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파워] 윤회는 가짜다?!
윤회는 가짜다?!
정성민 교수가 쓰는 [예수와 석가모니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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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민
기사입력 2018-06-20
지금까지 살펴 본 바로 석가가 힌두교적 윤회사상을 거부하였음은 분명한 사실이다.[i] 이런 면에서 석가는 힌두교의 종교개혁자임이 분명하다.[ii]왜냐하면 힌두교의 자연 신들을 거부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힌두교의 영혼사상도 거부하였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온갖 힌두교의 미신적이고 신비적인 요소들은 설 땅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윤회사상이다. 석가는 윤회의 주체가 되는 영혼이라는 신비한 존재를 부정하였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석가에게 있어 윤회는 단지 허상에 불과한 것이다. 휴스톤 스미드는 석가의 이러한 무아론적 윤회설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부처는 영혼의 단독의 존재를 부정하였다. 윤회설을 믿기는 하였지만 당시 브라만교도들이 믿는대로의 윤회설을 믿지 않았다. 그는 같은 영혼이 영원히 존속된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자기가 보는바 윤회설을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등불을 켜서 그 불을 또 다른 등불에 옮기고 또 옮긴다고 하자. 그때 맨 마지막에 옮겨진 불꽃은 틀림없이 처음의 그 불꽃과는 동일한 불꽃이 아니다. 그와같이 같은 영혼이 영원히 존속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존재로서의 개체의 영혼은 그것으로 그치고 다만 한 등불이 다른 등잔에게 불씨의 역할을 하여 주는 것과 같이 다른 또 하나의 존재의 원인이 되어주며 원인-결과의 유대를 가질 따름이다...... 결국 윤회과정에 있어서 부처는 물체설을 부인한다. 물체설을 부인하는 까닭은 삼라만상의 생성 윤회과정에 있어서 물체는 유한되고 일시적인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다.[1]
전통 힌두교의 수동적이고 숙명적인 윤회설은 업보를 강조한다. 그래서 운명의 주체가 바로 신이다. 하지만 석가의 상징적인 윤회설은 인간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는 능동적인 윤회설이다. 그러기에 운명의 주체가 바로 인간이다. 석가는 인간 스스로 운명의 주체가 되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라고 가르친다. 이에 대해 법륜 스님은 그의 저서 <인간붓다, 그위대한삶과사상>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러나 부처님은 모든 것이 신의 의지에 따라 만들어지고 결정된다면 누가 악한 일을 하거나 선한 일을 해도 그것으로 과보를 받을 수 없으며, 인간의 어떠한 의지도 용납될 수 없다고 비판하셨습니다. 즉 모든 행위가 신에 의한 것이라면 악행을 해도 그것은 신이 시켜서 한 일이지 인간의 의지로 한 것이 아니므로 그 책임을 인간에게 물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숙작인론이란 인간이 받는 현재의 모든 고락은 과거 전생 업의 결과라는 주장으로, 우파니샤드나 자이나교의 논리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지금의 모든 것이 전생의 업에 따라 결정된다면 모든 행위는 자기 의지로 한 것이 아니므로 그 행위에 대한 대가를 받을 필요도 없으며, 또한 인간이 스스로 수행한다든가 노력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비판하셨습니다. 즉 인간의 모든 행위가 전생의 업에 의한 것이라면 지금의 행동도 전생에 규정된 것이므로 인간 스스로의 의지로써 무엇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 됩니다.
무인무연론은 모든 것은 단지 우연일 뿐이며, 인과란 인간이 지어 낸 것에 불과하다는 주장입니다. 숙명론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주체 의지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모든 것이 어떠한 인과 원칙도 없이 단지 우연한 사건의 나열이라면 인간이 의지를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고 비판하셨습니다. 모든 인간의 사고나 행위가 단지 우연이라면 인간에게는 올바른 목적을 갖고 수행한다는 것이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불가능한 것이 되고 만나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이 세 가지 잘못된 견해를 비판하는 핵심은 그것이 신의 의지이든, 전생 업의 결과이든, 우연한 사건이든 간에 그러한 것이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규정한다면 인간에게 자유의지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인정하고, 그것을 가장 기본적인 인간관으로 삼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은 결코 신이나 전생의 업 또는 물질적인 여러 요소의 결합에 의한 사건에 종속되어 살아가는 존재가 아닙니다. 인간 스스로 자신의 운명과 우주의 주인임을 밝히고 주체적인 의지로 자기 삶의 주인이 되도록 하는 데 불교 사상의 참 뜻이 있다 하겠습니다.[2]
휴스톤 스미드도 석가가 주장하는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석가모니는 윤회설로서 카르마의 교리를 주장했는데, 이는 모든 사물이나 생명체가 원인과 결과의 관계로 연결되어 있지만 그 원인과 결과의 생성 과정가운데서도 사람의 의지는 자유롭다는 것이고, 또한 사람의 자유로운 의지는 자기의 운명을 좌우할수있는 여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3]
이제 석가가 힌두교의 유아론적 윤회설을 부정하였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석가는 인간이 스스로의 수행을 통해 자신의 죄를 씻고 거룩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가르쳤다. 이는 석가가 그 모든 숙명적인 업보의 올무에서 벗어나는 해탈을 가르쳤다는 것이다. 도대체 이는 무슨 말일까? 이는 석가가 말하는 해탈은 바로 반윤회(실제로 윤회는 없다는 주장)를 통한 탈윤회(윤회의 올무에서 벗어남)라는 주장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윤회가 허구내지는 가짜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부터 윤회를 믿기 때문에 발생하는 그 모든 고통과 짐에서 자유롭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세근 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반윤회라는 말은 거칠다. 한마디로 ‘윤회는 없다’는 것으로 ‘반(反)’은 ‘무(無)’’의 뜻을 갖는다. 마땅한 표현이 없어 윤회와 상치시키기 위해 이 말을 쓰는 것인데, ‘윤회설과 윤회를 부정하는 입장’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명제로는 다음과 같이 풀 수 있다. ‘고정적 실체로서의 자아를 인정하는 윤회는 무아론과 모순된다.’….. 윤회설을 긍정하면서 신분제도에 신음하는 인도인을 구원할 방도는 없다. 윤회설은 내운명에 대한 지나친 수긍으로 앞으로 나가기 어렵다. 숙명론은 수행을 무엇보다도 강조하는 불교의 교리와 자칫하면 부딪힌다. 내 죄를 씻는 것은 내 몫이다. 반윤회는 윤회가 우리가 벗어버릴 것임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탈(脫)’윤회야말로 불교가 제시하는 궁극적인 목표이다. 석존은 탈윤회를 통해 우리가 해탈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한다.[4]
어쩌면 석가가 전통 힌두교가 주장하는 윤회설의 미신적인 요소들, 특별히 사람이 짐승으로 환생한다는 주장들을 전적으로 부정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왜 그럴까? 그것은 석가가 매우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철학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힌두교 윤회설이 어느 정도로 미신적일까? <우빠니샤드>에 나타나는 윤회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윤회세계에 들어가는 존재들은 마을에 사는 속인들로서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고 공물을 올리고 보시행을 하는 사람들이다. 죽은 뒤 화장을 하면, 그들은 화장불의 연기속으로 들어간다. 그 연기에서 밤으로, 밤에서 어두운 15일(보름 다음 날부터 그믐 날까지)로, 어두운 15일에서 태양이 남쪽을 향해 내려가는 여섯 달로 간다. 그들은 여섯 달로부터 조상들의 세계로, 조상들의 세계에서 소마의 왕인 달로 간다. 달에 도착하면 그들은 신들의 음식이 된다. 거기서 신들은 이 음식을 먹는다. 죽은 자들은 자신들이 행한 모든 선행이 고갈될 때까지 거기에 머문다. 이 단계가 끝나면 다시 지상으로 내려온다. 그들은 달에서 허공 속으로 되돌아 간다. 그리고 허공에서 공기 속으로, 공기에서 비 속으로, 비에서 땅 속으로 되돌아간다. 그러면 그들은 땅 위에 쌀, 보리, 풀, 나무, 깨, 콩이 되어 나타난다. 남자가 쌀과 보리 등을 음식으로 먹고 정액을 여자에게 사정해 줌으로서 다시 삶으로 되돌아온다. 좋은 행동을 한 자들은 좋은 생을 얻게 된다. 그들은 브라흐만, 끄샤뜨리아, 바이샤로 태어난다. 반대로 나쁜 행동을 한 자들은 나쁜 생을 받게 되는데, 개, 돼지, 천민으로 태어난다.[5]
인간이 동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윤회론은 윤회론을 옹호하는 사람들 조차도 거부한다는 것이다. 크리스토퍼 베이치 교수는 비록 윤회론을 확신하는 철학자이지만 인간이 동물로 태어날 수도 있다는 윤회론의 내용은 거부한다. 그는 동물로 환생할 수 있다는 윤회론을 도덕적이고 교화적인 측면에서 상징적으로 해석한다. 베이치 교수는 주장한다,
윤회에 관한 수준 높은 담론들에서는 인간이 동물로 태어날 가능성이 거의 배제됩니다. 윤회는 최소한 3천년 이상의 세월 동안 전해진, 아주 오래된 관념입니다. 그 동안 이 관념은 종종 원시적, 민중적 믿음과 뒤엉키곤 했지요. 예컨대 인간은 다음 생에 동물로 태어난다는 식이지요…..이것은 아이들에게 도덕적 행동을 가르치고 성인들을 교화시키는 효과적인 수단이지만, 철학적으로 보면 윤회론과 어긋나는 점이 많습니다.[6]
사실 힌두교도들은 현세의 부귀를 전생에 의한 보상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현세의 고난을 내세의 보상을 받기 위한 기회로 여긴다. 그러기에 각자의 신분에 만족하며 법[iii]에 따라 선한 행위를 쌓아야 한다. 이러한 힌두교의 윤회설은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신분제도를 유지하고 사회질서를 지키는데 매우 유용하게 사용되어 왔다.[iv]하지만 석가는 사회질서를 유지시키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윤회설을 적극적으로 거부한다. 즉 자신의 운명을 신에게 맡기는 숙명적 윤회설을 거부한 것이다. 그 대신에 사람들로 하여금 열반의 경지에 이를 수 있도록 돕기 위한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자극제로서만 윤회설을 활용했다고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석가는 힌두교의 미신적인 윤회설을 부정하였다. 이를 위해 석가는 먼저 힌두교가 있다고 주장하는 영혼이라는 무형적인 물체를 부정한다. 그리고 힌두교의 미신적인 윤회설을 대체하기 위한 좀 더 합리적인 윤회설을 주장하였던 것이다. 이는 사람들이 사후세계나 업보에 얽매여 자신의 운명을 체념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기복적이고 미신적인 신앙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대중들의 비관적인 삶의 태도를 바꾸려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석가는 선한 삶을 독려하고 악한 삶을 멀리하라는 윤리적인 자극이나 경고로서만 윤회설을 활용하였던 것이다.[7] 더 나아가 인간이 자신의 자유의지를 십분 활용하여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길 원했다. 또한 그 개척된 운명의 결과까지도 스스로 책임을 지는 자력적인 구원을 가르친 것이다.[v] 이는 철저히 신의 통제를 벗어나 인간이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라는 것이다. 즉 인본주의적 구원을 가르친것이다. 석가는 말한다,
숲속에 묶여있지 않은 사슴이 초원을 찾아 거닐듯, 현명한 자라면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며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Stn.39)
네 가지 한량없는 마음을 닦아 적의가 없이 무엇이나 얻은 것으로 만족하고,
온갖 위험을 극복하여 두려움 없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Stn.42)
그렇다면 왜 석가는 힌두교의 숙명적 윤회설을 하나의 도덕적 윤회설로 바꾸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석가가 힌두교의 내세관, 즉 힌두교가 주장하는 사후세계를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면에서 석가는 사후세계를 부정하는 내세관을 가진 것이다. 니르바나, 즉 극락의 존재를 하나의 실체로서 믿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음은 극락에 관한 석가의 설명이다,
수행승들이여, 이러한 세계가 있다. 거기에는 땅도 없고 물도 없고 불도 없고 바람도 없고, 공간이 무한한 경지도 없고, 의식이 무한한 경지도 없고, 아무 것도 없는 경지도 없고, 지각하지도 않고, 지각하지 않는 것도 아닌 경지도 없고, 이 세상도 저 세상도 없고, 해도 달도 없다. 나는 바로 이 오는 것도 없고 가는 것도 없고 멈추는 것도 없고 죽음도 없고 태어남도 없고 기반도 없고 유전도 없고 대상도 없는 이것이야 말로 나는 괴로움의 종식이라 부른다.[8]
석가가 극락의 존재를 실체로서 인정하지 않는 것은 어쩌면 그가 신의 존재를 믿고 있지 않는 것에 대한 합리적인 결과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신의 존재와 사후세계는 서로 원인과 결과로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이는 영혼의 실체를 믿지 않는 석가의 무아론과도 같은 맥락이다. 결과적으로 불교의 무신론적 내세관은 힌두교와 기독교의 유신론적인 내세관과는 정반대의 신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힌두교와 불교의 차이에 대해 정세근 교수는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밝힌다,
윤회(힌두교)가 종교라면 연기(불교)는 철학이다. 윤회(힌두교)가 신화라면 연기(불교)는 과학이다. 윤회에는 절대자가 있지만 연기에는 절대자가 없다. 윤회는 신의 이름으로, 연기는 도덕의 이름으로 움직인다. 윤회는 나도 모르는 것에 책임이 지워지고, 연기는 내가 알기 때문에 책임을 진다. 윤회는 힌두교의 것이고, 연기는 불교의 것이다. 힌두교는 윤회하는 내가 있어야 하지만, 불교는 연기하기 때문에 나란 없다. 윤회는 고정된 나를 전제하고, 연기는 나의 실체를 부정한다. 싯다르타는 연기를 통해 깨달음을 얻었고, 그것으로 힌두교의 윤회를 대체한다.[9]
결론적으로 석가의 내세관은 윤회를 부정하는 반윤회 사상이다. 즉 석가는 무신론적이고 유물론적인 내세관을 주장하였던 것이다. 크리스토퍼 베이치는 주장한다, “유물론은 아예 영적 세계자체를 부인하기 때문에 거기에는 윤회론이 들어 설 여지가 없다.”지금까지 살펴본 바로 석가의 인생관은 무신론적 유물론에 가까운 것이고, 이는 영적 세계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사상에는 힌두교적 윤회론이나 기독교적 천국개념이 들어갈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이다.
문제는 만일 불자나 수행자가 윤회를 부정한다면 해탈을 얻기 위한 이생에서의 그 모든 고행이나 수행이 아무런 쓸모가 없게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모든 수행이나 거룩한 삶의 목적이 윤회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윤회도 없는데 왜 헛수고를 하는가라는 합리적인 결론이 도출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만일 윤회가 없는 세상이라면 인생의 유일한 목표가 바로 감각적 쾌락의 추구가 될 것이다. 더 나아가 우리가 이 고통스러운 세상을 살아갈 이유도 사라진다. 그래서 자살 행위도 정당화되는 것이다.
이를 기독교적으로 해석하자면, 사후세계나 천국이 실재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윤리적인 삶을 살아야 할 이유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선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할 이유도 사라진다. 인생이 너무 고통스럽고 허무하다면 이러한 현실을 도피하면 된다. 즉 자살하면 된다. 아니면 반대로 세상을 마음껏 즐기면 된다. 한번 뿐인 인생을 즐기는 것이 뭐가 문제가 될 것인가. 쾌락이나 범죄도 모두 용인될 수 있다. 하지만 기독교인은 사후세계와 그로 인한 심판을 믿는다. 그러기에 한번 뿐인 우리의 삶을 아주 소중하게 그리고 신중하게 살아가야 한다. 전도서 기자는 말한다.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전도서 12:14)
[1]세계의 종교들, 86-87.
[2]법륜, 인간 붓다: 그 위대한 삶과 사상 (서울: 정토출판, 2010 개정판), 34.
[3] Ibid, 86.
[4]윤회와 반윤회, 60.
[5]무아, 윤회 문제의 연구, 61-63쪽에서 A형 윤회에 대하여 요약 편집함.
[6]윤회의 본질, 101.
[7]윤회와 반윤회, 45.
[8]붓다의 가르침과 팔정도, 79쪽에서 간접 인용.
[9]윤회와 반윤회, 54-55.
[i]토마스 하트먼과 마트 젤먼은 힌두교와 불교의 차이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힌두교에서는 우리안에 영혼이라는것이 존재하는데, 그것이 자유를 얻음으로써 목샤에 이른다고 하였다.
한편 불교에서는 우리의 영혼을 포함하여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이것을 깨우침으로써 니르바나에 이른다고 한다.” 세계종교 산책, 53. 불교의 무아설에 대한 다양한 견해가 있는데 기본적으로 자아가 없다는 의미로 자기자신을 부정하라는 예수의 가르침과 일맥상통한 면이 있다.
하지만 무아설은 또한 아트만, 즉 영혼이 없다는 가르침이기도 하다. 이는 아트만, 즉 영혼이 있다고 주장하는 힌두교의 유아설을 부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무아설에 대해 이태승 교수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무아설은 아(我) 즉 아트만이 없다는 가르침이다.
이 가르침은 후에 4법인중 제법무아로 정리되어 불교의 근본 가르침이 된다. 아트만이 없다는 것은 우파니샤드에서 보듯 윤회의 주체 또는 인간의 심신을 총체적으로 통괄하는 내적 본질이나 주재자와 같은 존재로서의 아트만은 없다는 의미이다....... 그것은 아트만에 의해 심신의 작용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심신 각각의 고유한 기능이 서로 관계하여 우리의 삶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계의 원리를 붓다는 연기라고 표현하고 일체의 존재는 연기적으로 작용하는 관계에 의해 존재하는 것이지, 아트만과 같은 절대적인 실체에 의거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본래 아트만이란 개념은 윤회의 주체로서 죽은 후에도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불의 무아설과 같이 아트만이 없다면 죽은 후에도 아트만은 없어야 한다. 붓다는 영혼으로서의 아트만과 같은 존재에 대해 침묵을 지켰다." 인도철학산책, 91-93. 이런 면에서 영혼의 존재가 없다는 석가모니의 가르침은 윤회설의 주체인 영혼의 실체를 부정하게 되어 결국에는 윤회설 자체를 부정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고 볼 수도 있다.
어쩌면 석가모니가 무신론적 철학을 견지하면서 초월적이고 인격적인 신의 존재를 부정할 뿐만 아니라 각 사람의 영혼의 존재조차 부정하는 것은 지극히 일관성이 있고 합리적인 사고의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만일 영혼이 없다면, 석가모니는 영혼이 인간의 실체를 무엇으로 보았을까? 석가모니는 인간은 몸과 마음의 복합체로 보았고, 이러한 심신 복합체로서의 인간은 영원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인간은 물질, 감정, 인지, 타고난 체질이나 성향, 의식 등이 하나로 뭉쳐서 정신적이면서도 육체적인 복합체를 이루는데,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심신은 어느 날 분해되어 사라지고 만다는 것이다. Y. Masih, A Comparative Study of Religion, 222.
그렇다면 죽고 나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인가? 석가모니는 사후세계에 대해서도 중도의 입장을 취한다고 한다. 유물론자들이나 허무주의자들은 인간의 죽음은 그 모든 육체와 정신의 소멸로 끝장이 난다고 믿지만, 전통 브라만교 신앙을 소유한 유신론자들은 사후에도 살아 남아서 생존하는 영혼이 있기에 죽음이 끝이 아니라고 믿는다. 석가모니는 이러한 두양극적인 입장을 거부하였는데, 유신론자들의 입장을 거부한 이유는 영혼의 불멸을 증명할 만한 객관적인 증거가 없기 때문이고, 유물론자들의 입장을 거부한 이유는 만일 사후의 심판이나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도덕적인 해이나 무질서 상태를 초래하게 되기 때문이다. 부처가 살았던 시대적 상황 속에서도 영혼도 없고 윤회도 없다면,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타락하여 사회질서가 무너지고 생존의 위협을 받는 아노미 상황이 초래될 것은 아주 자명한 일이었다. Ibid, 230.
그렇다면 석가모니가 윤회설을 견지할때 어떠한 논리로 전개했을까? 윤회는 하나의 심리적이고 신체적인 복합체로서의 개체(Individuality)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새로운 출생을 거듭할 때마다 그 개체가 계속해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개체가 전생의 그것과 전적으로 동일한 것인가라는 의문이 생기게 되는데, 석가모니의 대답은 똑같지 않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개체가 계속해서 변화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새롭게 태어난 그 개체가 전생의 그것과 전혀 다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심리적이고 신체적인 복합적 개체로서의 자아가 윤회의 끊임없는 속박을 거치면서 여러가지 다양한 사건들을 경험하게 되기에 상당하게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심신의 복합적 개체는 하나의 경험적 자아로서 이해되어지고, 그로인해 출생을 거듭하는 과정을 통해 과거의 자신과 동일한 요소들을 그대로 지닐 수도 있고 동시에 어느 정도 변화되어진 요소들이 있을 수도 있다는것이다.
그러나 똑같은 패턴의 윤회의 체인이 지속되는 한, 각 순간마다 각 개체가 지닌 책임성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하나의 촛불이 다른 촛불을 켜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하나의 촛대에 있는 촛불이 그 다음에 이어지는 촛대에 불을 전해주어야 하는 책임이 있는것으로 비유될 수 있다는 것이다. Ibid. 여기에서 필자는 윤회설에 대한 석가모니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추론하게된다.
석가모니는 애초에 신의 존재와 영혼의 존재를 부정할 뿐만 아니라 윤회설 자체도 부정하려고 하였는데, 당시의 현실적 상황 속에서 타협을 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브라만교의 유신론과 윤회설을 정면으로 맞설 수가 없기에 신의 존재에 관하여서는 침묵을 지키면서 영혼의 존재만을 부정하는 애매한 입장을 견지하면서 윤회설은 겉으로만 인정하는 것이었다는 것이다. 이는 석가모니가 현실적인 타협을 할 수 밖에 당시의 시대적 상황들, 즉 정치적이고 종교적이며 사회적인 상황들을 우리가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의 정치와 종교를 장악하고 있는 브라만교와 정면으로 충돌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유신론과 유아론을 믿으면서 카스트제도를 정당화할 수 있는 윤회설을 주장하는 브라만교에 대해 전면적인 부정이나 비판은 너무나 커다란 반작용을 감내해야 하기에 석가모니로서는 중도적인 입장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신의 존재를 간접적으로 부정하면서도 직접적으로 유무를 가려달라고 물어볼 때는 침묵으로 답하였고, 단지 유아론만을 부정하면서 무아론을주장하므로 브라만교와 자신의 변별력을 확보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윤회설은 당시 신분제도인 카스트 제도와 이어져 있는 아주 중요한 교리이기에 석가모니로서도 함부로 부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을 것이다. 비록 무아설로 윤회설의 근간은 무너뜨렸다고 하더라도 윤회 자체가 없다고 한다면, 천민들이 일어나 카스트제도를 무너뜨리고 폭동을 일으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도덕적 타락과 해이 현상이 벌어지게 되기에 석가모니로서는 윤회설의 겉모양은 유지해야 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렇지 않다면 사회적 폭동이 일어나거나 석가모니가 위험한 사상을 유포한다고 하여 브라만들이나 정치나 종교지도자들이 그를 제거해 버릴 것은 당연한 일이다.
[ii]토마스 하트먼과 마트 젤먼은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힌두교에서 벗어나는 새로운 가르침으로 새로운 종교의
시작이라고 주장한다. 석가모니는 힌두교의 카스트 제도가 잘못되었다고 가르쳤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살고, 어떻게 하면 세상의 굴레와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는 지에 대해 새로운 가르침을 전해주었다고 한다. 세계종교 산책, 54.
Peter Harvey는 석가모니가 종교개혁을 할 수 밖에 없었던 당시의 종교적인 상황을 이렇게 묘사한다. “부처 석가모니의 시대에 대부분의 브라만들은 창조의 신, 브라흐마의 하늘에 도달하려고 애를 쓰고 살았다. 그 방법들로는 진실한 마음을 가지고 사는 것, 베다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 그리고 희생제사를 드리거나 금욕적인 삶을 사는 것이었다. 브라만의 일부는 가난하고 거룩한 삶을 살았지만, 다른 브라만들은 부유하고 거만하여 방자한 삶을 살았다. 이들 브라만들은 왕들이나 귀족들이 바치는 아주 크고, 값이 나가는 희생제물의 피흘리는 제사를 통해 부유한 삶을 살게 되었다. 그리고 민간 신앙차원에서 브라만교는 마법과 주술에 기초한 제의들을 포함하였고, 브라만교 이전에 성행하였던 정령숭배(애니미즘)조차도 의심할 것없이 병행하였다.” Peter Harvey, An Introduction to Buddhism: Teachings, History and Practices,
11. 니니안 스마트는 그의 저서 <세계의 종교>에서 석가모니 당시의 브라만 문화를 다음과 같이 밝힌다. “인도문명 전체에서 가장 항구적으로 지속된 요소는 브라만 문화이다. 브라만은 우주의 힘을 지니고 태어났다고 자처하면서 굉장한 특권을 누렸다....... 브라만 가운데에는 의례를 집전하여 생계를 유지하는 이들이 많았다. 인도인들은 소나 그 밖의 값진 물건으로 희생제물을 장만하는 제주(祭主)에게는 번영과 성공이 보장된다고 믿었다. 또한 브라만의 제의전통은 태초부터 영원한 권위, 즉 최고의 성스러운 소리를 듣고 세베다의 찬송집을 편찬한 현인들로부터 전승된 것이라한다... ... 브라만은 신성한 찬송과 성스러운 언어를 전문으로 하고, 또한 왕과 왕자및 보통 사람들을 위한 길고 복잡한 의례를 집전할 수 있는 이들로, 인도종교를 창조한 주된 세력 가운데 하나였다. 오늘날 우리가 힌두교라 부르는 것도 대개 그들이 만들어낸 것을 가리킬 정도이다.”니니안 스마트, 윤원철역, 세계의 종교 (서울: 도서출판예경, 2004), 75-76.
니니안 스마트에 의하면, 이러한 브라만교에 강력한 도전자들이 생겨났는데 이들은 바로 떠돌아다니며 금욕을 수행하는 자들이었다. 인도는 카스트 제도라는 거대한 사회계층 구조로 이루어졌는데, 사문이라 불리는 떠돌이 수행자들은 이러한 카스트라는 신분제도를 인정하지 않았는데 이들은 일상의 사회적 의무를 초월한 존재들로 자신들을 생각했다. 이들이 이미 집과 가족을 떠나 출가한 상태이었기에 그 모든 고리(세금과같은각종의무)에서 자유로웠다. 하지만 브라만은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관심을 가지고 세밀하게 관여하였기에 이들과의 충돌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문제는 속세를 떠나 수행하는 사문이 많이 등장하여 존경을 받으면서 브라만들과 쌍벽을 이루는 권위를 부여받게 되면서 부터이다. 아리아인들의 중심지였던 지금의 델리주변이 이런 종교의 발상지였고, 갠지스강을 중심으로 바라나시와 파트나 같은 신흥도시들이 성장했다. 강력한 왕국과 공화국이 들어서면서 정치적, 경제적 상황이 안정되면서 새로운 상인계급이 등장하였고, 이들은 새로운 종교운동, 특히 불교에 이끌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Ibid, 71, 75, 80-81.
김은수 교수도 불교는 인도의 계급제도와 브라만교의 다신교적 신앙의 속박에서 벗어나고자 발생되었다고 주
장한다. 석가모니를 비롯한 사문들은 브라만교가 만사형통으로 여겨왔던 자연신들에 대한 제사의 한계를 깨달
아 새로운 우주관과 인생관을 제시하며 자유로운 사상활동을 실천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김은수, 비교종교학개론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6), 131-132. Martin Forward에 의하면, 불교는 하나의 급진적인 종교개혁이다. 불교는 힌두교의 신앙 속에서 자라나 힌두교 신앙과 반응하면서 결국에는 힌두교 신앙의 문제를 뒤집어 엎어버리는 종교로 발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힌두교의 신분제도에 반발하고, 별다른 영향력이 없는 힌두교의 명상적 수행에 반발할 뿐만 아니라 너무나 지나친 고행과 금욕에 반발하여 불교가 생성되었다는 것이다. 비록 석가모니가 힌두교의 업보개념과 윤회설을 받아들인 면에서 힌두교를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니지만 힌두교의 근간인 초월적 신의 존재와 아트만, 즉 영혼의 존재를 부정한 면에서 볼 때에는 과격할 정도로 급진적이고 혁신적인 종교개혁임에는 틀림이 없다. Martin Forward, Religion: A Beginner's Guide (Oxford: Oneworld Publications, 2006 South Asian Edition), 65-66.
다신교적 유신론의 전통적인 브라만교가 인도사회 전체에 뿌리내리고 있을 때에 무신론적인 불교의 출현은 인도의 전통문화에 충격 그 자체이었다고 볼 수 있다. 특별히 불교의 무아설은 그동안 유아설을 주장해온 힌두교 철학에 커다란 충격과 함께 거센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것이다. 이태승 교수는 불교가 태동시에 인도철학과 종교에 미친 그 영향력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비정통 철학가운데 불교는 특히 전통적인 종교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것은 윤리,도덕적인면 뿐만 아니라 철학적인 면에서도 큰 충격을 주었다. 무아설로 대표되는 불교의 기본철학은 베다 우파니샤드의 철학사상에 대해 커다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유물론과 달리 체계적인 교학을 가진 불교가 무아설을 주장하는 것은 전통 철학에 가히 충격이었다.
그리고 불교의 교세가 커짐에 따라 무아설은 체계적인 교학을 바탕으로 기존의 철학사상과 대비되는 대표적인 교리로 간주되었다. 이렇게 극명하게 대비되는 철학적 개념은 인도철학을 정통파와 비정통파 즉 유파와 무파로 구분지어 끊임없는 논쟁과 대립 구도를 낳게 하였다. 따라서 인도에서 불교의 역사는 기존의 전통철학을 바탕으로 하는 힌두 철학과의 끊임없는 논쟁의 전개라고 할 수 있다." 인도철학산책, 89-90.
[iii]다르마(산스크리트어: Dharma)는 법(法)으로 번역된다. 이때 '법'이 의미하는 바는 우주에 존재하는 영원한 법칙이기도 하며 모든 생명이 마땅히 따라야 할 본질을 말하기도 한다. 불교에서는 말하는 다르마는 석가모니가 발견한 진리를 말한다.
peter Harvey에 의하면, “불교는 그 오랜 역사를 통해 사람들의 마음이 평온해지고, 하나로 통합되며, 자비심이 많아지게 되고 결국에는 헛된 망상에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수 많은 가르침들을 사용해 왔다고 한다. 헛된 망상들은 우리로 하여금 집착하게 하고, 그 집착은 그 집착하는 사람과 또한 그 집착하는 사람이 교류하는 사람들조차도 고통에 빠지게 한다. 그러므로 집착, 그로 인한 고통에서 자유로워져서 마음이 평온해지고, 하나로 통합되어 자비심이 많은 사람으로 승화되다가 결국에서 그 모든 헛된 망상과 집착들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게 되는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과정에 대한 가이드를 다르마(Dharma)라고 한다. 다르마는 부처나 부처들에 의해 발견된 영원한 진리들 내지는 전 우주적 법과 질서(원리)를 의미하는데, 불교는 본질적으로 이 다르마를 이해하고, 실천하여서 결국에 다르마를 실현하는 것이다.” Peter Harvey, An Introduction to Buddhism: Teachings, History and Practices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4),
2. 우주의 법과 질서로서의 다르마는 부처로서 석가모니가 깨닫거나 발견하기 전에도 이미 존재했었던 진리인데, 다르마는 역사적으로 아주 유일하고도 독특한 현상으로 간주되어진다. 이런 면에서 석가모니는 다르마의 최초의 발견자가 아니라 재발견자이고, 석가모니 이전에도 다른 부처들이 이미 발견하였던 진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르마의 재발견, 즉 구원에 이르는 길을 발견한 석가모니의 역할에 역사적 중요성을 부여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그가 발견한 다르마가 거의 완벽에 가까운 온전한 진리이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너무나 완벽해서 아주 드문 다르마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나 다가설 수 있는, 즉 누구나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는 진리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석가모니가 발견한 구원의 진리는 보편적이고도 유일한 것이라는 것이다. J. A. Dinoia, O. P., "Pluralist Theology of Religions: Pluralistic or Non-Pluralistic?" in Christian Uniqueness Reconsidered: The Myth of a Pluralistic Theology of Religions, edited by Gavin D'Costa (Maryknoll: Orbis, 1990), 119-20.
[iv]힌두교에서는 이러한 윤회의 교의를 부정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원인과 결과의 법칙에 따라 정당한 과보를 받아 자신의 삶의 모습을 벌어들이게 된다는 도덕적 법칙을 부정 또는 무시하는 것이라고 본다.
[v]석가모니의 구원관은 지극히 인본주의적이다. 바로 인간 스스로 자신을 구원하라는 것이다. 신을 의지하거나 다른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바로 자기 자신을 믿고 의지하라는 것이다. 석가모니는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서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너희들은 저마다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기를 의지하여라. 진리를 등불삼고 진리를 의지하여라. 이밖에 다른 것에 의지해서는 안된다.”종교간의대화, 145쪽에서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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