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탁한 한국사 속에서 투명한 사유를 멈추지 않은 인문학자
우리 시대의 어른의 초상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빈곤과 억압에 시달렸고 해방과 전쟁으로 이어지는 한국 현대사의 격동기에 청춘을 보낸 사람들. 1930년대에 출생한 이들은 인생의 일관된 의미를 찾기보다는 생존과 최소한의 생활 조건을 확보하기 위해 파편처럼 부서진 삶을 살아야 했다. 그 속에서 삶의 근본 의미를 집요하게 묻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허무주의자가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일 것이다. 그러는 한편, 일제하에서 자연스럽게 다중언어 사용자가 된 것은 아픈 역사가 남긴 일종의 수혜라고도 할 수 있다. 이어령, 김우창, 김열규 등 강점기 세대가 해방 후 세대보다도 인문학적 바탕이 넓고 튼튼했던 것도 이런 바탕에서 비롯된다. 오늘 우리는 이와 같은 한국 지성사의 맥락 속에서 삶을 긍정하는 허무주의자, ‘둥지의 철학자 박이문’을 다시 만난다.
이 책 《삶을 긍정하는 허무주의》는 인생과 세상에 대한 총체적 앎을 추구한 원로 철학자와 젊은 시절에 그의 책을 읽고 성장한 다음 세대의 사회학자가 30년이 넘는 오랜 기간 교유交遊한 결과물이다. 사회학자이자 작가인 정수복은 박이문과의 오랜 인연을 바탕으로 심도 깊은 인터뷰를 진행하고 100권에 달하는 그의 저작을 모두 섭렵했다. 특히 노철학자에 대한 경의를 잃지 않으면서도 그 삶에 대한 이해와 인정을 바탕으로 객관적으로 비판·비평하는 사회학자의 시선이 돋보인다. 그 결과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박이문의 면모를 세계인, 철학자, 시인, 종교인, 작가, 지식인으로 정리하고, 다차원 간의 관계를 씨줄과 날줄로 촘촘히 엮어낼 수 있었다. 지적 투명성, 감성적 열정, 도덕적 진실성에 대한 천착이 시와 수필, 철학논문 등의 다작을 거쳐 ‘둥지의 철학’으로 모이는 철학자의 일생이 입체적으로 그려졌다. 이 책은 박이문의 방대한 창조 작업을 최초로 정리한 지적 전기로서 학문사에서 의미를 가지는 동시에, 치열한 삶을 살아낸 우리 시대 어른의 한 초상으로 기록될 것이다.
목차
책을 열며 사회학자, 철학자를 만나다
1부 풍요로운 창조 - 지적 탐구와 자기만의 글쓰기
세계인 박이문 보편의 추구
세계화된 철학자 박이문 | 프랑스 문학평론가 알베레스의 격려 | 컬럼비아대학교 철학자 단토와의 교류 | 도쿄대학교 총장 하스미의 인정 | 하버드대학교 철학자 셰플러의 호응 | 한국어, 프랑스어, 영어 삼중언어의 세계 | 한국에서 세계적 학자가 나오려면
철학자 박이문 궁극의 인식
철학적 질문의 시작 | 전체에 대한 궁극적 인식 | 자기만의 철학 만들기 | 문학과 예술철학 | 이성의 옹호 | 둥지의 철학 | 존재-의미 메트릭스 | 통합의 인문학 | 현대문명 비판과 생태사상 | 동서양철학의 종합 | 서양문명의 위기와 아시아적 세계관
시인 박이문 인식과 표현
철학자가 시를 쓰는 이유 | 고통을 통한 시 쓰기 | 일곱 권의 시집 | 끝이 없는 시 쓰기 | 시에 대한 철학적 성찰 | 시와 언어 | 눈의 이미지 | 주변인 박이문 | 이방인 박이문 | 박이문과 폴 발레리 | 이성과 감성 사이
종교인 박이문 의미의 탐구
의미 추구 | 허무주의자의 자살론 | 공허감과 무의미 | 무신론자 박이문 | 위선적 종교인 비판 | 도교 친화적 태도 | 불교에 대한 친밀감 | 자기만의 세계관 | 신성을 향하여
작가 박이문 끝없는 글쓰기
이성 밖의 여백 | 문학평론가 박이문 | 번역가 박이문 | 자서전 작가 박이문 | 수필가 박이문 | 고독 속의 글쓰기 | 길의 수필가
지식인 박이문 공공公共의 발언
철학자가 칼럼을 쓰는 이유 | 박이문의 사회의식과 역사의식 | 박이문의 전쟁 체험 | 박이문의 사회적 배경과 정치의식 | 박이문의 유토피아 | 폭력에 대한 혐오, 이성에 대한 신뢰 |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넘어서 | 박이문 사상의 지적 기원
박이문 저작의 구조 분석 미로에서 길 찾기
박이문의 저작을 분류하는 여덟 가지 방법 | 박이문 저작의 분류 | 박이문의 책 읽기와 책 쓰기
2부 하나만의 선택 - 여러 갈래 길 , 박이문의 길
삶과 철학 | 인습과 창조 | 일제강점기 체험 세대 | 지워지지 않는 한국전쟁의 기억 | 충청도 시골마을에서 보낸 유년기 | 호기심의 기원 | 형님들 이야기 | 부모님 이야기 | 문학청년 시절 | 프랑스문학의 세계로 | 파리 유학 시절 | 프랑스를 떠나 미국으로 | 미국에서의 교수 생활 | 뒤늦은 결혼 생활 | 다시 한국에 돌아와서
책을 닫으며 죽음을 응시하는 둥지의 철학자
주
저 : 정수복
관심작가 알림신청 작가 추천 작가 파일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사회학 석사학위를 받은 후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에서 프랑스 사회학의 거장 알랭 투렌Alain Touraine의 지도를 받아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9년부터 연세대 등에서 ‘집합행동과 사회운동’, ‘사회문제론’ 등을 강의했다. 이후 시민환경연구소 부소장, 크리스찬아카데미 기획연구실장, 사회운동연구소 소장 등을 역임했다. 그 기간 『의미세계와 사회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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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책을 열며 사회학자, 철학자를 만나다
박이문의 삶과 학문 세계는 나를 넘어서 많은 사람에게 널리 알릴 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특히 삶의 의미에 목말라하는 젊은이들은 80년이 넘는 오랜 세월 동안 진정한 삶의 의미를 추구한 노학자의 삶에서 감동을 느끼고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p.11
모든 것이 시장의 논리에 의해 지배되는 시장전체주의 시대에 학문의 독자성을 지키고 예술의 고유한 가치를 옹호하는 박이문의 삶과 사상을 재구성하여 스러져가는 학문과 예술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세속적 물질주의에 맞서 정신적 가치를 지켜나가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한 편의 평전을 쓰려 했다. 그의 삶과 사상의 흩어진 편린들이 아니라 전체적인 모습을 희미하게나마 독자들에게 그려 보이려 했다. --- p.15
안타까운 일이지만 우리는 앞만 보고 달려오면서 중요한 것들을 많이 잃어버렸다. 그러나 세월이 아무리 흐르고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정신은 세대와 세대를 이어 면면히 계승되고 전승되어야 할 고귀한 가치다. 굴곡이 많은 현대사의 흐름 속에서 우리 사회는 일관성 있는 삶을 살았던 전 세대의 인물들을 넉넉히 만나지 못하는 불운을 겪었다. 그렇기에 자신의 삶의 영역에서 진정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의 삶을 기록하여 다음 세대로 전승하는 일이 중요하다. 모든 세대는 전 세대로부터 정신적으로 중요한 무언가를 물려받아 그것을 시대에 맞게 발전시켜 다음 세대로 넘겨줄 책임이 있다. 존경할 만한 삶, 닮고 싶은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전 세대의 이야기가 많이 있어야 젊은이들 또한 새로운 미래를 설계할 힘을 얻는다. --- p.18∼19
1부 풍요로운 창조―지적 탐구와 자기만의 글쓰기
세계인 박이문 보편의 추구
박이문과 같은 세대에 속하는 조가경, 승계호, 김재권, 이광세 등 한국 출신 철학자들이 영어로 쓴 저서를 통해 미국 철학계에서 인정받고 있지만 그들이 한국어로 사유하고 한글로 쓰는 능력을 상실한 것과 달리 박이문은 영어와 프랑스어로 쓰면서도 한글로 자신의 사유를 표현하기를 중단하지 않았다. 그는 일찍이 1950년대 후반부터 한글로 문학평론과 시를 쓰기 시작한 이후 프랑스어와 영어로 논문을 쓰면서도 줄곧 한국어로 사유하고 글을 쓰는 능력을 유지했다. --- p.41
박이문은 한국어 저서를 통해 한국 ‘자생철학’을 대표하는 우리 시대의 세계적인 철학자가 되었다. 그의 철학은 박이문 개인의 철학이지만 그와 동시에 “한국철학의 자생성과 독창성을 위한 디딤돌이자 이정표로 기록될 것”이다. 오늘날 우리 학계의 지적 과제는 서구 학문의 추종에서 벗어나 우리 나름의 학문을 만들어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그 보편성을 인정받는 데 있다. 그런 관점에서, 이미 1960년대부터 문학과 철학, 서양철학과 아시아사상을 넘나들며 자기만의 학문을 추구해온 세계인 박이문의 삶과 학문세계를 주의 깊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 p.42
철학자 박이문 궁극의 인식
세계의 절대적 확실성에 도달하려는 꿈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목표일지라도 철학자는 끊임없이 사회, 인류, 우주의 궁극적 존재가치를 탐구한다. 박이문은 이카로스와 시시포스의 모습을 떠올리며 자신의 철학적 탐구를 계속한다. … 박이 문은 쉽게 답할 수 없는 문제들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철학적 사유를 계속했다. 확실한 답을 찾는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 p.50∼51
“지난 10여 년 동안 나의 주요한 철학적 관심 중 하나는 니체에 서 시작하여 푸코와 데리다를 거치면서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같이 흔들리고 있는 이성을 재해석하고 재구성하여 옹호하는 일이었습니다. 나는 이성을 판단의 절대적 잣대라고 믿지 않고 무조건 의지할 수 있는 빛으로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성은 역시 사유의 잣대이며, 이성보다 더 신뢰할 수 있는 빛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 p.64∼65
박이문의 둥지의 철학은 그가 평생 동안 동서양을 섭렵하고 또 문학과 사상과 예술을 넘나들며 모으고 가꿔온 다양한 언어의 재료들로 엮은 편안하고 아름다운 둥지다. 이승종이 말하듯이 “둥지의 철학은 박이문 철학의 모든 것이 응축된 기념비적인 저작이다. 혼란과 격동 의 시대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삶을 살아온 노老철학자가 자신의 평생을 다 바쳐 빚어낸 위대한 사유의 심포니”다. 그의 평생의 사고와 글쓰기 작업은 영혼이 거처할 ‘둥지’를 짓는 일이었으며 지금도 그 둥지를 계속 더 아름답고 편안하고 견고하게 리모델링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 p.66
시인 박이문 인식과 표현
“내가 중학교 시절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는데 그때 수업 시간에도 선생님 강의를 안 듣고 시를 썼어요. 중학생 때 처음 쓴 시의 제목이 “낙엽”이었습니다. 내 안에서 자라고 있던 절망과의 투쟁에 대해 쓴 시였습니다. 그 시절 다른 친구들은 운동하러 다니고 놀러 다녔지만 나는 시간이 나면 무언가를 썼습니다.“ --- p.100
“앞으로 궁극적인 시, 최종적인 시 한 편을 꼭 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 p.102
박이문에 따르면 인간이 세상을 인식하는 기본 틀로 작용하는 세계관에는 네 가지가 있다. 종교, 철학, 과학, 예술은 서로 다른 세계 인식의 방법이다. 종교가 초월적 세계에 대한 신념의 체계이고, 과학이 현실에 대한 인과관계적 설명이라면, 철학은 과학에 대한 담론, 메타과학meta-science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예술이란 무엇인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실재의 존재,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어떻게 표현할 수 없어서 이렇게도 표현하고 저렇게도 표현해보는 것이 예술이다. 존재와 표현 사이에는 어떻게 해도 메울 수 없는 거리가 있다. 종교와 과학과 철학으로 잡을 수 없는, 무언가 부족하고 빠진 것을 다시 잡으려는 욕망이 예술가를 만들고 시인이 되게 한다. 삶에 대한 근본적 생각은 합리적 담론보다는 예술작품으로 더 잘 표현될 수 있다. --- p.105
종교인 박이문 의미의 탐구
“오랫동안 인생의 의미를 찾으려고 애썼지만 인생의 궁극적 의미는 없다고 생각하는 허무주의자가 되었고 지금도 그런 생각은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의 의미’가 어디에 있느냐는 물음은 성립이 안 되는 질문이에요. 인생의 궁극적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은 헛수고입니다. 반면에 ‘인생에서의 의미’는 가능하지요. 각자 살아가면서 자기에게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일은 찾을 수 있지만 인생 자체의 의미는 없는 것입니다. 나는 우주라는 존재에도 목적이 없다고 보는 허무주의자예요. 젊은 시절에 나에게 큰 지적 자극을 준 니체나 사르트르도 허무주의자들이었어요. 그러나 인생 은 그 허무를 극복하고 살아가는 결단에 의해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나는 허무주의자이지만 나에게 다가오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삶을 살아왔어요. 나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만큼 삶을 긍정하면서 동시에 철학적으로는 허무주의자입니다.” --- p.126
박이문이 볼 때 종교는 인간의 고통 앞에서의 무력함이 만들어낸 상상물이다. 종교는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려는 인간 욕망의 표현이며 종교가 묘사하는 어둠 너머 세계는 사실상 빛에 대한 인간의 끝없는 욕망의 다급한 표현이다. 종교가 우리가 알고 체험하는 세계에, 우리의 삶에 의의를 부여하려는 시도라면 그것은 빛에 대한 우리의 희구에 불과하다. --- p.139
박이문은 모든 종교에 관심을 가져서 저서 《종교란 무엇인가》(1985)에 힌두교, 불교,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라는 5대 종교의 핵심을 요약하기도 했지만, 기존의 종교를 모두 거부하고 오로지 이성에 의해 자기의 철학 적 세계관을 구축하려고 했다. 박이문이 말하는 세계관이란 “모든 현상 경험, 실천 그리고 그 밖의 모든 문제에 대한 하나의 통합된 총괄적 비전이나 신념”이다. 또한 “철학적 세계관은 종교적 세계관과는 달리 투명한 이성 위에 그것의 확고한 토대를 두고자” 한다. 그가 말하는 이성이란 자기반성적이고 자기초월적인 에너지로서의 이성이다. 그는 기존의 어떤 종교에도 귀의하지 않고 오로지 이성으로 세계와 우주의 질서, 삶의 의미 와 무의미를 밝힐 수 있는 사유의 체계를 수립하려고 애썼다. 말하자면 그는 자기 자신을 만족시키는 자기만의 ‘종교’를 만들려고 했다. --- p.149∼150
작가 박이문 끝없는 글쓰기
프랑스 시인 가운데 가장 난해한 시인의 한 사람으로 알려진 말라르메의 시 전체를 가로지르는 일관된 사상을 찾아내려는 박이문의 이 야심 찬 저작은 프랑스 학자들을 놀라게 했다. 박이문은 말라르메를 사상가도 아니고 순수한 시인도 아닌 그 둘 사이에 위치하는 존재로 보았다. 그가 볼 때 말라르메의 천재성은 세상의 일관된 의미를 찾는 사상가라는 위치와 그것을 시적으로 창조하려는 시인의 자리 사이에서 일어나는 긴장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박이문의 말라르메에 대한 연구는 우리가 작가 박이문 을 연구하는 데 하나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박이문의 지적 역정 또한 말라르메와 마찬가지로 시인으로 시작하여 철학자의 길로 들어섰다가 다시 시와 철학 사이를 오가는 삶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 p.161
박이문은 내부로부터 솟아오르는 어떤 알 수 없는 힘으로 자신의 내면적 삶의 이야기를 쏟아놓았다. 그건 자신의 삶을 뒤 돌아보고 새로운 삶을 살려는 각오이기도 했다. --- p.165
“나는 철학자가 아니라 시인, 넓은 의미에서 작가가 되려고 한 사람입니다. 작가는 언제나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고 돌아다보고 한 내용을 쓰면 그게 자전적인 글이 되는 거지요. 나는 살아온 이야기를 내 목소리로 말하고 싶었어요. 볼테르, 루소, 사르트르 등 프랑스에서 사상가나 지식인들은 자서전을 쓰는 전통이 있는데 그런 데서 영향을 받았는지도 모르겠군요. 젊은 시절에 사르트르의 자전적인 글 《말들Les mots》을 읽으면서 나도 나의 자전적 이야기를 쓰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지요.” --- p.165∼166
박이문의 글쓰기는 그 자신의 영혼이 쉴 수 있는 집을 짓는 작업이었다고 할 수 있다. … ‘둥지의 철학자’ 박이문의 수필을 포함한 모든 글쓰기 작업은 모두 그런 둥지를 짓는 일이었을 것이다. --- p.175∼176
지식인 박이문 공공公共의 발언
철학자는 인식의 주체이기에 앞서 실존적, 실천적 존재다. 말하자면 철학자도 한 사람의 시민이다. 그는 “내가 사는 사회에 참여하여 문제를 발견하고 그것의 개혁을 위해 발언하는 것은 큰 특권인 동시에 시민으로서 지식인으로서의 책임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 p.178
박이문이 볼 때 지식인은 언제나 지적 양심에 따라 비판적 위치를 지키며, 언제나 권력이 없는 사람, 약자와 소수의 입장에 서는 사람이다. --- p.179
해방 이후, 특히 한국전쟁 이후 남한 사회에서 정치적 입장은 대체로 우익 기독교 집단과 진보 비기독교 집단으로 갈린다. 박이문의 입장은 그 둘 다 아니다. 그는 반공이면서 반기독교적인 입장이다. 마르크스주의와 기독교, 좌익과 우익 양쪽을 다 거부한다. 박이문은 남한 사회의 주류인 기독교, 북한 사회의 주류인 공산주의 양쪽 모두에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면서 비판적, 반성적 능력을 사회에 불어넣는 것이 철학의 임무 가운데 하나라고 말한다. 양쪽 사회 모두에 반성을 촉구하는 것이다. --- p.182
그는 언제나 권력으로부터 먼 거리에 존재한다. 결코 권력을 추구하고 권력을 장악하고 권력을 행사하기를 바란 적이 없다. 그렇다고 권력을 대놓고 비판하며 그에 저항한 적도 없다. 마음이 착하고 감격을 잘하고 감수성이 예민하고 의미의 문제에 시달리는 사람이 우격다짐의 정치판에 뛰어들 수는 없었다. 그는 권력과 거리를 두고 존재-의미론적 문제에 몰두했으며 세상과 거리를 유지하면서 세상 전체를 투명하게 이해하려고 애썼다. 자신의 삶과 생각과 체험과 느낌과 사유의 내용을 글로 표현하는 일이 그 의 삶의 핵심이었다.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독재체제와 전체주의는 그에게 깊은 의미에서 공포와 혐오감을 자아냈다. --- p.198
박이문 저작의 구조 분석 미로에서 길 찾기
박이문의 끊임없는 탐구와 글쓰기의 삶은 지금까지 거의 100권에 육박 하는 저서의 출판을 가능하게 했다. 그 많은 박이문의 저작은 대양이고 산맥이고 숲이며 늪이고 미로가 될 수도 있다. 거대하면서도 오밀조밀한 박이문 저작의 전모를 총체적으로 파악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장님 코끼리 만지는 식으로 많은 사람이 박이문을 철학자로만 알고, 오래전 에 그를 알았던 사람은 문학평론가라고 생각하고, 또 다른 사람은 수필가로 알고, 또 어떤 사람은 시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박이문을 총체적으로 알기 위해서는 그가 창조한 저작의 숲을 전체적으로 파악하기 위 한 지도가 필요하다. --- p.209
“나는 철학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했어요. 개념적으로 설명하는 이론적 인식만으로 모든 것을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철학이라는 그물망의 그물코로 빠지는 것들을 수필이나 칼럼으로 썼습니다. 감동과 감각의 세계는 철학으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철학 전후》의 맨 앞에 실린 [철학 전후]라는 글에서 이런 나의 생각을 정리한 바 있는데 ‘철학 전’은 구체적인 삶, 현상, 존재를 말합니다. 그리고 철학이 있고 그다음에 ‘철학 후’가 있는데 철학 후는 과학, 예술, 종교의 세계를 말합니다. ‘철학 후’는 ‘철학 밖’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둥지의 철학’도 포함해서 철학에는 일정한 양식이 있고 결국 골격만 남게 됩니다. 철학의 뼈대 사이에 빈칸으로 남아 있는 부분을 채우기 위해서 시도 쓰고 수필도 쓰는 겁니다.” --- p.230
“… 대학의 강단철학자들은 선생님이 본격적이고 전문적인 철학자가 아니라 대중을 위한 계몽철학자라고 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학문적 독창성이나 엄격성이 부족하고 쉽게 풀어쓰는 철학이라는 평가가 들어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왜 철학자들을 위한 전문학술지에 논문을 쓰지 않고 독서 대중을 위한 단행본 출간에 주력하셨는지요?”
“철학자들만이 아니라 대중을 위한 철학서를 썼다고 하지만, 천만에! 나는 단순한 대중철학자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종교철학, 예술철학, 과학철학 등 하나하나의 저서에 내 독창적인 입장을 밝혔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논문을 쓰면 누가 읽겠어요, 그걸…? 요즈음 학자들이 업적 평가를 위해서 학술지를 자꾸 새로 만들지만 거기에 실린 글들을 자기들끼리도 안 읽는다고요.” --- p.236
2부 하나만의 선택―여러 갈래 길, 박이문의 길
오랫동안 삶의 굴레로 작용해온 인습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과 세상을 창조하려는 박이문의 욕구 … 인습을 벗어나 ‘근대적 인간’으로 재탄생한 박이문은 철학적 사유와 시작詩作을 통해 낡고 상투적인 세계를 해체하고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삶을 살게 된다. 그는 늘 창조를 통한 흥분되고 숨 막히고 상승하는 삶의 체험을 추구했다. --- p.243
박이문의 삶과 학문세계는 굳은 인습을 깨고 부단한 창조를 지향하는 삶이었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욕망, 현실세계에서 느끼는 불만족, 인습의 질곡에서 빠져나오기, 초라한 현실의 논리적인 단편을 넘어서 있는 전체적인 현실에 도달하려는 끝없는 추구, 엄격한 지성의 연마, 정신의 자율성, 근본적인 계시, 세계 또는 우주의 닫힌 문을 열어줄 열쇠 찾기, 예술을 쇄신하고 낡은 카테고리에서 해방시키기, 눈앞의 현실을 재구성하기 위한 꾸준한 노력, 인식과 생명의 혁명이라는 주제들이 그의 젊은 시절의 글 속에 가득 차 있다. --- p.244
1930년생인 박이문은 1961년 서른한 살에 한국을 떠나 프랑스와 미국에서 30년 이상 지적 방랑을 계속하다가 1991년에 예순의 나이로 귀국하여 집필에 몰두한 예외적 삶을 산 인물이다. 성인이 되어 프랑스와 미국에서 30년을 살았지만 그의 삶의 원초적 체험은 일제강점기에 시작하여 해방 후의 혼란기를 거쳐 한국전쟁을 경험하고 4·19 혁명과 5·16 군사정변으로 이어지는 한국에서 이루어졌다. 유년기의 일제강점기 체험과 청년기의 한국전쟁 체험은 박이문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두 개의 원초적 체험이다. --- p.244∼245
일본식 이름으로 바꾸기를 강요하는 창씨개명이 실시되면서 박이문은 일본 이름을 갖고 일본말로 공부하다가 갑자기 해방을 맞이한 일제 체험 세대에 속한다. 해방 이후 학교 교육은 다시 우리말로 돌아왔고 다시 한글을 배워야 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박이문은 자연스럽게 다중언어 사용자가 되었다. 한국어와 일본어 위에 프랑스어를 공부하고 영어를 배웠으며 뒤늦게 독일어까지 배워 다섯 개의 언어로 사유하고 한국어, 영어, 프랑스어로 글을 쓰게 되었다. 그는 어린 시절에는 모국어와 일본어, 청년 시절에는 모국어와 프랑스어, 장년 이후에는 모국어와 영어 등 두 개의 언어 사이에 끼어 살았다. --- p.246∼247
한국전쟁은 그전부터 이미 허무주의자이자 염세주의자였던 그에게 큰 상처를 남겼고, 이후 그에게 상처 치유라는 과제를 남겼다. 그의 시작詩作은 전쟁에서 받은 영혼의 상처에서 벗어나기 위한 자기치유의 과정인지도 모른다. … 파울 첼란이 나치하의 경험이라는 악령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를 썼듯이 박이문도 한국전쟁의 상처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를 썼다. --- p.253
2005년 가을 파리, 국제학생기숙사 독일관인 하인리히하이네관에서 열린 박이문 영문 시집 《부서진 말들Broken Words》의 독일어 번역본(《Zerbrochene Woter》) 출판 기념 모임에서 박이문은 한국전쟁 당시를 회상하며 쓴 [전쟁의 기억들War Memories]을 읽으면서 오열했다.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쏟아졌고 그의 목소리는 흐느꼈고 얼굴은 붉은색으로 변했다. 나는 박이문이 자신의 감정을 그렇게 직접적으로 표현한 것을 본 적이 없다. 심연에 가라앉아 있던 고통이 인생의 만년에, 그가 젊은 시절을 보냈던 파리에서 그렇게 강하게 표출된 것이다. --- p.254
책을 닫으며 죽음을 응시하는 둥지의 철학자
팔순이 넘은 나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지금도 지적 방랑자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그가 살아온 이야기는 그의 표현대로 “오랜 지적 방랑의 연보”라고 말할 수 있다. 그의 지 적 방랑은 다양한 지리적, 역사적 공간 속에서 이루어졌다. 20세기 전반기에 시작해서 21세기에 이르기까지 그의 삶과 학문은 한국과 일본, 동양과 서양, 프랑스와 미국, 종교와 철학, 철학과 문학, 문학과 예술 사이를 오가며 이루어졌다. 그의 삶은 충청도 아산의 농촌마을에서 시작되어 서울을 거쳐 프랑스 파리에 머무르다가,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서부의 로스앤젤레스와 동부의 보스턴에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와 포항을 거쳐 일산에 둥지를 튼 지리적 궤적을 그린다. 또한 그는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를 거쳐 정보사회로 이어진 사회변동의 기본 줄기를 직접 체험한 세대에 속한다. 마을에서 시작한 그의 삶은 이제 세계가 하나의 단위가 되어버린 세계화의 시대에 동양과 서양을 아우르는 보편적 가치와 문명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자란 ‘도시 아이들urban kids’의 세대가 아니라 농촌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란 후 도시로 이주하여 ‘고향 잃은 마음homeless mind’을 가지고 살아가는 세대에 속한다. 달리 말하자면 그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고향’이 있다. --- p.313∼314
“이제 그 오래된 ‘앎의 숙제’는 다 푸셨는지요?”
“나는 젊어서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삶의 의미를 물었습니다. 어른이 되면 그런 질문은 끝나야 하는데 아직도 그런 질문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남들이 보면 유치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나는 철학자나 시인 이전에 종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존의 종교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반종교적이지만, 삶의 궁극적 의미를 계속 추구하는 사람이 종교인이라면 나는 독실한 종교인입니다.” --- p.317
박이문이 늙음과 죽음을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유는 누구 못지않게 열심히 살면서 그런대로 만족할 만한 삶의 궤적을 남긴 오랜 사색의 삶에서 나오는지도 모른다. 노년의 박이문은 아직도 소년같이 감탄할 일이 많고 생각할 것이 많고 쓰고 싶은 것이 많다. 그러나 그는 인간이 죽는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숙명으로 받아들인다. --- p.320
“인생은 누가 지시하고 인도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게 아닙니다. 각자가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결정하면서 만들어가야 합니다. 어차피 한 번밖에 못 사는 인생인데 잘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려면 우선 개인의 자율적인 선택을 인정해야 합니다. 뭐든지 강제와 강요는 안 됩니다. 나는 남을 훈육하는 일은 못합니다. 남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자신이 없어요. 나를 따르라고 할 자신이 없어요. 그렇게 해야 나를 따르는 사람이 있을 텐데, 나는 그렇게 하지를 못합니다. 누구에게라도 자신 있게 ‘인생을 이렇게 살아라!’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각자의 인생은 각자가 온 힘을 다해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예술작품이 되어야 합니다.”
--- p.327∼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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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행복한 허무주의자의 풍요로운 창조와 끝나지 않은 물음
‘자기만의 삶이 갖는 의미’를 찾아온 노老철학자의 지적 전기
일찍이 세계화된 석학으로 100권에 달하는 책을 써낸 철학자 박이문, 그가 아직 못 다 전한 자신의 사상과 삶에 대한 고백을 사회학자 정수복이 듣고 풀다
*본 책은 ‘박이문 인문학 전집’ 출간을 기념하며 무선본으로 새로 단장하였습니다.
세계 석학들이 말하는 박이문
“인문학자, 특히 프랑스문학과 철학 분야의 학자로서 박이문 교수의 지적 일관성, 시적 감수성 그리고 비판적 통찰력에 존경심을 표한다.“ - (전)도쿄대학교 총장, 불문학자 하스미 시게히코
“박이문은 1960년대 프랑스 유학 시절 자신만만했던 프랑스 젊은이들 앞에서 느꼈던 부러움을 표현한 바 있는데 이제 거꾸로 프랑스 독자가 박이문의 용기와 지적인 힘 앞에 놀라게 된다.” - 파리8대학 교수, 불문학자 클로드 무샤르
“문명의 위기에 대한 현명하면서도 예민한 관찰자인 박이문의 도전적이고 광범위한 사유에는 숙고할 점이 풍요롭게 들어 있고, 우리는 더욱 안전하고 더 행복한 미래에 대한 그의 처방으로부터 많은 점을 배울 수 있다.” - 하버드대학교 교수, 철학자 이스라엘 셰플러
행복한 허무주의자, 박이문
박이문은 둥지의 철학자다. 시인이며 수필가이기도 하다. 그는 일찍이 삶과 우주의 궁극적 의미를 찾아나선 지적 방랑자였다. 이화여대에서 불문학을 가르치던 그는 안정된 자리를 뿌리치고 파리로 건너갔다. 소르본대학에서 쓴 말라르메의 사상에 대한 문학박사학위 논문이 그곳 학계의 인정을 받아 책으로 출간될 즈음 다시 로스앤젤레스로 옮겨 간 그는 서던캘리포니아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렌슬레어공대와 보스턴 시먼스칼리지에서 강의하다가, 한국으로 돌아와 포항공대와 연세대에서 강의했다. 방랑의 세월 동안 그는 100권에 육박하는 철학 책, 시집, 수필집, 자서전, 칼럼집 들을 한국어과 프랑스어, 영어로 썼다. 그가 쓴 《노장 사상》 《예술철학》 《철학 전후》 《둥지의 철학》 들은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전공하는 학도들에게 널리 읽혔으며, 《문명의 위기와 문화의 전환》 《과학의 도전 철학의 응전》 등은 현대 과학기술문명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심화시켰다. 《하나만의 선택》 《사물의 언어》 들과 같은 자전적 저서는 많은 이의 인생에 영향을 미쳤고, 《눈에 덮인 찰스강변》으로 시작하는 시집들과 《길》로 대표되는 수상록들은 철학 책에서 다 표현하지 못한 그의 감성과 지성의 세계를 보여주었다. 최근 그의 인문학적 사유를 집대성한 ‘박이문 인문학 전집’(10권)이 출간되었다. 그는 철학자로 살았지만 늘 작가가 되길 원했다. 젊은 시절부터 본명 박인희朴仁熙를 대신하여 박이문朴異汶이라는 필명을 쓰면서 이문異文, 즉 남과 다른 자기만의 향기와 색채를 가진 글을 쓰려 했다. 박이문은 앞으로도 글쓰기를 통해 자기만의 둥지 짓기를 계속할 것이다.
혼탁한 한국사 속에서 투명한 사유를 멈추지 않은 인문학자
우리 시대의 어른의 초상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빈곤과 억압에 시달렸고 해방과 전쟁으로 이어지는 한국 현대사의 격동기에 청춘을 보낸 사람들. 1930년대에 출생한 이들은 인생의 일관된 의미를 찾기보다는 생존과 최소한의 생활 조건을 확보하기 위해 파편처럼 부서진 삶을 살아야 했다. 그 속에서 삶의 근본 의미를 집요하게 묻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허무주의자가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일 것이다. 그러는 한편, 일제하에서 자연스럽게 다중언어 사용자가 된 것은 아픈 역사가 남긴 일종의 수혜라고도 할 수 있다. 이어령, 김우창, 김열규 등 강점기 세대가 해방 후 세대보다도 인문학적 바탕이 넓고 튼튼했던 것도 이런 바탕에서 비롯된다. 오늘 우리는 이와 같은 한국 지성사의 맥락 속에서 삶을 긍정하는 허무주의자, ‘둥지의 철학자 박이문’을 다시 만난다.
이 책 《삶을 긍정하는 허무주의》는 인생과 세상에 대한 총체적 앎을 추구한 원로 철학자와 젊은 시절에 그의 책을 읽고 성장한 다음 세대의 사회학자가 30년이 넘는 오랜 기간 교유交遊한 결과물이다. 사회학자이자 작가인 정수복은 박이문과의 오랜 인연을 바탕으로 심도 깊은 인터뷰를 진행하고 100권에 달하는 그의 저작을 모두 섭렵했다. 특히 노철학자에 대한 경의를 잃지 않으면서도 그 삶에 대한 이해와 인정을 바탕으로 객관적으로 비판·비평하는 사회학자의 시선이 돋보인다. 그 결과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박이문의 면모를 세계인, 철학자, 시인, 종교인, 작가, 지식인으로 정리하고, 다차원 간의 관계를 씨줄과 날줄로 촘촘히 엮어낼 수 있었다. 지적 투명성, 감성적 열정, 도덕적 진실성에 대한 천착이 시와 수필, 철학논문 등의 다작을 거쳐 ‘둥지의 철학’으로 모이는 철학자의 일생이 입체적으로 그려졌다. 이 책은 박이문의 방대한 창조 작업을 최초로 정리한 지적 전기로서 학문사에서 의미를 가지는 동시에, 치열한 삶을 살아낸 우리 시대 어른의 한 초상으로 기록될 것이다.
모든 고통과 허무에도 삶을 긍정하는 것
그것이 인문人文이다
“인문학의 위기”는 이미 지겨운 수사가 된 지 오래다. 돈 되는 정도에 따라 대접받는 세상에서 돈 안 되는 인문학을 끝내 지켜내야 할 강한 근거를 대지 못한 채, 인문학을 알아야 마케팅을 잘할 수 있다는 값없는 칭송 정도가 인문학 부활의 근거가 되고 있다. 정수복은 이처럼 “모든 것이 시장의 논리에 의해 지배되는 시장전체주의 시대”에 박이문의 삶을 통해 “스러져가는 학문과 예술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세속적 물질주의에 맞서 정신적 가치를 지켜나가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불러일으”키기를 바라며(15쪽) 《삶을 긍정하는 허무주의》를 썼다.
삶의 무의미를 극심하게 느낀 사람일수록 삶의 의미를 진지하게 추구하게 된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며 소년 시절부터 공허와 고통을 깊이 느꼈던 박이문은 평생을 걸고 삶의 의미에 대한 ‘투명한 앎’을 갈구했다.
“옳고 보람 있는 삶을 살려면 그것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모든 것을 투명하게 알고 싶었어요.”(300쪽)
길고 깊은 물음 끝에서 그가 만난 것은 인간 존재가 허무를 피할 수 없다는 결론이었지만, 이 지점에서 철학자 박이문은 비로소 삶 전체를, 공허와 고통까지 끌어안고 긍정하게 되었다. “인생의 모든 광신을 야유하고 또 인생 자체를 무의미하게 보며, 모든 것을 믿지 않지만, 이러한 가운데서도 인간의 자유를 아끼고 가련하고 약한 인간 상호 간의 자비심을 장려한 휴머니스트이며 모럴리스트”라는 아나톨 프랑스에 대한 박이문의 비평은 그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듯하다. 만년의 박이문은 행복한 회의주의자이며 휴머니즘을 지닌 모럴리스트의 모습을 하고 있다.(208쪽)
삶의 수수께끼를 풀지 못했을지라도 그는 좌절하지 않고 이성을 긍정하며, 이성의 빈 곳을 창조적으로 메우는 감성으로 삶을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살기를 권한다.
“이성적 사유능력의 부재가 독립적, 즉 자율적인 비판적 사유의 부재를 의미한다면 현재 한국이 겪고 있는 혼란과 혼동, 그에 따른 진통의 근원적 원인은 한국인의 이성, 즉 독립적 사고 능력의 부재 내지는 결함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이성과 감성은 대립되는 게 아니라 조화시켜야 할 그 무엇입니다. 나의 지적 관심사와 문제는 지성과 감성, 진리와 의미, 철학적 투명성과 시적 감동, 객체와 주체, 그리고 앎과 삶 간의 피할 수 없는 긴장과 갈등을 풀고 조화시키는 것이었습니다.”(122쪽)
“나의 예술관이 생태주의와 결합하여 ‘예술-생태주의 세계관artico-ecological Weltanschaung’으로 확장되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예술-생태주의 세계관 안에서 인간은 그 자체가 하나의 예술작품인 세계를 구성하는 요소이지만 그와 동시에 하나의 예술작품인 세계를 창조하는 예술가이기도 합니다. 인간을 포함하고 있는 세계를 인간이 계속해서 창조 작업을 하고 있는 예술작품으로 보는 관점은 나의 독창적 관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35쪽)
“각자의 인생은 각자가 온 힘을 다해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예술작품이 되어야 합니다.”(328쪽)
그래서 인문학의 가치는 그것이 소비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트렌드라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삶의 궁극적 가치’가 없음에도 ‘삶에서의 궁극적 가치’는 있다는 깨달음(126쪽)이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결단으로 이어지는 바로 그곳에 인문학의 가치가 있다. 모든 고통에도 불구하고 의미를 찾아 살 수 있게 하는 힘, 허무주의자로서 삶을 긍정하게 하는 힘이 인문학의 가치다.
일생 영달을 좇지 않고 학문의 독자성을 지키며 예술의 고유한 가치를 옹호하는 삶을 살아온 철학자 박이문의 존재가 더없이 소중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는 무의미와 공허 속에서 자신이 찾은 삶의 의미를 말한다. 나직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다.
“앎이란 내가 평생 풀어야 할 숙제였다.
여든이 된 지금도 나는 삶의 의미를 묻는다.
생은 허무하나 인생은,
허무를 극복하고 살아가는 결단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나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만큼 삶을 긍정하는 허무주의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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