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5/30

유식[唯識] 유식사상 (唯識思想) 유식설(唯識說) ゆいしき

 유식3 [唯識]

[불교] 우주의 온갖 사물은 오직 인식하고 식별하는 마음의 작용에 존재함을 이르는 말. 법상종(法相宗)의 근본 교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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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식사상 (唯識思想) 초조본 유가사지론 권17 불교 개념 마음 외에는 어느 것도 존재할 수 없으며, 마음에 의하여 모든 것이 창조된다는 불교교리. 정의 마음 외에는 어느 것도 존재할 수 없으며, 마음에 의하여 모든 것이 창조된다는 불교교리. 접기/펼치기 내용 선과 악도 마음이 발생하는 것이며 악을 명하고 선을 실행하는 것도 마음이 하면 범부의 무지를 정화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것도 마음이 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유식사상은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 의식(意識) 등 육식에 의하여 업력이 조성된다고 하는 원시불교와 소승불교에도 있다. 그런데 소승불교는 심·의·식(心意識)으로 육식(六識)을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심은 모든 업력을 보존하였다가 다른 과보를 받게 하는 마음이며, 의는 모든 것을 생각하는 마음이며, 식은 모든 것을 인식하는 마음을 뜻한다. 그러나 이들 심, 의, 식은 그 체성(體性:근본 성품)이 일체(一體)라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대승불교에서는 심의식을 팔식(八識)으로 나누고 팔식의 심체(心體:마음을 이루는 근본 성질)는 각각 다르다고 하였다. 신라의 고승인 원측법사의 해심밀경소(解深密經疏)에 의하면 대승불교를 주창한 용수보살은 육식 외에 말나식(末那識:제7식)과 아뢰야식(阿賴耶識:제8식)의 사상을 이미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 뒤 유식사상을 체계화한 무착(無着)은 아뢰야식(阿賴耶識) 등을 팔식으로 확정하여 인간의 심체를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유식사상의 역사와 사상은 다음과 같다. 대승불교를 완성하였다고 할 수 있는 무착논사(無着論師)가 4세기경에 정신세계를 좀더 진리롭게 설명하고자 유식사상을 성립시켰다. 무착은 ≪해심밀경 解深密經≫과 ≪십지경 十地經≫ 등 대승경전의 유심사상(唯心思想:마음은 모든 것의 근본이며 유일의 존재라는 사상)을 종합하여, 모든 것은 마음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고 마음에 의하여 현상계가 창조되고 실현된다는 유식사상을 창립한 것이다. 역사적인 인물인 무착보살이 유식사상을 전수하게 된 유래는 다음과 같다. 무착이 신봉한 미륵보살(彌勒菩薩)은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 분별유가론(分別瑜伽論), 대승장엄경론(大乘莊嚴經論), 변중변론(辨中邊論), 금강반야바라밀경론(金剛般若波羅密經論) 등을 설하였다. 무착은 이들 논전을 편집하여 간행하였으며 후세에 유식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읽어야 한다는 뜻에서 오대부론(五大部論)이라고 하였다. 무착보살은 ≪해심밀경≫과 ≪십지경≫과 ≪아비달마경 阿毘達磨經≫의 경전과 미륵이 설한 오대부론 등의 유식사상을 다시 체계화하였다. 그가 저술한 서적들은 ≪섭대승론 攝大乘論≫과 ≪현양성교론 顯揚聖敎論≫과 ≪아비달마집론 阿毘達磨集論≫ 등 많은 저술이 있으며 이들 저술은 유식학연구에 중요하다. 이와 같이 여러 대승경전과 미륵과 무착의 논전에 나타난 유식사상을 초기유식학(初期唯識學)이라고 한다. 초기유식학을 다시 크게 발전시킨 학자는 무착의 친동생인 세친논사(世親論師)이다. 세친은 처음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라는 소승불교의 종파에 귀의하여 ≪아비달마구사론 阿毘達磨俱舍論≫이라는 유명한 소승논전을 저술하여 소승불교를 포교하다가 친형인 무착보살의 권유에 의하여 대승불교에 귀의하게 되었다. 세친은 곧 미륵보살과 무착보살의 저술을 연구하고 유식학을 체계화하는 데 공이 컸다. 그의 유식학을 조직유식학(組織唯識學)이라고 칭한다. 조직유식학은 팔식의 심체와 심체의 작용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이들 정신계와 물질계의 인연관계도 체계적으로 설명한 것을 말한다. 이러한 세친이 저술한 ≪유식삼십론 唯識三十論≫과 ≪대승백법명문롬 大乘百法明門論≫에 잘 나타나고 있다. ≪유식삼십론≫은 모든 유식학을 삼십송(三十頌)에 집약하여 체계화한 것을 말한다. 그리고 또 ≪대승백법명문론≫은 모든 유식사상을 백 가지 단어에 포함시켜 체계화한 논전을 말한다. 이와 같은 ≪유식삼십론≫과 ≪대승백법명문론≫은 모든 유식학을 잘 정돈하여 축소하였기 때문에 몇 사람의 학자만이 그 뜻을 알 수 있었고 그 밖에 일반인은 알 수 없었다. 그리하여 안혜논사(安慧論師)와 호법논사(護法論師) 등 28명의 학자들이 해설서를 간행하였으며, 그 가운데 열 사람의 해설서가 가장 훌륭하였다. 그 열사람은 난타(難陀), 친승(親勝), 화변(火辨), 덕혜(德惠), 안혜(安慧), 호법(護法), 정월(淨月), 최승자(最勝子), 승우(勝友), 지월(智月) 등을 말하며 이들은 각각 열 권씩 저술하였다. 이들은 유식학의 대학자라는 뜻에서 후세에 십대논사(十大論師)라고 부르게 되었다. 십대논사들이 유식학을 크게 발전시켰다고 해서 이 시대를 유식발전기(唯識發展期)라고 한다. 인도의 유식학은 한국과 중국으로 전래되어 더욱 발전하게 되었으며 그 과정은 다음과 같다. 중국에는 보리유지(菩提流支)가 전한 지론종(地論宗)과 진제삼장(眞諦三臟)이 전한 섭론종(攝論宗)의 유식학이 있다. 그리고 중국의 현장법사(玄裝法師:600∼664)가 인도에 유학하여 나란타사(那爛陀寺)에서 계현논사(戒賢論師)의 지도를 받으며 유식학을 전공하였다. 이곳에서 유식학에 관한 서적들을 수집하여 귀국한 후 이들은 한문으로 번역하였다. 이 가운데 십대논사가 저술한 논전들을 열 권으로 축소하여 번역하고 이름을 ≪성유식론 成唯識論≫이라고 하였다. 이 ≪성유식론≫과 함께 ≪해심밀경≫과 ≪유가사지론≫과 ≪섭대승론≫ 등이 한역되면서 중국불교를 발전시키는데 크게 기여하였으며, 법상종(法相宗)이라는 종파가 성립하게 되었다. 법상종의 종조는 사실상 현장법사이지만 유식학이 제일의 사상이라는 교판사상을 논리화하여 종파를 조직한 규기법사(窺基法師:632∼683)가 제1대조가 되었다. 이와 같이 중국에는 유식학을 이념으로 한 지론종과 섭론종, 그리고 법상종이 생겼다. 이에 대하여 한국의 유식학은 원광법사(圓光法師)가 섭론종을 수학하였고, 다음으로 신라의 원측법사(圓測法師:613∼696)가 종합적으로 연구하였다. 원측법사는 15세에 중국에 유학하여 처음에는 섭론종의 유식학을 전공하였고 그 밖에 대승과 소승의 교학을 연구하고 어학도 뛰어나 6개 국어를 잘 하였다고 한다. 원측법사는 이어서 현장법사가 도입한 법상종의 유식학을 연구하여 성유식론과 유가사지론 등에 대한 연구서도 규기법사보다도 먼저 발표하였다. 이와 같이 원측법사는 규기법사를 비롯한 중국계의 학자들과는 달리 모든 유식학을 종합하여 일승(一乘)적인 사상을 건립하였다. 이러한 학문의 특성 때문에 중국에 유학한 학승은 물론 중국승려들까지도 원측법사로 부터 사사를 받았다. 원측은 서명사에 오래 주석하였기 때문에 원측의 호를 서명(西明)이라 하였으며, 서명을 추종한 학자들은 서명학파 또는 신라의 유식종이라고 칭하였다. 원측법사의 직계제자로는 도증(道證)이 있으며 도증은 원측의 학문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성유식론요집 成唯識論要集≫을 저술하여 중국계 학자들의 비판을 타파하였다. 신라의 신방(神防)법사는 현장법사의 번역사업에 참여하였고 승장(勝莊)법사와 자선(慈善)법사도 매우 훌륭한 유식학자였다. 국내에서 유식학을 전공한 학자로는 제일 먼저 원효(元曉)대사를 들 수 있다. 원효대사는 ≪해심밀경 解深密經≫과 ≪성유식론≫과 ≪유가사지론≫ 등 많은 유식학의 경전과 논전을 연구하여 주소(註疏)를 썼다. 현재 남아있는 저술 가운데 가장 먼저 저술된 것으로 보이는 ≪이장의 二障義≫를 비롯하여 ≪유가사지론소≫와 ≪성유식론소≫ 등이 있다. 원효는 ≪기신론소≫와 ≪금강삼매경론≫ 등 현존의 저술에 유식학을 가장 많이 인용하고 있다. 원효는 진제(眞諦)가 전한 아마라식(阿摩羅識)설과 현장(玄奘)이 전한 아뢰야식(阿賴耶識)설을 함께 인용한 것으로 봐서 섭론종과 법상종의 유식학을 모두 통달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수경(順璟)법사의 인명학(因明學)은 중국에서도 유명할 만큼 뛰어났고, 경흥(璟興)과 둔윤(遁倫)과 태현(太賢) 등의 유식학도 중국과 일본에까지 크게 영향을 끼쳤다. 현재 남아 있는 원측법사의 ≪해심밀경소 解深密經疏≫와 둔윤법사의 ≪유가론기 瑜伽論記≫ 등은 국제적으로 유명한 저술이다. 이들 저술에 의하여 신라의 유식학이 뛰어났음을 알 수 있고 현재도 일본과 중국의 불교학자들은 이들 저술을 연구하여 논문을 발표하고 있다. 그리고 일본유식학은 신라의 고승인 지통(智通)과 지달(智達)과 지봉(智鳳) 등 법사들이 일본에 건너가 전달한 것이다. 이와 같이 한국 유식학은 동양에서 가장 뛰어난 업적을 남겼으며, 저술을 통계하여 보더라도 일본은 물론 중국보다도 더 많았다. 이러한 학풍은 고려시대까지 이어졌으며 조선시대에 이르러 쇠퇴하였다. 경전에 “마음이 청정하면 중생도 청정하고 마음이 고뇌하면 중생도 고뇌한다.”라는 말이 있다. 그리고 “마음이 생기면 여러 법이 생기고 마음이 멸하면 여러 법이 멸한다.”라고 한 말들은 모두 유식사상과 통한다. 그런데 보다 대승적인 유심사상이면서 유식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은 화엄경의 유심사상이다. 화엄경에 의하면 “마음은 미술가와 공예사와 같이 각종의 오온(五蘊)을 만들어 낸다.”라는 말이 있다. 오온은 몸과 마음의 체성과 작용이 집합하여 이루어진 인격체를 뜻한다. 이와 같은 인격체는 마음에 의하여 만들어진다는 것이며, 그러므로 마음은 모든 것의 근본이 된다[心爲法本]는 것이다. 이와 같이 유식사상은 ≪해심밀경≫과 ≪유가사지론≫ 등의 만법유식(萬法唯識)사상과 ≪화엄경≫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사상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성유식론에 의하면 유(唯)는 마음 밖에 다른 경계가 있다는 것을 차단하는 것이고 식(識)은 오직 심체뿐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경지를 유식무경(唯識無境)이라고 한다. 유식무경은 오직 마음만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며, 다른 것은 마음에 의지하여 존재하여 마음 밖에 어떤 것도 따로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마음의 소유자로서 모든 것은 오관을 통하여 마음에 나타나고, 마음에 나타나지 않도록 하기 때문에 이러한 정신계를 유식(唯識)이라고 한다. 옛부터 유식의 뜻을 설명할 때 마음내용을 네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여 왔다. 이를 사분설(四分說)이라고 하며 그 사분은 상분(相分), 견분(見分), 자증분(自證分), 증자증분( 自證分) 등을 말한다. 이러한 사분은 마음이 어떤 대상을 인식할 때 식 자체가 대상을 변화하여 인식한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모든 식은 주관과 객관을 변화시켜서 인식하게 된다. 이와 같이 마음 위에 나타난 모든 모습을 경상(境相)이라 하며 이를 상분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들 모습을 상대하여 인식하는 것을 견분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들 상분과 견분은 자증분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정신시계를 종합적으로 관찰하여 보면 모든 물질계와 정신계가 마음에 의하여 인식되고, 나아가서 물질계도 마음을 떠나서 따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며 이로써 유식사상이 성립된다고 이해할 수 있다. 유식학에서는 마음의 체성을 유식실성이라고 한다. 유식의 실성은 진실하고 변화가 없는 진여성(眞如性)을 뜻한다. 마음의 실성은 영원히 변하지 않기 때문에 시작도 없고 종말도 없으면서 마음속을 빛나게 하는 지혜를 발생한다. 이러한 지혜와 깨달음을 유지하는 것을 불성(佛性)이라 하며 불성에서 발생하는 지혜를 사지(四智)라고 한다. 사지는 성소작지(成所作智)와 묘관찰지(妙觀察智), 평등성지(平等性智), 대원경지(大圓鏡智) 등 네 가지 지혜를 말한다. ① 성소작지는 모든 중생을 관찰하며 근기에 따라 이익을 주는 지혜이다. 이 지혜는 본심에서 발생하는 원력(願力)에 따라 이타적인 자비의 사업을 성취하는 것이다. ② 묘관찰지는 모든 물질계와 정신계의 자체에서 나타내는 자상(自相)과 서로 의존하고 상부상조하며 공동의 모습을 이루고 있는 공상(共相)을 무애자재하게 관찰하는 지혜이다. 이 지혜가 있는 수행인은 공덕과 보배를 대중들에게 베풀며 큰 진리를 가르쳐서 모든 의심을 없애주고 큰 이익과 즐거움을 베풀어주게 된다. ③ 평등성지는 일체의 법과 자타의 유정들을 모두 평등하게 이익을 주는 대자대비의 지혜이다. ④ 대원경지는 마치 크고 둥근 거울에 모든 사물의 영상이 비치듯이 모든 진리를 환하게 관찰하는 지혜이다. 이 지혜는 모든 번뇌가 정화되어 발생하는 지혜로서 관찰하기 어려운 미세한 진리의 모습을 능히 관찰한다. 그러므로 이 지혜는 이타적인 지혜[菩提]로서 매우 미세하여 알기 어렵다. 그리고 모습[境相]에 우매하지 않고, 체성과 형상이 모두 청정하며 원만한 덕성을 지니게 되며 이러한 공덕을 중생과 보살들에게 베풀어주는 지혜이다. 이상과 같이 마음의 실성은 네 가지 지혜를 발생하며 자비를 실현하게 된다. 그리고 실성은 사열반(四涅槃)을 실현한다. 사열반은 유여의열반(有餘依涅槃)과 무여의열반(無餘依涅槃)과 무주처열반(無住處涅槃)과 자성청정열반(自性淸淨涅槃)을 말한다. 첫째, 유여의열반은 마음의 번뇌가 거의 정화되었으나 아직도 미세한 번뇌가 남아 있지만 고통이 없는 열반을 실현한다. 둘째, 무여의열반은 번뇌가 완전하게 정화되어 열반이 구현된 것을 말한다. 셋째, 무주처열반은 어떠한 거주처에서든지 항상 안정과 즐거움을 실현하는 열반을 뜻한다. 넷째, 자성청정열반은 본래 자성이 청정하고 진실한 진리를 간단없이 보존하고 있는 열반성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유식의 실성은 사지와 사열반을 실현하는 것이며 진여의 본성이기도 한다. 이 경지는 아공(我空)과 법공(法空)을 실현하는 진리의 세계이다. 즉 아공은 아집이 없는 무아(無我)를 실현하는 것이고, 법공은 모든 현상계가 인연의 집합체로서 그 인연의 법체가 본래 공한 것임을 증득한 경지이다. 이는 편견의 아집(我執)과 법집(法執)이 없는 절대평등한 일진법계(一眞法系)를 실현하는 경지를 뜻한다. 이와 같이 유식실성은 진여와 법계 또는 실제(實際), 불성(佛性), 공(空), 승의(勝義), 법성(法性) 등 여러 가지로 표현하며 이는 하나의 진리를 이 그 이치에 따라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진리는 마음 외에 따로 있을 수 없으며 마음의 실성에 의하여 실현되는 것을 유식이라고 한다. 유식학은 인간의 마음을 심성과 심상으로 나누어 설명하는 것이 보통이다. 심성은 모습이 없어 이름을 칭하기가 어렵지만 방편으로 진여 또는 불성 및 공이라고 칭한다. 그러나 이 진여를 바탕으로 하여 마음의 모습을 이루고 있는 것을 심상(心相)이라고 한다. 심성은 진제(眞諦)로서 평등하여 차별이 없지만 심상은 속제(俗諦)로서 차별이 있으며 차별의 마음을 나누어 설명하게 된다. 그러므로 유식학에서는 심상의 체성을 팔종으로 나누어 설명하는 것이며 이것이 팔식(八識)설이다. 이는 심의식(心意識)을 분류한 것으로서 심(心)은 아뢰야식(阿賴耶識)이라 하고 의(意)는 말나식(末那識)이라 하며 식(識)은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 의식(意識) 등 6종의 심체로 나누어 설명하며 이들 심체들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아뢰아식 아뢰야식은 모든 업력을 함장(含藏)하고 보존한다는 뜻으로 장식(藏識)이라고 한다. 그리고 아뢰야식은 생명을 보존하고 유지시키는 마음이라는 뜻에서 아다나식(阿陀那識)이라는 별명을 갖는다. 그리고 선업과 악업의 힘에 따라 과보를 바꾸어 받아 출생하는 마음이라는 뜻에서 이숙식(異熟識)이라고도 한다. 이와 같이 아뢰야식은 다양한 성능을 갖고 있으며 이 식이 작용하는 모습을 자상(自相), 과상(果相), 인상(因相) 등 삼상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이들 삼상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자상에는 능장(能藏), 소장(所藏), 집장(執藏)의 뜻이 있다. 능장은 눈, 귀, 코, 혀, 몸, 뜻 등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조성된 업력을 능동적으로 보존한다는 뜻이고, 소장은 능동적으로 훈습하고 있는 업력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여 보존하는 것을 말하며, 집장은 말나식에 의하여 집착되어진 것을 뜻한다. 말나식에 의하여 집착되는 동안을 윤회의 기간으로 하며 그 집착이 없어지면 윤회에서 해탈하게 된다. 왜냐하면 집착하는 것은 영원한 것이 아니고 수행에 의하여 정화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과상은 아뢰야식이 업력에 의하여 태생(胎生)과 난생(卵生)과 화생(化生) 등의 출생으로 과보를 받는 것을 뜻한다. 과보는 개인이 수용하는 사회적인 과보가 있고 여타 생명체와 함께 수용하는 사회적인 과보가 있다. 예를 들면 자연계는 공동으로 수용하는 공동의 과보라고 할 수 있다. 인상은 아뢰야식 내에 보존된 업인을 뜻한다. 중생각자가 조성한 업력은 아뢰야식에 보존되었다가 인연을 만나면 정신과 육체의 행동을 발생하는 것이며 자신의 몸과 자신이 사는 세계까지도 창조하는 원인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아뢰야식을 종자식(種子識)이라고도 칭한다. 이와 같은 아뢰야식의 삼상(三相)을 현재의 생활에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인간의 행동은 아뢰야식 내의 업인[因]에 의하여 발생한 결과이며 동시에 그 행동은 업인이 되어서 아뢰야식 안에 보존된다. 그리고 보존된 업인은 미래에 출행할 때 개인업[不共業]이 있고 여타의 생명체와 함께 수용하는 공동의 업[共業]이 있다. 이러한 업력이 개인과 공동의 과보를 받게 하며 모든 세계를 창조하는 원인이 된다는 뜻에서 아뢰야연기(阿賴耶緣起)라고 칭한다. (2) 말나식(末那識) 말나는 의(意)의 뜻이 있으며 의는 사량(思量)의 뜻이다. 사(思)는 인위적으로 선과 악을 조작(造作)한다는 뜻이며 량(量)은 인식한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말나식은 아뢰야식을 상대하여 무아(無我)의 진리를 망각하고 아상(我相)을 조작하여 집착하는 인식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말나식을 사량식이라고도 하며 사량식은 아치(我痴), 아견(我見), 아만(我慢), 아애(我愛) 등의 번뇌를 지속적으로 야기하게 된다. 아치는 무아에 대한 망각을 뜻하고, 아견은 자아의 실체가 있다고 집착하는 망견을 뜻하며, 아만은 자신만이 제일이라는 생각을 뜻하고, 아애는 자신을 집착하고 애착하는 번뇌를 말한다. 이들 네 가지 번뇌는 모든 번뇌의 근원이 되며 여타의 식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근본번뇌라 하고 말나식을 번뇌의 발생처로서 윤회의 근본이라고 말한다. (3) 의식(意識) 의식은 과거를 회상하고 현재를 생각하며 미래를 예측하는 마음을 뜻한다. 현재는 눈, 귀, 혀, 몸을 통하여 외부의 색깔, 소리, 냄새, 맛, 촉감 등을 인식할 때 선과 악을 결정하며 모든 생각을 결정하여 정신작용을 나타내고 몸의 행동도 결정하는 마음이다. 의식은 생각이 깊고 넓으며 모든 것을 반연하며 생각한다는 뜻에서 광연의식(廣緣意識)이라고 한다. 그러기 때문에 의식은 별명이 많으며 그 별명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마음에 떠오르는 모든 생각을 분별하고 결정짓는 의식이라는 뜻에서 분별의식(分別意識)이라 한다.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 등 오식(五識)과 함께 외부의 색깔, 소리, 냄새, 맛, 촉감 등의 물질계를 분별한다는 뜻에서 오구의식(五具意識)이라 한다. 산란하고 고통스러우며 가치를 판단하지 못하고 어지러운 생각을 발생하며 정신과 육체를 불안하게 하는 것이므로 이를 산란의식(散亂意識)이라 한다. 잠잘 때 꿈 속에서 온갖 환상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는 과거세에 경험하고 체험했던 것이 아뢰야식에 보존되었다가 의식을 통하여 발생한다고 해서 몽중의식(夢中意識)이라 한다. 잡념과 번뇌망상이 : 마음이 항상 안정되고 지혜로우며 모든 것을 진리롭게 판단하는 의식이라는 뜻에서 정중의식(定中意識)이라고 한다. 정직한 의식생활은 정중의식의 생활이며 정중의식에는 마음이 억압과 고통이 없으며 진리로운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지속하게 된다. (4) 오식(五識) 오식은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 등 다섯 가지 마음을 뜻한다. 안식은 외부의 색깔을 대상[色境]으로 하여 인식하는 마음이고, 이식은 소리를 대상[聲境]으로 하여 인식하며, 비식은 냄새를 대상[香境]으로 하여 인식하고, 설식은 맛을 대상[味境]으로 하여 인식하며, 신식은 접촉한 것을 대상으로 인식하는 마음을 말한다. 이와 같이 오식은 외부의 물질계를 주로 접촉하고 인식하는 마음으로서 물질의 업인을 조성하는 정신을 뜻한다. 이들 오식은 각각 선악과 고락을 인식하지만 분별력은 뚜렷하지 못하고 의식의 도움을 받아 인식하게 된다. 이들 팔식설은 법상종(法相宗)의 학설이고 섭론종(攝論宗)에서는 청정심에 해당하는 아마라식(阿摩羅識)을 더하여 구식설(九識說)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법상종은 아마라식은 중생들이 본래 지니고 있는 진여심(眞如心)에 해당하는 정분(淨分)에 불과하기 때문에 따로 정할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우리 나라 원측법사는 팔식설에 동조하였고 원효대사는 아마라식을 가끔 인용하였다. 마음은 본래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과 함께 하는 것이지만 그러나 한편으로는 몸에 의지하여 활동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몸이 없는 마음이 있을 수 없고 마음이 없는 육체가 있을 수 없다고 한다. 이러한 마음의 의지처를 좀더 자세하게 말하면 안식은 안근(眼根)에 의지하여 색깔을 인식한다. 그리고 이식은 이근(耳根)에 의지하고, 비식은 비근(鼻根)에 의지하며, 설식은 설근(舌根)에 의지하고, 신식은 신근(身根)에 의지한다. 안근, 이근, 비근, 설근, 신근은 육체의 구조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두 육체인 것이다. 근(根)은 의지처의 뜻이며 인간의 모습을 장엄한다는 뜻도 있으나 마음은 몸에 의지하고 몸은 마음에 의지하며 인간의 삶을 유지시키는 과보인 것이다. 만약 아뢰야식이 몸에서 벗어난다면 곧 죽음이라고 한다. 다음 의식의 의지처를 의근(意根)이라고 하며 이 의근은 말나식(末那識)을 뜻한다. 의근이라는 명칭은 원시불교와 소승불교에서도 사용하여 왔으나 그때는 전념(前念)은 후념(後念)의 의지처가 되기 때문에 전념을 의근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소승의 의근설은 의식불명이 되었을 때의 의근의 뜻이 없어지게 된다. 그리하여 대승불교에서는 졸도하거나 의식불명의 경우에도 의식이 단절하지 않고 항상 작용을 유지하는 말나식을 의근으로 정하고, 의식의 의지처라는 사상을 확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뢰야식도 그 체성이 단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말나식과 서로 의지하며 부단하게 유지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의식이 간혹 불명하고 작용이 단절된다고 하더라도 말나식인 의근에 의지하여 있다가 다시 의식이 소행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의근의 역할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다음 팔식이 서로 의지하면서도 공동으로 의지하는 공의(共依)와 단독으로 의지하는 불공의(不共依)의 뜻이 있다. 불공의는 안근은 오직 안근에만 의지하고 내지 신식은 신근에만 의지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안식 내지 신식 등 오식은 의식에게 함께 의지하게 되며 외부의 사물을 인식할 때 의식으로부터 분별의 도움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의식을 오식에게 분별의 도움을 주는 의지처라고 해서 분별의(分別依)라고 칭한다. 말나식은 의식과 오식 등 육식(六識)에게 부정과 청정의 영향을 끼치는 데 많은 역할을 한다고 해서 염정의(染淨依)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말나식이 번뇌를 야기하고 있는 한 육식도 번뇌가 있게 되고 말나식이 청정하면 육식도 청정해지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염정의라고 한다. 아뢰야식은 앞에서 말한 모든 식의 근본적인 의지처가 되는 것이라고 해서 근본의(根本依)라고 한다. 그러므로 아뢰야식을 모든 식의 뿌리가 된다고 해서 근본식(根本識)이라고 하며 다른 칠식[七轉識]은 아뢰야식에 의거하여 가지처럼 발생하여 활동하는 마음이라고 해서 지말식(枝末識)이라고 한다. 이상과 같이 모든 마음은 서로 의지하고 또 몸과도 의지하면서 물질계를 반연하게 된다. 그 반연처는 모든 것을 대상으로 하지만 그 내용을 구분하면 인연(因緣), 등무간연(等無間緣), 소연연(所緣緣), 증상연(增上緣) 등으로 나눌 수 있으며 이들 사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인연은 아뢰야식 내의 업인을 반연하는 것을 말하고, ② 등무간연은 한 마음이 간단없이 앞의 생각과 뒷생각이 인연이 되는 것을 말하며, ③ 소연연은 마음이 번연하여 인식하는 대상을 뜻하며, ④ 증상연은 마음과 관계되는 모든 것은 뜻하며 동시에 마음의 활동을 도와주는 모든 것을 뜻한다. 이상과 같은 사연(四緣)은 마음과 관계되는 인연관계를 뜻하며 마음의 활동은 잘 도와주는 인연관계이며 마음을 중심한 유식의 뜻을 더해주고 있다. 심체는 위에서 설명한 팔식의 체성을 뜻한다. 이들 팔식설은 법상종(法相宗)에서 말하는 심체설이고 이에 대하여 섭론종(攝論宗)은 아마라식(阿摩羅識)을 더하여 구식설(九識說)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법상종은 아마라식은 마음의 정분(淨分)인 청정한 진여성에 해당한 것이므로 따로 정할 필요가 없으며 중생들의 마음인 팔식만을 설명하면 된다고 주장하였다. 팔식의 체성에서는 51종의 작용이 발생한다고 한다. 심체와 심작용은 불가분이한 세 가지 관계가 있다. 첫째 심작용은 항상 심체에 의거하여 야기하는 것이며, 둘째 심작용은 심체와 더불어 상응(相應)하며, 셋째 심작용은 심체에 소속되는 관계가 있다. 이와 같은 세 가지 뜻이 있기 때문에 심체를 왕(王)에 비유하여 심왕(心王)이라 칭하고 심작용은 왕에 소속된 신하(臣下)에 비유하여 심왕소유법(心王所有法)이라고 한다. 심체는 왕처럼 결정권이 있으며 심소는 심체의 결정에 의하여 선과 악을 발생하게 된다. 이와 같이 발생하는 심작용의 수는 헤아릴 수 없으나 그 가운데 긴요한 것만을 간추려서 51종으로 정하고 있다. 51종을 내용별로 크게 나누면 변행심소(遍行心所), 별경심소(別境心所), 선심소(善心所), 번뇌심소(煩惱心所), 수번뇌심소(隨煩惱心所), 부정심소(不定心所) 등으로 나누어진다. 이들을 육위심소(六位心所)라고 하며 이들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변행심소는 모든 식(識)에 두루 나타나는 마음의 작용이라는 뜻이며 여기에는 다섯 가지 작용이 있다. 다섯 가지는 모든 인식대상을 접촉[觸]하고, 접촉할 때 경각심[作意]을 야기하고, 고와 락의 감수성[受]을 야기하며, 마음속의 모습을 생각[想]하며, 선과 악을 조작하는 생각[思]을 발생하는 것을 말한다. ② 별경심소는 마음의 내용이 각각 다른 경계를 나타내는 작용을 뜻하며 여기에도 다섯가지가 있다. 그 다섯 가지는 희망을 갖고자 하는 것[欲], 결정적이고 수승한 이해력을 발생하는 것[勝解], 마음에 확실하게 기록해 두는 생각[念], 마음을 통일하고 안정을 유지하는 선정[定], 모든 것을 지혜롭게 관찰하는 것[智慧] 등을 말한다. ③ 선심소는 착한마음에서 작용하는 것을 뜻하며 11종의 작용이 있다. 11종의 선작용은 진리를 확신하는 것[信], 양심에 어긋난 일을 했을 때 곧 마음속으로 반성하는 것[慚], 사회와 대중들에게 잘못을 했을 때 곧 참회하는 것[愧], 비진리적 탐욕을 내지 않는 것[無貪], 성내지 않는 것[無瞋], 정신과 물질 등 모든 것을 지혜롭게 아는 것[無痴], 선행에 근면하는 것[勤], 마음을 가볍고 편안하게 하는 것[輕安], 진리의 세계를 건설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놀지 않는 것[不放逸], 마음을 평등하고 정직하게 하는 것[行捨], 모든 생명체를 보호하고 해롭게 하지 않는 것[不害] 등이다. 이러한 11종의 선심소는 금생에 행복을 가져다 주고 내생에는 극락세계에 인도하는 업력을 많이 조성하는 것이라고 해서 반드시 실천해야 하는 것이 유식학의 수행사상이다. ④ 번뇌심소는 번뇌는 마음을 번거롭게 하고 요란하게 하는 번요(煩擾)의 뜻이며 마음을 고뇌케 하는 고뇌의 뜻도 있다. 번뇌는 여러 작용을 나타내므로 별명이 많다. 첫째로 지혜로운 마음[四智]를 방해하고 덮는다는 뜻에서 부장(覆障)이라고 하며, 둘째 번뇌는 안정된 마음을 파괴하고 구속하며 결박한다고 해서 결박(結縛)이라 하고, 셋째 번뇌는 죄를 짓고 윤회하게 하며 삼계(三界)의 악도에 출생하게 하고 설사 선도에 출생하더라도 곧 그 생명체를 구속하는 작용을 한다고 해서 계속(繫屬)이라고도 한다. 이러한 번뇌는 말나식과 의식이 중심이 되어 발생하게 되며 여기에는 뿌리가 되는 번뇌를 근본번뇌(根本煩惱)라 하고, 근본번뇌에 의하여 발생하는 번뇌를 지말번뇌(枝末煩惱)라고 한다. 근본번뇌는 여섯 가지가 있는데 탐(貪), 진(瞋), 치(痴), 만(慢), 의(疑), 악견(惡見) 등을 말한다. 탐은 정신과 물질의 모습이 인연의 집합인 것을 망각하고 자신과 사물에 대해서 탐욕을 갖는 것, 진은 성내는 것을 뜻하고, 치는 정신과 물질에 대한 무지를 뜻하며, 만은 자신만을 높다고 생각하는 것이며, 의는 진리를 의심하고 자신과 남을 의심하는 것이며, 악견은 인과법과 윤회의 법 그리고 무상의 도리와 인연법을 모르는 망견을 뜻한다. ⑤ 수번뇌심소는 위에서 말한 근본번뇌에서 파생된 지말적인 번뇌를 말한다. 이 수번뇌심소는 20종의 번뇌가 있으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분을 참지 못하고 성내는 것[忿], 원한을 품고 한탄하는 것[恨], 자신의 죄를 숨기는 것[覆], 한탄하고 고뇌하는 것[惱], 자신의 명리만을 생각하고 남의 영광을 질투하는 것[疾嫉], 재물과 진리를 아끼는 것[慳], 영리와 명예를 얻기 위하여 속이는 것[誑], 아첨하는 것[諂], 남을 해롭게 하는 것[害], 교만하는 것[憍], 자신의 부덕을 생각하지 않고 어질고 착한 것을 가볍게 여기며 잘못을 반성하지 않는 것[無慚]이 있다. 그리고 세상의 질서를 지키지 않고 세간의 잘못을 범하고 참회하지 않은 것[無愧], 마음이 흔들리는 것[掉拳], 마음이 침체되는 것[惛沈], 진리와 덕성과 인과 등을 믿지 않은 것[不信], 선법을 실천하지 않고 게으름을 피는 것[懈], 선행을 실천하지 않고 시간을 낭비하는 것[放逸], 모든 것을 분명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것[失念], 마음이 산란한 것[散亂], 모든 것을 바로 알지 못하는 것[不正知] 등이다. 이와 같은 20종의 수번뇌는 근면하게 수행하면 곧 정화될 수 있는 번뇌들이며 6종의 근본번뇌는 보살의 수행을 성불할 때까지 부단히 하여야 정화될 수 있는 것이다. ⑥ 부정심소는 일정하지 않은 심작용을 말하며 이 부정심소는 네 가지가 있다. 혐오의 나쁜 생각을 갖고 회상하는 것[悔], 마음을 어둡게 하고 몸을 무겁게 하는 것[眠], 마음이 언어의 모습과 같은 영상을 따라 추종하고 찾아 헤매는 것[尋], 물질과 정신을 대상으로 보다 섬세하게 관찰하고 살피면서도 안정되지 못하는 것[伺]을 말한다. 이상과 같이 유식학에서는 마음의 작용을 모두 51종으로 해석하고 있다. 51종의 작용은 팔식이 모두 야기하는 것이 아니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뢰야식은 다섯 가지 변행심소만을 야기하고 그 성질은 무부무기성(無覆無記性)이다. 무부무기성은 아뢰야식 자체에는 번뇌가 없기 때문에 스스로 지혜와 불성을 장애하는 성질이 아닌 것이며, 선과 악의 성질이 아닌 무기(無記)의 성질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아뢰야식은 선업과 악업을 보존할 자격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말나식은 변행심소 5종과 별경심소 가운데 혜(慧)심소와 수번뇌심소 가운데 혼침, 도거, 불신, 해태, 빙일, 실념, 산란, 부정지 등 8종의 심소와 아치, 아견, 아마, 아애 등 4종의 심소 등 18종의 심작용만을 야기한다. 이 말나식의 성직은 유부무기성(有覆無記性)이라고 하는바 그것은 말나식의 번뇌가 항상 지혜를 장애하는 번뇌(所知障)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아(無我)의 진리를 망각한 아집(我執)과 진리의 법칙을 망각한 법집(法執)을 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불성에 발생하는 지혜를 부장(覆障)하는 번뇌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무리 부장의 번뇌를 야기한다고 하더라도 그 번뇌가 미세하기 때문에 악업을 조성할 만큼 강한 작용은 아니라는 뜻에서 무기성이라고 한다. 의식은 51종의 심작용을 모두 야기하며 그 성질은 선성과 악성 그리고 무기성 등 삼성(三性)의 작용을 항상 야기한다고 해서 선악무기성(善惡無記性)이라고 한다. 오식은 51종의 심작용 가운데서 변행과 별경 등 34종의 작용만을 야기하며 그 성질은 선행과 악행 그리고 무기행 등 삼성의 행동을 야기한다. 이상으로 심체와 심작용의 내용을 요약하여 살펴보았다. 모든 현상계는 이들 심체와 심작용에 의거하여 조성되며 인간의 정신생활도 이들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 그리고 물질보다도 정신계가 우선하며 심작용보다도 심체가 우선하다는 뜻에서 유식이라는 말이 있게 되며 유식사상에 의거한 현상계의 정법순서를 다음과 같이 정하고 있다. 첫째 심체[心體], 둘째 심작용[心所], 셋째 물질[色], 넷째 정신도 아니고 물질도 아닌 것[色心不相應行], 다섯째 불변의 진리[無爲] 등 오법(五法)의 순으로 정하고 있다. 이는 마음이 모든 것보다 우선하고 물질은 마음과 관계를 맺고 하나의 진리를 이루고는 있지만 인식의 대상이므로 오근(五根)과 오경(五境) 그리고 법처소섭색(法處所攝色) 등 11종을 합쳐서 세번째에 배정하였다. 부상응행법(不相應行法)은 24종으로서 무상(無常)한 것과 윤회의 생명체 등 정신과 물질의 틈새에 형성된 법칙이므로 네번째에 배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무위법(無爲法)은 6종으로서 정신과 물질의 본바탕인 진여성을 뜻하며, 진여성은 시작도 없고 종말도 없으며 생과 멸이 없는 진리이기 때문에 만법의 진리로서 다섯번째에 배정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전사위법(前四位法)은 인연으로 형성된 변천의 현상계[有爲法]을 뜻하고 제오위의 무위법은 본래 청정하며 불변의 진리를 뜻한다. 다시 말하면 인연법으로 이루어진 현상계를 의타기성(依他起性)이라 하고 의타기성의 본성은 변화하지 않고 영원한 진리의 체성을 구족하고 있다는 뜻에서 원성실성(圓成實性)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의타기성과 원성실성은 동일하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은 지리로서 함께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범부들은 이를 망각하고 무명(無明)과 탐진치(貪瞋痴) 등 번뇌를 야기하여 악업을 짓게 되면 이를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이라고 한다. 변계소집성은 번뇌를 뜻하며 번뇌는 실체가 없기 때문에 수행하면 없어질 수 있다. 유식사상은 팔식(八識)을 정화하여 지혜를 얻게 하는 데 있다. 이를 전식득지(轉識得智)라고 한다. 지혜의 증득은 안이비설신 등 오식이 정화되면 성소작지(成所作智)를 증득하고, 의식이 정화되면 묘관찰지(妙觀察智)를 증득하며, 말나식이 정화되면 평등성지(平等性智)를 증득하고, 아뢰야식이 정화되면 대원경지(大圓鏡智)를 증득하게 된다. 이와 같이 팔식이 정화되면 사지를 증득하게 된다. 이는 자신만을 고집한 아집(我執)의 마음을 비우는 아공관(我空觀)의 경지이다. 그리고 사물과 현상계의 모든 것은 인연의 집합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망각하고 집착하여 탐욕을 발생하는 법집(法執)의 마음을 비우는 법공관(法空觀)의 경지를 말한다. 이와 같은 아공과 법공은 곧 말나식과 의식의 아집과 법집의 번뇌를 정화하는 것이고 그 밖의 모든 번뇌도 함께 정화하게 된다. 번뇌는 마음으로부터 발생하는 것이며 마음을 정화하면 번뇌도 정화된다. 번뇌가 정화된다는 것은 번뇌 자체가 실체가 아니며, 가상의 생각에서 발생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실체가 없는 번뇌라 할지라도 마음이 자아의 모습[我相]과 삼라만상의 모습[法相]을 확고하게 집착하고 있는 한 쉽게 정화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유식학에서는 먼저 자각을 야기하고 이타적인 보살의 수행을 하여야만 그 번뇌들이 정화될 수 있다. 수행은 육바라밀(六婆羅密)을 수행하는 것으로서 육바라밀은 남에게 보시를 하고[布施], 몸과 마음을 단정하게 하고 대중을 교화하는 계율을 지키고[持戒], 고난을 참고 진리를 탐구하며[忍辱], 진리를 깨닫고 중생을 구제하는 일에 용맹정진하고[精進], 번뇌를 없애고 마음을 안정하여[禪定], 번뇌를 퇴치하여 지혜를 밝게 하는 것[知慧] 등을 말한다. 이와 같은 수행은 반드시 마음이 번뇌가 정화되어 보리와 열반을 증득할 수 있다는 뜻에서 바라밀이라고 한다. 이러한 수행위(修行位)는 청정한 마음으로 청정한 업력을 쌓는 것으로 이를 인위(因位)라고 칭하기도 한다. 이 인위는 자량위(資糧位)·통달위(通達位)·수습위(修習位)·구경위(究竟位) 등 오위의 절차를 밟으며 수행하게 된다. 이들 오위를 수행하는 기간은 삼겁을 수행해야 한다. 삼겁 동안 중생을 교화하고 고통을 없애주는 보살행을 수행하며 그 수행으로 말미암아 마음이 정화되고 번뇌가 없어지며 정화된 마음에서는 지혜가 발생하고 고통이 없는 열반의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 그리하여 유식실성인 마음의 진여(眞如)가 차별이 없는 평등의 진리를 구현하게 된다. 이와 같이 유식사상은 팔식의 상태를 설명하고 팔식을 정화하여 유식의 실성인 진여심을 발생케 하며 복덕과 지혜를 구족한 인격자를 양성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접기/펼치기 참고문헌 「유식사상의 성립사」(오형근, 『승가』 2, 중앙승가대학, 1984) 「신라유식사상의 특성과 그 역사적전개」(오형근, 『한국철학』 上, 1977) 「유식교학에서의 수행과 증과)」(오형근, 『불교학보』 12, 불교문화연구소, 1975) 「원측의 유식사상」(원의범, 『한국불교사상사』 제2편, 원광대학교 출판부, 1974) 「중국불교의 유식학설」(김동화, 『불교학보』 7, 불교문화연구소, 1970) 「대승론부상의 심식설」(김동화, 『불교학보』 6, 불교문화연구소,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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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식(불교) 나무위키
최근 수정 시각: 2022-10-25 13:59:05

분류 불교
唯識

1. 개요
2. 식(識)이란?
3. 법상종의 유식
4. 같이보기

1. 개요[편집]
산스크리트어 vijñapti-mātra[1]의 번역으로, 삼라만상은 심식 밖에 실존하지 않으며, 우주의 종극적 실재는 마음뿐으로서 외계(外界)의 사물은 마음의 변현(變現)이라는 뜻. 한 마디로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일체유심조를 말한다. 모든 것은 마음 먹기에 달려 있다는 말.

우리가 정보를 받아들일 때 눈, 코, 귀, 입, 피부 등을 통해 시각, 촉각, 후각, 미각 등을 느끼고 생각하게 된다. 이런 정보들이 ‘마음’이라는 필터로 인해 왜곡될 수 있다는 것이 '유식' 사상의 핵심 주장이다.

대표적인 예로 길 가던 나그네 앞에 뱀(처럼 생긴 노끈)이 갑툭튀하여, 그것을 본 나그네는 깜짝 놀랐고 또 매우 무서웠는데, 다시 보니 뱀이 아니라 노끈이었다는 얘기가 있다. 이처럼 무서운 감정은 '잘못된 정보'가 들어왔기 때문이며, 마찬가지로 부정적 감정들의 대부분은 왜곡, 확대, 재생산되어 우리들을 괴롭힌다. 이러한 '왜곡된 정보'가 무지로서 괴로움의 원인이 되며, 단지 이것 때문에 무서운 감정이 들었다는 것을 '아는 것'이,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이다. 이렇게 내가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내 마음을 바꾸기도 하고, 또한 내 마음이 내가 보고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바꾸기도 하므로, '모든 것은 마음의 문제' 라고 말하였다.
2. 식(識)이란?[편집]
식(識)은 산스크리트어 비야나(Vijñāna)를 번역한 것으로 요별(了別) 또는 비사나(毘闍那)라고도 번역되는데, 말하자면 대상을 인식하는 정신의 주체(主體), 6경[2]을 맞아서 인식하는 마음의 작용를 말한다. 초기 불교에서는 마음 작용을 안식 · 이식 · 비식 · 설식 · 신식 · 의식의 6식(識)으로 분류했다.

불교에서는 심왕(心王)과 심소(心所)라고 해서 의식작용의 본체. 객체에 대해 그 일반적인 상을 인식하는 정신 작용의 본체를 심왕이라고 부르고 그 심왕에 종속되어 있는 것이 심소이며, 오직 심왕에게만 '식'이 존재하고 심소는 심왕의 식에 따라서 식을 받아 정신작용을 일으키는 객체에 불과하다고 본다.

심왕에게 존재하는 식을 여섯 가지로 나눈 것이 보고(眼識)ㆍ듣고(耳識)ㆍ맡고(鼻識)ㆍ맛보고(舌識)ㆍ닿고(身識)ㆍ아는(意識) 인간의 기초적인 감각에 대한 6식이며, 유식종에서는 여기에 제6식(의식)을 세분화해서 말나식(末那識)[3]과 아뢰야식(阿賴耶識)[4]을 더하고 8식으로 설명한다. 여기에 또 암마라식(菴摩羅識, amala-vijnana)[5]과 건률다야식(乾栗陀耶識, hrdaya-vijnana)을 더해서 10식이 나왔다. 에기에 무량식(無量識)을 더해서 11식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말나식은 제6식(의식)과 아뢰야식의 매개가 되는 식인데 의(意)라고 번역되며, 끊임없이 인식하고 분별하고 생각하고 헤아리고 비교하는 마음 작용으로, 아치(我癡) · 아견(我見) · 아만(我慢) · 아애(我愛)의 네 번뇌와 항상 함께 일어나는 자의식이다. 아뢰야식은 말하자면 무의식으로, 인간이 과거에 경험한 인식, 행위, 학습 등을 모두 마음의 심층부에 가라앉혀 저장해두고 있는 마음의 잠재력을 말한다. ‘장식(藏識)’이라 한다. 과거에 경험한 인식 · 행위 · 학습 등을 저장하고 있는 마음 작용으로, 심층에 잠재하고 있다. 이러한 과거의 경험들이 아뢰야식에 잠복 상태로 저장되어 있는 잠재력을 종자(種子) 또는 습기(習氣)라고 한다. 유식삼십론송에서는 보고(眼識)ㆍ듣고(耳識)ㆍ맡고(鼻識)ㆍ맛보고(舌識)ㆍ닿고(身識) 하는 5식이 모두 아뢰야식에 의해서 조건에 맞춰 일어나며, 어느 때는 함께 일어나고 어느 때는 함께 일어나지 않는데[6] 파도(전5식)가 물(아뢰야식)에 의지해 일어나는 것과 같다고 설명하고 있다. 안식 · 이식 · 비식 · 설식 · 신식, 즉 전5식은 조건에 따라 심층에 잠재하고 있는 아뢰야식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바깥 대상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자동적으로 그 대상을 덧칠해서[7] 자기 나름대로 지각한다. 즉, 그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 보고 피부에 닿고 하는 다섯 가지 식은 모두 아뢰야식이라는 색안경을 통해 바깥 대상을 지각한 결과라는 것이다.

말나식은 보고 듣고 맡고 맛보고 닿고 하는 식처럼 바깥의 대상을 인식하는 게 아니라 아뢰야식을 대상으로 해서 일어나고, 생각하고, 헤아리고, 비교하는 것을 본질로 삼는다. 자신에 대해 어리석은 아치, 자신을 독립적인 존재라고 착각하는 아견, 자신을 높이고 남을 낮추는 아만, 자신만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아애와 항상 함께 일어나기 때문에 ‘에고’의 본바탕이 되며, 아뢰야식에 의지해서 일어나기 때문에 과거의 경험들과 함께한다. 따라서 말나식의 내용은 ‘에고’를 바탕으로 한 상상 · 허상이고, 이것은 바깥 대상과 관계없이 그냥 내면에서 떠오르는 번뇌이고 분별이고 자의식이다. 그래서 수행자는 말나식이 일어나면 곧바로 알아차리고 잠깐 ‘틈’을 가져야 한다. 이 틈이야말로 말나식을 약화시키는 유일한 길이다. 예를 들어 남에게 화를 내려거나 부정적인 말을 하려고 할 때, 그것을 즉각 알아차리고 잠깐만 틈을 가지면 그 충동이 누그러진다. 이 틈을 계속 반복해서 가지면, 에고가 점점 약화되고 감소되어간다. 이게 유식학의 지향점이다.

다시 말하면, 상상과 허상을 따라가지 않고, 자신의 선입견이나 감정으로 대상을 채색하지 않는 게 마음의 소음을 줄이는 길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말나식이 일어날 때, 즉각 그것을 알아차리고 한발짝 물러서서 잠깐 관조하는게 말나식을 약화시키는 길이다. 말나식은 ‘에고’의 본바탕이고, 이 에고가 괴로움의 뿌리이다. 에고는 자신을 드러내고 내세우려는 마음의 소음이다.

열반에 이르는 데 장애가 되는 가장 근본적인 번뇌인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도 에고를 바탕으로 해서 일어나고, 괴로움의 원인인 갈애도 에고에서 일어난다. 그래서 말나식이 일어나자마자 자동으로 반응하지 않고, 그것을 자각해서 누그러뜨리는 게 수행의 시작이다. 모든 번뇌를 완전히 끊어 열반을 성취한 아라한, 모든 마음 작용이 소멸된 멸진정, 모든 번뇌를 떠난 출세간도에서는 말나식이 일어나지 않는다.

아뢰야식은 너무나 미세하고 마음의 심층에 잠복된 상태에서 움직이기 때문에 감지할 수 없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으며, 끊임없이 흐르는 것이 급류 같다. 그런데 잠복 상태에 있는 아뢰야식의 종자가 어떤 자극으로 의식에 떠오르면 탐욕 · 분노 · 고락 · 선악 등으로 나타난다. 비유하면 무슨 씨앗인지 잘 구별되지 않는 좁쌀 같은 갖가지 씨앗이 바구니에 가득 담겨 있는데, 그 하나를 집어내어 물을 주면 싹이 돋아나 그 본색을 드러내는 것과 같다.

그래서 수행자는 분노가 일어날 때 즉각 알아차려서 그것에 휘둘리지 않고, 따라가지 않으며, 한 걸음 물러서서 그냥 지켜보기만 해야 한다. 즉 분노의 종자에 물을 주지 않음으로써 그 종자의 잠재력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이런 통찰을 반복하면 그 종자는 말라 죽게 되는데, 그 온갖 종자가 다 말라 죽은 경지에 이른 성자가 아라한이다.[8]
3. 법상종의 유식[편집]
법상종에서는 이 유심의 이론을 성립시키면서 만유의 현상에 속한 심식(心識)에 대한 4분(分) 이론을 세웠다. 이는 우리가 인식하는 과정에 있어 그 의식 작용을 4단으로 나눈 것이다.

1. 상분(相分). 우리는 바로 객관의 사물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고, 일단 마음에 그 그림자를 그려서 인식한다. 그 그림자를 상분이라 한다.
2. 견분(見分). 마음이 발동할 적에 상분이 변현하는 동시에 그것을 인식하는 작용이 생긴다.
3. 자증분(自證分). 견분은 거울에 상이 비치는 것과 같으므로, 이에 통각적(統覺的)[9]인 증지(證知)[10]를 주는 작용이 필요하다. 이 작용을 자증분이라 한다. 또, 자증분은 상분ㆍ견분의 근거가 된다.
4. 증자증분(證自證分). 자증분에 대한 증지(분명하게 아는) 작용. 자증분과 증자증분은 서로서로 증지하는 것이므로 제5분(分)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우리들이 인식하는 대경(對境)으로 삼는 '객관'이라는 것은 실은 인식 작용으로부터 독립하여 존재하는[11] 실경(實境)이 아니고, 견분(見分) 즉 눈에 보이는 대로 마음 속에 비치는 상분(相分), 곧 본질을 연(緣)으로 삼아 생긴 영상에 불과하며, 그 본질이라는 것도 제8 아뢰야식에 들어있는 종자로부터 생겨난 것이므로 마음으로 만든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일체의 사물은 모두 심식으로 변현한 것인즉 삼계란 유식 즉 마음으로 인지하는 과정만이 종극의 실재요, 그밖에 따로 다른 법이 없다는 것이다.

또 『대승기신론』이나 화엄종 등에서는 만유의 본체인 진여심(眞如心)과 관련해서 이론을 세웠다. 만유는 모두 일심진여(一心眞如)로 나타냄에 불과한데, 진여심에는 수연(隨緣)[12]과 불변(不變)[13]의 두 방면이 있어, 불변하는 방면(불변진여)으로는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지만, 수연하는 방면(수연진여)으로는 염정(染淨)[14]에 따라 갖가지 차별된 현상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만상은 일심진여의 현현이고 그 본체는 진여를 떠나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님. 이것이 3계가 한마음뿐이요, 마음 밖에 다른 법이 없다고 하는 학설이다.

유식을 기반으로 성립된 불교 종파가 유식종, 즉 법상종으로, 법상종에서는 모든 경론에 나오는 유식의 글과 뜻을 모두 거두어 5종으로 분류했다. 이를 오종유식이라고 하며, 만법유식(萬法唯識)의 진리를 관하는 데 있어 그 깊이에 맞춰 5중의 관법(灌法)을 정했다. 이것이 오중유식관이다.
- 경유식(境唯識). 만물은 오직 식(識)의 변화로 생긴 것이라고, 경(境)에 나아가 유식의 이치를 밝힌 것.
- 교유식(敎唯識). 교유식. 만유(萬有)는 오로지 식(識)의 변현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교설. 『능가경』ㆍ『화엄경』ㆍ『해심밀경』 등의 학설.
- 이유식(理唯識).
- 행유식(行唯識). 보살의 수행에서 만유는 오직 식이 변해 나타난 것에 불과하다고 관하는 것같이, 수행하는 데에 유식의 뜻이 나타나는 것을 행유식이라 함.
- 과유식(果唯識). 경론 가운데서 말한 우주의 종극적 실재는 오직 마음 뿐이고, 외계(外界)의 사물은 그의 변현에 지나지 않는다는 유식의 이치를 생각하고 관찰하여 얻은 과지(果智)를 밝히는 것.

오중유식관은 견허존실식(遣虛存實識)ㆍ사람류순식(捨濫留純識)ㆍ섭말귀본식(攝末歸本識)ㆍ은렬현승식(隱劣顯勝識)ㆍ견상증성식(遣相證性識)이다.
- 견허존실식. 자기의 감정이나 욕망에 따라 일어나는 주관의 차별적 고집에 의하여 파악하는 대상이란 오직 주관의 감정에서만 참인 듯하고, 객관의 이치에서는 없다. 전혀 실재성이 없는 것이므로 이는 허망한 것이며, 자체와 작용이 없다고 보아 공한 것이라고 부정하여 치우고, 서로서로 인과의 이치에 따라 존재하는 일체 만상과 우주의 본체인 진여와는 객관의 진리에서 존재한 것이므로, 이 모든 법의 본체는 진실한 것이어서 후득지(後得智)ㆍ근본지(根本智)의 대상이라고 보아 참말로 있다고 인정하는 관법.
- 사람류순식. 견허존실식에서 만유의 모든 법을 마음 밖에 실재한 실법(實法)인 줄로 보던 만유관(萬有觀)을 버리고, 참말 세계는 인연 화합의 모든 상(相)과 그 이성(異性)인 진여라고 관하였으나, 다시 다른 것에 의지하는 모든 법을 관할 적에 연려(緣廬)되는 대상과 연려하는 마음 작용이 있어 모두 마음 안에서 발현된 것이지만, 마음의 대상으로 보이는 것은 마음 밖의 존재임과 같이 생각되기 쉬우므로, 관심상(觀心上)의 용의(用意)로써 마음 밖의 실경(實境)이라고 뒤섞이기 쉬운 상분(相分)을 버리고, 이것을 인지하고 또 인지되는 것을 증명하는 마음인 견분(見分)ㆍ자증분(自證分)ㆍ증자증분(證自證分)을 머물러 두어, 세계는 오직 연려 작용인 마음, 견분 등의 3분(分)뿐이라고 관하는 것.
- 섭말귀본식. 유식종에서 만유가 유식으로 변현(變現)한 것임을 관하는 관법인 5중(重) 유식관의 1. 유식종에서 우리의 인식 과정에 4분(分)을 세운 중에 상분(相分)과 견분(見分)은 식(識)의 자체분(自體分)에서 갈려져 나온 것이라 하므로 이 견분ㆍ상분을 자체분에 거두어 돌려 보내서 유식의 이치를 관함.
- 은렬현승식.
- 견상증성식. 앞에 제4중에서 남아 있는 심왕(心王)은 다른 것을 의지하여 일어난 것이므로 이제는 이것을 버리고 유식의 참 성품인 진여를 증득하는 관법.
4. 같이보기[편집]
유식학파
유아론
자유의지
존재론

[1] Vijñapti는 ‘마음 작용’, mātra는 ‘오직’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유식이란 ‘모든 현상은 오직 마음 작용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2] 객관적 만유의 대상. 즉 색(色)ㆍ성(聲)ㆍ향(香)ㆍ미(味)ㆍ촉(觸)ㆍ법(法).
[3] 산스크리트어 manas의 한역이다.
[4] 산스크리트어 ālaya(저장)의 한자 음역이다.
[5] 천태종에서는 암마라식을 진여, 자성 등과 동의어로 보았다. 그러나 법상종에서는 이러한 견해를 인정하지 않고, 진여자성이란 번뇌에 오염되었던 아뢰야식이 불법에 대한 바른 이해를 통해 변화를 일으켜, 오염되지 않은 대원경지(大圓鏡智)로 바뀐 상태라고 본다.
[6] 아뢰야식의 작용이 끊겨 바깥 대상을 있는 그대로 직관하는 상태이다.
[7] 말 그대로 자신의 선입견이나 감정으로 그 대상을 덮어씌운다는 뜻이다. 따라서 어떤 대상에 대한 판단도 제각각이고, 어떤 사람에 대한 평가도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이것은 심층에 잠재하고 있는 아뢰야식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8] 출처: 곽철환 <불교의 모든 것>
[9] 어떤 의식 내용을 명료하게 하는 과정. 분트(Wundt, W.)는 이러한 통일의 과정을 능동적 과정이라 생각했고, 이것을 의지 과정과 동일시했으며, 이 과정에는 생리적 대응 과정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10] 분명하게 증명하여 아는 것
[11] 그러니까 내가 어떻게 생각하건 말건 돌은 돌이고 풀은 풀인 것처럼.
[12] 만유의 본체는 변함이 없는 것이지만 인연에 의하여 여러 가지 모양으로 나타나는 일.
[13] 일체 평등하고 불생불멸하여 변화가 없는 상.
[14] 염(染)은 더럽히는 것으로 번뇌. 정(淨)은 번뇌를 떠나 청정한 상태를 말하며, 염정은 때로는 선악(善惡)과 같은 뜻으로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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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쉬운 불교(20)= 유식사상(唯識思想)
기자명 한국불교신문   입력 2010.08.18 09:5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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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불교” 유식학의 전개유식이라고 하는 것은 쉽게 말하면, 마음의 불교라고 할 수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이라고 하는 것이 모두 다 마음에 관련되지 않은 부분이 없지만 특히 마음만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고 마음의 여러 가지 작용과 기능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고 있는 가르침이 바로 유식불교이다.유식불교는 인도에서 용수를 중심으로 한 공사상과 더불어 대승불교의 가장 큰 양대산맥으로 알려져 왔다. 용수의 공사상은 제일 강조하는 것이 사물을 연기에 의해서 생겨나는 존재라고 생각하고 사물에는 영원불변한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공을 실천하는 실천행으로 중도를 강조한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공이라고 하는 것을 잘못 해석하여 허무론적 견해로 착각하는 경우이다. 모든 것을 공이라고 한다면 진실로 우리가 의거해야 될 바가 없지 않은가하고 잘못된 생각을 가지는 것을 말한다. 반야 ․ 공사상에서 말하는 근본적인 의미는 그런 상대적인 편견을 초월하려는 것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의 일부면만을 고집하여 사실과 그릇되게 이 세상의 모든 것을 허무론적인 견해로 받아들일 위험성이 많이 있다. 유식사상은 이와 같은 허무론적인 견해를 가진 반야, 공사상에 대한 반성에서 나온 것이라 볼 수 있다. 유식학은 무착(無着, 310-390), 세친(世親, 320-400) 등에 의해 성립되었으며 인도 유식사상을 담고 있는 대표적인 경론으로는 해심밀경(解心密經), 입능가경(入楞伽經)과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 섭대승론(攝大乘論), 유식삼십송(唯識三十頌), 성유식론(成唯識論) 등이 널리 알려져 있다. 유식이란 글자 그대로 오직 식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유식무경이 바로 유식사상의 근본명제이다. 존재하는 것은 오직 마음(識)뿐이고 외적사물은 식이 변하여 나타난 마음의 그림자라고 본 것이다(唯識所變).우리들은 사물을 볼 때 눈앞에 있는 것이 실재이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본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러한 고정적인 것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우리들의 마음에 의해 보이는 것, 주관과 객관의 관계로 존재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것이 ‘유식’의 의미이다. 그리고 유식설에서는 우리에게, 일상적인 견해를 전환하여 부처의 견해를 가지라고 한다. 세친 이후의 인도 유식불교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무상유식(無相唯識)과 유상유식(有相唯識)이다.무상유식이란 우리들 인식 가운데 있는 허망성을 지적하는 가르침이다. 똑같은 영화를 보고 나서도 어떤 사람은 영화가 잘된 작품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형편없다고 하는 경우가 있다. 영화를 따로따로 보여준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바로 여기에 인간의 인식이 헛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들의 인식 자체가 어떤 사물을 평가할 때 주관적인 인식을 가지고 평가하기 때문에 허망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무상유식의 기본적인 입장이다. 유상유식은 무상유식과는 반대의 입장을 취한다. 물론 유상유식에서도 인간의 인식의 허망함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물을 인식할 수 있는 주관이 허망하다고 해도 이것을 벗어나서는 사물을 인식할 수 없다. 따라서 어느 경우에 있어서도 다소간 주관적인 색채가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들은 우리 자신에게 근거하고 있는 유상한 유식이라고 하는 마음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 유상유식이다.무상유식을 이룩한 대가는 안혜(安慧)이다. 유상유식은 호법(護法)에 의해 펼쳐졌다. 유식학은 인도는 물론 중국을 거쳐 한국에도 도입하게 되었으며, 특히 신라시대에 많이 연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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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식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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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식설(唯識說)은 인간의 현실존재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 가지 은 실유(實有)가 아니고, 그 실상(實相)은 (空)이라고 본다. 하지만, 무차별하고 한결같은 의 차원에 의거하여 다양하지만 일정하게 질서있는 현실의 모든 차별상이 나타난다고 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모든 종류의 이 현재 있는 것과 같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각각 에 근거된 원인이 있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본다. 그리고 그 원인은 이미 가능성의 상태에서 존재한다고 보며 그것을 종자라고 부른다. 유식설에서, 종자라고 하는 것은 을 나타나게 하는 가능력을 말한다. 이와 같은 가능력이 순수한 정신작용 즉 (識)이라고 유식설은 주장한다.

유식설에 따르면, 이라는 것은 대상을 분별하여 아는 작용이다. 만유는 식에 의하여 현현(顯現)한 것에 불과한 것이라고 유식설은 주장한다. 이 동향을 식체의 전변이라고 한다. 식체가 전변하여 세 가지 종류의 을 성립시킨다. 첫째로 아라야식은 근본식이라고도 하는 것인데, 이는 제법의 종자가 된다. 둘째로 사량의 작용을 하는 말나식으로서, 말나식은 아라야식에 의존하여 일어나지만 아라야식을 대상으로 하여 아집을 일으킨다. 셋째로 안식 · 이식 · 비식 · 설식 · 신식 · 의식의 6식인데 각각  ·  ·  ·  ·  · 을 인식한다.

그런데 자기의 대상을 (空)이라고 깨달아 실재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경우에는 마음은 유식성(唯識性)에 존재한다. 이와 같은 경지에 도달한 수행자는 생사(生死)와 열반(涅槃)을 상이한 별개의 것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그 어느 것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진여의 지혜(반야 · 보리)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생사의 차원에서 존재되지 않는다. 또한 자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중생을 구제하는 일에 노력하여 권태함이 없으며, 열반에 머무르는 일도 없다. 구체적인 덕목으로서는 6도를 실천한다.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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唯識

出典: フリー百科事典『ウィキペディア(Wikipedia)』

唯識(ゆいしき、サンスクリット語विज्ञप्तिमात्रता Vijñapti-mātratā)とは、個人、個人にとってのあらゆる諸存在が、(ただ)、8種類の(八識)によって成り立っているという大乗仏教の見解の一つである(瑜伽行唯識学派)。ここで、8種類の識とは、五種の感覚(視覚、聴覚、嗅覚、味覚、触覚)、意識、2層の無意識を指す。よって、これら8種の識は総体として、ある個人の広範な表象、認識行為を内含し、あらゆる意識状態やそれらと相互に影響を与え合うその個人の無意識の領域をも内含する。

あらゆる諸存在が個人的に構想された識でしかないのならば、それら諸存在は主観的な存在であり客観的な存在ではない。それら諸存在は無常であり、時には生滅を繰り返して最終的に過去に消えてしまうであろう。即ち、それら諸存在は「空」であり、実体のないものである(諸法空相)。このように、唯識は大乗仏教のくうの思想を基礎に置いている。また、唯識と西洋哲学でいう唯心論とは、基本的にも、最終的にも区別される(後述)。

概要[編集]

唯識思想では、各個人にとっての世界はその個人の表象(イメージ)に過ぎないと主張し、八種の「識」を仮定(八識説)する。

八識説の概念図の一例
  • まず、視覚や聴覚などの感覚も唯識では識であると考える。感覚は5つあると考えられ、それぞれ眼識(げんしき、視覚)・耳識(にしき、聴覚)・鼻識(びしき、嗅覚)・舌識(ぜつしき、味覚)・身識(しんしき、触覚など)と呼ばれる。これは総称して「前五識」と呼ぶ。
  • その次に意識、つまり自覚的意識が来る。6番目なので「第六意識」と呼ぶことがあるが同じ意味である。また前五識と意識を合わせて六識または現行げんぎょうという。
  • その下に末那識まなしきと呼ばれる潜在意識が想定されており、寝てもさめても自分に執着し続ける心であるといわれる。熟睡中は意識の作用は停止するが、その間も末那識は活動し、自己に執着するという。
  • さらにその下に阿頼耶識(あらやしき, ālaya-vijñāna)という根本の識があり、この識が前五識・意識・末那識を生み出し、さらに身体を生み出し、他の識と相互作用して我々が「世界」であると思っているものも生み出していると考えられている。

あらゆる諸存在が個人的に構想された識でしかないのならば、それら諸存在は主観的な存在であり客観的存在ではない。それら諸存在は無常であり、時には生滅を繰り返して最終的に過去に消えてしまうであろう。即ち、それら諸存在(色)は「空」であり、実体のないものである(色即是空)

唯識は、4世紀インドに現れた瑜伽行唯識学派(ゆがぎょうゆいしきがくは 唯識瑜伽行派とも)、という初期大乗仏教の一派によって唱えられた認識論的傾向を持つ思想体系である。瑜伽行唯識学派は、中観派の「くう」思想を受けつぎながらも、とりあえず心の作用は仮に存在するとして、その心のあり方を瑜伽行(ヨーガの行・実践)でコントロールし、また変化させて悟りを得ようとした(唯識無境=ただ識だけがあって外界は存在しない)。

この世の色(しき、物質)は、ただ心的作用のみで成り立っている、とするので西洋の唯心論と同列に見られる場合がある。しかし東洋思想及び仏教の唯識論では、その心の存在も仮のものであり、最終的にその心的作用も否定される(境識倶泯きょうしきくみん、外界も識も消えてしまう)。したがって唯識唯心論はこの点でまったく異なる。また、唯識は無意識の領域を重視するために、「意識が諸存在を規定する」とする唯心論とは明らかに相違がある。

唯識思想は後の大乗仏教全般に広く影響を与えた。


識の相互作用と悟り[編集]

唯識は語源的に見ると、「ただ認識のみ」という意味である[1]

心の外に「もの」はない[編集]

大乗仏教の考え方の基礎は、この世界のすべての物事は縁起、つまり関係性の上でかろうじて現象しているものと考える。唯識説はその説を補完して、その現象を人が認識しているだけであり、心の外に事物的存在はないと考える。これを「唯識無境」(「境」は心の外の世界)または唯識所変の境(外界の物事は識によって変えられる)という。また一人一人の人間は、それぞれの心の奥底の阿頼耶識の生み出した世界を認識している(人人唯識)。他人と共通の客観世界があるかのごとく感じるのは、他人の阿頼耶識の中に自分と共通の種子(倶有の種子くゆうのしゅうじ、後述)が存在するからであると唯識では考える。

阿頼耶識と種子のはたらき[編集]

人間がなにかを行ったり、話したり、考えたりすると、その影響は種子(しゅうじ、阿頼耶識の内容)と呼ばれるものに記録され、阿頼耶識のなかにたくわえられると考えられる。これを薫習くんじゅうという。ちょうど香りが衣に染み付くように行為の影響が阿頼耶識にたくわえられる(現行薫種子げんぎょうくんしゅうじ)。このため阿頼耶識を別名蔵識一切種子識とも呼ぶ。阿頼耶識の「阿頼耶」(ālaya)は「蔵」という意味のサンスクリット語である。さらに、それぞれの種子は、阿頼耶識の中で相互に作用して、新たな種子を生み出す可能性を持つ(種子生種子しゅうじしょうしゅうじ)。

また、種子は阿頼耶識を飛び出して、末那識・意識に作用することがある。さらに、前五識(視覚・聴覚・嗅覚・味覚・触覚)に作用すると、外界の現象から縁を受けることもある。この種子は前五識から意識・末那識を通過して、阿頼耶識に飛び込んで、阿頼耶識に種子として薫習される。これが思考であり、外界認識であるとされる(種子生現行しゅうじしょうげんぎょう)。このサイクルを阿頼耶識縁起あらやしきえんぎと言う。

最終的には心にも実体はない[編集]

このような識の転変は無常であり、一瞬のうちに生滅を繰り返す(刹那滅)ものであり、その瞬間が終わると過去に消えてゆく。

このように自己と自己を取り巻く世界を把握するから、すべての「物」と思われているものは「現象」でしかなく、「空」であり、実体のないものである。しかし同時に、種子も識そのものも現象であり、実体は持たないと説く。これは西洋思想でいう唯心論とは微妙に異なる。心の存在もまた幻のごとき、夢のごとき存在()であり、究極的にはその実在性も否定される(境識倶泯)。

単に「唯識」と言った場合、唯識宗(法相宗)・唯識学派・唯識論などを指す場合がある。

唯識思想の特色[編集]

仏教の中心教義である無常無我を体得するために、インド古来の修行方法であるヨーガをより洗練した瑜伽行(瞑想)から得られた智を教義の面から支えた思想体系である。

  1. 心の動きを分類して、八識を立てる。とりわけ、末那識と阿頼耶識は深層心理として無意識の分野に初めて注目した。
  2. 自らと、自らが認知する外界のあり方を、三性さんしょう説としてまとめ、修行段階によって世界に対する認知のありようが異なることを説明した。
  3. ヨーガを実践することによって「唯識観」という具体的な観法を教理的に組織体系化した。
  4. 法華経』などの説く一乗は方便であるとし、誰もが成仏するわけではないことを説いた。(五性各別)
  5. 成仏までには三大阿僧祇劫さんだいあそうぎこうと呼ばれるとてつもない時間がかかるとした。
  6. 般若経』のを受けつぎながら、まず識は仮に存在するという立場に立って、自己の心のあり方を瑜伽行の実践を通して悟りに到達しようとする。

成立と発展[編集]

唯識はインドで成立、体系化され、中央アジアを経て、中国日本と伝えられ、さらにはチベットにも伝播して、広く大乗仏教の根幹をなす体系である。倶舎論とともに仏教の基礎学として学ばれており、現代も依然研究は続けられている。

インドにおける成立と展開[編集]

唯識は、初期大乗経典の『般若経』の「一切皆空」と『華厳経』十地品の「三界作唯心」の流れを汲んで、中期大乗仏教経典である『解深密経げじんみつきょう』『大乗阿毘達磨経だいじょうあびだつまきょう』として確立した。そこには、瑜伽行(瞑想)を実践するグループの実践を通した長い思索と論究があったと考えられる。

論としては弥勒(マイトレーヤ)を発祥として、無著(アサンガ)と世親(ヴァスバンドゥ)の兄弟によって大成された。無著は「摂大乗論しょうだいじょうろん」を、世親は「唯識三十頌ゆいしきさんじゅうじゅ」「唯識二十論」等を著した。「唯識二十論」では「世界は個人の表象、認識にすぎない」と強く主張する一方、言い表すことのできない実体があるとした。「唯識三十頌」では上述の八識説を唱え、部分的に深層心理学的傾向や生物学的傾向を示した。弥勒に関しては、歴史上の実在人物であるという説と、未来仏としていまは兜率天とそつてんにいる弥勒菩薩であるという説との2つがあり、決着してはいない。

世親のあとには十大弟子が出現したと伝えられる。5世紀はじめごろ建てられたナーランダ大僧院(Nālanda)において、唯識はさかんに研究された。6世紀の始めに、ナーランダ出身の徳慧(グナマティ、Guṇamati)は西インドのヴァラビー(Valabhī)に移り、その弟子安慧(スティラマティ、sthiramati)は、世親の著書『唯識三十頌』の註釈書をつくり、多くの弟子を教えた。この系統は「無相唯識派」(nirākāravādin)と呼ばれている[2]

この学派は、真諦(パラマールタ、paramārtha)によって中国に伝えられ、地論宗摂論宗として一時期、大いに研究された。

一方、5世紀はじめに活躍した陳那(ディグナーガ、Dignāga)は、世親の著書『唯識二十論』の理論をさらに発展させて、『観所縁論』(ālambanaparīkṣā)をあらわして、その系統は「有相唯識派」(sākāravādin)と呼ばれるが、無性(アスヴァバーヴァ、asvabhāva、6C前半頃)・護法(ダルマパーラ、Dharmapāla)に伝えられ、ナーランダ寺院において、さかんに学ばれ、研究された。

中国・日本への伝播[編集]

中国からインドに渡った留学僧、玄奘三蔵は、このナーランダ寺において、護法の弟子戒賢(シーラバドラ、śīlabhadra)について学んだ。帰朝後、『唯識三十頌』に対する護法の註釈を中心に据えて、他の学者たちの見解の紹介と批判をまじえて翻訳したのが『成唯識論じょうゆいしきろん』である。

そして、この書を中心にして玄奘の弟子の慈恩大師(もしくは窺基きき)によって法相宗ほっそうしゅうが立てられ、中国において極めて論理学的な唯識の研究が始まった。実質的な開祖は基であるため、法相宗では玄奘を鼻祖びそと呼び分けている。その後、玄奘の訳経と知名度等により中国の法相宗は隆盛し、その結果、真諦の訳した論書を基に起こった地論宗摂論宗は衰退することとなった。

その後、法相宗は道昭智通智鳳玄昉などによって日本に伝えられ、奈良時代さかんに学ばれ南都六宗のひとつとなった。その伝統は主に奈良の興福寺法隆寺薬師寺、京都の清水寺に受けつがれ、江戸時代にはすぐれた学僧が輩出し、倶舎論くしゃろんとともに仏教学の基礎学問として伝えられた。唯識や倶舎論は非常に難解なので「唯識三年倶舎八年」という言葉もある。明治時代廃仏毀釈により日本の唯識の教えは一時非常に衰微したが、法隆寺佐伯定胤の努力により復興した。法隆寺が聖徳宗として、また清水寺北法相宗として法相宗を離脱した現在、日本法相宗の大本山は興福寺薬師寺の二つとなっている。

識の転変[編集]

唯識思想は、この世界はただ識、表象もしくは心のもつイメージにすぎないと主張する。外界の存在は実は存在しておらず、存在しているかのごとく現われ出ているにすぎない。これを『華厳経』などでは次のように説いている。

又、是の念を作さく、三界は虚妄にして、但だ是れ心の作なり。十二縁分も是れ皆な心に依る。

又作是念。三界虚妄。但是心作。十二縁分。是皆依心
— 大方廣佛華嚴經十地品第二十二之三
識とは心である。心が集起綵画し主となす根本によるから、経に唯心という。分別了達の根本であるから論に唯識という。あるいは経は、義が因果に通じ、総じて唯心という。論は、ただ因にありと説くから、ただ唯識と呼ぶのである。識は了別の義であり、因位の中にあっては識の働きが強いから識と説き、唯と限定しているのである。意味的には二つのものではない。『二十論』には、心・意・識・了の名はこれ差別なり、と説く。

識者心也。由心集起。綵畫為主之根本故經曰唯心。分別了達之根本故。論稱唯識或經義通因果總言唯心。論說唯在因但稱唯識。識了別義。在因位中識用強故。說識為唯。其義無二。二十論云。心意識了。名之差別。
— 慈恩大師 大乘法苑義林章卷第一[3]

その心の動きを「識 (vijñāna) の転変 (pariṇāma)」と言う。その転変には三種類あり、それは

  1. 異熟いじゅく - 行為の成熟
  2. 思量しりょう - 思考と呼ばれるもの
  3. 了別りょうべつ - 対象の識別

の3つである。識の転変は構想である。それによって構想されるところのものは実在ではない。したがってこの世界全体はただ識別のみにすぎない。

第一能変[編集]

異熟というのは、阿頼耶識(根源的と呼ばれる識知)のことであり、あらゆる種子 (bīja) を内蔵している。感触・注意・感受・想念・意志をつねに随伴する。感受は不偏であり、かつそれは障害のない中性である。感触その他もまた、同様である。そして、根源的識知は激流のごとく活動している。「暴流の如し」

第二能変[編集]

末那識 (mano nāma vijñāna) は、阿頼耶識にもとづいて活動し、阿頼耶識を対象として、思考作用を本質とする。末那識には、障害のある中性的な四個の煩悩がつねに随伴する。我見(個人我についての妄信)、我痴(個人我についての迷い)、我慢(個人我についての慢心)、我愛(個人我への愛着)と呼ばれる。なかでもとくに、当人が生まれているその同じ世界や地位に属するもののみを随伴する。さらにその他に感触などを随伴する。

この末那識は自我意識と呼んでもよい。つねに煩悩が随伴するので「汚れた意(マナス)」とも呼ばれる。この末那識と意識によって、思量があり、その意業の残滓はやはり種子として阿頼耶識に薫習される。

第三能変[編集]

了別とは、第三の転変であり、6種の対象を知覚することである。

六識は、それぞれ眼識が色(しき、rūpa)を、耳識が声を、鼻識が香を、舌識が味を、身識が触(触れられるもの)を、意識が法(考えられる対象、概念)を識知・識別する。そしてこの六識もまた阿頼耶識から生じる。そして末那識とこの六識とが「現勢的な識」であり、我々が意識の分野としているもので、阿頼耶識は無意識としているものである。

これまでの説明は、阿頼耶識から末那識および六識の生ずる流れ(種子生現行)だが、同時に後二者の活動の余習が阿頼耶識に還元されるという方向(現行薫種子)もある。それがアーラヤ(=蔵)という意味であり、相互に循環している。

識を含むどのような行為(業)も一刹那だけ現在して、過去に過ぎて行く。その際に、阿頼耶識に余習を残す。それが種子として阿頼耶識のなかに蓄積され、それが成熟して、「識の転変」を経て、再び諸識が生じ、再び行為が起ってくる。

三性[編集]

このような識の転変によって、存在の様態をどのように見ているかに、3つあるとする。

  1. 遍計所執性(へんげしょしゅうしょう, parikalpita) 構想された存在 凡夫の日常の認識。
  2. 依他起性(えたきしょう, paratantra)  相対的存在、他に依存する存在
  3. 円成実性(えんじょうじっしょう, pariniṣpanna)  絶対的存在、完成された存在

このような見方は唯識を待つまでもなく大乗仏教の基本であり、その原型が既に般若経に説かれている。

遍計所執性とは、阿頼耶識・末那識・六識によってつくり出された対象に相当して、存在せず、空である。

舎利弗、仏にことばもうせり。
「世尊。諸法の実相、云何いかんが有なるや」
仏言わく。
「諸法は有る所無し。是の如く有り、是の如く有る所無し。是の事を知らざるを名づけて無明と為す」
— 摩訶般若波羅蜜経相行品第十

依他起性とは相対的存在であり、構想ではあるが、物事はさまざまな機縁が集合して生起したもの(縁起)であるととらえることである。阿頼耶識をふくむ全ての識の構想ではあるけれども、すでにその識の対象が無であることが明らかとなれば、識が対象と依存関係にあるこの存在もまた空である。

名字は是れ因縁和合の作れる法なり。但だ分別憶想、仮名を説く。
是の故に菩薩摩訶薩、般若波羅蜜を行ずる時、一切の名字を見ず。
見ざるが故に著せず。
— 摩訶般若波羅蜜経奉鉢品第二

円成実性は、仏の構想であり、絶対的存在とも呼べるものである。これは依他起性と別なものでもなく、別なものでもないのでもない。依他起性から、その前の遍計所執性をまったく消去してしまった状態が円成実性である。

復た次に舎利弗。菩薩摩訶薩、諸法の如・法性・実際を知らんと欲さば、当に般若波羅蜜を学すべし。— 摩訶般若波羅蜜経序品第一

以上の如く、般若経の段階では三性としてまとめて整理記述しているわけではない。時代を下って『解深密経』(玄奘訳)を待って初めて、諸法に三種の相があると説く。これは法が三種類あるということではなく、法は見る人の境地によって三通りの姿かたちが顕れているということである。

謂く、諸法の相に略して三種有り。
何等か三と為すや。
一者は遍計所執相、二者は依他起相、三者は円成実相なり。

云何が諸法の遍計所執相なるや。
謂く、一切法の名、仮安立の自性差別なり、乃至言説を随起せ令むるが為なり。

云何が諸法の依他起相なるや。
謂く、一切法の縁の生ずる自性なり。則ち此れ有るが故に彼れ有り。此れ生ずる故に彼れ生ず。
謂く、無明は行に縁たり、乃至純大の苦蘊を招集す。

云何が諸法の円成実相なるや。
謂く、一切法平等の真如なり。此の真如に於て諸の菩薩衆、勇猛・精進を因縁と為すが故に、如理の作意・無倒の思惟を因縁と為すが故に、乃ち能く通達す。此の通達に於て漸漸に修集し、乃至無上正等菩提をさに証すること円満なり
— 解深密経一切法相品第四

相は性による、という間接的な表現となっているが、唯識の論書では、遍計所執性、依他起性、円成実性の三性という表現になり、精緻な論が展開されるようになる。

三性のなかで、第一の遍計所執性はその性格からみて、すでに無存在である。つぎに依他起性は、自立的存在性を欠くから、やはり空である。また、同じ依他起性は存在要素の絶対性としては、第三の円成実性である。そして、どういう境地においても、真実そのままの姿であるから真如と呼ばれる。その真如は、とりもなおさず「ただ識別のみ」という真理である。これを自覚することが、迷いの世界からさとりの世界への転換にほかならない。

しかし、実践の段階において、「ただ識別のみ」ということにこだわってはならない。認識活動が現象をまったく感知しないようになれば、「ただ識別のみ」という真理のなかに安定する。なぜなら、もし認識対象が存在しなければ、それを認識することも、またないからである。それは心が無となり、感知が無となった。それは、世間を超越した認識であり、煩悩障(自己に対する執着)・所知障(外界のものに対する執着)の二種の障害を根絶することによって、阿頼耶識が変化を起こす(転識得智てんじきとくち)。これがすなわち、汚れを離れた領域であり、思考を超越し、善であり、永続的であり、歓喜に満ちている。それを得たものは解脱身であり、仏陀の法と呼ばれる(大円鏡智だいえんきょうち)。

修行の階梯[編集]

唯識では成仏に三大阿僧祇劫さんだいあそうぎこうと呼ばれるとてつもなく長い時間の修行が必要だとされる。その階梯は、資糧位しりょうい加行位けぎょうい通達位つうだつい修習位しゅうじゅうい究竟位くきょういの五段階である。

転識得智[編集]

修行の結果悟りを開き仏になると、8つの「識」は「智」に転ずる。これを転識得智てんじきとくちという。

  1. 前五識は成所作智じょうしょさち
  2. 意識は妙観察智みょうかんざつち
  3. 末那識は平等性智びょうどうしょうち
  4. 阿頼耶識は大円鏡智だいえんきょうちに転ずるとされている。

転識得智の考え方は天台宗真言宗、チベット密教のニンマ派にも受け継がれている。

唯心と唯識[編集]

『華厳経』では、「集起の義」について唯心という。『華厳経』は、覚った仏の側から述べているので、すべての存在現象が、そのままみずからの心のうちに取り込まれて、全世界・全宇宙が心の中にあると言う。そこで、すべての縁めているから「集起の義」について唯心と言う。

唯識論では、「了別の義」について唯識という。唯識では凡夫(われわれ普通の人間)の側から述べているので、人間のものの考え方について見ていこうとしている。すべての存在現象は人間が認識することによって、みずからが認識推論することのできる存在現象となりえているから、みずからが承し分している。そこで「了別の義」について唯識という。心ではなく、識としているのは、それぞれの了別する働きの体について「識」としているのであって、器官ではない。器官は存在現象しているものである。

しかし、唯心といっても、唯識と言っても、その本質は一つである。詳しく分けて論ずれば、「唯心」の語は、修行する段階(因位)にも悟って仏になった段階(果位)にも通じるが、「唯識」と称するときには、人間がどのように認識推論するかによるので、悟りを開く前の修行中の段階(因位)のみに通用する。「唯」とは簡別の意味で、識以外に法(存在)がないことを簡別して「唯」という。「識」とは了別の意味である。了別の心に略して3種(初能変、第二能変、第三能変)、広義には8種(八識)ある。これをまとめて「識」といっている。

識と存在[編集]

唯識といって、以上のように唯八識のみであるというのは、一切の物事がこの八識を離れないということである。八識のほかに存在(諸法)がないということではない。おおよそ区分して五法(五種類の存在)としている。(1)、(2)心所、(3)、(4)不相応、(5)無為である。この前の四つを「事」として、最後を「理」として、五法事理という。

  1. (心王, citta) - 識それ自体。心の中心体で「八識心王」ともいわれる。
  2. 心所 (caitasika) - 識のはたらき。心王に付随して働く細かい心の作用で、さらに6種類に分類し、遍行・別境・善・煩悩・随煩悩・不定(ふじょう)とし、さらに細かく51の心所に分ける。心所有法心数法とも訳される。
  3.  (rūpa) - 肉体や事物などのいわゆる物質的なものとして認識される、心と心所の現じたもの。
  4. 不相応行 (viprayukta-saṃskāra) - 心と心所と色の分位の差別。心でも物質でもなく、しかも現象を現象たらしめる原理となるもの。
  5. 無為 (asaṃskṛta) - 前四法の実性。現象の本質ともいうべき真如

さらに心を8、心所を51、色を11、不相応行を24、無為を6に分けて別々に想定し、全部で百種に分けることから、五位百法と呼ばれる。なお倶舎論では「五位七十五法」を説いており、それを発展させたものと考えられる。

三島由紀夫と唯識[編集]

三島由紀夫の最後の作品となった『豊饒の海』四部作は唯識をモチーフの一つに取り入れている。第四部「天人五衰」の最終回入稿日に、三島は陸上自衛隊市ヶ谷駐屯地で割腹自決三島事件)した。

澁澤龍彦は、三島が唯識論に熱中していたことを『三島由紀夫をめぐる断章』で触れ、唯識論とは何かを三島に問われた宗教学者の松山俊太郎が「あれは気違いにならなければわからない、正気の人にわかるわけがない。唯識説のよくできているところは、ちょうど水のなかに下りていく階段があって、知らない間に足まで水がきて、知らない間に溺れているというふうにできている。それは大きな哲学の論理構造であり、思想というものだ」と言った話、それを聞いた梅原猛が「感心している三島も三島だが、こんな馬鹿げた説を得々として開陳している仏教学者もないものだ」と批判した話に触れている。また、澁澤宅を訪ねた三島が、皿を一枚水平にし、もう一枚をその上に垂直に立てて、「要するに阿頼耶識というのはね、時間軸と空間軸とが、こんなふうにぶっちがいに交叉している原点なのではないかね」と言うので、「三島さん、そりゃアラヤシキではなくて、サラヤシキ(皿屋敷)でしょう」とからかった話も紹介している[4]

関係書籍[編集]

注・出典[編集]

  1. ^ 唯識の原語(サンスクリット語)は、vijñapti-mātratā、もしくは vijñāna-vāda である。vijñapti とは「知らしめる」という意味であり、mātra は「ただそれだけ」という意味である。vijñāna は、「知る」(jñā)の語根に「区分する」という接頭辞「vi-」が付いているので、「区分して知ること」であり、vāda は「説」という意味である。
    • 「梵に毘若底と言うのは、これを翻訳すると識となる。識とは了別の義である。識の自相と、識の相応と、識の所変と、識の分位と、識の実性と五法の事理はみな識を離れず。これによって唯識と名づける。」 - 『大乘法苑義林章』巻1。該当箇所は大正蔵 T1861_.45.0260a10 - 12 (梵云毘若底。此翻爲識。識者了別義。識自相・識相應・識所變・識分位・識實性。五法事理皆不離識故名唯識。)
    • (弥勒菩薩が言う)「我、十方唯識を諦観するをもって、識心円明なり。円成実に入りて、依他起および遍計執を遠離して、無生忍を得る。これ第一と為す。」 -- 『首楞厳経』巻5。該当箇所は大正蔵 T0945_.19.0128a19 - 20(我以諦觀十方唯識。識心圓明入圓成實。遠離依他及遍計執。得無生忍斯爲第一)。なお『首楞厳経』とは鳩摩羅什訳の『首楞厳三昧経(中国語版)』ではなく、般刺密帝(ばんらみたい、中国語版)訳『大仏頂如来密因修証了義諸菩薩万行首楞厳経』10巻の略である。
  2. ^ 無相唯識と有相唯識とは、阿頼耶識をどのようにみるかに大きな相違点がある。無相唯識は、阿頼耶識もまた空として、究極的に否定し、仏が個体として現象して、見るものと見られるものとが分かれない絶対知が得られると説く。
    有相唯識は、阿頼耶識を実有の識体と見なし、それが変化して見るものと見られるものとが生ずるという説を立てる。この説にしたがえば、絶対知を得ても、阿頼耶識そのものが否定されるのではなく、そのなかにふくまれている煩悩の潜勢力が根絶されると説くから、絶対知においても、見るものと見られるものはそこにあることになる。
  3. ^ 該当箇所は大正蔵 T1861_.45.0260a24 - 29
  4. ^ 鎌倉文学散歩安宅夏夫、松尾順造、保育社, 1993
  5. ^ もろ しげき、1972年、大阪府生まれ。花園大学 文学部 文化遺産学科 教授。
  6. ^ よりふじ かずひろ (1947 - 2001年)、精神科医、元神戸女学院大学教授。とぼけた軽妙な味わいの産経新聞連載の「家族診ます(のちに人生応援団に改題)」のコーナーを担当。『わたし、ガンです ある精神科医の耐病記』を著述。香山リカ名越康文の師匠でもあった。
  7. ^ 頼藤は、三島の『豊饒の海』を意識して、この本を書き上げた。

関連項目[編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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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만

출처: 무료 백과사전 '위키피디아(Wikipedia)'

유식 (유이시키, 산스크리트어 : विज्ञप्तिमात्रता Vijñapti-mātratā)은 개인, 개인에 대한 모든 존재가 유일하게 8 종류의  (팔식)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대승불교 의 견해의 하나 이다(瑜伽行 유식학파 ). 여기서 8종류의 식이란 5종의 감각(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의식, 2층의 무의식을 말한다. 따라서, 이들 8종의 식은 총체로서, 어느 개인의 광범위한 표상, 인식 행위를 내 포함하고, 모든 의식 상태나 그들과 상호 영향을 주고 받는 그 개인의 무의식의 영역도 포함한다.

온갖 존재가 개인적으로 구상된 식일 뿐이라면, 이들 존재는 주관적인 존재이며 객관적인 존재가 아니다. 이들의 존재는 무상하며 때로는 생멸을 반복하여 결국 과거에 사라져 버릴 것이다. 즉, 이들의 존재는 「하늘」이며, 실체가 없는 것이다(제법공상). 따라서 유식은 대승 불교입니다.없는쿠우의 사상을 기초에 두고 있다. 또, 유식과 서양철학에서 말하는 유심론 이란, 기본적으로도, 최종적으로도 구별된다(후술).

개요 편집 ]

유식 사상에서는, 각 개인에게 있어서의 세계는 그 개인의 표상(이미지)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해, 8종의 「식」을 가정(팔식설)한다.

팔식설의 개념도의 예
  • 우선, 시각이나 청각 등의 감각도 유식으로는 식이라고 생각한다. 감각은 5개 있다고 생각되어 각각 안식(겐시키, 시각 )・이식(니시키, 청각 )코식(비시키, 후각) , 촉각 등)이라고합니다. 이것은 총칭하여 ' 전 오식 '이라고 부른다.
  • 그 다음에 의식 , 즉 자각적 의식이 온다. 여섯 번째이므로 ' 제6의식 '이라고 부르는 일이 있지만 같은 의미이다. 또한 전 오식과 의식을 결합하여 육식 또는유효한겐쿄라고 한다.
  • 그 아래에마나스 의식마나키라고 불리는 잠재의식이 상정되고 있어 자고도 자꾸 계속 집착하는 마음이라고 한다. 숙면 중에는 의식의 작용은 정지하지만, 그동안 말나식은 활동하고 자기에 집착한다고 한다.
  • 게다가 그 아래에 아요 야키 (あらやしき, ālaya-vijñāna)라는 근본의 식이 있어, 이 식이 전 오식·의식·말나식을 낳고, 한층 더 신체를 낳아, 다른 식과 상호 작용한다 우리가 '세계'라고 생각하는 것도 낳고 있다고 생각되고 있다.

온갖 존재가 개인적으로 구상된 식일 뿐이라면, 이들 존재는 주관적인 존재이며 객관적 존재가 아니다. 이들의 존재는 무상하며 때로는 생멸을 반복하여 결국 과거에 사라져 버릴 것이다. 즉, 이들의 존재(색)는 「하늘」이며, 실체가 없는 것이다(색 즉 시공) .

유식은 4세기 인도 에 나타난瑜伽行 유식학파 ( 유가교 유이 시키가쿠는 유식 瑜伽行派)라는 초기 대승 불교의 일파에 의해 주창된 인식론적 경향을 가진 사상체계이다. 瑜伽行 유식 학파는 중관 파없는쿠우'사상을 받아들이면서도 우선 마음의 작용은 만일 존재한다고 해서 그 마음의 본연의 방법을 瑜伽行(요가의 행·실천)으로 컨트롤하고, 또 변화시켜 깨달음을 얻으려고 했다 ( 유식 무경 = 단지 식만 있어 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세상의 색(마음, 물질)은 단지 심적 작용만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므로 서양의 유심론과 동렬로 볼 수 있는 경우가 있다 . 그러나 동양 사상 및 불교의 유식론에서는, 그 마음의 존재도 임시의 것이고, 최종적으로 그 심적 작용도 부정된다의식이 희미해진다오늘 시쿠 민, 외계도 식도 사라져 버린다). 따라서 유식 과 유심론 은 이 점에서 완전히 다르다. 또한 유식은 무의식의 영역을 중시하기 위해 "의식이 여러 존재를 규정한다"는 유심론과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유식사상은 나중 대승불교 전반에 널리 영향을 주었다.


식의 상호 작용과 깨달음 편집 ]

유식은 어원적으로 보면, 「단지 인식만」이라는 의미이다 [1] .

마음 밖에 '물건' 없음 편집 ]

대승불교의 사고방식의 기초는, 이 세계의 모든 일은 길기, 즉 관계 성 위에서 간신히 현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유식설은 그 설을 보완하고, 그 현상을 사람이 인식하고 있을 뿐이며, 마음 밖에 사물적 존재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유식 무경」(「경」은 마음 밖의 세계) 또는 유식 소변의 경 ( 외계의 일은 식에 의해 바뀐다)라고 한다. 또 한사람 한사람의 인간은, 각각의 마음의 안쪽의 아요야식의 낳은 세계를 인식하고 있다(인인 유식 ) . 타인과 공통의 객관 세계가 있는 것처럼 느끼는 것은, 타인의 아요야식 속에 자신과 공통의 씨앗(야유의 씨앗쿠유의 슈지, 후술)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유식으로는 생각한다.

아요야식과 씨앗의 작용 편집 ]

인간이 뭔가를 하거나 말하거나 생각하면 그 영향은 씨앗 (슈지, 아요야식의 내용)이라 불리는 것에 기록되어 아뢰야식 속에 접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이것을훈훈군주라고 한다. 다만 향기가 옷에 스며들듯이 행위의 영향이 아요야식에 맞춰진다(현재 가오루 씨앗겐기 군 슈지). 이 때문에 아요야식을 별명 장식 , 일체 종자식 이라고도 부른다. 아요야식의 ‘아요야’(ālaya)는 ‘구라’라는 의미의 산스크리트어 이다. 또한 각 씨앗은 아요 야식에서 상호 작용하여 새로운 씨앗을 만들 수 있습니다 (씨는 씨를 낳는다슈지쇼슈지)。

또한 씨앗은 아요야식을 뛰쳐나와 말나식·의식에 작용하는 경우가 있다. 게다가 전오식(시각·청각·후각·미각·촉각)에 작용하면 외계의 현상으로부터 인연을 받는 경우도 있다. 이 씨앗은 전 오식에서 의식·말나식을 통과하여 아요요식에 뛰어들어 아뢰야식에 씨앗으로 가습된다. 이것이 사고이며, 외계 인식이라고한다 (씨앗 생현행슈지 쇼겐 쿄). 이 사이클을아요야식인기아라야시 키엔기라고 말한다.

결국 마음에는 실체가 없다 편집 ]

이런 식의 전변은 무상 하며, 순식간에 생멸을 반복하는( 찰나멸 ) 것이며, 그 순간이 끝나면 과거에 사라져 간다.

이처럼 자기와 자기를 둘러싼 세계를 파악하기 때문에 모든 '물'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현상' 밖에 없고 '하늘'이며 실체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씨앗도 식 그 자체도 현상이며, 실체는 갖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것은 서양사상에서 말하는 유심론 과는 미묘하게 다르다. 마음의 존재도 환상의 때, 꿈의 때 존재( 하늘 )이며, 궁극적으로는 그 실재성도 부정된다(경식요미).

단순히 「유식」이라고 했을 경우, 유식종( 법상종 )·유식학파·유식론 등을 가리키는 경우가 있다.

유식 사상의 특징 편집 ]

불교의 중심 교리인 무상 · 무아 를 체득하기 위해 인도 고래의 수행 방법인 요가를 보다 세련된 瑜伽行(명상)에서 얻은 지를 교리의 면에서 지지한 사상체계 이다 .

  1. 마음의 움직임을 분류하여 팔식을 세운다. 특히 말나식과 아요야식은 심층심리로 무의식 분야에 처음 주목했다.
  2. 스스로, 스스로가 인지하는 외계의 본연의 자세를,세 성별산쇼설로서 정리해, 수행 단계에 의해 세계에 대한 인지의 존재가 다른 것을 설명했다.
  3. 요가를 실천함으로써 '유식관'이라는 구체적인 관법을 교리적으로 조직체계화했다.
  4. 법화경 ' 등의 설하는 제곱은 방편이라고 하며 모두가 성불하는 것은 아님을 설했다. (오성 각별)
  5. 성불까지는세 아승키야 칼파스산다이 아소 기자라고 불리는 엄청난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6. 반청경』의 하늘을 받으면서 , 우선 식은 만일 존재한다는 입장에 서서, 자기의 마음의 본연의 방법을 瑜伽行의 실천을 통해서 깨달음에 도달 하려고 한다 .

성립과 발전 편집 ]

유식은 인도 에서 성립, 체계화되고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 · 일본 으로 전해지고, 심지어는 티베트 에도 전파되어 넓게 대승불교 의 근간을 이루는 체계이다. 이사론 과 함께 불교의 기초학으로서 배워지고 있으며, 현대도 여전히 연구는 계속되고 있다.

인도의 성립과 배포 편집 ]

유식은 초기 대승경전의 '반청경 ' 의 '일부 모두 하늘'과 '화엄경 ' 십지품의 '삼계작 유심'의 흐름을 담아 중기대승 불교 경전인 '해심밀경겐진 미츠쿄』 『大乗阿毘達磨경다이죠 아비다 츠마쿄'로 확립했다. 거기에는 瑜伽行(명상)을 실천하는 그룹의 실천을 통한 긴 사색과 논구가 있었다고 생각된다.

논으로서는 미륵 (마이트레야)를 발상으로 하고, 무저 (아상가)와 세친 (바스반두)의 형제에 의해 대성되었다. 무저는 "섭대승론쇼다이 죠롱", 세상은"30곡의 의식의 노래유이시키 씨 쥬쥬유식 이십론 "등을 저술했다. '유식20론'에서는 '세계는 개인의 표상, 인식에 불과하다'고 강하게 주장하는 한편, 표현할 수 없는 실체가 있다고 했다. 유식 삼십배」에서는 상술한 팔식설을 주창하고, 부분적으로 심층 심리학 적 경향이나 생물학적 경향을 나타냈다. 미륵에 관해서는 역사상의 실제 인물이라는 설과 미래 부처로서 지금은투시타 데이토토 츠텐에 있는 미륵 보살이라는 설과의 2개가 있어, 결착하고 있지 않다.

세친 뒤에는 십대 제자가 출현했다고 전해진다. 5세기 초반에 지어진 네덜란드 대승원 (Nālanda)에서 유식은 철저히 연구되었다. 6세기 초에, 나란다 출신의 덕혜(그나마티, Guṇamati)는 서인도의 발라비(Valabhī)로 옮겨, 그 제자 안혜(스티라마티, sthiramati)는 세친의 저서 『유식 삼십경』의 주석서 를 만들기, 많은 제자를 가르쳤다. 이 계통은 「무상 유식파」(nirākāravādin)라고 불리고 있다 [2] .

이 학파는 진지 (파라마르타, paramārtha)에 의해 중국에 전해져, 지론 종 이나 섭론종 으로서 한때, 크게 연구되었다.

한편, 5세기 초에 활약한 첸나 (디그나가, Dignaga)는, 세친의 저서 「유식 이십론」의 이론을 더욱 발전시켜, 「관소 연론」(ālambanaparīkṣā)을 나타내고, 그 계통은 「유 상유식파”(sākāravādin)라고 불리지만, 무성(아스바바바, asvabhāva, 6C 전반경)·호법(다르마파라, Dharmapāla)에 전해져, 나란다 사원에 있어서, 신속하게 배워, 연구 되었다 .

중국·일본에 전파 편집 ]

중국에서 인도로 건너온 유학승인 현조삼장 은 이 나란다 사에서 호법의 제자 계현 (시라바드라, śīlabhadra)에 대해 배웠다. 귀조 후, 「유식 삼십배」에 대한 호법의 주석을 중심으로 하고, 다른 학자들의 견해의 소개와 비판을 굳이 번역한 것이의식조유이 시론』이다.

그리고이 책을 중심으로 현지 제자의 자은 대사기 ( 또는엿보기 기지키키)로법상종호소슈가 세워져 중국에서 매우 논리학 적인 유식의 연구가 시작되었다. 실질적인 개조는 기초이기 때문에, 호소 종은 현기창작자비소라고 부르고 있다. 그 후, 현노의 번역경과 지명도 등에 의해 중국의 법상종 은 융성해, 그 결과, 진상의 번역한 논서를 바탕으로 일어난 지론종이나 섭론종은 쇠퇴 하게 되었다 .

그 후 법상종은 도아 키 , 토모도리 , 토호봉 , 현창 등에 의해 일본 에 전해져 나라 시대 사칸에 배워 남도 롯종 의 하나가 되었다. 그 전통은 주로 나라의 코후쿠지호류지야쿠시지 , 교토의 기요 미즈데라 에 받아들여져, 에도 시대 에는 뛰어난 학승이 배출해,논의쿵쿵함께 불교학의 기초학문으로 전해졌다. 유식과 구사론은 매우 난해하기 때문에 '유식 3년 구사 8년'이라는 말도 있다. 메이지 시대 의 폐불 대석 에 의해 일본의 유식의 가르침은 한때 매우 쇠미했지만, 호류지의 사에키 정원의 노력에 의해 부흥 했다 . 호류지가 성덕종 으로, 또 기요미즈데라 가 북법상종 으로 호상종을 이탈한 현재 일본 법상종의 오모토야마는 흥복사  야쿠시지  두가지이다.

식의 전변 편집 ]

유식 사상은 이 세계는 단지 식, 표상 또는 마음이 가진 이미지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외계의 존재는 실은 존재하지 않고,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나타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을 『화엄경』 등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교하고 있다.

또, 시의 생각을 만드는, 삼계는 허망으로 하고, 다만 부디 마음의 작이 되어. 십이연분도 꼭 모든 마음에 의한다.

또 작 시념. 삼계 허망. 단시심작. 십이연분. 부디 의심
——Dafang  Guangfo 꽃 장식 Sutra Ten Land Grade 22-3번째
식이란 마음이다. 마음이 집기 능화하고 주인이 하는 근본에 의하면, 경에 유심이라고 한다. 분별 양달의 근본이기 때문에 이론에 유식이라고 한다. 혹은 경은, 의가 인과에 통하여, 총체적으로 유심이라고 한다. 이론은 단지 원인에 있다고 말하기 때문에, 단지 유식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식은 양별의 의이며, 인위 속에서는 식의 작용이 강하기 때문에 식과 설득하고 유일하게 한정하고 있는 것이다. 의미적으로는 두 가지가 아니다. 『20론』에는, 마음·의·식·료의 이름은 이것 차별되어,라고 설한다.

친자 신야. 유심 집기. 綵畫為主之根本故經曰 유심. 분별 양달 노근 본고. 논란 유식 혹은 經義通因果總言 유심. 논란 유재인 다다이 유식. 識了別義. 재인위 중식용 강고. 說識為唯. 其義無二. 이십론. 심의식 양. 명지 차별.
——Master Ci’en의 Mahayana Dharma Garden의 Yilin 장의 볼륨  3]

그 마음의 움직임을 「식(vijñāna)의 전변 (pariṇāma)」이라고 한다. 그 전환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1. 익은이주쿠- 행동의 성숙
  2. 고려하다시료- 사고라고 불리는 것
  3. 작별료베츠- 대상 식별

의 3개이다. 식의 전변은 구상이다. 그것에 의해 구상되는 곳의 것은 실재가 아니다. 따라서 이 세계 전체는 단지 식별에 불과하다.

제일 능변 편집 ]

이숙이라는 것은 아요야식(근원적이라고 불리는 식지)이며, 모든 종자(bīja)를 내장하고 있다. 감촉·주의·감수·상념·의지를 항상 수반한다. 감수는 불편하고 장애가없는 중성입니다. 느낌 기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근원적 인식은 격류처럼 활동하고 있다. 「폭류와 같은」

제2능변 편집 ]

말나식(mano nāma vijñāna)은 아요야식에 기초하여 활동하며, 아요야식을 대상으로 사고작용을 본질로 한다. 말나식에는 장애가 있는 중성적인 4개의 번뇌가 항상 수반된다. 가미(개인아에 대한 망신), 가치(개인아에 대한 망설임), 참(개인아에 대한 만심), 가애(개인아에 대한 애착)라고 불린다. 그 중에서도 특히, 당인이 태어난 그 같은 세계나 지위에 속하는 것만을 수반한다. 또한 그 밖에 감촉 등을 수반한다.

이 말나식은 자아의식이라고 부를 수 있다. 항상 번뇌가 수반되므로 "더러운 의(마나스)"라고도 불린다. 이 말나식과 의식에 의해, 사량이 있어, 그 의업의 잔재는 역시 종자로서 아요야식에 가습된다.

제3능변 편집 ]

양별이란, 제3의 전변이며, 6종의 대상을 지각하는 것이다.

육식은, 각각 안식이 색(해, rūpa)을, 귀식이 목소리를, 코식이 향을, 혀식이 맛을, 신식이 촉(접하는 것)을, 의식이 법(생각된다) 대상, 개념)을 인식하고 식별한다. 그리고 이 육식도 아뢰야식에서 생긴다. 그리고 말나식과 이 육식이 「현세적인 식」이며, 우리가 의식의 분야로 하고 있는 것으로, 아요야식은 무의식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설명은 아요야식에서 말나식 및 육식이 일어나는 흐름(종자생현행)이지만, 동시에 후자의 활동의 여습이 아뢰야식으로 환원된다는 방향(현행 가오루) 종자)도 있다. 그것이 아라야(=구라)라는 의미이며, 상호 순환하고 있다.

식을 포함한 어떠한 행위도 일찰나만 현재 과거에 지나간다. 그 때에 아요야식에 여습을 남긴다. 그것이 종자로서 아요야식 속에 축적되어 그것이 성숙하고 '식의 전변'을 거쳐 다시 제식이 생겨 다시 행위가 일어난다.

삼성 편집 ]

이러한 식의 전변에 의해, 존재의 형태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3개 있다고 한다.

  1. 편계소 집성 (헨게쇼슈쇼, parikalpita) 구상된 존재 범부의 일상의 인식.
  2. 의타 기성 (에타키쇼, paratantra) 상대적 존재, 다른 의존성 존재
  3. 엔성실성 (엔조지쇼, pariniṣpanna) 절대적 존재, 완성된 존재

이러한 견해는 유식을 기다릴 뿐만 아니라 대승불교의 기본이며, 그 원형이 이미 반청경에 설설되어 있다 .

편계소 집성이란, 아요야식·말나식·육식에 의해 만들어진 대상에 상당하고, 존재하지 않고, 하늘이다.

샤리 히로, 부처님에게단어말씀하얀색이미세리.
“세존. 제법의 실상,윤허이칸가 있을 거야」
부처 말한다.
「제법은 있는 곳 없음. 꼭 같이 있어, 꼭 같이 있을 곳 없음.
— 마야반 와카바라 꿀경상행품 제10

의타 기성과는 상대적 존재이며, 구상이지만, 사물은 다양한 기연이 집합하여 발생한 것(연기)이라고 파악하는 것이다. 아요야식을 풍기는 모든 식의 구상이지만, 이미 그 식의 대상이 없는 것으로 밝혀지면, 식이 대상과 의존관계에 있는 이 존재도 하늘이다.

이름은 꼭 인연화합을 만들 수 있는 법이다. 다만 분별 추상, 가명을 설한다.
꼭 그러므로 보살마 訶薩, 반若波羅蜜을 행할 때, 일체의 이름을 보지 않고.
보이지 않기 때문에 현저하지 않고.
— 마와반 와카나미 라에이 봉사품 제2

원성실성은 부처의 구상이며 절대적 존재라고도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의도 기성과 다른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다. 의타 기성으로부터, 그 전의 편계소 집성을 전혀 소거해 버린 상태가 원성실성이다.

돌아온 다음 샤리 히로. 보살마귀, 제법의 여·법성·실제를 모르고 싶으면, 당시 반약파라밀을 배워야 한다.— Maha Prajna Paramita Book No. 1 서문

이상과 같이, 반청경의 단계에서는 삼성으로서 정리해 정리 기술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시대를 내려 ' 해심밀경 '(현노역)을 기다려 처음으로 제법에 3종의 상이 있다고 설. 이것은 법이 세 종류 있다는 것이 아니라 법은 보는 사람의 경지에 따라 세 가지 모습 형태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우울하게, 제법의 단계에 약어 3종 있다.
3등을 위해서.
1자는 편계소 집상, 2자는 의타 기상, 3자는 엔성실상이다.

云何이 제법의 편계소 집상이 되자.
우울하다, 일절법의 이름, 가안립의 자성 차별이 되어, 혹은 언설을 수기해 받을 수 있기 때문.

云 무엇이 제법의 의타 기상이 되는가.
우울하다, 일절 법의 인연이 일으키는 자성이. 칙칙히 쭈그리고 있지만 그러므로 있다. 이기기 때문에 그를 태어나지 않는다.
우울하고, 무명은 행에 휘두르거나, 순대의 고소를 소집한다.

운 무엇이 제법의 원성실상이 되자.
우울하다, 일절 법평등의 진애나라. 돈의 진여에 있어서 여러가지 보살중, 용맹·정진을 인연으로 이루기 때문에, 여리의 작의·무도한 사유를 인연으로 이루기 때문에, 노치 능숙하게 통달한다. 이츠의 통달에서 점차적으로 수집하고, 무상정등 보제를그렇게 간증하는 것
— 해심밀경 일체법상품 제4

상은 성에 의한 간접적인 표현이지만, 유식한 논서에서는 편계소집성, 의타기성, 원성실성의 삼성이라는 표현이 되어 정교한 이론이 전개되어 된다.

삼성 가운데 첫 편계소 집성은 그 성격에서 보면 이미 무존재하다. 다음으로 의도 기성은 자립적 존재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역시 비어있다. 또한, 동일한 의도 기성은 존재 요소의 절대성으로서 제 3 원성 성질이다. 그리고 어떤 경지에서도 진실 그대로의 모습이기 때문에 진여 라고 불린다. 그 진여는, 어쨌든 「단지 식별만」이라고 하는 진리이다. 이것을 자각하는 것이, 망설임의 세계에서 사토리의 세계로의 전환에 불과하다.

그러나 실천 단계에서 "단지 식별만"이라는 것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 인식 활동이 현상을 전혀 감지하지 않게 되면 '단지 식별만'이라는 진리 속에 안정된다. 왜냐하면 인식 대상이 존재하지 않으면 그것을 인식하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음이 무너지고, 감지가 무너졌다. 그것은, 세상을 초월한 인식이며, 번뇌 장애 (자기에 대한 집착)· 소지 장(외계의 것에 대한 집착)의 2종의 장애를 근절하는 것에 의해, 아요야식이 변화를 일으킨다(전식 득지텐지키 토쿠치). 이것은 즉, 얼룩을 떠난 영역이며, 사고를 초월하고, 선하고, 영속적이며, 기쁨으로 가득합니다. 그것을 얻은 것은 해탈신이며 부처의 법이라고 불린다.오엔 교토모다이엔 쿄우치)。

수행의 계단 편집 ]

유식으로 성불에세 아승키야 칼파스산다이 아소 기자라고 불리면 엄청나게 오랜 시간의 수행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 계단은,펀딩 비트시료가행위굿마스터리 비트쓰다다이공부 장소슈쥬정확히 비트쿠쿠이의 다섯 단계이다.

전식득지 편집 ]

수행 결과 깨달음을 열어 부처가 되면 8개의 '식'은 '지'로 넘어간다. 이것을전식 득지텐지키 토쿠치라고 한다.

  1. 전 오식은쳉 쭤지죠쇼사치
  2. 의식은묘관찰지명관자치치
  3. 말 나식은평등주의 지능쵸도쇼쵸
  4. 아요야식은오엔 교토모다이엔 쿄우치로 굴러 가고 있다.

전식득지의 사고방식은 천대 종이나 진언종 , 티베트 밀교의 닌마파 에게도 계승되고 있다.

유심과 유식 편집 ]

'화엄경'에서는 '집기의 의'에 대해 유심이라고 한다. 『화엄경』은, 깨어난 부처 측에서 말하고 있으므로, 모든 존재 현상이 그대로 벌레로부터의 마음 속에 받아들여져, 전세계·전우주가 마음속에 있다고 한다. 거기서, 모든 인기를 모으고 있기 때문에 「집기의 의」에 대해서 유심이라고 말한다.

유식론에서는 '양별의 의'에 대해 유식이라고 한다. 유식에서는 범부 (우리 보통의 인간)의 측에서 말하고 있으므로, 인간의 것의 사고방식에 대해서 보고 가고 있다. 모든 존재현상은 인간이 인식함으로써, 미즈카가 인식추론할 수 있는 존재현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미즈로부터가 승낙해 분별 하고 있다 . 거기서 「료별의 의」에 대해서 유식이라고 한다. 마음이 아니라, 식으로 하고 있는 것은, 각각의 양별하는 일의 몸에 대해 「식」으로 하고 있는 것이며, 기관이 아니다. 기관은 존재 현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유심이라고 해도 유식이라고 해도 그 본질은 하나이다. 자세하게 나누어 논하지 않으면, 「유심」의 말은, 수행하는 단계(인위)에도 깨달아 부처가 된 단계(과위)에도 통하지만, 「유식」이라고 칭할 때에는, 인간이 어떻게 인식 추론할지에 따라 깨달음을 열기 전에 수행중인 단계 (인위)에만 통용한다. 「유」라고는 간별의 의미로, 식 이외에 법(존재)이 없는 것을 간별해 「유」라고 한다. 「식」이란 양별의 의미이다. 양별의 마음에 약어 3종(초능변, 제2능변, 제3능변), 광의에는 8종(팔식) 있다. 이것을 정리해 「식」이라고 하고 있다.

식과 존재 편집 ]

유식이라고 해서 이상과 같이 유팔식만이라는 것은 일체의 일이 이 팔식을 떠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팔식 외에 존재(제법)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대략 구분하여 오법(5종류의 존재)으로 하고 있다. (1)  , (2) 심장 , (3)  , (4)불상응, (5) 무위 이다. 앞의 네 가지를 「사」로, 마지막을 「이」로, 오법 사리라고 한다.

  1. 마음 (심왕, citta)-식 자체 그 자체. 마음의 중심체로 「팔식심왕」이라고도 불린다.
  2. 심장 (caitasika) - 식의 작용. 심왕에 부수하여 일하는 미세한 마음의 작용으로, 더욱 6종류로 분류해, 유행·별경·선· 번뇌·수반고·부정(부정)으로 해, 한층 더 세세하게 51의 심장 으로 나눈다 . 심 소유법 , 심수법 으로도 번역된다.
  3.  (rūpa) - 육체나 사물 등의 소위 물질적인 것으로 인식되는 마음과 심장이 드러난 것.
  4. 부상응행 (viprayukta-saṃskāra) - 마음과 심장과 색분위의 차별. 마음도 물질도 아니고, 게다가 현상을 현상시키는 원리가 되는 것.
  5. 무위 (asaṃskṛta) - 전 4법의 실성. 현상의 본질이라고도 할 만한 진여 .

한층 더 마음을 8, 심장을 51, 색을 11, 부상응행을 24, 무위를 6으로 나누어 따로따로 상정해, 모두로 백종으로 나누는 것으로부터, 5위 백법이라고 불린다 . 또한, 이사론에서는 ' 5위 755법 '을 설명하고 있어 그것을 발전시킨 것으로 생각된다.

미시마 유키오와 유식 편집 ]

미시마 유키오 의 마지막 작품이 된 '도요요미의 바다 ' 4부작은 유식을 모티브 중 하나에 도입하고 있다. 제4부 「천인 오쇠」의 최종회 입고일에, 미시마는 육상 자위대 이치가야 주둔지 에서 할복 자결 ( 미시마 사건 )했다.

시부자와 류코는 미시마가 유식론에 열중하고 있던 것을 '미시마 유키오를 둘러싼 단장'에서 언급하고, 유식론이란 무엇인가를 미시마에게 묻힌 종교학자인 마츠야마 슌타로가 「저것은 기분이 되지 않아 모르는, 정기적 인 사람에게 알 수 없다. 유식설의 잘되어있는 곳은, 방금 물속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어, 모르는 사이에 다리까지 물이 오고, 모르는 사이에 익사 그렇다고 하는 식으로 되어 있다. 그것은 큰 철학의 논리 구조이며, 사상이라고 하는 것이다」라고 말한 이야기, 그것을 들은 우메하라 맹이 「감심하고 있는 미시마도 미시마이지만, 이런 바보 같은 설  얻어 라고 개진하고 있는 불교학자도 없는 것이다”라고 비판한 이야기를 접하고 있다. 또, 시부자와 택을 방문한 미시마가, 접시를 한 장 수평으로 하고, 다른 한 장을 그 위에 수직으로 세우고, 「요컨대 아요야식이라는 것은, 틀림없이 교차하고 있는 원점이 아닐까」라고 말하기 때문에, 「미시마씨, 그럼 아라야시키가 아니고, 사라야시키(접시 ​​저택)겠지」라고 놀랐던 이야기도 소개하고 있다[4 ] .

관련 서적 편집 ]

주·출처 편집 ]

  1.  유식한 원어( 산스크리트어 )는 vijñapti-mātratā 또는 vijñāna-vāda이다. vijñapti는 "알리는"의 의미이고, matra는 "단지 그것만"이라는 의미이다. vijñāna 는, 「알다」(jñā)의 어근에 「구분한다」라고 하는 접두사 「vi-」가 붙어 있으므로, 「구분해 아는 것」이며, vāda 는 「설」이라고 하는 의미이다.
    • "다리에 비록 젊음이라고 하는 것은, 이것을 번역하면 식이 된다.식과는 양별의 의이다.식의 자상과, 식의 상응과, 식의 소변과, 식의 분위 라고, 식의 실성과 오법의 사리는 모두 식을 떠나지 않고, 이것에 의해 유식이라고 명명한다. 해당 개소는 다이쇼쿠라 모두 불리식 고명 유식.)
    • (미륵 보살이 말한다) “아, 십방 유식을 포기함에 따라, 식심 원명해. 라고 한다.」 -- 『수양엄경』권 5. 해당 개소는 다이쇼쿠라 T0945_.19.0128a19 - 20(我以諦觀十方 유식.식심 圓明入圓成實.遠離依他及遍計執.得無生忍斯爲第一). 덧붙여 「수양엄경」이란 하토마라 센역 의 「목양엄삼매경 (중국어판)」이 아니라, 일반 자밀제(반라같은, 중국어판 )역 「대불정여래 밀인수증 양의제 보살만행수양엄경』10권의 약자이다.
  2. ^ 무상 유식과 유상 유식과는 아요야식을 어떻게 보는지 큰 차이점이 있다. 무상 유식은 아요야식도 하늘로 궁극적으로 부정하고 부처가 개체로 현상해 보는 것으로 보이는 것을 알 수 없는 절대 지식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유상 유식은 아요야식을 실유의 식체로 간주하고, 그것이 변화해 보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 생긴다는 설을 세운다. 이 설에 의하면, 절대 지를 얻어도, 아요야식 그 자체가 부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푹 빠져 있는 번뇌의 잠세력이 근절된다고 설하기 때문에, 절대 지에 있어서도 , 보는 것으로 보이는 것은 거기 있을 것이다.
  3.  해당 부분은 다이쇼쿠라 T1861_.45.0260a24 - 29
  4. ↑ 가마쿠라 문학 산책 아야케 나츠오, 마츠오 순조, 보육사, 1993
  5. ^ 모로 시게키, 1972년, 오사카부 출생. 하나조노대학 문학부 문화유산학과 교수.
  6.  보다 후지 카즈히로(1947 - 2001년), 정신과 의사, 전 고베 여학원 대학 교수. 흐릿한 경묘한 맛의 산케이 신문 연재의 「가족 진찰합니다 (나중에 인생 응원단에 개제)」의 코너를 담당. 『나, 암입니다 어떤 정신과 의사의 내병기』를 저술. 카야마 리카 나고 코시 야스 후미의 스승이기도 했다.
  7. ^ 요리토는 미시마의 『풍요의 바다』를 의식해 이 책을 썼다.

관련 항목 편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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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sciousness only

Source: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Yuishiki (Sanskrit: विज्ञप्तिमात्रता Vijñapti - mātratā) is one of the views of Mahayana Buddhism that an individual and all existence for an individual consists of only eight types of consciousness (eight consciousnesses). It is one ( the Yugagyo Yushin school ). Here, the eight types of consciousness refer to the five senses (visual, auditory, olfactory, gustatory, and tactile), consciousness, and two layers of unconsciousness. Therefore, these eight types of consciousness collectively include a wide range of representations and cognitive acts of an individual, as well as all states of consciousness and areas of the individual's unconscious that interact with them.

If all beings are nothing more than individually conceived consciousness, then they are subjective beings and not objective beings. These existences are impermanent, and at times they will repeat their births and deaths and eventually disappear into the past. In other words, these existences are "empty" and have no substance (the emptiness of all laws). In this way, only consciousness is thenulleatis based on the idea of In addition, only consciousness and idealism in Western philosophy are fundamentally and finally distinguished (described later).

Overview edit ]

Only-conscious thought asserts that the world for each individual is nothing more than a representation (image) of that individual, and assumes eight kinds of "consciousness" (eight senses theory).

An example of a conceptual diagram of the Eight Principles
  • First of all, senses such as sight and hearing are also considered to be consciousness in terms of only consciousness. It is believed that there are five senses, each of which is visual, auditory , nasal , gustatory , and physical . , touch , etc.). These are collectively called the " previous five senses ."
  • Then comes consciousness , or conscious awareness. Since it is the sixth, it is sometimes called " sixth consciousness ", but it has the same meaning. Also, combining the previous five senses and consciousness, the six senses orin forceperformanceIt says.
  • under itManas consciousnessManashikiIt is assumed that the subconscious called is the mind that continues to cling to itself even when you are asleep or awake. During deep sleep, the action of consciousness ceases, but even during that time, the inner consciousness is active and is said to be attached to the self.
  • Underneath this is the fundamental consciousness called Araya-vijñāna, which gives rise to the five pre-consciousness, consciousness, and final consciousness, which in turn gives birth to the body and interacts with other consciousness . It is also thought that the world is what we think of as the "world".

If all beings are only individually conceived consciousness, then they are subjective beings and not objective beings. These existences are impermanent, and at times they will repeat their births and deaths and eventually disappear into the past. That is to say, these existences (colors) are 'empty' and are insubstantial (color is emptiness) .

Yushiki is a system of thought with an epistemological tendency advocated by a sect of early Mahayana Buddhism called Yugagyo Yuishikigaku, which appeared in India in the 4th century. Yugagyo only school is the middle schoolnulleatEven though I inherited the thought, I tried to gain enlightenment by controlling and changing the way of the mind by supposing that the function of the mind exists for the time being, and changing it (Yoshiki Mukyo . = There is only consciousness, the outside world does not exist).

It is said that the colors (shiki, matter) of this world consist only of mental actions, so it is sometimes seen on the same level as Western spiritualism . However, in Eastern thought and Buddhist monotheism, the existence of the mind is provisional, and its mental function is ultimately denied (Consciousness fades awayKyoto Kikumin, the outside world and consciousness disappear). Therefore, only consciousness and idealism are quite different in this respect. In addition, since only consciousness emphasizes the realm of the unconscious, it is clearly different from idealism, which states that ``consciousness defines all existence''.

Only-conscious thought had a wide influence on later Mahayana Buddhism in general.


Consciousness interactions and enlightenment edit ]

Etymologically, only consciousness means "only awareness" [1] .

There is no "thing" outside the mind edit ]

The basis of Mahayana Buddhism is that all things in this world are based on dependent origination, that is, relationships. The monotheism theory complements that theory, and believes that people only recognize the phenomenon, and that there is no physical existence outside the mind. This is called ``Yui-shiki Mukyo'' (the ``boundary'' is the world outside the mind) or the boundary of Yui-shiki Shohen (things in the external world can be changed by shiki). In addition, each human being recognizes the world created by the Alaya-sensei deep within each person's heart ( human-human only-sense ). Feeling as if there is a common objective world with others is the seed (Kuyu SeedsKuyu's master, later) exists.

Ayaya-shitsu and the workings of seeds edit ]

When a human being does something, speaks, or thinks, the effect is recorded in something called the seed (the content of the aya-sensei), and is thought to be stored in the aya-sensei thistrainingKunjuuIt says. Just as a scent permeates a garment, the influence of actions is stored in the Ayaya consciousness (Current Kaoru seedsGengyo-kun Shuji). For this reason, aya-shiki is also called kura-shiki or issai-seedashiki . ʻAraya' in ARAYASHIKI is a Sanskrit word meaning ʻa storehouse'. Furthermore, each seed has the potential to interact with each other within the arya consciousness and produce new seeds (Seed begets seedShuji Shoshuji)。

In addition, the seed may jump out of the aya-consciousness and act on the final-consciousness/consciousness. Furthermore, when the five senses (sight, hearing, smell, taste, and touch) are acted upon, they may receive edge from phenomena in the external world. This seed passes through consciousness and the final consciousness from the previous five senses, jumps into the Alaya consciousness, and is trained as a seed by the Alaya consciousness. This is considered to be thinking and recognition of the external world (Current seed productionShuji Shogengyo). this cycleAyayashi EngiArayashiki EngiSay.

Ultimately, the mind has no substance edit ]

This change in consciousness is impermanent , repeating birth and death in an instant ( setsunametsu ), and when that moment ends, it disappears into the past.

Since we grasp the self and the world surrounding ourselves in this way, all things that we think of as ``things'' are only ``phenomena'', ``empty'' and insubstantial. At the same time, however, he argues that both the seed and consciousness itself are phenomena and do not have substance. This is subtly different from idealism in Western thought . The existence of the mind is also an illusion-like, dream-like existence ( empty ), and ultimately its existence is denied (Kyoushigubi).

When it is simply called 'Yushiki,' it may refer to Yuishiki sect ( Hosso sect ), Yuishikaku sect, and Yuishiku.

Characteristics of only-minded thought edit ]

It is a system of thought that doctrinally supports the wisdom obtained from yoga practice (meditation), which is a more refined form of yoga, an ancient Indian training method, in order to master the central tenets of Buddhism, impermanence and selflessness .

  1. Categorize the movement of your heart and set up eight senses. In particular, Senna-shiki and Araya-shiki were the first to pay attention to the field of the unconscious as deep psychology.
  2. The state of the outside world that oneself and oneself perceive,three sexesSanshoSummarized as a theory, I explained that the perception of the world differs depending on the stage of training.
  3. Through the practice of yoga, the concrete view of "only-mindedness" was systematized doctrinally.
  4. He argued that the one-way preaching of the Lotus Sutra was expedient and that not everyone could attain Buddhahood. (5 genders)
  5. By the time you reach BuddhahoodThree Asamkhya KalpassandalsIt was called and said it would take an unreasonable amount of time.
  6. While inheriting the emptiness of the Hannya Sutra , first of all, from the standpoint that wisdom exists temporarily, we try to reach enlightenment through the practice of yoga practice .

Founding and development edit ]

Only consciousness was established and systematized in India , passed through Central Asia , was transmitted to China and Japan , and spread to Tibet , forming the basis of Mahayana Buddhism . It was studied as a basic study of Buddhism along with Kusharon , and research continues even today.

Establishment and development in India edit ]

Yushiki is the middle Mahayana Buddhist scriptures, following the flow of the early Mahayana scriptures " Hannya Sutra " ``Issue all emptiness'' and the `` Kegon Sutra'' ``Sankaisaku Yuishin'' of the Jujibon.Depths of Mystery SutraGejinmitsukyo』『Mahayana Abi Daruma SutraDaijo Abidatsumakyouwas established as It is thought that there was a long period of contemplation and discussion through the practice of a group that practiced yoga practice (meditation).

As a theory , it originated from Maitreya and was perfected by brothers Asanga and Vasbandhu . Unauthored is "Mahayana theoryhome watering can", the world parent said "Thirty Songs of ConsciousnessYuishiki Sanjuju, and `` Twenty Routines of only consciousness ''. In ``Only Consciousness Twenty Theory'', while strongly asserting that ``the world is nothing more than an individual's representation and perception,'' he also argued that there is an indescribable substance. In `` Thirty Admirals of Only Understanding ,'' he advocated the above-mentioned Eight Senses theory, and partially showed deep psychological and biological tendencies. Regarding Maitreya, there is a theory that he is a real person in history, and there is a theory that he is a future Buddha.Tushita dayTosotsutenThere are two theories, one is that it is Maitreya Bodhisattva in Japan, but it has not been settled.

It is said that ten major disciples appeared after Seshin. Only the Nalanda Monastery (Nālanda), built in the early 5th century , was actively studied. At the beginning of the 6th century, Guṇamati from Nalanda moved to Valabhī in West India, where his disciple sthiramati wrote a commentary on the Thirty Admirals of Only Wisdom . and taught many disciples. This lineage is called "Nirākāravādin" (Nirākāravādin) [2] .

This school of thought was introduced to China by Paramārtha, and was extensively studied for a period of time as the Jiron sect and the Setron sect .

On the other hand, Dignāga , who was active in the early 5th century , further developed the theory of Seichi's book `` Twenty Routines of Only Understanding '' to express ``Kanshoenron'' (ālambanaparīkṣā), the lineage of which is ``yes''. It is called sākāravādin, but it was transmitted to asvabhāva (around the first half of 6C) and Dharmapāla, and was actively studied and studied at the Nalanda Temple.

Spread to China and Japan edit ]

Xuanzang , a study abroad monk who went to India from China , studied under the disciples of the law, śīlabhadra, at this Nalanda temple . After returning to Japan, he translated "Thirty Advice on Yui Shiki", introducing the opinions of other scholars and criticizing them, centering on the commentaries on the Dharma.ConsciousnessJoyuishi Kironis.

Then, centering on this book, Xuanzang's disciple Jion Daishiki ( orpeep basedevice) byHoso sectHossoshuwas established, and a highly logical study of monotheism began in China. Since the de facto founder is the foundation, the Hosso sect calls GenjooriginatorBisoare called separately. After that, the Hosso sect in China prospered due to Xuanzang's translation of the sutras and its popularity , and as a result, the Jiron sect and the Setron sect , which arose based on the treatises translated by Shintetsu, declined.

After that, the Hosso sect was introduced to Japan by Dosho , Chimitsu , Chiho , and Genbo , and it became one of Nanto's six sects after it was studied at the height of the Nara period . This tradition was inherited mainly by Kofuku-ji Temple , Horyu-ji Temple and Yakushi - ji Temple in Nara, and Kiyomizu-dera Temple in Kyoto .DiscussionKusharonAlong with this, it was passed down as a basic study of Buddhism. There is also the phrase ``only knowledge for 3 years and 8 years for Kusha'' because it is very difficult to understand only knowledge and kusha theory. Due to the abolition of Buddhism in the Meiji period , Japan's sensible teachings temporarily declined, but they were revived through the efforts of Sadatane SAEKI of Horyu-ji Temple . Horyuji has left the Hosso sect as the Shotoku sect, and Kiyomizudera has seceded from the Hosso sect as the Kita Hosso sect , and Kofuku-ji Temple and Yakushi- ji Temple are the main temples of the Hosso sect in Japan.

Change of consciousness edit ]

Only-conscious thought claims that the world is merely a consciousness, a representation, or an image in the mind. The existence of the external world does not actually exist, but only appears as if it exists. This is explained in the "Kegon Sutra" as follows.

Also, create your own thoughts, make the three worlds illusions, but only create your mind. It depends on everyone's heart.

I regret to make it again. Delusion of the Three Realms. However, it is made by heart. Twelve rims. All devotion
——Dafang  Guangfo Flower Adornment Sutra Ten Land Grades Twenty-Second Third
Consciousness is mind. It is said that the sutra is based on the root that the mind gathers and forms as the master. Because it is the basis of understanding and understanding, it is called only consciousness. Alternatively, the sutra says that righteousness leads to cause and effect, and is generally said to be pure mind. The theory is called only consciousness because it preaches that there is only a cause. Shiki is the meaning of understanding, and since the function of Shiki is strong within Ini, it is explained as Shiki and limited to Yui. It's not literally two things. In "Twenty Ron", he preaches that the names of mind, consciousness, consciousness, and ryo are discriminatory.

Intellectual Shinya. Yushin gathering. The main source of the work is Yuishin. Reasonable Tatsuno's root cause. A mere conscience or a mere thought of the general cause and effect. Argument only exists, but only consciousness. Differentiate. Because of the strength of the presence of the origin. Only for understanding. There is no other reason. Twenty words. Conscious mind. name discrimination.
——Volume  1 of Yilin Chapter of the Mahayana Dharma Garden of Master Ci’en 3]

This movement of the mind is called the transformation (pariṇāma) of consciousness (vijñāna). There are three types of transformation, which are

  1. RipeIjuku- maturity of the act
  2. considerShiryo- what is called thinking
  3. farewellRyobetsu- Target identification

are three. The transfiguration of consciousness is a conception. What is conceived by it is not real. Therefore, the whole world is only identification.

First Nohen edit ]

The different maturity is the aryaya-consciousness (knowledge called primordial), which contains all the seeds (bīja). It always accompanies touch, attention, sensation, thought, and will. Sensitivity is unbiased, and it is undisturbed and neutral. Feeling and others are also the same. And the primordial knowledge is active like a torrent. "Like a Storm"

Second Nohen edit ]

Final consciousness (mano nāma vijñāna) acts on the basis of alaya-consciousness, takes alaya-consciousness as its object, and has thinking action as its essence. The final knowledge is always accompanied by the four disturbing androgynous worldly desires. They are called Gami (belief about the individual self), Gachi (confusion about the individual self), Patience (conceit about the individual self), and Gaai (attachment to the individual self). Above all, it accompanies only that which belongs to the same world or station in which it is born. In addition, it accompanies feeling and the like.

This ultimate consciousness may be called ego consciousness. It is also called "dirty mind (manas)" because it is always accompanied by worldly desires. With this final knowledge and consciousness, there is thought, and the remnants of that intentional karma are also cultivated by the aya consciousness as a seed.

Third power change edit ]

Reconciliation is the third transmutation, perceiving six kinds of objects.

The six senses are: eye sense for color (shiki, rūpa), ear sense for voice, nasal sense for scent, tongue sense for taste, body sense for touch (things that can be touched), and consciousness for law (thinking). object, concept). And these six consciousnesses also arise from the aya consciousness. The final consciousness and these six consciousnesses are the 'current consciousness', which we regard as the field of consciousness, and the Araya consciousness is the unconsciousness.

The explanation so far has been about the flow from the aya-shiki to the final and 6-shiki (Tanesei Gengen). seeds) are also available. That is the meaning of Araya (= storehouse), and it circulates with each other.

Any act (karma), including consciousness, is present for a moment and passes into the past. At that time, he left an extra lesson for Ayayashiki. It accumulates as a seed in the aya-consciousness, matures, undergoes a ``transformation of consciousness,'' and various consciousnesses arise again, and actions occur again.

Trinity edit ]

Suppose there are three ways to see the mode of existence through this transformation of consciousness.

  1. parikalpita , conceived existence The everyday perception of ordinary people.
  2. Dependency (paratantra) Relative existence, existence dependent on others
  3. Enjojissho (pariniṣpanna) absolute existence, perfected existence

Such a view is the basis of Mahayana Buddhism without waiting for only consciousness, and its prototype has already been preached in the Hannya Sutra .

Pervasive obstinacy corresponds to the object created by the Ayaya-shiki, Mina-shiki, and Six-consciousness, which does not exist and is empty.

Shariputra to BuddhaWordwordsofwhitealreadyAuction.
"World-Honored One. Reality of laws,Yun HenoThere is,"
said the Buddha.
"There is no place for various laws. There is no place like this, there is no place like this. Not knowing this is called ignorance."
— Maka Hannya Haramitsu Sutra Act No. 10

Dependency is a relative existence, and although it is a conception, it is to perceive that things are caused by the gathering of various chances (engi). Although it is the conception of all consciousness, including aya-consciousness, if it becomes clear that the object of that consciousness is nothing, then this existence, which is dependent on the object, is also empty.

A surname is a law that can create a harmony of fate. However, I preach a sensible recollection and a pseudonym.
Therefore, when performing Bodhisattva Mahkasatsu and Prajnaparamitsu, he does not look at any surnames.
I did not write because I could not see.
— Maka Hannya Haramitsu Sutra Offering No. 2

Engagement is a conception of Buddha and can be called an absolute existence. This is neither different nor different from dependentness. Enseisei is the state in which the previous obsessiveness has been completely eliminated from the dependent nature.

After returning, Shariputra. Bodhisattva Mahkasattva, if you want to know the nature, nature, and reality of all the Dharma, you should study the Prajnaparamitsu.— Preface to Maha Prajna Paramita Book No. 1

As mentioned above, at the stage of the Hannya-kyo Sutra, the three natures are not collectively described. After going back in time and waiting for the " Explanation of the Deep Mistra " (translated by Xuanzang), he preached that there are three aspects of various laws. This does not mean that there are three types of law, but that the law manifests itself in three different forms depending on the state of the person who sees it.

In short, there are three types of laws.
Do something like three.
The first is Hengesho Shiso, the second is Yorita Kiso, and the third is Ensei Jitsuso.

What is the ruler of all laws?
So to speak, in the name of all laws, self-discrimination on temporary grounds, or for the purpose of commanding discourse.

What are the origins of various laws?
In other words, it is the natural nature of the relationship between all laws. Therefore, there is this, therefore there is this. Because this is born, he is not born.
It is said that ignorance leads to ignorance or invites pure suffering.

What is the true meaning of the various laws?
In other words, it is the truth of all legal equality. In this truth, the bodhisattvas of all the bodhisattvas, because of their bravery and diligence, and because they regard Nyori's intentions and indomitable thought as their fate, are able to convey this. Gradually collect in this notice,directiondevilto testify to
— Depth and Secret Sutra All Legal Compatibility No. 4

It is an indirect expression that phase depends on sex, but in the treatise on only consciousness, it is expressed as the three natures of obsessiveness, dependentness, and enseijitsu, and elaborate arguments are developed. Become so.

Of the three natures, the first, omnipotent obstinacy, by its nature, is already non-existent. Dependency is also empty, because it lacks independent existence. In addition, the same dependency-occurrence is the third circumstantiality as the absoluteness of the element of existence. And in any state, it is called true because it is the appearance of the truth as it is. The true state of things is the truth of "only discernment". Awareness of this is nothing less than a change from the world of confusion to the world of enlightenment.

However, in the practical stage, we must not insist on ``only discernment''. When the activity of cognition ceases to perceive phenomena at all, it settles in the truth of 'only discernment'. This is because if the object of recognition does not exist, there is no recognition of it either. It became mindless, senseless. It is a perception that transcends the world, and by eradicating the two types of obstacles of worldly desires (attachment to self) and shochi (attachment to things in the external world), aya-shitsu brings about changes (Acquisition of knowledgeTenjiki Tokuchi). This is the realm apart from dirt, beyond thought, good, lasting and joyous. Those who obtain it are liberated and called the Dharma of the Buddha (Oen KyotomoDaienkyo)。

Level of training edit ]

To attain Buddhahood with only consciousnessThree Asamkhya KalpassandalsIt is said that it requires a tremendously long time of training. That staircaseFunding bitShiryouirankequipmentmastery bitthreestudy placeall overExactly bitKukyoiThere are five steps.

Transcendent wisdom edit ]

When one attains enlightenment as a result of training and becomes a Buddha, the eight 'knowledge' transforms into 'wisdom'. thisAcquisition of knowledgeTenjiki TokuchiIt says.

  1. the previous five sensesCheng ZuozhiJosho SachiTo
  2. Consciousness isclever observationmyokan zatsuchiTo
  3. The final knowledge isegalitarian intelligenceByodoshochiTo
  4. Ayaya consciousness isOen KyotomoDaienkyois said to turn into

The concept of transshiki-tochi has been inherited by the Tendai sect , the Shingon sect , and the Nyingma sect of Tibetan Esoteric Buddhism .

Mindfulness and consciousness edit ]

In "Kegon Sutra," Yuishin refers to 'the righteousness of gathering'. Since the Kegon Sutra speaks from the standpoint of an enlightened Buddha, it is said that all phenomena of existence are taken into one's mind as they are, and that the whole world and the universe are within one's mind. Therefore, since all the origins are collected , it is said that "the righteousness of the collection" is Yushin.

In the theory of only consciousness, ``the righteousness of Ryobetsu'' is called only consciousness. Since I am speaking from the side of ordinary people (usually human beings), I am trying to look at the human way of thinking. By recognizing all phenomena of existence, they can become phenomena of existence that they themselves can recognize and infer, so they themselves accept and distinguish them. Therefore, it is said that ``Ryōbetsu no Gi'' is only conscious. It is not the mind, but the 'consciousness' of the body that works to understand each other, not the organ. Organs are existing phenomena.

However, even if it is called mindlessness or only consciousness, its essence is one. Discussed in detail, the word yuishin can be understood both at the stage of training (ini) and at the stage of attaining enlightenment and becoming a Buddha (attainment). Since it depends on whether or not one recognizes and infers it, it is applicable only to the training stage (Ini) before attaining enlightenment. 'Yi' has a simple meaning, and simply 'Yi' means that there is no law (existence) other than Shiki. "Ki" means understanding. Ryobetsu no Kokoro has 3 types (first power change, 2nd power change, and 3rd power change) for short, and 8 types (Hakshiki) in a broad sense. Collectively, this is called “knowledge”.

Consciousness and Being edit ]

To say that there are only eight consciousnesses, as described above, means that all things do not depart from these eight consciousnesses. It is not that there is no existence (dharma) other than the Eight Consciousness. They are roughly divided into five laws (five types of existence). (1) heart , (2) heart , (3) color , (4) disproportionate, (5) idleness . The first four are ``things,'' and the last is ``ri.'' These are called the five laws.

  1. (心王, citta) - consciousness itself. It is the central body of the mind and is also called the "eight minds".
  2. Caitasika - the function of consciousness It is a detailed mental action that accompanies Shin-O, and is further classified into 6 types: Pilgrimage, Bukkyo, Goodness, Worldly Desires, Zuisly Worldly Desires, and Uncertainty , and further divided into 51 more detailed hearts . It is also translated as mind ownership method and heart number method .
  3. Color (rūpa) - Manifestations of mind and heart, perceived as so-called material things such as bodies and things.
  4. Unsuitable behavior (viprayukta-saṃskāra) - Discrimination between mind, heart and color quantiles. It is neither mind nor matter, and it is the principle that makes phenomena phenomena.
  5. Wuwei (asaṃskṛta) - the substance of the four former laws. Truth that should be called the essence of the phenomenon .

Furthermore, they are divided into 8 minds, 51 minds, 11 colors, 24 unsuitable actions, and 6 non-actions, and are divided into 100 types in total, so they are called Goi Hyakuho In addition, Kusharon preached ' Five rank seventy-five law ', and it is considered that he developed it.

Yukio Mishima and Only Consciousness edit ]

Yukio Mishima 's last work, the " Sea of ​​Fertility " tetralogy, incorporates sensibility as one of its motifs. On the day of the final draft of Part 4, " Tennin Goshui ", Mishima committed suicide by committing suicide ( Mishima Incident ) at the Ground Self-Defense Force Ichigaya Garrison .

Tatsuhiko Shibusawa touched on Mishima's enthusiasm for philosophical theory in "Fragments about Yukio Mishima", and when Mishima asked him what philosophical theory was, Shuntaro Matsuyama, a religious scholar, said, ``That must be a madness . There is no way that a sane person would understand.The only good thing about the theory is that there is a staircase going down into the water, and before you know it, the water will reach your feet, and before you know it, you will be drowning. It is the logical structure of a large philosophy, it is what we call thought.” When Takeshi Umehara heard this, he said, “I admire Mishima, too, but I think I have come up with such an absurd theory . There are no Buddhist scholars who have disclosed it as such," he said. Also, when Mishima visited Shibusawa's house, he placed one plate horizontally and another plate vertically on top of it and said, ``In short, the aya-sense is that the time axis and the space axis are distorted like this. I think it's the origin that crosses the other," so I introduced a story that I teased, "Mr. Mishima, it's not Arayashiki, but Sarayashiki "

Related books edit ]

Notes and sources edit ]

  1. ^ The original ( Sanskrit) word for consciousness is vijñapti-mātratā, or vijñāna-vāda. Vijñapti means "to make known" and mātra means "only". vijñāna is the root of ``to know'' (jñā) and has the prefix ``vi-'' meaning ``to divide'', so it means ``knowing by division'', and vāda means ``theory''.
    • "The word 'Bijakoshitsu' in Brahma translates into 'Ki'. 'Ki' is the meaning of understanding. 'Ki's own aspect', 'Ki's correspondence', 'Ki's changes', and 'Ki's division'. And the reality of consciousness and the facts of the Five Dharma do not leave consciousness.This is why we call it only consciousness." The relevant passage is Taishozo T1861_.45.0260a10 - 12 Everyone is ignorant and ignorant.)
    • (Miroku Bodhisattva says) "By resigning myself to the Ten Directions only, I am enlightened. When I enter perfection and fruition, I get rid of my self-esteem and omnipotent obsession, and I gain immortal endurance. This is the first. I will do it." -- " Shuryugonkyo " Volume 5. The relevant passage is Taishozo T0945_.19.0128a19 - 20 (I have only one view of the ten directions. Conscientious mind enlightenment enlightenment. Long-distance reliance and pervasiveness. Acquisition of non-life ninja is the first). It should be noted that the ``Shūrakugon Sutra'' is not the ''Shūrakugon Sanmai Sutra (Chinese version) '' translated by , but the ``Daibutsucho Nyorai Mitsuin Shusho'' translated by Banramitai ( Chinese version ). It is an abbreviation of Volume 10 of Ryōgi Sho Bodhisattva Ten Thousand Lines of the Sutra.
  2. ^ There is a big difference in how aya-consciousness is viewed between uni-consciousness and uni-consciousness. Mukai-only consciousness also categorically denies aya-sense as emptiness, and preaches that the Buddha manifests as an individual, and that absolute knowledge is obtained in which the seer and the seen are not separated.
    The existence-only consciousness considers the aryaya-consciousness to be the body of real existence, and puts forward the theory that it changes to give rise to the seen and the seen. According to this theory, even if one obtains absolute knowledge, it does not negate aya-knowledge itself, but rather eradicates the latent power of worldly desires contained within it. , the seer and the seen must be there.
  3. ^ The relevant part is Taishozo T1861_.45.0260a24 - 29
  4. Kamakura Literary Walk Natsuo Ataka, Junzo Matsuo, Hoikusha, 1993
  5. ^ Shigeki Moro was born in Osaka in 1972. Professor, Department of Cultural Heritage, Faculty of Letters, Hanazono University .
  6. ^ Kazuhiro Yorifuji (1947-2001), psychiatrist, former professor at Kobe College . She is in charge of the corner of the Sankei Shimbun serialization, "Family Examination (later renamed to Life Support Team)", which has a silly and light taste . She authored "I am cancer, a memoir of her psychiatrist's disease resistance". She was also the teacher of Rika Kayama and Yasufumi Nagoshi .
  7. ^ Raifuji wrote this book with Mishima's " Sea of ​​Fertility " in mind.

See also edi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