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16

인간현상 을 읽었다. 엄청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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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un Ju Kim #인간현상 을 읽었다. 엄청난 책이다.


일부 내용을 발췌했다. 매년 오늘 페북이 나에게 이 요약을 보여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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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명수 교수님이 우리말 표현을 살려서 번역한 탓에 난해해졌다. 자연과학을 좀 알아야 이해할 수 있고 순수 문과생에게는 1부 2부가 넘사벽일 것이다. 요약하면서 어색한 표현을 조금 고쳤으나 역부족이다. 김지하님는 영역본을 읽었다는데 (역시 문과생이시라) 몇 달이 걸렸는지 알 수 없댔다고 들었다. 나는 약 3일만에 정독했다. ^.^V 아름다운 멋진 상쾌한 짜릿한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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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야르 드 #샤르댕 지음 1939/ 양명수 옮김 1997/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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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야르 드 샤르댕 (1881 프랑스 오베르뉴 ~1955 미국 뉴욕)
- 18세 예수회 입단
- 24세 베르그송의 <창조적 진화> 정독
- 30세 예수회 사제 서품. 화석 연구에 생을 바치기로 함
- 47세 북경원인의 유골 발견
- 58세 WWII 로 북경에 구금. <인간현상> 저술
- 67세 <인간현상>이 교황청 서적 검열에 걸림
- 70세 교회에서 추방되어 뉴욕으로 망명
- 74세 부활주일 저녁 뉴욕에서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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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이른 생명
물질의 세 가지 모습은 여럿, 하나, 에너지 이다.
물질이 속으로 뭉치고 뭉치면 나중에 <생각>이 생긴다.우주의 바탕은 더 복잡한 물질형태로 집중되고 있다.
과학은 사물의 <밖>만 본다. 물질에는 <안>이 있다.
얼의 완성도(의식의 집중도)와 물질의 합성정도(복잡함)는 같은 현상의 두 가지 측면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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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 생명

제1장 생명의 출현
진정한 생명은 <세포>와 함께 시작되었다.
생물학과 물리학 사이에 놓인 문턱
우주에 단 한번 핵과 전자들이 출현했듯이 지구에 단 한번 원형질이 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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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생명의 팽창
암수가 생겨난 것은 무성 생식을 통해 얻은 번식과 다양화의 효과를 극대화히기 위한 수단이다. 이제 하나의 개체가 무수한 생명 씨앗이 될 가능성의 문이 열렸다. 동시에 끝없는 놀이가 시작되었다.
톨스토이의 메뚜기 떼처럼 생명은 시체더미를 넘어간다. 개체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낱생명보다 전체생명이 참생명이다. 숫자에 밀리고 덩치에 눌린다. 그리고 미래로 끌려간다.
어떤 영역에서든 정말 새로운 것이 주변에 나타나기 시작할 때 우리는 그것을 알아채지 못한다. 장차 활짝 꽃피었을 때에야 그것을 알아보고 처음을 생각한다. 첫 단계란 항상 감추어져 있고 파괴되어 있고 잊혀져 있다.(*)
<꽃꼭지 상실>의 법칙에 따라 뿌리는 각각 과거의 안개 속에 묻혀 있다. <오리너구리>와 <바늘두더지>를 제외하고 살아 있는 모든 포유류는 모두 단 하나의 다발에서 나왔다.
진화가 있다는 데는 학자들 사이에 이견이 없다. 그러나 진화에 방향이 있느냐는 문제에 대해서는 좀 다르다.
진화란 얼 에너지(방사에너지)의 끊임없는 증가다. 우리 눈에 보이는 기계 에너지(탄젠트에너지)는 늘 일정한데, 그 일정한 기계 에너지 뒤에서 얼 에너지가 끊임없이 증가하며 그것이 바로 진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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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땅-어머니
지구는 총체적인 진화의 본거지로 보아야 한다. 진화는 지구상의 어떤 움직임보다도 훨씬 중요하다. 유기물질의 등장은 진화의 곡선 위에 임계점을 이룬다.
지구발생은 생물발생으로 이어지고 곧 얼 발생으로 이어진다.
나는 적자생존, 환경에 적응이라는 문제에 부딪힐수록 우리가 어떤 <외부적인 힘의 문제>가 아니라 <심리학의 문제> 앞에 서 있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다. 동물이 육식본능을 가지게 된 것은 어금니가 날카로워지고 발톱이 생겼기 때문이 아니라, '육식을 하려는 마음'이 혈통을 따라 이어져내려오며 커졌기 때문에 호랑이가 송곳니를 갈고 발톱을 날카로이 한 것이 아닐까? 형질의 진화는 스콜라 철학에서 말하는 성품을 생각나게 한다. 성품은 나이를 먹으며 형성되고 계통으로 이어가며 두터워진다. 그렇게 본능에 맞는 외모를 갖추게 된다. (*)
생명세계는 살과 뼈를 입은 의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영장류의 생물학적 가치는 직접 뇌가 발달하는 계통을 대표하는 데 있다. 영장류는 신체 기능을 발달시키지 않고 유연하게 뇌두면서 직접 뇌 쪽으로 진화가 이루어졌다. 더 큰 의식을 향한 진화에서 영장류는 맨 앞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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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부 생각

제1장 생각의 등장
사람은 과학이 만나본 것 중 가장 신기하고 이상한 존재다. 사람의 내면이 드러나는 활동 중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현상은 <반성>이다. 반성이란 자신을 대상으로 놓고 자신의 존재와 가치를 헤아리는 능력이다. 반성의 등장은 다른 동물들과 인간 사이에 넘을 수 없는 심연을 놓았다. 상태의 변화가 일으킨 <본질의 변화>다.
세대의 고리에서 볼 때 개체 하나는 중요하지 않았고 살 권리가 없었다. 개체는 자기 위로 지나가는 어떤 흐름을 받쳐주는 지점에 불과했다. 생명체보다 <생명>이 더 현실이었다. 개체는 집단 전체가 사람답게 됨을 통해 사람이 된다. 사람들을 거쳐 참사람이 도래한다. 사람의 계통발생을 통해 사람 가지(계통)가 새로 생긴다.
나중에 외계에서 화석이 된 지구를 탐구하러 온다면 지구의 으뜸가는 특징으로 푸른 바다나 숲이 아니라 <생각>을 꼽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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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펼쳐지는 얼누리
후기 구석기 시대 무리들은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며 수렵을 한 느슨한 집단이었다. 그러나 신석기 시대는 과거 모든 시대 중에서 중요하고 엄숙한 시대다. 문명이 탄생하기 때문이다. 그 기간 동안 동물과 식물을 고르고 길들였을 것이다. 반성만큼 중요한 사회화의 순간이다. 이미 관계를 맺고 있다. 자기 자리를 정해 차지했다. 물건을 교환하고 생각을 나누며 전통이 생기고 집단적 기억이 생겼다. 미미하지만 이미 참 얼의 세계가 땅을 덮고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얼이 희박한 동물개체나 계통들 사이의 교류는 약육강식이다. 기껏해야 공생과 같은 기능적 연합이고, 대개는 한 집단이 다른 집단을 쓸어버린다.
사람의 경우에는 완전하고 철저한 제거란 없다. 아무리 잔인한 정복도 제거와 함께 늘 <동화>가 있다. 패배자는 흡수되면서 정복자를 동화시킨다. 그런 정신의 교류를 통해 서로 상당히 풍부해진다. 민족 전통이 서로 섞이고 뇌 유전자도 서로 섞이는 진정한 생물학적 화합이 일어난다. 호모 사피엔스 전 영역에서 종합이 일어난다.
알고 보면 역사란 영과 육의 큰 물줄기들이 서로 만나고 부딪치고 마침내 차츰 조화를 이루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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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현대 세계
사람은 어느 시대든지 자신들이 역사의 전환점에 서 있다고 생각해왔다.
진화란 곧 생각을 향한 행진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우리 얼의 운동이 곧 진화의 정도를 말해주고 있다. 헉슬리(Julian Huxley)가 말한 대로 "사람은 진화를 의식하는 진화다"
사회현상은 생물현상이 약화된 결과가 아니라 생물현상이 최고도에 이른 것이다.
사람은 우주의 중심이 아니다. 그보다 훨씬 멋지게, 사람은 거대한 생물학적 종합을 따라 위로 올라가는 화살이다. 계속 이어지는 생명체 중에서 사람은 마지막에 나왔고 가장 신선하며 가장 복잡하고 가장 야릇하다. 오직 사람만이 그렇다.
이제 유전이란 오로지 획득된 정신적 보물의 전달이 된다.
반성이 등장하며 사람은 근심하게 되었고 오늘날 사람들은 역사 이래 가장 불안해하고 있으며 그 이유는 반성이 사회화되기 때문이다. 많음과 거대함이 가져다주는 고통에서 오는, 현대인이 겪는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주저하지 말고 <자신의 직관을 끝까지 밀고 가야 한다.>
미래가 자꾸 밀어닥치는 지금 우리는 과학이 신앙에 자리를 내주어야 하는 전환점에 서 있다.
성장할수록 다른 세계를 포함하는 더 큰 새로운 세계를 낳는 것이 내면의 세계다. 사람이 사람답게 되어갈수록 끝없이 새로운 것을 향하지 않고는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사라믜 활동 안에 이미 어떤 <절대>가 숨어 있다. 우리가 진화다.
어디로 갈 것이라는 뚜렷한 증거는 없다. 그러나 희망을 갖기 위해서는 어떤 믿음을 갖는 것이 합리적이다.
사실 세상은 너무 큰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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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부 다음 생명

제1장 집단 출구
이 사건에는 지구라고 하는 공간의 한계가 주어져 있다. 그러나 반성의 탄생으로 말미암아 사람에게 주어진 새로운 유연성을 고려해야 한다. 사람부터는 생각 덕분에 융합에 새로운 비약이 이루어졌다. 인류 안에서 일어나는 융합은 개인이나 집단이 떨어지려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럴수록 더욱 엮어지고 가까워진다. 미래의 문, <큰 사람>을 향한 입구인 그 분은 <모두가> 힘을 합해 밀어야 열리는 문이다.
이제 한 사람을 양육하려먼 어떤 들판에서 나는 곡식만으로는 안되고 지구 전체가 동원되어야 한다. (*) 각국의 여러 말이 한 가지 뜻을 나타낸다는 것은 여러 지체와 신경계와 감각기관과 기억을 가진 몸을 지닌 <큰 것>이 탄생한다는 것 아닐까?
인류의 뿌리가 우주적이라는 것, 인류는 어떤 구체적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특별한 본성을 지녔다는 것.
그러나 ㅠ 같이 생각하기 힘든 수를 발견하지 않았으면 기하학은 발전을 멈추었을 것이다.
모든 걸 알고 싶어하는 욕구와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철학 덕분에 무의식을 찾아내게 되었다. 세상은 체계적인 반성을 거쳐야 제댜로 되는 것이라면 무의식은 일종의 열등감 또는 존재론적 악이다. 그런 무의식의 세계가 새로 생겨난 셈이다.
생각을 완벽하게 만들려는 생각, 집단 반성의 결과 앞으로 비약하는 생명. 그렇다. 사람이 연구를 계속하며 꿈꾸는 것은 원자나 분자의 친화성 너머로 다른 가장 바탕되는 에너지를 손에 넣으려는 것이다
조화로운 집단의식, 그것은 <초의식>이라 할 수 있다. 지구는 무수한 생각 알갱이들로 덮여있을 뿐 아니라 하나의 큰 <생각덩어리>로 덮이게 된다. 다양한 개인들의 반성들이 뭉쳐서 하나의 반성 곧 <만장일치된 반성>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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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집단을 넘어 : 큰 사람
참 얼은 처음부터 통합하고 조직하는 힘이다.
우리 의식의 자리는 그것을 이루는 여러 가닥보다 더 깊다. 오메가가 정말 오메가가 되려면 그래야 한다. 교통하려면 나를 포기하면서도 여전히 존재해야 한다. 결국 의식 세계의 집중 또는 농축은 <하나>의 큰 의식을 낳지만 그 안에는 개체 의식이 <모두> 들어 있다. 의식들 하나하나는 여전히 자신을 의식하고 있을 뿐 아니라 오메가에 가까울수록 다른 존재와 더욱 뚜렷하게 구분된다. 수렴이라는 것은 개체와 요소를 보존하는 것일 뿐 아니라 오히려 더욱 뚜렷하게 하는 것이다.
사랑(존재와 존재가 가까워짐)은 사람에게만 있는 게 아니라 모든 유기체에 있는 것이다. 아주 미약하게나마 분자에게도 서로 하나가 되려는 욕구가 없었따면 높은 단계인 우리 사람에게서 사랑이 나타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오직 사랑만이 개체들을 하나되게 함으로써 개체를 완성할 수 있다. 사랑만이 속 깊은 만남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두 사람이 서로 자신을 상대에게 내주지 않고 어떻게 상대를 완벽하게 가질 수 있겠는가? 남과 하나가 되면서 내가 된다는 모순된 행위를 실현하는 것은 사랑이 아닐까? 그런 일이 매일 여러 규모로 일어낙 있다면 어느 날 전 지구 차원에서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겠는가?
우주의 압력으로 개체를 전체로 몰아가는 열정이다. 우주 차원의 사랑이다. 우주 사랑. 가능한 심리일 뿐 아니라 결국 완벽하고 충만한 사랑은 그런 방식일 수밖에 없다.
사랑은 비인칭과 익명을 만나면 죽는다. 사랑을 위해서는 같이 있어야 한다. 다른 힘들이 그렇듯이 사랑의 힘도 지금 있는 것들을 가지고 이리저리 엮어 나가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을 모으지만 그것이 처음부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지 않는다면 결코 오메가라고 할 수 없다. 자율, 현재성, 불가역성, 초월. 이렇게 오메가의 속성은 네가지다.
겉으로 볼 때 사람은 동물처럼 지저분하다. 그러나 사람은 죽음에 먹히지 않고 자유로워진다. 엔트로피를 넘어 오메가를 향한다. 죽음도 자연스럽게 인간화된다. 생각 알갱이의 출현으로 우주는 참되고 결코 부서지지 않을 바탕을 찾았다. 그러면서 물질과 반대방향으로 우리 머리에 우주가 자리잡게 되었다. 우주는 기계에너지가 모이고 보존되는 곳이 아니라 인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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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세상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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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물학자 매튜는 자기 책에서, 만일 사람 가지(계통)가 사라진다면 다른 생각하는 가지가 그 뒤를 이으리라고 했다(*)
생명이 지구라는 행성 위에 생긴 것은 오직 한번이었다. 그 생명이 반성을 뛰어넘는 것도 단 한번 있을 일이다. 생명에게 단 한번의 기회가 있었듯이 생각에게도 단 한번의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 순간부터 사람은 계통수의 방향타가 될 것이다. 얼누리의 장래, 생물발생의 장래, 우주발생의 장래는 사람에게 달렸다. 우주가 자살하지 않는 한 그런 일이 가다가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은 알 수 없는 존재라고 카렐이 말했다. 그러면서도 모든 것을 풀 수 있는 열쇠는 사람에게 있다. 지금까지 과학은 사람을 직접 알려고 하지 않고 빙빙 둘레만 돌았다. 물질로 볼 때 우리 몸은 별 뜻이 없고 순간에 머물고 매우 약하다. 연구할 까닭이 없지 않은가? 얼로 보자면 우리 얼은 매우 복잡하고 신비하다. 그걸 어떻게 무슨 법칙이나 공식으로 만들 수 있겠는가?
사람이 밑이며 위다. 사람이 중심이다.

진화란 하나됨과 함께 자유를 향한 것이다.
종교와 과학. 앎의 두 모습이다. 이 둘이 결합될 때 완벽한 앎을 이루고 진화의 과거와 미래를 모두 끌어안으며 그것을 생각하고 가늠하고 마무리지을 수 있다. 과학과 종교, 이성과 신비, 아직은 서로 대립하고 있는 두 능력이 서로를 튼튼하게 할 때 인류의 얼은 최고에 달하고 가장 활기찬 생명력을 띠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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맺음말

그리스도발생은 우주발생의 절정인 얼발생의 연장이요 그것은 우리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것이다. 그리스도는 창조의 위엄을 몸에 두르고 있다. 사람은 이 그리스도로부터 하느님을 받아들이고 찾을 수 있다.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운동하고 있는 우주의 길이와 두께와 깊이 속에서 하느님을 찾는 것이다. 몸과 마음과 얼을 다할 뿐 아니라 하나되고 있는 온 우주를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 그것은 시공간의 세계에서만 할 수 있는 기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