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23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유기쁨 - 애니미즘의 재발견과 “person”의 번역

한국종교문화연구소
                                                                                                   newsletter No.468 2017/5/2

 

 

           애니미즘의 재발견과 “person”의 번역

          
 

    “모든 언어에는 번역할 수 없는 단어들이 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그 문화에 적합하며,
그 문화에만, 한 국민의 물리적 환경, 제도, 물질적 장치 및 태도와 가치에만 적합하기 때문이다.”

                                                                   말리노프스키, 『산호섬의 경작지와 주술』 중.



       요즘 연구소에서는 <책 한 권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지난 4월 모임에서는 장석만 선생님 발제로 그레이엄 하비(Graham Harvey)의 『음식, 섹스 그리고 낯선 자들 : 종교를 일상생활로 이해하기 (Food, Sex and Strangers: Understanding Religion as Everyday Life)』(2013)가 다루어졌다. 모임에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연구소 페이스북 관리자가 올려둔 발제 피피티 파일을 읽어보면서 4월 모임이 매우 흥미로운 시간이었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책을 소개한 피피티에는 ‘person’이란 단어가 몇 차례 등장했다. 가령 “종교는 이 관계적이고 물질적이며 참여적 세계에 함께 거주하는 person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교섭이다.(Religion is a negotiation between persons who dwell together in this relational, material, participative world.)” 등의 문장이 그것이다. 일견 매우 단순한 듯 보이는 문장이지만 번역이 까다로운 이유는 하비가 ‘person’이란 단어를 인간에 국한해서 사용하지 않으며, 인간 이외의 다른 종들을 가리키기 위해서도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때 ‘person’을 어떻게 번역해야 할까?


       그레이엄 하비가 ‘person’의 의미범위를 인간 이외의 존재들까지 확장해서 사용하게 된 배경에는 그의 ‘애니미즘’ 연구가 있다. 좀 더 이전에 집필된 그의 대표적 저술인 『애니미즘: 살아있는 세계를 존중하기(Animism: Respecting the Living World)』(2006)에서, 그는 애니미즘을 “세계는 살아있는 persons의 공동체이며 그 가운데 일부만이 인간이라고 이해하는 세계관에 주어진 꼬리표”라고 재규정한 바 있다. 그리고 과연 ‘person’이 무엇이냐를 이야기하는 데 그 책의 대부분을 할애한다. 눈에 띄는 것은, 하비는 무엇보다도 ‘person’을 다른 ‘person’들과 상호작용하는 자로 설명한다는 점이다. 곧, 사물을 논할 때에 비해 ‘person’을 논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존재들과의 관계성이다.


       종교학계에서는 그레이엄 하비가 ‘person’을 인간 이외의 존재들을 포괄하는 확장된 의미에서 사용하는 대표적인 학자로 거론되지만, 사실 토착민들의 애니미즘을 새로운 빛에서 조명하는 그와 같은 ‘person’ 논의를 본격적으로 촉발한 것은 1960년에 발표된, 오지브와 족에 대한 할로웰의 연구(Irving A. Hallowell, "Ojibwa Ontology, Behavior, and World View")라 할 수 있다. 할로웰은 오지브와 족의 ‘person’ 범주가 인간 존재에게 국한된 것이 결코 아니며, 그들의 ‘person' 개념이 인간과 동의어가 아니라 사실상 그것을 초월한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특히 그는 그 글에서 오늘날 (하비를 포함한) 관심 있는 연구자들 및 생태주의자들 사이에서 일종의 경구처럼 사용되는 “other-than-human persons”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여기에는 바위, 나무, 곰, 벼락 등 경험적 존재들 혹은 실재들이 포함된다.


       할로웰 이후 일군의 학자들은 서구적 통념에서는 인간이 아닌, 심지어 생명이 없는 대상에게서 또 다른 의미의 ‘personhood’를 발견하는 토착적 문화를 적극적으로 재조명하기 시작했다. 특히 최근 들어 생태적 위기 상황에서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성찰이 일어나면서 그러한 움직임이 더욱 두드러지는 것 같다. 근대 서구 문명이 생태적 위기를 초래했다는 데 대한 반성과 대안에 대한 관심 속에서 점점 더 많은 인류학자, 철학자, 종교학자들이 영단어 ‘person’의 의미 확장을 시도하고 있으며, 생태주의자들 사이에서 그러한 확장된 의미범위를 가진 'person'의 사용이 뚜렷한 의도와 지향점을 가지고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해외에서는 가령 동물의 권리를 주창하는 운동가들이 돌고래쇼 폐지를 주장하면서 돌고래를 dolphin-person으로 일컫는 사례도 본 적이 있다.


       그와 같은 ‘person’의 의미 확장은 그 단어를 인간에 국한해서 사용하는 일반적 통념과는 차이가 있기에 혼란을 불러 일으킨다. 그러한 혼란은 의도된 것이다. 그레이엄 하비는 그의 저서 『애니미즘』에서 ‘person’이란 용어를 인간 및 인간과 비슷한 존재들(조상들과 일부 신격들) 뿐 아니라 훨씬 더 폭넓은 공동체에까지 적용할 경우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지를 물으며, 인간 이외의 ‘persons’를 이용하고 착취하는 근대 서구문화의 수많은 대안들이 존재한다는 점을 보여 주려고 한다.


       그렇다면 이 확장된 의미범위의 ‘person’, ‘personhood’를 우리말로 어떻게 옮기면 좋을까? 나는 예전에 각각을 ‘개체’, ‘개성’ 등으로 번역을 시도한 적이 있었으나, 곧 부적절한 번역임을 깨닫게 되었다. 영단어 ‘person’의 통상적인 의미(사람, 인간)를 살리면서, 의미의 확장이 가능한 번역어를 선택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1)인격, 인격체로 번역, (2)사람, 사람됨으로 번역하는 두 가지 선택지가 떠오른다.


       person, personhood를 인격, 인격체 등으로 번역할 경우를 생각해보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인격이란 우선 “사람으로서의 품격”으로 정의된다. 특징적인 것은, 법률적으로 인격은 “신체적 특성을 제외한 인간의 정신적, 심적 특성의 전체”로 규정된다는 점이다. ‘인격체’는 “인격을 갖춘 개체”를 의미한다. 실제로 ‘인격’이란 단어의 사용은 존재의 상호관계성, 상호작용 등을 떠올리게 하기 보다는 인간으로서의 ‘품격’, 곧 존경할만한 성품이라는 뉘앙스를 갖고 있으며, 신체성을 배제하고 일종의 정신적 특성을 가리키기 위해 종종 사용되기에, 확장된 의미의 'person'의 번역어로 선택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사람’, ‘사람됨’이라는 번역어들은 어떨까?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사람’은 일차적으로 “생각을 하고 언어를 사용하며, 도구를 만들어 쓰고 사회를 이루어 사는 동물”로 정의된다. 그렇지만 또한 “어떤 지역이나 시기에 태어나거나 살고 있거나 살았던 자”로도 규정된다. ‘사람’의 우리말 어원을 살피면 좀 더 흥미롭다. 박갑수의 『우리말 우리문화』에 따르면, ‘사람’의 옛말은 ‘사’인데, 곧 ‘살다(生)’의 어간 ‘살-’에 접미사 ‘’이 결합된 것이라고 한다. 통상적으로 ‘사람’은 인간을 가리키기 위해 사용되어 왔지만, 만약 위의 어원설명을 받아들일 경우, ‘사람’은 ‘살아 있는 존재’를 가리키는 좀 더 폭넓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따라서 그레이엄 하비의 (확장된 의미로 사용되는) ‘person’의 번역어로도 좀 더 적합할 것 같다.


       그러나 ‘사람’이란 번역어가 ‘person’이란 단어의 이른바 ‘완벽한 번역어’일 수는 없다. 말리노프스키가 말했듯이, 한 단어의 의미는 그 단어의 사회문화적 컨텍스트 속에서 그것이 하는 기능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사실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번역할 때 컨텍스트를 그대로 옮긴다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완전한 번역이라는 것은 불가능한 과업이다. 어떤 번역(어)도 불완전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성공하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시도해야 하는 것이 번역가의, 나아가 인간의 운명이다. 시시포스의 신화처럼, 실패라는 걸 알면서도 할 수 있는 데까지 밀고 가는 것이다.


       그러니 현시점에서는 다만 tree-person, rock-person, dolphin-person을 ‘나무-인격’, ‘바위-인격’, ‘돌고래-인격’으로 옮겼을 때 발생하는 번역의 예상효과와, ‘나무-사람’, ‘바위-사람’, ‘돌고래-사람’으로 옮겼을 때 발생하는 번역의 예상효과를 비교하면서, (다른 더 적절한 번역어가 제안되기 전까지는) 후자가 좀 더 적합한 번역어가 될 것 같다고 제안할 수 있을 뿐이다.


 


유기쁨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ntolose@hanmail.net
저서로 《생태학적 시선으로 만나는 종교》등이 있고, 논문으로 <생태의례와 감각의 정치>,<인간과 종교,그리고 생태 -더 큰‘이야기’속으로 걸어가기->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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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학적 시선으로 만나는 종교  | 퍼플북 5 
유기쁨 (지은이)한신대학교출판부2013-04-08



생태학적 시선으로 만나는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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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255쪽128*188mm (B6)255gISBN : 978897806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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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책머리에

1. 펼치는 말

2. 인도아대륙에서 태어난 종교

힌두교―업과 윤회, 층층이 겹겹이 연결된 세계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요? | 힌두교, 너의 정체는 뭐냐? | 처음도 끝도 없는 시간 | 겹겹이 성스러운 세계 | 초월의 비밀은 내 안에 |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 버리고 떠나기

자이나교―철저한 아힘사로 업을 떨어내는 삶
산토끼 돌이의 눈물 | ‘하늘을 입은 사람들’ | 온통 살아 있는 세계, 그러나 물질에 갇힌 영혼들 | 상황에 대한 올바른 지식: 인간의 오만함 경계 | 아힘사, 모든 생명을 철저히 존중하는 삶 | 세계를 살아 있다고 느끼는 예민한 감수성과 철저한 생명 존중

불교―‘내가 제일 잘나가?!’ 거기서 우리의 고통이 시작되는 거야.
우리는 정작 중요한 물음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 오직 괴로움과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이야기 | 미친 듯한 욕망의 소용돌이 | 내가 없으면 무엇이 있지?: 괴로움을 없앨 수 있다 | 이야기의 확장: 여래장과 인드라망. 나무도 성불할 수 있지 | 환경보살의 비전: 세상의 치유를 위한 적극적 한걸음

3. 중국에서 발생한 종교

유교―나를 살리고 세상을 살리는 공부
개고기와 치킨의 딜레마―죄책감과 외면 사이에서 | 인간이면 인간답게: 인人과 인仁 |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공부 | 리理와 기氣로 연결된 세계 | 대나무를 보는 청년: 격물치지 | 친친親親―인仁의 확장

도교―천지의 도道와 함께 춤추면 초월할 수 있지.
길[道]을 잃다: 어느 길로 가야 할까 | 있는 그대로, 스스로 그러한 | 나도 나비가 될 수 있어: 우주의 도와 나의 합치 | 나비가 되기 위하여: 몸 수련 | 우주적 힘을 이용해 세상의 질병을 치유하다 | 자연스러운 것으로 돌아가기

4. 서구사회를 지탱해온 종교

그리스도교―고통 받는 피조물과 연대하는 삶
사랑으로 산다 | 지구에서 인간의 자리는? | 그러나 인간들은 | 세상 속으로 오신 하느님 | 상처 입은 자연의 고통 | 새 하늘과 새 땅의 소망

5. 한국에서 생겨난 종교

천도교―(한울님을) 모시고 사는 존재들을 모셔야지.
“좁쌀 한 알 속의 우주” | 확 뒤집어져라: 삐뚤어진 세상을 바로잡는 ‘다시개벽’ | 사람은 누구나 지극한 생명의 기운을 모시고 있다 | 내 안의 한울님을 잘 길러야지 | 경천, 경인, 경물: 세상 만물을 공경할 수밖에 | 밥 한 그릇을 알면 만사를 알게 될 텐데

닫는 말

참고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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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유기쁨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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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종교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았고, 한신대와 감신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4년 전에 가족과 함께 시골마을로 내려와 작은 집에서 잘생긴 백구 두 마리, 누렁이 한 마리와 함께 살고 있다. 주로 ‘종교와 생태학’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글을 써왔고, 최근에는 닭을 키우면서 인간과 인간 외 동물과의 관계성에 대해, 나아가 인간이 세계와 맺는 관계에 대해 새로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최근 발표한 논문으로는 「잊힌 장소의 잊힌 존재들: 생태적 위험사회의 관계 맺기와 종교」, 「현대 종교문화와 생태 공공성: 부유하는 ‘사적(私的)’ 영성을 넘어서」, 「핵에너지의 공포와 매혹: 한국인의 핵 경험과 기억의 정치」, 「인간적인 것 너머의 종교학, 그 가능성의 모색: 종교학의 생태학적 전회를 상상하며」 등이 있고, 지은 책으로는 『생태학적 시선으로 만나는 종교』가 있으며, 역서로는 『문화로 본 종교학』, 『산호섬의 경작지와 주술: 트로브리안드 군도의 경작법과 농경 의례에 관한 연구』, 『세계관과 생태학: 종교, 철학, 그리고 환경』, 『원시문화』, 『세계종교로 보는 죽음의 의미』(공역), 『진짜 예수는 일어나주시겠습니까?』(공역) 등이 있다. 현재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연구원 선임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접기
최근작 : <아픔 넘어>,<종교로 보는 세상>,<종교, 미디어, 감각> … 총 13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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