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다는 것
독서법 전통을 통해서 본 성경 읽기와 묵상
강영안 (지은이) IVP 2020-05-20
정가
15,000원
전자책 9,000원
9
100자평 17편
리뷰 5편
세일즈포인트 1,572
272쪽
책소개
레슬리 뉴비긴으로 시작하여 칸트와 플라톤, 아우구스티누스를 거쳐 가다머, 폴라니, 후설과 장자(莊子)까지 그야말로 동서고금을 종횡하며 문자와 읽기의 철학을 논하고, 중국 송나라 유학자 주희(朱熹)의 독서법과 서양 수도원 전통의 렉시오 디비나, 루터의 신학 공부 방법론을 통해 ‘사람을 온전히 빚어내는 읽기’의 방식이 무엇인지 살펴본다.
읽는다는 것이 무엇이며, 읽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제대로 읽으려면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면밀히 들여다본 이 책은 읽기의 현상학, 해석학, 윤리학뿐 아니라 실천적 관점에서 성경 읽기와 삶을 가까이 연결하기 위한 친절한 안내를 제공한다.
목차
감사의 말
들어가는 말
1장 ‘읽는다는 것’에 대한 물음
2장 문자와 읽기에 대한 부정적 태도
3장 기독교 전통에서 문자와 성경
4장 읽기의 현상학과 해석학
5장 읽기의 윤리학: 주희의 독서법과 렉시오 디비나
6장 우리들교회의 성경 읽기와 묵상 방법
7장 성경을 어떤 책으로 읽어야 하는가
8장 객관적으로 읽어야 하는가, 주관적으로 읽어야 하는가
9장 성경 읽기와 삶의 거리를 어떻게 좁힐 수 있는가
10장 다시 하는 질문: 왜 읽어야 하는가
나가는 말
접기
책속에서
우리는 모두 ‘말하는 사람’(homo loquens)이면서 동시에 ‘읽는 사람’(homo legens)입니다. 하루도 읽지 않고 그냥 보내는 날이 없습니다.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도로 표지판을 읽고, 휴대폰을 통해 들어온 메시지를 읽고, 책을 읽습니다. 문자가 아니어도 사람의 표정을 읽고 날씨나 지형을 읽기도 합니다. 우리의 일상에는 듣고 말하고 쓰는 것 못지않게 읽기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태어나는 것으로나 먹고사는 것으로만 우리 자신이 되지 않습니다. 무엇을 읽고 무엇을 듣는가에 따라 우리 자신을 만들어 갑니다. 어떤 이야기를 읽고 어떤 이야기를 듣는가, 무슨 책에 감동되고 누구를 닮아 가고자 하는가가 나의 정체성(identity)을 형성합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읽는지, 어떻게 읽는지가 중요합니다. _들어가는 말
접기
칸트는 읽기에 관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어 합니다. “무엇을 읽을 때, 남의 눈으로 보려고 하지 마십시오. 스스로 생각하십시오. 언제나 자기 눈으로 보려고 애쓰십시오.” 저는 성경을 읽는 사람도 이 충고를 거부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남의 눈으로 읽고 남의 생각으로 받아들인 말씀은 나에게 살이 되고 피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영향을 미치려면 나의 눈으로, 나의 지성으로, 나의 생각을 말씀 앞에 내어놓고 씨름하며 읽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_1장 ‘읽는다는 것’에 대한 물음
접기
현대 문화를 형성하는 온갖 문자들은 원초적 의미를 상실한 채, 끊임없이 타인들에 의해 소비되기 때문에 원래의 의미에 대한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자각 행위가 결여되어 있습니다. 문자는 플라톤의 비유를 빌리면 ‘아비 없는 자식’처럼 떠돌아다니면서 사생아를 끊임없이 산출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문자 이전에 ‘영혼에 새겨진 것’을 후설이나 플라톤은 추구하였다고 하겠습니다. 후설과 플라톤의 경고는 성경을 읽는 사람들도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영은 무시하고 문자만을 고집하거나 문자는 무시하고 영만을 고집하는 태도는 문자와 관련된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한 탓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_2장 문자와 읽기에 대한 부정적 태도
접기
기독교는 책과 문자를 매우 소중하게 생각하는 전통입니다. 이 점에서 플라톤이나 근대의 데카르트 전통, 그리고 선불교와 노장 전통과는 분명히 구별됩니다.…유교 전통은 불교 전통에 비하면 경전과 주석서에 훨씬 높은 가치를 두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그러나 유교가 섬기는 ‘주제천’(主帝天) 개념의 ‘하늘’(天)은 공자가 자공의 물음에 “하늘이 무슨 말을 하더냐!”라고 대꾸한 말에서도 드러나듯이 말하지 않고 자신을 알려 주지 않는 하늘입니다.…이와는 반대로, 기독교의 하나님은 마르틴 루터가 강조했듯이 자신을 감추시는 하나님(Deus absconditus)이면서도 동시에 자신을 드러내시는 하나님(Deus revelatus)입니다. _3장 기독교 전통에서 문자와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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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무엇을 읽을 때 우리의 눈은 문자로 쓰인 텍스트에 고정됩니다. 언어를 이해하고 문자를 해독할 수 있을 때 우리의 눈은 한 단어에서 다음 단어로, 한 문장에서 다음 문장으로 옮아갑니다. 하얀 종이 위에 검게 찍힌 활자가 의미를 가진 문장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이 과정에는 폴라니가 말한 암묵지의 세 가지 측면과 우리의 지성과 상상력, 그리고 우리가 이해하는 전통과 이해의 역사, 곧 우리가 소속된 하나의 해석 공동체가 이해의 가능 조건으로 작동합니다. 그리하여 만일 우리가 주어진 텍스트를 제대로 읽었다면 텍스트에 담긴 의미가 무슨 뜻인지를 알아듣게 됩니다.
_4장 읽기의 현상학과 해석학
접기
스콜라적 읽기 방식은 논리를 가지고 주장하거나 생각을 논박하는 방식을 취하기 때문에 당연히 비판적 읽기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습니다.…이 방식은 지적인 문제를 다룰 능력이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읽기 방식입니다. 중세 대학 제도에서는 일반 교양 학문과 신학, 의학, 법학처럼 전문 직업 영역과 관련된 학문 분야의 교육과 연구에 이 방식을 사용하였습니다. 수도원 중심으로 발전된 렉시오 디비나는 ‘대학의 읽기’와는 달리 ‘사람의 성품을 형성하고 삶을 빚어내는 읽기’입니다. 오늘날 익숙한 용어로 말하자면 ‘영적 형성’(Spiritual formation)을 위한 읽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_5장 읽기의 윤리학: 주희의 독서법과 렉시오 디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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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우리는 삼중 읽기 방식을 볼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크게 소리 내어 읽고, 다음에는 눈으로 읽고, 마지막에는 마음으로 읽는 방법입니다. 소리 내어 크게 읽는 방식은 고대 이스라엘 전통에서부터 중세 수도원 전통을 이어 계속 내려온 매우 오래된 전통입니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동아시아 전통도 마찬가지입니다. 고중세 전통의 읽기 방식은 거의 언제나 ‘소리 내어 들으면서 읽기’였습니다. 소리 내어 읽으면서 듣고, 들은 것을 다시 몸과 마음에 담는 읽기 방식입니다. 서책 필사 작업을 많이 했던 중세 수도원의 필사실을 ‘벌집’에 비교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_6장 우리들교회의 성경 읽기와 묵상 방법
접기
성경은 성경의 문자 자체로만 존재하는 책이 아니기 때문에 성경의 문자가 말하고 가리키는 현실 또는 실재를 항상 생각해야 합니다. 강한 문자주의자들처럼 문자에 매이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문자가 가리키는 현실을 바라보아야 성경을 읽는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기호로 사용되는 문자가 그렇듯이 문자들의 집합인 성경도 문자 바깥의 현실, 문자보다는 훨씬 더 큰 현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_7장 성경을 어떤 책으로 읽어야 하는가
접기
성경은 한 개인에게 준 책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준 책이라는 사실을 늘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공동 읽기와 듣기, 공동 묵상과 읽은 말씀에 바탕을 둔 나눔과 기도가 한 개인과 공동체를 건강하게 세우는 일에 도움이 된다고 믿습니다. 공동체 읽기와 읽은 말씀으로 함께 드리는 기도는 성경 읽기의 객관화와 주관화를 막고 오히려 공동체를 세우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_8장 객관적으로 읽어야 하는가, 주관적으로 읽어야 하는가
접기
모든 행위는, 심지어 생각조차도 신체를 통하여 일어나지만, 사람은 생각 없이 움직일 수 없고, 무엇을 전혀 알지 못하고서는 행동할 수 없습니다. 알아야 하고, 생각해야 하고, 결정해야 하고, 이것들을 몸으로 실행해야 합니다. 생각과 앎은 몸과 분리되어 있고, 몸도 한 개체로서 타인을 포함한 주변 환경과 분리되어 있습니다. 생각을 했다 하더라도 이것이 숙고와 결정과 선택에 이르는 데에는 일정한 과정이 필요하며, 선택을 했다 하더라도 선택이 실행되기까지는 많은 과정이 개입됩니다. 앎도 마찬가지입니다. 알았다고 하더라도 사람은 알게 된 바를 따라 행동하지 않습니다.
_9장 성경 읽기와 삶의 거리를 어떻게 좁힐 수 있는가
접기
레비나스는 책이 단지 사유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일 뿐 아니라 “우리의 존재 방식”이라고 말합니다. 이때 책은 정보를 제공해 주는 자료나 도구, 설명서에 그치는 것이 아님을 레비나스는 강조합니다. 우리가 먹고, 마시고, 잠자고, 생각하고, 예배드림이 우리 인간에게 단지 생존 수단이 아니라 인간의 ‘존재 방식’이듯이, 책을 읽고 쓰는 것도 마찬가지로 인간이 정보를 주고받는 수단이 아니라 세계 안에서 살아가는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하이데거가 말했듯이 ‘세계 내 존재’일 뿐 아니라 “책으로 향한 존재”라고 레비나스는 단정합니다.
_10장 다시 하는 질문: 왜 읽어야 하는가
접기
밑줄긋기
P.185akfek
텍스트는 언제나 바깥의 현실을 향하고 있기 때문에 텍스트바깥의 현실이 무엇인지 찾고 묻고 발견하지 않는다면 문자에매이거나 문자의 집합인 텍스트 자체에만 매이기 십상입니다.
성경은 성경의 문자 자체로만 존재하는 책이 아니기 때문에성경의 문자가 말하고 가리키는 현실 또는 실재를 항상 생각해야 합니다.
P.189akfek
그러므로 가다머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해한다는것은 그 사태, 그 주제 가운데서 스스로를 이해한다는 것이다.˝
P.239akfek
책은, 이런 의미에서 세계 속에 안주하는 나를 흔들어 일깨워 다른 세계를 보게 하고 상상하게 하며, 여기의 삶과는 다른삶을 그리게 만듭니다.
P.258akfek
읽고 공부하고 배우고 생각함은, 특별히 책 중의 책이며 하나님 말씀인 성경을 제대로 읽고 배움은, 결국 하나님이 원하시는 온전한 사람이 되는문제입니다. 자전거를 타면서 자전거를 배우듯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 공동체와 더불어 일상을 살아가면서 배워 갈 수밖에 없습니다.
P.152akfek
성경을 읽는 사람에게는 무엇보다 말씀에 대한 열심이필요합니다.
P.104akfek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안구(眼球) 운동에 그치지 않고 질문하고 생각하는 활동임을 우리는 이 지점에서 알 수 있습니다. 읽으면서, 묻고 생각함을 통하여 우리는 비로소 이해에 이르게 됩니다.
P.106akfek
율법을 읽는다는 것, 나아가,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임을 이 이야기는 보여 줍니다. 읽는 것은, 읽는 글을 알고 이해하는 일에 그치지 않고 읽은대로 따라 사는 데 있음을 예수님의 말씀이 보여 줍니다.
P.113akfek
왜냐하면 성경을 읽을 때 우리가 능동적으로 다가서고 능동적으로 문장을 읽고 이해하고 파악하려 할지라도, 우리가 성경을 읽거나 들을 때 성경 말씀은 오히려 우리를 말씀 앞에 발가벗겨, 그야말로 방어할 수 없는 지점에 이르기까지, 그로 인해심지어 상처를 입을 가능성(vulnerability)이 있는 지점에까지 우리를 세우기 때문입니다.
P.114akfek
말씀을 우리가 읽고, 이해하고, 파악하여 마치 우리 자신의 것으로 가진다고 하지만, 사실은 이때 말씀이 우리가 가졌다고 생각하는 것을 모두 풀어헤쳐 우리 자신이 온전히 말씀 앞에 드러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읽지만 말씀이 우리를 읽기 때문입니다.
P.56akfek
현대 문화를 형성하는 온갖 문자들은 원초적 의미를 상실한 채, 끊임없이 타인들에 의해 소비되기 때문에 원래의 의미에대한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자각 행위가 결여되어 있습니다. 문자는 플라톤의 비유를 빌리면 ‘아비 없는 자식‘처럼 떠돌아 다니면서 사생아를 끊임없이 산출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문자 이전에 영혼에 새겨진 것을 후설이나 플라톤은 추구하였다고 하겠습니다. 후설과 플라톤의 경고는 성경을 읽는 사람들도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영은 무시하고 문자만을 고집하거나문자는 무시하고 영만을 고집하는 태도는 문자와 관련된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한 탓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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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지은이: 강영안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최근작 : <철학과 현실, 현실과 철학 4 : 현대 문명의 향도>,<생각한다는 것>,<C. S. 루이스 길라잡이> … 총 66종 (모두보기)
현재 서강대 명예교수, 미국 캘빈신학대학원 철학신학 교수, 한동대 석좌교수. 서강대 철학과 교수로 오래 가르쳤고 지은 책 가운데는 『칸트의 형이상학과 표상적 사유』, 『자유와 자연 사이』, 『타인의 얼굴: 레비나스의 철학』, 『도덕은 무엇으로부터 오는가』, 『인간의 얼굴을 가진 지식: 인문학의 철학』 등 20여 권의 단독 저서와 40여 권의 공저, 120여 편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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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우리는 왜 읽는가?
읽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읽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제대로 읽으려면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이 책은 성경 읽기와 묵상을 위한 ‘불후의 교과서’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 송용원 (은혜와선물교회 담임 목사, 『칼뱅과 공동선』 저자) -
김양재(우리들교회), 박영선(남포교회), 송용원(은혜와선물교회), 이찬수(분당우리교회) 추천
우리는 모두 ‘읽는 사람’(homo legens)이다
눈을 뜨자마자 핸드폰을 찾아 시간을 확인하고 손가락을 놀려 새로운 알림이 있는지부터 살펴보는 우리는 영락없이 ‘호모 레겐스’다. 우리의 하루는 온갖 읽기로 채워진다. 저자는 우리가 무엇을 읽고 듣느냐에 따라 우리 자신을 만들어 간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무엇을 읽느냐, 어떻게 읽느냐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인에게는 단연 ‘성경 읽기’가 가장 중요하다. 성경을 어떻게 읽고 묵상하느냐에 따라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연 제대로 읽고 있는가
한국 교회는 특유의 ‘열심’으로 세계 교회에 알려져 있다. 성경 읽기에서도 한국 교회의 ‘성경 통독’과 ‘큐티’에 대한 열심은 두드러진다. 그런데 이렇게 열심히 성경을 읽는 우리는 과연 성경을 제대로 읽고 있는가? 사도 바울은 동족인 유대인들을 향해서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그 열심이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라고 말하며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열심 못지않게 ‘올바른 지식’이 필요함을 역설한다(롬 10:1-2). 그리고 이때의 ‘지식’은 삶으로 실천되어 우리 자신을 변화시키는 지식이라고 저자는 밝힌다. 읽은 대로 살아 보려고 할 때 읽기가 완성된다는 것이다. 성경 읽기의 모범 사례로 우리들교회의 성경 묵상 방법을 평가하기 위해, 저자는 문자와 읽기에 대한 동서양의 전통적 관점과 철학적 도구들을 소개하고 동서양의 대표적 독서법 전통을 살펴본다.
책과 문자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기독교
문자는 기억을 저해하고 망각을 가져오는 독이며 혼이 깃든 말을 온전히 담아낼 수 없는 복사물에 불과하다고 본 플라톤이나, 진정한 도(道)는 말이나 글로 배울 수 없고 몸소 익히고 깨달아야 한다고 본 노장 전통과 달리, 기독교의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분, 자기를 알려 주시는 분으로서 선지자들과 사도들에게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다.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은 또한 문자와 텍스트로 이루어진 책이며,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었고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게 한다. 그리고 읽는 사람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길러 내어 일상에서 선한 일을 하며 살아가도록 만든다. 그러므로 성경 읽기는 변혁적 읽기일 수밖에 없다. 변혁적 읽기가 일어나는 과정의 현상학과 해석학은 언뜻 어려워 보일 수 있으나, 율법교사와 예수님의 대화를 다룬 누가복음의 구체적 사례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포화 현상’을 경험하고 ‘해석학적 순환’을 이해하게 된다.
읽는 일에는 끝이 없다
이 책은 우리들교회 포럼을 위해 준비한 강연 원고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시간의 제약이 있는 강연에 다 담지 못한 내용이 많았다. 강연 뒤에 이어진 질의 토론 때 받은 질문들도 마음에 남았다. 저자는 읽기에 관해 곱씹으면서 오래 생각하고 다루었던 주제를 정리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이 실제로 성경을 읽고 일상에서 살아 내려 할 때 도움을 얻을 수 있는 답변들과 지침들도 모두 담아내려 애썼다. 집필 과정에서 원고의 분량은 배로 늘고 다루는 영역도 넓어졌다. 그러면서도 저자 특유의 꼼꼼함으로 전체 원고가 유기적으로 매끄럽게 연결되도록 만들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성경 읽기를 위하여
각 장의 말미에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실천을 격려하기 위한 세심한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다리 놓기는 Q&A 형식으로 본문의 내용을 독자의 현장과 연결시켜 주고, 토론과 적용을 위한 질문들은 읽은 내용을 소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추천 도서 목록도 유용하다. 그뿐 아니라 8장에서는 성경 읽기를 위한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지침을 자세히 안내하고 있다. 이 책은 어쩌면 ‘읽기에 관한 가장 친절한 교과서’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교과서의 성패는 결국 독자들이 실제로 성경을 읽고 일상에서 읽은 것을 살아 보려 애쓰는가에 달려 있다.
특징
- ‘읽는다는 행위’를 현상학, 해석학, 윤리학으로 고찰한 읽기의 철학
- 기독교의 경전이자 책 중의 책인 ‘성경’의 목적과 특징을 다각도로 조명
- 동서양의 독서법 전통을 통해 오늘 우리의 성경 읽기와 묵상을 점검하고 지향할 방향을 제시
- 책의 내용을 이해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 주는 장별 토론 질문과 추천 도서 목록 수록
■ 대상 독자
● 책 읽기를 즐긴다고 자부하며 책을 통해 더 많은 유익을 누리기 원하는 독자
● 자신의 독서 방법을 돌아보고 올바른 독서법을 익히기 원하는 독자
● 성경 읽기와 묵상을 더 깊이 경험하고자 하는 그리스도인
● 성경 읽기가 어떻게 삶을 변화시키는지 이해하고 가르치고자 하는 목회자와 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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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lucymode 2020-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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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후의 교과서˝라는 저 문구가 오글거리지만 사서 읽을 예정이다. 추천글은 담박해야지 지나치면 독자의 관심이 식는다. 내용에 대해서는 일단 중립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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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트라랄라 2020-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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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읽는 것과 잘 읽는 것과 깊이 읽는 것이 다 다르다고 생각하는데, 성경 읽기와 묵상은 좀 더 깊은 차원의 읽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배송되진 않았지만 기대되는 책입니다.^^
junhariju 2023-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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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에 대한 호감이 있어서 책을 구입하여 읽었다. 역시 저자의 치밀한 프레임을 벗어나지 않게 읽는다는 것이 무엇이며, 읽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제대로 읽으려면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면밀히 써 내려가고 있는 이 책은 성경읽기에도 적용할 수 있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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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찌모찌 2020-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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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종횡무진이다. 고수에게만 느낄 수 있는. 자유롭지만 절제되어 있고, 쉽지만 깊다. 현재 미국 칼빈신학교 철학신학교수로 재직중인 강영안(1951~)은 동서고금(東西古今)을 오가며 '읽는 것'이 무엇인지를 밝힌다. 이 책에서 호명된 철학자와 신학자만으로도 이 책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다. 장자(莊子, 기원전 369년?-기원전 286년)와 주희(朱熹, 1130~ 1200),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아우구스티누스(Aurelius Augustinus, 354~430), 레비나스(Emmanuel Levinas, 1906~1995), 바르트(Karl Barth, 1886~ 1968) 등. 다 언급할 수가 없다. 더군다나 단순한 언급 차원이 아니라 그들의 사상을 명확하게 분석하여 설명하고 우리에게 적용한다.
저자는 레슬리 뉴비긴(Lesslie Newbigin, 1909~1998)과의 대화를 통해 경험했던 충격으로부터 이 책을 시작한다. 그 질문으로부터 "참된 읽기"가 무엇인지, 어떠한 과정으로 읽어야하는지, 읽는 행위는 어떻게 삶과 연결되는지에 대한 답을 찾아간다. 그 과정은 더디지만 세밀하다. 빨리 결론에 도달하고자한다면 여유를 가지고 이 책을 읽으시라. 단숨에 읽기에는 벅차다. 하지만 조금만 집중하면 곧 흥미롭게 책에 빠져든다.
텍스트를 어떻게 대하고, 어떤 과정을 거쳐야하는지를 폭넓게 살펴보았다면 이제 성경에 집중하여 논의를 진행한다. 성경이 어떤 성격의 책이며, 그렇기에 성경을 어떻게 대해야하는지 주장한다. 모든 텍스트가 그렇지만 특히나 성경은 전인적 읽기가 필수다. 더불어 저자가 강조하듯 읽기의 행위는 삶과 연결되어야만 한다. 삶과 동떨어진 읽기는 제대로 읽는 행위라고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앎과 삶을 연결할 수 있는가? 저자는 마지막 장에서 성경을 읽는 행위와 다른 텍스트를 읽는 행위의 분명한 차이점을 강조함한다. 즉 그 명백한 차이로 인해 우리의 읽는 행위는 삶으로 직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세심한 편집을 통해 완성도를 높였다. 각 챕터의 끝에 있는 '다리 놓기'는 질문과 답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를 통해 책을 읽으면서 느낄만한 질문들이 어느정도 해소된다. 또한 '토론과 적용을 위한 질문'을 매챕터마다 구성하여 홀로 읽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적으로 읽고 나눌 수 있도록 배려한 것 같다. 마지막으로 '추천 도서'를 통해 더욱 깊은 연구를 위해 도움을 주고 있다. 각 주제에 대해 더욱 풍성한 배움이 가능하도록 한 듯하다.
가장 큰 아쉬움은 6장의 내용이다. 우리들교회에서 열린 세미나가 이 책의 초안이기에 선택된 챕터인듯하다. 하지만 단행본으로 엮어서 나올 때 굳이 포함되어야 할 내용인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약간의 언급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아무튼 그럼에도 이 책은 '읽음'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이 망라되어 있기에 '읽기'를 즐겨하는 모두에게 유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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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뚱 2020-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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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안은 나에게 무엇보다 레비나스를 알기 쉽게 해설한 철학자이다. 그는 레비나스가 쓴 《시간과 타자》(문예출판사, 1996)을 번역한 학자이자, 그 어렵디 어렵다는 레비나스의 철학을 쉽게 접근하도록 풀어 설명한 《타인의 얼굴-레비나스의 철학》(문학과지성사, 2005)의 저자이기도 하다. 나는 우치다 타츠루의 레비나스 해설서 《레비나스와 사랑의 현상학》(갈라파고스, 2013)을 읽고 레비나스에 대해 급관심이 생기면서, 레비나스의 책들을 읽기 전에 그에게 접근할 수 있는 좋은 안내자를 찾던 중 강영안을 발견하고, 그의 책을 읽으면서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른다.
최근의 나의 관심사는 읽는다는 것과 쓰는다는 것이다. 독서와 집필, 나는 이 두 주제를 올 한해의 주제로 삼고 용맹정진(勇猛精進)하고 있다. 그러던 차 강영안의 신간 《읽는다는 것》(IVP, 2020)이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책도 나오기 전에 선주문해놓고 책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이러한 간절한 기다림은, 어렸을 적, 이현세의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의 다음 권이 나오기만을 기다리며 하루가 멀다하고 만화방을 기웃댔던 경험과 맞먹는다.) 강영안 선생이라면 나에게 ‘읽는다는 것’에 대하여 한소식을 전해줄 것만 같은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다. 드디어 책이 입고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단걸음에 뛰어가(사실은 차를 몰고 달려가) 구입하였고, 또 한숨에 읽어버렸다.(사실은 2시간 정도 걸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만족 반 그냥 반이었다.
우선 '만족 반'부터 말해야겠다. 그의 이전 책 《일상의 철학》(세창출판사, 2018)년도에는 우리네의 일상을 ‘현상학’, ‘해석학’과 ‘윤리학’으로 크게 구획하여 일상의 삶을 철학적으로 탐구하였다. (이 책은 별도로 독서노트를 마련할 생각이다.) 나는 이번의 신간이 이 책과 연속선상에 놓인 것이라 생각했다. 읽는다는 것의 철학적 탐구를 기대했다는 말이다. 물론 이번의 신간은 그 연속선상에 놓여있기는 하다. 문자와 읽기에 대한 철학사적 탐구와 동서양철학자의 비교, 읽기의 현상학과 해석학, 윤리학은 다시금 이 책에서 재활용되면서 깊이를 더했다. 여기까지가 나의 만족지점이다. (이것만해도 어디인가?)
‘그냥 반’이라고 말한 이유를 굳이 말해보자면, 강영안의 복음주의적 성서관이 내가 떠나온 과거와 연관되어 있었기에 갖게 되는 ‘낯익은 이질감’으로 인해 생기는 감정들의 불편함 때문이다. 그는 주희(朱熹)의 경전 독서법과 중세 수도원에서 출판한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 거룩한 독서법)’를 비교하면서 주관과 객관에 매몰되지 않고 신성(神性)에 다가가는 독서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면서 교인들이 실천하는 ‘경건의 시간(Quiet Time)’에 대한 ‘인격적 읽기’를 독려하고 있었다. (아마도 기복신앙이나 관행적 신앙관에 사로잡혀 있는 정통(?) 교인들에게는 강영안의 독서법이 매우 인상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성서에 대해 급진적인(?) 생각을 가진 나로서는 실용성이 떨어지는 부분이었다.
그럼에도 이 책은 권장할만한 데, 그것은 ‘읽는다는 것’이 읽는 것이나 정보습득에 그치지 않고 삶의 변화를 수반해야 한다는 저자의 일관된 ‘독서관’ 때문이다. 현상학과 해석학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윤리학으로까지 확장되는 독서는 비단 성경(혹은 성서)를 읽는 교인들에게만 요구되는 덕목이 아니라, 일반적인 독서인에게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저자가 부제에서 밝혔듯이 ‘독서법 전통을 통해서 본 성경 읽기와 묵상’이 이 책의 주된 목적이라 하더라도, 그러한 목적을 갖지 않은 독자들도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독서법을 활용하여 자신의 ‘독서법’을 더욱 확장시킬 수 있을 것이다.
<추신 1> 나중에 조사해보니, 저자는 철학적 저술뿐만 아니라 종교적 저술도 다량으로 생산하고 있었다. 보수적인 신앙에 사로잡혀 있는 독자라면, 강영안의 종교적(기독교적) 저술로 해독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보수적인 종교관 속에서도 성속의 균형감을 갖고, 신학과 철학의 접점을 찾는 성실하고 독실한 학자를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적어도 강영안은 그런 철학자이자 신학자이다.
<추신 2> 만약에 당신이 교회를 다니는데, 성경읽기를 멈췄거나, 더 이상 성경이 자신의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그리고 또 아직까지는 교회 다니기를 포기하지 않았다면 강영안의 이 책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활력을 잃은 ‘선데이 크리스챤들’에게 강추한다.
칸트는 읽기에 관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어 합니다. "무엇을 읽을 때, 남의 눈으로 보려고 하지 마십시오. 스스로 생각하십시오. 언제나 자기 눈으로 보려고 애쓰십시오." 저는 성경을 읽는 사람도 이 충고를 거부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남의 눈으로 읽고 남의 생각으로 받아들인 말씀은 나에게 살이 되고 피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영향을 미치려면 나의 눈으로, 나의 지성으로, 나의 생각을 말씀 앞에 내어놓고 씨름하며 읽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25쪽)
성경을 읽을 때 우리가 능동적으로 다가서고 능동적으로 문장을 읽고 이해하고 파악하려 할지라도, 우리가 성경을 읽거나 들을 때 성경 말씀은 오히려 우리를 말씀 앞에 발가벗겨, 그야말로 방어할 수 없는 지점에 이르기까지, 그로 인해 심지어 상처를 입을 가능성(vulnerability)이 있는 지점에 까지를 우리를 세우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능동적으로 성경을 읽는다고 하지만 오히려 하나님의 숨결로 쓰인 성경이 능동적으로 우리를 읽어 내고 말씀 앞에 우리는 세우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때 완전한 수동의 자리에 서게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성경이 우리를 읽을 때의 읽기 방식은 ‘수동적 읽기’이고 ‘상처 입을 준비가 되어 있는 읽기’입니다.(1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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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철mchkim1969 2020-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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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다는 것 (강영안)
전작 ‘믿는 다는 것’에 깊은 인상을 받아서 인지
‘읽는 다는 것’에 기대가 컸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라는 말이 있지만
결론적으로는 기대이상이었다.
저자는 읽는다는 것을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정리한다.
첫째는 문자와 읽는 행위를 철학과 성경을 중심으로 서술하고
둘째는 읽기의 현상학/해석학/윤리학을 서술하며(믿는 다는 것의 서술 형식도 이와 같았다)
셋째는 성경을 일상의 삶에서 적용할 때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서술한다.
저자가 읽기에 대해 회상을 하면서 레슬리 뉴비긴과의 만남을 떠올린다.
그와의 대화에서 복음주의자는 성경을 읽지 않는다라는 말에
성경을 읽는 다는 것이 무엇인지 탐색하기 시작한다.
저자는 칸트와 가다머의 해석학적 물음을 논의한 후에 변혁적인 지식이 참된 지식이며 성경도 삶속에서 적용하면서 말씀대로 살아 보아야 비로소 읽는 다고 할 수 있음을 말한다. 즉 성경읽기는 알고 해석해서 바른 내용을 깨닫아 진리를 아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성경에 적용할 때 비로소 성경을 읽고 이해 할 수 있다.
저자는 문자와 읽기에 대한 철학적 배경을 크게 두 갈래로 설명한다.
먼저는 플라톤으로 대표되는 문자에 대한 부정적인 측면이다. 실체를 문자로 온전히 표현 할 수 없다고 보는 입장이다. 반면에 후설 같은 현상학자들은 보이지 않는 세계의 실체를 문자로 표현할 수 있다고 보았다. 입장은 달랐지만 플라톤이나 후설 모두 문자 이전에 영혼에 새겨진 것을 찾는 일에는 일치한다.
결국 문자와 읽는 것에 대한 철학적 입장의 통합을 가져다주는 것이 바로 성경읽기라고 저자는 말한다. 성경은 사람의 말과 문자이지만 하나님의 숨결로 쓰인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성경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알려주고 의롭고 선한 삶을 살도록 변화된 삶의 산출하도록 가능하게 만드는 책이다.
그렇다면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하나? 저자는 율법교사의 이야기를 통해 읽기와 의미를 통해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를 말한다. 즉 텍스트를 향한 능동적으로 지성과 열정을 다해 읽어야 하지만 수동적으로 자신을 비워 말씀이 우리를 채우는 과정을 기다려야 한다. 결국 적극적으로 말씀을 읽고 적극적으로 말씀이 우리를 읽도록 말씀 앞에 우리의 삶을 내던져야 한다.
그런 읽기의 실천적 모습으로 저자는 동양적 독서방법으로는 주희의 방법을 말한다. 위기지학의 목적으로 글공부와 몸 공부와 마음공부를 일치시키는 독서방법을 소개한다. 반면 서양적 방법으로는 우리가 익히 들어본 렉시오 디비나를 이야기한다. 렉시오 디비나의 전통적인 방법을 소개하며 그 다음 단계로 마틴 루터의 신학방법에서 렉시오 디비나 전통에서 기도와 묵상의 순서와 관상을 고난과 영적씨름으로 바꾼 것에 대해 설명한다. 즉 렉시오 디비나가 관상을 목적으로 한다면 루터는 일상에서의 고난 가운데 씨름하는 신앙에 대해 강조한 것을 말해준다. 더 나아가 저자는 렉시오 디비나의 개신교 전통에서 잘 적용한 사람으로 유진 피터슨을 언급한다. 피터슨에게 관상은 읽고, 묵상하고, 기도한 텍스트를 나날의 일상에서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저자는 이런 전통을 기초로 말씀 읽기와 읽은 말씀으로 하는 기도 마지막으로 삶속에서 말씀을 기억하고 묵상하며 말씀을 실천함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이런 배경 하에 저자는 우리들 교회의 묵상방법에 대해 조명한다. 앞서 이야기한 성경읽기 방법과 동서양의 독서법에 우리들 교회의 묵상방법이 연결되어 있음을 조명한다. 앞서 이야기한 논의들을 우리들 교회의 묵상방법과 대비하며 신학적 적용하는 부분은 그동안 가볍게(?)인식했던 우리들 교회의 큐티목회를 묵직한 신학적 전통과 맞물러 있음을 증명했다.
이후 부분은 우리들 교회 세미나에서 제기된 성경을 어떤 책으로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성경은 인간의 글과 말로 기록된 책인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이자 삶을 변화 시키는 책이 될 수 있는지를 설명한다. 그 방법으로 텍스트와 삶의 현실을 하나로 통합하는 인격적 읽기를 제안한다.실천 방안으로 6가지의 방법들을 권하는데 결국 주관성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공동체와 연관된 읽기와 다양한 도구들의 사용하는 성경적 읽기와 적용이 인격적 읽기를 가능함을 이야기 한다. 더 나아가 성경적 읽기와 변화될 수 있는 삶을 연결하는 성령 하나님을 강조한다.
저자는 읽는 다는 것의 논의를 정리하면서 거꾸로 읽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반문한다. 읽지 않으면 세상을 보는 창을 얻을 수 없음을 언급하면서 우리 인생에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놀랍고도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성경을 읽어야 함을 강조한다. 또한 성경은 그리스도인의 존재 방식이며 삶의 환경이자 순례자의 일용할 양식이기에 제대로 바르게 읽어야 함을 강조한다. 왜냐하면 성경을 제대로 읽고 배움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온전한 사람이 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다양한 방법으로 동서양과 신학과 철학을 넘나들며 논증과 설명으로 성경읽기가 단순한 독서가 아닌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삶의 변화를 가져오는 읽기임을 이야기했다. 성경독서법이 아닌 성경체험법에 대한 이론과 실제를 본 듯하다. 결국 저자는 레슬리 뉴비긴이 제기한 성경을 읽지 않은 복음주의자의 모습에 대한 대답으로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성경대로 살아간다는 것임을 우리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 책은 주는 가장 유익은 가벼운 독서마저 사라져가고 독서를 통한 사색과 사유의 자리에 인터넷 검색이 자리 잡은 세대에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읽기의 중요성에 대해 깨우친 것이다.
이 책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이 초기 한국기독교에서 보여줬던 하나님 말씀을 사랑하고 그 말씀대로 지키며 경험했던 삶의 변화들이 다시 일어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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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yk302 2020-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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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안 교수의 신간 <읽는다는 것>은, 저자가 밝히는 대로, 성경 묵상에 대해 철학과 신학의 관점에서 살펴 달라는 우리들교회의 강연 요청에서부터 비롯되었다(175).한국 교회 안에서 ‘QT’, 즉 말씀 묵상으로 잘 알려진 우리들교회가 성경을 읽는 행위에 대해 학문적으로 돌아보기 위해, 영향력 있는 철학자이자 신학자인 강영안 교수에게 연구를 의뢰한 것 같다. 다소 막연하게 느껴지는 주제를 저자는 세 가지 근본 물음을 중심으로 명석하게 풀어간다.
첫째 질문은 “읽는다는 행위가 무엇인가?”이다. 저자의 표현으로 ‘읽기의 현상학’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물음은 1장과 2장을 이끌고 있으며, 3장에서 5장에서도 지속적으로 다루어진다. 저자는 “복음주의자들은 성경을 읽지 않는다!”라는, 레슬리 뉴비긴의 파격적인 명제가 불러온 문제의식을 칸트, 가다머, 플라톤, 후설, 장자 등 철학자들의 통찰과 대화하며 풀어간다. 이 현상학적 사유를 통해 저자가 드러내는, 읽기라는 현상의 역동성은 어떤 글을 읽는 행위가 감각적 지각이나 정보 습득을 넘어서는, 저자와 독자, 그리고 글 사이의 상호작용에 의한 해석 과정이라는 해석학적 사실을 잘 보여준다.
둘째 질문은 “성경은 어떤 책인가?”이다. 이 물음에 대한 답은 3장부터 7장으로 이어지며 제시되는데, <디모데후서> 3장 15-17절에 대한 저자의 해석에서 시작한다. 여기서 저자는 성경이 우리 삶을 구원으로 인도하려는 분명한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임을 강조한다. 따라서 저자와 독자와 글 사이의 역동적 관계에 충실한 해석 과정으로 성경을 읽기 위해서는 성경의 이러한 정체와 목적을 제대로 반영하여 읽어야 함을 여러 장에 걸쳐 거듭 설득해 간다.
셋째 질문은 이 책의 중심 질문으로서 “그렇다면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이다. 5장부터 9장은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서 이 책의 핵심이 된다.저자는 중세의 렉시오 디비나와 루터의 신학 공부 방법론 등 과거의 지혜를 돌아보며, 성경 읽기가 그 최종 저자이신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 안에서, 독자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 씨름하는 실천적 해석 과정이어야 함을 드러낸다. 우리들교회의 성경 읽기를 다루는 6장은 이 책이 세상에 나오게 된 배경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단지 과거의 글에 대한 사색으로 끝나기보다는 ‘오늘 여기’에서 일어나는 ‘우리 자신’의 성경 읽기 현상을 돌아보며 조금이나마 유익을 주려는 저자의 실천적 관심을 가장 잘 드러내는 부분이기도 하다. 성경 읽기를 세상 어느 교회보다 강조하면서도, 한편으로 ‘QT’라는 현상을 은근히 무시하는 오늘날 한국 교계와 신학계의 일부 진영에 경종을 울릴 듯하기도 하다. ‘QT’라고 일컬어지는 성경 묵상이 성경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는, 소위 ‘평신도’들의 자의적, 주관적 해석이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 신학적 전통에서 이어진 교회의 건강한 삶의 방식이 될 수 있음을, 우리들교회의 성경 묵상이라는 구체적 예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저자는 루터의 묵상법과 우리들교회의 묵상법 사이의 연속성을 드러내며 강조한다.
저자가 말하듯이 7장에서 9장은 우리들교회 강연 현장에서 주어진 두 개의 중요한 물음에 대한 저자의 답이다(175-177, 195-196, 219-220). 우리들교회 성도들의 질문은 (1) ‘QT’가 빠지기 쉬운 주관적 읽기를 피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것과 (2) 묵상과 삶의 괴리를 줄일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것이다. 이 질문은 그 자체로 ‘QT’를 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 잘 읽고 적용하려는 치열한 고민을 반영하고 있다. 강연 현장에 있던 성도들이 한국 교회를 대표하여 저자에게 던진 매우 중요한 물음이라 하겠다. 이에 대해 저자가 깊이 고민하며 제시한 몇 가지 구체적 방법은 성경을 단지 연구나 분석, 보존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성도가 따라야 할 신앙과 삶의 규범으로 보는 모든 신실한 신자들에게 큰 유익이 되리라 기대한다.
이 책이 각 장마다 덧붙이고 있는 생각해볼 거리와 추천 도서가 보여주는 것처럼, 이 책은 개인의 공부만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읽고 생각하며 토론하기에도 좋은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며 더 건강한 성경 묵상으로 들어가고, 성경을 제대로 묵상하며 각자 자기 삶의 일상에서 하나님과 깊은 교제로 나아가는 것이 저자가 이 책을 쓴 의도이자 목적이 아니었겠는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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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c 2020-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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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자, 그리고 우리는 제대로 읽지 않는다
강영안 교수님은 국내외 교계 뿐 아니 학문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에게나 존경받을 만한 분이다.
이 책은 읽는다는 것을 넘어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며 경험하며, 지식을 쌓는 것, 그리고 안다고 자처하는 모든 것이 무엇을 의미해야 하는 것인지 근본적인 물음에 답해주는 책이기도 하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이 책은 전작인 ‘믿는다는 것’의 연작선상에 있는 느낌도 있다.
전작이 믿음에 대한 깊은 사색과 고백이 담겨있는 책이라면 이 책은 더 나아가 사유에 머물지 않고 삶에서 어떻게 발현되어야 하는지까지 나아간 책이라 생각한다.
그런 진보는 아마도 성경을 읽고 그대로 살고자 하는 공동체, 우리들교회의 사례와 콜라보레이션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레슬리 뉴비긴이라는 신학자, 선교학자, 선교사이자 작가였던 사유에만 머물지 않고, 삶으로 복음을 전했던 분과 나눈 담화로 시작한다.
“복음주의자는 성경을 읽지 않는다”
과연 복음주의자만 성경을 읽지 않을까? 진보와 보수가 난립하며 교회 안에도 양극화가 심해지는 어두운 현실 속에서 그리스도인라고 자처하는 우리도 성경을 읽지 않는다. 보수냐, 진보냐가 아니라 성경에서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귀기울이지 않는다. 겉으로는 성경을 읽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안다고 생각할지라도 그대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 하루 하루 그것을 실현해 내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비그리도인들도 평등을 외치고, 자유를 부르짖지만 그들이 읽고, 안다고 하는 것은 백만분의 일도 읽어내는 삶을 살지 못한다.
이 책이 단순히 성경의 읽기만이 아니라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근본적인 독서, 그리고 앎이라는 것에 대한 답이다. 그러기에 기독교 전통 뿐 아니라 동양의 독서에 대한 자세와 서양의 독서에 대한 자세를 <5장 읽기의 윤리학: 주희의 독서법과 렉시오 디비나>라고 하는 한 장을 할애해서 이야기한다.
소위 모태신앙이라고 하며, 전통있는 교회에서 평생 기독교인이라고 하는 정체성으로 세상을 살아온 나조차 성경의 가르침과 나의 삶을 분리해서 성경의 읽기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어마어마한 보화를 모른 체, 박재되어 있는 기독교적인 사상 혹은 세상의 정의로운 이념이라는 가치관의 노예로 살아 온 시간이 많다.
내가 읽고, 안다고 생각하고 주장하며 살아온 것, 그것과 삶의 괴리 때문에 하루도 이 땅에서의 삶을 이어갈 수 없을 정도로 힘든 누군가에게 이 책을 꼭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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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g-Deuk O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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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성경을 읽을까?]
주관적 + 객관적 읽기를 넘어선 인격적 성경 읽기
1939년 뉴욕 유니언신학교에 강의 차 1년간 온 본회퍼는 "너는 겨울 전에 속히 내게 오라"(딤후 4:9)을 읽고 독일행을 결단한다. 그는 만일 그가 뉴욕에서 안전하게만 있으면, 전후 독일교회 재건을 할 때 자신은 목소리를 낼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본회퍼가 그 구절을 히틀러 치하 고난 속에 있는 독일 형제들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주님의 말씀으로 해석한 것은, 성경의 주관적, 객관적 읽기를 넘어선 인격적 읽기였다.
--강영안, <읽는다는 것> ( IVP, 2020), 196-1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