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 주] 『다시개벽』은 백 년 전에 창간되었던 우리나라 대표적인 종합잡지 『개벽』을 복간한 계간지이다. 『다시개벽』 제7호는 “우리는 어디에서 살고 있는가”를 주제로 본격적으로 인류세 시대에 생명세계의 새로운 활로를 천착하는 <다시개벽>의 여정을 시작했다. 이에 앞
서서 주체로서의 인간 활동 양상에 대한 성찰을 기반으로 나와 외부세계가 관계 맺는 방식에 관한 글들이 다양한 유형으로 전면에 배치된다. 오늘날 인간의 의식은 나의 안과 밖이 더 이상 구분되지 않는다는 지평에 도달하고 있으며, 그런 점에서 개인은 인간 너머 생물, 나아가 무생물과 우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는 사상이 점점 뚜렷한 토대를 형성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읽어갈 수 있는 글들이다.
특히 표제 글인 조성환의 “우리는 어디에 살고 있는가?”는 라투르의 가이아론을 중심으로 이러한 논지를 전개하고 있다.
[다시개벽 제7호 - 우리는 어디에서 살고 있는가]
<다시개벽>은 ‘잡지’라고 하기엔 다소 무거운 문체로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다. 잡지와 ‘학술지’의 중간쯤에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보는 편이 나을 것이다. 당초에 <개벽>의 복간+복원을 목표로 삼아 창간/복간된 것이니 감내해야 할 운명이다. 어쩌면 시대의 조류에 역
행하거나 주류로부터 한걸음 비껴나 있는 것이 될 수 있으나, ‘개벽’이라는 화두 자체가 그러한 운명, 변방의 숙명을 타고난 것이니 기꺼이 자인해야 할 우리의 자리이다.
그러나 ‘개벽’의 속성은 또한, 지금-여기에 만족하거나 체념하며 그 자리를 고수하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중심을 향하며, 중심을 해부하
고 해체하면서도 중심을 차지하고 새로운 중심이 되려하기보다 다시 변방을 자처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다시’가 표상하는 바의 개벽의 속성이다. 그러므로 ‘다시개벽’은 ‘다시 다시’이거나 ‘개벽의 개벽’이 된다. 이를 선천개벽에 이은 ‘후천개벽’이라고도 하고, 그 사이-너머에서 정신개벽, 도덕개벽, 인심개벽, 인간개벽, 물질개벽, 사회개벽, 민족개벽, 문화개벽, 문명개벽 등의 다채로운 변주가 이루어진다. <다시난 5호와 6호에서는 ‘다시 동학 하기’ ‘동학의 새로운 길 모색’을 중심 주제로 삼아서 천제를 올렸다면,
이번호는 ‘우리는 어디에서 살고있는가’를 묻는다. 사실 묻기만 했지, 본격적으로 이 주제를 천착해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이번호는 겨우 출입문을 두드리는 정도라고 보면 좋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어디에서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은 내 발밑과 내 둘레(환경-사회, 국가-세계)는 물론이고 전 지구적 지평을 바라보는 문제의식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오늘날 ‘인류세’라는 말로 대변되는, 오늘의 인류 그리고 ‘비인간사물’을 포함하는 전 지구적 사물들의 생존과 지속 가능성, 소통과 행복 가능성을 묻는 일이기 때문이다. 묻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로 나아가는 실천적인 삶에 대한 탐색과 탐험이 뒤따를 것이다.
박혜민의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는 ‘혜미니스트’ 선언서이다. 남성을 향해 ‘기울어진 운동장’인 이 사회 속에서 ‘공책여행’이라는 페미니스트 그룹을 만나 통찰과 치유를 경험한 이래로, 너무도 많은 것을 알았기에 다시는 이전의 경사진 세계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나날이 새로운 세계로 향진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신채원의 “생명학연구회, 생명학연구회, 무엇을 연구할까?” ‘생명학’이라는 변방의 학문을 두고 전개되는 연구회 활동을 소개한다. ‘생명학연구회’는 범개벽파의 일원이라고 할 수 있으며, 주변의 여러 ‘따로 또 같이’하는 단체, 그룹과 연계되면서 꾸준히 ‘생명’의 잔향과 홀씨를 퍼뜨리고 있다. 이번호부터 지속적인 활동 소개를 통해 그 확산의 영역이 더욱 넓어지기를 기대한다.
맹주형의 “생태 문명으로의 전환을 위한 천주교 창조보전운동”에서는 프란치스코 교정의 『찬미받으소서』를 개벽적 시야를 통해 조명하고 소개한다. 이제 오늘날 인류와 지구촌의 과제와 문제는 특정 종교나 사상, 국가나 조직의 틀을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열리고 교통하여 연대하는 데로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천주교의 성심어린 ‘창조보전운동’이 그 마음과 기운을 북돋움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다시쓰다’의 “인류세 시대의 인간과 자연-폐허 이후의 세계를 어떻게 볼 것인가”는 『인류세의 철학 – 사변적 실재론 이후의 ‘인간의 조건’』의 저자인 시노하라 마사타케의 글이다. ‘인류’라는 새로운 시공간으로 차원이동, 공간이동, 우주여행을 경험하고 있는 인류의 처지를 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이 책의 주제 ‘우리는 어디에서 살고 있는가’라는 문제의식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다.
‘다시말하다’의 인터뷰는 최근 6권으로 된 대하소설 『소설 동학』의 저자 김동련을 노은정이 인터뷰하였다. 저자는 17세 때 읽은 해월의 전기, 『해월 최시형』을 읽고 소설을 쓰는 꿈을 꾸게 되었고 반세기 만에 그 꿈을 실현하게 되었다. 인터뷰에서 저자는 “자료로써 대신 말하게
하라”라는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이 소설을 집필해 나갔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하여, 해묵은 주제일 수도 있는 ‘동학 역사 소설’이 펄펄 살아 뛰는 문체로, 생생하게 살아 숨쉬며 독자에게 말을 거는 것을 ‘4D영화’를 보듯이 실감할 수 있게 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마지막으로 이번호의 제호는 “우리는 어디에 살고 있는가?”를 철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우리(나)는 누구인가?”나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응한다.
철학 책에서도 흔치 않은 철학적인 질문인 “어디에서 살고 있는가?”라는 물음은 무엇보다 기후변화로 인해 지구에서의 지속적인 ‘거주가능성(habitability)’이 물어지고 있는 상황을 반영한다. 이는 조금만 연장해서 보면 160년 전에 ‘다시개벽’을 도래를 선언하던 ‘개벽의 원조’들의 물음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는 것을 금방 알아챌 수 있다. 160년 전만 해도 ‘예언적’ 성격이 강했다면, 그리하여 ‘믿음’으로써 그것을 확신하는 경우가 많았다면, 확실히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은 예전과는 ‘다른 지구’에 살고 있음을 체감하고 있다고 말할수 있다.
그것도 주관적인 체감이 아니라, 각종 과학적인 지표로서 실증되고 실시간 중계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 달라진 지구에서 살고 있다는 상황을 정확히 인식해야만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대답도 주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