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02

13] 【지구수양학】개인의 완성과 지구적 연대의 통합적 실천 이주연*

 13] 【지구수양학】개인의 완성과 지구적 연대의 통합적 실천 이주연*


요약문   

인류세에 대한 논의를 기점으로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성찰이 일어나고 있다. 바이러스와 기후 온난화 문제, 소외와 혐오 등 지구적 차원의 위험현상들은 그간의 인간중심주의를 지양하며, 전 지구적 존 재들의 상생과 조화를 추구하는 지구인문학적 사유를 필요로 한다. 그 중 지구수양학은 개인의 마음을 닦는 행위와 지구적 연대를 통합적으로 실천하기 위한 사상 및 방법론을 다루는 학문이다. 한국 신종교 사상들은 한국인이 근본적으로 추구해온 종교적 심성, 즉 만물 간의 조화로운 공존을 추구한다. 그런데 이들은 담론 제시에 그치지 않고 개인의 마음바탕을 수양하는 일에 있어서도 개인의 인격성장만이 아닌 전 지구적 존재 와 덕을 나누는 방식을 추구하기 때문에 지구인문학적인 수양학, 즉 ‘지구수양학’으로서의 특성을 보인 다. 비대면 생활이 일상화됨으로 인해 개인주의가 더해졌고, 탈종교 현상과 아울러 종교 본연의 역할에 대 한 회의와 반성이 일어난다. 이러한 급변의 시대에 종교는, 하비 콕스가 강조했듯, 교리적 지식이나 도덕주 의를 중심에 두지 않고 유기체적으로 모든 생명의 연대성을 강조해야 한다. 본 연구에서는 이 점에 주목하 여 한국의 신종교 사상들에 담긴 지구수양학으로서의 사상, 그리고 이들 사상을 반영한 지구적 수양법, 즉 개인의 완성과 아울러 지구공동체의 연대를 함께 추구해가는 방식을 탐색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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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례

Ⅰ. 머리말 

Ⅱ 지구위험시대의 수양학

Ⅲ. 지구수양학의 윤리와 방법론

Ⅳ. 맺음말

*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책임연구원


Ⅰ. 머리말

종교학자 류병덕은 “한국인의 종교혼은 자연을 지배 대상으로 보지 않고 생명의 근원, 무한 생 성력, 고맙기만 한 자연으로 받아들였다”고 말한다.1) 이 연구는 한국의 동학과 천도교, 그리고 원불교가 제시한 지구중심적 사유와 실천법에 주목하여, ‘은(恩)적 네트워크’ 기반의 ‘공경과 불 공의 윤리’, 나아가 수양법을 종교적 이념에 국한시키지 않고 지구위험시대를 극복할 실천적·보 편적 담론으로 사회화하기 위한 시론적 연구이다.

동양의 수양학은 마음을 닦는 일과 존재의 근원적인 진리에 관심을 두었으며, 이 관심을 바탕으로 인격의 완성을 이루고자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개인의 마음 닦는 일에 그치지 않고, 인간의 삶에 긴밀한 연관성을 가지는 자연 본연의 생명성이나 당시 사회문제들을 함께 궁구함으로써 개인 의 단독적 진화가 아닌 주변과의 공진화(共進化)를 실천하려 했다. 이 점을 고려하면, 지금 시대의 수양학, 즉 지구위험을 극복하려는 수양학으로서 ‘지구수양학’은 그 명맥을 이어 인간중심주의 에 대한 성찰적 사유를 바탕으로 개인의 심성 도야와 지구적 공경을 함께 지향해야 할 것이다.

이 점에서 동학·천도교, 원불교가 제시했던 지구수양학적 특성에 주목한다. 이들 종교의 공공성 은 외세의 침입과 불안정한 시국, 신분차별로 고통 받던 근대 한국에 요청되던 ‘민중적 공공성’ 이었다. 근대에 필요했던 이 공공성은 지금의 지구위험시대에 이르러 ‘지구적 공공성’으로 새롭 게 적용될 필요가 있다. 

지구적 공공성은 전 지구적 존재들로 구성되는 ‘은(恩)적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발현된다. 은 (恩)적 네트워크는 인간과 비인간, 사사물물 등 모든 존재들이 긴밀한 은(恩)적 관계를 맺고 있음을 전제한다. 은(恩)적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이들 종교는 ‘지구에 대한 공경과 불공의 윤리’를 제시 한다. 그리고 수양방법들은 물질과 정신의 이원론을 해체하는 방식을 따른다. 이들 수양법이 지구 수양학의 방법론이 될 수 있는 이유는 개인의 심성을 도야하는 과정이 지구 구성원들에 대한 공경 및 불공과 통합적으로 실천되기 때문이다. 이 통합적 실천으로 물질과 정신, 인간과 비인간, 땅과 하늘, 문명과 자연, 남성과 여성의 이원화를 극복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필요에 따라 본 연구에서는 지구수양학, 즉 은(恩)적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공경과 불 공의 윤리, 수양 방법론에 대해 논의한다. 지구수양학은 곧 개인의 심성 도야와 지구적 공경·불공 을 통합적으로 실천하는데 필요한 윤리와 방법론, 나아가 지구공동체를 위한 수양학의 사회화를 모색한다는 점에서, 인류의 실질적 변화를 필요로 하는 지구위험시대에 유의미한 연구가 될 것이 다.

1) 류병덕, 근·현대 한국 종교사상 연구, 서울: 마당기획, 2000, 18쪽.

Ⅱ. 지구위험시대의 수양학

1. 시대에의 응답 최근 들어 지구를 향한 시선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2008년 에콰도르는 신헌법에 ‘자연권’ 을 명시했고, 2010년에 볼리비아는 ‘어머니 지구법’을 채택했다. 이밖에도 2017년 왕거누이강(Wanganui)에 법인격을 부여한 뉴질랜드의 움직임도 눈에 띄는 부분이다. 한국에서도 2020년에 지구 를 위한 법학이 출간되는 등, 인간중심적이던 법적주체를 지구중심적으로 전환하려는 시도가 일 어나고 있다. 그밖에 의학 및 생태 분야에서도 ‘원 헬스(One Health)’, 즉 인간과 비인간 존재들 의 긴밀한 상호의존성에 주목하는 접근방식이 등장했다. 원 헬스는 ‘인간-동물-환경을 아우르는 건강(health)은 하나(one)’라는 믿음 아래 인간 중심의 건강 관점에서 탈피하여 동물뿐만 아니라 생태계 전체의 균형 잡힌 건강과 안녕(well-being) 확보를 목적한다. ) 이러한 변화들은 신종 감염병 과 기후문제 등 전 지구에 닥친 위험들에 대한 대응책의 일환이라 볼 수 있다.

지구의 권리, 인간과 지구의 관계성에 주안점을 두는 이 시도들은 지구인문학적 사유에서 비롯 된다고 볼 수 있다. 지구인문학은 그간의 인간중심주의를 반성하고 ‘지구’를 사유의 중심에 두 고자 하는 인문학을 말한다. 지구인문학적 관점을 지닌 대표적 지구신학자로 토마스 베리(Thomas Berry)는 ‘지구공동체’로의 전환이 필요함을 역설하며, 땅·생물·인간이 지구의 구성원으로서 가족 같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 지구인문학은 인간과 비인간, 자연과 문명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던 관점을 해체함으로써 그간의 위계적 사고로 인한 타자화와 폭력을 지양한 다.4)

지구인문학으로서 지구수양학에 대한 선행 연구는 아직 본격적으로 등장하지 않았다. 다만 이 연구에서 검토하고자 하는 근대 한국 신종교 사상의 지구인문학적 요소에 대한 논의는 2020년부터 있어왔다. 지구인문학 연구들은 이들 사상가들이 제시하는 인간관과 우주론을 지구 구성원의 상호 의존관계나 지구중심주의에 연관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 연구들은 어디까지나 지구인문학 이라는 상위 범주를 구축하는 논의이기 때문에, 수양학적 관점으로 이들 종교에 접근하거나 지구 수양학적 윤리와 방법론을 세부적으로 다룬 것은 아니다. 

한편 근대 한국 신종교의 생태담론에 관련해 현재까지 진행된 연구들은 이들 종교에 담긴 생태

적 요소가 이원론적 사유를 극복하고 인간과 자연의 화해를 추구한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생태담론을 담은 사상적 특이성을 다루고 있어도 실제 수양과의 연계를 시도하는 경우는 미미하 다. 또한 근대 한국 신종교 사상을 수양학적 측면에서 논의해온 결과물은 다수가 있다. 그러나 지 구위험에 대한 인식 아래 직접적인 실천을 요하는 수양학적 논의,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는 보편적 방법론으로 재탄생시키려는 시도는 과제로 남겨져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본 연구에서는 지구 위험시대에 적용하기 위한 수양학으로서 지구수양학의 윤리와 방법론을 새롭게 모색하고자 한다.  

2. 지구수양학의 방향성 수양(修養)은 몸과 마음을 갈고닦아 품성이나 지식, 도덕 따위를 높은 경지로 끌어올리는 것이

다. ) 동양의 학문은 사물의 이치에 대한 탐구 못지않게 실천의 문제를 중시  )해왔고, 그래서 이성 중심의 서구에서와 달리 수양은 주된 과제로 자리매김해 왔다. 수양은 인간에게 실재하는 ‘경 험’으로부터 비롯된다. 인간은 사유 이전에 실재하는 경험이란 것을 일회적인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것’으로 만들고자 노력하니, 이것이 바로 수양이다.  ) 

수양에 대한 논의를 주로 많이 다루어 온 유학에서는 마음의 구조를 이해하고 마음을 닦는 것을 수양의 기본으로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유학이 개인의 인격 수양만을 주장하진 않았다. 군자의 과업인 ‘수기치인(修己治人)’은 ‘수기(修己)’와 ‘치인(治人)’의 통합을 강조했다는 장점을 가 진다. 개인적 수양과 사회적 실천을 함께 추구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 이러한 ‘수신제가치국 평천하’의 사상은 사실 유학적 전유물이 아니며, 중국 제자백가의 학설 중에도 ‘수신’과 ‘치 국’, ‘평천하’ 중 하나라도 부정한 경우는 없었다. 

노자의 수양론도 도덕허무주의가 아닌 현실사회를 최종 지향점으로 하며, 무욕의 마지막 단계에 도달하여 사회적 역할을 해야 할 것을 강조했다.  ) 그리고 노자철학을 이은 장자 또한 허정(虛靜)의 수양을 통한 무위(無爲)의 통치론을 제시, 개인의 자유를 위한 수양론을 사회적·정치적으로 구성 하였다.10)

불교의 ‘상구보리 하화중생’은 위로는 깨달음을 얻고 아래로는 중생을 구제하라는 뜻이며, 존 재 간의 연결 관계에 주목하는 연기론은 사회 갈등은 물론 생태적 공공성을 살릴 수 있는 개념이

다. 이런 이념적 기반을 바탕으로 불교에서도 수양은 사회적, 대중적 성격을 병행해 왔다. 근대기 우리나라 불교잡지들을 검토한 결과 1919년 3.1운동 전후로 불교계의 혁신과 개혁운동을 지향하는 대중운동이 활성화 되면서 불교교화를 위한 대중의 수양론이 등장했었다는 연구 보고 )도 있다. 어쨌든 동양의 수양학이 근본적으로 수양의 주 대상으로 삼은 것은 마음이며, 이에 따라 수양인

은 수심(修心)을 하고자 노력했다고 볼 수 있다. ) 존재론이나 인식론에 중점을 둔 서구적 사유법 과 달리 동양의 수양학은 마음을 닦는 일과 존재의 근원적인 도달점에 관심을 두었으며, 이 관심 을 바탕으로 인격의 완성을 이루고자 했다. 그러나 개인의 마음 닦는 일에 멈추지 않고, 인간의 삶 에 긴밀한 연관성을 가지는 자연 본연의 생명성이나 당시 사회문제들을 함께 궁구함으로써 개인의 단독적 진화가 아닌 주변과의 공진화(共進化)를 실천하려 했다.

개인 내적인 완성과 더불어 사회 참여를 지향했던 학문으로서 수양학은 정치·경제·인간관계 등 다양한 영역에서의 가치관과 방향성을 제시해오고 있다. 그리고 이들 수양학을 혁신적으로 계 승한 근대한국 신종교들은 동양과 서양의 문명이 부딪히는 가운데 민중의 주체성을 보존할 수 있 는 수양학을 제시해야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구의 위험이라는 새로운 테제를 마주하게 되었다. 동양의 수양학의 명맥을 이어 새로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버전의 수양학으로서 그 역할 을 요구받게 된 것이다.

근대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와 과학문명의 발달 속에 지구온난화를 비롯한 지구적 위험, 그리고 차별과 소외, 혐오 등이 발생해왔다. 이러한 지구위험의 주된 요인인 ‘인류세’에 대한 논의와 성찰이 활발해짐에 따라 요즘의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반성이 일어나고 있다. 따라서 인간중심주의를 벗어나 지구중심주의를 추구하는 지구인문학으로서의 수양학, 즉 지구수양학은 개 인의 내적 완성과 더불어 지구적 연대를 지향하게 된다. 이때 지구적 연대는 인간과 비인간, 자연 과 사물을 포괄하는 전 지구적 존재들 간의 연대를 의미한다. 그간 동양의 수양학이 개인의 완성 과 더불어 사회적 실천을 병행해 왔다면, 지구의 위험을 기점으로 출발하는 이 지구수양학은 인간 중심주의에 대한 성찰적 사유를 바탕으로 개인적 심성 도야를 통한 내적 완성 및 지구적 연대를 함께 추구한다. 

지구수양학은 전 지구적 존재들이 지구라는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긴밀한 상호의존관계에 있으

며, 따라서 수양을 통한 개인의 완성도 단독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지구공동체의 조화로운 운용과 더불어 진행된다는 이념을 바탕으로 한다. 본 연구에서 다루려는 두 종교 외에도 근대한국 의 신종교 사상은 이와 같은 지구수양학적 윤리와 방법론을 담지하고 있다. 동학·천도교에서 ‘천지부모는 일체’라 하여 지구가 곧 모든 존재들의 부모이자 포태임을 강조했던 점, 정역이 ‘十五一言’과 ‘十一一言’을 통해 하늘과 땅과 사람의 조화가 필요함을 주장했던 점, 대종교의 ‘삼일(三一)사상’, 그 중에서도 ‘사물사상’에서 사물이 내재한 신성을 드러냈던 점, 원불교의 삼동윤리 등은 지구수양학적 해석이 가능한 부분들이다. 

따라서 한국의 신종교를 단순히 민족, 민중 운동의 틀 안에 매몰시킬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보편

적 종교심성을 바탕으로 한 보편적 종교운동으로 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 종교적 이념이라는 틀 내에서가 아닌, 근대에 등장한 한국의 자생적 담론으로서 ‘지구위험에 대응하는 한국 發 윤리와 방법론’으로 조명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새로운 종교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는 신영성운동14)에서 도  인간과 자연의 친화를 강조하며 비인간 존재들과의 연대를 언급하고 있다. ) 한국의 신영성운 동 단체들의 경우 기수련을 통한 명상과 함께 타자, 나아가 전 지구를 배려하고 연대하고자 한다 는 점에서 지구인문학적 사유에 근접해 있다. 그럼에도 일부 신영성운동을 가리켜 ‘인류의 보편 적인 가치나 윤리 덕목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이 개인의 육체적·정신적인 건강과 안녕, 그리고 심리적 평화만을 강조’ )한다는 비판은 외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런 비판을 받는 것은 신영성운동의 핵심이자 실천적 영역이라 할 수 있는 수련 체계가 개인의 내적 자아완성에 방점을 찍음으로 인해 지구공동체를 향한 이타적 사랑의 강조는 단지 ‘도덕적 강령’에 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더하여 세션스(Sessions)는 신영성운동이 근본 생태론과 정반대라 고 지적한다. 신영성운동가들은 인간을 지구 진화 과정의 정점에 있는 존재로서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다고 본다는 것이다. ) 이는 비인간 존재와의 연대를 지향함에도 불구하고 한편에서는 인간의 위치를 위계 중심적으로 설정함으로 인해, 결국 ‘인간중심적인 지구중심주의’라는 오류 로 환원될 수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지구화시대의 위험에 관련하여 지구적 차원의 바이러스나 환경문제, 소외와 차별, 혐오문제,  인

간중심주의나 자본주의로 인한 양극화 현상 등이 존재한다. ‘지구의 구성원’으로서 인간이 아닌 ‘지구의 중심에 위치한 존재’로 인간을 위계화 하는 방법으로는 지금의 패턴을 벗어나 전 지구 적 존재들의 연대를 이룰 수 있을지는 재고해 볼 문제다. 지금의 지구위험시대에 필요한 수양학은 개인의 심성도야, 그리고 이러한 이원론적 사유의 해체를 함께 실천하는 방법론을 필요로 한다.

Ⅲ. 지구수양학의 윤리와 방법론

1. ‘은(恩)적 네트워크’ 기반 공경의 윤리

 

 1) 은(恩)적 네트워크 동학의 교조 수운은 1860년 음력 4월 5일에 도를 이루었고, 그로부터 1년 후에 「포덕문(布德文)」

을 냈다. 「포덕문」에는 그의 득도 과정과 함께 ‘잘못되어 가는 나라를 바로잡고 도탄에서 헤매는 백성들을 편안하게 만들 계책이 장차 어디에서 나올 수 있을 것인가?’ )라는 우려가 담겨 있다. 그가 구도에 몰입했던 것은 나라와 백성을 구하기 위해서였고, 그래서 득도 후 제시한 21자 주문, ‘지기금지원위대강(至氣今至願爲大降)’과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侍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는 누구나 이 주문으로 천인합일을 이룰 수 있게끔 하는 대중적 수련법이다. 수양의 출 발점은 백성과 함께 하는 데 있었다.

원불교 수양학의 특징도 시대상황과 맞물려 나타난다. 대산은 마음공부를 가리켜 ‘마음공부로 도덕을 살리고 세상을 구원하는 근본을 삼아야’ )한다고 하여, 개인의 내적 수양력이 외부로 확 산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이렇듯 원불교의 수양학이 대사회적 성격을 띠는 이유는, 「물질이 개벽되 니 정신을 개벽하자」라는 개교표어에서도 알 수 있듯 외세의 침략과 분단의 아픔, 그리고 도탄에 빠진 창생, 개화라는 거대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정신개벽’이라는 변혁을 이루고자 했기 때문 이다. 

동학·천도교, 그리고 원불교의 공공성은 ‘개벽(開闢)’이라는 기치 아래 ‘민중 스스로의 공공 성’ )으로 발동되었으며, 이에 따라 각 수양법도 민중적 공공성을 기반으로 한다. 동학과 천도교 에서 매일매일, 매 끼니 매 순간을 모두 의례의 연속이라고 보아 이를 역행하는 제천의례를 중시 하지 않는다거나 ), 원불교 ‘무시선법(無時禪法)’이 ‘괭이를 든 농부도 선을 할 수 있고, 마치를 든 공장(工匠)도 선을 할 수 있다’22)고 하여 누구나 실천 가능한 방법을 제시한 점을 보면 확인되 는 부분이다.

이러한 공공성은 당시 시대상에 요청되던 사회적 공공성으로 설명될 수 있으나, 근본적으로는 

동학·천도교, 원불교 모두 ‘지구’라는 공동체의 공공성을 지향한다. ‘시천주’는 인간뿐 아니 라 모든 존재가 한울님을 모시고 있음을 뜻하고, ‘일원상의 진리’에서도 ‘일원은 우주 만유의 본원’이라 하여 사사물물에 전부 일원의 진리가 갊아 있음을 의미한다. 전 지구적 존재 모두가 곧 진리의 실상이라 본다는 점에서 공공성의 영역을 사회를 확장한 지구로 설정할 수 있고, 따라 서 민중적 공공성을 지구적 차원의 공공성으로 확대하여 실천할 필요가 있다.

베리가 말한 지구공동체는 지구를 하나의 유기체로 보는 ‘가이아 가설’을 전제한다. 지구는, 그리고 지구의 존재들은 인간을 위한 도구적 존재가 아니며 각자의 권리를 가진다. 반면 인간은 그간 지구를 약탈해 왔다는 게 그의 견해다. 마찬가지로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도 인간이 자 연과 사회를 이원화함으로 인해 부주의하게 하이브리드를 양산해왔고, 이로부터 지구의 손상이 발 생했다고 본다. 베리와 라투르의 이 견해들을 통해 지구적 공공성의 발현 과정을 유추할 수 있다. 바로 유기체로서의 지구와 개별 구성원으로서의 전 지구적 존재들이 일방적 ‘약탈’이 아닌 ‘상 호작용’을 해나갈 때, 지구적 차원의 공공성이 실현된다고 볼 수 있다.

전 지구적 존재들의 상호의존성에 대해서는 현대 서구 이론가들도 다양한 논의를 전개하고 있 다. 특히 라투르는 ‘행위자-연결망 이론(Actor-Network Theory, ANT)’을 통해 인간과 사물이 어 떻게 동맹을 맺을 수 있는지 밝힌다. 그에게 ANT는 ‘이질적 존재자들의 연합의 전개를 묘사하는 방법’ ), 즉 인간과 비인간을 막론한 ‘행위소’들이 하이브리드 공간인 연결망에서 서로 ‘관 계’를 형성한다는 관계론이다. ANT 이론은 모든 존재들이 이 연결망에서 서로에 의해 규정된다 고 보기 때문에 자연과 사회 중 특정한 무언가가 우선시 될 수 없게 된다. 라투르와 같은 신유물 론자의 견해는 인간이나 비인간 내지는 사물이 지니는 상호의존성을 뒷받침한다. 

그런데 지구공동체 구성원들의 이 연관성은 일찍이 동학의 2대 교주 해월의 사상에서 다뤄진 바 

있다. 그는 ‘천지부모는 일체’, ‘천지는 만물의 아버지요 어머니’ )라고 말하여, 지구는 곧 모 든 존재들의 부모와 같은 ‘포태’임을 강조한다. 나아가 ‘천지가 아니면 나를 화생함이 없고 부 모가 아니면 나를 양육함이 없을 것이니, 천지부모가 복육하는 은혜가 어찌 조금인들 사이가 있겠 는가.’ )라고 하여, 지구와 개별 존재간의 관계를 ‘은혜’로 표현한다. 

소태산의 ‘사은(四恩)’에서도 이 관계성을 천지은·부모은·동포은·법률은의 네 가지 은혜로 설명하고 있다. 그는 하늘의 공기, 땅의 바탕, 일월의 밝음, 풍운우로의 혜택, 금수초목 등 인간뿐 아니라 비인간 존재들도 나에게는 은혜로운 존재이며, 이들과 주체의 관계를 가리켜 ‘없어서는 살 수 없는 관계’라고 말한다. ) 또한 정산이 언급했던 ‘삼동윤리’의 ‘동기연계(同氣連契)’ 강령에서는 인류뿐 아니라 금수 곤충까지 다 같은 한 기운으로 연계된 ‘동포’이니 대동화합해야 함을 주장한다. 전 지구적 존재들 간의 긴밀한 상호의존성, 나아가 ‘은혜로운 관계’라고 설명되 고 있는 이 관계성, 집약하여 표현하건대 ‘은(恩)적 네트워크’는 지구수양학이 추구하는 윤리의 기반이라 할 수 있다.

동학·천도교, 그리고 원불교가 지구의 ‘은(恩)적 네트워크’에 중심을 두었다면, 라투르와 같은 이론가들은 –비유적으로 표현하건대- ‘연합 네트워크’에 중심을 두었다고 볼 수 있다. 은(恩)적 네트워크 중심의 관점은 이 지구를 모든 존재를 키워주는 부모 같은 존재임을, 그리고 전 지구적 존재들 각자가 서로를 먹이고 받쳐주는 형제 같은 존재임을 전제하는 데 반해, 연합 네트워크 중 심의 관점은 각 존재들이 부모나 형제가 아닌 ‘행위자’로 작용한다고 본다. 지구 구성원 간의 관계 구조를 사유하는 데 있어 어떤 부분에 무게를 두느냐의 차이라 여겨진다.

2) 공경과 불공의 윤리 수운이 여종을 수양딸과 며느리로 삼았던 일화, 그리고 해월이 베 짜는 며느리를 한울님이라 이 름 했던, 또는 소태산이 어느 노부부에게 불효하는 며느리를 부처님 공경하듯 위해주도록 권유했 던 일화가 있다. 이 일화들은 공경 또는 불공의 키워드로 요약된다. 해월의 ‘삼경(三敬)’ 사상은 ‘경천(敬天)’, ‘경인(敬人)’, ‘경물(敬物)’의 세 가지를 말한다. 삼경사상은 그의 ‘우주적 연 대성에 대한 공감의 경험’에서 나온 것으로, 타자의 개체적 존재를 절대적으로 긍정하고 본질적 화(和)의 관계를 정립한다. ) 해월신사법설에는 공경의 윤리에 대한 언급이 상당수 보인다. 해월 은 ‘아이를 때리는 것은 곧 한울님을 때리는 것’이라 하거나, ‘사람을 대할 때 언제나 어린아 이 같이 하라’거나, ‘물건을 공경하면 덕이 만방에 미친다.’고 말한다. 특히 「내수도문」에서는 밥을 하거나 방아를 찧을 때, 식사하거나 다른 집을 왕래하는 등 일상생활을 영위할 때 공경의 윤 리를 실천하는 법을 설명하고 있다. 

원불교의 경우 곳곳에 위치한 모든 존재를 부처로 정의하고 일마다 불공할 것을 권장하는 소태 산의 ‘처처불상 사사불공(處處佛像事事佛供)’ 사상을 기반으로 ‘불공하는 법’을 제시하고 있 다. 정전 「불공하는 법」에서는 ‘우주 만유는 곧 법신불의 응화신(應化身)이니, 당하는 곳마다 부 처님(處處佛像)이요, 일일이 불공 법(事事佛供)’이라고 하여, 전 지구적 존재들이 전부 법신불이라 는 궁극적 실재의 응화신이므로 등상불이 아닌 각 실재에 사실적인 불공을 할 것을 강조한다.

동학·천도교의 공경과 원불교의 불공은 인간뿐 아니라 비인간 존재들까지 그 대상으로 삼고 있 다는 점에서 ‘지구에 대한 공경과 불공의 윤리’를 제시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토마 스 베리 외에 래리 라스무쎈(Larry L. Rasmussen)도 ‘지구를 공경하는 신앙’ )을, 마찬가지로 신 학자 레오나르도 보프(Leonardo Boff)는 지구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윤리로 책임과 연민 )을 제 시한 바 있다. 이로부터 한국의 신종교뿐 아니라 신학에 있어서도 지구중심주의적 공경의 윤리를 지향하는 경향이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지구의 모든 존재들을 공경하거나 불공하는 건 타자를 ‘한울님’, ‘부처님’으로 여길 때 그 

극치를 이룬다. 천도교 사상가인 이돈화는 ‘한울은 범신관적(汎神觀的)이며 만유신관(萬有神觀)으 로 해석’ )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김용준은 이돈화의 이 견해를 가리켜 ‘범신론적 일신관’으로 정의했다. 수운이 신비체험 때 신과 대화한 것은 일신론의 근거이고, 이돈화는 ‘물물천사사천(物物天事事天)’등의 구절은 범신론의 뜻을 가진 것으로 해석한다는 것이다. 그는 ‘반대일치’의 원 리를 써서 일신론과 범신론을 조화하고 통합하려 했다고 본다. ) 궁극적 실재를 초월적인 존재로 만, 또는 내재적인 존재로만 보는 것이 아니며, 초월성과 내재성을 모두 담지한 존재로 보고 있다. 원불교 신앙의 대상인 ‘법신불 사은’에 대해 노권용은 ‘범재불론적 내지 범재은론적 성격’

을 띤다는 의견이다. 그는 ‘법신불’이 절대유일의 총상 또는 총덕이며 ‘사은’은 그 구체적 별 상 또는 별덕이라고 해석한다.  ) 전체를 총괄하는 유일무이의 궁극적 실재인 ‘법신불’, 그리고 이 법신불의 개별적인 나타남으로서 ‘사은’은 하나로 통합되는 동시에 구분될 수도 있는 ‘일이 이(一而二)’의 방식으로 구성된다는 견해다. 이찬수도 유사한 견해를 보인다. 그는 정산의 ‘동기 연계’에서 ‘동기성(同氣性)’이 범재신론의 기초가 된다고 설명한다. ‘동기’ 자체가 만유를 살 리고 포섭하는 선행적 근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사은사상도 범재신론적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 다.33)

이와 같이 동학·천도교, 원불교는 초월성과 내재성을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따라서 공경 또는 불공의 대상을 내 앞에 현현하는 존재로 설정할 수 있다. 개별 존재 각각이 궁극적 실재인 동시에 전 지구적 존재들을 품어 안는 법신불에, 한울에 포함된다고 보는 것이다. 만약 이들 사상이 범신 (불)론적 관점에 국한되었다면, 법신불이나 한울과 동일한 위격의 궁극적 실재가 수 없이 많이 등 장했을 것이다. 그리 된다면 개별 신들을 숭배하는 샤머니즘적 신앙 체계를 갖추게 될지언정, 지구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들을 한 기운으로 연결된 형제, 즉 상호의존적 관계의 존재들로 인식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동학·천도교, 원불교가 사사물물을 공경과 불공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은 개별자들을 각각 한울님, 부처님으로 봄과 동시에 서로간의 긴밀한 연결 관계도 함께 고려함을 의미한다. 이는 주체가 ‘자신이 곧 부처’라는 진리 아래 단독적으로 자신의 인격 완성을 추구한다고 해서 그 완 성이 완전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구공동체 구성원들과의 관계, ‘은(恩)적 네트워크’에서라 야 완성을 이룰 수 있음을 시사한다. 동학·천도교, 원불교의 지구수양학이 개인의 완성만을 추구 하지 않고 전 지구적 연대를 함께 지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 자기완성과 지구적 연대의 통합적 실천 동학과 천도교의 수양이 지향하는 방향성은 수심정기(守心正氣), 즉 마음을 잘 보존하여 기운을 바르게 하는 것이다. ) 이는 마음과 기운을 함께 다루고자 함으로, 수심(守心), 즉 마음을 보존하는 것과 정기(正氣), 즉 기운을 바르게 하는 것이 밀접하다는 걸 의미한다. 수심정기를 지향한다는 것 은 ‘마음과 기운’을 지닌 자라면 누구나 수양을 할 수 있다는 뜻을 가진다. 그래서 지식의 유무 나 계급의 높고 낮음을 가릴 것 없이 수심정기를 추구할 수 있다. 성리학의 수양법이 ‘독서행위 에 기초한 학습행위’로 변질되고, 이에 고급관료가 되기 위한 교과과정으로 고착화된 것에 대한 수운의 대응이 이렇게 수심정기 수양으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 

원불교의 수양도 누구나 실천 가능한 방법을 지향한다. 원불교 개교표어인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물질과 정신을 병행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그리고 이 의지를 그대로 반 영한 수양법들을 제시한다. 원불교 표어, 즉 ‘처처불상(處處佛像) 사사불공(事事佛供)’, ‘무시선 (無時禪) 무처선(無處禪)’, ‘동정일여(動靜一如)’, ‘영육쌍전(靈肉雙全)’, ‘불법시생활(佛法是生活) 생활시불법(生活是佛法)’은 심성의 도야를 통해 실제 삶을 바르게 운용하고, 삶을 바르게 운용 하는 일이 곧 심성 도야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한다. 따라서 남성, 고용인, 부유층, 지식인들만이 아 닌 여성, 피고용인, 지식이 적은 사람도 수양을 할 수 있도록 하며, 이를 위해 ‘일상수행의 요 법’과 ‘일기법’을 비롯한 생활 속 수양법들이 존재한다.

동학·천도교, 원불교의 수양은 이와 같이 민중 누구나 일상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방법으로 

구성되는데, 이는 개벽종교로서의 경향 자체가 모든 존재들의 평등성을 지향하기 때문이기도 하거 니와, 정신적 영역뿐 아니라 물질적·신체적 부분을 함께 가꾸어 간다는 점에서 데카르트식의 물 질과 정신 이원론을 지양하고 있다고도 해석 가능하다. 

원불교는 창립 초기에 방언공사 외에도 작농과 양잠, 축산, 원예 등 산업과 더불어 황무지를 개 간하거나 과원을 경영했는데, 이러한 과정들을 단지 종교 산업만이 아닌 영육쌍전, 이사병행(理事並行), 동정일여(動靜一如)의 수양으로 보았다. 소태산은 ‘도학과 과학이 병진하여 참 문명 세계가 열리게 하며, 동(動)과 정(靜)이 골라 맞아서 공부와 사업이 병진되게’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물 질과 정신의 이원론적 구분을 지양함으로써 도학과 과학, 이치와 일, 동과 정을 구분하는 것을 반 대한 것이자, ‘인격의 완성을 위하여 수련을 쌓는 생활과정이 세간을 떠난 데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고 본 것이다. 이와 같이 물질과 정신에 대한 이원론적 접근을 지양함으로써 일상 속에서 심성을 도야하게 하는 대중적 수양을 추구한 것은 곧 ‘개인적 심성 도야와 공경·불공의 통합’ 이라고 정리된다. 

동학과 천도교의 주문 수련이 어떻게 해서 개인적 수양에 한정되지 않고 지구 구성원들을 향한 

공경의 실천과 통합이 가능한지는 다음의 견해로부터 좀 더 구체적으로 유추할 수 있다.

주문 수련을 열심히 한 결과 내 안에 한울님을 확실히 모시게 되면, 다른 사람도 나와 똑같은 존재 임을 알게 된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한울님처럼 모실 수 있는 것(事人如天)이다. 다른 사람을 한울 님처럼 모시면 그 사람 또한 감응하여 나를 한울님처럼 모시게 된다. 그래서 나를 중심으로 사람들 이 모이고 기화(氣化)가 상통하므로, 하는 일도 원만하게 이루어지게 된다. 이러한 관계를 사람들에 게만이 아니라 동물과 식물들에게도 실천하면 세상 만물과 조화를 이루는 삶을 살게 된다.38)

원불교의 경우 지구공동체의 은혜에 주목하는 사은(四恩) 사상을 ‘일상수행의 요법’을 통해 직 접 실천하도록 한다. ‘일상수행의 요법’ 중 다섯 번째 조목인 ‘원망 생활을 감사 생활로 돌리

자.’는 사은에 원망하는 마음이 일어나도 이것이 곧 내 마음을 요란하게 하는 ‘경계(境界)’임을 알아차려 즉시 이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전환시키자는 실천법이다. 정산은 이러한 ‘일상수행의 요 법’을 가리켜 ‘자성 반조의 공부’로서 ‘천만 경계에 항시 자성의 계정혜를 찾는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 즉 개인이 일상 속에서 원망할 일이 생길 때 본래 성품을 회복함으로써 원망심을 버리고 감사심을 얻는 수양법으로, 후일 대산이 설명했듯 ‘전 생령이 구원을 받는 방법, 세계 평 화의 근본, 온 인류가 서로 잘 사는 묘방’ ), 개인의 마음을 닦는 수양이 곧 ‘전 생령의 구원’ 과 통합되도록 하는 방법론이다.

이와 같이 물질과 정신의 이원론을 지양하는 방식 아래 개인의 심성을 도야하는 수양, 그리고 지구공동체 구성원을 향한 공경과 불공의 실천이 통합되는데, 이로부터 인간과 비인간, 땅과 하늘, 문명과 자연을 이원론적으로 분리하는 관점 또한 수양을 통해 해체할 수 있게 된다.  해월의 ‘이 심치심(以心治心)’은 자신이 지닌 한울의 마음으로써 인간의 마음을 다스리면 ‘화가 바뀌어 복이 되고 재앙이 변하여 경사롭고 길하게’ ) 됨을 강조한다. 지극한 수양으로 한울을 모시는 마음이 흔들리지 않게 되면 실제로 복이 넘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복’이라는 가시적인 결과물을 얻 게 된다. 

이는 ‘날짐승 삼천도 각각 그 종류가 있고 털벌레 삼천도 각각 그 목숨이 있으니, 물건을 공경

하면 덕이 만방에 미친다’고 한 해월의 설명과 연관해 생각해볼 수 있다. 수양으로 내게 한울의 마음이 자리를 잡으면 사사물물이 전부 시천주임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날짐승이건 털벌레건 모 두 공경하게 되고, 이는 곧 지구적 공공성의 실천으로 이어져 그 ‘복’이 나에게로 돌아오게 된 다. 

이렇게 물질과 정신의 이원화를 지양할 뿐 아니라 인간과 비인간의 이원론적 구분을 해체하게 

되는데, 지구수양학이 가지는 이러한 성격은 하나의 특이성이자 시사점을 지닌다. 바로 지구 구성 원들과 궁극적 실재 간의 수직적이던 관계를 수평적 관계로 전환시킨다는 점이다. 이러한 전환은 ‘지금껏 하등하다고 여겨진 생명체나 기계를 향한 성찰’ )에서 시작된 탈인간중심주의에 하나의 시사점을 제공한다. 제인 베넷(Jane Bennett)이 강조한 ‘정치생태학’ )은 비인간 존재들의 권리 에 주목하여 그들을 민주주의의 주체로 등장시키고, 그래서 인간과 비인간의 수평적 관계를 확립 하려 한다. 도나 해러웨이(Donna Haraway)의 ‘소중한 타자성’ ) 또한 인간과 비인간의 위계화를 거부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반려종이 될 수 있는 수평적 관계를 강조한다. 

그렇다면 동학·천도교, 원불교가 추구하는 민주주의는 이 수평적 관계의 대상을 한울 또는 법 신불까지로 확장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수운에게 한울은 절대자이자 초월적인 존재였다. 그러면 서도 ‘내 마음이 곧 네 마음(吾心卽汝心)’임을 깨달아 각자가 궁극적 실재를 모시고 있음을 밝혔 다. 초월성과 내재성을 함께 인정했던 한편으로 초월성보다는 내재성을, 믿음보다는 깨달음이 강조 되는 방향으로 한울에 대한 함의가 더욱 풍부해졌고 깊어졌다. ) 해월의 ‘베 짜는 한울’ 이야기 는 이러한 수평적 관계를 반영하며, 궁극적 실재의 영역을 수직적으로 한정하지 않고 수평적으로 확장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소태산은 진리의 실상인 ‘일원상의 진리’를 ‘제불 제성의 심인’이자 ‘일체 중생의 본 성’으로 믿는 것이 곧 신앙임을 말하여, ‘일원상의 진리’는 모든 존재들에게 동등하게 적용되 는 것임을 천명하였다. 어느 노부부에게 ‘그대들의 집에 있는 며느리가 곧 산 부처’라고 했던 소태산의 설득은 ‘하늘만 높이던 사상을 땅까지 숭배하게’ ) 한다는 대산의 설명과 더불어, 궁 극적 실재와 지구 구성원들의 관계를 수직적으로 보는 동시에 수평적으로 구축함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지구수양학은 전 지구적 존재들의 수평적인 관계를 궁극적 실재와의 관계로까지 확장

한다. 그래서 탈인간중심주의가 그 동안 하등하다고 여겼던 비인간 존재들과의 관계를 수평적인 것으로 전환했다면, 지구수양학은 이들 존재를 평등한 동시에 ‘공경과 불공을 받아 마땅한 존 재’로 정의한다는 특징을 가진다. 즉 비인간의 주체성과 상호작용에 중점을 두는 탈인간중심주의 에 지구수양학이 공경과 불공이라는 실천성을 보완할 수 있는 이유는, 인간과 비인간의 수평적 관 계를 인간·비인간·궁극적 실재의 수평적 관계로 확장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동학·천도교와 원불교가 지닌 지구수양학적 특성은 개인적인 수양이 지구공동체 

구성원들에 대한 공경과 불공과 통합된다는 점이다. 개인의 심성을 도야함으로써 자신을 완성해가 는 과정이 다른 존재를 향한 공경과 불공을 실천하는 가운데 이루어진다. 이는 동학·천도교와 원 불교가 인식하듯 지구 존재들 간의 관계가 ‘은(恩)적 네트워크’, 즉 긴밀한 상호의존적 관계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며, 한편으로는 공경과 불공을 실천함으로써 이 네트워크를 더욱 원활하게 운용할 수 있음을, 이로부터 연대를 실천할 수 있음을 함의한다. 

연대는 다른 존재와 함께 더불어 하는 것을 주된 요소로 삼는다. 강수택은 자유, 평등, 박애 같

은 관념들이 연대의 전제가 된다고 말한다. 즉 연대 자체가 수평적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며, 이 수평적 관계에서 구성원들의 집합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견해다. ) 그리고 김용해는 연대에 대해 인류를 위한 상호책임을 지는 것, 재난재해 같은 위험을 줄여나가는 예비적 상호보험으로 볼 수 있다고 본다. ) 전 지구적 존재들을 향한 공경과 불공, 이를 통한 ‘은(恩)적 네트워크’의 활성 화는 지구위험에 대비하는 상호보험, 수평적·집합적인 노력으로서 지구적 연대를 위한 하나의 실 천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즉 ‘수양과 통합되는 공경과 불공’은 자유, 평등, 박애와 더불어 지구 위험시대 연대의 새로운 전제로 기능할 수 있는 것이다.

Ⅳ. 맺음말

이 연구는 지구위험시대에 대응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출발한 지구인문학적 사유와 그 맥을 함께 

한다. 특히 자연을 도구화하는 기존의 사고방식을 해체하고 비인간 존재들을 공경과 불공의 대상 으로 삼는 것이 결국 인간 스스로의 내적 도야와도 분리되지 않는 일임을 논의하고자 했다. 또한 그만큼 모든 존재가 빠짐없이 긴밀한 상호의존적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개인이 단독으로 심성 을 도야하여 그 결실을 맺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임을, 따라서 관계 속에서 타자를 위한 공경과 불 공을 실천하는 행위가 곧 자신의 심성을 도야하는 일이 될 수 있음을 말하고자 했다. 이 점은 지 구위험이 수면 위로 올라오기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지구위험을 기점으로, 우리는 전 지구를 대상으로 개인의 수양과 지구적 윤리 실천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동학·천도교, 원불교가 지닌 지구수양학적 요소들은 후일 서구적 사유에서 제시하지 않은 관점 들을 이미 담지하고 있었다. 이는 지구위험시대에 부응하는‘한국적 독창성’이라고 명명할 수 있

다. 금수초목과 공기를 비롯한 물질들에 이르는 비인간 존재들까지 주체적 존재, 긴밀한 관계성의 존재로 본다는 점은 서구에서 출발한 신유물론이나 포스트휴머니즘과 유사한 입장을 취한다. 하지 만 이들 서구적 사조에서 중점을 두지 않는 윤리와 방법론을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바로‘은(恩) 적 네트워크’, 공경과 불공의 윤리, 개인적 수양과 이 윤리 실천의 통합에 따른 한국적 독창성이

다. 이 독창성은 지구위험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생활 속에서 쉽게 수양을 실천할 수 있을 때 구현될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종교적 이념의 울타리 내에서가 아닌 보편적, 대중적 성격의 윤리와 방법론으로 보완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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