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5/29

2020 테오도르 준 박 - ‘하버드 출신 스님이 승복 벗은 까닭

‘이뭣고’ 화두로 30년···하버드 출신 스님이 승복 벗은 까닭

‘이뭣고’ 화두로 30년···하버드 출신 스님이 승복 벗은 까닭
중앙일보입력2020-02-14

“이대로 가다가는 ‘제일 잘 복종하는 제자’가 될 것 같았다. 이걸 깨지 않으면 영원히 갇힐 것 같았다.”

10일 서울 광화문에서 테오도르 준 박(55)을 만났다. 지금은 머리도 기르고, 캐주얼복을 입고 있다. 승복을 벗기 전만 해도 그의 법명은 ‘환산 스님’이었다. 재미교포인 그는 미국 하버드대를 졸업한 뒤 머리를 깎고 송담(94) 스님의 제자가 됐다. 출가한 지는 꼬박 30년, 송담 스님의 시자 생활만 무려 15년간 했다. 송담 스님 역시 그를 각별히 여긴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러던 그가 2년 전에 돌연 환속했다. 왜 그랬을까. 2014년 첫 인터뷰 후 7년 만에 마주 앉은 그에게 물음을 던졌다.






테오도르 준 박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참선을 가르치기도 했다. 최정동 기자



Q : 왜 승복을 벗었나.

A : “내가 사는 모습이 진실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Q : 진실하지 않다는 건.

A : “성직자의 혜택이 뭔가. 세금 안 내고, 공짜로 먹고 자고, 모든 걸 받으며 산다. 나도 그걸 당연시했다. 그런데 너무 가식적으로 변하고 있는 나 자신이 보이더라. 내가 가르치는 것을 정말 내 깊은 마음속에서, 나의 인생에서 실천하고 있는가. 떠들기만 하고 사는 건 아닌가. 내가 정말 싯다르타의 정신대로 살고 있는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출가 당시 그는 22살이었다. 지금은 한국말이 상당히 유창하다. 출가 당시에는 한국말을 거의 못했다. 층층시하 엄격한 절집 문화가 그에게는 큰 부담이었을 터이다. 그럼에도 그는 무려 30년 세월을 송담 스님 아래서 출가자로 살았다. “어느새 복종하는 마음이 내게 배이더라. 새로운 걸 개발하고, 실험하고, 시도하는 것보다 순종하는 방식에 익숙해져 있더라. 그게 습관이 되고, 나는 그 습관의 노예가 되어 있더라. 그래서 승복을 벗었다.”


Q : 그렇다고 승복까지 벗었나.

A : “여기서 치고 나가지 않으면 영원히 이 안에 갇히겠다 싶었다. 그걸 인식하는 순간, 두려움을 느꼈다. 내가 가고자 하는 삶의 방향과 정반대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에게 그건 악몽이다. 나는 참선을 믿지 못해서 떠난 게 아니다. 참선을 믿기 때문에 떠났다. 스승을 못 믿어서 떠난 게 아니다. 스승을 믿기에 떠났다.”






인천 용화선원에서 수행하던 시절의 테오도르 준 박. 법명은 '환산'이었다. [중앙포토]


Q : 승복을 벗겠다고 했을 때 송담 스님은 뭐라고 했나.

A : “‘하루빨리 돌아오너라!’ 스승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그저 합장했다.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나가는 것임을, 나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선 수행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터득한 선 수행의 알갱이를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보다 쉽게, 보다 친근하게, 보다 자세하게, 보다 과학적으로, 보다 현대적으로 나누려고 한다. “굳이 승복을 입지 않아도 괜찮지 않나. 굳이 머리를 깎지 않아도 상관없지 않나. 나 자신을 더 이상 ‘선생’이나 ‘전문가’라고 주장하고 싶지 않다. 다만, 내가 가진 걸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할 뿐이다.”

그는 수년 전에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페이스북 본사의 초청으로 ‘선(禪) 명상’을 주제로 강연한 적이 있다. 당시 강당에는 100명 정도가 모였다. 대부분 20대와 30대, 젊은 미국인들이었다. “미국 인구는 3억 명이다. 그중 1억 명이 명상을 체험한 적이 있다고 한다. 미국인들은 종교적인 틀에서 벗어나 자신의 생활에 적용하는 명상 방식을 선호한다.”

Q : 페이스북 본사에 모인 청중은 어떤 이들인가. 그들은 명상에서 무엇을 기대하나.

A : “청중은 주로 프로그래머와 신제품 개발자들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문제해결(Problem solution) 능력을 키우고 싶어했다. 기존의 패러다임을 초월할 수 있는 탁월한 창의력과 상상력을 키우고 싶어했다. 그들은 주류 과학을 믿는 사람이다. 한국 불교에서 말하는 영가(靈駕)나 불성(佛性)은 안 믿는다. 그런데도 한국 불교의 참선 수행에 관심을 갖는 이유가 놀랍더라.”

Q : 그 이유가 뭔가.

A : “자신들이 믿는 사상과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배우려고 했다. 그래야 자기가 무의식적으로 간직하고 있는 선인견을 물리칠 수 있다고 했다. 그게 정말 인상적이었다. 페이스북 본사에는 명상을 할 수 있는 작은 선방도 있었다.”






참선 자세를 취해달라는 주문에 테오도르 준 박이 서울시립미술관 앞 벤치에 앉았다. 최정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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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이 한국 불교의 참선 수행에 기대하는 것은 ‘종교’가 아니라고 했다. “미국인은 뭘 믿고 싶어하는 게 아니다. 뭔가 직접 느끼고 경험하고 싶어한다. 선(禪)에 끌린다는 건 내 몸과 내 마음으로 느끼고 싶다는 말이다. 나와 진리, 그 사이에 중개인이 끼어드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 중간에 스승이 있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내가 신과 직접 만나고 싶은 거다. 불교식으로 말하면 스님이 말하는 걸 내가 직접 맛보고 싶은 거다.” 그는 “20세기가 ‘원자의 시대, 유전자의 시대’라면, 21세기는 ‘의식의 시대, 내면의 시대’라고 했다. 참선은 우리 내면의 무한한 잠재력을 깨울 수 있는 방법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환속한 뒤에 2년간 그는 잠적했다.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홀로 시간을 보냈다. 최근에 모습을 보인 그는 『참선』(나무의마음) 이란 제목의 두툼한 책 두 권을 출간했다. ‘참선’을 무기로 대중과 소통하기 시작한 셈이다. 책에는 출가 30년간 그가 몸소 겪고 터득한 참선의 노하우가 오롯이 담겨 있다.

어찌 보면 그는 자신의 첫단추로 돌아간 셈이다. 처음 불교를 알고자 했던, 처음 머리를 깎고자 했던 ‘그때의 마음’으로 말이다. 뉴욕에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받았다고 했다.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였다. 집에 와서 엄마에게 물었다. “우리는 몸과 피가 한국인인데, 왜 미국에 와서 사나?” 엄마는 “한국전쟁 때문에 사회가 무너져서 그랬다. 보다 행복한 삶을 찾기 위해 이민을 왔다”고 답했다. 그 말에 어린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테오도르 준 박이 최근 출간한 '참선'






테오도르 준 박이 최근 출간한 '참선'


Q : 왜 충격을 받았나.

A : “어린 내게는 큰 나라, 작은 나라의 개념이 없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똑같았다. 미국처럼 이렇게 큰 사회도 무너질 수 있다는 생각이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때만 해도 나는 부모님은 영원히 살고, 집도 영원히 있고, 그 땅도 영원히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무너질 수 있음을 처음 알았다. 그때부터 내게는 그늘이 생겼다. 다른 아이들처럼 같이 뛰어놀며 웃고 그랬는데 달라졌다.”

어린 그의 그늘은 “생겨난 모든 것은 소멸한다”는 붓다의 가르침과 정면으로 통한다. 그때부터 그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신화와 전설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마음속에 물음이 생겨나니까, 공부도 덩달아 잘 되기 시작하더라.” 그의 집안은 불교를 믿는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한국에 와서 가족과 함께 한 스님을 만났다. 그 스님에게 “내가 왜 나로서 태어났습니까?”라고 물었다. ‘나는 한국인인데 왜 미국에서 태어났나?’라는 물음이었다. 스님은 ‘카르마(업)’를 언급하며 책을 하나 건넸다. 영어 공부를 할 겸 스님이 갖고 있던 헤르만 헤세의 영문 작품이었다. 제목은 ‘싯다르타’.

그해 여름방학 내내 그는 그 책을 읽었다. 이후에도 그랬다. 중학생 때도 읽었고, 고등학생 때도 읽었고, 대학생 때도 읽었다. 지금껏 스무 번 이상 읽었다. 그만큼 ‘싯다르타의 삶’을 좋아했다.

Q : 11살 때 『싯다르타』를 읽고 이해가 갔나.

A : “싯다르타가 마지막에 자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문제를 해결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 해결책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때부터 사람들이 시키지 않아도 항상 책을 읽었다. 그 해결책을 알고 싶었다. 중학생 때는 작가나 예술가가 꿈이었다. 헤르만 헤세는 성직자가 아니라 글 쓰는 작가였으니까.”






'싯다르타'의 자자인 헤르만 헤세. 테오도르 준 박은 그 작품을 지금껏 스무 번 정도 읽었다고 했다. [중앙포토]


아무리 책을 읽어도 풀리지 않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는 어떤 곳인가?” “사람은 어떤 존재인가?” 이런 물음들 말이다. 중학교 3학년 때였다. 뉴욕에서 숭산 스님이 법회를 했다. 그가 가서 영어로 하는 법문을 들었다. 어린 중학생이 앉아 있는 걸 보고 숭산 스님이 물었다. “너는 왜 여기에 앉아 있나?” 그는 이렇게 답했다. “내가 누구인지 알고 싶어서 왔습니다.” 그러자 숭산 스님은 짧은 영어로 “그건 공부하는 머리로 이해할 수가 없다”며 “유 머스트 두 젠!(You must do Zen, 참선을 해야 한다)”이라고 말했다.

Q : 숭산 스님 영어 법문에 대한 미국인들의 반응은 어땠나.

A : “숭산 스님은 한국어 법문보다 영어 법문의 임팩트가 훨씬 더 컸다. 짧은 영어로 핵심을 뚫으며 이야기했다. 가령 ‘(미국인이 주로 하는) 심리(세라피) 상담이 자전거를 타는 거라면, 선(禪)은 스타트랙이다. 광속으로 가는 우주선처럼 ’팍‘하고 날아간다. 세라피는 점점 노력해서 되는 것이고, 참선은 순간이동이다’라는 식이었다.

미국 대학 입시에서는 자신이 쓴 에세이를 대학 측에 제출한다. 그는 하버드대 철학과에 지망했다. 그의 에세이는 ‘싯다르타와 젠(Zen)’에 관한 글이었다. 당시 지도 교사는 “이런 이상한 책을 풀어서 쓰면 합격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숭산 스님은 달랐다. 그의 에세이를 읽고서 법회 시간에 낭독하도록 했다. 대부분 미국인인 청중을 향해서 말이다. 결국 그는 하버드대에 합격했다.






숭산 스님이 생전에 외국인 제자들 앞에서 법문을 하고 있다. 숭산 스님은 외국인 출가자를 위해 '관음선종'이란 종단을 새로 만들었다. [중앙포토]


Q : 왜 철학과를 지망했나.

A : “부모님은 의사나 로펌의 변호사가 되기를 바라셨다. 불평은 하셨지만 반대는 안 하셨다. 불교와 도교, 힌두교 등을 철학과에서 다루는 줄 알았다. 가서 보니 아니더라. 비교종교학과에서 다루고 있었다. 그래서 전공을 비교종교학으로 바꾸었다. 기독교와 불교, 이슬람교, 힌두교, 도교, 유교 등 세계의 각 종교를 한 바퀴 훑었다. 거기에는 공통점이 있더라.”

Q : 어떤 공통점인가.

A : “나무가 한 그루 있다. 10명의 화가에게 그걸 그리게 했다. 화가들은 자라난 역사적ㆍ인종적ㆍ문화적 배경이 다 다르다. 그럼 어찌 되겠나. 같은 나무를 그려도 모두 다른 그림이 나온다. 하나의 나무를 보고 그려도 피카소와 고흐, 미켈란젤로, 동양산수화의 그림이 다 다르듯이 말이다. 그런데 실제 그 나무를 본 사람이 있다면 어떨까. 그 사람은 그 모든 그림이 하나의 나무를 그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거다. 나는 그 나무를 한번 보고 싶었다.”






테오도르 준 박은 "사람들은 후회 없이 살고 싶다고 말한다. 그런데 인간은 후회를 통해서 배운다. 후회하고 있다는 건 성장하고 있다는 말이다"고 했다. 최정동 기자


대학 졸업 후에 그는 뉴욕의 로펌에 입사했다. 로펌을 다니면 로스쿨 진학도 쉽다. 로스쿨에 다니면서 입사한 로펌에서 인턴을 해도 된다. 그러니 성공을 향한 첫걸음을 제대로 뗀 셈이었다. 그런데 그는 로펌에 사표를 냈다.

Q : 왜 로펌을 그만두었나.

A : “로펌에서 일하며 느낀 건 ‘지루함’이었다. 회사들이 서로 소송할 때 온갖 증언과 기록들이 나온다. 나는 그걸 받아쓰는 일을 했다. 몇 시에 누구랑 전화했느냐, 누가 서명을 했느냐, 몇 시에 복사를 했느냐 등. 엄청나게 많은 자료를 모은다. 그 일을 하면서 ‘나는 이 일을 평생 동안 못 하겠다’ 싶더라. 로펌에서 일하는 윗사람들은 돈을 엄청나게 잘 버는 변호사들이었다. 그런데 행복해 보이지 않더라.”

Q : 그들은 어떤 모습이었나.

A : “짜증을 잘 내고, 불안해 보였다. 재미 삼아 서로 비꼬고 꼬집고 괴롭혔다. 당시 나는 스물 너덧 살쯤 됐다. 이 길로 쭉 가면 어떻게 될까. 나도 저렇게 되지 않을까. 내가 물질적인 걸 싫어하는 건 아니다. 다만 그걸 취득하기 위해서 모든 걸 바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로펌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출가를 결심했다.”






테오도르 준 박은 "미국인들은 선 명상을 미래적이고, 진보적이고, 획기적이고, 혁신적이고, 민주주의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정동 기자


그는 수소문 끝에 ‘당대의 선지식’이라는 송담 스님을 찾아가 머리 깎고 출가했다. 그리고 ‘이뭣고’란 화두를 품고서 간화선 수행을 했다. 출가 후 14년이 됐을 때 송담 스님의 시자가 됐다. 그때부터 15년간 송담 스님을 곁에서 모셨다. 그리고 2년 전 승복을 벗었다. 

지금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수행 중이다. 
  • 인도와 발리 등에서 요가와 호흡법도 배웠다. 
  • 최근에는 남미 코스타리카를 다녀왔다. 그곳의 샤먼들을 만났다. 
  • 그는 ‘앙크(Ankh)’라고 불리는 목걸이를 하고 있었다. 앙크는 이집트의 고분벽화에 등장한다. ‘생명의 열쇠’ 혹은 ‘영원한 생명’으로 번역되는 상형문자다. 그는 “내게 이 목걸이는 내 마음 속의 어린 아이를 다시 얻었다는 뜻이다”라고 설명했다.

환산 스님은 이제 테오도르 준 박이 됐다. 승복 입은 수행자에서 승복 벗은 수행자가 됐다. 그는 유투브에서 ‘직장인들이 사무실에서 할 수 있는 참선법’등도 소개한다. 앞으로 그가 종교적인 틀과 문법, 제도와 문화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풀어갈 마음공부는 어떤 걸까. 그게 벌써 궁금해진다.

백성호 종교전문기자 vangogh@joongang.co.kr






[eBook] [세트] 참선 (총2권) 
테오도르 준 박 (지은이),
구미화 (옮긴이)
나무의마음2019-12-02 

종이책 페이지수 : 692쪽

책소개

암울한 세상과 인간 존재에 대한 의문을 품고 홀로 한국에 왔던 스물두 살의 교포청년이 30년 가까이 전통 선방에서 참선 수행을 하고, 이제는 ‘21세기 도시 수행자’가 되어 쓴 에세이다. 미국에서 현대적인 교육을 받은 젊은이가 언어도 문화도 다른 한국의 절에서 깨달음을 얻고자 시행착오를 거듭한 세월에 대한 진솔한 고백이자 21세기 현대인들의 일상에 꼭 필요한 참선에 대해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안내서다.

저자는 한국에서 가장 존경 받는 선사로 꼽히는 송담 스님의 가르침에 충실하면서도 종교적 관습과는 거리를 두고 지극히 현대적이고 실용적인 관점에서 참선의 가치와 활용법을 이야기한다. 참선의 효과를 맹신하지 않고 합리적으로 이해하고 몸으로 확인하고자 한 저자의 노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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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머리말
이 책을 읽는 법

1부. 모든 일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프롤로그
1. 그가 깨달았다고 한다
2. 이방인
3. 마침내 대학교
4. 만나기 어려운 분
5. 무명초
6. 출가자들
7. 친견
8 소통
9. 환산(還山), 산으로 돌아오라
10. 수계
11. 어미 사자와 새끼 사자
12. 우리가 참선을 해야 하는 이유
13. 내면의 불행
14. 불행으로부터 탈출

2부. 활구 참선법
15. 편안하고 즐거운 곳에 들어가는 미묘한 문
16. 나도 너희들이랑 똑같았어
17. 참선은 종교가 아니다
18. 참선의 근본적인 목적
19. 자발적 수행자
20. 정중선과 요중선 : 21세기 도시 수행자들을 위한 참선법
21. 대의심의 힘
22. 물살을 거스르고 바람을 밀어내며

3부. 참선의 치유력
23. 대의심을 통해 괴로운 감정을 극복하기
24. 내 마음속의 악마
25. 바람이 불면 겨울나무가 되어라
26. 불안
27. 외로움
28. 우울
29. 중독적인 생활 습관
30.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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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

4부. 참선이 가진 탈바꿈의 힘
31. 실패
32. 위기를 극복하는 참선법
33. 저 광대를 보라
34. 이제 끝이네, 아름다운 친구여
35. 여기에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다
36. 정원에서
37. 카페 땡스기빙
38. 아사나와 프라나야마 그리고 참선법
39. 나는 당신을 위해 노래하네
40. 짐을 내려놓아라
41. 사치타난다
42. 그래, 록스타가 되고 싶다고?
43. 덧없음
44. 희망
45. 카이발랴다마

5부. 참선과 미래
46. 선방과 컴퓨터
47. 참선과 차세대 과학 혁명
48. 생사일대사
49. 세상을 위해 무엇을 전할 것인가?
50. 적을 이기는 가장 좋은 방법
51. 나를 받아들이는 법 배우기
52. 리더십과 참선
53. 영적 수행과 참선
54. 사랑이 되기
에필로그

감사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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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 “진정한 참선은 일상생활을 벗어나서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 하는 것이다.”

♣ 마음이 속상할 때는 몸으로 가라.

♣ 올바른 자세를 하고 척추를 똑바로 세워보자. 우리의 정신적 기능이 순간적으로 통제력을 잃었으니 그것을 사용해서는 효과적으로 통제력을 회복할 수 없다. 이때 우리가 확실하게 통제할 수 있는 건 오직 몸이다. 그러니 몸에서부터 시작하자.

♣ “살면서 부처를 죽이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죄는 스스로를 포기하는 것이다.
그러니 포기하지 마라.”

♣ 지옥은 다름 아닌 시간이 멈춘 곳이다.

♣ “걱정하지 마라. 대중이 밥 먹으면 같이 밥 먹고, 대중이 잠자면 같이 자고, 일하면 같이 일하고, 참선하면 같이 참선하면 된다.'

♣ 진짜 네 모습으로 돌아가라. 너의 진정한 자아로 돌아가라. 진정한 인간이 돼라. 깨달음을 얻어라.

♣ 참선은 진짜 인간이 되는 길이지. 진정한 인간의 삶을 사는 방식이고….

♣ 참선은 종교가 아니다. 참선은 삶에 대한 일이다.

♣ “매일 도시의 유령처럼 여기저기에 끼워 맞춰 살고 있다면, 그러면 참선을 배워라.
제대로 살아보고 싶다면, 정말로 다시 살아보고 싶다면 너희가 있는 그곳에서 참선을 해라.”

♣ 진정한 자유란 어떤 목표에 자신의 삶을 헌신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절대 뒤돌아보지 않는 것

♣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는 것은 세상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지극히 인간적인 약점임을 알게 되었다. 우리의 습관적인 불친절과 무관심, 이기심, 허영심, 위선, 원망, 시기, 앙심, 혼란 등 우리가 숨기려고 애쓰는 모든 것이 문제였다.

♣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다면 참선을 해라. 참선하면 올바른 삶이 무엇이고, 사람답게 사는 법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 삶이 반복된다는 느낌은 몸이 자동적인 반응으로 작동할 때 생긴다. 이것은 현실 감각이 마비될 때 나타나는 일종의 마음작용이다. 이럴 때 참선으로 의식을 다시 일깨우면 몸이 다시 생동감을 찾게 된다.

♣ “과거에 머물지 마라. 미래를 꿈꾸지도 말라. 오직 지금 이 순간, 일어나는 그 마음에 집중하라.”

♣ “화두 자체에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를 철저히 해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이다.”

♣ 참선은 언제 어디서나 사용할 수 있는 정신적 고통 처리 시스템이다.

♣ “겨울나무처럼 되어라. 바람이 분다고 그게 어째서 신경 쓸 일이더냐?”

♣ “양동이가 새는 것을 발견했을 때 올바른 해결책은 안에서 구멍을 막는 것이다. 바깥에서 막으려고 해서는 소용이 없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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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테오도르 준 박 (Theodore Joon Park) (지은이) 

『참선(Seon Meditation)』(1·2권)에서 수행자로서 지나온 삶을 펼쳐 보이며 참선이 우리 삶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이야기했다. 『참선』의 실천편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책 『참선 매뉴얼』에서는, 그렇다면 참선은 어떻게 하는지, 우리가 삶에서 맞닥뜨리는 다양한 상황에서 참선 기술을 어떻게 적용할지를 이야기한다. 참선을 처음 접해보는 사람도 누구나 쉽게 시작할 수 있도록 그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이 책에서 저자는 자신의 몸과 호흡, 생각과 감정을 다루는 법을 알면 화가 나거나 두렵거나 상처받거나 충격을 받아도 바로 그 순간 자기 치유와 회복 시스템을 가동해 효과적으로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지난 30년간 자신이 참선 수행을 통해 알게 된 것들을 체계화하여 보다 짧은 시간 안에 효과적으로 참선을 익힐 수 있도록 압축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전달한다.
최근 저자는 세계에서 가장 인정받는 요가 단체인 요가 얼라이언스(Yoga Alliance)에서 ‘200시간 요가 지도자 과정’을 수료했다. 그가 참선에 요가를 접목하려고 시도하는 이유는 현대인은 방석 위에 앉아서 참선하는 좌선부터 시작하는 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참선은 “걷거나 서 있거나 앉아 있거나 누워 있을 때도, 말하거나 침묵하거나 움직이거나 가만히 있을 때조차도(행주좌와 어묵동정行住坐臥 語默動靜)’ 할 수 있는데, 요가를 참선에 접목하면 ‘언제 어디서나 참선하기’를 좀 더 효과적으로 실천할 수 있어서다. 즉 참선이 종교가 아닌 생활 방식이라는 것을 현대인들에게 알리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참선 지도와 강연, 집필 활동을 계속하는 저자는 앞으로도 참선을 제대로 이해하고 일상에 접목할 수 있는 방법을 알리기 위해 노력할 계획이다. 접기
최근작 : <참선 매뉴얼>,<참선 2>,<참선 1> … 총 10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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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화 (옮긴이) 

연세대학교에서 영어영문학과 서양사를 전공하고 동아일보사에서 기자로 일했다. 이화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영어교육을 공부하고 번역을 시작했다. 옮긴 책으로는 『참선』(1, 2) 『농장에서 식탁까지 100마일 다이어트』 『민주주의를 넘어서』 『촘스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인생학교-지적으로 운동하는 법』 『인생학교-자연과 연결되는 법』 『지속 가능한 교육을 꿈꾸다』(공역) 『변화를 이끄는 이사회』 등이 있다. 매일 두 아이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고 후회하지만 내일은 좀 더 나아지리라 번번이 다짐하는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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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하버드 대학생에서 출가 수행자로 살아온 서른 해
그리고 다시 나에게 돌아가는 길

“진정한 참선은 일상생활을 벗어나서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 하는 것이다.” -본문 속에서

“지혜가 배제된 과학문명 시대를 산다는 것은
인류가 만든 과학이 인류를 다시 위기에 빠뜨리는 일이 될 것이다.”
-송담 선사

하버드 대학생에서 출가 수행자로 살아온 서른 해,
어떤 학교에서도 가르쳐주지 않은 단 하나를 찾아서
이 책은 1987년에 암울한 세상과 인간 존재에 대한 의문을 품고 홀로 한국에 왔던 스물두 살의 교포청년이 30년 가까이 전통 선방에서 참선 수행을 하고, 이제는 ‘21세기 도시 수행자’가 되어 쓴 에세이다. 미국에서 현대적인 교육을 받은 젊은이가 언어도 문화도 다른 한국의 절에서 깨달음을 얻고자 시행착오를 거듭한 세월에 대한 진솔한 고백이자 21세기 현대인들의 일상에 꼭 필요한 참선에 대해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안내서다.
저자는 이미 깨달음을 얻고 달관의 경지에 이르러 이 책을 쓴 것이 아니다. 누구나 참선을 하면 불안과 분노, 우울, 자괴감 같은 내적 고통에서 벗어나 일상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데도 그 방법을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곳을 찾기가 어려우니 자신이 배운 것을 나누고자 나선 것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편견과 환상만 있을 뿐 제대로 소개된 적 없는 한국의 전통 참선을 체계적으로 설명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한국에서 가장 존경 받는 선사로 꼽히는 송담 스님의 가르침에 충실하면서도 종교적 관습과는 거리를 두고 지극히 현대적이고 실용적인 관점에서 참선의 가치와 활용법을 이야기한다. 참선의 효과를 맹신하지 않고 합리적으로 이해하고 몸으로 확인하고자 한 저자의 노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책 『참선』은 2권으로 이뤄졌다. 1권 『참선 : 마음이 속상할 때는 몸으로 가라』는 미국에서 나고 자란 저자가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인천 용화사를 찾아 송담 스님의 제자가 되기까지의 과정과 출가 수행자로서의 고뇌와 갈등, 어렵게 배운 참선의 원리와 방법, 참선을 일상화하기 위한 전략을 소개한다. 또한 불안과 화, 외로움, 우울, 패배감 같은 현대인을 괴롭히는 정신적 고통을 참선으로 해소하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2권 『참선 : 다시 나에게 돌아가는 길』은 20년 넘게 대중의 관심을 피해온 저자가 송담 스님의 조언에 따라 TV에 출연해 참선을 가르치기 시작한 후 그전까지 상상도 못했던 출구전략을 세우고,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과정이 담겨 있다. 자신의 실패를 돌아보고 ‘현실 수행자’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설렘과 두려움도 털어놓는다. 마지막으로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참선이라는 지극히 단순한 방식으로 더 건강하고 더 행복한 미래를 열어갈 수 있기를 기대하며, 참선과 리더십, 참선과 과학기술, 참선과 사랑의 관계를 저자만의 시각으로 진지하면서도 흥미롭게 풀어나간다. 저자의 첫 에세이 『참선』에 이어 일상에서 참선을 실천하는 좀 더 구체적인 방법을 담은 매뉴얼북 『어쨌든 참선』도 2020년 1월 중 출간 예정이다.

마음이 괴로울 때는 몸으로 가라!
우리가 참선을 해야 하는 이유는
살다 보면 속상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첨단 기술이 발달하고 경제적 풍요를 누린다고 해도 마음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해소해주지는 못한다. 원하는 것은 다 배울 수 있는 시대라지만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속상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마음이 답답할 때, 화가 날 때, 억울할 때, 두려울 때, 불안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저자는 사람이 인간답게 살아가고 사회가 온전히 기능하려면 꼭 필요한데도 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는 그 위험한 공백을 메우기 위해 이 책을 썼다. 불안과 우울, 분노, 혐오, 중독과 같은 마음의 병이 소리 없이 퍼지고 있으며, 결국 자기 자신 혹은 타인의 가슴 아픈 희생으로 그 고통을 드러내는 현실을 이제는 함께 바꿔보자고 제안한다.
“우리가 참선하는 이유는 매일매일 살다 보면 속상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참선은 개인적인 고통을 해소하는 것으로 시작해 개인의 성장과 발전을 자극하고, 더 나아가 인간의 의식을 일깨우고 변혁을 일으키는 것으로 끝이 난다. 지금 여기, 바로 이 순간 우리가 하는 것들을 관리하는 것이다. 참선은 지극히 실용적이다.”

저자는 무엇보다 한국에서 참선이 일상과 동떨어진 구시대적 종교 수행으로 인식되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미국에서는 1950년대부터 참선이 자유와 저항의 상징이었으며 비트세대와 히피족에게 영감을 주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스티브 잡스를 비롯한 혁신 기업가들에게 정신적 자양분을 제공하고, 오늘날 페이스북과 애플 같은 IT기업들이 적극적으로 배우고자 하는 것이 바로 참선이다. 저자는 참선이 젊은 사람들, 나이와 상관없이 진정한 삶을 살고자 하는 의욕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고 믿으며, 참선을 널리 알리는 것으로 인류의 지속가능한 행복을 위해 기여하고 싶어 한다.

“내가 처음 이른바 구도의 여정을 시작했을 때, 내 스승은 송담 스님 한 분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전 세계에 수천 명의 스승을 둔 느낌이다. 성급한 청년이었던 나는 우리 문명이 되돌릴 수 없는 대재앙을 향해 가고 있는 것 같아 두려웠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가 이 상황을 바꿀 수 있다고, 누구에게나 삶을 변화시킬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 그러려면 절대적 빈곤에 가까운 지금의 내면 상태로부터 벗어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쾌락과 소유에 대한 끝없는 갈증, 가진 것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믿는 가슴 아픈 현실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몸과 마음 안에서 기쁨과 만족을 찾을 방법이 필요하다. 나는 참선과 같이 스스로를 제어하고 자기 자신을 알아가며 스스로를 사랑하는 훈련이 지금 우리 문명의 생존에 꼭 필요하다고 믿는다.”

정신적 스트레스에 실시간으로 대처하는 전략이자
행복으로 가는 새로운 공식
저자는 참선을 ‘행복으로 가는 새로운 공식’이라 표현하며, 정신적으로 많은 자극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현대인에게 참선과 같이 누구나 쉽게 배우고 활용할 수 있는 자기 제어 기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참선은 온갖 정보와 자극에 쏠린 우리의 의식을 내면으로 돌려 마음의 힘을 기르는 방법이다. 저자가 알려주는 참선은 어렵지 않다. 올바른 자세와 복식호흡, ‘이뭣고?’ 화두, 이 세 가지만 알면 된다. 가부좌로 앉아, 복식호흡을 하면서, “이뭣고?”(‘이것은 무엇인가?’를 세 음절로 줄인 표현)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것이다. 숨을 들이마시고, 잠시 멈췄다가 다시 내쉬면서 “이뭣고?” 하면 된다.

‘이뭣고?’ 세 음절은 마법의 주문이 아니다. 사찰에 울리는 묵직한 종소리처럼, 쏟아지는 빗방울을 깨끗하게 닦아내는 자동차 와이퍼처럼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우리의 의식을 일깨우는 도구다. 스스로에게 “이뭣고?”라고 질문함으로써 일으킨 마음 상태를 가리켜 ‘의심’이라고 하는데, 곤란한 상황에서 이렇게 마음에 의심을 일으키면 부정적인 감정과 괴로운 감정이 사라지고 마음이 맑아진다. 시간이 날 때마다 규칙적으로 참선을 하면 무의식 속에 단단히 박혀 있던 어두운 기억과 감정들도 차츰 사라진다. 저자는 스스로의 경험과 국내외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참선이 흐리고 왜곡된 마음 상태를 맑고 깨끗한 상태로 만들어준다는 것, 그러면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고 판단력이 좋아지며 학업이나 업무의 성과도 높아진다는 것을 확인시킨다. 얼룩 없는 마음으로 자기 자신과 세상을 보니 쓸데없는 생각, 불필요한 감정에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 없이 원하는 것에 집중하고 애정을 쏟을 수 있는 것이다.

저자는 21세기 도시 수행자답게 가부좌로 앉아서 하는 참선뿐 아니라 의자에 앉아서, 서서, 심지어 누워서 할 수 있는 참선도 알려준다. 참선이 배우기 쉽고 그 효과가 놀랍다는 것을 굳게 믿지만, 꾸준히 오래 지속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 또한 잘 알기에 집중력이 흐트러질 때, 참선하는 것을 자꾸 잊어버릴 때,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일 때, 참선의 효과에 의구심이 들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친절하게 알려준다. 부디 더 많은 사람들이 자기만큼 오래 걸리지 않고, 쉽게 참선을 배워 참선의 혜택을 누리면 좋겠다는 게 저자의 가장 큰 바람이다. 따라서 종교적 당위성에 기대 참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으며, 자신이 오랜 세월에 걸쳐 경험하고 납득한 것을 최대한 합리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또한 현대 심리학과 요가, 프라나야마 호흡법 등 참선의 효과를 이해하고 참선을 꾸준히 실천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다양하게 시도해보고 그 결과도 공유한다. 접기

평점
분포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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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식 회의론과 파스칼식 두려움 사이 그 어디쯤.. 
noomy 2020-08-15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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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전체 (5)
     
데카르트식 회의론과 파스칼식 두려움 사이를 헤메이는 우리 모두에게 
 

삶을 하나의 여정으로 본다면 우리는 모두 이 세계를 여행하는 방랑자라 할 수 있다. 이 여행은 언제 어떤 목적을 가지고시작된 것일까? 그 시작점은 저마다 다를지 몰라도 여행은 누군가를 혹은 무엇인가를 찾기 위해서 또, 미지의 세계에 대한 묘한 이끌림으로 시작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기나긴 여정이 지속되면서 어느 순간 우리의 여행은 내면을 향해 침잠하는 것으로 확장된다. 따라서, 이 여행은 우리를 둘러싼 세상과 타인을 향한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의 내면을 향한,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고 할 수 있다.

 

 

“삶은 말 없이 이어지는 사건과 행동의 연속일 뿐 절대로 우리가 어떻다고 말하지 않는다. 우리가 어떻다고 말하는 건 우리 자신이다.” (참선 2권, p. 12)

 

 

우리는 수많은 경험을 하고 그에 대한 적절한 반응과 태도를 내세우며 세상을 살아간다. 또, 기억 속에 저장된 결코 보편적이지 않은 과거의 체험들을 현재의 시각에서 비판적으로 되짚어 보고, 이 고통의 근원이 무엇인지, 또 그에 대한 변명들이 적절한 것인지 반성적으로 성찰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를 만드는 것은 경험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경험에 반응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동일한 사건을 두고서도 사람들이 서로 다른 언어적, 신체적, 심리적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그 사건을 대하는 삶의 방식과 철학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건을 경험하면서 개인은 자신만의 철학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창출해내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면서 우리가 겪은 경험은 사건의 잔상과 흔적, 진실의 파편 속에서 원형만이살아남아 저마다의 삶의 방식을 구성한다.

 

 

“자기 내면의 가장 깊은 곳으로 시선을 돌릴 때 비로소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 눈을 뜨게 된다는 것.”(참선 2권, p. 246)

 

 

본서 <참선>의 저자 테오도르 준박은 참선을 통해 발견한 멋지고 아름다우면서도 모순적인 진실은 바로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비로소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진정한 정신적 통찰을 맑고 잔잔한 마음에 비친 세상의 모습을 왜곡하지 않고 깨끗하게 인식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를 위해서 먼저 세상을 투명하게 비출 수 있는 마음을 단련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진정한 정신적 통찰이란 명확한 인식을 의미하며, 이는 탁월함이나 재능이 아닌 내면의 평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면을 탐구하는 과정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저자는 이와 관련하여 ’데카르트식 회의론과 파스칼식 두려움 사이‘ (참선 1권, p. 132)라는 재밌는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학문적인 용어가 아니라 저자와 학부시절 절친한 친구이자 본 도서에 추천사를 쓰기도 한 ’세바스찬 승‘ 프린스턴대 교수와 저자 둘이서 만들어내고 교감한 개념이다. 데카르트식 회의론은 우주에 진리가 존재하겠지만 인간에게 과연 그 진리를 이해할 능력이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보는 철학적 입장이다. 반대로 파스칼식 두려움은 사물의 본질을 이해하는 인간의 능력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확신하지만 우리가 살고있는 이 우주가 완전히 무의미하다고 간주하는 철학적 견해를 의미한다. 즉, 진리란 분명히 존재하지만 인간은 그것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주장과 반대로 존재하지 않는 의미를 찾으려 하는 데서 고통이 발생한다는 주장이다. 과연 진리란 어디에 위치해 있을까? 우리가 그토록 헤메는 진리는 인간의 인지능력의 한계를 지적하는 데카르트식 회의론과 거대한 무(無)의 공허감을 의미하는 파스칼식 두려움 그 사이 어딘가에 위치해있지 않을까?

 

 

“참선은 진짜 인간이 되는 길이지. 진정한 인간의 삶을 사는 방식이기도 하고 또 우리가 마음을 다스리고 단속하는 방법이지.” (참선 1권, p. 158)

“참선은 삶을 긍정하는 즐거운 가르침이자 수행법이다.” (참선 2권 p.125)

 

 

저자인 테오도르 준박은 사실 ’환산스님‘이라는 법명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그는 한국인 재미교포로 태어나 성장하면서 인간 존재의 근원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22살의 어린 나이에 한국에 건너와 출가한 후 30년간 불교의 전통적 방식으로수행한 승려였다. 하버드를 졸업하고 엘리트 지식인으로 그릴 수 있었던 빛나는 미래를 포기하고 언어도, 문화도, 생활방식도 생소한 한국의 절에서 깨달음을 구하기 위해 참선하는 것을 택한 것이다. 그가 이러한 결정을 내리게 된 데에는 그의 스승인 ’송담 스님‘의 존재 때문이었다. 불교에 귀의하여 수행한 30년 뿐만 아니라 환속하여 도시수행자가 된 지금도 그는 스승에 대한 존경심과 믿음을 잃지 않고 있다. 저자는 환속의 이유에 대해 명확히 밝히고 있진 않지만 어쩌면 그 이유 중 하나는 늘 깊은 산사가 아닌 일상 속에서 수행을 강조했던 스승의 가르침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모두 거대한 진리 앞에서는 보잘것 없는 존재들이고, 진리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정진하는 수도자라는 점에서는 무엇을하고 어디에 있든 모두가 같은 입장에 놓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생사의 고통 한가운데서 그 생사의 고통을 초월해야 한다.” (참선 1권, p. 317)

“우리의 불완전한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영원한 삶의 길을 갈 수 있다는 것” (참선 2권, p. 283)

 

 

<참선>을 읽으며 놀라웠던 것 중의 하나는 저자의 진솔하고 겸손한 태도였다. 저자는 선각자로서의 자존심이나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독자들과 같은 도반의 입장에서 함께 깨달음의 길을 걷고자 하고 있었다. 이러한 태도는 “나는 정말로 아는 것과 알지 못하는 것, 그리고 그냥 믿는 것에 관해 가능한 한 정직한 것이 좋다고 늘 믿어왔다.” (참선 1권, p. 173)는 표현이나, “깨달음이라는 뭔가 모호하고 이상적인 것을 기다리느니 지금 참선을 하면서 살아있고, 깨어 있고, 행복하다는것을 좀 더 생생하게 느끼는 편이 훨씬 더 건강에 좋고 도움이 된다는 걸 알았다.“ (참선 2권, p. 124) 같은 문장에 잘드러나 있다. 또한 저자는 진리를 구하는 수행으로서 참선만을 강조하지 않는다. ‘자세, 호흡, 화두‘라는 참선의 3대 요소중에서 몸이 이완되는 자세를 이해하고, 더 정확한 호흡법을 익힐 수 있다는 점에서 요가 수련을 적극 권장하기도 하고,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소리 수행과 같은 마음 치유법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이는 형식과 권위에 얽매이지않고 초심을 잃지않은 영락 없는 구도자의 모습이다.

 

 

“우리는 당신을 ‘마음 기술 전문가‘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물질과 정보에 관한 전문가인 것처럼요.” (참선 2권, p. 187)

“나는 물질적인 대상을 사용해 인간의 정신과 육체의 능력을 높이고 강화하는 것이 ‘기술‘이라고 생각한다.” (참선 2권, p. 192)

 

 

앨버트 아인슈타인은 “종교 없는 과학은 절름발이와 같고, 과학 없는 종교는 장님과 다름없다.”는 말을 남겼다. 그가 이러한 말을 남긴 이유는 무엇일까? 1950년대 비트 제너레이션 (Beat Generation)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산업화되어가는 미국의 현실 속에서 소외되어 가는 개인을 대변하여 동양철학, 성 해방, 환경운동 등을 주장하며 등장했다. 그 뒤를 이은1960년대 히피(Hippie) 운동은 소비 자본주의로 대표되는 기성의 사회 통념, 제도, 가치관을 부정하고 인간성의 회복, 자연에의 귀의를 주장했다. 이들은 자연으로의 회귀와 평화를 외쳤고, 도덕보다는 자연스러운 감성, 이성보다는 자유로운감성과 즐거움을 추구했다. 비트 제너레이션(Beat Generation)의 정신적 지주였던 ’앨런 긴즈버그‘는 히피운동을 더 큰의식과 더 큰 개인을 향한 생각의 변화라고 평가하였다.

 

 

“히피 무브먼트는 더 큰 의식과 더 큰 개인을 향한 생각의 변화다. 그 포용력과 배려심이 미래에도 시적이고 예술적으로확산되기를 바란다.” - 앨런 긴즈버그 (Allen Ginsberg) -

 

 

오늘날의 우리는 히피운동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히피운동은 사회에 대한 분노와 절망감 속에서 현실을 거부하고 이상을 추구했던 젊은이들의 치기 어린 반항에서 비롯된 실패한 혁명에 불과한 것일까? 히피들은 현실적 제약에서 벗어나더 나은 세상을 갈망했고, 이를 다양한 방식으로 추구해나갔다. 세계 각지로 또 자신의 내면으로 여행을 떠난 이들도 있었지만, 반권위주의와 사회변혁의 분위기는 받아들이면서 정치와 환경운동 보다는 테크놀로지에 주목했던 이들도 있었다. 자유와 공생, 공유와 개방의 히피문화는 이들의 존재로 인해 오늘날의 PC와 인터넷, SNS로 구체화될 수 있었고, 애플과구글, 페이스북과 트위터라는 글로벌 혁신기업들도 탄생할 수 있었다.

 

 

히피들은 산업화 이면의 불평등과 사회 양극화, 소외되어 가는 개인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두 가지 방식으로 해결책을 찾았다. 그것은 자아를 찾기 위한 정신을 수련하는 것과 테크놀로지로서 사회를 변혁하는 것이었다. 테크놀로지는 현대사회를 이룩하는데 막강한 힘을 발휘했다. 하지만 발달된 과학기술에의 지나친 의존은 물질적인 것에 집중하게 만들었고, 이러한 불균형은 현대사회가 안고있는 부조리와 병폐의 원인이 되었다고 저자는 지적하고 있다. 저자는 모든 종류의진정한 종교 수행에서는 어떤 특정한 정신적 신체적 작용이 아니라 우리 인간의 의식에 내재된, 현실을 바꾸는 양자적 힘을 향상시키기 위해 기술을 사용해왔고, 이러한 기술과 참선의 결합과 균형이 미래를 여는 큰 지혜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생과 사에 관한 중요한 질문인 화두는 우리 모두에게 존재하는 것이다. 삶의 혼란스러움을 종식시켜줄 지혜에 대한 갈망이나 상실과 결핍으로 인해 슬퍼했던 기억, 또 잃어버린 것을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답답함 등은 우리가 일상에서흔히 경험하는 것들이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두고 온 것들은 무엇일까? 개개인이 켜켜이 쌓아 올린 저마다의 사연들은 상실과 결핍의 기억을 머금은 채 조용히 빛난다. 우리는 잃어버린 것을 찾기 위해서 혹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조차 알수 없기 때문에 서로를 끝없이 갈구하고 또, 자신의 내면 속으로 침잠해들어간다. 서로의 고유한 존재 방식, 각자가 겪은상실과 결핍의 기억들은 우리 각자를 섬으로 만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인간의 가장 놀라운 특징 중 하나는 서로에게 빛을 비춰주는 능력이다. 전 역사에 걸쳐 이 능력은 우리 인간 종을 계속 구원해왔다. 만약 우리가 참선을 통해 우리 내면의 빛을 발견하는 법을 배웠거나 배우기 시작한다면 의식적으로 많이 노력하지 않아도 우리가 가는 곳마다 우리의 사랑이 다른 사람들을 향해 빛날 것이고, 다른 사람들도 그 사랑을 느낄 것이다.” (참선 1권, p. 334)

 

 

인생을 살아가는 간다는 것은 어쩌면 조금씩 퇴보하고 소멸해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삶의 흔적, 슬픔을 매개로서로의 존재를 인지하고 이해하고 위로를 건넨다. 인간은 초월적인 존재를 통해서도 치유 받을 수 없는, 오직 사람에게서만 구할 수 있는 마음, 즉 사랑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가진 한계를 극복하면서 진리를 구하고자 하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원칙 (Principle)을 지키며, 진실과 정의, 인간 고유의 본성을 회복하기 위해 타인을 향해, 또우리의 내면을 향해 작지만 흔들림 없는 발걸음을 묵묵히 내딛는 것뿐 아닐까? 2020년 한 해의 시작을 <참선>이라는 책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적절한 자기 조절 방법을 배우고, 열심히, 정직하게, 용기를 갖고 실천하면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회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어보자. 자신의 가장 멋진 모습이 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돌아가는 법만 배우면 된다.” (참선1권, p.186)

잭와일드 2020-01-21 공감(38) 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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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를 가다듬고

남들이 잠들어 있는 새벽 시간을 좋아한다. 영혼마저 서늘해지는 듯한 그 시간에 나는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숲길을 따라 산책을 하고, 산 위 체육공원에서 가볍게 몸을 풀고, 맑아진 정신으로 집에 돌아와서는 일 년 365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찬물에 샤워를 한다. 경건한 의식과도 같은 일련의 절차들을 나는 수십 년째 이어오고 있다. 그렇게라도 하면 남보다 예민한 나의 성향이 조금쯤 무뎌지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면서 말이다. 그것은 일본 작가 와타나베 준이치가 말했던 둔감력이 내게는 아주 없거나 있어도 아주 미미한 수준에서 그친다는 사실에 대한 한탄이자 어떻게든 개선해보고자 하는 몸부림이 아닐 수 없다. "둔감, 그것은 바로 본래의 재능을 더 크게 꽃 피우는 최대의 원동력이다."

 

테오도르 준 박이 쓴 <참선 1, 2>을 읽으면서 나 역시 저자와 비슷하게 예민한 성향을 타고 태어났음을 다시 한번 느꼈다. 예민하다는 건 삶의 근원적인 질문에 대해 그냥 지나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없이 반복되는 하루하루의 일과에서 어떤 의미를 발견하고자 한다는 건 차라리 고문에 가까운 일이며 그런 것에는 관심조차 없는 대다수의 사람들과 어울렁 더울렁 어울려 살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예민하다는 건 자신의 영혼에 깊은 상처를 낼 잠재적인 가능성을 지녔다는 것이며, 이를 스스로 통제하거나 극복하지 못하면 자신의 삶 역시 힘들어진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자신의 예민함을 극복하기 위한 현실적인 대안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음악이든, 그림이든, 자신에게 끌리는 예술에 심취하거나 요가든, 명상이든, 혹은 참선이든 자신의 영혼을 직접적으로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을 동원하거나. 이런 까닭에 선천적으로 예민하게 태어난 사람은 예술가가 되거나 종교인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한다고 나는 믿는다.

 

"왜 나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이토록 힘든 것일까? 왜 나는 그냥 남들처럼 살지 못할까? 인생의 소소한 기쁨들에 감사하며, 피할 수 없는 짐들은 기꺼이 짊어지고, 때때로 발생하는 불편함과 충격을 견디면서 말이다. 세상의 무의미함과 만사의 덧없음을 무심히 넘기면 좋으련만 왜 나는 더 의미 있게 살아갈 방법이 있다고 그토록 확신했을까?" (참선 1권, p.124)

 

<참선>을 깊이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던 까닭은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한 인간의 자기 고백처럼 읽혔기 때문이다. 비록 저자와 나는 판이하게 다른 인생을 살아왔고, 앞으로도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겠지만 저자가 젊은 시절에 밤잠을 설치며 고민했던 인생에 관한 숱한 질문들을 나 역시 끝도 없이 묻고 부딪쳐왔던 까닭에 저자의 고백이 예사로 여겨지지 않았던 것이다. 한국계 미국인 부모 밑에서 태어나 하버드대 비교종교학을 전공했던 저자가 일신의 영달을 뒤로한 채 송담 스님의 시자가 되어 '환산'이라는 법명을 받고 30여 년의 출가생활을 했다는 그가 2017년 환속하여 다시 테오도르 준 박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기록하면서 저자는 과연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었을까. 수행 과정에서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지혜를 그는 이 책을 쓰면서 확연히 깨닫게 된 것은 아닐까.

 

"반면 큰 지혜를 가진 사람들을 어리숙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큰 지혜를 가진 사람은 남의 칭찬이나 욕에 반응하지 않아서 때로는 사회화가 덜 된 사람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소외되거나 멸시받기도 한다. 그러나 그 마음을 들여다보면 큰 지혜를 가진 사람은 확신으로 가득 차 있는 반면, 작은 지혜를 가진 사람은 경쟁심과 불안감으로 가득할 때가 많다." (참선 2권, p.184)

 

나도 학창 시절 인연이 닿은 스님으로부터 참선을 배웠던 적이 있다. 수행의 목적이 아니라 공부에 도움이 된다는 스님의 말씀에 혹해서 아주 잠깐 용맹정진에 든 스님들처럼 반가부좌를 틀고 앉아 결기에 차서 참선에 임했던 적도 있다. 그러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자 참선을 행하는 시간은 점차 줄어들었고 사회에 발을 들이면서부터는 숫제 참선과는 멀어지게 되었다.

 

저자는 자신이 "이미 깨달음을 얻고 달관의 경지에 이르러 이 책을 쓴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1권 '참선 : 마음이 속상할 때는 몸으로 가라'에서 저자는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인천에 있는 용화사를 제 발로 찾아와 송담 스님의 제자가 되는 과정과 수행자로 살면서 저자가 겪었던 고뇌와 갈등, 참선의 원리와 방법, 참선을 일상화하기 위한 전략을 쓰고 있다. 2권 '참선 : 다시 나에게 돌아가는 길'에서 저자는 속세와 떨어져 살았던 자신이 송담 스님의 조언에 따라 TV에 출연하고 참선을 가르치기 시작하면서 자신이 경험했던 참선의 혜택과 효능에 대해 독자들에게 전하고 있다.

 

테오도르 준 박의 <참선 >을 읽으면서 나는 내가 힘들 때마다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내 인생의 스승과도 같은 스님을 생각했다. 나는 비록 성당에서 세례를 받고 하느님을 믿는 천주교 신자로 살고 있지만 종교를 떠나 인생의 선배로, 동시대를 사는 인생의 도반으로 스님은 내게 소중하지 않을 수 없다. 언젠가 스님이 내게 들려주었던 말이 있다. "수도자는 삶 전체를 탐하는 자요, 속세의 인간은 삶의 순간순간을 탐하는 자이다. 탐하는 대상은 다를지언정 삶을 이어간다는 점에서 다를 게 없다." <참선>을 읽고 멀리 있는 스님 생각을 했던 나는 내일 아침 오랜만에 참선에 들지도 모르겠다. 자세를 가다듬고 호흡을 고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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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쥐 2020-01-20 공감(2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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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삶의 변화를 원한다면, <참선>

제대로 살아보고 싶다면, 정말로 다시 살아보고 싶다면 있는 그곳에서 참선을 해라.

   개인적으로 종교를 지나치게 믿으면 사람들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목격할 기회가 많았다. 그들은 자신이 따르는 것만을 옳다고 여겼고, 다른 종교를 믿는 자들을 철저히 배제했다. 상대를 '사이비 종교'라며 비하하기도 했지만, 난 광적으로 종교에 미쳐있는 그들을 보면서 어느 쪽이 '사이비'에 속해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어떤 종교도 믿고 있지 않다. 특정 종교를 따르게 되면, 그 신념에 갇혀서 편협한 시각을 갖게 될까 봐 우려스럽기 때문이다. 종교에 구애받지 않고, 때마다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선택지를 고르려고 노력하며 살고 있다. 그러니까 <참선>이라는 책을 읽게 된 건 종교적 이유에서가 아니었다. "참선은 자유를 얻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참선은 종교 교리를 무조건 믿고 복종하는 게 아니다"라는 문장에서도 작가가 종교를 강요하려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존재의 본질을 찾아낼 수 있도록 '참선'을 가르치려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종교적 색채가 짙을 거라고 예상해서 이 책을 읽기를 꺼리고 있다면 안심해도 좋다. 저자는 불교를 믿으라고 강요하기 위해 책을 써낸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종교의 양면성을 인정했고, 이를 믿는 사람들의 태도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 종교를 믿는 건 좋지만, 지나치게 의존하는 일은 경계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여기에 종교라는 틀에 갇히지 않고, 인생의 깨달음을 얻기 위해 분투한 저자의 노력이 여기에 담겨 있다. 그는 자신이 겪었던 시련을 내보이는 것으로 독자들의 공감을 획득하고, '참선'을 따라 해볼 만한 이유를 제공한다. '테오도르 준 박'은 스님이었지만, 한국 불교의 부족한 점들을 꼬집고, 나아져야 할 부분들을 언급했다. 스스로도 불교를 믿었기 때문이 아니라, 스승이었던 '송담 스님'을 존경했기 때문에 불교계에 몸을 담았던 이유가 크다고 털어놓는다. 즉, 이 책을 쓴 '테오도르 준 박', 즉 '환산 스님'이 강조하는 바는 종교에 있지 않고, '참선'이라는 수행 방식에 있다. 2권의 책 전체에서 엿보이는 '참선'에 대한 열정과 확신은 사람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해 보였다. '참선'이라는 소재를 종교의 수행 방식이 아니라, 삶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끄는 방법들 중 하나라고 여겨주면 좋겠다.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이를 받아들이려 할 때 비로소 변화가 시작될 것이다. 

  한국에서와 달리 서양에서는 '참선'이 심리 치료, 의식 확장, 인간 잠재력 계발 등에 도움이 된다고 잘 알려져 있다고 한다. <참선>이라는 책에 시작부터 몰입할 수 있었던 건 이런 단순한 장점들 때문이 아니었다. 프롤로그에 적힌 작가의 말은 내가 어떠한 편견도 없이 책을 읽을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저자가 절에 들어가기 전에 가지고 있던 개인적인 의문들은 내가 평소에 가지고 있던 생각과 정확히 일치했다. 특히 만약 살면서 운이 좋았다면, 왜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굳이 나여야만 했는지, 나는 왜 나로 태어나야만 했는지 등의 질문은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이런 의구심에 평생을 시달려 왔으면서도 남들에게 털어놓은 적은 없었다. 정확한 답을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이 없고, 무엇보다도 깊은 대화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심오한 이야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프롤로그를 읽자마자 아, 드디어 제대로 찾았구나 생각했다. <참선>을 완독하는 것으로 질문에 대한 모든 해답은 얻을 수 없었다. '참선'은 "인내와 노력"을 엄청나게 요구하는 일이고, 장기적인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동안 평생의 의문에 관한 답을 듣지는 못했으나 부정적인 감정을 떨쳐내는 데에는 도움을 얻었다. 작가가 책의 많은 부분을 외로움, 두려움, 불안, 화, 실패, 중독적인 생활 습관과 같은 보편적인 감정이나 현상들을 살피는 데 할애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리 에세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였다. 그는 사람들이 가진 부정적인 감정의 대부분을 '참선'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 관심을 돌리는 대신 오직 "이뭣고?"에 집중하면서 바람이 지나가게 두면 된다"라고 조언했다. 이 책에 참선을 하는 방법이 소상히 적혀 있기 때문에 나도 여러 번 시도해 보았다. 그리고 문득 내가 책을 읽는 동안은 불안에 떨지 않았고, 쓸데없는 분노를 타인에게 쏟아내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론 관성에 이끌려 원래 내 모습으로 돌아가는 때도 여러 번 있었다. 익숙지 않은 호흡 때문에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힐 틈도 없이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분명히 뭔가가 변하고 있었고, 조금씩 유의미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이건 좋은 책을 발견했기 때문도 있지만, 스스로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된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새로운 변화를 갈구하고 있고, 인생이 나아지기를 나처럼 절실하게 원하고 있다면, 그리고 어떤 방식이든 일단 시도해 볼 준비가 되었다면 <참선>을 읽어 봤으면 한다. 


  <참선>이라는 책이 매력적인 이유는 종교나 신을 강조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 신이라는 존재에 대해 사람들의 불신은 팽배해 있다. 사람들에게 기댈 존재가 필요하므로 종교가 사라지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신을 믿는 게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아니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인지하기 시작했다. 작가는 한국에서 일어났던 '한강의 기적'을 통해 세상의 변화는 인간에게 달려있음을 주지시킨다. "기적 같은 것은 없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오르막길을 포기하지 않고, 심신을 혹사시키며 문제를 해결해나간 평범한 사람들이 있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개개인이 모여 협력할 때 "진정한 성장"이 일어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현실이고,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세상에 단언할 수 있는 건 없으니까, '신'이라는 존재가 없다, 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당장으로서는 작가의 말이 옳은 것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서로의 손을 맞잡아 더 나은 미래를 후대에 물려주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 신이 아니라 인간에게 해결책이 있다는 시각은 스님과 같은 종교인에게서 얻어본 적이 없기에 신선했다. 이외에 과학과 종교가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으리라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었고, 새로웠다. 

  또한 나는 작가를 통해 처음으로 우리가 살면서 속상할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배워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적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그렇게 많은 지식을 습득하면서도, 현 사회의 가장 큰 문제인 우울이나 불안과 같은 문제에는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지 어릴 적부터 배워온 바가 없었던 것이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감정을 억압하도록 강요받았고, 타인에게 드러내서는 안되는 문제가 되어 버렸다. 이토록 "정서적으로 무지한 상태"인 "21세기 도시 수행자"들을 위해 저자는 '참선'이라는 해결 방식을 내세운다. '송담 스님'은 '정신 수련'이 행복의 근원이라고 보았고, 전 세계은행 총재인 '김용'은 정신 관리, 자기 제어 훈련이 일상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 모두 '참선'이 정신을 관리하는 데 있어서 유용한 방법이라고 추천했다. '자기 계발'이라는 명목으로 밖에서 해결책을 찾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꾸준히 발전해야 한다는 생각에 스스로를 닦달하게 되고, 결국엔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잊어버리게 된다. 그러니 내면의 근원으로 눈을 돌려 안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빛으로 충만함을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인 '환산 스님', 즉 '테오도르 준 박'과 그의 스승인 '송담 스님'은 "우리는 한 팀이야. 알지? 가서 잘 싸워봐. 나는 네 편이야."라고 지속적으로 말하는 듯했다. 그들이 나를 돕고 싶어 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고, 며칠 동안 책에서 배운 '참선'이 조금이나마 가능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나는 나만의 수행을 시작해 볼 생각이다. 이 책은 읽는 독자가 어떻게 받아들이려고 하느냐에 따라 그 효과가 달라진다. 나는 <참선>이 한 번쯤은 다른 독자들도 시도해볼 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가 비주류 과학 자료와 이론, 종교적 관습에 관해 개인적으로 끝없이 의구심을 가지고, 연구해 봤다는 걸 언급하면 책을 고르는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참선>이라는 책이 단순한 미신이나 검증되지 않은 민간요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모든 건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달려있다. 

소피 2020-01-29 공감(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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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안의 심연과 만나는 참선

  고즈넉한 산사의 풍경을 좋아한다. 그곳에서는 급할 것도 없고 서둘러야 할 것도 없고 시간의 흐름도 다르게 느껴진다. 반복되는 일상생활에서 지친 마음을 좀 내려놓고 평온한 시간을 가져보라고 산사의 바람도 속삭여주는 듯하다.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스님의 낭랑한 염불 소리나 목탁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불교를 소재로 한 영화를 보는 것도 그렇다. 무엇이 그렇게 산사의 풍경 속으로 이끄는 걸까. 오래 전에 읽은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를 쓴 현각 스님이 떠올랐다. 오직 진리, 즉 베리타스(Veritas)를 찾기 위해 애쓰던 벽안의 외국인이 숭산 스님을 만나 불교에 입문하고 수행하는 과정의 이야기가 무척이나 인상적이고 흥미로웠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그곳도 끊이지 않은 마음의 번뇌가 일렁이는 다른 모습의 사회라는 것을 비로소 느끼게 되었다.



  참선을 주제로 이 책을 쓴 저자 테오도르 준은 미국으로 유학한 한국인 부모님의 아들로 태어난 재미교포 2세이다. 그는 환산 스님으로, 방송에서 오랫동안 참선을 가르치기도 했다는데 TV와 담을 쌓고 살아서인지 나는 처음 알게 되었다. 앞서 현각 스님의 경우와는 불교에 입문하게 된 계기가 좀 달라서 왠지 무거운 마음이 들었다. 진리를 찾다가 숭산 스님의 설법을 듣고 스님이 되고 싶었다는 경우에 비하면, 그는 마음속에 들끓던 인간 존재에 대한 질문이나 어렸을 때부터 쌓여온 온갖 마음의 고통이 대학생이 될 때까지 계속되어, 자신의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송담 스님을 만난 것이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질풍노도와 같은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마음속을 꽉 채우고 있던 질문들의 답을 찾을 수 있을까. 마치 한 편의 성장 소설을 만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람은 항상 자신의 관점으로 타인들을 바라보기 마련이어서 그럴까. 화려한 스펙과 안정된 진로가 약속되었을지도 모르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신의 의지대로 나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호기심을 갖게 된다. 다른 분야보다 종교계에 대한 입문은 더욱 그런 것 같다. 그는 학교를 졸업하면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여 가정을 이루는 보통사람들의 삶에 회의적이었다. 또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아웃사이더로서 정체성을 고민했고, 풀리지 않는 인간 존재의 목적과 본성에 관한 의문으로 고통 받고 있던 듯하다. 이민자인 부모님이 열심히 일한 덕분에 안전한 보금자리에서 살아갈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이었지만 당혹감을 느꼈다는 것을 보면 보통 사람들보다 예민한 감수성과 이타심도 보였고 강한 것 같으면서 여린 마음으로 내면의 고통이 컸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우리는 인간으로 살면서 무엇을 해야 할까?

인간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인간은 정말 피와 살로 이루어진 물질적 존재에 불과할까?

그렇지 않다면 우리에게 그 이상의 것이 있을까?

육신이 죽은 뒤 우리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그냥 영원히 사라지는 것일까?

우리 몸이 태어나기 전부터 존재했던 어떤 것이 있을까?

인간은 정말로 어떤 존재일까?(1권 p40~41)



  그의 내면에는 항상 이런 질문들이 들끓었다고 한다. 보통 사람들도 한번 쯤 마음속에 품을 수 있는 생각이지만 대개는 더 이상 빠져들지는 않을 것이다. 처음부터 승려가 될 생각은 전혀 없었고 깨달음을 얻고자 노력할 생각도 아니었다고 한다. 대학시절 선불교 모임에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송담 스님의 이야기를 접하게 되고 졸업하기만을 기다린다. 송담 스님을 만나고 싶었던 이유는 자신의 ‘건강하지 못한’ 정신을 치료할 방법을 찾기 위한 절박함 이었다.



  10년간 묵언 수행을 하고 깨달음을 얻었다는 송담 스님을 향한 저자의 마음은 마치 인기 아이돌을 향한 소년의 마음처럼 느껴졌다. 2년을 기다린 끝에 친견하던 날, 스님의 아우라에 완전히 압도되고 이후 출가하여 수행자 생활을 하는 내내 마음속을 지배하게 된다. 스님을 향한 존경심과 사랑이 어느 정도인지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당시 미국에서는 선불교 모임에 참여한 부류에 세련된 젊은 대학생들이 많았던 것을 생각할 때 딱히 종교라는 이미지보다는 ‘문화’로서 향유하지 않았나 싶다. 내면의 고통을 치유하겠다는 일념으로 송담 스님을 만났지만 스님은 그것을 말이나 개념으로 전달할 수 없고 참선 수행을 통해서 알 수 있도록 도와 줄 수는 있다는 말을 듣는다. 어차피 세상의 어떤 공식 같은 삶에는 관심이 없었던 그는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참선이라는 생각에 이르러 제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분의 법문을 듣기 위해서 한국어를 배워야 한다. 삭발을 하고 절에서 ‘발우 공양’을 하고 설거지를 하고 불경을 소리 내어 일고 각종 의례를 진행하는 방법을 배워나간다. 한국어도 한자(漢子)도 몰랐던 상황에서 스님의 법문이나 전문적인 불교용어를 어떻게 다 익혀나갔을까. 배움에 대한 지원이 없어서 혼자서 터득해야 했기에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일상의 활동들을 해나가면서도 종종 낯선 자신을 발견한다. 권위와 복종을 보았고 폭력적인 기운 속에 숨겨진 두려움과 절망을 발견하면서 동료애를 느끼기도 한다. 그들과 자신의 공통점이 있다면 세상이나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해 아파하고 있었다는 것을. 이 밖에도 전통적인 종교 문화의 측면에서 ‘알지 못하는 것’과 ‘믿는 것’ 사이의 혼란으로 힘들어 하며 연극적으로 보이는 종교에 위선을 느낀다. 한 달에 한번밖에 볼 수 없는 송담 스님을 학수고대하며 보낸 순수한 마음이 그렇게 오랜 세월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송담 스님에게 ‘홀딱 반했’기 때문이었다고 회상하는 부분에서 묘한 연민이 느껴졌다.

  참선, 하면 고요한 법당에 정좌하고 있는 수행자의 모습이 떠오른다. 수계를 받은 지 2,3년이 지난 어느 날 방송실에 망연하게 앉아 있다가 송담 스님과 마주친다. 반갑기도 하고 내면의 갈등을 들킨 것 같아 복잡한 마음이 된 환산 스님은 자신을 바라보는 송담 스님의 표정을 감지한다. 흐뭇한 애정, 염려와 연민, 약간의 슬픔까지 깃들어 있는 그 표정을. 항상 제자의 내면을 꿰뚫는 듯이 간파하고 있던 송담 스님은, 뭐든지 배울 수 있는 세상이지만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것이 있다며 이야기를 꺼낸다.

“속상할 때나 화가 날 때나 슬플 때나 두려울 때 그리고 마음이 아플 때는 어떻게 해야 해?”

                                            (1권 p158)

  참선이 필요한 이유를 말하고 있다. 지금까지 참선은 수행자만이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왔다. 정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말이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남들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며 살아오지 않았는가. 속상해도 화가 나도 아닌 것처럼 위장하고 그것을 풀지 못해 앙금을 쌓으며 세월을 보내지 않았는가. 인간관계의 울타리 안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는 감정의 상처를 수도 없이 받는다. 그때그때 바로 밀어낼 수 있다면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정신의 건강을 온전히 지켜내며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우리가 “이뭣고?”를 읊조리며 정신을 맑게 하는 것은 마치 자동차를 타고 흙먼지 속을 달릴 때 먼지로 뒤덮인 유리창을 와이퍼로 한 번 닦아내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하고 있다. 정말 간단한 한 번의 작동으로 앞이 환해지듯이 깊은 수렁에 빠져드는 것을 참선으로 막을 수 있다니 얼마나 놀라운가.



  참선에는 요중선(움직이는 참선)과 정중선(앉아서 하는 참선)이 있다고 하는데 일상생활에서도 참선을 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워 놓으면 스트레스, 충격 등 정신적인 안정을 빨리 되찾고 평화로운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명상법은 참선 밖에 없다는 것이다.

참선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올바른 자세, 올바른 호흡, 올바른 생각 이렇게 세 가지면 어디서든지 적용할 수 있다고 한다. 원래 참선의 기본자세는 가부좌 자세지만 현대인이 실천하기에는 어려운 자세이므로 의자에 앉아 참선하는 법을 배우는 것을 권한다. 이 자세는 학교, 직장은 물론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도 스트레스와 불안한 마음을 제거할 수 있는 실시간 참선이며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참선법이라는 것이다.



  그 방법은, 준비단계로 감정 치유를 위한 호흡을 먼저 하고나서 본 호흡으로 들어가는데 복식호흡을 하면서 ‘이뭣고’라는 화두를 들어 질문하면 된다. ‘이뭣고’는 ‘이것이 무엇인가?’ 라는 뜻의 경상도 사투리라고 한다. 이 화두를 던지는 이유는 알고 싶어도 알 수 없고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내면의 ‘이것’에 대해 알고 싶고 보고 싶은 간절한 마음 상태로 만들기 위해서란다. 짧은 말의 ‘이뭣고’가 리듬감 있고 재미있게 느껴졌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나도 모르게 ‘이뭣고’를 읊조리곤 했는데 뭔지 모를 붕 떠있는 듯한 불안한 마음들이 사라지고 평온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마음챙김 명상[ mindfulness meditation ] 이 떠오르기도 했다. 자신의 속마음이 변화되어가는 상황을 지켜보는 것으로 일상생활에서 적용할 수 있다는 점도 비슷하다. ‘이뭣고’는 지금 이 순간을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 ‘화두’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정적인 생각에 빠지기 전에 그러지 않도록 막아주는 ‘경고등’처럼 말이다. 감정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순간에 ‘이뭣고’를 말하며 현실로 돌아와 집중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언제 참선을 활용하면 좋을까.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커다란 문명의 혜택 속에 살고 있지만 그에 비해 행복하지 않다고 말한다. 누구보다 많은 업적을 올려야 대우 받는 세상이다. 삶이라는 과정 자체에서 마주하는 외로움, 우울, 불안, 중독적인 생활습관, 갈망과 혐오, 화와 집착 등 온갖 감정을 마음속에서 물리치는데 사용할 수 있다. 부정적인 생각이 더 커지기 전에 서둘러 없애버릴 수 있는 ‘예방 차원의 개인 맞춤형 정신 건강 프로그램’이라고 하니 배워서 활용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었다.

<마음에 남는 문장들>



“우리는 건강을 위해 몸을 깨끗이 유지해야 한다는 건 알면서 왜 마음에 대해서는 그리지 않을까?”(P182)



'참선은 살아가는 방식이다.’(P248)



“양동이가 새는 것을 발견했을 때 올바른 해결책은 안에서 구멍을 막는 것이다. 바깥에서 막으려고 해서는 소용이 없다.”(P315)



'참선은 죽음에 대한 불안을 억누르는 대신에 그 불안의 에너지를 연료처럼 이용한다. 죽음에 대한 불안을 억지로 밀어내지 않고 받아들이면 “이뭣고?” 화두에 더 강렬하게 집중할 수 있다. 사실 이 죽음에 대한 불안감으로 인해 참선이 정말로 생명력을 갖게 된다.’(P320)

                                  -이상은 1권 中-



‘참선으로 각자의 기분이 좋아지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참선을 통해 우리 모두가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2권 P257)



  맑고 건강한 마음을 유지하기 위한 참선부터 사는 동안 두렵게 여겨지는 죽음에 대한 불안을 참선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일상생활에서 조용한 참선과 활동적인 참선이 균형 있게 이루어지면 우리의 몸과 마음 정신은 평화롭고 맑은 상태가 될 것이고, 세상이 조화롭고 나아가서 우주와도 조화를 이루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참선을 접하게 된 초심자라면 인내심을 갖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매일 매 순간을 새로운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수시로 자신의 내면과 대화하는 시간을 갖는다면,  마음의 평온을 유지 할 수 있으며 좀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이 행복하면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도 생기는 것이다. 이런 긍정적인 작용으로 인해 베푸는  사람이 많아지는 사회, 국가, 세계로 넓혀갈 수 있다면 조금이라도 더 평화로운 세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참선이 추구하는 미래상이었다.



  대학을 갓 졸업한 스물 두 살의 청년은 송담 스님을 만나 영감과 감동을 받고 그분처럼 되고 싶었던 환산 스님은 어떻게 되었을까. 30년 가까이 수행자 생활을 하는 중 7년 전에 활구 참선을 가르치라는 송담 스님의 권유로 TV방송을 시작하며 유명세를 얻고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느끼지만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보다 앞서 이미 환산 스님의 마음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출가하게 되면 사회적 관습으로부터 벗어날 거라고 생각했지만, 절의 운영방식에서 군대라는 조직의 모습을 보았고 비영리 중소기업에 취직한 것처럼 느껴졌단다. 자신이 싫어했던 세상의 모습을 피해서 왔는데 절에 와서 다시 만났다고 할까. 계파와 파벌이 생겼다 흩어지고 불만과 갈등, 경쟁과 논쟁, 동정과 연민의 감정들, 일반 사회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사람이 모여 사는 곳은 어디나 비슷하다는 것을 깨닫지 않았나 싶다.



  TV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광대’라 여기며 환멸을 느끼고 이전에는 상상하지도 못 했던, 원래의 자신의 삶으로 돌아 갈 결심을 한다. 당시 척추전방전위증이라는 질환으로 고통을 받고 있던 터라 여러 보직에서 물러날 이유도 타당했지만 심경은 복잡해 보인다. ‘물과 산소’ 같은 존재였던 스님에 대한 애착과 ‘추종자’ 노릇을 그만 두고 떠나야 한다는 확신 사이에 감정의 동요를 일으킨다. 불교를 믿어서가 아니라 스님을 믿기 때문에 스님이 되었고 자신은 언제나 ‘송담 교도’였다는데. 믿었던 사람, 믿었던 세계에서 빠져 나오며 무엇을 보았을까. 마치 환상에서 깨어난 것처럼 황망하게 느껴져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슬프면 이상하게 그 슬픔 한가운데서 기쁨이 느껴진다. 온 힘을 다해 꽉 붙들고 있던 뭔가를 잃어버리고 나니 아니, 놓아버리고 나니 비로소 주위의 모든 것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그렇게 나쁜 곳이 아니었다.(2권-p57)



그 정원에서 마침내 깨달았다. 성인이 된 후로 줄곧 엉뚱한 곳을 들여다보고 잘못된 기준과 관점에 연연해왔다는 것을. 더 나은 무언가가 되려고 노력하다가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렸다. 땅속에서 금을 찾다가 결국 그 땅을 놓쳐버린 꼴이다.(2권-p75) 





  한때 무관심했던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삶, 살아가기 위해 가게를 열고 출근을 하기 위해 서두르는 사람들을 보며 ‘진짜 살아가는 모습’을 느끼게 된다. 무언가에 흠뻑 빠져있을 때는 주위의 사정이 눈에 들어오지 않듯이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평범함에서 새로움을 발견한 것이다. 절을 떠나온 것을 후회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거기서 대부분의 청춘을 보냈으니 그 감회도 남다를 법하다. 요가를 배워 참선에 접목하기 위해 발리와 우붓을 여행하며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하면서 지난날의 자신을 떠올린다. 혼자서 모든 일을 하는데 익숙해졌기 때문에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오래 걸렸고 편하게 지내지 못하는 것 등,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부모를 두고 떠난 긴 세월을 뒤늦게 안타까워하고 승려로 살았던 30년을 놓아버린 후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며 수치심을 느끼기도 한다. 이 여행의 과정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삶을 맞이하여 앞으로의 삶을 새롭게 맞이하기 위해 치르는 통과의례의 과정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저자는 다소 평범하지 않은 인생을 살면서 배운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자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종교에 귀의해야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고통에서 빠르게 회복하도록 돕는 참선을 우리의 삶에 포함시키는 방법을 나누며,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혁신과 자기 진화의 혜택을 누리도록 돕는데 목적이 있다고 했다. 우리는 고도의 경쟁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도 없다. 다양하고 복잡한 감정상태에 처했을 때 참선을 배워서 실천한다면 위기도 극복할 수 있고 좀 더 행복하고 편안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진정한 참선은 일상생활을 벗어나서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 하는 것이다.” 

                                                           -본문 중-





  나는 1년 반 전부터 108배 운동을 하고 있다. 무릎에 무리가 오지 않을까 염려가 되기도 했지만, 심신 건강에 탁월하다는 한의사의 체험 이야기를 읽고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 시작했던 때는 무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7월이었는데 약 100일 정도를 하루도 쉬지 않고 했었다. 지금 생각해 봐도 내 스스로가 대견하게 느껴진다. 요즘은 의식적으로 일주일에 세 번 정도를 지키려고 노력한다. 횟수는 세지 않고 15분 내외로 몸을 굽혔다 펴는 동작을 반복 하다보면 몸도 따뜻해지고 감사의 마음으로 충만해진다. 마음의 평온은 물론 근육 단련에도 좋은 효과를 보았다. 참선은 복식호흡을 하며 내면과 대화하는 방식으로 생각되는데, 두 가지를 적절히 활용한다면 심신의 건강에 더욱 긍정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30년 가까이 한 사람과 한 세계를 믿고 따르며 살아가다가 그 세계에서 떠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믿고 사랑했던 스님을 떠나는 것이 그렇게 고통스러웠다고 했다. 그의 끝과 시작을 아름답다고 혹은 아름답지 못하다고 가볍게 평가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한 사람이 인생의 과정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선택 중 하나를 선택한 것이고 각자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에게도 커다란 용기가 필요했을 지도 모른다. 한 사람의 추종자로서 살아왔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지만 그 곳에서 살아가는 시간 동안 많은 것을 배웠고 깨달았을 것이다. 참선을 화두로 이 책을 쓴 것도 자신의 지난날을 통해서 변화된 삶을 제대로 바라보고자 계획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커다란 영감과 사랑을 받았던 스승의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해 지금은 21세기 도시 수행자가 되어 참선을 가르치고 강연을 하는 등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굽이굽이 세월을 돌아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지만 앞으로의 삶이 더욱 의미 있고 행복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보통사람들의 행복은 물론 온 인류의 안녕을 위해 참선을 널리 알리고 소통하는데 이바지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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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 2021-01-23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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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불교는 과연 피안에 이르는 길일까? 

선불교는 중국화된 불교라고 생각한다. 장자적인 사상도 꽤나 개입되어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아마 모르긴해도 우리가 소승불교라고 하는 상좌부불교 입장에서 본다면 선불교는 무척이나 낯선 종교일 것이다. 참선을 통해 어느날 문뜩 깨닫는다니...이게 대체 무슨 자다가 봉창 두둘기는 소리란 말인가?

불교는 결국 부처님법을 배우는 것이다.

2600년전 부처님이 보리수나무 밑에서 깨달은 경지를 지향하고 궁극적으로 그 자리에 가는 것이다. 생노병사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만일 부처님의 견처에만 도달할 수 있다면 그 수단과 방법은 문제되지 않는다. 저 피안으로 건너감에 있어 뗏목을 타든, 수영을 하든, 비행기를 타고 가든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달마를 초조로 해서 혜능이 완성하고 임제가 꽃을 피운 중국 한국 그리고 일본의 선불교는 과연 중생들을 부처님이 도달한 저 피안으로 인도하는 충분한 수단이 될까? 솔직히 이건 검증된 바가 없다.

달마 혜능 황벽 조주 임제 그리고 우리나라가 자랑하는 선승 태고 서산 경허 만공 그리고 우리와 같은 시대를 사셨던 전강 청담 성철 향곡 진제 그리고 테오도르 준 박의 스승이신 송담 스님까지...과연 그들은 부처의 견처를 선을 통해 본 것일까? 그 자리에 오른 분들일까?

 선불교에서는 이른바 인가를 말한다. 그런데 대체 누가 누굴 인가한단 말인가? 인가를 해주는 스승이 부처님 자리에 오른 정각자라는 보장이 어디 있는가? 만일 정각자도 아니면서 자신의 제자를 깨달은 사람으로 인가해준다면 이거야말로 부처님 앞에서 대죄를 짓는 일 아니겠는가?

20세기를 대표하는 선사 성철 스님은 스스로 오도송을 짓지 않은 것으로 안다. 그분도 분명 어떤 견처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부처님의 경지에 오른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은 것 같다. 또 성철은 법문에서 깨달은 사람을 찾아볼 수 없다고도 하셨다. 어느 토굴에는 있을지 몰라도 적어도 자신은 못 봤다고 하셨다.

성철은 소시 적에 효봉과 만공 그리고 자신의 스승인 동산을 친견하고 가르침을 받은 분이다. 그리고 청담과 향곡과는 다시없는 도반이었다. 후배인 진제와 송담에 대해서도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성철이 깨달았다고 인정한 스님은 없었다.

 

많은 선승들이 스스로 오도송을 지을 만큼 깨달았다고 하는 견처 그게 과연 부처의 경지일까? 혹시 뭔가 특수한 정신적 경험을 깨달음으로 착각한 것은 아닐까? 나는 솔직히 달마나 혜능 그리고 임제가 오른 경지가 과연 부처님과 같은 견처인지의 여부 자체가 의문스럽다.



20세기 한국 최고의 선지식 중 한분으로 손꼽히는 만공선사는 생전에 세 차례 깨달았다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깨달음은 단박이고 일회성이다. 완전한 깨달음이라면 1회로 족하다. 3번이나 깨달았다고 하는 것 자체가 미완성의 깨달음임을 고백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건 일종의 신비적 체험으로 이해하는 것이 정확하다고 본다.



소위 선문답이라는 것도 그렇다. 달마가 서쪽에서 오신 뜻은? (1)뜰앞 측백나무니라 (2)마른 똥막대기다 (3)판치생모니라...상식적으로 이해될 수 없는 이런 말들을 놓고 견처를 보면 그 내용을 알 수 있다고들 한다. 무문관의 48측 공안이 일거에 타파된다나? 그러면서 그게 생각을 뛰어넘는 깨달음의 경지라고 한다.

 

하지만 부처님은 그 어느 경전을 봐도 이런 엉뚱한 이야기는 단 한 말씀도 하시지 않았다. 만일 부처님이 살아계신다면 이런 중국식 선문답을 팔정도 가운데 正語에 어긋나는 妄言이라고 야단치시지 않았을까. 부처님은 덕산처럼 몽둥이질을 하시지도 않았고 임제처럼 느닷없이 할을 하지도 않았다.

 

초전법륜에서 부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다. 나는 中道를 얻어 깨달았다고. 중도란 무엇인가? 무슨 양변을 여윈다느니 쌍차쌍조라느니...이렇게 어렵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중도는 그냥 팔정도다. 팔정도가 중도다. 팔정도가 부처님의 견처에 이르는 유일한 길인 동시에 정각자의 경지다.



성철 스님이 생전에 불교의 요체를 중도로 파악하고 중도를 강조한 것은 탁월한 혜안이다. 하지만 그분은 중도를 난해하고 폭이 좁게 설명하였다. 중도=팔정도...얼마나 심플하고 명확한가? 백일법문에서 성철이 설법한 것과 같이 양변을 여윈다는 식의 설명은 세상 만물을 분별을 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팔정도 가운데 정견에 해당된다. 즉 깨달음의 견지에서는 1/8에 불과하다.



물론 성철은 당대 최고 수준의 학승으로 해박한 불교이론을 공부한 스님이다. 일어판 니까야를 숙독하셨을 것이다. 즉 남전대장경에 나오는 팔정도의 내용을 몰랐을 리가 없다. 하지만 성철의 중도에 대한 이런 아쉬운 인식은 기본적으로 중국식 불교를 몸담은 선승의 한계 아니었나 싶다.



3조 승찬대사의 저술로 알려진 신심명도 그렇다.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으니 간택을 버리면(싫어하면) 된다...이렇게 가르쳤는데 이 역시 부처님이 설하신 팔정도와는 거리가 있다. 역시 정견에 국한했을 뿐이다. 정견이 매우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 자체가 온전한 팔정도일 수는 없다. 정견 즉 불이, 분별하지 않는 것만으로 불지인 정각에 오른다고 주장하는 것은 부처님의 초전법륜에 어긋나는 주장이다.

   

선불교의 수행방식이나 선불교가 깨달았다고 보는 경지가 팔정도가 아니라면 그건 부처님의 가르침과 구분되어야할 중국식 종교일 뿐이다. 이른바 깨달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무애자재라는 명목으로 기행을 하고 심지어 음행까지 합리화한다면 그건 부처님법이 아니다. 부처님을 빙자한 망동일 뿐이다. 원효이든 경허든 간에 생전에 부처님과 다른 언행을 보였다면 그건 정각자가 아니다.

 

선불교가 피안에 이르는 하나의 수단일 수 있다. 아마도 뭔가 있기에 달마 이후 지난 1500년동안 중국 한국 그리고 일본에서 면면히 동양불교의 중심으로 존재해 왔을 것이다. 그런데 선불교에서 강조하는 이뭣꼬 화두도 결국 중도 즉 팔정도에 이르는 길이어야 한다.

 

팔정도는 부처님의 경지에 이르는 지름길이자 깨달은 후 응당 실천되어야 하는 실천행이기도 하다. 나는 제 아무리 유명한 선승이라도 팔정도가 몸에 체득되어 자연스럽게 그게 실천되지 않는 사람이라면 가짜라고 생각한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원효나 경허 스님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반드시 같은 의미는 아니지만 팔정도는 계정혜로 치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계정혜가 완성되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참선을 통해 뭔가를 경험했다고 하더라도 피안에 건너간 사람은 아니라고 믿는다. 이 시대의 대표적 선승 송담 스님에게서 30년을 공부한 테오도르 준 박의 고민도 혹시 이런 류는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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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톰 2023-05-27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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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참선 매뉴얼 - 언제 어디서나 - 건강한 마음과 행복한 삶을 위한 매일의 트레이닝
테오도르 준 박 (지은이),키미앤일이 (그림),구미화 (옮긴이)나무의마음2020-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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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파일 형식 : ePub(29.23 MB)
TTS 여부 : 지원

종이책 페이지수 : 252쪽
책소개
수년 전에 저자는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페이스북 본사의 초청으로 '선(禪) 명상'을 주제로 강연을 한 적이 있다. 당시 강연을 들으러 온 이들은 대부분 20대와 30대의 프로그래머와 신제품 개발자들이었다. 그들은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고, 기존의 패러다임을 초월할 수 있는 탁월한 창의력과 상상력을 키우고 싶어했다. 참선을 배우면 무의식적으로 간직하고 있는 선입견을 깰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때의 강연 내용과 저자가 직접 30년 동안 경험하고 기록한 참선 프로그램의 실질적인 효과와 구체적인 실행 매뉴얼을 담았다.

저자는 <참선(Seon Meditation)>(1·2권)에서 수행자로서 지나온 삶을 펼쳐 보이며 참선이 우리 삶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이야기했다. <참선>의 실천편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책 <참선 매뉴얼>에서는, 그렇다면 참선은 어떻게 하는지, 우리가 삶에서 맞닥뜨리는 다양한 상황에서 참선 기술을 어떻게 적용할지를 이야기한다. 참선을 처음 접해보는 사람도 누구나 쉽게 시작할 수 있도록 그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이 책에서 저자는 자신의 몸과 호흡, 생각과 감정을 다루는 법을 알면 화가 나거나 두렵거나 상처받거나 충격을 받아도 바로 그 순간 자기 치유와 회복 시스템을 가동해 효과적으로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지난 30년간 자신이 참선 수행을 통해 알게 된 것들을 체계화하여 보다 짧은 시간 안에 효과적으로 참선을 익힐 수 있도록 압축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전달한다.


목차


프롤로그 | 이뭣고?

1부 참선, 행복으로 가는 새로운 공식
1. 참선에 들어가기 전에
2. 좌선, 참선의 기본
3. 좌선을 하기 어려울 때 의자에 앉아 참선하기

2부 언제 어디서나 마음 다스리기
1. 입선, 선 자세로 참선하기
2. 행선, 걸으며 화와 불안 다스리기
3. 와선, 누워서 외로움과 우울증, 피로 해소하기

3부 참선으로 생활 습관 바꾸는 법
1. 나만의 참선방 만들기
2. 직장에서 참선하기
3.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의 참선
4. 시험을 치를 때 도움이 되는 참선
5. 연설과 프레젠테이션을 위한 참선
6. 우리가 미처 몰랐던 중독적인 습관
7. 스트레스에 실시간으로 대처하기 위한 참선더보기



책속에서


첫문장
우리는 살아가면서 다양한 형태의 정신적 고통을 겪는다.



참선은 고통이 일어나는 순간에 그 즉시 고통을 없애주는 ‘실시간 자기 조절 시스템’을 제공한다.
참선은 우리가 삶 속에서 ‘하는’ 어떤 것이 아니다. 참선은 ‘삶에 대처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 즉 참선을 하려 하지 말고 참선을 이용하라.
올바른 자세는 마음을 단련하는 여정의 첫 단계이다.
감정에 따라 고유의 호흡 패턴이 있다. 감정에 따라 호흡이 달라지는 것처럼 호흡법에 따라 감정이 바뀔 수도 있다. 따라서 호흡을 조절하는 법을 배우면 몸과 마음을 동시에 조절하는 법을 알게 되는 것이다.
밀려드는 파도를 억지로 누르거나 막으려고 해서는 물결을 가라앉힐 수 없다. 그런 방법은 또 다른 물결을 일으킬 뿐이다. 이럴 때에는 저항하지 말고 그냥 지나가게 두는 것이 올바른 대응책이다. 준비 호흡은 감정에 저항하지 않는 무저항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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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테오도르 준 박 (Theodore Joon Park)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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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Seon Meditation)』(1·2권)에서 수행자로서 지나온 삶을 펼쳐 보이며 참선이 우리 삶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이야기했다. 『참선』의 실천편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책 『참선 매뉴얼』에서는, 그렇다면 참선은 어떻게 하는지, 우리가 삶에서 맞닥뜨리는 다양한 상황에서 참선 기술을 어떻게 적용할지를 이야기한다. 참선을 처음 접해보는 사람도 누구나 쉽게 시작할 수 있도록 그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이 책에서 저자는 자신의 몸과 호흡, 생각과 감정을 다루는 법을 알면 화가 나거나 두렵거나 상처받거나 충격을 받아도 바... 더보기

최근작 : <참선 매뉴얼>,<참선 2>,<참선 1> … 총 10종 (모두보기)

키미앤일이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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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리는 키미와 글을 쓰는 일이입니다. 바람 따라 구름 따라 흘러다니는 것을 좋아합니다. 매번 새로워지고 달라져서 가끔 무얼 하는 사람들인지 헷갈릴 때도 많지만, 그래도 항상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 삶도 작업도 아름답기를 바라며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최근작 : <우리는 초식동물과 닮아서>,<더 포스터 북 by 키미앤일이>,<좋아하는 일을 계속해보겠습니다> … 총 13종 (모두보기)

구미화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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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에서 영어영문학과 서양사를 전공하고 동아일보사에서 기자로 일했다. 이화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영어교육을 공부하고 번역을 시작했다. 옮긴 책으로는 『참선』(1, 2) 『농장에서 식탁까지 100마일 다이어트』 『민주주의를 넘어서』 『촘스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인생학교-지적으로 운동하는 법』 『인생학교-자연과 연결되는 법』 『지속 가능한 교육을 꿈꾸다』(공역) 『변화를 이끄는 이사회』 등이 있다. 매일 두 아이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고 후회하지만 내일은 좀 더 나아지리라 번번이 다짐하는 엄마다.




출판사 제공 책소개



아웃사이드(Outside)에서 인사이드(Inside)로
“디지털 시대에 참선이라니… 그러나 그것이 내 일상과 직장 생활을 바꾸고 있다!”
_ 김용배(엔씨소프트 북미지사 엔지니어)

회사에서, 일상에서
내면의 평화와 잠재력을 키워주는
하루 참선 습관 만들기
수년 전에 저자는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페이스북 본사의 초청으로 ‘선(禪) 명상’을 주제로 강연을 한 적이 있다. 당시 강연을 들으러 온 이들은 대부분 20대와 30대의 프로그래머와 신제품 개발자들이었다. 그들은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고, 기존의 패러다임을 초월할 수 있는 탁월한 창의력과 상상력을 키우고 싶어했다. 참선을 배우면 무의식적으로 간직하고 있는 선입견을 깰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때의 강연 내용과 저자가 직접 30년 동안 경험하고 기록한 참선 프로그램의 실질적인 효과와 구체적인 실행 매뉴얼을 담았다.
저자는 『참선... 더보기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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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참선이라는 현대인의 마음 챙김에도 좋은 수행법을 잘 알려주신 작가님께 감사한 마음
indest823 2021-07-23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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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이 일상 속으로!

테오도르 준 박님의 [참선 매뉴얼]은 [참선]이라는 그의 수행담 1,2권을 읽고 곧 참선을 가르침하는 후속작이 나온다기에 기다리던 책이다.

[참선 매뉴얼은] 한국의 전통 참선법의 체계를 현대화해 종교적 색채나 신비주의적 색깔을 배제한 실수행을 가르치는 저작이다.


화두선(간화선)을 가르침하는 다른 저작도 한 권 읽어 봤던 적이 있어 비교를 안 할 수가 없다. 물론 각각의 장단점은 있겠지만 깨달음의 경지를 형이상학적 관념들로 장황하게 서술하거나 불교적 특색이 강렬하게 느껴지는 다른 저작과 [참선 매뉴얼]은 확연히 다르다.

참선의 가르침은 빈틈없지만 선수행의 단계들이나 깨달음의 경지를 신비화하고 있지 않아 불교도가 아닌 분들도 거부감 없이 참선 수행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저자 테오도르 준 박님의 참선에 대한 정의를 보면 명백히 그가 갖는 참선에 대한 신념을 알 수 있을듯하다. 그는 참선은 "정신적 면역체계"라고 했으며 또 참선이 "정신적 고통에 대응하는 실시간 대응체계"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환속한 전직 승려로서 승려로 지낸 기간만도 20년에 이른다. 하지만 그 자신의 수행담을 담은 [참선]이란 전작을 보자면 그는 불교도라기보다는 그의 스승에게 매료되어 수행의 길로 뛰어들었다고 고백하고 있는 사람이다. 자신은 불교도가 아니라는 명백한 정체성을 갖고 승려의 길을 걸었던 사람이라 참선을 가르침하는 저작에서도 불교적 색채가 거의 완벽히 배제될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수행(꾼달리니 딴뜨라 요가 계열 수행과 밀교 계열 수행)과 불교를 둘 다 좋아는 하지만 불교도는 아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런 그의 종교적 색채를 배제한 서술이 무척이나 반가웠고 부담이 없어 좋았다. 다른 간화선 수행서처럼 수행의 단계, 깨달음의 경지를 나열했다면 선뜻 참선 수행에 뛰어들기 부담스러웠을 듯하니 말이다. 아마도 그가 서양에서 자라 불교의 압도하는 종교적 색채에 무던할 수 있었기에 이런 중도적인 성격을 띠는 저작이 완성될 수 있었다 싶다.

저자의 이번 저작은 참선이라 불리는 간화선, 화두선을 스포츠를 단련하고 수련하듯 단계적으로 익숙해질 수 있는 체계를 제시하며 앉아서 서서 걸으며 또 누워서 수행하는 네 가지 방식으로 체계화하고 있다. 그의 말로는 전통 참선 수행방식을 그대로 따랐다고 했으나 서술 방식은 그가 현대화해 누구라도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수행해 나갈 수 있도록 제안한 책이라고 생각된다. 또 일어나며 잠들며 하는 와선이나 기상 직후와 저녁시간에 할 수 있는 좌선, 또 서서 하는 입선, 걷는 중에 할 수 있는 행선은 그가 제시하듯 일상에 접목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나 프레젠테이션 등 업무와 공부, 시험에서 대입할 수 있다는 건 저자가 경험담을 들어 설명하고 있다. 그의 설명과 같은 효과는 만트라 수행에서도 동일한 효과를 보고한 저작들도 많으니 거짓이 아닐 거라고 확신에 차 전할 수 있을 듯하다. 분명 업무, 발표, 공부, 시험, 일상에서의 감정 조절 등 각 분야에서 강력한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판단된다.


[참선]이라는 그의 전작에도 간화선 수행법이 짧게 서술되어 있어 당시 수행을 잠시 해봤었는데 "이 뭣고?" 이 한마디가 주는 중압감이 감당키 어려울 정도였다. 삶이 꼬이고 엮여 뭉쳐져 있는데 그 꼬이고 엮인 덩어리가 풀어지지도 못하며 덮쳐오는 압박감이 심각해 '나는 간화선 수행은 맞지 않는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선수행에 대해 알아가고 보니 선방에서는 몇천 가지의 화두가 있으며, 추려내고 추려낸 무문관이란 저작에만 화두가 45가지인지 48가지인지나 된다고 한다. 그중 내게 맞는 화두가 없지는 않을 거라 생각하고 저자가 서술한 화두선 수행법을 따르며 화두만 "뜰 앞의 잣나무"로 바꿔 보았는데 화두선을 처음 해 보았던 당시처럼의 부작용은 없었다. 정말 저자가 말하듯 정신적 면역체계 같은 효과, 정신적 고통에 대응하는 실시간 대응체계 같은 효과를 주는 듯했다.


앞으로 [꾼달리니 딴뜨라]를 보조하기 위한 수행, 정규 수행 시간 외의 시간에 하는 수행으로 또 장마나 폭염에서 [꾼달리니 딴뜨라]를 대체하는 수행으로 참선을 수행해 볼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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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라 2020-07-31 공감(22) 댓글(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