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02

10] 【지구정치학】지구정치학을 향하여 - 개인·국가·세계 너머의 시선과 사유 -김석근*

 10] 【지구정치학】지구정치학을 향하여 - 개인·국가·세계 너머의 시선과 사유 -김석근*

요약문   새로운 사유 흐름/운동으로서의 지구인문학적인 관점에서 구상해보게 되는 ‘지구정치학’은 

19세기 후반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어지는 사회과학(Social Science)의 한 부문으로서의 정치학(Political 

Science), 그 중에서도 특히 국제정치(International Politics), 국제관계(International Relations), 세계정치(World 

Politics)와는 그 지향점과 뉘앙스를 달리한다. 지금까지의 정치학, 국제정치, 세계정치가 ‘개인’(Individual) 과 ‘국가’(State)[특히 민족, 국민국가(Nation State)], 그리고 ‘세계’(World)[국민국가들 사이의 관계]를 토대로 구축되어 있다면, 지구정치학은 그동안 배제/소외되었거나 주목받지 못했던 일차적으로 ‘그들 사이 와 너머’에 주목하고자 한다. 아울러 그들 모두를 감싸안는 전체(혹은 전지구적 규모)로서의 ‘지구(地球)’ 차원에서 ‘정치적인 것’들을, 나아가서는 ‘비정치적인 것’들까지 재음미해보려는 것이다. ‘비정 치적인 것들이 갖는 정치성’까지 읽어가자는 것이다. 이미 정치학 분야와 인접 관련 분야에서 기후변화(온 난화), 환경, 대기오염, 생태계 등에 주목하면서 글로벌리제이션(Globalization), 환경정치(학), 생태정치(학) 등 으로 범주화하려는 지적인 노력이 이루어져 왔다. 선구적인 작업들에 당연히(!) 경의를 표하면서도, 대체로 

그 논의는 ‘the Politics of *******’(예컨대 Climate Change, Environment, Ecology, etc.)라는 형태로 진행 되고 있다. 이 발표가 나아가고자 하는 바를 굳이 표현해본다면 ‘the Politics of Politics’라 할 수도 있겠

다. 비유하자면 예술(의) 철학, 음악(의) 철학 등에 대응해서 마치 ‘철학(의) 철학’을 제기하려는 것과도 같다. 요컨대 정치의 본질적인 핵심과 관련된 것이다. 역시 ‘지구’(地球)[Earth, Globe, Planet]가 출발점이 되어줄 것이다. 방법으로는 ‘안과 밖, 그리고 경계’에 주목하면서, 마치 우주인(宇宙人)처럼, 자유롭게 떠 다니면서 스케치해보고자 한다. 안으로는 익숙한 것들을 새삼 낯설게 바라보기도 하고, 때로는 마치 바깥에 서 있는 것처럼 무심하게 물음을 던져보고 싶기도 하다[예를 들자면 국제연합(UN: United Nations)과 수많은 국제기구의 ‘지구성’(地球性) 정도 여하, 코로나19 바이러스와 WHO(World Health Organization)의 실제 역 할 같은 것들]. 이런 비행(飛行)을 통해서 지구인(地球人), 지구시민(地球市民)의 환기(喚起)와 더불어 가능하 다면 지구‘중생’(地球衆生) 나아가서는 ‘일체중생’(一切衆生)[뭇삶들,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들]의 하나라 는 인식에 한 걸음 더 가까이 가 보고자 한다. 

차 례

Ⅰ. 지구인문학과 새로운 사유 

Ⅱ. 지구와 인간 그리고 Anthropocene[人類世]

Ⅲ. 지구정치, 지구정치학, 지구공동체  

Ⅳ. AD TERRA POLITIKA: ‘지구정치학’을 향하여

“가까운 미래, 희망과 갈등이 공존하는 이 시대의 인류는 지적 생명체와 진보의 꿈을 찾아 태양계로 진출했다.”1) 

“우리가 지구를 잘 돌보지 못했소”2)

“정말 전쟁을 일으켰군. 이 미친놈들, 결국 지구를 날렸어! 저주한다! 모두 지옥

으로 꺼져!”3) 

Ⅰ. 지구인문학과 새로운 사유 

바야흐로 ‘지구인문학’(地球人文學)이 떠오르고 있다. 관심과 더불어 유행하고 있다고 해도 좋

겠다. ‘지구인문학 연구회’의 결성과 활발한 연구, 그리고 「경계를 넘는 지구학의 모색」이라는 부제를 가지고서 개최되는 「지구화 시대의 인문학」 학술대회가 일단의 증거가 된다고 하겠다. 영 어로는 ‘Globalogy, The Humanities in the Age of Globalization’으로 표기하고 있다. 

지구인문학과 더불어 새로운 용어/ 개념들 역시 출현하고 있다. 새로운 사유는 새로운 말들(용어)

을 필요로 하므로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그 핵심을 이루는 단어는 역시 

(‘지구’와) ‘Globe’라 해야 할 것이다.4) 형태상으로 보자면 globe에서 global, globality, globalis m, globalization, globalogy 등이 파생되어 나온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단순한 단어의 생성 과정을 넘어서 있다. 논자에 따라서 같은 용어를 쓰고 있더라도 거기에 담기는 내용과 함의가 다르기는 

 

* 역사정치학자

1) 영화 「애드 애스트라(AD ASTRA)」[‘To The Star’(2019)].

2) “들리는가?” 북극에 혼자 남은 천문학자 어거스틴. 그는 지구로 귀환 중인 우주 비행사들과 교신하려 애쓴다. 그들에게 알려야 한다. 인류의 미래는 이제 지구에 없다고. 영화「미드나이트 스카이」[‘The 

Midnight Sky’(2020)]

3)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행성을 탈출하려던 테일러가 무너져 있는 ‘자유의 여신상’을 발견하고는 분노하 면서 내뱉은 말[자유의 여신상 장면. 영화 「혹성탈출」[‘Planet of the Apes’(1968)]. 

   http://image.cine21.com/resize/cine21/still/2011/0623/M0020011_special__1[W680-].jpg]

4) 그런데 Globe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예를 들자면 ①)세계, ②지구, ③글로브, ④구(球), ⑤세상 등이다. https://en.dict.naver.com/#/search?range=all&query=globe

하지만 점차로 일종의 ‘개념’으로 자리잡아가는 것이다. 

어떤 자리에서 지구인문학 얘기를 했더니 불쑥 이런 질문이 나왔다. “그거 ‘지구과학’의 반 대말이냐?” 아무래도 익숙한 지구과학이 떠올랐던 모양이다. ‘지구과학’(Earth Science, 地球科

學)이란 오래전부터 사용되어 온 것이며, 1955년부터 정규 고등학교의 교과목이기도 하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지구과학은 “지구를 중심으로 그 주변의 자연을 대상으로 연구하는 학문”으로 “종합적인 자연과학의 체계를 다루는 것으로서 이에는 지질학·기상학·천문학이 포함되며, 해양 학·지구물리학도 함께 취급된다.”고 한다. 처음에는 ‘지학’(地學)으로 불리다가 1976년 지구과 학으로 바뀌게 되었다.  ) 지구인문학 전문가는 아니지만 한 발 들여놓고 있는 필자는 웃으면서 말 했다. 딱히 반대말이라 할 수는 없지만, 그런대로 좋은 대비가 되는 것 같다고 했다. 공통분모로서 의 지구를 잠시 소거(消去)한다면 ‘과학’과 ‘인문학’의 대비 정도가 되는 셈이다.6)

지구과학이 다루는 범위가 아주 넓듯이[지구과학에는 지질학·기상학·천문학이 포함되며, 해양 학·지구물리학도 함께 취급된다는 점은 흥미롭다.], 지구인문학의 범위 역시 다양하다고 하지 않 을 수 없다. 이번 학술대회에서도 실로 다양한 분야를 만날 수가 있다. ) 기존의 학문분과 이름 앞 에 ‘지구’를 붙인 경우도 있지만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분야도 있다. 

각 분야별로 지구**학이 안겨주는 신선함과 충격이 한결같을 수는 없겠다. 그 분야 사정에 따라 서 조금씩 다를 것이다. 그러면 정치학(Political Science) 분야에서 ‘지구정치학’은 어떨까. 아마 도 많은 정치학자들은 그게 뭐 그리 새로운 것이냐 하는 다소 시큰등한 반응을 보일는지도 모르겠 다. 왜냐하면 근대적인 의미에서의 정치학은 19세기 후반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어지는 사회 과학(Social Science)의 주요한 한 부문으로 존재해왔으며, 더욱이 현재 정치학 분야에는 국제정치

(國際政治, International Politics), 국제관계(國際關係, International Relations), 세계정치(世界政治, W orld Politics), 외교(外交, diplomacy) 분야, 그리고 관련된 과목들이 있기 때문이다. 거기다 UN, 국제 기구, 국제법, 국제사법재판소 등을 감안한다면야 … 이들 분야는 세계화 내지 지구화 시대의 도래 와 더불어 가장 활기를 띠고 있는 분야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 그와 더불어 다루는 소재에서도 새로운 요소를 끊임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듯하다. 기후, 오염, 환경, 생태, 핵, 에너지, 정보, 과학기 술 등. 

따라서 관건은, 지구인문학이란 관점에서 말하고자 하는 지구정치학이 이들 국제정치 등의 제 

분야와 어떤 점에서, 그리고 어떻게 다른가 하는 것이다. 차별성의 문제라 해도 좋겠다. 나아가서 는 새로운 사유로서의 지구정치학이 기존의 정치학에 비해서 갖는 새로움과 그 존재 의의는 과연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효율적인 논의를 위해서 미리 조금 말해두자면 이러하다. 지금까지의 정치학, 국제정치, 세계정 치가 ‘개인’(Individual)과 ‘국가’(State)[특히 민족, 국민국가(Nation State)], 그리고 ‘세계’(Wo

rld)[국민국가들 사이의 관계]를 토대로 구축되어 있다면, 지구정치학은 그동안 배제/소외되었거나 주목받지 못했던 일차적으로 ‘그들 사이와 너머’에 주목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그들 모 두를 감싸 안는 전체(혹은 전지구적 규모)로서의 ‘지구(地球)’ 차원에서 ‘정치적인 것’들을, 나 아가서는 ‘비정치적인 것’들까지 재음미해보려는 것이다. ‘비정치적인 것들이 갖는 정치성’까 지 읽어가자는 것이다. 

Ⅱ. 지구와 인간 그리고 Anthropocene[人類世]

한자어로서의 지구(地球), 그 지구라는 단어를 언제부터 사용했을까. 무엇보다 지구라는 말에는 

무엇보다 ‘땅은 둥글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그것은 동아시아의 오래된 인식 내지 세계관, ‘천 원지방’(天圓地方), 즉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로 되어 다”라는 명제를 정면으로 부인하고 있 다. ) 그 점이 중요하다. 지구라는 말 자체는 오랫동안 이어져온 전통적인 천지관(天地觀: 천지코스 몰로지)과는 분명한 단절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전래된 새로운 과학적 지식의 세례 없이는 불가 능한 인식이라 해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탈리아 출신의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리치(Matteo Ricci, 1552~1610)가 중국에 와서 서양의 과학

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전해진 완전히 새로운 세계관이었다. 그러니까 16세기 이후에나 사용하게 된 말이다. 그가 편찬한건곤체의(乾坤體儀)(1605)에 “日球大於地球, 地球大於月球”[해(일구)는 지구보다 크고, 지구는 달(월구)보다 크다]라는 구절이 보인다. 분명하게 ‘地球, 日球, 月球’라는 용어를 구사하고 있다. 이미 공처럼 둥근 존재로서의 지구, 그리고 그 지구는 해(일구)와 달(월구) 과 병칭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천체(天體) 내지 우주(宇宙) 안에서 이해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지구의 안과 밖 그리고 경계가 동시적으로 상정되어 있다는 말이다. 이 점은 전통적인 세 계관, 우주관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해도 좋겠다.

‘지구가 둥글다’[地圓]는 인식은 ) 자연스레 지구가 움직이며 그것도 스스로 돈다[地轉]는 주 장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지전설(地轉說)은 김석문(金錫文, 1658~1735)과 홍대용(洪大容, 173

1~1783)에 이르러 명제가 되기에 이르렀다.11) 이에 대해서는 새삼 말하지 않아도 되겠다. 그리고 특별히 주목하고 싶은 것은 최한기(崔漢綺, 1803~1877)의지구전요(地球典要)(1857년)라 하겠다.12) 책 제목에 지구라는 단어를 분명하게 내세웠다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지구를 태양의 둘레를 공전 하는 하나의 ‘행성’(行星, planet)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이 글에서 구상하는 ‘지구정치학’과 관련해서 1)오랜 전통을 가진 천원지방(天圓地方)적인 인식에 대한 단절이 있었다는 것, 그 연장선 위에서 2)1857년에 간행된 최한기의 지구전 요(地球典要)를 하나의 의미 있는 시대적인 포인트(지표)로 삼고자 한다. 이 말은 동아시아의 전통 적인 사유 혹은 그 전환기에 등장했던 복합적인 사유에로의 단순한 회귀 혹은 무비판적인 미화(美化)를 경계하고자하기 때문이다.     

‘지구’ 자체를 하나의 단위로 바라보게 되면, 그와 더불어 그 경계와 바깥 역시 설정되지 않 을 수 없다. 우주에서 바라보면 지구는 ‘하나의 푸른색 대리석’(A Blue Marble)처럼 보인다고 한

다. 언제 우리는 지구를 느낄 수 있는가.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것은 웹툰, 영화, SF 소설에서 볼 수 있는 스토리, 예컨대 우주 바깥세계(外界)에서 날렵한 우주선을 타고 무자비하게 지구를 침략해 오는 행위에 대해서 맞서는 ‘지구방어사령부’, 혹은 어느 날 갑자기 전혀 낯선 외계의 생명체를 

만나게 될 때[예컨대 오래 전에 제작된 영화 ‘E.T. - The Extra Terrestrial’ (1982) 같은 것]가 아

닐까 싶다.13) 개인적으로 SF 영화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이 발표를 준비하면서 브래드 피트가 주연한 영화 ‘AD ASTRA’(2019)14), 죠지 클루니가 감독으로 주연까지 맡았던 영화 ‘The Midnig ht Sky’(2020)15) 등을 흥미롭게 보았다. 

영화 ‘The Midnight Sky’에서는 지구는 이미 재앙으로 종말을 맞게 되었으며 더 이상 지구에 서는 미래가 없다는 설정이다. 지구위험시대를 끝까지 밀고 나갔다고 해도 좋겠다. 북극에 마지막

 

다는 것을 의심하는 것은 ‘井蛙夏蟲之見’(우물안의 개구리나 여름 벌레와 같은 소견)이라 했다.

11) 김석문은 역학도해(易學圖解)(1697년)에서 지구가 구형이며 움직인다는 것을 주장했으며, 홍대용(洪大容, 1731~1783)은의산문답(毉山問答)(1766년)지구가 둥글 뿐만 아니라, 스스로 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12) 중국에서 전해진 해국도지 海國圖志·영환지략 瀛寰志略 등을 기초로 편집했다. 우주계의 천체와 기 상, 지구상의 자연 및 인문지리를 다루었다. 1719년(숙종 45) 일본에 다녀온 통신사 신유한(申維翰)의 해 유록 海遊錄도 참조했다. 13권 7책. 필사본. 본문 12권과 지도 1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범례·목차에 이 어 천문·지구·조석, 대륙별 총설 및 국가별 지지, 해론(海論), 중서동이(中西同異), 전후기년(前後紀年), 양회교문변(洋回敎文辨), 역상도(曆象圖)와 제국도(諸國圖) 순으로 배열되어 있다.

13) 조선왕조실록 광해군일기에 강원도 4개 지역에서 미확인물체(UFO)가 나타났다는 기록을 확인할 수 있 다.

14) 라틴어 ‘AD ASTRA’는 ‘To the Star’(별을 향하여)라는 뜻이다. 로이 맥브라이드 소령(브래드 피트)는 20년 전에 해왕성으로 생명체를 찾아 떠난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사하기 위해 우주로, 해왕성 으로 떠난다. 아버지는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목성, 토성을 지나 해왕성으로 가면서 그는 많은 생각 을 한다. 특히 아내 이브에 대해서. 아버지는 살아서 연구를 계속하고 있었다. 같이 돌아가자는 권유에도 아버지는 생명줄을 끊고 우주 속 심연으로 사라진다. 영화가 전해주는 핵심 메시지는 별들은 아름답고 섬 세하지만 아직은 인류 이외의 지적 생명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구로 돌아온 로이는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위해 살 것이라는 다짐을 한다. 그는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떠났던 아내 이브를 다시 만난다.

15) 영화의 토대가 된 원본의 제목은 Good Morning, Midnight. 브룩스돌턴(Lily Brooks-Dalton)/이수영 역, 굿모 닝 미드나이트, 시공사, 2019년.

으로 남은 천문학자 오거스틴은 우주로 갔던 사람들의 지구 귀환을 막기 위해 온 힘을 다한다. 우 주선에 탄 사람들은, 그럼에도 굳이 지구로 돌아오는 사람들도 있고, 지구의 식민지별[K-23, 목성] 로 떠나가는 사람들도 있다. 지구과학에 천문학이 포함되었던 것처럼, 지구인문학에도 천체와 우주 가 포함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지구인문학은 어떤 의미에서는 ‘우주인문학’이기도 하다.   

그러면 우리는 우주 혹은 천체의 한 부분으로서의 지구라는 행성을 실제로 하나의 단위 혹은 전 체로 볼 수 있는가, 보고 있는가? 그리고 그런 의식을 가지고 있는가? 여기서 우리는 ‘지구의식’

(地球意識, global consciousness), ‘지구성’(globality) 라는 개념을 생각해볼 수 있다. (뒤에서 말하

겠지만) UN이나 수많은 국제기구들이 그 같은 지구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또 지구성을 구현해내고 있는가 식의 물음을 던져볼 수도 있겠다. 왜냐하면 지구가 위험에 처해 있다는 인식, 다시 말해서 ‘지구의 울부짖음’ )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지구위험시대’  )를 지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지구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인식(혹은 상상력)을 말하는 것은 자연스러우며 또 필요한 작업이 기도 하다. 

그런 작업 역시 이루어지고 있다. 예컨대 ①지구를 하나의 살아 있는 생명체, 즉 ‘Living Eart h’(살아있는 지구)로 보려는 시도 ), ②지구 전체를 하나의 공동체[‘지구공동체’]로 보아야 한다 는 주장 ), ③지구를 ‘성스러운 공동체’  ), 나아가서는  ‘지구를 공경하는 신앙’  )까지 말하게 되었다. 

필자로서는 지구를 하나의 살아있는 생명체로 보려는 시각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하지만 지구를 하나의 공동체로 본다면, 즉각적으로 그 공동체의 구성원과 그 범위는 과연 어디까지인가 하는 의문이 떠오르게 된다. 나아가 성스러운 공동체 내지 공경하는 신앙이라면 과 연 누가 그렇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당연히 제일 먼저 ‘인간’(Human Beings)을 떠올리면서 ‘지구인’(地球人), ‘지구시민’(地球市民), ‘행성시민’(行星市民)을 말할 수 있겠다. ) 그러면 같은 지구 위에서 살아가고 있는 ‘인간 이외의 존재’(non-Human Beings)는 어떻게 보아야 하는 가, 인간과의 관계 설정은 어떻게 되어야 할 것인가. ) 그들은 평등한가. 그렇다, 모든 만물을 평등 한가, 萬物平等? 그들 두 범주 사이에, 일부 학자들이 제기하고 있는, (인간들만의 그것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지구 민주주의’(Global Democracy)가 가능할 것인가.  

이 같은 사안에 대해서는 다시 논의할 자리가 있으므로, 여기서는 그와 관련해서 나름대로 참고

가 될 만한 두 가지 측면을 지적해두고자 한다. 

첫째는 the Anthropocene(the Age of Humanity), 즉 인류세(人類世) 또는 인신세(人新世)에 대한 논의라 하겠다.24) 인류세(人類世)는 인류가 지구 환경에 큰 영향을 미친 시점 이후를 별개로 분리 한 비공식적인 지질 시대를 가리킨다. 2만 년 전부터 흔히 ‘홀로세’(Holocene)라 하지만, 그 시대 를 비공식적으로 다시 구분한 것이다.25) 최근 들어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인 만큼 아직 정설(定說) 은 없는 듯하지만,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엔 충분하다고 하겠다.26) 요컨대 인간이라는 한 종이 지구 상의 다른 종들을 압도해서 지구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는 점에 주목했다는 점에서는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의미 있는 논의라 하겠다.27) 

덧붙여둔다면 ‘인류세’라는 새로운 시대가 이미 시작했음을 자각하고 지구 환경을 오래토록 지속시키기 위해서, 데이비드 그린스푼(David Grinspoon)은 ‘Terra Sapience’라는 용어/ 개념을 고안해내기도 했다. 말의 구조로 본다면 ‘Homo Sapience’에 대비되는 듯하기도 하다. 말 그대로 한다면 ‘현명한 지구’(Wise Earth)28) 정도가 되겠다. 거기에 걸맞는 인간으로의 변신(?)을 강하게 요청하고 있다고 해도 좋겠다.29) 

둘째로, ‘인간’(Human Beings)과 ‘인간 이외의 존재’(non-Human Beings) 사이의 관계 여하 와 관련해서, 필자가 떠올렸던 영화는 다름 아닌 ‘혹성탈출(惑星脫出)’[Planet of the Apes, 1968] 이었다.30) 프랑스 작가 피에르 불(Pierre Boulle, 1912~1994)의 SF 소설 La Planète des Singes(1963)

을 토대로 만든 것이다. 이후 1970년대에 이른바 혹성탈출 시리즈 영화가 만들어졌으며31), TV에서 

 

생’(一切衆生)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24) 인류세의 개념은 노벨 화학상 수상사 대기화학자 파울 크뤼천이 대중화시켰다. 그 기원을 산업혁명에서 찾기도 하고, 핵실험이 처음 실시된 1945년을 시작점으로 보기도 한다. 방사능 물질, 대기 중의 이산화탄 소, 플라스틱, 콘크리트 등이 대표적인 물질로 꼽힌다. 한 해 600억 마리가 소비되는 닭고기, 그 닭뼈를 인류세의 최대 지질학적 특징으로 꼽기도 한다. 

25) The Anthropocene is a proposed geological epoch dating from the commencement of significant human impact on Earth's geology and ecosystems, including, but not limited to, anthropogenic climate change.[https://en.wikipedia.org/wiki/Anthropocene] 

26) Steve Bradshaw, Anthropocene: The Human Epoch(2015) [다큐멘타리]  www.anthropocenethemovie.com; EBS 다큐 프라임에서 방영한 「인류세」(2019); 클라이브 해밀턴, 인류세(Anthropocene): 거대한 전환 앞에 선 인간과 지구 시스템, 정서진 옮김, 서울: 이상북스, 2018.

27) '인류세 ANTHROPOCENE_Save Our Planet', 이는 (재)대구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범어아트스트리트에서 2021 년 첫 기획 전시로 내세운 타이틀 이기도 하다. 2월 16일부터 4월 11일까지 개최. 내외뉴스통신

(http://www.nbnnews.co.kr) 

28) Terra는 흙, 땅, 대지 등의 뜻을 갖는다. 어원은 라틴어 terra(지구, 땅, 육지). SF에서 지구인을 뜻하는 Terra는 거기서 파생되었다. 

29) David Grinspoon, “Welcome to Terra Sapiens,” [Excerpted from the book Earth in Human Hands by David Grinspoon. Copyright © 2016 by David Grinspoon.] 그는 ‘mature Anthropocene’라는 표현도 쓰 고 있다. https://aeon.co/essays/enter-the-sapiezoic-a-new-aeon-of-self-aware-global-change 30) ‘행성탈출’이 바른 번역이라 한다. 일본에서는 ‘猿の惑星(원숭이의 혹성)’으로 번역되었다.

방영되기도 했다(1974년 등). 그러다 2001년 리메이크되었으며[Planet of the Apes(2001)], 2011년부 터 리부트(reboot)되어 인기를 끌었다.32) 

시리즈 전체를 통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역시 1968년 첫 작품이었다. 인간의 퇴화와 유인 원(원숭이)의 진화, 그리고 말을 하면서 인간을 지배하는 유인원의 위상 등은 아주 낯설고 흥미로 웠다. 1960년대 처음 등장한 ‘핵 공포’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 일으켜 주었다. 게다가 마지막 장 면, 그 정체불명의 혹성(행성)이 알고 보니 다름아닌 지구였다는 설정은 충격적인 반전이었다. 테일 러는 무너진 ‘자유의 여신상’을 발견하고는 거침없이 분노를 내뱉는다. 디스토피아적인 극한 상 황을 통해서 지구를, 지구의 미래를 다시금 생각하게 해주는 작품이었다. 

Ⅲ. 지구정치, 지구정치학, 지구공동체  

효율적인 논의를 위해서 우선 지구정치, 지구정치학과 관련해서 지금까지 나온 사항들을 간략하

게 검토하고, 이어 그들을 토대로 이 글에서 구상하는 지구정치학에 대해서 논의해보고자 한다.   

(1) 지난 2002년 정치학대사전편찬위원회가 편찬한 21세기 정치학대사전(Encyclopedia of politica l science)(서울: 아카데미아리서치, 2002)에는 ‘지구정치[global politics, 地球政治]’라는 항목이 나온다. 이 글의 관심사와 관련된 주요 부분만 살펴보기로 한다.   

“19세기부터 20세기에 걸쳐 정치라고 하면 주권 국가 단위의 정치를 우선적으로 생각하였다. 전쟁 은 국가 간의 전쟁이며, 경제발전은 저개발국에서 선진공업국으로 라는 국가 단위의 발전이며, 민 주주의는 국가 내의 민주주의였다. 정치학은 따라서 국내정치를 축으로 구성되었다. … 지방정치는 국내정치의 하부 단위이며, 국제정치는 국내정치의 파생물로서의 상부 단위였다. 모두 국내정치를 기본으로 정치학이 구성되었다. 

그러나 21세기가 됨에 따라 지구정치가 보다 중요한 단위로서 정치학을 구성하게 되었다. 몇 가지 의 요인이 그것에 공헌하였다. 군사기술 수준의 진보로 국가 안전보장에 이어 국제 안전보장, 지구 적 안전 보장, 공통 안전보장이라는 개념이 중요해졌다. … 경제가 1국 단위의 국민경제에서 국가 간의 국제경제 더 나아가 세계시장을 단위로 한 세계경제로 전개되는 과정에서 국내정치를 축으로 한 견해에 이어 지구정치를 축으로 한 견해의 중요성이 증가하는 것은 당연하였다. … 정치의 조직 원리로서의 민주주의가 아무리 완만한 넓은 정의에 기초한 것이라고 해도 과반수의 국가에 있어서 공통가치, 공통규범이 일정의 현실이 된 것이다. 여기에 지구정치의 중요성이 증가하게 되었다. 지 구적 민주주의가 국가 간의 문제뿐만 아니라 국경을 초월하여 비정부기구나 비정부 개입을 구성 원 소로 함으로써 지구정치로의 계기는 더욱 강화된다.”(강조는 인용자, 이하 마찬가지)

 

31) Planet of the Apes(1968), Beneath the Planet of the Apes(1970), Escape from the Planet of the Apes(1971), Conquest of the Planet of the Apes(1972), Battle for the Planet of the Apes(1973). 

32)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Rise of the Planet of the Apes(2011)], 「혹성탈출: 반격의 시작」[Dawn of the 

Planet of the Apes(2014)], 「혹성탈출: 종의 전쟁」[War for the Planet of the Apes(2017)]

종래 정치는 ‘주권 국가’ 단위의 정치가 핵심에 있었으며, 그것을 중심으로 그 하위 단계에 

있는 지방정치, 그리고 그 연장선 위에 있는 국제정치가 포진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21세기 에 접어들면서 ‘지구정치’가 부각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주요한 요인으로는 군사기술의 진보 로 인해 “국제 안전보장, 지구적 안전 보장, 공통 안전보장”이 부각되었다. ) 그런데 그것은 경 제적인 측면, 즉 국가경제를 넘어서는 세계경제가 두드러진 것에서도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국 경을 유연하게 넘나드는 혹은 넘어서는 ‘자본’의 실체와 움직임을 떠올리면 크게 틀리지 않을 듯 하다. 

“지구정치가 어떻게 전개되는가에 대해서는 다양하다. 안전보장에 대해서는 국가 안전보장이 계 속 기본이라고 생각되었으며 지구 규모의 공통 안전보장을 구상하는 시점 그리고 지구상, 특히 많 은 제3세계 제국의 파탄국가라고 불리는 현상 등 무정부 또는 지속적인 혼란이 예상되는 시점이 있

다. 첫째는 웨스트팔리아적 시점에서 국가주권이 축이 되고 있다. 둘째는 필라델피아적 시점에서 국민주권이 축이 되고 있다.  국가는 없고 오히려 국민 개개인에게 주권이 있다는 생각으로 민주주 의국가는 그 원초적인 형태가 된다. 궁극적으로는 지구 민주주의로서 지구 단위의 개개인을 축으로 한 민주주의를 구상하는 시점이다. 셋째는 글로벌리제이션에 억제된 형태로 파탄국가, 파탄사회가 생성된다는 시점에서 주권이 국가에 대해서도 국민에 대해서도 상실된 것이라고 한다. 때로 반유토 피아적 시점이라고 한다. 그 귀결로서 지구상에 항상 무정부, 무조직 상태가 나타난다는 견해이다. … 통치에 대해서는 국가 단위의 민주주의, 권위주의, 기타의 통치형태가 공존하고 민족주의가 계 속 중요하다는 시점, 지구 시민을 궁극적으로 생각하는 시점 그리고 혼란과 분쟁이 항상 존재하는 속에서 종교, 인종, 언어 등의 대립이 극대화한다고 생각하는 시점이 있다.”(21세기 정치학대사전

)

사전에서는 국제정치와 지구정치라는 용어를 같이 구사하고 있다. 하지만 지구정치 논의를 보면 ‘국가주권’, ‘국민주권’, 그리고 ‘글로벌리제이션’으로 인해 주권이 상실될지도 모른다는 것 등을 보면 역시 ‘국민국가’가 근간에 강하게 깔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서 ‘지구민 주주의’와 ‘지구시민’에 대해 간단하게 언급하는 정도에 머물러 있다. 아무튼 여기서 말하는 지구정치는 국제정치와는 구별될는지 모르지만, 이 항목에서는 등장하지 않는 ‘세계정치’(World Politics)와 거의 겹쳐지는 듯 하다. 다시 말해서 인용문에서 ‘지구정치’를 ‘세계정치’로 바꾸어 놓더라도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해도 좋겠다.          

(2) 지구정치와 지구정치학에 대해서 정치학 분야에서, 그리고 한국의 국제정치학계에서도 주목 하고 해왔다고 하겠다. 그 흐름을 다 다룰 수는 없는 만큼, 구체적인 사례를 두엇 살펴보고자 한 다. 

①한국의 대표적인 국제정치학자 하영선 교수  )는 이미 ‘지구정치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바 있다. 21세기를 앞둔 세계의 정치, 경제, 과학 기술 등을 면밀하게 논의한 글들을 모아 탈근대 지 구정치학(나남, 1993)이라는 단독저서를 내놓았다. 그는 기존의 국제질서, 세계질서에 대응해서 ‘신국제질서’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나아가 그의 관심은 지구적 민족주의, 지구 민주주의, 탈근 대 지구문화, 지구환경, 페미니즘적 국제관계론 등에 미치고 있다. 1993년이란 시점에서 이미 ‘지 구정치학’이란 용어와 함께 경제, 과학, 기술, 환경, 페미니즘 등에 주목한 선구적인 업적이라 해 야 할 것이다.35)

국제정치학자로서 인문학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국제정세 관련 칼럼 등을 통해서 일반인들에게 익숙한 그는 그 후에도 많은 책들을 내놓았지만, 거기에 ‘지구정치학’이란 용어를 다시 쓰지는 않는 듯하다. 반면 ‘세계정치’는 계속해서 쓰고 있다. 그가 공편(共編)한복합세계정치론: 전략과 원리 그리고 새로운 질서(한울아카데미, 2012), 그의 세계정치 강의 압축판이라 할 수 있는사랑의 세계정치: 전쟁과 평화(한울아카데미, 2019) 등이 나름 물증이 된다고 하겠다. 세계정치 강의에서 그는 ‘복합세계정치학’ ‘꿈의 세계정치학’ 등에 대해서도 논의하고 있다. 

② 독일의 학자 바이체크(Ernst Ulrich von Weizsäcker), 그는 1989년 내놓은 저서에 Erdpolitik[Wi ssenschaftliche Buchgesellschaft]라는 제목을 붙였다. 제도적인 차원에서의 정치학자는 아니지만, 정치학자 보다 더 정치적, 정치학적인 감각을 지녔다고 볼 수도 있겠다. 아무튼 그 제목을 영어로 번역하자면 ‘Earth Politics’가 되며, 실제로 그렇게 번역되었다(1994). 그런데 그 책에서 그는 앞 으로 다가올 세기는 ‘환경의 세기’(Jahrhundert der Umwelt)가 될 것이라 예언했다. 경제활동을 떠받쳐주고 있는 자연자원의 수탈이 머지 않아 바닥을 드러낼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그는 환경독 재와 같은 강제적인 수단이 아니라 시장 메카니즘을 통한 ‘효율혁명’(Effizienzrevolution)을 제시 하고 있다. 전지구적인 차원에서의 환경 문제 제기와 해결책에 대한 사색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책은 한국어로도 번역되었는데, 흥미롭게도 그 제목을 ‘지구환경정치학’이라 붙였다. ) 우리말 번역자는 ‘환경’이란 단어를 넣어서, 그 초점을 분명하게 드러내고자 했다. 

정치인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Richard von Weizsacker, 1920~2015)의 조카이기도 한 그는 독일 의 범국민적 환경보호 운동의 주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구자원에 대한 광범위한 생태학적인 조 사와 분석을 바탕으로 전개된 것이다. 21세기 환경을 보존하기 위해 국민 모두가 환경의 파수꾼이 되어야 한다는 인간과 지구의 정치학이라 해도 좋겠다. 그에 힘입어 독일에서는 ‘지구정치학’이 환경보호와 보존 운동의 일환으로 사용되고 있다 한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측면이라 하겠다. ) ③ 영국과 미국,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공부하고 가르친 정치학자 드라이제크(John S. Dryz ek)는 1997년 옥스퍼드대학 출판부에서 The Politics Of The Earth: Environmental Discourses(Oxfor d Univ. Press, 1997)를 간행했다[2012년 제3판]. 직역하자면 ‘지구(의)정치학: 환경담론’ 정도가 될 것이다. 그 책 역시 우리말로 번역되었는데, 번역자는 ‘지구환경정치학 담론’이라는 제목을 붙였다.38) 다루고 있는 내용을 보면 주요한 환경 담론들의 기본 구조와 그 담론들의 역사, 논쟁점, 그리고 변화하는 모습들을 소개하고 있다. 아울러 그는 지구의 한계상황을 지적하면서 환경 문제 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논의를 전개해간다. 그리고는 지속가능성과 생태 근대화, 그리고 녹 색주의와 생태민주주의까지 언급하고 있다. 잘 정리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본다면 드라이체크의 책과 바이체크의 책 번역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고 하겠다. 모두 ‘지구정치학’으로 직역하기 보다는 ‘환경정치학’이라는 측면에 더 비중을 두었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그 시점에서 한국에서는 지구정치학은 아직은 낯설었다는 것, 그리고 그 이면 깊은 곳에는 정치의 본질이라기보다는 환경에 대한 담론 분석과 비판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고 하겠다.    

④ 최근에 소개된 프랑스 사회학자, 철학자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의 저작 역시 시사하는 바 크다고 하겠다.39) 이 책의 프랑스 원제는 Où atterrir?  직역하자면 ‘어디에 착륙할 것인가?’ 이다[그가 쓴 다른 책 제목은  Où suis-je?( ‘나는 어디에 있는가?’)] 짧지만 함축적이다. 그런데 영어 번역판의 경우 ‘Down to Earth: Politics in the New Climatic Regime’라는 제목을 붙였다.40) ‘the New Climatic Regime’이라는 구절이 시선을 끈다.41) 우리말 번역에서는 ‘지구와 충돌하지 않고 착륙하는 방법: 신기후체제의 정치’라는 제목을 붙였다.42) 역시 기후, 환경에 일차적인 초점 을 맞추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3) 이렇듯이 이미 정치학 분야와 인접 관련 분야에서 기후변화(온난화), 환경, 대기오염, 생태계 

 

맡아오면서 실용적인 생태학적 정책의 토대를 제공하고 있다. 그 연구소를 막강한 시민단체로 키워냈다. 

38) 존 S. 드라이제크, 지구환경정치학 담론, 정승진 옮김 서울: 에코리브르, 2005. 

39) 브뤼노 라투르, 지구와 충돌하지 않고 착륙하는 방법: 신기후체제의 정치, 박범순 옮김, 서울: 이음, 

2021. 

40) Bruno Latour, Down to Earth: Politics in the New Climatic Regime, Polity Press, 2018. 

41)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 역시 비슷한 인식을 보여준 바 있다. 앤서니 기든스, 기후변화의 정치학, 홍욱 희 옮김, 서울: 에코리브르, 2009. 원서 제목은 Politics of Climate Change. 

42) 그가 말하는 ‘신기후체제’(New Climatic Regime)는 기후 위기뿐만 아니라 점점 더 심화되는 불평등, 대 규모의 규제 완화, 악몽이 되어가는 세계화로 인해 지구에 각종 위기가 엄습하는 시대를 가리킨다. 따라 서 그에 걸맞는 정치적 도전이 필요하다고 한다. 세계나 국가를 향한 정치가 아니라 지구를 향하는 정치 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구는 더 이상 인간의 활동을 위해 무한한 자원을 공급하는 자원의 보고가 아니 다. 오히려 그 행성의 운명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행위자 중 하나라고 한다. “세계나 국가를 향한 정치 가 아니라 지구를 향하는 정치를 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필자 역시 동의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개인’까지 포함해서 논의하고자 했다.

등에 주목하면서 글로벌리제이션(Globalization), 환경정치(학), 생태정치(학) 등으로 범주화하려는 지 적인 노력이 이루어져 왔다. ) 그같은 선구적인 작업들에 경의를 표해야 할 것이다. ) 그럼에도 불 구하고 바람직한 미래를 위해서 비판적인 논평을 가해본다면 대부분의 논의들은 ‘the Politics of 

*******’(예컨대 Climate Change, Environment, Ecology, etc.)라는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이 글에서 나아가고자 하는 바를 굳이 표현해본다면 ‘the Politics of Politics’라 할 수도 있겠 다. 비유하자면 예술(의) 철학, 음악(의) 철학, 정치(의) 철학 등에 대응해서 마치 ‘철학(의) 철학’ 을 제기하려는 것과도 같다. 요컨대 정치의 본질적인 핵심과 관련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지구정 치학’이라는 용어는 같을지 모르지만 거기에 담기는 내용까지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19세기 이후 지금까지의 정치학, 국제정치, 세계정치가 ①‘개인’(Individual)과 ②‘국 가’(State)[특히 민족, 국민국가(Nation State)], 그리고 ③‘세계’(World)[국민국가들 사이의 관계] 를 토대로 구축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 말하는 지구정치학은 그동안 배제/소 외되었거나 주목받지 못했던 일차적으로 ‘그들 사이와 너머’에 주목하고자 한다. 아울러 그들 모두를 감싸 안는 전체(혹은 전지구적 규모)로서의 ‘지구(地球)’ 차원에서 ‘정치적인 것’들을, 나아가서는 ‘비정치적인 것’들까지 재음미해보려는 것이다. ‘비정치적인 것들이 갖는 정치성’ 까지 충분히 읽어가자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압축적으로 말하자면 한국에서는 ‘국제화 → 세계화 → 지구화’ 순으로 등장했

지만, 그리고 지구인문학을 말하는 이 시점에서도 강력 강력한 단위는 역시 ②‘국가’라 해야 할 것이다. 그 국가는 기원을 따져보자면 서구 유럽정치사에서 일정한 단계에서 등장한 ‘국민국가’ (Nation State, 國民國家)를 기준으로 삼고 있다. ) 그것은 ‘주권, 영토, 국민’을 요소로 하는 근 대국가이기도 했다. 서구 세계의 팽창과 더불어, 넓어진 근대세계시스템(the Modern World System) 안에서 국민국가는 ‘표준’이 되었으며 ), 그것은 비슷한 국민국가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관계, 즉 

‘국제관계,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 그러니까 inter-states, inter-nations(i nternatrional)을 가르키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근대국가의 성립에는 ‘폭력’(violence)이 수반되 는 것이 보통이었다. ) 또한 그와 관련된 국가들 사이의 행위는 Diplomacy로 불리기도 했다. 국제 사회에서 국가 멤버십을 획득하지 못할 경우, 아무리 훌륭한 정치체제를 가졌다 할지라도 강력한 무력을 앞세운 서구의 식민지, 반식민지가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니 출발점에서 이미 ‘서구 중 심주의’가 깔려 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전통적인 동아시아 사회에서 그런 국가, 국제사회 관념을 즉각적으로 이해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는 어려웠다. 세계관 자체가 달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19세기말 등장한 말들이 國家間交際 → 國際, 外國交際 → 外交 등이었다.49) 시기적으로 ‘국제’ 보다 늦게 등장한 ③‘세계’(世界, 

World)는 그런 국가들 전체(혹은 그 일부)를 가리키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50) 단적으로 제2차 대전 이후에 등장한 ‘제3세계’라는 말도 그렇다. 흔히 우리가 쓰는 말 중에 제1, 2차 세계대전(World War), 국제연맹(國際聯盟), 국제연합(國際聯合), 을 들 수 있겠다. 지금도 국제법, 세계기구 운운 하 지만 결국은 개별 국가로 환원되어버리는 것이 단적으로 그렇다. 이는 코로나 19, 펜데믹 상황에서 도 확인되고 있다. 단적으로 지구 전체를 커버하는 ‘지구의식’(Global Consciousness)이나 ‘지구 성’(Globality)이란 측면에서는 역시 미흡하다.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여기서 말하는 ‘지구’(地球, globe)는 그런 세계와는 조금 다른 뉘앙스를 풍긴다. 특히 방편으로 지구 바깥에서, 우주에서 바라보는 것을 통해서 하나의 ‘행성’(planet)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세계정치에서 지구 정치에로의 이행’이라 해도 좋겠다. 

    

그러면 ① ‘개인’(Individual)은 어떠한가. 흔히 간과하기 쉽지만 ‘개인’은 근대국가, 국민국 가의 출발점에 자리잡고 있다. 근대의 기원설화라 할 수 있는 ‘사회계약설’(Social Contract Theo ry)의 주체가 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개인은 (현실이 아니라) 이론적으로 근대국가의 정치질서 를 창출해낸 작위(作爲)의 주체라는 것, 요컨대 국가의 ‘주권’(主權, Sovereignty)은 그로부터 창 출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고 선언한 나는 이미 한 사람(一人), 자 신(己) 자신과는 완전히 다른 정치적 의미를 갖는다. 그 때의 개인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인간, 이 른바 ‘절대 개인’을 상정한다. 그들끼리 계약을 맺어 사회를, 국가를 만들어냈다는 식으로 이해 하는 것이다. 

따라서 ‘개인’이 정치사에서 갖는 의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51) 하지만 그와 동시에 어두운 부분도 분명히 따라붙고 있었다. 그것은 지극한 ‘개인 중심주의’, 그리고 ‘인간 중심주의’로 이어졌다. 인간의 ‘오만’이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 교회, 공동체로 부터 자유로운 존재로 상정된 것이다. 욕망의 긍정과 이기적인 인간, 유대를 모르는 인간, 전통과 

 

‘Ainu Mosir’(2020)도 재미있게 보았다. 

49) 그 후에 등장한 비슷한 구조를 갖는 말로는 interdisciplinary의 번역어로 자리 잡은 學際間을 들 수 있겠

다. 19세기말 식으로 말하자면 學問間交際를 줄인 말 정도가 될 것이다.

50) 물론 ‘世界’라는 한자어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불교에서 말하는 ‘三千大千世界’가 좋은 사례라 하겠 다.

51) 이에 대해서는 김석근, 「근대 한국의 ‘개인’ 개념 수용」, 하영선외, 근대한국의 사회과학 개념 형성사 , 서울: 창작과비평사, 2009; 김석근, 「근대적 ‘개인’의 탄생과 그 주변: 독립신문을 통해서 본 ‘주 체’와 ‘작위’의 문제」, 한국정치학회․한국정치평론학회 연례학술대회 발표논문, 2004년 12월 3일 참조. 

신성함을 잃어버린 인간, 인간 이외의 존재들은 자기 욕망을 실현시키기 위한 도구로 비쳐지기 시 작했던 것이다.   

이 글에서 구상하는 ‘지구정치학’은 종래의 근대 정치학, 국제정치학의 요소들[개인, 국가, 세

계]의 의미를 결코 부인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이 엮어온 그물망에서 벗어난 측면들에 주목하면서, 미시적으로는 ‘정치’ (따라서 인간) 개념의 근본적인 재검토를 지향하고자 한다. 동시에 거시적 으로는 ‘지구’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시야와 지평을 확보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근대 이 후 지금까지 군림해온 ‘인간중심주의’를 넘어서고자 한다. 

그 대안이 어떤 것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 현단계에서는 챠크라바르티(Dipesh Chakrabarty)가 말하는 ‘생명중심적(Zoecentric, non-anthropocentrism)’인 사고가 상당한 설득력을 지닌 것으로 여겨진다. ) 인간중심주의를 상대화시키는 Non-anthropocentr ism! 그리고 ‘전체로서의 지구’라는 차원에서는 역시 ‘지구의식’과 ‘지구성’을 갖춘 ‘지구 공동체’라는 인식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성스러운 공동체로서의 지구, 신앙 대상으로서의 지구 는 더 멀리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럴 경우 ‘인간’과 어떤 ‘비인간 존재’가 지구공동체의 구성원이 될 수 있을까. 지구중생(地球衆生), 과연 그들은 서로 평등한가, 그리고 그들 사이의 민주 주의는 가능할까. 가능하다면 어떻게 실현시킬 것인가. 앞으로 더 생각해가야 할 과제라 하겠다.   

      

Ⅳ. AD TERRA POLITIKA: ‘지구정치학’을 향하여

지금까지 논의해오는 과정에서 필자가 구상하는 ‘지구정치학’이 어떤 것인가, 그리고 무엇을 어떻게 지향하는가 하는 점은 대략 드러났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제 조금 더 분명하게 정리해가는 것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이 글에서 구상하는 ‘지구정치학’은, 적어도 한국에서의 지구정치학은 우선 ‘지구’라는 관 념, 다시 말해서 천원지방(天圓地方) 세계관을 넘어선 지구, 그리고 스스로 구르는[自轉] 지구라는 생각 위에서 비로소 가능한 것이라 하겠다. 따라서 16세기 이후, 그리고 하나의 방편으로 최한기의 지구전요를 준거 지점으로 삼는 것이 좋을 듯하다. 둘째 서구 유럽에 의해 주도된 근대세계, 그 리고 주요한 정치단위로서의 개인, 국가, 세계에 초점을 맞추는 근대적인 학문으로서의 정치학과 국제정치학의 의미와 성과를 결코 부인하지 않는다. 특히 국제정치학 분야의 경우 국가와 세계(국 가간 체계)로 포착되지 않는 새로운 현상들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셋째 글로벌라이 제이션과 더불어 지구 전체를 감싸 안으려는 지적인 시도, 그리고 우주 내지 태양계라는 시야에서 바라보는 하나의 ‘행성’(Planet)이라는 시각과 움직임에 충분히 공감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

서 Terra Sapiens[Wise Earth]를 지향하고자 하며, 그런 거시적인 틀 안에서의 Terra Politika[Earth Politics]라 할 수도 있겠다. 그와 더불어 지구인, 지구시민, 행성시민, 지구중생, 나아가서는 일체중 생 등의 개념이 성립하게 된다.    

때문에 우리가 지구(地球)라고 할 경우, 크게 세 가지 차원을 설정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Plane t, Globe, Earth. 논자에 따라서 지칭하는 바가 조금씩 다르게 나타나는 것은 어떤 차원에서 말하는 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실은 지구라는 용어는 그들 세 차원이 서로 긴밀하게 얽혀 있다는 것이 정확하지 않을까 한다. 하지만 논의를 위한 방편으로 갈라보는 것이 필요하다.   

(1) Planet 차원, 이는 지구를 바깥에서 바라보는 시선이라 해도 좋겠다. 우주 내지 태양계에 속 하는 하나의 행성으로 바라본다는 것. 해와 달, 수많은 별들과 대비되는 차원이다. 당연히 전지구 적 규모와 관점이 하나로 응집되어야 하겠지만, 아직은 미흡하기만 하다. 어느 별에선가 알 수 없 는 에일리언(Alien: 가공의 외계생명체)들이 지구를 쳐들어온다거나 하는 사태는, 아직까지는 닥쳐 오지 않았다. 혹시라도 그럴 경우, 태양계에서 지구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기구 혹은 존재가 있는

가. 과연 현재의 UN(United Nations)이나 국제기구, 국제법 등이 그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을까. 그것은 곧 ‘지구의식’(地球意識, Global Consciousness) ‘지구성’(地球性, Globality) 문제라 해도 좋겠다. 미지의 세계인 만큼 지적인 상상력이 필요한 부분이다. ) 요컨대 지구를 하나로 묶어낼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Global Governance가 요망된다고 하겠다.  

(2) Globe 차원, 이는 전지구적 규모, 다시 말해서 지구 전체를 감싸안는 것이다. 진정한 의미의 

Globalization을 하자는 것, 안으로 진정한 의미의 ‘지구성’(地球性, globality)을 확보해가는 것이 다. 그동안 소외/배제된 것들에 대한 섬세한 음미와 포섭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여러 가지 이유

로 주목받지 못한 지식(Knowledge), 정보(Information), 지혜(Wisdom)를 모으고 응집시켜갈 수 있을 때 비로소 Wise Earth[Terra Sapiens]가 가능해지지 않을까 한다. 정치학적인 관점에서 말해본다면 개인, 국가, 세계라는 근대 정치학의 주요 단위들의 ‘사이와 너머’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해본다면, 19세기 이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서구 중심주의’ ― 오 리엔탈리즘(Orientalism)은 그 뒷면이라 할 수 있겠다 ― 에서 벗어나 서구 이외의 지역에서 전해지 고 있는 지적인 유산과 자원에 대해서 열려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예컨대 최근에 활발하게 논의되 고 있는 ‘인류세’(Anthropocene) 논의를 듣다보면 문득 전통시대 동아시아 사유체계를 환기(喚起)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서구 유럽이 자신을 확장해서 세계의 ‘표 준’이 되면서 밀려나고 잊혀져온 동아시아, 이슬람권, 아프리카 등지의 오랫동안 축적된 지적인 사유와 세계관을 지구의 미래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열어가는 지적인 자원, 내지 참고자료로 삼아 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다음으로는 ‘인간 중심주의’에서 한 걸음 물러서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들, 즉 천지만물(天地萬物)을 한 번쯤은 상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인간들의 이기심과 욕망을 새삼 되돌아보아야 한 다는 것이다. 인간(Human Beings)은 생각하는 존재, 이성적인 인간이라는 근대 사회의 믿음은 그 이외의 나머지 생명체들(non-Human Beings)에 대해서 오로지 도구적인 존재, 다시 말해 인간을 위 해서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하게 만들었다고 하겠다. 그로 인해 동물, 식물, 사물을 어떻게 이용해 왔는지에 대해서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문제는 지구 공동체의 구성원, 그리고 그 구성원들 사이의 일체감 내지 공감대는 과연 어디까지 

가능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큰 문제는 잠시 제쳐두기로 하자. 하지만 바야흐로 지구라는 같은 행 성 안에서 구성원의 일부로 살아가는 생명체[‘지구중생’(地球衆生)]라는 사실, 때로는 놀라운 것 으로 밝혀지는 그들의 지혜[예컨대 개미, 벌 등]도 우리 인간이 적절하게 참조한다면 Wise Earth로 나아가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더 밀고 나가면 ‘일체중생’(一切衆生)[뭇삶들, 살아있는 모 든 생명체들]이란 생각에까지 이르게 되지 않을까 한다. ) 

(3) Earth 차원은 그야말로 종래 지구과학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거기서, 아니 더 정확하게는 거기서부터 문제가 생겼다. 이상 기후, 지구 온난화, 북극의 빙하가 녹아내리는 것, 해일 등, 우리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이른바 지구 위험시대가 온 것이다. EBS 다큐 프라임에서 방영한 「인류세」(2019) 를 한 번 보는 것만으로 문제의 심각성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닭들의 행성’ ‘플라스틱 화석’ 등은 실로 끔찍하기만 하다. 이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 덧붙여두고 싶은 것은 Heaven(하늘)에 대비되는 Earth(땅)이라는 측면이다. 풀어서 말한다면 하늘[천국]과 땅 혹은 이 세상[세속], 그리고 위에서 이 세상을 내려다 보는 하늘 [천국]의 존재를 되찾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과 자유, 그리고 계약이라는 사유가, 인간이 지구 에 존재한 이후 꾸준히 이어져온 Spirituality(靈性), Holyness(神聖), Dignity(莊嚴) 같은 숭고한 정신 적인 가치를 밀어내버렸다. ) 그 빈자리를 민주주의(democracy)가 차지하게 되었고, 마침내 20세기 의 신화(神話)가 되었다. 민주주의가 갖는 의미와 가치를 결코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때로는 일 종의 레토릭으로 지나치게 남발, 남용되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리기 어렵다. ) 

바야흐로 ‘정치’ 개념에 대해서 근본적인 전환을 담아내는 새로운 정치학, 지구정치학이 필요

한 시점이라 하겠다. 이미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정치학에서는 인간을 ‘Zoon Politikon’(정치적 동물, Political Animal)로 간주해왔다. 인간은 폴리스(Polis)를, 정치를 떠나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말 이기도 했다. 그 말 자체가 인간을 가리켰으며, 또한 인간이 아닌 존재와 구별해 주는 특징으로 여 겨졌다. 그렇다, 지금도 인간은 여전히 정치적 동물이다. 변함 없다. 하지만 동시에 인간은 또 ‘Te rra Zoon’[Terrestrial Animal]이기도 하다는 것을 덧붙여야 할 듯 하다. ‘지구[땅] 위에서 살아가 는 동물’이기도 하다는 것, 조금 더 부연하면 ‘지구의 운명을 두 어깨에 짊어지고 나아가야 하 는 동물’이기도 한 것이다. ) 진정한 의미의 지구정치학은, 그리고 지구정치학자는 종래의 국제정 치, 세계정치 연구 성과를 기꺼이 참조해가면서도 전지구적인 규모로서의 ‘지구’(地球) 차원에서 

‘정치적인 것’들을, 나아가서 ‘비정치적인 것들이 갖는 정치성’까지 섬세하게 읽어가야 할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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