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14

윤회, 믿을까 말까? - 현대불교신문

윤회, 믿을까 말까? - 현대불교신문





윤회, 믿을까 말까?

이일야
승인 2020.01.17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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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이해의 길 29

언젠가 출가의 연을 맺은 벗이 전생의 내 모습이 보인다며 전화를 한 적이 있다. 그 친구는 전생에 내가 티베트의 학승이었다고 말했다. 한편 놀랍기도 했지만 웃으면서 전화를 끊었다. 벗의 말처럼 내가 전생에 승려였는지 확인할 길은 없다. 이는 검증의 범위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을 믿을 것인가 아닌가에 따라 삶의 내용과 의미가 달라진다는 점에서 이는 중요한 문제라 할 것이다.

업과 윤회가 불교의 고유 사상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는 불교가 태동하기 훨씬 이전부터 있었던 인도의 고유 신앙이다. 그들은 착하게 살면 죽어서 하늘에 태어나고 나쁜 일을 많이 하면 지옥에 태어난다는 지극히 소박한 신앙을 갖고 있었다. 불교는 그들의 신앙을 수용하여 체계적으로 정립하였다. 특히 부파불교에 이르러 업과 윤회는 하나의 학설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태어나고 죽는 것이 반복된다는 윤회설은 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업이라는 행위가 원인이 되어 나타난 결과가 바로 윤회이기 때문이다. 특히 부파불교에 이르면 전생과 내생이 실제로 있다고 보고 지옥이나 아귀, 축생의 세계 등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그들은 인간의 삶이 4단계의 과정을 거친다고 보았다. 부파에서는 태어나는 순간인 생유(生有)와 삶을 영위하는 기간인 본유(本有), 삶을 마치는 순간인 사유(死有), 그리고 다음 생을 받기 전까지의 기간인 중유(中有)를 설정하였다.

윤회와 관련해서 중유라는 과정이 주목된다. 이는 사람이 죽은 후 살면서 행한 선업과 악업을 계산하는 시간인데, 보통 10일에서 49일 정도 걸린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찰에서 49재(齋)를 지내는 모습도 여기에서 유래되었다. 이 기간 동안 한 사람의 전체 삶이 평가되고 그에 따라 다음 생이 결정되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육도윤회(六道輪廻), 즉 지옥과 아귀, 축생, 수라, 인간계, 천계가 바로 그것이다. 살아서 선한 행위를 하면 죽어서도 선한 결과를 받고 현생에 악한 행위를 하면 내생에도 악한 결과를 받는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윤회설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무조건적으로 믿게 되면, 현재 겪고 있는 고통의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전생의 업이나 팔자 탓으로 돌릴 수 있다. 이는 현재의 삶이 이미 결정되었다는 또 다른 형태의 숙명론일 뿐이다. 언젠가 개신교로 개종한 한 불자의 사연을 들은 적이 있다. 그 사람은 힘든 일이 있으면 절에 가서 상담을 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전생의 업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전생의 업 때문이라는 말이 상처가 되어 불교를 멀리하게 되었고 결국 개종까지 했다고 한다. 윤회에 대한 무조건적 믿음이 가져온 결과인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언제부턴가 윤회에 대한 비판적 시선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들은 힌두교의 산물인 업과 윤회사상을 불교에서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윤회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그 주체가 있어야 하는데, 이는 붓다가 강조한 무아(無我)의 가르침을 거스르는 일이라고 비판한다. 이를 삐딱하게 볼 필요는 없다고 본다. 자칫 붓다가 부정한 영원불변하는 아트만(Atman)을 인정하는 우를 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적을 오히려 윤회에 대해 새롭게 성찰하는 계기로 삼으면 좋을 것 같다.

윤회와 관련해서 죽음 이후의 문제는 믿음의 영역으로 남겨두고 이를 실존적으로 이해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음속으로 우리는 매 순간 윤회하는 삶을 살기 때문이다. 누군가 사람 같지 않은 행동을 할 때 마음은 이미 금수와 아귀, 수라의 세계에 살고 있으며, 깊은 명상 속에서 고요를 느낄 때 그곳은 천계와 다름이 없는 것이다. 윤회설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그것을 사실이 아니라 상징으로 해석하면 불자가 아니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는 지나치다는 생각이다. 불교는 무조건적 믿음에 철학적 메스를 가하는 합리적 종교다. 윤회를 믿을 것인가 말 것인가? 그것은 개인의 선택이고 자유다. 그리고 그 선택은 존중되어야 한다.

이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