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22

알라딘: 초기불교 VS 선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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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불교 VS 선불교 

방경일 (지은이)운주사2010-05-20







초기불교 VS 선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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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3쪽148*214mm381gISBN : 9788957462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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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현존하는 니까야가 붓다의 원음이고, 남방불교는 붓다의 가르침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가? 니까야에 쓰여 있는 내용은 모두 진리인까? 선불교는 붓다의 원음에서 벗어난 이단아인가? 바야흐로 선종의 시대는 끝나고 위빠사나의 시대가 도래하는가? 이 책은 이런 의문들에 대한 해답을 찾아 때로는 미스터리의 형식을 빌려, 때로는 치밀한 논증의 형식으로, 때로는 퍼즐을 맞추듯이 써내려 간다.



다소 만만치 않은 주제들이고, 어떤 것은 현실적으로 예민한 내용들도 있지만 저자는 마치 한 편의 소설을 읽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흥미진진하고 명쾌하게, 때로는 도발적으로 논지를 풀어 나간다. 이 책을 통해 한국 불교의 올바른 미래를 위한 건강한 논쟁과 담론이 형성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목차

머리말



첫번째 미스터리 붓다는 가공의 인물인가?



두번째 미스터리 니까야는 과연 친설인가?



세번째 미스터리 니까야에 근거한 교리들은 오류가 없는가?

1. 삼법인의 진실

2. 사성제에서 팔정도는 멸로 이르는 기법일 뿐인가?

3. 오온에 대한 설명은 모순의 극치다

4. 심이처와 십팔계에 대한 실명의 모순들

5. 연기의 의미는 관계성뿐인가?

6. 교리들 사이의 충돌은 없는가?



네번째 미스터리 무아를 체득하면 윤회는 없는가?

1. 들어가는 글

2. 무아윤회는 궤변이다

3. 윤회와 무아는 모순 없이 양립할 수 있다

4. 무아와 진아의 관계

5. 종교체험의 필요성

6. 나오는 글



다섯번째 미스터리 대승은 비불설인가?

1. 반야심경, 사성제도 연기도 쳐버린다?

2. 공사상은 비불설인가?

3. 유식사상은 비불설인가?

4. 밀교는 불교가 아닌가?



여섯번째 미스터리 중국인은 왜 초기불교를 버렸나?

1. 황제가 꿈에서 붓다를 봤다고 불교를 공인했다?

2. 초기불교도 모두 알려졌다?

3. 중국인도 위빠사나 수행을 했다?

4. 복잡한 것은 싫어?

5. 우리에겐 노장이 있다?



일곱번째 미스터리 선종은 불교와는 다른 종교인가?

1. 달마와 혜능은 가공인물인가?

2. 선종은 문자를 싫어한다?

3. 견성이라면 성품이란 것이 있다는 말인가?

4. 선종이야말로 여실지견이 가능하다?

5. 선종과 위빠사나 수행의 목적은 같다?

6. 선종의 참선과 초기불교의 사선정 및 위빠사나와의 관계는?



여덟번째 미스터리 간화선만이 정통인가?

1. 능가경파ㆍ유심파와 금강경파ㆍ무심파의 대결

2. 조사선과 간화선의 차이

3. 간화만이 정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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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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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방경일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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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1학년 때 참선을 시작, 1980년에 경봉 선사로부터 ‘공이 없는 것이 아니다’라는 가르침을 받고 화두로 삼았다. 동국대 불교학과에 입학해서 고익진 교수로부터 초기불교의 교리를 배우는 것을 시작으로 아함에서 선종까지 불교교리 전체를 관통하고, 독자적인 교상판석을 이루었다. 졸업 후 한동안 불교방송에서 조사기자를 하였으며, 현재는 저술 및 불교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 및 논문으로 <우리 곁에 계신 33관세음보살 이야기>, <초기불교 VS 선불교>, <마음을 밝혀주는 60가지 이야기>, <선사들의 삶과 깨달음>, 「무아를 체득하면 윤회는 없다」, 「성철스님의 오매일여론 비판에 대한 비판」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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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만화로 보는 법화경과 새로운 해설>,<석가는 페르시아의 황제였다>,<우리가 모르고 쓰는 생활 속 불교용어> … 총 17종 (모두보기)

출판사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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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한글세대 아미타경 관음경 반야심경>,<불교의 이해>,<성운대사가 들려주는 불법의 참된 의미>등 총 436종

대표분야 : 불교 7위 (브랜드 지수 88,108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불교 전반에 대한 탄탄한 지식과 풍부한 상상력으로 거침없이 써내려간

한 편의 소설같은 책



1.

한국불교는 지금 교육, 포교, 수행 등 여러 측면에서 전환기에 놓여 있다. 그리고 그중에는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가름할 수도 있는 중요한 문제들도 있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 오랫동안 정통으로, 주류로 받들어지던 간화선이 여러 도전에 직면한 점을 들 수 있다. 가히 무소불위(?)의 권위를 가지던 간화선이 여러 수행법 중의 하나로 취급되고, 심지어는 정통 불교수행법이 아니라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온라인상에서는 더 극단적인 주장들이 횡행하고 있다.

이에 대해 조계종단을 비롯한 한국불교의 주류에서는 간화선의 체계화, 조직화, 대중화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간화선의 전통을 이어가고자 노력하고 있다. 하여, 표면적으로는 간화선이 여전히 한국불교(조계종)의 정통 수행법으로 인정되고, 여기에 근기에 따라 여타 수행법들도 인정하는 형식으로 봉합되고 있지만, 실상 현장에서의 움직임은 그렇게 안이하지 않다.

90년대 이후 개인적이든 집단적이든 간화선 수행에 한계를 느낀 다수의 출가자들이 위빠사나 수행을 위해 미얀마 등 남방으로 떠났고, 현재 그들 중 다수가 국내에 들어와 위빠사나 수행과 남방불교를 가르치고 있다. 또한 그동안 한문경전의 번역을 통해서만 접했던 불경이 빨리어에서 그대로 번역되어 나오면서 대중들의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그리고 이런 움직임들은 출가, 재가를 막론하고 이미 하나의 큰 흐름을 형성하면서 진행되고 있으며, 이제는 초기불교로 돌아가자는 목소리가 힘을 얻어가고 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흐름의 단적인 예는 강원의 커리큘럼을 선종 관련 과목 대신 남방불교의 니까야를 중심으로 개정하자는 주장에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일련의 흐름에는 현재 우리가 접하고 있는 초기불교, 남방불교, 위빠사나가 붓다의 원음이고 붓다의 실수행법이라는 믿음이 전제되어 있다. 과연 그런가?



2.

과연 현존하는 니까야가 붓다의 원음이고, 남방불교는 붓다의 가르침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가? 니까야에 쓰여 있는 내용은 모두 진리인까? 선불교는 붓다의 원음에서 벗어난 이단아인가? 바야흐로 선종의 시대는 끝나고 위빠사나의 시대가 도래하는가?

이 책은 이런 의문들에 대한 해답을 찾아 때로는 미스터리의 형식을 빌려, 때로는 치밀한 논증의 형식으로, 때로는 퍼즐을 맞추듯이 써내려 간다. 실제로는 그 하나하나가 만만치 않은 주제들이고, 어떤 것은 현실적으로 예민한 내용들도 있지만 저자는 마치 한 편의 소설을 읽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흥미진진하고 명쾌하게, 때로는 도발적으로 논지를 이끌어 나간다.

이 책은 전체 8개의 주제로 구성되어 있는데, 간략하게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 주제 ‘붓다는 가공의 인물인가?’ 편은 붓다가 신화적 가공의 인물이라는 일부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이 책의 맛보기에 해당한다.

두 번째 주제는 ‘니까야는 과연 친설인가?’로, 저자는 현존 니까야가 붓다의 친설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즉 현존 니까야는 A.D. 7세기 이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붓다의 재세와 약 1,300년의 차이가 나며, 이 사이 편집자들에 의한 실수 혹은 고의에 의해 수정되거나 보완, 누락, 삭제 등의 일들이 일어났다고 본다. 즉 현존 니까야의 내용을 붓다의 원음이라고 여기는 것은 ‘현재 한국의 초기불교주의자’(이하 초기불교주의자)들의 믿음(believe)이지 결코 사실(fact)은 아니다. 따라서 저자의 주장은 초기불교주의자들의 믿음의 근거를 전면 부정하는 것이다.

세 번째의 ‘니까야에 근거한 교리들은 오류가 없는가?’에서 저자는 니까야의 교리들이 서로 상충되거나 상호모순된다고 지적한다. 이는 앞의 두 번째 주제의 연장선상에서, 즉 네 차례에 걸친 결집 과정에서 일어난 실수나 수정 등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발생한 문제들이다. 저자는 이를 증명하기 위해 삼법인, 사성제, 팔정도, 12처와 18계, 연기 등 불교의 주요 교리들에 대한 니까야에서의 주장을 정리하고 그 모순점들을 지적한다.

불교교리 중 난해하고 쉽게 설명할 수 없는 미스터리 가운데 하나로 무아와 윤회 문제를 꼽을 수 있다. 둘 다 불교교리의 핵심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하나를 긍정하면 어느 하나를 부정해야 하는 모순 논리에 빠지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네 번째 주제 ‘무아를 체득하면 윤회는 없는가?’에서 이 문제를 단순 명료하게 정리해 낸다. 이 양자를 서로 별개의 범주로 보아 ‘무아인데 어떻게 윤회하지?’라고 고민할 게 아니라 ‘무아를 체득하면 윤회는 없다’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섯 번째 주제는 대승비불설大乘非佛說 논쟁이다. 저자는 공(중관)사상, 유식사상, 밀교 등의 예를 통해, 이들이 비불설로 비판받는 내용을 제시하고, 이에 대한 반론으로 이들이 붓다의 가르침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밝혀낸다.

여섯 번째, ‘중국인들은 왜 초기불교를 버렸을까?’ 불교의 중국 전래 초기에는 대부분 소승불교(초기불교)의 경전들이 번역 유포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승이 전래되자마자 중국은 마치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대승을 받아들였고, 그 결과 중국에서 소승은 역사적 유물이 되어 버렸다. 저자는 그 원인을 노장사상의 존재와 현학의 유행, 중국인의 특성 등 다양한 측면에서 규명하고 있다.

일곱 번째, ‘선종은 불교와는 다른 종교인가?’ 흔히 학자들도 제기하는 문제 중의 하나는 중국에서 발생한 선종은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와는 다르다는 주장이다. 예를 들면, 선종에서 말하는 성품을 아트만의 일종이라고 보아, 불교의 기본개념인 무아의 사상에 배치된다는 것이다. 나아가 달마나 혜능이 가공의 인물이라고까지 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참선과 위빠사나가 여실지견如實知見이라는 같은 목적으로 가는 다른 길이라고 주장한다.

여덟 번째, ‘간화선만이 정통인가?’ 초기불교주의자들에 따르면 불교의 정통 수행법은 위빠사나이고 간화선은 선종의 수행법일 따름이다. 잘 봐주어서 여기까지이고, 선종이 불교가 아니라는 주장에까지 나아가면 간화선은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간화선은 중국과 한국의 풍토에서 역사적으로 검증받은 수행법이라고 반박한다. 하지만 이것도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므로, 간화선 수행자들의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3.

도그마에 빠지면 더 이상 불교일 수 없다. 역사적으로나 교리적으로나 불교는 고정되거나 교조적이지 않다. 불교는 그 시작부터 시대적, 지리적, 민족적 특색에 맞게 다른 사상이나 종교, 철학들을 포용, 융합하면서 자신을 풍부하게 변화 발전시켜 왔다. 따라서 언뜻 보기에 상이한 형태의 불교가 공존하고 있다. 선종도 그러한 역사적 실례의 하나이다.

따라서 초기불교도 대승불교도, 위빠사나도 간화선도 어느 것도 그 자체로 절대적일 수는 없다. 이미 붓다 스스로도 ‘당신의 말이라고 해서 무조건 믿지 말라’고 하지 않았던가?

시대가, 환경이, 근기가, 개인의 업 또는 공업이, 정서나 감성 등등이 변하면 그에 따른 수행의 변화는 불가피하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이 그 전환의 시기이자 새로운 패러다임의 모색기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모든 것은 의심의 눈으로, 그리고 실천을 통한 검증으로 판단해야 한다.

이 책은 몇 가지 주제를 통해 현재 한국의 초기불교주의자들의 주장을 정면 반박한 것으로, 때론 도발적이라고 느낄 수도 있으나 보다 본질적으로는 현시점의 한국불교가 짚고 넘어가야 할 근본적인 문제제기의 측면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제기를 통해 한국 불교의 올바른 미래를 위한 건강한 논쟁과 담론이 형성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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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이 한국불교의 미래와 대안을 찾기위한 지적 탐색의 인연으로 수용될 수 있다면..  구매

현정 2010-06-04 공감 (2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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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불교형태를 띈 상좌부불교(소승불교)가 더 우세하다는 것에 대한 반박으로 적은 책. 불교학자가 아니라서 그런지 말 중간 중간 keyboard warrior다운 표현이 있어서 그렇지초기불교와 선불교차이를 나름대로 잘 정리.. 불교 역사책보다 battle형식으로 초기불교와 한국의 선불교의 논란 포인트를 잘 집어낸 책.. 

팔루스의 기표 2016-06-19 공감(16)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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