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지구살림의 영성학 가타오카 류(片岡 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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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례
Ⅰ. 들어가며
Ⅱ. 지구재난학
Ⅲ. 지구살림의 영성학
Ⅳ. 맺으며
Ⅰ. 들어가며
2021년 2월 13일, 일본 후쿠시마현 해역 지진에 의해 연구실은 무너져 내린 책들의 바다가 되어 버렸다. 지진으로부터 한 달이 지난 지금, 어떻게든 정돈이 되긴 했으나 다른 서재 한 곳은 아직 손도 대지 못하고 있다. 복구작업이 좀처럼 진행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나 자신의 마음 속에 빨리 복구해서 원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과, 한편에서 ‘원상복귀’함으로써 문제를 얼 버무리고 싶지 않다는 모순된 생각이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마음의 모순은 ‘재해유구(災害遺構)’를 남길 것이냐 남기지 말아야 할 것이냐 하는 문제와 도 연관이 된다. 또한 원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의 핵심에는 소위 ‘재해 유토피
아’(Rebecca Solnit, A Paradise Built in Hell: The Extraordinary Communities That Arise in Disaste r , 2009)적 기억이 가셔져 가는 것에 대한 저항심이 저면에 있는 것 같다.
나는 10년 전 동일본대지진을 경험했다. 경험이라 해도 내가 받은 피해는 이번 지진에 의한 연 구실 피해와 별반 다르지 않는 정도였고, 쓰나미나 방사능 피해를 직접 받은 것은 아니다. 나는 당 시 연구실 정리를 마치고 쓰나미가 덮친 지역의 대피소로 봉사활동을 갔다. 다음 인용문은 그 때
* 도호쿠대학
있었던 일을 기록한 졸문의 일부분이다.
‘내 솔직히 터놓을까?’라며 어느 날 밤 대피소 흡연장소에서 누가 말을 걸어왔다. ‘다시 한 번 쓰나미가 와서 모두들 우리랑 같은 처지에 놓여봤으면 좋겠어. 봉사활동 와준 사람들에겐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어. 하지만 아무한테도 못할 얘기지만 이게 내 솔직한 마음이야.’ 빈정댄 것도, 일시적 감정으로 한 말도 아니었다는 것은 금방 알 수 있었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서로 통하고 싶다. 이 를 절실히 바랬기에 터져 나온 절망 속의 울부짖음이었다.1)
이상의 내 두 번의 경험, 특히 ‘원상복귀’함으로써 얼버무리고 싶지 않다는 내 마음과 ‘다시
한 번 쓰나미가 와서 모두들 우리랑 같은 처지에 놓여봤으면 좋겠어’라고 하는 피난소 사람의 말 의 의미에 대한 성찰을 지구재난학 구상에 연결 지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Ⅱ. 지구재난학
지구재난학에서는 ‘재난’을 지구라는 하나의 생명에 생긴 ‘상처’로 삼는다.
종래의 ‘재난관’은 자연재난이든 인위재난이든 피해자는 인간중심이다. 그러나 지구재난학의 경우, 가해자가 자연 (우주도)인 경우도 인간인 경우도 있듯이 피해자에 인간뿐만이 아니라 자연도
(우주도) 포함시킨다. 여기서 ‘우주’까지 포함시키는 이유는 인류가 탄생하기 전(K/Pg경계), 소행성 충돌에 의해
생긴 환경변동은 현재 지구환경문제라 불리는 변동과 거의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2)
‘상처’(오염)는 (인위적・자연적) 지구변동에 의해 생긴다.
‘지구변동’이라는 개념은 다음 인용문에 의거하고 있다.
인류의 활동이 초래하는 지구표면상의 변동을 인위적 지구변동(anthropogenic global change)이라 한다. 현재 그리고 예상되는 미래의 인위적 지구변동 중 인류에게 불이익을 초래하리라 여겨지는 변동을 지구환경문제라고 한다. [・・・] ‘환경’에는 인간을 둘러싼 비인간이라는 의미가 있으며, 거기에는 인간주체이고, 인류가 취할 대응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학문으로서 생 각할 때는 대상을 객체화하고 또한 인간의 행동도 포함시켜 지구변동(global change)이라 하는 것이 적절하다.3)
1) 片岡 龍, 「悲しみを抱えて生きる」, 世界829号, 2012. 4. 1. 2) 松井孝典, 我関わる、ゆえに我あり, 集英社新書, 2012, p.194 참고.
3) 市川惇信, 「20世紀科学技術文明の意味」, 岩波講座 地球環境学1: 現代科学技術と地球環境学, 岩波書店,
1998, pp.3-4.
지구살림의 영성학 地球を活かす霊性学
‘환경’이라는 말이 ‘인간을 둘러싼 비인간’이라는 의미를 갖는 것에 반해 ‘지구변동’은 인간의 행위도 포함한 전체적 개념이다. 지구변동에는 인위적・자연적 이 두 변동이 모두 포함된
다. 또한 ‘지구환경문제’가 ‘인위적 지구변동 중 인류에게 불이익을 초래’할 변동을 의미하는 데 반해 지구재난학에서는 인위적 지구변동뿐만 아니라 자연적 지구변동도 포함하고 있고, 또한 상술하였듯 변동의 영향을 받는 대상(피해자)에 있어서도 인류뿐만이 아니라 자연을 포함하고 있 다.
이하 인용문을 참고하면 ‘상처’는 ‘오염’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본질은 ‘변화’ (항상성이 깨지는 것이)다.
지구 시스템의 구성요소는 시간과 함께 변화해왔습니다. [・・・]구성요소가 바뀔 때마다 지구 시스 템의 상태는 변합니다. 그 때 일어나는 것이 「오염」입니다. 예를 들어 대륙이 탄생하면 비가 내려 침식된 대륙물질이 바다로 유입해 바다의 상태는 변합니다. 이것이 대륙물질에 의한 바다의 ‘오 염’입니다. 구체적으로는 바다의 염분이야말로 오염물질입니다. 이렇듯 시스템의 상태변화에 따라 다른 구성요소의 내용물이 변한다는 것. 이것이 우리가 ‘오염’이라 부르는 것의 본질입니다. 시스템론적으로 지구의 역사를 바라보면 대륙의 탄생과 더불어 바다는 대륙물질에 의해 오염되었 고, 또한 생물권의 탄생과 더불어 대기나 바다나 대륙은 산소에 의해 오염되어 온 셈입니다. 실은 이 ‘오염’이야말로 지구를 생명의 행성으로서 키워내 온 ‘기본과정(elementary process)’이기 도 하다는 것입니다.4)
여기서 일컬어지듯이 ‘상처’(오염)란 꼭 생명을 훼손시키는 부정적인 역할만 있는 것은 아니
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서는 차후 과제로 하고자 한다.
지구재난학에서 자연과 인간을 둘로 나누지(二別)5) 않는다는 것은 지구를 하나의 생명(하나로 이 어진 생명)으로 여기는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것인데, 동시에 가해와 피해도 또한 둘로 나눠서 보 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다만 이는 가해와 피해의 사실을 무시(망각)한다는 뜻이 아니다. 따라서 피 해자뿐만 아니라 가해자도 (오히려 가해자야말로) 마주봐야 한다는 의미로 ‘상처’라 한 것이다.
Ⅲ. 지구살림의 영성학
지구재난학 다시 말해 지구라는 하나의 생명에 새겨진 ‘상처’에 관한 학문. 이를 반대로 뒤집 은 것이 ‘지구영성학’ 다시말해 상처 입은 지구라는 생명의 고리를 다시 살리는(치유하는) 영성
4) 松井孝典, 我関わる、ゆえに我あり, 集英社新書, 2012, p.147.
5) 안도 쇼에키(安藤昌益, 1703‐1762)가 존재의 관계성을 의미하는 ‘호성(互性)’이라는 개념으로 대치시킨 개념. 가타오카 류, 「日本の「周辺」から見た東アジアの平和と宗教―安藤昌益の平和論を中心に―」, 土田健次郎教授退職記念論集 朱子学とその展開, 汲古書院, 2020.2.3.) 참조.
학이다.
이에 관해 이번에는 ‘미나마타병(水俣病)’의 예를 통해 ‘지구영성학’의 입문을 들여다 보는
데 그치고자 한다.
다음 인용문은 일본 구마모토현 미나마타시에서 개최된 ‘미나마타병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임 (水俣病を語る会)’에서 사사키 키요토(佐々木 清登)씨 (당시 미나마타병환자연합회장) 가 미나마타 시민에게 말한 내용이다.
난 120일 정도 아버지 머리맡에서 하루도 떠나지 않고 같은 병실에 머물며 간병해온 그 100일을 넘 는 나날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실 겁니다. 그 고통이랄까요… 뭔가 비참한… 떠올리기만 해도 정말… 이제… 여러분….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미나마타 시민들 앞에서는 사실 말하고 싶지 는 않습니다만은 이것만은 여러분에게 오늘 여기에 내가 나온 이상, 한 마디는 여러분에게 하고자 하는 말을 한다면 왜 미나마타 시민 여러분이 자기는 가해자, 환자는 피해자라는 식으로 차별… 이 랄까요.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은 도저히 제게는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미나마타 시민 여러분도 피 해자 아닙니까. 우리들만이 피해자는 아닐껍니다. 일반 소비자 분들도 피해자잖아요. 요는 먹으면 안되는 생선을 먹고 그 때문에 미나마타병 병세가 나타난다. 이걸 알고 먹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 까. 시민 여러분도 그걸 먹고 계시는데 말입니다. 모두 그런 피해자란 말입니다. 그렇게 이 미나마 타병 문제에 모두가 같이 착수를 했다면 지금처럼 이 환자단체랑 하나가 되라는 둥, 여러 시민과 환자 사이의 벽을 어떻게든 풀어낼 수 없을까 라는 둥 하는 얘기를 여러 운동단체가 각각의 입장에 서 이야기하고 있지만은 사태를 이렇게 만든 것은 미나마타 시민 여러분도 그 책임이 있을 것이라 고 저는 생각합니다.6)
‘미나마타 시민 여러분이 자기는 가해자, 환자는 피해자라는 식으로 차별’하는 것에 대해 사 사키씨 본인이 납득하기 어렵다 모두 피해자이지 않느냐고 한 것은 이 보고서 서두에서 소개했던 ‘다시 한 번 쓰나미가 와서 모두들 우리랑 같은 처지에 놓여봤으면 좋겠어’라는 말과 통하는 부 분이 있다. 가해자로서 또는 피해를 받지 않은 자로서 높은 곳에서 또는 강 건너편에서 동정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 위치까지 내려와서, 강을 넘어와서 마주해줬으면 하는 영혼 깊은 곳에서의 호 소였던 것이다.
또 어부 오가타 마사토(緒方 正人)씨는 인터뷰7)에서 미나마타병을 일으킨 회사에 대한 어린시절
의 마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나이도 어리면서도 세상 참 이따위인가 싶었습니다. 자기 마음 다스릴 줄 몰랐죠. 누가 아버지에게 독을 먹였냐고 말입니다. ‘칫소 Chisso8)가 어떤 놈들인가’하는 생각이 계속 머리에 맴돌았습니
다. 하루빨리 어른이 되어서 칫소에다가 폭탄을 던져 날려버리고 싶다고 생각했었죠. 원수를 갚지 않는 한 한이 풀리지 않는다고, 복수를 하는 것이 아버지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했었던 겁니다.
6) 映畫 <みなまた日記 ― 甦える魂を訪ねて>, 監督:土本典昭, 2004.
7) <【특집】미나마타로부터 생각해 보다(1)어부・오가타 마사토(緒方正人)씨>, 기사등록일:2020년 06월 2
3일)https://www.nhk.or.jp/heart-net/article/371/
8) 신일본 질소 주식회사(미나마나시에 화학공장을 처음 설립한 회사)
지구살림의 영성학 地球を活かす霊性学
그러나 피해자 단체와 칫소, 국가 사이의 교섭을 거듭하면서 오가타씨가 느낀 것은 ‘가해자를
추궁한다고 하는 발상으로 임했지만, 받아주지 않았다’ 다시말해 가해자의 책임이 미나마타사건 을 인정(認定)하거나 보상하는 것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로 ‘바꿔치기’ 되고 ‘얼버무려’진 다는 것이었다.
그 결과 오가타씨는 31세 떄 미나마타병 환자운동에서 벗어나, 어부로서의 자신과 마주한다. 그 렇게 자신을 되돌아보던 중 자신도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고 살아간다는 점에서 도둑이자 죄가 깊 은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렇게 자신도 죄인이라는 깨달음을 가지고 칫소 사원들과 마주하 였고, 비로소 칫소 사원들도 어엿한 사람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오가타씨는 그렇게 ‘나 자신도 용서받을 수 있었다’는 말을 남기고 있다 미나마타시가 있는 구마모토현은 오염된 물고기를 채운 2500통 이상의 드럼통으로 바다를 메워
올려, 그곳에 인공녹지(「생태공원 미나마타(エコパーク水俣)」)를 만듦으로써 오염을 막았다. 그러나 이 미나마타병 문제는 이것으로 끝이 아니라고 오가타씨는 말하고 있다.
정치나 권력에 대해 “지우개로 지우듯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아무리 미 나마타병 사건을 종식시키려고 해도 그렇게는 되지 않는다고요. 저는 독을 꺼려하고 기피하는 것 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게끔 뚜껑을 덮는 식으로는 안된다는 겁 니다. 죄를 범한 측인 인간의 깨달음이야말로 중요한 것입니다.
지구재난학(지구살림의 영성학)에서 ‘재해’를 피해자와 가해자가 함께 마주해야 할 ‘상처’로 삼을 때, 가장 ‘상처’와 마주하기 어려운 것이 실은 피해자보다 가해자 쪽이다. 피해자가 가해자 의 죄를 용서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것보다 더 어려운 것이 ‘상처’를 없었던 일로 해 버리는(얼버무리는) 것이 아니라, 생명이 ‘상처’입혀진 사실을 가해자가 직시하고, 직시할 수 있 을만큼의 ‘영성’을 깨닫는 것이다.
미나마타병에 의해 생명이 ‘상처’입혀진 것은 인간뿐만이 아니다. 오가타씨 등 미나마타병 환
자들은 희생된 생물들의 혼을 모시기 위한 석불을 만들고는 바다가 보이는 곳에 25년 이상 계속 세우고 있다.
‘미나타마병’이라는 말 속에 근대문명사회의 병든 모습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환경문제는 극 히 보편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바다, 산, 자연계의 일을 지구적인 규모로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 고 있죠. 이 견해는 옳을 것입니다. 다만, 저는 반대로 자연계가 우리들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고 생 각해요. 이대로는 인간의 앞날은 어떻게 되겠느냐고요. “언제 깨달을래 너희들은”이라고 꾸중을 듣고 있는 겁니다. 실은 세상 사람들 모두가 생각하는 것이랑은 반대로 우리쪽이 걱정을 받고 있을 거라 봅니다, 부디 깨달아 달라는 바람으로요.
재해를 일으키는 것이 자연이기도 인간이기도 한 것과 같이, 지구영성학에 있어서도 영성을 발
휘하는 것은 인간이기도 자연이기도 하고(지구), 그리고 또 ‘신’(우주)이기도 하다. 아니 애초에 영성이란 이들 사이에 작용하는 것이리라.
Ⅳ. 맺으며
마지막으로 오키나와의 음악가 키나 쇼키치(喜納昌吉)씨의 말을 소개하고 본 보고의 맺음을 대신
하고자 한다.
우리들 모두가 하나의 생명으로서 만사를 생각할 때 ―‘가이아’란 그런 하나의 개념이죠― 지구 라는 것도 하나의 생명이라 한다면, 상처 입은 것도 상처 입힌 것도 모두 하나라는 거니까, 상처를 입힌 자는 상처를 입은 자를 반영하고 있고, 상처를 입은 자는 입힌 자를 반영합니다. 하나의 생명 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보면 그렇게 되겠죠. [・・・] 신기하게도 상처 뒤에는 생명이 잠들어 있는 부분이 있어요. 그리고 그 상처가 생명의 장벽이 되어 버리고 있는 겁니다. [・・・] 상처라는 것은 자신이 생명의 근원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과 우리들 사이가 가로막혀 있 는 것을 상처라고 하는 거죠.9)
번역 : 최다울(崔多蔚) 도호쿠대학대학원
9) 鎌田東二⋅喜納昌吉, 霊性のネットワーク, 真弓社, 1999, p.112, p.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