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27

선의 가르침 放下着(ほうげじゃく)「방하복」 집착을 버리는 방법 |


禅の教え「放下着(ほうげじゃく)」に学ぶ、思い込み・執着を捨てる方法

あるべき姿や、やるべきことに縛られ、日々の生活が窮屈......。そんな時に触れたい「放下着(ほうげじゃく)」という禅の言葉。今回は、岐阜県美濃市にある霊泉寺の副住職でありながらエッセイストでもある、佐藤隆定(さとうりゅうじょう)さんにインタビューしま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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なぜ窮屈さを感じてしまうの?

そもそもなぜ人は、人生に窮屈さを感じてしまうのでしょうか?

禅の教え「放下着(ほうげじゃく)」に学ぶ、思い込み・執着を捨てる方法

「まず、なぜ人間には苦という感情が生まれるのかというところからお話しします。禅・仏教では、窮屈という感情も含めて、思い通りにいかないことを『苦』としています。こうしたいという理想と、そうはならないという現実。苦とはそうした理想と現実のズレから生じているのだと考えています。

例を出しましょう。例えば同じ年収400万円のAさんBさんがいたとします。Aさんは現在の年収にとても満足している。一方で、Bさんは年収にとても不満を持っている。同じ状況にありながら、かたや幸せ、かたや不幸せという状況が生まれているわけです。

つまり幸せ・不幸せというのは、年収の額などではなく、自分の思いがどれだけ叶っているかということ。現実の世界がどうというより、自分の心と現実のズレこそが苦の原因であり、人生を窮屈にする原因なのだというのが禅・仏教の考え方なのです」(佐藤隆定さん)

そういったお悩みを持った方が相談にいらっしゃった際、どのようなアドバイスをするのですか?

「理想と現実のズレを解消する方法は2つしかありません。外側を変えるか、内側を変えるか。自分の理想に合うように周りを変えるか、自分自身の心を変えるかということです。ほとんどの人は、外側を変えようとするのですが、これはなかなか変えられるものではありません。

例えば営業目標を達成できるように低めに設定してもらう、ブランド品が欲しい・良い生活がしたいから給与を上げてもらう。それって簡単にできることではありませんよね。外側を変えようとして、変わらない状況が続けば、やがて行き詰まってきます。つまり、自分自身が変わることのほうがはるかに楽なわけです。

大切なのは『これじゃなきゃだめだ』『幸せになれない』と思っていることを、それって本当かな?と疑ってみること。こうしなければいけない。これが常識だから。そういった思い込みや執着を一度手放してみたら、軽やかに生きられるのではないですか。そういったアドバイスをさせていただいています」(佐藤隆定さん)

禅のことば「放下着(ほうげじゃく)」とは?

「放下着」あまり聞きなれない言葉ですが、具体的にはどういった教えなのでしょうか。

「放下とは、投げ捨てる、放り出す、捨て切るという意味の言葉です。『着』という字が入っているので、よく下着を放ると思われる方もいますが、それは間違いです。また『着』という字は、前の言葉(放下)を強調させる助字なので、その字自体に意味はありません。今で言う『!』と同じです。さて、この放下着。この言葉が誕生したのは今から千年以上も前のこと。中国の唐の時代です」(佐藤隆定さん)

「こんなエピソードがあります。ある時、趙州(じょうしゅう)和尚のもとに、一人の修行僧が訪ねて来ます。修行僧は趙州和尚に問いかけます。『長い修行のかいあって、煩悩妄想をすべて捨てることができた。高みに到達することができた今、これから先どう修行したらいいのでしょうか』。そこで趙州和尚は『放下着』と答えました。修行僧は意味が分からず『もう捨てるものがありません。なにを捨てろというのですか』と言うと、趙州和尚は『捨てることができないのなら、自我をかついで去れ』と言い放ちました。

つまりこれ、どういうことかというと、すべてを捨てることができた私を見てくれ!と言わんばかりの修行僧に、その思いすら捨ててしまえという意味で放下着と言ったのです。これが放下着の始まり。放下着とは、すべての執着を捨て去れ、執着を空っぽにしてみろという意味なのです」(佐藤隆定さん)

禅の教え「放下着(ほうげじゃく)」に学ぶ、思い込み・執着を捨てる方法

人間というのは「手放す」「捨てる」という行為が苦手ですよね。

「捨てられないということがいかに自分の負担になっているかということを、ブッダは次のような例えで弟子たちに説明したことがありました。ある時、旅人が川に差しかかりました。とても大きな川で、対岸に渡ることができない。そこで旅人はいかだを作ることで、無事に対岸へと渡ることができました。その時、旅人は次のように思います。このいかだはとても役に立ったから、捨てずに、かついで道を進むことにしよう。

……この話をしたあと、ブッダは弟子たちに問います。『この旅人のいかだに対する対処は適切だったと思うか。きっと誰もそうは思わないだろう』と。いかだをかついで歩けば、すぐに疲れてしまう。つまり、たとえ役立つものであっても、正しいことであっても、執着することでそれが負荷をもたらすものに変わってしまうということ。正しいことでさえ執着するべきでないのに、ましてや正しくないことに執着をしたら、苦しみしか生まれない。だからこそ執着心から離れるように、という教えです」(佐藤隆定さん)

禅の教え「放下着(ほうげじゃく)」に学ぶ、思い込み・執着を捨てる方法

生活の中で実践したい「放下着(ほうげじゃく)」

では最後に、この「放下着」という考えは、生活の中でどのように実践できるのでしょうか。

「大前提として覚えておいていただきたいのが、『放下着』とは、誰でも実践すれば幸せになれるというものではありません。世間の価値観があるとして、積極的にその価値観の中で生きていこうと考えている人は、執着心を欲しています。また、社会の中で生きていく上で、目標を達成するためには執着心むき出しでいかなければならない場面も多々あります。そういったことに幸せを感じられる人に、放下着は必要ありません。社会に適応できる人に、この言葉はいらないのです。ではどんな人が、合っているのか」(佐藤隆定さん)

「ずばり、世間の価値観や常識に合わず、生きづらさを感じている人です。例えば、残業続きで疲れが溜まっているが、みんなもやっているからと無理をして頑張っている人。上司からの飲み会の誘いが断れず、ストレスを溜め込んでいる人。思い切って会社を辞めたいけれど、世間体を気にして辞められない人。今は社会に適応している人でも、執着心が持つプラスのエネルギーが、いつからか苦を生むエネルギーに変わっていくというケースもあります。

あとは、高い生活レベルやブランド品といったものへの執着によって、日々の生活が苦しくなっている人などもそうですね。そういった人に対して、放下着という言葉を通して『あなたを追い詰めているその価値観。それは絶対ではないし、それがすべてじゃないですよ』ということを伝えたいのです」(佐藤隆定さん)

もちろん実践するか否かは本人の自由です。禅や仏教は無理に『こうしなさい』と押し付けるようなことは言いません。禅や仏教というのは、いわば行き詰まっている人に対する病院。そして、放下着は処方箋のようなものです。もし、この記事を読んで『実践してみよう』と思えたのであれば、すでに病状回復に向かっています。捨てるという発想ができるようになれば、光が見えます。興味がある人はぜひ、一歩、踏み出してみてはいかがでしょうか」(佐藤隆定さん)

【取材協力】
佐藤隆定(さとう りょうじょう)さん
禅・曹洞宗僧侶、エッセイスト。愛知学院大学文学部在籍中、曹洞宗で出家得度。卒業後、大本山永平寺にて修行。現在、岐阜県美濃市霊泉寺副住職。「生きる」という、人間にとって根源的で日常的な活動について禅という視点から考え、講演や執筆等を通じて人々に伝える活動をしている。著書に『糧になる禅語』(国書刊行会)がある。

선의 가르침 「방하복」에 배우는, 추억 · 집착을 버리는 방법 | 마나 토피

선의 가르침 "방하복"에 배우는 추억 · 집착을 버리는 방법

선의 가르침 "방하복"에 배우는 추억 · 집착을 버리는 방법

해야 할 모습이나 해야 할 일에 묶여서 일상 생활이 거북....... 그런 때에 접하고 싶은 「방 속옷(호우게쟈쿠)」이라고 하는 선의 말. 이번은, 기후현 미노시에 있는 영천사의 부주직이면서 에세이스트이기도 한, 사토 류정(사토우류조)씨에게 인터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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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거북함을 느끼는가?

원래 왜 사람은 인생에 비좁은 느낌을 버리는 것일까요?

선의 가르침 "방하복"에 배우는 추억 · 집착을 버리는 방법

「우선, 왜 인간에게는 고통이라는 감정이 태어나는 것인가라고 하는 곳으로부터 이야기합니다. ,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하는 현실.고는 그런 이상과 현실의 어긋남으로부터 생겨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예를 들면 같은 연수입 400만엔의 A씨 B씨가 있었다고 합니다. A씨는 현재의 연수입에 매우 만족하고 있다. 한편, B씨는 연봉에 매우 불만을 가지고 있다. 같은 상황에 있으면서, 분이나 행복, 분이나 불행 행복이라는 상황이 태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즉 행복·불행행이라는 것은, 연수입의 액수등이 아니고, 자신의 생각이 얼마나 실현되고 있는가 하는 것. 현실의 세계가 어쨌든, 자신의 마음과 현실의 어긋남이야말로 고통의 원인이며, 인생을 비굴하게 하는 원인이라는 것이 선·불교의 사고 방식입니다」(사토 타카마사 씨)

그런 고민을 가진 분이 상담에 계셨을 때, 어떤 어드바이스를 합니까?

“이상과 현실의 어긋남을 해소하는 방법은 2가지 밖에 없습니다.외부를 바꿀 것인가, 안쪽을 바꿀 것인가. 의 사람은 바깥쪽을 바꾸려고 합니다만, 이것은 좀처럼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영업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낮게 설정해 주는, 브랜드품을 갖고 싶다·좋은 생활을 하고 싶기 때문에 급여를 올려 준다. 그렇게 쉽게 할 수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깥쪽을 바꾸려고, 변하지 않는 상황이 계속되면, 곧 멈춰 옵니다. 즉, 자신이 바뀌는 편이 훨씬 편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아니면 안된다」 「행복할 수 없다」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을, 그것이 사실일까? 라고 의심해 보는 것. 이렇게 해야 한다. 이것이 상식이니까. 그런 추억이나 집착을 한 번 놓아보면 가볍게 살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런 어드바이스를 하겠습니다」(사토 타카마사 씨)

선의 말 "방 속옷(호우게쟈쿠)"이란?

「방 속옷」별로 들을 수 없는 말입니다만, 구체적으로는 어떤 가르침일까요.

「방하란, 던져 버린다, 버린다, 버린다고 하는 의미의 말입니다. 글자는, 전의 말(방하)을 강조시키는 조자이므로, 그 글자 자체에 의미는 없습니다.지금으로 말하는 「!」와 같습니다.그럼, 이 방 속옷.이 말이 탄생한 것은 지금부터 천년 이상도 전의 일.중국의 당나라의 시대입니다」(사토 다카마사씨)

"이런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어느 때 조주 화상 아래에 한 명의 수행 승자가 방문합니다. 수행 승은 조주 화상에게 질문합니다. 전부 버릴 수 있었다.높이에 도달할 수 있었던 지금, 앞으로 먼저 어떻게 수행하면 좋을까요?.거기서 조주 가즈오는 '방 속옷'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수행승은 의미를 모르고 '이제 버리는 것이 없습니다. 무엇을 버려라고 하는 것입니까」라고 하면, 조주 카즈오는 「버릴 수 없다면, 자아를 한때 떠나라」라고 말해 버렸습니다.

즉 이것, 무슨 일이냐면,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었던 나를 봐주세요! 라고 말할 뿐의 수행승에게, 그 생각조차 버려 버리라는 의미로 방 속옷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것이 방 속옷의 시작. 방 속옷이란, 모든 집착을 버려 버리고, 집착을 비워 보자는 의미입니다」(사토 타카마사 씨)

선의 가르침 "방하복"에 배우는 추억 · 집착을 버리는 방법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수방한다」 「버린다」라고 하는 행위가 서투르네요.

“버릴 수 없다는 것이 어떻게 자신의 부담이 되고 있는지를 부처는 다음과 같은 비유로 제자들에게 설명한 적이 있었습니다. 강에서, 해안에 건너갈 수 없다.여기서 여행자는 뗏목을 만드는 것으로, 무사히 해안으로 건너갈 수 있었습니다.그 때, 여행자는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이 뗏목은 매우 도움이 되었기 때문에, 버림 없이 한때 길을 가기로 하자.

이 이야기를 한 후, 부다는 제자들에게 질문합니다. 『이 여행자의 뗏목에 대한 대처는 적절했다고 생각하는가. 분명 아무도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뗏목을 한꺼번에 걸으면 곧 피곤해진다. 즉, 비록 도움이 되는 것이라도, 올바른 일이라도, 집착하는 것으로 그것이 부하를 가져오는 것으로 바뀌어 버린다는 것. 옳은 일조차 집착해서는 안 되는데, 하물며 옳지 않은 것에 집착을 하면 고통밖에 태어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집착심에서 벗어나도록 가르치는 것입니다」(사토 타카마사 씨)

선의 가르침 "방하복"에 배우는 추억 · 집착을 버리는 방법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싶은 「방 속옷(호우게쟈쿠)」

그러면 마지막으로, 이 「방 속옷」이라고 하는 생각은, 생활속에서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요.

「대전제로서 기억해 주셨으면 하는 것이, 「방 속옷」이란, 누구라도 실천하면 행복하게 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세상의 가치관이 있다고 해서, 적극적으로 그 가치관 속에서 살아가려고 생각하는 사람은 집착심을 갖고 싶습니다.또,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데 있어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집착 마음 드러내서 가야 할 장면도 많이 있습니다.그런 일에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람에게, 방 속옷은 필요 없습니다.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사람에게, 이 말은 필요 없습니다.그럼 어떤 사람이, 맞고 있는 것인가」(사토 타카마사씨)

“쭉, 세상의 가치관이나 상식에 맞지 않고, 살기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사람입니다.예를 들면, 잔업 계속으로 피로가 모여 있지만, 모두도 하고 있기 때문에와 무리를 해 노력하고 있는 사람. 상사로부터의 마시기의 초대를 거절하지 않고, 스트레스를 모으고 있는 사람.정말로 회사를 그만두고 싶지만, 세간체를 신경쓰고 그만둘 수 없는 사람.지금은 사회에 적응하고 있는 사람이라도, 집착심이 있다 플러스의 에너지가 언제부터인가 고생하는 에너지로 바뀌어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는, 높은 생활 레벨이나 브랜드품이라고 하는 것에의 집착에 의해, 매일의 생활이 괴로워지고 있는 사람등도 그렇네요. 그러한 사람에 대해서, 방 속옷이라는 말을 통해서 「당신을 몰아치고 있는 그 가치관. 그것은 절대는 아니고, 그것이 전부가 아니에요』라는 것을 전하고 싶습니다」(사토 타카마사 씨)

물론 실천할지 여부는 본인의 자유입니다. 선이나 불교는 무리하게 『이렇게 하라』라고 밀어붙이는 것은 말하지 않습니다. 선이나 불교라는 것은 말하자면 막혀있는 사람에 대한 병원. 그리고 방 속옷은 처방전과 같습니다. 만약, 이 기사를 읽고 「실천해 보자」라고 생각했다면, 이미 병상 회복을 향하고 있습니다. 버린다는 발상을 할 수 있게 되면 빛이 보입니다. 흥미가 있는 사람은 꼭, 한 걸음, 내디뎠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사토 류정씨)

【취재 협력】
사토 류정(사토 류죠)씨
선·조동 종승려, 에세이스트. 아이치 학원 대학 문학부 재적 중 조동종에서 출가 득도. 졸업 후, 오모토야마 에이헤이지에서 수행. 현재 기후현 미노시 영천사 부주직. '살다'는 인간에게 근원적이고 일상적인 활동에 대해 선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해 강연이나 집필 등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에 『 양식이 되는 선어』(국서간행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