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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와 수도(修道)
오강남(캐나다 리자이나대학교 종교학 명예교수)
골프에 대한 이야기로 마지막입니다. 1) 골프와 종교, 2) 골프와 인생, 이제 3) 골프와 수도입니다. 오늘은 첫날 약속한대로 골프가 도닦는 일과 관계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려합니다.
골프의 정신적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을 향해 서서 치려고 할 때, 정신을 통일하고 집중하는 점입니다. 영어로 “one-pointedness of mind”라 합니다. 이것은 바로 모든 종교에서 그렇게도 중요시하는 영혼의 훈련, 도 닦는 일입니다. 하나의 요가입니다. 정신을 집중하고 공을 치는 순간은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는 몰아의 순간입니다. 이 순간이야말로, ‘참자아’, ‘본마음’으로 되돌아가는 순간입니다. 껍데기로서의 나, ‘나’라고 하는 자의식이 죽고, 내면의 ‘나’, 진정한 의미의 속사람이 살아나서 움직이게 되는 순간입니다.
공을 치려는 순간, 이번에는 한 번 멋지게 쳐 봐야겠다든가, 상대방이 깜짝 놀랄 정도로 솜씨를 보여 주어야겠다든가, 이번만은 기어코 버디 아니면 파를 해야겠다든가, 이런 저런 욕심에서 나오는 ‘잡생각’을 가지면 공이 제대로 맞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경험하는 일입니다. 특히 putting을 할 때 잡생각을 가지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 영어로 “If you think, you cannot sink.”라 합니다. 저도 형님 두 분과 함께 골프를 치면 평소 제 실력보다 못한 점수가 나오는 것이 보통입니다. 형님들에게 후발주자로서의 본때를 보여주고자 하는 마음이 무의식 중에 작용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무튼 공을 향해 서는 순간에는 일체의 헛된 욕심, 망상, 쓸데 없는 기대, 자랑하려는 마음 등 우리의 일상적인 의식에서 나오는 잡념을 비우고, 마음을 깨끗하고 고요하게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마음을 청결하게 하는 연습, 자기를 비우는 연습, 자기에게 죽는 연습, 자기를 부정하는 연습, 도(道)와 하나가 되는 연습입니다.
동양의 스포츠에는 검술과 검도, 궁술과 궁도, 봉술과 봉도 등 ‘술(術)’과 ‘도(道)’를 구별합니다. 술은 요령과 지략과 테크닉(技)으로 하는 것이고, 도(道)는 이런 지적이고 계산적인 것을 초월해서 도(道)와 하나가 된 경지에서 나오는 자율적이고 신비스런 어떤 힘에 따라 하는 것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중국 고전 장자(莊子)에 옛날 중국 문혜(文惠) 왕의 요리사가 칼로 소의 각을 뜨는 이야기가 나옵니다.이 요리사는 얼마나 절묘한 솜씨로 칼을 쓰는지 칼에서 바람소리가 나는 듯 하고 손발, 어깨, 허리, 모두가 척척 맞게 움직이는 것이 마치 노랫가락에 맞추어 춤추듯 장단이 딱딱 맞아 떨어졌습니다.
왕이 “거 참 훌륭하도다. 그대의 기술이 흠잡을 데가 없도다.”라고 칭찬하자 그 요리사는 칼을 옆에다 놓으며 “제가 목표하고 따르는 것은 모든 기술을 초월하는 도(道)입니다. 제가 처음 소를 잡으려고 할 때는 눈앞에 소 한 마리가 온통 그대로 보였습니다. 3 년이 지나니 소가 더 이상 통째로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소를 잡을 때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신(神)으로 합니다. 감각이나 지각을 중지시키고 신이 원하는 대로 따라 움직일 뿐입니다.”라고 하면서 자기의 소 잡는 비법을 쭉 이야기합니다. 왕은 “훌륭하도다. 오늘 내가 요리사의 말을 듣고 양생을 배웠도다.”가고 감탄했습니다. (장자, 제3장).
여기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신(神)으로 한다”든가 “감각이나 지각을 중지시키고 신(神)이 원하는 대로 따른다”라고 했는데, 이 ‘신(神)’이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신(神)이라면 서양 종교에서 말하는 초월적인 존재라고 하기보다는 우리 내면의 마음, 정신, 성령, 그 비슷한 것일 텐데, 요즘 심리학에서 말하는 무의식, 혹은 뇌의 우반구에서 나오는 힘이랄까, 내 속에 있는 제 3의 기능이랄까 하는 것이 아닐까요? 어쨋든 나의 일상적 의식과는 구별되는 무엇입니다. 우리가 일상 쓰는 말에도 무엇이든지 기가 막히게 잘하면, ‘신통하게 한다’거나 ‘신바람 나게 한다’고 하는 것이 여기서 연유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아무튼 이렇게 자기를 잊어버리고 ‘신(神)’이 나서 하는 경지가 ‘도(道)’를 따라서 하는 경지, 도통(道通)했다는 경지인입니다.
얼마 전에 미국에서 오하이오에서 안씨라고 하는 태권도 사범 한 분을 만났습니다. 십 수년 간 태권도를 했지만 몇 년 전에야 비로소 태권도의 신비를 터득한 것 같다고 했습니다. 하나도 힘들이는 일 없이 자기도 모를 어떤 힘에 따라 그저 춤추듯 유연하고 자연스럽게 움직일 뿐이지만 상대방의 공격을 빈틈없이 막을 수 있고 상대방의 허점도 훤히 보이는 경험을 한다고 했습니다. 말하자면 태권술에서 참 의미의 태권도의 경지로 들어온 셈입니다.
골프의 기본 요건은 과도한 힘이나 완력을 쓴다고 잘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힘을 많이 줬다고 공이 멀리 나가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자기 힘의 70% 정도만 쓰라는 것입니다. 편안한 자세에서 전체적으로 리듬과 타밍이 맞고 유연하게, 다시 말해서 자연과 합일되는 무아의 경지에서 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머피(Merphy)는 이런 경지를 내면적인 힘으로 치는 것, ‘참된 중력(true gravity)’을 체득하고 거기에 맞춰서 치는 것이라 했습니다. 이것은 공과 골프채와 치는 사람의 몸과 정신이 모두 혼연 일체가 되어 아주 자연스럽게 골프를 치는 것입니다. 헤리겔(Herrigel)은 활쏘기에 있어서 활과 활 쏘는 사람과 화살과 과녁이 하나가 된 경지에서 쏘는 것은 내가 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쏘는 것이라 했습니다. 골프나 활쏘기뿐만 아니라 피아노를 치든지, 바이올린을 켜든지, 이렇게 자기를 비우고 잊어버리고, 무아가 된 상태에서 나의 참 근원, 진정한 나와 하나됨으로 내가 아닌 내가 움직이는 신비스런 경지를 터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은 모두 그대로 도(道)를 닦는 것입니다. 수도(修道)입니다. 경건한 예배(禮拜)입니다.
R 형, 푸른 초원에 ‘신(神)’을 뵈러 나간다면 벼락맞을 소리일까요? 영국의 그 유명한 서머힐(Summerhill)의 창설자 ‘니일’(A. S. Neil)는, 새 시대의 새 종교는 “일요일 아침을 수영하는데 보내는 것이 교회에서, 마치 하느님이 찬송가 소리를 들어야만 흐믓해 하시기나 하는 것처럼, 찬송가를 부르면서 보내는 것보다 더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새로운 종교는 “하느님을 하늘에서나 사방을 벽으로 둘러싸고 있는 건물에서만 찾을 것이 아니라 초원 위에서도 찾게 될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R 형, 건방진 소리같이 들릴지 모르겠습니다만, 일요일 새벽에 골프 치러 나갈 때 저는 ‘신(神)’을 찾으러, 마음 닦으러, 마음 비우러, 도닦으러 가는 심정으로, 종교의식에 참여하러 가는 기분으로 그렇게 나갑니다.
종교라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자기를 비우고 그 자리에 도(道)가 들어와서 자기를 움직여 가도록 하는 경지를 터득하는 것, 굳었던 마음을 아름답고 부드러운 마음으로, 흐렸던 마음을 맑고 향기 나는 마음으로 바꾸어 주는 것, 이것이 중요한 대목 아니겠습니까? 아무튼 이런 것을 골프장에서 배우고 연습할 수 있다는 마음에서 오늘도 골프채를 흔들어 봅니다.
R 형, 언제 한 번 같이 나가 봅시다.
(뱀다리: 제 골프 실력이 신통하지 못합니다. 나이가 들면서 비거리가 줄어들었습니다. LA 골프 티칭 프로는 이런 글을 쓴 사람이 아직 싱글 핸디캡 정도의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니 말이 안 된다고 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