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27

放下 방하 - Wikipedia Equanimity ??

放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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放下(ほうか)とは、

1. 日本における大道芸のひとつ。田楽法師の伝統を受け継ぐ雑芸[1]

放下(ほうげ)とは、

2. キリスト教神秘主義で用いられる概念。
3. 仏教、主に禅宗などで用いられる概念。

本項では、1.と2.と3.について説明する。

大道芸「放下(ほうか)」[編集]

放下は、室町時代から近世にかけてみられた大道芸のひとつである[2]

「放下」の語はもともと禅宗から出た言葉で、一切を放り投げて無我の境地に入ることを意味したが、「投げおろす」「捨てはなす」の原義から派生して(まり)やなどを放り投げたり、受けとめたりする芸能全般をあらわすようになったと考えられる[2][3]

放下は、奈良時代散楽の一部として中国大陸から伝来した曲芸軽業的諸芸が、中世に入ってもっぱら放下師・放下僧によって演じられるようになったものである[4]

中世[編集]

七十一番職人歌合』より「放下」
笹竹を背負い、烏帽子姿であるく放下師

室町時代中期、芸能の中心となったのは、屋外を舞台に、雑芸を生業とする放浪の大道芸人であったが、なかでも人気だったのが放下師であった[3]。放下師はまた、単に「放下」ともいわれた[1]

放下師(放下)がおこなった芸には、中国から渡来したのようなかたちの空中独楽の中央のくびれ部分に紐を巻き付けて回転させたり、空中高く飛ばしたりして、自在に使い分ける輪鼓(りゅうご)や田楽芸の「高足」から転じた連飛(れんぴ)、また、鞠・短刀などを空中に投げ上げて自在にお手玉する品玉(しなだま)、八ツ玉手鞠弄丸(ろうがん)などがあり、従来の散楽や田楽から学び習った曲芸や奇術を専業化し、人びとが行き交う大道やの立つ殷賑の地などでこれを演じて人気を博した[1][2][3][4]。また、「こきりこ」(筑子)と称される、長さ30センチメートル・太さ1センチメートルほどの竹の棒2本を打ち合わせたり、拍子をとったりして物語歌をうたい歩き、あるいはに立って歌い、特に子女からの人気を集めた[1][2][4]

放下師が人形も廻したことは伏見宮貞成親王日記看聞御記』に「ヒイナヲ舞ス」とあることからも確かめられている[1]

放下の演者の多くは、田楽を生業とする田楽法師がそうであったように体をしている者も多く、その場合は「放下僧」と呼ばれた[3][注釈 1]。また、烏帽子をかぶり、笹竹に恋歌の書かれた短冊を吊り下げ、それを背負って歩く放下師もおり、その姿は室町時代の歌合七十一番職人歌合』にも描かれている[2]

近世[編集]

人倫訓蒙図彙』(元禄3年(1690年)頃刊行)の挿図より「放下」(右)「住吉踊り」(左)
放下師は路上で皿回しをしている。

放下は、近世にいたって俗人の手にうつったが、従来の曲芸だけではなく、鞠の曲玉子の曲おごけの曲うなぎの曲、枕の曲(枕返し)、籠抜け皿回しなども演じた[2]。また、放下芸と獅子舞を生業とする伊勢太神楽の集団が成立したのも近世初頭である[注釈 2]。いっぽうで小屋掛けがなされるようになり、寄席演芸のひとつとして、大がかりな曲芸や手品もおこなうようになった[2]。手品は、山芋うなぎにする、より小鳥を出す、絵をにするなどといったもので、元禄年間(1688年-1704年)に活躍した有名な手品師塩の長次郎も放下師の出身であった[1]。また、『京都御役所向大概覚書』という史料によれば、寛文9年(1669年)、豊後屋団右衛門という人物が歌舞伎などの興行に対抗して「放下物真似」の名代が許されている。

江戸時代前期にあってはまた、当時流行の歌舞伎や人形浄瑠璃(文楽)との提携も進み、その幕間におおいに演じられた[2]江戸歌舞伎の座元(太夫元)となった都伝内も放下師の出身であったという[2]

元禄以降、しだいに劇場からはすがたを消し、大道芸に回帰していった放下は「辻放下」と呼称され、身分的には非人階級に属し、江戸浅草車善七の差配にしたがった[1][注釈 3]

近現代[編集]

明治維新以降、近代にはいると「放下」の語は文献資料からはみられなくなる[1]。現在、放下芸は太神楽のなかの一ジャンルとして寄席で演じられるほか、日本各地にのこる「風流踊り」と総称される民俗芸能のなかでも演じられる[2]

キリスト教における「放下(ほうげ)」[編集]

放下(ほうげ)は、キリスト教神秘主義、とくにドイツ神秘主義で用いられる概念である。ドイツ語では Gelassenheit と表記され、「キリスト(救世主)へのゆだね」とも訳される。我性を捨ててイエス・キリストにすべてを委ね死にきり、己を無となし、そのことによってキリストの受難と復活に与り、真によく生きることをいう。マイスター・エックハルトにおける中心概念であり、ヤーコプ・ベーメらに継承された[注釈 4]

仏教における「放下(ほうげ)」[編集]

の用語で、放り投げる、捨て去ること。ものごとに執着せず、迷いを捨て去ること。遠離(おんり)解脱すること[5]浄土門においても、時宗法語(『一遍上人語録』「門人伝説」)に同様に用いられている。禅浄双修の立場においては、このようなとらわれの心を捨てて、ただひたすらに念仏することを勧める[5]

仏教に限らず、一般においてもすべてを捨て去ったり、放棄することの意に用いる[5]

脚注[編集]

[脚注の使い方]

注釈[編集]

  1. ^ 作者不詳の能楽放下僧』では、かたきをねらう兄弟が放下師(放下)と放下僧に扮装し、曲舞鞨鼓小唄などの芸づくしをおこなう場面がある。山路(1988)p.45
  2. ^ 伊勢太神楽は、織田信長に敗れた武士たちのうち伊勢国桑名に落ちのびた一派といわれ、全国を旅する芸能集団となって獅子舞・曲芸を演じた。佐藤(2004)p.116
  3. ^ 車善七は、幕藩体制下において浅草の非人頭が代々世襲した名前である。
  4. ^ ヤーコブ・ベーメの最初の著作が『アウローラ』であり、ここでは「キリストへのゆだね」の思想が叙述されている。

出典[編集]

参考文献[編集]



방하 - Wikipedia

방하

출처 : 무료 백과 사전 "Wikipedia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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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하 (호카)란,

1. 일본 에서의 거리 예술 의 하나. 타라쿠 법사 의 전통을 계승하는 잡예 [1] .

방하 (호우게)란,

2. 기독교 신비주의에서 사용되는 개념.
3. 불교 , 주로 선종 등에서 사용되는 개념.

이 절에서는 1., 2. 및 3.에 대해 설명합니다.

거리 예술 「방하(호하카)」편집 ]

방하는, 무로마치 시대 부터 근세 에 걸쳐서 보였던 대도예의 하나이다 [2] .

「방하」의 말은 원래 선종 에서 나온 말로, 일체를 던져 무아 의 경지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했지만, 「던져 내리다」 「버리지 말아라」의 원의로부터 파생해 마리나  등을 던지거나 받아들이는 예능 전반을 드러내게 되었다고 생각된다 [2] [3] .

방 하는 나라 시대 에 산악 의 일부로 중국 대륙 에서 전래한 곡예 · 경 업적 제예가 중세에 들어가 유일하게 방하사·방하승에 의해 연기되게 된 것이다 [4] .

중세 편집 ]

칠십일 장인 가합』에서 「방하」
사사죽을 짊어지고, 까마귀 모자 모습이 되는 방하사

무로마치 시대 중기, 예능의 중심이 된 것은, 야외를 무대로, 잡예를 생업으로 하는 방랑의 거리 연예인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인기였던 것이 방하사였다 [3] . 방하사는 또한 단순히 "방하"라고도 불렸다 [1] .

방하사(방하)가 행한 예술에는, 중국 에서 도래한 고 와 같은 형태의 공중 독락  중앙의 수축 부분에 끈을 감아 회전시키거나, 공중 높이 날리거나 해, 자유자재로 구별 하는 륜고 (류고)나 타라쿠예의 “ 타카다리 ”에서 돌린 연비( 렌피 ), 또, 마리·단도 등을 공중에 던져 자유자재로 수옥 하는 품옥 (시나 다마 ), 야츠타마 ,手,丸 등이 있으며, 종래의 산악이나 타락에서 배운 곡예와 기술을 전업화 하고, 사람들이 오가는 거리와 시가 서 있는 은행의 땅 등에서 이것을 연기해 인기를 얻는다 했다 [1] [2] [3] [4] . 또, 「코키리코」(치쿠코)라고 불리는, 길이 30센티미터·굵기 1센티미터 정도의 대나무의 막대기 2개를 협의하거나, 박자 를 취하거나 해서 이야기 노래를 하고 싶은 걸음, 혹은 츠지서서 노래, 특히 자녀로부터의 인기를 모았다 [1] [2] [4] .

방 하사가 인형 도 환한 것은 후시미 미야 사다나리 친왕 의 일기간문어기』에 「히이나오무스」라고 있는 것으로부터도 확인되고 있다 [1] .

방하의 연자의 대부분은, 타라쿠를 생업으로 하는 타라쿠 법사가 그랬듯이 스님 을 하고 있는 사람도 많아, 그 경우는 「방하 스님」이라고 불렸다 [3] [주석 1] . 또한 가라스 모자를 쓰고 사사타케 에게 연가의 쓰여진 스트립 을 매달아 그것을 짊어지고 걷는 방하사도 있어 그 모습은 무로마치 시대의 가합  칠십 일번 장인가합  에도 그려져 있다 2] .

최근 편집 ]

인륜훈몽도휘』( 모토 로쿠 3년( 1690년경 경간행)의 삽도에서 「방하」(오른쪽) 「스미요시 춤」(왼쪽)
방하 사는 거리에서 접시 를 돌리고 있다.

방하는, 근세 에 있어서도 속인의 손에 우뚝 솟았지만, 종래의 곡예 뿐만이 아니라, 마리의 곡 , 계란의 곡 , 덤의 곡 , 장어의 곡 , 베개의 곡( 베갯 줄 ), 농담 , 접시 회전 등도 연기했다 [2] . 또, 방하예와 사자춤 을 생업으로 하는 이세타 카구라 의 집단이 성립한 것도 근세 초두이다 [주석 2] . 동시에 오두막걸이가 되어, 기석 연예 의 하나로서, 큰 곡예나 수품 도 행하게 되었다 [ 2] . 수품은 참마 를 장어 로 하는, 바구니 보다 작은 새 를 내는, 그림을  으로 하는 등이라고 하는 것으로, 원록 연간( 1688년 -1704년 )에 활약한 유명한 마술사 , 소금의 나가지 로도 방하사의 출신이었다 [1] . 또, 『교토 미야코소향 대개각서』라는 사료 에 의하면, 관문 9년( 1669년 ), 분고야단 우에몬이라는 인물이 가부키 등의 흥행에 대항해 「방하물 흉내」의 명대 가 허락 되었습니다.

에도 시대 전기에는 또한 당시 유행의 가부키나 인형 죠루리( 분라쿠 )와의 제휴도 진행되어, 그 막간에 냄새에 연기되었다 [2] . 에도 가부키의 자리( 태오원)가 된  덴내도 방하사 의 출신이었다고 ​​한다 .

모토로쿠 이후 드디어 극장에서 벗어나 거리 예술에 회귀해 온 방하는 '츠지 방하'라고 불리며 신분적으로는 비인 계급에 속해 에도 아사쿠사 의 차선 일곱의 차이 에 따라서 [1] [주석 3] .

근현대 편집 ]

메이지 유신 이후, 근대 에는 '방하'라는 단어는 문헌 자료 에서는 볼 수 없게 된다 [1] . 현재, 방하 예는 타이가구라 의 한 장르로서 기석 에서 연기되는 것 외에 일본 각지에 오르는 「풍류 춤」이라고 총칭되는 민속 예능 중에서도 연기된다 [2] .

기독교에서 "방하 (호우게)" 편집 ]

방하(ほうげ)는 기독교 신비주의, 특히 독일 신비주의 에서 사용되는 개념이다. 독일어로는 Gelassenheit라고 표기되어, “그리스도( 구세주 )에게 맡겨라”라고도 번역된다. 가성 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 께 모든 것을 맡기고 죽으시고, 자신을 없애고, 그로 인해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 에 주어 진정으로 잘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의 중심 개념이며 야콥 베메 등에 계승되었다 [주석 4] .

불교에서의 "방하 (호우게)" 편집 ]

선의 용어로, 던지다, 버리기. 모든 것에 집착하지 않고 길을 버리는 것. 멀리 (온리) 해탈 하는 것 [5] . 정토문 에 있어서도, 시종 의 법어 (『일편 상인어록』 「문인 전설」)에 마찬가지로 사용되고 있다. 선정 쌍수 의 입장에서는 이와 같은 사로잡힌 마음을 버리고 단지 오로지 염불 하는 것을 권한다 [5] .

불교에 한정되지 않고, 일반에 있어서도 모든 것을 버리거나 포기하는 것의 뜻으로 이용한다 [5] .

각주 편집 ]

각주 사용법 ]

주석 편집 ]

  1. ^ 작자 미상의 노가쿠 ' 방하승 '에서는 가타키를 노리는 형제가 방하사(방하)와 방하승으로 분장하고, 곡무 ,鼨鼓소창 등의 예술 만들기를 행하는 장면이 있다. 야마지 (1988) p.45
  2. ^ 이세 타이가구라는, 오다 노부나가 에게 패한 무사들 중 이세국 쿠와나 에 떨어지는 일파라고 불리며, 전국을 여행하는 예능 집단이 되어 사자춤·곡예를 연기했다. 사토 (2004) p.116
  3. ^ 차선칠은 막번체제하에서 아사쿠사의 비인두가 대대로 세습한 이름이다.
  4. ^ 야콥 베메의 첫 저작이 『아우로라』이며, 여기에서는 「그리스도에의 삶」의 사상이 서술되어 있다.

출처 편집 ]

참고 문헌 편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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