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12

정승원 동양고전 『주역』에 대한 몇 가지 단상 20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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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원

동양고전 『주역』에 대한 몇 가지 단상


다산 정약용의 『주역사전』을 기호학으로 읽는 작업을 해오신 동양철학 전공자의
강의를 들으러 갔다. 모 치과에서 진행하는 문화강좌 형식의 대중강좌였다. 

주역을 기호학으로 설명한다기에 기대를 하고 강의를 들으러 갔다. 생각보다 찐 맛이었다.  
주역을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 개념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어려운 동양 철학의 개념을 어려운 서양 철학(프랑스철학)의 개념으로 설명하는 것이 과연 이해에 도움이 될까? 오늘 몇 가지 단상이 떠올라 정리해봤다.


1. 주역은 기호 체제이다. '주역'이라는 텍스트는 지금의 우리에게 낯선 기호덩어리로 이루어져 있다. 먼저 상, 효, 괘 등 주역의 기호들에, 그 의미들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2. 주역은 실용적인 텍스트인 동시에 처세술의 책이다. 
 주역 읽기/해석은 주역의 기호들을 통해 세상의 흐름을 읽는 해석학적 기술/테크닉이다. 동시에 세상의 변화하는 흐름을 파악하여 대응하기 위한 처세술이다. 그래서 예전 선비들은 주역을 통해 세상의 기운의 흐름을 읽었고, 거기에 맞추어 스스로 처신하였다.

3. 주역은 두 단계의 기호 해석을 거쳐야 한다. 

건(乾)괘의 초구(-)효는 '잠룡물용(潛龍勿用)'이라는 1차적 의미를 지닌다. '잠룡물용(潛龍勿用)'은 '잠룡은 이용해서 안된다.' '잠룡은 아직 쓰임이 없다.' 등 다양한 뜻풀이가 가능할 것이다. 
이 1차적 의미해석을 바탕으로 2차적 의미해석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 1차적 의미(뜻)는 현실을 연상하거나 유추하는 또 다른 기호/기표가 된다. 
주역을 읽는 독자/해석자는 '1차적 의미'를 기호로 보고, 그 기호를 바탕으로 현실에서 2차적 의미나 이미지, 사건/이야기를 끌어내야 한다. 
이 효를 통해 현실의 다양한 이미지, 의미, 사건/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 그런 의미에서 주역 읽기를 통해 이미지 연상 훈련, 사건/이야기 만들기 연습, 기호 해석 연습을 할 수 있다. 반대로, 이미지 연상 능력, 사건/이야기 만드는 능력이 뛰어나야 주역 해석을 잘 할 수 있다. 

4. 주역에는 일의적인/단의적인 해석이 존재할 수 없다. 주역은 다의적인 해석을 요구한다. 
그것은 우리의 삶 자체가 복잡하고 다양하기 때문이다. 주역의 기호가 지니고 있는 기본적인 속성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수많은 주역 해석서들이 역사상 존재해왔다. 지금도 새로운 해석서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해석자와 연구자들이 자신의 체험과 이해에 바탕하여 해석을 하기 때문에, 해석자 수만큼의 해석서가 나올 수 밖에 없다. 아마, 인류 역사가 끝날때까지, 주역 책이 완전히 없어질 때까지 주역 해석서는 계속 나오리라.

5. 주역은 변화와 흐름에 관한 책이다. 이 우주의 세상만물은 고정되지 않고 계속 변화하고 흘러가고 있다. 우리의 관계도,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계속 흥하는 사람이나 집단도 없다.
 어느 순간에 하락기를 겪게 되고, 어느 순간에 잘 되기도 하다. 이것이 우리네 인생사이고, 세상의 흐름이다. 그래서 주역의 끝에서 두 번째(63번째) 괘는 '끝', '종언'을 나타내고, 마지막 괘(64번째) 괘는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조동진의 노래 '다시 부르는 노래'의 가사는는 주역의 이런 세계관을 잘 보여주고 있다. 

6. 주역의 64괘, 그 괘의 각각 효들, 그리고 그 효와 괘들이 연결되어 만들어가는 사건들은 우리네 인생살이의 수많은 사건들을 상징한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우리네 삶의 다양한 양태들은 일정하게 유형화시킬 수 있다. 이런 양태들을 기호로 유형화시킨 것이 주역이다.

7.  주역을 읽고 해석하는 작업은 결국 우리네 삶과 사회의 흐름을 읽는 작업이다. 
그래서 공자는 '위편삼절'할 정도로 주역을 읽었고, 많은 동양학자들이 주역을 읽으면 세상이 보인다고 했다. 

8. 주역은 지금 잘 나가는 거만한 사람을 겸손하게 만든다. 언제든지 바닥으로 추락할 수 있음을 알려주기 때문에. 

또 주역은 지금 절망에 빠진 사람을 좌절하지 않게 만든다. 언젠가 새로운 기회가 찾아올 수 있음을 알려주기 때문에. 

주역은 사람들에게 겸손함과 희망을 동시에 일깨워주는 위안과 위로의 책이다. 동시에 윤리적인 책이다. 주역은 우리에게 착하고 겸손하게 살 때 복이 찾아온다는 것을 알려준다.

10 comments
박준현
주역은 점치는 책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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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g Won Chung
경북대에서 다산역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으신 분이 계셨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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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원
다산역학 전공하신 경북대 철학과 교수님한테 강의를 들었습니다. 공부는 깊으신 것 같았는데, 설명은 영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일반인 대상 2시간 강좌에 쉽게 풀어내시기 쉽지 않았을겁니다. '주역'을 쉽게 풀어내시는 분 없을까 이런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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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g Won Chung
저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데 정말 쉽지가 않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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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원
'주역'이 굉장히 매력적인 책이고, 어떤 인문학책보다 세상과 사람을 이해하는 힘을 키울 수 있는 책인 것 같습니다. 근데, 활용방법이 제대로 제시되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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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원문
동양학 풍수 지리 천문 주역 명리학 기문둔갑 이런게 참 재밌어요. 한두개의 기호속에 세상이치를 압축하고 다시 풀어서 세상이치를 설명하고, 이미지를 연상하는 능력, 응용하는 능력 이런 측면에서 고차원적인 종합학문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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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희
실용과 처세...
맞는말인듯~
주역은 천문을 보고 상징적 기호로 썼다면 한글은 우주부호로 봐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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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 Soh
혹시 방인 선생님이신가요? 저도 강의를 듣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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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원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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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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