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29

전재성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아는 것이 宇宙를 지탱하는 두 기둥" - 조선일보

[최보식이 만난 사람]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아는 것이 宇宙를 지탱하는 두 기둥" - 조선일보

[최보식이 만난 사람]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아는 것이 宇宙를 지탱하는 두 기둥"
['서유기'의 현장 법사 이후 佛經 가장 많이 번역… 전재성 불교학자]

"부처의 위대한 업적은 '있는 그대로 세계'를 보는 눈을 열어준 것이다
괴롭고 無常하고 실체 없는…"

"괴로움을 보는 자는 괴로움의 소멸을 본다
죽어가는 자의 얼굴에서 너 자신을 인식하라"


최보식 선임기자
입력 2017.05.01 03:03

전재성(64)씨는 현대판 '현장 법사'다. '서유기'에 나오는 현장 법사가 인도에 가서 대승불교 경전을 구해 번역했다면, 그는 25년 넘게 빠알리어(부처님 생존 당시 언어)로 기록된 초기 불교 경전을 번역하고 있다. 통산 50권쯤 된다. 이런 공력이면 절집의 수행자들 못지않은 깨달음의 경지에 오르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는 서울 홍제동의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전재성씨는“자기만이 옳고‘절대 진리’라고 집착할 때 오류의 늪에 빠진다”고 말했다.

―내일모레면 '부처님 오신 날'이다. 부처님이 세상에서 행한 가장 위대한 업적은?

"세상 사람들에게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보는 눈을 열어줬다."

―무엇이 '있는 그대로의 세계'인가?

"빠알리어로 세상은 '로까'이다. '파괴되고 붕괴되는 것'이라는 뜻이다. 우리 눈앞에 펼쳐진 현상(現象) 세계는 괴롭고 무상(無常)하고 실체가 없다. 부처님은 '괴로움을 보는 자는 괴로움의 소멸을 본다'고 했다. 깨달음은 '일체개고(一切皆苦·모든 것이 괴로움)' 진리를 터득해 그 괴로움을 뛰어넘는 것이다."

―왜 일체를 '괴로움'으로 인식하는가?

"모든 존재가 무상한 것처럼 우리 각자도 늙음·질병·죽음에 직면한다. 아무리 즐거운 삶이라도 변함없이 지속되지 않는다. 이를 인식하면 괴로울 수밖에 없다. 부처님은 법구경(法句經)에서 '죽어가는 자의 얼굴에서 너 자신을 인식하라'고 했다."

―나 혼자 늙고 죽어가면 괴롭지만, 생물 법칙에 따라 모든 살아있는 것은 그런 과정을 거친다. 생로병사는 괴로움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 아닌가?

"생물 법칙에 의한 죽음은 관념적인 것이다. 자신에게 실제 질병이나 죽음이 닥쳤을 때는 심한 고통과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다. 이를 이겨내고 모든 존재가 그렇다는 것을 깨친다면, 괴로움을 극복할 수는 있다."

―불교는 비관(悲觀)과 허무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나?

"즐겁고 영원하다고 여기는 것은 감관(感官)이 우리를 속인 결과다. 세상은 원래 괴롭고 무상하고 실체가 없다. 이를 정확히 인식하는 게 진리다.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세상은 영원한가, 무상한가?'라고 물었다. 제자는 '무상하다'고 대답했다. '무상한 것은 즐거운 것인가, 괴로운 것인가?'를 물으면 '괴로운 것'이라고 답했다. 다시 괴로운 것을 두고 '이것이 나의 것이고, 나이고, 나의 자아(自我)라고 할 수 있는가?'라고 물었고 제자들은 당연히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이 문답은 무슨 뜻을 담고 있나?

"'나' '자아' '나의 것'이라는 한계에 집착하면 고통이 생겨난다. 그것에 집착하지 않으면 무아(無我)의 자유를 누린다는 뜻이다."

―불교와의 인연은?

"네 살 때 끓는 물에 전신 화상을 입었다. 화상 흉터가 심해 공중목욕탕이나 해수욕을 못 갔다. 사춘기에 고민과 방황이 있었다. 중학교 생물 선생님으로부터 참선 지도를 받았다. 그게 불교와의 인연이었다."

―서울대 농대에 진학했는데?

"시골에서 농사나 지으며 불교 공부를 열심히 해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서울대 농대에 불교학생회를 만들었고, 시국 상황에 휩쓸려 대학생불교연합회 회장까지 맡게 됐다."

―학생운동에 가담했다는 것인가?

"휩쓸리게 됐던 셈이다. 박정희 유신 정권 당시 대화지(誌)에 '민중불교론'을 게재했고, 함석헌 선생이 맡고 있던 '씨알의 소리'에 글도 썼다. 하지만 내적으로는 불행했다."

―불행했다는 것은?

"내가 확신하지 않는 '진리'에 도피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많았다."

―확신하지 않는 진리라면?

"내가 몸담은 사회운동이 '진리'이냐에 대해 확신을 못 가졌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시인이 찾아와 '당신의 글을 읽고 크게 반성했다. 내가 지금까지 잘못된 삶을 살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게 '영혼의 자서전' 영문판을 선물하면서 3배(拜)를 올렸다."

―인도의 명상 수련가 요가난다가 쓴 '영혼의 자서전'을 말하는가?

"그렇다. 한글로 번역되지 않았을 때다. 그날 밤새 읽었다. 그 책이 내 운명을 크게 바꿔놓았다. 그 전까지 나는 눈에 보이는 세계에 가담했다. 전부인 줄 알았다. 하지만 다른 세계가 있구나, 그런 충격을 받았다. 그때부터 명상 수련을 시작했다."


―육신을 떠나 영혼이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믿나?

"육신과 영혼이라는 개념은 극단적인 것이다. 상호 의존적이고 연결돼 있다고 본다."

―뇌(腦)과학에서는 '영혼'이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뇌물질의 작용을 그렇게 착각할 뿐이라는데?

"그것도 우리의 관념과 언어가 그렇게 속인 결과일 수 있다. 물질세계가 전부 아니라고 믿어야 비로소 열리는 영적(靈的) 세계의 지평이 있다."


―젊은 날 '신비 체험'을 했다고?

"명상 수련에 빠져 있을 시기였다. 하지만 결핵과 늑막염을 앓아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스물여섯 살 때인가, 안양천에 앉아 자살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내 호흡이 굉장히 느려지고 레이저 광선이 온몸을 꿰뚫으면서 세상은 사라졌다. 내 미간에는 다이아몬드 같은 것이 콱 박혔다. 언어의 한계 때문에 설명할 수 없고, 이 세상에는 없는 느낌이었다."


―몸 상태에 의해 뇌의 전기·화학 작용으로 일어난 환각(幻覺) 같은 것이 아닌가?

"그걸로 설명이 안 된다. 실제 세계보다 더 실제적인 세계였기 때문이다. 이런 신비함을 같은 강도로 다시 맛볼 수는 없었지만, 절실하면 반복적으로 유사한 체험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 체험이 있은 뒤 그는 베다와 우파니샤드 등 인도 철학을 공부하기 위해 동국대 대학원에 들어갔다. 박사 과정을 마치고는 독일 유학을 떠났다. 어느 날 그는 독일 라인강가의 벤치에서 한 노숙자를 만났다. 꿰맨 남루한 옷을 입고 썩은 당근을 깎아 먹고 있었다. 노숙자가 그에게 당근 한 조각을 건넸다.

"노숙자 얼굴을 보는 순간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직감이 들었다. 내가 '예수님처럼 생겼다'고 하니, '나는 부처님 가르침을 실천하고 있다. 돈·여자·집 없이 생활한다'고 말했다. 그는 불교 경전의 구절을 낭송했다. 너무 놀라웠다. 그를 통해 독일에서는 이미 빠알리어로 된 초기 불교 경전이 번역돼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뒷날 그가 이 독일인 노숙자 페터 노이야르에 대해 쓴 '거지 성자'는 베스트셀러가 됐다.

―독일은 동양의 정신문화나 불교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우리에게 친숙한 헤르만 헤세가 그런 대표적인 작가인데?

"헤르만 헤세는 빠알리어로 된 초기 불교의 경전 '마지마 니까야(중간 크기의 설법집)' 등의 번역본을 읽고 '데미안'과 '싯다르타'를 썼다. 유명한 구절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는 말이 이 경전에 나온다. 거기에 등장하는 유리알과 같은 명쾌한 대화에 영향을 받아, 금욕적 정신의 훈련을 다룬 '유리알 유희'(1946년 노벨 문학상 수상작)를 완성했다."

독일 본 대학 등에서 7년간 산스크리트어와 빠알리어, 티베트어, 인도학 등을 공부한 그는 1989년 귀국했다. 그때까지 국내에는 제대로 번역된 초기 불경이 단 한 권도 없었다. 그는 초기 불경 번역 작업을 필생의 과업으로 삼았다.

"초기 경전과 유사한 '아함경'이 있었으나 한문이거나 중역한 것이고, 법정 스님이 번역한 '숫타니파타'(부처님의 초기 어록)도 일역본을 중역한 것이었다."

초기 불경은 부처님 생존 당시 구전된 경전이다. 이를 근원불교(소승불교)라고 한다. 불교의 다른 한 갈래는 형이상학적으로 정리된 대승불교다. 우리는 중국에서 대승불교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대승불교 경전만 번역돼 있다.

―초기 경전의 특징은?

"개념 정리가 명쾌하고 구체적이다. 가령
  •  자비(慈悲)는 '중생이 행복하기를 기원하는 것'이고. 연민(憐憫)은 그냥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고통이 없기를 바라는 것'이다
  • 선(善)은 '착하고 건전한 것을 증가시키고 악하고 불건전한 것을 감소시키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지금 불교가 초기 불교와 달라진 점은?

"불교는 절대적 존재에 의지해 복과 구원을 비는 종교가 아니었다. 초기 불교는 수행 중심이고 대화를 통해 발전해왔다. 그러나 우리 불교는 깨달음이 너무 추상적이고 권위적으로 변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기복(祈福) 신앙처럼 됐다."

―젊은 날 사회운동을 하다가 정신세계로 빠졌을 때 주변 반응은?

"비웃음을 받았다. 사회를 바꾸려는 운동은 시대마다 거의 똑같이 되풀이된다. 그리고 인간의 탐진치(貪瞋癡) 때문에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도 자신의 욕망과 자기 합리화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다른 사람들을 향해 질타하지만 나 자신의 심연(深淵)을 제대로 들여다보기는 어려운 것이다. 불교에서는 도덕적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아는 것이 우주를 지탱하는 두 기둥이라고 했다. 이런 자각이 필요하다."

―사회운동이란 물리쳐야 할 악(惡)과 적폐를 전제로 하지 않는가?

"자기만이 옳고 '절대 진리'라고 집착할 때 오류의 늪에 빠진다. 우리 사회가 거센 파도에 휩쓸리게 되는 것도 여기서 비롯된다. 부처님이 제자와 함께 있을 때 가난하고 누추한 사람이 곁을 지나갔다. 제자가 '이런 사람에게 어떠한 마음을 먹어야 잘못이 없습니까?' 하고 물었다. 부처님은 '나도 한때 저와 같은 사람이었다고 생각하라'고 답했다."

―무슨 뜻인가?


"상대와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야 한다는 말이지만, 훨씬 심오한 뜻이 있다. 빈자와 부자를 대할 때 윤회의 어느 세월에서 내가 저 모습이었다고 사유하면, 시기·질투·혐오·탐욕·분노 등의 감정을 제어할 수 있다는 뜻이다."


―불교적 언어는 가끔 유희(遊戱) 같은 느낌이 든다.

"결코 유희가 아니다. 불교에는 '유무중도(有無中道)'라는 말이 있다. '있다'와 '없다'는 모두 극단적이고 절대적인 생각이다. 봄에 새싹이 나오면 없던 것도 있게 되고 가을에 낙엽이 지면 있던 것도 없게 된다. '자타중도(自他中道)'라는 말도 있다. '나'와 '너'도 극단적이고 절대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타가 완전히 별개라면 나와 남 사이에 의사소통은 불가능하다."

그는 아내와 두 아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