希修
< 나도 한국인이지만 이해하기 힘든 한국인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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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영어 때문에 생업에 제한을 받는 것이 안타까워 내가 줄 수 있는 모든 도움을 언제건 어떤 일이건 만사 제치고 무조건적으로 주곤 했던 지인이 있었다. 어차피 미국에서 살 거면 영어공부는 필수이니 공부해서 질문거리만 만들어 놓으면 영어과외는 내가 무료로 무제한으로 해 주겠노라며 교재까지 선물했는데도, 실제로 공부해서 내게 질문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일은 내게 맡겨 놓고 자신은 그 시간에 영어공부를 하는 게 아니라 취미생활과 사교모임을 하러 다녔다. 그 세월이 길어지니 뭔가 허무해서 이제는 돕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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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약간의 치유력을 갖추었다는 이유만으로 스스로를 '나' 아닌 '깨달은 이'라고 늘 3인칭으로 부르면서 자신이 쓴 기공책을 내게 영역하라고 (용어도 개념도 영어권에 존재하지도 않는 내용인지라 아마도 1,000시간은 족히 걸릴 듯 생각되는 분량), 부탁의 말투도 아니고 내 의향을 묻는 말투도 아니고 마치 이미 결정된 사실을 통보하듯 하면서 "세상을 구할 이런 일에 무료봉사를 하면 오히려 너에게 영광이고 네가 내게 감사해야 하는 일인 거지!"라는 식으로 나오는 어떤 기공 마스터의 가스라이팅 실력에는 정말이지 까딱하면 넘어갈 뻔도 했었다. 그 기공 마스터를 위한 통역도 지인의 부탁으로 했던 거였는데, 아무리 선의에서 하는 봉사도 아무에게나 하면 안 되겠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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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태권도 1단인 사람은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최소한 태권도에 대해서만큼은 태권도 3단 보유자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입장이 못 되건만, 단지 자신의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태권도 3단에게 태권도에 대해! 잔소리를 하고 게다가 자신의 심부름꾼으로까지 부리려 드는 사람들을 보면서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어메이징한지 늘 감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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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경우들 모두 사적으로는 '선량하고 따뜻하고 정많은' 분들이었지만, "어리석은 사람을 가까이 않는 것이 최고의 부적"이라는 부처님의 Sn 2:4 가르침을 절감할 뿐이었다. (부처님은 제사, 부적, 진언 등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셨지만 당시의 사람들이 저런 신비주의에 워낙 익숙해 있었던 탓에 저렇게 표현하신 것일 뿐, 그 의도는 부적 같은 거 사용하지 말라는 얘기이니 오해 마시기를.) 자신을 보호하기에 급급한 '에고' 때문에 세상이 이렇게 각박한 것이라는 류의 믿음을 갖고 있는 분들이 많은데, 내가 A, B, C 같은 이들을 위해 봉사하는 일에 내 시간과 에너지를 모두 바친다면 과연 세상이 조금이라도 더 좋아지려는지 그들에게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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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영어는 그냥 기본적인 의사소통 정도 하는 수준이지만 이조차도 안 되는 교포들이 대다수인지라, 안면만 트고 나면 영어로 인한 자신의 곤란을 나를 이용해 해결하려고 달려드는 한국분들이 워낙 많아서, 미국에 살면서는 한국인 혐오 나아가 인간 혐오가 생겼다. 아무리 측은지심으로 시작해도 상대가 한국인인 경우엔 예외 없이 A, B, C처럼 되고 때로는 봉사할수록 오히려 점점 채무자 취급을 받기도 하니, 한국인을 마주치면 마음은 반가운데 머리에서는 사이렌이 마구 울린다. 그런데, 같은 보시라도 탐진치가 적은 대상에게 하는 보시일수록 공덕이 크다는 부처님의 말씀이 요즘 자주 떠오른다. 결과나 공덕이 어떻고 상대로부터 고맙다는 인사를 받고 안 받고 그런 것들과 완전히 무관하게! 탐진치가 적은 대상에게 하는 보시/봉사일수록 그 과정 자체에서 내 스스로 즐겁고 뿌듯하고 행복하다. 상대가 최소한 한국인만 아니면 아무 경계/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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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페이' 비난하다가 막상 자신은 자원봉사자들로 사업장을 운영하겠다는 어떤 분의 소식을 들으니, 그 내막을 자세히는 모르지만 '결국 갑질의 뿌리이기도 한 한국인들의 이 착취성은 먹고살기 힘들어 생겨난 부작용도 아니었구나' 싶어 한국인에 대한 나의 편견이 강해지려고 한다. (물론, 내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나 자신의 상카라다.) 유교에서는 염치라는 것을 강조하건만, 대체 한국인들의 무의식을 지배하는 철학은 무엇인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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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글이고 경험이라서 주변의 한국 사람들과 관계에서의 저의 경험에 비추어 생각해보고, 통역으로 20년 정도 일한 아내에게도 물어보았습니다.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글이고 경험이라서 주변의 한국 사람들과 관계에서의 저의 경험에 비추어 생각해보고, 통역으로 20년 정도 일한 아내에게도 물어보았습니다.
- 아내에게 이제까지 관계해온 한국사람들과에서 희수님이 말씀하신 것과 비슷한 사람의 경험릏 난 적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런 경험은 없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통역직으로의 통역에는 어떤 기관으로부터의 보수가 있어서 도와주는 관계는 아닌데, 그런 기관을 통하지 않고 그저 아는 사람이라도 통역으로 도와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병원에 같이 가주는 경우가 가장 흔하고. 또 운전을 못하는 사람들 차를 정기적으로 태워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대부분 고마워하며, 어떤 식으로도 그 고마움을 갚으려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차를 태워주는 사람의 경우는 정기적으로 김치를 만들어 준다든지 그렇게 됩니다.
- 저의 경우에는 주로 대학관계의 일로 조언을 받으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일반적으로 한국사람들이 아닌 학생들이고, 한국인의 경우는 소수이지만 있습니다. 대학 교수로서의 저의 입장은 컨설테이션에 응해주는 것은 가르치는 과목의 학생에게는 당연한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도 무보상으로 해주는 문화환경입니다. 도움을 받은 사람들 중에 감사의 표시를 선물로 하는 것은 금지되어있는데, 선물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경우 방가운 것이 아니라 곤란한 느낌이 보통입니다. 양측이 서로 마음 만으로 고맙게 느끼면 된다는 이해였습니다. 그러니 역시 희수님이 말하는 사람같은 사람은 만나본적이 없습니다.
- 그래서 생각나는 것은 희수님이 말하는 종류의 사람들은 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짐작컨데 그들은 일반적으로 <고마와 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카테고리의 사람들이라기 보다, 어떤 분야의 <마스터>같이 일종의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런 경우라면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능력에 호감을 느끼고 배우려고 가까이 가게되지요. 그리고 기꺼이 자신의 시간을 내어 마스터를 도우려고도 하고요. 특히 마스터가 뭔가 필요한데 내가 도울수 있다면 도우려고 하겠지요. 그런데 이런 마스터들은 이제까지 자기를 <스승>으로 모시려고 가까히 하려는 하고, 자기 시간을 기꺼이 제공하겠다는 <제자>들을 많이 보아왔으므로 그런 행동들에 익숙해 있는 경우가 흔하겠지요. 이런 관계라면 <제자>가 돕는 것에는 고마움을 느끼거나, 표시하지 않는 경우가 흔할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의 인격에 달린 것이겠지만요.
- 그래서 결론은 저나 아내나 이제까지 도와준 사람들은 <스승>같은 사람이거나, 그 사람에게서 배울 것이나 특별히 바라는 것은 전혀 없는 관계와의 사람들이어서 희수님의 경우와 달았던 것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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