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02

4] 【지구예술학】꿈꾸는 사과, 지구예술학은 가능한가? 오쿠와키 다카히로(奥脇嵩大)*

 4] 【지구예술학】꿈꾸는 사과, 지구예술학은 가능한가? 오쿠와키 다카히로(奥脇嵩大)* 

요약문   전 세계적 규모로 기후변동과 코로나19의 확대와 같이 인간활동에 기인하는 대재난을 겪고 

있는 상황 속에서, 예술은 의학이나 과학과 같은 방식으로는 인류의 생존에 기여하지 않는다고 여겨지고 있 다. 그러나 지금에 이르는 인간활동의 ‘지구화’의 흐름과, 인간활동으로서의 예술, 특히 마르셀 뒤샹(Marc el Duchamp, 1887~1968)이래의 현대 예술의 역사가 그 정의(定義)에 대한 다시 물음을 통한 영역확대의 연 속임을 고려한다면, 오늘날의 예술에서 인간의 지구인식의 변용을 촉구하는 ‘잠재력’의 기미를 읽어내는 것도 가능하리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세계 예술계에서의 인류세나 생태계에 대한 관심의 고조에는 그러한 전조의 측면도 있지 않을까?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서 본 발표에서는 한국의 최재은(1953~)이 DMZ를 무대로 생명에 대한 깊은 관심에서 기획한 《대지의 꿈》 프로젝트나 일본의 아메미야 요우스케(雨宮庸介, 1975~)의 ‘사과’를 주제로 한 작품 제작을 중심으로, 새로운 지구인식으로 이어질 수 있는 동아시아 현대 아티스트

의 작업을 포스트-미디엄(post-medium)이나 신유물론(new materialism)과 같은 이론을 원용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아울러 작품에 내재하는 기술/물질/정신의 고유성의 이종혼잡 상태=중간적 운동상태를 힌트 삼아, 예술제작이나 이론을 지구인식을 새롭게 하는 매체(medium)로서의 가능성으로 전치(轉置)시킬 것을 주장하 고자 한다. 전체적으로 지구를 자신의 반신(半身=alter ego)으로 간주하고, 미적이면서 직접적인 형태로 지구 에 살기 위한 사고영역, 즉 ‘지구예술학’에 이르는 방법을 제창할 생각이다.

차 례

Ⅰ.‘지구예술학’을 그리기 위해서

Ⅱ. 동력으로서의 사과:아메미야 요스케(雨宮庸介, 1975-)

Ⅲ. 세계를 꿈꾼다: 최재은(崔在銀, Jae-Eun Choi)

Ⅳ. 맺으며

이번 발표에서는 예술윤리와 존경할만한 예술가들의 작품제작의 사례 등을 소개하면서, 인간이 예술제작을 통해서 지구를 어떤 형태로 재인식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재인식을 토대로 무엇을 이끌어 낼 수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한다. 그런 사고의 형식을‘지구예술학’의 가능성

 

* 아오모리 현립미술관 학예원

을 검토하는 것으로 대신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Ⅰ.‘지구예술학’을 그리기 위해서

‘지구예술학’이라는 미지의 학문영역의 개요를 알기 위해서 먼저 사과를 실마리로 삼고자 한 다. 여기에서 연상되는 것은 아이작 뉴톤(1643-1727)이다. 그는 일설에 의하면 낙하하는 사과를 보 고 만물을 지구 내부로 끌어당기는 중력을 발견했다고 한다. 이 중력 작용에 대해서 미셀 세르(193 0-2019)는 그의 저서 자연계약(Le Contrat Naturel)(1990)에서“최초의 대규모적인 과학시스템”이 라고 말했다. 만유인력은 우리와 지구의 결속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시에 인간은 이미‘사회 계약’을 매개로 인간들끼리의 결속으로서의 사회를 손에 넣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인간사회의 팽창, 즉 폭발적인 인구증가는 필연적이고, 최근의 하두인 인간활동이 지구에 직접 영향을 끼치는 시대구분인 ‘인류세(anthropocene)’의 도래는 사회계약이 행해진 시점에서 결정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그런 사회계약을 대신하여 세르가 주창한 것이 인간과 지구의, 오늘날로 말하 면‘공생의’‘지속가능한’이라고 바꿔 말할 수 있는, 재생관계를 맺을 것을 주창한‘자연계약’ 이었다. 인간을 날줄, 자연을 씨줄로 해서 지구를 위한 새로운 네트워크를 구축하자는 세르의 제창 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관계성의 그물망 속에서 모든 사물의 행위를 고찰하는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 1947- )의 행위자 네트워크 이론과 접속된다. 그런데 세르가 제시한 바와 같이“모든 사람 들의 활동이 세계에 피해를 초래하고, 그 피해가 루프 회로에 의해 역전되어, 곧바로 혹은 일정한 기간 후에 모든 사람들의 노동의 소여가 되는”것을 믿는다면, 계약내용을 재검토하고 노동내용을 다시 묻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계약내용을 물을 시기는 지나가 버린 듯하다. 그것은 결국 문제가 될 수 밖에 없음을 우리는 이미 몸으로 체득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내가 살고 있는 아오모리현(青森県)은‘차세대 에너지 공원’이라는 이름으로 방사성 폐기물의 중간저장 시설이나 최종처분장과 함께 재생가능에너지를 다루는 기업이 밀집해 있는 지역이다. 나는 자연과 의 공생관계를 희망하면서도 실제적인 계약테이블에 앉아 있는 상대방으로서 자연인가, 아니면 인 간존재의 그림자로서의 예술인가를 선택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이 비생산적인 계약테이블을 떠 나서 방안의 창문을 열어젖혀야 할 때가 아닐까? 그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주위의 문화나 자연환경과의 연대를 기점으로 세계를 다시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타이페이(台北) 비엔날레2020:你我不住在同一星球上 You and I Don’t Live on the Same Plan et”은 그 작업을 위한 인식시스템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비엔날레는 브뤼노 라투르와 마틴 기나르 (Martin Guinard)의 큐레이션에 의해 전 세계 27개국으로부터 온 아티스트, 과학자, 활동가 57명 그 리고 단체가 참가한 국제예술제로 개최되었다. 타이페이의 아열대환경과의 조화를 이루면서 타이 페이미술관 내외에서 개최된 이번 예술제를 특징지우는 키워드 중의 하나는 ‘Planet TERRESTRIA L’이다. 거기에서는 지구 규모의 기후변동을 배경으로, 경제활동의 충실화와 지구에 가해진 부담 사이의 균형을 잡는 문제가 테마가 되었는데, 그것을 위해서 라투르가 지구 표면이나 풍토와 같은 뉘앙스를 담은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고,‘예술제’라는 형식으로 검토하고 있는 점은 대단히 흥미 로운 일이다. 지역에 뿌리를 둔 예술제를 매체(medium)로 하여, 이론을 현실화시키는 작용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고의 근육을 씨줄, 정의(定義)의 다시 물음에 의한 영역 확대의 연속으로 서의 마르셀 뒤샹 이래의 현대예술의 역사를 날줄로 해서 짜여진 한 장의 천을 상상해 보라. 그러 면 오늘날의 예술제작 가운데 인간의 지구인식의 변용을 촉구하는‘잠재력’의 기운을 읽어내는 것도 가능하다고 생각된다. 그렇게 해서 매체로서의 작용으로부터 작품의 강도를 말하기 위한 실 마리를 설정함과 동시에 지구에 대한 이미지를 현실화시키기 위한 매체로서의 가능성을 찾아보고 자 한다. 

그것을 위해 이번에 접속을 시도한 것은 미술비평가 로잘린드 크라우스(Rosalind E. Krauss, 1940 -)가 제창한‘포스트 미디엄 이론’이다. 작품에서의 물질성을 중시하는 클레먼트 그린버그(Clemen t Greenberg, 1909-1994)를 스승으로 삼았던 크라우스는 점차 스승을 떠나 대안적(alernative) 비평 의 가능성을 추구하게 된다. 그런 가운데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에 걸쳐 제창되기 시작한 것이 포스트 미디엄 이론이었다. 대상으로는 주로 사진이나 영상 작품을 다루고, 작품을 성립시키 는 기술적 특질에 대한 고찰을 바탕으로 작품에 포함되는 창조성을 이끌어 내는 작업이 시도되고 있었다. 작품 성립의 조건으로서의 물질에서 기술로의 시선 이동이 미술비평에서의 창조성을 새롭 게 한 것인데, 물론 현실의 작품제작은 그렇게 깔끔하게 전개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의 작품제작은 물질적으로도 기술적으로도 점점 복잡하게 얽히는 이종혼종성, 즉 뭐든지 들어 있는 상태가 자명 하게 되고 있다.     

본 발표에서는 오늘날의 예술작품에 내재하는 기술/물질/정신이 이종혼합되는 상태를 중간적 인 운동상태로 새롭게 읽고, 그것을 바탕으로 작품과 현실을 동시에 제작하고 새롭게 규정하는 등 의 행위를 발견할 것을 제안하고자 한다. 거기에서는 포스트 미디엄 이론을 매개로 새로운 지구인 식을 매개하는 예술제작의 가능성이 주장됨과 동시에, 그 주장은 작품 고유의 강도를 말하는 것으 로써, 끊임없이 작품 그 자체로 회귀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해서 지구와 예술작품, 각각이 그리는 두 개의 원이 조금씩 겹치도록 해서 사과와 같은 형태의 방사선을 그려 나간다.‘지구예술학’이 라는 사고의 형식이 있을 수 있다면, 그런 형태라고 생각한다. 거기에서는 작품을 통해 사물의 운 동상태가 표면화되기 때문에 예술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지구를 새롭게 이야기하기 위한 동 력도 된다. 이 점을 실제로 보여주기 위해서 이하에서는 두 명의 예술가의 멋진 작품을 소개하고 자 한다. 그렇게 해서 이른바 사과에 의해 보여졌던 꿈을 어디에서도 현실로 받아들일 수 있는 가 능성을 기대하고자 한다. 

Ⅱ. 동력으로서의 사과:아메미야 요스케(雨宮庸介, 1975-)

다시 아오모리현의 사과 이야기부터 시작해 보자. 아오모리는 일본 제일의 사과 생산지다. 그 역

사는 1887년 봄에 수입한 서양 사과 묘목 세 그루를 심은 데에서 시작된다. 그로부터 사과농업은 점점 발전해서, 지금도 이와키산(岩木山)이라는 산기슭을 중심으로 사과밭이 끝없이 펼쳐지는 광대 한 풍경을 볼 수 있다. 너무나 단작농업의 풍경이 이어지기 때문에 그 주변을 걷거나 차로 달리거 나 하면 아오모리의 자연이나 사람의 활동은 사과 속으로 통째로 빠져 들어가서, 마치 한 개의 사 과 속에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들 정도이다. 

2019년 여름, 아티스트인 아메미야 요스케와 나는 이 사과 세계의 일각에서 사과 농가의 수확작 업을 거들고 있었다. 그 해 가을에“생명을 경작하는 장소”를 테마로  현대 아티스트와 농가 일 의 매력을 연결시켜 소개하는 전람회를 준비하면서, 출품 작가 중의 한 사람인 아메미야가 작업하 고 있는‘보편적인 사과’제작과 관련된 조사에 입회하기 위하여 그 장소를 방문하고 있었다. 아 메미야는 자신의 제작을 매개로 현실과 공상의 경계를 오가면서, 감상자에게 독자적인 지각이나 체험을 촉구하는 입체작품이나 퍼포먼스 작품 등으로 국제적으로 평가가 높은 예술가이다. 2005년 무렵부터 사과의 작품시리즈에 본격적으로 착수하게 된 아메미야는 그 제작을 매개로 기존의 예술 이나 사회를 지탱하는 다양한 구조를 드러내고자 한다. 그 앞에 있는 것은 무엇일까? 아메미야가 목재에 유화의 기법을 사용하여 만드는 사과 작품은 현실의 사과에 한없이 가까운 색채와 형태, 질감을 지니고 있고, 아메미야 자신의 말을 빌리면“사과가 어떤 기후나 지형에서 자라고 수확되 며, 어떻게 보관되어 현재 손 안에 있는가라는 이야기를 독해하여, 그 문맥에 있어서 그 현재를 표 면에 그리는 작업”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사과가 썩지도 않은 채 전시된 상태 쪽으로 몸을 가 져가면, 왠지 그쪽이 자연스럽게 생각되어 기르거나 먹을 수 있거나, 썩거나 변화하는 현실의 사과 가 있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된다. 

쟝 보드리야르(1929-2007)의“현실은, 현실 그 자체를 치밀한 복사로 삼아 버리는 초현실로의 과 정에서 붕괴된다”는 말이 머리에 스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아메미야는 사과 제작에 몰두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세계의 모든 것을 다시 제작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사과 에 대한 깊은 지견이나 정치한 기술은 모든 것이 뒤집어지는 순간을 현실로 불러들이기 위한 장대 한 사전준비가 아니었을까? 아메미야의 사과작품에는 작품세계와 현실의 월경(越境)을 유발하고, 세계 속의 자기의 존재형식을 변용시키는 다이나믹한 시스템의 측면이 있다. 이 포스트 미디엄성 (性)을 지적할 수 있는 아메미야의 작품제작에는 외재화시키지 않고는 자기를 인식할 수 없는‘계 약’과는 또 다른 수법으로 세계와의 관계를 통째로 전환시키는 수법을 읽어낼 수 있을 것 같다. 아메미야의 이‘보편적인 사과’는 앞으로 실제의 농업을 매개로 과일로 현실화될 계획이다. 거기 에서는 바타이유-보드리야르가 죽음을 매개로 하지 않고서는 벗어날 수 없었던 현실세계가 그 내 부에서 통째로 개벽되는 순간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Ⅲ. 세계를 꿈꾼다: 최재은(崔在銀, Jae-Eun Choi)

아메미야의 작품세계를 매개로 세계인식을 전환시키는 것에 대해 지적했다. 그렇게 되면 그 다 음의 제작행위는 현실에 어떤 구체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싶어진다. 그래서 이어 서 소개하는 것은 한국 출신 예술가 최재은(1953-)에 의한 프로젝트 구상《Dreaming of Earth Proj ect》이다. 최재은은 일본의 꽃꽂이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작품이 지니는 독자적인 장(場)의 존 재방식을 추구하고,‘지구의 치유와 인간의 회복’에 대한 관심을 일관되게 지니고 있는 예술가다. 프로젝트 무대는 북한과 남한 사이에 위치한 비무장지대(DMZ). 원칙적으로 사람의 출입이 금지 된DMZ의 경계선 부근에는 두 나라의 군대가, 그 내부에는 300만개를 넘는 지뢰가 묻혀 있어, 지금 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명체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70년 가까이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상태가 보존되어 온 DMZ는2800종을 넘는 동식물이 생식하는 풍부한 자연환경을 지닌 장소이기도 하다. 프로젝트에서는 최재은의 주도 하에 DMZ중에서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홍원리 궁예도성(弓裔都城)을 중심으로 10㎞ 정도의 범위에서 4개의 프로젝트「1. 궁중정원(空中庭園), 정 자, 탑의 설치 2. 생명과 지식의 지하저장고 3. 궁예도성의 숲의 치유 4. 지뢰제거」를, 몇몇 아 티스트의 작품을 바탕으로 실현하려는 구상이다. 「1」에서는 건축가인 반 시게루(坂 茂)가 설계한 

궁중정원 주위에 카와마타 타다시(川俣 正)、이불(Lee Bul), 이우환, Studio Munbai, Studio Other Sp aces가 만든 정자를 산재시킨다.「2」「3」에서는 승효상(Seung H-Sang)이 새가 쉬기 위한 장소 -「새의 수도원」을, 조민숙(Minsuk Cho)이 생태학을 주제로 한 도서관과 종자은행(Seed bank)을 지 하에 축조한다. 이상의 작품들 이외에도 사람들이 이곳에 들어갈 때의 규칙이 설계되고, 환경을 배 려하면서 이곳에 체재하기 위한 복장 디자인 등이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이 매우 장대한 프로젝 트는 국제연합과 한국정부에 제안되어, 현재 실현을 향해 검토가 거듭되고 있다고 하는데, 그 전모 를 이 짧은 글에서 소개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다. 그래서 우선 이번에는 이 프로젝트 구상이 2019년에 일본의 하라미술관(原美術館)에서 전람회 ‘자연국가’로 소개되었을 때에 최재은이 어떤 작품을 제시했는지를 소개하겠다. 전람회의 서두에는 “No Borders Exit in Nature”라고 쓰여진 텍스트 작품이 전시되고, DMZ에서 숨쉬는101종의 절멸위기종의 이름이나 종자를 조합한 설치예술 《To Call by Name》, DMZ에서의 경계선으로 사용되었던 철조망을 다시 주조하여 만든 철판을 조 합한 통로 모양의 작품《hatred melts like snow》등이 발표되었다. 두 작품에서는 국가나 전쟁, 철, 증오가 최재은의 상상력 속에서 변용되고, 어느 하나의 지향성을 동반하면서 재표상되게 된다. 그 지향성은 최재은에게 있어서 이상인‘자연국가(자연이 지배하는 나라)’이다. 최재은은 자신의 작 품 소재에 깃든 기술/물질/정신의 혼합상태를 재귀적으로 응시하면서, 제작행위를 매개로 그것 들에 다른 운동상태를 접목함으로써 프로젝트 구상을 현실화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삼는다. 최재은 의 작품의 포스트미디엄성(性)이 기점이 되어,“세계를 자연이 지배하는 나라”로 이 현실을 엄밀 하게 개벽하는 가능성으로의 전환을 가능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중에서 앞에서 소개한 다양한 작품은 예술작품임과 동시에 자연이 지배하는 나라의 기초로서 현실화되게 될 것이다. 

Ⅳ. 맺으며

서두에서 말한 뉴톤은 만유인력의 착상을 1665년에서1666년까지 2년 동안 고향에서 휴가를 취하

는 도중에 얻었다고 한다. 그 휴가는 당시 유럽을 석권한 페스트의 재앙을 피하기 위한 것이었다. 전염병이 한창인 때에 탄생한 지혜라는 의미에서, 뉴톤의 만유인력과, 코로나 재앙이 한창인 와중 에 지구인문학(Global Humanities)에 대해 검토하는 우리 사이에 반복적이면서 인력적(引力的)인 관 계를 생각하고 싶어졌다. 이 발표에서는 아메미야의 제작을 매개로 세계 속에서의 자기의 존재형 식을 변용시키고, 최재은의 프로젝트 구상을 매개로 세계를 문자 그대로 개벽하는 가능성에 대해 지적했다. 전체적으로 개체와 세계의 위상의 반복을 제작을 매개로 변조시키는 것. 즉 작품에서의 포스트 미디엄성을 응시함으로써 자기와 지구, 자아와 타아(他我)의 경계가 교차되는 운동상태의 과정에서‘또 하나의’자기(alter ego)를 이끌어 내고, 사람이 미적이면서 직접적인 형태로 이 지구 와 함께 살기 위한 존재영역을 현실화시킬 것을 제안하였다. 이 제안을 ‘지구예술학’이라고 부 를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이 현실세계에서의 매일 매일의 제작행위 속에 매몰되면서도 끊임없이 사색을 추구해 나가는 일이 필요할 것 같다. 이번 발표는 그 실마리를 확인하는 것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번역: 조성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