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mgok Lee
201909
조성환 (Sunghwan Jo) 교수의 ‘동학사상의 전개와 발전’이라는 강의를 들었다.
짧은 시간에 동학 사상을 압축적으로 이야기하는 이런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는 것이 동학을 공부해 적이 별로 없는 나에게는 행운이었다.
특히 현대 개벽운동의 사상적 지평을 개척하고 있는 조 교수의 동학 강의라 더 뜻 깊었던 같다.
여러 가지로 공부하고 싶은 생각이 많이 난 것만으로도 명강의였다고 생각한다.
제한된 시간 때문에 질문이나 의견을 말할 기회가 안되어 페북을 통해 내 질문이랄까 의견을 말하고 싶다.
나는 사실 동학에 대한 관심이 거꾸로 생긴 셈이다.
자신의 사회적 실천과 사상적 경험이 그 바탕이다.
젊어서 사회주의 혁명을 꿈꾸었고 그것이 부딪친 한계를 자신의 경험과 실제 진행된 역사를 통해 보면서 1980년대에 나 자신 사상적 전환을 하게 된다.
감옥에서 나와서 친지한테 선물 받은 원불교 교전의 첫 페이지에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구호를 보는 순간 전율 같은 것이 지나갔다.
그 동안 내가 사상을 재정립하는데 가장 핵심적으로 고민해 온 것을 이 짧은 문장이 표현하고 있다는 감동이었다.
그래서 친구가 주지로 있던 암자에서 보름을 머물면서 그 동안의 생각을 글로 정리했는데, 그 제목이 ‘혁명에서 개벽으로’였다.( 그 원고는 잃어버렸지만, 내용은 요즘 내가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것이 ‘개벽’과의 만남이었고, 그러다보니까 그 원류인 동학과 만나게 되는 것 같다.
언제 기회가 되면 스스로를 당당하게 표현하는 ‘개벽파’들과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오늘은 조 교수의 강의를 들은 감동과 잊어버리기 전에 오늘 질문 내지는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남긴다.
1. ‘개벽’과 ‘개화(근대화, 산업화)’에 대한 구분에 대해서.
개화를 ‘물질 개벽’의 거쳐야할 한 단계로 볼 수 없는가?
(물질적 생산력이 인류의 총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단계)
자본주의는 그것과 결부된 제도.
2. 물질 개벽이 만나는 모순과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구호가 나온다.
다만 신기한 것은 물질 개벽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런 구호가 등장했다는 것인데, 오늘 강의에서 선천 5만년을 물질개벽으로 보았다는 내용이 여러 의미로 다가왔다.
사회주의는 이 모순을 극복하지 못했다.
여기서 질문이 있다.
정신 개벽의 내용이 무엇인가? 특히 현대에 와서 그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3. 정신 개벽은 다시 물질과 제도 개벽으로 피드백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자본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가? 라는 대명제에 ‘개벽운동’이 대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비전과 동력은 무엇인가?
오늘 강의를 들으면서 떠오른 생각들이었다.
언제 기회가 되면 개벽파 들과 이런 질문들을 같이 이야기해보고 싶다.
조 교수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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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조성환 교수의 동학 강의에서 기억에 남는 내용을 잊기 전에 적어 둔다.
1. 왜 동학이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출현하지 않고, 한국에서만 나오는가?
2. 동학사상의 핵심이 ‘하늘’인데, 이 하늘은 기독교(천주교)의 천주(天主)와도 다르고, 유교나 도교에서 말하는 하늘과도 다르다.
‘하나의 우주적 큰 기운(至氣 또는 一氣)’ ‘우주적 생명력’
3. 최제우의 ‘시천주(侍天主)’의 ‘시(侍)’가 가장 큰 특징.
조 교수는 이를 ‘시천주=자기 모심’으로 해석하고 있다.
고대 제천(祭天)행사도 중국에서는 황제의 영역에 속하는데, 한국은 온 국민의 축제였다.
이 ‘모심(侍)’ 속에 한국에 특유한 토착문화, 무속(巫俗), 무당 등이 녹아 있는 것 아닌가?
4. 최제우는 하늘의 말(天語) 체험을 말하고 있다.
기독교의 방언 체험과 유사하다.
최시형은 이 체험을 하지 못했음을 실토하면서, 사람의 말(人語)이 하늘의 말(天語)라고 말한다.
5. 최제우의 시천주(侍天主)로부터 최시형의 ‘인시천(人是天) 천시인(天是人)’ 으로 나아간다.
6. 하늘과 사람이 상호의존 관계인 것이 독특하다.
천인상여(天人相與), 천인상의(天人相依) 즉 人依天 天依人
7. 경천, 경인, 경물까지 도덕을 확장하고 있다.
만물(萬物)로 확장 된다.
8. 이천식천(以天食天)은 기화(氣化) 즉 에너지의 변화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9. 우주는 한생명이고 한 살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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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내 질문 겸 의견이다.
‘내가 곧 우주(人乃天)’라는 것을 깨닫는다는 것, 좁쌀 한톨, 종이 한 장에서도 우주를 본다는 것은 내 안에서 어떤 마음의 상태로 되는 것일까?
아집(我執)과 소유(所有)의 질곡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닐까?
이것이 되지 않는다면 ‘한생명인 우주가 곧 나’라는 깨달음은 공허한 것이 아닐까?
인간은 우주에서 특이한 존재다.
‘자유욕구’와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지적 능력’을 가진 유일(?)한 존재인 것이다.
결국은 이 자유욕구가 최종적으로 도착하는 곳이 ‘관념 안에 있는 부자유’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고, 그것은 아집과 소유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과학과 종교가 서로 보완하며 이런 자유의 영역이 보편화되는 세계를 바라보고 있다.
이것이 정신개벽의 내용이 아닐까?
이런 의식의 변화가 보편화되면 전혀 새로운 문명과 제도가 출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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