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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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입문을 위한 강화 <13>

기자명 조정중
입력 1974.08.25


진리란 무엇인가 Ⅲ-그 신앙을 중심으로
우주만유와 만법의 근원되는 원리를 신앙의 대상
사은 실체는 법신불의 화신으로 사실적으로 감응

생멸거래 간에 심신작용에 따라 인과응보가 나타나 진리란 무엇인가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보다는 오히려 진리를 어떻게 참되게 신앙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더 부심해야 할 관심사가 현대 지성인들에게 요청되는 과제가 아닌 가 본다. 진리를 사고하는 지각과 진리를 행하는 실천이 일치하기 어려운 것이긴 하나 현대인의 생활은 너무나 심한 知와 行의 거리감을 지니고 있다. 대개의 경우 종교적 신앙을 통하여 모시고 받드는 가운데 경전은 심상으로 진리를 터득하려 하지 아니하고 철학적 사유를 통하여 인식하려 하기 때문에 결국 속 깊은 진리의 심연에 이르지 못하여 진리를 다툴만한 소지와 신념과 힘을 갖추지 못하고 오히려 진리를 경시하는 경향에 흐르게 되었다. 동서양의 진리는 필요 한계를 넘을 만큼 너무 구체적으로 분석 소개되어 사람마다 진리의 개념파악 정도는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사회상은 참이 실현되지 못하고 허위와 원망의 가면이 세를 더해가고 있는 현실은 바로 우리 개개인의 심중에 진리를 존중하게 받드는 신앙심이 없는 데 기인한다. 진리를 객관적인 입장에서 지각하는 것은 진리에 대한 과학적인 이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주관적인 입장에서 진리를 체 받고 모시는 것은 진리에 대한 종교적 신앙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과학적 이해와 종교적 신앙이 병행될 때 비로소 바른 믿음과 바른 앎을 이룰 수 있게 된다. 이러한 正信 正覺을 기초로한 참된 마음바탕과 생활기조 위에서 올바른 진리 실천도 나오게 된다. 대종사께서는 법신불일원상을 신앙의 대상으로 모시게 함으로써 종교적 진리신앙의 길을 열었고, 법신불사은을 신앙의 강령으로 밝힘으로써 과학적 진리파악과 실제적 실용성의 문을 열게 되었다.

먼저 신앙의 대상으로서의 진리는 무엇인가 생각하여 본다. 사람들은 자기 상황에 따라 여러 방향에서 발심하고 신앙하게 되지만 이를 종합하여 보면 ①안정과 해탈을 얻기 위하여 ②완전무결한 지혜를 얻기 위하여 ③구족한 은혜를 얻기 위하여 ④지극한 경지에 이르기 위하여 신앙하게 된다. 구함을 해결해주는 진리는 양면적인 모습을 갖는다. 즉 절대적 하나인 동시에 보편적 다수이며, 본체이면서 현상적이며 영원이면서 순간적이며 객관적이면서 주관적이며 불변의 無인 동시에 가변의 有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가운데 절대적이요, 근본적인 면을 주체로한 진리 표현을 「법신불일원상」이라 하여 신앙의 대상으로 하고 보편적이요, 현상적인 면을 주체로한 진리표현을 「법신불사은」으로 하여 신앙의 강령 즉 신앙 방법의 표준으로 세웠다. 법신불일원상은 신앙의 대상이 될 세 가지 방향의 진리성을 가지고 있다. 첫째, 어느 특정인격이나 한 물건을 신앙치 아니하고 우주만유 허공법계 전체를 신앙하는 것으로 이는 개체의 특성을 믿는 것이 아니고 우주만유와 만법의 근원이 되는 원리를 신앙의 대상이 되는 진리로 믿는 것이요 둘째, 모든 형식이나 가식의 신앙을 떠나서 자연계에 나타나 있는 그대로의 객관적 현상 즉 천지, 부모, 동포, 법률의 실체는 곧 법신불의 화현이며 법신불의 권능을 가지고 있음으로 사실적으로 감응할 수 있는 진리를 신앙의 대상이 되는 진리로 믿는 것이요 셋째, 미신적인 토속신앙이나 요행신앙을 떠나서 생사거래 간에 심신작용에 따라 인과응보가 있게 되어 하면 한만큼 되고 가면 간만큼 오는 진리를 신앙의 대상이 되는 진리로 믿는 것이다. 이어 신앙의 강령인 법신불사은의 진리면을 살펴본다. 사은에 있어서의 진리는 인과보응의 진리가 주체가 되고 신앙은 진리적 사실신앙에 연관 지을 수 있다. 우주에 유형무형의 일체 존재자는 진리를 갊지 않는 바가 없으므로 곧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부처요, 불생불멸로 인과보응의 권능을 행사하는 진리이며 죄복을 직접 주재하는 생불인바 우주만유가 생성 발전하는 데 있어 서로 바탕이 되고 근원이 되며 도움이 되어서 피차가 없어서는 생존할 수 없는 관계를 恩으로 천명하여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하고 사은을 신앙의 강령으로 정하였다. 사은의 진리면에서 두 가지 방향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은혜의 진리요, 둘은 보응의 진리이다. 대종사께서는 사은을 정하시고 사은으로부터 은혜를 입었으니 보은하라 하셨다. 사은으로부터 은혜도 입고 해독도 입고하는 것이 아니고 근본적으로 은혜만을 입었으니 의무적으로 보은하도록 한 것이다. 사은으로부터의 被恩은 한량없는 것이지만 한편 피해의 방향으로 생각을 바꾸면 그도 또한 견줄만한 비중에 이른다. 그러나 삼대력을 갖추어 솔성을 순리자연하게 하는 경우 해독과 죄업은 경미한 것이며 그나마 숙세에 지어 놓은 업과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사은의 전체적인 은혜는 은혜다 해독이다 하는 상대적 위치의 은혜가 아니고 大悟의 경지에서 체험할 수 있는 지극한 경지의 은혜를 말한다. 그러므로 사은께서는 언제 어느 곳에서나 순역경계에 구애 없이 근본적으로 은혜를 베풀고 있다고 생각하는 지혜는 진리에 근거한 것이며 또한 사은께서 은혜를 베푸는 것은 근본적 진리이다. 사은은 또한 보응하는 진리가 있다. 陰陽相勝의 원리에 의하여 가는 자는 오게 하고 오는 자는 가게하며 惡因은 惡果로 보응하며 강자약자의 진강급과 사시의 순환원리 등은 사은의 근본진리이다. 진리가 무엇인가 추구하는 것은 진리에 대한 참된 믿음과 같이하여야 한다.


조정중 webmaster@won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