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07

다카하시 신지 -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 心の發見 / 高橋信次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 교보문고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김해석 지음 | 해누리 | 2000년 03월 24일 출간





쪽수 366쪽
크기 B6 판형알림
이 책의 원서/번역서 心の發見 / 高橋信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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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붓다의 생애와 득도과정을 묘사한 책 <붓다>를 출간했던 저자가 인간이 태어나고 살다 죽는 이유를 논리있게 풀어쓴 책. 

영혼은 몸에서 떠난다, 운명은 선택되었다, 내 영혼의 주인이 있다, 마음 속에 우주가 있다는 7가지 내용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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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001. [이 책을 읽기 전에]
002. 다카하시 신지는 누구인가....(7)
003. [옮긴이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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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 내 영혼은 누구인가....(13)

005. [영혼은 몸에서 떠난다]
006. 나는 반드시 죽는다....(19)
007. 나는 매일 죽었다 깨어났다....(24)
008. 너는 두 개의 눈동자를 가졌구나....(32)
009. 마음 속의 악마....(45)

010. [운명은 선택되었다]
011. 영혼의 빛....(53)
012. 전생의 잔영은 남아 있다....(60)
013. 내 누이의 전생 이야기....(68)
014. 나의 수호 천사 모세....(78)
015. 사람의 영혼은 광자체다....(88)
016. 나는 붓다를 만났다....(96)
017. 내 운명은 전생에서 선택되었다....(112)

018. [수호 천사들이 곁에 산다]
019. 악령들이 노리고 있다....(123)
020. 여덟 마리의 공작새는 어디로 날아갔는가....(136)
021. 꽃의 요정과 대화....(145)
022. 마음을 다스리는 지혜....(153)
023. 예배나 예불이 신앙의 전부가 아니다....(161)
024. 스스로 구하는 자에게 주어진다....(167)
025.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법....(180)

026. [전생의 그림자를 지울 수 없다]
027. 사랑은 지상의 가장 밝은 빛이다....(195)
028. 사람은 수면중에 에너지를 공급받는다....(202)
029. 나는 저세상에서 계획되었다....(210)
030. 전 동경대학장 야나이하라의 전생은 베드로였다....(216)

031. [내 영혼의 주인이 있다]
032. 육체는 임시로 깃든 영혼의 숙소이다....(227)
033. 건드리지 않는 귀신은 설치지 않는다....(230)
034. 친구의 어깨에 붙은 악령....(242)
035. 인간은 거만해지면서 몰락한다....(253)
036. 세균 하나도 우주에 영향을 끼친다....(261)
037. 내 마음은 우주로 통한다....(275)

038. [마음 속에 우주가 있다]
039. 인간의 지혜는 본격 우주 시대를 열 것이다....(295)
040. 수면중에는 영혼이 육체를 떠난다....(304)
041. 전생을 비디오로 볼 날이 온다....(311)

042. [예수와 붓다가 우리를 사랑한다]
043. 기독교와 불교는 같은 영혼이다....(329)
044. 예수와 석가는 마음의 고향....(338)
045. 내 마음의 문은 어떻게 열 수 있는가....(348)
046. 인간은 모두 영적 능력을 갖게 될 날이 온다....(355)

047. [옮긴이 후기]
048. 사람은 60조 개의 유전자체로 이루어졌다....(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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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추천의 글

"그의 예언적 혜안은 독일 철학가 막스 웨버에 필적할 만큼 위력적이다."
-일본 주간 <아사이>-

"영적 능력을 철학이론으로 정착시킨 그의 진지한 노력을 높이 평가하며 그에 관한 학문적 탐구를 계속할 것이다."
-미국 스탄포드대학 부설심리연구소-

작품 설명

다카하시 신지의 본 저서는 
인간의 탄생과 존재의 이유에 대한 원초적인 질문을 
영적인 계시를 통해서 논리적으로 접근한 저서입니다. 
저자는 체험과 명상을 통해서 우리가 지금까지 깨닫지 못했던 질문들에 대한 명쾌한 답변과 곁론을 내려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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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rected from 心の發見




心の発見 神理篇 (心と人間シリーズ)
by 高橋信次 | Apr 17, 2017
5.0 out of 5 stars 2
Paperback Shinsho

本書は、これまての宗教の歪みを具体的に示し、人間の「心」の、正しい目的と使命について記したものである。 不自然な形式的宗教や、偶像を祈らせる宗教の誤りなどについて、信仰の真のあり方を説いた文章である。 

人間の、一人一人の心の中に存在している偉大な仏智、神性を詳述し、人類が物質至上主義の愚かさから目覚めることを期待してのものである。しかし、こうした期待の心を持つ者は、ひとり私のみではあるまい。 生命は、あの世とこの世を転生輪廻し続け、本体を中心に五人の分身から成り立ち、交互にこの現象界(現世)に魂の修行にくる。そして私達のその目的は、地球上にユートピアを築くことなのである。 …… 私たちの人生は、この世限りではない。あの世との間を、永遠に転生輪廻している生命の流転である。 そうした事実を、人々が本書によって知識として知り、その心が正しい法則に従っての行為となり、現在より、より高い次元の「調和ある社会」を築くためこの人生を実践してくれれば、私の願いはこれにすぎるものはない。 心の扉を開いていただきたい、人々の。私の念願はこれのみである。 安らぎと調和の心を悟り、人類が闘争と破壊の動物的本性を捨て、神仏の子としての自覚を持ち、より良い社会を築くための一助となるならば、本書の目的は果たせるのである。 本書は、「神理篇」「心と科学篇」の二篇としたその一篇である。 私はこの書を、私の「守護霊」「指導霊」の指示によって書いた。ともあれ、人間「縁生の舟」その肉体は今日も生きている。全人類が、神意に到達し、この地上にユートピアを完成させるのはいつのことであろうか。 本書「あとがき」より抜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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アマゾンカスタマー
5.0 out of 5 stars 感動の極まりです
Reviewed in Japan on November 4,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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最近に霊のこと自らの目で確かめて、神霊界、宇宙の真理について考え始めました。
しかし、自分の悟りは浅く、分からないことが多く、それに悩んでいました。
この時、神様からこの本に出会わせてくれて、自分がとっても知りたいことの答えを
見つかりました。
これほどの感動はなかったん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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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out of 5 stars 「心とは何か」がわかる本!
Reviewed in Japan on March 17,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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現代はよく「心の時代」といわれるが、一体心とはどのようなものなのか書いてある本に出会ったことがなかった。この本には心についてのすべてが書かれてある。北陸大学薬学部では講義用に使われており、大変すばらしい本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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シンガポール
5.0 out of 5 stars 「心とは何か」が分かる本
Reviewed in Japan on September 9,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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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心」という言葉はよく耳にするけれども、誰も「心」そのものについて説明した人はいない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この本を読めば、「心」とは何かがわかります。地球上唯一の本ではないでしょう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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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lor
5.0 out of 5 stars 悩みの原因について
Reviewed in Japan on February 7, 2021
この本もとても印象に残る本でした。特に後半がとても印象に残りました。
私達は、病気、貧乏、家庭の不調和なのど悩みに対して、その原因を追究することなく、
結果だけを見て、己の都合、己の幸福、己の利益だけを祈願している人々が何と多いことであろうか。
自分の心も行いも正すことなく、祈ることによって救われると思っていることは大間違いである。
想念と行為についてまず反省すること、これが先決なのである。
人間らしい生活への最善の努力こそ、私達の心に平和な安らぎを与えるのである。
すべて不幸の原因は己自信にあり、生活の不調和がもたらしたものであり、責任は他にはない。
その原因を追究し、その根本をとり去る、心の反省の中から前進があるのである。
正しい心のあり方に照らし、自分の心に偽りがないか、悪い考え方、悪い行為については、二度と
繰り返さないように自分自身の心に厳しく、他人には寛容の心で生活することが大切である。
実例とともに具体的な説明で、とてもよく理解でき良かったと思います。
(昭和54年43刷を読みま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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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piritualist
5.0 out of 5 stars 高橋氏曰く
Reviewed in Japan on September 22, 2007
「インドの時代の釈迦の教え、イスラエル時代のイエスの教えにもどり、偉大な心の尊厳を知り、調和のある社会を築くことが、必要なのである。

しかし仏教もキリスト教も、あまりにも人々の智と意によって改められすぎている。そのために、大自然を支配している意識、すなわち神仏は偶像化され、さらに光の天使達も偶像化され、拝む宗教のはんらんに侵された末法の世となってしまったのである。

キリストの教えも釈迦の教えも、その真髄が分からなくなってしまったため、多くの衆生は、神仏の名のもとに祈ることが宗教である、と考えるようになり、一握りの悪質な宗教者によって、食い荒らされる宗教となり果ててしまった。」

生活の中で、マンネリズムになってしまった信仰は、一日の形式的行事におちいっている。

「仏教とはむずかしいもので、その真髄をきわめることは困難である」と仏弟子であるはずの、僧侶達までが、このようなことをいっている時代なのである。

智的で、我流の解釈の成立している姿が、現代の仏教なのである。

人間の在り方を教えている仏教が、なぜ哲学にならねばならないのか。なぜきびしい戒律によって、一定律を作らねばならないのか。私には疑問である。

多くの衆生は、仏教から遠くなった。時の権力者や、貴族、僧侶達のための哲学と化した宗教は、すでに真の心のものではな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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心の発見―複雑系理論に基づく先端的意識理論と仏教教義の共通性
by 浅野孝雄 | Oct 11, 2014
4.7 out of 5 stars 6
Tankobon Hardcover







心の発見・現証篇 新装改訂版 (心と人間シリーズ)
by 高橋信次 | Jun 5, 2015

4.6 out of 5 stars 8

心の発見・現証篇 新装改訂版 (心と人間シリーズ) (Japanese)  June 5, 2015

高橋信次は一体どのように悟ったのか。幼少時代の体験、そしてその後、多くの方々を悪霊から救っていった日々。人間はなぜ生まれてくるのか。一人ひとりが生まれてきた使命を自覚して、自らにきびしく、他人に寛容な心で生き、片寄りのない生活をすることの必要を説く。

Product description
出版社からのコメント
高橋信次著作は、発刊されてから既に30年以上が過ぎておりますが、未だに多くの方から愛読され、増刷し続けております。この『心の発見』現証篇は、10万人以上の方に読まれ、多くの政治家、経営者にも影響を与え続けてきました。今も常に新しく、人間の生き方の基本ともなる高橋信次著作をぜひお読みいただければ幸いです。

著者について
幼少の頃から霊的体験を重ねるとともに、電子工学、物理、天文、医学などを学び、人間の心と肉体の関わりを解き明かした。さらに深い探求の結果、魂の転生林ねを発見するに至る。数々の著書や講演活動を通じて、人間の偉大性を説き、経営者の指導にもあたった。1976年6月、自らの予言通りの生涯を終え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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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duct Details
Publisher : 三宝出版; 新装改訂 第2 edition (June 5, 2015)
Publication date : June 5, 2015
Language : Japanese
Paperback Shinsho : 39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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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azon カスタマー
4.0 out of 5 stars 素晴らしい本です!
Reviewed in Japan on May 2,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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とても勉強になる本です。息子達にも是非読んでもらいたい一冊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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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azonカスタマー
4.0 out of 5 stars 新興宗教の中で、最も信頼できる高橋信次。
Reviewed in Japan on August 30, 2020
私が青春時代に夢中になった人が、高橋信次です。

最も、新興宗教の中で、高橋信次がシルバー・バーチなど
スピリチュアリズムを学んでいた、という話しもあるほど、
既存宗教にとらわれない、宗教で飯を食わない、
八正道の実践などを説いてくれたのが堅実な印象でした。

ただ、具体的にどう正しく禅に入るのか、など
正しいの定義が抽象的で、多くの信徒はそこで行き詰ったと
思います。

また、晩年は自らをエル・ランティだと、
本来の目指すべき八正道の実践とは関係ない
ことを言い出したのは少し残念に感じています。

大川隆法は、まさに高橋信次のパクリで、しかもお下品な内容での
霊言集でした。大川さんやその側近ライターが高橋信次を学んだ元信徒
だったのでしょう。

橋信次は素晴らしい本「心の原点」や「人間釈迦」など
を残してくれましたが、
大川さんや千乃裕子幸福の科学を真似するように
現代向けに進化したGLA、弟子の一人で元三宝出版社長の
堀田和成などの変な宗派も生まれてしまいました。(個人の感想)

比較的、高橋信次の意志を引き継いで、
正統派として頑張ったのが園頭広周さんでしたが、
段々、パワーが衰え、志半ばのまま逝かれました。

高橋信次の名著とともに、ホワイト・イーグルなどの
スピリチュアリズム本は勿論、
高橋信次の教えの具体性欠如を補完する意味でも、
また比較宗教の視点からも電子書籍の
「大科学者スウェーデンボルグの天国と地獄Q&A」
あわせて読まれることをおススメし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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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nuki
5.0 out of 5 stars 心静かに読む本です
Reviewed in Japan on September 21,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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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分の「理論武装」を解除して読むと理解出来るよう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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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정보 : http://blog.naver.com/likearoma/102544175
영성 철학 종교 신리

[서평]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A--) 
= [책소개] 마음의 발견  호향기
2010. 3. 24. 14:13
[책소개] 마음의 발견
저자 고교신차 = 다카하시 신지 | 역자 김해석 | 출판사 미리내
1992년 07월 01일 출간
286쪽 l A5 l ISBN-10 : 8970820051 l ISBN-13 : 978897082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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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정말... 미친 사람이 쓴 황당한 책이라고 해도 맞고, 
정말 훌륭한 영적 가르침을 담은 책이라고 해도 맞다.
이 책을 접한 사람마다 다르게 느낄 것이다.
중요한건 이 책을 어떻게 느끼는냐 보다는 개개인에게, 즉 이 책을 읽는 각자에게 이 책이 도움이 되느냐 이다. 하지만 뭐라 딱짤라 말하기는 어렵다.

과학을 숭배(?)하고 미신을 전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리 인생에 도움이 되는 좋은 가르침을 담았다 한들) 이책은 미친 사람이 쓴 책일 뿐이고, 이 책을 받아들일만한 준비가 된 사람들에게는 정말 좋은 영적 가르침을 담은 책일 것이다.
중요한건, 우리가 여태까지 살아온 과정과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지식이다. 
우리에겐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속에 잠재되고 각인된, 과학적 사실에 대해서만 믿어야 한다는 신념, 기존 선입관에 대한 집착, 교육과정이 우리에게 우리 마음속에 만들어 놓은 왜곡 통로가 존재한다.  즉, 외부 정보가 순수하게 들어오지 못하고, 왜곡되고 선입관으로 점철된 우리의 인식을 통해 들어오기 때문에, 그것과 관련없는 순수한(?)혹은 가치있는 정보들 조차도 엉뚱한 평가를 받아 거부되어지는 오류가 발생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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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혹은 우리가, 혹은 그 누군가가 이책을 읽으려면 한가지 알아두어야 할 점이 있다.

바로 열린 마음을 가지라는 것이 첫번째 이다. 
그리고 두번째로는, 이 책속에서 다카하시 신지가 말하는 영적 체험, 즉 과학적으로 도저히 설명할수 없는 경험들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꾸며낸 것인지에 대해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것은 핵심이 아니다.

 그것이 실제로 일어난 일인지 아니면 다카하시 신지 마음속에서 일어난 일인지 그것은 핵심이 아니다. 물론 다카하시 신지 본인에게는 그것이 진실이다. 그리고 그것이 그에게 진실이라면, 그것이 과학적 진실인지 아닌지 여부를 떠나서, 최소한, 우리에게는 인식적 진실이 될 수는 있다.
우리의 몸속과 우리의 머릿속에 끊임없이 주입된, 서양식 과학적 사고의 틀에 모든것을 끼워맞추어서, 거기서 탈락된 것들을 가치없는 것, 싸구려 진리, 망상, 등으로 이름표를 붙일 필요는 없다. 그가 말한 것이 과학적으로 검증 될 수 잇는 것인지 아닌지는 무의미하다. 그가 말한 사례나 영적체험은, 그가 추구하는 핵심에 가까이 가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만약 그가 말한 영적 사례에 대해, 진위여부나 과학적 진실 여부를 끊임없이 추궁한다면, 그것은 달을 가리키는 사람이 앞에 있는데, 그가 가리키고 있는 달을 우리도 같이 바라볼 생각은 하지 않고 그의 손가락만 처다보고 있는 것과 같다.

이 책은 번역이 두번 되었는데, 처음에 번역한 것은 원서에 매우 충실한 번역인것 같다. 두번째 번역은, 물론 번역자는 동일하지만, 구성과 편집, 의역이냐 직역 부분이 전혀 다르다. 미리내에서 92년 출간한 것은 원서(?)에 충실한 것임 반면, 해누리에서 출판한 것은 의역에 가깝다.
두개중 어느것이 더 나은지는 나도 모르겠다. 나는 두번째 (최근) 것만 읽었으니까. (해석은 두번째것이 더 부드러운것 같다. 같은 책을 번역한 것인데도 목차 등은 전혀 다르다.)

이 책이 (적어도 나에게) 훌륭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가 고민하는 삶에 대해 근원적인 해답을 유도하기 때문이다. 이 저자도 우리에게 무엇은 무엇이다 라고 단정해서 말하지는 않는다. 그도 그가 경험한 것과 깨달은 것들로 미루어 짐작하여 우리에게 길 안내를 할 뿐이다. 삶에 대한 근원적인 해답은 누구에게나 다르다. 100명이면 100가지가 존재할 것이다. 물론 비슷할수도 있고 전혀다를수도 있다.
중요한건, 모두들 자기에 꼭 맞은 답은 한가지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답은 하나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늘 변화할 수도 잇고 가까이 있을 수도 있고 평생 못찾을 수도 있다. 원래 유한한 시간속에 던저진 인간의 인생이라는게, 그러한 끝없는 의문과 질문에 대한 근원적인 대답을 찾는 과정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이 세상에, 모두에게 꼭 맞는 책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 처럼, 책으로 인해 얻을수 있는 것들도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책이란 인생을 혜처나가는 좋은 지도일 뿐이다. 지도를 보고 어디를 갈지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그것을 보는 개개인, 바로 우리, 바로 나이다. 황당한건, 그러한 지도 조차 참고하지 않고 자기가 어디를 가는지도 모르고 이리저리 왔다 갔다하면서 인생을 사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을 보면서 한가지 안타까웠던 것은, 두번째 번역본이 조기에 절판되었던 것이고, 또하나는, 첫번째 책에서 나왔던 원서에 충실한 다이어그램 등이 두번째 책에서는 전부 삭제되었다는 것이 었다. 세번째는, 두번째 번역인 해누리 번역 책에서는 왜 상관도 없는 서양의 고대 그림들을 중간 중간에 종종 삽입하였는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차라리 동양의 고대 그림들을 넣는데 더 좋았을것 같다.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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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신리(holiness)는 실천으로만 그 가치가 나타난다. 마음의 문을 열고 우리들의 생명은 끝없이 전생에서 현생으로 현생에서 후생으로 윤회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죽음은 결코 두려운 것이 아니라 다만 육체라는 껍질을 버리고 자신의 본성인 광자체로 되돌아 가는 것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150
영적현상으로 앞으로 더욱 많이 나타나서 바른 마음을 상실한 인간들에게 신리를 불어넣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은 이같은 영적 현상에 사로잡히지 말고 인간다운 올바른 인생을 걷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마음의 상태에 따라 육체도 변화가 온다는 사실에 의문을 품는 사람이 있다. 또한 자신의 마음이 조화되는 데 따라 운세가 나아진다고 생각하는사람도 드물다.
자신의 마음을 어떤 상태로 두느냐에 따라 신체적 변화가 온다는 것은, 곧 우리의 육신은 인생의행로의 나룻배에 지나지 않으며 따라서 사공이 젓는 노에 따라 육체(배)는 어느 방향으로도 갈 수있단느 사실을 잘 가르쳐 주고 있다. 영혼 즉 의식을 하나로 집중하는 것은 사물을 창조하는 능력과 통한다. 중략, 자신의 상념행위가 신리와 부함될 때 마음은 신의 빛으로 감싸인다.
마음을 역설해야 할 종교인이 마음을 상실하고 종파의 방석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는 현실은딱하기 그지 없다. 중략. 그런자들에게 인간의 마음을 설법할 자격이 잇을리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들 마음의 천국이야 말로 큰 신전이나 불전인데, 겉모양만 번드레한 대신전, 대불전의 건립은 재정의 낭비일 뿐이기 때문이다. 지구는 그 자체가 신의 몸체이며 신의 전당이다.이것을 알고 있는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살아 있는 동안 정신적, 육체적, 경제적인 세 가지 방면의 조화를 위한 상념과 행위의 실천을 결코 소홀히 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마음은 모든 것에 우선하며 지식과 의지의조화를 유지하는 받침대이다.

195
사랑은 지상의 가장 밝은 빛이다.
우리는 기껏해야 80-90년을 살 뿐이다. 중략 . 따라서 자기 자신이 깨달을 수 있는 수행장소는 이세상이 가장 훌륭한 환경이 아닐 수 없다. 중략. 사람은 단독으로 태어날 수도 없고 또 살아갈 수도없다. 반드시 부모가 있으며 형제 자매 부부 이웃 친구 선후배 등의 대인관계 속에서 살아야 한다. 
중략.. 사랑이야 말로 조화롭고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이며 이 지상의 밝은 빛이다. 중략. 이와 같이우리는 인간관계를 비롯하여 자연의 자원과의 관계가 항상 복수(단수의 반대말)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중략 오늘날 종교는 대부분 그저 모여서 기도하고 명상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많다. 경문이나 성경은 예배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경문속에 담긴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
특히 불교에서는 철학화된 어려운 경문을 읽는 것이 공식적인 행사처럼 되어버렸다. 그것은 큰 잘못이다. 그 속에 담긴 의미를 파악하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왜 모르고 있는 것일까경문이 고맙다는 생각이 들면 실천에 힘써야 하지 않는가? 죽은자를 위해서 불경을 드리면 극락으로 보내는 공덕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도 잘못이다. 왜냐하면 죽은 사람은 그 경문의 의미조차 모른다. 그게 어떻게 공덕이 된다는 말인가? 중략. 당신은, 당신이 모르는 말로 상대방에게 말을 건네오면, 그것을 이해하고 대화할수 있겠는가. 상대방이, 내가 모르는 말을 하면 나는 대답할 수가 없다.
이미 나는 앞에서 사람은 이세상에 살던 자기 모습과 그대로 저승에 간다고 말했다. 나는 죽으면내 생각과 말과 행위를 고스란히 그대로 가지고 저승으로 간다. 그런데 내가 죽은 후에 누가 나를위해서 불공을 드리면 내가 부처가 된다고 말하는 스님이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그 스님은 실제로 저승의 실상이 무엇인지 알고나 하는 말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으로서 오랍른 생활을 해서 자기 자신의 본성을 깨닫고 있는 영혼 외에는 모두 지옥에 떨어진다. 중략 신불에 대한 기도도 자기 욕심을 드러내는 기도가 아니라 감사의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일때 보다 확실한 신불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우리들이 걸어온 과걸르 지울 수 없듯이, 우리들의 상념은 하나도 남김없이 기록되고 보존된다는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하지만 부조화한 기록들도 반성을 통해서 수정되고 진화할 수 있는 것이므로 반성이 없는 인간은 불쌍하다.
반성은 신불이나 인류에게 준 그 자비 그자체다. 중략
인간은 살아있는 동안은 신이 될 수 없다. 신이 내 마음속에 있다는 것을 명심하지 않으면 안된다.
염(생각 념)이란 에너지이며, 사물을 만들어내고 이 지상의 모든 것의 원인이 된다. 염은 목적의식이므로 행위를 의미하며 남을 살리는 자비와 사랑의 염 이외의 것은 가르마(업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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心の発見 (神理篇) - 新書 (2000) 高橋 信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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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1)(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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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하나, 영혼은 몸에서 떠난다.

부모와 자녀 혹은 형제, 친구, 부부 혹은 이웃 등
이 세상에서 나와 인연을 갖게 된 모든 사람들은
나 스스로의 발원에 의해서 아주 오묘하고 정교함 계획 아래
이 세상에서 만나게 된 인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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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29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1)(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나는 반드시 죽는다]
나는 누구인가? 이 세상은 무엇이며 나는 왜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 것이며 죽은 후에 나는 어디로 가는 것일
까. 그리고 영혼이란 무엇인가.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그런 깊은 의문에 사로잡혀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세상에 그 의문보다 더 어려운 질문이 없고 그 질문만큼 풀리지 않는 대답도 이 세상에는 없다. 그것은 나
혼자만의 고민이 아니라 사람이 이 세상에 살기 시작하면서 가진 최초의 질문이자 지금까지도 풀리지 않고
있는 마지막 의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내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바로 그 의문이 나도 모르게 풀린 것이다. 지금부터 나는 내가 격
은 그 신비한 기적의 체험을 독자 여러분에게 생생하게 전해 드리겠다. 도대체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진
지하게 귀를 기울여 들어 주기 바란다. 왜냐하면 이 글을 읽는 순간 여러분의 삶은 놀랍게 변할 것이기 때문
이다.
내 이야기를 듣기 전에 여러분은 먼저 '나는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이 말을 인정하기 어렵
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그것보다 확실하고 절대적인 진리는 없기 때문이다. 이 지구상에 살
아 있는 사람 중에서 단 한 사람도 예외가 없을 만큼 죽음은 절대적이다. 그 말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
다. 살아 있는 사람이면 모두가 인정하는 절대적인 진리는 이 세상에 죽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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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29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1)(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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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그뿐인가. 이 세상에는 생명뿐만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것은 언젠가는 반드시 소멸한다. 붓다가 말한 생
자필멸(生者必滅)이 그 말이고 예수 역시 '너희는 흙에서 나왔으니 반드시 흙으로 돌아갈지니라'고 말한 것
도 바로 그 말이다.
그것이 소멸의 진리이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죽음을 전제 조건으로 태어났다. 나는 주위에서 의사로부터 불치병을 선고 받고 시한
부 인생을 사는 사람들을 수없이 많이 보았다. 그렇다면 다시 생각해 보자. 이세상은 병원에서 시한부 인생
을 선고 받은 사람만 죽는가? 아니다, 그들은 단지 그런 진단을 받았을 뿐이다. 시한부 인생을 그들만이 받
은 것은 아니다.
이제 우리는 '나는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죽은 후에는, 우리가 살았을 때 그토
록 애착과 욕심을 가졌던 것들이 정말 무의미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것도 우리는 쉽게 인정할 수 있
다. 그 말 또한 절대적인 진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엄청난 돈과 권력과 명예를 움켜쥔 사람도 죽을 때는 동
전 한 개도 못 가지고 가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그 말은 불교에서 말하는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다. 즉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죽음 앞에서 인간의 애착과 욕심처럼 허무한 것도 없다. 그럼 이제 독자 여러분께서는 두 가지 진
리를 인정했다. 하나는 '나는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과 '모든 욕심은 허망하다'는 사실이다.
사실 '어느 날 갑자기'라고 말했지만 나에게 깨달음이 온 것은 솔직하게 말하면 갑자기 온 것은 아니다. 사람
에게 30년이라는 세월은 짧은 시간이 아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질문인 '나는 왜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가, 그리고 죽은 후 에 내 영혼은 어디로 가는가'라는 의문에 관해서 30년이라는 세월 동안 끝없는 탐색
작업을 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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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 노력과 정성 탓으로 어느 날 온간 의혹이 마디들이 확연히 풀리는 기적적인 감동을 맛보게 되었던 것
이다. 나는 그 동안 왜 사람들이 짧은 일생 동안을 자아에 집착하고 물질적인 소유 욕망에 허덕이며 불평불만
과 고뇌 속에서 마음의 평화를 얻지 못하고 살다가 죽는가에 대해서 늘 의문을 품어왔다.
그리고 사람은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가, 현세의 삶은 무엇이며 사후의 세계는 또 무엇인가. 불교는 무엇이
고 기독교와 회교와 그 밖의 신흥 종교는 무엇인가 깊이 생각해 보았지만 그런 것들은 내 의문을 근본적으로
풀어 주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학문과 이론이 전혀 무의미했던 것은 아니었다. 나는 지식의 탐구를 통해서 사람은 왜 고뇌하는가,
고뇌의 원인과 결과는 무엇이며 그 해답은 무엇인가, 혹은 사람의 육체와 영혼의 관계는 무엇인가에 대해 끊
임없이 탐구했다.
그래서 결국은 과학과 종교의 진리는 궁극적으로 하나의 결론에 이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세상의 물리학
자와 천체 과학자 혹은 생명 공학자들은 연구를 깊이 하면 할수록 끝내는 이 세상을 이루고 있는 근원적인 문
제에 대한 의혹과 질문에 부딪치게 되며 놀랍게도 그 의문은 종교적인 근본 의문과 같다는 이치를 깨닫게 되
었다.
또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방법은 대자연 속에 삶의 비법이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특히 전쟁과 파괴
는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이 아니라 동물로 변질되어 가는 한 과정에 지나지 않으며 신이 창조한 사람들이 자
연계에 다른 동물들을 지배하고 살기 위해서는 바로 자연과 잘 조화를 이루어야만 살 수 있다는 근본 원칙도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어려운 말이 아니다. 쉽게 말해서 사람은 숨을 쉬어야 사는데 공기가 더러워지면 살 수가 없고, 물을
마셔야 사는데 물이 오염되면 살 수가 없다는 뜻이다. 자연을 파괴하면 천적의 균형과 조화가 깨져 큰 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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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초래하며 환경오염은 앞으로 인류의 최대 재앙이자 비극이 된다는 것은 기본 상식이다.
이제 환경 친화 정책이란, 다른 말이 아니라 사람은 자연계에서 살고 있으므로 공기와 물과 나무를 잘 가꾸어
야 한다는 바로 그 단순한 진리나 이치에 불과한 것이다. 그들을 거부하고 파괴할 때 사람은 함께 파괴된다.
그것은 아주 확실한 공식이다.
나의 그와 같은 의문에 대한 탐구와 접근은 30여 년 간 계속되었지만 종교에서는 거의 배운 것이 없었다. 단
지 자연 과학 속에 숨어 있는 신이 오묘한 이치가 있었을 뿐이었다. 내가 깨달았다는 뜻은 바로 신리(神理)
에 접근했다는 뜻이다. 여기서 신리란, 즉 신의 뜻, 신의 진리, 혹은 신의 계시를 말한다. 앞으로 이 글 속에
나오는 신리라는 단어는 그런 뜻으로 읽어 주기 바란다.
따라서 나는 무엇을 체험했으며 신의 진실은 무엇이며 사람이 그 이치를 조화시켜 나가는 방법을 깨닫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 제 3의 힘은 과연 무엇인가. 나는 이제부터 모든 결론을 뒤로 미루고 내가 그 신비한 기
적을 어떻게 체험했는지를 이야기해 보겠다. 나는 여기서 자서전을 들려주려는 것이 아니라, 내 깨달음을 여
러분에게 전하기 위해 필요한 간략한 내 출생과 경력을 소개하고자 한다.
[나는 매일 죽었다 깨어났다]
나는 산바람이 늘 세차게 불고 날씨가 영하로 얼어붙는 춥고 음습한 지역인 일본 신슈 사쿠고원의 아사마[浅
間]라 곳에서 태어났다. 우리 집 북쪽에는 아사마산(山)이 있고, 남쪽에는 야츠가다케, 동쪽에는 아라부내,
서쪽에는 알프스의 큰 산들이 마치 병풍처럼 둘러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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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역은 유럽과 알프스처럼 아름다운 산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알프스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사쿠고원은
언제나 아름답고 맑은 햇빛과 공기가 가득 찬 축복받은 땅이었다. 우리 집은 가난했지만 그처럼 아름답고 멋
진 주변 경관에 둘러싸여 있었다. 나는 바로 그곳 가난한 농가의 10남매 중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지금도 형편은 같지만 당시 우리 부모님은 열 명이나 되는 남매를 낳아 기르느라고 큰 고생을 하셨다. 그러
나 그런 어려운 환경에서도 어머니는 늘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해 주셨다.
"집은 가난하지만 마음까지 가난해서는 안 된다. 사람은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야 한다. 자기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남에게는 될 수 있는 대로 자비를 베풀어라"
어머니의 그 교훈은 어린 내 가슴에 깊이 새겨져 있다. 그밖에 어머니가 하신 말씀 중에는 '물방울은 돌을 뚫
는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 '한 치의 벌레지만 오 푼의 혼이 있다.' '남을 험담하거나 남의 눈에 눈
물을 흘리게 하면 내 눈에는 피눈물이 나는 법'이라고 속담을 인용해서 마음의 위대함과 소중함을 일깨워 주
셨다.
반면에 아버지는 묵묵히 일만 하시는 분이었다. 아버지는 '열 손가락은 다 소중하다'고 하시며 10남매를 똑
같이 키워주셨고, 오직 우리 남매들의 교육에만 헌신하시며 사치를 모르고 검약하게만 사시다가 75세의 나
이로 세상을 떠나셨다. 나는 나름대로 부모님께 효도를 다했다고 생각했지만 '효도를 더 하고 싶을 때 부모
는 이미 안 계신다' 지금도 아버지께 좀더 효도를 못 한 것이 후회스럽기만 하다.
부모와 자녀 혹은 형제, 자매, 친구, 부부 혹은 이웃 등 이 세상에서 나와 인연을 갖게 된 모든 사람들과는 단
순한 인연들이 아니다. 그들은 모두 나 스스로의 발원에 의해서 아주 오묘하고 정교한 계획 아래 이 세상에
서 만나게 된 인연들이다. 내가 그들과 이 세상에 함께 살게 된 것은 그저 아무 뜻도 없이 그저 우연히 만나서
살게 된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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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 사실은 신리나 이치를 깨닫게 되는 많은 사람들에 의해 실제로 증명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아사마
의 아름다운 땅에서 가난한 10남매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내 경우도 그저 우연히 거기서 태어난 것은 아니었
다. 태어나기 전에 나의 선택에 의한 것이었으며 모든 것은 천상계의 아주 오묘하고 정교한 계획 아래 이루어
졌던 것이다.
나는 지금도 단언한다.
내가 만일 풍요로운 집안에서 태어났다면 인생을 즐기는데 빠져서 삶에 대한 회의에 깊이 사로잡히지 않았
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그런 척박한 땅의 가난한 집 아들로 태어난 것은 훗날 내가 신리를 깨닫게 되는 결정
적인 계기기 되었다. 아마 그 무엇인지 모를 제3의 힘이 나로 하여금 사전에 아사마에 태어나도록 작용을 하
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가난하고 고통스러운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형제들과 비교하면 퍽 호강스러운 성장기를 보냈다는 생각
이 든다. 그러던 중 나는 10살 되던 해 가을 어느 날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삶고 죽음의 문턱에서 헤매
게 되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 해 9월 3일 밤 8시에 내 심장은 갑자기 멈추었다. 의식 불명의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때까지 나는 병이라는 것을 모르고 건강하게 살았다. 그런 내가 갑자기 누워 버렸고, 심장이 멎었으니 부모
님이 얼마나 놀랐겠는가.
온 가족이 놀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의사가 달려왔지만 내 병은 의학적으로 심장 마비에 의한 돌 연사였
다. 그러나 나는 정확이 3시간 만에 심장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나는 3시간 동안 죽어 있었던 불가사의
한 체험을 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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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에서는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모두 의아해 하면서 내가 깨어난 후에 안도의 숨을 돌렸지
만, 놀랍게도 그 다음 날 9월 4일 밤 8시가 되자 다시 나의 심장이 멎어 버리는 사태가 또 발생했다. 나는 첫
날처럼 다시 죽은 것이다. 그리고는 3시간 후에는 다시 깨어났다.
그 이후부터 똑같은 일이 매일 밤 8시면 반복되었다. 나는 매일 밤 8시에 죽었다가 11시에 깨어나는 남자가
된 것이다. 매일 죽었다가 살아나다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그러나 처음 한두 번은 나 역시 그런 돌발적인 사태에 대해 뭐가 어떻게 되었는지 기억조차 없었는데 그런 일
이 계속 반복되면서 나는 병의 진행 과정을 나 스스로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내게 일어난 그 놀라운 사건의 진행을 설명하겠다.
정확하게 저녁 8시가 되면 딸꾹질이 나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딸꾹질 때문에 숨을 들이킬 수가 없고 날숨[호
기]만 쉬게 된다. 비유를 들자면 마치 회전하던 차 엔진의 연료 공급이 막혀 돌지 않고 멈추는 상태와 흡사한
것이다. 따라서 불과 4, 5초 만에 심장이 박동이 정지되면서 육체적 고통은 사라져 버린다.
그때가 되면 부모님과 형제들은 내가 그대로 죽는 것으로 알고 야단법석을 치며 의사를 부르고 의사는 서둘
러 내 팔에 캠퍼 주사를 놓곤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나는 심장이 정지된 상태에서 내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
는 상황들을 나 스스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내 육체에서 빠져 나온 또 한 사람의 내가 지상에
서의 내 육신의 모습을 똑똑히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때 심장이 멈춘 채 누워 있는 나 자신의 모습
을 내가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육체 이탈 현상이었다.
어머니는 나를 끌어안고 울면서 내 귀에 대고 내 이름을 마구 외치고 있었고, 내 주위에 둘러 선 사람들은 모
두 슬픔에 싸여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머니, 난 죽은 것이 아니야. 살아 있어.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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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나를 보고 있다고.' 나는 어머니에게 계속 소리쳤지만 어머니와 주위 사람들에게는 내 소리가 들리지 않
는 것 같았다.
나는 반듯이 누워 있다. 입술은 포도 빛깔로 변해 있다. 얼굴은 창백해졌으며 손과 다리는 수양버들처럼 힘없
이 늘어져 있다. 나는 방 안의 사람들이 어쩔 줄 몰라 쩔쩔매고 있는 모습을 망연히 바라보면서 속수무책 그
렇게 있을 수밖에 없었다.
가족들도 의사도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고 내 코에 약 냄새가 나는 순간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
한다. 그런 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나는 다시 심장이 뛰기 시작하면서 어느새 내 몸 속에 들어가 있었다.
처음 그런 일이 발생했을 때는 3시간 정도였으나 그 후부터는 대략 15분에서 길게는 몇 시간 동안 심장이 멈
추는 가사(假死)상태가 계속되었다. 분명히 병은 병인데 의사도 불가사의한 일이어서 정확한 진단을 내리
지 못한 채 그 같은 육체와 영혼의 분리 현상은 정기적으로 이루어졌다.
내 육체와 연혼의 분리 현상이 일어나면서 소위 내가 목격한 또 하나의 자의식, 예를 들면 '내 안의 또 한 사
람의 나'는 몸에서 분리되어 나온 이후 정말 무한한 자유를 누렸다. 몸에서 분리된 나는 첫째, 시간과 공간의
구애를 받지 않았다. 나는 놀랍게도 죽은 친구를 만나보기도 했고 아름다운 꽃밭을 거닐기도 했다. 정말 꿈꾸
는 것처럼 믿을 수 없는 현상들이 전개되었다.
나는 지상의 어떤 작은 틈새라고 빠져나갈 수 있었고, 내 거동은 흡사 마술을 부리는 둔갑술처럼 자유 자재였
다. 그 느낌을 글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 결국 의사들도 내 병에 손을 들었다. 그 시간만 되면 심장
이 멈추었다가 일정한 시간이 되면 다시 제 모습으로 살아나는 나를 의사들도 어쩔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부모님은 좋다는 치료법을 다 써 보았다. 나리타(成田)산에 용한 침구사가 있다는 말을 들으신 아버지는 나
를 자전거에 태워 날마다 침을 맞게 해 주었다. 매일 통원 치료를 하고 침을 맞았기 때문에 내 머리는 침 자국
으로 울퉁불퉁 얽어져 그 상처 자국이 남아있다. 그뿐 아니다. 아버지는 신사(神社)를 1천여 곳 참배하면 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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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다는 말을 듣고 신사를 찾아 다니며 참배를 하셨다. 그때 나를 위해 동분서주하시던 부모님을 생각하면 내
불효를 지워 갚을 길이 없다.
[너는 두 개의 눈동자를 가졌구나]
그 무렵부터 나는 부모님의 신앙심에 영향을 받아 스스로 깊은 신앙심에 귀의해 있었다. 우리 마을 근처에는
백산신사(白山神社)라는 곳이 있다. 나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 저녁 두 차례씩 신사
에 참배를 다녔다. 신사에 가면 깨끗이 청소부터 하고 명상과 기도를 계속했다.
그 신사 참배는 내가 열 살 때부터 시작하여 열세 살까지 3년 동안 계속되었다. 사쿠고원의 그 지독한 겨울
추위에도 불구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신불에 대한 나의 신앙심은 어린 소년의 모든 영혼을 불태워 버릴 듯했
다. 앞으로 이 글에서 자주 나오는 신불이란 말은 절대자 혹은 신과 부처님 등 우리의 영혼을 주관하고 매개
하는 존재를 뜻하는 말로 이해하기 바란다.
그런 어느 날 내가 이상한 불치병에 걸려 시달리고 있을 때 나는 어머니와 함께 나리타산에 참배를 갔다. 그
때 검은 옷을 입고 만두 모양의 삿갓을 깊게 눌러 쓴 낯선 스님 한 분이 나를 보더니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렇
게 말했다.
"병 걱정은 하지 말아라. 곧 낫는다. 넌 두 개의 눈동자를 가졌구나. 열심히 공부하면 반드시 너 스스로 영험
스러운 힘을 지니게 될 것이다."
나와 어머니는 그 말을 듣고 그저 놀라기만 했을 뿐이었다. 물론 스님의 말은 괴로웠던 내 마음에 큰 위로가
되었다. 그 낯선 스님의 예언대로 내 병은 거의 반 년 만에 낫게 되었다. 나는 거의 6개월 동안 매일 죽었다가
깨어났으며 죽어 있는 동안에는 '또 하나의 나'를 목격해야 했으나 그 이후로는 그런 현상이 말끔히 사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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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말았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그러던 중에 지난번 나리타산에서 만났던 그 낯선 스님과 똑같은 옷차림
을 한 스님이 내 곁에 다가와 말을 건네주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냇물을 건너는 중이었다.
"넌 늘 혼자 신사 참배를 하더구나."
신사에서는 아무도 나를 본 사람이 없었는데 그 스님은 나를 아주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하면서 자기는 오
늘 밤 냇가에서 자게 되니까 저녁때까지 네가 알고 싶은 것을 가르쳐 주겠다고 했다. 스님은 내게 맛있는 과
자를 주었다.
냇가에는 잡초가 자라 있고, 풀에는 빨간 잠자리가 앉아 있었다. 논에서는 벼가 익어 가고 있었고, 논물이 물
꼬를 타고 졸졸 흘러내리는 소리가 마치 내 마음의 음향처럼 청량하게 들려 왔다. 스님은 그때 내게 여러 가
지 좋은 말씀을 해 주셨다.
"마음은 만물의 근본이다."
그 스님은 내게 그런 어려운 말도 해 주셨다. 나는 지금도 그분이 그때 해 준 말을 바로 어제 일처럼 기억해
낼 수가 있다. 그 이후부터 스님은 우리 집에 직접 찾아와서 늘 내 안부를 묻고 나를 보살피고 가셨다. 그 스
님뿐만 아니었다. 우리 집에는 이상하게 그런 스님들이 여기저기서 자주 찾아와서 내게 올바른 마음이란 무
엇인가에 관한 가르침을 한마디씩 해 주고 돌아가곤 했다.
마음이란 무엇인가. 마음이 무엇이기에 많은 스님들이 계속 마음에 관한 말씀을 해 주시는가? 그때 어린 마
음에도 나는 이상한 병에 시달릴 때 내가 실제로 목격했던 '내 안의 또 하나의 나'에 관한 의문이 심각하게 떠
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신불의 실체에 대한 깊은 사색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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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공부에는 별 취미가 없었고, 어쩌다가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신불에 관한 얘기가 화제에 오르면 생기가
돌아 신명 나게 끼어들었다. 나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산과 들을 마음껏 쏘다녔다. 6학년 1학기 때 담임은 다
나카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이 칠판에 이런 말을 써놓은 기억이 난다.
'무슨 일이든 하면 되고 안 하면 안 된다.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사람들이 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그 교훈을 듣는 순간 큰 감명을 받았다. 바로 다나카 선생님의 그 교훈은 내 인생에 큰 변화와 신념을 불
어 넣어 준 계기가 되었다. 무슨 일이든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된다. 그러나 하려는 이지가 없으면 되는 일이
없다. 사람들은 된다고 생각하는 일만 하려 들지 안 된다고 생각되는 일은 할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게 무슨
말인가. 마음이 어떤 일을 이루기도 하고 이루지 못하게도 한다.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가.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그때는 전쟁 중이었으므로 나는 강의록을 통해 공부하여 목표했던 군사 학교에 입학
했다. 나는 처음으로 군에서 집단생활을 경험했다. 그때 나는 여전히 신리에 접근하는 공부를 중단하지 않았
기 때문에 그런 집단생활에서, 사상에 바탕을 둔 교육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 아는 말이지만 군인들의 사상 교육이란 무엇인가. 그것에는 개인이란 없다. 군인이 되는 순간 개인은 사라
진다. 거기서는 역사의 옳고 그름도 없다. 모든 것을 통째로 인정하고 암기하는 일뿐이다. 마음의 진리를 그
런 식으로 깨달을 수 없다. 군사 학교는 육체와 의지의 단련이 목적이고 화학, 물리, 지질학 등 기초 학문에
관한 것이 교육의 전부였다. 나는 이미 현미경으로나 볼 수 있는 극미(極微)의 세계와 우주 같은 극대(極大)
의 세계가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지에 관한 깊은 사색에 빠져들기 시작할 때였다. 말하자면 세균과 우주가 어
떤 관계를 가졌나 하는 문제이다.
그러나 전쟁은 점차 심해졌고, 내 주위의 많은 친구들이 전쟁터에서 덧없이 죽어 갔다. 나는 친구의 죽음을
통해서 삶과 생명의 허무를 뼈저리게 체험했다. 순수한 젊은이들이 군에서 계속 직속상관의 명령 한 마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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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기로 죽어 간다. 도대체 전쟁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서로를 잘 죽이기 위한 살상 무기를 만들어 서로 죽
이며 이세상의 존재 자체를 파멸로 몰고 있다. 누구를 위해 그리고 무엇을 위해 그처럼 비인간적인 참혹한 일
들이 저질러지고 있단 말인가.
나의 삶과 인생에 대한 회의는 전쟁을 통해서 더욱 깊어져 갔고, 그 대답을 풀 수 없는 의문은 더 커져만 갔
다. 마침내 전쟁이 끝나고, 나는 전쟁터에서 몇 번의 죽음의 고비를 넘긴 끝에 제대하여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고향은 내게 깊은 위로가 되어 주었다.
고향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전쟁터와 군대 생활과는 아주 딴 세상이었다. 하지만 나는 언제까지나 고향의 정
취에 빠져 한가하게 살 수 없었다. 나는 두 달 동안 부모님과 함께 지낸 후에 짐을 챙겨 들고 도쿄로 떠났다.
도쿄에는 형님이 살고 있었다. 나는 형 집에서 물리 화학 공부에 심취하기 시작했다.
이제 아주 미세한 세포의 세계와 광활한 우주 같은 극대의 세계가 서로 어떤 관련이 있으며 우리가 사는 인생
과 그것들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가. 내 관심은 그쪽을 향해 비약적인 향상을 이루기 시작했다. 또 한편으
로는 먹고 살기 위해서 돈을 벌어야 했으므로 나는 전기 공학을 배웠다.
나는 차츰 아주 극미의 세계 집단이 극대의 세계를 형성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면서 이 세상의 물질세계가 어
떤 구도로 짜여져 있는가를 개략적으로 파악하게 되었다. 그렇다. 내가 경험했던 내 몸 속에 숨어 있는 또 하
나의 나를 찾기 위해서 나는 우리 몸의 세포 구성과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여러 기관의 구조를 연구해야 했
다. 영혼이 깃든 인체의 신비를 모르고 어떻게 영혼을 탐색할 수가 있단 말인가.
전쟁이 끝난 후에는 모두가 가난해서 먹고 살기가 힘들었다. 나는 시장에서 감자를 팔면서 공부를 계속했다.
내 친구 사토(佐藤)가 라디오 조립하는 일을 도와주었기 때문에 나는 고장 난 라디오를 수리하면서 돈을 벌
었다. 그래서 조그만 전자 제품 수리 공장을 차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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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내게는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독자들은 영감이라는 말을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때부터 영
감이 강해져 마치 신들린 사람처럼 예언 능력이 생기기 시작했다. 흔히 말하는 무당처럼 누군가가 예언을 불
러 주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느끼는 감각에 의해서 나는 다른 사람의 미래 운명을 감지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친한 친구와 장래의 일에 대해 얘기를 하게 되면 놀랍게도 백지 위에 그 친구의 미래 모습이 확실
히 떠오르는 것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 만난 스님의 예언대로 나는 영험스러운 힘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참
으로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세상을 깨닫는 일에 더욱 몰두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무엇으로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
가. 모든 물질에는 에너지가 있다. 또 에너지에는 질량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사람의
몸 역시 물질, 즉 유기물이므로 육체와 의식의 관계도 물질과 에너지의 관계처럼 어떤 관계를 갖고 있을 것이
다.
나의 영감에 의한 예언이 너무 뛰어났으므로 그 같은 영감이 존재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은 더욱 커졌다. 나
는 전기와 자석의 상호 작용과 자기 유도 작용이 왜 일어나는가를 연구했다. 전문 용어지만 트랜스의 1차 쪽
과 2차 쪽의 관계 등 전기의 변화 같은 것 말이다. 전기에 관해서는 그저 수학적으로 푸는 것만으로는 의문
이 풀리지 않는다.
전기가 가진 법칙에 따라 각 회로마다 일어나는 결과는 알 수 있지만 눈에 보이는 원리만으로는 전기 그 자체
의 존재와 근본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당연히 의문은 더욱 커져 갔다. 나는 전기에 관한 직업을 갖고 있
고, 전기 공학을 공부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원리에 대한 근원적인 의문이 내가 알고자 하는 육체와 정신의
상호 관계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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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자. 전기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고 있고, 우리 손에 닿으면 감전된다. 그러나 전기 그
자체는 전도체에 의해서만 그 존재가 드러난다. 마치 우리의 영혼은 분명 존재하지만 육체를 통해서만 드러
나는 이치와 같은 것이다.
나는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생명의 현상에 관한 탐구를 멈추지 않았다. 종교는 생명의 현상을 다루지 않
는다. 종교 서적에서는 그런 것들을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나는 자연 과학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연구를 해야 했다.
이따금 신문이나 텔레비젼 등에서는 불가사의한 기적적인 일들을 마치 쇼처럼 보여 주는 일들이 있지만, 왜
그것이 신비하고 기적적이며 그 원인과 결과는 무엇 때문인가 해명해 보려는 사람은 별로 없다. 놀랍고 신비
스러운 일은 그저 기적으로만 불릴 뿐이다.
그렇다면 나는 내가 가진 영적인 예언 능력의 출처나 이유를 알고 있는가? 그렇게 물으면 할 말이 없다. 그렇
다면 종교적인 환경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신리를 알고 있을까? 예를 들어 스님들이나 카톨릭 신부들 혹
은 개신교 목사나 종교 관계 전문가들은 신리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나는 의문을 품고 나와 친분이 있는 미
타[三田]스님을 만나본 적이 있었다. 그는 내게 단적으로 말했다.
"전생과 윤회에 관해서는 책에 언급되어 있지만 그것은 인간의 번뇌를 없애 주기 위한 방편에 불과하다. 사
람은 죽으면 그것으로 끝장이다."
그것이 미타 스님이 내게 들려 준 말이었다.
호슈에 있는 한 신관은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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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신국(神國)이며 야오요로즈(八百萬=팔백만)의 신들이 일본을 지켜 주고 있다. 석가와 예수와 모
세도 일본에 찾아왔다는 기록이 고문헌에 있다."
그는 그 일이 사실인 것처럼 말했다. 그러나 미타 스님은 단골 신도들만을 상대하는 종교 사업가이며 독경을
해주는 장사꾼이었으며 그 일을 당연히 자기 직업이라고 여기는 사람이었다. 그는 영적인 현상에 관해서도
'그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다. 현대의 과학 시대에 그런 엉터리 같은 일은 일어 날 수 없다'고 단언하면서 자
기야말로 과학적인 문명인을 자처하고 있었다.
그는 불교의 근본 원리에 관해서도 '현대에는 통하지 않는 허황한 꿈'이라고 일소에 부치던 일을 나는 기억한
다.
호슈에서 만난 신관도 이 세상에서 일본만이 유일한 신국이라고 믿고 있으며 일본의 중심이 되어 세계를 지
배하는 듯이 착각을 하면서, 내게 영적인 현상이 일어난다고 말하자 '네 뇌 세포가 이상해졌다'고만 말할 뿐
이었다. 그들은 내게 도움이 못 되었다. 더구나 그 신관 부부는 불화로 별거하고 있는 등 자신의 가정조차 원
만하게 이끌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도대체 종교인이 자기의 가정조차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의심스러웠다. 신은 전지전능하
며 자비와 사랑의 주체이다. 그런데 그 신관은 놀라운 국수주의자였으며 일본 이외에는 신은 존재하지 않는
다고 단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런 사람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는 자신의 보호 본능과 사상의 틀에 발목이 잡혀 있을 뿐이었다. 의문
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로 처음 만난 종교인에 대한 나의 실망은 아주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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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29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1)(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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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 4월에는 친구의 안내로 나스[那須]의 종교 단체를 찾았다. 봄이었지만 나스고지(高地)의 아침은 무
척 추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무의 여린 입들은 싹이 터서 싱그러운 이슬을 머금고 있었고, 산에서는 뻐꾸
기 소리도 들렀다.
나는 친구와 함께 한적한 산길을 걸어 산중턱에 있는 교단 본부의 붉은 문을 통과했다. 얼굴에 닿는 여린 나
뭇잎에 햇빛이 반짝였다. 그것은 마치 신의 빛처럼 느껴졌다. 마음은 편안했다. 본부에 명함을 전달했더니 안
내자가 나와 나를 우리를 따뜻하게 환대했다. 본당에는 용을 섬기는 신의 그림이 모셔져 있었다. 마침 축제일
이어선지 마을에서 많은 신자들이 와 있었다. 나는 거시서도 크게 실망하고 말았다. 교단 본부는 시주금에만
관심이 있었다. 교조의 눈빛과 마음에는 돈밖에 없었다. 각 지방의 지부 책임자들이 시주금을 보고할 때마다
액수의 차이에 따라 교조의 안색의 수시로 달라지고 있었다.
"시주는 감사의 표시입니다. 여러분이 시주금을 바치는 것은 수익을 올리기 위해섭니다. 적게 바치면 신심
이 부족한 것으로 여겨 용신님이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교조는 시주가 적자 크게 화를 내고 있었다. 꾸중을 들으면서도 신도들은 되레 고맙다고 눈물을 흘리며, 그것
을 자비로운 책망으로 듣고 있었다. 나는 교조의 옆에 앉아 있는 것이 부끄러웠다. 그때 친구가 말했다.
"살아 있는 신은 늘 보시 때문에 흥분한단다."
아름다운 햇살과 맑은 하늘과 빼어난 경치와는 달리 교조의 아귀 같은 행동에 나는 기가 막혔다. 그 체험이
고작 2박 3일간 친구의 안내로 이루어진 교단 견학이었다. 그런 것이 과연 종교인가? 아침 6시부터 종교 행
사가 시작된다. 하지만 내게는 독경 소리, 합창 소리, 북소리가 이상한 괴물에 홀린 비애의 외침으로 들렸다.
전당 안에는 등이 희고 배가 분홍빛인 큰 뱀과 검은 뱀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그것은 내 영적인 시각으로 확
실하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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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용을 섬기는 곳입니다."
교조가 뽐내며 말했지만 내 눈에는, 흉칙한 뱀들이 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본전 옆의 사당에는 이나리대명신
을 모시고 있었다. 그곳을 보니 흰 여우, 다갈색 여우, 큰 여우, 새끼여우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다른 사람
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내 눈에는 보였다. 신도들은 모두 그런 동물들의 영적인 기운에 빙의(憑依), 즉
혼이 엉켜붙어 있었다.
왜 인간이 짐승의 혼령을 섬기는가.
나는 동물을 신으로 믿는 자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은 짐승의 혼을 섬기기 때문에 물질과 돈에 집착하
여 약육강식의 처절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무엇이 진리인지 모르고 헤매는 사람들은 동물과 같은 종류가
되었기 때문에 자기 판단도 없는 불쌍한 노예가 되어 있었다.
종교가 없던 내 눈에 비친, 광적이고 맹목적인 사람들을 보자 그저 기가 막힐 뿐이었다. 거기에 창가학회(創
價學會)라는 젊은 신도 회원들이 섞여서 신도들을 크게 괴롭히고 있었다. 하지만 짐승의 혼에게 기도를 드
리는 맹렬한 신도들에게는 젊은 학회 사람들과 논쟁을 벌일 능력이 없었다. 나는 그 교단을 견학하고 난 후
에, 신령과 하나가 된 부처님의 이치를 깨닫게 된 것만으로 마음의 위안을 삼아야 했다. 하지만 그 교단의 신
도들로부터는 아편 같은 공포를 느꼈을 뿐이었다.
[마음속의 악마]
나는 약혼녀에게 내가 48세까지만 살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했다. 그리고 2년 후인 3월에는 내 사업에 큰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모든 일상사가 순조로웠던 나는 내가 예언한 바로 그 해에 부도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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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고통을 겪게 되었다.
하지만 거래처의 모 회사 사장이 도움을 주어 나는 약혼녀와 결혼식을 올릴 수 있었고, H은행의 도움으로 자
금을 대출받아 사업도 햇빛을 보게 되었다. 실패의 원인은 경영 미숙에 있었다. 아내는 내가 말하는 신불에
관해서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나는 30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신불을 생각했다.
나는 꾸준히 또 다른 나를 찾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다른 사람들처럼 맹목적이거나 광적인 것은 아니
었다. 항상 건실하게 사는 가운데 부처님에 몰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무렵 나의 자형이 몸이 약해서 누님
은 신불에게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자형은 신장 결핵으로 소화(昭和)의과대학에서 큰 수술을 받고 콩팥 하
나를 제거하고 이공 방광으로 목숨을 건졌다. 그 때문에 누님 부부는 창가학회의 니치렌정종[日蓮正宗]의
가호를 받았다고 생각했는지 차츰 광신도가 되는 듯했다.
그들은 처음에는 교리를 공부하면서 나쁜 마음이 없었으므로 올바른 신앙생활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마음의 평안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믿음이 점차 복을 비는 신앙으로 기울면서 광적인 신앙으로 바뀌었
고, 그와 함께 칼날 같고 아수라 같은 포교를 시작했으며 그로 인해 우리 형제들은 모두 신자가 되어 그쪽 교
리만 공부하게 되었다.
그러나 몇몇 형제는 광신도가 되지 않고 불교에 뜻을 두어 여간 다행이 아니었다. 물론 많은 신도들이 우리
집에도 몰려와 재앙을 쫓아내는 축귀 행사를 벌이곤 했다. 그들은 겉으로는 불교 철학을 내세우며 어려운 철
학 용어를 구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제목을 내걸고 투쟁하거나 만다라(曼陀羅)를 대상으로 독경을 올
리는 그런 신앙적 행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들은 신불이 우리에게 벌을 내린다고 말하여 그 벌에 대한 공포를 느끼도록 가르치고 있다. 그런 모습을 보
면 사람이 얼마나 불쌍하고 어리석은지 알 수 있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신앙이 없는 나 같은 사람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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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히 살고 있는데 신앙을 가진 사람이 오히려 불안하게 살고 있으니 그게 모순 아닌가.
그런 광신적이고 전투적인 종교 지도자들 중에는 내가 잘 아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만다라 신앙을 위하는
일이면 가정도 파괴하는 것을 서슴지 않는다. 그들은 '석가모니는 더 이상 인간을 구제할 수 없다'고 외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미시세존 종삼매 안상이기 고사리불[彌時世尊 從三昧 安祥而起 告舍利佛'이
라는 경문을 외고 있다. 세존이란 누구인가. 니치렌[日蓮]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왜 사리부트라[舍利佛]가
등장한단 말인가. 니치렌이 이 경문에 나오는 세존이라면 적어도 그의 제자인 여섯 스님의 이름이 나와야 한
다.
틀림없이 세존이란 고다마 싯다르타 석가모니불을 가리키는 말이며 부처는 수제가 샤리부트라에게 법의 신
리를 설법하고 있다. 니치렌은 부처님의 제자지 세존은 아니었다. 그는 원래 불교 전도의 사명을 띠고 일본
에 태어난 것이다. 지식과 의지로만 배운 것이지 결코 불법에서 말하는 깨달음은 아닌 것이다. 그것은 또한
신리가 아니다. 더구나 제목 투쟁은 불자가 취할 태도가 아니며 자기 종파를 보존하겠다는 에고이즘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불성을 망각한 광신도만이 하는 짓이다.
많은 신도들이 마음이 아수라계로 통하고 있기 때문에 마음의 평안이 있을 수 없다. 그것은 집단에 의지한 자
기도취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깨달음이란 그런 것이 아니다. 그런 지도자들은 제 손으로 뿌린 씨앗의 결과
를 스스로 거두어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될 날이 있을 것이다.
"석가의 불법은 힘을 잃었으며 천태(天台)의 법화경도 현대 사회에서는 인간을 구제할 수 없다."
그들은 그 경문만 빌려 쓰고 있다. 이만저만한 모순이 아니다. 철학적으로 바뀐 불법으로는 자신을 알기가 몹
시 어렵다. 지장보살은 강제적인 영혼의 구제로 불법을 설파하는 짓은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투쟁과 파괴의
상념 행위는 보살의 마음과는 거리가 먼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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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시에 나는 촛불을 켜놓고 마음을 조화시키며 하루를 감사하고 반성하며 선정에 들어갔다. 바로 그때 2센
티미터 쯤 되던 촛불의 불꽃이 세 배 가까이 굵고 커지더니 금세 22센티미터 정도나 커졌다. 실내 온도는 섭
씨 21도, 물론 바람도 불지 않았다.
혹시 바람이 불었다 해도 불꽃이 열 배 이상으로 커지는 일은 과학으로 설명할 수가 없다. 나는 촛불을 바라
보았다. 불꽃은 끝이 두 갈래로 나뉘어졌고, 각 갈래의 끝에서 다시 네 갈래로 갈라지면서 차츰 연꽃 모양이
되었다. 그리고 15분 후에 불꽃은 연실(蓮實) 그대로의 모습으로 변했다.
그날 밤 참선 정진에 동참했던 가족과 종업원들은 모두 어안이 벙벙해서 그 모양을 바라본 채 입을 다물지 못
했다. 이윽고 내 앞에 육체적 조상이라고 자처하는 14대 전 조상님이 한 분 나타났다. 참으로 신기한 현상이
었다. 내가 태어난 사쿠지방은 역사적으로 전국 시대에는 가이[甲裵]에서 세력을 잡은 다케다파의 지배하
에 있었다. 그는 그 당시의 내 조상이라고 하면서 자신은 천석평이라는 숲속에서 전사했다고 말했다. 묘지를
파 보면 알 것이라는 증거까지 제시하면서 말했다.
"나는 네 직계 선조 다케노죠 한구로 도모유키다. 지금 묘지에는 나와 내 아들의 목이 묻혀 있다. 아마 갑옷이
며 칼은 아주 녹슬었을 것이다. 지금 나는 네 선조로서 이 말을 할 수 있게 된 것이 아주 기쁘다."
나는 그분의 말을 공손하게 듣고만 있었다. 그 후 내가 그 말을 사쿠지방 사람들에게 말했더니 천석평 숲속
의 묘지를 파 보았다. 그곳에는 그분이 말대로 두 개의 목과 녹슨 쇠붙이가 나와서 사실임이 증명되었다.
그때부터 영혼이 아닌 육체적 조상에 관한 연구도 구체적으로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했다. 그분은 예산 가마
쿠라 시대의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賴朝]와 기소 요시나가[本會義仲]의 관계며 요시츠네[義經]와의 전
쟁 이야기 등을 상세하게 들려주었다. 그 사건을 통해 그분 육체 조상은 이 지구상에 잘 적응된 육체로서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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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님이 보존한 것이며 '영혼이 타고 부리는 배[舟]'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후 나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빛을
넣고 마음을 조화시켜 주었다. 그러자 그들에게는 하나씩 하나씩 영적인 현상이 일어났다.
둘,
운명은 선택되었다.
여러분의 눈에는 안 보이지만 나는 사람의 후광을 확실히 볼 수 있다.
그 빛은 보라빛, 회색, 흰색 등 마음의 조화도에 따라
여러 단계의 색깔로 나누어져 있다.
빛은 입자가 되어 사람의 몸속에 들어간다.
[영혼의 빛]
빛이란 마음이 잘 조화되면서 몸에서 나오는 후광이다. 사람이 육안으로 볼 수 있고, 어떤 사람은 마음의 눈
으로 볼 수 있다. 흔히 불상이나 예수의 고상 머리 위에 나타나는 빛을 말한다.
그 빛은 사람의 마음속이 얼마나 조화가 잘 되었느냐에 따라 다르다. 부처를 깨닫고 바른 마음으로 사는 사람
은 조화가 잘 되어 몸이 황금빛에 감싸인다. 그러나 항상 남을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불평하고 화를
잘 내는 사람의 몸에는 늘 어두운 빛이 감싸인다.
여러분의 눈에는 그것이 안 보이지만 나는 사람을 보면 후광을 확실히 볼 수가 있다. 그 빛은 보라빛 오로라,
회색 오로라, 백색 오로라 등 마음의 조화도에 따라 여러 단계의 색깔로 나뉘어져 있다. 빛은 입자가 되어 사
람의 몸 속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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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의된, 즉 나쁜 혼에 사로잡혀 조화가 이루지 못한 악령은 황금색 빛에 의해서 퇴치된다. 따라서 사람에게
빛을 넣어 주는 사람은 마음이 잘 조화되어 있을수록 상대방을 보다 강력한 빛 속에 싸이게 할 수가 있는 것
이다.
이미 마음의 조화를 이루어 살고 있는 사람에게 빛을 넣어 주면 그 사람을 보호하는 수호 천사는 그의 과거
세상을 말할 수 있게 한다. 심령을 연구하는 지하라 씨는 영매나 무당에게도 없는 뛰어난 영적인 빛이 내게
나타난 것을 보고 크게 놀랐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그런 영적 현상이 중요한 게 아니라 각자의 올바른 마음가
짐이 소중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마침내 나는 그 동안 끈질기게 탐구해 온 '또 하나의 나'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나에게 그 단계
의 능력이 왔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앞에서 말한 것처럼 빛을 넣어 줌으로써 나쁜 혼
에 사로잡힌 혼들을 쫓아내는 영적 현상을 보여 주었다.
그런데 그런 일은 내가 잘 나서 갖게 된 힘이 아니라 이세상에는 없는 내 능력 밖의 세계, 그러니까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차원의 세상에서 주어지는 힘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 무렵 나의 매부가 내게 그런 영적 현
상을 자기에게 보여 달라고 부탁했다.
매부는 어려서부터 스피드를 즐겨 여러 번 교통사고를 당했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난 경험을 갖고 있었다. 한
번은 승용차끼리 정면충돌하여 닷새나 의식 불명 속에 헤매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난 적도 있었다. 물론 그는
어릴 때부터 신불에 관한 얘기는 나한테 늘 듣고 있어서 내 연구에 대해 특별히 부정적인 시각은 없었다.
이윽고 나는 마음을 조화시켜 그에게 빛을 넣었다. 그러자 매부는 뜻밖에도 외국어를 구사하기 시작했다. 매
부는 고등학교 전기과 출신으로 외국어 실력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의 외국어 발음은 너무 유
창하고 정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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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부의 몸에 들어가 영적 능력을 발휘하는 주인공은 기원전 약 1천3백 년 전에 이집트에서 태어난 원 투 쓰
리라는 이름을 가진 영혼으로 그 동안 내게 사투리가 섞인 일본말로 삶에 대한 지침을 주곤 하던 영이었다.
그는 매부의 입을 빌려 내가 늘 생각하고 있던 이론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물론 매부는 내 이론을 배운 적이 없었다. 더구나 그의 말 중에는 내가 미처 모르고 있었던 문제점들을 아주
쉽게 설명해 주는 것도 있었다. 나는 그의 말을 잘 새겨들었다. 나를 지켜 주는 영은 4세기경 중국에서 살았
던 후완신 후와이 신호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다. 그 영은 그때 매우 더듬거리는 일본말로 나의 인간성에 대
해 준엄한 비판을 해 주었던 분이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진심으로 반성했다. 마침내 '또 하나의 나'를 찾게 된
내 일생에 일대 전환기가 온 것이다.
'7월 9일부터 사흘 동안 인생을 깨닫고 방침을 세워라'
나의 수호천사는 내게 그런 시한부 숙제를 내 주었다. 물론 내 생각은 남김없이 지적되었으며 그때부터 나는
어디를 가든지 매부에게 감시 당하는 꼴이었다.
'네가 죽어서 우주 끝까지 달아나도 나는 너를 쫓아간다. 네가 마음을 바르게 고치기 전까지는 너를 놓아 주
지 않을 것이다.'
어느새 그분은 매부를 통해서 의식 전달의 한 통신 설비를 갖춘 것이다. 내가 밖에서 약속한 일, 상담한 내
용, 만날 상대까지 매부는 모두 알고 있었다. 그분은 매부를 통해서 내 마음의 왕국을 완전히 점령하고 만 것
이다. 세상에 그렇게 괴로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기상 인공위성이 지구의 기상 상황을 파악하여 세계의 모
든 관상대 날씨를 전하고 있듯이, 혹은 통신 위성이 모든 나라의 뉴스를 포착하고 있듯이 나의 수호천사는
내 일상의 모든 것을 포착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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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보통 괴로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신불을 모시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또 기도 시간이나 장소와도 관
계없이 영적 현상은 계속 일어났다. 나는 불과 나흘 동안에 체증이 8킬로그램이나 줄어버렸다. 30년간 탐구
해 온 결과가 이런 꼴이란 말인가 생각하니 한심하고 암담하기만 했다. 밥도 목에서 넘어가지 않았다.
가정은 얼음이 언 듯 차디찬 냉기가 휩싸이고 말았다. 영적 현상이 나의 내부에서 잠든 사자를 깨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어쨌든 사흘 안에 내 인생에 대한 결론을 내려야 했다. 인생 항로를 180도로 바꾸는
일대 전환점을 마련해야 한다. 나는 큰 고민에 빠져버렸다.
누가 내 고민을 풀어 줄 수 있을까 궁리 끝에 나는 한 스님을 찾기로 했다. 우선 고야산(高野山)의 수도승을
찾아 일의 자초지종을 설명했으나 결과는 무참했다. 해답은 없었다. 다음에는 우에노에 있는 관영사(寬永
寺) 주지스님을 찾아 의논해 보았으나 거기도 마찬가지였다.
다시 지바의 중산사(中山寺)를 향해서 길을 떠났다. 내 발걸음은 따가운 여름 햇살을 밟고 있었다. 그곳에서
도 나는 별 도움을 받지 못했다. 마침내 수호신과 약속한 날이 닥쳤다. 약속한 시한까지는 불과 몇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타인으로부터 만족한 대답을 얻기 바랐던 나는, 사실상 나 자신으로부터 도피하고 있었다는 사
실을 깨달았다. 나는 자신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인간의 생명은 개체이며 모든 상념과 행위는 자기 스스로가 만들고 있다. 이 개체의 생명은 신의 뜻에 맞게
살아야 하며 그 가운데 조화가 이루어지고 나아가 선린애(善隣愛)를 발전시킨다. 그 마음은 애국정신으로
통하고 나아가 전 세계의 인류애를 불러일으킨다. 나는 지위와 명예와 경제적인 자기 보존을 버리고 스스로
만족할 줄 아는 생활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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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주일 동안 마음은 무거웠고, 상심은 컸다. 과거를 되돌아보았을 때 내 자신의 생각과 행위에는 늘 선악이
함께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 마음의 괴로움 속에 불성이 싹트고 있었다. 나는 선한 행위를 되찾고 악한 생각
과 행위를 버리기 위해서 진심으로 반성했다. 그리고 나의 영적 아버지인 신에게 사죄하였다.
그 결과 나는 마침내 마음속의 악마를 이길 힘을 되찾고 비로소 나의 본성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온기를 잃
은 가정에 따뜻한 평안을 되찾기 위해 나는 마침내 원 투 쓰리와 대결하기로 결심했다. 나는 괴롭혀 온 것은
악마다. 그렇다면 그 악마를 선으로 고쳐놓을 것이라고 가족들과 의논하고 있을 때 내 마음은 이미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평안한 경지에 도달하고 있었다.
"너는 이제야 네 사명을 깨달았다. 내가 할 일은 끝났다. 스스로의 사명을 확실하게 완수하라."
원 투 쓰리는 이미 내 마음을 읽고 앞질러 말했다. 나는 나의 불쌍한 몰골과 가치없게 살았던 지난날을 반성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축하한다. 후회 없는 인생을 보낼 수 있도록 다짐하기 바란다."
그 말을 듣고 난 후에야 우리 가족은 새로 태어난 우리들의 가족을 위해 조촐한 축하연을 마련했다. 그 후 매
부에게는 원 투 쓰리가 나타나지 않았다. 원 투 쓰리와 후완신 후와이 신호는 이후부터 내게 직접 통신을 했
다. 악마를 선으로 구제해 놓겠다고 내가 결심한 순간 나는 이미 보살심이 되었던 것이다. 나는 부조화한 현
상을 마침내 조화의 마음으로 극복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때부터 이 책의 제1편을 쓰기 시작했던 것이다.
[전생의 잔영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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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 속에 인간의 고민에 대한 해결과 구원이 있다고 나는 확신하고 있다. 내가 말하는 물질과 생명에 관한
신리에 관해 간략하게 설명해 본다. 우리가 아는 광대 무변의 우주 공간에는 체적과 질량을 가진 것들이 떠
있다. 이것을 우리는 물질이라고 말한다.
우선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은 물질이라고 말해도 좋다. 그러나 그 물질도 에너지 입자의 집합 농도에
따라 고체, 기체, 액체의 모습으로 각각 다르게 존재한다는 것은 잘 알 것이다. 우리 눈에 텅 비어 있는 하늘,
바로 그 우주 공간 역시 에너지의 입자들이 분산되어 수용되는 세계이다.
열과 빛의 작용으로 일어나는 전기, 전자기, 우리가 별이라고 부르는 항성, 혹성의 존재, 그 질량이나 중력의
차이는 천체의 운동에 따라서 달라지고 있다. 교과서에 배운 얘기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도 태양 에너지
와 땅 속의 열에 의해 응축되어 존재하고 있으며 상호 운동을 통해 봄 여름 가을 겨울 등 사계절을 만든다.
지구상에 살고 있는 동물과 식물들은 이 같은 대자연의 환경에 이해서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공간 세계를 3차원의 세계라고 하는데 모든 물질들은 물질로서의 에너지 차원이 있다. 우리는 물
질을 나눌 때 흔히 무기질과 유기질로 나누고 있다.
물론 생물체들은 유기질이 성장하는 세포 집단으로 형성되어 있다. 귀를 기울여 잘 들어야 한다. 나는 지금
공상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지혜로 밝혀낸 세상의 과학적 원칙을 설명하고 있을 뿐이다.
이렇게 세포 집단으로 구성된 생물은 만물의 상호 작용 속에서 안정을 유지하고 있으며 3차원이라는 세계에
어울려 존재하고 있다. 잘 알 고 있는 것처럼 세포는 다시 핵분열을 일으켜 생물로서의 기능을 발휘하고 있
고, 한 개의 몸체를 구성하여 생명을 보존하고 있다.
사람의 세포를 예로 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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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육체는 약 60조 개의 엄청나게 많은 세포로 성립되어 있으며 세포는 저마다 기능에 알맞은 여러 기관
을 형성하고 있다. 인간의 몸은 그저 적당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육체 바깥 세계의 대자연 속에서 적응하
여 살 수 있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에 인체의 여러 기관은 대자연의 긴밀한 상호 관계 속에서 보존되고 있는 셈
이다.
그것은 마치 물에 사는 물고기의 내장들이 물고기를 둘러싸고 있는 물이라는 자연에 잘 적응하도록 만들어
져 있다는 말과 같다. 이처럼 유기체로 이루어진 생물들의 육체를 하나씩 잘 관찰해 보면 사람의 몸은 자연이
라는 물질에 잘 적응해서 살 수 있도록 만들어졌으며 바로 그 세포를 만들어 낸 최초의 창조자는 세상의 물
질 즉 자연을 만들어 낸 지배자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그럼 이 물질의 지배자는 누구이며 그것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일까.
사람이 그러한 의문을 갖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럼 먼저 물질을 보자. 물질과 에너지가 함께 공존하고
있다는 것은 과학으로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 육체를 지배하고 있는 정신, 즉 의식이나 영혼이라는 것
도 물질과 에너지가 따로 있는 것처럼 따로 존재하는 것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가 없다.
영혼 역시 물질과 에너지처럼 차원이 다른 존재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다는 뜻이다. 누구든지 그런 점에서 의
식의 세계는 물질과 다른 차원이 세계라는 것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바로 3
차원의 물질과 4차원의 의식[영혼]의 결합이라고 보는 것이 자연스러운 개념이다.
왜냐하면 육체 즉 유기 물질이 절대적이라고 주장한다면 수면 중에 기억이라는 기능이 작용하지 않는다는 사
실을 우리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우리의 뇌세포는 만능기억 장치가 아니라 우리 몸의 오관의 통신,
수신, 지령을 사용하는 수단, 즉 사용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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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29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1)(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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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란 정신 기능을 수행하는 수단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의식, 즉 영혼은 바로 육체라는 기능을 조정하는 지
배자이며 유기질로 썩어 없어지는 유한적인 물질이 아닌 영원히 불멸하는 진성(眞性) 바로 그 자체라는 사실
을 우리는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이제 사람은 영혼의 육체를 지배하며 정신은 육체보다 차원이 높다는 것, 바로 그 의식에 의해 육체가 조종되
고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바로 그 의식의 중심을 우리는 마음이라고 부른다.
물질 에너지의 차원보다 더 높은 의식의 세계에 존재하면서 대우주의 지배자인 신,
즉 우리가 여기서 말하고 있는 신불의 의식과 상통하고 있는 것이 우리 인간의 마음이다. 마음은 내 생각과
의지를 일으키는 발신소이다. 바로 이 의지에 따라 물리적인 육체적 행동이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가 슬플 때나 기쁠 때 혹은 가슴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것들이야말로 마음의 실체에서 나온 것이다. 육
노동으로 피로를 느끼는 것은 육체 에너지의 소모에 의한 것이지만 심적 에너지는 정신적인 고민으로 소모되
며 그것이 육체적 질병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심적 피로는 고민을 잘 조화해서 회복할 수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이 없는 한 고통은 고질처럼 수시로 고개를 쳐든다.
그런 고통의 원인은 대우주의 지배자인 신불의 의지를 거스른 결과로 인간의 행위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신
불의 의지야말로 신리나 이치와 다른 것이 아니며 인간의 마음 속에는 누구나 전생의 기억이 남아 있는 법이
다.
누구든지 자기 자신에게는 절대로 거짓말을 할 수 없다. 혹시 자신에게 거짓말을 해서 속아 본 사람이 있는
가. 자신을 속일 수는 없다. 남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은 자기 보존이나 자아의 욕심을 부릴 때만이다. 우리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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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속에는 언제나 선과 악이 함께 동거하고 있으며 이기적인 자기 악을 극복하는 생활이 인생에서 수행해야
할 일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우리의 마음은 본능, 감정, 지성, 이성, 상념으로 나누어지며 그 상념에 따라 의지가 작용한다. 그리고 그 내
부에는 저 세상과 이 세상을 계속 윤회하는 과거 세상의 상념, 본능, 감정, 지성, 이성, 의지의 선천적인 선악
의 업보도 있어서 현세에서 지은 후천적인 업보도 저장되어 있다.
따라서 사람은 이 마음의 맞도록 살아야 평화를 누릴 수 있다. 둥근 공처럼 마음의 각 영역이 잘 조화를 이룬
사람을 원만한 인격자라고 말한다. 이런 인격자의 의지는 늘 유연하다. 따라서 마음이 무한대로 넓은 사람도
있고 특정한 사상 등에 의해서 스스로 한계를 만들어 마음이 좁은 사람도 있다.
물질의 노예가 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만족할 줄 알고 물질문명을 지배하는 사람도 있다. 기독교의 진
리도 석가의 진리도 긴 역사의 과정에서 과거의 제자들, 학자들, 현재의 종교 지도자들의 지성, 감정, 의지 등
에 의해서 왜곡되면서 종파가 난립하는 현상을 빚고 있다. 신의 섭리를 상실한 종교는 이미 인간의 마음을 구
제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신리는 하나이며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육체라는 배를 타고
건너가는 수행의 장소이기 때문에 선과 악이 공존하고 있지만, 차원이 다른 의식의 저 세상에는 선과 악이 구
역이 분리되어 각자 마음의 조화도에 따라 단계가 정해진다. 그런 준엄한 저승으로 우리의 마음은 이승의 조
화도가 그대로 옮겨서 버리는 것이다.
인생 항로의 고락은 우리 마음이 스스로 만들어 내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본능은 노출되면 감정과
작용해서 이성과 지성을 잃게 만든다. 감정만 강해져도 마음의 조화는 무너진다. 자기 보존의 감정이나 , 오
만한 지성, 자기 보존의 본능은 마음에 구름을 끼게 하여 신불의 빛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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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의 작용에 의한 반성이라는 상념과 행위가 마음의 구름을 벗기는 유일한 길이다.
마음의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른 자이며 석가의 중용을 쫓는 자이
다. 만물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은혜를 키워 갚는 행위에 의해서 실현될 때 진심의 조화가 이루어진다.

[내 누이의 전생 이야기]
나는 불교도 기독교도 배운 적이 없었지만 그 진리를 확실히 파악할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석가와 그
리스도가 살던 당신의 상황까지 환하게 알 수 있게 되었다. 내가 그렇게 말하면 독자들 중에는 내 말을 그대
로 수긍하고 인정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무슨 미친 소리냐고 비웃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내 말에 좀 더 조심스럽게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참으로 놀라운 세상의 다른 이면을 깨닫게 되겠지만 코웃음
을 치는 사람은 경이로운 세상을 깨닫는 기회를 놓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내가 지금 제시하는 것들이, 내 말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만 가치가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누가 내 말을 믿거나 안 믿거나 이세상의 신리는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그것은 해가 뜬다는
사실처럼 확실하다. 누가 읽어도 허황한 픽션 같은 얘기지만 이런 이야기는 지어낼 수도 없다. 독자 여러분
이 내 말을 믿고 들을 수밖에 없다.
나를 영적으로 지도하는 영인 원 투 쓰리는 높은 단계의 빛의 대수호천사이며 키가 2미터가 넘는 거구이다.
머리에는 왕관을 쓰고 팔에는 금팔찌를 낀 BC 1천 3백년 대 이집트인의 복장을 하고 있다. 본명은 모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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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29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1)(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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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후완신 후와이 신호는 머리카락이 목까지 길고 턱수염이 났으며 키가 정확히 178센티미터이다.
그분 역시 상단계 빛의 수호천사이며 1세기에 이스라엘에서 활약한 사람이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분신 이
름을 갖고 있다. 내가 왜 본명을 말해 주지 않느냐고 묻자 신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본명을 밝히면 무척 놀랄 것이다. 종래의 그리스도교처럼 되기 때문에 오히려 역효과가 나기 때문이
다."
나를 아끼는 말씀이다. 그 후 어느 날 아름다운 인도 옷을 입은 두 여자가 불상처럼 환한 얼굴을 하고 내 앞에
나타났다. 내가 본 모세나 예수의 머리 위에는 금빛 테가 둘러 있는데 그 두 여자에게도 빛의 고리처럼 둘러
있었다. 엷은 분홍빛 비단 옷에 아름다운 귀고리도 있었다.
그 중에는 연꽃을 손에 들고 있는 분이 내 누이의 의식 속에 들어가고 싶어했다. 일본어가 유창하고 기품이
넘치는 여자였다. 나는 너무 고전적인 그녀의 모습이 조금 불안했다. 내가 누이동생에게 그 말을 했더니 동생
은 겁을 먹고 거절했지만 결국은 내 간청에 못 이겨 승낙했다. 내가 누이동생이 마음을 조화시키고 빛을 넣었
더니 몸이 공중에 떴다. 나는 급히 어깨들 눌러 앉혔다. 내가 다시 마음을 조화시키자 부드러운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목소리는 누이동생의 것이 아니었다.
"나는 성(聖) 관세음보살입니다."
그와 동시에 누이는 마음의 눈이 열려 영혼의 세계를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날 밤부터 약 일 주일 동안 누이동
생은 관세음보살님의 무릎 위에서 살았으며 여러 사람들에게 혼이 사로잡힌 부조화스러운 영들을 육안으로
불 수 있게 되었다. 누이동생은 히브리어, 인도의 마가다어, 중국어 등 여러 나라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으며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게 된 것은 물론, 수호천사와 대화할 수 있는 초능력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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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이는 육체 조상들을 만나기도 하고 전생의 일들을 기억해 냈으며 죽을 때의 상황 등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
리고 여러 연고자 중에서 저승에 간 사람들을 불러 대화하면서, 살았을 때의 모습들을 재현시켜 보여 주기도
했다. 누이동생은 창가학회엣 불법을 배운 지 10년이 되어도 교리실력은 나보다 나았지만 광신도는 아니었
으며 늘 의문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올바른 해답을 얻지 못해 마음이 편안할 날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제 누
이동생은 자신이 윤회한 전생을 말하기 시작했다.
"우리 생명은 영원히 살고 있습니다. 나는 기원전 7천년 경 아틀란티스 제국에서 태어났으며 호로리아라는
이름의 여자였습니다. 미륵 보살님은 나다리아라는 이름으로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죠. 우리들은 아가샤 대
왕님의 밑에서 신의 가르침을 배워 많은 사람들엑 교리를 전했습니다."
누이는 부드러운 아틀란티스 시대의 말을 일본어로 풀이해 주기도 했다. 아틀란티스란 현재의 대서양에 잠
긴 대륙을 말하며 지구가 지각 변동으로 멸망하기 전에 이루어졌던 문명이국이다.
"아틀란티스 문명은 매우 발달했고, 국민들의 생활은 풍족했습니다. 그러나 물질이 풍부한 반면 본심을 잃
고 마음을 악마에게 빼앗겨 신의 긍지를 저버린 자가 많았습니다. 아가샤 대왕은 자비심이 많은 분으로서 철
없는 백성들에게 대자연의 은혜에 감사할 것을 가르쳤지만 악마에 마음을 빼앗긴 그들은 사리사욕에 눈이 어
두워 우리들을 붙잡아 대중 앞에서 처형했습니다. 우리들은 생명의 불멸을 믿고 있었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
워하지 않았습니다만 신의 사자로 육체를 지니고 태어났던 많은 천사들이 처형당했기 때문에 마침내 아틀란
티스 대륙은 신의 권능으로 침몰되고 만 것입니다."
누이는 당시의 상황을 그린 듯 설명했다. 그 후 그녀의 분신이 다시 이 지상에 태어난 기억을 다음과 같이 들
려 주었다. 그러니까 죽은 그녀가 윤회를 통해 다시 살게 된 세상의 이야기이다.
"그 후 나는 기원전 4천년경에 다시 이집트 여자로 태어났습니다. 이름은 아시카 미요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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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당시의 이집트말과 일본어로 들려주었다.
"나는 바라라는 농촌에서 태어났습니다. 집 앞에는 맑은 냇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나는 물을 마시러 갔다가 그 냇가에서 한 수행자를 만났습니다. 그는 강둑에 앉아 쉬고 있었는데 옷
소매가 헤어져 너덜거렸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의 옷을 기워드렸습니다.
그때 나는 발에 종기가 나서 몹시 고통을 받고 있었는데 그 수행자는 신에게 기도를 드려 고통을 없애 주었습
니다. 그 수행자는 자비심이 많은 분이었습니다.
그가 가르치는 신리를 믿고 마을 사람들에게도 전했습니다.
그 수행자는 기원 1세기에 이스라엘에서 탄생했던 예수님의 전신이었으며 이름은 그라리오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태양신을 섬기고 있었고, 백성들은 임금을 후와라오 신(神)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피라밋은 내세를 믿었던 왕의 측근자들이 후와라오의 보물들을 저장해 두었다가 미래에 다시 태어났을 때 사
용할 수 있도록 준비해 둔 것입니다."
피라밋의 유래른 그런 것이다. 당시의 과거를 보고 있는 사람들이 말하는 피라밋이다. 그녀의 다음 생명은
기원전 약 6세기, 중앙 인도의 마가다라는 나라에서 태어났다.
"나의 아버지는 빈비사라 라아쟌 왕의 친척으로 가란다라고 합니다. 아버지는 벨르베나[죽림정사]를 고다마
[석가]님에게 기증한 분입니다. 형제는 셋이었는데 나는 막내딸로 이름은 가리나였으며 아주 귀여움을 받고
자랐습니다. 아버지는 이따금 나를 벨르베나까지 데려갔으며 고다마님의 설법을 들었습니다.
결혼 후에는 남편이 신앙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28세 때 고다마님의 제자로 입문
했습니다. 그러나 가르침에 의문이 있었고, 수행도 고통스러웠으며 타고난 응석 때문에 깨달을 수가 없었습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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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다마님은 내게 '정법은 스스로 깨닫는 것이니 산 속으로 들어가 7일간 수행하면서 28년간의 과거를 반성
하고 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당시 산중에는 하이에나. 뱀 등이 많아 밤이 되면 나무와 풀까지 악마로 보여 겁에 질린, 나는 하루 만
에 수행을 포기하고 집으로 달아났습니다. 그때 고다마님의 제자가 되려면 반성으로 산중 수행을 한 다음 세
가지 구족계(具足戒)라는 세례를 받는 것이 정식 절차였습니다.
집에 돌아와서도 역시 나는 만족한 생활을 할 수가 없어서 마침내 남편과 헤어지고 36세에 다시 고다마님께
청원드려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때 나는 마이트레이어[미륵]와 친구 사이였습니다. 나는 종을 치고 마을 사람들을 모아 달마의 포교에 일
생을 바쳤습니다. 고다마님은 81세에 구시나라가 교외에서 열반에 드셨습니다. 그때 샤리부트라님, 마하 몽
가라나님, 푸루나도라야 야니부트라님은 이미 후생으로 떠난 후였습니다.
고다마님이 돌아가신 후 90일째 되는 날 마하 가샤파를 중심으로 만치우리야, 우파리, 아난, 라후라, 마이트
레이어님 들이 모여 후세에 달마[법]를 전달하기 위해 말로 전하고 기록도 하면서 각자 분담하여 붓다가 행
한 일들을 남길 작업을 했던 것입니다."
나는 누이로부터 당시 부처님의 모습을 들었다. 우리들의 의식 즉 영혼은 자신이 돌고 도는 윤회의 기억을
잠재의식에서 되살려 낼 수가 있다. 나는 후에 누이의 증언이 붓다의 제자들이 기록한 것과 정확히 일치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시 누이동생은 그 다음의 윤회를 기억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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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69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어 2세기에 이스라엘에서 태어나 사휘라는 이름으로 남편 마구가리스
와 함께 그리스도교의 전도에 일생을 바쳤습니다. 나의 본체인 호시요코[星祥子]의 수호를 맡고 있습니다.
본체의 수호 천사는 남편, 그라리오님, 예수님이 맡고 계십니다. 사휘 이후의 나의 본체는 다시 5세기에 중
국 광동(廣東)에서 임장(林蔣)이라는 이름의 여자로 태어난 병자를 구제하면서 불도를 중국 전역에 포교했
습니다. 나의 아버지는 중장(中蔣)이라는 분이며 다 함께 불자로서 중생을 제도했습니다. 제자들 중에 관음
이라는 분이 나왔습니다. 아버지는 7세기에 일본에서 태어나 고호라고 불렸으며, 동생은 니치렌으로 태어났
습니다. 그 후 나는 일본에서 두 번 태어나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 소문을 듣고 내 친구가 달려왔다. 친구는 흥미 있게 내 이야기를 듣고 나더니 사흘 후에 의문이 다 풀려 눈
물을 흘리면서 인도말로 우파리, 우파리라고 말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9월 23일, 중학교 치구 사토가 친구 고시바씨를 데리고 왔다. 사토 군과 함께 그분도 오랫동안 종교 단체에
몸담고 있었으므로 내 맘에 이해가 빨랐다. 그는 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영적 현상에 관련된 책들도 많이 읽
었다. 다만 종교의 근본 문제에 대해서는 별로 정통하지 못했으나 내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영적인 현상에
대해서는 큰 흥미를 가졌다.
내가 그들과 몇 번 신리를 말하고 있는데 두 사람의 등 뒤로 금빛에 싸인 인도 복장의 수호천사가 똑똑하게
나타났다. 그분은 우리들에게 합장하면서 수호천사들끼리 서로 얘기하고 있었다. 내 눈에는 그 모습이 똑똑
히 보였다. 그러자 나를 지도하는 원 투 쓰리가 과거 세계의 이름들을 가르쳐 주어서는 안 된다고 주의를 주
었다.
"자기의 전생이나 수호천사의 존재에 대해서는 신리를 깨닫고 올바른 마음의 생활을 통해서 스스로 알게 되
므로 본인의 즐거움을 위해서도 숨겨두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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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말이 자비심에서 나온 생각이라고 감탄했다. 원 투 쓰리[모세]는 다시 이집트에서 이스라엘로 탈출
할 때의 상황과 십계명이 성립되던 과정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고다마[붓다]도 예수도 내 친구다. 신의 사자로서 인류에게 평화와 안심의 신리를 설법하는 동료인 것이다.
생을 윤회하면서 전생에 설법한 신리가 지상계에서 2천 년, 3천년 지나면 인간의 지식과 의지의 산물인 먼지
에 뒤덮인다. 그 먼지를 털어내기 위해서 태어나는 것이다. 먼지가 끼면 신리의 싹이 눈뜨지 못한다.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잃고 사회는 조화를 상실한다. 고타마도 예수도 우상 숭배의 대상물이 되었으
며 어떤 조직은 신을 상품화하여 그 그늘에서 생활하고 있다. 철학화된 신리는 우상으로 변하고 교조는 그 우
상의 문지기가 된다.
신앙은 형식적인 의식이 되고 우상 숭배는 생활의 액세서리처럼 변질된다. 이처럼 타력 신앙이 중생의 생활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육체를 지닌 빛의 천사는 오늘날의 철학화된 신리를 원래의 원점으로 돌려놓기 위
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그 저항이 심해 어려움이 보통이 아니다. 2천 년 전의 고다마도 인도에서
당시에 화석이 된 낡은 베다와 우파니사드 등의 성전을 믿는 많은 사람들의 저항에 부딪쳐 설법에 어려움을
겪었다. 예수도 내가 말한 십계가 그의 앞길을 가로막아 결국 육신을 십자가에 희생시키는 결과가 되고 말았
다. 신리에 낀 먼지를 털기 위해서 많은 빛의 천사들이 지상계에 육체를 지니고 태어나지만 어떤 자는 살아
있는 부처가 되어 하나의 종파를 형성하여 그 속에 안주하다가 돌아오는 수도 많았다. 나도 육체를 지니면 과
거의 철학화된 망령에 시달리게 되겠지만 지상계의 인류는 하루 빨리 신불의 자식된 긍지를 일깨워 고다마
나 예수 당시의 신리를 되찾아야 하며 이것만이 미망에 빠진 마음을 구제하는 유일한 길임을 명심해야 한
다."
아주 중요한 말이다. 이처럼 빛의 천사는 정법을 행하고 포교하는 사명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을 모세는 분
명히 밝히고 있다. 독자 여러분은 이상과 같은 현상이나 진리를 부정하기 전에 종교의 자세를 역사적으로 잘
고찰하여 스스로의 마음속에 있는 신에게 물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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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의문에 대해서는 해답을 얻을 수 있으며 나아가 그 해답에 대한 새로운 의문은 줄기찬 탐구를 거쳐
다시 해답을 얻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의문과 해답의 윤회를 통해서 우리는 마침내 신의 의지에 도달
할 수 있게 된다.

[나의 수호천사 모세]
1천 년, 3천 년이 지나는 동안 그때그때의 통치자나 그 나라의 국민성, 습관, 풍습 등에 의해서 한 가지 신리
가 천차만별로 변모한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러나 신리가 시대의 흐름이나 천재지변
에 의해서 변하지는 않는다.
원 투 쓰리로 부르는 나의 수호천사 모세가 가르쳐 주는 신리는 신비의 베일을 벗고 인간미마저 풍긴다. 외국
어 사투리가 섞인 말이지만 사랑과 자비로 충만한 가르침은 나의 마음 속 구석구석까지 스며들어 평안과 기
쁨이 되었다. 내가 쓴 모세의 말을 아내에게 읽어 주고 있을 동안에는 그분은 내 곁에 와서 나의 저서에 대해
서 비판을 해 준다.
"내가 출생했던 당시에 비해 현대는 문명이 크게 발달했기 때문에 편리한 점이 많다. 쓰는 것도 자유로울 뿐
만 아니라 통신망도 발달되어 이웃 간에 커뮤니케이션도 자유롭다. 단 한 가지 어려운 것은 물질 만능주의 속
에 상실되어 버린 인간성을 회복하는 일이다. 그러나 아무리 과학 문명이 시대라고 하지만 여러 가지 영적 현
상이 일어나게 되면 사람들의 마음 한 구석에는 자신들의 신의 피조물이라는 자각을 하게 될 것이다."
모세의 말씀이다. 인간은 누구나 이와 같이 저승의 천사들과 직접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여러분 중에 내 말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허황된 말로 들릴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다. 우리에게는 수호천사가 있다.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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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은 보이는 것만 믿으려 하지만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세상은 더 크고 넓다. 우리들 사이에는 영적인 세상
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을 의심해서는 안 된다.
나는 그런 영적인 수호천사가 얘기할 때 사는 보람을 느낀다. 천사의 사랑의 말씀에 젖는 기쁨은 비길 데가
없다. 가령 부모가 없는 고아들에게도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인간은 누구나 하느님의 자녀이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고 정성껏 키우는 것도 신의 사랑을 실천하고 있
는 인간의 한 모습일 뿐이다. 불행하게도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여, 너희 아버지인 하느님에게 의지하라. 너희
는 모두 신의 자녀들이다. 너희 마음의 세계를, 보다 따뜻한 하늘의 아버지가 육체의 부모와 다를 바 없이 사
랑으로 감싸 줄 것이다. 하늘인 아버지께 사랑을 구하여라. 사랑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으며 무엇보다도 강하
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아이들이여, 하늘인 아버지의 품에 들라."
그런 말을 할 때 내 가슴은 벅차다. 우리들은 모두 신불의 자녀들이란 자각을 가지고 바른 목적을 위해서 살
아야 한다는 것을 새삼 다짐하게 된다. 과거에 푸르나도라야 야니부트라라는 이름을 가진 사토 군과 수브티
라는 이름을 가졌던 고시바씨는 전생에서도 서로 절친한 친구 사이였던 듯싶다. 푸르나는 지금부터 2626년
전에 인도 서해안의 숫파라카에서 태어난 사람이다. 목재상을 하고 있었는데 나중에는 도두전단이란 향을
가지고 인도 코사라의 사봐티, 카시의 바라나시 사케타, 코산피, 밧치 등 많은 곳을 돌아다니면서 행상하였
다. 어느 날 그는 배 안에서 사봐티의 상인으로부터 고다마 붓다의 이야기를 듣고 그 기로 라자그라히 근교
에 있는 벨르베나로 찾아가서 제자가 되었다.
그는 불법을 깨달았고, 고다마와는 같은 나이였으며 설법을 잘 한 것으로 유명했다. 특히 중부 인도의 밧치국
에 가서 불법 포교에 힘썼다. 고다마가 입적하기 2년 전에 79세로 이세상을 떠났다. 그는 죽은 후에 중국에
서 한 번, 일본에서 세 번 태어나 수행 생활을 했다고 모세가 일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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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브티는 중부 인도 코사라국의 사람이었다. 사봐티와 카피라성(城)에 카시산의 비단과 생활용품을 팔던
상인이었다. 카피라성의 외교 장관이었던 토라이 마슈엘과 친분이 두터웠으며 후에 카피라성의 외무를 담당
하였다. 마슈엘 장관의 후임이 된 젊은 고세를 이 나라에 데려온 인연으로 고다마 싯다르타의 불제자가 된 것
이다.
그는 저승과 이승의 관계, 즉 색즉시공(色卽是空)의 신리에 특별히 통달한 분이었다고 수호 천사는 말하고
있다. 그 후 4세기경 중국에서 태어나 대흑천(大黑天)으로서 신리를 설법하는 빛의 천사들에게 경제적인 지
원을 많이 했다. 대흑천의 역할을 담당한 여러 착한 신들의 수는 많다. 불교적인 이름이지만 저승에서는 그렇
게 부르고 있다. 그리고 현대 고시바씨의 친척 가운데 인도 시대에 아사지라고 불렸던 고다마의 제자가 육체
를 지니고 살고 있다. 이 사실은 영적인 눈을 뜬 카피라성 시대의 고세나 마슈엘의 후에 태어난 몸이 전생을
회상하면 말하고 있다. 아사지의 수호천사는 당시의 인도를 상기시키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고다마님의 아버지 슛도다나 왕의 명령을 받들어 코스타니야, 마하 나마, 밧데야, 우앗파 등과 함께 카
피라성을 떠난 고다마님을 호위, 수행하면서 여러 곳을 여행했습니다. 고다마님의 깨달음을 얻으신 후에 우
리들은 미가다야에서 제자가 되었는데 나는 라쟈구리하 근교에서 만난 샤리부트라를 벨르베나에 계신 붓다
에게 안내한 사람입니다. 샤리부트라는 훌륭한 분이었습니다."
또 먀슈엘은 카피라성에서 장관직에 있었으며 고다마 싯다르타보다는 40세나 나이가 많은 분이었다. 슛도
다나 왕과 마하 파쟈파데에 관한 일을 잘 기억하여 당시의 생활상이며 고다마가 출가할 때의 양친의 슬픔과
괴로움을 상세하게 설명하였다.
현재는 여자로 태어났지만 인도 시대에는 남자였다. 고세는 마슈엘 장관 은퇴 후에 경제 장관이 되었지만
말년에는 윤회의 과정을 깨달았으며 현재는 정법 포고의 사명을 띠고 활약하고 있다. 가와구치시에 살고 있
는 아라이씨도 자신의 전생이 카피라성의 식사 당번이었다는 것을 코사라어로 말하고 있다. 인도 당시의 이
름은 레바리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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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레바리의 친구가, 영적인 길을 열어 주어 가사파라 찬다카라고 자칭하면서 고타마가 줄가할 때 마부였다
고 말했다. 그가 시부야에 사는 곤도씨다. 이와 같이 카피라성과 관계가 있던 사람들이 차례차례로 영적인 눈
을 떠서 약 2천5백여 년이 지난 오늘, 당시의 상황을 어제 일처럼 기억하고 그 시대의 말로 서로 눈물을 흘리
며 옛이야기의 꽃을 피우고 있다. 또 마가다, 코산비, 밧치, 코사라, 크루, 사케다, 찬바, 칸피라, 미슈라 등 여
러 나라와 관계가 있는 사람들의 전생이 열려 당신의 풍습, 노래, 춤 등이 재현되기도 한다.
9월경부터 자주 나타나던 불상처럼 아름다운 한 여성이 내 앞에 나타나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건네왔다.
"저는 미륵입니다. 참으로 오랜만이죠?" 나는 그녀를 보고 깜짝 놀랐다. 관세음보살 같은 차림이지만 옷이
좀 화려해 보였다. 몸 전체가 황금색 오로라로 싸여 있었다. 나는 착각이 아닌가 싶어 자세히 살폈지만 산사
람과 똑같았다. 누이동생의 눈에도 그렇게 보인 모양이었다.
"어머, 저와 가까운 친구예요. 내가 인도에 살 때 그리고 중국에 살 때도 큰 폐를 끼친 분이에요. 미륵보살이
맞아요."
누이의 수호천사 사휘씨가 말했다. 미륵보살은 자신이 내 아내의 수호천사라고 말해서 또 한 번 놀랐다. 나
는 아내에게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내는 태어나서 30년이 지났지만 신앙에 관해서 관심이 없
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아내는 내게 일어나는 영적 현상에 관해서도 매우 냉정했으며, 자신에게는 아무 능력이 없다는 것을 자인하
고 있었다. 나 역시 신앙을 강요하는 일은 없었다. 이유는 아내가 내 사업을 거의 대신 해 주고 있었기 때문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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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29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1)(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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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밤 나는 응접실에서 친구와 아내에게 신리를 얘기해 주고 있었다. 그때 내 입에서 인도 시대의 경문
이 줄줄 흘러나왔으며 어느새 그 목소리는 파장을 타고 빛의 세계로 올라갔다. 아내의 마음은 신리의 빛에 싸
여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감격의 눈물이었다. 그날부터 사흘 동안 아내는 그 순간을 기억할 때마
다 눈물을 흘리면서 그때의 기분을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경문을 읽을 때 제 마음이 갑자기 따뜻해지면서 무엇인지 치밀어 오르는 느낌을 억제할 수가 없었습
니다."
어쩌면 누이동생처럼 수호천사가 아내의 의식을 빌려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직감이 들었다. 아내 역
시 영적인 눈을 뜨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조화롭지 못한 마음을 갖고 있으면 악마나 짐승 영혼의 먹이가
되고 만다. 그래서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오늘부터 일 주일 동안 새벽 1시부터 2시까지 옥상에 올라가서 지금까지 살아 온 인생을 철저히 반성하여
마음의 조화를 이루어야 하오."
우리 마음의 왕국은 무한이 넓다. 그러나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빛이 없는 어두운 세계로 통하여 많은 고민
을 떠안게 된다. 노이로제, 불안 초조, 노여움, 질투, 오만 등에 빠지는 사람들은 그 때문이다. 비록 빛의 천사
가 수호화고 있지만 육체를 지배하고 있는 자신의 마음이 부정적인 상념에 덮이게 되면 수호천사도 속수무책
이다. 마치 텔레비젼의 다이얼처럼, 빛의 세계로 돌리는 것과 어둠의 세계로 돌리는 것은 자신이 결정하기 때
문이다. 행동은 마음의 뜻에 따라 나타난다.
마음이 늘 어두운 세계와 닿아 있으면 괴로움과 슬픔으로 나타난다. 항상 밝은 세계로 채널이 맞추어져 있으
면 현상도 역시 밝고 평화로운 생활이 된다. 이 말은 아주 중요한 말이다. 독자 여러분의 행복 또는 불행과 관
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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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상의 세계는 선도 자기가 만들어 내고 악도 자기가 만들어 낸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지 권리는 자신에
게 있다. 신이 그 권리를 인간에게 준 것이다. 그러므로 선행의 결과에는 기쁨과 즐거움의 열매가 열리고 악
의 결과에는 투쟁과 파괴, 고통, 원한, 시샘, 비방, 병의 열매가 열리게 되어 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현상계라고 하지만 이곳은 내세를 위한 수행의 장소이다.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잇듯
이세상은 모두 신의 빈틈없는 원인과 결과의 법칙에 따르고 있다. 빛의 천사라 할지라도 인간의 어두운 마음
을 구제할 수는 없다. 신리를 깨닫고 마음을 선하게 돌려야 한다. 그렇지 못한 채 영적인 눈을 뜨게 되면 우리
의 마음은 조화되지 못한 것들의 지배를 받게 된다. 그래서 나는 아내에게 신중하게 대처하도록 충고했던 것
이다.
이제 세상은 크게 바뀌었다. 마음의 수행 장소는 산이 아니라 도시 한가운데 이며 그것도 우리 집 옥상이 되
고 있다. 새벽 1시가 되면 도시의 하늘도 맑아지고 날씨가 좋을 때는 별도 보인다. 조용하며 마음을 조화시키
기에는 다시없는 시간이다. 하루 한 시간씩 반성하는 명상을 통해서 아내의 마음은 빛에 싸여 정화되어 갔
다. 10월 23일 밤, 내가 조화의 빛을 넣자 마침내 아내의 의식을 수호천사가 지배하여 부드러운 일본말로 이
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미륵보살입니다. 지금 일본 여자로 태어나 살고 있는 이 친구의 수호천사 역할을 담당해 왔습니다. 마
음의 본체가 열렸기 때문에 내가 수호천사를 맡게 됩니다. 나는 본체의 분신이며 15세기 중국에서 가란이라
는 이름으로 태어나 살았던 적이 있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아내의 목소리는 전혀 다른 여자의 음성이었다. 그는 인도 옷차림을 하고 있었으며 그 이후부터는 거의 중국
옷차림이 아니면 저세상에서 입는 가장 좋은 옷을 입고 나타났다. 가란은 아내의 잠재의식의 실마리를 풀고
당시의 인도말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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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부터 2천6백 년 전, 인도의 바라나시의 교외 카파리라는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본명은 마이트
레이어라고 합니다만 애칭은 마타레, 타레이어 또는 사치라고도 불렀습니다. 우리 집안은 마하 바라문이었
으며 카시국의 바라나시에 교회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큰아버지 바바리는 정치와 제사를 맡고 있었습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바라문을 공부했습니다만 거의 형식에 사로잡힌 학문이었으며 마음이란 문제에 대해서는
소홀했습니다."
아내는 별로 사찰에 다닌 일도 없었고, 불교는 물론 신에 대해서도 거의 몰랐다. 그때 아내의 육체는 작게 보
였지만 또 한 사람은 광채로 빛나는 큰 몸이었다. 마치 진주가 조개 껍질을 열고 큰 빛을 내는 것 같았다. 그
처럼 우리들에게 수호천사가 붙으면 우리의 육체는 작게 밀려나고 그 뒤로 구름처럼 큰 '또 하나의 나'가 나
타난다. 그것은 광자체(光子體)라고 말하며 평소에도 이 광자체와 육체는 늘 함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광자량은 그 사람이 마음이 얼마나 신리에 가까이 있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말하자면 마음의 조화도가 얼
마나 잘 되었는가. 신리에 맞는 생각과 행위를 하고 있는가에 비례해서 광자량이 많아진다.
[사람의 영혼은 광자체다]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 그 영혼은 바로 그 사람의 광자체이다. 그때 수호천사는 광자체 옆에 서 있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광자체는 우리들의 의식을 지배하여 뇌에 신호를 보내어 목소리를 만든다. 사람의 생각과 행
위가 조화를 이룰 때는 상대방의 광자체가 보인다.
물론 빙의된, 사로잡힌 영혼도 똑똑히 볼 수 있다.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로잡혀 있는 것은 짐승의 영혼,
떠도는 혼, 지옥의 영, 악마의 왕 같은 것이다. 대체로 어두운 광자체에 붙어 있는 것이다. 그렇게 나쁜 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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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의 후광은 어둡고, 마음의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은 대체로 노이로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노이로제의 99%는, 머리둘레에 있는 혼들에
게 사로잡혀 의식을 점령당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상실한 경우이다. 이 같은 현상은 우리가 볼 수 있
는 것은, 신리에 맞는 생활을 하고 있을 때이다. 잠재의식이 90%와 표면의식의 10%가 조화되고, 두 의식
사이에 있는 상념의 필름에서 부조화의 구름이 걷힐 때 마음의 문이 열려 영적 눈이 뜨이는 것이다.
마음이 조화는 망원경 렌즈의 초점을 맞추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사진을 찍을 때 초점을 맞추는 것과 마찬
가지로 잠재의식과 표면 의식의 조화 역시 신리에 따라 생각과 생동을 일치시켜야 한다는 뜻이다. 쉽게 말해
서 신리에 맞는 생각처럼 행동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야만 자신의 수호천사의 가르침을 받을 수가 있고, 자기 자신의 의식이 광자체를 지배하여 아무리 먼 곳
에라도 금방 가 볼 수 있게 된다. 우리들의 현재의 육체와 광자체는 영자선(靈子線)이라는 줄로 연결되어 있
다. 이 영자선이 끊어지면 육체와의 결별이다. 즉 육체의 죽음이 온다.
이 사실은 확실히 밝혀졌다. 그런데 만일 무당이나 영매가 혼란스러운 영을 불러들이면 몸이 무거워져 쓰러
진다. 이때 빙의령이 떠난 뒤에도 관성의 법칙에 따라 그 여운이 남게 되며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마침내 육
체 의식까지 침범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악령에 의한 최후는 비참하기 그지없다. 반대로 빛의 천사가
지도하고 있을 때는 우리의 육체는 경쾌하고 마음도 편안하다.
경문들을 외면서 나타나는 영의 급수는 단계가 낮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관재자보살(觀自在菩薩)은 그
경문의 구역과는 관계가 없다. 경에 쓰인 신리대로 인간이 생활하고 있는가 아닌가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아내의 수호천사는 아내의 잠재의식의 문을 열고 전생의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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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문은 우파니샤드나 베다로써 대자연의 본질을 배우는 것으로 이것은 비밀 종교이기도 합니다. 날마다
종교적인 생활을 되풀이했습니다. 아이들은 우파니샤드를 주로 가정에서 배웠지만 마음에 대한 구체적인 공
부는 없었습니다. 일정한 기간 가정을 이끌면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나중에는 혼자 요기의 수행을 위해 입산
합니다. 그 과정을 마친 후에 말년에는 사로몬으로서 떠돌아다니는 것이 바라문 교육의 전부였었습니다. 그
러나 바라문도 오랜 역사를 거치는 동안 가족 제도가 자손 중심주의로 바뀜에 따라 종족 보존의 번뇌가 쌓여
정법을 상실하고, 형식적인 제정 행사에 빠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더구나 계급 제도는 신리에서 크게 벗어나
가혹한 인종 차별이 생겨났으며 바이샤나 수드라와는 혼인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것은 인도의 바라문에 관한 설명이다. 실제로 바라문의 자손들은 아무리 무능해도 사회적 대우를 받았으
며 반대로 계급이 낮은 신분의 자식은 아무리 훌륭한 재능이 있어도 무시당하는 사회였다. 바라문 안에도 또
계급이 있어서 마하 바라문의 지위는 절대적이었다.
크샤트리아는 바라문의 아래 계급으로 무사들이다. 그들은 라아쟌 왕의 지배하에 있었다. 고다마 싯다르타
는 카피라성의 슛도다나 라아쟌 왕의 본부인에게서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카피라성은 그다지 크지 않아서,
본채는 지금의 평수로 약 500평 정도밖에 되는 않았다. 성벽은 모래와 바위로 쌓여졌으며 동서남북에 각각
출입문이 있었다. 본채에 크샤트리아 계급, 즉 무사들의 대기실이 있었다.
그리니까 카피라성은 일본 지바현 정도의 면적밖에 되는 않는 나라였으며 코사라국의 속국이었다. 때는 전
란 시대였으며 언제 평화가 깨질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 나라에는 다른 나라의 스파이들이 숨어들어 있어
서 늘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었다. 특히 왕국에는 독살이 많았다. 그래서 왕궁의 식사 당번은 가장 신임 받는
인물이 맡고 있었다.
그 당시 카피라성의 상황은, 영적 눈을 떠서 과거의 세상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들을 수 있다.
속국의 왕도 정치권력이 강력해지면 무력으로 이웃 나라를 침략할 수 있었다. 바라문 계급의 권위는 나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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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추되고 있었다. 왕들은 경제권을 쥐고 있는 상공업자들인 바이샤 계급의 지원을 받고 있었다. 국토방위는
최하 계급인 수드라들이 바치는 공여물과 노동력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었다.
고다마 싯다르타는 그런 계급 제도에 모순을 느끼고, 누구에게나 평등한 인격으로 대했다. 인간이 만든 지위
나 명예에 사로잡혀서는 안 되며 오직 중도의 생활을 통해서 조화와 평화를 이루어 나가야 한다고 설법하였
다. 바라문은 정치와 제사를 유지하기 위해 공물을 받아들임으로써 생계를 유지하였으며 또한 라아쟌, 바이
샤, 수드라 등으로부터 경제적 원조를 받기도 하였다.
그 사회는 일본 봉건 시대의 사농공상(士農工商)의 계급 제도와 흡사하다. 자기들의 종족을 지키기 위해 권
력, 무력, 경제력으로 계급 제도를 확립하여 약한 자를 노예처럼 부렸던 것이다. 신불은 전 인류에게 평등한
자비를 베풀고 있다. 인간의 지식과 의지가 만들어 낸 인종 차별은 신불에 대한 모독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사
람은 모두 평등한 신의 자녀이며 신의 육체로 만들어졌으며 이 세상에서 수행할 권리를 부여받고 있다는 사
실을 알아야 한다.
지구상의 모든 삼라만상은 신의 표현이며 원래 인간의 것이라곤 하나도 없다. 지구는 수행을 위한 장소일 뿐
이다. 그런데 지구상의 인간들은 어리석게도 권력, 경제력, 폭력 등의 집단 사회를 제멋대로 만들어 버렸다.
인간 차별은 옛 인도 시대의 계급 사회뿐만 아니라 현대에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언젠가는 사라지
게 될 것이다. 약한 자의 근면과 노력에 대해서 강자들은 언젠가는 그 가치성에 눈을 뜨게 되며 마음이 조화
를 이루게 될 것이다. 수호천사 가란씨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현대 사회가 불균형한 것처럼 바라문은 종족들의 일방적인 권위 의식 때문에 배타적이 되어 정법에서 어긋
난 길에 빠진 사람도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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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코사라국, 마가다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들이 라아쟌의 지배하에 들어갔으며 바라문 종족의 힘은 쇠
퇴하였습니다. 대 바라문의 지도자였던 나의 큰아버지 바바리는 그런 정국에 몹시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사회의 혼란은 신리가 지켜지지 않고 인간의 마음이 상실된 결과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런 시대에는 반드시 붓
다가 나타난다고 예언하고 있었습니다.
큰아버지는 신의 계시에 의해 코사라국의 카피라성에서 고다마 싯다르타라는 붓다가 나타나 지금 마가다국
의 도시 라쟈구리하 교외에 있는 구리도락터 다나에서 신리를 설법하고 있다고 하시면서 덧붙여 '붓다는 전
생과 이승과 저승의 세상을 모두 꿰뚫은 법력을 갖추었으며 깨달음을 얻으신 분이다'고 기뻐하였습니다.
그리고 '바라문은 학문적인 지식의 깨달음이지만 붓다는 마음을 깨달으신 위대한 분이다. 너희들이 이 붓다
에 귀의하여 마음과 수행법을 공부하도록 하여라'고 하시면서 한편으로는 바라문의 무력을 개탄하기도 했습
니다.
마침내 붓다에게 배울 사람의 인선이 끝났는데 저도 거기 뽑혔습니다.
나 마이트레이어, 사라난다, 토데야, 포사라 등의 여성이었으며, 최연소자는 푼나카, 멧타그, 청년은 도다
카, 헤이마카, 우파시바, 캇파, 난다, 바드라비다, 아지타, 우다야, 학자인 쟈토칸닌, 몽가라자, 그리고 나의
종형 핀가야가 40대의 나이로 일행의 책임자가 되었습니다.
남자 13명, 여자 4명, 도합 17명 일행은 한 방에 모여 백부님으로부터 여행에 대한 주의점, 붓다에게 드릴
질문 등 자세한 지시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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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위 부분, 2015년 6월 9일 현재, 다시 읽어보니, 남녀의 숫자에서, ..사라난다, 토데야, 포사라 등의
여성..에서 1명이 남자인듯 합니다.
나..는 인도 당시의 관세음으로 가리나 이며..
마이트레이어는, 미륵으로 개명한 여성이며...나중에, 마음의 발견 책이 있으므로, 확실히 확인해 보겠습니
다.
이 한글본은, 김해석님의 번역이기 때문에..
백부님은 당시 120세로 건강하셨습니다만 나이가 너무 많아 먼 마가다국까지 여행하기는 무리였습니다. 붓
다를 직접 만나보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을 우리 일행 17명을 떠나보냄으로써 달래시었습니다. 저를 보고 '이
제 마이트레이어와도 만나지 못하겠구나. 부디 붓다의 제자가 되어 자신을 깨닫기 바란다. 너의 이름을 미륵
이라고 개명하겠다. 미륵이란 자비와 조화라는 뜻이다'하면서 정답게 손을 잡아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무척 저를 아끼고 귀여워 해 주신 백부님을 하직하면서 저는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그리고 백부님은 일행에게, '나의 출생, 이름, 제자의 숫자 등 모든 것을 너희들이 말하지 않아도 붓다는 다
아실 것이다.
진짜 붓다라는 것이 확인이 되거든 신리를 잘 배워 훌륭한 제자가 되어라. 그리고 그 결과를 보고하기 위해
서 한 사람은 나에게 돌아오도록 하여라.
도중에는 험난한 계곡과 산짐승을 조심해야 한다. 핀기야는 단단히 책임을 지고 떠나라. 여자들도 남자처럼
사슴 가죽으로 된 옷을 입고 남자 옷을 입을 것, 위험할 때에는 남자들이 에워쌀 것, 서로 도와가며 여행할 것
이며 깨닫기 전에는 돌아와서는 안 된다'고 마음이 뜨거워지는 자비로운 송별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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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제 나이 21살이었습니다. 여행의 걱정보다는 고다마님은 어떤 분인가 그것이 궁금했습니다. 우리들은
백부님께 작별의 인사를 올리고 각자 집에 돌아가 여장을 갖추고 교회에 모여 새벽녘에 강가의 강둑을 따라
마가다국을 향해서 내려갔습니다."
가란 씨는 지금부터 2586년 전의 기억을 잠재의식에서 풀어내어 당시의 상황을 어제 일처럼 말하는 것이었
다. 아내의 수호천사는 나의 펜을 계속 움직여 다음 글을 써내려갔다. 독자 여러분, 내가 쓴 위의 글은 내가

[나는 붓다를 만났다]
아내의 수호천사가 다시 이야기를 시작한다.
"우리 일행은 강둑을 따라 동남쪽으로 내려갔습니다. 평지, 산, 계고 등을 타고 파타리가마까지 걸었습니
다. 핀기야는 사슴 가죽에 그려진 지도를 보면서 남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강의 지류를 타고 걸음을 재촉했습
니다. 상류에 있는 라쟈구리하 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저녁 무렵이었습니다. 처음 보는 마가다국의 도시에는
수행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랐습니다."
바바리가 미리 환기시켰던 것처럼 산과 계곡은 험난했으며 호랑이, 하이에나, 뱀, 산적들을 피하느라고 많은
고통을 겪어야 하는 힘들 여행길이었던 것 같다. 요즘 거리로는 약 4백 킬로미터 정도였다. 라쟈구리하 교외
에 높이 솟은 구리도락터 다나의 산정에 일행이 도착했을 때 고다마는 많은 사로몬들을 상대로 인간의 인연
에 대해 설법하고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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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일행은 맨 뒷자리에서 고다마님의 설법을 듣고 있었습니다. 아지타가 작은 목소리로 '고다마님이 머
리 둘레가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다'고 내 귀에 속삭였습니다. 아지타는 금세 영적인 눈이 뜨였던 것입니다.
설법이 끝나자 우리들은 고다마님 앞에 나아가 오른쪽으로부터 핀가야 이하 17명이 한 줄로 늘어서서 절을
했습니다. 고다마님은 '먼 길에 고생이 많았습니다. 바바리님은 언제나 건강해서 좋군요. 그분은 훌륭한 분
입니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백부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그분은 우리들 마음 속을 읽고 계셨습
니다. 몽가라쟈는 아지타와 함께 기쁨의 눈물을 흘리면서 고다마님 앞에서 엎드려 울었습니다. 가장 의심이
많았던 두 사람에게 그런 현상이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들은 붓다에게 감복하여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때의 설법은 생로병사(生老病死)에 관해서였다. 그들은 그때 마음이 어떻게 번뇌의 원인이 되는가를 잘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마이트레이어는 고다마 가까이에서 시중을 들었고, 법회를 시작하기 전에 종을 울
려 마을 사람들을 모으는 일을 했던 것 같다.
우파니샤드와 베다 공부를 많이 했기 때문에 모두 고다마의 신리를 금세 이해할 수 있었다고 수호천사는 말
해 주었다. 제자로 입문한 다음 날 핀기야는 바바리에게 보고하기 위해서 귀로에 올랐다고 한다. 바바리는 지
금 저승에서 높은 단계의 영적 위치에 있으며 불교에서는 아축여래하고 불리는 분이다. 그분은 이따금 아내
의 수호천사로 우리 집에 올 때가 있다.
인도 시대의 바바리가 바라문을 정법으로 바로잡기 위한 사명을 띠고 바라문 신분으로 태어났으며 마이트레
이어가 붓다와 중생과의 교량 역할을 하기 위해 바라문 신분으로 태어났다는 사실 등도 당시 신리의 계획에
따라 실현된 것이었다. 마이트레이어가 제자로 입문했을 때 고다마의 나이는 마흔이었다고 한다. 마이트레
이어는 40년 가까이 고다마의 종단에서 포교를 했으며 고타마가 81세의 나이로 구시나가라에서 실재계로
승천할 때는 62세였으며 그때 그녀는 벨르베나[기원정사]에 있었다고 한다.
※ 그녀는 벨르베나[기원정사] ??? 위에, 2015년 6월 9일 현재에 보니, 둘 중의 하나가 오역인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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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없어서,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가 없어서..
"고다마님이 입적하신 지 90일째 되던 날 마하 가샤파님을 중심으로 한 집회가 있다는 연락을 받고 우리들
500명의 제자들은 벨르베나 근교의 동굴에 모이게 되었습니다. 보현(보현)님 축근자들이 빠진 476명이 모
였습니다. 고다마님이 45년간 설법하신 내용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서 아난님이 중심이 되어 법문을 기억하
여 말로 전했으며 우파리[이발사 우바리]님은 수행승이 지켜야 할 계율을 정리했던 것입니다. 고다마님이 마
지막으로 하신 말씀은 이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믿어라'
'지금은 어둡지만 내일이면 동쪽에서 해가 떠오른다'
'내가 떠나도 너희들 마음의 세계에는 늘 내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라'
나는 그 말을 어제 들은 것처럼 기억할 수 있습니다."
생명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 그것을 알고 있는 우리들은 신리를 이어받아 인간들이 잃어버린 마음에 불법의
빛을 밝혀 주려고 하는 것이다. 올바른 법의 빛에 의해서 어느 날엔가 이 세상에 평화로운 유토피아가 건설
될 것을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다시 수호 천사는 말한다.
"나는 제1호 집합이 끝난 후 고향인 카파리로 돌아가 많은 제자들을 모아놓고 불교를 지도했습니다. 나는 장
래에 다시 육체를 지니고 쟌브토우바의 켄토마테에 태어날 것이며 그 도시는 아름다운 도로, 루비나 다이아
몬드 같은 보석으로 장식된 건물들로 숲을 이룰 것이며, 앉아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과 대화도 할 수 있는
편리한 세상이 될 것이라고 고다마님이 늘 나에게 예언하신 것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 때문
에 나는 미래불(未來佛)이라고 불렸으며 당시의 사람들과 함께 또다시 이 세상에 태어날 것을 유언으로 남
기고 이 세상을 하직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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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수호천사는 이와 같이 당시 인도에서의 생애를 대략 나에게 말해 주었다. 나는 저세상과 이세상이 너
무나 가까이 있다는 사실이 한없이 기뻤다. 지금까지 비과학적이고 비난받아 온 내 이야기가 사실로 밝혀지
고 있으니 말이다. 계속해서 아내의 전생에 대한 가란씨의 말을 쓰겠다.
"나의 분신은 그 후 5세기에 중국의 광동에서 태어났습니다. 이름을 만도라고 했습니다. 임장(林蔣)님, 관음
보살의 정법 포교에 협력했던 분입니다. 그분은 그때 이미 현재의 일본에 다시 태어난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
었습니다. 당시 나의 분신은 독신이었습니다."
그분은 매우 검소한 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마이트레이어가 태어났던 인도 시대와 만도가 태어났던 중
국 시대 사이에 나의 분신 크레타파우로타가 이집트에서 태어났다. 기원전 200년경이다. 이 분신은 그 후
19세기에 다시 일본에서 태어났었다. 마이트레이어의 분신은 그 후 일본의 전국시대에 지금의 나라에서 기
무라라는 마을 촌장의 딸로 태어났으며, 철이 들어서는 교토와 나라의 절에 가서 법문을 들었다. 교토에 나가
서 물건을 팔기도 하며 즐거운 일생을 보냈다고 한다. 이름은 미치코로 아내의 말씨와 매우 닮았다.
가란씨와 마찬가지로 불교에 대해서는 조예가 깊어, 내 생각과 비슷한 설법을 하기 때문에 나의 가르침을 받
은 것이 아닐까, 많은 사람들이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들 사이에는 신리에 관한 대화는 전혀 없었다.
미치코씨는 그 후 15세기 중국에서 다시 가란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유학을 공부해서 훈장 노릇을 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아버지도 교육자였으며 매우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으며 결혼해서 두 아이의 어머니가
되어 일생을 보냈다. 이어서 1969년 11월, 전생에 마이트레이어의 사촌이었던 핀기야가 일본에서 태어났
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당시 인도에서처럼, 어느 종교 단체의 간부로 포교활동을 하고 있던 중 내 강연을 듣고 전생에서처럼 신리에
귀의했던 것이다. 실업가로 큰 사업을 하던 사람답게 그는 지금까지의 종교적 사고방식을 버리고 자신의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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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의 세계로 돌아온 것 같다. 그전까지는 지식으로만 아는 종교 강의를 했는데 마음의 평화는 없었다고 말하
고 있다. 그 원인이 마음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았던 데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지금은 올바른 생활 방식을 되
찾았다며 기뻐하고 있다.
마이트레이어 일행이 구리도락터 다나에 도착했을 때 코스타니아 등 다섯 명의 최고 제자를 비롯해서 가사
파 형제, 샤리부트라, 마하 몽가라나 등이 귀의하여 이미 1.300여명의 종단을 이루고 있었다는 사실은 나의
수호천사도 설명하고 있는 바와 같다. 이러한 영적 형상이 우리 집을 중심으로 일어났을 때 형제들은 처음에
믿지 않았지만 차례차례로 실증되자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왔다.
마음의 평화를 얻으러 오는 자, 환자, 종교 단체의 첩자, 영감을 얻어 장사에 이용하려는 사람 등 그 내방자들
의 여러 종류였다. 하지만 나쁜 마음을 품고 온 사람들도 우리 신리를 듣도 더 이상 거짓말을 못 했다. 왜냐하
면 자기 보존, 자아의 욕심에 찬 그들의 마음속을 꿰뚫어보는 능력을 우리가 갖춘 이상 어떤 비밀도 술길 수
가 없었던 것이다.
우리들은, 이세상의 차원과 다른 저세상의 도움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처럼 전국 각지의 포교
가 되어 정법은 핵분열처럼 되어 각 그룹에서 다시 영험한 능력을 갖춘 자들이 나타나 신리의 증명에 활약하
고 있다. 그 중에는 신리를 설법한 빛의 천사들의 역사적 사실을 증명하는 자, 전문적인 학자, 영적인 눈을 가
진 자, 영적인 귀를 가진 자, 수호천사로 영적 능력자의 입을 빌어 설법하는 자 등등 제각기 역할을 담당하여
이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기적이라고 생각되는 이러한 현상은 모두가 다 저승에 있는 빛의 수호천사를 비롯한 여래 혹은 보살의 도움
으로 일어난다. 나는 이런 영적 사실을 토대로 어떤 신흥 종교를 만들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 지금쯤 내
글을 일고 내가 무슨 종교의 교주가 되려 한다거나 어떤 특정 종교 단체를 결성하려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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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오해는 하지 말기 바란다. 나는 지금 여러분들에게 오직 '마음'의 부활을
외치고 있을 뿐이다. 나는 여러분에게 단지 '자신의 마음으로 돌아가라'고 말씀드리고 있을 뿐이다.
언젠가 가을에 우리 부부와 누이동생은 핫초호리[八丁堀]의 오지마야[大島屋]에 초대되었다. 우리 부부가
함께 외출한 일은 별로 없었다. 우리는 그들의 안내를 바다 2층으로 올라갔다. 그 가게의 안주인은 신불에 대
해 광신적이었다. 어디든지 영명한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들으면 비행기를 타고 찾아가는 열성파였다.
그녀는 신앙에 열정적인 만큼 사업에도 열심이었다. 그러나 신앙은 뭘 모시고 빈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물
론 그 집 안주인이 가게를 할 수 있는 것은 팔 물건이 있으니까 하는 것이고 그것은 그들의 생활 기반이었다.
따라서 신앙은 자기들 사업에 대한 감사와 보은의 표시일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주인의 영적 능력에 관한 호기심은 누구보다도 강했다. 물론 신앙에 의구심을 갖는 것
은 탐구심에 도움이 된다. 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아래층에서 안주인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마쓰코야, 다카하시 선생이 오셨다. 한번 뵙고 말씀을 들어 보자."
때마침 그 집에 와 있던 안주인의 여동생은 놀란 듯 대답한다.
"나처럼 신불도 믿지 않는 여자가 그런 자리에 기면 어울리지 않으니까 그만두겠어."
안주인은 혼자 2층으로 올라왔다. 그녀는 종교와 관련된 사람들을 집에 자주 초대하는 모양이었다. 왜냐하
면 마쓰코의 ,'언니 변덕은 알아 줘야 해. 오늘은 또 어느 종교 교주를 불러들인 거야. 내가 못 살아'하는 푸념
이 내 마음에 전해져 왔던 것이다. 방 안에는 가게 주인의 도 다른 여동생 나쓰쿠리 부인이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아 내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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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인간의 생로병사는 어디서 그 원인이 있는가에 대해 얘기하고 있을 때 마쓰코가 차를 가져왔다. 그때 마
쓰코의 수호천사가 내게 인사를 했다. '본인은 아직 모르고 잇어요.' 마쓰코의 수호 천사는 옛날 인도 시대의
우파리의 비서를 담당하던 당시 젊은이들의 복장이었다. 나는 한 시간 정도 신리에 관해 이야기해 주었다.
그러자 갑자기 마쓰코가 울기 시작했다. 내 아내와 누이동생의, 인도에 살던 전생의 모습이 그녀의 역적인 눈
에 보였던 것이다. 금빛으로 싸인 미륵보살과 관세음보살상이 각기 육체 위에 이중으로 겹쳐 보였을 것이다.
머리 위에 둥근 빛 테두리를 보자 그녀는 놀라서 몇 번이나 착각이 아닌가 하고 눈을 깜박였다.
"맞아, 틀림없는 사실이야"
마쓰코는 마침내 울고 말았다. 나는 마쓰코의 불편한 다리에 빛을 넣었다. 그러자 굽혀지지 않던 다리가 금
방 나았다. 그녀는 자기 자신이 가장 신불과는 어울리지 않는 존재라고 여겼지만 맨 먼저 영적인 투시가 가능
해진 것이다. 그 결과 마쓰코는 사람들 마음의 조화도를 빛의 단계에 따라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
마쓰코의 남편이 음악가였던 까닭에, 음악을 통해서 조화라는 개념을 늘 마음속에 새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
녀의 전생은 인도의 데가라였다. 이름의 유래는 출생지의 지명이었다. 그당시 인도에는 같은 이름이 많았으
므로 곧잘 출생지를 대명사로 부르기도 했다.
또 몽가라나[木蓮]라는 이름도 많았다. 거기에 크다는 뜻의 마하를 붙여 마하 몽가라나라고 부르기도 하였
다. 마쓰코의 영적 투시가 금방 가능했던 것은 세 가지 이유에서였다. 그녀가 마이트레이어와 가리나를 전생
에 잘 알고 있었던 것이 그 첫째 이유였다. 둘째는 그녀가 붓다의 제자로서 비구니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
이었다. 또 마지막 이유는 그녀가 신리를 증명하기 위한 사명감을 전생에서 부여받고 나왔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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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석한 나쓰쿠리 부인도 남편과 함께 신리의 빛을 만나게 될 기회를 얻어 그후 정법을 일상 생활 속에서 실천
하고 있다. 두 분은 지금 신의 빛을 받아들일 만큼 마음의 조화가 잘 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팔정도(八正道)는 생활 가운데 있습니다. 자기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신불의 빛으로 정화시키는 것이 절대
적인 조건입니다. 여덟 가지 바른 길의 실천으로 자기 자신을 알고 자기 보존과 자아의 욕망에서 자유로워지
는 동시에 자기 이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더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서로 도아야 합니다. 그런 협력과 노력에는 자비와 사랑이 따라야 하며 보수를 바라지 않고
보살펴야 합니다. 그렇게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평화로운 삶을 누릴 수 있으며 빛의 세계에 통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내가 집회에서 그런 설법을 하고 있을 때 나쓰쿠리 부인의 잠재의식이 열러 전생에서 배운 온갖 경험들이 쏟
아져 나왔다. 부인을 이끄는 영은 1세기경 이집트에서 태어난 후리데라는 빛의 천사였는데 로마 시대에 예수
의 첫째제자 배드로 밑에서 기독교를 포교하고 병든 사람들을 위해 일생을 바친 사람이다.
부인의 생명의 본체 타타구리, 분신인 와이리야 스타데, 도안덴 환 덴 등은 육체적인 고행을 행할 때 부인의
마음과 조화하기 위해 매우 고생을 한 모양이었다. 부인의 주위에는 다시 6명의 영혼을 안내하는 사람이 나
타나서 제작기 자기가 태어난 나라의 말로 윤회란 무엇인가를 설명하고 있었다.
그 중에는15세의 한 학생은 전생에 인도 로시니강의 데바다성에서 살았던 여자로 야쇼다라 공주(석가의 아
내)의 친구였으며 그녀 이름은 화이리어라고 불렸으며 크샤트리아와 결혼했는데 남편이 싸움터에 나가 전사
한 후 불법에 귀의하여 비구니 생활을 했다고 당시의 말로 말했다.
그 당시 카피라성에 자주 드나들었던 식당 종업원도 영적인 길이 열려 화이리어를 기억해 내고 2천5백여 년
만에 다시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감격적인 장면을 보면서 윤회의 영원성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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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서 처음 시작하여 퍼져나간 신리의 불길은 누가 그것을 믿거나 안 믿거나 그 사실을 부인할 수가 없
다. 영적인 길이 열린 이들은 결코 광신자도 아니고 맹신자도 아니었다. 또 특이한 체질을 가졌거나 특별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늘 겸손하고 양전한 사람들이었다.
이처럼 5월은 오지마야 사람들의 신리의 증명자로서 등장한 기록적인 달이다. 나쓰쿠리 부인은 기원 1세기,
이집트의 세데리어라는 여자로 태어났으며, 베드로의 제자 오타오와 결혼하여 전도에 평생을 바친 사람이었
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 후리데는 그 부인의 결혼 중매를 섰으며 오타오는 후리데의 제자이기도 했
다. 이들은 현생에서도 부부로 살고 있다. 인연이란 이와 같이 뜨개질 할 때의 실이 어디론가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후리데는 부인의 입을 빌어 당시의 엣 언어로 말을 시작했다.
"나는 물질 지상주의에 빠진 중생들에게 불성(佛性)과 신성(神性)을 깨닫게 하기 위해 증인으로 지명되어
왔습니다. 본인은 나쓰쿠리 도쿠코를 안내하는 수호 천사 후리데입니다. 지금부터 나쓰쿠리 도쿠코의 잠재
의식의 문을 열어 그 속에 기억된 드라마를 당사자의 성대를 빌어 당시의 말과 일본어 통역으로 윤회를 설명
하겠습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신리는 실천으로만 그 가치가 나타난다. 마음의 문을 열고 우리들의 생명은 끝없이 전생에서 현생으로 현생
에서 후생으로 윤회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죽음은 결코 두려운 것이 아니라 다만 육체라는 껍질을 버
리고 자신의 본성인 광자체로 되돌아가는 것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육체는 늙었지만 그 주인
인 영혼은 차원이 다른 저세상의 새로운 광자의 육체를 갈아입고 삶을 바꾸는 것이다. 그 때문에 우리들 의식
의 기억의 방 안에는 모든 기억들이 영원히 비디오처럼 녹화되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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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두뇌는 오관이라는 신경 계통을 통해서 포착한 현상들을 육체의 주인이라 할 수 있는 의식에 전달한
다. 기억상실증은 뇌 속의 세포들이 의식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관한 수신 능력을 상실했을 때 일어나나다. 그
런 일들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큰 충결을 받았을 때나 조화를 이루지 못한 악령의 지배를 받았을 때 일어난
다."
또 다른 수호천사는 전생과 윤회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기원전 1만년 경 광대한 아틀란티스 대륙의 험악한 자연 환경 속에서 가족을 보호하면서 살고 있었습
니다. 그때 우리들은 눈으로 악마를 볼 수 있었으며 삶의 환경은 참으로 나빴습니다. 우리는 숲과 동굴에서
살면서 좀더 살기 좋은 곳을 찾아 헤맸습니다. 그때 고생하던 생각을 하면 현대인의 불평불만은 정말 사치스
러운 일입니다. 지금 나끄쿠리의 지도를 맡고 있는 후리데가 1세기 이집트에서 태어났을 때에는 그의 영혼
을 인도하고 있었죠. 후리데는 훌륭한 남자였죠. 내 이름은 호회로와우였습니다."
생명의 윤회 과정에서 인연이라는 것은 그처럼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에 사람의 영혼은 보호를 받거나 지도
를 받아야 한다.
"나는 기원전 7천년 경 아틀란티스 제국에서 산 화우리어라는 남자입니다. 나는 아가샤 대왕님을 모신 관리
였으며 정치에도 관여하고 있었습니다. 그때는 문명이 꽤 발달했고, 국민들도 생활이 풍족했습니다만 사람
들의 마음은 흐트려져 있었습니다. 그런 세상을 우려했던 아가샤 대왕님은 신리를 설법하면서 자연의 은혜
에 감사할 것을 호소했습니다만 악마에게 마음을 판 사람들은 대왕님과 나를 체포하여 군중들 앞에서 본보기
로 처형했던 것입니다. 그때 함께 처형된 사람들이 이름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다리아(여) 호로리아(여) 호리오(남) 세제라도우(남) 호토레(남) 회리데(남) 호레세우로아르(남) 도와라토
데(여) 디세페라(여) 제리세오(남) 후로와(남) 슈체레야(여) 디레라우(남) 호레세데유아르(남) 야와토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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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회세타와토우(남) 제와라(남) 토레와세레우(남) 호데레야(여)
이상은 모두 생명이 영원하다는 것을 믿고 언제나 함께 살기를 서로 약속한 동지들이었습니다. 그밖에 아가
샤 대왕님이 설법을 믿고 따르던 많은 사람들은 동굴속에 갇혀 생매장 당했습니다. 악마들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런 잔인한 짓을 예사로 해치웠던 것입니다. 나는 대왕님으로부터 죽은 후의 세계에 대해서 설명을
잘 들어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즉 죽음에 대한 공포는 육체에 대한 집착이 강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며 살
고 죽는 것은 마치 옷을 갈아입는 것과 같은 것임을 알고 있었으므로 죽음에 대한 공포는 전혀 없었습니다.
미래의 그 언젠가는 다시 육체를 지니고 태어날 때에도 대왕님을 모시고 함께 신리를 포교해 나가자고 서로
약속했던 것입니다."
그 시대는 악이 번창하던 시대였으므로 선량한 사람은 몹시 고통을 받고 있었다.
"당시 사람들은 선악에 대한 올바른 판단력이 부족하여 몹시 부조화스럽고 어두운 상념에 사로잡혀 있었습
니다. 아틀란티스 제국은 신의 사명을 띠고 신리를 펴는 빛의 천사들을 처형했기 때문에 마침내 신의 버림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대륙은 검은 상념에 뒤덮여 신불의 빛을 받을 수 없게 되자 바다 속으로 함몰해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우리들은 늘 태양을 믿었으며 만물에 감사하면서 마음의 태양을 구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날의 사람들은 참으로 행복합니다. 정법을 설하는 사람들이 세상에 나와 있기 때문에 신의 버림을 받게 될 일
도 없으며 부조화를 조화로 이끌 수도 있습니다. 참으로 행복합니다. 한편 그때의 나다리아님은 후일 인도 시
대에 출행한 마이트레이어[미륵보살]라는 분입니다. 호로리아님은 관세음보살이라 불렸던 분입니다."

[내 운명은 전생에서 선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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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우리는 전생의 기억들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신리를 펼치는 천사들이 전생에서 이 세상으로 다시
태어날 때는 언제나 혼자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무리를 지어 내려온다.
그것은 아틀란티스 시대나 지금이나 같다. 그처럼 윤회의 과정은 전생에서도 부모 자식이나 형제자매나 친
구 관계나 혹은 사제 간의 관계를 맺어 지금 세상의 인연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지금 인연을 맺고 사는 사람들은 모두 전생에서도 관련이 있었던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잊
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은 이 세상뿐만 아니라 저세상에서도 관청이 있어서 자기 이름을 주민등록번호처럼 등록하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사람은 이 세상에 출생하기 전에는 모든 일을 그쪽 행정에 따르도록 되어있다.
물론 그 모든 일들은 본인의 희망에 따라 이루어진다. 따라서 여러분과 깊은 인연을 맺고 사는 사람들은 모
두 전생에서 여러분이 선택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 우연히 태어난 것이 아니다. 또 이 시대에 태어났거나 이 나라 이 집안에서 태어난 것도
우연히 아니라 본인 자신이 전생에서 선택했다는 뜻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전생에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
로 관계가 깊었던 이들과 함께 무리를 지어 지금의 환경과 시대와 배경을 선택해서 태어났다. 그것이 전생과
현생의 관계이다.
대체로 우리들을 보화하고 안내하는 영은 우리들로 하여금 인생에 대한 의문을 품게 히고 그 의문에 해답을
얻을 수 있도록 해 주고 있지만 깨달음이란 자기가 해야 하며 또 그렇게 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 깨달음의 속
성이다. 남의 깨달음이 자기의 깨달음이 될 수 없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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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우리가 매일 생각과 행위의 옳고 그름을 반성하고 있는 한 사람은 세상에서 살게 된 사명과 목적을 저
절로 알게 되어 있다. 그리고 그것을 알게 되면 지구상의 모든 인류는 모두 신불의 자녀들이며 형제들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미 독자 여러분은 인간의 생명을 영원불멸하며 그 생명은 육체를 만나 아틀란티스, 이집트, 인도, 중국, 일
본 등에서 여러 차례의 생을 살았다는 것을 수호천사들의 증인으로 알게 되었다. 여러분도 전생에서 그렇게
살았다. 즉 사람의 혼령이 탄 육체라는 배는 바뀌어도 그 선장인 의식 즉 영혼은 조금도 바뀌지 않고 계속 배
를 바꾸어 탄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사람은 일단 육체라는 배를 바꾸어 타면 그 배의 눈과 귀와 코와 혀와 몸과 의지의 여섯 가지 뿌리를
가진 번뇌에 사로잡혀 버리는 바람에 본심을 잊게 되어 자기 자신을 모른다. 마음의 세계는 우주 공간처럼 무
한대이다. 또한 마음속의 잠재의식 속에는 우리들의 살아온 모든 것들이 기록되어 있지만 단지 육체의 표면
의식이 그것을 모르고 있을 뿐이다. 윤회는 끝없이 이러지고 있는 것이다.
화우리어는 아틀란티스 제국에서 살다가 죽은 후에는 지금의 남미 페루에서 남자로 태어났다. 그 나라 왕은
리엔토 알 크라우도라는 이름의 육체의 배를 타고 있었다. 나쓰쿠리 부인도 같은 시대에 태어났다.
"나는 지금부터 4천 년 전 지금의 페루에서 태어났습니다. 이름은 센체라 알 칸토였으며 왕의 식사를 책임진
궁궐의 주방장이었습니다. 왕은 자비로운 분이었고 공주는 나자레로 미륵보살이 전생이었습니다. 당시 페루
는 고대 이집트 문명의 영향을 받아 산 속에 위치하고 있었지만 문명은 발달했습니다. 왕은 늘 신앙에 대해
말씀하셨으며 국민들은 태양신을 믿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칸타레'라는 말은 '하레'란 마음을 말합니다. 한
때 외국의 침략을 받았을 때 왕은 국민들의 파멸을 막기 위해 스스로 왕위에서 물러나 인디오들과 함께 산중
에 숨어 신리를 쫓아 살았습니다. 인간은 모둔 평등하며 태양도 인간을 차별하지 않습니다. 거기서는 모두가
태양의 자손들이었으며 신의 자손들답게 조화된 마음으로 농사를 지으며 즐겁게 살았습니다. 오늘날 안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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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 산맥의 페루보다 더 높은 고지였습니다. 이윽고 침략자들이 살던 평지는 불타는 지옥으로 변해 많은 사람
들이 죽었습니다."
"고시바씨는 그때 나와 함께 있었습니다. 그분은 이후 인도에서 태어나 수브티라는 이름으로 살았습니다. 나
쓰쿠리 부인은 이후 회리가라는 이집트 여자로 태어나 오데야 라카르수티 장군의 부인이 되었습니다."
이어서 그녀는 다시 기원전 600년경 인도의 남자로 태어나, 번뇌를 없애는 길은 육체고행에 있으며 깨달음
도 거기 있다고 생각하여, 가야 다나의 가시밭에서 참선을 하며 몸을 불에 태우거나 땅 속에 묻는 온갖 고행
을 수행했다고 말했다.
"나는 와이야리스 스타디입니다. 어느 날 많은 수행자들과 함께 수행을 하고 있는데 고뇌에 빠진 청년이 찾
아왔습니다. 나는 그 젊은 청년에게 가혹한 고행을 하는 사람일수록 존경을 받을 수 있으며 인간은 늘 고통
을 견디는 생명이라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청년은 왜 그래야 하느냐고 내게 물었습니다. 나는 말했습니다.
"이만한 것은 별로 고행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천상계에 태어나기 위해 우리들의 번뇌를 없애는 길은 육체
고행뿐입니다."
내 말에 청년은 깊은 생각한 끝에 말했습니다.
'즐거움을 찾기 위해 고행을 해야 한단 말이오. 천상계에서 아무리 즐거웠다 해도 이 지상계에서는 또다시 괴
로워해야 하다니오. 고행을 하면 정말 천상계에서 즐거울 수 있을까요. 그리고 태어나면 어떻게 될까요.'
나는 이 청년이 고행에 겁이 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청년은 조용히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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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행은 충분히 인정하지만 고행을 통해 대가를 바라면 고행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고통과 즐
거움 역시 영원히 윤회할 뿐입니다.'
나는 청년이 '마음'이 무엇인지 깨달은 것으로 직감했습니다. 그 청년이야말로 위대한 깨달음을 얻게 될 분이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청년이 바로 카피라성의 크샤트리아 고다마 싯다르타[석가모니불]였습니다. 나
는 그때 이미 79세의 노령으로 이세상에서는 붓다의 법에 귀의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저승에 가
서 오랫동안 수행을 쌓았습니다. 그런 까닭에 지금 여기 육체를 지니고 살고 있는 나쓰쿠리 도쿠고는 육체 수
행도 하지 않고 신리를 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나의 간절한 염원이었습니다. 참으로 고맙습니다."
와이야리스 스타디는 당시의 인도말로 감격의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이어서 그는 1세기의 이집트에서 태
어났던 여자로 바뀌어 이집트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집트에서 태어난 세데리어입니다. 우리 집은 사막의 오아시스에서 낙타를 타고 오는 상인들을 위해
식당을 경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의 제자인 베드로 일행이 왔습니다. 나는 중생들의 마음에 평안을
주기 위해 베드로의 제자 오타오와 결혼하여 그리스도의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나는 아직 공부가 부족하기
때문에 더 많은 정법을 실천을 통해 체험하고 싶습니다."
그때 후리데님이, 주인과 친분이 있었으므로 부부의 수호천사로 있다는 말을 덧붙인다. 그녀는 이후 티베트
에서 남자로 태어났다. 그의 티베트 발음은 유창했다.
"저는 지금으로부터 1450년 전 티베트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난 나쓰쿠리 도쿠코의 본래 육체인 타타구리
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불교에 귀의하여 히말라야에서 육체 고행을 한 라마승이 되었습니다. 당시 인도로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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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위해서는 티베트를 통과해야 했는데 그때는 인도로 가는 고승들이 많았습니다. 저는 중국의 스님들을 우
대한아는 것을 그분들을 통해 알았으므로 나도 스승을 찾아 중국으로 건너갔던 것입니다. 당시 중국에는 천
태지의라는 고승이 있었습니다. 나는 긴 여행 끝에 마침내 천태산에 입산하여 천태교에서 법화경(法華經)
을 배웠습니다. 그때 오노 이모코라는 일본인이 유학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오노 이모코를 통해서 일본을 알
고 일본으로 건너갈 계획이었습니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기악 예술가와 공예가 등 일본에 파견
되는 중국 문화 사절단이 구성되었던 것입니다. 그때 일본의 태자가 법화경을 공부하고 있었으므로 제가 가
도록 지명을 받아서 저는 친구 다쥬, 치코다 라쟌과 동행했습니다. 라쟌은 글을 잘 써서 경전을 정리하는 역
할을 맡아 후에는 일본에 귀화했습니다. 구마지라우님은 라쟌의 육체적 선조입니다. 그때 제 누님 이가라시
마쓰코는 소가의 딸로 살고 있습니다. 누님의 남편은 샨 민얀, 남편의 동생은 겐 민얀이며 기악의 대표자로
서 수나라의 음악을 전했습니다. 오노 이모코 씨는 훌륭한 사신이었습니다. 일본이라는 나라가 풍족한 대국
이라는 것을 중국인에게 인식시킬 수 있었던 것은 이모코 씨가 그만큼 위엄을 갖춘 인격자였기 때문입니다.
현재 제 어머니는 그때 우리들 일행이 도중에 머물렀던 마음에 살면서 많은 보시를 해 준 친절한 부인이었습
니다. 어느 때는 긴 여행에 지쳐 스러질 지경이 되었을 때도 있었습니다마는 그처럼 친절한 분들의 도움으로
목적지까지 무사히 갈 수 있었습니다."
그처럼 본래의 육체 타타구리는 온갖 고생을 하면서 티베트에서 중국으로, 다시 일본으로, 일생을 나그네로
배로 혹은 말로 세 나라를 여행하셨던 분이다. 우리들은 저마다 신의 특사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나는 8세기에 도완덴 환 덴이라는 중국 남자로 태어났습니다. 내가 태어나던 당시의 중국은 문화가 발달되
어, 학문을 닦아 관리가 되는 것이 가장 빠른 출세의 길이었습니다. 나는 유학을 공부하여 입신출세하는 것
이 희망이었습니다. 외동아들인 분덴완은 현재 내 남편 누님의 아들로 중학교 2학년 생인데, 14년간 천식으
로 고생하다가 신리를 배우고 실천하여 완쾌했지만 결국 죽은 후에는 인생의 무상을 느끼고 일체를 포기하
고 출가했습니다. 그 후 천태산의 스승을 찾아 불교를 공부했습니다. 당시의 스승은 도완 덴 엔이라는 노승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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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현재 일본 도쿄 세다야에서 살고 있음). 따라서 나는 지금도 법화경을 기억하고 그 해설이 가능합니
다. 그때 천태산에는 일본의 사이죠 스님도 유학하고 있었으므로 8개월 동안 함께 법화경을 공부했던 사이입
니다. 그후 사이죠 스님의 권유를 받아 천태교를 포교하려 일본으로 건너가 히에이산 연력사(延歷寺)에서
젊은 승려들을 상대로 볍화경을 강의했습니다. 나는 사이죠 스님의 손님으로 특별대우를 받았습니다. 당시
의 연력사는 산중턱에 있었고, 암자에 불과했으나 그 후 절이 확장되었습니다. 나는 일본에 귀화하여 이름을
겐신으로 개명했습니다."

===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2)(다카하시 신지)
갯밭무시
가르침과 배움의 글들
・ 2021. 7. 10. 18:43 URL 복사  이웃추가
[악령들이 노리고 있다]
어떤 영적 현상이 나타나면 사람들은 그것을 최면술이라고 말한다. 최면술을 최면을 거는 사람과 최면에 걸
리는 사람과의 암시라는 교섭이 있어야 한다. 자기 최면술 역시 자기 자신에게 암시를 걸어야 가능하다.
그럼 영적 현상은 무엇인가. 지금까지 독자들이 읽은 것처럼 영적 현상은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
에서 일어나는 상태이다. 그리고 그것은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자기의 의지가 강하게 작용했을 때 나타난
다. 또 그것을 통하여 자기를 지켜 주는 수호천사나 자기를 지도하는 영적인 대상을 분명히 인식할 수 있게
된다. 사람은 아주 높은 차원에서 자기 자신을 움직이는 영혼이 의식을 지배할 때는 몸이 크게 확대되는 느낌
을 받게 된다.
그때 우리는 다른 사람의 수호천사와 이야기도 할 수 있게 된다. 그때 우리는 그 사람이 어디서 어떻게 태어
났는지와 그 사람의 내력은 물론 지금의 생각과 의문과 해답까지 알 수 있게 된다. 그 영은 자기가 지키는 당
사자가 선행을 할 때만 말을 건네는 경우도 있다.
독자 중에는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믿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만일 그런 의문을 갖고 계신 분은 나
와 실험을 해 보면 금세 알게 될 것이다. 사실은 나를 만날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모든 수호천사들
을 즉각 불러서 당신에 관한 것들을 알아내면 되기 때문이다. 나처럼 영적인 눈이 열린 사람들은 사람을 보
면 그 사람의 의식이며 마음의 상태까지 모조리 꿰뚫어볼 수가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전부다. 현세의 이익과 행복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수호천사를 기대하기
어렵다. 자기가 뿌린 죄의 씨앗은 곧 자기 자신이 거두어들인다. 이것이 인간의 철학이며 사람은 그 죄의 대
가를 현세보다 훨씬 더 무서운 곳에서 치른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만일 이세상이 아닌, 또 다른 세상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태어나기 전에 이 세상을 어떻게 말
했을 것인가. 우리가 자면서 꾸는 꿈의 세계는 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꿈은 단순한 의식의 잔영이나 희롱
이 아니라 또 다른 영혼의 서식처이다.
사람은 본래 영적인 능력을 지니고 태어났다. 단지 육체의 번뇌에 지배되어 있어 마음의 조화를 이루지 못하
기 때문에 잠재의식의 90%와 표면 의식이 10%의 다이얼이 잘 맞지 않고 있을 뿐이다. 바른 마음으로 살
고 행동하면 누구나 영적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사람은 바른 생각과 행위에 따라 각자가 원하는 목적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러면 누구나 그 목적에 알맞은 영이 나타나 우리들의 의식에 협력한다. 흔히 사람들
이 말하는 육감이 그것이다. 주위에서 무슨 일에 몰두하는 사람이 '이제야 감이 잡힌다'고 말하는 것을 보았
을 것이다. 바로 그 육감은 여러분이 하고자 하는 일에 큰 협조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최면술은 의식의 중심인 마음의 왕국을 자기 이외의 지배자의 암시에 의해서 팔아버리는 행위이다. 그때 만
일 조화를 이루지 못한 어두운 세계의 영이 의식을 지배하면 당신은 미쳐버릴 수 있다. 자기 자신을 잃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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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3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2)(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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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을 수 없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여우는 더운 여름날 땅바닥에 엎드린 개처럼 혀를 빼물고 금세 자기 정체
를 드러내고 만다.
짐승의 혼 가운데 뱀의 혼령은 사람의 허리와 다리에 빙의 된다. 뱀의 혼이 머리에 붙으면 사고 능력을 상실
한다. 지금 후지산에서 보살을 자칭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동물의 혼을 뒤집어쓴 사람들이다. 그들의 영혼
은 아주 혼탁해 있다. 후지산이 영험스러운 산이라는 말은 옛말이 되고 말았다.
신리를 깨닫지 못한 채 영적 현상만 쫓아, 육체적 고행을 통해 번뇌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수행자는, 바로 그
육체적 고통에 마음을 빼앗겨 짐승의 혼이 보살의 모습으로 둔갑한 것을 목격한다. 따라서 그들은 보살을 보
았다는 착각에 빠져 마침내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행세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인간은 누구나 다 수행과는 관
계없이 신불의 자손들이다. 악령은 비슷한 거짓 신리를 뇌까려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질투, 비방, 노여움
의 감정을 거침없이 노출시키며 공양을 요구하고 금품을 헌납하도록 강요한다.
말하자면 자신의 권위를 위해서 형식적인 종교 의식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들은 저주하는 주문을 외우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이 저주하는 대상이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일 경우에는 그 저주의 말이 고스란히 자기에게
되돌아가는데도 그들은 그것조차 모르고 있다. 자비가 없는 신앙, 우리가 흔히 말하는 무자비는 바른 이치
정법이 아니라 사악한 법이다. 우리는 그런 일을 아주 잘 깨달을 수 있다.
하물며 자기를 위해서 남이 불행해지도록 기도하는 종교는 언급할 가치도 없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들은 그
것이 정법인가 그른 법인가를 판단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여기서 마음의 눈이 열린 사람의 예를 하나
소개하겠다.
일본의 사이타마라는 곳에 사는 휴우가 치가코는 신리를 실천한 결과 마음의 눈을 뜰 수 있었다. 그래서 그
는 자기가 기원전 5세기경 인도의 시라바스티에서 스탓다 장자의 딸로 태어났던 전생을 알게 되었다. 마음
의 눈으로 전생의 자기 영혼을 볼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제다베나에서 고다마 싯다르타를 비롯한 많은 제자들이 스닷타 장자의 공양을 받고 있는 장면을 보았
다. 어느 날 새벽 2시경에 그의 어머니는 어두운 집 안이 갑자기 부드러운 황금빛에 싸여 대낮처럼 환하게 밝
아지면서 관세음보살이 나타나는 것을 목격했다. 이후 관세음보살은 마치 살아 있는 사람처럼 자주 나타났
다.
그의 어머니 눈에 관세음보살이 보인 것은, 관세음보살의 분신으로 일본의 헤이안[平安] 시대에 살았던 시
라기쿠씨 덕분이다. 나는 전생에 내 수호 천사로부터 그 말을 들었다. 나도 시라기쿠 씨에게 말을 들었다.
"저분은 나이가 많으셔서 내가 나타나면 이세상말고도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더 빨리 이해시킬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저분은 나를 보더니 그만 이불 위에 끓어앉아 합장하면서 감사하다는 말을 계속 했습니다."
그는 부드러운 말씨로 말했다. 그밖에 대흑천(大黑天)이 가금씩 그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그분은 스탓다라
는, 당시 인도에서 신리를 설법하는 분들의 경제적인 뒷받침을 하던 분이었으며, 그분이야말로 현세에서 돌
아가신 나의 아버지였다.
5세기경 중국에서 천태대사(天台大師)를 경제적으로 도와 주신 분이 스탓다의 분신이었다. 그가 대흑천으
로 가끔씩 모습을 나타내곤 한다. 불교에서는 정법 폭에 협력해 주신 분들을 대흑천이라고 부른다. 인도에서
스탓다의 딸이었던 휴우가 치가코는 선정 중에 저승으로 올라가 아름답고 평화스러운 곳을 종종 구경하고 돌
아온다. 우리 영적 능력자긍른 수호천사를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을 꿰뚤어보기도 한다.
최근에는 3시간 동안 선정 삼매(禪定三昧)에 빠져 저세상에서 총천연색 영화를 보고 온 모양이다. 옛 인도
시대에 마하 몽가라나나 아르닛다가 마음의 눈을 열었던 것처럼 우리 그룹에서도 영적 능력자들이 나타나 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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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3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2)(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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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 의식의 문을 열고 마음의 눈을 뜨고 있다. 이케가미에 사는 이가라시 부인도 인도 시대 데가라라는 이름으
로 우파리의 비서였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
그분도 마음의 눈으로 다른 사람들의 마음 상태, 빙의령, 수호천사 등을 투시할 수 있게 되었다. 마음의 조화
가 이루어진 비례에 따라 몸에서 나오는 후광의 상태를 똑똑하게 볼 수가 있다. 가정도 마찬가지다. 마음이
하나로 조화가 잘 된 가정을 빛에 싸여 있으며 조화를 이루지 못한 집안은 어두운 상념의 빛에 덮여 있는 것
이 보인다.
어두운 가정에서는 질병, 사고 등 여러 가지 부조화 현상이 일어난다. 이 윤회의 신리를 설명하기 위해서 지
금 일본을 비롯하여 미국, 영국, 남미, 프랑스, 대만, 한국, 필리핀, 독일 등 세계 각국에는 우리 동포들이 육
체를 지닌 채 증인으로 태어나 살고 있다. 저마다 신리의 빛과 인연을 맺고 그 사명을 완수하도록 되어 있다.
왜냐하면 그런 일은 모두 이세상이 아닌 저세상의 빛의 천사들에 의해서 계획된 일이기 때문이다.
영청(靈聽)이란 이세상의 소리가 아니라 다른 세상의 소리를 귀로 들을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마음이 눈과
마찬가지로, 정법을 깨닫고 생각과 행도이 일치한 생활을 하는 사람에게는 우리들 영혼의 형제들은 잘못된
생각을 지적해 주고 인간으로서의 목적과 사명감을 일깨워 주기도 하며 저세상의 삶에 관해 얘기해 주기도
한다.
선조가 육체를 지니고 이 세상에서 살았던 당시와 똑같은 말버릇으로 이야기해 줄 때도 있다. 수호천사는 당
시의 육체를 지닌 당사자와 특별한 관계가 있는 혼을 소개해 주기도 하고 좋지 못한 혼은 거부를 표시할 때
도 있다.
우리들의 분신이나 육신의 본체가 직접 말을 걸어올 때도 있다. 그들은 한결같이 개성이 뚜렷하다. 외국인의
분신이나 본체도 마음은 똑같이 신리에 통달해 있으며, 영혼의 형제들은 국적이나 피부색과는 상관없이 모
두 신의 자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내가 강연을 하고 있을 때에도 그들은 '목소리를 아랫배에서 내라'
'아랫배에 힘을 줘라' '좀 천천히 이야기해라' 같은 말로 충고해 준다.
경제계의 사토 마사다다 사장의 수호천사는 인도 시대 파세나테와 빈비사라 왕과 절친한 사이였으므로 손짓
몸짓으로 그 당시의 이야기를 상세하게 들려주었으며, 지금 육체를 지니고 있는 사토 사장을 비판하기도 한
다. 사장의 출생 당시부터 오늘날까지 경력과 사람됨을 들려주기도 했다.
이처럼 영적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해도 우리들은 어디까지나 육체를 지니고 수행하고 있는 몸인
만큼 저세상의 사람만을 상대하고 믿어서는 안 된다. 그들도 각자 일을 하며 수행하고 있으므로 그들의 생활
에 지장을 주어서는 안 되고 자주성이 있어야 한다. 잘못이나 실패도 발전을 위한 경험이다. 고통도 영혼을
닦기 위한 수련이며 인내를 기르기 위한 한 방법이다.
우리들과 깊은 관계가 있는 분들이 몸이 불편해서 괴로워하고 있으면 반드시 그의 수호천사가 '어디 어디가
어떻게 나쁘니 본인에게 전해 주시오'라고 가르쳐 준다. 인생이 얼마나 뜻깊은 것인가를 이해하면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정법을 깨닫지 못하고 영적인 감응만을 구하는 사람들은 자칫 악령에 지배되기 때문에
수호천사들도 접근하지 못하고 그저 멀리서 바라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본인이 정법에서 벗어난 생활을 하고 있으면, 어두운 상념에 의해 영혼이 흐려져서 수호천사들과
파장이 맞지 않아 통신이 두절되기 때문이다. 지옥계의 영은 그런 사람들에게 여러 사악한 말들로 마음을 불
안스럽게 한다. 어떤 늙은 할머니는 악령이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너는 차를 타지 말라. 반드시 트럭과 충돌해서 트럭이 너를 죽일 것이다."
참으로 걱정스러운 일이다. 또 어떤 때는 '저 집 사람들은 모두 악마들이니 말을 해서는 안 된다'면서 제3자
를 나쁜 사람으로 몰아붙이는 경우도 있다. 또 수호천사가 신선의 세상이나 천구계(天狗界)의 영적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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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3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2)(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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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경우에는 육체를 지닌 자의 영적 길을 열어버리는 수도 있다. 마음이 정법을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마음에 구름이 끼어 부조화한 영의 지배를 받아 일생을 폐인으로 마치는 경우가 많다.
[여덟 마리의 공작새는 어디로 날아갔는가]
많은 사람들이 꿈에 영적인 현상을 경험하고 있다. 만일 여러분의 영혼이 육신을 벗어나 90%의 잠재의식
속으로 들어가 다른 세상에 갔다 올 경우에 비록 의식이 자신의 육체로 되돌아오더라고 그 기억이 전혀 남지
않는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간밤에 한 번도 꿈을 꾼 적이 없다고 하더라고 꿈을 안 꾼 것이 아니라 거의 90%의 잠재
의식 속에 있었기 때문에 잠에서 깨어나도 기억할 수 없을 뿐이다. 그래서 꿈을 안 꾸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러분이 10% 정도의 표면 의식 상태에서 저세상을 보고 올 경우 기억이 남는 수가 많다. 자연의 풍
격이 컬러로 보였다거나 낮선 사람과 얘기를 했다거나 누가 나타났다거나 하는 등등의 꿈은 여러분의 전생
의 한 장면일 경우가 많다. 또 장차 일어날 일을 꿈에서 미리 볼 수도 있다. 그때 꿈의 거의가 다 영적인 꿈이
라고 해도 틀림이 없다.
현몽(現夢)이란, 죽음을 앞둔 영혼이 친한 사람에게 나타나 무언가 이별의 말을 하러 꿈에 나타나는 현상을
말한다. 이런 현상은 우리들의 감응력보다 죽은 사람의 영혼의 파장이 더욱 강력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
이다. 그런 체험을 하는 사람은 아주 많다.
마음을 잘못 먹어 생활이 불안한 사람은 좋은 꿈을 꿀 수가 없다. 좋은 꿈이란 편안함을 느끼고 마음에 부담
이 없는 평화스러운 꿈을 말한다. 악몽은 욕망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악몽은 의식이 지옥에 떨어져 있어
서 마음의 평안을 찾을 수 없을 때 꾸는 꿈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숙취처럼 골이 아플 때가 있을 것이다. 그것
은 당신의 수호천사가 잠자는 동안 나쁜 생각을 닦아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럴 때는 어제의 일을
잘 반성해 보면 반드시 기억나는 일이 있을 것이다.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을 정법을 실천하고 잠자리에
들 때,
"수호천사여, 제 마음을 닦아 주십시오"
이렇게 진심으로 기도하면 자신의 마음이 닦아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다음날 아침에 숙취 때와 비
슷한 증세가 얼마쯤 있겠지만 그 다음 날부터는 딴사람처럼 머리가 맑아질 것이다. 그때 주의할 것은 3분의
1 정도만 닦아달라고 부탁해야 한다. 전부 부탁하면 호흡 곤란을 일으킬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마음의 조화를 이루지 못한 사람일수록 마음의 따를 벗기는 데 힘이 든다.'
그것은 수호천사의 가르침이 있기 때문이다. 마음의 조화에 따라 가볍게 눈을 감으면 눈앞이 황금빛으로 덮
이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되고 평화로운 자연 풍경이 보이기도 하며 깨어 있는 상태에서 차원이 다른 세계를
볼 수 있게 되기도 한다. 참선 중에 또 하나의 나인 광자체가 차원이 다른 세계나 자신이 원하는 곳이나 사람
을 만나보고 올 수 있다. 마음의 조화가 높아질수록 그 힘은 막강하다. '또 하나의 나'가 육체 이탈을 할 수 있
는 것은 영혼의 형제들이 도와주기 때문에 가능하다. 우리의 마음은 정법 생활을 통해서 조화되어 평안할 때
에는 별다른 저항없이 이탈할 수가 있지만, 어두운 상념을 지니고 있을 때는 몹시 고통스러운 일이 된다. 그
때 심장이 짓눌리는 고통이 오는데 이것은 몸에 힘이 주어지는 탓이다.
그 원인은 육체에 대한 집착이 강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고통이라고 볼 수 있다. 육체로 이탈한 광자체는 아
주 가볍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의 본래 육체는 참선의 자세 그대로이며, 누워 있을 때는 누운 상태 그대로
이다. 자신의 육체를 자신이 바라본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천상계에 갈 때는 엘리베이터를 탄 것처럼 돔 속을 맹렬한 속도로 상승한다. 여러분 중에는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우리들의 영혼이 몸에서 빠져나갈 때는 바로 어두운 돔 속의 빠른 속도를 느끼게 된다. 별
들이 마구 뒤로 멀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바람 소리가 귓가를 스친다. 죽은 사람들이 중간까지 따라올 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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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 하지만 빛의 정도에 맞게 문이 자동으로 열리는 저세상의 이치에 따라 그들은 마음의 조화도에 맞는 빛
의 단계에 떨어져나간다.
왜냐하면 육체를 이탈한 광자체는 그 광자[빛]의 양이 마음의 조화도에 비례하기 때문에, 이미 어디로 착륙
할 것인지 결정이 되어 있다. 내가 착륙하는 곳은 늘 비둘기 같은 아름다운 새가 신록의 숲 속을 날아다니며
노래 부르고 있다. 평화롭고 푸르고 부드러운 융단 같은 잔디가 깔려 있으며 온갖 빛깔의 꽃들이 자지러지게
피어 있다.
마음에는 여러 모습이 복장을 한 사람들의 정답게 이야기하면서 여유 있는 생활을 즐기고 있다. 그들은 모두
역사에 나오는 인물들이다. 그곳의 영적 공간은 격조가 높은 곳이며 마음은 풍요하고 평화롭기만 하다. 저세
상의 내 집에 가보면 집 안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내게 인사를 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상황에서도 마음이 평온하여 이세상과는 달리 뽐낼 마음이 티끌만큼도 일어나지 않는다.
거기에는 마음을 조화시키는 훈련장 같은 곳도 있고, 사람들은 신불의 빛을 받아 자기반성을 하는 곳도 있
다. 이 지구상의 서쪽 즉 불교에서 말하는 서방 정토에 살고 있는 빛의 천사의 집은 낮은 언덕 위에 위치해 있
었으며 신록의 수목에 둘러싸인 돔형의 큰 저택이다.
연구실 같은 방 안에는 먼지 하나 없다. 우주에서 오는 모든 통신을 수신할 수 있는 선이 거미줄처럼 배선되
어 있다. 전기학의 전문가인 내가 보아도 세상의 것들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이곳 빛의 천사는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에 이 세상에서 산 적이 있는 최고 단계의 차원에 있는 빛의 가장 큰 수호천사이다. 나이는 40세,
이세상의 모든 것을 잘 파악하고 있는 나의 수호천사이다. 그는 나 때문에 겪은 어려운 일들에 대해 들려주었
다.
그의 가슴에는 와이셔츠 단추 같은 것이 3개 달려 있다. 그 중 하나는 동시 통역기이다. 그것은 내가 일본말
을 하면 즉시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바뀐다. 그런 동시 통역기가 일본에서 만들어졌다면 최고의 전
자 제품이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과 그곳의 과학문명의 차이는 너무 크다. 인간이 그곳에서 쓰
는 제품을 제작하는 것은 불가능할 듯싶다.
나는 그곳에서 포도주, 커피 등을 종종 대접받고 있다. 이 세상에서 육체를 지니고 사는 사람들 가운데 몇몇
사람이 나처럼 저승 - 여기서 저승이라고 말하는 것은 인간과는 차원이 전혀 다른 세상, 말하자면 영혼이 육
체를 벗어나야 갈 수 있는 바로 그런 세상을 가리킨다 - 에 다녀온 사람도 있다. 사람이 육체이탈을 하기는 어
렵지만 육체에 의식이 되돌아올 때는 훨씬 더 쉬우며 저항도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유체(幽體:광자체)가 이탈한 육체 곁에서 세상 사람들을 불러깨울 때에는 신체의 저항을 반드시 받
게 된다. 그처럼 영혼이 육체를 떠나서 조화와 평안의 세상에 도착하는 것을 삼매의 경지라고 한다. 여기서
나는 가오고에[川越]시에 사는 오노 고코[대야효자]씨의 집에서 일어난 놀라운 실화 한 토막을 소개하겠다.
오노는 전생에 이스라엘에서 파우로라는 사람의 어머니였으며 오노씨의 친정아버지는 유명한 나가다 순스
이[永田春水]화백이시다. 이 사건은 화백의 장례식 전날에 일어난 일로 5월 10일 자 도쿄 신문에 보도된 내
용이다. 기사의 제목은 '집단 가출한 새들의 불가사의한 사건'이다. 기사의 내용은 '8마리의 공작새들이 가
출한 것은 4일 아침이었다'로 시작되고 있다. 다음 글은 오노 씨가 사건의 전모를 밝힌 체험담이다.
"나는 아버지의 죽음이 너무 슬퍼서 울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내게 '이제 그만 울어라. 지금 육신을 떠난
영혼이 진짜 내 모습이란다. 사람의 생명은 영원한 것이며 영혼은 육체가 죽어도 살아 있는 것이다. 나 역시
육신이 누더기처럼 낡아서 벗어던지는 것뿐이다. 자아, 이제 나를 배웅해 다오'하시더니 아버지는 내 손을 잡
고 걷기 시작했습니다. 어딘지 모르지만 아주 환환 빛 속이었습니다. 느낌은 꽤 빠른 속도였던 것 같습니다.
'밝은 터널 속 같구나.'
아버지는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자신이 가시게 될 곳은 가리켰습니다. 나는 아버지에게 거기까지는 배웅을
할 수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고개를 끄덕이시면서 먼길을 가야 하니 이쯤에서 헤어지자고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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씀하셨습니다. 나는 아버지에게 간곡히 말했습니다.
'아빠, 이후에도 다시 제 아버지가 되어 주세요.'
나는 어리광을 부리며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그러겠다고 말씀하시고 웃는 얼굴로 이별의 손을 흔들었습니
다. 나도 열심히 손을 흔들어 아버지를 떠나보냈습니다. 그날 아침에 아버지는 숨을 거두셨습니다. 나는 아버
지께서 돌아가시기 1주일 전부터 밤마다 아버지 병상 곁에서 졸음을 견디며 경을 읽어 드렸습니다. 그렇게
밤샘을 계속했던 것입니다.
5월1일 새벽,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에 나를 불렀습니다. 나는 처음엔 남편이 부르른 줄로 알았습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의 목말을 타고 듣던 우에노산의 종소리처럼 온갖 추억이 담긴 아
버지의 정다운 목소리였습니다. 나는 정신없이 아버지 품에 뛰어들어 울고 말았습니다.
이윽고 나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환한 빛의 터널 속을 마치 유치원 시절 소풍 갈 때처럼 즐거워하며 새처럼
날았습니다. 아버님의 장례식은 4일 시나노마치, 천일회당에서 거행되었습니다. 그날 어머니께서는 아버지
가 평소에 가장 정성들여 그린 그림 족자를 관 옆에 걸었습니다. 그림 속에는 모란과 여덟 마리의 공작이 그
려져 있었습니다.
아버지에게는 대단한 역작이었던 것 같았어요. 아마 아버지의 공작 그림 가운데 마지막 작품으로 집에 소중
히 간직해 두었던 모양입니다. 장례식을 무사히 치른 후 조문객 중에 이웃집 아주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참 이상한 일도 다 있어요. 4일 아침에 공작새 여덟 마리가 우리 집 정원으로 날아왔다가 잠시 후에 선생님
댁으로 날아가 벚꽃 사이를 세 바퀴 돌더니 현관 앞에서 한바탕 울고 나서는 어디론지 사라졌습니다. 정말 아
름다운 새들이었어요. 벚꽃이 지는 사이로 공작새들이 날개를 활짝 펴고 걷는 모습은 마치 극락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었어요. 저는 그때 넋을 잃었습니다.'
나는 그때 그 말을 듣고 이승과 저승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또 한 가지 이
상한 일은 장례식 날 저녁에 이바라기현에 사는 아우의 집에도 비둘기 한 마리가 날아와서 장례식에 참석했
던 스님들, 아우, 조카들의 손등과 어깨에 앉아 뺨을 쪼아대며 좀처럼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더라는 것입니
다. 그래서 모두들 '비둘기가 할아버지다. 할아버지다'하면서 반가워했다는 것입니다. 나는 이 두 가지 사건
을 통해서 인간은 물질이 아니라 영혼이며, 신이 나누어 준 한 조각의 영혼으로 참으로 깊고 먼 하늘에서 강
림한 생명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나는 다카하시 선생의 깊은 신리의 가르침으로, 아버지의 45일간 입원 생활이 아버지 영혼의 마지막 연마 기
간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버지는 현재 신의 마을에 계실 것입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정말 신비한 사건이다. 하지만 우리들 영적 능력자의 눈으로 보면 그런 일들은 신비스러운 사건이 아니다. 오
노 씨는 영적인 눈으로 보신 분이었다. 그리고 그런 일들은 거짓 없는 사실이다. 꿈이 아니고 깨어 있는 상태
에서 광자체가 육체를 이탈하여 오노 씨는 아버지를 배웅했던 것이다. 자식이 부모에게 드리는 최대의 보답
이라고 할 수 있다.
[꽃의 요정과의 대화]
내가 신슈의 공장에 출장 갔을 때의 일이다. 공장 입구 오른쪽에 아름다운 여름 꽃들이 피어 있었다. 사쿠고
원의 공기는 도쿄 같은 도시에 비하면 별천지라는 생각이 든다. 하늘은 한없이 높고 푸르며 햇빛은 따가울 정
도로 눈부시다.
그러나 그런 날씨도 일단 그늘에 들어서면 상쾌한 자연의 서늘함이 몸을 감싼다. 나는 풀밭에 누워 글라디올
러스와 달리아 꽃이 피어 있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월트 디즈니 만화에 나오는 것 같은, 어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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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고 아이도 아닌 예쁜 소녀가 꽃 속에서 걸어나오는 것이 아닌가. 머리에 꽂은 꽃들이 아름답고 그 우아
한 자태는 도저히 이 지상의 사람이 아니었다. 소녀는 씽긋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저는 꽃의 요정입니다. 우리들은 자연계를 온갖 색깔로 장식하며 조화롭게 하는 사명을 다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에 평안을 드리는 것을 기쁨으로 삼고 있습니다."
나는 처음 경험하는 일이었지만 비록 식물이라도 생명을 지니고 우리가 사는 세상을 장식하는 목적을 가지
고 있다는 사실에 크게 감동을 받았다. 너무나 비현실적인 일이었으므로 나는 꿈을 꾸고 있지 않은가 착각할
정도로 당혹스러웠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꽃의 요정에게 인사했다.
"처음 당하는 일이라 그저 놀라고 있을 뿐입니다. 오늘은 아름다운 꽃을 보고 자연과 벗할 수 있게 된 것이
큰 기쁨입니다. 앞으로도 이 자연계를 더욱 아름답게 꾸며 주십시오."
소녀의 얼굴이며 체구도 사람과 똑같고, 피부는 투명한 유리처럼 아름다웠다. 요정이 저세상 사람들과 다른
점은 체구가 작다는 것뿐이며 말하는 것은 분명하다. 꽃의 요정은 또 말했다.
"인간은 훌륭한 육체를 지니고 위대한 창조력과 실행력을 가진 채 살지만 어리석은 사람도 참 많네요."
그녀는 인간을 비판하고 웃는다.
"왜 인간이 어리석은가요?" 내가 묻자 그녀는 즉시 말한다.
"신의 자녀인 인간은 마음을 상실하고 평안이 없으며 자기 본위로만 사물을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마음속
에 욕심의 덩어리가 가득하며 인간끼리의 신의도 없습니다. 추악한 싸움과 파괴만 있어요. 우리는 아득한 옛
날부터 이 지상에 꽃을 피우면서 인간 사회를 지켜봐 왔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어리석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
다. 우리들은 자연 그대로 살며 항상 아름답게 자연을 꾸밀 뿐 욕심이 없습니다. 인간을 위해서도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데, 매정스럽게도 우리를 꺾어버리거나 돌보지 않는 무심한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도
우리들은 불평하지 않고 오로지 조화로운 마음으로 편한 환경을 꾸며드리고 있습니다. 아름다움을 힘껏 발
휘해서 조금이도 보탬이 된다면 더없는 행복으로 여깁니다."
나는 꽃이 요정에게 할 말이 없었다.
"사람도 꽃처럼 아름다운 마음이 되어 우리들과 같이 조화로운 자연을 꾸며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꽃의 요정은 그 말을 덧붙였다. 인간에 대한 날카로운 꾸중이었다. 사상의 대립, 종교의 대립, 전쟁, 파괴 등
꽃의 요정보다 못한 인간의 군상들은 크게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더구나 마음의 문을 연 신불의 자녀가
된 사명과 목적을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자각을 나는 새삼스레 가다듬었다. 꽃의 요정은 '너무 말을 많
이 해서 미안해요' 라는 말을 남기고 이내 꽃 속으로 몸을 감추어 버렸다.
내가 설법하고 있는 대자연의 법을 깨달은 사람 가운데에는 나와 똑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도 여럿 있다. 이
런 말을 하면 독자 여러분께서는 의심을 하실 것이다. 하지만 신리를 깨닫고 살면 그런 경험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불교에서 관자재보살이라는 가르침도 그렇게 마음의 문이 열린 사람들, 진실한 인생을 영위하고 겸허한 마
음으로 남에게 자비를 베풀며 만생 만물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사람들을 말한다.
그런 사람들은 식물의 요정과 만나서 얘기를 나누는 것도 가능하다. 그리고 인간은 누구든지 그와 같은 능력
을 가지고 있다. 또 이러한 능력을 계발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힘으로 가능한 일이다. '정법의 실천 생활 이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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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는 길은 열리지 않는다.' 꽃의 요정은 우리가 사는 이 현상계의 모습과 마찬가지로 실재계에서도 항상 아름
다우며 자연과의 조화를 목적으로 그 종족이 보존되고 있다.
우리들의 마음이 때가 씻기고 영적인 길이 열리면 거의 모든 요정과의 대화가 가능하며 대자연의 짜임새, 만
생 만물의 상호 관계를 서로 말할 수 있게 된다. 꽃의 요정 중에서도 등꽃은 푸른 눈을 가진 예쁜 소년의 모습
이다. 소나무는 노인이 많다. 또 나비나 물고기도 영혼이 있다. 그들도 불멸의 영혼이며 저승과 이승 사이를
윤회한다. 그 사실들은 이후 더 많은 정법 실천자들에 의해서 증명될 것이다.
예수나 붓다의 가르침은 똑같은 진리다. 두 분은 모두 빛의 천사들이며 단지 설법이 방법이 다른 뿐, 인간으
로서의 마음가짐을 똑같이 가르치고 있다는 점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 가르침은 사람이 어떻게 살 것인
가, 신과 인간은 어떤 관계인가, 인간과 천사의 관계 등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결코 어려운 학문이나 철학이 아니라 마음과 행동의 가르침, 색심불이(色心不二)의 가르침 즉, 유형
의 물질이나 무형의 정신은 하나라는 뜻이며 자신의 마음이 바로 신앙의 대상이라는 가르침이었다.
그 가르침을 어렵게 만든 이유는 1천 년, 2천 년 그렇게 긴 역사가 흐르는 동안 그 뜻에 인간의 지식과 의지
가 점차 가미되었기 때문에 신리는 인간의 정과 거리가 먼 것이 되고 말았다. 그 결과 동물적인 자기 보존 사
상, 물질 경제, 컴퓨터의 노예로 인간은 전락하고 말았다.
대자연의 열과 빛의 에너지를 비롯하여 우리가 살고 있는 모든 환경은 신불이 제공한 것이다. 이세상의 만물
에 대하여 우리는 감사의 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감사의 마음이란 인류의 조화, 상호 신뢰, 협력으로 발전
해 간다.
보기를 하나 들어보자.
우리가 집을 지을 때에는 생활에 편리하고 적합한 환경과 입지 조건을 먼저 따져 보게 된다. 택지 환경, 수
도, 도로, 전기 등의 사정을 먼저 고려하고 교통, 시장, 병원, 학교 등의 환경을 다음으로 생각하게 된다. 이윽
고 한 채의 집이 세워지고 생활환경이 정돈되면 점차 집단 주거가 형성되어 간다. 하지만 머지않아 인간은 자
기 보존에 빠져 평온한 환경을 스스로 파괴하게 된다.
사람은 마음의 정도를 잃고 사상적 집단이 되어 투쟁과 파고의 부조화를 불러일으키며 물욕의 노예가 되어
마음이 평안을 잃고 만다. 더러는 타력 신앙에 빠지기도 하고 더러는 자기 입장만을 고집해서 조화를 깨뜨려
버리기도 한다. 마음을 상실한 인간은 불쌍하다.
인간은 하루 빨리 본성을 되찾아 물질적인 노예에서 해방되는 것이 시급하다. 현실에 감사하고 만족할 줄 알
게 되면 자신의 마음은 우주로 넓어져서 구속받는 일도 없게 되며 모든 방면에 은혜로운 환경이 완성되어 간
다.
만족할 줄 모르는 인간은 밤낮없이 욕망에 사로잡혀 마음이 편안한 날이 없다. 육체도 조화를 상실할 뿐만 아
니라 주의의 사람들과도 조화를 이루지 못하여 쓸쓸한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결국 그 사람의 마음 상태에 상
응하는 고통스러운 생활이 저세상에서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금 내 둘레에는 많은 영적 현상이 일어나고 있지만 이것은 물질주의적 사상에 사로잡힌 인간들에게 신의
자녀로서 자각을 일깨워주기 위한 현상이다. 또한 올바른 인간으로서 후회 없는 인생을 살 수 있게 하기 위
한 신의 자비로운 발현인 것이다.
영적 현상은 앞으로 더욱 많이 나타나서 바른 마음을 상실한 인간들에게 신리를 불어넣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은 이 같은 영적 현상에 사로잡히지 말고 인간다운 올바른 인생을 걷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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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3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2)(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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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마음의 상태에 따라 육체도 변화가 온다는 사실에 의문을 품는 사람도 있다. 또한 자
신의 마음이 조화되는 데 따라 운세가 나아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드물다.
자기의 마음을 어떤 상태로 두느냐에 따라 신체적 변화가 온다는 것은 곧 우리의 육신은 인생 항로의 나룻배
에 지나지 않으며 따라서 사공[마음]이 젓는 노에 따라 육체[배]는 어느 방향으로도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잘
가르쳐 주고 있다.
영혼 즉 의식을 하나로 집중하는 것은 사물을 창조하는 능력과 통한다. 이것을 알면 의문이 풀린다. 그리고
신리의 실천 생활을 통해 해답은 저절로 얻어진다. 마음의 조화에 따라 운세가 나아진다는 것은, 팔정도(八
正道) 즉 중도의 생활을 실천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가치를 알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마음이 얼마나 광대하며 인간의 신불의 자녀로서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가를 깨닫게 된다. 자기중심
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인간은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자각을 할 때 비로소 인간은 평안이 충만한 조화의 삶
을 살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거짓이 없는 생활이 확립되어 간다.
자신의 상념 행위가 신리로 부합될 때 마음은 신의 빛으로 감싸인다. 한 개인의 작은 마음의 조화가 가정의
행복을 만들고 이웃과 시회와 국가의 조화로 파급되며 나아가 조화의 집단은 인류의 마음에 투쟁과 파괴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할 것이다. 이렇게 보면 종교적 투쟁 따위는 자기 보존의 종파적 사상 이외의 아무것도 아
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마음을 역설해야 할 종교인이 마음을 상실하고 종파의 방석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현실은 딱하기 그
지없다. 종교 지도자는 종교인의 자세를 다시 한 번 반성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내가 설법하는 신리에 모순
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래도 모른다면 무지하거나, 우상의 문지기이거나, 자기 보호의 에고이스트
이거나, 종파를 미끼삼고 있는 위선자거나, 아니면 돈과 지위에 집착하고 있는 사람들이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런 자들에게 인간의 마음을 설법할 자격이 있을 리 없다. 왜냐하면 우리들 마음의 천국이야말로 큰 신전이
나 불전인데, 겉모양만 번드레한 대신전, 대불전의 건립은 재정의 낭비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다. 지구는 그
자체가 신의 몸체이며 신의 전당이다. 이것을 알고 있는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살아 있는 동안 정신적, 육체
적, 경제적 세 가지 방면의 조화를 위한 상념과 행위의 실천을 결코 소홀히 하지 않아야 할 것이며, 마음은 모
든 것에 우선하며 지식과 의지의 조화를 유지하는 받침대이다.
[마음을 다스리는 지혜]
부조화는 대개 자신의 욕망이 채워지지 않을 때 일어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남보다 출세하고 싶다. 좋은 옷
을 입고 싶다. 맛 좋은 음식을 먹고 싶다. 좋은 집에 살고 싶다, 아이들을 일류 학교에 보내고 싶다 등등 헤아
릴 수 없이 끝없는 욕망의 늪이 우리들 앞에 펼쳐져 있다.
우리가 만족할 줄 알면 마음에 제동이 걸리지만 대부분의 인간은 제동이 풀린 마음으로 욕망의 늪에 빠진다.
그 결과 욕망의 노예가 되어 청정한 보리(菩提)의 생활은 찾을 길이 없다. 자신의 입신출세를 위해서라면 동
료도 예사로 배신한다. 상사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까지도 속이고 봉건 사회의 머슴 같은 짓도
서슴지 않는다.
지위, 명예, 돈이 인생을 풍족하게 하는 것일까? 정말로 그럴까? 욕망이 생기면 평온한 생활을 기대하기는커
녕 자신을 멸망으로 몰고 갈 때도 있다. 인간은 거짓 없는 생활 가운데에서만 올바른 마음이 싹이 눈뜨며 평
안의 인생을 보낼 수 있다. 허영과 욕망에 빠져서는 안 된다.
모처럼 얻은 이 지상의 귀중한 생명을 무의미하게 보내서는 안 된다. 주어진 환경 속에서 부지런히 살아가면
마음의 불안도 없어지고 평화로운 환경을 만들어 갈 수 있다. 조직사회도 마찬가지다. 노사(勞社)가 다 같이
서로 감사의 마음과 은혜를 갚는 행위로 뭉칠 때 비로소 조화를 이룰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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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3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2)(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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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자가 말하는 것처럼, 상층 계급과 하층 계급과의 대립으로 발생하는 투쟁과 파괴의 사상을 필연적
인 인류의 신리라고 믿어서는 안 된다. 잘못된 사상에 물든 마음은 부조화한 그늘이 되어 파멸의 길을 재촉한
다. 부조화한 사념과 행위는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 수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
다.
인생은 화살처럼 짧은 것이다. 후회 없는 인생을 위해서 날마다 반성하는 생활로 우리의 마음을 보다 높은 차
원으로 정화시켜야 한다. 신의 빛은, 감사의 마음을 보은의 행동으로 옮기는 인간에게 쏟아지게 마련이다. 우
리는 한 발자국 한발자국 신의 빛으로 충만한 사회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팔짱을 끼고 있어도 찾
아오는 것이 아니다. 실천하는 가운데 선의의 운동은 퍼져가는 것이다.
사회 현상에만 사로잡히지 말고 내면의 마음을 중심으로 한 조화야말로 신의 뜻이며, 그 조화는 신리에 맞는
실천 생활 이외에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인류는 모두 형제다. 지구라는 한 배에 탄 동시대의
동기생들이다. 피부색이나 민족의 종류는 각기 그 환경에 적합한 육체적 조건에 지나지 않으며 그 육체의 지
배자인 의식 즉 영혼에서는 조금도 바를 바 없는 형제자매들이다.
태양의 빛과 열은 인류에게 평등하며 신불의 자비와 사랑도 또한 평등하다. 따라서 인종 차별의 편견은 신의
뜻이 아니다. 차별은 생활환경의 차이에서 생겨난다. 마음을 볼 수 없는 인간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자기 보
호를 위한 봉건 제도적 계급의식이다. 우리들은 하루 빨리 내면의 마음을 깨달아 인간으로서 태어난 현생의
가치를 올바르게 인식해야 한다.
자신의 전생을 알고 나쁜 업보를 바꾸려는 것이 인생 수행의 한 가지 목적임에는 틀림없지만 우리가 과거 세
상에서 어떤 인물로 태어났건, 그것보다는 현생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신리에 맞는 상념
과 행위만이 마음을 진화시키고 물질 경제나 여러 현상에 사로잡히지 않는 인간성을 형성해 간다.
그래서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왕국을 만들 수 있다. 설령 자신의 전생이 왕이었다 하더라고 현세에 육체를 지
니고 있는 자신이 삶의 가치를 알아내지 못하고 자아 욕망과 오관에만 사로잡혀 있다면 그 인생은 실패작이
다.
신불이 자녀다운 자각을 가지고 살고 있는가 아닌가에 따라 현생의 가치는 달라진다. 상단계의 빛의 천사들,
여래나 보살들도 이 현상계에 육체를 지니게 되면 보통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수행의 과정을 밟아야 한다.
환경과 교육의 영향을 받기도 하고 경제적인 고통이나 여러 가지 괴로움에 부딪치기도 하면서 인생에 대한
의문과 회의를 안게 된다. 그래서 과거 세계와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서 대체로 승려나 학자로는 태
어나지 않는다. 자신에게 의문과 회의가 일어나기 쉬운, 결코 안일하지 않는 환경을 선택해서 태어나는 것이
상례인 것이다.
붓다도 예수도 모세도 승려나 학자가 아니었다. 승려나 학자와 같은 작은 틀 속에 갇혀버릴 것을 예견하여 여
래[메시아]들도 짐짓 고락을 경험할 수 있는 장소를 택해서 탄생한다. 그래서 여래는 이승을 하직할 때까지
는 일단 깨달음을 이룬다. 그러나 깨달은 것만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사명을 완수하지 못한 채 저승으로 돌
아 갈 수는 없다. 죽음에 임박해서 깨닫는 것은 너무 늦다. 육체가 건전할 때 신리를 깨달아 중생에게 가르쳐
주고 조화 있는 인생을 다져 줄 책임이 있다.
지금까지 여러 명의 여래가 이승에 태어났다. 하지만 인생 항로의 고난에 봉착하고 환경에 지배당하여 사명
도 완수하지 못한 채 일생을 마친 경우도 있었다. 나의 수호천사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역사적인 물적 증거라는 것이 우선되기 쉬운데 그것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못 된다.
왜냐하면 신리에 관한 한 너무 과거의 기록에 사로잡히면 자칫 지식과 의지가 앞서서 자신의 본성을 상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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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3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2)(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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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쉽기 때문이다. 자신을 상실하면 신의 뜻을 깨달을 수 없다."
과거의 행적에 사로잡혀 문헌에만 의존하고 살면 학문적 탐구에 기울어져 마음이라는 자기의 본성을 잃기 쉽
다. 자연 과학의 분야에서는 문헌이 큰 참고가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나, 신리에 관한 문제는 그 시대의 몰지
각한 권력자에 의해서 왜곡된 경우가 많다. 불교도 여러 나라를 경유하여 건너오는 동안 그 나라의 전래 사상
이 상당히 가미되고 말았다.
따라서 불교도 기독교도 원래의 정신으로 돌아가기가 몹시 어렵게 되었다. 신의 뜻은 대자연의 법칙이므로
시대가 새롭게 오거가 낡은 세대거나 상관없다. 진리란 헌 것도 새것도 없다. 불변인 것이다. 누구의 마음속
에도 신불의 자녀로서의 신리는 엄연하게 존재하고 있다.
"신의 뜻은 자기 자신의 마음속에 있으며, 자신의 마음에 충실하고 항상 중도에 따라 욕심을 버린 생활을 계
속해 가면 누구든지 신불의 자식으로서의 긍지를 자각하게 될 것이다."
나의 수호천사는 이렇게 보충 설명을 해 주고 있다. 저세상 즉 실재계에 돌아가서 '이렇게 했으면 좋았겠다'
' 저렇게 했으면 좋았겠다' 등으로 후회해 보아야 소용없다. 이미 엎지른 물이다. 학문도 마찬가지다. 늙어서
' 아! 젊었을 때 좀 더 공부해 둘 것을 '하고 뉘우쳐 본들 소용없다.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알고 있으
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나태에 빠져 버리기 쉬운 것이 인간이다.
신리를 깨닫고 정법을 실천하고 있는 우리들조차도 저승으로 돌아갈 때에는 '좀 더 많은 사람들을 제도했으
면 좋았으련만' 그런 아쉬움을 남기게 될 것이다. 육체를 버려도 지상에 살 때와 마찬가지의 의식 상태에서
광자체라는 육체로 바뀌는 것이 우리들의 다음 세상이다.
따라서 저승에 가서도 이승에서의 생활 즉 상념과 행위의 일체가 하나하나 남김없이 백일하에 드러난다. 그
래서 지상에서 저지른 죄값은 그곳에서 자신이 갚이 않으면 안 된다. 즉 자신이 자신을 재판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후회하게 된다.
유계(幽界), 즉 죽음의 입구에서 우리는 지상에서 살았을 때의 선과 악을 낱낱이 가려 재판을 받게 된다. 신
불의 재판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하게 된다. 그것은 신불의 자녀로서 너무 당연한 일이다. 인간의 가치를
잊고 조화롭지 못한 인생을 살고 있는 인간에게 마음의 평화는 없고 검은 상념으로만 뒤덮여 있다. 이런 인간
은 이 지상을 떠나 다음 세상에 가서도 똑같이 검은 상념의 세계로 떨어진다.
그리고 그 마음의 정화될 때까지 지옥계에서 고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옥도 자신이 만들고 있던 세계일 뿐
이다. 책임 전가는 용납되지 않는다. 책임을 전가시키면 그 고통은 더욱 커질 뿐이다. 따라서 행복을 얻는 지
름길은 하루 빨리 과거의 세상에서 지은 업[가르마]를 확실하게 인식하고 두 번 다시 그런 과오가 없는 인생
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늘 반성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신의 나쁜 성격을 고쳐가야 한다. 반성의 명상은 마음을 정화
시킨다. 그리고 신불의 빛에 에워싸이게 된다. 이럴 때에야 비로소 삶도 죽음도 없는 생명의 윤회를 깨닫게
된다.
사람들은 단지 육체라는 현상만을 보고 있기 때문에 그 육체가 없어지면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육체의 지배자인 영혼은 불변이며 다만 이승과 저승의 환경에 적합한 옷을 갈아입을 따름이다. 이것
을 알게 되면 생명의 불변을 불신할 수는 없게 될 것이다.
[예배나 예불이 신앙의 전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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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3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2)(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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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신, 맹목적인 믿음, 광적인 믿음은 인간이 만들어낸 신앙이며 신리와는 거리가 멀다. 절이나 교회에 나가
서 기도하는 것이 신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자기가 믿는 대상에 기도함으로써 자신이 행
복해진다고 여기는 신앙적 자세가 얼마나 큰 잘못인가를 우리는 하루 빨리 깨달아야 한다.
우주 만물의 궁극적 실재는 물질이라는 사상에서 유래된 무신론적 사상인 유물론자들의 말에 빠지면 인간은
회색빛 인생을 살게 된다. 지식과 의지에 의해서 만들어진 투쟁과 파괴의 사상은, 자유롭고 평화스러운 마음
을 어지럽힐 뿐 아니라 단결이라는 미명 아래 개인의 자유를 속박하여 비정한 압력으로 짓눌러 사생활은 고
통스러운 궁지로 몰리게 된다.
하지만 그들도 마음의 번뇌에 대해서는 어찌할 바를 모른다. 따라서 그들의 집단은 마음을 상실한 사람들 끼
리끼리 만나는 법칙이라든가, 파장에 따라 똑같은 마음을 느끼는 법칙에 따라 한 우두머리를 중심으로 집단
을 형성한다. 유물 사상에 따르지 않는 자유 의지의 발언은 그들 집단에 의해서 여지없이 짓밟혀 버린다.
유물 사상에 세뇌된 자들은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폭력을 거침없이 휘두르며 거기
에는 자비와 사랑이란 그림자조차 찾아 볼 수 없다. 사상 이데올로기를 위해서는 범죄 의식도 마비된다. 공산
주의 세포들은 한 지도자의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으며 인간의 본성을 100% 잃고 있다. 참으로 가엾고 불쌍
하다고 밖에 할 말이 없다.
마음을 상실하여 서로 믿을 수 없게 된 인간의 집단은 어느 날 내부 투쟁에 의해 자멸의 길을 밟게 된다. 우리
들은 이러한 사상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줄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올바른 신리로 돌아와 잃어 가는 인
간의 마음을 되찾아야 한다. 옛 인도 당시의 석가의 가르침, 옛 이스라엘 당시의 예수의 가르침으로 돌아가
야 한다. 그래서 위대한 마음의 존엄성을 깨달아 조화 있는 사회를 하루 빨리 이룩해야 한다.
그런데 불교도 기독교도 인간의 지식과 의지에 의해서 너무나 왜곡되어 버렸다. 그래서 대자연을 지배하고
있는 의식, 즉 신불은 우상화되고 말았으며, 빛의 천사들조차도 우상화되어 예배 기도하는 종료고 전락하여
세상은 바야흐로 말법시대로 접어드는 감이 없지 않다.
기독교도 불교도 그 진수를 모르기 때문에 많은 중생은 신불에게 기도하는 것이 종교라고 착각하게 되었으
며 악덕 종교 지도자들의 밥이 되고 말았다. 매너리즘에 빠진 신앙생활은 형식적 행사로 지샌다. 예배니 예불
이 신앙은 아니다.
'불교는 어려우며 그 진수를 터득하기 힘들다'고 불자인 승려들끼리도 고개를 젓고 있는 실정이다. 믿음을 지
식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불교이다. 인간이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는 불교가 왜 철학이라
는 학문이 되었는가, 왜 엄격한 계율에 의한 자기 식의 규율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되는가, 나는 그 점이 의심스
럽다.
많은 중생들은 불교의 원점에서 멀어졌다. 권력자, 학자, 승려들에 의해서 철학화된 종교는 이미 진실한 마음
의 종교가 아니다. 계급 제도가 엄격했던 지난날에 왜 종교가 필요했던가. 그것은 그들 특권 계급의 무리들
이 자기 보호의 수단으로 불교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신불의 이름 아래 그 많은 대중을 희생시켰다. 겨우
5% 정도의 소수 귀족과 승려들의 사리사욕 때문에 95%의 대다수 중생의 희생되는 종교는 아편이라고 말
할 수밖에 없다.
아편이 된 종교는 인간을 구제할 수 없다. 신리도 아니다. 사리사욕의 산물일 뿐 결코 신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들은 신불의 이름을 팔아서 생활하고 있는 위선자들에 불과하다. 기도하는 것만이 구제받는
길이 아니며 맹신, 광신, 미신이 사악한 길임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올바른 신리에서 마음이 멀어져 있다는 사실을 하루 빨리 깨달아야 한다. 신불의 자녀로서 아버지인 신을 믿
는 것이 인간의 당연한 도리이며 신리를 모르고 맹신, 광신에 빠지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을 상실하는 사악
한 길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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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다운 생활을 잊어버리고 고난과 기쁨이 양 극단적 인생을 보내며 정도를 무시한 삶은 신앙이 아니다. 지
도자의 지시대로 움직이며, 구하는 바를 오직 기도에만 의존한다는 것은 맹신이다. 의문을 가지는 일도 없이
기도에 빠진다는 것은 바로 인생에서 도피하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그런 사람은 하루 빨리 자신의 본심을 되
찾지 않으면 안 된다. 종교 지도자들은 말한다.
"당신의 불행은 몇 대의 조상이 천도받지 못해서 생긴 일이나 불공을 드려야 합니다." 혹은 '당신이 아픈 것
은 집을 지키는 용신을 소홀히 한 탓이니 이렇게 해야 합니다."며 미신을 끌어들이고 있다.
'집안이 잘 되려면 이 부적을 붙이고 초하루와 보름에 고사를 지내야 합니다."
이런 말을 듣는 사람은 사리사욕에 빠져 우상을 숭배하게 된다. 욕망을 채우기 위한 신앙에 빠지면 빠질수록
마음이 불안해지고 불행한 인생을 걷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열심히 기도할 때는 일에도 열중하기 때
문에 장사가 잘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돈과 시간이 생기면 기도할 대상에는 무관심해지고 그저 형식적인 신앙
이 되고 만다. 장사가 잘 된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도 잊어버린다. 낭비를 일삼고 욕망의 충족만을 쫓는다. 어
느 틈에 악마의 포로가 되어 마음에 평안이 없고 가정은 조화가 파괴되어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불행을 자
초한 셈이다.
"건드리지 않는 귀신은 잠잠하다."
그런 속담은 진리이다. 신불에 기대지 않고 신리에 바른 생활을 스스로의 노력으로 쌓아가는 삶의 신불의 마
음으로 통하는 길이다. 인간다운 생활을 위한 최선의 노력이야말로 우리들 마음에 평안을 얻고 신불의 자비
를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인간다운 생활이란 신리에 따른 팔정도(八正道)의 실천에 있다.
올바른 상념과 행위, 신불의 자녀라는 자각을 가지고 의식주에 만족할 줄 아는 생활이 바로 그것이다. 끝없
는 욕망은 고통과 번뇌를 가중시킬 뿐이다. 우리들 생활환경에서 재앙을 불러일으키는, 육안에 보이지 않는
악령들은 신불이 아니다. 악령에 빙의되는 것은 반드시 그 원인이 있다.
상념과 행위에 대해서 우선 반성해야 한다. 재앙의 악령은 신불로 착각하여 받들게 되면, 악령들은 더욱 거만
하게 득세하여 그 재앙을 후손에까지 미치게 한다. 스스로의 마음을 바로잡고 그들을 천도해 주는 것이 정법
이다. 그들을 받들고 공양해 주는 것은 결코 정도가 아니다. 악령을 숭배하라는 교조가 있다면 그는 참다운
법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다. 법력이 있다면 그들 악령들의 잘못을 깨우쳐 주고 정법에 귀의시킬 수 있어야
한다. 동시에 이러한 종교적 환경에서 고통 받고 있는 인간에게 그 고통의 원인을 가르쳐 주고 올바른 마음가
짐과 생활 방식도 지도할 수 있어야 한다. 조상 탓이다. 용신 탓이다 하고 예배 공양을 하게 하는 신앙은 자
기 자신의 신불의 자식이라는 자각과 긍지를 팽개쳐 버리는 것과 같다.
[스스로 구하는 자에게 주어진다]
'냄새 나는 물건은 묻어 버려라' 는 식의 신앙에서 벗어나는 것이 바로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길이다. 형식 신
앙에 빠지면 빠질수록 생활도 불안정하게 되고 마음의 변화도 없어진다. 흔들려서는 안 된다. 아편의 중독에
서 자신의 마음을 구제해야 한다. 자기 자신에게 엄격하고 강하며 어떠한 난관에도 흔들리지 않는 크나큰 마
음을 가지고 자신 있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
불행한 일이 생기면 그 원인을 잘 찾아내어 악의 씨를 제거하고 보다 나은 인생을 위한 노력을 기울어야 한
다. 신불은 그 노력에 대해서 반드시 평화와 안심의 빛을 비춰 줄 것이다. 인간의 마음을 장님으로 만들고 기
도에 의해서만 공덕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는 종교지도자들은 큰 죄를 짓고 있다. 신불은 인류가 이 현상계에
서 육체를 지니고 영혼의 수행을 할 수 있도록 모든 환경을 제공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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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상은 태양의 빛과 열과 에너지에 의해서 식물, 광물, 동물 상호의 생존 관계가 성립되어 있다. 이 모습이
야말로 바로 사랑과 자비의 나타남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신불은 인간에게 자손 보존의 본능을 부여하였
으며 따라서 우리들은 부모로부터 육체를 공짜로 얻었다. 부모의 사랑과 희생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 근
원을 따지면 신불의 자비와 사람에 의해서 육체가 창조되었던 것이다.
이 육체의 운전기사인 우리들의 의식은 영혼의 부주의로 말미암아 부조화한 현상이 일어난다. 자신의 행동
과 마음을 바로잡는 일이 바로 그 부조화를 바로잡는 길이다. 대자연의 은총에 감사하고 모든 사람에게 감사
하고 보은하는 생활이야말로 사회의 조화를 완성할 수 있는 길이다. 질병, 빈곤, 불행 등의 괴로움에 대해서
그 원인을 추구(追求)해 보지도 않고 자신의 형편, 자신의 행복, 자신의 이익만을 쫓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신불을 비롯한 우리들의 수호천사인 영혼의 형제들은 아전인수격인 이기적 기도에 대해서
는 절대로 협력하지 않는다.
신불의 세계는 중도의 정법에 의해서 모든 것이 정해져 있다. 거울에는 실물과 같은 모습이 비친다. 실물이
아름다우면 그 영상도 아름답다. 우리들 마음의 거울도 마찬가지로 실재계의 천사들에게 비친다. 마음의 모
습은 빛의 천사들의 눈을 절대로 속일 수 없다.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그 사람과 관계가 깊은
실재계의 인물에 의해서 반드시 협력이 있다.
'스스로 구하는 자에게 주어진다'는 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구하기 위해서는 상념과 행위가 일치한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구하는 바는 기도에 의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기도할 때의 마음 상태가 문제다. 특히 '배에 고기를 가득히 잡게 하소서, 오곡 풍년이 들게 하소서'라고 기원
할 때에는 그 자체가 생물의 생명을 취득하는 것인 만큼, 수확물을 소홀이 하거나 낭비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우리들의 피와 살이 되는 희생적 공양물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그 생명들에게 깊은 감사를 올
리는 것이 당연한 도리다. 식사를 할 수 있는 것도 많은 생명들의 희생에 의한 것이므로 신불에 감사드림과
동시에 만물에 감사하는 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감사는커녕 모든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겨 낭비를 일삼고 있다.
기도는 자기 보호의 일방적 요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은총을 입었으면 감사의 표시가 있어야 한다. 은혜에
보답하는 행위는 우리의 마음을 조화 있게 하고 이웃 사랑을 눈뜨게 한다. 보은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하
며 그 보답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올바른 공양의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불교도 기독교도 원래는 하나인데 여러 가지 종파로 갈라져 반목과 투쟁의 씨앗을 뿌리고 있다. 투쟁과 파괴
의 가르침은 불교에도 없고 기독교에도 없다. 만일 투쟁과 파괴의 길을 정당화해서 지도하고 있는 종교자가
있다면 그것은 아류이며 오만한 아집이 빚어낸 사생아일 뿐이다.
신리는 시대에 따라 모습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신리는 낡은 것도 새 것도 없다. 태양이 동쪽에서 떠서 서
쪽으로 지는 것처럼 불변의 법칙이다. 그것을 모르고 인간이 함부로 아전인수격의 사상을 날조하고 있는 것
은 신에 대한 불손이요 모독이다. 불교도 많이 철학화 되었다.
어떤 신자는 어려운 철학적 용어를 구사하면서 자만에 빠져 용어를 모르는 신자들에게 뽐내며 고압적인 행동
을 서슴지 않고 있다. 이런 사람의 마음은 자비를 팽개친 아수라계 지옥으로 통하고 있다. 부조화의 행동을
강요하고 신불의 이름 아래 인간의 마음을 혼란하게 하는 지도자의 마음에는 평안이 없고 지옥계로 떨어질
것이 분명하다.
그 죄를 반성하지 않는 한 천상계로 갈 수 없고 지옥에서 준엄한 반성의 생활을 강요당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신불은 교단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하물며 돈벌이에 이용되어서도 안 된다. 눈에 보이지 않
는 것을 기화로 신자들을 속여서도 안 된다. 벌을 받는다. 공덕이 없다는 등으로 위협받고 있는 신도들은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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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3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2)(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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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하다. 자기 보호의 욕심이 강한 광신도는 그런 말을 믿는다. 하지만 그들은 스스로 만든 부조화의 상념에
의해서 더욱 불안하고 어지러워진다.
부모는 자식의 행복을 위해서 정성을 다한다. 신불이 어찌 장님이나 다를 바 없는 인류에게 벌을 내릴 것인
가. 벌은 자기 자신의 부조화한 생활에 의해서 자기 자신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귀여운 자식을 어찌 부모가
불행하게 할 것인가. 부모도 신불도 자비와 사랑의 본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부모의 말을 따르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여 스스로 가시밭 인생을 걷고 있는 것이 인간의 일반적인 모습이
다. 하지만 그 가운데 여러 가지 의문이 생기고 그 의문이 해결될 때 신리는 가까워진다. 마음의 문이 열려,
사는 기쁨, 인생의 의의를 깨닫게 되는 것이야말로 정도인 것이다.
만생 만물의 대자연 세계야말로 바로 살아 있는 경이로움이다. 이것을 모르고 벌을 겁내어 자기 발목에 족쇄
를 채우는 신앙은 자승자박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순진한 신자들에게 마음의 자유를 빼앗는 종교 지도자
는 위선자다. 신자들에게 '공양한 사람은 그 공양의 몇 십 배의 공덕을 받게 된다'는 거짓말로 욕심에 부채질
을 하여 막대한 재물을 긁어모은다. 경제적인 곤경에 빠진 부부, 부부가 이혼하고 가정이 파괴된 사람, 사업
에서 도산한 사람, 투쟁에 지쳐 요절한 사람 등 이러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것이 선결 문제가 아니겠는가.
마음에 족쇄가 채워진 불쌍한 신자들의 희생으로 모은 재물을 그들은 산중에 신전을 세우는 데 쓰고 있다.
이 지구가 바로 신불의 몸인 신전이나 불전이라는 것을 그들은 알 리 없다.
성스러운 대신전에 가난한 호주머니를 털어 모은 금전으로 건물을 짓고 인간을 구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면 이것은 이미 인간의 마음이 아니다. 살아 있는 인간을 구제하는 것이 최고의 선임을 알아야 한다. 인간의
마음을 혼란하게 한 종교 지도자들에게는 특히 가혹한 현상이 일어난다.
우선 육체적으로는 두통이 심하며 마음의 평안도 없어질 뿐더러 자신의 자유의사도 없어지면 간부들에게 떠
받쳐져 로봇이 되고 만다. 이윽고 몸이 저리고 마비가 오며 그래도 자기 보호의 욕심만은 살아 '신불을 신앙
하고 있는데 왜 이렇게 몸이 아프냐?'고
자문자답하게 된다. 그리고 '몸이 이상해지는 것은 신자들의 업을 대신 받고 있기 때문이다'고 자위하기도 한
다.
또 어떤 종교 지도자는 경제력을 앞세워 신자들을 깔고 앉아 뻔뻔스러운 짓을 하고 있다. 신의 이름 아래 광
신자, 맹신자의 마음을 조종하여 죄를 짓고 있다. 자신의 육체적 부조화도 만성화되었으며 마음의 평안을 잃
고 사리사욕에 빠져 조직의 내부는 권력 투쟁의 불씨를 안고 있다. 이렇게 마음을 상실한 종교가 난립한 사회
를 말법시대라 한다.
'신불을 모독하고 있는 지도자에겐 마음의 평안을 줄 수 없는 것이 실재계의 규율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신의 뜻을 인간의 힘으로는 바꿀 수 없다. 우리 영적 능력자들은 엉터리 지도자들의 마음과 행동을 금방 알
수 있으며 우리를 불신하는 자에게는 즉석에서 영적 현상을 보여 줄 수도 있다.
잘못된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의 마음을 속이지 않는 생활을 실천함으로써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잃게 한 아편을 자력으로 팽개치고 정도에 들어서는 것이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유일한 길임을 깨달아야 한다.
전쟁도 또한 부조화한 상념 행위다. 전쟁의 승리를 기원한다는 말을 하는데, 승부를 다툴 때, 스포츠를 제외
하고는 그런 기도는 인간으로서 취할 행위가 아니다. 전쟁이란 살인과 파괴행위다. 그런 일에 승리를 기원해
서 되겠는가, 신불은 언제나 중립이기 때문에 인간의 싸움에 대해서 공평한 판단을 내리는 것처럼 한 쪽으로
편들지 않는 것이 정법의 사랑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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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3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2)(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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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는 아이의 싸움을 원하지 않는다. 하물며 신이 전쟁 따위를 원할 리 없다. 전쟁은 절대로 인간이 취해야
할 행위가 아니다. 전쟁은 인간이 이 세상을 타고 가는 배, 말하자면 육체의 배를 파괴할 뿐만 아니라 남에게
도 비참한 참상을 안겨 죄 없는 인간의 마음을 불안에 떨게 한다.
전쟁은 인간 최대의 죄악이요 범죄다. 전쟁을 즐기는 지도자, 그는 살아 있는 지옥의 아수라이며 그 대가는
육체가 없어져도 지옥계에서 극심한 고통을 감당하게 될 것이다. 독일의 나치 히틀러나 소련의 공산주의 독
재 정치가 스탈린은 지금 무간 지옥에 떨어져 있다. 국가 권력의 명령에 의해서 전쟁에 휩쓸리는 일이 있더라
고 전쟁은 부정해야 한다. 국법과 싸울 수 없는 것이 우리 국민이지만 항상 올바른 자신의 마음에 물어 정도
에 따른 행동을 실천해야 한다.
성전(聖戰)이란 말도 있다. 그런 따위의 전쟁은 존재하지 않는다. 전쟁에 무슨 성스러움이 있어서 성전이라
고 말하는가. 그것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전쟁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쌍방이 모두 5대 5의 범죄를 저지르
고 있다. 인간은 신불의 자녀로서 만물의 영장임을 자각하고 전쟁 따위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투쟁은 투
쟁을 낳는 악순환을 거듭할 뿐이다. 조화에의 용기는 인내와 노력으로 언젠가는 평화의 사회를 완성하게 된
다. 어떤 환경에 처해도 제가끔의 노력으로 자신의 마음을 열어가야 한다. 그러면 그 기쁨은 형용할 수 없이
크다.
반성이란 지난날의 생각과 행위를 되돌아보고 신의 뜻에 맞는가 안 맞는가를 마음속에서 묻고 대답하고 그
잘못의 원인을 바로잡고 보다 훌륭하게 영혼을 정화해 가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자기 자신을 중립에 두고 제
3자의 입장에서 자신을 여러 각도에서 살펴 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자기 보호나 욕망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그 첫째 목적이며 혹 자만심에 빠져 있지 않나를 살펴보는 것
도 반성의 한 방법이다. 이렇게 하면 상대방은 어떻게 생각할까, 자기가 상대방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했을
까, 상대방을 동정한 나머지 혹 자비로운 마수가 되지 않았을까 등 반성에 대해서 언급하려면 끝이 없다. 반
성의 재료는 무한히 많다. 자신의 마음에 거짓은 없는가, 나쁜 사고방식, 나쁜 행동에 대해서는 두 번 다시 되
풀이하지 않도록 결심해야 하며 자신에겐 엄격하고 남에겐 관대한 마음으로 생활해야 한다.
가령 만원 전철 속에서 일어난 한 젊은이에 대한 이야기를 예로 들어 보자. 한 시간이 넘도록 청년은 서 있
다. 입추의 여지도 없는 혼잡 속에서 짐은 양손에 든 채다. 바닥에 내려놓을 수도 없다. 청년은 다음 역에서
는 하차하는 손님들이 있으리라는 예측을 하고 출입문 가까운 좌석 앞에 서 있었다.
'어쩌면 앉을 수 있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는 스스로를 달래면서 참고 있었다. 그때 앞자리의 여자가 일어났다.
'다음 역에서 내립니다. 여기 앉으세요.'
그래서 청년은 앉으면서 살았다 싶었다. 다음 역은 큰 역이었으므로 많은 승객들이 내렸다. 그러나 좌석은 여
전히 만원이다. 그런데 그 역에서 지팡이를 짚고 한 노인이 승차하여 그 청년 앞에 섰다.
'한 시간 동안이나 무거운 짐을 들고 겨우 잡은 좌석인데 양보하기 싫구나.'
청년은 그렇게 생각했다. 전철이 달리자 흔들려 노인은 공교롭게 청년의 무릎 위에 넘어졌다. 노인은 '미안합
니다.'라고 힘없이 사과했다. 그러자 청년의 건너편에 앉아 있던 중년의 신사가 '할아버지 여기 앉으세요'하
고 노인의 등을 두드리면서 자리를 양보했다. 노인은 넘어질 듯 그 자리에 가 앉았다. 이빨이 빠졌는지 입을
오물오물하면서 기쁜 얼굴로 인사말을 되풀이했다. 청년은 노인과 신사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가 없
었다. 가방에서 잡지를 꺼내 얼굴을 가리듯이 하고 읽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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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3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2)(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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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지까지는 두 시간이아 더 가야 하기 때문에 좌석은 양보할 수가 없다.'
청년은 혼자 변명한다. 잡지의 글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눈은 활자를 건성으로 더듬고 있을 따름이었
다.
청년은 뒷맛이 개운치 않은 생각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청년은 사소한 일이었지만 마음의 상처를 준 전철 내에서의 사건을 반성했다. 자기에게 좌석을 양보해 준 부
인에 대해 나는 왜 감사하지 않았을까, 짐을 들도 괴로운 얼굴로 서 있는 나를 본 그 부인은 하차하기 10분
전에 자리를 양보해 주지 않았던가.
청년은 반성을 하고 그 부인에게 새삼스럽게 진심으로 감사했다. 이어 노인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때 나는 이
미 짐을 선반 위에 올려놓고 홀가분한 몸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제 겨우 앉았다. 갈 길이 멀다며 자기만을 생
각하고 결국 좌석을 양보하지 않았다. 그때의 초라한 자신의 몰골을 생각해 보고 청년은 자기 혐오감에 빠졌
다.
그때 다리가 불편한 노인에게 좌석을 양보했더라면 지금 이렇게 마음이 아프지는 않을 것이다. 앞좌석에 앉
은 신사가 청년의 무릎에 넘어진 노인을 보다 못해 자리를 양보했다. 이 광경을 보고 자신이 그렇게 부끄러
울 수가 없었으며 좌석을 양보하지 못한 것이 더욱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그 신사가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던가, 나는 그때 읽지도 않을 잡지를 꺼내 얼굴을 가렸
던가, 이것은 한 마디로 자신의 이기주의와 자기 보호의 엄폐술에 불과했던 것이다. 남에게 좋은 점을 보이
고 싶은 마음은 비록 선의로 한 행동일지라도 거기에는 답례와 감사를 탐내는 심리가 깔려 있다.
청년은 왜 좀 더 순진한 마음으로 자리를 양보할 수 없었던가, 행여 꾸밈의 선행처럼 보이기가 싫어서 양보
를 주저했던 것은 아니었던가, 라고도 반성했다. 또 자신의 편안만을 구한 마음의 상태에 대해서도 반성했
다. 그때 신사가 보여 준 행동을 앞으로 인생의 교훈으로 삼아야겠다고 청년은 명심했다.
그 후 청년은 모든 일에 자신을 중도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으며 마음은 항상 평안하고 거짓이 없는
인생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고 나에게 털어놓았다. 인간은 누구나 잘못을 저지르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 청년
처럼 잘못을 잘못으로 내버려두지 않고 자신의 본심을 단단히 가다듬어 욕심을 버리는 방향으로 나간다면 누
구든지 반드시 신리에 도달할 수 있다.
올바른 길을 걷겠다는 수행이 자신을 향상시킨다. 흔히 세간에 '나는 자기비판을 했다' 등의 기사가 신문 지
상에 실리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신리에 맞는 자기비판은 자기 자신의 마음의 반성이어야 할 것이다. 그런
데 그것을 어떻게 겉으로 나타낼 수 있단 말인가.
또한 그것이 특정한 사상 통일을 위한 자기비판이라면 더더욱 무의미한 것이 아닐 수 없다. 마음은 자유자재
인데 그것을 사상적인 틀 속에 거두어버린다면 인위적인 조직을 위한 자기비판밖에 되지 않으며 진심의 반성
이라고는 볼 수 없는 노릇이다.
조직을 위한 자기비판은 인간성을 잃고 인간 로봇이 되기 위한 반성밖에 되지 않는다. 모순을 안고 있는 사상
을 통일하기 위한 세뇌용 자기비판은 지정한 조직의 압력에 의한 지식만의 반성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근
본이 잘못된 자기비판은 조직의 세포로서 한정된 사고일 뿐이며 인간 본래의 생명의 자유성을 완전히 상실하
고 있다.
정신적 폭력, 조직의 폭력이 항상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비판이나 자아 반성이라는 것은 거의가 다 조직
속의 자기 보존이며 진심에서 벗어난 지적 이론으로서의 형식적인 반성에 지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조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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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3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2)(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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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해서 조작된 자아비판은 언젠가 내부에서 불만이 폭발하여 그 조직을 무너지게 되어 있다.
조직의 지도자들은 자신의 마음 그 자체를 잘 살펴야 한다. 그러면 자신을 구제하는 길이 보일 것이다. 폭력
으로 지배하는 것은 어는 날엔가는 폭력에 의해서 멸망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움직일 수 없는 순환의 법칙이
다. 인간은 일시적인 표면상의 인생을 즐길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선상에서의 인생을 즐기지 않으면 안 된
다. 반성은 어디까지나 행복에의 전제이다.
올바른 반성 속에서 신불의 빛을 부여받게 된다. 반성은 올바른 이성의 힘을 길러 주지도 한다. 이성은 마음
의 유일한 브레이크이다. 이와 같이 반성은 신불이 내려 준 자비의 빛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법]
불경에 고집멸도(苦集滅道)라는 말이 있다. 고(苦)는 인생의 온갖 괴로움을 말하고, 집(集)은 그 괴로움의
원인을 말하며, 멸(滅)은 그 원인을 없앤다는 뜻이고, 도(道)는 그 없애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다.
그 방법은 여덟 가지 바른 길을 실천하는 것이다. 태양의 열과 빛은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면서 지상에 방출되
고 있다. 물과 공기도 일정한 양을 유지하면서 줄지도 불어나지도 않는다. 지구의 운동도 일정한 리듬을 유지
하면서 자전 공전을 계속하고 있다.
자연의 세계는 어느 것 하나 조화를 흩트리지 않고 항상 균형을 유지하면서 안정되어 있다. 자연계는 그처럼
모자람과 넘침도 없는 중도(中道)의 가장 안정된 축을 중심으로 삼고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고 있다. 따라서
중도의 정신은 만물을 살리는 조화의 마음이며, 조화는 자비와 사랑의 그 근본을 이룬다.
여기서 마음의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은 마음의 평화와 자비와 사랑을 갖추어야 한다는 뜻이
다. 우리 마음이 자비와 사랑으로 가득 찰 때 비로소 우리는 자연의 중도인 리듬과 합치될 수 있으며 평화의
낙원 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인간은 선택과 창조의 자유를 부여받고 태어났기 때문에 아무래도 중
도에서 벗어나 제멋대로 기울어지는 경향이 있어서 오늘날 인류 사회는 온갖 이데올로기와 사상이 난무하여
투쟁과 파괴가 그칠 날이 없다.
따라서 여덟 가지 바른 길은 인간의 갖추어야 할 가장 으뜸가는 기준이고 대자연의 마음과 합쳐지기 위한 규
범이며 천국에 이르는 기교라고 할 수 있다. 좌에도 우에도 기울어지지 않는 중도의 길, 즉 신성(神性) 불성
(佛性)의 길, 정각(正覺)의 길이다. 반성의 척도가 되는 이 팔정도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그 하나하나의 목적
을 이해하고 그에 따른 노력과 용기와 지혜가 필요하다.
사물을 바르게 보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 개인의 입장을 버리고 제3자의 입장에서 사물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보통 남의 문제에 대해서는 비교적 정확하게 판단을 내린다. 그러나 자신의 문제, 더욱이 이해관계가
얽힌 문제가 되면 시비의 판단이 흐려져 이따금 후회스러운 결과를 빚기도 한다.
이것은 자신의 문제가 되면 어느새 자기 보호의 마음이 작용하여 사욕에 사로잡히기 때문이다. 올바른 관찰,
올바른 판단은 자신을 버리고 이를테면 제3자의 입장, 즉 객관적인 입장에서 사물을 냉정하게 보는 데에서
나올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견해는 마음이 내면까지 파고들어가서 지금까지 옳다고 여겼던 일이 전혀 반대
인 경우라는 것을 알게 된다.
어떤 일을 겉모양만 보고 판단을 내리면 낭패를 당하는 수가 많다. 눈으로 보이는 현상의 뒤에 숨은 원인을
찾아내고 그 원인을 제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원인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반성을 해야 하며 객관적인 입
장의 반성을 통해서 그 원인을 찾아내고 그 원인을 없애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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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3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2)(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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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르게 보는 힘은 올바른 견해를 낳는다. 그렇게 되면 인간 사회의 어지러운 움직임에 일일이 마음이 흔들
릴리도 없으며 언제나 마음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 이 지상에서 일어난 일은 반드시 원인이 있고, 그 결과
로 나타나는 것인 만큼 바르게 보는 실력이 갖추어짐에 따라 현상의 뒤에 숨은 원인을 찾기가 쉬워진다. 바
른 마음의 눈을 길러 향상되고 정확해지며 마침내는 신의 마음에까지 닿게 되는 것이다. 바르게 보자는 것은
사물의 정확한 판단과 견해를 얻는데 있다.
모든 원인은 마음에 있으며 물리적 현상은 마음이 어떻게 결정지었느냐에 따라 나타나는 결과라는 것을 먼
저 이해해야 한다. 전부터 갖고 있던 관념을 백지화하고 사물의 진실을 파악해야 한다. 모든 잘못은 사심에
서 생기는 것이므로 사심을 버리고 항상 선의의 제3자의 입장에서 사물을 본다.
보고 듣고 말하는 행위 이전에 중도를 중심으로 한 올바른 생각이 있어야 한다. 자기중심의 생각은 자신을 망
친다. 왜냐하면 모든 현상은 서로 상호 작용을 통하여 순환의 법칙에 따르고 있으므로 자기 보호의 상념은 결
국 자기 자신에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제 꾀에 제가 넘어간다' '남의 눈에 눈물을 흘리게 하면 내 눈에는 피눈물이 난다' 등의 속담 그대로이다. 생
각한다는 것은 바로 창조 행위이기 때문에 자신의 운명을 좋게 하려면 우선 생각을 늘 올바르게 가지지 않으
면 안 된다.
생각은 행동의 전제이지만 실은 행동 그 자체나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마음으로 간음한 것은 행동
으로 간음한 것 이상으로 죄악시하는 것이 신의 뜻이다. 바르게 생각하는 것도 바르게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제3자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
상대방의 입장은 어떤가, 이 문제를 그렇게 결정하면 그에게 어떤 피해가 올 것인가.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
상대방의 행복을 비는 조화를 목적으로 한 생각이 중요하다. 정도(正道)의 목적은 '마음의 평화'이며 마음이
늘 어둡고 불안하면 아무 일도 안 된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인내와 인욕(忍辱)을 구별해서 생활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참고 견디는 인내는 고통, 슬픔, 노여움, 미움 등의 감정을 뱃속에 집어넣는 것을 의미한다. 나 혼자만 참으
면 집안이 평온할 것이니 참는다는 그 인내는 독이 되고 질병과불행의 원인이 된다. 인욕 역시 견디고 참는다
는 뜻이지만 고통, 슬픔, 노여움, 미움 등을 티끌만큼도 뱃속에 삼키지 않는 행위를 말한다.
말을 해도 통하지 않을 때에는 상대방의 평안과 조화를 신불에게 빌어 주는, 넓고 큰마음을 가져야 한다.
이렇게 인욕을 일상생활에 익힘으로써 참고 독을 삼키는 일이 없어야 한다. 바른 생각을 기르는 데에도 역시
반성이 필요하다. 하루의 일과를 통해서 내 생각은 옳았던가를 살펴보고 잘못이 있었으며 고쳐야 한다. 이런
가운데 중도의 생각을 마음속에 확립할 수가 있다. 생"B하는 것은 만물의 시초이다. 모든 현상은 생각으로부
터 시작되므로 남을 살리는 사라의 생각이 바른 생각의 바탕이다.
말은 살아 있는 영혼의 파장으로 상대방에게 전달되는 직접적인 매개 방식이다. 또 한 번 입 밖에 나온 말은
상대방의 귀를 통해서 조화든 부조화든 어느 한 가지 현상을 불러일으킨다. 지나치게 알랑거리는 말과 불손
한 말은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한다. 자기의 뜻을 올바르게 전달하기 위해서 말은 적어도 안 되며 많아도 좋
지 않다. 상대편의 마음이 되어 대화해야 한다.
흔히 거리에서 운전기사들이 서로 고함지르며 다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가령 상대방이 고함을 질러도 이쪽
에서는 반항하지 말아야 한다. 내가 백번 옳다고 판단해도 반발해서는 안 된다. 반발은 자기 보호의 표현이
자 자기중심의 생각이다. 이럴 때일수록 올바르게 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툼은 마음의 조화를 깨는 원인을 만들기 때문이다. 상대가 화를 내도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서는 안 된다.
선악을 잘 판단하고 그 위에 마음을 조화시켜야 한다. 화낸 마음의 파장은 결국 화를 낸 사람에게 되돌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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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3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2)(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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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것이 순환의 법칙이다.
'말한다'는 것은 나와 상대의 뜻이 서로 교류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드러운 말에서 받는 느낌과 거친
말에서 받는 느낌은 크게 다르다. 느낌이 좋은 부드러운 대화 가운데서 조화가 이루어진다.
아무리 심한 비방이나 험담이나 노여움에도 마음이 흔들려서는 안 되며 한 쪽 귀로 듣고 한 쪽 귀로 흘려버려
야 한다. 그러나 왜 그런 말을 듣게 되었는가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일 그런 억울한 말을 들을 만한 원
인이 없을 때에는 '불쌍한 사람이다'고, 말한 사람을 동정해 주어야 한다.
'신불이여, 부디 저분의 마음에 평안을 주소서'
그렇게 상대방을 위한 기도를 해 주어야 한다. 이런 마음이 바로 보살심(菩薩心)의 표현이며 바른 말의 핵심
이다. 생각하는 것은 말이 된다. 사랑의 생각은 사랑의 말이 된다. 바른 말이란 사랑의 말이다. 마음에 사랑
이 있으면 말 이전의 말이 상대에게 전달된다.
지상의 모든 생물들은 일을 하도록 되어 있다. 동물도 식물도 그리고 광물까지도 다른 생명체를 위해서 자신
이 몸을 제공하고 있다. 사람도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예외가 아니다. 어린 아기는 젖을 빨고 자는 것이 일이
다. 그래서 언젠가는 어른이 되며 다음 세대를 짊어지고 큰일을 하게 된다.
학생은 학교에서 공부하고 사회인은 직장에서 일한다. 주부는 가정에서 아이들을 지키며 남편의 일이 잘 되
도록 편안한 보금자리를 꾸민다. 일한다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의무이다. 동시에 직업을 가지고 일한다는 것
은 남이 필요로 하는 것을 제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직업이 없는 사람, 일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란 있을 수 없다. 오늘날의 사회생활은 저마다 분업에 종사하면
서 자기의 생계를 이어가는 동시에 남을 돕고 있다. 따라서 일한다는 것은 남에게 도움을 주는 것인 만큼 사
랑의 행위가 된다. 일을 하고 직업을 가진다는 것이 사랑의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이렇게 혼란해지는
것은 일을 단순히 돈벌이의 수단으로 생각하여 나만 좋으면 그뿐이라는 사고방식이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바른 일은 이 지상의 조화에 이바지하는 행위이며 그 기초는 사랑과 봉사의 마음이다. 오늘날의 기업은 노사
의 대립이 심각하여 투쟁과 반목이 그칠 날이 없다. 경제의 합리화는 분배를 정확히 공평하게 나누는 것이며
공정한 분배는 인간 존중의 대화에서 풀어야 한다. 인간은 경제의 노예가 아니다. 저마다 맡은 바, 직업을 통
해서 영혼을 닦아야 하는 생명임을 명심해야 한다.
현대에는 노사 분규가 그치지 않고 있다. 직장을 투쟁의 장소라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은 자기의 목을 자신이
죄는 결과를 초래한다. 싸움과 파괴의 마음은 그대로 지옥으로 통하고 있다. 항상 노사의 마음을 조화시켜 사
업의 실체를 보다 향상시키려는 노력에 대해서는 신불의 빛이 쏟아져 공생 공존할 수 있게 되며 하나의 작은
유토피아를 이룰 수 있다.
노사 쌍방이 마음의 조화를 이루어 서로 단결이 되고 자기 보호나 자아의 사욕을 찾아 볼 수 없는 사업체는
신의 뜻에 따른 사업체다. 마음이 서로 조화를 이룬 직장은 신불의 빛에 의해 보호 받는다. 다른 데에서는 찾
아 볼 수 없는 훌륭한 기술을 개발한 사업체는 물론 망하지 않으며 영원히 존속한다.
기술이 없어도 영업 활동이 부지런하고, 바른 업종에 전념하며 훌륭한 고객을 확보하고 있는 사업체는 넘어
지지 않는다. 연구 노력의 결과, 항상 인류 사회에 공헌하는 신제품의 개발로 획득한 전매특허의 활용도 망
할 수는 없다.
대자연의 법칙에 따른 올바른 길은 지(知), 정(情), 의(意)와 함께 인류 사회를 행복으로 인도하고 보다 높은
차원으로 영혼을 닦으며 조화의 환경을 구축해 간다. 이것이 일의 본질이다. 기술이나 노동력 이전에 무엇보
다도 마음이 중요하다. 평안과 조화와 즑움을 주는 작품은 보다 높은 차원의 예술을 낳는다. 이러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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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3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2)(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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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생활도 몰락하지 않는다. 자만심을 고립을 자초한다. 마음을 상실한 예술은 자아 그 자체로 떨어진다. 또
한 마음을 상실한 지식과 의지만의 과학은 투쟁과 파괴의 원인을 만든다.
마음을 상실한 지도자는 한동안은 번영할지 모르지만 머지않아 그 지도력을 잃고 저지른 죄를 스스로 보상하
지 않으면 안 된다. 투쟁과 폭력으로 구축한 모든 것의 결과는 투쟁과 폭력에 의해서 또다시 전복된다. 마음
을 심지 삼아 근면과 노력으로 이룩한 사회는 조화와 평화의 환경이 되어 보다 높은 문명을 열어 가며 우리들
이 영혼은 보다 높은 차원으로 진화해 간다.
이와 같이 일은 그대로 인생의 수행이며, 그 일터는 그대로 영혼의 수행장이다. 우리들은 모두 개체의 생명이
며 그 개체를 개발 노력함으로써 보자 조화 있는 사회를 구축할 수가 있다. 세상의 모든 만물들은 서로 상호
의존하고 있으며 유독 인간만이 특별한 존재라고 인식하는 것은 잘못이다. 신불의 분신인 만생 만물을 정법
으로 활용함으로써 비로소 정업을 이룰 수 있다. 고용주가 스스로 만족할 줄 알고 이익은 종업원에게 돌려주
며 진실한 대화로써 보다 높은 업적을 올리고 남은 이익의 일부는 사회 복지에 환원해야 한다.
그런 일로 경영자는 보살 같은 마음을 갈고 닦아진다. 이러한 일들은 인간 각자가 신불의 자녀로서의 자각을
가짐으로써 비로소 실현되는 것이다. 결코 물질이나 경제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 자기 자신의 진실을 발
휘하는 생활이야말로 신리에 맞는 생활이라고 할 수 있다.
정업[正業]의 목적은 다음의 세 가지다. 영혼의 수행자로서 지상의 일들을 조화하며 감사하는 마음과 봉사
정신을 갖는다.
사람이 육체는 이 지상에서 인생이라는 항로를 건너는 배에 불과하다는 말은 위에서 여러 번 강조되었다. 우
리의 영혼은 바로 육체라는 배를 타고 간다. 그 배의 선장은 의식 즉 영혼이다.
우리의 영혼은 신의 분신이며 그 분신은 신의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다. 따라서 사람은 신의 품안에서 살고 죽
는 생명체이다. 이 지상을 왕래는 긴 윤회의 과정에서 지은 업보[가르마]는 하나도 남김없이 우리들의 잠재
의식 속에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인생의 첫째 목적은 신의 자녀로서 올바른 상념을 조화시키는 일이다. 업이라든가 상념이라는 것은
우리들 마음속에 있는 자기 본능, 사욕의 모습이며 그것은 전생에서부터 계속되어온 악의 개념이다.
이 업보는 행위로 나타나게 되며 자신을 반성함으로써 발견할 수 있는 성격상의 결정이다. 사람은 눈, 귀,
코, 입, 몸, 그리고 의지라는 육근(六根)에 의해서 미혹당한다는 말을 했다.
과거 세상의 나쁜 업의 씨도 이 육근의 유혹에서 생겨났다. 마음은 육체를 지배하고 있는 의식의 중심이며,
자기에게는 절대로 거짓말을 할 수 없다는 말도 있다. 그런데 인간은 자기 형편에 따라 남을 속인다. 그런 자
기 보호에 의해 더 큰 업을 짓고 만다. 우리는 육안으로 볼 수 있는 현상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올바르
게 마음이 눈으로 보는 훈련을 통해서 정확한 판단을 내려야 하고 중도라는 조화의 마음으로 결론을 얻어야
한다.
가령 다른 사람들로부터 어떤 비난을 받았다면 스스로 그 원인과 결과를 분석. 판단해 보는 마음의 자세가 필
요하다. 육체의 오관만으로 함부로 속단해서는 안 된다. 육체적인 조건만으로써는 올바른 생활을 할 수 없
다.
신리에 맞는 개개인의 마음이 사회 집단을 구성하고 그 가운데서 상호 협조의 조호가 이루어진다. 올바른 생
활, 즉 정명(正命)을 통해서 조소, 원망, 질투, 비난, 노여움 등의 악한 생각은 꼬리를 감추게 된다.
대자연의 무한한 자비에 대한 보은의 행위가 평화스러운 안심입명의 빛을 인간 사회에 형상화시켜 나가는 것
이다. 신불은 인류의 지상 생활에 필요한 만물을 이미 우리에게 부여해 주었으므로 기도하는 것보다 감사와
은혜에 보답하는 삶이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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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3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2)(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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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를 갚는 일은, 실천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한 신리에 맞는 수행이라고 할 수 없다. 즉 수행이라는 것은
1초1초의 연속적인 올바른 일상생활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절에 가서 기도하는 것은 신앙이 아
니다.
기도의 마음을 지속적으로 가지는 것이 진짜 신심이며 신불의 마음을 나의 마음으로 삼고 생활하는 가운데
비로소 '마음'의 위대함과 존엄성을 깨닫게 된다. 그래야만 마음의 문이 열린다. 과학자는 과학을 통해서, 예
술가는 예술을 통해서, 문필가는 문학을 통해서, 스포츠 선수는 스포츠를 통해서 각자 신리에 맞는 생활의 조
화를 이루는 것이 바르게 사는 길임을 명심해야 한다.
학문화된 철학 종교에는 실천이 따르지 않는다. 신리를 깨닫지 못한 참선이라든가 번뇌를 멸하기 위한 육체
고행 등은 무의미한 것이며, 신리를 깨달아 실천하는 생활이야말로 진짜 바르게 사는 것이다.
신리는 자신의 생활환경 가운데 존재하는 것이며,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진실한 신앙이다. 생활과 직
결되지 않는 신앙은 모두 종교로서의 존재 가치가 없다. 모든 불행의 원인은 나 자신에게 있다. 생활의 부조
화가 그 원인이며 책임은 남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원인을 추구해서 제거해 나가는 반성의 생활 가운데
영혼의 진보가 있는 법이다.
일상생활이 조화를 이룰 때 신불의 빛의 보호를 받게 된다. 그리고 거기에는 불행이 얼굴을 내밀 수 없다. 행
복은 올바른 생활의 지속적인 실천 가운데 쌓여 가는 것이다. 정신적 육체적 조화를 꾀해야 한다. 그러기 위
해서 자신의 장단점을 잘 살펴서 가르마가 된 여러 가지 자기 보호의 상념을 바로잡아야 한다.
넷,
전생의 그림자를 지울 수 없다.
나는 죽은 사람이 살았을 때의 모습과 그 음성과 그 사람의 특징까지
모두 밝혀낼 수 있으며 죽은 영혼과의 대화를 생생하게 들려 줄 수 있다.
이것은 죽은 자가 살았을 때의 모습을 영혼 그대로
지니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이다.
[사랑은 지상의 가장 밝은 빛이다]
우리는 기껏 길어야 80년, 90년을 살 뿐이다. 영혼이 육체와 결합해 버리면 표면 의식이 10%, 잠재의식이
90%라는 비율로 작용하기 때문에 거의 눈앞이 일밖에 알지 못한다.
따라서 자기 자신이 깨달을 수 있는 수행 장소는 이세상이 가장 훌륭한 환경이 아닐 수 없다. 이 현상계에서
는 남의 마음을 모르기 때문에 서로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 한 치 앞도 못 보기 때문에 스스로 고뇌의 원인을
만들어 나쁜 짓도 당당하게 하게 된다.
"인생은 암흑이다."
우리는 자주 그런 말을 한다. 인간의 마음을 존중하고 사욕에 사로잡힌 생각을 바로잡아 자신의 언동을 제3
자의 입장에서 살피면서 생활하는 것이 이른바 정도이다. 그런 생활을 통해서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 숨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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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무한대의 지혜가 솟아나 인간으로 살고 있는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된다.
실재계 즉 저 세상에서는 지상에 살고 있는 우리의 생활 상태나 마음의 움직임을 마치 유리 상자 속을 들여다
보듯이 환하게 안다. 아무리 거짓말을 해도 금방 알 수 있다. 자신의 생활이 이처럼 유리 상자 속 같다는 것
을 안다면 인간은 함부로 불행의 원인이 되는 언동은 취하지 못할 것이다.
자기 마음속에 비밀로 하고 있는 부조리한 생활을 청산하고 진실로 자신의 마음에 충실한 올바른 생활에 정
진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사람은 단독으로는 태어날 수도 없고 또 살아갈 수도 없다. 반드시 부모가 있으며
형제, 자매, 부부, 이웃, 친구, 선후배 등의 대인관계 속에서 살아야 한다.
그리고 그런 인간관계를 통해서 자신의 마음이 닦아지며 서로 존중하는 마음이 길러지나. 오늘날처럼 물질
만능주의 시대가 되면 아버지와 아들의 사이도 남이며, 부부 사이를 향락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나오
게 된다.
친구는 이익을 위한 한 수단에 지나지 않으며, 자기 이외에는 모두 남이 되는 것이다. 실로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부부의 관계는 서로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여 가정이라는 천국을 창조하고 자손을 키우는 것이며, 부
모 자식의 관계는 과거 세상의 인연과 약속에 의해서 맺어진 사이인 까닭에 부모는 자식을 돌보고 자식은 부
모에게 마땅히 효도해야 한다.
형제는 영혼의 향상을 위해서 서로 부지런히 학문이나 도를 닦는 사이이며 친구나 선후배는 사회생활을 하
는 데 좋은 협력자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인간관계의 조화에 일관하는 기둥은 사랑의 마음이다.
사랑이야말로 조화롭고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이며 이 지상의 밝은 빛이다. 또 인간은 공동생활이 오래 유지
될 수 있도록 동물, 식물, 광물 등의 자연과 자원을 바르게 정비하고 활용해야 한다. 따라서 이러한 자원을 순
환의 법칙에 맞게 소중하게 가꾸어야 한다. 산림 보호, 수렵 금지, 자연 보호 등의 중요성이 여기에 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인간관계를 비롯하여 자연 자원과의 관계가 항상 복수(複數)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 복수라는 사회 환경, 자연 환경 속에서 상대를 이롭게 하고 상부상조해 나가는 것이 바로 올바르게 도에
정진하는 길이 되는 것이다.
오늘날의 종교는 대부분은 그저 모여서 기도하고 명상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경문이나 성경은
예배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경문 속에 담긴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
특히 불교에서는 철학화된 어려운 경문을 읽는 것이 공식적인 행사처럼 되어 있다. 그것은 큰 잘못이다. 그
속에 담긴 의미를 파악하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왜 모르고 있는 것일까.
경문이 고맙다는 생각이 들면 실천에 힘써야 하지 않는가. 죽은 자를 위해서 불경을 드리면 극락으로 보내는
공덕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왜냐하면 죽은 사람은 그 경문의 의미조차 모른다. 그게 어떻게 공
덕이 된단 말인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상식적인 관념만으로는 아무 소용이 없다. 당신은 당신이 모르는 말로 상대방이 말
을 건네 오면 그것을 이해하고 대화할 수 있겠는가. 상대방이 모르는 말을 하면 나는 대답을 할 수가 없다.
이미 나는 앞에서 사람은 이 세상에 살던 자기 모습 그대로 저승으로 간다고 말했다. 나는 죽으면 내 생각과
말과 행위를 고스란히 그대로 가지고 저승으로 간다. 그런데 내가 죽은 후에 누가 나를 위해서 불공을 드리
면 부처가 된다고 말하는 스님이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그 스님이 과연 저승의 실상이 무엇이지 알고나 하
는 말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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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3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2)(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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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의 관성의 법칙을 보자. 물론 이 세상뿐만 아니라 저 세상에도 관성의 법칙은 있다. 나는 그것을 아고
있기 때문에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이다. 즉 현재의 의식을 그대로 지닌 채 차원이 다른 저승으로 윤회의 순환
을 하고 있는 영혼은 자신이 그 사실을 깨닫게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에는 그런 것을 알 턱이 없다고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사실을 즉석에서 현상화시켜 보여 줄 수 있다. 이것은 결코 거짓이 아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왜 거짓말을 하
겠는가. 나는 죽은 사람이 살았을 때의 모습과 그 음성과 그 사람의 특징까지 모두 드러낼 수가 있으며 죽은
혼과의 대화를 생생하게 들려 줄 수 있다. 이것은 죽은 자가 살았을 때의 모습을 영혼 그대로 지니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이다.
인간으로서 올바른 생활을 해서 자기 자신의 본성을 깨닫고 있는 영혼 이외에는 모두 지옥에 떨어진다. 나는
그 사실을 두 눈으로 확실히 볼 수 있고, 또 그들과 대화도 나눌 수 있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신불에 대한 기도도 자기 욕심을 드러내는 기도가 아니라 감사의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일 때 보다 확실한 신
불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우리가 마음속에 생각하는 것은 그대로 현상화되고 만다. 가령 자신이 어떤
욕망을 이루려는 마음을 갖는 순간, 그 마음은 이미 욕망의 포로가 된 채 자신의 의식, 즉 상념의 지대에 기록
되고 만다. 그 기록은 다시 지을 수 없다.
우리들의 걸어온 과거를 지울 수가 없듯이 우리들의 상념은 하나도 남김없이 기록되고 보존된다는 사실을 명
심해야 한다. 하지만 부조화한 기록들도 반성을 통해서 수정되고 진화할 수 있는 것이므로 반성이 없는 인간
은 불쌍하다.
반성은 신불이 인류에게 준 자비 그 자체다. 또 교회나 사찰에 나가서 기도하고 참배하는 것은 자유지만 신
은 그 사람의 행복과 불행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다. 자신의 행복과 불행은 마음이 바른가 그른가에 따라
스스로 결정되는 것이다.
바른 생각에 의해 그 행위가 신의 뜻에 따르고 있다면 우리는 지켜 주는 영혼들은 반드시 신의 빛을 보내 준
다. 또한 이 지구 그 자체도 신의 몸체의 일부분인 대신전이기 때문에 바른 생각은 반드시 통한다. 오늘날의
사찰이나 교회 중에는 영혼이 높게 통하는 곳도 있으며 이 지상의 여러 착한 신들과 늘 연락이 되고 있어서
하나의 생각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곳도 있지만 그런 지역은 극히 드물다.
따라서 사찰이나 교회는 어디든지 영혼이 통하고 기도가 통하고 있다고 믿는 것은 위험한 일이며 오히려 불
행을 불러들이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올바른 생각을 지니고 있는 사람은 반드시 신의 보호를 받
으며, 나쁜 영혼에 지배당하는 일은 없다. 흔히 신불이다 해서 조화하는 것은 사실은 저승의 천사들은 말한
다. 그리고 천사들도 마음의 조화도에 따라서 여러 단계의 차이가 있다. 한편 천사들 이외에도 조화를 이루
지 못한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들의 상상력은 무한대다. 하지만 그것도 올바른 조화를 위한 상상이어야 바른 생각이라고 할 수 있다. 잘
못된 생각에 의해 자신의 본성을 잃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 증거로 부자연스러운 신흥 종교나 사악한 일에
전념하고 있는 사람에게 과연 마음의 평안이 있을까, 마음에 족쇄를 채우고 늘 불안한 나날을 보내며 불행에
빠진 자가 적지 않다.
인간은 살아 있는 동안은 신이 될 수 없다. 신불의 마음과 조화하는 길은 자기 자신의 올바른 상념과 행위 이
외에는 없다. 신이 내 마음 속에 있다는 것을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염(念)이란 에너지이며 사물을 만들어 내고 이 지상의 모든 것의 원인이 된다. 염은 목적의식이므로 행위를
의미하며 남을 살리는 자비와 사랑의 염 이외의 것은 가르마[업보]가 된다. 그릇된 생각과 비교해서 생각하
면 정념의 뜻이 더 명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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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수면 중에 에너지를 공급 받는다]
나는, '내게 생명은 준 신의 자녀'라는 자각이 들 때 우리들의 일상생활 그 자체가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내가 신의 자녀라는 것과 신의 자녀가 아니라는 생각의 차이는 엄청나게 크다.
우리가 사는 이세상은 영혼의 수행 장소라는 말을 나는 여러 번 강조했다. 우리들이 돌아가야 할 저 세상은
따로 있다. 인간은 번뇌라는 바다 가운데에서만 깨달을 수 있다. 반성과 명상을 통해서 자신의 영혼의 범위
를 정화시키고 마음의 신성과 불성이 잠재의식의 문을 열 때 불멸의 세계인 저 세상도 깨닫게 된다.
영혼은 저승이든 이승이든 어디나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다. 사람은 왜 밤에 잠을 자는가. 사람은 모두 몸을
눕히고 잠든다. 우리가 잠든 사이에 영혼은 육체에 연결된 영자선(靈子線)을 타고 영혼이 후에 가게 될 곳이
나 이승의 낯익은 장소 또는 자신이 태어났던 전생의 장소에 가 보는 경우가 있다.
더구나 수면 중에 저승에서 에너지를 보급 받는 가장 중요한 일이 이루어지고 있다. 모든 사람이 잠을 자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우리들은 잠을 잔다는 것을, 마치 늘 그래왔으니까 그런 것처럼 습관적으로 가볍
게 여기지만 잠을 자는 이유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사람이 잠을 잔다는 것은 영혼이 타고 있는 육체라는 배를 휴식시키는 일이며 동시에 의식, 마음의 세탁을 하
는 시간이다. 때로는 꿈속에서 천사들에게 강제로 연마되는 경우도 있다. 술도 마시지 않았는데 숙취 현상이
일어난다든가 몸살감기 기운이 있다든가 하는 육체적 현상은 그 때문에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심장이 박동이 심해져서 기분이 나빠질 경우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수호천사들은 우리가 잠든 사이
에 열 시간 정도 피곤해진 몸을 말끔히 닦아놓는다. 몸이 아픈 사람이 잠을 자고 난 후에 상쾌하게 느끼는 이
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러나 잠자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질병의 증상은 의사의 진단도 소용없다. 만일 그런 고통 받는 사람이 있다
면 잘 반성해서 하루 빨리 정법에 따른 궤도 수정을 해야 한다.
그 밖에도 불안, 초조, 신경질이 잘 나는 사람은 나쁜 저급의 영혼에 의해 지배당하는 경우가 많다. 신의 보호
를 받지 못하면 그런 증상이 나타난다. 만성 두통병에 시달리는 사람이 있는데 이것은 지나친 간섭주의자에
게 많다. 무엇이든지 전부 머릿속에 집어넣기 때문이다.
우리의 두뇌는 60조가 넘는 육체 세포의 총사령부이며 통제 부분이다. 기억 담당실은 대뇌피질의 신경 섬유
가 흐르는 모든 전기적인 파동 입자에 의해서 성립된다. 거기서 발신된 진동 에너지가 의식에 전달되어 상념
대에 기록된다.
'모든 것은 뇌 속에 기록되어 있다.'
이 말은 틀린 생각이다. 만일 우리의 뇌가 일체의 기록 장치를 가지고 사고 에너지를 발신하는 장소라고 한다
면 수면 중에는 일체의 사고 활동이 중단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뇌파의 진동은 일어나고 있다. 그것
은 의식의 접촉을 시도하기 위한 현상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영자선이 끊어져 의식이 돌아오지 않을 때에는
뇌파의 진동을 멈추게 되며 육체와 영혼[광자체]은 분리되어 저 세상으로 돌아간다. 즉 죽음을 의미한다.
오관을 통해서 수용된 뇌에 전달되어 다시 뇌파의 발신 진동에 의해서 마음에 보고되는 것인데 수면 중에 뇌
파 진동수가 다른 것은 오관이 휴식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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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3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2)(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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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은 육체 세포가 기억해 낼 수 없다. 왜냐하면 기억 장치는 뇌 속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은 한 나라에
만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육체 환경과 조건이 다른 여러 나라를 스스로 희망하여 삶을 전전하며 윤회하고 있
다. 따라서 육체적 조상이 자신의 유일한 뿌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생명이 부모의 것이라고 한다면 어째서 부모 자식 간의 부조화가 있단 말인가. 왜 성격이 다르고 사고방식이
다를 수 있겠는가. 이 의문에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 멘델의 유전의 법칙은 육체 유전에 한정된다는 것을 알
아야 한다. 인간의 뇌세포 수는 약 2백억 개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기억의 한 모퉁이에 지나지 않는
다. 만일 기억 뇌세포를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영혼의 세계와 교신하는 것을 언제든지 보여 주겠다.
영적인 길이 열린 사람은 모든 차원이 다른 세계와의 교신이 가능하다. 신리를 실천하는 생활을 하면서 정
(定:참선 명상)에 들면 우리의 의식체는 우주대로 확대되어 신불의 의식과 조화를 이루어 법열을 맛볼 수 있
게 된다.
어떤 사람은 상념의 정지에 의해서 깨달음을 열었다고 하는데 이것은 말도 안 된다. 만물 일체의 현상은 단 1
초의 시간도 정지되지 않는다. 상념이 정지되는 순간 동물령에 지배되어 '나는 신이다' '부처다' 등으로 뽐내
는 신흥 교주가 있는데 그런 교주는 한결같이 병약하거나 물욕 덩어리이다.
신흥 교주들은 병이 난 원인을 업보를 대신 짊어진 탓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있는데 사실은 검은 상념에 의해
서 악령에 빙의된 것이다. 더러는 입산수도했다고 자칭하는 자가 훌륭한 도사처럼 행세하고 있지만 이들 역
시 진짜일 수 없다. 폭포행이나 육체 고행을 통해서 번뇌를 멸각시킬 수는 없다.
육체 수행의 고통으로 말미암아 의식과 육체가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그 순간에 주로 짐승들의 영혼에 빙의
되고, 그 둔갑술에 현옥되어 천상의 소리를 들었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진짜가 아니다. 그런 일은 선도(仙道)
나 요가 등의 수행자에게 많다. 그런 사람들은 자아가 강하고 자비심도 없으며 마음도 조화를 이루지 못하여
평안이 없으며 깨달음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신통술이 있다고 뽐내는 사람들은 거의가 짐승의 영혼에 지배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행위는 정정(正
定)이라고 할 수 없다. 정법에 귀의하여 깨달음을 이룬 사람들은 모두 겸허하다. 뽐내는 마음이 없다. 일체
의 현상에 사로잡히지 않고 올바르게 팔정도를 실천하여 현재, 과거, 미래의 삼세를 꿰뚫어보는 능력을 지녔
다. 인간은 산중에 들어가서 수행하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다. 올바르게 일에 전념하여 인간다운 삶을 누
리기 위해서 육체를 얻어 이 세상에 나온 것이다. 인도의 고다마 붓다도 6년 동안의 고행으로는 깨달을 수 없
었다. 이스라엘의 예수도 어릴 때 산중에 들어갔지만 육체적 고행은 거의 하지 않았다.
신리를 깨닫지 못한 채 참선을 한들 그것은 형식에 지나지 않는다. 신리를 깨달은 실천 생활 가운데 육체적
인 수행은 운동으로서 좋은 일이다. 형식과 이론에 사로잡힌 사람은 깨달음의 경지에는 한 발자국도 들어가
지 못한 사람들이다. 정정(正定)은 신리의 깨달음과 올바른 상념과 행위 속에서 성취되는 것이다.
학문 불교, 의식 불교, 관광 불고, 장례 불교 등은 아예 깨달음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다. 인도에서 고다마가
설법한 당시의 불교에 의해서 비로소 깨달음의 길이 열린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한편 기독교도 예수 생존시
의 원점으로 돌아가야 한다. 왜냐하면 당시의 신리로 돌아가는 것이 현대인들에게 진짜 마음의 존엄성을 깨
닫게 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기 자신의 깨달음을 여심(如心)이라고 말한다. 팔정도는 나 자신의 깨달음이며 인간은 최소한도
의 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태어난다. 정법은 어느 한 나라에만 통용되는 것이 아니고 전 인류 전 우주의 신리
임을 알아야 한다. 불교도 기독교도 고다마의 시대, 예수의 시대로 돌아가는 것이 선결 문제이다. 신리는 시
대에 구속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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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3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2)(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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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문명은 생활의 지혜이며 보다 높은 차원의 마음을 지니는 것이 만물의 영장다운 행위다.
반성에 의해 마음이 안정되면 부동심이 길러지는데 그 부동심을 일상생활에 활용하지 않으면 정정의 의미는
반감된다. 정정은 실재계와의 가장 가까운 교류장이다. 정정에도 여러 단계가 있지만 중요한 것은 마음의 조
화, 안정, 지혜의 용출 등이 그 목적이다.
팔정도(八正道)를 실행하는 방법은 다섯 가지다.
늘 냉정할 것, 항상 선의의 제3자의 입장에서 바라볼 것.
늘 친절할 것, 사랑의 마음으로 생각하고 염원하며 말하고 자기중심의 입장에서 떠날 것.
늘 감사하고 은혜에 보답할 것, 사람끼리 협력으로 개인도 사회도 성립된다는 점을 명심하여 봉사와 협조의
마음을 잊지 말 것.
늘 성격상의 단점을 수정할 것, 장점을 기르고 단점을 수정하여 서로 손을 잡고 살아갈 것.
늘 반성할 것, 영혼의 향상은 정법이라는 올바른 순환에 있으므로 중도의 척도로써 하루의 언동, 마음의 움직
임을 반성하여 상념의 전화와 수정에 노력할 것.
반성 후의 명상은 마음과 육체의 파장이 신에 접근하여 밝고 상쾌한 기분이 든다. 이 기분으로 하루 생활을
보낼 것.

[나는 저 세상에서 계획되었다]
모래 속에 자석을 집어넣으면 철분만 붙어 나온다. 모래 속에 섞여 있던 철분이 자석에 붙어 고스란히 함께
만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바로 그와 똑같은 법칙에 의해 이 지상에 태어나기 전에 전생에서 끼리끼리 만나
고 싶다는 약속에 따라 여러 나라에서 각자 태어나 살고 있는 것이다.
내가 지금 이 세상에서 함께 살고 있는 부모 형제자매나 혹은 친구 스승 선후배 이웃들은 그런 인연을 저 세
상에서 선택한 결과로 만나게 된 소중한 인연들이라는 것을 이미 말했다. 그러나 전생에서는 그런 약속을 하
고 태어났지만 우리는 영혼이 육체를 만나는 순간 그 약속을 까맣게 잊게 된다.
독자들은 그 말을 믿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이제 사람이 자기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인연을 선택했다
는 사실을 증명해 보이겠다. 우리의 잠재의식의 문을 열어 보면 이런 사실들이 잘 나타난다. 옛 인도 시절에
는 고다마를 중심으로 한 그룹이 태어났다. 이스라엘에서는 당시 예수를 중심으로 뭉친 동료들이 탄생했다.
지금 우리의 동료 그룹들도 모두 차원이 다른 저 세상에서의 약속에 의해서 동아리를 지어 태어났다.
바로 그 말이다.
인도에서 붓다를 중심으로 한 그룹들이 태어났고, 이스라엘에서는 예수를 중심으로 한 그룹들이 태어난 것
은 그들이 태어나기 전에 이 세상에서 인연을 지어 만나서 그들의 진리를 전하려는 사명감을 갖고 태어났다
는 뜻이다. 같은 그룹이지만 붓다의 동지 가운데 아난처럼 중국 북경에서 태어난 자와, 마하 몽가라나처럼 미
국에 태어난 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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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3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2)(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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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분신들은 필리핀에서 태어나 거기서 많은 사람들을 구제하고 있다. 얼마 전에 작고한 토니
라는 심령 의학 수술자도 예수의 분신 중 하나이다. 토니의 영혼 배경은 그라리오이며 이따금 예수가 직접 토
니를 지도하기도 했다.
이처럼 신리를 사람들에게 전할 경우, 모세는 이집트에서, 예수는 이스라엘에서, 고다마 붓다는 인도를 무대
로 삼고 신리를 펼쳐나갔다. 그때마다 신리는 핵처럼 분열을 일으켜 이웃 나라로 분산 파급되어 갔다.
이 세상에서 일어난 모든 현상은 모두 저 세상에서 계획된 것이다. 신의 뜻을 거스른 인간의 지식과 의지가
만들어 낸 부조리는 투쟁과 파괴의 업보를 만들어 버렸다. 그러나 인간의 그릇된 상념 행위에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그 한계를 넘어서면 신은 천재지변을 통해 인류에게 반성의 기회를 준다.
지구의 전 시대 아틀란티스 대륙, 로마 제국의 붕괴도 신의 뜻에 따라 멸망한 것이다. 우리의 마음이 조화되
면 몸에서 나오는 후광, 즉 오로라가 금빛에 휩싸인다는 말은 이미 했다. 가정이 조화를 이르면 그 집에 오로
라가 나타나고 인류 전체의 마음이 조화를 이루면 지구 전체가 금색의 오로라로 휩싸인다.
그런 만큼 우리 인류에게는 이 지구를 평화스러운 유토피아로 만들 목적과 사명이 부여되어 있음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마음이 깨질 때는 반대로 검은 오로라에 휩싸이며, 그곳에 천재지변이 일어난다.
지금 내 주변에 신리를 깨닫고 사는 사람들 중에서 불과 1년 만에 80명 이상의 영적 능력자가 그 힘을 익혀,
정법의 증명자로 그 사명을 다하고 있다. 이 사도들은 흔히 말하는 교회나 사찰 등 전당과는 전혀 상관이 없
다. 경문 같은 것도 매체로 삼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영적 현상을 보여 줄 수 있다.
그들의 마음이 조화되어 있으므로 영적인 가르침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영원히 망하지 않는 천당, 그것
은 사도들의 마음속에 있다. 또한 지구 자체가 신의 몸체이며 신전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저 세상의
천사들과도 즉석에서 늘 통신이 가능하다. 1930년경에는 구식 라디오가 있었다. 그때 라디오는 광석으로
전파를 받았다. 리시버와 수신기로 전파를 잡을 때는 바이아블 콘덴서가 잘 듣지 않았다. 1954경의 병사구
(竝四球)의 라디오는 검파관을 비롯하여 증폭관, 정류관의 직경이30mm정도, 길이가 1백mm정도의 크기
로, 전원 스위치를 넣어서 진공관이 따뜻해지고 전자가 작동할 때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더구나 발신 전파를 수신하는 데에도 혼신이 일어나 방송 채널을 선택하기가 매우 불편했다. 또 가까운 거리
의 전파 외에는 잡을 수도 없었다. 단파 방송이나 올 웨이브 라디오는 수신기도 터무니없이 커서 역시 수신
이 가능할 때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병사구 라디오보다는 올 웨이브 라디오가 원거리의 발신국의 선택도가 보다 우수했던 것은 당연하
다. 그처럼 라디오 하나도 성능이 좋은 것은 지구 반대쪽의 전파까지 포착할 수 있을 정도로 우수하다. 1955
년경에는 진공관의 크기가 사람의 엄지손가락만한 것으로 개량되어 TV에 쓰이게 되었다.
이 진공관은 미니어처관이라 하며 정밀도가 매우 우수해졌다. 과학은 더욱 진보하여 게르마늄이나 실리콘
을 응용한 다이오드가 발명되었다. 그 크기는 담배 필터의 4분의 1정도로 텔레비젼이나 라디오의 소형화가
가능해졌으며, 전련도 종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격감되었다.
더구나 전원 스위치를 넣기만 하면 즉시 수신이 가능해졌다. 직접회로(IC)는 1mm 입방체 속에 진공관 8개
분의 능력을 수용하며 성능, 수명 모두 진공관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 텔레비젼이나 라디오와 비슷한 전
파 수신 기능이 우리들 모두의 의식 속에는 존재하고 있다. 인간의 영적 능력도 이 진공관과 회로의 차이처
럼 마음속에 있는 상념의 올바른 조화도에 따라 그 정밀도가 크게 달라진다.
그런데 이 직접회로도 인간의 대뇌 세포에 비하면 엄청난 초보 기술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 다이오드의 크기
도 더욱 작아져서 장차 트렌지스터도 유기질의 세포를 응용한 것을 진보할 것이다. 물론 그 정밀도도 더욱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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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3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2)(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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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화되어 갈 것이다.
선배들로부터 이어받은 기술도 지속적인 개발로 말미암아 차례차례 새로운 신천지를 발견해 나갈 수 있듯이
우리들의 의식도 보다 조화된 고차원의 세계로 승화시켜 나가면 한 단계 더 고차원의 배우 영혼이 우리들의
지혜를 증가시켜 준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지금 세상에서 전개되는 물질문명은 우리 생활의 지혜로 비롯된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을 잃어서는 안 되며
또한 물질의 노예가 되어서도 안 된다. 아무리 컴퓨터가 발달하더라도 거기에 얽매여서는 인간 로봇에 불과
하다. 컴퓨터는 인간을 위해서 있는 것이지 컴퓨터를 위해 인간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최후의 판단은 인
간 자신의 의지 이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것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물질문명, 통신, 교통의 진보에 따라 머지않아 인류는 모두 한 형제라는 것을 알게 되며 동시에 세계는 하나
라는 것도 깨닫게 된다. 또한 우리들은 태어나면서 성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비성자인 것도 아니
다. 우리들은 신리에 따른 마음을 지니고 생활하느냐 안 하느냐에 따라서 성자도 되고 비성자도 된다.
나 자신도 신리를 깨닫기까지는 여러 파행적인 삶을 살아 왔다. 그 원인은 육체적, 물질적 현상에 미혹되었
기 때문이었다. 그 후 나는 인간의 영혼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알았다. 사람은 영혼 즉
의식을 통해 생각과 행위 등 일체의 경험을 기억해서 저 세상으로 가져갈 수 있는 것이지 인간의 만든 지위,
명예, 재산은 저세상에 가져갈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지 않는가.
[전 동경대학 야나이하라의 전생은 베드로였다]
지금 내 주위에는 영적 현상이 일어나 자기의 전생의 윤회 사실을 알고 있는 동료들이 많다. 현세에서 배운
적도 없는 히브리어나 코사리어를 기억해 내어 어제의 일처럼 말하는 사람도 있다. 또 인도의 고전 무용과 당
시의 노래를 부르면서 춤추는 사람도 있다. 한 번도 배운 적도 없는 고전 무용을 전문가들도 놀랄 정도의 정
확한 손놀림, 발 놀림으로써 보여 주고 있다.
불교의 반야심경에 관자재보살행심반야바라밀다(觀自在菩薩行心般若波羅蜜多)라는 구절이 있다. 이 말
은 '관자재보살(아포로키티슈바라)이 신리를 실천하여 잠재 의식 층에 쌓여 있는 전생의 지혜를 열어 본
다'는 뜻이다.
바로 이것이다.
관자재의 능력은 신리의 실천으로 얻어진다. 우리는 흔히 '행자(行者)'라는 말을 쓰는데 행자란 산중에서 고
행과 수행을 쌓고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듯싶다. 이것은 큰 잘못이다.
인간은 누구나 다 인생을 수행하는 행자이다. 육체적인 고행에 의해서는 자비와 사랑의 진리를 깨달을 수 없
다. 불멸의 생명 즉 자신의 마음을 으뜸으로 삼고 육체를 단련하는 것이 정말 가치 있는 일이다.
신리에 입문한 지 불과 1년 남짓해서 80여 명의 동지들이 중국어, 히브리어, 코사리어, 마가다어 등 그 밖의
여러 나라 말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들이 기억해 낸 전생을 우리는 부정할 수는 없다. 생명의 불멸, 전생 윤회
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인간은 이 세상만의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앞으로 더 많은 동지
들이 이와 같은 현상을 여러 나라에서 보여 주게 될 것이다. 물론 독자들 가운데에도 신리를 깨달음 생활을
통해서 영적인 길이 트이면 죽은 사람들과도 대화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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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여기서 사후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보겠다. 성경
과 불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실례로 적어본다.
이 경우의 성령은 내가 이야기하고 있는 빛의 천사들을 가리키기도 하며 우리들의 영혼을 움직이는 수호천사
이기도 하며 그 중에는 우리들 생명의 본체나 분신들이기도 하다. 신약성서 사도행전 제2장에 이와 같은 현
상이 기록되어 있다.
<마침내 오순절이 되어 신자들이 모두 한 곳에 모여 있었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세찬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
가 들려오더니 그들이 앉아 있던 온 집 안을 가득 채웠다. 혀 같은 것들이 나타나 불길처럼 갈라지며 각 사람
위에 내렸다. 그러자 그들의 마음은 성령으로 가득 차서 성령이 시키는 대로 여러 가지 외국어도 말을 하기
시작했다.(이것은 지금 내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과 꼭 같다) 그때 예루살렘에서는 여러 나라에서 온,
신앙심이 두터운 유태인들이 살고 있었는데 이 이상스러운 소리를 듣고 많이 몰려들었다. 그리고 사도들이
자기네들 고향의 말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보고 어리둥절했다. 그들은 놀라고 또 한편 신기하게 여기면서
입을 열었다.
"지금 말하고 있는 저 사람들은 모두 갈릴리 사람들이 아닌가! 그런데 우리들이 태어난 고향의 말을 저들의
입을 토해서 들을 수 있다니, 이것은 어찌 된 일인가? 우리들 가운데에는 바르티아 사람, 메대 사람, 엘람 사
람이 있는가 하면 메소포타미아, 유태, 갑다도기아, 본도, 아시아에서 온 사람도 있고 프리기아, 밤필리아, 이
집트, 그리고 리비아의 키fp네 지방과 가까운 곳에서 온 사람도 있다. 그리고 로마에서 여행 온 사람, 유태인
들과 유태교로 개종한 자들, 그런데 사람과 아라비아 사람들도 있는데 저 사도들이 우리들 고향의 말로 하느
님의 큰 역사를 들려주고 있지 않은가!"
모두가 놀라고 어안이 벙벙하여
"도대체 어찌 된 영문인가?"
하고 웅성거렸다. 그러자 그 중에는
"저 사람들이 술에 취했군!"
하고 빈정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때 베드로가 열한 사람의 사도들과 함께 일어나서 큰 소리로 말했다.
"유태 동포들, 그리고 예루살렘에 사는 시민 여러분! 내가 하는 말을 제발 귀담아 들어 주시오.
지금 시간이 아침 아홉시인데 어떻게 이분들이 술에 취할 수 잇겠습니까? 이분들은 술에 취한 것이 아닙니
다.
이것은 예언자 요엘이 예언한 대로 일어난 일입니다. 즉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마지막 날에 나는 모든 사람에게 나의 성령을 부어 주리라.
그러면 너희 아들 딸들은 예언을 하고, 젊은이들은 영혼의 모습을 보게 되며, 노인들을 꿈을 보게 되리라. 그
때에는 나의 남종 여종에게도 나의 성령을 부어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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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그들은 예언을 하리라. 위로는 하늘에서 기적을 보일 것이며, 아래로는 땅에서 현증을 보일 것이다.
즉 피와 불과 짙은 연기를 보여 줄 것이다.
주의 크고 영광스러운 날이 오기 전에 태양은 어둠으로 달은 피처럼 붉게 변하리라. 그때 주의 이름을 부르
고 찾는 자는 모두 구원을 받으리라.' 이스라엘 동포들이여! 내 말을 들으시오.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나사
렛 예수는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이를 증명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놀라운 일과 기적과 표정을 그를 통해서 보여 주었습
니다.
그런데 예수가 여러분의 손에 넘어간 것은 하느님께서 미리 정하신 뜻과 계획에 따른 것인데, 여러분은 그를
악인들의 손에 맡겨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이 예수를 되살려 죽음의 고통
에서 벗어나게 해 주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는 죽음 속에 갇혀 있을 분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예수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내 오른편에 계시니 나는 항상 주님을 가까이 뵈오며 내 마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내 마
음은 기쁨에 넘치고 내 혀는 즐겁게 노래하며 이 육신마저 희망 속에 살 것입니다. 당신은 내 영혼을 죽음의
세계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당신의 기록한 종을 썩지 않게 지켜 주실 것입니다. 당신은 나에게 생명의 길을
보여 주었으니 나는 언제나 당신을 모시고 기쁨에 넘칠 것입니다.'"
약 2000년 전에 이스라엘에서 이와 같은 영적 현상이 일어난 것은 사실이며 부정할 수 없다. 지금 내 주위에
서도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우리들은 신리를 설법하고 있다. 예수의 제자 베드로가 일본에 태어났
다는 것을 나는 빛의 천사로부터 통신으로 받고 있다.
베드로는 이스라엘 시대에는 문맹자였으므로 정법 포교에 몹시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서 베드로는 20세기
에 육체를 지니고 태어나 지금은 공부를 꽤 많이 하고 있다. 전 동경대학장 야나이하라 다다오(矢內原忠雄)
가 바로 전생의 베드로였다. 나는 그 말을 이스라엘 당시의 제자 후리데와 사휘로 부터 들어서 알고 있다.
또 바오로, 요한, 필립보도 지금은 일본에 태어나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저 세계의 영령들이 내게 통
신을 보내왔기 때문에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다. 미국, 브라질, 영국, 프랑스 등에도 당시의 제자들
이 지금 육체를 지니고 이 지상에서 수행하고 있다. 그 밖의 여러 나라에서 2500년 전 혹은 2000년 전의 고
다마의 제자와 예수의 제자들이 지금 이 지구상에 유토피아를 건설할 목적으로 태어나고 있다. 그런 천사는
독자들 가운데에도 있다.
윤회에 관해서는 불경에도 기록이 있다. 화엄경 십지품(華嚴經十地品) 가운데 '일상생활의 수행을 통해서
마음을 조화하여 신리를 깨달음으로써 윤회를 통한 자신의 과거를 알 수 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그와는 달리 학자와 승려들도 많은데 그분들은 문헌이나 서적 등의 물적 증거를 가져와서 내가 한 말들의 증
거를 보여 주고 있다. 나는 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거의 책 읽을 시간이 없지만 그들의 제시해 주는 문헌은
큰 참고가 되고 있다. 경문 가운데 한 구절에는 이런 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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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3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2)(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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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신의 의지를 깨닫고, 실천함으로써, 한 번의 생뿐만 아니라 두 번째 윤회한 삶과 세 번째는 물론 백 번
째의 생과 수천 번의 생과 영원의 전생을 기억하고, 백 가지 가르마[백업], 천 가지 가르마 아니, 수천 가르마
를 기억한다. 거기서 나는 어떤 이름으로 살았으며 몇 살까지 살았고, 거기서 어떤 고락을 겪었으며 또 나는
어디서 몸을 숨기고 태어났는지 그런 윤회를 겪었으며 모든 역사와 경험을 기억한다>
그렇게 씌어 있다. 이 사실은 기원전 5세기경 석가의 제자 가운데 일어난 일과 똑같다. 천안(天眼) 제일이라
든가, 통력(通力) 제일이라는 말도 불경 가운데 기록되어 있는 모양이다.
세상의 만물은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순환을 거듭하고 있다. 지구는 단 1초도 멈추지 않고 돈다. 우리들
도 신리에 따라 윤회를 거듭하며 지금 지상에 태어나 영혼의 수행을 겪고 있다.
의식의 세계, 즉 에너지를 지배하고 있는 신불의 세계인 저 세상도 의식의 조화도에 따라 단계가 있다는 말
은 이미 했다. 신의 몸체인 이 지상도 저 세상을 통해 순환을 되풀이 하고 있다는 말도 나는 했다. 저 세상이
란 지금 우리가 지니고 있는 육체를 벗은 전생을 말하며, 과거에도 현재처럼 육체를 지닌 적이 있었던 시대
를 전생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그것을 전생, 현세, 내세로 구분하고 있다. 전생에 이어 바로 그전에는 또 전생이 있고, 그 다음 현세
가 있으며 다시 내세가 있다. 우리 영혼은 육체라는 옷이 낡으면 다른 육신을 받아 끝없는 윤회의 삶을 이어
가고 있다.
우리는 저 세상과 이 세상을 윤회하면서 영원히 자신의 영혼을 연마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에게 생명
을 준 절대자의 뜻이다. 신의 궁극적인 목적은 마음의 조화를 이루고 나아가 지구의 영적 한계를 좀 더 깨끗
이 만드는 데 있다.
육체적인 삶과 죽음의 순환을 거듭하고 있는 우리의 생명에는 처음도 없고 끝도 없는 것이 실상이다. 우리의
의식은 그 조화도에 따라 그처럼 과거 세상의 경력들을 추억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결코 허구의 꿈 이야기
가 아니다.
다섯,
내 영혼의 주인이 있다.
70,80년의 인생 경험은 향불처럼 잠시 타오르는 시간이지만
우리들의 영혼은 몇억, 몇만 년
그칠 줄 모르는 윤회를 거친 모든 경험을 잠재 의식 속에 간직하고 있다.
현재 자기 자신의 마음 상태는 전생 경험의
축소형 내지 유사형일 뿐이다.
[육체는 임시로 깃든 영혼의 숙소이다]
만일 육체가 자기 것이라면 왜 우리는 죽을 때 몸을 가져가지 않고 이세상에 버린 채 썩게 만드는 것일까, 영
혼이 떠난 유기질인 시체는 썩어 없어진다. 사람은 육체를 이세상에 버리고 떠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육체를 가지고 떠난 사람을 보았는가?
그럼 육체란 무엇인가? 아버지 정자와 어머니 난자의 조화가 만들어진 한 개의 세포가 핵 분열을 거듭하면
서 육체를 이루어낸다. 그 육체는 이미 언급한 것처럼 어디까지나 현세상에 서 영혼이 깃들기 위한 임시 숙소
일 뿐이다. 이미 말한 것처럼 인생이라는 바다를 향하기 위해 필요한 일시적인 나룻배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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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3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2)(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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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의 토지, 건물, 보석, 지위, 명예 등도 육체와 마찬가지로 저 세상에는 가져갈 수가 없다. 어느 것 하
나 자기 것이 없다는 것은 죽은 사람을 보면 알 수가 있다. 살아 있을 때는 그토록 내 것이라고 챙기고 재산을
등기하고 이름을 써 붙이던 것들이었지만 죽을 때는 모두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는 자신이
죽지 않고도 다른 사람이 죽음을 지켜보면서 자신이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자기의 몸조차도 내 것이 아니라
는 것을 깨닫게 된다.
영혼을 빼면 이 지상의 모든 것들은 신의 자비와 사랑에 의해서 인류에게 임대해 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사
람은 땅이나 건물만 임대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육체조차도 80년, 90년 동안 임대해서 사는 것이다.
그것은 내 뜻이 아니라 신의 뜻이다.
"만족할 줄 알아라"
그 말씀의 근거는 거기 있다. 우리의 영혼은 돈 한 푼 내지 않고 육체를 임대받아 살았으며 온갖 음식의 맛을
누리고 옷을 입고 집에서 삶의 환희를 맛보았다. 그런데 조금만 불만이 있으며 사람은 신을 원망하고 저주한
다. 그 많은 것들을 공짜로 받아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자아는 그런 불평을 할 자격이 없다. 모든 것을 감사하
게 여겨야 한다. 그리고 만족해야 한다. 살아 숨쉬는 자체가 고마울 뿐이다. 성경에서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우리들의 물질과 경제는 영혼을 연마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은 노예가 아니다. 의식, 즉 영혼
은 자기의 희망에 따라 종족과 환경을 선택하여 이 지구상에 태어났다. 윤회는 같은 계보의 육체적 조상을 통
해서 거듭 태어나는 일은 거의 없다. 말하자면 내가 다시 태어나면 지금의 가문과 같은 계통에서 태어나지 않
는다는 뜻이다. 이 세상을 떠나 저 세상에 돌아간다는 것은 낡은 육체에서 새로운 육체로의 이동이므로 영혼
은 불멸이다. 육체와 일체처럼 보이는 후광은 저 세상에 돌아갈 때 타는 선박인 것이다.
[건드리지 않는 귀신은 설치지 않는다]
사람이 죽음에 공포를 느끼는 이유는 간단하다. 육체는 영혼이 타고 부리는 선박에 지나지 않는데 사람은 바
로 그 배에 미련과 집착을 갖기 때문이다. 사람은 그 배에서 떠나고 싶어하지 않는다. 생에 대한 집착 때문이
다.
이처럼 인간의 세상에 머무르고 싶은 삶에 대한 집념을 구분해 보면 땅에 붙어 있는 지박령(地縛靈)과 떠도
는 부유령(浮遊靈)이 있어서 이세상에서 인간에게 여러 갈등과 고통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박령은 주로
교통사고 현장, 불의의 죽음을 당한 장소, 자살 현장, 전쟁터, 제사 지내는 장소, 신리를 깨닫지 못하고 이 지
상에 미련을 강하게 남기는 장소에 붙박여 있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자기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자각하든 못
하든 살아 있는 인간과 마찬가지로 '내 땅이다' '내 물건이다'는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거기 머물러 있다.
"건드리지 않는 귀신은 설치지 않는다."
우리들은 택지를 조성할 때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하드라도 그 땅의 지박령에게 신리를 알려 주고 그것을 사
용하겠다는 취지와 양해를 사전에 얻을 필요가 있다. 그래서 그들이 살아야 할 적당한 장소, 이승과 저승의
다른 점, 신리 등을 가르쳐 줄 필요가 있게 되는 것이다.
철도 사고는 특히 건널목 같은 곳에서 자주 일어난다. 이것은 그 장소에 지박령으로 붙어 있는 망령이 비슷
한 환경, 비슷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에게 빙의해서 사고를 유발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들 지박
령은 육체는 없지만 자기가 죽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움직이고 있는 물체는 움직임을 계속하려고 하며, 정지해 있는 물체는 그 자리에 정지해 있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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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3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2)(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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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관성이 법칙이다. 이 법칙에 따라 지상에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의식이 깨어 있는 상황에서 세상을 떠
났기 때문에 영혼은 생과 사의 분간을 죽은 후에도 못 한다. 그 부분에 관한 문제를 좀 더 자세히 말해 보겠
다.
사람이 교통사고 같은 돌발 사고로 사망했을 경우, 한동안은 흡사 기억 상실증 같은 현상이 된다. 따라서 죽
음을 자각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며, 사고 당시의 상황을 기억해 내기까지는 대단한 시간과 단서가
필요하게 된다. 육체가 없는 자기 자신을 자각할 수 있게 되면 그 상황을 깨닫는 것도 빠르지만, 이세상과 달
리 저승에서는 표면 의식이 90%, 잠재의식이10%의 비유로 작용하기 때문에 과거의 기억 소생이 매우 어
렵다.
지옥에 떨어지면 같은 종류의 악령들에게 둘러싸여 한층 더 깨닫기가 어렵게 된다. 그때 원망을 품으면 그 상
념이 현상화되어 스스로를 괴롭히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는 비슷한 마음을 가진 망령들이 모여들게 되지만
지옥령을 지배할 수 있을 정도의 밝은 마음만 가지고 있으면 사고는 당하지 않는다.
지박령들은 제사 공양 같은 것을 바치도록 인간들을 꼬드겨 같은 장소에서 비슷한 사고를 되풀이하여 유발시
키는 경우가 많다. 어린아이인 경우에는 부모의 마음이 크게 반영되므로, 어린이(주로 10세 이하)가 사고를
당하는 것은 부모에게 책임이 있다. 때문에 부모는 자신들의 마음의 상태, 생활 방식을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린이의 자기 보호 본능은 어른의 욕심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순진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마가 끼었다'는 말을 한다. 마음의 바늘은 마치 전류계나 온도계, 혹은 자동차의 속도계처럼 선
과 악, 밝음과 어둠 사이를 왕래하면서 늘 움직이고 있다. 바늘이 악의 어두운 상념을 가리킬 때 우리에게 마
가 끼게 된다. 마음의 바늘이 항상 선의 밝은 세계를 가리키는 생활을 하도록 해야 한다.
'부자 삼대를 못 넘긴다'는 말이 있다. 육체의 조상은 인생 항로에 필요한 나룻배, 즉 육체를 물러 주신 분들
이다. 그런 조상을 신앙적으로 받들어 공양하는 것이 종교적 행사의 하나가 된다. 그런 관습적, 종교적 사고
방식이 자손에 대한 과잉보호를 초래하여 재산이나 지위를 유산으로 남기려고 야단이다.
조상의 공양, 자신의 욕망을 위한 자기 보존으로 인생을 허송하는 사람도 많다. 그 결과 죽은 뒤에도 신리를
깨닫지 못하고 있으므로 재산과 자손에 대한 미련을 떨쳐버릴 수가 없어서 천상계로 올라갈 수 없게 된다. 가
족들에게는 조화를 깨치는 원인이 되는 재산 쟁탈, 질병 등이 어처구니없는 유산을 물러 주게 된다. 재산이라
는 것은 자신의 소유도 아니며, 사회 인류의 소유물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재산에 대한
집념은 전통 있는 가문일수록 더 심하다.
지옥에 떨어진 조상들의 영향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에 자비와 사랑이 결여된 냉랭한 가정을 만들기 일쑤다.
따라서 조상의 공양이 종교적으로 형식화되어 버린 폐단을 묵과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것에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을까.
무엇보다도 먼저 살아 있는 사람이 정법 생활을 실천해야 한다. 죽은 망령들도 살아 있는 유족들의 마음을 보
고 자기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게 된다. 철학화된 어려운 경문을 듣고 이해할 수 있는 망령이라면 이 현상계
의 일은 걱정도 하지 않고 천상계에서 유유히 지내고 있을 것이다. 현상계에 미련을 가지고 걱정하는 따위의
망령은 의식이 정화되지 않은 저급한 영이다.
부모를 포함한 육체 조상들에 대한 공양은 감사와 보은이 실천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지박령의 대부
분은 아직도 육체를 지니고 살아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 병원이나 사찰 등에서도 영적 현상이 자주 일어
나는 것은 역시 금생에 집착을 가지고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한 망령들이 헤매고 있기 때문이다.
지박령의 한 예를 들어 보겠다. 1970년 7월 19일자 아사히 신문 도쿄판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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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3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2)(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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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요다구 오대마치[千田代區大手町] 1정목 1번지 1호의 땅은 천 년 동안 머리무덤에 살고 있는 원한이
어린 귀신 때문에 1등지인데도 손도 못 댄 채 건물을 세우지 못하고 방치되어 있다. 고양이 이마팍만한 공지
도 남아 있을 수 없는 의마루노오치[丸의內]의 괴담이다. 그 첫 번째 사건이 발생했다. 1926년 관동대지진
으로 재가 되어 버린 대장성이 머리 무덤 일대에 가청사를 세웠다.
얼마 후에 대장성 내부에서는 병자가 속출하여 일 년 동안에 대신[장관]을 위시해서 국장급까지 간부 14명
이 잇달아 죽어 버렸다. '이것은 무장 다이라노마사카도[平將門] 공의 묘를 소홀히 취급한 데 대한 재앙이라
고 해서 무덤 위에 청사를 헐고 1931년 4월에 성대한 진혼제를 올리고 대장성내의 불안을 제거했다.
두 번째 사건. 1940년 3월 20일 비가 오는 가운데, 같은 대장성 본청사 위에 별안간 벼락이 떨어져 화재 사
고가 일어났다. 다시 성 내에서는 '위령제를 소홀히 한 데 대한 벌'이라는 여론이 일어, 마사카도 공 사망 천
년이기도 해서 천년제(千年祭)를 거행, 대신이 손수 유적 보존비를 건립했다.
세 번째 사건. 1945년 말 경에 일본에 진주한 맥아더사령부에서 황폐한 머리무덤 주변을 모터 룰로 선정해
서 착공에 들어갔다. 그러자 정지 작업 중이던 불도저가 갑자기 전복되어, 운전기사와 작업 중이던 인부 두
사람이 그 밑에 깔려 한 사람은 즉사했고, 나머지 한 사람은 중상을 입었다. 오랜 세월에 걸친 전설을 알고 있
는 근처의 목재상 엔도 마사조[達藤政造] 씨가 사령부를 찾아가서 '저 무덤은 일본의 옛날 대추장 무덤이니
제발 건드리지 말아 주십시오' 라고 진정한 결과 일은 무사했다.
네 번째 사건. 1961년 모터 풀 철수 후에 머리무덤의 동쪽 땅이 일본장기신용은행과 미쓰이생명보험회사에
불화되어 빌딩 공사가 착공되었다. 그때 장기신용은행 건물은 무덤으로 가는 도로 부지를 깔고 앉았다.
1963년경 무덤 쪽으로 창문이 난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행원들이 차례차례로 발병하여 은행 당국에서는 '재
앙이란 정말 있는 것일까'하고 반신 반의 하면서도 무덤의 관리자와 간다명신[神田明神]의 신관(神官)을 불
러 성대한 굿을 올렸다.>
현재도 무덤 쪽으로 창문이 난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행원의 책상은 창문 쪽을 향하든가 옆으로 비껴 앉아 있
다. 이유는 '무덤 쪽으로 궁둥이를 보여서는 안 된다'는 배려 때문이라고 한다.
이 같은 일련의 사건들은 모두 같은 장소에서 발생한 것인데 재앙인가 우연인가, 화를 입은 당사자와 주위의
사람들은 '당연히 우연이겠지요'라고들 말하고 있지만 기분 나쁜 사건임에 틀림없다. 문제는 이러한 사건을
우연이라고 일소에 부치는 것이 과연 과학적인 태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원인이 없이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단 말인가. 원인과 결과는 상대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는 순환의
법칙이다. 누구도 바꿀 수 없는 절대적인 진리다. 나는 이 기사를 읽고 원인 불명의 현상이 같은 장소에서 몇
번이나 일어난다는 것은 집착이 강한 악령이 지박령이 되어 여러 사람에게 화를 입히고 있다는 것을 금방 알
았다.
지박령에 의해서 화를 입는 것은 당사자의 마음 상태에도 문제가 있다. 신리를 깨닫지 못하고 부조화한 마음
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유사한 저 세상과 상통하게 되므로 마음의 안정을 잃고 스스로의 어두운 상념에 덮
여 불행의 구렁으로 빠져들게 된다. 마음을 밝게 가지고 올바른 상념 행위의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신불
의 황금빛 오로라에 싸이게 되므로 지박령 따위의 덫에 걸려드는 일은 절대로 없다.
영의 선과 악도 역시 우리의 상념과 행위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마음은 일념삼천(一念三
千)의 세계다. 고뇌도 즐거움도 그 원인은 자신이 만들고 있다. 다이라노마사카도의 원한에 얽힌 영혼도 마
찬가지다. 천 년이나 지옥에 떨어져 있는 영이라면 신불의 자식이라고 할 수 없다.
신불의 자식이라면 반드시 자기반성을 통해서 마음의 평안을 되찾고 신불의 자식이라는 자각을 되찾게 되며
그 자비의 빛에 의해서 구제받도록 되어 있다. 인간은 지옥에 떨어져도 보통 2백 년, 3백 년 정도에서 하늘
로 올라가게 되어 있는데 1천 년, 2천 년이나 지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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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서 수업하고 있는 인간들에게 영혼의 형제들이 항상 협력을 하고 있듯이 지옥에 떨어진 영혼의 자
들을 위해서도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서 신불의 자녀들이라는 자각을 일깨우기 위한 협조를 아끼지 않고 있
다.
마루노우치의 경우에는 지옥의 마왕과 동물령들의 어두운 상념으로 뒤덮여 있는데 이런 것들은 영적인 길이
열러 있는 사람의 눈에는 금방 보인다. 살아 있는 인간에게 재앙과 화를 입히는 그런 악령들을 두렵다고 받들
어 모시고 재를 올리고 공양한다는 것은 큰 잘못이다.
사람들의 눈은 그 실상을 알아보기가 어렵다. 악령들은 인간을 조롱하고 어지럽히며 사회를 혼란으로 빠뜨
린다. 그들을 선으로 돌려 구제해 주는 길은 제사 지내는 것이 아니다.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올바른 마
음을 가지고 정법에 맞는 생활을 하며 평화스러운 환경을 만들어 나갈 때 이것을 보고 그들 악령들도 깨달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정법을 설명해 주고 우리들 자신이 정법 생활을 실천으로 보여 주는 것이 유일한 구제 방법이다. 믿는 마음이
란 경을 읽고 찬미가를 부르는 우상숭배가 아니다. 독경이나 찬송가는 마음을 조화시키고 영적인 힘을 높이
기 위한 한 가지 방법에 지나지 않으며 그 속에 담겨 있는 신리를 이해하고 실천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
한 일이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현상을 잘못 판단하여 신이다, 부처다 하여 예배 공양하면서 본
성을 읽고 광신자, 맹신자가 되고 만다.
그 결과 신앙생활이 길면 길수록 자신이 마음은 작은 틀 속에 갇혀 버린다. 또한 벌을 받는다는 협박에 짓눌
러 어느새 그 조직이 노예가 되기도 한다. 신불의 무한한 자비와 사랑의 빛을 부조화한 상념 행위로 차단해
버리고 불행한 인생으로 몰고 간다.
어두운 마음은 지박령이나 지옥령을 불러들여 사고, 질병, 가정불화 등을 유발하는 원인을 만들고 있다. 하지
만 다행하게도 모든 현상은 우리들의 마음이 지어내는 것인 만큼 그 마음의 개조에 의해서 얼마든지 구제하
고 구제받을 수 있다. 지박령과 상통하는 부조화한 상념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금전이나 물질에 대한 강한 욕심은 악령의 것이므로 그런 마음을 버리고 가난한 자, 노약자, 어린이들을 돌보
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보살심의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감사의 마음을 보은으로 실천한 보시는 반드시 자신의 마음에 빛으로 돌아온다. 모든 집착, 욕망에서 벗어날
때 영적인 길이 열리고 전생, 현세, 내세를 꿰뚫어볼 수 있는 영적 능력자가 될 수 있다. 어느 친구로부터 이
런 이야기를 들었다.
요츠야[四谷] 괴담의 영화 촬영이나 연극을 할 때는 요츠야의 아니리신사에 무사고를 비는 참배를 하지 않으
면 반드시 이상한 사건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사카도의 묘와 마찬가지로 여기에서도 공양제를 올리고 있다. 공양이란 사자에 대한 명복을 비는
것이며 정법을 설명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이 지상 세계에 집착을 가지고 있는 망령에게 평화스러운 하늘로
올라가도록 신리를 일깨워 주는 것이 최고의 공양이 된다.
이익을 탐내는 공양이 되어서는 안 된다. 기도의 대상물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영혼의 형
제들, 육체 조상, 부모, 생활의 터전을 제공해 주고 있는 만물, 환경들이다. 기도의 마음은 감사의 마음이어
야 한다. 그런 자신의 마음과 신불의 마음속에서 평안의 인생을 찾을 수 있다.
기도하는 것은 신불의 마음과 자신의 마음과의 대화이며 신불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다. 허위의 생활, 체력의
한계를 넘어선 생활을 하고 있으면 부조화한 악령에 빙의되어 원인 불명의 불행한 일을 당하게 된다. 그럴 때
는 반성으로 자신의 행위 속에서 그 원인을 찾아내야 한다. 부조화한 악의 상상이나 공포심은 버려야 한다.
왜냐하면 공포심은 상념이 만들어 내고 현상화하는 성질의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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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연극에서 원령의 역을 맡았다 해도 연기자의 마음이 조화되어 있으면 보호를 받아 악령에게 의식을 빼
앗기는 일은 없다. 우상의 대상물에게 그저 기도만 올리고 빈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짐승의 영혼도 신불
의 이름을 사칭해서 나타나는 경우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인간 이하의 동물령 앞에서 합장하고 빌고 있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함부로 아무 데서나 손을 모으고 기도하며 빌 일이 아니다.
인간이 만든 우상을 믿을 것이 아니라 영구 불멸의 자신의 영혼인 마음을 믿어야 한다. 자비의 본체인 마음속
의 신불이야말로 인간의 아버지요 어머니다. 또 알콜 중독자는 거의가 지옥령에 빙의되어 있다. 주정뱅이에
게 빙의하는 영은, 현상계에 육체를 지니고 있었을 때 술에 빠져 일생을 보낸 자들이며 그들은 죽은 뒤에도
술에 대한 미련과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살아 있는 비슷한 인간의 의식을 지배하여 술독에 빠져 있다.
자기가 살고 있는 지옥의 생활이 고통스럽기 때문에 이 세상의 인간에게 혼을 깃들여 그 고통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다. 인간의 마음이 깨져 있을수록 그들은 더욱 기세를 올려 인간의 마음을 병들게 파고든다. 그러니
인간은 빙의령의 유혹을 이기지 않으면 안 된다. 자기 자신에게 엄격해야 한다. 인간이 정법을 깨닫고 정법
을 실생활에 살려 나가면 자신이 구제될 뿐더러 빙의령까지도 구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친구의 어깨에 붙은 악령]
빙의령(憑依靈)이란 지옥에 떨어진 혼이 그곳을 견디지 못하고 세상으로 내려와 혼란스러운 사람의 몸에 거
처를 의탁하고 있는 악령을 말한다. 세상은 같은 종류끼리 만나는 일정한 법칙이 있다. 비둘기는 비둘기끼리
참새는 참새끼리 모여 살듯이 사람도 비슷한 사람들끼리 몰려다니고 만난다는 뜻이다.
그 법칙에 따라 사람들의 마음 역시 한 색깔의 마음에 선악을 가리지 않고 모인다. 그것은 어디나 마찬가지
다. 빙의령이란 한때 이 지상에 육체를 갖고 산 적이 있는 인간이나 동물들이다. 그들은 사람으로 태어났던
목적과 사명을 잊고 신리도 깨닫지 못한 채 이기주의에 빠져 금전욕, 정욕, 권력, 지위 등에 탐닉했던 영혼들
이다.
물질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남을 돕는 일도 없었으며 신도 믿지 않았다. 그 중에는 유
물론을 믿어 투쟁과 폭력에 서슴없이 뛰어들어 참으로 혼란스러운 일생을 산 영혼도 있다.
하느님이나 부처님의 이름을 팔아 사리사욕을 채운 자, 사악한 교리를 신리처럼 위장 설법하여 맹신자나 광
신자를 만들어 낸 신흥 종교의 교주들이다. 그들은 죽기 전에 이미 지옥에 떨어졌던 자들이다. 말과 행동이
맞지 않는 표리부동한 자들도 지옥에 떨어진다.
신리를 깨닫지 못하고 혼돈의 일생을 산 사람들은 관성의 법칙에 의해 죽은 후에도 살아있을 때와 같은 이식
의 세계로 가게 되어 있다. 그 세계는 살았을 때의 세상보다 훨씬 가혹한 지옥이며 그 어렵고 힘든 환경 속에
서 신불의 자녀라는 자각을 할 때까지 반성하고 고통을 겪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그들은 그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거기서 도망쳐 나오려고 발버둥친다. 그래서 이 지상에서 자기와 같
은 종류의 영혼에 엉겨붙는 것이다. 인간의 후광 즉 이미 얘기했던 오로라의 어두운 면에 거주하는 것이 곧
질병이다. 그것은 영적인 눈에 모두 보인다.
빙의가 되면 그 부분이 하얗다. 그들은 평안한 육체 세포에 붙어서 살고 있다. 그럴 경우 그 부위는 염증을 일
으키고 있으므로 당사자도 병적 증상을 똑똑하게 자각할 수 있다. 곤드레 만취가 된 사람에게도 100% 빙의
령이 붙어 있다. 술을 조금씩 마실 때는 좋다. 하지만 광기의 액체로 바뀌면 빙의령에 매체가 되어 버린다. 자
제심과 절제가 필요하다.
오랜 세월에 걸쳐 습관화된 버릇을 극복하고 새로운 자신이 모습으로 바꾸어 나가는 노력이 신리 실천의 첫
걸음이다.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타인에게는 엄격한 사람은 자기 본능이 강한 사람이며, 자신에게는 엄격하
나 타인에게는 자비를 베풀고 관대한 사람은 보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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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3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2)(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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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심을 가진 사람에게는 악령이 붙을 수 없다. 왜냐하면 마음이 신불에 빛에 싸여 있으니 접근이 불가능하
다. 원망, 시기, 질투가 강한 사람에게는 짐승의 영혼이 붙기 쉬우며 육체적 현상을 나타나기도 한다. 질병의
80%는 빙의령이 원인이다.
그처럼 빙의령을 제거하는 길은 그 빙의령에게 갈 길을 잘 타일러 주는 한편 자기 자신의 정법 생활을 실천하
는 길 밖에 없다. 설령 그 빙의령을 제거해 주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고 본인이 정법을 실천하지 않으면 또다
시 악령이 끼어든다. 마음의 왕국을 지배하는 자는 어디까지나 자기 자신뿐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악
령에 사로잡힌 실례를 들어 보겠다.
한 친구가 오랜만에 우리 집에 왔다. 피차 사업을 하고 있는 처지라 월급쟁이 때와는 달리 어려운 점이 많다
고 서로 대화를 나누다가 어느새 영적 이야기가 화제에 올랐다. 이 친구는 영의 세계를 전혀 믿지 않는 친구
였다. 그가 나에게 충고했다.
"자네가 과학을 공부하고 있는데 그런 비상식적인 이야기를 하면 남들의 신용을 잃게 되네. 사람은 현실을
똑바로 보고 한 걸음씩 향상하는 자세가 중요한 것이지 영적이라는 헛된 꿈을 좇는 것은 잘못이네. 그것은 인
생의 도피이며 자기 상실이네."
그의 말은 매우 준엄했다. 거의 10년 동안이나 소식이 없던 친구여서 나에 대한 평가가 퍽 객관적이었다. 더
구나 고생을 많이 한 친구라 그 어조도 매우 신랄하다. 나는 친구의 표정을 보면서 약간 경탄했다. 자수성가
로 작은 회사의 사업주가 된 나는 남의 의견을 들을 기회가 거의 없었다. 자신의 소신을 그대로 말해 주는 친
구가 그지없이 고마웠다.
그리고 그 충고를 진솔하게 듣고 있는 나 자신의 마음의 성숙함도 깨닫게 되었다. 성격이 급한 내게는 더 이
상의 큰 수확이 없었다. 반성해서 자신의 결점을 알아내고 그 결점을 수정함으로써 보다 높은 경지로 마음은
승화해 간다.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실천이다.
경제학 박사나 경제 평론가가 사업을 해서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듯이 인생도 이론대로 진행되는 것
은 아니다. 이 친구도 사업이 번창할 때는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릴 듯이 기세가 당당했으며 남을 깔보고 오만
하기 그지없었다. 인간은 경제적으로 곤경에 부딪쳐 시련을 겪게 되면 풀이 죽게 마련이다. 사업이 부진하여
고난을 겪으면서도 굴복하지 않고 재기를 노리는 그의 모습을 보고 나는 그에게서 끈질긴 근성을 읽을 수 있
었다.
친구도 변했던 것이다. 그는 사업을 만회할 길을 찾기 위해 점도 치고 사주도 보았으며 타력 신앙에 의지하기
도 했지만 결국은 파산해 버린 것이다. 그런 뼈아픈 경험을 치른 친구의 충고였으니 우정이 넘치는 말이 아
닐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의 비과학적이라는 말이 수긍할 수가 없었다. 그가 다른 신앙의 힘에 혹은 역학에 의해서 소
원 성취가 되지 않았다 해서 신불을 부정하는 태도는 타당하지 못하다. 자신의 실패한 원인을 추궁하는 것은
중요한 포인트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번에는 내가 물었다.
"원인과 결과 혹은 작용과 반작용에 관해서 자네가 경험을 통해서 느낀 것이 없는가?" 그것은 평범한 질문이
다. 그러나 인간은 평범한 사실을 잘 깨닫지 못한다. 머리로는 알지만 가슴으로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래
서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인간 사회는 경제력만 있으면 사업의 실패 같은 것은 있을 수 없다. 내가 실패한 것은 종업원의 부족과 무역
의 실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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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3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2)(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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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말을 듣고 그가 '마음'이라는 가장 중요한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왜냐하면 신앙
이나 역학적인 구원은 모두가 물질적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이지 신불의 근본을 깨닫는 일이라고는 보
지 않기 때문이다.
'사업은 인간이다'는 말이 있다. 종업원이 부족했던 문제도 마음이 있는 종업원을 양성하지 못한 데 있는 듯
싶었다. 물질 경제의 노예가 되어 버리면 자신을 잃을 위험성이 커진다. 그것은 사업가로서는 부적격이다. 인
간과 인간의 마음이 사업을 목적으로 삼고 조화를 이루어 연구, 노력할 때 비로소 판매력, 생산력, 경제력이
향상되는데도 불구하고 경제력이 제일이라고 생각한 데 그의 큰 오산이 있었던 것같다.
내 말을 듣고 그는 자신의 결점을 곧 시인했다. 나는 영적 이야기를 계속했으며, 신심이란 자신의 마음을 확
실하게 믿는 것이며 매일이 생활 속에 그것이 있다는 점을 역설했다. 신앙에 구걸해 봐야 스스로의 힘으로 실
천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친구는 마음 속 깊이 수긍했다.
"나는 신불에 대한 생각이 잘못이었다. 지금까지 종교라는 것은 신불에 빌면 구원받을 수 있는 것으로만 생
각했다. 그 잘못은 이제 깨달았다. 신불은 각자의 마음에 존재한다는 것을, 자기 자신이 소중하다는 것을 이
제야 알았다."
그는 자신을 타이르듯 되뇌는 것이었다. 그의 몸에 붙은 빙의령이 내 눈에는 똑똑히 보였다. 등 뒤 오른쪽 어
깨 근처에 희멀건 것이 붙어 움직이고 있다. 그래서 물어 보았다.
"오른쪽 어깨가 아프지 않은가?"
"사실은 어깨가 굳어졌네. 50견(肩)이니까 침을 맞으면 낫는다고 해서 오늘은 침구사에 다녀오는 길이야.
그런데 그런 것까지 어떻게 잘 아는가.'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비과학적이라고 나를 힐난하던 그가 지금은 경탄하고 있다. 그에게 신의 뜻을 가르쳐
주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나는 그의 어깨에 붙은 빙의령을 내 누이의 의식 속에 집어넣어 대화를 시작했다.
"당신은 왜 이분에게 붙어 있습니까. 이름을 말해 보시오."
그러자 누이의 몸 속에 든 빙의령이 말했다.
"내 이름은 류기치입니다. 이분은 술을 좋아하기 때문에 붙어 있으면 매일 저녁 무렵에는 술집에 같이 갈 수
있습니다. 함께 가면 안 됩니까?"
빙의령은 오히려 반문한다. 류기치는 우마야 다리 근처에 있는 대장간에서 직공으로 일하고 있었다. 살았을
때는 술을 한 되씩이나 마실 정도의 큰 주량이었다. 그 영혼은 아까부터 내가 말하던 신리를 듣고 있었으며
언제 자신의 정체가 탄로날지 조마조마했던 모양이다. 오랜 지옥 생활이 견디기 힘들어 이 지상의 비슷한 인
간에게 붙어사는 것이 편하다고 말했다. 나는 친구에게 어깨가 5년 전부터 아프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맞아, 술을 좋아하기 때문이야. 5년 전에 아사쿠사[전草]에 있는 한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오른쪽 어깨를
테이블에 부딪친 적이 있었지. 그때부터 좋이 않았어."
그는 내 말에 감탄하면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걱정하는 것이었다. 나는 류기치라는 그 빙의령에게 생시에 늘
술이 없으면 일을 하지 않았던 악습, 가족에게 폭력을 휘둘렀던 일 등 정법에 어긋난 그의 인생을 지적하는
한편 인간으로 태어났던 목적과 사명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사후에 세계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그의 잘못도 일깨워 주
었더니 그 빙의령은 비로소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친구의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지옥의 영도 신리의 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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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3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2)(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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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의해서 천상계로 올라가 성불하게 되어 있다. 무거운 돌이 얹힌 것처럼 불편하던 친구의 어깨는 거짓말처
럼 가벼워졌다. 그러나 이런 정도로 사리를 잘 알아듣는 빙의령은 질이 좋은 편이지만 아무리 설법해도 알아
듣지 못하는 답답한 지옥령들이 대부분이다.
'한 치의 벌레에도 오 푼의 혼이 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 그런 속담이 있는 것처럼 동물, 식물 등
모든 생물들은 살아갈 권리를 부여 받아 상호 의존의 관계 속에서 종족 보존을 이어가고 있다. 저마다의 환경
에 적응할 수 있는 몸과 구조를 지닌 채 살고 있는 것이다.
그 생물의 에너지를 흡수하면서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육체를 보존하고 있다. 동물, 식물, 광물 들 역시 자손
보존의 본능이 잇다. 그것을 알면서도 인간은 그들을 마구 잡아먹어 피와 살과 뼈로 만들고 있다. 동물이나
물고기에게 감사하는 마음도 없이 예사로 살생해 버린다. 그래서 그들도 생의 애착 때문에 성불할 수가 없어
서 인간에게 빙의한다.
인간은 마땅히 그들에게 감사와 공양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동물, 식물, 광물 등의 에너지원이 있어서 우리
들은 보존이 가능한 것이다. 식사 때 그들의 희생에 대한 명복을 빌고 감사의 기도를 올리는 것은 당연한 행
위다.
'여러분들이 우리들의 피와 살이 되어 줌으로써 우리들은 육체 보존이 가능합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들도 생전의 불멸을 깨달아 부디 성불하기 바랍니다."
이렇게 아침 저녁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불교에서 쓸데없는 살생을 금하고 있는 이유도 여
기에 있다. 살 권리가 부여된 생물을 살생하여 차려진 음식이므로 식사는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태양의 열과 에너지, 동식물, 광물의 에너지원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거의 잊고 있다는 점을 반성해야 한
다. 항상 만족할 줄 알면서 감사하게 생활하는 것이 생물들을 돌보고 위하는 공존공영의 길이 된다. 생명의
불변을 깨달은 식물이나 미생물들은 헤매지 않고 평화의 세계로 올라갈 수 있다.
그런데 감사의 마음이 없는 인간에게는 생물의 영이 빙의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 터무니없는 일이 어디 있
느냐고 비웃도 사람도 많겠지만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만물은 서로가 작용하므로 우리들의 육체를 보
존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들 영혼의 존재를 존귀하게 여기고 항상 감사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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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3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2)(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2)(다카하시 신지)
갯밭무시
가르침과 배움의 글들
・ 2021. 7. 10. 18:43 URL 복사  이웃추가

[악령들이 노리고 있다]
어떤 영적 현상이 나타나면 사람들은 그것을 최면술이라고 말한다. 최면술을 최면을 거는 사람과 최면에 걸
리는 사람과의 암시라는 교섭이 있어야 한다. 자기 최면술 역시 자기 자신에게 암시를 걸어야 가능하다.
그럼 영적 현상은 무엇인가. 지금까지 독자들이 읽은 것처럼 영적 현상은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
에서 일어나는 상태이다. 그리고 그것은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자기의 의지가 강하게 작용했을 때 나타난
다. 또 그것을 통하여 자기를 지켜 주는 수호천사나 자기를 지도하는 영적인 대상을 분명히 인식할 수 있게
된다. 사람은 아주 높은 차원에서 자기 자신을 움직이는 영혼이 의식을 지배할 때는 몸이 크게 확대되는 느낌
을 받게 된다.
그때 우리는 다른 사람의 수호천사와 이야기도 할 수 있게 된다. 그때 우리는 그 사람이 어디서 어떻게 태어
났는지와 그 사람의 내력은 물론 지금의 생각과 의문과 해답까지 알 수 있게 된다. 그 영은 자기가 지키는 당
사자가 선행을 할 때만 말을 건네는 경우도 있다.
독자 중에는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믿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만일 그런 의문을 갖고 계신 분은 나
와 실험을 해 보면 금세 알게 될 것이다. 사실은 나를 만날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모든 수호천사들
을 즉각 불러서 당신에 관한 것들을 알아내면 되기 때문이다. 나처럼 영적인 눈이 열린 사람들은 사람을 보
면 그 사람의 의식이며 마음의 상태까지 모조리 꿰뚫어볼 수가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전부다. 현세의 이익과 행복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수호천사를 기대하기
어렵다. 자기가 뿌린 죄의 씨앗은 곧 자기 자신이 거두어들인다. 이것이 인간의 철학이며 사람은 그 죄의 대
가를 현세보다 훨씬 더 무서운 곳에서 치른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만일 이세상이 아닌, 또 다른 세상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태어나기 전에 이 세상을 어떻게 말
했을 것인가. 우리가 자면서 꾸는 꿈의 세계는 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꿈은 단순한 의식의 잔영이나 희롱
이 아니라 또 다른 영혼의 서식처이다.
사람은 본래 영적인 능력을 지니고 태어났다. 단지 육체의 번뇌에 지배되어 있어 마음의 조화를 이루지 못하
기 때문에 잠재의식의 90%와 표면 의식이 10%의 다이얼이 잘 맞지 않고 있을 뿐이다. 바른 마음으로 살
고 행동하면 누구나 영적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사람은 바른 생각과 행위에 따라 각자가 원하는 목적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러면 누구나 그 목적에 알맞은 영이 나타나 우리들의 의식에 협력한다. 흔히 사람들
이 말하는 육감이 그것이다. 주위에서 무슨 일에 몰두하는 사람이 '이제야 감이 잡힌다'고 말하는 것을 보았
을 것이다. 바로 그 육감은 여러분이 하고자 하는 일에 큰 협조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최면술은 의식의 중심인 마음의 왕국을 자기 이외의 지배자의 암시에 의해서 팔아버리는 행위이다. 그때 만
일 조화를 이루지 못한 어두운 세계의 영이 의식을 지배하면 당신은 미쳐버릴 수 있다. 자기 자신을 잃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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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3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2)(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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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을 수 없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여우는 더운 여름날 땅바닥에 엎드린 개처럼 혀를 빼물고 금세 자기 정체
를 드러내고 만다.
짐승의 혼 가운데 뱀의 혼령은 사람의 허리와 다리에 빙의 된다. 뱀의 혼이 머리에 붙으면 사고 능력을 상실
한다. 지금 후지산에서 보살을 자칭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동물의 혼을 뒤집어쓴 사람들이다. 그들의 영혼
은 아주 혼탁해 있다. 후지산이 영험스러운 산이라는 말은 옛말이 되고 말았다.
신리를 깨닫지 못한 채 영적 현상만 쫓아, 육체적 고행을 통해 번뇌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수행자는, 바로 그
육체적 고통에 마음을 빼앗겨 짐승의 혼이 보살의 모습으로 둔갑한 것을 목격한다. 따라서 그들은 보살을 보
았다는 착각에 빠져 마침내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행세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인간은 누구나 다 수행과는 관
계없이 신불의 자손들이다. 악령은 비슷한 거짓 신리를 뇌까려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질투, 비방, 노여움
의 감정을 거침없이 노출시키며 공양을 요구하고 금품을 헌납하도록 강요한다.
말하자면 자신의 권위를 위해서 형식적인 종교 의식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들은 저주하는 주문을 외우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이 저주하는 대상이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일 경우에는 그 저주의 말이 고스란히 자기에게
되돌아가는데도 그들은 그것조차 모르고 있다. 자비가 없는 신앙, 우리가 흔히 말하는 무자비는 바른 이치
정법이 아니라 사악한 법이다. 우리는 그런 일을 아주 잘 깨달을 수 있다.
하물며 자기를 위해서 남이 불행해지도록 기도하는 종교는 언급할 가치도 없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들은 그
것이 정법인가 그른 법인가를 판단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여기서 마음의 눈이 열린 사람의 예를 하나
소개하겠다.
일본의 사이타마라는 곳에 사는 휴우가 치가코는 신리를 실천한 결과 마음의 눈을 뜰 수 있었다. 그래서 그
는 자기가 기원전 5세기경 인도의 시라바스티에서 스탓다 장자의 딸로 태어났던 전생을 알게 되었다. 마음
의 눈으로 전생의 자기 영혼을 볼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제다베나에서 고다마 싯다르타를 비롯한 많은 제자들이 스닷타 장자의 공양을 받고 있는 장면을 보았
다. 어느 날 새벽 2시경에 그의 어머니는 어두운 집 안이 갑자기 부드러운 황금빛에 싸여 대낮처럼 환하게 밝
아지면서 관세음보살이 나타나는 것을 목격했다. 이후 관세음보살은 마치 살아 있는 사람처럼 자주 나타났
다.
그의 어머니 눈에 관세음보살이 보인 것은, 관세음보살의 분신으로 일본의 헤이안[平安] 시대에 살았던 시
라기쿠씨 덕분이다. 나는 전생에 내 수호 천사로부터 그 말을 들었다. 나도 시라기쿠 씨에게 말을 들었다.
"저분은 나이가 많으셔서 내가 나타나면 이세상말고도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더 빨리 이해시킬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저분은 나를 보더니 그만 이불 위에 끓어앉아 합장하면서 감사하다는 말을 계속 했습니다."
그는 부드러운 말씨로 말했다. 그밖에 대흑천(大黑天)이 가금씩 그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그분은 스탓다라
는, 당시 인도에서 신리를 설법하는 분들의 경제적인 뒷받침을 하던 분이었으며, 그분이야말로 현세에서 돌
아가신 나의 아버지였다.
5세기경 중국에서 천태대사(天台大師)를 경제적으로 도와 주신 분이 스탓다의 분신이었다. 그가 대흑천으
로 가끔씩 모습을 나타내곤 한다. 불교에서는 정법 폭에 협력해 주신 분들을 대흑천이라고 부른다. 인도에서
스탓다의 딸이었던 휴우가 치가코는 선정 중에 저승으로 올라가 아름답고 평화스러운 곳을 종종 구경하고 돌
아온다. 우리 영적 능력자긍른 수호천사를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을 꿰뚤어보기도 한다.
최근에는 3시간 동안 선정 삼매(禪定三昧)에 빠져 저세상에서 총천연색 영화를 보고 온 모양이다. 옛 인도
시대에 마하 몽가라나나 아르닛다가 마음의 눈을 열었던 것처럼 우리 그룹에서도 영적 능력자들이 나타나 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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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3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2)(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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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 의식의 문을 열고 마음의 눈을 뜨고 있다. 이케가미에 사는 이가라시 부인도 인도 시대 데가라라는 이름으
로 우파리의 비서였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
그분도 마음의 눈으로 다른 사람들의 마음 상태, 빙의령, 수호천사 등을 투시할 수 있게 되었다. 마음의 조화
가 이루어진 비례에 따라 몸에서 나오는 후광의 상태를 똑똑하게 볼 수가 있다. 가정도 마찬가지다. 마음이
하나로 조화가 잘 된 가정을 빛에 싸여 있으며 조화를 이루지 못한 집안은 어두운 상념의 빛에 덮여 있는 것
이 보인다.
어두운 가정에서는 질병, 사고 등 여러 가지 부조화 현상이 일어난다. 이 윤회의 신리를 설명하기 위해서 지
금 일본을 비롯하여 미국, 영국, 남미, 프랑스, 대만, 한국, 필리핀, 독일 등 세계 각국에는 우리 동포들이 육
체를 지닌 채 증인으로 태어나 살고 있다. 저마다 신리의 빛과 인연을 맺고 그 사명을 완수하도록 되어 있다.
왜냐하면 그런 일은 모두 이세상이 아닌 저세상의 빛의 천사들에 의해서 계획된 일이기 때문이다.
영청(靈聽)이란 이세상의 소리가 아니라 다른 세상의 소리를 귀로 들을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마음이 눈과
마찬가지로, 정법을 깨닫고 생각과 행도이 일치한 생활을 하는 사람에게는 우리들 영혼의 형제들은 잘못된
생각을 지적해 주고 인간으로서의 목적과 사명감을 일깨워 주기도 하며 저세상의 삶에 관해 얘기해 주기도
한다.
선조가 육체를 지니고 이 세상에서 살았던 당시와 똑같은 말버릇으로 이야기해 줄 때도 있다. 수호천사는 당
시의 육체를 지닌 당사자와 특별한 관계가 있는 혼을 소개해 주기도 하고 좋지 못한 혼은 거부를 표시할 때
도 있다.
우리들의 분신이나 육신의 본체가 직접 말을 걸어올 때도 있다. 그들은 한결같이 개성이 뚜렷하다. 외국인의
분신이나 본체도 마음은 똑같이 신리에 통달해 있으며, 영혼의 형제들은 국적이나 피부색과는 상관없이 모
두 신의 자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내가 강연을 하고 있을 때에도 그들은 '목소리를 아랫배에서 내라'
'아랫배에 힘을 줘라' '좀 천천히 이야기해라' 같은 말로 충고해 준다.
경제계의 사토 마사다다 사장의 수호천사는 인도 시대 파세나테와 빈비사라 왕과 절친한 사이였으므로 손짓
몸짓으로 그 당시의 이야기를 상세하게 들려주었으며, 지금 육체를 지니고 있는 사토 사장을 비판하기도 한
다. 사장의 출생 당시부터 오늘날까지 경력과 사람됨을 들려주기도 했다.
이처럼 영적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해도 우리들은 어디까지나 육체를 지니고 수행하고 있는 몸인
만큼 저세상의 사람만을 상대하고 믿어서는 안 된다. 그들도 각자 일을 하며 수행하고 있으므로 그들의 생활
에 지장을 주어서는 안 되고 자주성이 있어야 한다. 잘못이나 실패도 발전을 위한 경험이다. 고통도 영혼을
닦기 위한 수련이며 인내를 기르기 위한 한 방법이다.
우리들과 깊은 관계가 있는 분들이 몸이 불편해서 괴로워하고 있으면 반드시 그의 수호천사가 '어디 어디가
어떻게 나쁘니 본인에게 전해 주시오'라고 가르쳐 준다. 인생이 얼마나 뜻깊은 것인가를 이해하면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정법을 깨닫지 못하고 영적인 감응만을 구하는 사람들은 자칫 악령에 지배되기 때문에
수호천사들도 접근하지 못하고 그저 멀리서 바라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본인이 정법에서 벗어난 생활을 하고 있으면, 어두운 상념에 의해 영혼이 흐려져서 수호천사들과
파장이 맞지 않아 통신이 두절되기 때문이다. 지옥계의 영은 그런 사람들에게 여러 사악한 말들로 마음을 불
안스럽게 한다. 어떤 늙은 할머니는 악령이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너는 차를 타지 말라. 반드시 트럭과 충돌해서 트럭이 너를 죽일 것이다."
참으로 걱정스러운 일이다. 또 어떤 때는 '저 집 사람들은 모두 악마들이니 말을 해서는 안 된다'면서 제3자
를 나쁜 사람으로 몰아붙이는 경우도 있다. 또 수호천사가 신선의 세상이나 천구계(天狗界)의 영적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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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3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2)(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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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경우에는 육체를 지닌 자의 영적 길을 열어버리는 수도 있다. 마음이 정법을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마음에 구름이 끼어 부조화한 영의 지배를 받아 일생을 폐인으로 마치는 경우가 많다.

[여덟 마리의 공작새는 어디로 날아갔는가]
많은 사람들이 꿈에 영적인 현상을 경험하고 있다. 만일 여러분의 영혼이 육신을 벗어나 90%의 잠재의식
속으로 들어가 다른 세상에 갔다 올 경우에 비록 의식이 자신의 육체로 되돌아오더라고 그 기억이 전혀 남지
않는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간밤에 한 번도 꿈을 꾼 적이 없다고 하더라고 꿈을 안 꾼 것이 아니라 거의 90%의 잠재
의식 속에 있었기 때문에 잠에서 깨어나도 기억할 수 없을 뿐이다. 그래서 꿈을 안 꾸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러분이 10% 정도의 표면 의식 상태에서 저세상을 보고 올 경우 기억이 남는 수가 많다. 자연의 풍
격이 컬러로 보였다거나 낮선 사람과 얘기를 했다거나 누가 나타났다거나 하는 등등의 꿈은 여러분의 전생
의 한 장면일 경우가 많다. 또 장차 일어날 일을 꿈에서 미리 볼 수도 있다. 그때 꿈의 거의가 다 영적인 꿈이
라고 해도 틀림이 없다.
현몽(現夢)이란, 죽음을 앞둔 영혼이 친한 사람에게 나타나 무언가 이별의 말을 하러 꿈에 나타나는 현상을
말한다. 이런 현상은 우리들의 감응력보다 죽은 사람의 영혼의 파장이 더욱 강력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
이다. 그런 체험을 하는 사람은 아주 많다.
마음을 잘못 먹어 생활이 불안한 사람은 좋은 꿈을 꿀 수가 없다. 좋은 꿈이란 편안함을 느끼고 마음에 부담
이 없는 평화스러운 꿈을 말한다. 악몽은 욕망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악몽은 의식이 지옥에 떨어져 있어
서 마음의 평안을 찾을 수 없을 때 꾸는 꿈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숙취처럼 골이 아플 때가 있을 것이다. 그것
은 당신의 수호천사가 잠자는 동안 나쁜 생각을 닦아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럴 때는 어제의 일을
잘 반성해 보면 반드시 기억나는 일이 있을 것이다.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을 정법을 실천하고 잠자리에
들 때,
"수호천사여, 제 마음을 닦아 주십시오"
이렇게 진심으로 기도하면 자신의 마음이 닦아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다음날 아침에 숙취 때와 비
슷한 증세가 얼마쯤 있겠지만 그 다음 날부터는 딴사람처럼 머리가 맑아질 것이다. 그때 주의할 것은 3분의
1 정도만 닦아달라고 부탁해야 한다. 전부 부탁하면 호흡 곤란을 일으킬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마음의 조화를 이루지 못한 사람일수록 마음의 따를 벗기는 데 힘이 든다.'
그것은 수호천사의 가르침이 있기 때문이다. 마음의 조화에 따라 가볍게 눈을 감으면 눈앞이 황금빛으로 덮
이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되고 평화로운 자연 풍경이 보이기도 하며 깨어 있는 상태에서 차원이 다른 세계를
볼 수 있게 되기도 한다. 참선 중에 또 하나의 나인 광자체가 차원이 다른 세계나 자신이 원하는 곳이나 사람
을 만나보고 올 수 있다. 마음의 조화가 높아질수록 그 힘은 막강하다. '또 하나의 나'가 육체 이탈을 할 수 있
는 것은 영혼의 형제들이 도와주기 때문에 가능하다. 우리의 마음은 정법 생활을 통해서 조화되어 평안할 때
에는 별다른 저항없이 이탈할 수가 있지만, 어두운 상념을 지니고 있을 때는 몹시 고통스러운 일이 된다. 그
때 심장이 짓눌리는 고통이 오는데 이것은 몸에 힘이 주어지는 탓이다.
그 원인은 육체에 대한 집착이 강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고통이라고 볼 수 있다. 육체로 이탈한 광자체는 아
주 가볍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의 본래 육체는 참선의 자세 그대로이며, 누워 있을 때는 누운 상태 그대로
이다. 자신의 육체를 자신이 바라본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천상계에 갈 때는 엘리베이터를 탄 것처럼 돔 속을 맹렬한 속도로 상승한다. 여러분 중에는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우리들의 영혼이 몸에서 빠져나갈 때는 바로 어두운 돔 속의 빠른 속도를 느끼게 된다. 별
들이 마구 뒤로 멀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바람 소리가 귓가를 스친다. 죽은 사람들이 중간까지 따라올 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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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3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2)(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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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 하지만 빛의 정도에 맞게 문이 자동으로 열리는 저세상의 이치에 따라 그들은 마음의 조화도에 맞는 빛
의 단계에 떨어져나간다.
왜냐하면 육체를 이탈한 광자체는 그 광자[빛]의 양이 마음의 조화도에 비례하기 때문에, 이미 어디로 착륙
할 것인지 결정이 되어 있다. 내가 착륙하는 곳은 늘 비둘기 같은 아름다운 새가 신록의 숲 속을 날아다니며
노래 부르고 있다. 평화롭고 푸르고 부드러운 융단 같은 잔디가 깔려 있으며 온갖 빛깔의 꽃들이 자지러지게
피어 있다.
마음에는 여러 모습이 복장을 한 사람들의 정답게 이야기하면서 여유 있는 생활을 즐기고 있다. 그들은 모두
역사에 나오는 인물들이다. 그곳의 영적 공간은 격조가 높은 곳이며 마음은 풍요하고 평화롭기만 하다. 저세
상의 내 집에 가보면 집 안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내게 인사를 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상황에서도 마음이 평온하여 이세상과는 달리 뽐낼 마음이 티끌만큼도 일어나지 않는다.
거기에는 마음을 조화시키는 훈련장 같은 곳도 있고, 사람들은 신불의 빛을 받아 자기반성을 하는 곳도 있
다. 이 지구상의 서쪽 즉 불교에서 말하는 서방 정토에 살고 있는 빛의 천사의 집은 낮은 언덕 위에 위치해 있
었으며 신록의 수목에 둘러싸인 돔형의 큰 저택이다.
연구실 같은 방 안에는 먼지 하나 없다. 우주에서 오는 모든 통신을 수신할 수 있는 선이 거미줄처럼 배선되
어 있다. 전기학의 전문가인 내가 보아도 세상의 것들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이곳 빛의 천사는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에 이 세상에서 산 적이 있는 최고 단계의 차원에 있는 빛의 가장 큰 수호천사이다. 나이는 40세,
이세상의 모든 것을 잘 파악하고 있는 나의 수호천사이다. 그는 나 때문에 겪은 어려운 일들에 대해 들려주었
다.
그의 가슴에는 와이셔츠 단추 같은 것이 3개 달려 있다. 그 중 하나는 동시 통역기이다. 그것은 내가 일본말
을 하면 즉시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바뀐다. 그런 동시 통역기가 일본에서 만들어졌다면 최고의 전
자 제품이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과 그곳의 과학문명의 차이는 너무 크다. 인간이 그곳에서 쓰
는 제품을 제작하는 것은 불가능할 듯싶다.
나는 그곳에서 포도주, 커피 등을 종종 대접받고 있다. 이 세상에서 육체를 지니고 사는 사람들 가운데 몇몇
사람이 나처럼 저승 - 여기서 저승이라고 말하는 것은 인간과는 차원이 전혀 다른 세상, 말하자면 영혼이 육
체를 벗어나야 갈 수 있는 바로 그런 세상을 가리킨다 - 에 다녀온 사람도 있다. 사람이 육체이탈을 하기는 어
렵지만 육체에 의식이 되돌아올 때는 훨씬 더 쉬우며 저항도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유체(幽體:광자체)가 이탈한 육체 곁에서 세상 사람들을 불러깨울 때에는 신체의 저항을 반드시 받
게 된다. 그처럼 영혼이 육체를 떠나서 조화와 평안의 세상에 도착하는 것을 삼매의 경지라고 한다. 여기서
나는 가오고에[川越]시에 사는 오노 고코[대야효자]씨의 집에서 일어난 놀라운 실화 한 토막을 소개하겠다.
오노는 전생에 이스라엘에서 파우로라는 사람의 어머니였으며 오노씨의 친정아버지는 유명한 나가다 순스
이[永田春水]화백이시다. 이 사건은 화백의 장례식 전날에 일어난 일로 5월 10일 자 도쿄 신문에 보도된 내
용이다. 기사의 제목은 '집단 가출한 새들의 불가사의한 사건'이다. 기사의 내용은 '8마리의 공작새들이 가
출한 것은 4일 아침이었다'로 시작되고 있다. 다음 글은 오노 씨가 사건의 전모를 밝힌 체험담이다.
"나는 아버지의 죽음이 너무 슬퍼서 울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내게 '이제 그만 울어라. 지금 육신을 떠난
영혼이 진짜 내 모습이란다. 사람의 생명은 영원한 것이며 영혼은 육체가 죽어도 살아 있는 것이다. 나 역시
육신이 누더기처럼 낡아서 벗어던지는 것뿐이다. 자아, 이제 나를 배웅해 다오'하시더니 아버지는 내 손을 잡
고 걷기 시작했습니다. 어딘지 모르지만 아주 환환 빛 속이었습니다. 느낌은 꽤 빠른 속도였던 것 같습니다.
'밝은 터널 속 같구나.'
아버지는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자신이 가시게 될 곳은 가리켰습니다. 나는 아버지에게 거기까지는 배웅을
할 수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고개를 끄덕이시면서 먼길을 가야 하니 이쯤에서 헤어지자고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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씀하셨습니다. 나는 아버지에게 간곡히 말했습니다.
'아빠, 이후에도 다시 제 아버지가 되어 주세요.'
나는 어리광을 부리며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그러겠다고 말씀하시고 웃는 얼굴로 이별의 손을 흔들었습니
다. 나도 열심히 손을 흔들어 아버지를 떠나보냈습니다. 그날 아침에 아버지는 숨을 거두셨습니다. 나는 아버
지께서 돌아가시기 1주일 전부터 밤마다 아버지 병상 곁에서 졸음을 견디며 경을 읽어 드렸습니다. 그렇게
밤샘을 계속했던 것입니다.
5월1일 새벽,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에 나를 불렀습니다. 나는 처음엔 남편이 부르른 줄로 알았습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의 목말을 타고 듣던 우에노산의 종소리처럼 온갖 추억이 담긴 아
버지의 정다운 목소리였습니다. 나는 정신없이 아버지 품에 뛰어들어 울고 말았습니다.
이윽고 나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환한 빛의 터널 속을 마치 유치원 시절 소풍 갈 때처럼 즐거워하며 새처럼
날았습니다. 아버님의 장례식은 4일 시나노마치, 천일회당에서 거행되었습니다. 그날 어머니께서는 아버지
가 평소에 가장 정성들여 그린 그림 족자를 관 옆에 걸었습니다. 그림 속에는 모란과 여덟 마리의 공작이 그
려져 있었습니다.
아버지에게는 대단한 역작이었던 것 같았어요. 아마 아버지의 공작 그림 가운데 마지막 작품으로 집에 소중
히 간직해 두었던 모양입니다. 장례식을 무사히 치른 후 조문객 중에 이웃집 아주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참 이상한 일도 다 있어요. 4일 아침에 공작새 여덟 마리가 우리 집 정원으로 날아왔다가 잠시 후에 선생님
댁으로 날아가 벚꽃 사이를 세 바퀴 돌더니 현관 앞에서 한바탕 울고 나서는 어디론지 사라졌습니다. 정말 아
름다운 새들이었어요. 벚꽃이 지는 사이로 공작새들이 날개를 활짝 펴고 걷는 모습은 마치 극락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었어요. 저는 그때 넋을 잃었습니다.'
나는 그때 그 말을 듣고 이승과 저승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또 한 가지 이
상한 일은 장례식 날 저녁에 이바라기현에 사는 아우의 집에도 비둘기 한 마리가 날아와서 장례식에 참석했
던 스님들, 아우, 조카들의 손등과 어깨에 앉아 뺨을 쪼아대며 좀처럼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더라는 것입니
다. 그래서 모두들 '비둘기가 할아버지다. 할아버지다'하면서 반가워했다는 것입니다. 나는 이 두 가지 사건
을 통해서 인간은 물질이 아니라 영혼이며, 신이 나누어 준 한 조각의 영혼으로 참으로 깊고 먼 하늘에서 강
림한 생명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나는 다카하시 선생의 깊은 신리의 가르침으로, 아버지의 45일간 입원 생활이 아버지 영혼의 마지막 연마 기
간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버지는 현재 신의 마을에 계실 것입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정말 신비한 사건이다. 하지만 우리들 영적 능력자의 눈으로 보면 그런 일들은 신비스러운 사건이 아니다. 오
노 씨는 영적인 눈으로 보신 분이었다. 그리고 그런 일들은 거짓 없는 사실이다. 꿈이 아니고 깨어 있는 상태
에서 광자체가 육체를 이탈하여 오노 씨는 아버지를 배웅했던 것이다. 자식이 부모에게 드리는 최대의 보답
이라고 할 수 있다.
[꽃의 요정과의 대화]
내가 신슈의 공장에 출장 갔을 때의 일이다. 공장 입구 오른쪽에 아름다운 여름 꽃들이 피어 있었다. 사쿠고
원의 공기는 도쿄 같은 도시에 비하면 별천지라는 생각이 든다. 하늘은 한없이 높고 푸르며 햇빛은 따가울 정
도로 눈부시다.
그러나 그런 날씨도 일단 그늘에 들어서면 상쾌한 자연의 서늘함이 몸을 감싼다. 나는 풀밭에 누워 글라디올
러스와 달리아 꽃이 피어 있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월트 디즈니 만화에 나오는 것 같은, 어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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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3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2)(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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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고 아이도 아닌 예쁜 소녀가 꽃 속에서 걸어나오는 것이 아닌가. 머리에 꽂은 꽃들이 아름답고 그 우아
한 자태는 도저히 이 지상의 사람이 아니었다. 소녀는 씽긋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저는 꽃의 요정입니다. 우리들은 자연계를 온갖 색깔로 장식하며 조화롭게 하는 사명을 다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에 평안을 드리는 것을 기쁨으로 삼고 있습니다."
나는 처음 경험하는 일이었지만 비록 식물이라도 생명을 지니고 우리가 사는 세상을 장식하는 목적을 가지
고 있다는 사실에 크게 감동을 받았다. 너무나 비현실적인 일이었으므로 나는 꿈을 꾸고 있지 않은가 착각할
정도로 당혹스러웠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꽃의 요정에게 인사했다.
"처음 당하는 일이라 그저 놀라고 있을 뿐입니다. 오늘은 아름다운 꽃을 보고 자연과 벗할 수 있게 된 것이
큰 기쁨입니다. 앞으로도 이 자연계를 더욱 아름답게 꾸며 주십시오."
소녀의 얼굴이며 체구도 사람과 똑같고, 피부는 투명한 유리처럼 아름다웠다. 요정이 저세상 사람들과 다른
점은 체구가 작다는 것뿐이며 말하는 것은 분명하다. 꽃의 요정은 또 말했다.
"인간은 훌륭한 육체를 지니고 위대한 창조력과 실행력을 가진 채 살지만 어리석은 사람도 참 많네요."
그녀는 인간을 비판하고 웃는다.
"왜 인간이 어리석은가요?" 내가 묻자 그녀는 즉시 말한다.
"신의 자녀인 인간은 마음을 상실하고 평안이 없으며 자기 본위로만 사물을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마음속
에 욕심의 덩어리가 가득하며 인간끼리의 신의도 없습니다. 추악한 싸움과 파괴만 있어요. 우리는 아득한 옛
날부터 이 지상에 꽃을 피우면서 인간 사회를 지켜봐 왔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어리석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
다. 우리들은 자연 그대로 살며 항상 아름답게 자연을 꾸밀 뿐 욕심이 없습니다. 인간을 위해서도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데, 매정스럽게도 우리를 꺾어버리거나 돌보지 않는 무심한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도
우리들은 불평하지 않고 오로지 조화로운 마음으로 편한 환경을 꾸며드리고 있습니다. 아름다움을 힘껏 발
휘해서 조금이도 보탬이 된다면 더없는 행복으로 여깁니다."
나는 꽃이 요정에게 할 말이 없었다.
"사람도 꽃처럼 아름다운 마음이 되어 우리들과 같이 조화로운 자연을 꾸며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꽃의 요정은 그 말을 덧붙였다. 인간에 대한 날카로운 꾸중이었다. 사상의 대립, 종교의 대립, 전쟁, 파괴 등
꽃의 요정보다 못한 인간의 군상들은 크게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더구나 마음의 문을 연 신불의 자녀가
된 사명과 목적을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자각을 나는 새삼스레 가다듬었다. 꽃의 요정은 '너무 말을 많
이 해서 미안해요' 라는 말을 남기고 이내 꽃 속으로 몸을 감추어 버렸다.
내가 설법하고 있는 대자연의 법을 깨달은 사람 가운데에는 나와 똑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도 여럿 있다. 이
런 말을 하면 독자 여러분께서는 의심을 하실 것이다. 하지만 신리를 깨닫고 살면 그런 경험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불교에서 관자재보살이라는 가르침도 그렇게 마음의 문이 열린 사람들, 진실한 인생을 영위하고 겸허한 마
음으로 남에게 자비를 베풀며 만생 만물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사람들을 말한다.
그런 사람들은 식물의 요정과 만나서 얘기를 나누는 것도 가능하다. 그리고 인간은 누구든지 그와 같은 능력
을 가지고 있다. 또 이러한 능력을 계발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힘으로 가능한 일이다. '정법의 실천 생활 이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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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3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2)(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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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는 길은 열리지 않는다.' 꽃의 요정은 우리가 사는 이 현상계의 모습과 마찬가지로 실재계에서도 항상 아름
다우며 자연과의 조화를 목적으로 그 종족이 보존되고 있다.
우리들의 마음이 때가 씻기고 영적인 길이 열리면 거의 모든 요정과의 대화가 가능하며 대자연의 짜임새, 만
생 만물의 상호 관계를 서로 말할 수 있게 된다. 꽃의 요정 중에서도 등꽃은 푸른 눈을 가진 예쁜 소년의 모습
이다. 소나무는 노인이 많다. 또 나비나 물고기도 영혼이 있다. 그들도 불멸의 영혼이며 저승과 이승 사이를
윤회한다. 그 사실들은 이후 더 많은 정법 실천자들에 의해서 증명될 것이다.
예수나 붓다의 가르침은 똑같은 진리다. 두 분은 모두 빛의 천사들이며 단지 설법이 방법이 다른 뿐, 인간으
로서의 마음가짐을 똑같이 가르치고 있다는 점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 가르침은 사람이 어떻게 살 것인
가, 신과 인간은 어떤 관계인가, 인간과 천사의 관계 등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결코 어려운 학문이나 철학이 아니라 마음과 행동의 가르침, 색심불이(色心不二)의 가르침 즉, 유형
의 물질이나 무형의 정신은 하나라는 뜻이며 자신의 마음이 바로 신앙의 대상이라는 가르침이었다.
그 가르침을 어렵게 만든 이유는 1천 년, 2천 년 그렇게 긴 역사가 흐르는 동안 그 뜻에 인간의 지식과 의지
가 점차 가미되었기 때문에 신리는 인간의 정과 거리가 먼 것이 되고 말았다. 그 결과 동물적인 자기 보존 사
상, 물질 경제, 컴퓨터의 노예로 인간은 전락하고 말았다.
대자연의 열과 빛의 에너지를 비롯하여 우리가 살고 있는 모든 환경은 신불이 제공한 것이다. 이세상의 만물
에 대하여 우리는 감사의 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감사의 마음이란 인류의 조화, 상호 신뢰, 협력으로 발전
해 간다.
보기를 하나 들어보자.
우리가 집을 지을 때에는 생활에 편리하고 적합한 환경과 입지 조건을 먼저 따져 보게 된다. 택지 환경, 수
도, 도로, 전기 등의 사정을 먼저 고려하고 교통, 시장, 병원, 학교 등의 환경을 다음으로 생각하게 된다. 이윽
고 한 채의 집이 세워지고 생활환경이 정돈되면 점차 집단 주거가 형성되어 간다. 하지만 머지않아 인간은 자
기 보존에 빠져 평온한 환경을 스스로 파괴하게 된다.
사람은 마음의 정도를 잃고 사상적 집단이 되어 투쟁과 파고의 부조화를 불러일으키며 물욕의 노예가 되어
마음이 평안을 잃고 만다. 더러는 타력 신앙에 빠지기도 하고 더러는 자기 입장만을 고집해서 조화를 깨뜨려
버리기도 한다. 마음을 상실한 인간은 불쌍하다.
인간은 하루 빨리 본성을 되찾아 물질적인 노예에서 해방되는 것이 시급하다. 현실에 감사하고 만족할 줄 알
게 되면 자신의 마음은 우주로 넓어져서 구속받는 일도 없게 되며 모든 방면에 은혜로운 환경이 완성되어 간
다.
만족할 줄 모르는 인간은 밤낮없이 욕망에 사로잡혀 마음이 편안한 날이 없다. 육체도 조화를 상실할 뿐만 아
니라 주의의 사람들과도 조화를 이루지 못하여 쓸쓸한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결국 그 사람의 마음 상태에 상
응하는 고통스러운 생활이 저세상에서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금 내 둘레에는 많은 영적 현상이 일어나고 있지만 이것은 물질주의적 사상에 사로잡힌 인간들에게 신의
자녀로서 자각을 일깨워주기 위한 현상이다. 또한 올바른 인간으로서 후회 없는 인생을 살 수 있게 하기 위
한 신의 자비로운 발현인 것이다.
영적 현상은 앞으로 더욱 많이 나타나서 바른 마음을 상실한 인간들에게 신리를 불어넣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은 이 같은 영적 현상에 사로잡히지 말고 인간다운 올바른 인생을 걷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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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3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2)(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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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마음의 상태에 따라 육체도 변화가 온다는 사실에 의문을 품는 사람도 있다. 또한 자
신의 마음이 조화되는 데 따라 운세가 나아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드물다.
자기의 마음을 어떤 상태로 두느냐에 따라 신체적 변화가 온다는 것은 곧 우리의 육신은 인생 항로의 나룻배
에 지나지 않으며 따라서 사공[마음]이 젓는 노에 따라 육체[배]는 어느 방향으로도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잘
가르쳐 주고 있다.
영혼 즉 의식을 하나로 집중하는 것은 사물을 창조하는 능력과 통한다. 이것을 알면 의문이 풀린다. 그리고
신리의 실천 생활을 통해 해답은 저절로 얻어진다. 마음의 조화에 따라 운세가 나아진다는 것은, 팔정도(八
正道) 즉 중도의 생활을 실천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가치를 알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마음이 얼마나 광대하며 인간의 신불의 자녀로서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가를 깨닫게 된다. 자기중심
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인간은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자각을 할 때 비로소 인간은 평안이 충만한 조화의 삶
을 살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거짓이 없는 생활이 확립되어 간다.
자신의 상념 행위가 신리로 부합될 때 마음은 신의 빛으로 감싸인다. 한 개인의 작은 마음의 조화가 가정의
행복을 만들고 이웃과 시회와 국가의 조화로 파급되며 나아가 조화의 집단은 인류의 마음에 투쟁과 파괴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할 것이다. 이렇게 보면 종교적 투쟁 따위는 자기 보존의 종파적 사상 이외의 아무것도 아
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마음을 역설해야 할 종교인이 마음을 상실하고 종파의 방석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현실은 딱하기 그
지없다. 종교 지도자는 종교인의 자세를 다시 한 번 반성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내가 설법하는 신리에 모순
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래도 모른다면 무지하거나, 우상의 문지기이거나, 자기 보호의 에고이스트
이거나, 종파를 미끼삼고 있는 위선자거나, 아니면 돈과 지위에 집착하고 있는 사람들이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런 자들에게 인간의 마음을 설법할 자격이 있을 리 없다. 왜냐하면 우리들 마음의 천국이야말로 큰 신전이
나 불전인데, 겉모양만 번드레한 대신전, 대불전의 건립은 재정의 낭비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다. 지구는 그
자체가 신의 몸체이며 신의 전당이다. 이것을 알고 있는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살아 있는 동안 정신적, 육체
적, 경제적 세 가지 방면의 조화를 위한 상념과 행위의 실천을 결코 소홀히 하지 않아야 할 것이며, 마음은 모
든 것에 우선하며 지식과 의지의 조화를 유지하는 받침대이다.
[마음을 다스리는 지혜]
부조화는 대개 자신의 욕망이 채워지지 않을 때 일어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남보다 출세하고 싶다. 좋은 옷
을 입고 싶다. 맛 좋은 음식을 먹고 싶다. 좋은 집에 살고 싶다, 아이들을 일류 학교에 보내고 싶다 등등 헤아
릴 수 없이 끝없는 욕망의 늪이 우리들 앞에 펼쳐져 있다.
우리가 만족할 줄 알면 마음에 제동이 걸리지만 대부분의 인간은 제동이 풀린 마음으로 욕망의 늪에 빠진다.
그 결과 욕망의 노예가 되어 청정한 보리(菩提)의 생활은 찾을 길이 없다. 자신의 입신출세를 위해서라면 동
료도 예사로 배신한다. 상사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까지도 속이고 봉건 사회의 머슴 같은 짓도
서슴지 않는다.
지위, 명예, 돈이 인생을 풍족하게 하는 것일까? 정말로 그럴까? 욕망이 생기면 평온한 생활을 기대하기는커
녕 자신을 멸망으로 몰고 갈 때도 있다. 인간은 거짓 없는 생활 가운데에서만 올바른 마음이 싹이 눈뜨며 평
안의 인생을 보낼 수 있다. 허영과 욕망에 빠져서는 안 된다.
모처럼 얻은 이 지상의 귀중한 생명을 무의미하게 보내서는 안 된다. 주어진 환경 속에서 부지런히 살아가면
마음의 불안도 없어지고 평화로운 환경을 만들어 갈 수 있다. 조직사회도 마찬가지다. 노사(勞社)가 다 같이
서로 감사의 마음과 은혜를 갚는 행위로 뭉칠 때 비로소 조화를 이룰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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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3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2)(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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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자가 말하는 것처럼, 상층 계급과 하층 계급과의 대립으로 발생하는 투쟁과 파괴의 사상을 필연적
인 인류의 신리라고 믿어서는 안 된다. 잘못된 사상에 물든 마음은 부조화한 그늘이 되어 파멸의 길을 재촉한
다. 부조화한 사념과 행위는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 수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
다.
인생은 화살처럼 짧은 것이다. 후회 없는 인생을 위해서 날마다 반성하는 생활로 우리의 마음을 보다 높은 차
원으로 정화시켜야 한다. 신의 빛은, 감사의 마음을 보은의 행동으로 옮기는 인간에게 쏟아지게 마련이다. 우
리는 한 발자국 한발자국 신의 빛으로 충만한 사회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팔짱을 끼고 있어도 찾
아오는 것이 아니다. 실천하는 가운데 선의의 운동은 퍼져가는 것이다.
사회 현상에만 사로잡히지 말고 내면의 마음을 중심으로 한 조화야말로 신의 뜻이며, 그 조화는 신리에 맞는
실천 생활 이외에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인류는 모두 형제다. 지구라는 한 배에 탄 동시대의
동기생들이다. 피부색이나 민족의 종류는 각기 그 환경에 적합한 육체적 조건에 지나지 않으며 그 육체의 지
배자인 의식 즉 영혼에서는 조금도 바를 바 없는 형제자매들이다.
태양의 빛과 열은 인류에게 평등하며 신불의 자비와 사랑도 또한 평등하다. 따라서 인종 차별의 편견은 신의
뜻이 아니다. 차별은 생활환경의 차이에서 생겨난다. 마음을 볼 수 없는 인간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자기 보
호를 위한 봉건 제도적 계급의식이다. 우리들은 하루 빨리 내면의 마음을 깨달아 인간으로서 태어난 현생의
가치를 올바르게 인식해야 한다.
자신의 전생을 알고 나쁜 업보를 바꾸려는 것이 인생 수행의 한 가지 목적임에는 틀림없지만 우리가 과거 세
상에서 어떤 인물로 태어났건, 그것보다는 현생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신리에 맞는 상념
과 행위만이 마음을 진화시키고 물질 경제나 여러 현상에 사로잡히지 않는 인간성을 형성해 간다.
그래서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왕국을 만들 수 있다. 설령 자신의 전생이 왕이었다 하더라고 현세에 육체를 지
니고 있는 자신이 삶의 가치를 알아내지 못하고 자아 욕망과 오관에만 사로잡혀 있다면 그 인생은 실패작이
다.
신불이 자녀다운 자각을 가지고 살고 있는가 아닌가에 따라 현생의 가치는 달라진다. 상단계의 빛의 천사들,
여래나 보살들도 이 현상계에 육체를 지니게 되면 보통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수행의 과정을 밟아야 한다.
환경과 교육의 영향을 받기도 하고 경제적인 고통이나 여러 가지 괴로움에 부딪치기도 하면서 인생에 대한
의문과 회의를 안게 된다. 그래서 과거 세계와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서 대체로 승려나 학자로는 태
어나지 않는다. 자신에게 의문과 회의가 일어나기 쉬운, 결코 안일하지 않는 환경을 선택해서 태어나는 것이
상례인 것이다.
붓다도 예수도 모세도 승려나 학자가 아니었다. 승려나 학자와 같은 작은 틀 속에 갇혀버릴 것을 예견하여 여
래[메시아]들도 짐짓 고락을 경험할 수 있는 장소를 택해서 탄생한다. 그래서 여래는 이승을 하직할 때까지
는 일단 깨달음을 이룬다. 그러나 깨달은 것만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사명을 완수하지 못한 채 저승으로 돌
아 갈 수는 없다. 죽음에 임박해서 깨닫는 것은 너무 늦다. 육체가 건전할 때 신리를 깨달아 중생에게 가르쳐
주고 조화 있는 인생을 다져 줄 책임이 있다.
지금까지 여러 명의 여래가 이승에 태어났다. 하지만 인생 항로의 고난에 봉착하고 환경에 지배당하여 사명
도 완수하지 못한 채 일생을 마친 경우도 있었다. 나의 수호천사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역사적인 물적 증거라는 것이 우선되기 쉬운데 그것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못 된다.
왜냐하면 신리에 관한 한 너무 과거의 기록에 사로잡히면 자칫 지식과 의지가 앞서서 자신의 본성을 상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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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3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2)(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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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쉽기 때문이다. 자신을 상실하면 신의 뜻을 깨달을 수 없다."
과거의 행적에 사로잡혀 문헌에만 의존하고 살면 학문적 탐구에 기울어져 마음이라는 자기의 본성을 잃기 쉽
다. 자연 과학의 분야에서는 문헌이 큰 참고가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나, 신리에 관한 문제는 그 시대의 몰지
각한 권력자에 의해서 왜곡된 경우가 많다. 불교도 여러 나라를 경유하여 건너오는 동안 그 나라의 전래 사상
이 상당히 가미되고 말았다.
따라서 불교도 기독교도 원래의 정신으로 돌아가기가 몹시 어렵게 되었다. 신의 뜻은 대자연의 법칙이므로
시대가 새롭게 오거가 낡은 세대거나 상관없다. 진리란 헌 것도 새것도 없다. 불변인 것이다. 누구의 마음속
에도 신불의 자녀로서의 신리는 엄연하게 존재하고 있다.
"신의 뜻은 자기 자신의 마음속에 있으며, 자신의 마음에 충실하고 항상 중도에 따라 욕심을 버린 생활을 계
속해 가면 누구든지 신불의 자식으로서의 긍지를 자각하게 될 것이다."
나의 수호천사는 이렇게 보충 설명을 해 주고 있다. 저세상 즉 실재계에 돌아가서 '이렇게 했으면 좋았겠다'
' 저렇게 했으면 좋았겠다' 등으로 후회해 보아야 소용없다. 이미 엎지른 물이다. 학문도 마찬가지다. 늙어서
' 아! 젊었을 때 좀 더 공부해 둘 것을 '하고 뉘우쳐 본들 소용없다.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알고 있으
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나태에 빠져 버리기 쉬운 것이 인간이다.
신리를 깨닫고 정법을 실천하고 있는 우리들조차도 저승으로 돌아갈 때에는 '좀 더 많은 사람들을 제도했으
면 좋았으련만' 그런 아쉬움을 남기게 될 것이다. 육체를 버려도 지상에 살 때와 마찬가지의 의식 상태에서
광자체라는 육체로 바뀌는 것이 우리들의 다음 세상이다.
따라서 저승에 가서도 이승에서의 생활 즉 상념과 행위의 일체가 하나하나 남김없이 백일하에 드러난다. 그
래서 지상에서 저지른 죄값은 그곳에서 자신이 갚이 않으면 안 된다. 즉 자신이 자신을 재판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후회하게 된다.
유계(幽界), 즉 죽음의 입구에서 우리는 지상에서 살았을 때의 선과 악을 낱낱이 가려 재판을 받게 된다. 신
불의 재판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하게 된다. 그것은 신불의 자녀로서 너무 당연한 일이다. 인간의 가치를
잊고 조화롭지 못한 인생을 살고 있는 인간에게 마음의 평화는 없고 검은 상념으로만 뒤덮여 있다. 이런 인간
은 이 지상을 떠나 다음 세상에 가서도 똑같이 검은 상념의 세계로 떨어진다.
그리고 그 마음의 정화될 때까지 지옥계에서 고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옥도 자신이 만들고 있던 세계일 뿐
이다. 책임 전가는 용납되지 않는다. 책임을 전가시키면 그 고통은 더욱 커질 뿐이다. 따라서 행복을 얻는 지
름길은 하루 빨리 과거의 세상에서 지은 업[가르마]를 확실하게 인식하고 두 번 다시 그런 과오가 없는 인생
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늘 반성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신의 나쁜 성격을 고쳐가야 한다. 반성의 명상은 마음을 정화
시킨다. 그리고 신불의 빛에 에워싸이게 된다. 이럴 때에야 비로소 삶도 죽음도 없는 생명의 윤회를 깨닫게
된다.
사람들은 단지 육체라는 현상만을 보고 있기 때문에 그 육체가 없어지면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육체의 지배자인 영혼은 불변이며 다만 이승과 저승의 환경에 적합한 옷을 갈아입을 따름이다. 이것
을 알게 되면 생명의 불변을 불신할 수는 없게 될 것이다.
[예배나 예불이 신앙의 전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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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신, 맹목적인 믿음, 광적인 믿음은 인간이 만들어낸 신앙이며 신리와는 거리가 멀다. 절이나 교회에 나가
서 기도하는 것이 신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자기가 믿는 대상에 기도함으로써 자신이 행
복해진다고 여기는 신앙적 자세가 얼마나 큰 잘못인가를 우리는 하루 빨리 깨달아야 한다.
우주 만물의 궁극적 실재는 물질이라는 사상에서 유래된 무신론적 사상인 유물론자들의 말에 빠지면 인간은
회색빛 인생을 살게 된다. 지식과 의지에 의해서 만들어진 투쟁과 파괴의 사상은, 자유롭고 평화스러운 마음
을 어지럽힐 뿐 아니라 단결이라는 미명 아래 개인의 자유를 속박하여 비정한 압력으로 짓눌러 사생활은 고
통스러운 궁지로 몰리게 된다.
하지만 그들도 마음의 번뇌에 대해서는 어찌할 바를 모른다. 따라서 그들의 집단은 마음을 상실한 사람들 끼
리끼리 만나는 법칙이라든가, 파장에 따라 똑같은 마음을 느끼는 법칙에 따라 한 우두머리를 중심으로 집단
을 형성한다. 유물 사상에 따르지 않는 자유 의지의 발언은 그들 집단에 의해서 여지없이 짓밟혀 버린다.
유물 사상에 세뇌된 자들은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폭력을 거침없이 휘두르며 거기
에는 자비와 사랑이란 그림자조차 찾아 볼 수 없다. 사상 이데올로기를 위해서는 범죄 의식도 마비된다. 공산
주의 세포들은 한 지도자의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으며 인간의 본성을 100% 잃고 있다. 참으로 가엾고 불쌍
하다고 밖에 할 말이 없다.
마음을 상실하여 서로 믿을 수 없게 된 인간의 집단은 어느 날 내부 투쟁에 의해 자멸의 길을 밟게 된다. 우리
들은 이러한 사상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줄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올바른 신리로 돌아와 잃어 가는 인
간의 마음을 되찾아야 한다. 옛 인도 당시의 석가의 가르침, 옛 이스라엘 당시의 예수의 가르침으로 돌아가
야 한다. 그래서 위대한 마음의 존엄성을 깨달아 조화 있는 사회를 하루 빨리 이룩해야 한다.
그런데 불교도 기독교도 인간의 지식과 의지에 의해서 너무나 왜곡되어 버렸다. 그래서 대자연을 지배하고
있는 의식, 즉 신불은 우상화되고 말았으며, 빛의 천사들조차도 우상화되어 예배 기도하는 종료고 전락하여
세상은 바야흐로 말법시대로 접어드는 감이 없지 않다.
기독교도 불교도 그 진수를 모르기 때문에 많은 중생은 신불에게 기도하는 것이 종교라고 착각하게 되었으
며 악덕 종교 지도자들의 밥이 되고 말았다. 매너리즘에 빠진 신앙생활은 형식적 행사로 지샌다. 예배니 예불
이 신앙은 아니다.
'불교는 어려우며 그 진수를 터득하기 힘들다'고 불자인 승려들끼리도 고개를 젓고 있는 실정이다. 믿음을 지
식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불교이다. 인간이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는 불교가 왜 철학이라
는 학문이 되었는가, 왜 엄격한 계율에 의한 자기 식의 규율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되는가, 나는 그 점이 의심스
럽다.
많은 중생들은 불교의 원점에서 멀어졌다. 권력자, 학자, 승려들에 의해서 철학화된 종교는 이미 진실한 마음
의 종교가 아니다. 계급 제도가 엄격했던 지난날에 왜 종교가 필요했던가. 그것은 그들 특권 계급의 무리들
이 자기 보호의 수단으로 불교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신불의 이름 아래 그 많은 대중을 희생시켰다. 겨우
5% 정도의 소수 귀족과 승려들의 사리사욕 때문에 95%의 대다수 중생의 희생되는 종교는 아편이라고 말
할 수밖에 없다.
아편이 된 종교는 인간을 구제할 수 없다. 신리도 아니다. 사리사욕의 산물일 뿐 결코 신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들은 신불의 이름을 팔아서 생활하고 있는 위선자들에 불과하다. 기도하는 것만이 구제받는
길이 아니며 맹신, 광신, 미신이 사악한 길임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올바른 신리에서 마음이 멀어져 있다는 사실을 하루 빨리 깨달아야 한다. 신불의 자녀로서 아버지인 신을 믿
는 것이 인간의 당연한 도리이며 신리를 모르고 맹신, 광신에 빠지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을 상실하는 사악
한 길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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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다운 생활을 잊어버리고 고난과 기쁨이 양 극단적 인생을 보내며 정도를 무시한 삶은 신앙이 아니다. 지
도자의 지시대로 움직이며, 구하는 바를 오직 기도에만 의존한다는 것은 맹신이다. 의문을 가지는 일도 없이
기도에 빠진다는 것은 바로 인생에서 도피하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그런 사람은 하루 빨리 자신의 본심을 되
찾지 않으면 안 된다. 종교 지도자들은 말한다.
"당신의 불행은 몇 대의 조상이 천도받지 못해서 생긴 일이나 불공을 드려야 합니다." 혹은 '당신이 아픈 것
은 집을 지키는 용신을 소홀히 한 탓이니 이렇게 해야 합니다."며 미신을 끌어들이고 있다.
'집안이 잘 되려면 이 부적을 붙이고 초하루와 보름에 고사를 지내야 합니다."
이런 말을 듣는 사람은 사리사욕에 빠져 우상을 숭배하게 된다. 욕망을 채우기 위한 신앙에 빠지면 빠질수록
마음이 불안해지고 불행한 인생을 걷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열심히 기도할 때는 일에도 열중하기 때
문에 장사가 잘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돈과 시간이 생기면 기도할 대상에는 무관심해지고 그저 형식적인 신앙
이 되고 만다. 장사가 잘 된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도 잊어버린다. 낭비를 일삼고 욕망의 충족만을 쫓는다. 어
느 틈에 악마의 포로가 되어 마음에 평안이 없고 가정은 조화가 파괴되어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불행을 자
초한 셈이다.
"건드리지 않는 귀신은 잠잠하다."
그런 속담은 진리이다. 신불에 기대지 않고 신리에 바른 생활을 스스로의 노력으로 쌓아가는 삶의 신불의 마
음으로 통하는 길이다. 인간다운 생활을 위한 최선의 노력이야말로 우리들 마음에 평안을 얻고 신불의 자비
를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인간다운 생활이란 신리에 따른 팔정도(八正道)의 실천에 있다.
올바른 상념과 행위, 신불의 자녀라는 자각을 가지고 의식주에 만족할 줄 아는 생활이 바로 그것이다. 끝없
는 욕망은 고통과 번뇌를 가중시킬 뿐이다. 우리들 생활환경에서 재앙을 불러일으키는, 육안에 보이지 않는
악령들은 신불이 아니다. 악령에 빙의되는 것은 반드시 그 원인이 있다.
상념과 행위에 대해서 우선 반성해야 한다. 재앙의 악령은 신불로 착각하여 받들게 되면, 악령들은 더욱 거만
하게 득세하여 그 재앙을 후손에까지 미치게 한다. 스스로의 마음을 바로잡고 그들을 천도해 주는 것이 정법
이다. 그들을 받들고 공양해 주는 것은 결코 정도가 아니다. 악령을 숭배하라는 교조가 있다면 그는 참다운
법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다. 법력이 있다면 그들 악령들의 잘못을 깨우쳐 주고 정법에 귀의시킬 수 있어야
한다. 동시에 이러한 종교적 환경에서 고통 받고 있는 인간에게 그 고통의 원인을 가르쳐 주고 올바른 마음가
짐과 생활 방식도 지도할 수 있어야 한다. 조상 탓이다. 용신 탓이다 하고 예배 공양을 하게 하는 신앙은 자
기 자신의 신불의 자식이라는 자각과 긍지를 팽개쳐 버리는 것과 같다.

[스스로 구하는 자에게 주어진다]
'냄새 나는 물건은 묻어 버려라' 는 식의 신앙에서 벗어나는 것이 바로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길이다. 형식 신
앙에 빠지면 빠질수록 생활도 불안정하게 되고 마음의 변화도 없어진다. 흔들려서는 안 된다. 아편의 중독에
서 자신의 마음을 구제해야 한다. 자기 자신에게 엄격하고 강하며 어떠한 난관에도 흔들리지 않는 크나큰 마
음을 가지고 자신 있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
불행한 일이 생기면 그 원인을 잘 찾아내어 악의 씨를 제거하고 보다 나은 인생을 위한 노력을 기울어야 한
다. 신불은 그 노력에 대해서 반드시 평화와 안심의 빛을 비춰 줄 것이다. 인간의 마음을 장님으로 만들고 기
도에 의해서만 공덕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는 종교지도자들은 큰 죄를 짓고 있다. 신불은 인류가 이 현상계에
서 육체를 지니고 영혼의 수행을 할 수 있도록 모든 환경을 제공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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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3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2)(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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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상은 태양의 빛과 열과 에너지에 의해서 식물, 광물, 동물 상호의 생존 관계가 성립되어 있다. 이 모습이
야말로 바로 사랑과 자비의 나타남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신불은 인간에게 자손 보존의 본능을 부여하였
으며 따라서 우리들은 부모로부터 육체를 공짜로 얻었다. 부모의 사랑과 희생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 근
원을 따지면 신불의 자비와 사람에 의해서 육체가 창조되었던 것이다.
이 육체의 운전기사인 우리들의 의식은 영혼의 부주의로 말미암아 부조화한 현상이 일어난다. 자신의 행동
과 마음을 바로잡는 일이 바로 그 부조화를 바로잡는 길이다. 대자연의 은총에 감사하고 모든 사람에게 감사
하고 보은하는 생활이야말로 사회의 조화를 완성할 수 있는 길이다. 질병, 빈곤, 불행 등의 괴로움에 대해서
그 원인을 추구(追求)해 보지도 않고 자신의 형편, 자신의 행복, 자신의 이익만을 쫓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신불을 비롯한 우리들의 수호천사인 영혼의 형제들은 아전인수격인 이기적 기도에 대해서
는 절대로 협력하지 않는다.
신불의 세계는 중도의 정법에 의해서 모든 것이 정해져 있다. 거울에는 실물과 같은 모습이 비친다. 실물이
아름다우면 그 영상도 아름답다. 우리들 마음의 거울도 마찬가지로 실재계의 천사들에게 비친다. 마음의 모
습은 빛의 천사들의 눈을 절대로 속일 수 없다.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그 사람과 관계가 깊은
실재계의 인물에 의해서 반드시 협력이 있다.
'스스로 구하는 자에게 주어진다'는 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구하기 위해서는 상념과 행위가 일치한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구하는 바는 기도에 의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기도할 때의 마음 상태가 문제다. 특히 '배에 고기를 가득히 잡게 하소서, 오곡 풍년이 들게 하소서'라고 기원
할 때에는 그 자체가 생물의 생명을 취득하는 것인 만큼, 수확물을 소홀이 하거나 낭비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우리들의 피와 살이 되는 희생적 공양물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그 생명들에게 깊은 감사를 올
리는 것이 당연한 도리다. 식사를 할 수 있는 것도 많은 생명들의 희생에 의한 것이므로 신불에 감사드림과
동시에 만물에 감사하는 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감사는커녕 모든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겨 낭비를 일삼고 있다.
기도는 자기 보호의 일방적 요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은총을 입었으면 감사의 표시가 있어야 한다. 은혜에
보답하는 행위는 우리의 마음을 조화 있게 하고 이웃 사랑을 눈뜨게 한다. 보은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하
며 그 보답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올바른 공양의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불교도 기독교도 원래는 하나인데 여러 가지 종파로 갈라져 반목과 투쟁의 씨앗을 뿌리고 있다. 투쟁과 파괴
의 가르침은 불교에도 없고 기독교에도 없다. 만일 투쟁과 파괴의 길을 정당화해서 지도하고 있는 종교자가
있다면 그것은 아류이며 오만한 아집이 빚어낸 사생아일 뿐이다.
신리는 시대에 따라 모습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신리는 낡은 것도 새 것도 없다. 태양이 동쪽에서 떠서 서
쪽으로 지는 것처럼 불변의 법칙이다. 그것을 모르고 인간이 함부로 아전인수격의 사상을 날조하고 있는 것
은 신에 대한 불손이요 모독이다. 불교도 많이 철학화 되었다.
어떤 신자는 어려운 철학적 용어를 구사하면서 자만에 빠져 용어를 모르는 신자들에게 뽐내며 고압적인 행동
을 서슴지 않고 있다. 이런 사람의 마음은 자비를 팽개친 아수라계 지옥으로 통하고 있다. 부조화의 행동을
강요하고 신불의 이름 아래 인간의 마음을 혼란하게 하는 지도자의 마음에는 평안이 없고 지옥계로 떨어질
것이 분명하다.
그 죄를 반성하지 않는 한 천상계로 갈 수 없고 지옥에서 준엄한 반성의 생활을 강요당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신불은 교단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하물며 돈벌이에 이용되어서도 안 된다. 눈에 보이지 않
는 것을 기화로 신자들을 속여서도 안 된다. 벌을 받는다. 공덕이 없다는 등으로 위협받고 있는 신도들은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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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3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2)(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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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하다. 자기 보호의 욕심이 강한 광신도는 그런 말을 믿는다. 하지만 그들은 스스로 만든 부조화의 상념에
의해서 더욱 불안하고 어지러워진다.
부모는 자식의 행복을 위해서 정성을 다한다. 신불이 어찌 장님이나 다를 바 없는 인류에게 벌을 내릴 것인
가. 벌은 자기 자신의 부조화한 생활에 의해서 자기 자신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귀여운 자식을 어찌 부모가
불행하게 할 것인가. 부모도 신불도 자비와 사랑의 본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부모의 말을 따르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여 스스로 가시밭 인생을 걷고 있는 것이 인간의 일반적인 모습이
다. 하지만 그 가운데 여러 가지 의문이 생기고 그 의문이 해결될 때 신리는 가까워진다. 마음의 문이 열려,
사는 기쁨, 인생의 의의를 깨닫게 되는 것이야말로 정도인 것이다.
만생 만물의 대자연 세계야말로 바로 살아 있는 경이로움이다. 이것을 모르고 벌을 겁내어 자기 발목에 족쇄
를 채우는 신앙은 자승자박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순진한 신자들에게 마음의 자유를 빼앗는 종교 지도자
는 위선자다. 신자들에게 '공양한 사람은 그 공양의 몇 십 배의 공덕을 받게 된다'는 거짓말로 욕심에 부채질
을 하여 막대한 재물을 긁어모은다. 경제적인 곤경에 빠진 부부, 부부가 이혼하고 가정이 파괴된 사람, 사업
에서 도산한 사람, 투쟁에 지쳐 요절한 사람 등 이러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것이 선결 문제가 아니겠는가.
마음에 족쇄가 채워진 불쌍한 신자들의 희생으로 모은 재물을 그들은 산중에 신전을 세우는 데 쓰고 있다.
이 지구가 바로 신불의 몸인 신전이나 불전이라는 것을 그들은 알 리 없다.
성스러운 대신전에 가난한 호주머니를 털어 모은 금전으로 건물을 짓고 인간을 구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면 이것은 이미 인간의 마음이 아니다. 살아 있는 인간을 구제하는 것이 최고의 선임을 알아야 한다. 인간의
마음을 혼란하게 한 종교 지도자들에게는 특히 가혹한 현상이 일어난다.
우선 육체적으로는 두통이 심하며 마음의 평안도 없어질 뿐더러 자신의 자유의사도 없어지면 간부들에게 떠
받쳐져 로봇이 되고 만다. 이윽고 몸이 저리고 마비가 오며 그래도 자기 보호의 욕심만은 살아 '신불을 신앙
하고 있는데 왜 이렇게 몸이 아프냐?'고
자문자답하게 된다. 그리고 '몸이 이상해지는 것은 신자들의 업을 대신 받고 있기 때문이다'고 자위하기도 한
다.
또 어떤 종교 지도자는 경제력을 앞세워 신자들을 깔고 앉아 뻔뻔스러운 짓을 하고 있다. 신의 이름 아래 광
신자, 맹신자의 마음을 조종하여 죄를 짓고 있다. 자신의 육체적 부조화도 만성화되었으며 마음의 평안을 잃
고 사리사욕에 빠져 조직의 내부는 권력 투쟁의 불씨를 안고 있다. 이렇게 마음을 상실한 종교가 난립한 사회
를 말법시대라 한다.
'신불을 모독하고 있는 지도자에겐 마음의 평안을 줄 수 없는 것이 실재계의 규율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신의 뜻을 인간의 힘으로는 바꿀 수 없다. 우리 영적 능력자들은 엉터리 지도자들의 마음과 행동을 금방 알
수 있으며 우리를 불신하는 자에게는 즉석에서 영적 현상을 보여 줄 수도 있다.
잘못된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의 마음을 속이지 않는 생활을 실천함으로써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잃게 한 아편을 자력으로 팽개치고 정도에 들어서는 것이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유일한 길임을 깨달아야 한다.
전쟁도 또한 부조화한 상념 행위다. 전쟁의 승리를 기원한다는 말을 하는데, 승부를 다툴 때, 스포츠를 제외
하고는 그런 기도는 인간으로서 취할 행위가 아니다. 전쟁이란 살인과 파괴행위다. 그런 일에 승리를 기원해
서 되겠는가, 신불은 언제나 중립이기 때문에 인간의 싸움에 대해서 공평한 판단을 내리는 것처럼 한 쪽으로
편들지 않는 것이 정법의 사랑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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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3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2)(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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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는 아이의 싸움을 원하지 않는다. 하물며 신이 전쟁 따위를 원할 리 없다. 전쟁은 절대로 인간이 취해야
할 행위가 아니다. 전쟁은 인간이 이 세상을 타고 가는 배, 말하자면 육체의 배를 파괴할 뿐만 아니라 남에게
도 비참한 참상을 안겨 죄 없는 인간의 마음을 불안에 떨게 한다.
전쟁은 인간 최대의 죄악이요 범죄다. 전쟁을 즐기는 지도자, 그는 살아 있는 지옥의 아수라이며 그 대가는
육체가 없어져도 지옥계에서 극심한 고통을 감당하게 될 것이다. 독일의 나치 히틀러나 소련의 공산주의 독
재 정치가 스탈린은 지금 무간 지옥에 떨어져 있다. 국가 권력의 명령에 의해서 전쟁에 휩쓸리는 일이 있더라
고 전쟁은 부정해야 한다. 국법과 싸울 수 없는 것이 우리 국민이지만 항상 올바른 자신의 마음에 물어 정도
에 따른 행동을 실천해야 한다.
성전(聖戰)이란 말도 있다. 그런 따위의 전쟁은 존재하지 않는다. 전쟁에 무슨 성스러움이 있어서 성전이라
고 말하는가. 그것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전쟁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쌍방이 모두 5대 5의 범죄를 저지르
고 있다. 인간은 신불의 자녀로서 만물의 영장임을 자각하고 전쟁 따위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투쟁은 투
쟁을 낳는 악순환을 거듭할 뿐이다. 조화에의 용기는 인내와 노력으로 언젠가는 평화의 사회를 완성하게 된
다. 어떤 환경에 처해도 제가끔의 노력으로 자신의 마음을 열어가야 한다. 그러면 그 기쁨은 형용할 수 없이
크다.
반성이란 지난날의 생각과 행위를 되돌아보고 신의 뜻에 맞는가 안 맞는가를 마음속에서 묻고 대답하고 그
잘못의 원인을 바로잡고 보다 훌륭하게 영혼을 정화해 가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자기 자신을 중립에 두고 제
3자의 입장에서 자신을 여러 각도에서 살펴 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자기 보호나 욕망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그 첫째 목적이며 혹 자만심에 빠져 있지 않나를 살펴보는 것
도 반성의 한 방법이다. 이렇게 하면 상대방은 어떻게 생각할까, 자기가 상대방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했을
까, 상대방을 동정한 나머지 혹 자비로운 마수가 되지 않았을까 등 반성에 대해서 언급하려면 끝이 없다. 반
성의 재료는 무한히 많다. 자신의 마음에 거짓은 없는가, 나쁜 사고방식, 나쁜 행동에 대해서는 두 번 다시 되
풀이하지 않도록 결심해야 하며 자신에겐 엄격하고 남에겐 관대한 마음으로 생활해야 한다.
가령 만원 전철 속에서 일어난 한 젊은이에 대한 이야기를 예로 들어 보자. 한 시간이 넘도록 청년은 서 있
다. 입추의 여지도 없는 혼잡 속에서 짐은 양손에 든 채다. 바닥에 내려놓을 수도 없다. 청년은 다음 역에서
는 하차하는 손님들이 있으리라는 예측을 하고 출입문 가까운 좌석 앞에 서 있었다.
'어쩌면 앉을 수 있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는 스스로를 달래면서 참고 있었다. 그때 앞자리의 여자가 일어났다.
'다음 역에서 내립니다. 여기 앉으세요.'
그래서 청년은 앉으면서 살았다 싶었다. 다음 역은 큰 역이었으므로 많은 승객들이 내렸다. 그러나 좌석은 여
전히 만원이다. 그런데 그 역에서 지팡이를 짚고 한 노인이 승차하여 그 청년 앞에 섰다.
'한 시간 동안이나 무거운 짐을 들고 겨우 잡은 좌석인데 양보하기 싫구나.'
청년은 그렇게 생각했다. 전철이 달리자 흔들려 노인은 공교롭게 청년의 무릎 위에 넘어졌다. 노인은 '미안합
니다.'라고 힘없이 사과했다. 그러자 청년의 건너편에 앉아 있던 중년의 신사가 '할아버지 여기 앉으세요'하
고 노인의 등을 두드리면서 자리를 양보했다. 노인은 넘어질 듯 그 자리에 가 앉았다. 이빨이 빠졌는지 입을
오물오물하면서 기쁜 얼굴로 인사말을 되풀이했다. 청년은 노인과 신사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가 없
었다. 가방에서 잡지를 꺼내 얼굴을 가리듯이 하고 읽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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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3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2)(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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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지까지는 두 시간이아 더 가야 하기 때문에 좌석은 양보할 수가 없다.'
청년은 혼자 변명한다. 잡지의 글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눈은 활자를 건성으로 더듬고 있을 따름이었
다.
청년은 뒷맛이 개운치 않은 생각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청년은 사소한 일이었지만 마음의 상처를 준 전철 내에서의 사건을 반성했다. 자기에게 좌석을 양보해 준 부
인에 대해 나는 왜 감사하지 않았을까, 짐을 들도 괴로운 얼굴로 서 있는 나를 본 그 부인은 하차하기 10분
전에 자리를 양보해 주지 않았던가.
청년은 반성을 하고 그 부인에게 새삼스럽게 진심으로 감사했다. 이어 노인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때 나는 이
미 짐을 선반 위에 올려놓고 홀가분한 몸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제 겨우 앉았다. 갈 길이 멀다며 자기만을 생
각하고 결국 좌석을 양보하지 않았다. 그때의 초라한 자신의 몰골을 생각해 보고 청년은 자기 혐오감에 빠졌
다.
그때 다리가 불편한 노인에게 좌석을 양보했더라면 지금 이렇게 마음이 아프지는 않을 것이다. 앞좌석에 앉
은 신사가 청년의 무릎에 넘어진 노인을 보다 못해 자리를 양보했다. 이 광경을 보고 자신이 그렇게 부끄러
울 수가 없었으며 좌석을 양보하지 못한 것이 더욱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그 신사가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던가, 나는 그때 읽지도 않을 잡지를 꺼내 얼굴을 가렸
던가, 이것은 한 마디로 자신의 이기주의와 자기 보호의 엄폐술에 불과했던 것이다. 남에게 좋은 점을 보이
고 싶은 마음은 비록 선의로 한 행동일지라도 거기에는 답례와 감사를 탐내는 심리가 깔려 있다.
청년은 왜 좀 더 순진한 마음으로 자리를 양보할 수 없었던가, 행여 꾸밈의 선행처럼 보이기가 싫어서 양보
를 주저했던 것은 아니었던가, 라고도 반성했다. 또 자신의 편안만을 구한 마음의 상태에 대해서도 반성했
다. 그때 신사가 보여 준 행동을 앞으로 인생의 교훈으로 삼아야겠다고 청년은 명심했다.
그 후 청년은 모든 일에 자신을 중도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으며 마음은 항상 평안하고 거짓이 없는
인생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고 나에게 털어놓았다. 인간은 누구나 잘못을 저지르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 청년
처럼 잘못을 잘못으로 내버려두지 않고 자신의 본심을 단단히 가다듬어 욕심을 버리는 방향으로 나간다면 누
구든지 반드시 신리에 도달할 수 있다.
올바른 길을 걷겠다는 수행이 자신을 향상시킨다. 흔히 세간에 '나는 자기비판을 했다' 등의 기사가 신문 지
상에 실리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신리에 맞는 자기비판은 자기 자신의 마음의 반성이어야 할 것이다. 그런
데 그것을 어떻게 겉으로 나타낼 수 있단 말인가.
또한 그것이 특정한 사상 통일을 위한 자기비판이라면 더더욱 무의미한 것이 아닐 수 없다. 마음은 자유자재
인데 그것을 사상적인 틀 속에 거두어버린다면 인위적인 조직을 위한 자기비판밖에 되지 않으며 진심의 반성
이라고는 볼 수 없는 노릇이다.
조직을 위한 자기비판은 인간성을 잃고 인간 로봇이 되기 위한 반성밖에 되지 않는다. 모순을 안고 있는 사상
을 통일하기 위한 세뇌용 자기비판은 지정한 조직의 압력에 의한 지식만의 반성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근
본이 잘못된 자기비판은 조직의 세포로서 한정된 사고일 뿐이며 인간 본래의 생명의 자유성을 완전히 상실하
고 있다.
정신적 폭력, 조직의 폭력이 항상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비판이나 자아 반성이라는 것은 거의가 다 조직
속의 자기 보존이며 진심에서 벗어난 지적 이론으로서의 형식적인 반성에 지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조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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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3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2)(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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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해서 조작된 자아비판은 언젠가 내부에서 불만이 폭발하여 그 조직을 무너지게 되어 있다.
조직의 지도자들은 자신의 마음 그 자체를 잘 살펴야 한다. 그러면 자신을 구제하는 길이 보일 것이다. 폭력
으로 지배하는 것은 어는 날엔가는 폭력에 의해서 멸망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움직일 수 없는 순환의 법칙이
다. 인간은 일시적인 표면상의 인생을 즐길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선상에서의 인생을 즐기지 않으면 안 된
다. 반성은 어디까지나 행복에의 전제이다.
올바른 반성 속에서 신불의 빛을 부여받게 된다. 반성은 올바른 이성의 힘을 길러 주지도 한다. 이성은 마음
의 유일한 브레이크이다. 이와 같이 반성은 신불이 내려 준 자비의 빛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법]
불경에 고집멸도(苦集滅道)라는 말이 있다. 고(苦)는 인생의 온갖 괴로움을 말하고, 집(集)은 그 괴로움의
원인을 말하며, 멸(滅)은 그 원인을 없앤다는 뜻이고, 도(道)는 그 없애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다.
그 방법은 여덟 가지 바른 길을 실천하는 것이다. 태양의 열과 빛은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면서 지상에 방출되
고 있다. 물과 공기도 일정한 양을 유지하면서 줄지도 불어나지도 않는다. 지구의 운동도 일정한 리듬을 유지
하면서 자전 공전을 계속하고 있다.
자연의 세계는 어느 것 하나 조화를 흩트리지 않고 항상 균형을 유지하면서 안정되어 있다. 자연계는 그처럼
모자람과 넘침도 없는 중도(中道)의 가장 안정된 축을 중심으로 삼고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고 있다. 따라서
중도의 정신은 만물을 살리는 조화의 마음이며, 조화는 자비와 사랑의 그 근본을 이룬다.
여기서 마음의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은 마음의 평화와 자비와 사랑을 갖추어야 한다는 뜻이
다. 우리 마음이 자비와 사랑으로 가득 찰 때 비로소 우리는 자연의 중도인 리듬과 합치될 수 있으며 평화의
낙원 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인간은 선택과 창조의 자유를 부여받고 태어났기 때문에 아무래도 중
도에서 벗어나 제멋대로 기울어지는 경향이 있어서 오늘날 인류 사회는 온갖 이데올로기와 사상이 난무하여
투쟁과 파괴가 그칠 날이 없다.
따라서 여덟 가지 바른 길은 인간의 갖추어야 할 가장 으뜸가는 기준이고 대자연의 마음과 합쳐지기 위한 규
범이며 천국에 이르는 기교라고 할 수 있다. 좌에도 우에도 기울어지지 않는 중도의 길, 즉 신성(神性) 불성
(佛性)의 길, 정각(正覺)의 길이다. 반성의 척도가 되는 이 팔정도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그 하나하나의 목적
을 이해하고 그에 따른 노력과 용기와 지혜가 필요하다.
사물을 바르게 보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 개인의 입장을 버리고 제3자의 입장에서 사물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보통 남의 문제에 대해서는 비교적 정확하게 판단을 내린다. 그러나 자신의 문제, 더욱이 이해관계가
얽힌 문제가 되면 시비의 판단이 흐려져 이따금 후회스러운 결과를 빚기도 한다.
이것은 자신의 문제가 되면 어느새 자기 보호의 마음이 작용하여 사욕에 사로잡히기 때문이다. 올바른 관찰,
올바른 판단은 자신을 버리고 이를테면 제3자의 입장, 즉 객관적인 입장에서 사물을 냉정하게 보는 데에서
나올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견해는 마음이 내면까지 파고들어가서 지금까지 옳다고 여겼던 일이 전혀 반대
인 경우라는 것을 알게 된다.
어떤 일을 겉모양만 보고 판단을 내리면 낭패를 당하는 수가 많다. 눈으로 보이는 현상의 뒤에 숨은 원인을
찾아내고 그 원인을 제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원인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반성을 해야 하며 객관적인 입
장의 반성을 통해서 그 원인을 찾아내고 그 원인을 없애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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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르게 보는 힘은 올바른 견해를 낳는다. 그렇게 되면 인간 사회의 어지러운 움직임에 일일이 마음이 흔들
릴리도 없으며 언제나 마음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 이 지상에서 일어난 일은 반드시 원인이 있고, 그 결과
로 나타나는 것인 만큼 바르게 보는 실력이 갖추어짐에 따라 현상의 뒤에 숨은 원인을 찾기가 쉬워진다. 바
른 마음의 눈을 길러 향상되고 정확해지며 마침내는 신의 마음에까지 닿게 되는 것이다. 바르게 보자는 것은
사물의 정확한 판단과 견해를 얻는데 있다.
모든 원인은 마음에 있으며 물리적 현상은 마음이 어떻게 결정지었느냐에 따라 나타나는 결과라는 것을 먼
저 이해해야 한다. 전부터 갖고 있던 관념을 백지화하고 사물의 진실을 파악해야 한다. 모든 잘못은 사심에
서 생기는 것이므로 사심을 버리고 항상 선의의 제3자의 입장에서 사물을 본다.
보고 듣고 말하는 행위 이전에 중도를 중심으로 한 올바른 생각이 있어야 한다. 자기중심의 생각은 자신을 망
친다. 왜냐하면 모든 현상은 서로 상호 작용을 통하여 순환의 법칙에 따르고 있으므로 자기 보호의 상념은 결
국 자기 자신에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제 꾀에 제가 넘어간다' '남의 눈에 눈물을 흘리게 하면 내 눈에는 피눈물이 난다' 등의 속담 그대로이다. 생
각한다는 것은 바로 창조 행위이기 때문에 자신의 운명을 좋게 하려면 우선 생각을 늘 올바르게 가지지 않으
면 안 된다.
생각은 행동의 전제이지만 실은 행동 그 자체나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마음으로 간음한 것은 행동
으로 간음한 것 이상으로 죄악시하는 것이 신의 뜻이다. 바르게 생각하는 것도 바르게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제3자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
상대방의 입장은 어떤가, 이 문제를 그렇게 결정하면 그에게 어떤 피해가 올 것인가.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
상대방의 행복을 비는 조화를 목적으로 한 생각이 중요하다. 정도(正道)의 목적은 '마음의 평화'이며 마음이
늘 어둡고 불안하면 아무 일도 안 된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인내와 인욕(忍辱)을 구별해서 생활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참고 견디는 인내는 고통, 슬픔, 노여움, 미움 등의 감정을 뱃속에 집어넣는 것을 의미한다. 나 혼자만 참으
면 집안이 평온할 것이니 참는다는 그 인내는 독이 되고 질병과불행의 원인이 된다. 인욕 역시 견디고 참는다
는 뜻이지만 고통, 슬픔, 노여움, 미움 등을 티끌만큼도 뱃속에 삼키지 않는 행위를 말한다.
말을 해도 통하지 않을 때에는 상대방의 평안과 조화를 신불에게 빌어 주는, 넓고 큰마음을 가져야 한다.
이렇게 인욕을 일상생활에 익힘으로써 참고 독을 삼키는 일이 없어야 한다. 바른 생각을 기르는 데에도 역시
반성이 필요하다. 하루의 일과를 통해서 내 생각은 옳았던가를 살펴보고 잘못이 있었으며 고쳐야 한다. 이런
가운데 중도의 생각을 마음속에 확립할 수가 있다. 생"B하는 것은 만물의 시초이다. 모든 현상은 생각으로부
터 시작되므로 남을 살리는 사라의 생각이 바른 생각의 바탕이다.
말은 살아 있는 영혼의 파장으로 상대방에게 전달되는 직접적인 매개 방식이다. 또 한 번 입 밖에 나온 말은
상대방의 귀를 통해서 조화든 부조화든 어느 한 가지 현상을 불러일으킨다. 지나치게 알랑거리는 말과 불손
한 말은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한다. 자기의 뜻을 올바르게 전달하기 위해서 말은 적어도 안 되며 많아도 좋
지 않다. 상대편의 마음이 되어 대화해야 한다.
흔히 거리에서 운전기사들이 서로 고함지르며 다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가령 상대방이 고함을 질러도 이쪽
에서는 반항하지 말아야 한다. 내가 백번 옳다고 판단해도 반발해서는 안 된다. 반발은 자기 보호의 표현이
자 자기중심의 생각이다. 이럴 때일수록 올바르게 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툼은 마음의 조화를 깨는 원인을 만들기 때문이다. 상대가 화를 내도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서는 안 된다.
선악을 잘 판단하고 그 위에 마음을 조화시켜야 한다. 화낸 마음의 파장은 결국 화를 낸 사람에게 되돌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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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것이 순환의 법칙이다.
'말한다'는 것은 나와 상대의 뜻이 서로 교류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드러운 말에서 받는 느낌과 거친
말에서 받는 느낌은 크게 다르다. 느낌이 좋은 부드러운 대화 가운데서 조화가 이루어진다.
아무리 심한 비방이나 험담이나 노여움에도 마음이 흔들려서는 안 되며 한 쪽 귀로 듣고 한 쪽 귀로 흘려버려
야 한다. 그러나 왜 그런 말을 듣게 되었는가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일 그런 억울한 말을 들을 만한 원
인이 없을 때에는 '불쌍한 사람이다'고, 말한 사람을 동정해 주어야 한다.
'신불이여, 부디 저분의 마음에 평안을 주소서'
그렇게 상대방을 위한 기도를 해 주어야 한다. 이런 마음이 바로 보살심(菩薩心)의 표현이며 바른 말의 핵심
이다. 생각하는 것은 말이 된다. 사랑의 생각은 사랑의 말이 된다. 바른 말이란 사랑의 말이다. 마음에 사랑
이 있으면 말 이전의 말이 상대에게 전달된다.
지상의 모든 생물들은 일을 하도록 되어 있다. 동물도 식물도 그리고 광물까지도 다른 생명체를 위해서 자신
이 몸을 제공하고 있다. 사람도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예외가 아니다. 어린 아기는 젖을 빨고 자는 것이 일이
다. 그래서 언젠가는 어른이 되며 다음 세대를 짊어지고 큰일을 하게 된다.
학생은 학교에서 공부하고 사회인은 직장에서 일한다. 주부는 가정에서 아이들을 지키며 남편의 일이 잘 되
도록 편안한 보금자리를 꾸민다. 일한다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의무이다. 동시에 직업을 가지고 일한다는 것
은 남이 필요로 하는 것을 제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직업이 없는 사람, 일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란 있을 수 없다. 오늘날의 사회생활은 저마다 분업에 종사하면
서 자기의 생계를 이어가는 동시에 남을 돕고 있다. 따라서 일한다는 것은 남에게 도움을 주는 것인 만큼 사
랑의 행위가 된다. 일을 하고 직업을 가진다는 것이 사랑의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이렇게 혼란해지는
것은 일을 단순히 돈벌이의 수단으로 생각하여 나만 좋으면 그뿐이라는 사고방식이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바른 일은 이 지상의 조화에 이바지하는 행위이며 그 기초는 사랑과 봉사의 마음이다. 오늘날의 기업은 노사
의 대립이 심각하여 투쟁과 반목이 그칠 날이 없다. 경제의 합리화는 분배를 정확히 공평하게 나누는 것이며
공정한 분배는 인간 존중의 대화에서 풀어야 한다. 인간은 경제의 노예가 아니다. 저마다 맡은 바, 직업을 통
해서 영혼을 닦아야 하는 생명임을 명심해야 한다.
현대에는 노사 분규가 그치지 않고 있다. 직장을 투쟁의 장소라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은 자기의 목을 자신이
죄는 결과를 초래한다. 싸움과 파괴의 마음은 그대로 지옥으로 통하고 있다. 항상 노사의 마음을 조화시켜 사
업의 실체를 보다 향상시키려는 노력에 대해서는 신불의 빛이 쏟아져 공생 공존할 수 있게 되며 하나의 작은
유토피아를 이룰 수 있다.
노사 쌍방이 마음의 조화를 이루어 서로 단결이 되고 자기 보호나 자아의 사욕을 찾아 볼 수 없는 사업체는
신의 뜻에 따른 사업체다. 마음이 서로 조화를 이룬 직장은 신불의 빛에 의해 보호 받는다. 다른 데에서는 찾
아 볼 수 없는 훌륭한 기술을 개발한 사업체는 물론 망하지 않으며 영원히 존속한다.
기술이 없어도 영업 활동이 부지런하고, 바른 업종에 전념하며 훌륭한 고객을 확보하고 있는 사업체는 넘어
지지 않는다. 연구 노력의 결과, 항상 인류 사회에 공헌하는 신제품의 개발로 획득한 전매특허의 활용도 망
할 수는 없다.
대자연의 법칙에 따른 올바른 길은 지(知), 정(情), 의(意)와 함께 인류 사회를 행복으로 인도하고 보다 높은
차원으로 영혼을 닦으며 조화의 환경을 구축해 간다. 이것이 일의 본질이다. 기술이나 노동력 이전에 무엇보
다도 마음이 중요하다. 평안과 조화와 즑움을 주는 작품은 보다 높은 차원의 예술을 낳는다. 이러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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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생활도 몰락하지 않는다. 자만심을 고립을 자초한다. 마음을 상실한 예술은 자아 그 자체로 떨어진다. 또
한 마음을 상실한 지식과 의지만의 과학은 투쟁과 파괴의 원인을 만든다.
마음을 상실한 지도자는 한동안은 번영할지 모르지만 머지않아 그 지도력을 잃고 저지른 죄를 스스로 보상하
지 않으면 안 된다. 투쟁과 폭력으로 구축한 모든 것의 결과는 투쟁과 폭력에 의해서 또다시 전복된다. 마음
을 심지 삼아 근면과 노력으로 이룩한 사회는 조화와 평화의 환경이 되어 보다 높은 문명을 열어 가며 우리들
이 영혼은 보다 높은 차원으로 진화해 간다.
이와 같이 일은 그대로 인생의 수행이며, 그 일터는 그대로 영혼의 수행장이다. 우리들은 모두 개체의 생명이
며 그 개체를 개발 노력함으로써 보자 조화 있는 사회를 구축할 수가 있다. 세상의 모든 만물들은 서로 상호
의존하고 있으며 유독 인간만이 특별한 존재라고 인식하는 것은 잘못이다. 신불의 분신인 만생 만물을 정법
으로 활용함으로써 비로소 정업을 이룰 수 있다. 고용주가 스스로 만족할 줄 알고 이익은 종업원에게 돌려주
며 진실한 대화로써 보다 높은 업적을 올리고 남은 이익의 일부는 사회 복지에 환원해야 한다.
그런 일로 경영자는 보살 같은 마음을 갈고 닦아진다. 이러한 일들은 인간 각자가 신불의 자녀로서의 자각을
가짐으로써 비로소 실현되는 것이다. 결코 물질이나 경제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 자기 자신의 진실을 발
휘하는 생활이야말로 신리에 맞는 생활이라고 할 수 있다.
정업[正業]의 목적은 다음의 세 가지다. 영혼의 수행자로서 지상의 일들을 조화하며 감사하는 마음과 봉사
정신을 갖는다.
사람이 육체는 이 지상에서 인생이라는 항로를 건너는 배에 불과하다는 말은 위에서 여러 번 강조되었다. 우
리의 영혼은 바로 육체라는 배를 타고 간다. 그 배의 선장은 의식 즉 영혼이다.
우리의 영혼은 신의 분신이며 그 분신은 신의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다. 따라서 사람은 신의 품안에서 살고 죽
는 생명체이다. 이 지상을 왕래는 긴 윤회의 과정에서 지은 업보[가르마]는 하나도 남김없이 우리들의 잠재
의식 속에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인생의 첫째 목적은 신의 자녀로서 올바른 상념을 조화시키는 일이다. 업이라든가 상념이라는 것은
우리들 마음속에 있는 자기 본능, 사욕의 모습이며 그것은 전생에서부터 계속되어온 악의 개념이다.
이 업보는 행위로 나타나게 되며 자신을 반성함으로써 발견할 수 있는 성격상의 결정이다. 사람은 눈, 귀,
코, 입, 몸, 그리고 의지라는 육근(六根)에 의해서 미혹당한다는 말을 했다.
과거 세상의 나쁜 업의 씨도 이 육근의 유혹에서 생겨났다. 마음은 육체를 지배하고 있는 의식의 중심이며,
자기에게는 절대로 거짓말을 할 수 없다는 말도 있다. 그런데 인간은 자기 형편에 따라 남을 속인다. 그런 자
기 보호에 의해 더 큰 업을 짓고 만다. 우리는 육안으로 볼 수 있는 현상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올바르
게 마음이 눈으로 보는 훈련을 통해서 정확한 판단을 내려야 하고 중도라는 조화의 마음으로 결론을 얻어야
한다.
가령 다른 사람들로부터 어떤 비난을 받았다면 스스로 그 원인과 결과를 분석. 판단해 보는 마음의 자세가 필
요하다. 육체의 오관만으로 함부로 속단해서는 안 된다. 육체적인 조건만으로써는 올바른 생활을 할 수 없
다.
신리에 맞는 개개인의 마음이 사회 집단을 구성하고 그 가운데서 상호 협조의 조호가 이루어진다. 올바른 생
활, 즉 정명(正命)을 통해서 조소, 원망, 질투, 비난, 노여움 등의 악한 생각은 꼬리를 감추게 된다.
대자연의 무한한 자비에 대한 보은의 행위가 평화스러운 안심입명의 빛을 인간 사회에 형상화시켜 나가는 것
이다. 신불은 인류의 지상 생활에 필요한 만물을 이미 우리에게 부여해 주었으므로 기도하는 것보다 감사와
은혜에 보답하는 삶이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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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를 갚는 일은, 실천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한 신리에 맞는 수행이라고 할 수 없다. 즉 수행이라는 것은
1초1초의 연속적인 올바른 일상생활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절에 가서 기도하는 것은 신앙이 아
니다.
기도의 마음을 지속적으로 가지는 것이 진짜 신심이며 신불의 마음을 나의 마음으로 삼고 생활하는 가운데
비로소 '마음'의 위대함과 존엄성을 깨닫게 된다. 그래야만 마음의 문이 열린다. 과학자는 과학을 통해서, 예
술가는 예술을 통해서, 문필가는 문학을 통해서, 스포츠 선수는 스포츠를 통해서 각자 신리에 맞는 생활의 조
화를 이루는 것이 바르게 사는 길임을 명심해야 한다.
학문화된 철학 종교에는 실천이 따르지 않는다. 신리를 깨닫지 못한 참선이라든가 번뇌를 멸하기 위한 육체
고행 등은 무의미한 것이며, 신리를 깨달아 실천하는 생활이야말로 진짜 바르게 사는 것이다.
신리는 자신의 생활환경 가운데 존재하는 것이며,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진실한 신앙이다. 생활과 직
결되지 않는 신앙은 모두 종교로서의 존재 가치가 없다. 모든 불행의 원인은 나 자신에게 있다. 생활의 부조
화가 그 원인이며 책임은 남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원인을 추구해서 제거해 나가는 반성의 생활 가운데
영혼의 진보가 있는 법이다.
일상생활이 조화를 이룰 때 신불의 빛의 보호를 받게 된다. 그리고 거기에는 불행이 얼굴을 내밀 수 없다. 행
복은 올바른 생활의 지속적인 실천 가운데 쌓여 가는 것이다. 정신적 육체적 조화를 꾀해야 한다. 그러기 위
해서 자신의 장단점을 잘 살펴서 가르마가 된 여러 가지 자기 보호의 상념을 바로잡아야 한다.
넷,
전생의 그림자를 지울 수 없다.
나는 죽은 사람이 살았을 때의 모습과 그 음성과 그 사람의 특징까지
모두 밝혀낼 수 있으며 죽은 영혼과의 대화를 생생하게 들려 줄 수 있다.
이것은 죽은 자가 살았을 때의 모습을 영혼 그대로
지니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이다.
[사랑은 지상의 가장 밝은 빛이다]
우리는 기껏 길어야 80년, 90년을 살 뿐이다. 영혼이 육체와 결합해 버리면 표면 의식이 10%, 잠재의식이
90%라는 비율로 작용하기 때문에 거의 눈앞이 일밖에 알지 못한다.
따라서 자기 자신이 깨달을 수 있는 수행 장소는 이세상이 가장 훌륭한 환경이 아닐 수 없다. 이 현상계에서
는 남의 마음을 모르기 때문에 서로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 한 치 앞도 못 보기 때문에 스스로 고뇌의 원인을
만들어 나쁜 짓도 당당하게 하게 된다.
"인생은 암흑이다."
우리는 자주 그런 말을 한다. 인간의 마음을 존중하고 사욕에 사로잡힌 생각을 바로잡아 자신의 언동을 제3
자의 입장에서 살피면서 생활하는 것이 이른바 정도이다. 그런 생활을 통해서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 숨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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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무한대의 지혜가 솟아나 인간으로 살고 있는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된다.
실재계 즉 저 세상에서는 지상에 살고 있는 우리의 생활 상태나 마음의 움직임을 마치 유리 상자 속을 들여다
보듯이 환하게 안다. 아무리 거짓말을 해도 금방 알 수 있다. 자신의 생활이 이처럼 유리 상자 속 같다는 것
을 안다면 인간은 함부로 불행의 원인이 되는 언동은 취하지 못할 것이다.
자기 마음속에 비밀로 하고 있는 부조리한 생활을 청산하고 진실로 자신의 마음에 충실한 올바른 생활에 정
진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사람은 단독으로는 태어날 수도 없고 또 살아갈 수도 없다. 반드시 부모가 있으며
형제, 자매, 부부, 이웃, 친구, 선후배 등의 대인관계 속에서 살아야 한다.
그리고 그런 인간관계를 통해서 자신의 마음이 닦아지며 서로 존중하는 마음이 길러지나. 오늘날처럼 물질
만능주의 시대가 되면 아버지와 아들의 사이도 남이며, 부부 사이를 향락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나오
게 된다.
친구는 이익을 위한 한 수단에 지나지 않으며, 자기 이외에는 모두 남이 되는 것이다. 실로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부부의 관계는 서로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여 가정이라는 천국을 창조하고 자손을 키우는 것이며, 부
모 자식의 관계는 과거 세상의 인연과 약속에 의해서 맺어진 사이인 까닭에 부모는 자식을 돌보고 자식은 부
모에게 마땅히 효도해야 한다.
형제는 영혼의 향상을 위해서 서로 부지런히 학문이나 도를 닦는 사이이며 친구나 선후배는 사회생활을 하
는 데 좋은 협력자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인간관계의 조화에 일관하는 기둥은 사랑의 마음이다.
사랑이야말로 조화롭고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이며 이 지상의 밝은 빛이다. 또 인간은 공동생활이 오래 유지
될 수 있도록 동물, 식물, 광물 등의 자연과 자원을 바르게 정비하고 활용해야 한다. 따라서 이러한 자원을 순
환의 법칙에 맞게 소중하게 가꾸어야 한다. 산림 보호, 수렵 금지, 자연 보호 등의 중요성이 여기에 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인간관계를 비롯하여 자연 자원과의 관계가 항상 복수(複數)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 복수라는 사회 환경, 자연 환경 속에서 상대를 이롭게 하고 상부상조해 나가는 것이 바로 올바르게 도에
정진하는 길이 되는 것이다.
오늘날의 종교는 대부분은 그저 모여서 기도하고 명상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경문이나 성경은
예배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경문 속에 담긴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
특히 불교에서는 철학화된 어려운 경문을 읽는 것이 공식적인 행사처럼 되어 있다. 그것은 큰 잘못이다. 그
속에 담긴 의미를 파악하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왜 모르고 있는 것일까.
경문이 고맙다는 생각이 들면 실천에 힘써야 하지 않는가. 죽은 자를 위해서 불경을 드리면 극락으로 보내는
공덕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왜냐하면 죽은 사람은 그 경문의 의미조차 모른다. 그게 어떻게 공
덕이 된단 말인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상식적인 관념만으로는 아무 소용이 없다. 당신은 당신이 모르는 말로 상대방이 말
을 건네 오면 그것을 이해하고 대화할 수 있겠는가. 상대방이 모르는 말을 하면 나는 대답을 할 수가 없다.
이미 나는 앞에서 사람은 이 세상에 살던 자기 모습 그대로 저승으로 간다고 말했다. 나는 죽으면 내 생각과
말과 행위를 고스란히 그대로 가지고 저승으로 간다. 그런데 내가 죽은 후에 누가 나를 위해서 불공을 드리
면 부처가 된다고 말하는 스님이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그 스님이 과연 저승의 실상이 무엇이지 알고나 하
는 말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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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의 관성의 법칙을 보자. 물론 이 세상뿐만 아니라 저 세상에도 관성의 법칙은 있다. 나는 그것을 아고
있기 때문에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이다. 즉 현재의 의식을 그대로 지닌 채 차원이 다른 저승으로 윤회의 순환
을 하고 있는 영혼은 자신이 그 사실을 깨닫게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에는 그런 것을 알 턱이 없다고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사실을 즉석에서 현상화시켜 보여 줄 수 있다. 이것은 결코 거짓이 아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왜 거짓말을 하
겠는가. 나는 죽은 사람이 살았을 때의 모습과 그 음성과 그 사람의 특징까지 모두 드러낼 수가 있으며 죽은
혼과의 대화를 생생하게 들려 줄 수 있다. 이것은 죽은 자가 살았을 때의 모습을 영혼 그대로 지니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이다.
인간으로서 올바른 생활을 해서 자기 자신의 본성을 깨닫고 있는 영혼 이외에는 모두 지옥에 떨어진다. 나는
그 사실을 두 눈으로 확실히 볼 수 있고, 또 그들과 대화도 나눌 수 있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신불에 대한 기도도 자기 욕심을 드러내는 기도가 아니라 감사의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일 때 보다 확실한 신
불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우리가 마음속에 생각하는 것은 그대로 현상화되고 만다. 가령 자신이 어떤
욕망을 이루려는 마음을 갖는 순간, 그 마음은 이미 욕망의 포로가 된 채 자신의 의식, 즉 상념의 지대에 기록
되고 만다. 그 기록은 다시 지을 수 없다.
우리들의 걸어온 과거를 지울 수가 없듯이 우리들의 상념은 하나도 남김없이 기록되고 보존된다는 사실을 명
심해야 한다. 하지만 부조화한 기록들도 반성을 통해서 수정되고 진화할 수 있는 것이므로 반성이 없는 인간
은 불쌍하다.
반성은 신불이 인류에게 준 자비 그 자체다. 또 교회나 사찰에 나가서 기도하고 참배하는 것은 자유지만 신
은 그 사람의 행복과 불행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다. 자신의 행복과 불행은 마음이 바른가 그른가에 따라
스스로 결정되는 것이다.
바른 생각에 의해 그 행위가 신의 뜻에 따르고 있다면 우리는 지켜 주는 영혼들은 반드시 신의 빛을 보내 준
다. 또한 이 지구 그 자체도 신의 몸체의 일부분인 대신전이기 때문에 바른 생각은 반드시 통한다. 오늘날의
사찰이나 교회 중에는 영혼이 높게 통하는 곳도 있으며 이 지상의 여러 착한 신들과 늘 연락이 되고 있어서
하나의 생각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곳도 있지만 그런 지역은 극히 드물다.
따라서 사찰이나 교회는 어디든지 영혼이 통하고 기도가 통하고 있다고 믿는 것은 위험한 일이며 오히려 불
행을 불러들이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올바른 생각을 지니고 있는 사람은 반드시 신의 보호를 받
으며, 나쁜 영혼에 지배당하는 일은 없다. 흔히 신불이다 해서 조화하는 것은 사실은 저승의 천사들은 말한
다. 그리고 천사들도 마음의 조화도에 따라서 여러 단계의 차이가 있다. 한편 천사들 이외에도 조화를 이루
지 못한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들의 상상력은 무한대다. 하지만 그것도 올바른 조화를 위한 상상이어야 바른 생각이라고 할 수 있다. 잘
못된 생각에 의해 자신의 본성을 잃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 증거로 부자연스러운 신흥 종교나 사악한 일에
전념하고 있는 사람에게 과연 마음의 평안이 있을까, 마음에 족쇄를 채우고 늘 불안한 나날을 보내며 불행에
빠진 자가 적지 않다.
인간은 살아 있는 동안은 신이 될 수 없다. 신불의 마음과 조화하는 길은 자기 자신의 올바른 상념과 행위 이
외에는 없다. 신이 내 마음 속에 있다는 것을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염(念)이란 에너지이며 사물을 만들어 내고 이 지상의 모든 것의 원인이 된다. 염은 목적의식이므로 행위를
의미하며 남을 살리는 자비와 사랑의 염 이외의 것은 가르마[업보]가 된다. 그릇된 생각과 비교해서 생각하
면 정념의 뜻이 더 명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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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3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2)(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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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수면 중에 에너지를 공급 받는다]
나는, '내게 생명은 준 신의 자녀'라는 자각이 들 때 우리들의 일상생활 그 자체가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내가 신의 자녀라는 것과 신의 자녀가 아니라는 생각의 차이는 엄청나게 크다.
우리가 사는 이세상은 영혼의 수행 장소라는 말을 나는 여러 번 강조했다. 우리들이 돌아가야 할 저 세상은
따로 있다. 인간은 번뇌라는 바다 가운데에서만 깨달을 수 있다. 반성과 명상을 통해서 자신의 영혼의 범위
를 정화시키고 마음의 신성과 불성이 잠재의식의 문을 열 때 불멸의 세계인 저 세상도 깨닫게 된다.
영혼은 저승이든 이승이든 어디나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다. 사람은 왜 밤에 잠을 자는가. 사람은 모두 몸을
눕히고 잠든다. 우리가 잠든 사이에 영혼은 육체에 연결된 영자선(靈子線)을 타고 영혼이 후에 가게 될 곳이
나 이승의 낯익은 장소 또는 자신이 태어났던 전생의 장소에 가 보는 경우가 있다.
더구나 수면 중에 저승에서 에너지를 보급 받는 가장 중요한 일이 이루어지고 있다. 모든 사람이 잠을 자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우리들은 잠을 잔다는 것을, 마치 늘 그래왔으니까 그런 것처럼 습관적으로 가볍
게 여기지만 잠을 자는 이유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사람이 잠을 잔다는 것은 영혼이 타고 있는 육체라는 배를 휴식시키는 일이며 동시에 의식, 마음의 세탁을 하
는 시간이다. 때로는 꿈속에서 천사들에게 강제로 연마되는 경우도 있다. 술도 마시지 않았는데 숙취 현상이
일어난다든가 몸살감기 기운이 있다든가 하는 육체적 현상은 그 때문에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심장이 박동이 심해져서 기분이 나빠질 경우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수호천사들은 우리가 잠든 사이
에 열 시간 정도 피곤해진 몸을 말끔히 닦아놓는다. 몸이 아픈 사람이 잠을 자고 난 후에 상쾌하게 느끼는 이
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러나 잠자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질병의 증상은 의사의 진단도 소용없다. 만일 그런 고통 받는 사람이 있다
면 잘 반성해서 하루 빨리 정법에 따른 궤도 수정을 해야 한다.
그 밖에도 불안, 초조, 신경질이 잘 나는 사람은 나쁜 저급의 영혼에 의해 지배당하는 경우가 많다. 신의 보호
를 받지 못하면 그런 증상이 나타난다. 만성 두통병에 시달리는 사람이 있는데 이것은 지나친 간섭주의자에
게 많다. 무엇이든지 전부 머릿속에 집어넣기 때문이다.
우리의 두뇌는 60조가 넘는 육체 세포의 총사령부이며 통제 부분이다. 기억 담당실은 대뇌피질의 신경 섬유
가 흐르는 모든 전기적인 파동 입자에 의해서 성립된다. 거기서 발신된 진동 에너지가 의식에 전달되어 상념
대에 기록된다.
'모든 것은 뇌 속에 기록되어 있다.'
이 말은 틀린 생각이다. 만일 우리의 뇌가 일체의 기록 장치를 가지고 사고 에너지를 발신하는 장소라고 한다
면 수면 중에는 일체의 사고 활동이 중단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뇌파의 진동은 일어나고 있다. 그것
은 의식의 접촉을 시도하기 위한 현상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영자선이 끊어져 의식이 돌아오지 않을 때에는
뇌파의 진동을 멈추게 되며 육체와 영혼[광자체]은 분리되어 저 세상으로 돌아간다. 즉 죽음을 의미한다.
오관을 통해서 수용된 뇌에 전달되어 다시 뇌파의 발신 진동에 의해서 마음에 보고되는 것인데 수면 중에 뇌
파 진동수가 다른 것은 오관이 휴식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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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3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2)(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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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은 육체 세포가 기억해 낼 수 없다. 왜냐하면 기억 장치는 뇌 속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은 한 나라에
만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육체 환경과 조건이 다른 여러 나라를 스스로 희망하여 삶을 전전하며 윤회하고 있
다. 따라서 육체적 조상이 자신의 유일한 뿌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생명이 부모의 것이라고 한다면 어째서 부모 자식 간의 부조화가 있단 말인가. 왜 성격이 다르고 사고방식이
다를 수 있겠는가. 이 의문에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 멘델의 유전의 법칙은 육체 유전에 한정된다는 것을 알
아야 한다. 인간의 뇌세포 수는 약 2백억 개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기억의 한 모퉁이에 지나지 않는
다. 만일 기억 뇌세포를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영혼의 세계와 교신하는 것을 언제든지 보여 주겠다.
영적인 길이 열린 사람은 모든 차원이 다른 세계와의 교신이 가능하다. 신리를 실천하는 생활을 하면서 정
(定:참선 명상)에 들면 우리의 의식체는 우주대로 확대되어 신불의 의식과 조화를 이루어 법열을 맛볼 수 있
게 된다.
어떤 사람은 상념의 정지에 의해서 깨달음을 열었다고 하는데 이것은 말도 안 된다. 만물 일체의 현상은 단 1
초의 시간도 정지되지 않는다. 상념이 정지되는 순간 동물령에 지배되어 '나는 신이다' '부처다' 등으로 뽐내
는 신흥 교주가 있는데 그런 교주는 한결같이 병약하거나 물욕 덩어리이다.
신흥 교주들은 병이 난 원인을 업보를 대신 짊어진 탓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있는데 사실은 검은 상념에 의해
서 악령에 빙의된 것이다. 더러는 입산수도했다고 자칭하는 자가 훌륭한 도사처럼 행세하고 있지만 이들 역
시 진짜일 수 없다. 폭포행이나 육체 고행을 통해서 번뇌를 멸각시킬 수는 없다.
육체 수행의 고통으로 말미암아 의식과 육체가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그 순간에 주로 짐승들의 영혼에 빙의
되고, 그 둔갑술에 현옥되어 천상의 소리를 들었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진짜가 아니다. 그런 일은 선도(仙道)
나 요가 등의 수행자에게 많다. 그런 사람들은 자아가 강하고 자비심도 없으며 마음도 조화를 이루지 못하여
평안이 없으며 깨달음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신통술이 있다고 뽐내는 사람들은 거의가 짐승의 영혼에 지배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행위는 정정(正
定)이라고 할 수 없다. 정법에 귀의하여 깨달음을 이룬 사람들은 모두 겸허하다. 뽐내는 마음이 없다. 일체
의 현상에 사로잡히지 않고 올바르게 팔정도를 실천하여 현재, 과거, 미래의 삼세를 꿰뚫어보는 능력을 지녔
다. 인간은 산중에 들어가서 수행하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다. 올바르게 일에 전념하여 인간다운 삶을 누
리기 위해서 육체를 얻어 이 세상에 나온 것이다. 인도의 고다마 붓다도 6년 동안의 고행으로는 깨달을 수 없
었다. 이스라엘의 예수도 어릴 때 산중에 들어갔지만 육체적 고행은 거의 하지 않았다.
신리를 깨닫지 못한 채 참선을 한들 그것은 형식에 지나지 않는다. 신리를 깨달은 실천 생활 가운데 육체적
인 수행은 운동으로서 좋은 일이다. 형식과 이론에 사로잡힌 사람은 깨달음의 경지에는 한 발자국도 들어가
지 못한 사람들이다. 정정(正定)은 신리의 깨달음과 올바른 상념과 행위 속에서 성취되는 것이다.
학문 불교, 의식 불교, 관광 불고, 장례 불교 등은 아예 깨달음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다. 인도에서 고다마가
설법한 당시의 불교에 의해서 비로소 깨달음의 길이 열린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한편 기독교도 예수 생존시
의 원점으로 돌아가야 한다. 왜냐하면 당시의 신리로 돌아가는 것이 현대인들에게 진짜 마음의 존엄성을 깨
닫게 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기 자신의 깨달음을 여심(如心)이라고 말한다. 팔정도는 나 자신의 깨달음이며 인간은 최소한도
의 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태어난다. 정법은 어느 한 나라에만 통용되는 것이 아니고 전 인류 전 우주의 신리
임을 알아야 한다. 불교도 기독교도 고다마의 시대, 예수의 시대로 돌아가는 것이 선결 문제이다. 신리는 시
대에 구속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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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3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2)(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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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문명은 생활의 지혜이며 보다 높은 차원의 마음을 지니는 것이 만물의 영장다운 행위다.
반성에 의해 마음이 안정되면 부동심이 길러지는데 그 부동심을 일상생활에 활용하지 않으면 정정의 의미는
반감된다. 정정은 실재계와의 가장 가까운 교류장이다. 정정에도 여러 단계가 있지만 중요한 것은 마음의 조
화, 안정, 지혜의 용출 등이 그 목적이다.
팔정도(八正道)를 실행하는 방법은 다섯 가지다.
늘 냉정할 것, 항상 선의의 제3자의 입장에서 바라볼 것.
늘 친절할 것, 사랑의 마음으로 생각하고 염원하며 말하고 자기중심의 입장에서 떠날 것.
늘 감사하고 은혜에 보답할 것, 사람끼리 협력으로 개인도 사회도 성립된다는 점을 명심하여 봉사와 협조의
마음을 잊지 말 것.
늘 성격상의 단점을 수정할 것, 장점을 기르고 단점을 수정하여 서로 손을 잡고 살아갈 것.
늘 반성할 것, 영혼의 향상은 정법이라는 올바른 순환에 있으므로 중도의 척도로써 하루의 언동, 마음의 움직
임을 반성하여 상념의 전화와 수정에 노력할 것.
반성 후의 명상은 마음과 육체의 파장이 신에 접근하여 밝고 상쾌한 기분이 든다. 이 기분으로 하루 생활을
보낼 것.
[나는 저 세상에서 계획되었다]
모래 속에 자석을 집어넣으면 철분만 붙어 나온다. 모래 속에 섞여 있던 철분이 자석에 붙어 고스란히 함께
만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바로 그와 똑같은 법칙에 의해 이 지상에 태어나기 전에 전생에서 끼리끼리 만나
고 싶다는 약속에 따라 여러 나라에서 각자 태어나 살고 있는 것이다.
내가 지금 이 세상에서 함께 살고 있는 부모 형제자매나 혹은 친구 스승 선후배 이웃들은 그런 인연을 저 세
상에서 선택한 결과로 만나게 된 소중한 인연들이라는 것을 이미 말했다. 그러나 전생에서는 그런 약속을 하
고 태어났지만 우리는 영혼이 육체를 만나는 순간 그 약속을 까맣게 잊게 된다.
독자들은 그 말을 믿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이제 사람이 자기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인연을 선택했다
는 사실을 증명해 보이겠다. 우리의 잠재의식의 문을 열어 보면 이런 사실들이 잘 나타난다. 옛 인도 시절에
는 고다마를 중심으로 한 그룹이 태어났다. 이스라엘에서는 당시 예수를 중심으로 뭉친 동료들이 탄생했다.
지금 우리의 동료 그룹들도 모두 차원이 다른 저 세상에서의 약속에 의해서 동아리를 지어 태어났다.
바로 그 말이다.
인도에서 붓다를 중심으로 한 그룹들이 태어났고, 이스라엘에서는 예수를 중심으로 한 그룹들이 태어난 것
은 그들이 태어나기 전에 이 세상에서 인연을 지어 만나서 그들의 진리를 전하려는 사명감을 갖고 태어났다
는 뜻이다. 같은 그룹이지만 붓다의 동지 가운데 아난처럼 중국 북경에서 태어난 자와, 마하 몽가라나처럼 미
국에 태어난 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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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3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2)(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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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분신들은 필리핀에서 태어나 거기서 많은 사람들을 구제하고 있다. 얼마 전에 작고한 토니
라는 심령 의학 수술자도 예수의 분신 중 하나이다. 토니의 영혼 배경은 그라리오이며 이따금 예수가 직접 토
니를 지도하기도 했다.
이처럼 신리를 사람들에게 전할 경우, 모세는 이집트에서, 예수는 이스라엘에서, 고다마 붓다는 인도를 무대
로 삼고 신리를 펼쳐나갔다. 그때마다 신리는 핵처럼 분열을 일으켜 이웃 나라로 분산 파급되어 갔다.
이 세상에서 일어난 모든 현상은 모두 저 세상에서 계획된 것이다. 신의 뜻을 거스른 인간의 지식과 의지가
만들어 낸 부조리는 투쟁과 파괴의 업보를 만들어 버렸다. 그러나 인간의 그릇된 상념 행위에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그 한계를 넘어서면 신은 천재지변을 통해 인류에게 반성의 기회를 준다.
지구의 전 시대 아틀란티스 대륙, 로마 제국의 붕괴도 신의 뜻에 따라 멸망한 것이다. 우리의 마음이 조화되
면 몸에서 나오는 후광, 즉 오로라가 금빛에 휩싸인다는 말은 이미 했다. 가정이 조화를 이르면 그 집에 오로
라가 나타나고 인류 전체의 마음이 조화를 이루면 지구 전체가 금색의 오로라로 휩싸인다.
그런 만큼 우리 인류에게는 이 지구를 평화스러운 유토피아로 만들 목적과 사명이 부여되어 있음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마음이 깨질 때는 반대로 검은 오로라에 휩싸이며, 그곳에 천재지변이 일어난다.
지금 내 주변에 신리를 깨닫고 사는 사람들 중에서 불과 1년 만에 80명 이상의 영적 능력자가 그 힘을 익혀,
정법의 증명자로 그 사명을 다하고 있다. 이 사도들은 흔히 말하는 교회나 사찰 등 전당과는 전혀 상관이 없
다. 경문 같은 것도 매체로 삼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영적 현상을 보여 줄 수 있다.
그들의 마음이 조화되어 있으므로 영적인 가르침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영원히 망하지 않는 천당, 그것
은 사도들의 마음속에 있다. 또한 지구 자체가 신의 몸체이며 신전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저 세상의
천사들과도 즉석에서 늘 통신이 가능하다. 1930년경에는 구식 라디오가 있었다. 그때 라디오는 광석으로
전파를 받았다. 리시버와 수신기로 전파를 잡을 때는 바이아블 콘덴서가 잘 듣지 않았다. 1954경의 병사구
(竝四球)의 라디오는 검파관을 비롯하여 증폭관, 정류관의 직경이30mm정도, 길이가 1백mm정도의 크기
로, 전원 스위치를 넣어서 진공관이 따뜻해지고 전자가 작동할 때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더구나 발신 전파를 수신하는 데에도 혼신이 일어나 방송 채널을 선택하기가 매우 불편했다. 또 가까운 거리
의 전파 외에는 잡을 수도 없었다. 단파 방송이나 올 웨이브 라디오는 수신기도 터무니없이 커서 역시 수신
이 가능할 때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병사구 라디오보다는 올 웨이브 라디오가 원거리의 발신국의 선택도가 보다 우수했던 것은 당연하
다. 그처럼 라디오 하나도 성능이 좋은 것은 지구 반대쪽의 전파까지 포착할 수 있을 정도로 우수하다. 1955
년경에는 진공관의 크기가 사람의 엄지손가락만한 것으로 개량되어 TV에 쓰이게 되었다.
이 진공관은 미니어처관이라 하며 정밀도가 매우 우수해졌다. 과학은 더욱 진보하여 게르마늄이나 실리콘
을 응용한 다이오드가 발명되었다. 그 크기는 담배 필터의 4분의 1정도로 텔레비젼이나 라디오의 소형화가
가능해졌으며, 전련도 종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격감되었다.
더구나 전원 스위치를 넣기만 하면 즉시 수신이 가능해졌다. 직접회로(IC)는 1mm 입방체 속에 진공관 8개
분의 능력을 수용하며 성능, 수명 모두 진공관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 텔레비젼이나 라디오와 비슷한 전
파 수신 기능이 우리들 모두의 의식 속에는 존재하고 있다. 인간의 영적 능력도 이 진공관과 회로의 차이처
럼 마음속에 있는 상념의 올바른 조화도에 따라 그 정밀도가 크게 달라진다.
그런데 이 직접회로도 인간의 대뇌 세포에 비하면 엄청난 초보 기술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 다이오드의 크기
도 더욱 작아져서 장차 트렌지스터도 유기질의 세포를 응용한 것을 진보할 것이다. 물론 그 정밀도도 더욱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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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화되어 갈 것이다.
선배들로부터 이어받은 기술도 지속적인 개발로 말미암아 차례차례 새로운 신천지를 발견해 나갈 수 있듯이
우리들의 의식도 보다 조화된 고차원의 세계로 승화시켜 나가면 한 단계 더 고차원의 배우 영혼이 우리들의
지혜를 증가시켜 준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지금 세상에서 전개되는 물질문명은 우리 생활의 지혜로 비롯된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을 잃어서는 안 되며
또한 물질의 노예가 되어서도 안 된다. 아무리 컴퓨터가 발달하더라도 거기에 얽매여서는 인간 로봇에 불과
하다. 컴퓨터는 인간을 위해서 있는 것이지 컴퓨터를 위해 인간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최후의 판단은 인
간 자신의 의지 이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것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물질문명, 통신, 교통의 진보에 따라 머지않아 인류는 모두 한 형제라는 것을 알게 되며 동시에 세계는 하나
라는 것도 깨닫게 된다. 또한 우리들은 태어나면서 성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비성자인 것도 아니
다. 우리들은 신리에 따른 마음을 지니고 생활하느냐 안 하느냐에 따라서 성자도 되고 비성자도 된다.
나 자신도 신리를 깨닫기까지는 여러 파행적인 삶을 살아 왔다. 그 원인은 육체적, 물질적 현상에 미혹되었
기 때문이었다. 그 후 나는 인간의 영혼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알았다. 사람은 영혼 즉
의식을 통해 생각과 행위 등 일체의 경험을 기억해서 저 세상으로 가져갈 수 있는 것이지 인간의 만든 지위,
명예, 재산은 저세상에 가져갈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지 않는가.
[전 동경대학 야나이하라의 전생은 베드로였다]
지금 내 주위에는 영적 현상이 일어나 자기의 전생의 윤회 사실을 알고 있는 동료들이 많다. 현세에서 배운
적도 없는 히브리어나 코사리어를 기억해 내어 어제의 일처럼 말하는 사람도 있다. 또 인도의 고전 무용과 당
시의 노래를 부르면서 춤추는 사람도 있다. 한 번도 배운 적도 없는 고전 무용을 전문가들도 놀랄 정도의 정
확한 손놀림, 발 놀림으로써 보여 주고 있다.
불교의 반야심경에 관자재보살행심반야바라밀다(觀自在菩薩行心般若波羅蜜多)라는 구절이 있다. 이 말
은 '관자재보살(아포로키티슈바라)이 신리를 실천하여 잠재 의식 층에 쌓여 있는 전생의 지혜를 열어 본
다'는 뜻이다.
바로 이것이다.
관자재의 능력은 신리의 실천으로 얻어진다. 우리는 흔히 '행자(行者)'라는 말을 쓰는데 행자란 산중에서 고
행과 수행을 쌓고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듯싶다. 이것은 큰 잘못이다.
인간은 누구나 다 인생을 수행하는 행자이다. 육체적인 고행에 의해서는 자비와 사랑의 진리를 깨달을 수 없
다. 불멸의 생명 즉 자신의 마음을 으뜸으로 삼고 육체를 단련하는 것이 정말 가치 있는 일이다.
신리에 입문한 지 불과 1년 남짓해서 80여 명의 동지들이 중국어, 히브리어, 코사리어, 마가다어 등 그 밖의
여러 나라 말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들이 기억해 낸 전생을 우리는 부정할 수는 없다. 생명의 불멸, 전생 윤회
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인간은 이 세상만의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앞으로 더 많은 동지
들이 이와 같은 현상을 여러 나라에서 보여 주게 될 것이다. 물론 독자들 가운데에도 신리를 깨달음 생활을
통해서 영적인 길이 트이면 죽은 사람들과도 대화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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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여기서 사후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보겠다. 성경
과 불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실례로 적어본다.
이 경우의 성령은 내가 이야기하고 있는 빛의 천사들을 가리키기도 하며 우리들의 영혼을 움직이는 수호천사
이기도 하며 그 중에는 우리들 생명의 본체나 분신들이기도 하다. 신약성서 사도행전 제2장에 이와 같은 현
상이 기록되어 있다.
<마침내 오순절이 되어 신자들이 모두 한 곳에 모여 있었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세찬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
가 들려오더니 그들이 앉아 있던 온 집 안을 가득 채웠다. 혀 같은 것들이 나타나 불길처럼 갈라지며 각 사람
위에 내렸다. 그러자 그들의 마음은 성령으로 가득 차서 성령이 시키는 대로 여러 가지 외국어도 말을 하기
시작했다.(이것은 지금 내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과 꼭 같다) 그때 예루살렘에서는 여러 나라에서 온,
신앙심이 두터운 유태인들이 살고 있었는데 이 이상스러운 소리를 듣고 많이 몰려들었다. 그리고 사도들이
자기네들 고향의 말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보고 어리둥절했다. 그들은 놀라고 또 한편 신기하게 여기면서
입을 열었다.
"지금 말하고 있는 저 사람들은 모두 갈릴리 사람들이 아닌가! 그런데 우리들이 태어난 고향의 말을 저들의
입을 토해서 들을 수 있다니, 이것은 어찌 된 일인가? 우리들 가운데에는 바르티아 사람, 메대 사람, 엘람 사
람이 있는가 하면 메소포타미아, 유태, 갑다도기아, 본도, 아시아에서 온 사람도 있고 프리기아, 밤필리아, 이
집트, 그리고 리비아의 키fp네 지방과 가까운 곳에서 온 사람도 있다. 그리고 로마에서 여행 온 사람, 유태인
들과 유태교로 개종한 자들, 그런데 사람과 아라비아 사람들도 있는데 저 사도들이 우리들 고향의 말로 하느
님의 큰 역사를 들려주고 있지 않은가!"
모두가 놀라고 어안이 벙벙하여
"도대체 어찌 된 영문인가?"
하고 웅성거렸다. 그러자 그 중에는
"저 사람들이 술에 취했군!"
하고 빈정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때 베드로가 열한 사람의 사도들과 함께 일어나서 큰 소리로 말했다.
"유태 동포들, 그리고 예루살렘에 사는 시민 여러분! 내가 하는 말을 제발 귀담아 들어 주시오.
지금 시간이 아침 아홉시인데 어떻게 이분들이 술에 취할 수 잇겠습니까? 이분들은 술에 취한 것이 아닙니
다.
이것은 예언자 요엘이 예언한 대로 일어난 일입니다. 즉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마지막 날에 나는 모든 사람에게 나의 성령을 부어 주리라.
그러면 너희 아들 딸들은 예언을 하고, 젊은이들은 영혼의 모습을 보게 되며, 노인들을 꿈을 보게 되리라. 그
때에는 나의 남종 여종에게도 나의 성령을 부어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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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3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2)(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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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그들은 예언을 하리라. 위로는 하늘에서 기적을 보일 것이며, 아래로는 땅에서 현증을 보일 것이다.
즉 피와 불과 짙은 연기를 보여 줄 것이다.
주의 크고 영광스러운 날이 오기 전에 태양은 어둠으로 달은 피처럼 붉게 변하리라. 그때 주의 이름을 부르
고 찾는 자는 모두 구원을 받으리라.' 이스라엘 동포들이여! 내 말을 들으시오.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나사
렛 예수는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이를 증명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놀라운 일과 기적과 표정을 그를 통해서 보여 주었습
니다.
그런데 예수가 여러분의 손에 넘어간 것은 하느님께서 미리 정하신 뜻과 계획에 따른 것인데, 여러분은 그를
악인들의 손에 맡겨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이 예수를 되살려 죽음의 고통
에서 벗어나게 해 주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는 죽음 속에 갇혀 있을 분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예수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내 오른편에 계시니 나는 항상 주님을 가까이 뵈오며 내 마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내 마
음은 기쁨에 넘치고 내 혀는 즐겁게 노래하며 이 육신마저 희망 속에 살 것입니다. 당신은 내 영혼을 죽음의
세계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당신의 기록한 종을 썩지 않게 지켜 주실 것입니다. 당신은 나에게 생명의 길을
보여 주었으니 나는 언제나 당신을 모시고 기쁨에 넘칠 것입니다.'"
약 2000년 전에 이스라엘에서 이와 같은 영적 현상이 일어난 것은 사실이며 부정할 수 없다. 지금 내 주위에
서도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우리들은 신리를 설법하고 있다. 예수의 제자 베드로가 일본에 태어났
다는 것을 나는 빛의 천사로부터 통신으로 받고 있다.
베드로는 이스라엘 시대에는 문맹자였으므로 정법 포교에 몹시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서 베드로는 20세기
에 육체를 지니고 태어나 지금은 공부를 꽤 많이 하고 있다. 전 동경대학장 야나이하라 다다오(矢內原忠雄)
가 바로 전생의 베드로였다. 나는 그 말을 이스라엘 당시의 제자 후리데와 사휘로 부터 들어서 알고 있다.
또 바오로, 요한, 필립보도 지금은 일본에 태어나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저 세계의 영령들이 내게 통
신을 보내왔기 때문에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다. 미국, 브라질, 영국, 프랑스 등에도 당시의 제자들
이 지금 육체를 지니고 이 지상에서 수행하고 있다. 그 밖의 여러 나라에서 2500년 전 혹은 2000년 전의 고
다마의 제자와 예수의 제자들이 지금 이 지구상에 유토피아를 건설할 목적으로 태어나고 있다. 그런 천사는
독자들 가운데에도 있다.
윤회에 관해서는 불경에도 기록이 있다. 화엄경 십지품(華嚴經十地品) 가운데 '일상생활의 수행을 통해서
마음을 조화하여 신리를 깨달음으로써 윤회를 통한 자신의 과거를 알 수 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그와는 달리 학자와 승려들도 많은데 그분들은 문헌이나 서적 등의 물적 증거를 가져와서 내가 한 말들의 증
거를 보여 주고 있다. 나는 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거의 책 읽을 시간이 없지만 그들의 제시해 주는 문헌은
큰 참고가 되고 있다. 경문 가운데 한 구절에는 이런 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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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3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2)(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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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신의 의지를 깨닫고, 실천함으로써, 한 번의 생뿐만 아니라 두 번째 윤회한 삶과 세 번째는 물론 백 번
째의 생과 수천 번의 생과 영원의 전생을 기억하고, 백 가지 가르마[백업], 천 가지 가르마 아니, 수천 가르마
를 기억한다. 거기서 나는 어떤 이름으로 살았으며 몇 살까지 살았고, 거기서 어떤 고락을 겪었으며 또 나는
어디서 몸을 숨기고 태어났는지 그런 윤회를 겪었으며 모든 역사와 경험을 기억한다>
그렇게 씌어 있다. 이 사실은 기원전 5세기경 석가의 제자 가운데 일어난 일과 똑같다. 천안(天眼) 제일이라
든가, 통력(通力) 제일이라는 말도 불경 가운데 기록되어 있는 모양이다.
세상의 만물은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순환을 거듭하고 있다. 지구는 단 1초도 멈추지 않고 돈다. 우리들
도 신리에 따라 윤회를 거듭하며 지금 지상에 태어나 영혼의 수행을 겪고 있다.
의식의 세계, 즉 에너지를 지배하고 있는 신불의 세계인 저 세상도 의식의 조화도에 따라 단계가 있다는 말
은 이미 했다. 신의 몸체인 이 지상도 저 세상을 통해 순환을 되풀이 하고 있다는 말도 나는 했다. 저 세상이
란 지금 우리가 지니고 있는 육체를 벗은 전생을 말하며, 과거에도 현재처럼 육체를 지닌 적이 있었던 시대
를 전생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그것을 전생, 현세, 내세로 구분하고 있다. 전생에 이어 바로 그전에는 또 전생이 있고, 그 다음 현세
가 있으며 다시 내세가 있다. 우리 영혼은 육체라는 옷이 낡으면 다른 육신을 받아 끝없는 윤회의 삶을 이어
가고 있다.
우리는 저 세상과 이 세상을 윤회하면서 영원히 자신의 영혼을 연마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에게 생명
을 준 절대자의 뜻이다. 신의 궁극적인 목적은 마음의 조화를 이루고 나아가 지구의 영적 한계를 좀 더 깨끗
이 만드는 데 있다.
육체적인 삶과 죽음의 순환을 거듭하고 있는 우리의 생명에는 처음도 없고 끝도 없는 것이 실상이다. 우리의
의식은 그 조화도에 따라 그처럼 과거 세상의 경력들을 추억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결코 허구의 꿈 이야기
가 아니다.
다섯,
내 영혼의 주인이 있다.
70,80년의 인생 경험은 향불처럼 잠시 타오르는 시간이지만
우리들의 영혼은 몇억, 몇만 년
그칠 줄 모르는 윤회를 거친 모든 경험을 잠재 의식 속에 간직하고 있다.
현재 자기 자신의 마음 상태는 전생 경험의
축소형 내지 유사형일 뿐이다.
[육체는 임시로 깃든 영혼의 숙소이다]
만일 육체가 자기 것이라면 왜 우리는 죽을 때 몸을 가져가지 않고 이세상에 버린 채 썩게 만드는 것일까, 영
혼이 떠난 유기질인 시체는 썩어 없어진다. 사람은 육체를 이세상에 버리고 떠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육체를 가지고 떠난 사람을 보았는가?
그럼 육체란 무엇인가? 아버지 정자와 어머니 난자의 조화가 만들어진 한 개의 세포가 핵 분열을 거듭하면
서 육체를 이루어낸다. 그 육체는 이미 언급한 것처럼 어디까지나 현세상에 서 영혼이 깃들기 위한 임시 숙소
일 뿐이다. 이미 말한 것처럼 인생이라는 바다를 향하기 위해 필요한 일시적인 나룻배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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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의 토지, 건물, 보석, 지위, 명예 등도 육체와 마찬가지로 저 세상에는 가져갈 수가 없다. 어느 것 하
나 자기 것이 없다는 것은 죽은 사람을 보면 알 수가 있다. 살아 있을 때는 그토록 내 것이라고 챙기고 재산을
등기하고 이름을 써 붙이던 것들이었지만 죽을 때는 모두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는 자신이
죽지 않고도 다른 사람이 죽음을 지켜보면서 자신이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자기의 몸조차도 내 것이 아니라
는 것을 깨닫게 된다.
영혼을 빼면 이 지상의 모든 것들은 신의 자비와 사랑에 의해서 인류에게 임대해 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사
람은 땅이나 건물만 임대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육체조차도 80년, 90년 동안 임대해서 사는 것이다.
그것은 내 뜻이 아니라 신의 뜻이다.
"만족할 줄 알아라"
그 말씀의 근거는 거기 있다. 우리의 영혼은 돈 한 푼 내지 않고 육체를 임대받아 살았으며 온갖 음식의 맛을
누리고 옷을 입고 집에서 삶의 환희를 맛보았다. 그런데 조금만 불만이 있으며 사람은 신을 원망하고 저주한
다. 그 많은 것들을 공짜로 받아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자아는 그런 불평을 할 자격이 없다. 모든 것을 감사하
게 여겨야 한다. 그리고 만족해야 한다. 살아 숨쉬는 자체가 고마울 뿐이다. 성경에서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우리들의 물질과 경제는 영혼을 연마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은 노예가 아니다. 의식, 즉 영혼
은 자기의 희망에 따라 종족과 환경을 선택하여 이 지구상에 태어났다. 윤회는 같은 계보의 육체적 조상을 통
해서 거듭 태어나는 일은 거의 없다. 말하자면 내가 다시 태어나면 지금의 가문과 같은 계통에서 태어나지 않
는다는 뜻이다. 이 세상을 떠나 저 세상에 돌아간다는 것은 낡은 육체에서 새로운 육체로의 이동이므로 영혼
은 불멸이다. 육체와 일체처럼 보이는 후광은 저 세상에 돌아갈 때 타는 선박인 것이다.
[건드리지 않는 귀신은 설치지 않는다]
사람이 죽음에 공포를 느끼는 이유는 간단하다. 육체는 영혼이 타고 부리는 선박에 지나지 않는데 사람은 바
로 그 배에 미련과 집착을 갖기 때문이다. 사람은 그 배에서 떠나고 싶어하지 않는다. 생에 대한 집착 때문이
다.
이처럼 인간의 세상에 머무르고 싶은 삶에 대한 집념을 구분해 보면 땅에 붙어 있는 지박령(地縛靈)과 떠도
는 부유령(浮遊靈)이 있어서 이세상에서 인간에게 여러 갈등과 고통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박령은 주로
교통사고 현장, 불의의 죽음을 당한 장소, 자살 현장, 전쟁터, 제사 지내는 장소, 신리를 깨닫지 못하고 이 지
상에 미련을 강하게 남기는 장소에 붙박여 있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자기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자각하든 못
하든 살아 있는 인간과 마찬가지로 '내 땅이다' '내 물건이다'는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거기 머물러 있다.
"건드리지 않는 귀신은 설치지 않는다."
우리들은 택지를 조성할 때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하드라도 그 땅의 지박령에게 신리를 알려 주고 그것을 사
용하겠다는 취지와 양해를 사전에 얻을 필요가 있다. 그래서 그들이 살아야 할 적당한 장소, 이승과 저승의
다른 점, 신리 등을 가르쳐 줄 필요가 있게 되는 것이다.
철도 사고는 특히 건널목 같은 곳에서 자주 일어난다. 이것은 그 장소에 지박령으로 붙어 있는 망령이 비슷
한 환경, 비슷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에게 빙의해서 사고를 유발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들 지박
령은 육체는 없지만 자기가 죽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움직이고 있는 물체는 움직임을 계속하려고 하며, 정지해 있는 물체는 그 자리에 정지해 있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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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3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2)(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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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관성이 법칙이다. 이 법칙에 따라 지상에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의식이 깨어 있는 상황에서 세상을 떠
났기 때문에 영혼은 생과 사의 분간을 죽은 후에도 못 한다. 그 부분에 관한 문제를 좀 더 자세히 말해 보겠
다.
사람이 교통사고 같은 돌발 사고로 사망했을 경우, 한동안은 흡사 기억 상실증 같은 현상이 된다. 따라서 죽
음을 자각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며, 사고 당시의 상황을 기억해 내기까지는 대단한 시간과 단서가
필요하게 된다. 육체가 없는 자기 자신을 자각할 수 있게 되면 그 상황을 깨닫는 것도 빠르지만, 이세상과 달
리 저승에서는 표면 의식이 90%, 잠재의식이10%의 비유로 작용하기 때문에 과거의 기억 소생이 매우 어
렵다.
지옥에 떨어지면 같은 종류의 악령들에게 둘러싸여 한층 더 깨닫기가 어렵게 된다. 그때 원망을 품으면 그 상
념이 현상화되어 스스로를 괴롭히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는 비슷한 마음을 가진 망령들이 모여들게 되지만
지옥령을 지배할 수 있을 정도의 밝은 마음만 가지고 있으면 사고는 당하지 않는다.
지박령들은 제사 공양 같은 것을 바치도록 인간들을 꼬드겨 같은 장소에서 비슷한 사고를 되풀이하여 유발시
키는 경우가 많다. 어린아이인 경우에는 부모의 마음이 크게 반영되므로, 어린이(주로 10세 이하)가 사고를
당하는 것은 부모에게 책임이 있다. 때문에 부모는 자신들의 마음의 상태, 생활 방식을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린이의 자기 보호 본능은 어른의 욕심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순진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마가 끼었다'는 말을 한다. 마음의 바늘은 마치 전류계나 온도계, 혹은 자동차의 속도계처럼 선
과 악, 밝음과 어둠 사이를 왕래하면서 늘 움직이고 있다. 바늘이 악의 어두운 상념을 가리킬 때 우리에게 마
가 끼게 된다. 마음의 바늘이 항상 선의 밝은 세계를 가리키는 생활을 하도록 해야 한다.
'부자 삼대를 못 넘긴다'는 말이 있다. 육체의 조상은 인생 항로에 필요한 나룻배, 즉 육체를 물러 주신 분들
이다. 그런 조상을 신앙적으로 받들어 공양하는 것이 종교적 행사의 하나가 된다. 그런 관습적, 종교적 사고
방식이 자손에 대한 과잉보호를 초래하여 재산이나 지위를 유산으로 남기려고 야단이다.
조상의 공양, 자신의 욕망을 위한 자기 보존으로 인생을 허송하는 사람도 많다. 그 결과 죽은 뒤에도 신리를
깨닫지 못하고 있으므로 재산과 자손에 대한 미련을 떨쳐버릴 수가 없어서 천상계로 올라갈 수 없게 된다. 가
족들에게는 조화를 깨치는 원인이 되는 재산 쟁탈, 질병 등이 어처구니없는 유산을 물러 주게 된다. 재산이라
는 것은 자신의 소유도 아니며, 사회 인류의 소유물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재산에 대한
집념은 전통 있는 가문일수록 더 심하다.
지옥에 떨어진 조상들의 영향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에 자비와 사랑이 결여된 냉랭한 가정을 만들기 일쑤다.
따라서 조상의 공양이 종교적으로 형식화되어 버린 폐단을 묵과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것에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을까.
무엇보다도 먼저 살아 있는 사람이 정법 생활을 실천해야 한다. 죽은 망령들도 살아 있는 유족들의 마음을 보
고 자기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게 된다. 철학화된 어려운 경문을 듣고 이해할 수 있는 망령이라면 이 현상계
의 일은 걱정도 하지 않고 천상계에서 유유히 지내고 있을 것이다. 현상계에 미련을 가지고 걱정하는 따위의
망령은 의식이 정화되지 않은 저급한 영이다.
부모를 포함한 육체 조상들에 대한 공양은 감사와 보은이 실천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지박령의 대부
분은 아직도 육체를 지니고 살아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 병원이나 사찰 등에서도 영적 현상이 자주 일어
나는 것은 역시 금생에 집착을 가지고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한 망령들이 헤매고 있기 때문이다.
지박령의 한 예를 들어 보겠다. 1970년 7월 19일자 아사히 신문 도쿄판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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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3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2)(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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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요다구 오대마치[千田代區大手町] 1정목 1번지 1호의 땅은 천 년 동안 머리무덤에 살고 있는 원한이
어린 귀신 때문에 1등지인데도 손도 못 댄 채 건물을 세우지 못하고 방치되어 있다. 고양이 이마팍만한 공지
도 남아 있을 수 없는 의마루노오치[丸의內]의 괴담이다. 그 첫 번째 사건이 발생했다. 1926년 관동대지진
으로 재가 되어 버린 대장성이 머리 무덤 일대에 가청사를 세웠다.
얼마 후에 대장성 내부에서는 병자가 속출하여 일 년 동안에 대신[장관]을 위시해서 국장급까지 간부 14명
이 잇달아 죽어 버렸다. '이것은 무장 다이라노마사카도[平將門] 공의 묘를 소홀히 취급한 데 대한 재앙이라
고 해서 무덤 위에 청사를 헐고 1931년 4월에 성대한 진혼제를 올리고 대장성내의 불안을 제거했다.
두 번째 사건. 1940년 3월 20일 비가 오는 가운데, 같은 대장성 본청사 위에 별안간 벼락이 떨어져 화재 사
고가 일어났다. 다시 성 내에서는 '위령제를 소홀히 한 데 대한 벌'이라는 여론이 일어, 마사카도 공 사망 천
년이기도 해서 천년제(千年祭)를 거행, 대신이 손수 유적 보존비를 건립했다.
세 번째 사건. 1945년 말 경에 일본에 진주한 맥아더사령부에서 황폐한 머리무덤 주변을 모터 룰로 선정해
서 착공에 들어갔다. 그러자 정지 작업 중이던 불도저가 갑자기 전복되어, 운전기사와 작업 중이던 인부 두
사람이 그 밑에 깔려 한 사람은 즉사했고, 나머지 한 사람은 중상을 입었다. 오랜 세월에 걸친 전설을 알고 있
는 근처의 목재상 엔도 마사조[達藤政造] 씨가 사령부를 찾아가서 '저 무덤은 일본의 옛날 대추장 무덤이니
제발 건드리지 말아 주십시오' 라고 진정한 결과 일은 무사했다.
네 번째 사건. 1961년 모터 풀 철수 후에 머리무덤의 동쪽 땅이 일본장기신용은행과 미쓰이생명보험회사에
불화되어 빌딩 공사가 착공되었다. 그때 장기신용은행 건물은 무덤으로 가는 도로 부지를 깔고 앉았다.
1963년경 무덤 쪽으로 창문이 난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행원들이 차례차례로 발병하여 은행 당국에서는 '재
앙이란 정말 있는 것일까'하고 반신 반의 하면서도 무덤의 관리자와 간다명신[神田明神]의 신관(神官)을 불
러 성대한 굿을 올렸다.>
현재도 무덤 쪽으로 창문이 난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행원의 책상은 창문 쪽을 향하든가 옆으로 비껴 앉아 있
다. 이유는 '무덤 쪽으로 궁둥이를 보여서는 안 된다'는 배려 때문이라고 한다.
이 같은 일련의 사건들은 모두 같은 장소에서 발생한 것인데 재앙인가 우연인가, 화를 입은 당사자와 주위의
사람들은 '당연히 우연이겠지요'라고들 말하고 있지만 기분 나쁜 사건임에 틀림없다. 문제는 이러한 사건을
우연이라고 일소에 부치는 것이 과연 과학적인 태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원인이 없이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단 말인가. 원인과 결과는 상대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는 순환의
법칙이다. 누구도 바꿀 수 없는 절대적인 진리다. 나는 이 기사를 읽고 원인 불명의 현상이 같은 장소에서 몇
번이나 일어난다는 것은 집착이 강한 악령이 지박령이 되어 여러 사람에게 화를 입히고 있다는 것을 금방 알
았다.
지박령에 의해서 화를 입는 것은 당사자의 마음 상태에도 문제가 있다. 신리를 깨닫지 못하고 부조화한 마음
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유사한 저 세상과 상통하게 되므로 마음의 안정을 잃고 스스로의 어두운 상념에 덮
여 불행의 구렁으로 빠져들게 된다. 마음을 밝게 가지고 올바른 상념 행위의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신불
의 황금빛 오로라에 싸이게 되므로 지박령 따위의 덫에 걸려드는 일은 절대로 없다.
영의 선과 악도 역시 우리의 상념과 행위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마음은 일념삼천(一念三
千)의 세계다. 고뇌도 즐거움도 그 원인은 자신이 만들고 있다. 다이라노마사카도의 원한에 얽힌 영혼도 마
찬가지다. 천 년이나 지옥에 떨어져 있는 영이라면 신불의 자식이라고 할 수 없다.
신불의 자식이라면 반드시 자기반성을 통해서 마음의 평안을 되찾고 신불의 자식이라는 자각을 되찾게 되며
그 자비의 빛에 의해서 구제받도록 되어 있다. 인간은 지옥에 떨어져도 보통 2백 년, 3백 년 정도에서 하늘
로 올라가게 되어 있는데 1천 년, 2천 년이나 지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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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서 수업하고 있는 인간들에게 영혼의 형제들이 항상 협력을 하고 있듯이 지옥에 떨어진 영혼의 자
들을 위해서도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서 신불의 자녀들이라는 자각을 일깨우기 위한 협조를 아끼지 않고 있
다.
마루노우치의 경우에는 지옥의 마왕과 동물령들의 어두운 상념으로 뒤덮여 있는데 이런 것들은 영적인 길이
열러 있는 사람의 눈에는 금방 보인다. 살아 있는 인간에게 재앙과 화를 입히는 그런 악령들을 두렵다고 받들
어 모시고 재를 올리고 공양한다는 것은 큰 잘못이다.
사람들의 눈은 그 실상을 알아보기가 어렵다. 악령들은 인간을 조롱하고 어지럽히며 사회를 혼란으로 빠뜨
린다. 그들을 선으로 돌려 구제해 주는 길은 제사 지내는 것이 아니다.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올바른 마
음을 가지고 정법에 맞는 생활을 하며 평화스러운 환경을 만들어 나갈 때 이것을 보고 그들 악령들도 깨달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정법을 설명해 주고 우리들 자신이 정법 생활을 실천으로 보여 주는 것이 유일한 구제 방법이다. 믿는 마음이
란 경을 읽고 찬미가를 부르는 우상숭배가 아니다. 독경이나 찬송가는 마음을 조화시키고 영적인 힘을 높이
기 위한 한 가지 방법에 지나지 않으며 그 속에 담겨 있는 신리를 이해하고 실천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
한 일이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현상을 잘못 판단하여 신이다, 부처다 하여 예배 공양하면서 본
성을 읽고 광신자, 맹신자가 되고 만다.
그 결과 신앙생활이 길면 길수록 자신이 마음은 작은 틀 속에 갇혀 버린다. 또한 벌을 받는다는 협박에 짓눌
러 어느새 그 조직이 노예가 되기도 한다. 신불의 무한한 자비와 사랑의 빛을 부조화한 상념 행위로 차단해
버리고 불행한 인생으로 몰고 간다.
어두운 마음은 지박령이나 지옥령을 불러들여 사고, 질병, 가정불화 등을 유발하는 원인을 만들고 있다. 하지
만 다행하게도 모든 현상은 우리들의 마음이 지어내는 것인 만큼 그 마음의 개조에 의해서 얼마든지 구제하
고 구제받을 수 있다. 지박령과 상통하는 부조화한 상념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금전이나 물질에 대한 강한 욕심은 악령의 것이므로 그런 마음을 버리고 가난한 자, 노약자, 어린이들을 돌보
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보살심의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감사의 마음을 보은으로 실천한 보시는 반드시 자신의 마음에 빛으로 돌아온다. 모든 집착, 욕망에서 벗어날
때 영적인 길이 열리고 전생, 현세, 내세를 꿰뚫어볼 수 있는 영적 능력자가 될 수 있다. 어느 친구로부터 이
런 이야기를 들었다.
요츠야[四谷] 괴담의 영화 촬영이나 연극을 할 때는 요츠야의 아니리신사에 무사고를 비는 참배를 하지 않으
면 반드시 이상한 사건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사카도의 묘와 마찬가지로 여기에서도 공양제를 올리고 있다. 공양이란 사자에 대한 명복을 비는
것이며 정법을 설명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이 지상 세계에 집착을 가지고 있는 망령에게 평화스러운 하늘로
올라가도록 신리를 일깨워 주는 것이 최고의 공양이 된다.
이익을 탐내는 공양이 되어서는 안 된다. 기도의 대상물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영혼의 형
제들, 육체 조상, 부모, 생활의 터전을 제공해 주고 있는 만물, 환경들이다. 기도의 마음은 감사의 마음이어
야 한다. 그런 자신의 마음과 신불의 마음속에서 평안의 인생을 찾을 수 있다.
기도하는 것은 신불의 마음과 자신의 마음과의 대화이며 신불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다. 허위의 생활, 체력의
한계를 넘어선 생활을 하고 있으면 부조화한 악령에 빙의되어 원인 불명의 불행한 일을 당하게 된다. 그럴 때
는 반성으로 자신의 행위 속에서 그 원인을 찾아내야 한다. 부조화한 악의 상상이나 공포심은 버려야 한다.
왜냐하면 공포심은 상념이 만들어 내고 현상화하는 성질의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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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3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2)(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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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연극에서 원령의 역을 맡았다 해도 연기자의 마음이 조화되어 있으면 보호를 받아 악령에게 의식을 빼
앗기는 일은 없다. 우상의 대상물에게 그저 기도만 올리고 빈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짐승의 영혼도 신불
의 이름을 사칭해서 나타나는 경우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인간 이하의 동물령 앞에서 합장하고 빌고 있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함부로 아무 데서나 손을 모으고 기도하며 빌 일이 아니다.
인간이 만든 우상을 믿을 것이 아니라 영구 불멸의 자신의 영혼인 마음을 믿어야 한다. 자비의 본체인 마음속
의 신불이야말로 인간의 아버지요 어머니다. 또 알콜 중독자는 거의가 지옥령에 빙의되어 있다. 주정뱅이에
게 빙의하는 영은, 현상계에 육체를 지니고 있었을 때 술에 빠져 일생을 보낸 자들이며 그들은 죽은 뒤에도
술에 대한 미련과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살아 있는 비슷한 인간의 의식을 지배하여 술독에 빠져 있다.
자기가 살고 있는 지옥의 생활이 고통스럽기 때문에 이 세상의 인간에게 혼을 깃들여 그 고통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다. 인간의 마음이 깨져 있을수록 그들은 더욱 기세를 올려 인간의 마음을 병들게 파고든다. 그러니
인간은 빙의령의 유혹을 이기지 않으면 안 된다. 자기 자신에게 엄격해야 한다. 인간이 정법을 깨닫고 정법
을 실생활에 살려 나가면 자신이 구제될 뿐더러 빙의령까지도 구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친구의 어깨에 붙은 악령]
빙의령(憑依靈)이란 지옥에 떨어진 혼이 그곳을 견디지 못하고 세상으로 내려와 혼란스러운 사람의 몸에 거
처를 의탁하고 있는 악령을 말한다. 세상은 같은 종류끼리 만나는 일정한 법칙이 있다. 비둘기는 비둘기끼리
참새는 참새끼리 모여 살듯이 사람도 비슷한 사람들끼리 몰려다니고 만난다는 뜻이다.
그 법칙에 따라 사람들의 마음 역시 한 색깔의 마음에 선악을 가리지 않고 모인다. 그것은 어디나 마찬가지
다. 빙의령이란 한때 이 지상에 육체를 갖고 산 적이 있는 인간이나 동물들이다. 그들은 사람으로 태어났던
목적과 사명을 잊고 신리도 깨닫지 못한 채 이기주의에 빠져 금전욕, 정욕, 권력, 지위 등에 탐닉했던 영혼들
이다.
물질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남을 돕는 일도 없었으며 신도 믿지 않았다. 그 중에는 유
물론을 믿어 투쟁과 폭력에 서슴없이 뛰어들어 참으로 혼란스러운 일생을 산 영혼도 있다.
하느님이나 부처님의 이름을 팔아 사리사욕을 채운 자, 사악한 교리를 신리처럼 위장 설법하여 맹신자나 광
신자를 만들어 낸 신흥 종교의 교주들이다. 그들은 죽기 전에 이미 지옥에 떨어졌던 자들이다. 말과 행동이
맞지 않는 표리부동한 자들도 지옥에 떨어진다.
신리를 깨닫지 못하고 혼돈의 일생을 산 사람들은 관성의 법칙에 의해 죽은 후에도 살아있을 때와 같은 이식
의 세계로 가게 되어 있다. 그 세계는 살았을 때의 세상보다 훨씬 가혹한 지옥이며 그 어렵고 힘든 환경 속에
서 신불의 자녀라는 자각을 할 때까지 반성하고 고통을 겪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그들은 그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거기서 도망쳐 나오려고 발버둥친다. 그래서 이 지상에서 자기와 같
은 종류의 영혼에 엉겨붙는 것이다. 인간의 후광 즉 이미 얘기했던 오로라의 어두운 면에 거주하는 것이 곧
질병이다. 그것은 영적인 눈에 모두 보인다.
빙의가 되면 그 부분이 하얗다. 그들은 평안한 육체 세포에 붙어서 살고 있다. 그럴 경우 그 부위는 염증을 일
으키고 있으므로 당사자도 병적 증상을 똑똑하게 자각할 수 있다. 곤드레 만취가 된 사람에게도 100% 빙의
령이 붙어 있다. 술을 조금씩 마실 때는 좋다. 하지만 광기의 액체로 바뀌면 빙의령에 매체가 되어 버린다. 자
제심과 절제가 필요하다.
오랜 세월에 걸쳐 습관화된 버릇을 극복하고 새로운 자신이 모습으로 바꾸어 나가는 노력이 신리 실천의 첫
걸음이다.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타인에게는 엄격한 사람은 자기 본능이 강한 사람이며, 자신에게는 엄격하
나 타인에게는 자비를 베풀고 관대한 사람은 보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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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3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2)(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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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심을 가진 사람에게는 악령이 붙을 수 없다. 왜냐하면 마음이 신불에 빛에 싸여 있으니 접근이 불가능하
다. 원망, 시기, 질투가 강한 사람에게는 짐승의 영혼이 붙기 쉬우며 육체적 현상을 나타나기도 한다. 질병의
80%는 빙의령이 원인이다.
그처럼 빙의령을 제거하는 길은 그 빙의령에게 갈 길을 잘 타일러 주는 한편 자기 자신의 정법 생활을 실천하
는 길 밖에 없다. 설령 그 빙의령을 제거해 주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고 본인이 정법을 실천하지 않으면 또다
시 악령이 끼어든다. 마음의 왕국을 지배하는 자는 어디까지나 자기 자신뿐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악
령에 사로잡힌 실례를 들어 보겠다.
한 친구가 오랜만에 우리 집에 왔다. 피차 사업을 하고 있는 처지라 월급쟁이 때와는 달리 어려운 점이 많다
고 서로 대화를 나누다가 어느새 영적 이야기가 화제에 올랐다. 이 친구는 영의 세계를 전혀 믿지 않는 친구
였다. 그가 나에게 충고했다.
"자네가 과학을 공부하고 있는데 그런 비상식적인 이야기를 하면 남들의 신용을 잃게 되네. 사람은 현실을
똑바로 보고 한 걸음씩 향상하는 자세가 중요한 것이지 영적이라는 헛된 꿈을 좇는 것은 잘못이네. 그것은 인
생의 도피이며 자기 상실이네."
그의 말은 매우 준엄했다. 거의 10년 동안이나 소식이 없던 친구여서 나에 대한 평가가 퍽 객관적이었다. 더
구나 고생을 많이 한 친구라 그 어조도 매우 신랄하다. 나는 친구의 표정을 보면서 약간 경탄했다. 자수성가
로 작은 회사의 사업주가 된 나는 남의 의견을 들을 기회가 거의 없었다. 자신의 소신을 그대로 말해 주는 친
구가 그지없이 고마웠다.
그리고 그 충고를 진솔하게 듣고 있는 나 자신의 마음의 성숙함도 깨닫게 되었다. 성격이 급한 내게는 더 이
상의 큰 수확이 없었다. 반성해서 자신의 결점을 알아내고 그 결점을 수정함으로써 보다 높은 경지로 마음은
승화해 간다.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실천이다.
경제학 박사나 경제 평론가가 사업을 해서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듯이 인생도 이론대로 진행되는 것
은 아니다. 이 친구도 사업이 번창할 때는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릴 듯이 기세가 당당했으며 남을 깔보고 오만
하기 그지없었다. 인간은 경제적으로 곤경에 부딪쳐 시련을 겪게 되면 풀이 죽게 마련이다. 사업이 부진하여
고난을 겪으면서도 굴복하지 않고 재기를 노리는 그의 모습을 보고 나는 그에게서 끈질긴 근성을 읽을 수 있
었다.
친구도 변했던 것이다. 그는 사업을 만회할 길을 찾기 위해 점도 치고 사주도 보았으며 타력 신앙에 의지하기
도 했지만 결국은 파산해 버린 것이다. 그런 뼈아픈 경험을 치른 친구의 충고였으니 우정이 넘치는 말이 아
닐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의 비과학적이라는 말이 수긍할 수가 없었다. 그가 다른 신앙의 힘에 혹은 역학에 의해서 소
원 성취가 되지 않았다 해서 신불을 부정하는 태도는 타당하지 못하다. 자신의 실패한 원인을 추궁하는 것은
중요한 포인트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번에는 내가 물었다.
"원인과 결과 혹은 작용과 반작용에 관해서 자네가 경험을 통해서 느낀 것이 없는가?" 그것은 평범한 질문이
다. 그러나 인간은 평범한 사실을 잘 깨닫지 못한다. 머리로는 알지만 가슴으로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래
서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인간 사회는 경제력만 있으면 사업의 실패 같은 것은 있을 수 없다. 내가 실패한 것은 종업원의 부족과 무역
의 실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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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3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2)(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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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말을 듣고 그가 '마음'이라는 가장 중요한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왜냐하면 신앙
이나 역학적인 구원은 모두가 물질적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이지 신불의 근본을 깨닫는 일이라고는 보
지 않기 때문이다.
'사업은 인간이다'는 말이 있다. 종업원이 부족했던 문제도 마음이 있는 종업원을 양성하지 못한 데 있는 듯
싶었다. 물질 경제의 노예가 되어 버리면 자신을 잃을 위험성이 커진다. 그것은 사업가로서는 부적격이다. 인
간과 인간의 마음이 사업을 목적으로 삼고 조화를 이루어 연구, 노력할 때 비로소 판매력, 생산력, 경제력이
향상되는데도 불구하고 경제력이 제일이라고 생각한 데 그의 큰 오산이 있었던 것같다.
내 말을 듣고 그는 자신의 결점을 곧 시인했다. 나는 영적 이야기를 계속했으며, 신심이란 자신의 마음을 확
실하게 믿는 것이며 매일이 생활 속에 그것이 있다는 점을 역설했다. 신앙에 구걸해 봐야 스스로의 힘으로 실
천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친구는 마음 속 깊이 수긍했다.
"나는 신불에 대한 생각이 잘못이었다. 지금까지 종교라는 것은 신불에 빌면 구원받을 수 있는 것으로만 생
각했다. 그 잘못은 이제 깨달았다. 신불은 각자의 마음에 존재한다는 것을, 자기 자신이 소중하다는 것을 이
제야 알았다."
그는 자신을 타이르듯 되뇌는 것이었다. 그의 몸에 붙은 빙의령이 내 눈에는 똑똑히 보였다. 등 뒤 오른쪽 어
깨 근처에 희멀건 것이 붙어 움직이고 있다. 그래서 물어 보았다.
"오른쪽 어깨가 아프지 않은가?"
"사실은 어깨가 굳어졌네. 50견(肩)이니까 침을 맞으면 낫는다고 해서 오늘은 침구사에 다녀오는 길이야.
그런데 그런 것까지 어떻게 잘 아는가.'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비과학적이라고 나를 힐난하던 그가 지금은 경탄하고 있다. 그에게 신의 뜻을 가르쳐
주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나는 그의 어깨에 붙은 빙의령을 내 누이의 의식 속에 집어넣어 대화를 시작했다.
"당신은 왜 이분에게 붙어 있습니까. 이름을 말해 보시오."
그러자 누이의 몸 속에 든 빙의령이 말했다.
"내 이름은 류기치입니다. 이분은 술을 좋아하기 때문에 붙어 있으면 매일 저녁 무렵에는 술집에 같이 갈 수
있습니다. 함께 가면 안 됩니까?"
빙의령은 오히려 반문한다. 류기치는 우마야 다리 근처에 있는 대장간에서 직공으로 일하고 있었다. 살았을
때는 술을 한 되씩이나 마실 정도의 큰 주량이었다. 그 영혼은 아까부터 내가 말하던 신리를 듣고 있었으며
언제 자신의 정체가 탄로날지 조마조마했던 모양이다. 오랜 지옥 생활이 견디기 힘들어 이 지상의 비슷한 인
간에게 붙어사는 것이 편하다고 말했다. 나는 친구에게 어깨가 5년 전부터 아프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맞아, 술을 좋아하기 때문이야. 5년 전에 아사쿠사[전草]에 있는 한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오른쪽 어깨를
테이블에 부딪친 적이 있었지. 그때부터 좋이 않았어."
그는 내 말에 감탄하면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걱정하는 것이었다. 나는 류기치라는 그 빙의령에게 생시에 늘
술이 없으면 일을 하지 않았던 악습, 가족에게 폭력을 휘둘렀던 일 등 정법에 어긋난 그의 인생을 지적하는
한편 인간으로 태어났던 목적과 사명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사후에 세계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그의 잘못도 일깨워 주
었더니 그 빙의령은 비로소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친구의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지옥의 영도 신리의 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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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의해서 천상계로 올라가 성불하게 되어 있다. 무거운 돌이 얹힌 것처럼 불편하던 친구의 어깨는 거짓말처
럼 가벼워졌다. 그러나 이런 정도로 사리를 잘 알아듣는 빙의령은 질이 좋은 편이지만 아무리 설법해도 알아
듣지 못하는 답답한 지옥령들이 대부분이다.
'한 치의 벌레에도 오 푼의 혼이 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 그런 속담이 있는 것처럼 동물, 식물 등
모든 생물들은 살아갈 권리를 부여 받아 상호 의존의 관계 속에서 종족 보존을 이어가고 있다. 저마다의 환경
에 적응할 수 있는 몸과 구조를 지닌 채 살고 있는 것이다.
그 생물의 에너지를 흡수하면서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육체를 보존하고 있다. 동물, 식물, 광물 들 역시 자손
보존의 본능이 잇다. 그것을 알면서도 인간은 그들을 마구 잡아먹어 피와 살과 뼈로 만들고 있다. 동물이나
물고기에게 감사하는 마음도 없이 예사로 살생해 버린다. 그래서 그들도 생의 애착 때문에 성불할 수가 없어
서 인간에게 빙의한다.
인간은 마땅히 그들에게 감사와 공양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동물, 식물, 광물 등의 에너지원이 있어서 우리
들은 보존이 가능한 것이다. 식사 때 그들의 희생에 대한 명복을 빌고 감사의 기도를 올리는 것은 당연한 행
위다.
'여러분들이 우리들의 피와 살이 되어 줌으로써 우리들은 육체 보존이 가능합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들도 생전의 불멸을 깨달아 부디 성불하기 바랍니다."
이렇게 아침 저녁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불교에서 쓸데없는 살생을 금하고 있는 이유도 여
기에 있다. 살 권리가 부여된 생물을 살생하여 차려진 음식이므로 식사는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태양의 열과 에너지, 동식물, 광물의 에너지원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거의 잊고 있다는 점을 반성해야 한
다. 항상 만족할 줄 알면서 감사하게 생활하는 것이 생물들을 돌보고 위하는 공존공영의 길이 된다. 생명의
불변을 깨달은 식물이나 미생물들은 헤매지 않고 평화의 세계로 올라갈 수 있다.
그런데 감사의 마음이 없는 인간에게는 생물의 영이 빙의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 터무니없는 일이 어디 있
느냐고 비웃도 사람도 많겠지만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만물은 서로가 작용하므로 우리들의 육체를 보
존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들 영혼의 존재를 존귀하게 여기고 항상 감사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계속)


===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3)(다카하시 신지)
갯밭무시
가르침과 배움의 글들
・ 2021. 7. 10. 18:46 URL 복사  이웃추가
[인간은 거만해지면서 몰락한다]
한 번은 나와 뜻을 같이하는 친구들과 함께 시즈오카현[정강현] 후지기시[등지시]에서 사흘 동안 연수를 가
진 적이 있었다. 연수의 목적은 도시의 소음을 피해 집단 생활을 하면서 과거를 반성하고 자신을 조용히 살펴
봄으로써 마음과 행동의 결점을 수정해 보자는 것이었다.
엄격한 계율 같은 것은 없고, 가장 자유스러운 집단생활을 통해서 팔정도를 근본으로 한 상념과 행위를 실천
하고, 서로의 마음과 마음을 어떻게 조화시켜 나가는가 하는 문제를 연구했던 것이다.
만성화된 일상생활의 타성을 타파하고 마음의 청량제가 된다면 이 연수회는 성공적이며 우리의 영혼은 한 단
계 더 승화시켜 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집단생활을 통해서 자신의 결점을 발견한다는 것은 곧 그 결점
을 수정할 수 있는 실마리를 잡는 것이 된다. 사람들은 자신의 결점을 남에게 보이기 싫어하기 때문에 늘 그
결점을 감추려고 하는 나머지 그 결점을 더욱 조장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자신을 훌륭하게 꾸미고 자기를 비호하는 마음은 거꾸로 자신의 마음에 어두운 상념의 구름을 끼게 한다. 자
신이 속마음과는 달리 외관을 좋게 꾸미는 언동은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남에게도 공허하고 씁쓸한 느낌을
줄 뿐이다. 자기 보호 본능에 의해서 남에게 거짓말을 한다.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고 자기 자신을 작은 틀 속
에 가두어 버린다. 이것은 슬픈 일이다.
한편 여자들은 아름다움에 대한 본능 때문에 옷과 화장으로 외모의 단장에 힘쓰는 경우도 있다. 추한 것을 아
름답게 보이려는 행위는, 오히려 자신과 외부를 조화시키려는 태도이며 자연스러운 행위일 수도 있다. 그러
나 그것도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나타내야 한다.
또 아무리 고통스러운 병상에 누워 있는 몸이라 할지라도 문병객들에게 미소로써 대해 주는 마음씨는 상대방
에 대한 보은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질병은 육체의 고장이니 마음의 병은 아니기 때문이다. 질
병이라는 것도 어떤 원인이 있어서 그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므로 좋은 반성의 기회라고 할 수 있다.
'거짓말도 방편'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 거짓이 제3자와 조화하기 위한 것이라면 자비의 모습, 보살의 마음 표
현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마음속에는 원망, 질투, 비방, 노여움을 품고 있으면서도 막상 상대방과 대하면 그 속
마음과는 반대의 언동을 취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런 것은 올바른 마음가짐이며 조화라고는 볼 수 없으며 자
기 보호의 허위라고밖에 할 수 없다.
부조화가 일어났을 때에는 대화를 나누고 서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조화에의 첫걸음이며 마음의 짐을
벗는 길이 된다. 이렇게 하는 것이 바르게 보고, 바르게 들으며, 바르게 말하는 팔정도에 부합되는 생활이다.
자신이 허영심을 행동으로 나타내 보인다 해도 괴로움만 쌓일 뿐이며 그것은 공허한 인생이다.
'무사는 먹지 않아도 이쑤시개 질'이라는 무사도의 정신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일본에만 있는 것이며 신리와
는 거리가 먼 허영심에 지나지 않으며 자기 보호의 조화를 깨뜨리는 사고방식이다. 마음에 거짓이 없는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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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7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3)(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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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말로 인간다운 삶이다. 마음에 있는 것을 진솔하게 토해 낼 수 있는 사람은 상념에 구름을 끼지 않게 하
는,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이다. 왜냐하면 마음에 구름이 없으므로 괴로움이나 슬픔의 원인을 만들 리 없으며
그런 마음은 신불의 빛에 싸여 환하게 빛나기 때문이다.
괴로움이나 슬픔이 어떤 결과라는 것을 안다면 그것을 만들어내는 원인을 멀리해야 한다. 정법은 이렇게 바
른 자신을 확립해 가는 길이며 영혼을 정화시키기 위한 신의 뜻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 내용을 안고 연수회
에 참가한 회원은 정법의 실천 생활을 했다. 이 연수회를 지도한 간부 중에는 남의 마음속에 낀 어두운 상념
을 찾아낼 수 있는 영적 능력자도 있었다. 그는 마음의 눈이 열려 있기 때문에 마음의 조화도에 따라 발생하
는 오로라도 볼 수 있고, 마음이 부조화에 의해서 빙의된 어두운 악령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차원이 다른 세
계 즉 실재계에도 가 볼 수 있고 이 지상계 어디든지 즉시 신의 발걸음으로 달려갈 수 있는 관자재력을 갖춘
분이다.
저 세상과 사람들과 즉시 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자들도 있다. 이 능력자는 생전에 한 번도 만나 본 적이 없는
망령이라도 그의 특징이나 생전의 이력들을 모조리 알아버리니 그의 영적 능력을 부정할 수 없다.
단 지옥계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망령들은 지상계에서의 생활을 잊어버리고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생전의 기
억을 더듬어 보기기 어렵다. 이러한 사람들은 일종의 기억 상실에 빠져 암중모색의 상태에서 허덕이고 있다.
그것은 이승과 저승 사이에는 등속운동(等速運動), 즉 관성의 법칙이 반드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지상에서 살고 있을 때 물질적인 집착심이 강했던 사람들의 의식이 관성의 법칙에 따라 등속 운동을 되풀
이 하고 있는 곳이 바로 지옥이다 . 천상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이승에서의 과거를 기억해서 말할 수 있
으므로 저승의 존재를 실증하는 데에는 다시없는 증인이다.
또 지상의 사람들을 보호하고 있는 수호천사도 알아볼 수 있으며 서로 대화도 나눌 수 있다. 수호천사들은
늘 곁에서 지켜 주고 있는 저 세상의 영혼의 형제들이기 때문에 당사자의 성격이며 특징, 경력 등을 모두 알
고 있다. 그래서 그 수호천사들의 입을 통해서 당사자의 신상을 모조리 알 수 있게 된다.
또한 인간의 의식 속에 기록되어 있는 상념과 행위의 녹화 테이프를 보는 일도 가능하다. 마음의 눈으로 확인
되는 의식의 녹화 테이프는 색깔 별로 기록되어 있으므로 당사자의 마음의 모습을 금방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들을 결코 꿈이나 착각이나 자기 최면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똑같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렇다면 이것을 어떻게 비과학적이라고 부정할 수 있을 것인가. 만일 부정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자
신의 진정(眞性) 안다는 말인가. 부정은 탐구를 중지하는 행위이다. 지금부터 1백 년 전에 텔레비전이나 라
디오나 전자기의 실용화를 상상이나 할 수 있었던 일인가. 부정하기 전에 의문을 가져야 한다. 의문을 가지
면 탐구하게 되고 과학적인 노력으로 그 해답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성경에 기록된 사도행전 제2장의 영적 현
상이 현재 내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 시대부터 2000년 만에 여러 사도들에 의해 영적 현상
이 일어나고 있는 사실을 아무도 부정할 수 없다. 마음을 상실하고 머리로 배운 지식만으로 영적 현상을 부정
하는 자는 지식의 늪에 빠져 어리석게도 눈앞밖에 못 보는 사람들이다. 자기 과시. 자만, 오만에 빠진 자는 남
의 의견에 좀처럼 귀를 기울이지 않으며 자기의 좁은 소견을 고집하고 외곬 인생을 걸어가는 자들이다.
남의 생명을 경시하고 남의 고통을 외면하는 위인이다. 올바른 결론은 체험을 통한 연구, 탐색의 결과로 얻어
지는 것이다. 근거가 없는 부정은 자기 자신마저 부정하는 것이 된다. 인생이 난해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
의 마음과 행동이 인생을 난해하게 만들고 있다.
인간의 지식과 의지가 신리의 보물 창고 문을 잠가버렸다. 연구회를 통해서 이러한 신리의 실천 활동과 관자
재의 영적 능력자들이 지도에 의해 마음이 바뀜으로써 그 동안 부조화했던 회원들의 어두운 마음에도 평안
의 빛이 비쳤다.
인간은 누구나 신불의 자녀이며 영적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나는 말했다. 이 능력은 마음의 구름을 벗김으로
써 누구나 지닐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대개의 사람들은 본성을 상실하고 있기 때문에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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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7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3)(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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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마음을 자신 이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관자재력의 영적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남의 마음을 금방 알아버린다는 사실을 연수회에 참가한 회원들은 누
구나 다 인정하고 이해하게 되었다. 자기 마음 속 어두운 구석을 숨기고 덜어두려고 하는 사람들은 구제받지
못한다.
그런 사람들은 정법에서 이탈하여 괴로움과 슬픔의 인생 항로를 스스로 걷는 자들이다. 하지만 반성의 마음
만 있으면 상념과 행위의 잘못을 수정하여 평안한 인생을 엮어갈 수 있다. 신리는 인간의 힘으로는 그 누구
도 무너뜨릴 수 없다. 비록 일시적으로 폭력이나 권력에 의해서 배척된다 하더라도, 태양이 동에서 떠서 서쪽
으로 지듯이 언젠가는 미망하는 인간의 마음에 환한 빛이 될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인생에 대해서 진실을 추고하고 있다. 연수회는 참가자의 마음을 씻고 인생의 가치를 알게 하
며 인간은 누구나 지금 수행 도상에 있다는 사실을 깨우쳐 준다. 연수회에 참가하여 한두 달 사이에 마음의
문이 열린 사람 가운데 13세 살 된 중학생 두 명이 있었다. 한 학생이, 생명의 윤회를 깨닫고 약 2500여 년
전의 중인도 바라나시의 도시와 제다베나에서 비구니 생활을 했던 당시의 상황을 말했다. 또 다른 중학생은
스탓다 장자의 딸로 태어났던 2560여 년 전의 인도 시라바스티의 기억을 더듬었다.
파피라성의 아사지의 이름과 바라나시의 미가다야에서 고다마 붓다의 제자가 된 야사라는 아라한의 이름을
기억하여 당시의 언어로 말하는 것이었다. 또 고다마 싯다르타의 수양어머니 마하 파쟈파데의 시녀였던 비
구니가 전생을 기억하여 붓다의 제자로 입문할 당시의 경위를 설명하였으며, 한편 데바다바성의 무사였던
자신의 전생을 기억해 낸 사람은 마하베나에서 붓다의 제자가 되어 붓다의 가르침을 받았던 당시의 상황이
며 설법 내용을 말했다.
그러나 영적인 길이 열리고 이러한 전생을 회상할 수 있는 것은 중요한 일이 아니다. 전생을 알았으며 금세에
서는 더욱 분발하여 인생의 사명을 완수하는 것이 보다 중요한 일이다. 영적인 길은 정법에의 첫걸음에 지나
지 않는다. 그리고 생명이 영원하다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한 실제의 보기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이로 인해 자신에겐 더욱 엄격하고 타인에겐 관대한 마음을 가지고 '익을수록 고개를 더 숙이는 벼이
삭'이란 격언처럼 마음과 행동으로써 자신을 다스려 나가는 것이 길이다.
인간은 남보다 앞선 특기, 지위, 명예, 가문 등으로 우월감에 젖고 오만에 빠지기 쉽다. 인간이 거만해지면
그 마음은 이미 몰락의 내리막길로 치닫는다.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은 인생의 신리이며 어김없이 작용하고
있는 산 법칙이다. 인간의 마음은 어디에도 통하는 것이며 행복해지는 것도, 불행해지는 것도 모두가 다 자신
이 만들어 내고 있는 결과이다. 이 점을 깊이 명심해야 한다.
[세균 하나도 우주에 영향을 끼친다]
의식이란 영혼을 말한다. 이 의식은 우리의 육체를 지배하며 영원히 변하지 않는 자신의 주인공이다. 저승과
이승을 윤회하면서 지상 환경에 적응한 육체를 지니고 자신의 영혼을 연마하면서 신의 몸체인 이 세상을 평
화스러운 불국토(佛國土), 유토피아로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지금 지상에 태어났다.
옛 부터 영혼의 문제에 대해서는 여러 사람들이 언급해 왔고 나 자신도 이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 왔지
만, 그 실제는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해서 마치 구름을 잡는듯하여 확실히 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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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7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3)(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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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3살 때부터 지금까지 '또 하나의 나 자신'을 찾아 왔지만 영혼의 문제는 몇 번이나 벽에 부딪쳐 한때
는 공부를 중단하려고까지 했었다. 그러나 종교나 학문을 통해서 영혼을 깨닫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
다.
왜냐하면 종교 의식으로 배운 철학으로 이것을 알 수만 있다면 오늘날과 같은 불교나 기독교가 타락하지 않
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식으로 안 것을 마음으로 소화시킴으로써 깨달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영적인 현상이 나타나는 일이 중단될 때가 있는데 그 원인도 인간의 마음이 물질적, 경제적 욕심으로 비뚤어
진 신불의 자녀로서의 자각을 상실하고 위대한 불심을 끌어낼 수 없게 된 데 있다.
나는 이 사실들을 통해서 사람은 왜 생각할 능력이 있는 것일까, 왜 괴로워하면 피로할까, 왜 잠자는 동안에
는 보지도 듣지도 못하게 되는 것일까 등등 온갖 의문을 품고 있었다.
깨어 있을 때와 잠들었을 때의 차이점 등 나의 의문은 꼬리를 물고 일어났으며 언제 해답을 얻을지도 모르는
나의 탐구 생활은 계속되었던 것이다. 육체야말로 자기 자신이며 육체 조상이 우리 영혼의 제공자라고 하던
생각이 내 안에서 붕괴되었다.
내가 알아낸 것은, 우리들의 육체는 이 세상에 잘 적응해서 살 수 있도록 우리들의 절대적인 신의 설계로 만
들어진 수행배[舟]라는 것이다. 그라고 차원이 다른 의식의 세계야말로 저승의 세계이며, 이 세상 즉 눈에 보
이는 현상계(現像界)는 실재계(實在界)의 수행 공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영혼을 보다 고차원으로 진화시키기 위해서 고통과 기쁨이라는 인생의 항로가 필요한 것이
다. 영혼의 육체라는 선박에 타면 신불의 자식으로서의 사명을 자각하기는 커녕 육체의 감각 기관에 사로잡
혀 그 본성 마저 잃고 만다. 저 세상에서 약속하고 다짐했던 일들을 깡그리 잊어버리고 가문과 조상, 지위, 명
예, 그리고 자신의 육체에 집착하게 된다.
참으로 어리석은 것이 인간이다. 의식, 즉 영혼이야말로 진짜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며 육체 오관
이 감지하는 이 세상에 마음이 사로잡혀 자신의 본성을 잊어서는 안 된다.
물질에는 에너지가 공존하고 있다.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에너지라고 하는데 우리는 그것을 육안으로 볼 수 없다. 에너지 입자가 집합하여 이
루어진 물질에 관해서는 개량과 실험, 데이타 등을 수학적으로 산출해서 객관적인 고찰이 가능하다. 그리고
육체적인 요소에 관해서는 그 모습을 육안으로 관찰할 수가 있지만 의식을 육안으로 보는 것은 심안이 열린
사람 이외에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볼 수가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이 정신적으로 고민했을 때 왜 피로를 느낀달 말인가. 우리들
이 육체노동에 의해서 피로를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피로하다는 것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
한다. 육체노동에 의해서 소모된 에너지는 동물, 식물, 광물의 에너지를 흡수함으로써 회복된다.
그들은 타액과 함께 식도를 통해 위 속으로 들어가서 위액과 함께 소화되어 피나 살이나 뼈가 된다. 이때 침
샘에서 입 안에 분비되는 소화액은 소화를 돕는 미세한 균이다. 이 세균은 매우 작은 것이며 그들은 아마 우
리들이 거대한 우주를 바라보고 놀라듯이 육체의 세포 집단을 은하계 우주처럼 우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
다. 마치 우리들이 거대한 우주를 바라보고 놀라듯이 육체의 세포 집단은 은하계 우주처럼 바로 보고 있을 것
이다. 이 조그마한 세균 하나가 부조화를 일으켜도 우리들의 육체는 변조를 일으킨다. 이처럼 인류의 부조화
가 얼마만큼 지구에 영향을 미치고 대우주에 해를 끼치는가 하는 것은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렇게 마음의 조화야말로 우리 인류의 지상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이 조화의 법칙을 잊어버리게 되는 원인
은, 우리의 영혼이 육체의 옷을 입게 되면 잠재의식과 표면의식의 비율이 달라져서 자신이 본심을 망각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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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7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3)(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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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고 자기 보호와 사욕의 포로가 되고 말기 때문이다.
마치 물이 열로 인해 고체, 액체, 기체라는 세 가지 모습으로 변화하듯이 의식의 표출 비율도 변화한다. 변화
는 하지만 물로서의 본래 성질 H2O 중의 열에너지 입자가 변화할 따름이다. 온도가 영도 이하가 되면 H2O
의 분자는 집중되어 고체가 되고 거꾸로 온도가 상승하면 열에너지 입자는 분산되어 수증기가 된다.
같은 성질인 H2O도 온도의 변화에 따라 고체, 액체, 기체의 세 가지 모습으로 변화함과 동시에 그 비중도 차
이가 난다. 액체인 물속에 얼음 덩어리를 넣으면 서로의 비중이 다르기 때문에 얼음 덩어리는 떠서 수면에 고
개를 드러낸다. 그러나 대부분은 물속에 잠겨 있다. 그 비율을 보면 약 10%가 수면에 나오고 90%는 수중
에 잠겨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들의 의식도 저 세상, 이 세상을 왕래하지만 그 본질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의식의 승
용차가 달라질 뿐이다. 이 현상계에 육체를 지니고 태어나면 표면 의식은 10%가 되고 90%라는 대부분의
의식은 잠재의식으로 숨어버린다. 때문에 우리는 영혼[의식]의 수행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슬픔이나 괴로움이 많은 험난한 인생 항로에서 자신을 똑바로 보고 육체의 지배자인 마음과 잘 상의해서 팔
정도의 생활을 실천해야 한다. 그러면 마음의 문은 열릴 것이며 인간으로서 태어난 목적과 사명도 깨닫게 된
다. 그때의 기쁨은 말로써는 표현할 수가 없다.
자기 보호, 자아의 사욕에 의해서 만들어진 어두운 상념이 표면 의식과 잠재의식의 조화를 방해한다. 어두운
상념의 구름에 의해서 신불의 빛을 받을 수 없게 되어 인간은 슬픔과 고통의 인생을 스스로 피할 수 없게 된
다.
신리에 의존하는 생활 이상으로 우리를 기쁘게 하는 길이 없다. 아무리 영적 능력이 있다 하더라고 신리를 깨
닫지 못한 자들은 자비도 사람도 겸손도 없으며 오만에 빠진다. 종교 지도자들은 정법에 귀의해서 우선 정법
에 따른 생활을 재현하고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게 된 연후에 신도들을 지도해 나가야 한다. 신불의 가르침
을 설법할 경우에는 교단이나 종파를 고집하여 신리를 왜곡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지식으로 습득한 학문적인 사고방식에 젖어 실천이 따르지 않는 종교가 과연 신리라고 할 수 있을까. 10%
의 표면 의식에 의한 가치 판단은 번뇌에 떨어지기 십상이다. 자기 보호적인 사고방식을 떨쳐버릴 수가 없고
외면적인 현상에 사로잡히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의식의 중심인 마음, 이 마음이 감동했을 때에는 누구든지
가슴에서 치밀어 오르는 그 무엇인가를 느낀다.
가슴에서 치밀어 올라 눈물이 나오는 그런 감각을 통해서 우리는 마음의 존재를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이
속마음이 우리들 전생의 기억과 위대한 불타의 예지가 담긴 보물 창고인 것이다.
70세, 80세의 인생 경험은 향불처럼 잠시 타오르는 시간이지만 우리들의 영혼은 몇 억, 몇 만 년 그칠 줄 모
르는 윤회를 거친 모든 경험을 잠재의식 속에 간직하고 있다. 현재 자기 자신의 마음 상태는 전생 경험의 축
소형 내지 유사형 일 뿐이다.
어느 때는 왕이었으며 어느 때는 거지이기도 했다. 또 예술인, 시인, 승려 등 저마다 여러 가지 인생을 경험
을 거친 후 지금의 자신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육체를 지니게 되면 이러한 전생의 축척 된 경험
을 알아보기가 힘들다.
그러나 정법을 깨닫고 올바른 생활을 함으로써, 잠재의식의 문이 열려, 수호천사의 도움을 받아 축적된 지혜
를 끌어내어 더욱 풍부하고 뜻 깊은 인생을 보낼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인생이야말로 신불의 자녀로서의 참다
운 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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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7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3)(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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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인류는 물질 무념의 노예가 되어 자기 보호, 사욕의 어두운 상념에 싸여 투쟁과 파괴의 역사를 만들
고 말았다. 이 때문에 인류의 부조화한 상념이 신의 몸체의 일부인 지구의 영적 능력을 무너뜨렸고 지구는 어
두운 상념에 덮여 신불의 빛을 받을 수 없게 되었으며 지금도 그런 상태이다.
우리들의 마음이 신리를 깨달은 생활을 하고 있으면 육체에서 발생하는 후광이 금색으로 보이지만 마음의 조
화를 이루지 못한 사람들의 후광은 어둡고 빛이 희미하다는 것은 이미 언급했다.
가정도 조화를 이루면 그 집에서 환한 후광이 나타나는 것이 영적 능력자의 눈에는 보인다. 이러한 가정은 모
든 가족들의 마음이 아름답고 화목하여 질병과 재난이 없는 행복한 환경으로서 신불의 빛에 싸여 있다.
반대로 어두운 상념이 가정은 가족들이 음울하고 웃음이 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 환자나 돌발 사고가 자주 발
생하며 신불의 빛을 받을 수 없다. 가족들의 마음 조화도가 좌우하기 때문에 그 부조화의 원인은 어디까지나
가족들 자신이 만들어 내고 있다.
자기 보호와 욕심이 강한 사람들의 집단은 한 국가의 영적인 힘까지도 약하게 만들고 있다. 나라의 혼란은 국
민 한 사람 한 사람의 혼란에서 온다. 지도자에게 책임을 전가시키기 전에 국민 각자가 마음을 자각하는 일
이 무엇보다도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다.
물질의 노예에서 자신을 해방시키고 만족할 줄 아는 생활 가운데 진정한 평화, 진정한 인생이 있다는 것을 우
리는 알아야 한다. 마음의 존엄성을 깨달아 잠재의식의 문을 열고 지식을 흡수하여 실천함으로써 자신을 더
욱 연마하고 나아가 사회와 인류를 위해서 정신적, 물질적, 육체적 봉사를 아끼지 않을 때 진정한 보살의 뜻
이 싹트게 된다.
보살심에는 용기가 따르는 법이다. 잠재의식의 무한대 보물 창고는 정법 생활에 대한 자신의 노력과 수호천
사의 협력으로 열 수 있다. 마음의 왕국을 지배하는 자는 어디까지나 자기 자신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
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과거의 케케묵은 문헌이나 지식과 의지로 개조된 경문을 보물단지처럼 안고 있을 뿐,
자기 자신의 올바른 마음속을 들여다 볼 생각은 하지 않는다.
자연 과학 분야에서 문헌은 도움이 되지만 종교 서적의 대부분은 인간의 지식과 의지가 가미되어 마음을 상
실한 경우가 많다. 교주의 생년월일이 틀렸다든가 가문이 어떻다든가 쓸데없는 것에 신경을 쓰고 있다. 진짜
마음의 문제야말로 중요한 일이다.
여기가 본가의 정통이고 저기는 분원이다 등으로 종파 내에서의 세력 싸움은 이미 불법도 아니고 신리도 아
니다. 이러한 형식주의는 이미 마음을 잃은 법의 말기 증세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형식이 아
니라 '마음의 상태와 행위'이다. 종교가 신리를 잃고 형식주의에 빠져 중생에게 인생의 목적과 사명을 설법
할 수 없다는 것은 화석화된 전 세대의 유물이라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그 원인은 오랜 역사의 과정에 있다. 정법이 그때그때 권력자의 손에 의해 바뀌고 정책의 도구로 사용되었던
사실이 이를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물론 이것은 육체를 지니고 인생의 수행을 하고 있는 개인에게도 책임이
있다.
마음의 세계를 탐구하지도 않고 물욕에 빠져 욕망대로 살아가려는 개개인이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한
매스컴에 대해서 언급해 보면, 돈만 벌 수 있다면 어떤 방법으로 무엇을 보도하건 상관없다는 사고방식은 재
고되어야 한다.
인류 사회의 조화와 평화를 위한 보도라면 참된 평안을 줄 수 있지만 정욕을 유발하고 인간의 말초 신경을 건
드리는 저속한 기사는 독을 뿌린다. 인간의 마음을 한때는 사로잡을 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외면당하게 마련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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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7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3)(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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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하지 못한 것은 출판하거나 영화화하는 사람은 그 부조화된 상념의 반작용을 받아 마음이 검은 구름으
로 뒤덮인다. 그들은 언젠가는 뉘우칠 날이 있을 것이다. 지위나 명예의 고하를 막론하고 자신이 만들어 낸
어두운 상념은 스스로 부조화한 괴로움과 아음을 불러들이게 된다는 신리를 우리는 부정할 수 없다.
정법의 레일 위를 달리고 있는 사람과 그 레일을 무시하고 달리는 사람은 확실히 다르며 죽어서 이 세상을 떠
날 때에는 자기 자신의 옳고 그름에 대한 심판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엉터리 같은 일이 어디 있겠느
냐고 코웃음을 치는 사람들도 예외 없이 그런 순간을 맞게 될 날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
야 한다.
조상에 대한 예배나 타력 신앙에 의해서 구원받는다는 그릇된 종교에서 깨어나야 한다. 특히 불교는 지식으
로 배우고 머리의 판단으로 잘못된 길을 걷고 있는 경우가 많다. 불교 신리는 한 가지뿐이다. 몇 백을 헤아리
는 종파는 인간이 만든 것이며 지식과 의지의 산물일 뿐 거기에 마음이 있을 리 없다. 만일 이 사실을 부정하
고 나서는 스님이 있다면 나는 이렇게 묻고 싶다.
"당신은 자신이 진정한 불제자라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진짜 불제자라면 자기 보호 따위는 없을 것이다.
종파의 난립에 당연히 의문을 가질 것이다.
권력욕에도 의심이 갈 것이다.
노여움, 시기, 질투의 마음을 갖지 않을 것이다. 일체의 현상에 사로잡히지 않고 자신을 상실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생로병사의 근본을 깨닫고 중도의 상념 행위로써 정법의 진수를 밝힐 것이다. 보시에 대해서는 만족
할 줄 알 거이며, 겉모양에 사로잡히지 않고 누구에게나 평등한 입장에서 자비와 사랑을 베풀 것이다.
부자연스러운 정욕에 마음이 현혹되지 않을 것이며, 생각하는 것, 말하는 것, 행동하는 것이 항상 정법에 따
르고 있으며, 올바른 마음 그대로 생활하고 있을 것이다. 진짜 불제자라면 고락의 인생에서 해탈해 있을 것이
고, 사람들에게 인생의 목적과 사명을 가르치고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남에게는 관대하며 생사를 초월하고
있을 것이다. 영혼의 윤회를 똑똑하게 깨닫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사는 사람만이 진짜 불제자라고 할 수 있
다.
종이 위의 논문으로는 깨달음을 얻을 수 없는 일이며 상념과 행위의 조화에 의해서만 마음의 문이 열린다. 거
기에 조화에 의한 기쁨과 평안의 세계가 전개된다. 지식은 마음을 우선할 수 없다. 마음이 있으므로 지식이
생겨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석가나 예수는 대학에 다니지도 않았다. 종교의 전문가도 아니었다. 오랜 역사
의 과정에서 인간의 지식과 의지의 먼지가 묻은 낡은 성서나 불경을 버리고 우리는 올바른 마음속에 잠재해
있는 신리를 깨달아야 한다.
스스로의 힘으로 잠재의식의 문을 열고 종교적인 영혼의 체험을 쌓아가는 길이야말로 인생의 정도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깨달음은 시시각각 정진 가운데서 싹트는 것이며 그 노력의 축적에 의해서 마음의 세계는 신
불의 빛으로 채워진다. 그제서야 신불과 겉과 속이 하나가 되는 조화와 평안에 접근해 간다.
지식의 길만을 쫓고 있는 학자들은 마음의 눈이 열리지 않고 있으므로 영적 현상이나 영혼의 문제에 대해서
는 금기사항처럼 기피하고 있을 정도다. 의문은 가지고 있지만 입 밖에 내기를 두려워한다. 지위욕, 명예욕,
금전욕, 정욕은 마음속에서 소용돌이치고 있다. 이러한 인간들에게 마음의 평안이 있을 리 없다.
외면의 허식에 비해 마음속은 모순 덩어리다. 이것을 진정한 행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외면의 겉치레로써는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없다. 이 원인은 지식과 의지에 의해서 만들어진 자기 보호의 상념 행위에 있다. 육체
에 매달린 번뇌에 의해서 자기의 본성을 상실한 데 그 원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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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7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3)(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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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는 만연하고 있는 부조화한 상념 행위, 즉 신불의 자녀다운 자각을 망각하고 동물적 본능대로 살아
가는 인간들, 투쟁과 파괴를 생각하고 있는 인간들, 종교의 미명 아래 인간의 마음을 타락시키고 있는 지도자
들, 자기 보존만을 생각하고 남의 불행을 돌보지 않는 인간들--- 말법의 모습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것
도 사회 제도가 너무나 외면적 현상에만 치중하고 내면적인 마음의 문제에 대한 교육이 부족한 데 그 원인이
있다.
그 결과 부자연스러운 신흥 종교가 난립하여 인간의 마음을 황폐시키고 있다. 벌을 주는 신불이 있다면 그런
신불은 버려야 한다. 벌은 자신이 만드는 것이지 결코 남이 주는 것이 아니다. 지적 학문에 의해서 인간의 가
치를 판단하고 시험지의 채점으로써 인간의 지위를 결정짓는 사회 구조는 욕망과 입신출세형의 인간을 낳고
급기야는 정신 이상자가 지도자의 위치에 올라앉기도 한다. 그래서 사회를 혼란에 빠뜨린다. 마음과 지식이
조화된 사회야말로 지도자로서의 자격이 있으며 보다 나은 사회의 조화와 정신 정화의 역군이 될 수 있다. 육
체를 떠난 우리의 영혼[의식]이야말로 영원한 생명이며 끝도 없고 시작도 없이 영원히 죽지 않고 윤회하는
보배다.
육체만이 자신이 아니다. 언젠가는 이 세상에 벗어 던지고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육체의 운명이다. 그런
육체에 집착한 나머지 온갖 고뇌를 생산하고 있는 어리석음에서 깨어나야 한다.
저 세상과 이 세상을 옮겨 다니며 사는 삶은 육체의 갈아타기, 즉 배를 갈아타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을
알 때 죽음은 인생의 종착이 아니라 이승의 졸업이며 저승에의 귀환이라는 사실을 깨eke게 될 것이다. 용기
있는 자들이 인간의 마음을 물질 경제의 노예에서 해방시키는 일에 함께 손잡고 나갈 것을 기대에 마지않는
다.
[내 마음은 우주로 통한다]
마음은 육체 내면에서 육체를 지배하고 있는 의식이 중심이며 영혼의 핵이다. 마음이 육체를 부리게 되면
외계의 여러 현상에 사로잡혀 본성을 잃게 마련이다. 마음은 붙잡아 두기가 어렵고, 경솔하여 동요하기 쉬우
며, 욕망에 따라 움직이고 분수를 지키기가 어려우며 그 목을 잡아 쥘 수도 없는 괴물이다.
자기 보존으로 치닫고 욕심에 탐닉하기 쉽다. 그러나 마음은 그 중심 핵에 가까울수록 신불의 자녀로서의 자
각심과 선악의 판단력이 뚜렷해진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공통적인 사실이며 마음의 중심 핵이야말로 무한대의 우주 생명과 상통하고 있는 인간이
본성이다. 중심에서 벗어나 멀어질수록 의식은 오관의 영향에 많이 받아 번뇌에 사로잡히기 쉬워진다. 의식
의 세계는 무한대로 확대될 수도 있고 정교한 극미의 세계로도 통할 수 있다.
그리고 존재하는 모든 선과 악의 세계와도 통할 수 있다. 대우주의 지배자는 만물 에너지의 근본이요 중심이
다. 이 지배자야말로 신불 즉 대우주체의 의식이다. 우리의 의식은 대주주의 분신이다. 분신은 우주 의식과
조화하기 위해 수행을 거듭하고 있으며 저승과 이승 사이를 윤회하면서 고차원의 의식 세계로 지향하기 위
한 연마를 거듭하고 있다.
육체를 지닌 개인 생명은, 조화롭지 못하고 불안전한 경험을 통해서 고차원의 조화로 나아가는 학습 과정에
있다. 개중에는 후퇴하는 자도 있고 진보하는 자도 있다. 개개인의 노력 정도에 따라 상반되는 결과가 나타난
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마음, 욕정대로 움직이는 마음, 미묘한 마음, 정처 없는 마음, 침착하지 않은 마음, 성
내는 마음, 기쁜 마음, 슬픈 마음, 이러한 마음을 올바른 신리에 따라 고삐를 잡고 제동할 수 있는 사람은 마
음의 평안을 얻고 일체의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마음의 올바른 신리를 깨닫지 못하고 방종으로 흐르는 사람은 마음이 불안하고 신념도 없으며 마귀의 손아귀
에 붙잡혀 자신을 잃게 된다. 올바른 신념을 깨달은 사람은 마음에 번뇌가 없으므로 상념에서 헤매는 일이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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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7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3)(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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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항상 신불의 빛에 싸여 있으므로 상념은 우주대로 넓으며 여러 가지 현상에 흔들리지 않는다.
항상 중용을 지니고 선악을 초월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어떤 상황에도 결코 당황하지 않으
며 두려움이 없다. 괴로움도 없고 늘 만족할 줄 알며 마음의 평안을 잃지 않고 산다.
상황에 따라 흔들이지 않는 마음을 불퇴전[不退轉]의 마음이라고 하며 이런 마음을 지닌 사람은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들의 의식의 중심은 마음이다. 마음의 구조부터 살펴보자. 마음의 구조는 마치 고무풍선처럼 둥글게 되
어 있다. 이 둥근 마음을 부자연스러운 사상으로 구속하고 스스로 작은 틀 속에 가두어 찌그러뜨리는 사람이
많다. 또 그와 반대로 자유자재로 우주를 삼킬 듯이 통이 큰 사람도 있다.
어느 쪽이든 각자의 선택에 달렸으며 마음의 상태와 행위에 따라 달라진다. 마음이 세계는 어디나 통하는 무
한대의 공간을 갖고 있고 생각에 따라 차원이 다른 선과 악 그 어느 쪽의 세계도 갈 수 있다. 상념은 사물을 만
들어 내는 능력을 지닌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마음에는 오관을 통해 일어나는 외적 상념과 마음속
에서 일어나는 내적 상념 그리고 차원이 다른 세계를 통해서 통신되어 오는 영적 상념이 있다.
이러한 상념들이 팔정도에 의한 중도의 생활을 실천함으로써 불타의 예지가 담긴 보물 창고를 열 수 있게 된
다.
마음을 살펴보면 본능, 감정, 지성, 이성이 있고, 전생과 현세에서 살아온 것들이 축적되어 있다. 그리고 상념
이 각 영역에 작용하여 의지가 되고, 정신적 육체적 행위로 구체화된다. 따라서 사물을 올바르게 판단하지 않
고 감정의 영역이 부풀면 상대적으로 싱서의 영역이 줄어들게 된다.
곰보딱지도 보조개처럼 예쁘게 보이는 사춘기 사랑의 경우도 본능과 감정이 유독 두드러져 있다. 이럴 때 지
성과 이성의 영역은 오그라들고 중용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것은 두 말 할 나위가 없다. 또 물질적 욕망도 동
물적인 본능이다.
즉 우리의 마음은 원만하게 조화시키는 길은 무엇보다도 먼저 팔정도를 실천하는 길이다. 고통과 기쁨의 원
인은 모두 자신이 마음이 지어내고 있다는 것은 내가 여러 번 강조한 것이다.
작은 틀 속에 자신을 가두지 말고 무변광대한 마음을 만들어내는 데서 인생의 가치를 찾아야 한다. 석가, 모
세 그리고 그리스도는 이러한 마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신불은 우리의 마음속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므로 별도로 만들어 받들 필요가 없다. 무엇에 매달려 빌고 예배
하는 것이 구원받는 길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괴로움이나 슬픔이 있으면 그 원인을 추궁해서 자신이 제
거하고 다스려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괴로움이나 슬픔도 행복에 이르는 한 계단이므로 좌절하지 말고 살아
가야 한다.
그것이 바로 인생에 있어서의 필수적인 수행이다. 고뇌는 미망의 언덕에서 깨달음의 언덕으로 건너가는 한
과정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극단으로 달리는 생활 방식을 버리고 인내와 노력으로 중도를 걷는 가운데 마음
이 조화를 이루고 올바른 판단이 생겨난다. 깨달음에 이르는 데는 중용을 이루려는 생활의 노력 이외에 결정
적인 힘을 가진 것은 없다.
이것이 신불의 자녀인 만물의 영장에게 부여된 철칙이다. 신리를 깨달은 스승을 모시고 정법을 배우며 이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길은 열린다. 이런 사실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
육체의 지배자는 이승과 저승을 영원히 돌며 윤회하고 있는 의식이다. 이 영혼이야말로 영원히 변하지 않는
자기 자신이다. 그 잠재의식 속에는 전생에서 체험한 일체가 남김없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나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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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7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3)(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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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각자의 희망에 따라 부모로부터 육체를 얻어 영혼의 부조화한 가르마를 바꾸는 한편 이 지상에 인류
가 화합하는 불국토, 유토피아를 세우기 위해서 태어났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즉 우리의 인생은 윤회의 한
과정에 지나지 않으며 언젠가는 실재 세상인 저 세상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다. 좋든 싫든 신의
의지에 놓여 있으며 누구도 이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것의 신불의 법도다.
그러나 육체라는 배는 일단 타게 되면 전생의 모든 경험과 잠재의식이 기억의 창고에 묻혀버린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잠재의식의 문을, 자신의 나쁜 상념과 행위로 닫아버리고 있다. 이 문을 열기 위해서는 과거의
많은 사람들은 육체적 고행으로 번뇌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쳤다.
또 형식적인 의식이나 방식에 의해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상의 두 가지 방법으로
는 정법에 어울리는 안심의 경지를 얻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어울리는 안심의 경지를 얻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신리에 맞지 않은 부조화한 상념과 행위의 어두운 지향이 불지(佛智)의 문을 굳게 닫
아버리기 때문이다.
인적이 드문 산중에서 폭포수행을 한다든가 단식을 한다든가 혹은 육체 고행의 수행을 아무리 해 보아야 번
뇌를 없앨 수는 없다. 이러한 행위들은 육체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한 수행자들의 독한 상념이 작용하고 있
기 때문이다. 육체의 지배자인 의식, 그 의식의 중심인 마음을 잊고서는 깨달을 수 없다.
원자핵을 중심으로 음외 전자가 돌고 있듯이 태양을 중심으로 혹성이 자전, 공전하고 있듯이 인간도 마음을
중심으로 몸 전체의 의식이 회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마음은 흡사 유연한 둥근 공과 같은 느낌이며 감정, 이성, 본능, 지성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마음의 중심은 무
한대의 우주 생명과 통하고 있으며 우리의 의식에 무한량이 상념 에너지를 공급해 주고 있다. 인생 항로의 여
러 가지 현상에 대해서 판단력, 자제력을 발휘하는 이성,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감정, 육체 보존의 본능, 인생
경험의 학습으로 얻은 지성, 이것들의 서로 조화를 유지하면서 우리들의 인격을 형성하고 있다.
그런데 마땅히 조화되어야 할 마음이, 감정의 영역에만 유독 표면으로 불거져나오면 정서는 불안정해지고
자기보존이 되며 마음의 평안을 잃게 된다. 상대로부터 결점을 지적당하면 금방 발끈하는 사람이 많다.
'자존심이 상했다'고 감정적이 되어 충고자의 결점을 도로 찾아내어 반격하려고 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자기
보존의 강한 성격의 소유자로서 부조화한 감정적인 언동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게 한다. 하지만 자신이
취한 혼란스러운 말과 행동의 반작용은 자기 자신에게 되돌아온다.
진심으로 충고해 준 상대방에게 감정적인 상념 행위를 보내면 신불에 빛에 싸여 있는 상대방의 마음에 거울
처럼 반사되어 오히려 자신의 부조화한 상념이 업이 골절이나 늘어난다. 상대방을 원망하고 시기 질투하며
상대방의 불행을 비는 따위의 행위는 바로 자신의 무덤을 파는 자멸 행위와 다를 바 없다.
그처럼 악의 상념 행위는 자신을 고난으로 몰아넣어 꼼짝달싹 못 하게 한다. 올바른 자기 판단은 진솔한 마음
으로 남의 충고를 받아들이는 데 있다. 자기 보존의 감정은 자신을 다치게 할 뿐만 아니라 남도 다치게 한다
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한편 본능만이 표면으로 드러나면 자기 방어, 자기 본위가 되어 만물의 영장으로서의
본성을 잊어버리고 동물적 정욕의 포로가 되기 쉽다.
사랑 없는 육체적 쾌락 본능은 인간 사회를 혼란으로 빠뜨리고 마음에 괴로움이 씨를 뿌린다. 깨달음과는 정
반대의 길이다. 이세상의 부귀영화에 눈멀어, 물질을 즐기는 것과 도를 즐기는 것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역
사를 돌아보면 번영했던 국가들이 왜 멸망했는가를 잘 알 수 있다.
약한 자를 희생물로 깔고 앉은 권력자가 부귀영화를 누리고 동물적 본능을 그대로 드러내어 육욕적 행위를
탐닉한 데 그 원인이 있다. 수행을 거부하고 부귀영화만을 좇는 쾌락적 인생을 하루 빨리 청산하고 정도의 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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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7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3)(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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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위에 인생을 올려놓지 않으면 안 된다. 스스로 구한 것이 얻어졌을 때의 기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
진 것이다.
마음의 길은 길고 깊고 멀며 깨달으면 이보다 더한 기쁨은 없다. 이 기쁨을 얻기 위해서는 모든 현상에 대해
서 올바르게 판단하는 이성,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감정, 신불로부터 부여받은 본능, 인생 경험의 지성, 이런
것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도록 마음에 집착이 없는 생활을 해야 한다.
만물에 대한 감사와 보은, 공양과 보시의 마음을 가지고 신리의 실천 생활을 할 것. 그러면 마음의 문이 열리
며 자력으로 위대한 지혜의 보고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이때 자신의 마음을 깨닫게 되며 영혼의 형제들, 수
호천사와의 대화가 가능하며 차원 높은 인생을 위한 그들의 자비와 사랑에 넘치는 지도 협력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이런 능력은 인간이면 누구에게나 부여되어 있는 것으로서 자신의 올바른 생활 노력 가운데서 유도해 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 노력이라는 것도 실은 신불로부터 부여 받은 본능에 불과하다. 인간은 기후 환경에 적
합한 의복을 고안해 입었다. 육체 보존을 위해서 동, 식, 광물의 에너지를 흡수할 줄 안다. 자연 환경에서 자
신을 보호하는 장소로서 주거를 정할 줄도 안다. 이런 능력과 노력은 모두 본능의 작용에 의한 것이다.
한편 지성만을 앞세우는 것도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내일을 내다보지도 않고 발전시켜
온 물질문명은 공해라는 큰 문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물질 경제 문명의 일대 부작용이 아닐 수 없다. 그러
나 이제 우리는 신리를 알고 만물은 상호 의존의 관계를 맺고 존립한다는 것을 알았다.
상념을 중심으로 본능, 감정, 이성, 지성의 조화가 늘 이루어져 있는 마음의 상태, 그것이 바로 원만한 안심
의 모습이다. 이성은 마음의 제동 장치이며, 어떠한 환경에 대해서도 올바르게 대처할 수 있는 자신을 확립하
지 않으면 안 된다. 부조화한 감정적 상념 행위는 상대에게도 좋은 것을 줄 수 없다.
우리는 마음의 안정과, 지성으로 얻어지는 부동심을 확립하는 것이 인생의 목적 가운데 한 가지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 주변에는 물질적, 육체적 쾌락에 빠져 허둥대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이들은 항상 삶과 죽음, 물질
과 경제 등 온갖 욕망의 늪 속에 헤매기 때문에 신불을 깨닫기가 불가능하다.
우리는 누구나 태어나기 전에는 이번에야말로 죄업을 바꾸고 인간으로서의 사명을 완수하겠다고 굳게 다짐
하고 태어나는데 이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허송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윤회의 과정에서 혹자는 왕으로 군
림하여 자기 욕망대로 살다가 연옥에 떨어져서 인생에서 지은 죄업을 씻다가 천신만고 끝에 간신히 천상계
로 올라간 자도 있다.
그래서 천상계에서 곰곰이 반성하여 이번에는 반대로 가난한 환경을 택해서 태어나 열심히 땀 흘려 일하면
서 이웃을 돕는 생활을 통해서 성공적인 인생을 경험하기도 한다. 사람은 저마다 이와 같이 천차만별의 인생
을 희망에 따라 경험하고 있다.
그리고 인간은 항상 그 마음의 상태대로의 인생을 보내고 있다. 그 마음이 올바른 법을 깨닫고 있으면 번외
에 대해서는 이성의 브레이크가 걸리기 때문에 잘못을 저지르는 일이 드물다. 이와 같이 우리들의 의식의 중
심인 마음은 지금까지 우리들에게 온갖 고락의 인생을 경험하게 해 주고 있다. 번뇌에 지배당하기 쉬운 마음
을 정법에 귀의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평안과 조화의 불성을 자각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불퇴전(不退轉)의
정법을 알아야 한다.
이 세상의 만물은 한 시도 쉬는 일이 없이 변하고 있으며 그 위치에 그대로 멈추어 있을 수 없다. 또한 무엇 하
나 자기의 소유물이라고는 없다. 재산도 지위도 명예도 부모 형제도 심지어는 자신의 육체마저도 이 세상을
떠날 때는 가져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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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7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3)(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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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이 세상에서 수행하는 데 필요한 교재들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이 인생의 진상이다. 저 세상에 가
져갈 수 있는 것은 인생 항로에서 경험한 일체의 선과 악, 잠재의식에 수록된 상념과 행위의 기록뿐이다.
그러니 우리는 하루하루 후회 없는 삶이 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한다. 반성하는 마음은 인간을 집착에서
벗어나게 하여 영혼을 정화시켜 준다. 노여움, 비난, 탐욕, 어리석은 마음을 멀리 함으로써 일체의 괴로움의
원인을 끊지 않으면 안 된다.
마음속의 악에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 마음 속의 악에 사로잡히지 않는다는 것은 사리사욕, 부귀영화에 끌리
는 유혹을 물리치고 항상 빛의 세계와 조화의 세계에 맞추어 둔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해 손실, 정욕, 지위,
명예 등의 집착에서 떠나 항상 겸허하게 정법을 실천할 수 있게 된다.
물질 경제 문명의 고도성장으로 말미암아 현대 사회의 인간들은 거의가 다 마음을 상실하고 있다. 우리는 올
바른 마음을 되찾아 욕망을 물리치고 정신문명을 물질문명 위에 구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목적을 수행하
기 위해서는 비록 억울한 비난을 받고 돌팔매질을 당하고 칼로 베이는 한이 있어도 노여움의 마음을 일으켜
서는 안 된다.
인욕(忍辱)의 마음을 가지고 일체의 현상에 흔들이지 않는 부동심으로써 올바르게 생활해야 한다. 행여 육
체가 찢기는 한이 있어도 노여움의 마음을 가지지 말아야 신리의 생활을 지킬 수가 있다. 마음이 정법의 깨달
음을 얻기 위해서는 어떠한 어려운 일도 완수하고 잘 견디며 베풀기 힘드는 경우라도 보시해야 한다.
선행을 해도 결코 그 대가를 바라지 말아야 하며 자신에겐 엄격하고 남에게 항상 관대한 마음을 지녀야 한
다. 그러며 반드시 인생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게 된다. 물질문명이 향상되어 경제적으로 의식주가 안정되면
인간은 여분의 욕망을 채우려고 한다.
그런 의욕을 부추기는 사람이나 그런 욕망을 이용해서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장사꾼들은 마음에 평안이 없고
마음속에 언제가 격투가 그칠 날이 없는 삶의 주인공이다. 자신이 저지른 죄에 만성화된 사람도 많다. 마음
을 설법하는 자가 사리 사욕을 품으면 더욱 어두운 상념에 지배되어 마음의 평안을 잃고 육체적으로도 부조
화한 현상이 나타난다. 종교 지도자 가운데 늘 몸이 아픈 사람은 마음속에 격투가 있으며 자신의 마음을 깨닫
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이런 지도자가 지식과 의지만으로 중생을 지도하게 되면 마음의 세계를 혼란에 빠
뜨린다.
신자들의 불행에 빠뜨리는 것은 가장 큰 죄악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지도자는 세상에서 이미
지옥의 생활을 체험하고 있으며 저 세상에 돌아가서는 더욱 신랄한 반성이 요구되는 고통의 세계에 떨어지
게 된다.
나와 같은 영적 능력자들은 그 같은 인간의 마음을 속속들이 읽을 수 있다. 그들의 마음을 구석구석까지 즉석
에서 가장 명확하게 지적할 수 있다. 믿든 믿지 않든 이 사실은 아무도 부정하지 못한다. 영적 능력자의 마음
은 항상 빛의 세계에 통하고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이 또렷하다.
'신심이란 자신이 마음을 믿는 것이다.'
기독교나 불교는 생활의 지혜를 가르쳐 주는 마음의 양식이다. 형식적인 기도나 염불로는 인간을 구제할 수
없다. 만일 이 말이 믿어지지 않는다면 '기도하는 것만으로 호박이 넝쿨째 굴러 떨어질 리가 없다'는 속담을
한 번 새겨 볼 일이다.
신리에 의한 생활 이외에 인간 본래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오랜 전통적인 종교 행사가 반드
시 신리일 수는 없다. 이 세상을 떠난 망령들에게 경문을 공양해 줌으로써 그들의 과연 성불할 수 있을 것인
가 한 번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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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7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3)(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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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문을 외는 기도만이 신앙이 아니다. 마음을 상실한 종교 활동으로 가정생활에 지장이 생긴다면 그것은 이
미 신앙의 목적을 잃은 것이다. 신리에 맞는 인생을 항해한 사람들은 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광명의 세계에
거주하게 되며, 반면 부조화한 마음을 가지고 항상 불안에 떤 사람들은 지옥에서 자신의 본성을 깨닫게 될 때
까지 암울한 삶을 영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조상에 대한 공양은 살아 있는 자손들이 밝고 바르게 사는 길뿐이다. 제사상을 잘 차리거나 호화 분묘를 만드
는 것은 조상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들은 거기서 살지 않는다.
자기가 바르게 사는 것이 조상에게 최고의 기쁨이며 최대의 공양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조
상은 자손들의 마음의 모습을 보고 자신들도 반성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방황하는 조상 탓
에 불행이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가족들의 마음이 신리에 어긋나 있지 않은지 한번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아름답고 건강하며 평화스러운 생활을 하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공양이라고 할 수 있다. 살아 있는 인간의 불
행은 살아 있는 자신이 만들어 내고 있다. 그것은 부조화한 상념 행위가 방황하는 빙의령을 불어들임으로써
일어나는 현상이다. 가족 전체가 항상 정도를 걷는다면 한 사람 한 사람의 몸이 신불의 빛에 싸일 뿐만 아니
라 그 가정도 또한 빛으로 덮이기 때문에 방황하는 망령은 이 빛에 의해서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성불할 수
있게 된다.
살아 있는 인간들이 영적으로 정화하는 것은 방황하는 망령을 깨닫게 할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구제하는
길이 된다. 마음을 잃은 경문을 몇 만 번 외워 보아야 그것은 인내력과 성대를 단련시키는 연습을 될지언정
자기 자신의 마음을 구할 수는 없다.
경문의 내용을 실생활에 살리는 것이야말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지름길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예수
의 가르침에도 석가의 가르침에도 투쟁이라는 말은 없다. '네 원수를 사랑하라' '인내하라' '오른뺨을 때리거
든 왼뺨마저 대어 줘라' '인욕' '원수를 부모님처럼 공경하라' 등 그 같은 마음의 조화가 신리임을 깨닫게 하
는 말들이다.
미담으로 여겨졌던 '원수 갚기' 등은 신불의 자녀로서는 할 짓이 아니다. 충동적, 감정적 행위일 뿐이다. 이
원수에 대한 앙갚음의 파장은 반드시 나 자신에게 반작용으로 되돌아온다.
'부모의 원수다' '주인의 원수다' 하고 항상 편안이 없는 생활을 보내고 있는 것이 과연 인간의 참다운 모습이
라고 할 수 있겠는가? 여기에 인욕이 필요하다. 인과응보라는 것은 원인이 있으므로 결과가 나타난다는 것인
데 결과에 응분하여 앙갚음한다는 것은 더욱 그 죄목을 무겁게 할 다름이다.
응보라는 것은 자신이 만든 악의 결과가 다시 자신에게 되돌아온다는 것을 말한다. 물리적인 제재를 가하는
것은 좋지 않다. 죽은 부모의 원수를 갚아 보아야 그 원수의 아들은 또 '부모의 원수다' 하고 자신을 겨누게
되니 이 악순환은 그칠 날이 업다.
원수를 갚는다는 상념은 아수라계(阿修羅界)에 통해서 어둡고 검은 빛이 자신을 덮쳐 자신이 지옥에 떨어진
다. 그래서 이 지상에서 갖는 집념보다 더욱 강력해져서 연옥이나 지옥에서 고통 받아야 한다. 지옥에서도 서
로 앙갚음과 보복 행위는 그칠 새 없이 되풀이되며 이 지상보다 몇 십 배 더 가혹한 환경 속에서 수행하지 않
으면 안 되게 되어 있다.
원수를 갚기 전에 이런 결과를 낳게 한 원인을 추궁해서 어디까지나 냉정한 중용의 입장에서 이성의 힘을 발
휘하여 올바른 판단을 내려야 한다. 이렇게 할 때 지혜 있는 인생의 수행을 완수하였다고 할 수 있다. 정법을
깨달은 사람은 상대를 원망하는 일이 없으며 오히려 연민의 정을 가지고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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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7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3)(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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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이 불쌍한 자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아 주시고 마음에 평안을 내려 주십시
오.'
그렇게 상대를 위해 기도해 주자.
'원수는 원수로 복수하지 않는다.'
이 도량이 참다운 보살심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자신의 행위는 반성하지 않고 지위나 권력의 힘으로 상대
의 목숨을 빼앗는 자기중심의 어두운 마음은 언젠가는 그 입장이 바뀌어 자기 자신이 아픈 맛을 보게 된다.
작용, 반작용의 법칙에 따라 복수는 반드시 자신에게 되돌아오게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인간은 자신의
상념과 행위를 반성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깨닫게 될 것이다.
어떤 사소한 문제라 하더라도 그 원인과 결과를 잘 살펴서 판단을 잘못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아무리
어린아이라 할지라도 함부로 깔보아서는 안 된다. 어쩌면 장차 우리들의 위대한 지도자가 될지 모르는 존재
이다.
아무리 사소한 불씨라도 업신여겨서는 안 된다. 작은 불씨가 광대한 산야와 대도시를 태울 수 있는 힘을 지녔
기 때문이다. 작은 물방울도 오랜 시간이 흐르면 차돌까지도 뚫는다. 실낱같은 물줄기도 대하에 이르면 모든
물체를 밀어 불이는 힘을 발휘한다.
마음의 문이 열리면 대자연이 우리에게 사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러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진정한 인생의 기쁨을 맛볼 수 있게 된다. 정법을 실천하면 번뇌가 소멸되고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으
며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
여섯,
마음속에 우주가 있다.
인도의 많은 사찰들은 진리를 설법하는 장소였지 제사를 지내거나 우상을 받드는 곳이
아니었다. 예수 그리스도도 교회가 아닌
요르단강이나 나사렛언덕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했다.
우리들은 석가나 예수 시절의 신앙 자세로 되돌아가야 한다.
거기에 진리가 있고, 경문의 바른 정신이 있다.
[인간의 지혜는 본격 우주 시대를 열 것이다]
마음은 인생의 중심이다. 마음이 이 지상의 여러 유혹에 빠지면 고통이 생겨나고, 반대로 마음이 정도를 찾
아 편안해지면 깨달음과 법열의 기쁨이 찾아온다.
자(慈)는 사랑해서 키운다는 뜻이다. 이 마음을 가짐으로써 탐욕을 끊을 수 있다. 비(悲)는 불쌍히 여겨 도운
다는 뜻이고 모든 일을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마음을 잊지 않으며 이것으로 노여움을 끊을 수 있다.
희(喜)는 타인의 기쁨을 내 기쁨처럼 여기는 마음이다. 이 마음을 가짐으로써 나와 남을 구별하는 차별을 없
앨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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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7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3)(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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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捨)는 자신이 한 선행에 대해 보답을 바라지 않는 마음을 말한다. 은인과 원수를 구별하지 않음으로써 집
착의 마음을 끊을 수 있다.
그래서 중생에게 행복과 즐거움을 주는 것이 자비이고 모든 것을 평등하게 차별없이 대하고 중생에게 환희
의 마음을 가지는 것, 이것이 희사의 정신이다.
그러나 이 자비 희사의 마음을 가지고 번뇌를 이겨나가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정도를 지키
는 일도 또한 어렵다. 올바른 길을 걷는다는 것은 인생 항로에 있어서 올바른 생각과 행위를 하나하나 쌓아가
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경험한 지식과 학교에서 배운 지식은 보다 훌륭한 인생을 살기 위한 체험이 되어
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인생이 60년이거나 80년이거나 혹은 90년이거나 영혼의 영원한 윤회의 과정
에서 보면 그것은 향불이 타는 시간처럼 짧다. 인생이란 짧은 순간적 경험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은 긴 윤회를 거듭하고 있는 영혼이므로 그 잠재의식 속에는 전생에서 경험한 위대한 지혜가 간직되어
있다. 이 지혜는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 인생 항로를 이끌어 주는 영감으로 작용한다.
이 위대한 지혜의 보고를 여는 방법은 자기 자신의 마음의 열쇠에 의지하는 길밖에 없다. 이 열쇠는 신리에
바탕을 둔 생각과 행위라는 것을 나는 되풀이하여 반복했다.
특히 권력과 손을 잡고 이권에 개입하는 사람들은 사정이 바뀌어 그들이 권좌에서 물러나면 땅에 떨어진 물
고기처럼 비참하게 된 것을 깨닫게 된다. 굽실대던 아첨꾼들도 어느새 등을 돌리고 만다. 썩은 고기 덩어리
에 몰려드는 구더기 같은 주인공들도 모두 흩어져버리고 악덕업자들은 다시 새로운 상대를 찾아 떠난다.
인간의 교제는 이래서는 안 된다. 그런 현상은 사회의 지도자가 외면적 판단으로 인간의 가치를 결정했기 때
문에 일어난 결과다. 그 결과 마음의 존엄성을 무시한 지식이 인류를 물질문명의 노예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물질문명을 위해서 인류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를 위해서 물질문명이 존재해야 한다. 지성은 인류 사
회의 조화와 물질 평안을 목적으로 삼고 자기 자신의 영혼을 보다 고차원으로 연마하기 위한 것이어야 하며
신불의 자녀로서의 자각을 할 수 있는 것이 되어야 한다. 인간에게는 교양이라는 지식이 있지만 도를 깨닫지
못한 사람에게는 그것이 오히려 저항을 불러일으켜 괴로움이 원인이 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마음을 중시한 지성이 아니라 자기 보존과 욕망의 만족을 위한 촉매제 구실을 하고 있는 경
우가 많기 때문이다. 항상 중도의 입장에서 자신의 상념과 행위를 잘 반성해서 주어진 여건 속에서 적극적으
로 실천 노력한다면, 현상계에서 배운 지성은 잠재의식 속에 기억되어 있는 위대한 지혜와 조화를 이루어 인
생을 보다 훌륭하게 진보시켜 나갈 수 있다.
이러한 생활을 함으로써 우리의 영혼은 보다 정화되어 지혜의 문이 열리고 관자재의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된
다. 학문적인 가치는 이때 더욱 발휘되어 직업에 관계없이 신리의 걸어갈 수 있게 된다. 마음을 상실한 지성
은 파괴와 투쟁을 낳고 원자 폭탄은 인류의 수행자인 지구마저 파괴시킬 위력을 가지고 있다.
물질 경제 지상주의에 의한 고도성장은 공해를 낳고 있으며 농공업계에 있어서는 농약, 세제, 석탄, 석유, 휘
발유, 광업 식품에 이르기까지 인생의 항로를 가고 있는 우리들의 몸을 파괴할 상업적인 생활환경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것은 모두 코앞의 이익에 급급한 지식의 산물이며 마음을 상실한 물질문명의 부산물이다. 농약, 이산화탄
소, 염화연, 유화물 그 밖의 여러 가지 공해에 의해서 많은 희생자가 나타난 후에야 대책을 강구한다는 것은
신리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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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7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3)(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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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까지 물질문명의 노예가 되어버린 인류의 모습은 한 마디로 가련하다고 밖에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자본주의는, 마음을 상실한 자본가가 이익 추구에만 급급하여 노사의 불만은 계급투쟁을 낳아, 사회 문명은
상부층과 하부층의 계급투쟁을 거쳐 발전해 간다는 약육강식의 동물적 사고방식을 그대로 인류사 가운데 집
어넣고 말았다.
기업은 종업원에 의해서 성립된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한동안 그들은 경제 노예의 대우밖에 받지 못했으며
독점 자본가의 배를 채워 주는 희생자에 불과했던 적도 있다. 그러나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게 마련이
다. 강자에 대해서 약자는 단결로써 저항하여 소위 계급투쟁이라는 것으로 독점 자본가와 권력자 앞을 가로
막고 말았다.
많은 대중은 조상대대로 권력자의 혹심한 학대 속에서 살아왔다. 그래서 자유 평등의 사회를 갈망하는 대중
의 투쟁사가 필연적으로 대두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자유 평등이어야 할 대중은 단결이라는 미명 아래 개인
의 자유는 무시당하고 새롭게 대두된 소위 귀족이라는 족속들의 노예로 전락하고 만다.
마음을 상실한 그들 지도자들은 머리로 짜낸 계급투쟁을 대중에게 강요하여 때로는 무력 때로는 권력과 조직
력을 앞세워 단결을 호소하고 있다. 물질주의의 옷을 입고 그들 권력자들은 한결같이 마음을 상실하고 있기
때문에 인간을 신뢰할 수 없다.
따라서 '어제의 동지, 오늘은 인민의 반역자', 그런 낙인을 찍고 어제까지의 동지를 가차없이 처단해 버린다.
물리적인 힘에 의해서 형성된 물리적인 단결은 그 어떤 사상에 의해 무장되어도 생활이 윤택해지고 안락해지
면 붕괴되고 만다. 인간의 마음은 충족될수록 자유를 바라고 불성에 눈뜨게 되는 것이 신불의 자녀로서의 당
연한 귀결이다. 물질적, 물리적 압력을 가해서 단체를 조직한 지도자들에게는 평안이 없다.
권좌에서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아욕(我欲)이 강한 부하들에게 언제 배신당할지
모르는 것이 또한 그들의 생태이다. 평안이 없는 부조화한 환경도 다름 아닌 그들 스스로가 만들어 낸 것이
다.
'자신이 뿌린 씨앗은 자신이 거두어 드린다."
이 말은 인과의 법칙이며 진리이다. 계급투쟁을 강조하는 지도자들을 이와 같이 서로를 불신하고 내부의 갈
등과 암투로 밤잠을 설치며 마음의 평화를 잃고 있다. 그들은 그 원인을 독점 자본가, 제국주의 혹은 권력자
타도에 대한 민중의 투쟁심 결여에 그 책임을 전가하고 자기 자신의 행위는 반성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언젠가는 투쟁에 지쳐 쓰러지고 말 것이다. 또한 언젠가는 권좌에서 쫓겨나서 고뇌 많은 인생
을 맛보아야 한다. 이런 불쌍한 지도자가 그 얼마나 많은가. 이런 지도자들은 '인민을 위해서'라는 대의명분
도 결국 자기 보존을 위한 괴로움 의외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사실을 언젠가는 깨닫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투쟁심은 자신의 마음을 파괴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독점 자본가도 자기 보존의 욕심을 버리고
만족할 줄 알아야 하며 고통 받는 많은 대중에게 자비와 사랑의 손길을 뻗지 않으면 안 된다. 나 개인의 명예
를 위해서가 아니라 태양의 광열 같은 평등한 자비심으로 희사하는 것이 인류애의 구현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이와 같이 환경, 지위, 명예를 초월해서 노사는 평등해야 하며 서로 공생 공존 할 수 있는 환경을 상호
신뢰로써 수립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서로 감사하고 보은의 행위를 실천하여 서로 만족할 줄 알 때 노사의 투쟁은 모습을 감춘다. 사실 이러한 투
쟁의 물가의 안정까지도 흔들어 놓고 있다. 무력이나 권력에 의해서 다스려지고 있는 사회는 인간의 자유를
속박하여 벌칙으로써 대중의 불만을 억제하고 있다. 물리적, 정신적 압박에 의해서 지배되어 있는 계층은 언
젠가는 반드시 내부의 불만을 폭발시켜 부조화한 사상을 수정해 간다. 때에 따라서는 봉건 사회의 개혁을 위
해서 뜻있는 지도자가 일시적 방편으로 엄격한 통제 경제를 펴 평등한 사회를 만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많
은 희생자를 내고 물리적으로 만들어진 사회는 반드시 반작용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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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7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3)(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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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는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음으로 폭력 행위에 의한 탄압을 강행하여 반대자를 숙청해 버린다. 아무리
막강한 권력자라도 언젠가는 권력을 잃게 된다. 그들의 마음은 불쌍하기 그지없으며 오랫동안 저지른 죄를
지옥계에서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반성의 기간 동안 자신이 저지를 투쟁과 파괴 행위, 신리에 거스른 행위를 뼈저리게 뉘우치지 않으면 안
된다. 지구상의 만물은 신불의 자비에 의해서 영혼을 수행할 수 있도록 부여된 것이다. 모든 재산이며 물질
은 우리가 육체라는 배를 타고 수행하고 있을 동안에만 빌리고 있는 일시적인 차용물에 지나지 않으며 언젠
가는 대자연에 반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차용물은 본디 그 어떤 인간도 독점해서는 안 되는 물건이다. 인류는 누구다 다 불성을 깨닫고 평등하게
살아갈 권리를 신불로부터 부여받고 있으므로 이 차용물은 인류 전체의 조화와 발전을 뜻있게 활용하지 않으
면 안 된다.
인류는 대자연의 자원 속에서 생활의 지혜를 찾아내어 인생을 보다 풍족하게 해 나간다. 빛의 에너지, 전기
에너지, 자력 에너지 등을 응용한 기차가 발명되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은 우주 공간을 점차 정복하여 좁혀가
기도 한다.
물질 지상주의는 전생의 유물로 전락하게 될 것이며 물질의 노예에서 해방되어 인류는 그 언어까지도 통일하
게 될 것이다. 자기 보존이나 욕망의 부조화한 사고방식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전 인류
의 상호 협력, 조화 이외에는 전진할 길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인류는 모두 형제임을 깨닫게 되고 마음과 마음이 조화하는 사회가 실현되어 간다. 원자 세포로써 구성되어
있는 육체는 정법을 깨달은 영혼이 지배하여 육체와 의식이 상호 관계도 확실하게 해명될 것이며 육체의 수
명은 더욱 길어질 것이다.
인류의 지혜는 또 다른 천체를 발견해서 삶의 공간을 이주할 것이다. 22세기, 23세가에 인류의 지혜는 우주
공간과 바다 밑을 발전시켜 풍부한 지구 국가적 환경을 건설할 것이다. 그 동안에는 인간의 어두운 마음에 의
해 몇 번이나 국지적 천재지변이 일어나 마음이 혼란한 인간에 대한 경고가 있을 것이며 현재의 국가 조직들
은 우주로 눈을 돌리게 될 것이다. 우리는 한 시도 한 장소에 머물지 않고 차원이 다른 세계로 진화해 가는 생
명이다.
[수면 중에는 영혼이 육체를 떠난다]
영혼은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영원히 왕래하면서 살아가는 생명이라는 것은 이미 밝혔다. 물질은 에너지 입자
가 모여서 고체화된 것이며 그 자체가 능력을 갖고 있다. 또한 질량과 에너지는 공존하며 불멸이라는 것을 현
대 과학은 증명했다.
에너지 입자가 집결된 것은 육안으로 볼 수 있으나 에너지 원형은 볼 수 없다. 전기 에너지, 빛 에너지, 열 에
너지, 자력 에너지, 중력 에너지를 육안으로 볼 수 없다.
하지만 이 에너지들이 우주 공간에 존재한다는 것을 아무도 부정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육체를 지
배하고 있는 의식[영혼]의 존재도 부정하지 못한다. 육체가 전부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의 잠을 놓고 생각해 보면 알 수가 있다. 잠잘 때는 시각도 청각도, 전기적 진동은 일정하게 움직이고 있
지만 기능은 작용하지 않는다. 즉 잠잘 동안에는 귀가 열려 있는 데도 듣고 기억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왜 그
럴까 생각해 보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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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7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3)(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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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뇌 세포가 기억 연합적 형태라고 할 수 있는 유기물 세포 소자(素子)로써 구성되어 있다고 가정한다
면, 잠을 자는 동안에도 외부적인 일체의 현상을 기억할 수 있어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애석하게도 그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수면 중에는 의식이 육체에서 떠난 상태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잠든 동안에는 영혼이 떠나 있다. 하
지만 영자선(靈子線)이라는 것에 의해서 육체와 연결되어 있으므로 언제라도 필요에 따라 육체로 되돌아올
수 있게 되어 있다. 마치 연이, 실을 감으면 되돌아오는 것과 같다.
우리의 오관을 단독으로는 작용할 수 없으며 의식이 육체에 되돌아왔을 때 비로소 그 지배하에 놓이게 된다.
오관은 객관적으로 현상을 포착하여, 대뇌에 전기적 진동을 일으켜 그 파장을 의식에 통신 전달한다. 의식의
세게는 육체 전체에 미치고 있다.
생각하는 능력도 일하는 능력도 모두 영혼의 의지에 의해서 가능하다. 육체를 지닌 어린 생명이 세상에 태어
나서 공기를 마시면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데도 엄마의 젖을 빠는 것을 보라.
이것은 신불로부터 부여받은 본능의 힘인 동시에 전생에서 되풀이했던 습관의 반복이며 관성의 법칙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젖먹이가 과연 두뇌로 판단해서 젖을 빨아야 한다고 생각 했을까? 그것은 영혼의 작용에 의해서 본능이 현상
화 된 모습이다. 울고, 잠자고, 젖을 빠는 시간대를 거쳐 유아는 성장해 간다. 잠을 잔다는 것은 육체의 휴식
인 동시에 차원이 다른 세계에서 마음의 연료인 에너지를 보급 받아 오기에 필요한 시간대다.
자비도 사랑도 없는 부조화한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은 그 영혼이, 수면 중에 차원이 다른 세계에 갔을 때 자
신의 분신이나 수호천사에 의해서 그 의식이 연마될 때가 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머리가 무겁거나 아픈 것은 대개 영혼이 연마된 뒤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런 현상이 일
어났을 때는 연마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그 원인을 찾고 자신의 일상생활을 잘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기분 나쁜 꿈도 또한 영혼에 대한 경고이다. 영혼이 육체에 돌아오면 꿈은 거의 기억에 남지 않도록 되어 있
기 때문에 띄엄띄엄 단편적인 것만 기억할 수 있다. 마음의 조화되어 있으면 부조화한 기분 나쁜 꿈은 꾸지
않는다.
이렇게 말하는 자체가 꿈같은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지만 원인이 있으므로 현상이 일어난다는 신리를 이해한
다면 결코 엉터리 같은 이야기로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꿈에서 뜻밖의 장소에 갔을 때는 전생에 다녀온 경우가 많다. 의식이 육체로 돌아오면 단편적인 희미한 기억
밖에 남지 않기 때문에 흔히 말하는 꿈같은 이야기가 되어 버린다. 이 세상은 어디까지나 영혼의 수행장인 3
차원의 세계인만큼 조화되어 있는 올바른 마음의 소유자, 정법 생활을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 이외에는 비록
차원이 다른 세계의 상태를 보고 온 경우에도 기억을 되살릴 수 없도록 틀이 짜여져 있다.
신리를 깨닫고 마음이 조화됨에 따라 비록 꿈이라 할지라도 차원이 다른 저 세상에서 견학한 것을 처음부터
꿈까지 기억해 낼 수 있게 된다. 우리의 의식이 육체를 이탈한다는 사실은 광자체라는 또 한 사람이 자신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 광자체가 차원이 다른 저 세상에 갔을 때 이따금 죽은 친지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어젯밤 꿈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나타나서 무슨 말을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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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7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3)(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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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죽은 어머니를 만난 경우이다. 이 세상에 살아 있을 때의 얘기를 하기도 하고 저 세상의 아름다운 풍
경이며 저 세상 사람들이 입고 있는 온갖 옷들에 관한 일체의 기억을 가지고 돌아온다. 또한 살아 있는 친구
의 수호천사를 만나서 대화하고 돌아올 경우가 있다. 우리 영적 능력자들은 차원이 다른 저 세상을 탐방하고
돌아오는 일이 아주 많다. 물론 지구상에서도 우리의 의식이, 즉 광자체가 육체를 이탈하여 지구 어디든지 보
고 온다는 것은 간단한 일이며 별로 놀랄 일이 아니다.
인간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이런 능력을 지니고 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능력을 개발하지 못하고 사
장시키고 있을 따름이다. 이런 능력은 어디까지나 마음의 조화에 의해서 발휘할 수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사람들은 육체적인 수행이나 최면적인 암시 등에서 그것을 구하려고 한다.
문제는 그럴 때 자칫하면 악령에 빙의되어 폐인이 될 수도 있으니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신리를 깨닫지
못한 채 영적 현상만을 좇는 것은 인생의 가장 위험한 줄타기이다.
관자재력(觀自在力)이 생기는 신리는 마음과 행동의 일치에 있다. 불지(佛智)도 신의 힘도 자신의 마음이
왕국에서 샘솟는 것이고 수호천사의 도움으로 지혜가 열리는 것도 초능력이다.
일상생활을 소홀히 하고 마음과 행위가 조화되지 못한 채 영적 현상이 일어나는 사람은 우선 마음에 불안이
없는가, 몸에 이상이 없는가, 거만하지 않은가, 성내는 마음, 원망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가 등을 잘 살펴
서, 한 가지라도 걸릴 경우 그 마음을 올바른 방향으로 수정하지 않고서는 영적 재화(災禍)를 면할 길이 없다
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영적인 길이 열리는 것이 인생의 목적은 아니다. 신불의 자녀로서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 정법을 배우고 그
것을 마음과 행동의 양식으로 삼아야 하는 일이다. 마음과 행동의 조화를 꾀하고 서로 도와서 보다 좋은 인
간 사회를 구축하며 평화의 유토피아를 완성해야 한다.
이것이 인생 수행이 중요한 목적이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사람은 상념의 힘에 의해서 의지가 생기
고 그 선의 열매가 열린다. 이 선의 열매를 위해서 우리는 자신의 힘으로 자기 확립을 이룩하지 않으면 안 된
다.
정법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은 악몽에 시달리지도 않으며 아침에 일어나면 상쾌하다. 항상 마음은 평화롭고
여러 가지 현상에 집착하지도 않으며 안심하고 하루를 보낸다.
정법을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도 가끔 지옥에 끌려갈 경우가 있다. 그것은 견학을 위한 의도적인 목적에서 이
루어진 여행이다. 정도에서 벗어난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은 그 마음이 항상 불안하고 부조화한 세계로 통하
고 있기 때문에 그 꿈도 악몽이다. 꿈은 의식 가운데 일어나는 현상이지만 그 의식이 현상계의 육체에 되돌아
오면 앞서도 말한 바와 같이 표면 의식과 상념대의 저항에 부딪쳐 기억해 내기가 힘들다.
[전생을 비디오로 볼 날이 온다]
의학적으로 사람의 대뇌는, 생각하고 상상하며 기억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관점은 어디까지나 눈으
로 나타난 현상만을 보고 판단한 결과이다. 그런데 이 의학적 판단이 과연 옳은 것일까.
이미 여러 번 언급한 것처럼 나는 그 부분에 관해서는 사람의 잠에 관한 부분을 인용해서 설명했다.
사람이 잠을 잘 때는 왜 우리의 오관, 즉 다섯 개의 감각 기관은 뇌에서 반응하지 않는 것일까. 가령 우리가
잠잘 때는 눈을 떠도 보이지 않는다. 머리맡에서 누가 이야기를 해도 귀에 들리지 않는다.
심지어는 도둑이 들어와 방 안이 물건을 몽땅 털어가도 까맣게 모르는 경우도 있다. 왜 그럴까. 그렇다고 귀
의 고막이 그 소리의 진동을 뇌에 전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분명히 귀에서는 말소리를 듣고 그 소리의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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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7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3)(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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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을 전달하고 있다. 그런데도 그 예민하고 정확한 뇌는 전혀 작동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뇌는 기억하고 반응해야 한다. 그런데 잠자는 동안에는 기억이 남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한 가지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즉 뇌 세포가 모든 기억의 근본이라고 생각하는 판단은 사람이 깨어 있을 때뿐이다. 눈뜨고 있
는 동안에만 통용되는 말이라는 것이다.
수면 중에 뇌 기능은 정지된다. 그것을 보면 우리 몸이 주인은 육체, 즉 세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가 있
다. 뇌 세포가 우리 몸을 모두 통솔한다면 수면 중에도 우리의 오관은 살아 있어야 한다.
그렇다며 뇌 세포 이외의 제3의 힘은 무엇인가. 그것은 곧 영혼이다. 우리 몸을 정신, 의식이라는 영혼이 주
관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게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사람이 잠들어 있을 동안 감각이 마비되는 것은 의식
즉, 우리들의 영혼이 육체에서 떠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육체, 즉 뇌 세포 등은 밖에서 일어나는 여러 현상
의 파장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잠에서 깨어날 때 비로소 의식이 육체에 돌아온 것이므로, 곧 불교에서 말하는 용어인 색심불이(色心不二:
色卽是空[색즉시공])의 상태가 되어 자기의 의지에 따른 생각과 행위의 생활 활동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은 시각 신경을 통해서 뇌 세포의 신경 부분에 전기적 반응을 일으켜 그 뇌파의 진동[통신]에
의해서 영혼에 전달되는 과정을 거친다. 그와 마찬가지로 다른 오관들도 저마다 담당 신경 부위에 통신이 전
달되어 의식이 기억할 수 있게 된다. 즉 오관의 작용은 객관적으로 포착한 영상들을 각 신경이 뇌에 전달하
면 뇌에서는 뇌파라는 전기적 진동을 일으켜 영혼에 전달하는 메커니즘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우리 몸이
다.
뇌 속에 기억이 방이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신리를 깨닫고 정법 생활을 통해서 영적인 눈이
열린 영적 능력자들은 이 세상에 살면서 한 번도 배운 적이 없는 말로 자신의 전생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그 전생은 한 장소 한 사람만 증언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곳에서 여러 사람에 의해서 증언된 사실이
다. 그 내용이 서로 일치하는 것을 보면, 우리는 다른 영혼의 존재를 부인할 수는 없다.
우리 영적 능력자들이 사도행전 2장에 씌어 있는 것과 똑같은 전생의 대화를 거침없이 하고 있는 증거가 있
는 이상 영적 존재를 부인할 수는 없다. 나처럼, 태어나서 불교나 기독교가 무엇인지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
고 배운 적도 없는 사람이 그 같은 신리를 통달하고 있다는 사실 역시 그 증거의 하나다.
독자들 중에는 종교에 조예가 깊은 분도 많으리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에 비하면 정말 풋내기에 지나지 않는
다. 그런 내가 전생을 기억해 내고 있다. 만약 사람의 기억 장치가 뇌 세포에만 있다면 내가 전생의 과거로 거
슬러 올라가서 내 전생의 육체, 즉 뇌를 되찾지 않는 한 전생의 회상은 불가능할 것이다.
내가 만일 뇌 세포에만 의존한다면 전생에 가서 당시의 육체를 찾기란 그야말로 꿈에도 있을 수 없는 일이
다. 그런데 지금 나는 실제로 전생의 모든 과거와 전생의 또 그 전생과 여러 차례 전의 기억까지 되살릴 수 있
다.
그 사실만 보더라도 모든 기억의 근본은 영혼 속에 있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다. 결국 뇌라는 것은 의식의 의
지에 따른 통신 활동의 역할을 할 뿐이며 육체 각 기능은 영혼의 관리실 계산 센터와 같은 곳이라고 인식하
면 좋을 것 같다.
그래서 우리가 잠들었을 때 영혼은 우리 몸에서 떠나 있으며 깨는 순간 영혼은 우리 몸으로 되돌아온다. 죽
음 역시 육신이 기능을 상실했을 때 영혼은 몸을 떠나는 것이다. 우리의 영혼은 이 세상에서 몸을 잠시 빌려
쓸 뿐이다. 그래서 나는 여기서 육체를 영혼이 타는 배로 비유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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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7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3)(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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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이야말로 우리들의 근본이요 우리의 자체이며 영혼은 이세상과 저 세상을 바꾸며 윤회하고 있는, 삶도
죽음도 없는 생명 그 자체이다. 인간의 삶과 죽음이란 육체의 갈아타기에 지나지 않는 것이며 비록 육체가 멸
망해도 영혼은 영원히 변화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가 전생을 회상하기도 하고 이 세상에서 배운 적도 없는
말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생명이 결코 이 세상에 국한되어 있다는 사실을 잠재의식의 비디오테이프로 재생시켜
볼 수 있는 게 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우리는 인생 항로의 나룻배[육체]에서 오관이라는 노를 저으면서 살고 있기 때문에 육체가 전부인 것처럼 착
각하고 있다. 그 결과 무슨 일이든 육체의 지배자인 의식과 그 의식의 중심인 마음과 상의도 없이 오직 오관
의 판단에만 의지하여 살고 있다.
자기 보호와 사욕에 빠져 지적 판단에만 기울어져 신불을 잊는 것이다. 우리들의 영혼은 즉 의식에 잠재하고
있는 마음의 세계에는 전생에서 배운 경험이 무한한 지혜의 보고로 간직되어 있다는 것은 이미 말한 바 있다.
조화로운 정신생활에 의해 잠재의식을 열면 위대한 지혜가 쏟아져 나온다. 우리의 영혼은, 윤회에서 쌓은 전
생의 귀중한 경험들을 살펴 보다 높은 차원으로 진화해 간다. 이것이 인생 수행의 참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그렇게 하는 것이 신불의 자녀로서 당연한 의무라고 할 수 있다.
만일 여기에 의문을 품는 독자가 있다면 이 책을 잘 읽어서 우선 신의 뜻에 맞게 살아 보면 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의 건강, 운세 모든 면에 반드시 좋은 결과가 나타나리라는 것을 나는 확신한다.
하지만 영적 현상만을 쫓고 영적 능력만 탐을 내는 사람들이 조급하고 자기만족, 영업 목적, 자아의 사욕, 자
기 보호 등의 마음으로 그것을 이용하려 든다면 예의 없이 짐승의 영혼이나 악령에게 의식을 빼앗기고 고뇌
의 늪에 빠질 것이다. 신의 뜻에 맞게 조화를 유지하면서 사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런 생활을 할 때
비로소 인간은 두뇌가 전부라는 착각에서 벗어날 수 있다.
우주란 그 자체가 창조자의 몸체이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지구도 신의 몸체의 일부이며 그 크기는 한 개
의 작은 세포와 같은 존재에 불과하다. 이 세포[지구]의 조화를 통해서 신은 자신의 영혼이 탈 수 있는 승용차
[육체]를 만들고 거기에 본능을 부여하여 사람을 세상에 살게 한 것이다.
결국 우리의 몸이란 신의 영혼이 거주하는 장소이며 그 때문에 영혼은 윤회와 더불어 영원 불멸한 것이다. 죽
음이란 이 승용차가 날고 고장이 나서 더 이상 인생 항로를 달릴 수 없게 될 때 운전수인 영혼이 새로운 광자
체라는 승용차를 갈아타고 저승으로 돌아가는 전환 과정이다.
이 전환점에서 인간은 자신이 걸어온 인생 항로와 녹화 필름을 재생시켜 보면서 자신이 저지른 생각과 행위
를 심판함으로써 선과 악이 분명히 드러나게 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기쁨의 천국으로 어떤 이는 이승의 인
생보다 더욱 가혹한 수행장으로 떨어져서 영혼의 세탁을 하게 된다.
그처럼 죽음이란 지금 자기가 타고 있는 승용차[육체]와의 결별에 지나지 않으며 우리가 저 세상으로 돌아가
는 것은 새로운 차를 타는 이치이다.
우리가 저 세상에 가서 마음이 깨끗했던 사람들끼리 서로 어울러 이 세상에서 수행했던 당시를 회상하면서
즐거운 대화를 나눈다고 생각해 보자. 얼마나 기뿐 일인가. 친한 친구들과도 서로 만나서 회포를 풀면서 육체
를 지니고 지구에 살던 당시의 장단점을 반성하면서 인생은 얼마나 소중하고 깊은 추억이 서려 있던 곳인가
를 회상한다면 참으로 지금의 우리 생활이 얼마나 중요한 추억 만들기의 일부인가를 알게 될 것이다.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 것인가. 추악한 추억을 만들 것인가는 전혀 우리들의 마음과 의지에 달려 있다. 이제
우리는 죽음이 결코 영원한 소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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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7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3)(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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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서는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이 공존하여 살고 있지만 저 세상에는 그 단계가 세밀하게 구분되어 같
은 종류끼리 살아가게 된다. 그 상황은 이 지구상에서는 상상조차 못할 정도로 엄격하다. 이 지상에서는 돈
만 있으면 웬만한 일은 가능하지만 저 세상에서는 돈 따위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 마음의 상태가 모든 가치
판단의 기준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저 세상이라는 실재 세계는 지옥을 제외하고는 거짓이 전혀 통하지 않는 조화된 세계이다. 이 지상은 영혼의
수행장답게 육체의 오관이 육감에 미혹 당해 근본적인 마음을 상실하기 쉽게 되어 있다. 전생에서 경험한 지
혜는 잠재의식 속에 밀폐되어 있으므로 육체와 물질이 전부인 것처럼 착각하고 스스로 고통을 만들어 내는
인생을 걷게 된다.
이 밀폐된 문은 올바른 사념을 가지고 생활함으로써 열린다. 집착에 사로잡히지 않고 신 리의 길을 걷는 것
이 자신을 구제하는 유일한 길이다. 신 리의 길은 환경, 지위, 명예, 경제, 직업, 육체적 결함 따위와는 전혀
관계가 없으며 주어진 여건 속에서 얼마든지 학습이 가능하다.
이 신 리의 길은 일상생활 가운데 존재하며 우리가 노력하면 할수록 마치 공기처럼 우리들 둘레 가까이 있다
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람들은 마음의 문이 닫혀 있기 때문에, 육안에 비친 현상만으로 선악, 좋고 싫음 등의
가치 판단을 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자기중심으로 행동하고 비뚤어진 생각을 마음속에 품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어떤 문제도 중요의 마음으로 판단해야 한다. 한편 우리의 귀는 많은 소리를 들을 수 있지만 이것 역시 눈과
마찬가지로 큰 결함을 갖고 있다. 코도 귀도 온갖 시행착오를 되풀이 하고 있으며 그런 체험을 통해서 영혼
의 공부는 진행된다.
괴로움도 슬픔도, 기쁨도 희망도 모두 인생의 한 경험에 지나지 않으며 이런 경험을 토대로 반성이 이루어질
수 있고 마음의 진화를 꾀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인생의 수업 과정이다.
마음이 문이 열리면 신불에 빛에 싸여 그 법열의 기쁨은 말이나 문자로 이루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그리고
여러 가지 기적적인 현상이 일상생활에 나타나 불행과 고독에서 해방되며 만물이 모두 신 리의 샘이라는 것
을 알게 된다.
저 세상도 이세상도 마음의 창을 통해서 서로 대화가 가능하며 만물에 의식이 존재 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다. 육체도 세포 의식의 집단이며 우리의 영혼은 이 육체 속에 동거한다. 이 육체는 부모로부터 받은 것이며
그 선천적 인과를 계승하고 있다.
또 자기 자신이 만들어 낸 후천적인 원인과 결과의 어울림에 의해 육체는 성립되며 가치도 정해진다고 할 수
있다. 육체는 골격과 근육 세포 집단에 의해서 구성되며 내장의 세포 집단을 합하면 약 60조에 이르는 세포
로써 이루어져 있다. 즉 세포 생명의 집단이 육체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 세포도 이 지구상의 만물과 마찬
가지로 원자로써 성립되어 있고 그 크기도 각 기관과 활동 목적에 따라 각각 다르다.
심장은 심장으로서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세포 집단에 의해서 구성되고 심장으로서의 의식을 가지고 있
다. 간장은 간장으로서의 사명을 다할 수 있는 세포 집단에 의해서 구성되고 있으며 여타의 내장에 있어서도
저마다의 목적을 완수할 수 있도록 유사한 세포 집단에 의해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머리, 몸통, 양팔, 양다리의 오체(五體)가 잘 조화됨으로써 비로소 건전한 육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데 이 오 체에도 저마다 의식이 따로 있다. 불행하게도 한 쪽 다리를 잃은 사람도 그 다리가 있을 때와 마찬가
지로 가려움증이나 통증을 느끼게 되는데 이것을 의학 용어로 유체 감각(phantom pain)이라고 말한다. 이
유체 감각은 비록 우리의 육체가 없어져도 의식 체의 몸은 존재한다는 산 증거다. 의식 체의 몸을 광자 체라
고 하는데 우리가 죽으면 원자 체의 육체를 버리고 광자체의 육체를 갈아입게 된다. 나처럼 영적 능력을 가지
고 마음의 눈으로 인체를 바라보면 병든 부분은 칼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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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7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3)(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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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환자에게 아픈 부분을 지적하면 당사자는 시인하고 의사의 진단과도 일치하고 있다. 또 의사가 진단해
서 모르는 증상까지 나는 알아낼 수 있다. 그 한 예를 들어보자.
지바현에 사는 한 부인은 50년 동안이나 건강이 좋지 않아 온갖 한의학과 병원을 찾아다녔으며 병을 고치기
위해 광적으로 종교에 매달렸지만 낫지 않았고 그 원인조차 모르고 있었다.
이 부인이 내게 병을 상담하러 왔다. 내가 부인의 얼굴을 보니 질병 현상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녀
의 병은 얼굴 화장 탓이었다. 마음의 눈으로 내장을 살펴보니 자궁부위가 빨갛게 부어 있고 유착되어 있었
다.
나는 부인에게 그 부분을 지적했다.
"사실 한 달에 열흘은 아팠습니다. 20년째 견디고 있습니다."
부인은 내게 그 사실을 시인했다.
"어떤 치료를 받을까요?" 나는 그녀에게 확신을 주었다.
"도쿄에 있는 모 병원의 모의사와 상의해서 금년 12월 2일에 입원하십시오. 그러면 부인은 다음 해 2월 중에
는 고통에서 해방될 것입니다."
결과는 내가 예언한 그대로였다. 완쾌한 부인은 마음의 위대성을 알기 위해서 인생의 올바른 생활 방식을 날
마다 기쁨으로 실천하면서 살고 있다. 또 이런 예가 있다.
한 청년이 창백한 얼굴로 나를 찾아왔다. 청년은 내 앞에 앉자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고 내 얼굴만 쳐다보았
다. 그때 나는 그의 몸에서 위장이 하는 말을 들었다.
"저는 이 사람의 위장입니다. 이분은 폭음, 폭식가이며 밤낮없이 음식을 먹기 때문에 질색입니다. 저는 일정
한 운동과 휴식으로 컨디션을 조절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합니다. 미안하지만 당신께서 이분에게 식사량을
줄이도록 가르쳐 주십시오."
그 청년의 '위장의 의식'이 내 귓가에 속삭였다. 나는 위장이 대신 이야기하는 경우를 처음 경험했다. 이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으므로 나는 청년에게 말했다.
"당신은 위장이 좋지 않군요."
내 말에 청년이 놀랐다.
"어떻게 아셨죠? 맞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위장이 나빠서 병원에 다니고 있습니다만 좋아지지 않습니다. 집
안에 재앙이라도 있는지요?"
청년은 마치 내가 점쟁이나 무당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했다. 나는 청년이 불쌍했다. 그 청년은 자신의 육체
적 고통을 재앙 탓으로 돌리고 있었다. 왜 자신이 그런 몹쓸 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지 반성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당신은 위장이 나쁜데도 늘 뭔가 먹지 않으며 못 견디는 모양인데 음식은 늘 팔 푼 정도로 부족하게 먹어야
좋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저는 빼빼 말랐지만 잘 먹습니다. 먹지 않으면 위가 아파요. 어떻게 좋은 방법
이 없겠습니까?" 처음에는 장난 반으로 찾아왔던 그 청년도 정곡을 찌르자 정색을 하고 매달렸다. 나는 그 청
년의 수호천사에게 물어 보았다. 그러자 수호천사는 지금 '이 사람은 점쟁이도 의사도 아닌데 어떻게 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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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속까지 알 수 있을까, 친구의 말대로 참 신기하다'고 여긴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다분히 나를 경계했던 그 청년도 마침내 두 손을 들고 정직하게 자신의 건강 상태를 털어놓았다. 육
체의 지배자인 의식까지도 '제 위장은 나쁩니다.'라고 말하고 있지 않는가. 의지의 나약함은 위장에 나쁜 영
향을 미치고 있음을 나는 똑똑하게 알 수 있었다. 나는 청년에게 이렇게 지시했다.
"아침에 녹즙 한 홉과 꿀과 빵으로만 가벼운 식사를 할 것. 점심 저녁은 죽과 된장국 한 공기씩으로 견디고 다
른 것은 일절 먹지 말 것, 그렇게 한 달쯤 하면 좋아집니다. 그 후 의사에게 가서 진찰을 받아 보십시오."
한 일주일 동안은 그때까지 등속도 운동적(等速度運動的)현상인 아픔이 나타난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 후
청년은 내 지시를 잘 지켰기 때문에 자신을 극복할 수 있었다. 군것질도 하지 않게 되었으며 지금은 완전히
회복되어 체중도 늘고 양복도 모두 입을 수 없게 되었다고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는 모양이다.
마음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다는 것은 생활 행위에 자신감을 준다. 자제력도 강해지고 힘찬 브레이크 작용을
하게 된다. 그런 일은 우리 그룹에서는 매우 흔한 것으로, 예를 들자면 한이 없다. 이 이야기에서처럼 육체의
여러 기관도 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다는 것도 그 한 예에 지나지 않는다. 장도 피로
할 때에는 위와 마찬가지로 파김치가 되어 이젠 될 대로 되라고 자포자기의 말을 내뱉는 그런 실례도 있었다.
그처럼 육체의 여러 기관도 영혼의 승용차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니 그 목적
달성을 위해서도 운전기사인 자신의 마음이 확고하지 않고서는 그들 육체 세포들도 협력할 길이 없다는 것
을 명심해야 한다.
육체는 항상 그 주인을 돕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무절제한 생활을 하지 않는 것이 육체에 대한 보은의 행
위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몸 밖에 배설되는 오물에 대해서도 배설이 만들어 주는 공로에 감사의 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만일 배설물
이 막힌다면 큰일이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들어가는 물건이나 나오는 물건이나 우리들은 당연한
것으로 보아 넘겨서는 안 된다.
육체는 모체의 힘을 빌려 육체로서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 신불과 약속하여 태어난 생명체이며 언젠가는
그 사명을 다하고 자연으로 순환되어 가는 것이다. 우리들의 영혼과 육체는 이와 같이 연(緣)에 의해서 결합
되며 인간으로서의 수행은 그 바탕 위에서만 성립된다는 것을 한 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일곱,
예수와 붓다가 우리를 사랑한다.
오늘날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지식이나 의지로 도금된 불교와 기독교를 버리고
본래의 붓다와 예수의 가르침을 되찾는 길이다.
[기독교와 불교는 같은 영혼이다]
우리가 사는 이세상은 색심불이(色心不二), 즉 육체와 영혼이나 물질과 정신은 하나이다. 영혼과 육체는 각
기 차원이 다른 세상의 존재이지만 이세상에서는 하나로 결합되어 있어서 육체 혼자 존재할 수가 없고 영혼
만 존재할 수도 없다. 전혀 차원이 다른 두 존재가 결합하여 삶을 영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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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7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3)(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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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우리의 영혼이 육체라는 배를 타고 삶의 항해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혼과 육체의 관계는 에너
지와 물질의 관계와 같지만, 다른 점은 에너지는 물질이 없으면 자율적인 의지를 갖지 못한다는 점이다.
우리의 몸은 약 60조가 되는 세포 집단으로 각 세포는 다른 기능을 가지고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고, 그 세포
들은 에너지의 보급을 받아서 사명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몸의 세포들은 저마다 의식을 갖고 있지만 단독으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것이 바로 물질
과 에너지의 관계와 아주 유사한 점이다. 예를 들어 눈에 보이지 않고 공중에 떠다니는 전파 에너지는 수신기
라는 물질을 만나야만 그 기능이 효과적으로 발휘되는 이치와 같다.
그처럼 육체 역시 지배자인 의식이 작동해야 비로소 그 의지에 따라 몸의 기능을 할 수 있다. 그처럼 육체는
어디까지나 영혼의 나룻배라는 것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우리의 육체는 영혼을 수행하는 인생의 나룻배로서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 신불과의 약속에 따라 여자의
자궁에서 정자와 난자가 조화를 이루어 생명이 형성된다.
그렇게 탄생된 육체는 신불의 뜻에 따라 생식 본능이 부여되어 자손 보존이 가능하게 되어 있다. 우리의 영혼
은 차원이 다른 세계에서 이 세상에 수행을 위해 내려온 것인 만큼 육체라는 나룻배를 타지 않고서는 인생을
항해할 수 없게 되어 있는 것이다.
신은 자신의 몸체인 이 지구상에서 인간이 마음과 마음의 조화를 이루어 살 수 있도록 만물을 조성해 주었
다. 그 이유는 조화로운 삶을 이루라는 뜻이다. 따라서 투쟁과 파괴는 신의 뜻이 아니다. 사람은 전생에서 지
은 자신의 업보를 이 세상에서 치르고 바꾸어, 보다 고차원의 세계로 진화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태어난 것
이다. 바로 여기에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사는 이유와 죽는 이유가 있다.
아주 중요한 대목이므로 다시 한 번 정리하겠다.
인간이 이 세상, 즉 우리가 사는 현상계에 태어나는 이유는 각기 전생에서 지은 죄의 업보를 치르고 보다 향
상된 저 세상, 즉 죽은 후에 가게 되는 실재계에 가기 위해 수행을 하려 육체라는 껍데기를 빌러 이 세상에 살
게 되었다는 뜻이다.
따라서 인간의 진짜 삶은 현상계 이후의 내세에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종교 지도자들은 육안에 보이는 육체
적 현상에서 신앙의 대상을 구해 왔다. 그 결과 육체 조상이 전부인양 생각하여 영혼까지도 육체 조상으로부
터 물러 받은 것으로 착각하기도 했다.
그런 이유에서 신앙은 조상에게 멋진 묘지와 성대한 제사를 통해서 조상을 성불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자손들도 덕을 볼 수 있는 것처럼 되어버렸다. 그로 인해 불교는 장례 불교, 재(齋) 의식에 빠져버렸다.
일종의 교주를 자처하는 사람들도 그런 좁은 소견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그런 엉터리 교리를
광신하고 있는 신자들 역시 많다. 신앙심이란 어떤 특정 장소에 가서 특정한 행사를 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
나 절에 가서 예배를 보거나 예불을 올리는 것이 신앙심이 아닌 것이다.
생활 속에서 생각과 행위를 늘 반성하면서 감사와 은혜의 보답으로 중용의 삶을 실천하는 것이 올바른 신앙
의 자세이다. 예수나 석가가 조상을 예배하라고는 가르치지 않았다.
물론 우리들은 조상과 부모의 인연에 의해서 육체를 부여 받고 있으므로 그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저버려
서는 안 되지만 그 감사의 표현은 보은의 행위로써 보답해야 한다.
형제, 자매가 의좋게 생활하는 것도 그 효행의 하나요, 정신적, 경제적으로 조화된 생활을 누리는 것도 보은
의 하나다. 죽은 육체 조상에 대해서는 감사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좋은 묘지와 융숭한 불공을 바라는 조
상이 있다면 이런 조상은 100% 지옥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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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7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3)(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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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조상이 지옥에 떨어져 있을 경우에도, 살아 있는 자손들이 그 조상을 향하여 육체 생활을 하던 당시의
마음 상태, 사명, 목적 등을 잘 설명해 줌으로써 그 조상의 방황하는 마음의 구제, 천도해 줄 수 있다. 불경의
뜻도 모르는 죽은 분들에게 어려운 경문을 외워 공양하는 것은 아무 뜻도 없다. 상대를 이해시키지 않고서는
개과, 천도시킬 수 없다.
이 세상에 널리 있는 묘지나 불단, 제단에 미련을 가지고 있는 영들은 100% 지옥에서 생활하고 있는 영들
이기 때문에 가족의 부조화한 상념에 빙의해서 집안의 조화를 깨뜨리고 있다.
그럴수록 살아 있는 가족들이 신리에 맞는 생활을 하지 안으면 안 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영적 조화가 깨
져 악령을 불러들이게 된다. 죽은 조상의 영에게 이 현상계에 대한 집착을 버리도록 가르쳐 주는 것이 으뜸가
는 공양이다.
가족들이 정법에 귀의해서 빛이 충만한 즐거운 가정을 꾸미게 되면 죽은 망령들도 이것을 보고 깨닫게 된다.
불단만이 공양의 장소가 아니다. 한편 깨달은 조상의 영은 현상계에 집착이 없기 때문에 아무 재앙이 없다.
차원이 다른 세계에서 생활해야 하는 몸인데도 불구하고 이세상에 집착하여 방황하고 있는 영들에게 우리는
빙의되어서는 안 된다.
정법을 실천하고 있으며 몸은 신불의 빛에 싸여 보호를 받게 되므로 부조화한 영들에게 빙의될 리 만무하다.
악령에게 빙의된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 책임이 자기 자신에게 있다. 진심으로 명상적 반성을 실천할 때 우
리의 의식은 신불의 빛에 싸이므로 부조화한 영들도 그 빛에 의해서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 된다.
조상은 예배하는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감사하는 대상으로 보은의 공양이 바람직하다. 몸이 건강하다는 것
도, 훌륭한 사회인으로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도 보은의 공양인 것이다. 현대 종교의 많은 부분이 조상 신
앙으로 타락하여 신심의 근본도 흐려져 버렸다. 그 원인은 오랜 세월 동안 신리에 인간의 지식과 의지가 가미
되어 타력 신앙으로 변질해 버린데 있다. 여기 따른 종교 산업이 인간이 마음을 더욱 신리에서 멀어지게 했
다.
많은 학자들 중에는 이 책을 읽고 그런 엉터리 같은 일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식만으로는 내가 설법하고 있는 정법을 이해하기가 힘들다. 종교에 대한 기성관념을 버릴 것, 이것이 자기
자신을 깨달을 수 있는 지름길이다.
또 교주를 자칭하는 자들 중에도 언젠가는 정법에 귀의하게 되는 자들도 나타나게 될 것이다. 불교나 기독교
의 원리를 잘 깨닫고 있는 목자들 중에도 내가 말하는 신리가 자신들이 탐구하는 법과 일치한다는 데 확신과
기쁨을 가지는 분들도 많이 나타나리고 본다.
고타마 싯다르타가 신리를 설법하던 당시 푸르나 가샤파, 아지타 케사가바리, 막가리 고사라, 니간다 부다,
파구다 캇차냐,산쟈 등이 대표적인 교조들이었다. 그 교리는 차원이 낮았으며 그들의 제자들은 싫증이 나서
불법에 귀의해 버렸다. 가챠나, 푸르나 가샤파, 샤리부트라 등도 한 교단의 지도자 혹은 그 제자들이었다. 나
는 이와 같은 사실을 나의 수호 천사로부터 설명을 들어서 알고 있다. 이 정법은 과거 예수와 고타마가 말했
던 신리와 일치한다는 것도 아울러 알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세상의 잘못된 점은 사람이 사는 목적과 사명감의 상실에 있다. 인간의 역사는 투쟁과 파
괴와 전생의 역사였다. 당대의 권력자들은 무력으로 봉건 사회를 만들어 자신의 번영과 안전한 삶을 중생들
의 희생 위에 구축했다.
권력자와 손을 잡은 사인들은 물질과 경제력으로써 자신들이 사회적 지위를 다져 나갔다. 하지만 봉건 사회
는 결국 자신이 뿌린 씨앗인 폭력에 의해서 이웃의 침공을 받고 무너진다. 권력은 세대 교체가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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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7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3)(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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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꾼들은 자본주의 사회의 터전을 닦고 변함없이 돈을 벌기 위해 서민들의 희생을 강요했으며 자기 보존
과 자아 욕망의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 불평등한 사회에 대해서 서민 대중들은 사회주의 사상에 물
들어 약자의 단결이란 기치를 들고 자본가와의 대립 투쟁에 몸을 던진다.
한편 지주들 역시 소작인을 움켜주기고 불평등한 사회를 만들었다. 약자가 반발할 수 없는 사회 제도는 계속
된다. 인간은 물질문명의 환각에 사로잡혀 스스로 만든 환경 속에서 더욱 물욕의 불꽃을 태우면서 노사 모두
만족할 줄 모르는 아귀도(餓鬼道)에 빠져 물질의 노예가 되어 있다.
많은 인간들은 본심을 잃고 본능이 원하는 대로 사회악을 저지르고 있으며 매스컴은 또한 인간의 동물적 본
능을 자극하는 기사에 열을 올려 사회를 바르게 이끄는 길을 외면하고 있다.
교육자들 중에도 극단적인 사상에 마음을 빼앗겨 제자들에게 배척당하는 일이 아주 많아졌다. 그것을 과연
문명국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성을 상실한 사회를 말법의 사회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젠 전 인류는 각성
할 때다.
마음을 상실한 물질 경제 지상의 자본주의나 사회주의로는 조화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없다. 자기 자신을 물
질 경제의 노예에서 해방시키는 일이 선결 문제다. 노사의 투쟁은 양쪽에 다 고통을 더하고 있다. 공해 문제
를 비롯하여 물가의 불안정, 동물적 본능, 사회의 무질서 등이 인간의 목을 죄고 있다.
우리는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마음을 되찾아야 한다. 그리고 큰 조화의 틀을 만들어 가야 한다. 그것은 인간
끼리의 상호 대화로써 해결할 수 있다.
경영의 합리화만으로는 경제 사회의 근본적 해결은 불가능하다. 노사의 대립도 임금의 해결만으로는 근본
적 해결이 불가능하다. 그러면 어떠한 길을 택해야 하는가. 그 길은 오직 하나뿐이다. 신리를 깨닫고 인간은
모두 형제이며 같은 시대에 태어난 동기생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지금의 환경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 선택
한 것임을 상기하여 서로 인연으로 묶여 다 함께 인생 수행장에 내려와 있다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
노동자는 일할 수 있는 일터에 대해서, 고용주는 노동자에 대해서 서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생활의 근거
이자 영혼의 수행장인 일터에 최선의 땀을 쏟아야 한다. 땀을 흘려 좋은 결과를 맺는 것이야말로 훌륭한 보
은 행위다. 노사 쌍방이 서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보은의 실천을 하고 있는 일터에 투쟁과 파괴는 있을
수 없다.
우리가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스스로 만족할 줄 아는 생활을 할 때 물가도 안정되고 공해라는 부조화한 현
상도 소멸될 수 있다. 노사의 지도자들은 이러한 신리를 따르지 않는 한 언젠가는 자신을 멸망으로 몰고 가
게 될 것이다. 투쟁과 파괴는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택할 길이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는 날이 있을 것
이다.
양보하는 마음, 희생하는 마음을 일상생활에서 실천으로 구현해야 한다. 몽매한 어린 양 떼들을 양 극단의 사
상으로 선동해서는 안 된다. 그 선동은 자기 자신에게도 부조화한 상념이 되어 평화스러운 마음을 잃게 만든
다. 자신의 체면이나 지위나 명예 따위에 대한 집착은 버려야 한다. 그것이 지름길이다. 인간답게 즐거운 일
생을 보내는 것이 행복에의 길이며 불국토, 유토피아를 건설하는 밑바탕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예수와 석가는 마음의 고향]
사람은 왜 태어나서 살다가 늙고 병들어 죽는 것일까. 슬픔과 괴로움이 많은 인생! 다정한 사람들과의 결별,
싫고 미운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고통, 경제적인 어려움, 원망, 시기 , 질투, 노여움, 독점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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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7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3)(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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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는 화려하지만 마음이 고독한 사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유명한 사람들이 오만, 육체적 불구에 대
한 고민, 종교를 사리사욕의 수단으로 삼는 위선자, 주색에 대한 욕망, 지위 명예욕, 인종 차별에 우는 사람,
동족끼리의 권력 다툼, 종파 싸움, 주의 주장이 다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투쟁과 파괴, 노사 분쟁, 고부간의 갈
등 등등 일일이 기록해가자면 끝이 없는 이 혼란한 인생!
그런 슬픔과 고통의 원인은 모두 중용의 마음을 상실한 행동에 있다. 많은 사람들은 욕망의 와중에 자신을 매
몰시켜 거기서 빠져나올 줄 모르며 빠져나올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
어떤 사람은 인생에 실망하여 인간으로서의 사명을 완수하지 못한 채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끊기도 한다. 하
지만 이생은 결코 풀 수 없는 숙제는 아니다. 다만 풀기가 어려울 뿐이다. 이 난해한 인생을 가장 알기 쉽게
인생의 목적과 사명을 설명한 빛의 천사가 있다. 그가 바로 인도의 석가모니와 이스라엘의 예수 그리스도다.
그러나 그들의 설법도 오랜 역사를 거쳐 오는 동안 많은 승려와 학자들의 지식과 의지에 의해 변질되었다. 철
학화, 의식화, 심지어는 상업화로 타락하고 말았다.
기독교도 불교도 학문화, 철학화, 상업화되었기 때문에 그 가운데서 신리를 찾기 힘들게 되었다. 즉 이치는
알고 있는데 생각과 실천이 방법이 모호해졌다. 마음이 없는 종교, 실천이 없는 종교가 현대 사회를 왜곡하였
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은 지식이나 의지로 도금된 불교와 기독교를 버리고 본래의 붓다와 예수
의 가르침을 되찾는 길이다. 학문 종교, 관광 종교, 의식 종교로써는 현대 사회의 인간의 마음을 구제할 수 없
다.
타락된 종교로는 인생의 목적과 사명을 깨달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제멋대로의 인생을 밟고 물질 경제의 노
예가 되어 본성을 잃은 사람들을 수없이 만들어 냈다. 신리의 철학화, 종교의 전문화에 의한 타력 신앙, 이익
주의 종교의 탈바꿈, 신불의 대량 생산화, 이런 것들이 종교의 왜곡상을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그래도 대중은 마음의 주거지를 찾아 헤맨다. 종교를 왜곡시킨 지도자의 죄는 무겁다. 경문은 일상생활의 방
법을 가르치고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석가와 예수의 가르침은 신리이며 인류의 마음의 고향이다.
우리는 이 고향에 돌아가야 한다. 인간은 육체 조상의 관습이나 종교적 관례에 따라 생활하고 있으므로 자기
의 종교가 정법(正法)인지 사법(邪法)인지 확실하게 구별조차 못하고 있다. 그래서 신사, 사찰, 교회를 신불
이 존재하는 곳, 기도하는 장소로 착각하여 어느새 기복 신앙, 즉 복이나 비는 종교로 타락하고 말았다.
신사, 사찰, 교회는 살아 있는 인간에게 신불의 자녀로서의 자각심을 일깨워 주고 신리를 실생활에 실천하도
록 가르쳐 주는 교실이어야 한다. 석가도 예수도 신불에게 제사를 지내거나 우상을 세워 중생에게 예배하도
록 하는 짓은 결코 하지 않았다.
라쟈구리하 교외의 벨르베나라는 죽림정사나 시바라스티 교외의 제다베나의 기원정사, 그 밖의 많은 정사
(精舍)들은 여러 나라의 왕이나 부자들에 의해서 세워진 것이었지 교단에 의해서 세워진 것은 아니었다. 그
리고 그 정사는 비구와 비구니들의 숙소요 신리를 설법하는 전당이었지 결코 신불에게 제사 지내거나 우상
을 받드는 곳이 아니었다.
때로는 그리그랏드의 산정이나 공원의 광장 등이 설법 장소가 되기도 했다. 한편 이스라엘에서 진리를 가르
친 예수 그리스도도 신불이나 우상 앞에서 공양 예배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
예수는 사명감에 따라 병든 중생에게 사랑의 손길을 뻗어 요르단에서 때로는 나사렛언덕에서 혹은 헤르몬산
에서 하느님의 뜻을 얘기했다. 그 신리는 오늘날에 와서도 불멸의 신리가 되었으며 우리들은 석가나 예수 당
시의 원점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거기에 진자 마음의 진리가 있으며 경문의 바른 정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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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7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3)(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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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파 싸움이나 파벌의 추한 투쟁을 버리고 신리의 큰 길에 종교를 올려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머지않아
중생들의 버림을 받게 된다. 종파의 고집은 나 자신을 구제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파멸로 몰고 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신리의 실천이 따르지 않는 학문 종교는 지식에만 머물 뿐 마음이 없기 때문에 일상생활의 행위는 위선이 되
기 쉽다. 행위와 신리는 하나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 인간으로서 태어난 목적과 사명 나 자신의 인생의 가치
를 스스로 알게 된다.
석가와 예수가 설법한 신리는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변질되었으며 마침내 말법(末法)이 되고 말았다. 그
결과 중생은 마음을 상실하고 부조화한 생활의 늪에 빠져 사회 혼란이 원인을 만들고 있다. 물질 경제 지상주
의의 현대 사회가 과연 인간에게 마음의 평안을 줄 수 있을까?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중생은 신불을 찾고 있으며 마음의 위안을 얻으려 헤매고 있지 않은가.
말법 시대이기 때문에 상업 종교, 타력 신앙을 광신, 맹신하여 본성을 잃고 있다. 어떤 사람은 신불의 존재를
부정하고 유물 사상에 심신을 빼앗겨 인간 사회는 계급투쟁을 거쳐서 발전해 가는 것이며 물질문명도 거기
서 번영해 간다는 사고방식에 젖어 있다.
그런 지식과 의지에 의한 인간의 사상은 동물적 본성이므로 약육강식적 투쟁과 파괴의 사회를 만들어 내는
데 기여하고 있다. 그들의 사상과 행동은 현대에도 계승되어 있다. 그래서 그들이 설령 일시적인 성공을 거
둔 적이 있다 하더라도 바른 마음을 가진 인간까지는 도저히 굴복시킬 수 없다는 것을 결국은 깨닫게 될 것이
다. 권력이나 폭력에 의해 일시적으로 사상을 통일하였다 하더라고 자유를 요구한고 평안을 갈구하는 인간
의 마음을 억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마음을 상실한 지식과 의지만으로 무장된 지도자에게 세뇌된 사상은 어디까지나 곁에 바른 칠에 불과하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 칠이 벗겨져 인간 본래의 불성인 알몸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괴로움의 원인은 신리를 거
스른 생각과 행위가 만들고 있다.
부조호한 사상은 투쟁과 파괴를 불러일으켜 괴로움과 슬픔의 현상으로 나타나 순환한다. 왜냐하면 투쟁에
의해 쟁취한 것은 언젠가는 투쟁에 의해서 상실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조화한 사상으로 마음의 괴로
움을 해결할 수는 없다. 인간의 마음은 무한대로 넓으며, 지식과 의지의 산물인 좁은 사상의 올가미로 묶어
둘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은 상상하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자유자재이며 그 누구고 제약할 수 없으며 그 누구로부터도 제약 받을
수 없는 것이다. 제약할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 이외에는 없다.
선인가 악인가의 판단은 신리인가 아닌가에 의해서 결정된다. 나 자신의 올바른 마음을 충실하게 지니고 인
생을 영위하고 있는가. 그리고 자기중심이 아니라 남의 입장을 고려하면서 중립의 척도로 생활하고 있는가
아닌가에 따라서 선악은 결정된다.
신의 섭리는 영원히 변하지 않으며 인간의 지식이나 의지로는 바꿀 수 없는 것이다. 신리는 신불의 지혜요 마
음이며 뜻이라는 것은 우리는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인류는 오랜 역사의 과정에서 조화와 파괴가
동거하는 사회를 만들었으며 오늘날의 물질적 사고방식이 당연한 것처럼 되어 버렸다. 이 사고 방식은 큰 잘
못이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며 신불의 자녀임에도 불구하고 무엇보다도 우선해야 하는 마음을 잊어버렸
다.
대자연의 만물은 모두 상호 작용에 의해서 존립하며 조화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우리들의 육체에 있어서
도 한 개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우리들의 육체에 있어서도 한 개의 세포가 이상해지거나 또는 한 기관이
조화하지 않으면 여러 변화가 나타난다. 즉 질병이라는 현상이다. 그러면 우리들은 병원이다, 의사다, 약이
다 하고 당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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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7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3)(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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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화는 질병을 극복할 뿐만 아니라 인류의 수행 목적의 으뜸가는 과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배 계급과
피지배 계급의 투쟁 운운하는 이 현실 사회의 양상으로 과연 인류가 행복해질 수 있을까, 부조화한 행위가 인
류를 행복으로 이끌 수는 없다. 왜냐하면 물질 경제 지상주의는 마음이 없으므로 진정한 마음의 평안을 얻는
다는 것은 가망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폭력으로 항거하는 사람들의 인생에 과연 진정한 자유와 평화가 존재하는 것일까. 어제의 동지는 오늘의 배
신자라는 말처럼 남을 믿지 못하는 마음은 지옥의 아수라계에 통하고 있으며 그런 인생은 실로 어리석은 것
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그런 결과를 초래한 것은 지배 계급의 횡포가 대중의 불만을 불러일으켜 생겨난 것인 만큼 지배층은 잘 반성
해야 한다. 설령 자신의 노력으로 이룩한 경제력이나 지위라 할지라도 거기 만족할 줄 모르고 보다 많고 높
은 것을 탐내고 없는 자에게 베푸는 자비심도 없으며 자아아욕, 자기 보존의 권화가 된 인간은 참으로 불쌍하
고 저속한 자들이다.
사회에 이런 인간들이 많으면 혼란이 그칠 날이 없다. 원인과 결과,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은 대자연의 신리이
며 우리의 육체뿐만 아니라 의식에도 작용한다. 신불의 자비 즉 육체 보존을 가능하게 하고 있는 자연의 환경
에 대해서 감사의 마음을 가진다면 그것을 행동으로 표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행위가 은혜를 갚는 일이다. 인간 사회의 조화를 위해서 자기의 능력 범위 내에서 봉사하는 것이 인간 상
호의 신리를 다질 수 있으며 조화와 평안의 사회를 구축하는 원동력이 된다. 인간은 원래 누구든지 평화를 원
하고 있다. 슬픔이나 괴로움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인간은 눈앞의 현상에 집착하여 마음을 잃
고 스스로 슬픔과 괴로움의 원인을 짓는다.
마음이 없는 지적 사고방식의 부조화한 사상을 낳고 표면적인 물질 경제의 축구에 몰두하게 되며 인간 본래
의 목적과 사명을 잃고 있다. 그래서 괴로움과 아픔의 불평등한 사회를 만들어 불행을 되풀이하고 있다. 이
와 같이 물질 경제가 근본이라고 생각하는 한 인류는 조화의 틀이 잡힌 사회를 완성할 수 없다.
물질문명은 생활의 지혜에 지나지 않으며 결코 정신문화나 마음의 진화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현
대인은 물질 경제에 사로잡혀 여러 방면으로 욕망의 노예가 되었다. 이 노예에서 해방되는 것이 인간으로서
신성(神性), 불성(佛性)을 되찾을 수 있는 첫걸음이다. 신리에 따라 인생을 엮어가는 것, 이것이 행복으로 통
하는 길이다.
[내 마음의 문은 어떻게 열 수 있는가]
남에게 소원을 빌어서는 인간의 마음이 구제될 수 없다. 니치렌[日蓮]시대의 사람들은 권력에 항거할 수 없
는 무지몽매한 자가 대부분이었으므로, 염불을 외는 타력 신앙을 통해서 신불의 존재를 깨닫게 하고 생사의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하는 이외에는 달리 구제하는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신불에게 나의 몸과 마음은 모두 맡긴 채 과연 깨달을 수 있을 것인가. 기도하는 것만으로 진정 구제
받을 수 있을 것인가. 자신의 마음을 무의 상태에 두고 과연 깨달을 수 있을까. 이런 것들은 신불의 존재를 아
는 방편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인간은 로봇이 아니다. 자기 자신을 잃으면 인간으로서의 수행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올바른 생각과 행위
를 실천하는 가운데 신리는 조화로워진다. 신불에 대해서 우리의 생존을 가능하게 하는 대자연의 만물에 대
해 감사하는 동시에 보은의 실천이야말로 보살심의 발편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자칫하면 타력본원이나 자기 보호 본능에 빠기기 쉽다. 올바른 목적은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노력과
용기에 의해서 달성되는 것이며 자기 도피나 자기 보존의 제목 외우기 따위로 인류를 행복하게 인도할 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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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다. 신불에게 감사하고 자연과 인간에 대해서는 보은의 실천 행위를 함으로써 조화를 이룰 수 있다.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수호천사가 있다. 항상 자신의 양심에 물어서 실천하는 가운데 신불을 깨달을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자신의 마음을 상실한 신앙은 정법이라고 할 수 없다. 우리는 누구나 영혼의 본체 혹은 분신에
의해서 보호를 받고 있으며 마음의 조화도에 따라 수호천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수호천사에게 감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말없는 도움에 관심조차 두고 있지 않으니 깨달음과
는 거리가 더욱 멀어질 수밖에 없다. 도를 구하는 노력의 정도에 따라서 마음의 문이 열린다는 사실을 알아
야 한다.
한편 우리는 엉터리 지도자의 설법이나 신리도 모르는 영적 능력자의 예언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신불의
노여움이라고 겁을 주거나 부적을 강매하는 따위의 지도자나 교주에게 마음을 빼앗겨서도 안 된다. 그들의
교리를 자세히 살펴보는 동시에 그들의
일상생활 태도를 관찰해 보고 스승으로 받들 만한 인물인가 아닌가를 잘 판단한 연후에 신앙을 결정해야 한
다.
자신의 마음마저 그들에게 팔아서는 안 된다. 자신의 마음은 무한한 생명과 상통하고 있는 보배요 왕국이다.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며 그 누구도 침해할 수 없다. 그 왕국은 제3자에게 팔아넘기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잃게 되고 노력하는 길도 잊어버리며 타력본원에 몸을 맡겨버리게 된다. 신불은 스스로 믿고 노력하는 자에
게만 도움을 준다. 그리고 자신의 노력에 대한 수호천사의 협력은 항상 따라다닌다.
즉 자기 자신이 최선의 노력을 다한 끝에 다른 힘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이지 자신의 힘이 남아 있을 때는
도움을 받을 수 없다. 그것이 이치이다. 그것이 원인과 결과,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이며 신리인 것이다.
저 세상의 최고 높은 단계에 있는 빛의 지휘자 여래나 보살들은 물질의 노예가 되어 있는 인간에 대해서 쉽
게 도와주지 않는다. 특히 무에서 유가 생겨나는 달콤한 약속 따위는 절대로 하지 않는다. 노력하지 않고 자
기 보호의 기도나 독경만으로 행복의 과실을 따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기도나 불공으로 구제받는다고 유혹하는 교조나 지도자들을 조심해야 한다. 지식이나 의지로 고통에서 벗어
나는 길을 모색해서는 안 된다. 어디까지나 원인과 결과에 대한 깊은 추궁이 있어야 올바른 판단이 나올 수
있다. 신불의 대리인을 자칭하면서 마음에 평안을 주지 못하는 교조나 지도자들은 저급한 영이나 짐승의 혼
에 지배당하고 있다. 한편 이 세상에 집착하여 방황하고 있는 지박령(地縛靈)이나 지옥의 마왕이 빙의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비록 그들의 예언이 적중하고 병을 고친다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것이며 더욱 혼란하고 어두운
마음으로 몰고 가게 된다. 그런 위선자들의 말과 행동은 언제나 모순이 많으므로 그럴 때는 주저할 것 없이
의문을 가지고 올바른 해답을 얻어야 한다. 무엇이든지 성급하게 믿는 태도는 매우 위험하다.
신불은 각자의 마음의 왕국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물질이나 외모에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 중도
의 마음은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견해에서 올바르게 행동하는 가운데 존재한다. 마음을 돌처럼 단
단히 굳히면 반드시 왜곡되어 버린다. 항상 유연하게 가져야 정법의 실천이 가능하고 깨달음의 첫걸음을 열
수 있다.
이런 실천을 통해서 90% 잠재의식의 지헤가 나타나게 되어 자신의 전생을 깨닫고 윤회의 과정을 소생시켜
볼 수 있다. 나와 나의 그룹은 마음속에서 실재계의 수호천사와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육체의 오관을 이용해
서 대화할 수 있다.
명상적인 반성을 계속함으로써 우리 몸은 황금색 오로라에 싸이고 의식의 광자체는 별과 구름 층을 뚫을 만
큼 확대되어 지상에 있는 자신은 작은 육체를 내려다보게 된다. 우리의 의식은 광자체의 육체를 가지고 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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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7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3)(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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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의 육체인 자신을 지배하고 있다.
나는 원자 육체에서 이탈한 광자체를 부려 차원이 다른 세계 어디든지 갈 수 있다. 물론 우리들의 영혼을 총
괄하는 큰 영혼들과도 얘기를 나누고 있다. 이미 이 현상계를 하직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계에 가 볼 수도
있고 최고 빛의 수호천사들이 사는 집도 방문할 수 있다.
천상에 올라갈 때는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마치 돔 같은 것을 타고 초고속 엘리베이터로 상승하는 것 같다.
하늘의 별들이 똑똑하게 보인다. 실재계는 평온한 세계다. 낮은 단계의 세계와 높은 단계의 세계는 그 영적
크기에 차이가 있다.
대개 육체는 영자선(靈子線)이라는 것에 의해서 광자체와 연결되어 있으므로 서로 연락을 취할 수 있지만
의식이 육체로 돌아올 때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걸린다. 이 지상계의 만물은 저세상에도 존재하며 그 색체는
이세상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평화롭고 부드럽기 그지없다. 식물의 녹색은 이른 봄날의 신록처럼 보드
랍고 포근하다. 이 색채는 영혼을 정화한다.
인종과 국가를 초월한 인류 공존의 세계이며 마치 현상계의 올림픽처럼 여러 나라의 국민들이 저마다의 복장
을 하고 함께 살고 있는 집단 사회이다. 세계는 하나라는 사실을 똑똑하게 실감할 수 있다.
그러나 낮은 단계의 세계가 되면 역시 자국적 환경에 칩거한다. 자기주장을 하는 세계다. 더욱이 지옥에 이르
면 남을 신용할 수도 없고 겉으로는 조화를 이룬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자기 자신의 문제가 되면 서로 싸운
다.
자기 보존의 세계이며 평안이란 티끌만큼도 없다. 마와의 권력에 의해서 지배되고 있으며 진정한 자유란 있
을 수 없고 평안한 생활도 영위할 수 없는 세계다. 자기 자신의 마음을 상실한 인간들이 거주하는 부조화한
세계이며 자비도 사랑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냉정한 인간들의 마음이 만들어 내고 있는 세계다.
하지만 이런 인간들도 그 환경에서 반성하는 계기를 잡고 언젠가는 빛의 천사들의 도움을 얻어 구제된다. 저
세상이 세계는 표면 의식이 90%이기 때문에 반성하면 그 효과가 즉시 현상화되어 광자체의 광자량이 많아
져서 조화에의 속도도 매우 빠르다.
마음이 조화도는 곧바로 육체에 나타나 당사자는 그 조화도에 상응하는 세계로 상승해 간다. 이와 같은 부조
호한 세계에도 여러 단계의 계층이 있으며 또한 빛의 천상계도 여러 단계로 구분된다. 천상계의 상단계 이상
은 천사, 빛의 천사, 상단계 영, 그보다 한 단계 높은 빛의 대 수호 천사 등으로 그 세계가 구분되어 각기 조화
에 비례한 사회가 구성된다.
이 현상계는 실재계에서 투영되는 입체 영화와 같은 세계다. 이승이건 저승이건 그 육체 구성에 차이가 있을
뿐이지 그 중심인 영혼에는 변화가 없다. 윤회를 하는 과정에서 이 현상계에서는 원자체(原子體)른 육체를,
저 실재계에서는 광자체라는 육체를 그때그때 갈아입는 환경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의식 즉 영혼은 태어나는 일도 없으며 죽는 일도 없다. 불생 불명이다. 불어나지도 줄어들지도 않는다. 그것
이 본래의 실상이다. 우리는 그 본질을 잘 이해하여 거짓의
자기표현이나 거짓의 신불 신앙, 엉터리 판단은 피해야 한다. 신리를 외면하는 거짓 인생이 자기 자신의 마음
에 고뇌의 짐을 지게 한다.
우리는 자기 자신의 지배자인 마음의 왕국을 올바르게 구축하여 현상에 사로잡히지 않는 부동심을 가지고 마
음의 짐을 벗어 던짐으로써 비로소 평화스러운 환경을 누릴 수 있다. 전래의 누습(陋習)을 타파하고 자기 자
신 안에 존재하는 신불인 '마음'을 믿고 그 마음의 왕국에 있는 보물 창고 문을 자기 힘으로 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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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7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3)(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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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론이나 쓸데없는 논쟁을 피하고 혼란스러운 온갖 유혹을 물리치지 않으면 안 된다. 정법에 따른 실천 생
활을 통해야만 올바른 마음의 제동 장치가 작용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인간은 모두 영적 능력을 갖게 될 날이 온다]
자기 자신의 욕망을 쫓고, 남의 일은 내가 알 바가 아니라는 태도는 자기 보존이다. 그러 사람들은 자기 입장
만을 주장하고 지위, 명예, 재산을 위해서는 남을 희생시키는 일도 주저하지 않는다. 자기의 이름과 가문에
흠이 되지 않을까 늘 염려하고 있다. 남의 칭찬을 받으면 흡족하고 충고를 받으면 감정적이 되어 보복을 궁리
한다. 경제적으로 남이 존경을 받으려 하고 그 마음과 행위에는 조화가 없다. 항상 자기중심으로 생각하며 눈
앞의 이익에 사로잡혀 물질 경제가 전부라고 고집한다.
남을 믿지 않는 주제에 자신을 믿게 하려고 금품을 뿌린다. 타인에게 배신을 당하면 원한을 품지만 자기는 남
을 예사로 난도질하고 배신한다. 이런 사람들은 한때는 번영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자비와 사랑이 없기 때문
에 반드시 몰락한다.
마음에 평화가 없고 이웃 친척들로부터 불신을 받게 되며 끝내는 고립되고 만다. 무엇이나 만족을 모르며 마
음이 빈약한 자란 그런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 마음은 아귀(餓鬼)의 길로 통한다. 아귀 같다고 하는 말
이 그것이다. 반성이라곤 하지 않는 인생이기 때문에 죽으면 지옥에 떨어져서 본성을 깨달을 때까지 고통을
겪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되는 원인은 정법을 깨닫지 못하고 돈이 전부하고 착각하여 인간으로서의 수행 목적을 잊어버리고 나
룻배인 육체에 마음이 사로잡히는 데 있다. 우리가 이승을 떠날 때는 경제도 지위도 명예도 무엇 하나 가져
갈 수 없다. 오로지 인생 경험의 일체가 기록된 의식, 즉 영혼을 가지고 갈 뿐이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물질에
사로잡히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마음에 집착이 없는 인간은 평화스럽게 살 수 있으며 신불의 자녀로서의 만족감과 기쁨이 떠날 날이 없다. 한
편 종교 단체의 한 세포가 되어 있는 사람은 자기가 속해 있는 종교의 교리야말로 절대적인 것이라고 맹신하
여 자신의 근거지로 삼는다.
자기가 속한 교단이야말로 절대적인 것이며 상대방의 교단을 깔아뭉개려고 서로 논쟁한다. 제3자로부터 올
바른 신리라는 인정과 칭찬을 받고 싶어 하며 마치 자기 자신이 신리를 깨닫고 있는 것처럼 남을 굴복시키려
고 한다.
반론을 당하면 마음에 부조화를 일으켜 상대방의 결점을 찾아내어 다시 논쟁을 건다. 하지만 그런 칭찬과 반
론이 과연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그것은 자기만족에 도취하는 데 그칠 뿐이다. 자기만족은 파멸의 씨앗
이 되므로, 도리를 깨닫고 있다면 논쟁 따위에 휘말릴 리가 없다.
철학적 불교 용어를 구사하면서 뽐내는 자들은 자기 자신의 왕국을 볼 수 없다. 개개인이 마음을 깨달음으로
써 비로소 확고부동한 조직이 확립된다. 지식과 의지의 논쟁은 조직에 금이 갈 뿐 아무런 도움도 안 된다. 벌
을 받는다는 것은 자신의 어두운 생각이 지어내는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에 의해서 형상화되는 것이지 결코
신불의 뜻은 아닌 것이다.
만일 벌을 받았다고 한다면 그것은 신불을 사칭한 악령들의 짓임을 알아야 한다. 올바른 마음으로 올바른 생
활을 하고 있는 사람은 신불의 빛에 싸이기 때문에 악령도 재앙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왜냐하면 육체의 지
배자인 마음의 왕국은 그 누구도 침입할 수 없는 성역이기 때문이다.
벌은 어디까지나 자기의 잘못된 생각에 의해 스스로 불러들이는 것이다. 인간이 마음속에 벌에 대한 공포심
을 품으면 곧바로 그런 세계와 통하게 된다. 신리도 아닌 엉터리 진리를 믿고 마음속에 불안과 혼란의 신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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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7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3)(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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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을 잘 반성해야 한다. 신앙에 대해서 공포심을 가진다는 것 자체가 이미 자신
을 상실한 조직의 세포에 다름 아니며 마음속의 공포를 더욱 증폭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 같은 정법을 깨닫지 못하고 마음의 왕국의 지혜를 알지 못하는 지도자가 사욕으로 조직을 확장해 나가면
부조화한 업보는 반드시 자기 자신에게 되돌아온다. 또한 그 업보는 육체적으로 여러 가지 질병의 모습으로
현상화 되는 것을 알아야 한다.
신리를 깨닫지 못한 지도자는 위선자이며 그의 잘못된 삶은, 결국 죽어서 자기 자신의 심판을 받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신불의 법칙이다. 마음의 집대성을 설법해야 할 종교 지도자가 자신의 마음의 평화도 다스리
지 못하고 항상 아집과 투쟁심에 불타며 타 종교를 헐뜯고 몰아붙이는 짓은 지도자의 자세라고 볼 수 없다.
이런 지도자는 자신의 위선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지도자의 자리에서 물러앉아야 한다. 또한 지도자로서 중
생의 앞장에 선 자는 마땅히 중생의 평안과 복지를 위해서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
사리사욕은 마침내 파멸의 길로 몰고 간다. 기만과 유언비어에 현혹되지 않는 올바른 판단력을 가져야 한다.
인류는 봉건 사회 혹은 독재 체제 밑에서 오랜 투쟁과 파괴를 체험하면서 진화되어 왔다. 언젠가는 원시 공
산 사회보다 차원이 높은 만민 평등의 공존 사회로 진화되며 마음이 우선이 되는 사회로 전진해 나갈 것이
다. 왜냐하면 인류는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신의 영적 잠재력을 언젠가는 스스로 열 수 있는 날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여기서 오늘날 종교가 저지르고 있는 잘못을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사람이 왜, 어떤 목적과 사명감을 가
지고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썼다. 형식적인 허상이나 우상에 빠진 종교의 그릇된 점을 밝혀 신앙의 올바른 자
세를 갖게 하기 위해서이다.
사람이면 누구나 마음속에 갖고 있는 위대한 불성과 신성을 얘기해 주어, 물질 지상주의의 어리석음에서 깨
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이것은 비단 나 혼자만의 바램은 아니다.
생명은 본체를 중심으로 다섯 개의 분신이 있으며 그 분신들은 교대로 이 지상에 내려와 영혼의 수행을 하고
있다. 그 영혼의 수행 목적은 물론 이 지구상에 사람이 행복하게 살기 위한 유토피아를 건설하기 위해서이
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여기서 여러 번 강조한 것처럼 팔정도에 의한 감정, 이성, 지성, 본성의 조화를 이
루고 신의 뜻에 맞는 생활을 통해서 영혼을 보다 고차원으로 진화시켜 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 길아 바로 신
불의 자녀다운 우리들의 사명이기 때문이다.
신슈 사쿠고원에서 태어났던 나는 지금도 그 기억이 생생하다. 나는, 열 살 때 고향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왕래하는 희귀한 체험을 되풀이하면서 '신앙의 길'로 들어섰다. 나는 당시 내 육체 안에 '또 하나의 나'가 있
다는 것을 알았다.
그 후 30여 년 간을 나는 '또 하나의 나'에 대해 회의하고 그것을 해명하기 위한 탐구를 거듭했다. 그래서 이
제 그 우리의 생명의 영원불멸을 실재로 증명하는 여러 방법을 깨닫게 되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예외 없이 수호천사가 있다. 올바른 인생을 살기 위해서 영혼의 형제들이 차원이 다른 저
세상에서 늘 우리를 돕고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리고 또 우리 인간이 당하는 온갖 사고와 질병 등 모든 고
뇌의 원인은, 우리들의 마음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욕심과 자기 보호의 어두운 상념에 있기 때문이라는 것
도 알게 되었다.
우리들의 인생은 이 세상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저 세상과의 왕래를 통해서 영원히 윤회를 되풀이하고 있
다. 그 사실을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서 이해하고 그것을 실천에 옮겨 보다 높은 차원이 '조화로운 삶과 사
회'를 만든다면 나의 소원은 이루어지게 된다. 나는 독자 여러분의 마음의 문을 열어 주고 싶다. 그것은 나의
단 하나의 염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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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7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3)(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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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가 마음의 평화와 조화를 깨달아 투쟁과 파괴의 동물적 본능을 버리고 보다 좋은 인류 사회를 이루
어 나가는 데 이 책이 도움이 된다면 내가 이 책을 쓰는 목적은 달성되는 것이다.
사람은60조 개의 유전자체로 이루어졌다.
인류는 지금 2000년대의 새천년 밀레니엄 시대를 살고 있다. 그 첫 해의 첫 날 축제로 온 지구가 떠들썩했지
만 날짜가 바뀐다고 해서 큰 변화가 오는 것이 아니다. 단지 사람들은 그날을 계기로 마음의 변화를 원하는
것이다. 특히 자연은 아무 변화가 없다. 해가 두 배로 커진다거나 바다가 갈라지는 기적도 없었다.
자연은 천 년 전이나 천 년 후나 똑같이 인류를 품에 안고 있다. 2천 년의 일출에 거는 희망과 기도가 무슨 소
용이 있으랴. 무기력한 인간, 어리석은 인간들은 지금 자신들의 터전인 지구 환경을 마구 파괴하고 있다. 제
발 밑에 빠지는 함정을 방관하고 있는 것이다.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하고 소가 하품을 하는 등 동물들은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생명을 만끽하지만 인간은 자
연의 생명과 질서의 조화를 깨뜨리고 있다. 인간의 오만이 불러오는 재앙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는 것이
다. 우리는 자연의 목소리에 겸허하게 머리를 숙여야 한다.
신라의 고승 의상대사의 법성게 중에 일미진중함시방(一味塵中含十方)이라는 말이 있다. 물질의 최소 단
위 속에 우주가 숨어 있다는 뜻이다. 우리 몸의 최소 단위는 세포다. 그 한 개의 세포 핵 속에는 30억 개가 넘
는 생명의 설계도인 유전자 정보가 담겨져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30억개의 정보라면 1천 쪽짜리 책 1천 권에 해당하는 불량이다. 이 방대한 정보가 무게 2천억분의 1그램,
폭 50만분의 1밀리미터의 극미한 테이프에 저장되어 있다는 뜻이다. 우리 세포는 그처럼 놀라운 존재이다.
그러니까 갓 태어난 아기의 경우에는 대략 3조가 되고 60킬로그램의 체중을 가진 어른인 경우에는 약 60조
의 유전자 덩어리를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말하자면 우리 몸은 어마어마한 세포의 집단 유기체로서 머리카
락 한 올, 오줌 한 방울에도 생명의 정보가 들어 있는 일미진중함시방 그 자체이다.
유전자는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곰팡이, 대장균, 꽃, 온갖 동물들이 동일한 암호인 A(아데닌), T(티민),
C(시토신), G(구아닌) 등을 갖고 있다. 인간에게는 언어의 장벽이 있지만 유전자 세계에는 언어가 없다는 표
현은 맞는 말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여섯 가지 신통력 즉 육신통(六神通)- 천안(天眼), 천이(天耳), 타심(他心), 숙명(宿命),
신족(神足), 누진(漏盡)-을 갖춘 다카하시 신지는 세포 하나하나에 마음이 들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마음의 눈으로 인간의 신체 내장을 천연색으로 투시했으며 내장들과도 대화가 가능할 만큼 영적 능력
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식물, 동물 들의 마음을 꿰뚫는 혜안을 가졌으며 죽은 사람의 영혼을 불러 즉석에
서 생전의 목소리를 가족들에게 들려 주거나 그 영혼의 실상과 근황을 일러 주는 능력을 보여 주었다.
그런 말을 하면 사람들은 미신이거나 악령 혹은 혼에 씌인 사람으로 오해하지만 다카하시는 그런 사람이 아
니었다. 예수나 석가도 살아 있을 때는 사람들로부터 그런 취급을 받았지만 그분들의 진리는 수천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의 추앙을 받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단지 그 어마어마하고 정교한 유전자의 세계에
경탄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그 유전자를 창조하고 설계한 입력자와 오퍼레이터(operator)가 누구인가,
바로 거기서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의 눈을 떠야 한다.
일본의 유전 공학자 무라카미 가즈오는 '극미의 세계를 들여다보면 볼수록 섬씽 그레이트(something
great)의 존재를 느낀다'고 실토하고 있다. 또한 스위스 정신과 의사 융(c.g.jung)은 '역경의 점괘가 요행으
로 들어맞는다는 말에 나는 반대다. 내 경험에 의한 명백한 적중률은 우연에 의한 개연성을 훨씬 능가한 확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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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23, 2:47 PM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3)(다카하시 신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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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었다. 예컨데 역경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우연성이 아니라 규칙적이라는 사실을 나는 의심하지 않는다'고
했다.
또 일본의 이마이즈미 하사오 씨는 '생명 과학과 역(易)과의 만남'이라는 글에서 유전자의 구조와 팔괘(八
卦)의 구조가 같다는 공통점을 제시하여 세상의 주목을 끌었다. 이 책에서 인간의 가치관을 합리적으로 제시
한 다카하시 신지는 예수나 붓다 처럼 수많은 기적을 보여 주었고, 그의 예언은 1%의 오차도 없이 정확한 것
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제 세계는 생명 공학이 유전자 세계를 정복해 가고 있다. 유전자 변형 식품이 우리 식탁에 올라 유해성 찬
반론이 일고 있고, 복제 양 돌리의 탄생은 인간 복제의 불안을 사회적으로 야기시키고 있다. 자연은 필연이
고 조화의 틀 속에서 윤회하고 있다. 꽃이 피었다 지고 죽은 열매가 씨앗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 자연의 이
치인 것처럼 사람은 죽으면 다시 태어나는 것은 자연의 법칙이다.
이제 과학은 인류의 복지 향상과 자연계의 보호 유지라는 인간 본연의 자세를 되찾아야 하고 우생학적인 진
화론에 기만 당한 인간의 오만과 독선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 노벨상 수상 과학자들과 천재들이 모두 모
여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도 대장균 하나 만들어 내지 못한다. 우주선은 만들어도 대장균을 못 만드는 것이 인
간의 한계인 것이다. 새 밀레니엄 시대에 다카하시 신지의 생명 존중과 사랑과 화해를 통한 평화로운 세계를
위해 이 책을 번역 출판하게 된 것을 나는 너무 기쁘게 생각한다. 다카하시 신지는 이 책을 7번만 읽으면 마
음의 눈이 열린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못 읽을 이유가 없다. 마음의 눈이 열리면 우리는 이 세상을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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