서 중세로 넘어오면서 자연과 분 리된 인간은 점차 고대적인 자연관을 탈피하면서 자연을 인간 정신은 자연을 이성으로 인식하고 

 

19)“又推達於事天事地之孝, 不可以香祝禱祀. 伸萬一之孝, 當明大氣運化敷施之大切德, 民生之不知者, 曉喩而使之知. 違戾者, 指導而感化焉. 億兆生靈, 咸知爲大天地之子孫, 萬事裁御, 皆感乎大神氣滋養.”, 明南樓隨錄 20) 伊藤俊太郞, 近代科学の源流, 東京: 中央公論新社, 2007, pp.344-353 참조.

지배하고 조작할 수 있는 원자론적・기계론적 자연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그러한 인식의 전환을 주 도한 대표적 인물이 바로 베이컨과 데카르트이다.

이와 같은 철학에 입각한 서양근대과학은 과연 눈부신 발전을 가져왔다. 그런데 그러한 근대인 의 활동이 마침내 지구환경에 심각한 흔적을 남기기에 이르렀다. 산업혁명 초기 대량으로 석탄연 료를 사용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인간이 기후 시스템을 교한한 것으로 보인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그 이후 150년 동안 점진적으로 증가하다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급증했다. 현재 다양한 지표들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인간은 지구 시스템에 급격하고 명백한 혼란을 야 기했다.21) 

전 세계적인 경제 성장, 자원 이용, 쓰레기 량과 관련한 장기적인 변화 추이를 살펴보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모든 수치가 급격하게 상승했다. 따라서 이 시기는“거대한 가속도의 시대”라 불 렸고, 이 같은 추세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22) 이러한 지구의 상황을 가리켜 과학자들은“우 리는 새로운 지질학적‘세’가 아니라 다세포 생물의 출현이 지구 역사에 초래한 변화에 상응하는 새로운‘대’, 바로 인류세(Anthropozoic era)에 진입했다는 의견을 밝히기도”23) 했다. 그런데 이 인류세는 과연 인류 이외의 종에 대해서 너무나 위협적인 일이기도 했다. 유네스코 

사무국장고문이자 비교문명학자 핫토리 에이지(服部英二)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실제로 이 혹성에서는 야생이 사라지고 이 지상에 사는 동물(곤충은 제외함)의 총수의 60%가 가축인 것이다. 그리고 36%가 인간이고 야생동물은 4%밖에 남아 있지 않다. 생물 다양성은 이 지구 에 인간이 없었던 경우와 비교하면 천 배의 속도로 감소하고 있다고 한다. 매일 120종의 종이 사라 져 간다. 과제인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은 근저로부터 위협받고 있다. 그리고 자연은 그러한 인 류의 눈을 뜨게 하듯 거대 대풍, 용오름, 쓰나미, 가뭄, 산불, 대홍수 심지어 신형 바이로스의 탄생 으로 인류에게 보복하는 태세를 보이고 있다. 지구 온난화의 위협을 과학적으로 입증한 2015년의 파리 협정은 18세기말 산업혁명 전에 비해 더 2도 기온이 상승하면 지구는 작열지옥(灼熱地獄)이 된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기온은 계속 상승하고 있으며 사실은 이미 0.5도밖에 여유가 남아 있지 않다. 그뿐만 아니라 지금 상황으로는 4도 상승마저 예상되고 있다. 그 무시무시한 조짐 은 이미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진보를 외치고 장밋빛 미래를 꿈꾸었던 인류는 오랫동안 망각했던 계시록적인 종말이 결코 가공(架空)의 이야기가 아님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24)

이와 같이 서양근대 과학문명과 손잡은 자본주의와 현대인의 소비생활이 지구와 생물들에게 엄

청난 환경파괴와 생물종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구환경의 변화가 지구온난화와 재해, 전염병 등을 가져옴으로써 인류 스스로도 위협받게 되고 있다. 이제 지구와 자연에 대한 근

 

21) 클라이브 해밀턴(Clive Hamilton) 지음, 정서진 옮김, 인류세, 이상북스, 2018, 17쪽.

22) 위의 책, 17쪽.

23) 위의 책, 20쪽; Charles H. Langmuir and wally Broecker, How to Build a Habitable Planet, revised edition, Princeton, NJ: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2, p.645.

24) 服部英二, 地球倫理への旅路 : 力の文明から命の文明へ, 札幌: 北海道大學出版會, 2020, pp.252-253.

본적인 시각의 전환, 패러다임 전환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최한기의 자연관과 인간관이 이러한 현대문명의 위기 상황에 새로운 시각을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Ⅵ. 맺음말

‘지구(地球)’ 즉 땅이 둥글다는 설은 중국에 입국한 예수회 선교사들이 동양에 소개하고 17세 기 무렵에 조선에도 알리게 되었다. 이후 김석문(金錫文)・이익(李瀷)・홍대용(洪大容) 등이 지구가 하 루에 한 바퀴 돈다는 자전설을 소개하고, 19세기 최한기(崔漢綺)의 지구전요(1835년)가 비로소 지 구설・지동설・지전설을 통틀어서 소개했다. 특히 최한기는 프톨레마이오스[多祿畝], 티코 브라헤[的谷], 메르센[瑪爾象], 코페르니쿠스[歌白尼]의 천체모델을 차례로 소계하면서 오직 코페르니쿠스의 설만이 태양이 움직이지 않고 지구가 그 주변을 돈다가 소개하면서 이로 인해 천체 운동의 계산이 잘 부합되게 되었다고 평가했다.

최한기는 인류가 실제로 지구를 한 바퀴 돌고 돌아와서 땅이 둥글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 역사

적인 큰 획을 그은 일이라고 보았다. 그는 카노(엘카노)가 살아남은 마젤란 함대를 이끌고  지구를 한 바퀴 돌고 돌아온 일을‘천지의 개벽’으로 칭찬했다. 거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었다. 하나는 그의 지구일주 항해로 인해 동서의 항로가 열리고 지구 전체가 뱃길로 하나로 통하게 되고, 각지 의 산물이나 기계, 문화, 사상 등이 서로 교류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그가 하늘과 땅과 사람과 사물은 바로 하나의 신기(神氣)의 조화이기 때문에 지구(땅이 둥글다는 것)가 실제로 확인 되고 천지의 이치가 더욱 밝혀지면 이에 따라 인사(人事), 즉 인간세상의 일들도 밝혀지게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최한기는 초기의 저작인 신기통(神氣通)(1836년)에서는 사물의 천리[物天]과 사람의 천리[人天] 을 구별하고 천지자연의 이치와 인간의 도리는 각각 고유의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양자를 혼동시 킬 수 없다고 보았다. 하지만 양자는 어떤 공감대──그것이 바로 신기임──가 존재한다고도 보 고 있었다. 그 이후 최한기는 그것을‘운화(運化)’로 밝혔다. 그는 신기의 성질을‘활동운화(活動運化)’로 보고, 우주자연을 대기운화(大氣運化), 인간사회를 통민운화(統民運化), 인간개체를 일신 운화(一身運化)로 구분했다. 그 규모에는 차이가 있고 대기운화가 가장 크고, 통민운화가 그 다음이 고, 일신운화가 가장 작다고 보았다. 

지구전요(1857년)에서는 천문학, 자연학, 인문지리학 등의 내용을 종합적으로 다르고 있다. 먼 저 태양계의 운행과 태양과 달과 지구의 상호작용으로 일어나는 다양한 자연현상을 설명했다. 이 어서 지구의 운화로 기화(氣化)의 네 가지 항목[四門]이 생긴다고 하면서 각국의 지리에 대해 소개 했다. 이것은‘기화생성문(氣化生成門)’,‘순기화지제구문(順氣化之諸具門)’,‘도기화지통법문(導氣化之通法門)’,‘氣化經歷門(기화경력문)’의 네 가지인데 먼저‘기화생성문’은 천지의 기화=자 연환경이 이루어낸 국토・기후풍토와 거기서 살고 있는 인구 및 생산되는 물산을 의미한다. 다음으 로‘순기화지제구문’은 천지의 기화=자연환경에 순응해서 살아가기 위해 만들어진 생활문화와 주 된 산업을 가리킨다. 이어서‘도시화지통법문’은 인간의 기화기 통하도록 인도하는 여러 제도들, 정치, 학술, 군사, 법률, 예법, 종교, 외교 등의 정치적・사회적 제도들을 가리킨다. 마지막으로‘기 화경력문’은 천인의 기화가 겪어온 역사와 국내의 각 지역 및 소속하는 섬, 해외식민지 등을 가 리킨다. 

최한기는 각국의 기후풍토, 문화, 경제, 산품, 정치체제, 종교, 외교 등등 다양한 조목들을 이 네 가지 항목으로 분류하는 것으로 지구운화(地球運化)가 나라마다 나름대로의 기후풍토를 낳고, 그 기후풍토 속에서 사람들이 살아가기 위해 각각 나름대로의 생활문화와 산업을 낳고, 그런 사람들 이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정치적・사회적 제도를 만들어내고, 그렇게 살아가면서 나라마다 고유의 역사를 엮어간다. 그러한 단계를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한 것으로 생각된다.

최한기는 사람이 천지에 가득 차고 활동운화 하는 신기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계속 강조했

다. 지구전요에서 각국에 대한 다양한 조목들을 분류하는 네 가지 항목도 역시 그러한 생각이 반영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사람과 만물은 활동운화하는 신기 안에서 만물을 살리는 기의 혜택을 받아서 살고 있다고 보았다. 

심지어 사람의 기술마저 기괄(機括)을 작동시켜서 기의 힘을 유통시키는 것도, 사물의 모양과 소

리와 빛을 모방하는 것도 장인(匠人)의 숙련된 솜씨가 금속이나 목재나 물과 불을 가지고 제작하는 속에서 기를 체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같은 최한기의 자연관, 인간관, 기술관은 서양과학의 사고방식과는 아주 대조적인 것이다. 서양에서 고대 그리스의 자연관은 신・인간・자연은 모두‘자연(피시스physis)’로 포괄되었다. 그러 나 중세에 와서는 신・인간・자연은 확연히 구별되었다. 자연도 인간도 신의 피조물이고 신은 창조 주로서 그것들과 완전히 초연하게 존재한다. 그리고 자연은 인간을 위하여, 인간은 신을 위하여 존 재한다고 여겨지게 되었다. 이제 인간과 자연은 동질적인 것이 아니라 낯선 타자가 되었다. 

중세 시대에 이미 자연과 분리된 인간은 점차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표되는 고대 그리스적인 자연 관을 벗어나면서 자연에 대해 인간 정신은 자연을 이성으로 인식하고 지배하고 조작할 수 있는 원 자론적・기계론적 자연으로 간주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인식의 전환을 주도한 것이 바로 베이컨의 기계론과 데카르트의 물신 2원론이다.

그러한 철학에 지탱된 서양근대과학은 오늘날까지 눈부신 발전을 가져왔다. 하지만 그것은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지구환경에 뚜렷한 흔적을 남기기에 이르렀다. 산업혁명 초기에 석탄연료의 대량 사용이 시작했을 때부터 인간이 기후 시스템을 교란하기 시작했다고 여겨지는데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대개중의 이산화탄소의 양이 급증했다. 또한 이 시기부터 전 세계적인 경제 성 장, 자원 이용, 쓰레기의 양 등 모든 수치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인간 활동이 생 태계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지구의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이 근본적으로 위협받고 있다. 그 래서 오늘날 많은 과학자들이 현대를 가리켜 다세포 생물의 출현이 지구역사에 가져온 변화와 버 금가는‘인류세(Anthropozoic era)’에 진입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구적 자연관에서는 자연과 인간이 분리된 채 인간 이성이 기계론적 자연을 인식하고 지배하고 

조작할 수 있는 원자론적・기계론적 자연으로 여기게 되었다. 이에 대해 최한기는 지구전요 서문 에서“무릇 사람들이 지구의 표면 위에 함께 살면서 (행성들이) 도는 데에 의지하고 기화를 타서 평생을 돕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고 말했다. 이와 같은 그의 인간관에 굳이 이름 을 붙인다면“지구운화 내 공존재(地球運化內共存在)”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무분별한 활동이 지구와 생태계에 파괴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고, 그것에 대한 비판과 반성의 목소리도 높아 지고 있는 오늘날, 최한기의 생각이 시사를 주는 바가 적지 않으리라 믿는다. 

참고문헌

氣學

明南樓隨錄

神氣通

人政

地球典要 推測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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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혜정, 「地球典要」에 나타난 최한기의 지리관」, 지리학논총 제45호, 서울대학교 국토문제연구 소, 2005. 야규 마코토(柳生眞), 崔漢綺 氣學 硏究, 서울: 景仁出版社, 2008. 이면우, 「地球典要를 통해 본 崔漢綺의 世界 認識」, 인문사회교육연구 제3호, 춘천교육대학교 인문사회교육연구소, 1999.

崔漢綺 저, 李佑成 편, 明南樓全集, 서울: 驪江出版社, 1986. 클라이브 해밀턴(Clive Hamilton) 지음, 인류세, 정서진 옮김, 서울: 이상북스, 2020.

伊藤俊太郞, 近代科学の源流, 東京: 中央公論新社, 2007. 服部英二, 地球倫理への旅路──力の文明から命の文明へ, 札幌: 北海道大學出版會, 2020.

 

【지구형이상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