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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에서 만난 평화의 사도들
기자명 정현진 기자
입력 2022.10.13
가톨릭한반도평화포럼 참가자들의 이야기
10월 5-6일 미국 워싱턴D.C.에서 한반도 평화 관련 정치, 외교, 북한학 전문가들이 모이는 가톨릭한반도평화포럼이 있었습니다. 포럼에서 만난 참가자 5명의 평화 활동과 한반도 평화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현실과 이상 멀지만, 점진적으로 추구하다 보면 도달할 길”
데이비드 말로이 주교, 미국 주교회의 국제정의평화위원장
데이비드 말로이 주교는 국제정평위 정기 회의가 열린 중에 가톨릭한반도평화포럼에 적극 참여했다. 포럼 현장에서 만난 말로이 주교는 “미국과 한국은 오랜 파트너로 좋은 관계를 유지해 왔다. 한반도평화포럼에 참여하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국제정평위원장으로서 가장 중요한 이슈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그는 “우선 교회 공동체의 일치와 다양한 국가 분쟁 해결에 관심이 있으며, 최근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면서, “한반도 평화 문제 역시 정평위가 예의주시하고 있다. 한국을 한번도 방문하지 못했지만 이번에 참여해서 공헌할 수 있게 돼 무척 기쁘고 흥미롭다”고 말했다.
한국 주교단의 미국 주교단 만남과 미 국무부 방문에도 동행한 그는,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에서 찾아온 주교들을 통해 미 국무부 관계자와 의회에 한반도 문제에 대한 정책적 조언을 할 수 있고, 그것으로부터 구체적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고 기대했다.
가톨릭교회는 평화의 가치를 추구하고 있지만, 사실 북미 관계와 같은 현실 정치의 문제에는 상당한 괴리, 갈등이 장벽을 만들기도 한다. 말로이 주교는 이에 대해서, “모든 문제에서 이상과 현실의 차이는 있다. 하지만 그것을 (차이나 문제로 놔두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접근하면서 처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면서, “한반도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평화가 멀고 힘들어 보이지만, 꾸준히 점차 추구하다 보면 평화라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데이비드 말로이 주교. ⓒ정현진 기자
“사마리아인이라 외면하지 않은 것처럼, 북한이라고 외면한다면 복음 외면하는 것”
변진흥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운영연구위원장
북한학을 공부하고 남북종교교류 협력 등의 활동을 해 온 변진흥 위원장은 1982년 한국 교회에 ‘북한선교위원회’가 만들어질 당시부터 교회 내 북한 관련 활동에 참여해 온 증인이기도 하다.
이번 포럼에 참석한 변 위원장은, 이번 포럼이 한반도 평화의 주요 행위자의 하나인 미국과 교회 차원의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는 중요한 목표 의식으로 준비됐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는 2017년부터 매년 한반도 평화에 대한 포럼을 진행하면서 미국은 물론, 일본, 바티칸, 중국 관계자들을 초청하며 연계해 왔다. 그런 맥락에서 이번 미국행은 한 연구소만의 차원이 아니라 한국 교회 차원의 공식 창구, 활동 기반을 만들고 첫 번째로 미국 주교단과의 공고한 협력 체계를 만들기 위한 시도였다.
변 위원장은 안타깝게도 그동안 미국 교회에도 남북 관계, 북미 관계와 관련된 보수, 우익적 정보가 주로 전달됐고, 연구소는 이를 바로잡기 위해 대응해 왔다고 설명하면서, “그런 분위기들이 한반도 평화에 적극적인 국제정평위 관계자나 주교들에게 절박한 행동이 필요하다는 위기의식을 준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한국 주교회의가 나선다면 가장 먼저 할 일은 미국 주교회의와 직접 연결하고 미국 주교들의 생각이 바뀌도록 제대로 정보를 주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 주교들이 어떤 협력 요청을 할지 생각을 공유하는 것이었다.
변 위원장은 이런 과제가 다행히도 잘 이뤄졌다면서, “한국 교회는 1982년 200주년 당시 교황 방한을 준비하면서 처음 북한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기 시작했고, 북한선교위원회를 만들었다. 이후 올해 40년 만에 하나의 성과를 이뤘다”고 평가했다.
1988년 북한선교위원회가 ‘통일사목연구소’로 바뀌면서 북한 선교라는 개념을 대체하기 위해 만든 것이 ‘민족의 화해와 일치’이고, 지금까지 한국 교회가 한반도 평화와 종전을 위해 지향해 온 가치다.
변진흥 위원장은 “그러나 민족의 화해와 일치라는 개념을 복음적인 차원으로만 생각하면 상대방인 북한은 동등한 주체가 아니라 수단이 되고, 시혜의 대상이 될 수 있다”면서, “민족화해의 주체는 남과 북이고, 지금까지 그런 개념이 약했기 때문에 신학적인 차원에서 남과 북을 같이 주체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이번 포럼을 통해 그간의 노력과 앞으로의 과제를 담아내는 그릇이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변 위원장은 이제 착한 사마리아인의 시간이 되어야 한다면서, “북한을 제대로 알고, 동등한 주체, 이웃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사마리아인이 되어야 한다. 주교, 사제, 평신도, 신학자, 전문가들이 서로 뒷받침하고 각자의 그릇을 빚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기 때문에 배제하고 외면하는 것이 복음에 위배됐던 것처럼, 북한이기 때문에, 북한 사람이기 때문에 외면하고 배제한다면 우리는 그들의 이웃이 될 수 없다”면서, “우리 신자들 모두 이 일을 복음적으로 받아들이는 각성이 필요하고 그런 각성을 연대의 틀 안에서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기회가 명분이 돼서 실질적인 시대적 요청, 하느님의 과제로 받아들이길 바란다”고 말했다.
(맨 왼쪽) 포럼 참가자들과 토론하고 있는 변진흥 위원장. ⓒ정현진 기자
지금 한반도 평화는 한국, 일본, 북한, 중국.... 동북아 전체의 문제
이대훈 피스모모 평화교육연구소장
2019년 2월 27-28일까지 베트남 하노이에서는 북미정상회담이 열렸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당사자로 나선 이 회담은 2018년 싱가포르 정상회담에 이어진 것으로 보다 진전된 합의를 기대했지만 28일 결렬됐다. 이후 지금까지 북미 간 어떤 만남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대훈 소장은 2019년 하노이 실패 이후로 상황은 근본적으로 바뀌었으며, 군사적 충돌, 위기 상승 국면에서 주요한 문제로 작용하는 것은 한미일 군사력의 대중국 대북한 대러시아 압박이라면서, 특히 중미 대립이 동북아를 무시무시한 위기로 몰고 가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소장은 한반도 평화 문제는 동북아 평화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현재 상황으로 보면 남북 갈등을 넘어선 지역적 분쟁 위기가 급상승하고 있기 때문에, 동북아 전체에서 21세기 들어 가장 무거운 무력 대결 구도가 펼쳐진다는 점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한국, 미국, 일본의 중국 압박과 관련해, 그는 “한미일 군비증강과 '을지프리덤실드'라는 한미연합훈련 재개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몇 배 더 상응하는 전쟁 연습이다. 이렇게 군사적으로 부강한 세 나라의 합동군사연습 상대는 북한만이 아니”라면서, “이런 사실을 한국과 일본만 경시하면서 북한의 위협만 말하는 것은 상당한 실수 또는 왜곡”이라고 지적했다.
또 “이런 상황으로 볼 때, 남북과 북미 사이의 긴장만을 중심으로 평화나 위험 문제를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미국, 일본이 중국과 러시아, 북한을 어떻게 상대하는지 거시적으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대훈 소장은 “수사적으로 ‘한반도 평화’로 국한하면 국제적으로는 ‘도발자 북한’이라는 공식을 피할 수 없다. 특히 윤석열 정부나 바이든 정부에서는 한미 군비증강 밖에는 답을 못 찾게 된다”면서, “하루바삐 한반도 평화 문제에서 동북아 전체의 군사적 갈등 예방, 동북아에서의 협력과 평화로 우리 평화 의제를 넓힐 필요가 있다. 문제는 북한이 아니”라고 말했다.
미국 유권자들의 한반도 평화 위한 행진
조현숙 위민 크로스 디엠지 조직위원, 코리아 피스나우 국제 코디네이터
이번 포럼에서는 “크로싱”(Crossings)이라는 다큐멘터리가 상영됐다. 영화는 국제 여성 평화운동가 그룹이 한반도를 분열시킨 70년 전쟁의 종식을 요구하며 비무장 지대를 가로지르는 여정을 담았다.
이 크로싱을 조직한 단체는 2014년 설립된 ‘위민 크로스 디엠지’로 이들은 2015년 남북을 가로지른 비무장지대를 평화적으로 행진한 바 있다. 이날 상영회에 참석한 조현숙 씨는 현재 미국에 사는 시민권자로 우먼 크로스 디엠지와 미국 전역의 풀뿌리 네트워크인 코리아 피스나우에서 활동하고 있다.
조현숙 씨는 우선 코리아 피스나우 활동에 대해서 현재 미국 전역 200여 명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반은 미국인이라고 소개하고, “미국 시민권자, 유권자로서 한반도 평화협정으로 전쟁을 끝내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미국 의회를 대상으로 한반도 문제에 대해 교육하고 그들이 움직이도록 유권자 로비를 펼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 씨는 한반도 정전에 대한 미국의 책임을 미국 시민들도 공감하면서 시작된 이 활동은 한반도 통일에 관심이 있어 활동하는 한국인들, 그리고 반핵과 반전 활동을 하던 미국인들이 결합돼 이뤄졌으며, 학생과 젊은이들이 많이 동참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9년부터 본격화된 이 활동의 가장 큰 성과는 미국 의회 최초로 한반도 평화와 종전을 위한 관련 법안 2건이 발의되고 이 법안을 지지하는 의원들이 1-2명에서 50여 명으로 늘어났다는 사실이다.
조현숙 씨는 “미국 의회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이 법안을 바탕으로 미국의 유권자와 의원들을 교육하고, 또 각 의원에게 연락하고 이들과 온라인-오프라인으로 만나 공동 지지를 설득하고 있다”면서, “이 모든 동력은 미국 내 한인 유권자들이다. 자신들의 지역 의원들을 움직여서 법안 발의와 공동지지를 이끌어냈는데, 그동안 정치 참여도가 낮았던 한인들이 정치 참여 면에서 성장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조 씨는, “여성, 종교의 힘이 상당히 크다. 가부장과 남성 권력 아래에서 벌어진 폭력과 전쟁을 여성들의 평화로 회복시키려는 노력, 그리고 평화를 가르치고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치는 종교가 또한 많은 힘이 된다”면서, “한국 역시 아직 전시작전권이 없는 현실에서 주권을 회복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 미국에서의 활동에 참여할 수 없지만, 함께 관심을 두고, 한국 사회 안에서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함께 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영화 '크로싱' 상영이 끝난 뒤 참가자들과. 맨 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 보라색 옷을 입은 이가 전수미 변호사, 가운데 두건을 쓴 이가 조현숙 씨다. ⓒ정현진 기자
탈북 여성은 온몸으로 분단의 비극 드러내는 존재
전수미 변호사
지난 10년간 변호사로서 탈북민을 지원해 온 전수미 변호사는 이번 포럼에 북한 인권과 평화의 관련성 문제를 함께 이야기하기 위해 참석했다.
지난 2019년 탈북 여성에 대한 성폭력 사건을 피해 당사자가 직접 드러내면서, 전 변호사는 이들을 지원하고 있다.
전 변호사는 “분단의 가장 큰 피해자는 탈북 여성”이라면서, “북한 사회의 유교 문화, 탈북 과정에서 여성을 수단이나 착취 대상으로 대하는 현실, 남한 사회에서도 줄곧 잠재적 배신자나 이중간첩 취급을 당하면서 겪는 군, 검, 경, 국정원 조직으로부터의 정신적, 물리적 폭력이 오롯이 탈북 여성들에게 쏟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상당히 보수적인 성문화 영향을 받으면서 살아온 탈북 여성들은 탈북 과정과 남한 정착 과정에서 자신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고발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에 갇혀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정착 실패와 생존에 대한 두려움이나 공포는 치유나 해결이 아니라 약점이 된다. 북한에 대한 인식은 가장 낮은 약자인 탈북 여성들에게 그대로 전가되고, 그런 이들을 공격하는 것이 마치 북한을 공격한 것과 같이 인식된다. 또 같은 북한 사람에게도 이들은 온전한 여성으로 대우받지 못한다.
전수미 변호사는 2019년부터 시작된 탈북 여성에 대한 성범죄 사건은 아직 재판 중이며, 결과에 따라 더 많은 이가 용기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면서, “탈북 여성들이 자신의 피해 사실을 밝히기란 남한 여성의 약 1000배 정도의 용기가 더 필요하다. 자신들이 믿고 살아온 가치를 깨고 자기의 전부를 내놓아야 하는 일”이라면서, “우리는 늘 북한 인권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이런 일들은 결국 우리가 말하는 북한 주민의 인권이 얼마나 정치적인 언어인지 보여 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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