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지구유학】조선유학에서 지구유학으로 - 통(通)과 균(均)을 중심으로 - 김봉곤*
59)
요약문 본고는 조선유학의 핵심주제였던 통(通)과 균(均)의 개념과 가치체계를 검토하여 오늘날과 같은 지구화와 민주주의 시대에 유학을 어떻게 계승, 발전시켜 나아가야 하는지를 검토해 본 것이다. 유학에서 통(通)은 천지나 인간, 만물과 같이 서로 다른 존재의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인(仁)이며, 균(均)은 인간(人間) 이나 물질 상호간의 균평, 즉 의(義)를 말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통과 균은 천지와 인간, 만물간의 합일 을 가능하게 하고, 인간과 만물간의 불평등을 해소하고 화평한 질서로 유지하기 위한 가치체계로 기능해 왔 다. 공자나 맹자, 송대의 주돈이, 장재, 정호, 정이, 주자 모두 통과 균의 조화를 모색해왔다. 조선에서는 율 곡 이이가 이통기국(理通氣局)을 말하여 기국의 관점에서 사회개혁을 부르짖었고, 노사 기정진은 리통설을 주장하여 리통 속에서 분수의 완전한 실현을 촉구하였다. 조선조 말과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인간의 자유 와 평등을 강조하는 사회로의 전환과 가치체계의 변화 속에서 1928년 충청도 홍성의 유교부식회(儒敎扶植會)에서는 유교가 전제주의와 계급주의를 타파하는 새로운 유교로 탈바꿈할 것을 선언하였고, 동시대에 원 불교에서는 일원상과 사은사요를 주장하여 통과 균에 바탕을 둔 새로운 우주적 질서와 사회관계를 주장하 였다. 이러한 전제주의와 계급주의를 타파하려고 하였던 유교부식회나 사은사요의 추구를 통해서 천지 만물 과 합일되고 공정한 가치를 실현하고자 하였던 원불교의 정신은 오늘날과 같은 지구적 위기 속에서 유학을 어떻게 계승하고 발전시켜 나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라고 할 수 있다.
끝으로 오늘날 지구위험시대를 맞이하여 유학이 민주주의 시대의 가치실현과 우주자연 만물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네 가지 방안을 제시하였다. 1) 탈중국화가 이루어져야 하며, 2)보편적인 자유와 평등을 실현 하는 세계시민적 유학으로 거듭나야 하며, 3) 인간와 자연의 공생을 도모해야 하며, 4) 생명, 평화를 고취하 는 유학으로 거듭나야 함을 역설하였다.
차 례
Ⅰ. 머리말
Ⅱ. 유학에서의 통과 균
Ⅲ. 조선유학에서의 통과 균
Ⅳ. 지구화 시대의 유학
Ⅴ. 맺음말
*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연구교수
Ⅰ. 머리말
지구는 미증유의 대재난을 겪고 있다. 인류의 과학과 기술이 진보하여 생활은 편리해지고 인간 의 수명은 늘어나게 되었으나, 무분별한 자원개발과 생산력의 발전으로 수십 억 년 동안 유지, 보 존되어왔던 지구환경이 파괴되어 인간이 더 이상 지구에서 생활하기 대재난이 초래된 것이다. 국 가마다 공장을 세우고 도로를 개통하여 각종 생산품을 쏟아내고, 자동차가 폭증하여 도로를 가득 메꾸고 있어서, 이로 인한 대기오염과 환경파괴, 지구온난화와 같은 무서운 재난이 발행하여 오늘 날 인류뿐만 아니라 지구 전체가 파멸할 위기에 처한 것이다. 삼림과 토지는 줄어들고, 이산화탄소 나 메탄가스 배출로 지구온난화가 가속화되어 극지방과 고산지대의 빙하지대가 녹아내리고 있고, 토양과 대기는 농약과 방사선 유해 물질 등으로 오염되어 있고, 대기는 유해물질이 섞인 미세먼지 가 가득 차 있다. 이러한 각종 재난을 그대로 방치할 경우 인류가 멸종되고 모든 생명이 사라지는 현상이 올 것이라고 많은 과학자들이 예측하고 있다. 이에 인간과 인간, 자연과의 조화로운 관계를 모색해왔던 유학 역시 더 이상 기존의 유학체계에서는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절박한 상황에 이르 게 된 것이다.
유학은 춘추전국시대에 공맹의 인본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약육강식과 패도정치가 행해지는 속에
인간 존재의 소중함과 조화로운 인간관계를 주장해왔고, 중국 송대(宋代)에는 사대부의 인간이 천 지와 하나가 되는 우주적 질서를 모색하였으며, 오늘날에는 사회주의를 보완하기 위한 대안으로서 계층이나 도농(都農)간의 조화로운 세상을 추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삼국시대에 유학이 들어온 이래 시대적 사명을 다해 왔다. 조선은 성리학을 국 시(國是)로 삼아서, 정치와 사회, 경제, 문화를 이끄는 지도이념으로서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질 서를 모색해왔다. 율곡 이이는 이러한 유학의 지도이념을 이통기국으로 설정하여 기국의 관점에서 당대 사회를 개혁하고자 하였고 기정진의 경우 리통설을 제기하여 사회에서의 리통의 실현을 촉구 하였다.
본고에서는 이처럼 통과 균을 통해 인간과 자연, 만물간의 조화와 균평한 질서를 추구해왔던 조 선 유학의 개념이 오늘날과 같은 지구위험시대에 어떻게 지구유학으로 발전해야 하는가를 그 가능 성과 대안을 모색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Ⅱ. 유학에서의 통과 균
유학은 춘추전국 시대에 마련된 공맹의 仁義와 성선설을 바탕으로 시대에 적합한 이념과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왔는데, 그 핵심 사상은 통과 균이라고 할 수 있다. 통(通)은 천지나 인간, 만물과 같이 서로 다른 존재의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인(仁)이며, 균(均)은 인간(人間)이나 물질 상호간의 균평, 즉 의(義)를 말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통과 균은 천지와 인간, 만물간의 합일을 가능하게 하고, 인간과 만물간의 불평등을 해소하고 화평한 질서로 유지하기 위한 가치체계로 기능해 왔다.
역경(易經)에서는 자연 만물과 인간의 변화, 불변의 도리를 태극(太極)과 음양(陰陽), 팔괘(八卦) 의 원리를 통해 64괘로 조합하고, 다시 계사전(繫辭傳) 문언전(文言傳) 등 10익(翼)을 통해 천지와 일월, 귀신과 사시(四時)와 하나가 되는 통(通)의 길을 제시하였다. 성리학의 기초를 세운 송대의 주염계(周濂溪) 역시 「태극도설(太極圖說)」과 통서(通書)를 지어 사람이 천지와 일체가 되는 것 과 성인(聖人)이 되는 길을 제시하였다. 태극도설에서는 무극-태극-음양-오행-만물로 전개되는 우주생성 속에서 이성, 선악, 오상 등으로 전개되는 인간의 도덕에 대해서 설명하였고, 통서에 서는 중용에서 말하는 성(誠)이 천도일 뿐만 아니라 인도의 근본임을 설파하여 궁극적으로 인도와 천도를 일치시키고 있다. 중용에서는 지극히 성실한 사람은 천도와 인도를 관통할 수 있다고 하였 기 때문이다.
오직 천하에 지극히 성(誠)한 분이라야 그 성(性)을 다할 수 있다. 그 성(性)을 다하면 사람의 성(性) 을 다할 수 있고, 사람의 성(性)을 다하면 사물의 성(性)을 다할 수 있고, 사물의 성(性)을 다하면 천 지(天地)의 화육(化育)을 도울 수 있고, 천지(天地)의 화육(化育)을 도우면 천지(天地)와 함께 나란히 설 수 있게 된다.1)
지극히 성실한 사람은 자신이나 타인, 만물의 성을 다할 수 있으므로, 천지의 화육을 도울 수 있
어서 천지와 함께 나란히 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통의 질서를 가장 극적으로 표현한 인물은 북송의 장재(張載, 장횡거)라고 할 수 있다. 장
재는 「서명(西銘)」에서 천지와 인간과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설파하고 있다.
하늘을 아버지라 부르고, 땅을 어머니라고 부른다. 나의 이 조그만 몸은 그 가운데 뒤섞여 있다. 그러므로 천지 사이에 가득 찬 것은 나의 형체가 되었고, 천지를 이끄는 것은 나의 본성이 되었다. 백성은 나의 동포요, 사물은 나와 함께 사는 무리이다. 천자(天子)는 나의 부모의 종자요 대신(大臣) 은 종자의 가상(家相)이다. 나이 많은 이를 높이는 것은 천지의 어른을 어른으로 대접하는 것이요, 외롭고 약한 이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천지의 어린이를 어린이로 대하는 것이다. 성인은 천지와 덕 을 합한 사람이요, 현인은 빼어난 사람이다. 천하의 파리하고 병든 사람, 고아와 자식없는 노인, 홀 아비와 과부는 모두 내 형제 가운데 어려움을 당하여 호소할 데 없는 자이다. 이에 하늘의 뜻을 지 킨다는 것은 자식의 공경이요, 즐거워 근심하지 않음은 효에 순수한 자이다. 인을 어기는 것을 패덕 (悖德)이라 이르고, 인을 해침을 賊이라고 한다. 악을 이루는 자는 부재(不才)요, 그 형체를 실현하 는(踐形) 자는 그 어버이를 닮은 자이다. 조화(造化)를 알면 하늘의 일을 잘 이어받고 신묘(神妙)함 을 궁구하면 하늘의 뜻을 잘 이어 받든다. 방구석에서 부끄럽지 않은 것이 부모를 욕되게 하는 않
1) “惟天下至誠 爲能盡其性 能盡其性 則能盡人之性 能盡人之性 則能盡物之性 能盡物之性 則可以贊天地之化育 可以贊天地之化育 則可以與天地參矣.”, 中庸 22章 1節.
는 것이요, 마음을 보존하여 본성을 기르는 것은 하늘을 섬김에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다. 맛난 술 을 싫어한 것은 우(禹)가 어버이(崇伯子)를 돌보는 행동(顧養)이요, 영재를 기르는 것은 영고숙이 효 성스런 무리를 잇게 하는 것이다. 괴로워도 공경을 게을리 하지 않아 어버이를 기쁘게 한 것은 순 의 공적이요, 도망가지 아니하고 끓는 가마솥에서 죽을 것은 기다린 것은 신생의 공순함이다. 부귀 와 복택은 나의 삶을 두터이 할 것이요, 빈천과 우척(憂戚)은 너를 옥성(玉成)시킬 것이다. 주신 몸 을 받아 온전하게 돌아간 사람은 증삼이요, 용감하게 부모의뜻에 따르고 명령에 순종한 사람은 백 기이다. 살아 있는 동안 나는 순종하여 섬기고 죽을 때는 편안히 돌아가리라. )
천지는 나의 부모로서 천지에 가득한 기운은 나의 몸이 되었고, 천지를 이끄는 이치는 나의 본 성이라는 우주관, 모든 사람은 나의 형제이며, 만물은 나와 동류라는 관점에서 유가적 윤리를 제시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이(鄭頤, 정이천)은 “천하의 리(理)는 하나이다. 비록 사물이 천차만별이기 는 하지만, 모두 다 하나로써 그것을 統御하면 어긋나지 않는다.” )라고 하여 리일분수(理一分殊) 로서의 리통을 말하였다. 이후 남송의 주희(朱熹)는 정이천의 이일분수를 받아들여 「서명」을 다음 과 같이 풀이하였다.
(朱子)가 말하기를, “정자(程子)는 서명이 ‘이일분수(理一分殊)’를 밝힌 것이라고 하였다. 무릇 건으로 아버지를 삼고 곤으로 어머니를 삼는 것은, 생명이 있는 것은 모두 그러하지 않음이 없으니, 이른바 ‘이일(理一)’이다. 사람과 만물이 태어남에 있어 혈맥을 지닌 무리는 각각 그 어버이를 어 버이로 하고 그 자식을 자식으로 하니, 분수가 어찌 다르지 않겠는가. 하나로 통합되었으면서도 만 가지로 다르니 천하가 한 집이고 중국이 한 사람과 같다 하더라도 겸애(兼愛)하는 폐단에 흐르지 않 고, 만 가지가 다른데도 하나로 관통하였으니 친근하고 소원(疎遠)한 정(情)이 다르고 귀하고 천한 등급이 다르다 하더라도 자기만을 위하는 사사로움에 국한되지 않으니, 이것이 서명의 대강의 뜻이 다. 어버이를 친근하게 여기는 두터운 정을 미루어서 무아(無我)의 공심[公]을 기르고, 어버이를 섬 기는 정성으로 하늘을 섬기는 도를 밝힌 것을 보면, 어디를 가도 이른바 분수가 서 있고 ‘이일’ 을 유추하지 않는 것이 없다.” 하였습니다. 또 그는 말하기를, “서명의 앞부분은 바둑판과 같고 뒷부분은 사람이 바둑을 두는 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모든 생명이 건곤을 부모로 삼지 않은 것이 없으니 리일(理一)이고, 사람과 만물이 각각의 부모
와 자식이 있으니 분수(分殊)이므로, 만 가지를 하나로 관통하면서도 겸애의 폐단에 흐르지 않고, 친소가 다르더라도 자기만을 위하는 사사로움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퇴계 이황 역시 주희의 뜻에 따라 정복심(程復心, 1279-1368)이 그린 서명도(西銘圖)를 취하여 성학십도(聖學十圖)가운데 제2도에 수록하였다. 이황은 정복심의 서명도가 상도(上圖)와 하도(下圖) 로 구분되는데, 상도는 이일분수(理一分殊)를 밝힌 것이고, ) 하도는 어버이를 섬기는(事親) 성심으 로 하늘을 섬기는(事天) 도를 밝힌 것이라고 하였다. )
이처럼 장재의 「서명」은 정이천과 주희에 의해서 이일분수(理一分殊)로 해석되었고, 우리나라에 서는 퇴계 이황이 수용함으로써 조선유학의 핵심 주제가 되었다. 그런데 이일분수가 어떻게 현실 에서 실현되는가가 논란이 일어나게 되었다. 리는 모두가 보편적으로 갖추고 있는 천덕이므로 논 란의 여지가 없지만, 천차만별인 분수가 어떻게 생겨나고 실현되느냐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조선후기 내내 논란이 일어났으므로 장을 바꾸어서 살펴보기로 한다.
유학에서는 균(均)에 대해서도 중시하였는데, 일찍이 공자는 제자인 염구(冉求, 자는 자유(子有)) 가 노나라 계씨(季氏)의 신하가 되어 전유(顓臾) 땅을 치려하자, 다음과 같이 그 부당함을 설파하였 다.
내가 듣기로는, 나라를 소유하고 집안을 소유한 자는 백성이 적은 것을 근심하지 않고 빈부가 고르 지 못한 것을 근심하며, 백성이 가난한 것을 근심하지 않고 백성이 편안하지 못한 것을 근심한다고 한다. 대체로 균등하면 백성이 가난할 리 없고, 화목하면 백성이 적을 리 없으며, 편안하면 나라가 기울 리가 없다. 이와 같기 때문에 먼 데 사는 사람들이 복종하지 않으면 文德을 닦아서 귀의해 오 게 하고, 오게 했으면 편안하게 해줘야 하는 것이다. )
집안이나 국가에서는 균(均) 즉 빈부가 고르지 못하고 가난한 것을 근심하고 편안하지 못함을 근 심해야 하는데, 균등하면 백성이 가난하지 않고, 화목하면 백성이 적어지지 않으며, 편안하면 나라 가 기울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자 역시 집안이나 국가에서 일차적으로 중시한 것은 균등한 분배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공자의 균(均)에 대한 강조에 이어 대학(大學)에서 백성들에게 재물을 균평하게 나누어
서 백성들을 모으는 인정(仁政)의 중요성을 말하였다.
덕이라는 것은 근본이고 재물이라는 것은 말단인데, 근본을 도외시하고 말단을 중시하게 되면 백성 들을 다투게 만들고 빼앗는 풍조를 조장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임금의 창고에 재물이 모이 면 민심은 흩어지고 재물을 흩어 나누어 주면 민심이 모이게 되는 것이다. )
인정을 실천하는 덕이 근본이고, 토지와 같은 재물이 말단인데, 지도층이 말단인 재물을 축적하
면 민심이 흩어지고, 재물을 고루 나누어주면 민심이 모인다는 것이다. 맹자(孟子)는 이러한 인정의 실현의 기초는 정전법에 있으며, 정전의 기초는 경계를 바르게 하는데 있다고 역설하였다.
등문공이 필전을 시켜 맹자에게 가서 정전법(井田法)을 묻게 하였는데,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자 네의 군주가 장차 인정(仁政)을 행하기 위해 신하 중에 자네를 선택하여 실무를 주관하게 하였으니, 자네는 반드시 힘써야 할 것이다. 무릇 인정(仁政)은 반드시 토지의 경계를 정하는 데에서부터 시작 되는데, 경계를 정하는 것이 바르지 않으면 정전(井田)이 균등하지 않고 녹봉이 공평하지 않게 된 다. 그러므로 포악한 임금과 탐관오리들은 반드시 경계를 정하는 일을 태만히 하게 되어 있다. 경계 를 정하는 일이 바르게 되면 토지를 나누어주고 녹봉을 정하는 일은 가만히 앉아서도 정해질 수 있 는 것이다.” )
인정(仁政)의 기초는 토지의 경계(經界)를 고르게 하는데 있다는 것으로서, 경계를 바르게 하여야
정전이 균등하고 관리들의 녹봉이 공평하게 된다는 것이다. 정전은 사방 1리(里)가 1정(井)으로 1정 은 900묘다. 그 한가운데에 공전(公田)이 위치하고 여덟 집은 모두 사묘(私田) 100묘씩을 받는다. 이들이 공전을 공동 경작하는데, 공전의 일을 마친 뒤에 감히 사전의 일을 다스리도록 한다는 것 이다. ) 이러한 정전법은 농민들에게 고루 토지를 나누어주어서 균등한 생활을 보장하고, 중앙의 공전을 우선적으로 경작함으로써 국가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맹자가 주장한 정전은 진나라 상앙에 의해서 폐기가 된다. 춘추전국시대에 이르러 씨족 공동체(氏族共同體)가 해체되고, 철기와 우경(牛耕)의 보급으로 인한 농업생산력의 증대, 그리고 대 규모 토지 개간 등으로 사적 소유에 대한 발전을 자극하여 정전제를 폐지하고 사적 소유제도로 바 뀌게 된 것이다.10) 이러한 사적 소유제도의 발전은 토지 소유에서 점차 불균등을 초래하여 부자는 들판 길을 연이었으나, 가난한 자는 송곳 세울 땅도 없을 정도로 불평등이 심화되어갔다. )
이러한 토지 소유의 불균등을 해소하기 위하여 한(漢) 대에는 동중서(董仲舒) 등에 의해서 대토 지 겸병을 제한하는 한전론(限田論)이 제기되기도 하였고, 신(新)을 건국한 왕망(王莽)에 의해서 정 전제를 본 딴 왕전제(王田制)가 시행되기도 하였다. 이후 북위에 이르러 15세에서 70세까지의 성인 에게 일정한 넓이의 토지를 지급하고, 70세가 되거나 사망하면 국가에 반납하도록 하는 균전제(均田制)가 시행된 이후 균전제는 북제(北齊)⋅북주(北周)⋅수(隋)⋅당(唐)까지 약 300년간 시행된 토지 제도의 근간을 이루었다. )
「서명(西銘)」을 지어 천하 백성이 나의 동포임을 강조한 「서명(西銘)」을 지은 장재(張載) 역시 정전(井田)을 실천하고자 하였다. 장재는 삼대의 정치에 뜻을 두어서, 시골에 땅을 사서 정전(井田) 을 구획하고자 하였다. 그는 맹자가 주장한 것처럼, 공전(公田)에서는 조세를 바치게 하고, 사전(私田)에서는 소득을 갖게 한 다음, 학교에서 교육을 시키고, 예속을 일어나게 하고, 상부상조하게 하 였던 것이다. )
Ⅲ. 조선유학에서의 통과 균
전술하였듯이 조선은 장재의 서명과 정이천, 주희로 이어지는 이일분수의 전통을 계승하였는데, 그 이일분수의 실현방식에 대해서는 율곡 이이가 이통기국(理通氣局)을 말함으로서 구체화되었다. 리는 기를 타고 유행하여 천태만상으로 고르지 않으나 그 본연의 묘리가 없는 데가 없으므로 리통 이라고 하며, ) 만물은 기(氣)가 승강하여 천태만상의 변화가 생기기 때문에 본말과 선후가 있고 각각 국한되어 있으므로 기국(氣局)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 즉 사물에 내재하는 이의 보편성과 차 별성을 각각 '이통'과 '기국'에 의한 것으로 파악하는 것으로서, 리의 본연은 만물에 보편적인 것이 나, 구체적 형체를 갖춘 기와 결합하여 차별적이고 개별적인 리가 생겨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이 의 이통기국의 견해는 ‘리통’으로서 선의 본체가 어디에나 존재하여 변함이 없음을 밝히고, ‘기국’으로서 현상적으로 드러나는 불완전함은 기의 특성임을 밝히고자 하는 것이다. 아울러 이 러한 기의 불완전함은 인간은 수양을 통해 기의 본연을 회복할 수 있는 것으로서, 기질을 다스려 본연의 선을 확충하면 모두가 성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16) 이이의 이통기국에 관한 논의는 통해 보민(保民), 이민(利民), 안민(安民)을 위한 구체적인 시책이 나 제도는 시대에 따라 변해야 하므로 자연히 시의에 맞는 갱장이 필요하게 되어 사회의 묵은 폐 단을 고치는 제도개혁을 주장하게 되는 근거가 되었다. 다만, 이러한 이이의 이통기국에 관한 견해 는 기국에 의해 성이 규정된 것으로 볼 것인지, 리일로서 성을 이해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논란을 초래하게 되어, 기호지방에서 인물성동이(人物性同異) 논쟁이 발생하게 된 배경이 된다.
이이의 이통기국에 의해서 촉발된 다양한 견해를 통합시키기 위해 제시된 것이 노사 기정진의 리통설(理通說)이다. 기정진이 말하는 리통(理通) 역시 만물에는 동정, 다과, 생사가 있으나, ) 리의 묘는 간격이나 피차, 다과, 생사가 없어서 동속에 정이 있고 정속에 동이 있으며, 일(一)속에 만(萬) 이 갖추어져 있고 만 속에 일이 갖추어져 있으며, 다과나 생사가 서로 통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다. ) 이러한 논리는 기를 타고 일리, 만리가 생성되거나 기를 타고 리가 통한다고 하는 율곡의 이 통기국의 전통을 잇는 기존의 견해와 다르다. ) 기정진은 이러한 이통설의 논리를 발전시켜 태극 - 음양 - 오행 - 만물로 전개되는 리일분수가 리일을 말할 때에 이미 분(分)이 담겨져 있고, 분수 를 말할 때에 이미 일(一)이 있게 된다고 본다. ) 즉 분수 밖에 리일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므로 태극도 분수 가운데에 있게 되므로, 결국 리는 일(一)이 곧 만(萬)이니 다를수록 같아지고, 일이면 서 분이니 다를수록 같아지게 된다. )
이러한 리통(理通)에 대한 기정진의 견해는 태극과 천명(理)를 최고의 실재요, 궁극적인 원인으로
보는 것으로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순수법상(Form)이나 스피노자의 제1원인, 라이프니쯔의 엔틸레히 (Entelechie)나 모나드(Monad)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 ) 기정진이 주장한 리는 실제로 움직이지 않 지만 움직이는 것으로서,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기를 격동시켜서 그것을 실현하도록 부리는 것이 다. 리는 일자이자 만수로서 모든 것의 추동력이 되는 것으로서, 결국 중용 1장의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을 완벽하게 실현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천과 리에 의한 통의 질서를 부르짖은 기정진의 주장은 분수의 리일을 강조하는 것으로서, 기국 자체도 리통의 질서에서 실현되므로, 하나의 통합 적인 국가질서 원리하에 훨씬 적합한 이론이다.
이러한 조선유학에서의 리통에 대한 강조는 조선조 말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실현하는 가치체계로의 전환이 이루어지게 되는데, 이에 대해서는 4장에서 후술하는 바이 다.
다음에는 조선에서 ‘균(均)’의 실현을 위해 어떠한 노력을 기울였는가를 살펴보도록 하자. 먼 저 조선은 고려 말 토지제도의 문란을 망국의 원인으로 보고 있다. 정도전은 고려말 극심한 토지 제도의 문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 제도의 문란이 더욱 심해지게 되면서는, 세력가들이 서로 토지를 겸병하였으므로 한 사람이 경 작하는 토지에는 그 주인이 더러는 7~8명에 이르는 경우도 있었고, 전조를 바칠 때에는 인마(人馬) 의 접대며, 청을 들어 강제로 사는 물건이며, 노자로 쓰이는 돈이며, 조운(漕運)에 드는 비용들이 또 한 조세의 수효보다 배, 또는 5배 이상이나 되었다. 상하가 서로 이익을 다투어 일어나서 힘을 겨루 어 빼앗으니, 화란이 이에 따라 일어나고 마침내는 나라가 망하고야 말았다.23)
이처럼, 고려 말 사전(私田)의 폐단이 극심하여 토지겸병이 만연하고, 조세수납의 부정이 극심하 게 되어, 결국 과전법을 실시하여 사전(私田)을 혁파하게 된다. 즉 1391년 과전법(科田法)을 실시하 여 경내의 토지를 몰수하여 국가에 귀속시키고 인구를 헤아려서 토지를 나누어 주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조선에서도 농법의 개량으로 농업생산력이 증대하고, 토지 개간, 공신전 지급 등으로 사 적 소유가 늘어나면서, 토지매매가 허락되었다. 이에 따라 과전법 체제가 차츰 무너지고, 조선 후 기에는 토지매매가 일반화됨으로써 빈부 격차가 극심해진다. 백성들이 토지를 갖지 못하게 되면 생계유지도 어렵고, 유교적인 윤리마저 실현하기 어려워졌다. 이에 이이는 “백성은 먹는 것에 의 존하고, 나라는 백성에 의존하므로 먹을 것이 없으면 백성이 없고, 백성이 없으면 나라도 없는 것 이 필연의 이치24)“라고 하여 부모와 자식, 형제간의 예의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백성들의 삶을 풍 족하게 하고 편안하게 해 주어야 한다고 양민(養民)과 보민(保民)의 방책을 마련할 것을 역설하였 다.25)
조선후기에는 조선 전기의 폐단이 더욱 극심해져갔고, 토지 소유의 불균등과 빈부 격차가 심화 됨에 따라 사회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토지제도 개혁이 등장하였다. 유형원의 균전제, 이익 의 한전제, 정약용의 여전제 역시 토지소유의 불균등과 백성들의 생활 안정을 위하여 제도 개혁을 주장한 것이다. 전술하였던 기정진 역시 가난한 지식인으로서 빈궁한 생활을 영위하기도 어려웠는 데, 그는 이러한 빈궁한 원인이 국가의 정책과 경제운영에 있음을 직시하였다.
저의 수십 식구의 생계수단이 농사에 달려 있는데 항상 5월에 새 곡식을 먹는 것을 면하지 못하니 농사를 지어도 그 속에 배고픔이 있다고 하는 성인의 말씀이 우리를 속이지 않습니다.26)
열심히 농사를 지어도 봄이 되면 항상 배고픈 생활을 면하지 못하였는데, 기정진의 경우 자신 의 만성적인 빈궁 상태가 국가의 잘못된 정책이나 경제 운용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파악하게 되었 였다. 즉 사대부들이 예의염치를 잃고 이욕(利慾)을 추구하기 때문에, 토지소유의 분균형을 초래하 고, 조세제도가 문란하여 생활이 곤란하다는 것이다. 중앙이나 지방관들이 중간에 조세를 가로채어 국가의 재정이 어려워지고, 백성들의 산업이 파산되어 자식을 팔게 되는 지경에 이르게 되니, 인륜 질서를 회복할 방도가 없다는 것이다. 이에 기정진은 당의 조용조 체제를 본떠서 균전제를 실시하
23)“嗚呼 其弊有不勝言者 及其法壞之益甚 勢力之家 互相兼幷 一人所耕之田 其主或至於七八 而當輸租之時人馬之供億 求請抑買之物 行脚之錢 漕運之價 固亦不啻倍蓰於其租之數 上下交征 起而鬪力以爭奪之 而禍亂隨以興 卒至亡國而後已.”, 三峰集, 朝鮮經國典, 經理.
24)“伏以民依於食 國依於民 無食則無民 無民則無國 此必然之理也.”, 栗谷全書卷4, 疏箚2, 「擬陳時弊疏」
25) 이재석, 「율곡이이의 현실인식과 경세사상」, 동양문화연구33집, 영산대 동양문화연구원, 2020, 22-23 쪽.
26) “鄙人年間數十口計活 寄在耒耜間 而常未免五月食新 耕也餒在其中 聖人眞不我欺也.”, 蘆沙集 卷5, 「答金濟宅」
여 백성들이 토지를 갖고, 토지를 갖는 농민을 정병으로 만들어 국방을 튼튼히 하고, 환곡 대신 상 평창을 실시하여 조세부정을 타파하고자 하였다. )
이처럼 조선시대는 백성들의 생활이 곤궁해질 때마다 백성들도 고루 균등한 생활을 해야 한다는 균의 정치이념이 강조되었다. 백성들에게 항산(恒産)을 보장해주어야 인륜도덕과 같은 항심(恒心)이 있게 되기 때문이다.
Ⅳ. 지구화 시대의 유학
조선조 말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점차 인간의 자유와 평등이 중시되고, 오늘날에는 민주주 의 실현과 극심한 환경파괴 속에서 자연과 공생하는 새로운 유학이 필요하게 되었다. 조선은 동 학농민혁명과 갑오개혁 이후 신분평등의 시대가 왔다. 이어 한말에는 독립신문 등의 영향으로 미 국식 자유주의나 입헌군주제의 정치체제가 들어왔다, 또한 선교사들의 활동에 의해 유교 가치관이 크게 흔들리게 된다. 전통적인 체제를 고수했던 유학자들은 위정척사운동으로 맞섰지만, 민중들의 정서에 맞지 않았고, 점차 유교는 시대적 조류에 뒤떨어지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김창숙과 같은 개신유학자들이 중국중심의 사대주의적 유학을 폐기할 것을 제창하였으나, 대부분 의 경우 조선유학의 틀에 머물렀다. 이 때문에 유학은 여전히 특권층의 이익에 봉사하는 봉건사회 의 계급질서나 과학이나 이성의 발달에 맞지 않는 불합리한 학문사상 정도로 간주되고 있는 실정 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유학의 근본정신은 성선설의 바탕에서 통과 균을 통해 인간 뿐만 아니라 우주만물과의 조화로운 관계를 추구해왔다. 이에 기후, 환경, 생태 환경의 파괴 로 인간생존 조건이 중대한 위기에 지구와 우주만물을 살리는 유학으로 전개될 필요가 있으며, 충 분한 가능성이 있다.
조선조 말에는 신분제 폐지와 서구식 민주주의가 도입되면서 점차 차별이 아닌 평등하고 주체 적인 인간사회가 요구되었다. 사회에서는 개인의 정치적 참여와 부의 성취, 문화적 향수에서 중시 되는 균(均)의 유학이념이 중시되었다. 이러한 상황하에서 점차 오늘날 민주주의 시대에 걸맞는 유학의 경향이 나타나고 있음이 주목된다. 예컨대 일제강점기인 1928년 충청도 홍성의 유교부식 회(儒敎扶植會)에서는 유교가 전제주의와 계급주의를 타파하고 새로운 유교로 탈바꿈할 것을 선언 하였다. 이들은 율곡 이이가 말한 학교모범의 4대 강령 즉 “천지를 위하여 마음을 세우고(爲天地立心), 생민을 위하여 도를 세우며(爲生民立道), 옛 성인을 계승하고 끊어진 학문을 잇는다(爲往聖繼絶學), 만세를 위하여 태평을 열어준다(爲萬歲開太平)‘을 계승하여 쇠퇴해가는 유교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새시대의 대동세계와 지구유학을 주장한 것이다. 원래 성선자체는 도덕적 평등이 아니라 정치적 사회적 평등을 함축하고 있다. 다만 성선이 신분제 사회와 결합하면서 도덕적 평등을 긍정 하고 정치 사회적 불평등으로 나아갔던 것이다. 이에 오늘날은 더 이상 신분제 사회가 아니므로 유교부식회처럼 성선에 대해서 정치, 사회적 평등으로 확대해석하면 분명 인권으로 나아갈 수 있는 근거를 확립할 수 있는 것이다.28)
또한 일제강점기에 태동한 원불교 역시 새로운 유학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
다. 원불교 창시자 소태산은 일원상과 사은사요를 주장하여 통과 균에 바탕을 둔 새로운 우주적 질서와 사회관계를 주장하였다. 일원상의 인격은 인간과 만물의 통질서 속에 의사소통과 공론의 형성을 가능하게 정신적 원리이며, 사은사요는 은혜와 생명력이 가득한 대자유의 세상과 인간평등, 지식평등, 교육평등, 생활평등의 대평등의 세상을 실현하는 시민적 덕성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사 요의 실천은 보은하고 감사하는 사은을 떠날 수 없다.29) 즉 천지은은 공도 헌신이 아니고는 할 수 없는 것이며, 부모은은 무자력자 보호법이며, 동포은은 자력을 양성하여야 자리이타가 가능하며, 법률은은 지자본위라야 민주주의 시대에 알맞게 실천할 수 있다. 지은보은(知恩報恩)의 감사 생활 속에 원만한 사회를 건설하는 개혁의식이 잠재해 있으며, 사요의 개혁의식 가운데에도 보은감사의 은에 대한 사상을 떠날 수 없다. 이를 유교적으로 말한다면 사은은 인(仁)이며, 사요는 의(義)이니, 인과 의가 쌍전해야 완전한 대도라고 할 수 있다.30)
결국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여 천지와 생민을 위해서 마음과 도를 세우고 전제주의와 계급주의 를 타파하려고 하였던 유교부식회나 사은사요의 추구를 통해서 천지 만물과 합일되고 공정한 가치 를 실현하고자 하였던 원불교의 정신은 오늘날과 같은 지구적 위기 속에서 유학을 어떻게 계승하 고 발전시켜 나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무분별한 자원개발과 환경 오염, 생태 파괴로 인간과 자연 모두 공멸의 위기 상황에서, 인간의 탐욕과 폭력에서 벗어나서, 더 이상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고 다스린다는 생각이 아니라, 지구에서 함께 존재하고 함께 살리는 존재로 대우하는 유학으로 발전시켜 나갈 필요가 있는 것이다. 공맹 이래 유학의 가치인 성선의 본연의 마음을 되찾아서, 통과 균의 질서를 중시해온 유학의 전통, 중 용과 장재의 「서명」에서 말한 천지와 인간이 일체가 되어 합일되는 우주적 공동체를 형성할 필요 가 있는 것이다. 지구를 구성하는 동물이나 식물, 자연물까지를 아울러 하나의 공생하는 질서, 통 의 이념과 균등한 존재가치를 인정하는, 인간 뿐만 아니라 천지와 합일되고 만물과 동반하는 지구 유학으로 거듭날 필요가 있는 것이다.
28) 신정근, 「현대유학의 길, 탈중국화와 인권유학」, 동양철학40, 한국동양철학회, 2014, 424쪽.
29) 김봉곤, 「원불교의 政敎同心과 시민적 덕성」, 원불교사상과 종교문화84,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2020, 52-59쪽.
30) 李亨基, 方山文集, 153-154쪽.
Ⅴ. 맺음말
지금까지 조선유학에서 지구유학으로의 전환을 위한 시도로서 통과 균의 개념을 검토하였다. 통
은 천지, 자연만물, 인간의 소통을 가능하게 하며, 균은 상호 대등한 입장에서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관게를 추구하는 것이다. 공맹의 사상은 성선설에 바탕을 둔 것으로 충분히 시대 적 사명을 다할 수 있으나, 유학의 인간중심적인 관점과 자연에 대한 차별적 시작으로 여전히 넘 어야 할 산이 많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와서 유학은 동아시아의 경제성장과 민주주의 신장의 동력으로 재평가 되
고 있고, 개인과 개인, 국가와 국가를 넘어설 수 있는 인권유학의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논의되고 있다. ) 정치체제가 군주중심에서 민주주의 체제로 바뀌었고, 경제, 사회제도의 변혁으로 인해 권 위주의적이고 불평등한 관계가 더 이상 용납되기 어렵게 되었다. 또한 교육의 의무화와 한글전용 정책으로 국민의식이 일체감을 회복하였다. 이러한 오늘날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변화는 유학 에서도 지구유학을 가능하게 하는 전제조건이 되는 것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지구유학이 성립하기 위해서 몇 가지 제안을 함으로써 글을 맺고자 한다.
첫째, 탈중국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종래의 유학은 중화주의적 성격이 강하다. 이러한 유학은 민
족자결주의 이후 더 이상 용납되기 어렵다. 대등한 국가간의 관계 속에서 국가와 민족의 주체성을 실현하는 관계로 전환되어야 한다.
둘째, 유학은 개인의 보편적인 자유와 평등을 실현하는 세계시민적 유학으로 거듭나야 한다. 이
미 1860년대 출현한 동학이나 1920년대의 원불교 등에서 대중유학이 발전된 형태로 새로운 근대 종교가 태동하였다. 유학 역시 종래의 사농공상의 명분론이나 계급적 질서를 정당화하는 관점에서 벗어나서, 자유와 평등, 공론을 중시하는 세계시민적 유학으로 거듭나야 함을 시대적으로 요청하는 것이다. 셋째, 인간과 자연의 공생을 도모해야 한다. 동물이나 식물, 기타 자연물도 지구 구성원이 며, 공생관계이다. 사람이나 동물의 똥은 식물의 자원이며, 식물에 배출하는 산소는 지구공기를 정 화한다. 무분별한 자원 개발과 환경오염으로 자연을 파괴하는 행위를 멈추어야 한다. 유학에서는 대학에서는 자기를 척도로 삼아 남을 생각하고 살펴서 바른길로 향하는 혈구지도(絜矩之道)를 말 하고 있다. 이러한 혈구지도는 천하를 태평케하는 요소로서,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이나 식물, 자연 물 간의 관계를 회복하는 도리가 될 것이다. 넷째, 생명, 평화를 고취하는 유학으로 거듭나야 한다. 오늘날 개인주의와 이기심의 만연으로 타인의 생명을 경시하고, 국가간의 대결로 평화를 헤치는 경우가 많다. 공자는 인간뿐만 아니라 우주의 생명을 중시하는 인(仁)의 도리를 중시하였고, 맹자는 다른 사람이나 동물의 고통이나 불행을 차마 어찌하지 못하는 마음인 불인인지심(不忍人之心)을 강 조하였다. 이러한 성선을 강조한 공맹의 도리는 생명, 평화를 고취하는 유학으로 충분히 거듭날 자 원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 제안은 유학에서 중시해온 통과 균의 개념을 확대하여 적용할 수 있는 것으로 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제반 방면에서 다양한 방안이 모색될 수 있다. 본고는 일차적으로 그 러한 시도를 위한 시안으로 작성된 것이며,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서는 추후 검토를 하고자 한다.
참고문헌
大學
蘆沙集
論語
孟子集註
孟子
方山文集
三峰集
西銘
聖學十圖
栗谷全書
伊川易傳
中庸 通典
강광식, 신유학사상과 조선조 유교정치문화, 서울: 집문당, 2000. 김봉곤, 「19세기 후반 고창지역 유학사상과 동학농민혁명」, 역사학연구53, 호남사학회, 2014.
, 「원불교의 政敎同心과 시민적 덕성」, 원불교사상과 종교문화84,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 연구원, 2020.
신정근, 「현대유학의 길, 탈중국화와 인권유학」, 동양철학40, 한국동양철학회, 2014. 안종수, 「리와 기에 대한 라이프니츠와 기정진의 해석」, 철학연구72집, 대한철학회, 1999. 尹源鎬, 「均田制를 通한 土地制度의 發展」, 상과대학논문집2, 전북대 산업개발연구소, 1972.
이병도, 한국유학사, 서울: 아세아문화사, 1987. 이재석, 「율곡이이의 현실인식과 경세사상」, 동양문화연구33집, 영산대 동양문화연구원, 2020.
嵇友军ㆍ이혁구, 「중국 고대 토지제도 “균전제”의 제도변천: 신제도주의 경제학 관점을 중심으로 」, 중국과 중국학29, 영남대학교 중국연구센터,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