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나 해러웨이(Donna Haraway)와 권정생
주기화 교수는 도나 해러웨이(Donna Haraway, 1944~ )의 신유물론을 “퇴비주의”라는 제목하에 소개한다. 인간은 퇴비다. 우리는 퇴비다. homo(인간)의 기원은 humus(흙, 땅) 인데, 우리가 사는 곳은 ‘인간성’(Humanities)가 아니라 ‘부식토성’(Humusities)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부식토(Humus)이지, Homo나 Human이 아니다. 우리는 퇴비(두엄, Compost)이지 포스트휴먼(Posthuma)이 아니다.” 해러웨이의 선언이다.
해러웨이는 과학기술연구, 페미니즘 연구의 탁월한 학자이다. 그가 생명과학적 입장에서 인간 인식과 실재 사이의 거리는 비극적으로 멀다고 판단하여서 “‘경계가 있는 개체주의(Individualism)’은 더 이상 사유의 수단으로 쓸모없게 되어 버렸다고 말하면서, 대신 퇴비 은유를 가져와서 ‘인간은 퇴비다’라는 선언은 ‘인간의 조상은 원숭이다’라는 말보다 막상 닥치고 보니 충격적이다. 우리 몸에는 약 100조 개의 미생물이 인간과 공존한다. 하여 미생물들, 박테리아들이 먹고 만든 배설물들로 만들어진 우리 몸은 말 그대로 퇴비라는 것이다. 퇴비는 자연의 순환을 가장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자연은 우로보로스(Ouroboros)와 같아, 입과 똥구멍이 연결되어 배설물을 먹는 물질적 순환 과정을 나타낸다.
먹음과 먹힘, 먹고 먹히는 약육강식의 사회적 다윈이즘이 아니라, 그동안 최상의 포식자 위치에서 게걸스러운 먹음의 지배는 있었어도 인간이 아닌 다른 생물에게 먹힘이 없었던(물론 사고는 예외) 인간도 자연의 일부로 생각하고 자신의 육체(물론 시신)를 다른 생물을 위한 음식으로 제공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이 정말 혁명적으로 달라질 것이다.
나는 ”퇴비주의“를 보면서 신약성서에 나오는 예수의 ‘밀알’비유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한 12:24)” 영어의 겸손(humility)의 어원도 humus이다. 해러웨이는 퇴비주의라는 철저한 겸손을 종교적 확신이나 도덕적 명령의 차원이 아니라 과학적 일반론으로 제시한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다. 여기까지 해러웨이의 이론 정립에 정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그런데 우리 역사를 보면 지난 2,000년 이상 백성은 종으로 노예로 노비로 그야말로 퇴비가 되어 살아왔다. 조선의 19세기는 아주아주 그 강도가 특심했다. 그래서 민란이 일어나고 동학농민혁명이라는 것이 터졌다. 우리는 너희들(왕, 양반 관료, 일본 놈)에게 짓밟히는 퇴비가 아니다. 우리는 하늘을 모시고 있는 사람들이다(侍天主). 우리가 바로 하늘이다(人是天)
수운, 해월, 녹두, 의암, ... 시인 신동엽과 김지하까지 조선의 하늘을 보고, 하늘이 된 많은 참사람들 중에 권정생 선생은 탁월한 분이다.
그는 똥 중에도 강아지똥이 된 하늘이다.
그는 우리들의 언니 “몽실언니”다.
그는 우리들의 품 “팥죽 할머니”다.
그는 우리들이 넘었던 지난(至難)한 역사의 언덕에서 하늘을 보여준 “한티재 하늘”이다.
그는 우리들의 하늘, “하느님의 눈물”이다. 마침 아침부터 하늘에서 비가 내린다.
나는 도나 해러웨이의 ‘퇴비 선언’이 삶의 역사적 자리, 사회적 자리, 정치-경제적 자리, 삶의 자리(Sitz im Leben)를 몰각한 일반적 선언, 미국 사람이 아시아나 아프리카, 남미 사람을 향한 선언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