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04

[문화] 분석심리학 대가 이부영 교수가 본 ‘한국인’ - 조선일보

[문화] 분석심리학 대가 이부영 교수가 본 ‘한국인’ - 조선일보
[문화] 분석심리학 대가 이부영 교수가 본 ‘한국인’
*이준호기자
입력 1999.11.23 

이부영(67) 서울대 명예교수는 국내 분석심리학의 대가다.
33년전 스위스 융 연구소에서 융 학파 '분석가 자격'을 취득하고
서울대 의대 신경정신과장을 역임하며 이론과 임상 양 부문에서
탄탄한 실력을 쌓았다. 2년전 정년퇴임하고 성북동 한국융연구원에서
후학들을 지도하는 이 교수가 최근 '그림자-마음속의 어두운 반려자'
(한길사)를 내놓았다. 융심리학를 통해 한국인의 마음을 분석하려는
3부작 중 첫째권. 앞으로 '아니마와 아니무스', '자기와 자기실현' 등
1년씩 펴낸다는 야심있는 기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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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97년 정년퇴임 후 한국융연구원에서 후학들을 지도하는 이부영 서울대 명예교수./(*이기룡기자 kr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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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이 다소 생소할지 모르겠어요. 예를 들면, 우리 무속을
들여다보세요. 무당은 유교의 그림자 노릇을 했어요. 점잖은 선비들은
무당을 싫어했는데 무당은 바로 선비들의 무의식속에 자리잡은 비합리성과
자유분방성이라는 그림자를 투사한 존재였죠. 그림자란 이렇게 자아에
숨겨진 어둡고 활성화되지 못한 억압 혹은 컴플렉스를 말합니다."

칼 구스타프 융(1875~1961)은 인간의 집단무의식에 대한 분석심리학을
제창한 거목. 융 전문가에 읽힌 한국인의 심성은 어떤 것일까. 이
교수는 내향성과 외향성 개념을 이용해 설명했다.

"압축적 성장을 하느라 우리 마음에 이상이 생겼어요. 너무 외향적으로
변해버렸습니다. 내향적 전통을 가진 동양이 서구를 따라가려고 흉내를
내다가 오히려 서양인보다 외향적으로 바뀐 것이죠. 동양이 '서양'이라는
그림자의 세례를 받은 셈입니다."

대표적인 것으로 외화내빈을 들었다. 밖으로 보이는 것에만
신경을 쓰고, 고층건물이나 대형 경기장 등 대형-대량에 대한 숭배주의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실질이나 내용을 외면한 결과 삼풍아파트가
무너지고 IMF를 맞았다는 진단이다.

" 5·16 이후 이런 경향이 강해졌어요. 조급히 서두르는 '빨리빨리 병',
상대방 장점을 인정하지 않고 업적을 깎아내리는 '너죽고 나죽자 병',
지역과 동문끼리 뭉치는 '끼리끼리 병', 매사에 양극단을 가지고 팽팽히
대립하는 '흑백판단증'등이죠."


빨리 근대화를 해야했기 때문에 수량과 생산성을 강조해야 했던 상황은
인정하지만 '마음의 고향'을 잃어버렸다고 부연한다. 전략 전술만 알뿐
무엇이 옳고 그른지 철학의 부재를 초래했다고 말한다.

이런 심성의 왜곡은 시대나 제도의 탓이 아닐까? "아닙니다. 제도는
개성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게 해주는 조건에 불과해요. 헤엄칠수 있는
공간이 제도라면 헤엄을 잘 치느냐 못치느냐는 개인의 몫입니다. 모든
것을 상황 탓이라고 돌리는 것은 잘못이죠." 따라서 사회적인 치유도
중요하지만 개인적으로도 애를 써야한다는 것으로 들렸다.

그는 우리 사회의 집단무의식에 대해서도 메스를 들이댔다.

"개인적인 무의식과 달리 집단 무의식이 투사되면 강력한 힘으로 초인적
대상을 절대적으로 숭배하거나 증오하는 현상으로 나타납니다. 영웅신화를
재현한다고 할까요. 김일성을 우상화하는 북한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그런데 남한에서는 이것이 돈이나 물질에 대한 숭배로 나타나고 있어요."

21세기를 앞둔 한국인들의 정신적 준비에 대해서는 "세계화니 뭐니해서
엄벙덤벙 남의 것만을 쫓아다니다가는 또 망한다"고 말했다. 개성에 바탕한
한사람 한사람의 자기실현이 중요하고, 이를 위해 생각하는 사람들의 작은
모임이 늘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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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융연구원: 융 심리학의 교육기관으로, 매주 화요일 세미나를 통해
신경전문의들을 수련시키고 있다. 국내에 있는 '국제 분석심리학회'
정회원은 5명. 1천여명의 회원을 가지고 있는 한국분석심리학회는 1년
2회 학술 토론회를 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