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26

이즈쓰 도시히코의 동양 철학이란 무엇인가 No.3 : 모리시타 나오키 | 노성학 연구소

이즈쓰 도시히코의 동양 철학이란 무엇인가 No.3 : 모리시타 나오키 | 노성학 연구소


이즈쓰 도시히코의 동양 철학이란 무엇인가 No.3 : 모리시타 나오키
 2020.12.04

이츠키 슌히코의 「도요 철학」이란 무엇입니까?
일본 형이상학과 21세기 리얼리티
노성학 연구소 대표 모리시타 나오키



제3회 말 이전의 코토바의 세계

전회까지 이통이 포착한 동양철학의 세계를 정사해 왔다. 이번에는 의문점을 파고들면서 생각해보고 싶다. 고려사항의 초점은 우물통의 의식 구조 모델이다. 이것을 3개의 기둥이 지지하고 있었다. 순서대로 검토하자.

우선은, 제1의 기둥인 의미분절 이론으로부터 시작한다. 

  • 이 이론의 근본적인 견지는 의식=말=분절=존재이며, 
  • 거기에서 말 이전의 존재=혼돈(절대 무분절)으로 되어, 분절=보편적 본질이 된다. 
  • 이 견지의 원은 대승불교의 선이겠지만, 이통은 이 이론을 전제로 해서 이론을 진행하고 있다.
  • 그러나 이 전제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 「성희롱」이라는 말을 예를 들어 생각해보고 싶다.

확실히, 이 말이 이용되게 되어 처음으로, 그때까지 엉망이었던 유사한 사상이 <성희롱>이 되었다. 그러니까 <성희롱>이라는 사건은 '성희롱'이라는 말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말할 수 없다. 
  • '성희롱'이 지시하는 것은 '보편적 본질'이다. 
  • 사고는 이 보편적 본질에 비추면서 사건에 대해 판단하거나 추론하기도 한다. 
  • 이처럼 '성희롱'과 관련된 다양한 개인, 관계, 인과의 세계가 나타난다. 
  • 또한 이 세계에는 일상의 커뮤니케이션(파롤)을 통해 '성희롱' 관련 '~다움'이나 '~ 있어야 한다'라는 일련의 가치와 규범이 붙여진다.

그러나 '성희롱'이라는 말이 태어나기 전에 사건으로서의 <성희롱>은 존재하지 않았는가. 
  • 그렇지 않을거야. 명확하게 분절되지 않고 인지되지 않았을 뿐이다. 
  • 말이 없는 존재(사건), 또는 말 이전의 존재는 당연히 있다.
  •  그 존재는 말=분절에서 보면 무분절에 비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구별을 가지지 않고, 무분절=혼돈이라는 것은 되지 않는다. 
  • 오히려 말 = 분절과는 다른 구별을 상정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사실, 말 이전의 존재의 세계란 구체적으로 말하면 의식=말을 갖지 않는 생물이나 물체의 세계이며, 거기에는 여러 가지 구별이 있다.

인간의 의식=말이 존재를 분절(区分)한다는 것은 말이 없는 세계의 여러 가지 구별을 단순화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전자기파(빛)의 자극을 시세포는 2분에서 4분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말이 더 3색으로 고정한다. 
의미분절 이론은 인간의 의식=말=분절의 세계로 한정되어 있다. 
인간 이외의 생물이나 물체, 물질과 같은 자연의 세계에도 어떠한 구별이 있는 이상, 
여기에도 말과는 다른 코토바=구별, 말=분절 이전의 코토바=구별이 있다고 생각해도 좋다 .

은 단순한 명칭도 명사의 시차연관(랑)도 아니고, 커뮤니케이션(파롤) 중에서 명지나 호소로서 일하고 있다. 무언가를 교환하는 것이 커뮤니케이션이며, 이 중에서 교환되는 무언가가 말이다. 그렇다면 생물끼리나 물체끼리, 물질끼리도 커뮤니케이션 속에서 음성이나 생체분자나 빛에너지를 교환하고 있는 한, 그들을 말(기호)이 되지 않는 코토바로 간주해도 결코 황당무료가 아니다. 이 관점에서는 의식에 대해서도 내부에서 말을 주고받는 커뮤니케이션으로 간주된다. 이즈쓰의 의미 분절 이론(랑)이 부족한 것은 이 커뮤니케이션(파롤)의 관점이다.


다음은 A 표층 의식과 심층 의식의 구별 및 후자의 중층 구조이다. 단어 = 존재를 비추는 표층 의식을 수직 방향으로 내려가면 그 앞에 나타나는 것이 심층 의식이다. 이 심층 의식을 구성하는 것은 
  • 시적 신화적 상상의 세계 M, 
  • 언어 아라야식 B, 
  • 무의식 C, 그리고 
  • 의식의 제로 포인트의 
    • 4층이다. 
그러나 왜 이 4층인가. 그리고 각각의 정체는 무엇인가.

동양철학의 사고 타입 중 절대무의 사고나 의 사고, 정명의 사고의 경우, 무의식과 의식의 제로 포인트의 2층만으로 끝난다. 우화의 사고가 되면 더욱 M이 더해진다. 
4개의 층 모두를 필요로 하는 것은 원형 생각만이다. 
즉, 다채로운 원형 사고를 포괄하기 위해 사층이 설정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물이 원형 사고가 중요한 위치에 있음을 의미합니다.

심층 의식의 처음에 나타나는 것이 시적 신화적 상상의 세계 M이다.

표층 의식의 차원에는 현실의 분절에 맞는 이미지군이 있지만, 
심층 의식의 차원에는 현실 이미지를 데포르메한 비현실 이미지가 충만하다
이미지는 의식 내부의 단순한 형태 (형상)가 아니라 시간의 변화를 관통하여 지속되는 형태의 동일한 패턴 (형)이다. 
그러므로, 현실 이미지와 비현실 이미지의 차이패턴=형태의 디포르메 정도의 차이가 된다.
환경으로부터 오는 외부 자극을 기연으로 표층 의식의 내부에 패턴=형이 발동되어 지각 경험을 낳는다. 
그러나 외부 자극이 차단되면 심층 의식의 내부에서 패턴=형이 쓸어넘기고 다의적인 상징(심볼)을 산출해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것이 몽상이나 환상이다.

둘째는 「언어 아라야식」B이다.

이것은 패턴 = 유형을 기록하고 유지하는 장소입니다. 
환경과의 작용 속에서 형성되고 심층 의식의 차원에서 디포르메된 패턴=형은 뇌세포끼리의 동형 패턴으로서 물질화되어 축적된다. 
그것이 기억의 신체적 토대이다. 이 기억에 지탱할 수 없다면 의식은 잘 작동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나의 노성학 연구소를 처음 방문했다고 하자. 쿄로쿄로와 곳곳을 돌아다닌 만큼 세세한 부분을 거의 기억할 수 없다. 여러 번 방문을 거듭하면서 마침내 세부 사항이 보인다. 의식의 일을 기억이 배후에서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기억된 패턴=형에는 문화 유래의 것도 있고, 생물 유래의 것도 있다. 
그럼, 이즈쓰가 말하는 「원형」은 어디에서 유래하는 것일까. 
예를 들어, 음양이원의 조합으로부터 전개하는 팔경십육경은 훌륭한 체계이다. 
또한 아자에서 분기한 알파벳과 카바라의 십개의 '세피로트'도 마찬가지다. 
이때 일하고 있는 것은 체계를 만들려고 하는 도식적 사고이다. 
이것은 다양한 패턴 = 금형을 조작하여 원래 금형을 만듭니다. 
원형의 사고란 체계를 지향하는 도식적 사고이며, 널리 말하면 형이상학적 사고를 말한다.

형이상학적 사고란 무엇인가. 기호를 조작하는 추리의 커뮤니케이션이 자신에게 되돌아가서 보내면, 거기에 무한히 자기 언급을 반복하는 반성의 커뮤니케이션이 일어난다. 
그 고차화한 것이 형이상학적 사고이다. 
의식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면, 그것은 극한까지 갈라진 의식을 의식하는 메타 의식이다. 
이것이 심층 의식의 차원에 있는 상상 세계, 언어 아라야식, 심지어 다음에 검토할 무의식과 의식의 제로 포인트를 능숙하게 정사한다. 
그러나 형이상학적 사고는 우물통의 의식 구조의 어느 곳에도 위치하지 않았다.

세 번째는 무의식 C의 층이다.

무의식이란 무엇인가. 이즈쓰 도시히코는 그것을 의식=말이 생기지 않은 차원
혹은 의식=말이 일어나지 않는 차원이라고 밖에 설명하고 있지 않다. 
거기서 나 나름대로, 무의식이란 본능(욕동)이라는 패턴=형에 의해 통어된 정동의 커뮤니케이션의 차원이라고 생각해 본다. 
본능에 의해 통고된 정동의 차원은 의식 전체에 에너지와 정보(형)를 주입한다. 
다만, 인간의 경우 본능의 차원이 독립적으로 일하는 것은 드물며, 대부분은 거기에 의식=말이 겹친다. 
로렌츠가 말하는 것처럼 문화적인 의식 행동본능적 행동을 수식한 것이다.

넷째는 「의식의 제로 포인트」이다.

이것에 대해서도 이즈쓰 도시히코의 설명은 부족하다. 
내 해석을 추진한다면 본능에 의해 통어된 정동 커뮤니케이션의 바닥은 신체이며, 
제로포인트는 신체의 중심(자기)이 된다. 
그것은 다마시오가 추측하는 것과 같이 신체를 구성하는 세포끼리의 다중 네트워크를 통합하는 고차원의 중심(자기)일 것이다. 이 신체의 중심(자기)은 말을 발하지 않는다.

심층 의식의 다중 구조는 수행의 몸에서 실행되고 체득된다
따라서 심층 의식은 신체 경험이다. 
갈라진 메타의식인 형이상학적 사고가 심층의식=신체경험을 정사하고 
그 내용을 말로 표현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검토하는 것은, 제3의 기둥, 동양 철학을 분류하기 위한 열쇠가 되는 「보편적 본질」이다. 
이즈쓰는 다양한 본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중요한 본질의 본질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본질의 원은 패턴 = 형이고 패턴 = 형의 원은 물건의 형태이다. 
물체의 형태가 표층 의식에 비추어지는 것은, 신체에 기초한 지각이 복잡한 자극을 축감하고, 이 축감된 형태를 의식=말이 더욱 단순화하는 것에 의한 것이다. 
축소와 단순화의 변환에 의해 의식된 형태를 직관하면, 변하지 않는 패턴=형이 얻어진다. 
물건의 형태는 패턴 = 유형의 표현이고 패턴 = 유형은 본질입니다. 
보편적 본질, 개별적 본질, 종적 본질, 개념적 본질의 구별은 그 위의 이야기다.

표층의식에 비추어지는 패턴=형은 변환에 의해 축감·단순화되고 있다. 
이 견지에 서면, 의식=말의 세계에 있어서의 패턴=형의 측으로부터, 
단어 이전의 코토바의 세계의 사물에 대해서도 패턴=형이 있는 것을 상정할 수 있다. 
이것을 반대측에서 보면, 코토바의 세계의 패턴=형이 변환되어 의식=말의 세계의 패턴=형이 생기고 있다. 
이 변환의 논리에 의해서 처음으로, 
의식=말의 세계와 코토바의 세계가 패턴=형에 있어서 대응지어지고, 
의식=말의 외부에 있는 코토바=구별의 세계에 대해서 말로 말하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

의식=말의 세계 외부에는 말 이전의 코토바, 따라서 의식의 커뮤니케이션 이외의 커뮤니케이션의 세계가 퍼진다. 
이를 탐색하는 방향은 수평 수직의 두 가지다. 
수평 방향에는 인간의 말과 나란히 생물의 소리나 물체가 일으키는 음향이 있다. 
수직 방향으로는 인간의 의식의 기반인 신체 내부에서 세포끼리 상호 작용하는 생체분자의 진동음이 있다. 
그리고 두 방향이 겹치는 곳에, 물건끼리가 <물건=코토바>를 교환하는 커뮤니케이션의 세계가 나타난다(계속한다).

(편집:마에자와 유키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