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경험(감각과 감정)
“레아는 눈매가 부드럽고, 라헬은 몸매가 아름답고 용모도 예뻤다. 야곱은 라헬을 더 사랑하였다.” (창세기 29:17-18)
아름다운 사람
눈을 둘 곳이 없다
바라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아니 바라볼 수도 없고
그저 눈이
부시기만 한 사람
-나태주, 「아름다운 사람」
야곱은 아름다운 사람 라헬을 얻기 위해 주인 행세를 하는 외삼촌 라반의 권세에 눌려 14년간 노동을 했다. 야곱이 라헬의 인정을 얻어내기 위해서는 라헬의 父의 허락이 떨어져야 하는데, 그 허락을 얻어내는 데 14년이 걸렸다. 아름다움이 순일(純一)한 감각과 감정을 통해 완성되는 데 14년이 필요했다. 사람은 한 가지 일에 집중할 때 잡념 없이 몰입의 극에 도달하며 저절로 온몸으로 활동하게 된다.
감각이 객관적 요소라면 감정은 주관적 요소다. 감각이 대상을 식별 관계로 정립하는 작용이라면, 감정은 그 작용에 대한 의식적 반응이다. 인간의 일차적 욕구가 감각기관을 활성화하여 대상과 원초적 관계를 맺게 하지만 대상에 대한 ‘아름다움’이라는 판정은 예술적으로 승화된 감정이며, 사랑은 감정의 성화(聖化)이고 영화(靈化)이다.
고양된 감정이 표현될 때 참생명의 자아가 살아난다. 사랑은 라헬의 몸매, 용모, 눈빛, 말 등이 발현하는 아름다움과 그 아름다움에 의해 촉발된 감정이 상감(相感)하고 상응(相應)하는 장소이다. 사랑하고 질투하고, 기뻐하고 슬퍼하는 감정이 사람을 생동하게 만들며, 참자아란 이런 감정에 진실하고 솔직한 인격이다.
야곱이 라헬에게서 얻는 에로스의 경험은 순수경험이다. 순수경험은 예술의 경험에서 생기는 경험과 같은 것이다. 예컨대, 색(色)을 보고 음(音)을 듣는 순간, 하조대의 벼랑에서 절벽에 부딪는 높은 파도의 출렁임을 보고 듣는 것, 연주하거나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의 숙련된 행위, 동물의 본능적 동작, 이런 것들은 순수경험에 속한다. 순수경험이란 “조금도 사려와 분별을 섞지 않은, 참된 경험 그대로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개념을 통해 주관과 객관이 분리되기 이전의 상태에서 대상과 자아가, 사물과 내가 즉각적으로 합일을 이룬다. “자기의 의식 상태를 대뜸 경험했을 때에는 主도 客도 없고, 지식과 대상이 전혀 합일되어 있다”(기타로 니시다西田幾太朗, 『善의 硏究』)
우주의 순수경험(전(前)반성적 감정)이 빛의 파동이고 그 형체가 별이라면
바다의 순수경험은 파도이고 그 형체는 물고기이며
사람의 순수경험은 존재에 대한 설렘(술렁임)이며 그 형체는 예술작품이다.
일본 철학자 기타로 니시다(Kitaro Nishida, 西田幾太朗)는 순수경험에 대하여 몇 가지로 정리한다,
순수경험은 수동이 아니라 능동이고 생명의 활동이다.
개인이 있고 경험이 있는 것이 아니라, 경험이 있고 개인이 있다.
순수경험은 “색을 보고, 음을 듣는 찰나”에 성립하는 찰나의 경험이다. 따라서 직접적이며 구체적인 찰나성은 현재성, 현전성, 현실성(충만성)을 모두 포함한다.
순수경험은 하나의 ‘개체’로서 유일의 특색을 가진다.
직접 경험은 정신 현상도 물체 현상도 아닌 양자 모두 동일의 의식 현상이다.
순수경험 또는 직접 경험은 생명력의 원천이다.
+그림은 여성의 우아한 아름다움을 주로 그린 19세기 프랑스 낭만주의 화가 쥘 조제프 르페브르(Jules Joseph Lefebvre), Rachel, 1888 작품이다. 당시 여성의 미관이 개입되었겠지만 르페브르는 라헬의 아름다운 몸매와 예쁜 용모를 그렸다. 성경은 야곱이 레아보다 아름다운 몸매와 예쁜 용모를 지닌 “라헬을 더 사랑하였다”고 감정의 쏠림을 솔직하게 기록한다. 성경 어디에도 인간 감정의 억압은 없다. 너무 솔직히 표현해서 과도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