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05

Vladimir Tikhonov [모스크바, 북경, 평양의 계몽 군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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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ladimir Tikhonov

7 h ·
[모스크바, 북경, 평양의 계몽 군주들?] 



노무현 재단의 유시민 이사장이 현재 북한의 통치자를 '계몽 군주'로 성격 규정하여 적지 않은 물의 (?)를 일으킨 모양인데, 사실 이 말을 현실 정치적 맥락이라기보다는 역사학적 맥락에서 한 번 반추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계몽 군주'는 비유입니다. 아무리 세습 수령제라 하더라도 당-국가 시스템은 그 인민 동원 능력이나 관료 등용 방식 등의 차원에서는 전통 시대 군주국들과 다르지요. 그리고 계몽 군주의 전성기인 18세기가 산업 혁명 이전 매뉴팩쳐 시대라면 20세기 당-국가들은 석유-전기 시대에 접어들어 공업화를 주도한 것입니다. 토대가 다른 만큼 그 상부 구조도 다른 것이니, '단순 비교'라기보다는 18세기 계몽 군주 국가들의 역사적 '궤도'와 20세기 당-국가 시스템의 발생과 효과들을 한 번 그 유사성의 차원에서 비교, 고찰하는 게 유의미할 듯합니다.

일단 계몽 군주제와 당-국가의 성립 '지대'는 나름의 유사성을 보여줍니다. 계몽 군주 국가들은 어디이었는가요? 바로 구주의 후진국, 후발 주자들이었습니다. 18세기의 구주를 보면 두 패권 국가인 화란과 영국은 이미 초보적인 입헌군주/의회 정치로 진입했습니다. 즉, 일부 부르주아들에게까지 정치 참여를 허한 것이죠. 영국과 경쟁하다 패한 불란서는 계몽 군주 정치도 부르주아 개혁도 완강히 거부, 절대 군주제로 버티다가 1789년부터 혁명으로 벼락을 맞은 거고, 스웨덴과 오스트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프로이센 등은 1760년대부터 계몽 군주제를 도입해 간신히 혁명을 '면한' 것입니다. 혁명을 면한 동시에는, 패권 국가인 영국, 화란국 등과 나름 경쟁하면서 위로부터, (부르주아들의 자발적 투자가 아닌) 국가 주도로 상/산업 진흥을 시도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후발 주자들의 패권 국가들과의 경쟁의 방식이었죠. 그러면 당-국가 체제를 갖춘 러시아/쏘련이나 중국, 조선은 무엇인가요? 마찬가지로 '정통적' 방식으로 근대 공업화를 도저히 성취할 수 없는 후발 주자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 당-국가에 의한 내자 동원 체제는 패권 국가 (구미권, 일본)와의 경쟁에서 적어도 완패를 피할 수 있는 사실상의 '마지막 기회'이었죠.

그러면 후발 주자들이 패권 국가들을 따라잡으려는 '방식'은 무엇인가요? 세상은 18세기나 20세기나 그런 의미에서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패권 국가와 견줄 만한 돈과 기술이 없으면...국가적 중앙 집권화와 조직, 인적 동원, 국가 강제력 사용으로 대체할 수밖에 없습니다. 계몽 군주들은 대개 중상주의와 보호주의 신봉자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높은 관세 장벽으로 유치 사업을 보호하고, 한 발 더 나아가 아예 국가가 공장들을 직접 세우거나 공장주들에게 보조금을 주고 되도록이면 수출액이 수입액보다 많이 나오게 하고 무역 흑자로 국가가 군비를 감당할 수 있도록 노력한 것입니다. 수출을 늘리고 수입을 줄여야 하니 수입 대체를 적극 추진하기도 했죠. 이 모든 정책들이 다 상당한 비용이 드니까 보통 농민에 대한 세금을 올리곤 했습니다. 예컨대 오스트리아의 요제프 2세 (모차르트의 후원자이기도 한 가장 대표적인 계몽 군주)가 농노제 폐지한 걸로 유명한데, 그 속뜻도 바로 더 이상 주인들에게 신공을 납부하지 않아도 되는 농민들에게 금전으로 보다 많은 세금을 거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쏘련, 중국, 조선의 공업화 전략은 그 본질상 뭐가 그리 달랐을까요? 마찬가지로, '집단화'를 당한 농촌으로부터 그 잉여를 빼내서 국가가 운영하는 공업에 투자를 한 것입니다. 물론 계몽 군주 시대에는 국유 공업보다 국가가 보호, 지휘하고 개인 자본이 소유, 운영하는 공업은 더 흔했죠. 그런데 러시아만 해도 우랄 산맥 지역의 상당수 대규모 금속 공장들은 18세기에 국유 공장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국영 공장이라는 걸, 스딸린이 발명한 게 아니고 그 전의 후발 주자들의 추격 전략에서 배운 거죠.

계몽 군주들의 문화 전략은 무엇이었는가요? 일단 선진 지역 (불란서 등)을 모방해서 화려한 '고급 문화'를 수입하고 열심히 보급하려 한 것이죠. 스웨덴의 구스타브 3세가 바로 18세기 말에 스웨덴의 국립 오페라와 발레, 그리고 스웨덴의 학술원을 만든 게 아닙니까? 노벨상을 주는, 바로 그 스웨덴 학술원을 계몽 군주가 설립한 거죠. 린네이나 로모노소브 같은 스웨덴, 러시아 선구적 과학자들이 계몽 군주 후원으로 연구할 수 있게 되고, 불란서의 라부아제 등 선진 지역의 동료들과 경쟁할 수 있었던 것이죠. '민'들을 위해서는 일단 보통 교육이 보급되고요. 보통 문학이나 음악 문제에 있어서는 최고의 검열관이자 스펀서는 바로 계몽 군주 자신이었습니다.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이나 러시아의 에카테리나 여제는 아예 스스로 작가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선진 문명 언어'인 불어를 선호했죠). 그러면 미국의 핵 물리학자들과 경쟁했던 쿠르자토브를 키운 스딸린, 도상록 (都相祿) 선생의 핵 물리 연구를 전폭적으로 지원한 김일성 등은 과연 어떤 역사적 전통에 속하는가요? 문자부터 고급 문화까지의 '보급'은 바로 당-국가들의 주된 사업 중의 하나이었죠. 스딸린이 쏘련에서 발표되는 주요 문학 작품들을 전부 다 읽어 개별 작가들에 대한 국가의 정책들을 스스로 지휘했습니다. 예컨대 불가코브를 '계급론적' 얼치기 비평가들로부터 지켜내기도 하고, 자신을 시로 비판한 만델슈탐의 시적 재능이 어느 정도인지를, 바스테르나크에게 전화해서 '전문가 자문'을 구하기도 하고...프리드리히 대왕이나 요제프 2세와 거의 엇비슷한 행동이죠.

계몽 군주들의 모또는 '모든 것은 민을 위해서지만, 민에 의해서는 아무엇도 이루어질 게 없다" (요제프 2세)이었습니다. 당-국가의 '以民爲天'과 거의 같은 정신이죠. 민을 하늘 삼아 민을 위해 당이 사업하지만, 당의 '령도' 없이 민이 감히 혼자 움직이면 안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당'을 대신해서 '주상과 유사 백관'을 넣어면 과연 어떻게 될까요? 혁명들의 사실상의 패배와 보수화로 인해서 생겨나는 당-국가들, 그리고 그들의 '적색 개발주의'적 정책들은 당연히 맑스의 사회주의와 혼동해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그게 맑스의 이상이 실현된 게 아니라고 해서 당-국가와 '적색 개발주의'의 역사적 의미를 또 과소 평가해서는 안되죠. '군주'긴 하지만, 좌우간 '계몽'된 것도 사실입니다. 당-국가들이 아니었다면 우리가 21세기 초반에 목격하는 세계 체제의 (준)주변부의 상대적 '부상'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2세기 이상, 산업 혁명과 아편 전쟁 시기부터 이어져 온 구미권의 패권을, 주변부의 당-국가 체제들이 그래도 - 엄청난 대가를 치르면서 - 상대화시킨 것이죠. 그러니 그 한계와 함께 그 긍정적 의미도 균형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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