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05

영적 재탄생을 위한 역치의 상징: 죽음 Symbol of Threshold for Spiritual Rebirth: De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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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gration of Psyche and Matter and Sandplay Therapy in the Era of Pandemic (Mask, Tal)*

상징과모래놀이치료, 제8권 제1호
Journal of Symbols & Sandplay Therapy 2017, 6, Vol. 8, No. 1, 49-65.

영적 재탄생을 위한 역치의 상징: 죽음
Symbol of Threshold for Spiritual Rebirth: Death
이 영 숙*
Lee young-sook

<Abstract>
Jung said that the stubbornness of life and the attitude towards life in the second half should be different. In the first half of life, the attitude towards life is the period of widening oneself, aggressively challenging life, concentrating excessively in order to achieve social success, and in the latter half of life, unlike the direction of life in the first half. It takes time to listen to the sound of the unconscious, but the process is scary and painful enough to be expressed by death. The process of changing the attitude towards life in the second half is expressed as psychological abandonment and wandering, which requires efforts to develop the ability to dismantle and reorganize the old mental structure. It is only through the process of death that it is transformed into a new process of individualization. This article is about the reasons for starting the process of death, looking at the cultural, religious, mythological, psychological, and creative meanings of death, and about the changes in the attitude towards life after death and suffering.
Keywords : the first half and the second half of life, death, conversion, rebirth
 
* 은하수어린이집 원장 (skyrain0531@hanmail.net)

Ⅰ. 서  론
모든 인간에게 피할 수 없는 것이 죽음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죽음의 비밀을 밝혀
내고 싶어 하지만 죽음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어디가 끝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죽음 뒤에 무엇이 있는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김유진, 2007). 사람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이 물음은 모든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의문 중 하나이다. 철학적인 관점에서나 종 교적인 관점에서도 충족할 만한 해답을 얻지 못하고 있다. 아니 어쩌면 이 물음은 영원히 해답이 필요하지 않은 존재의 운명적 공명(共鳴)인지도 모른다. 사실 우리는 죽은 자의 넋 이 죽음 이후에 어떻게 되는지를 모른다(이부영, 2015). 모든 부족과 종교도 죽음에 대한 의 문을 가지지만 모든 의문은 우리의 상상 속에 있을 뿐이고 저마다의 방법으로 죽음에 대한 의문을 풀려고 하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죽음은 누구에게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찾아온 다. 그래서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Schopf, 2008). 죽음은 우리의 모든 것을 끝내야 한다고 생각하게 한다. 전혀 알지 못하는 공간에 던져
지거나 익숙했던 것들과 끝내야 하고 낯선 환경에서 길을 잃고 당황하게 될 것이며, 내가 아닌 내가 될 것에 대한 공포를 느끼게 한다(Rinpoche, 1999). 모든 살아있는 사람에게 가장 확실한 진실은 우리들 모두가 언젠가 반드시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이다. 살아 있다면 우리 는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Easwaran(2005)은 살아있는 것에 대해 강하게 집착할수 록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커지게 마련이며 “삶이란 말은 죽음의 상대개념으로 죽음이 없다 면 삶의 의미도 이해할 수 없고, 삶은 죽음과 분리된 상태가 아니며, 삶이란 모태로부터 무 덤에로의 여행이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융은 인생의 전반기와 후반기의 삶의 태도가 달라야 한다고 하였다. 인생의 전반부는 자 아 중심화의 시기로 사춘기에서 정점에 이르는데, 중심화는 의식과 무의식 체제 간의 보상 적 관계로서 나타난다. 그러나 중심화의 중심기관인 자아는 그 전체성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인생의 후반부인 중년기에 이르러 인격의 변화를 초래하게 되며, 이 시 기에 자아가 중심화를 의식하게 된다. 동시에 개인의 전 인격화 과정과 정신적 전체성의 중심으로서 자기의 배열에 이르게 된다. 이때 전체성의 중심은 무의식적으로 작용할 뿐 아 니라 의식적으로도 경험된다(Neumann, 2010). 인간은 살면서 누구나 한번 씩 카오스적 시기 를 겪게 된다. 그 시기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그 후의 삶의 방향도 달라지게 된다. 이에 본 연구는 인간의 의식적인 삶이 무의식의 영역인 죽음을 경험하는 것의 심리학적인 의미 즉 영적인 재탄생의 상징성을 알아보고 이와 더불어 죽음에 대한 문화적, 종교적, 신 화적 의미에 대해 탐색해보고자 한다.

Ⅱ. 죽음의 의미

1. 죽음의 문화적인 의미

인간과 달리 동물들은 죽음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다가오는 죽음을 바라볼 
뿐, 죽음에 대해 사색한다거나 그것에 나름대로 대처하는 일이 없다고 한다. 고대 이집트인 들이 미이라를 만들어 시신을 보존하는 이유는 죽음 뒤에 또 다른 삶이 있다고 믿었기 때 문이며, 다시 태어날 때 몸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중국 사람들은 신선이 됨으 로써 죽음을 극복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일찍부터 기독교와 같은 종교가 가르쳐온 것도 영 생이다. 그런가 하면, 죽은 자를 추모하는 의식도 인간에게만 있는 일이라고 한다(정동호, 
2005).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생의 마감에 대한 풍습과 신앙이 부족마다 달랐으나 대부분의 원 주민들은 사람마다 최소한 두 개의 영혼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나는 자유로워 꿈을 꿀 때 나 병에 걸렸을 때 몸을 떠날 수 있지만, 다른 하나는 육체적이어서 항상 몸에 머무른다는 것이다. 앞의 영혼은 죽은 뒤 내세로 떠나며 뒤의 영혼은 몸과 함께 죽거나 하다못해 죽음 직후의 막연한 시간 동안이나마 시신에 매여 있게 된다. 나바호족은 태어날 몸에 들어왔던 생명의 바람이 떠나는 것을 죽음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이러한 죽음을 두려워했다. 죽 은 사람의 선함은 우주의 균형과 조화에 기여할 수 있지만, 나쁜 품성은 유령의 형태로 남 아 살아있는 이들에게 해악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Larry, 2001). 다음은 타오스족의 노 랫말이다. 
“오늘은 죽기 좋은 날 모든 생명들이 나와 조화를 이루고 모든 소리가 내 안에서 합창하고
모든 아름다움이 내 눈에 녹아들고
모든 잡념이 내게서 멀어졌으니 오늘은 죽기 좋은 날
나를 둘러싼 저 평화로운 땅 마침내 순환을 마친 저 들판 웃음이 가득한 나의 집
그리고 내 곁에 둘러앉은 자식들
그렇다, 오늘이 아니면 언제 떠나겠는가.”
(W00d, 2016, p. 34)
이집트인들은 죽음과 사후의 세계를 신성시하였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잠시 지나는 과
정이었고, 다시 태어날 몸을 함부로 훼손해서는 안 되었다.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시신을 방부처리 하고 장례용 토기를 넣어서 여신들의 보호를 받게 했다. 그리고 고인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으려면 정기적으로 제물을 바치고 고인의 이름을 불러야 했는데, 그 렇다고 죽음 이후의 삶이 무조건 보장되지는 않았다. 죽은 뒤에는 오시리스의 심판을 받아 야했는데 죽은 사람의 선과 악의 무게를 재어 영혼을 평가했다. 선이 더 무거워야 두 번째 삶을 허락받았고, 악이 더 무거우면 완전한 죽음을 당해야 했다(Francois, 2002). 이집트인들 은 동생에게 살해되었다가 아내 이시스의 도움으로 살아난 오시리스를 사자(死者)와 동일시 하였고, 이것은 이집트 왕과 개인의 장례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무덤에 다른 신변용품을 넣어주는 풍습도 생기게 되고, 순장풍습이 생기기도 하였다. “오시리스는 죽음을 극복한 자 이고, 스스로를 생산한 자이고, 창조의 비밀, 부활과 재탄생의 비밀 전수자이다.”(Neumann, 2010) 오시리시는 이중 영혼을 가지고 있어서 스스로 하나가 될 수 있고, 자기 모습을 보존 하고, 변화하며, 죽음을 극복한 자이고, 창조의 비밀을 갖고 있는 자이며, 부활과 재탄생의 비밀 전수자이며, 하위의 힘을 상위의 형태로 변형시킬 수 있고, 상부세계와 하부세계를 동 시에 지배할 수 있다(Neumann, 2010).
우리나라의 민담에서는 이승과 저승, 하늘 세상과 땅 세상을 통틀어 으뜸가는 신으로서 
하늘 옥황궁에 살면서 신과 사람을 다스리는 옥황상제(천지왕)가 있다. 그리고 저승을 다스 리는 열 왕, 저승 시왕이 있는데, 죽은 사람을 심판하는 일을 한다. 염라대왕이 그 우두머 리이다. 또한 죽은 사람을 저승에 데려가는 신으로 저승 시왕의 심부름꾼인 저승차사가 있 는데, 저승차사는 여럿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승에 죽은 사람을 데리러 올 때는 보통 세 차사가 함께 온다. 저승차사 해원맥과 이승차사 이덕춘과 염라차사 강림도령이 이 야기에 가장 자주 나온다. 이들을 보통 저승 삼차사라고 한다. 오구신은 죽은 사람을 저승 길로 이끌어주는 신으로서, 삼나라 오구대왕의 일곱째 딸 바리데기가 그 주인공이다. 언월 도와 삼지창, 방울과 부채를 들고 죽은 사람의 영혼을 인도하므로 무당의 시조로 떠받들리 기도 한다. 저승길을 지키는 저승길신이 있는데, 바리데기를 주워다 기른 공덕으로 이 신이 되어 노제를 받아먹는다. 저승에는 사람마다 곳간이 하나씩 있는데, 살아생전 남에게 은혜 를 베풀 때마다 제물이 쌓이는데, 이 곳간을 지키는 저승고지기가 있다(서정오, 2004).
현대인들은 죽음이 상실과 소멸을 뜻한다고 배웠으며, 그래서 우리는 죽음을 부인하게 되거나 죽음이 주는 공포를 느끼며 살고 있다. 죽음이라는 말을 꺼내는 것조차 불길하게 여기고, 불편함을 느낀다. 죽음을 위험을 무릅쓰는 상태나 모든 권리를 다 써 버린 상태로 받아들이고, 걱정할 것이 없는 상태로 생각하기도 한다. 현대인들은 현재의 삶을 전부로 여 길 만큼 영혼이 메말라 있다. 삶 이후의 삶에 대한 어떤 실제적인 또는 근거 있는 신념도 없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궁극적인 의미를 상실한 채 자신의 삶을 이어가고 있을 뿐이다. 죽음을 인정하지 않음으로 야기되는 참담한 결과는 한 개인의 차원을 훨씬 넘어선다. 티베 트의 고승들은 이 삶 이후의 삶에 대한 확고부동한 신념이 없는 사람들이 행동의 인과응보 에 대한 충분한 사려 없이, 근시안적인 결과에만 집착하는 사회를 형성하게 될 것을 염려 한다(Rinpoche, 1999). 현대인은 자신의 내면에 귀 기울이기는 일을 너무나 소홀히 하고 있 고, 바쁜 일상을 보내는 것이 자신의 삶의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물질적인 것을 얻기 위해 무의식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것이 현대인의 삶이다. 사실 인생의 전반기에는 자신의 목표를 위하여 많은 시간을 들이는 것 외에 자신의 무의식의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죽음은 생의 종말이 아니라 산 자에서 죽은 자로의 전환이며, 죽은 자는 보고 느끼지만 
이승의 사람과 말이 통하지 않아서 자신의 죽음을 슬퍼하는 가족과 자기의 시체를 보고 있 으면서도 대화를 할 수 없는 상태로 보았다. “신령으로서 자취 없이 오는 줄을 모르거든/가 는 줄을 뉘 알소냐. 아마도 허사로다”하는 노래 가사처럼 실체는 없다(이부영, 2015). 자아의 의지대로 끌려가는 현실세계의 모든 관계를 끊는 다는 것은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이고, 모 든 죽음은 우리가 맺고 있는 모든 관계를 단절시킨다. 살아있는 동안 내가 가치를 두고 소 중하게 여기던 모든 관계를 돌아보게 한다. 관계가 끊기는 것이 죽은 자의 몫으로 보자면 죽음에 대한 의례나 장법은 죽은 자 보다는 산 자를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Barley, 
2001).

2. 죽음의 종교적 의미

융은 인간의 탄생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고 하였고, 죽음 뒤에도 삶이 계속 이어진다는 생각을 전적으로 거부하거나 무시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인생이 현재를 넘어서 무제한의 연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은 의미가 깊고 그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고 말한다. 심지어 사후의 삶을 생각하거나 의견을 만들고자 하는 시도는 인간의 원초 적인 요구라고 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류의 태고로부터의 유산이자 신비로운 삶에 가득 찬 원형이며, 우리 자신의 개별적인 삶이 전체가 되도록 그 자신을 보태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이부영, 2015).
기독교에서는 예수의 재림과 함께 산 자와 죽은 자에 대한 최후의 심판이 있을 것이며 천국의 문이 열리면서 하나님의 창조가 완성될 것이라고 가르쳐왔다. 또한 영혼과 육신을 구별하여, 육신의 죽음 뒤에도 영혼은 사멸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영혼의 불멸에 대한 이러 한 믿음은 부활이라는 관념과 연관되어 있다(Hale, 2006). 기독교는 그리스도의 죽음이 우리 를 구원하는 수단이며, 세례를 통해 죽음에 동참하며, 성만찬을 통해 부활을 할 수 있도록 연결된다고 본다. 기독교 관점의 죽음은 예수의 죽음이 우리 자신의 죽음을 이미 포함하고 있으며, 우리가 죄로 인해 하느님으로부터 받았던 소외가 극복되고 제거될 수 있다고 보았 다(Bowker, 2005).
불교에서는 죽음이란 영혼이 몸을 떠나는 것으로서, 죽어도 영혼은 영원히 소멸하지 않 는다고 보며, 불교에서 죽음에 대한 가장 원초적인 형태의 정의는 수명・체온・의식이 사 라져 신체의 기관이 모두 파괴된 상태, 육신과 생명이 분리되는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다 시 태어나는 불변적인 자아는 환생을 할 수 있다고 믿게 되는데, 사람이 죽으면 아직 다 고갈되지 않은 카르마의 영향력이 한 군데로 모여 적합한 다음단계의 새로운 카르마로 간 다. 죽으면 모든 것이 소멸된다는 입장과 사후에 불멸의 영혼 같은 것이 계속 남는다고 하 는 주장이 있다.
힌두교에서 죽음은 끝이 아니다. 죽음으로 인해 영혼은 육체를 떠날 뿐이며, 주검은 다만 영혼을 잃은 물체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죽은 자의 영혼을 위무(慰撫)하고 새로운 옷을 입을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며, 주검을 새 천으로 싸고 꽃으로 장식하여 화장터로 향하는데 사람들은 죽은 자의 명복을 빌지만 통곡하지는 않는 편이다. 그리고 죽은 사람의 영혼은 살아있는 사람에게 혜택을 베푸는 존재가 된다(이은구, 1997). 힌두교에서 화장은 영혼이 돌 아오기 10일 안에 이루어져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영혼이 다시 시신 속으로 들어가게 된
다고 본다(http://pann.nate.com/talk/118547514)

3. 죽음의 신화적 의미

그리스 로마신화에서는 그윽한 어둠의 신 에레보스와 밤의 여신 닉스 사이에서 태어난 
죽음의 신 타나토스(Thanatos)가 있다. 타나토스는 ‘죽음’이라는 뜻의 신이이다. 저승을 지배 하는 신인 하데스는 삶과 죽음 사이를 가르며, 냉혹하고 잔인하고 잔혹한 신이다. 타나토스 는 하데스의 오른팔 역할을 하였는데, 검은 도포 자락을 펄럭이면서 인간들 사이를 떠돌다 하데스의 명령에 따라 인간의 영혼을 저승으로 데려오는 저승사자이다. 이 저승사자는 손 아귀 힘이 세서 헤라클래스 외에는 꺾은 자가 없다. 이것은 아무도 인간의 무의식의 부름 을 거부할 수 없다는 뜻과도 같은 것으로 해석된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의 본성을 거역할 수 없으며, 자연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조용훈, 2005).
인도신화에서는 신들 중 최고의 신인 브라흐마가 이 세상과 땅 위의 모든 생물을 창조했 는데, 인간들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았기 때문에 땅이 신음하게 되었고, 이것을 본 브라흐 마는 화가 났고, 마음속의 분노를 모아 불을 만들어 세상의 모든 것을 태워버리기로 하였 다. 이 때 시바신이 나타나 모든 생물을 사랑의 눈으로 볼 것을 애원했고, 브라흐마의 분노 가 소멸될 때 마음속에서 한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났는데 이 여인이 바로 ‘죽음’이다. 세상 의 모든 것을 죽이라고 명령하자 ‘죽음’은 눈물을 흘리며 낙심했다. ‘죽음’이 흘린 눈물을 받 아서 질병, 투기, 탐욕, 심술, 근심을 비롯한 여러 가지 악을 만들어 ‘죽음’이 하는 일을 도 왔고, 이들이 먼저 인간들을 찾아가 임무를 끝내고 나면 죽음이 이 세상에 찾아와 그 인간 들을 데리고 저승으로 돌아갔다(Schopf, 2008). 죽음을 일으키는 자기 안의 세계에서 그것을 받아들이기 위한 고통의 과정은 누구에게나 피 할 수 없는 숙명이다. 어떻게 자신의 세계 를 이루며, 개성화의 과정을 이어갈지는 자기 자신의 문제이다. 사람은 자신의 삶의 안위가 영원할 것을 기대하지만 신은 인간에게 한정적인 삶의 시간을 주었을 뿐이다. 그래서 삶에 더욱 집착하게 된다.
 
Figure 1. 죽음과 소녀
http://www.thruguide.com/?p=999

Ⅲ. 죽음의 상징성

1. 죽음의 심리학적 상징

죽음은 연금술 작업에서의 니그레도(nigredo)의 단계이며, 암흑화의 단계이다. 종교적 금욕 주의에서 사용되는 죽음은 “참회, 금욕, 혹은 육체에 가혹한 고통을 줌으로써 열정과 욕망 을 극복함”을 뜻한다. 죽음은 연금술에서 암흑, 패배, 고뇌, 절단, 사망 그리고 부패와 연관 되는 가장 부정적인 작업에 속한다. 그러나 이러한 부정적인 측면의 이미지는 종종 매우 긍정적인 요소라 할 수 있는 성장, 부활, 재탄생을 유도한다. 심리학 용어로 검음은 그림자 를 의미한다. 검음은 자신의 그림자를 인식하고 긍정적인 귀결로 인식하고, 대극적인 법칙 에서도 인식될 수 있는데, 검음이 흰 것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융이 말한 것처럼 “자아중심 성(egocentricity)은 의식의 필수적인 요소이고 의식이 가지는 특성이다. 원형적 차원에서 왕 또는 태양의 죽음은 집단적으로 우세한 원리나 지배원리가 죽음으로써 새롭게 변환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쇠약한 노인은 의식의 우월함과 정신적인 원리가 그 효력을 잃어버린 것을 나타내며, 원시의 정신인 용의 차원으로 퇴행하였고, 반드시 변환을 따라야만 한다(Edinger, 2015). 검정은 전망할 수 없고 방향도 알 수 없는 어두움이며, 의식의 상실, 죽음, 혼돈, 두 려움, 악마를 나타낸다. 검정의 우울상태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생명의 부활을 의미하며, 자 아가 다시 탄생하고 회춘하기 위한 자궁으로 전환되는 것을 알려준다(Abt, 2007). 검음의 상 태는 죽음의 상태이며, 의식의 일방적인 흐름이며, 무의식의 흐름이 막힌 상태이다.
검게 될 수 없는 것은 희게 될 수도 없다. 왜냐하면 검음은 흰 것이 되기 위한 
시발점이기 때문이다. 검음은 부패와 변성(變性, alteration)의 신호로써 육체에 침투 하여 조직을 파괴시킨다.
.....
당신은 서서히 조용해지고 변화하게 될 것이다. 그 후 당신은 병 안에서 돌이 자 라고 있는 것을 뚜렷하게 인식하게 될 것이다....멋대로 행동하지 않고 자기 조절하 는 것에 익숙해지면 그것이 바로 돌이다....이러한 자세가 하나의 기정사실(fait accompli)이 되어갈 때 그 돌은 다이아몬드가 될 것이다(Edinger, 2015, p. 55).
심리학적 상징에서 ‘죽음’이란 무엇인가. 의식의 죽음, 구체적으로 의식적 자아의 죽음, 
즉 자아의식 기능의 정지 상태이다. ‘자아의 죽음’이란 자아 통제의 기능을 상실한 상태, 심 각한 정신병의 상태이며, 무의식의 지배에 놓이게 되는 상태이다(이부영, 2015). 이 때는 스 스로 자신의 상태를 깨달을 수 없는 상태이며 한쪽으로 치우친 상태이다. 이것은 심리학적 으로 죽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대극 간의 조화가 정지된 상태이거나 상실 된 상태이며, 정 신적 에너지가 조화롭게 흐르지 못하고 막힌 상태, 정지된 상태이며, 정지된 상태는 곧 죽 음을 의미한다. 이는 사회적인 성공을 위해 모든 에너지를 다 써버려서 자신의 내면적인 관계를 잃어버린 상태이고 의식과 무의식의 단절상태이다. 죽음의 상황에서는 다시 무의식 의 세계에서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듣고 충화지기(沖和之氣)의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이부 영, 2013).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인격의 통합을 위한 의미이며 의식과 무의 식의 분리 상태가 아니라 의식이 무의식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며, 이것을 위해 의식 과 무의식, 자아와 자기, 남성성과 여성성의 대극의 합일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죽음 과 삶의 세계 사이에는 여전히 커다란 간극이 있고 죽음의 세계는 삶의 세계보다 여전히 강력하다. “청정 각시와 도랑 선비의 만남은 남녀의 만남뿐 아니라 떨어져 나간 저승과 이 승의 융합, 의식과 무의식의 합일을 통하여 전체가 되고자 하는 인간 심성의 상징적 표현 이며 무의식은 의식이 무의식에 집중하여 진지하게 물음을 던질수록 활발히 움직여서 적절 한 응답을 준다. 죽은 자와 산 자의 교류는 의식과 무의식의 교류와 같다.”(이부영, 2015)고 말한다.
“인생의 후반기의 삶은 인생의 전반부의 삶과는 달라야 한다. 의식의 성장은 오로지 죽 음의 경험을 통해서만이 가능하고, 죽음과 어두움은 그렇게 동반자처럼 우리와 항상 함께 하는 것이다.”(Ammann, 2009). 무의식이 창조적인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자아의식의 적극적 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 노력이란 무의식에 대한 의식의 관심과 배려일 것이 며, 자신의 삶의 태도를 바꾸려는 고통스러움이 따르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자기의 전체성을 실현할 수 있다. 전반부의 삶에서는 알아차릴 수 없던 중심화가 중년기에 는 인격의 급변에 의해 의식화되기 시작하고, 이제 자아가 인격의 전체를 사로잡는 고통스 러운 과정이 시작된다. 후반기의 삶은 심리학적인 변환이 시작되며 삶을 확장시키고 통합 시키게 된다. 이것을 재탄생의 과정으로 볼 수 있곘다.
꿈의 기능 중 하나는 보상성인데 의식의 일방성 때문에 자기의 전체성에 위협을 받을 때 
조정하고 수정해서 균형에 이르는 중심화를 이루게 한다(Neumann, 2010). 꿈은 의식으로 하 여금 모든 것의 종말에 대비하도록 하는 것이라기보다 일상적 의식수단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깊은 변환과 생명과정의 연속에 대비하도록 한다. 또한 그런 꿈에 나타나는 상징은 주제나 구조에서 다른 여타 종교의 사후 삶에 관한 설들과 일치하며, 이 경우 매우 많은 신화적 상들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하였다. ‘저승’이란 심리학적으로 의식 너머의 세계, 곧 무의식이다. 저승의 왕이 있는 지역이란 앞에서 말했듯이 우리 마음 깊숙한 곳에 존재 하는 테메노스(temenos, 성역), 자기원형 상에 비길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자기실현의 원동 력이자 목표이다. 그리고 자기실현의 목표에 이르는 길은 험하고도 멀다. 죽음과 죽은 자의 운명, 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관계에 관한 심리학적 관점에서 ‘저승’이란 우리가 ‘아는 세계’ 너머에 있는 모르는 세계, 즉 무의식을 상징한다. 저승에 관한 모든 이야기는 무의식에 관 한 것이다. ‘투사’라든가 ‘상상’이라는 말로 표현하는 것만으로는 적합하지 않은 내용으로 채 워져 있다(이부영, 2015).
융은 ‘저승’에 계속된 삶이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것은 정신적인 것이리라고 보았다. 왜냐
하면 정신적인 삶은 어떤 시간도 어떤 공간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승의 존재’를 융은 상(像)의 세계에서의 계속적 전진이라고 상정했다. 무의식은 오히려 죽음에 대한 의식 의 태도에 관심을 가지고 꿈꾼 사람에게 심리적 변환의 상징들을 내보내고 있다고 하였다. 꿈은 무의식이 의식에게 보내는 신호이다. 정신이란 공간과 시간이 없는 존재형식에 깊이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이부영, 2015). “심리적인 죽음 후에 새로운 의식이 자리하는 것, 새 롭고 더 밝고 더 넓어진 의식의 존재방식이 생겨나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 한다. 그것은 자신의 무의식의 세계로 자신을 통찰하는 고통과 침묵의 신성한 시간의 상징 이기도 하다. 분석심리학적으로 ‘무덤’은 주로 죄책감을 통해서 드러나게 된 괴로움, 영적인 죽음, 내면의 불안과 고통에 대한 여러 가지 그림으로 표현된다. 무덤, 죽은 사람의 머리 그리고 저승사자, 십자가에 못 박힘, 마치 생리혈처럼 보이는 엄청난 양의 피 등은 모두 어 두움 즉 그림자의 영토와 마주쳐서 지금까지 의식적인 삶이 죽음을 경험하게 된 사람의 심 리상태를 나타낼 수밖에 없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Ammann, 2009).

2. 재탄생을 위한 죽음의 상징성

인간은 신처럼 재탄생을 할 수 없는 존재이다. 창조적 의미로서의 재탄생은 실재로서의 육체적인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심리학적인 상태에서의 죽음을 뜻하며, 자기 안의 것을 재배열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낡은 정신구조를 해체하여 새롭게 구성하거나 창 조하는 것이다. 새로운 삶을 위하여 더 이상 삶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낡은 삶의 형태를 기꺼이 버리고 새롭게 발전할 때 낡은 세계관과 삶의 태도의 해체와 재구성과 같은 과정들 은 언제나 두려움을 가져온다(Ammann. 2009). 죽음은 어떤 이행의 상태이며 변환을 나타내 고, 죽음의 비의(Mysterien)와 재생의 비의는 죽음을 변환으로 나타낸다. 다른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상징적인 죽음을 통과해야만 하며, 비로소 재탄생을 위한 시간을 갖게 된다. 그것 이 이전의 나와 다른 “나”가 되는 것이다(Oeri, 2014).
죽음은 생명의 보이지 않는 속성이다. 현세에서의 죽음에 뒤이어 영적(靈的)재생이 이루 어진다. 이니시에이션에서는 새로운 인간의 탄생, 부활, 재통합에 앞서 죽음의 암흑을 경험 하게 된다. 죽음은 한 존재 양식에서 다른 양식으로의 변화이며 육체와 땅, 혼과 영(靈)의 재결합이다(Copper, 2014). 사람이 죽으면 충화의 기를 잃기 때문에 그 사지가 굳어지며, 삶 이란 천지를 화합하는 충화지기가 활성화된 상태이고, 경직과 죽음이란 정체되고, 정지된 상태이며, 대극 간의 조화의 상태에서 벗어난 상태이다. 정신적 에너지가 전체정신에 조화 롭게 흐르고 있는 상태가 삶이며, 그 흐름의 막힘, 정체, 정지된 상태는 죽음의 상태이다. 경직되고 부자연한 상태, 인격의 통합이 단절된 상태를 말하며, 자아의식이 외부적인 일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쓸 수 있는 에너지를 모두 사회적 성공을 위해 써버림으로써 무의식과 의 관계를 상실해 버린 상태, 의식의 죽음의 상태를 말한다. 무의식은 의식의 모체로서 언 제나 다시 새로운 의식이 되어 재생되어야 한다(이부영, 2013). 죽음은 끝이 아니고 이행하 는 것이다. 그것은 휴지의 기간이다. 그 자신의 삶의 의지가 죽음을 넘어서게 하고, 죽음을 통과하여 계속되는 여행으로, 그래서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계속되는 이행 과정으로서의 죽음, 그것은 자신의 삶에 가진 의지가 있어야 한다. 죽음을 통과하는 여행이 시작될 때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 수 있고, 끝이 아닌 시작, 재탄생이 될 수 있다(Neumann, 
2010). 창조성은 낡은 정신구조를 해체하여 새롭게 구성하거나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인생의 전반기의 삶의 태도와 후반기의 삶의 태도가 달라야 하 고, 이것은 삶이 잠시 이 세상에 나와서 의탁함과 같고 죽음은 자기의 본 집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다. 삶 속의 죽음, 죽음 속의 삶의 관계를 생각할 수 있는 관점을 가져야 한다. 그 러나 이것을 알아차리는 현대인은 많지 않다. 삶의 본질은 현실을 살아가는 것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의식적인 태도를 알아차림으로서 자신의 내면을 들여 다보는 창조성이 시작될 수 있다(이부영, 2013). 죽음을 통해서 삶의 의미에 접근할 수 있는 것처럼, 삶을 통해서 인간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다(조용훈, 2005). 그러나 우리는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죽음을 생각하게 된다(Rinpoche, 1999). 목표를 향해 달려 가던 인생의 한 가운데서 자신의 자아를 다시 찾게 되는 그날, 자신의 인생의 목표를 잃게 되고 방황하게 되기 시작한다. 이때야 말로 자신의 무의식을 들여다보며 자신의 내면의 소 리에 귀 기울여야 하는 가장 빠른 시기이다.

Ⅳ. 모래상자에 나타난 죽음의 상징성

1. 모래상자에 나타난 죽음

내담자는 50대 여성으로 자녀의 성장과 동시에 삶의 의미를 잃어가고 우울증을 겪고 있 었다. 자녀가 독립하고 난 뒤 자신의 역할에 대한 혼란이 왔으며, 남편과도 오랫동안 주말 부부로 지내서 가족과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았다.
21회기에서 그녀는 자신이 살아왔던 삶의 태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녀는 모래에 물을 붓고 구슬을 가져다 놓으며 손으로 만지다가, 구슬을 한쪽으로 모두 놓고 말랑말랑한 뇌를 모래 가운데에 놓은 다음 물통으로 뇌를 덮고, 그 주위를 노랑색 굵은 뱀으로 동그랗게 말 고, 모래를 덮었다. 그 주위에 다른 뱀을 놓았는데 내담자는 조금이라도 뇌가 보이지 않도 록 계속 모래를 덮었다. 그 위에 놓은 뱀 중 검은색 뱀은 꼬리가 사람의 입에서부터 나와 밑으로 머리가 향하고 있으며, 노란색 뱀은 아래에서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모습이다. 머 리 부분에는 많은 구슬들이 있다. 뇌를 모래 속에 넣고 물통으로 고정하고, 노랑색 왕뱀으 로 한 번 더 감아 뇌가 나오지 못하도록 하였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나서 상자를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figure 2. Sandpicture with in snack session #21
뱀은 천상과 땅을 연결하는 매개이며 한 상태에서 다음 상태로 넘어가는 추이를 상징하
고(Adkinson. 2015), 뱀은 물리면 죽을 수도 있을 만큼 독하기도 하지만 특별한 변형, 마법의 힘이 있는 것으로 믿어지며 창조와 번식, 수호, 치유의 의미로 보며 허물을 벗는 습성을 새 롭게 태어나는 상징으로 본다(Fontana, 2011). “지하에 사는 뱀은 명계와 접촉하며, 죽은 자 가 가지는 전지의 힘이나 마력을 사용할 수 있다. 지하계에 속하는 뱀은 하계와 암흑의 신 들의 공격적인 힘을 나타낸다. 지하의 뱀은 이니시에이션의 인도자, 회춘을 가져오는 자, 원초의 본능, 즉 다스려지지 못하는 미분화한 생명력의 용출을 나타내며, 잠재적 활력, 영 적 활성력을 상징하며, 죽음의 예고이다.”(Copper, 1978).

2. 모래상자에 나타난 재탄생

내담자는 30회기에서 figure 3과 같은 그림을 꾸민 후에 한참 동안 눈물을 흘린 후에 “무 언가 내려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녀는 그동안 가족을 위해 희생했던 자신을 돌아보기 시 작하였으며, 자신 안에 있는 보물을 발견하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많은 지혜가 필요하며 자신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깨닫기 시작했다. 보석은 영적인 깨달음, 순수성, 세련됨, 탁월한 능력, 내구성의 상징이며, 치유와 마법의 힘을 갖고 있어서 정신적인 깨달음을 말한 다(Tresidder, 2007).
“잘 지킬거예요.”
 
figure 3. Sandpicture with in circle session #30
또한 원은 보편적인 상징으로서, 전체성, 완전성, 동시성, 원초의 완전함을 뜻하며, 가장 
자연스러운 신성한 모양이다. 태양으로서는 남성적인 힘을 뜻하지만 영혼이나 마음으로서, 또는 대지를 둘러싸고 있는 바다로서는 어머니인 여성원리이기도 하며 시작과 끝을 알리는 우로보로스의 의미이다(Copper, 1978). 오른쪽 뒤에 있는 검은 마리아는 검정색의 두 가지 측면으로 볼 수 있다. 자궁이나 근원으로의 회귀, 새로운 탄생을 위한 준비, 새로운 삶의 수용을 의미하며, 우울하거나 파괴적이거나, 죽음의 의미를 가진다. 검정은 처음 기초가 되 는 단계에서의 자연의 파괴적 측면, 재생적 측면을 나타낼 수 있고, 검은 마돈나도 그와 같 은 신비를 나타낸다. 우울의 블랙홀은 자아가 다시 탄생하고 회춘하기 위한 자궁으로 전환 됨을 의미한다(Abt, 2010). 바닷조개는 탄생과 재탄생의 상징을 표현하는데 상징적인 죽음과 부활을 포함하며, 조개껍질은 여자가 뱃속에 아이를 품은 모양으로 육체적인 탄생과 재탄 생을 의미하기도 한다(Mircea, 2005).

Ⅴ. 결  론

융은 인생의 전반기와 후반기에 발생하는 정신 병리의 원인이 다름을 말하고 있다. 인생 의 전반기의 개성화 과제는 사회적응에 있고, 반면에 인생의 후반기의 그것은 자신의 내면 세계의 적응에 있다. 다시 말하면 인생의 전반기의 개성화 과제는 사회적응을 위한 자아강 화에 있다면, 인생 후반기의 그것은 자기 강화 즉, 자기실현에 있다. 따라서 인생의 전반기 에 발생하는 정신장애는 사회적응의 문제 즉 자아약화와 관계하고 인생의 후반기의 정신장 애는 자신의 내면세계에로의 적응문제 즉 정신의 전체성으로부터 일탈하는데서 생긴다. “인 생의 전반기의 삶은 눈으로 볼 수 있는 목표를 향해 확장해간다. 이 방향에서 뒷걸음질하 거나 삶으로 나아가지 못할 때 신경증이 일어나는 것 같다. 그러나 인생의 후반기의 삶은 이미 이룩한 바를 유지하면서 삶의 확장을 점차적으로 축소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그런 데 그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인생의 전반기의 자세를 고집할 때 신경증이 발생하는 것 같다. 인생의 전반기의 신경증 환자가 삶을 두려워하듯, 인생의 후반기의 신경증 환자는 죽 음을 두려워한다(이죽내, 2005). 인생에는 정신적 에너지가 밖으로 향하는 전진적인 전반부 의 삶의 시기가 있고, 자기 세계로 들어가는 후반기의 후퇴적 시기가 있다. 후퇴적 시기라 고 해서 반드시 병들거나 유치한 수준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후퇴의 시기는 전진의 시기와 마찬가지로 삶의 중요한 순간이다. 후퇴는 새로운 전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시간 이며, 청년기를 전진하는 시기라고 본다면 중년 이후의 시기는 내실의 시기이다. 지금까지 소홀히 했던 것에 대한 관심이 생기고, 우울해지거나 불안이 생기는데, 융은 이런 현상을 새로운 것이 창조되기 전의 현상이라고 하였다(이부영, 2014).
만일 우리가 아직 살아 있는 지금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삶을 통해, 죽는 
순간에, 그리고 죽은 이후에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고,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 우 지금의 삶과 앞으로 다가올 모든 삶은 황폐해지고 우리는 우리의 삶을 온전하게 충분히 살 수 없게 된다. 우리는 죽어야만 하는 우리 자신, 바로 그 상태에 갇혀버리게 되고 새로 운 자신을 발견할 수 없게 된다(Rinpoche, 1999). “자아의식이 지나치게 한 방향으로 나가면 무의식에 억압되는 반대되는 성향을 강화시켜서 의식의 일방성이 극도에 다다른 시점에 자 아의식을 쓰나미처럼 뒤엎어서 자아의식의 의도와는 정반대의 성향에 의해 지배를 받게 만
든다.”(이부영, 2013, p. 277)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삶의 가치가 중요한 만큼 죽음의 무게 또한 적잖은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을 피할 수가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삶의 가치를 찾기 위해 현실에 더욱 집착하게 된다. 삶이 가져다주는 희열을 얻은 것 같지만 때로는 절망에 빠져들어 더 강하게 붙잡을수록 나의 삶은 황폐해지고, 반대의 방향으로 이끌어간다.
“왜 우리는 무에 대해서 두려워하는가? 잠드는 것을 무서워하는가? 우리는 때때로 이러한 무에 침잠하기를 그 무엇보다도 원하지 않는가? 죽음에 대해 전혀 두려움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말의 의미는 그들이 전혀 두려움을 모른다는 것인가,
두려움을 피한다는 것인가, 두려움을 극복했다는 뜻인가?”
- 호들러, 「밤」, 1889*(구인회, p. 36, 재인용)

죽음이란 우리의 정신적 통합이 깨진 상태를 말하며, “이제 우리에게는 앞으로 살아갈 
날이 그렇게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이제는 죽음을 서서히 준비해야 한다.”라고 알려준다. 그 래서 우리가 전반기에서 우리 삶을 준비하는 데 몰두해 왔다면, 이제는 삶의 또 다른 과정 인 죽음에 대해서 준비해야 하고,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정신의 통합은 무엇보다도 중 요하다고 말한다(김성민, 2012). 고통은 새로운 존재의 탄생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대극을 동시에 받아들이는 것은 십자가의 고난과 맞먹을 정도로 우리를 마비시키는 경 험이다.”(Edinger, 2015) 죽음은 실패와 패배로 경험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의도적으로 죽음과 같은 실패와 패배를 선택하지 않는다. 죽음의 경험은 나의 의도와 상관없이 나의 내부로부터, 또는 외부로부터 온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은 개성화를 위한 변환의 과정의 시 작이라고 할 수 있다. 영웅은 버림받고, 방황하고, 죽음의 위험을 무릅쓴 고통의 시간을 견 디고 나서야 왕관을 얻게 된다. 버림받는 다는 것은 자기실현의 가치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이다. Figure 4는 무덤에 누워서 본 하늘이다. 죽음의 고통을 경험한 다음의 하 늘은 이전의 것과 다른 하늘이 아니라 하늘을 바라보는 이의 마음이 재배열된 상태이다.
 
Figure 4. 무덤에서 본 하늘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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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고일 : 2017. 04. 30 수정일 : 2017. 06. 05 게재확정일 : 2017. 06.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