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08

아침숲속 * 마음공부

아침숲속 * 마음공부



마음공부 가이드북/마음공부 연구 논문

아침숲속 2010. 1. 18. 20:54
「마음공부」와 「원불교 마음공부」



1. 「마음공부」가 보편화 되고 있다.


대종사께서는
「천하에 벌여진 모든 바깥 문명이 비록 찬란하다 하나
오직 마음 사용하는 법의 조종 여하에 따라
이 세상을 좋게도 하고 낮게도 하나니,
···················
그러므로 그대들은 새로이 각성하여
이 모든 법의 주인이 되는 용심법(用心法)을 부지런히 배워서
천만 경계에 항상 자리 이타로 모든 것을 선용하는
마음의 조종사가 되며,
따라서 그 조종 방법을 여러 사람에게 교화하여
물심 양면으로 한 가지 참 문명 세계를 건설하는 데에
노력할지어다. 」(대종경 교의품30)라고 말씀하셨고,


정산종사께서는
「사람의 뿌리는 마음이라 무엇보다 먼저
마음공부에 힘써야 훌륭한 인격을 이루나니,
이 마음공부를 여의고
어찌 혜복의 결실을 바라리요.」(정산종사법어 무본편 9장)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급속한 과학 기술의 발달은 물질적 풍요를 누리게 하였지만
마음의 여유와 평화는 물질적 풍요와 더불어
함께 찾아오지 못한 채 오히려 인간 관계가 삭막해지고,
헛된 욕심에 이끌려 더 괴롭게 생활하는 사람들을
언론 매체를 통해서 뿐만 아니라 주위에서도 만나게 됩니다.
이렇게 물질적 풍요와 정신적 풍요가
꼭 정비례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인식하게 되어서 인지
사회에서는 점점 ‘마음’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어렴풋이 나마 ‘혜복의 결실을 얻으려면
사람의 뿌리인 마음을 알고,
또 마음공부를 해서 훌륭한 인격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을 짐작하게 된 것이지요.


이에 따라 여러 영성단체에서도 ‘마음공부’라는 말을
보편적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각 영성단체의 이념에 따라 ‘마음공부’의 길을 밝히고 있습니다.
마음을 맑히고 밝히는 도덕사업을
여러 곳에서 함께 하게 되었으니 경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공부’의 수요자 입장에서는
시장에서 제품을 고를 때처럼
각 영성단체에서 내어놓은 ‘마음공부’의 특성을 잘 파악하여
가장 실용적이고 효율성 있는 공부길을 잡아
꾸준히 공부해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2. 「원불교 마음공부」는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나?


「원불교 마음공부」는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원불교 마음공부」는
성리(性理) 즉 대소유무의 이치에 바탕하여(性理大全)
남·녀·노·소·선·악·귀·천을 막론하고 모두
실생활에서 마음을 잘 사용할 수 있도록 법을 밝히고 있습니다.



1) 우주 만유의 본래 이치와 우리 성품의 원리인
       대소유무의 이치를 실생활에 그대로 활용한다.


「원불교 마음공부」는
우주 만유의 본래 이치와 우리 성품의 원리인
성리를 대·소·유·무(大·小·有·無)로 밝혀서
성품의 대소유무의 이치를 그대로 실생활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대소유무의 이치의 의미를 살펴보면
대는 진공, 빈자리, 소는 천차만별 나타난 자리,
나타난 그것이 무한하게 변화하는 것이 유무입니다.


마음을 가지고 대·소·유·무로 나누어 본다면
한 생각 나오기 전을 大(眞空)=분별이 없는 자리, 변함이 없는 자리....
한 생각 분별하여 나올 때가 소(妙有)=분별이 나타나서, 차별이 생겨나며...
나온 그 생각이 취사선택으로 죄복간 변화되는 것을
有無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은현자재 하는 것이 곧 일원상의 진리니라.

그러나 한가지 유의할 점은
대·소·유·무의 이치에 바탕하여 마음공부 할 때
대·소·유·무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대·소·유·무가 양면적이고 동시적이라는 것을
올바르게 이해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심지(心地)를 흔히 요란함·어리석음·그름을 없다고 하는데
대종사님은 대소유무의 원리로 원래 요란함·어리석음·그름이 없건마는
경계를 따라 있어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원래 자리란 대소유무가 없는 것이 아니라
대소유무의 분별이 없는 자리라고 하셨습니다.

정산종사께서는 도운편 31장에서
「불교의 진수는 공(空)인 바
      그릇 들어 가면 공망(空妄)에 떨어지며,
유교의 진수는 규모인 바
      그릇 들어 가면 국집하며,
도교의 진수는 무위 자연인 바
      그릇 들어 가면 자유방종에 흐르며,
과학의 진수는 분석 정확인 바
      그릇 들어 가면 유(有)에 사로 잡혀 물질에만 집착하나니,
이 네가지 길에 그릇 들어가지 아니하고
모든 진수를 아울러 잘 활용하면
이른 바 원만한 법통을 이루며 원만한 인격이 되리라.」하셨는데
네가지 길(불교·유교·도교·과학의 진수)에 그릇  들어가는 원인은
바로 대소유무의 이치를 따로 떨어진 것으로 잘못 이해하고
대소유무가 양면적이며 동시적이라는 사실을 놓쳤을 때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품이나 심지, 자성, 진리를 이야기할 때도
성품은 원래 요란함 어리석음 그름이 없는 자리,
고요하고 텅 빈자리라는 무언가 깊은 수행을 통해
깨쳐야 알 수 있는 것이라는 관념에 잡혀있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요란한 마음이 일어남은 수행의 미숙이요,
참 마음이 아니므로 빨리 없애려하고 (-없게 하는 것으로서...)
세우고 돌려야 한다는 데 많이 걸려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성품은
원래 요란함 어리석음 그름이 없건마는(大=眞空)
경계를 따라 있어지나니(小=妙有)
그 마음을 통해 공부하여 변화되는(有無=造化) 것이
따로따로 존재하는 마음이 아니라 한마음입니다.
대종사께서는
「사람의 성품은
정한 즉 선도 없고 악도 없으며(無善無惡)
동한 즉 능히 선하고 능히 악하나니라.(能善能惡)」(대종경 성리품 2장)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품은 없는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있는 것도 아닌
원래 없건마는 경계를 따라 있어지는 것입니다.
밉고, 예쁘고, 옳고, 그르고, 화나고, 짜증나고,
즐겁고 등등으로 변화무쌍하고 다양하게 나타나는 마음은
경계를 따라 있어지는 마음입니다.
그 마음 그대로가 온전한 것이며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천지의 일기도 어느 때에는 명랑하고
어느 때에는 음울한 것과 같이,
사람의 정신 기운도 어느 때에는 상쾌하고 어느 때에는 침울하며,
주위의 경계도 어느 때에는 순하고 어느 때에는 거슬리나니,
이것도 또한 인과의 이치에 따른 자연의 변화라,


이 이치를 아는 사람은 그 변화를 겪을 때에
수양의 마음이 여여하여 천지와 같이 심상하나,
이 이치를 모르는 사람은 그 변화에 마음까지 따라 흔들려서
기쁘고 슬픈 데와 괴롭고 즐거운 데에
매양 중도를 잡지 못하므로 고해가 한이 없나니라」(대종경 인과품 6장)
라고 말씀하셨습니다.(中道, 圓滿, 八正道)
그러므로 무시선법에서도 ‘사람이 만일 참다운 선을 닦고자 할진대
먼저 마땅히 진공(眞空)으로 체를 삼고 묘유(妙有)로 삼으라’ 는
원리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참회문에서도 이참과 사참의 원리로 참회하는 것입니다.

항상 마음이 즐겁고, 양보하고, 사랑하는 마음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경계를 따라 화나고, 짜증나고, 미워하는 마음이
나오기도 하는 것이
인과의 이치에 따른 자연의 변화이며 마음의 원리입니다.
다만 
그 어떤 것이 마음을 통과하더라도
그것을 간섭하지 않고
그 있어지는 마음에
끌리는지 안 끌리는지 잘 살피는 것이
깨어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란한 만큼 마음공부하면 정력(定力)이 쌓이고,
어리석은 만큼 마음공부하면 혜력(慧力)이 밝아지고,
그른 만큼 마음공부하면 계력(戒力)이 얻어집니다.

일어나는 마음과 내는 마음은 다릅니다.
동서고금(東西古今)의 모든 성인들이
아만심(我慢心),  탐심(貪心), 진심(瞋心), 치심(痴心)을
내지 말라 했지, 나지 말라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정전 교의편 일원상의 신앙에서도
일원상의 진리를
대소유무의 분별이 없는 자리로 믿으며,
생멸 거래에 변함이 없는 자리로 믿으며,
선악업보가 끊어진 자리로 믿으며,
언어 명상이 돈공한 자리로 믿으며,
그 없는 자리에서 공적 영지(空寂靈知)의 광명을 따라
대소유무의 분별이 나타나는 것을 믿으며,
선악업보에 차별이 생겨나는 것을 믿으며,
언어명상이 완연하여
시방 삼계가 장중에 한 구슬같이 드러나는 것을 믿으며,
진공묘유의 조화는
우주 만유를 통하여 무시광겁에
은현 자재하는 것을 믿는 것이

일원상의 신앙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선하고 깨끗한 것만이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악하고 더러운 마음도 생겨납니다.
다만 보조국사가 수심결에서
“생각(요란함, 어리석음, 그름)이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깨침(대조)이 더딤을 두려워하라.”하며,
또 이르되
“생각이 일어나면 곧 깨치라. (앗! 경계다)
깨치면 곧 없어진다.”하였듯이(신앙=이완)
경계따라 있어지는 마음을
공부만 하자는 것입니다.(믿는 것이 곧 일원상의 신앙=처처불상)

「원불교 마음공부」는 이처럼
우리 성품의 원리인 성리를 대소유무로 밝혀서
온통(性理大全) 활용하면서 살 수 있게 하였습니다.

이치를 보는데 걸림이 있으면
    대소유무로 풀어가고
일을 하는데 걸림이 있으면
    시비이해로 풀어서
    (의두는 대소유무의 이치와 시비이해의 일이며
     과거 불조의 화두 중에서 의심나는 제목을 연구하여 감정을 얻게하는 것.)
실생활에 다달아
밝게 분석하고 빠르게 판단하는 공부를 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대종사님은 一切唯心造 時代가 아닌
用心法 時代에는
이치의 대소유무와 일의 시비이해로 공부하지 않으면
어리석다(愚)고 하셨습니다.
(愚라 함은 대소유무와 시비이해를 전연 알지 못하고 자행 자지함을 이름이니라.)



2) 간단한 교리와 편리한 방법으로
         대도를 체험하고 깨치도록 한다.

대산종사님께서는 청년 회원들에게
“『팔만대장경을 설해 주신 부처님의 근본 뜻과
  칠대교서(七大敎書)로 가르쳐 주신 대종사님의 근본 의의를
  한말로 표현해 보아라.』
『공(空)입니다.』
『그럴듯하다. 부처님께서는
 일체가 다 마음의 짓는 바라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하셨다.
 대종사님께서는
「마음을 잘 쓰라. 용심법(用心法)」이라고 하셨다.

 마음 하나 잘 쓰면
 그 사람은 가정에 있어도 성공하고,
 국가에 있어도 성공하고,
 어디에 가도 그 사람은 성공한다.”(대산종사 법문 수행편 13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대종사님의 用心法 性理의 특징, 마음공부의 특징은
바로 간단한 교리와 편리한 방법으로
모든 사람을 실지로 훈련하여
구전 심수(口傳心授)의 정법 아래
사람사람이 그 대도를 체험하고 깨치도록 하였다는 점입니다. (대종경 수행품22)
이에 비하여 과거 일체유심조의 佛敎 經典인 팔만 장경은
성리를 많이 아는 것이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性理(마음의 원리)를 다양한 방법으로 말씀하셨지만
실제 생활에서 쉽게 원리를 알아 마음을 사용하기에는
내용이 번거하여 공부길을 잡는데도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대종사님의 用心法 性理는
쉬운 말로 그 원리를 밝힌 데에 차별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공부인들은 삼가 많고 번거한 옛 경전들에 정신을 빼앗기지 말고,
마땅히 간단한 교리와 편리한 방법으로 부지런히 공부하여,
뛰어난 역량(力量)을 얻은 후에
저 옛 경전과 모든 학설은 참고로 한 번 가져다 보라.
그러하면, 그 때에는 십년의 독서보다
하루 아침의 참고가 더 나을 것입니다.(대종경 수행품 22장)


원불교의 마음공부인
대종사님의 用心法 性理는
‘우주만물의 본래 이치와
우리 자성의 원리를 해결하여 알자는 것’입니다.
과거 일체유심조의 佛敎 性理는
성리를 많이 알아서 해결 할려고 하였는데
원불교의 성리는 원불교 교리 전체가 一圓 性理이므로
유무식 남녀노소 선악귀천이 없이
法 대로 하면 일상 생활(경계)속에서
해결하여 알아 집니다.(=운전하듯)
성품의 대소유무 이치를 그대로 실생활에 활용하는 사람이
원만한 공부인 입니다.(人道上 要法=性理 大全)




3. 「원불교 마음공부」는 어떻게 하나요?
         -通萬法 明一心의 공부법 <일상수행의 요법>


대산종사께서 ‘대종사님은 교리 전체를 성리화시켜
주물주물 온갖 복혜를 다 만들도록 해주셨다.
이 또 대자대비가 아니겠는가?‘라고 말씀하셨듯이
원불교는 교리 전체가 성리입니다.
정전 교리도를 보면 일원상 밑에 사은사요 삼학팔조
처처불상 사사불공 무시선 무처선이 다 나와 있습니다.
이처럼 교리 전체가 성리이기 때문에
일원 성리를 알면 모든 교리의 참뜻이 다 통하고
또한 교법으로 사는 분은 바로 성리로 사는 분입니다.

원불교 성리 공부는 삼학 공부로써 하게 됩니다.
우리 성품의 원리가 진공 묘유 조화(空圓正)의
세가지 속성을 가지고 있기에
그 세가지 속성을 삼학으로 공부하는 것입니다.
정신수양으로 성품의 빈자리(진공)를 잘 지키고 기르며
사리연구로 성품이 밝고 밝아서
모든 분별과 차별이 나타나는 자리를 잘 알고 깨달아서
작업취사로 성품의 변화무쌍한 조화(造化)의 자리를
잘 사용하자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원불교 교리 전체는 우리 성품의 원리를
온통(性理大全) 활용하면서 살 수 있게 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마음의 원리(性理), 대소유무의 이치인 성리(性理)를
가장 쉽게 실생활 속에서 해결하여 알게 해주신 법문이
일상수행의 요법 1, 2, 3조입니다.
一圓相의 진리, 신앙, 수행, 서원문, 법어의
큰 역량을 실생활 속에서 해결하여 알아가는
一圓 性理로 마음공부의 기본이고, 기초 공부가 되어
通萬法 明一心, 明一心 通萬法의 원리를 터득하는 것입니다.

과거의 마음공부는 見性을 중요시하였지만
새 시대는 견성보다 원만한 심법(대소유무)이 중요한 시대이므로
(법강항마위는·····대소유무의 이치에 걸림이 없으며,
출가위는······대소유무의 이치를 따라 인간의 시비이해를 건설하며, -법위등급
佛供하는 것을 보면 견성한 것을 안다 -대산종사
견성유무는 事事佛供에서 확인
       대종사님은 [정전]에서 見性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으심.)


[일상수행의 요법]을 생활 속에서 대조하여
通萬法 明一心하는 공부를 할 때
수행을 위한 삶이 아니라
삶을 위한 수행이 되어져서
삼학이 3가지 과목이 아니며,
(우리가 경전으로 배울 때에는
삼학이 비록 과목은 각각 다르나,
실지로 공부를 해나가는 데에는
서로 떠날 수 없는 연관이 있어서
마치 쇠스랑의 세발과도 같나니,-대종경 수행품 21)
팔조가 8가지 조목이 아니며,
솔성요론 16조가 16가지 조목이 아니고
삼십 계문이 30개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한 마음 밝히는 한가지 공부길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많고 번거한 경전을 통해
문자화되고, 고정된
대소유무의 이치와 시비이해의 일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자신에게 벌어지는
대소유무의 이치와 시비이해의 일을 공부하므로
실제 생활 속에서 깨치고 쉽게 응용할 수 있게 됩니다.
(나는 그대들에게 많고 번거한 모든 경전을 읽기 전에
먼저 이 현실로 나타나 있는
큰 경전을 잘 읽도록 부탁하노라. -수행품23)


영문법을 공부만 하다보니,
궁극적 목적인 영어 회화가
말을 먼저 배운 어린이들 보다
더 서툴고 두렵고 안 되듯이
우리 기성 세대가 마음 공부하는 것도
어린이들처럼 쉽고 간단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교리를 마음공부를 통해 하지 않아
오히려 교리 때문에 마음공부에 어려움이 더 많습니다.
우리 시대에는 지식적인 사고가 절대 가치로서
그 시대를 이끌어가는 힘이 되었지만
또한 한계이기도 하였습니다.


萬法을 공부만 했지
通萬法 明一心 공부가 약해서
항상 교리와 수행에 대한 가난과
지적인 교리 해석의 사치에 빠져 있었습니다.


[일상수행의 요법]은
교리와 모든 법들이
결국 마음 공부를 통해 한 마음을 밝힐 수 있게 하여
明一心 通萬法 공부로
진리적이고 사실적인 우리의 실명화된,
생활법에 대조하는 마음공부입니다.


정산종사께서
?天下의 大道는 簡易하나니,
공부길을 잡은 이는 팔만장경을 단련하여
한두어 마디로 강령잡아 실행하나니라.?(정산종사법어 법훈편 8장)
라고 말씀하셨듯이
일상수행의 요법은
생활 속에서 실행할 수 있도록 내어주신 강령입니다.


일상수행의 요법이 너무 간이하여
가볍게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종사께서는
?일상수행의 요법을 그 뜻을 새겨서 마음에 대조하여
대체로는 날로 한번씩 대조하고
세밀히는 경계를 대할 때마다 잘 살피라?고 하셨으며,
(‘앗! 경계다’
=경계를 대할 때마다 공부할 때가 돌아온 것을 염두에 잊지 말고 - 무시선법
=here & now
=순간마다 공부 챤스 경계마다 공부거리-좌산종법사)


정산종사께서는 
?참다운 자성 반조의 공부는 견성을 하여야 하게 되지마는
견성을 못한 이라도 신성 있는 공부인은
부처님의 법문에 의지하여 반조하는 공부를 할 수 있는 바,
그 요령은 정전 가운데 일상수행의 요법을 표준하여
천만 경계에 항시 자성의 계 정 혜를 찾는 것이요?라고
하셨으며,
대산종사께서는
?일상수행의 요법에
전 생령이 구원을 받는 삼학팔조와
세계 평화의 근본인 사은에 대한 보은 불공생활과
온 인류가 서로 잘 사는 묘방인 사요?가
다 담겨있다고 하셨습니다.



4. 「원불교 마음공부」와 사회운동은 둘이다?


마음공부를 혹 한 개인의 공부같이 여길 수 있지만
자신의 마음공부를 근본으로 하여
세상을 밝히는 지혜와 힘을 기르는 공부가
마음공부입니다.(一心은 宇宙의 中心-大山-,응용하는데 온전한 생각으로 취사 하기를...,
                    개인에 비치면 개인이 도움을 얻고, 가정에..., 사회에..., 국가에..., 세계에...
                    자력은 타력의 근본, 타력은 자력의 근본)


정산종사께서는
?측량하는 사람이 먼저 기점을 잡음이 중요하듯이
우리의 공부 사업에도 기점을 잡음이 중요하나니,
공부의 기점은 자기의 마음공부에 두고,
제도의 기점은 자신의 제도에 둘지니라.
그러나 자신을 다 제도한 후에 남을 제도하라는 말은 아니니
마음공부에 근본하여 모든 학술을 공부하고,
자신 제도에 힘쓰면서 제도 사업에 힘을 쓰라 함이니라.? (정산종사법어 무본편 13장)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일상수행의 요법 5조에서 9조까지에 ‘돌리자’라고 하였는데
경계따라 있어지는 것(요란함,어리석음,그름,원망 생활,...공익심 없는...)을
무조건 없애는 것이 아니고,
그 경계를 마음 공부로 돌리는 것입니다.


마음의 원리가 대소유무로 되어있는 것을 알기에
‘아! 원래는 없건마는 경계를 따라 있어지는 것이구나’하고
그 마음 그대로 받아들이고 신앙(일원상의 신앙=대소유무)하여
감사 생활 하고자 하는 내가
원망 생활하는 나를 불공의 대상으로 삼아 돌리는 것입니다.
일상 수행에서는 돌리는 기쁨, 돌리는 재미, 돌리는 힘이
곧 신앙의 힘이 됩니다. (일원상의 신앙=전체 신앙=처처불상)
        (‘아는 사람 책임이고, 힘 있는 사람이 아쉬운 것입니다’-大山)
사회 운동 또한 마음 공부를 통한 신앙 없이
사회와 사람들을 변화시키려고만 하면
서로서로 반목하며 상대방을 비난하는 마음만 자라나서
오히려 참다운 변화를 가져오기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산종사께서는
?불공에는 자기 불공과 상대 불공이 있는 바,
이 두가지가 쌍전하여야 하지마는
주종을 말하자면
자기 불공이 근본이 되나니,
각자의 마음 공부를 먼저 하는 것은
곧 불공하는 방식을 배우는 것이니라.?
(정산종사법어 권도편 13장)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마음을 비운 만큼 은혜롭고
내가 은혜를 느낀 만큼 마음은 비워지는 것입니다. (無我=大我)


감사 생활하는 사람(경우에는)은
원망 생활하는 사람을 불공의 대상을 삼고,(대 우주만유 불공)
    원망 생활하는 사람(경우에는)은
    감사 생활하는 사람을 불공의 대상을 삼고
자력 생활하는 사람(경우에는)은
타력 생활하는 사람을 불공의 대상을 삼고,
    타력 생활하는 사람(경우에는)은
    자력 생활하는 사람을 불공의 대상을 삼고,
잘 배우는 사람(경우에는)은
배울 줄 모르는 사람을 불공의 대상을 삼고,
   배울 줄 모르는 사람(경우에는)은
   잘 배우는 사람을 불공의 대상을 삼고,
잘 가르치는 사람(경우에는)은
가르칠 줄 모르는 사람을 불공의 대상을 삼고,
   가르칠 줄 모르는 사람(경우에는)은
   잘 가르치는 사람을 불공의 대상을 삼고,
공익심 있는 사람(경우에는)은
공익심 없는 사람을 불공의 대상을 삼아
   공익심 없는 사람(경우에는)은
   공익심 있는 사람을 불공의 대상을 삼아(대 인류 불공)

서로서로 신앙하며 불공할 때
비로소 대립이 사라지고
은혜롭고 사랑이 넘치는 세상으로 변화할 것입니다.


大山 宗師는 일상수행의 요법을
<法대로 하면,  1-4조는 大 中和力
 5조는 大 感化力,  6-9조는 大 均等力이 나온다.>하셨습니다.  



5. 「원불교 마음공부」는 ‘마음대조공부’


「원불교 마음공부」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원불교 마음공부」의 특성은
성리(性理) 즉 대소유무의 이치에 바탕하여(性理大全)
남·녀·노·소·선·악·귀·천을 막론하고 모두
실생활에서 마음을 잘 사용할 수 있도록 법을 밝히고 있으며,
원불교 교리 전체는 우리 성품의 원리를
온통(性理大全) 활용하면서 살 수 있게 하였다는데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원불교 마음공부」는 ‘마음대조공부’라고 해야할 것입니다.
마음을 사용할 때는 대소유무의 이치에 대조하고,
진리를 공부할 때는 ‘일원상의 진리’에 대조하고,
신앙의 길을 찾을 때는 ‘일원상의 신앙’에 대조하고,
수행의 어려움을 느낄 때는 ‘일원상의 수행’에 대조하고,
서원에 반조할 때는 ‘일원상 서원문’에 대조하고
일상 생활 속에서 공부해 나갈 때는 ‘일상수행의 요법’에 대조하고,
참회할 때는 ‘참회문’에,
불공을 할 때는 ‘불공하는 법’에 대조하는 것입니다.
교리 전체가 우리의 마음의 원리인
대소유무의 이치에 바탕하여 짜여졌기 때문에
공부하는 사람의 필요와 상황에 따라
법대로 대조만하면 됩니다.


「원불교 마음공부」는
막연히 마음을 공부하는 아니라
법대로, 대소유무의 이치에 자신의 마음을 대조하여
공부해 나가는
‘마음대조공부’라는 것에 그 차별성이 있는 것입니다.
마음 작용 하나하나에서부터
진리, 신앙, 수행, 서원과 생활 속에서 생기는
수행상의 모든 것을
확인 받고 공부길을 잡아갈 수 있는 공부법이야말로
마음공부를 통해
마음의 자유와 행복을 얻으려는 공부인들에게
가장 쉽고 바른 공부가 될 것입니다.


 글 : 박선태 교무



출처 : 원불교용원교당
글쓴이 : 원종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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