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허스님과 춘원 이광수 8촌지간 어릴 때부터 스님은 춘원의 ‘멘토’ - 불교신문
운허스님과 춘원 이광수 8촌지간 어릴 때부터 스님은 춘원의 ‘멘토’
하정은 기자
승인 2014.09.01
문학 속 불교이야기 (16) 이광수와 봉선사
남양주 봉선사에 가면 역대 고승들의 부도탑 사이에 춘원 이광수(1892~?)의 넋을 기리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동갑내기 8촌동생 운허스님(1892~1980)과의 인연 때문이다. 운허스님의 속가이름은 이학수.
독립운동과 역경사업 등을 통해 근현대 한국불교사에 큰 족적을 남긴 운허스님은 해방이 되자마자 1946년 광동중학교를 설립한다. 이 때 친일변절자, 반민족행위자로 낙인 찍혀 갈곳없이 헤매던 8촌형님 이광수를 운허스님은 봉선사 다경향실이라는 방에 들여 집필활동을 이어가도록 도왔다.
당시 춘원은 봉선사에 머물면서 광동중학교에 잠시 교편을 잡고 영어와 작문을 가르치기도 했다. 또한 ‘운악산 구름속이 우리들 배우는 집’으로 시작되는 광동중학교 교가 역시 춘원이 작사했다. 현제명이 작곡한 이 교가는 지금도 광동중 교가다.
남양주 봉선사 입구에 세워진 춘원 이광수 기념비. 불교신문자료사진
운허스님은 정신적인 혼란에 휩싸였을 춘원에게 마음을 쉴 수 있는 안식처를 제공한 셈이다. 집안이 가난했던 춘원은 어릴 때도 운허스님 집에 얹혀 산적이 있어 두 사람의 관계는 친형제처럼 각별하다.
춘원이 지은 기행수필 <금강산유기>에는 1922년 봄과 여름에 걸쳐 춘원이 서울 청량리에서 출발하여 금강산 곳곳을 두루 다녀오기까지 여정과 수려한 풍경, 감회 등이 상세하게 실려 있다. 금강산 답사길에 만난 한 노스님의 소개로 <법화경>에 심취했다는 내용도 있다.
춘원은 <법화경>을 공부하고 운허스님과 맺은 불연으로 <원효대사> <꿈>과 같은 소설을 집필했고 불교문학사에 큰 획을 그었다. 고려대장경 역경사업에도 남다른 관심을 보일 정도로 춘원의 말년은 불교와 벗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춘원 이광수와 운허스님을 주제로 논문을 쓴 신용철 경희대 교수에 따르면 춘원의 생애에서 가족을 제외하면 어릴 때부터 1950년 납북될 때까지 서로 가장 많이 접촉한 사람 역시 운허스님이다.
신 교수는 “춘원과 운허스님, 두 인물이 가는 길은 달랐어도 서로를 잘 이해하고 존경했으며 일생동안 돕고 의지하는 친척이자 친구였다”며 “이들의 발자취에서 일제 식민시대를 살았던 당시 지식인들의 고뇌와 갈등을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근대문학의 선구자였고, 문학계에선 ‘천재’로 불리는 춘원이 자신의 친일행적을 후회하고 참회하는 심정으로 불심에 더욱 귀의했으리라 보인다.
[불교신문3037호/2014년8월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