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하는 힘 = 마음의 힘
cklist|2015.05.21 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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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란 삶이나 일의 어떤 영역에 새로움을 도입함으로써 문화를 변화시키는 과정이다. 창조하면 흔히 ‘상상력’을 떠올리지만 이는 창조의 한 조건일 뿐이다. 새로운 상상, 비전만 갖고는 변화를 이뤄낼 수가 없다. 어떤 영화의 대본이 대단한 상상력으로 쓰였다고 해도, 영화 제작 과정은 배우 선정, 자본 조달, 마케팅 등의 일로 얽혀있고 그 모두가 창조 과정을 좌우하는 요소가 된다. 상상력 높은 시나리오를 받쳐주지 못하는 시스템의 사례는 수두룩하다.
성공회대 문화대학원의 김용호 교수가 쓴 <창조와 창발>을 며칠에 걸쳐 읽었다. 김용호 교수는 칙센트미하이가 창의성의 요소로 제시한 개념 – 인물, 영역, 현장을 들어 ‘상상이 현실이 되는’ 과정을 설명한다. 영역(domain)은 일종의 언어다. 새로운 상상이 떠올라도 그 영역의 기초지식이 없거나 규칙을 모르면 적절하게 표현해 낼 수가 없다. 현장(field)은 개인의 제안이 사회적 선택으로 받아들여지는 장이다. 개인이 제시한 새로운 제안은 표현되고, 토론되고 승인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사고’를 하나 쳐보자고 쿡쿡 찌르는 상사가 있다. 잊을만하면 불러서 마음에 바람을 훅훅 불어 넣는다. 오늘만 해도 방에 불러서, “우리가, 자기가 스스로 enabler 가 될 필요는 없어. 나는 그림을 열심히 그리고, 그걸 만들어줄 사람을 옆에서, 밖에서 찾으면 되지. 근데 시작하고 불 지피는 건 내 손으로 해야지. 많이도 필요 없이, 한번만 바짝 붙어서 일하는 방식을 뒤집고 나면 그 다음에는 그게 쉬운 일이 돼.” 라고 하고, "지금처럼 유연하게 일해볼 수 있는 시간도 얼마 안 남았다. 기관이 커지면 체계가 점점 굳어지고 그러면 아웃오브박스 씽커도 놀 자리를 못 찾아.” 라고 했다.
이렇게 생각하는 그 상사와 같은 사람이 새로운 제안을 사회에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내가 가진 역량은, 그런 분들 옆에서 그들의 상상을 이 영역의 언어로, 이 영역의 규칙에 맞게 풀어내 표현하는 좁은 의미로의 언어적 역량, 한 과정에서의 enabler가 될 수는 있는 정도의 역량인 것 같다.
길게 끌어온 일이고, 하는 과정에서 우여곡절도 많았고, 옹고한 벽에 부딪쳐야 하는 일인데다, 영역의 규칙과 기본기를 익히기 위해서도 공부를 하며 빡쎄게 배워야 하는 일이어서 좀 시무룩하고 엄두가 안 나는 것도 사실인데, 이상하게, 그 상사가 찌르면 마음 어딘가가 움찔한다. 이 움찔함은 설레임일까 아니면 당혹함일까. 아니면 오기 혹은 두려움일까. 한 걸음을 내딛자면 마음의 에너지를 모아야 하는데, 무엇 하나가 없다. 그게 집중을 막는다. 그게 무얼까.
어떻게 생각하든 지금은 이 영역에서의 일하는 방법론을 익혀야 하는 시기이고, 그러자면 일의 한 가운데로 뛰어 들어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마이 턴'을 만들 수 있고, 제법 괜찮은 볼을 던 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생각만으로는 모자르다. 상사의 비전을 영역의 언어로 옮기는 것 외에, 나의 비전도 있어야 한다. '나는 누구를 위해, 어떤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바꾸고 싶은가?' 하는 물음. 최대한 구체적으로 상상한 비전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내가, 내 마음이 움직인다.
지금까지의 경험에 비추면, 나의 상상/마음의 에너지는 조용히 시간을 쌓으며 공부하는 데서 나왔다. 그런데 지금은 가짓수 많은 이슈와 과제를 손에 쥐고 하루하루 저글링하는 날들을 사느라 공부를 쌓는 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힘을 좀 잃은 것 같다.
아니면, 그냥 단순히, 이 또한 욕심인가. 잠이 안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