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지구근대성 시대의 종교 연구 조규훈*
12)
요약문 현대 세계의 연계성과 상호의존성이 고도화되면서 종교들 간의 조우와 얽힘의 기회들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지속가능하지 못한 당대의 발전 방식은 지구 환경을 점점 더 불가역적으로 교란하고 있으 며, 이에 인류문명과 생태계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극복하기 위한 종교의 공적 기여가 새롭게 요청되고 있다. 이 발표는 현대 지구화의 맥락에서 종교적 다양성과 종교의 사회적 역할을 종합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지구종교학’을 모색한다. 필자는 먼저 아시아의 공간에서 제기되는 지구학의 조건을 살펴볼 것이다. 한국을 포함하는 아시아는 20세기 후반 이후 다양한 전통들과 문화유산의 지속 가운데, 탈식민화의 과정과 민족근대화의 복합적 결과들을 동시에 목도 해왔다. 이러한 아시아의 물질적·문화적 조건은 상이한 지구근대성의 양상을 보여주면서, 서구의 그것과는 다른 지구학을 요청한다. 둘째, 아시아의 지구학의 관점 에서 지구종교학의 개요를 살펴본다. 근대 종교학은 출발부터 지구종교학의 형태를 띠었다고 할 수 있다. 학문 분야로서 지구학은 비교적 최근에 출현했지만, 근대 종교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막스 뮐러 (F. Max Mül ler, 1823-1900) 이후 종교학의 발전은 지구화의 역사적 전개와 그 궤를 같이 해왔다. 지구적·지역적 교류 와 의존성의 증가에 따라 심화되는 종교문화적 복잡성을 체계적으로 다루도록 인도하는 새로운 개념틀이 필요한 상황에 이르렀다. 필자는 지구종교학을 지구적 차원의 상호연계성의 맥락 속에서 종교현상을 고찰하
는 것으로 이해하면서, ‘사회 구성주의적 접근’(social constructionist approach)을 넘어 ‘지구 상호작용적 접근’(global interactive approach)을 제시한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지구종교학의 개념틀이 적용될 수 있는 몇 가지 전형적인 사례들을 고찰한다. 이를 통해서 현대 지구사회에서 종교의 문화적 위치와 대안적 역할에 대해 살펴본다.
차 례
Ⅰ. 머리말
Ⅱ. 아시아의 지구화와 지구학
Ⅱ. 지구종교학 : 지구종교의 개념틀
* 캐나다 토론토 대학(University of Toronto)
I. 머리말
종교학(the science of religion)의 등장과 발전은 사회의 변화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 유럽에서의 계몽주의와 자연과학의 등장, 서구 국민국가들의 식민지 확장과 제국주의의 전개 등 근대 세계의 변화는 세계의 종교들을 두루 파악해야 할 필요를 낳았고, 이는 근대 종교학의 형성으로 귀결되었 다. 현대의 지구적 대전환은 지난 2-3세기 동안 근대문명 모델로서 자부해오던 서구사회의 탈중심 화를 낳고 있으며, 이는 종교연구에 있어서 새로운 학문적 도전을 낳고 있다. 근대적 종교연구의 발생이 서구사회와 학계에 빚진 바 있지만, 지구화된 현대의 맥락에서의 종교연구를 돕는 새로운 개념들과 이론들, 분석모델, 가설, 지적 감수성과 상상력이 필요해졌다.
20세기 후반 국경과 문화의 경계를 넘나들며 이동하고 교류하는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사회적 활동과 과학기술의 고도화, 지구 생태환경의 위기 그리고 이러한 변화들이 인류의 삶에 끼치는 근 본적인 변화에 대한 큰 관심을 불러 왔다. 21세기 들어서 지구적·초국가적인 현상의 여러 측면들 을 탐구하기 위한 학제간 연구의 분야로서 지구학(Global Studies)이 등장했다. 이러한 학문적·사회 적 변환 속에서, 지구적 관점에서 종교현상을 고찰하려는 지적 작업들도 크게 증가해왔다. 필자는 지구화의 맥락에서 종교의 다양한 차원들을 고찰하려는 연구를 지구종교학(Global Religious Studie s)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지구종교학은 국경과 지역을 넘나드는 초국가적 종교활동뿐만 아니라 지 역의 종교현상이나 심지어 개인의 일상적인 종교활동도 지구적 관점에서 분석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이 발표에서 필자는 먼저 아시아의 공간에서 제기되는 지구화(globalization)와 지구학의 조건을
살펴볼 것이다. 한국을 포함하는 아시아는 20세기 후반 이후 다양한 전통들과 문화유산의 지속 가 운데, 탈식민화의 과정과 민족근대화의 복합적 결과들을 동시에 목도 해왔다. 이러한 아시아의 물 질적·문화적 조건은 상이한 지구근대성의 양상을 보여주면서, 서구의 그것과는 다른 지구학을 요 청한다. 둘째, 아시아의 지구학의 자리에서 지구종교학의 개요를 살펴본다. 근대 종교학은 출발부 터 다분히 지구종교학의 형태를 띠었다고 할 수 있다. 학문 분야로서 지구학은 비교적 최근에 출 현했지만, 근대 종교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막스 뮐러 (F. Max Müller, 1823-1900) 이후 종교학의 발 전은 역사적 지구화의 전개와 그 궤를 같이 해왔다. 하지만 지구적·지역적 교류와 의존성의 증가 에 따라 심화되는 종교문화적 복잡성을 체계적으로 다루도록 인도하는 새로운 개념틀이 필요한 상 황에 이르렀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지구종교학의 개념틀이 적용될 수 있는 몇 가지 전형적인 사례 들을 고찰한다. 이를 통해서 현대 지구사회에서 종교의 문화적 위치와 대안적 역할에 대해 살펴본 다.
Ⅱ. 아시아의 지구화와 지구학
지구화란 무엇인가? 지구화란 세계가 하나의 생활의 장소로 바뀌는 것 ) 또는 국가나 문명의 경
계를 가로질러 지구적 차원의 상호연계성이 강화되는 일련의 사회적 과정 )을 가리킨다. 지구화는
보편성(universality)과 특수성(particularity)의 공존과 길항, 모방과 상호침투가 다양한 형태로 펼쳐 지는 현상이다. 지구화는 한 편에서는 지배력을 가지거나 보편적으로 여겨지는 제도, 범주, 기구, 표준, 모델, 언어, 문화, 통화 등의 세계적 차원의 확장을 뜻하지만, 다른 한 편에서 지역의 문화나 권력 관계, 정체성, 특징 등이 지구적 차원의 흐름과 상호 연결되고 이를 반영하거나 변화시키려는 움직임과도 관계된다. 지구지방화(Glocalization)이나 지방지구화(Locablization) 같은 신조어들은 바 로 이러한 ‘지구-지역 연계’를 보다 면밀하게 개념화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인류의 역사를 지구화의 관점에서 고찰하는 지구사(global history) )는 점점 더 지구화되는 현대
사회가 지구의 과거와 사뭇 비슷할 수 있음을 알려준다. ) 시공간을 초월하여 사람들을 연결시키는
TGIF(Twitter, Google, Internet, Facebook) 같은 정보통신기술(ICTs)의 발달과 디지털 문화, 대륙을
넘나드는 초장거리 이동의 대중화, 고도화된 초국적 금융과 기업의 등장으로 오늘의 지구인식(glob al consciousness/imaginaries)은 불과 몇 십 년 전과 비교해도 확연히 증가했다. 정보와 소통과 관련 된 기술의 발전과 초국가적 이동을 위한 장거리 운송수단의 광범위한 활용은 사람들이 국경과 문 명의 경계를 넘어 손쉽게 교류할 수 있는 새로운 소통방식을 고안하고 더욱 사용하도록 권장한다. 그러나 정보-소통-이동 기술의 발전이 낳은 새로운 장치들과 도구들, 플랫폼 등을 활용한 지구적 소통과 상호작용은 오랫동안 사람들이 형성해온 문화와 관습, 지역에서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서 형성된 인적 네트워크와 분리되지 않는다. 아시아의 사회들과 지역들, 국가들 안에서 또는 경계를 넘어서 오랜 기간을 거쳐 형성해온 물질적·문화적 유산은 현대의 지구-지역 역학에 상당 부분 영 향을 미치거나 경로의존적 관성을 갖는다.
정치, 경제, 문화, 환경, 기술, 종교 등 지구화의 측면들을 학제적으로 연구하는 지구학(Global St
udies)의 주요한 특징의 하나는 근대성의 기원을 서구에 두는 유럽중심주의(Euro-centrism)로부터의 분리이다. 그간 유럽이 보편적이 합리적이라면 아시아는 특수하고 비합리적이라는 오리엔탈리즘에 의해 아시아는 폄하되어왔다. 그러나 이것은 민족주의나 옥시덴탈리즘, 배타적 지역주의에 대한 옹 호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지구화에 대한 자민족중심적 접근은 서구의 근대화가 만들어낸 국민국가 중심의 발전 패러다임의 기반이었다는 점에서 유럽중심주의라는 동전의 다른 측면이라고 할 수 있 다. 냉전 이후 아시아에 대한 지역연구는 지난 약 2-3백 년 간 사회구성의 기본틀이 되어온 국민 국가의 경계를 넘어 다중적인 정체성을 띠면서 지역을 넘나드는 소통으로 이루어졌던 아시아의 초 국가적 상호작용 또는 인터아시아적 연계망에 주목해왔다5). 특히 아시아의 바다는 문명사의 관점 에서 볼 때 지구화의 요람이자 출발점이었다. 일찍이 15세기 이전부터 아시아의 해상교역은 동서 간 장거리 해상 루트를 형성하면서 발전하였다. 페르시아의 상인들, 아랍 상인들, 중국 상인들이 아덴(Aden)에서부터 남중국의 광둥(廣東)까지 연결된 교역망을 활용하였다.6) 강력한 국경에 따라 지역이 영토로 나뉘어지는 근대의 공간이 형성되면서 인도양을 가로질러 동서양을 연결했던 무슬 림 에큐메네(ecumene)나 실크로드를 따라 존재했던 초지역적 상업문화 네트워크가 상당부분 해체 되었다. 그러나 전근대 인터아시아의 세계와 비슷하게 글로벌 냉전 이후 다양한 세력들이 이념보 다는 필요에 따라 관계 맺고 경쟁하는 다극화된 국제적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현대 아시아에서 지구화로 인한 초국가적 상호의존과 이에 따라 다양하게 확산되는 지구적 상상(global imaginaries) 은 과거의 문화적 각인과 느슨하게나마 남아있는 오래된 초지역적 네트워크와 중첩되어서 증가하 고 있다.
21세기 아시아에서 펼쳐지는 새로운 문명의 모습은 서구적 근대성에 대한 일방적인 모방도 아니 고, 지역의 과거의 기원들과 상관없이 형성되는 오로지 현대적인 지구적 전환의 결과물도 아니다. 지금 아시아의 지구화는 아시아의 여러 문명권에서 원시적 형태로 나타났던 고유한 근대성의 맹아 들, 식민지 시기에 축적된 국가주의적 근대화의 잔재, 현대의 지구적 조우와 의존성 등이 서로 간 에 상호작용하여 형성되는 지구근대성(global modernity)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오늘의 지구화된 한 국사회는 원시 근대성, 식민지 근대화, 탈식민의 결과들이 동시에 공존하는 지구근대성의 좋은 사 례를 이룬다. 조선조 유교문화의 유산과 윤리규칙이 계속되고 있으며, 일제 강점기의 뒤틀린 식민 지 개발의 부작용을 겪고 있는 가운데, 한류가 보여주는 것처럼 현대의 통신기술을 활용하여 아시 아 및 세계 곳곳과 소통하거나 타국의 사람들과 거의 실시간으로 상호작용하는 현상들이 동시에 함께 엉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현재 아시아의 맥락에서 나타나는 지구화란 아시아 지역의 역사 와 문화의 경로, 현대의 지구적 연결망이 상호작용하여 나타나는 지구지방화(glocalization)의 모습 을 띤다.7)
2차 세계대전 이후 남아시아, 동남아시아, 동아시아, 중앙아시아, 서아시아 등 아시아의 여러지역 의 탈식민화 과정 가운데 나타난 개발 프로젝트들은 국민국가 간의 상호고립을 지향하기보다는 초
5) Abu-Lughod, Janet. Before European Hegemony: The World System A.D. 1250-1350,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89; Duara, Prasenjit. “Area Studies Scholarship of Asia”, Matthias Middel ed., The Routledge Handbook of Transregional Studies. London: Routledge, 2018, pp. 41.
6) 주경철, 대항해 시대: 해상 팽창과 근대 세계의 형성, 서울: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08, 6-26쪽.
7) 조규훈, 「현대·서구 중심적 지구화를 넘어서: 아시아의 종교전통들과 다중적 지구화들」, 종교연구 제
79집 2호, 2019, 51-55쪽.
국경적 교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남아시아지역협력 연합(SAARC),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ECP), 아시아태평양협력체(APEC) 등 아시아의 지역협의 체들은 아시아의 번영을 위해 개방적이고 느슨한 지역주의에 기반을 두고 연결되어 있다. 실크로 드나 무슬림 상인들의 사례가 보여주었던 것처럼 등 역사적으로 아시아는 교역이나 종교를 매개로 연결된 네트워크 지역이었다. 네트워크 모델은 영토적 균질성에 대한 상상을 전제로 하는 지역주 의 모델과는 다르다. 지금 중국이 진행하는 초지역적 교통인프라 사업인 ‘일대일로’(一帶一路, B elt and Road Initiative)는 고대에 유라시아와 아프리카를 연결했던 비단길이나 해상교역로와 매우 유사한 경로를 보여준다. 아시아의 지역들을 초국가적으로 연결하고 의존하게 만들어 지역의 평화 와 번영을 담보하려는 시민사회와 비정부기구, 국가들의 노력은 아시아의 지역들을 점점 더 연결 하며 지구화시키고 있는데, 이는 근대의 주권이나 발전의 개념들에 대한 변화를 요청한다.
요컨데 아시아 지역들을 가로지르며 통합시키는 현대의 지구적 전환에 있어서 종교 네트워크나
문화적 각인들은 선도적 역할을 하거나 변수, 심지어는 주요한 주체로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아시 아의 지구근대성이 보여주는 초국가적인 상호의존성의 형태는 지구화된 세계의 미래가 지구 과거 의 사회들이 연결되어 있던 방식들과 유사하거나 연계될 수 있음을 알려준다. 이는 지구화에 대한 세밀한(nuanced) 이해를 위해서는 전통, 사상, 문화, 종교, 전근대의 초지역적 소통의 방식들 등을 주의 깊게 살필 필요가 있음을 알려준다.
III. 지구종교학 : 지구종교의 개념틀
1. 20세기의 종교연구 방법론을 넘어서기 근대 흄볼트적 철학의 목표는 교육과 연구를 통합하고 인문주의적이고 개인적인 가치들을 진작 하는 것이었다. 그러한 가치들은 대체로 국가의 이익에 부응하도록 고안된 의제들에 의해서 구성 된 것이었다. 이러한 교육 개념이 국민국가들에 수용되면서, 인문사회과학의 목표는 개인과 공동체 의 안전을 보장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문명을 달성하기 위한 ‘국가현 대화’에 두어져 있었다.8) 이러한 기존의 패러다임을 넘어, 변화하는 글로벌 환경에 적합한 종교연
구를 위해서는 방법론적 민족주의(methodological nationalism)와 인식론적 지역주의(epistemological provincialism)를 지양해야 한다. 일국사회의 단위를 의문의 여지가 없는 분석의 기본틀로 삼기보다 는, 지구비교적 관점에서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의 종교현상을 ‘내부’와 ‘외부’, ‘식민지’와 ‘종주국’, ‘동양’과 ‘서양’의 접촉과 교류가 특정한 역사적 국면에서 만들어낸 우연적인 결 과로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근대 서구와 동아시아 지역이 상당부분 공유하는 세속주의
8) Duara, Prasenjit (두아라 프라센짓), 「인류세에서 아시아 연구의 의제」, 아시아리뷰 제4집 1호, 2016,
15-23쪽.
적 관점에서 다른 지역의 종교문화를 이해하려 하는 인식론적 국지성의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 다 른 문명권의 종교적 또는 세속적 역학을 최대한 통시적 관점에서 이해하면서, 다른 지역민들의 문 화 변동의 관점에서 자신이 속한 종교문화의 현실에 낯설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방법론 적·인식론적 관점에서 ‘종교’ 또는 불교, 유교, 개신교, 천주교, 힌두교, 이슬람 같은 ‘종교 들’을 고정되고 선험적으로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아야 한다. 대신 종교를 공간과 시간의 맥락에서 인간적 흐름들의 교차가 형성하는 공간, 또는 정치적·사회적·문화적 경계를 가로질러 구성되는 고유한 소통의 양식으로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9)
17, 18세기 유럽의 탈교회화 과정에서 계몽주의의 지적전통과 세속사회의 출현, 뒤이은 서구 국 민국가들의 식민주의적 확장에 따른 비서구 종교전통들의 ‘발견’은 근대 종교학 출현의 배경이 되었다. “하나만 아는 사람은 아무것도 모른다 (He who knows one, knows none.)”고 했던 막스 뮐러 이후 근대 종교학은 특정한 신앙이나 신학의 울타리를 넘어 비교의 관점에서 종교전통, 종교 현상, 종교사상, 종교집단, 종교의 역할 등에 대한 과학적 연구를 추구해 왔다. 이를 통해 다양한 종교들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기술할 수 있는 이론과 방법, 용어와 개념을 생산하기 위해 노력했 다. 종교학의 초창기에는 종교의 기원과 진화에 집중했다가, 점차 그것이 종교의 본질과 구조에 대 한 관심으로 이동했다가, 다시 종교의 의미나 기능에 대한 학문적 고찰로 옮겨갔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종교현상의 다중성과 복합성 자체가 주요한 주제로 부각하여, 다학제적(multi-disciplinary) 방법론을 활용하여 이를 이해하려는 학문적 시도가 증가했다. 1980년대 이후 그리스도교나 아브라 함계 종교가 예증하는 ‘신앙’, ‘조직’, ‘기원’, ‘경전’, ‘신학’ 등과 같은 일련의 장치들 을 종교를 구성하는 암묵적 기준으로 삼아 종교를 정의하는 일종의 ‘제국주의적’ 접근이 종교학 내에 여전히 만연하다는 비판도 나타났다.10) 현대 종교학은 ‘제도중심적’ 종교연구를 넘어서 종 교현상의 일상성과 물질성에 집중하거나, ‘주류종교’ 보다는 ‘신종교’ 또는 ‘새롭게 나타나 는 영적현상’에 관심을 기울이거나, 탈식민이론이나 성(gender) 정치학의 관점에서 종교가 구성되 고 작동하는 미시적 역학이나 ‘문화정치’를 고찰하거나, 심지어 “종교란 연구자 상상의 산물” 이라는 관점에서 종교학자들이나 종교전문가들의 저술들의 바탕이되는 의식구조, 종교문화적 배경, 지정학적 지향 등도 연구의 대상으로 삼기에 이르렀다.11)
20세기, 특히 2차 세계대전 이후를 풍미한 대표적 사회과학적 종교이론은 ‘세속화론’(seculariz
ation thesis)과 ‘종교시장론’(market theory of religion)이었다. 전근대와 다른 근대사회의 세속적 전환에 따라 등장한 세속화론은 유럽사회가 탈주술화(disenchantment)를 겪으며 제기된 것이었다 면, 종교경제론은 자본주의 경제론 또는 신자유주의적 시장 논리가 만연한 미국에서 교단화된 종 교들(denominational religions)이 서로 경쟁하며 발전하는 ‘종교시장’에 대한 관찰로부터 비롯되
9) 조규훈, 「종교와 지구화: 근대 종교체계의 형성, 탈구, 확장」, 종교연구 제79집 1호, 2019, 13-15쪽.
10) Asad, Talal. “The Construction of Religion as an Anthropological Category”, Melissa M. Wilcox. Religion in Today’s World: Global Issues, Sociological Perspectives. New York: Routledge, 2013, pp. 17-34.
11) Smith, Jonathan Z. Imagining Religion: From Babylon to Jonestown. 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2, pp. xi-xiii.
었다. 아직도 종교변동의 근대적 특징을 설명하기 위해 흔히 사용되고 있는 이 종교이론들은, 현대 의 종교적 다원상황에 직면하여 각각 ‘종교의 쇠퇴’와 ‘종교의 성장’이라는 상반된 주장을 내 놓았다. 그러나 이것들이 창출된 경험적 토대가 서구세계로 제한되어 있었으며, 국민국가에 기반한 일국사회를 종교현상에 대한 분석의 기본단위로 활용하였고, 세속적⋅합리적 민족근대화 의제에 부응하는 관점들에 인식론적으로 의존하는 문제를 노정했다는 점에서는 두 이론은 일치했다. 관찰 의 대상을 전 세계로 확대해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비서구사회를 보면, 훨씬 많은 인구가 종 교적 경외감을 소중히 간직하며 살고 있으며, 그들의 다수가 ‘종교’를 어떤 효율성의 관점에 따 른 선택의 대상으로 삼기보다는 출생에서 사망까지 자신과 세계를 통합시키는 ‘삶의 양식’으로 여긴다.
2001년의 9/11 테러 이후 세속문화가 재성화(re-sacralization)되고 공공영역에 종교의 개입이 일 상화된 ‘탈세속사회’(post-secular society)에 들어섰다는 공감대가 커졌다. 새천년의 종교적으로 고양된 분위기 속에서 인문사회과학 일반을 가로지르는 종교에 대한 이러한 인식의 대전환은 종교 에 대한 관찰과 분석의 범위를 서구나 특정 국가, 사회, 지역, 또는 특정한 종교문화권이 이끄는 것에 고정하기 보다는, 지구사회 전체의 차원에서 나타나는 종교문화적 상호작용으로 확장시키면 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21세기 세계는 세속화로 인한 ‘종교의 종언’보다는 광범위한 ‘종 교의 귀환’을 목도하고 있으며, 현대 지구사회의 종교적 역동성은 경제적 합리성으로 환원시키기 에는 훨씬 더 복잡한 역사적 뿌리와 다원성을 보여준다. 종교연구자들은 현대 지구사회로 ‘초월 성’ 또는 ‘성스러움’이 새롭게 소환된 이유 그리고 그것의 탄력성과 중층성의 형태와 의미를 체계적으로 또한 명료하게 기술하고 설명해야 하는 학문적·사회적 압박에 직면해 있다.
2. 지구종교학의 이론적·방법론적 기초
20세기 후반 유럽과 미국을 풍미한 두 종교이론이 갖는 설명력의 한계는 21세기의 종교연구에 있어서 지구적 전망의 필요성을 반증한다. 오늘날 종교학은 지구화된 세계의 종교문화적 연결과 상호의존, 혼종성, 보편적인 것으로 상상되는 ‘종교’와 ‘세속’이라는 범주나 표준 또는 가치에 대한 지역적 전유와 재해석의 양상들, 그리고 종교적 재현들, 담론들, 실천들의 물질성과 일상성 또는 ‘탈종교화’ 등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복합적인 종교현상을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다각적이면서도 엄격한 고찰을 통해 학문적 해석과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이론틀을 제시하도록 요청받고 있다. 세계의 특정 지역이나 단위, 혹은 그것의 문화적 양식이나 역사적 결과에 일방적으 로 의존하는 방법과 이론으로 지구사회 곳곳의 종교문화를 이해하기보다는, 특정한 (지역의) 종교 변동도 세계적 규모에서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되는 것으로서 이해하도록 돕는 전망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현대의 맥락에서 두드러지는 종교문화적 특징은 기존의 종교 개념이나 범주의 밖에 있거나 이를 통해서 파악하기 어려운 종교적 다양성의 증가라고 할 수 있다. 21세기의 종교이론은 지구사회의 상호연결이 초래하는 미증유의 종교적 다양성을 총괄적으로 조망하면서 그것의 전체와 부분을 통 합적으로 설명하도록 요청받는다. 지구종교학은 ‘종교’의 형성과 변동을 지구화 과정의 주요한 측면으로서 이해하고, 경험적 연구를 통해 지역의 상황과 문화적 배경에 따라 ‘지구종교’와 그 것의 관련문제들을 발견적(heuristic)으로 고찰함으로서 진화를 이루어 나가는 연구로서 정의될 수 있다. 브라이언 터너(Bryan Turner)는 현대사회에서 종교의 이해와 관련된 주요한 쟁점들은 모두 이러한 지구화의 과정과 관련되어 있다고 말한다. ) 정보통신기술의 발달과 장거리 운송수단의 대 중화, 대륙의 경계를 넘어가는 이주의 증가 등이 지구화 현상을 촉발시켰다고 흔히 주장된다. 어떤 면에서 종교전통이야 말로 지구화의 선구자였다. 지역과 인종, 문화적 경계를 넘는 ‘보편종교들’ 의 발생이야말로 종교의 지구성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지구종교’(global religion)란 지구적 차원에서 관찰되는 종교적 다양성을 개념화하기 위한 용 어로 선택되었다. 새천년에 들어서 마크 주어겐스마이어(Mark Juergensmeyer) )는 지구화된 세계 의 종교현상을 총괄적으로 기술하기 위해 ‘지구종교’ (global religion)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는데, 이 개념을 좀 더 체계화하여 활용할 수 있다. ‘지구종교’는 ‘종교와 지구화’ (religion and glob alization), ‘지구화의 종교적 차원’ (religious dimension of globalization), ‘종교적 지구화’ (relig ious globalization)등의 표현과도 대체 가능하다. 지구종교학은 역사적 기원과 맥락을 주요하게 고려 하지만, 모든 시대를 가로질러 적용되는 보편적 이론을 지향하기보다는 일차적으로 근대시대로 제 한된다.
‘지구종교’는 지구화가 초래하는 미증유의 종교적 복합성 전체를 조망하고 설명하는 이론적 전망으로서 제안된다. ‘지구종교’는 기본적으로 ‘종교-탈종교-탈세속’의 동시성으로 나타나며, 다양한 지역적·문화적 상황에서 각각의 부분이 상대적으로 분리되어 있지만 상호관계하고 때로는 상호의존하거나 중첩되면서 다양하게 맥락화된다. ‘지구종교’의 형성을 이러한 근대 종교체계의 등장과 그것으로부터의 탈구, 그리고 다른 사회영역들로의 종교의 확산이라는 삼중적 과정으로 구 분되지만 연결되어 나타나는 것으로 조망할 때, 현대의 종교적 다양성 또는 복합성과 그것의 변동 에 대하여 보다 깊은 이해를 얻을 수 있다.
국경과 문화적·지역적 경계를 넘어 상호작용하는 복합적인 종교현상을 고찰하기 위해서는 일국 사회나 특정 지역, 어떤 영토화된 공간 내부의 종교적 역학에 대한 분석에 집중하는 ‘사회구성주 의적 접근’(social constructionist approach) 넘어, 지구적 차원의 상호연계성의 맥락 속에서 종교현 상을 고찰하는 ‘지구상호작용적 접근’(global interactive approach)이 필요하다. 지구화의 맥락에 서 주요한 종교적 쟁점이나 과정, 종교집단과 개인들, 실천들과 담론들을 고찰하고 해석하기 위하 여, ‘지구상호작용적 접근’은 종교/문화적 역사들 그리고 대화적이며 또는 순환적인 조우들 사이 의 상호작용을 주요하게 포착하고자 한다. 지구상호작용적 접근의 관점에서 지구화된 지역의 상황 과 문화적 배경 속에서 종교현상의 다양한 측면들과 행위자들을 이해하기 위하여 ‘종교’-‘탈종 교’-‘탈세속’라는 지구종교의 삼중적 측면들과 그것들 간의 상호작용을 주요하게 살핀다.
지구종교를 형성하는 각 측면의 특징을 간략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종교 (religion). 역사적 지구화의 흐름은 ‘세속’을 종교적 규범과 제도들로부터 분리하는 방식
을 만들어 내었으며, 이는 ‘종교’(religion)라고 불리는 구별된 영역 또는 체계의 지구적 구성을 돕는다. 근대 지구화의 결과인 세속성 )의 등장 가운데 사회로부터의 ‘종교’의 분화가 제도화되 고 ‘종교들’, 특히 이른바 ‘세계종교’들이 ‘종교’의 주요한 구성물로서 나타났다. ‘종교의 자유’와 ‘정교분리’라는 한 쌍의 원칙을 통해 ‘종교’ 범주는 지구적인 차원에서 제도화된 것 으로 나타난다.
탈종교 (post-religion). 현대 지구화의 진전은 국민국가 질서와 결탁된 ‘종교’의 경계를 넘나드
는 개인적이고, 물질적이며, 감각적이며, 일상적이고, 선택지향적인 ‘영성적 전환’을 추동한다. 이러한 ‘종교’의 해체 또는 문화적 탈구 현상에 집중하는 종교학자들은 ‘물질종교’, ‘생활종 교’, ‘종교 이후의 종교’ 등의 표현을 쓰기도 한다. 특히 2차 세계대전 이후 지구화의 진전에 따라 선진산업사회를 중심으로 베스트팔렌 조약 이후 형성된 국민국가의 제도와 병행하지 않는
‘대안적 종교성’, ‘탈종교’(post-religion), ‘영적혁명’(spiritual revolution) 또는 종교문화적 혁 신 현상에 대한 보고가 증가해 왔다.
탈세속 (post-secular). 지구화로 인한 생활세계의 압축은 공적이거나 세속적 공간으로 간주 되어
온 사회영역들 속으로 종교의 확장과 개입을 요청하고 초래하는 ‘탈세속적 전환’을 위한 비옥한 토양을 제공한다. 이에 대한 학문적 담론들이 ‘종교의 부흥’, ‘공공종교’, ‘종교의 귀환’, ‘현대의 재성화’, ‘종교의 탈분화’ 등의 표제들 아래서 증가해 왔다.
요컨대 지구화의 종교적 차원 또는 ‘지구종교’는 ‘종교’, ‘탈종교’, ‘탈세속’으로 분리 될 수 있지만 긴밀히 연동되어 작동하는 종교성의 중층적 구성으로서 나타나며, 이러한 종교적 다 원성의 체계는 일련의 관련문제를 만들어 내면서 지역의 상황과 문화적 배경에 따라 다양하게 맥 락화 된다. 이러한 지구종교의 개념틀을 활용하여 개인의 (종교의) 자유, (종교) 집단 또는 전통의 위치와 역할, 종교적 혼종성, 국가제도의 성격 그리고 사회영역들과 제도들의 형태 등 일련의 관련 문제들(reference problems)이 어떻게 구체화 되는지 고찰해 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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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기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