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부터 장일순까지 … “동아시아 지성사의 맥락 강조했다”
최익현 기자
승인 2015.10.13
『한국철학사』 출간한 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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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번역된 철학 착종된 근대』(전호근·김시천 지음, 책세상, 2010)를 내놓았던 고전학자 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다시 문제작 하나를 내놨다. 그간 여러 책을 내놓긴 했지만, 이번 『한국철학사』라는 굵직한, 문제적인 勞作은 단연 눈길을 끈다.
물론 ‘한국철학사’에 대한 도전은 진작부터 있어왔다. 한국철학사연구회가 쓴 『한국철학사상사』(한울, 1997),한국철학회가 엮은 『한국철학사』(3권, 동명사, 1999), 최영진의 『한국철학사: 16개의 주제로 읽는 한국철학』(새문사, 2009), 이종우의 『한국철학사: 외래사상 대 토착사상의 갈등과 유형』(이담북스, 2011), 이규성의 『한국현대철학사론: 세계상실과 자유의 이념』(이화여대출판부, 2012) 등이 있다. 이을호 선생의 전서 시리즈로 나온 『한국철학사 총설』(다산학연구원 엮음, 한국학술정보, 2015)도 있지만, 이건 성격이 조금 다르다.
이렇게 다양한 선행 노작들이 있는 데도 전 교수의 책에 주목하는 이유는 ‘동아시아 지성사적 맥락’을 그가 강조한 탓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동아시아 지성사의 흐름을 도외시한 철학사 기술은 한국철학의 범주를 너무 좁히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적절한 기술 방식이 아니라고 본다.” 그렇다고 그가 한국철학의 고유성이나 독자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사상의 접점을 좀 더 넓게 보려고 한다. 200자 원고지 3천600매로 원효에서 장일순까지를 ‘한국철학사’라는 흐름에 담아낸 그를 만났다.
△ 질문이 포괄적인데, 『한국철학사』는 어떤 책인가.
“서문에서 밝혔듯 나는 한국철학이 고립된 지역의 일시적 산물이 아니라 수천 년 동안 장구한 사유를 이어 온 동아시아 전통 지식인들의 오래된 고민이 반영된 결과라고 보았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동아시아 지성사의 맥락이라는 큰 줄기를 염두에 두고 철학자들의 삶이나 사상 뿐 아니라 그런 사유가 가능하게 된 기원을 충실히 밝힘으로써 한국적 사유를 폭을 넓히고자 했다. 그 때문에 유학은 물론 불교와 도교사상, 동학, 마르크스주의 철학, 기독교 사상에 이르는 폭넓은 사유를 모두 한국철학이라는 틀 안에 아울렀다.
애초 의도했던 것은 아니지만 탈고하고 나서 정리해본 결과 한국적 사유의 특징은 양극단을 통합하고 상대를 포용하는 방향으로 전개돼 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원효와 의상, 균여와 의천, 지눌, 그리고 최제우, 박종홍, 장일순 등이 그런 사유의 대표자라 할 수 있다. 또 성리학자들의 경우 자기성찰과 실천적 지향이라는 특징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 사실 ‘1천300년 한국 철학사’를 한 흐름으로 쓴다는 건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 기존의 출판성과를 봐도 이를 알 수 있다. 한 개인이 수행하기에는 벅찬 일이다. 왜 ‘한국철학사’를 집필했나.
“한국철학을 전공한 자라면 한국철학사를 기술하는 일은 당연한 소망이자 사명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바람이나 의무감이 곧바로 집필로 연결된 것은 아니다. 나는 시민강좌를 많이 하는 편인데 한국철학은 그다지 인기 있는 주제가 아니었다. 동양철학을 주제로 내걸면 꽤 많은 사람이 오지만 한국철학을 주제로 강좌를 열면 들으러 오는 시민이 거의 없어서 폐강되기 일쑤였다.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2011년에 동대문정보화 도서관의 요청으로 조선철학사라는 제목으로 6회 강좌를 열었는데, 100명 가까운 시민들이 들으러 온 것이다. 그래서 이듬해에 한국철학사라는 제목으로 40회 강좌를 기획해서 1년 내내 강의를 진행했다. 무척 힘들었지만 그 때 마련한 강의록을 토대로 집필에 착수할 수 있었다.
△ 최초 집필을 결심한 때는 언제인가? 자료 수집과 집필에 어려움이 있지 않았나?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공공도서관에서 강의한 다음에 언젠가는 강의록을 책으로 엮어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강의를 모두 들은 출판사 대표가 강의를 녹취한 내용을 풀어서 책으로 내자고 제안해왔다. 그 제안에 따라 집필에 착수한 것은 지난 해 7월부터였다. 원고분량은 200자 원고지 3천600매 가량이다. 그리고 자료 수집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전통시기 철학자들의 원문자료는 한국고전번역원과 국사편찬위원회 등의 원문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하면 충분했다. 또 현대철학자를 기술할 때도 신남철 선집이나 박종홍 전집 등이 이미 선배학자들에 의해서 정리가 잘 돼 있었기 때문에 큰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결코 빛나지 않는 작업을 선각자적 견지에서 미리 준비해준 선배학자들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 기존에 쉽게 만날 수 있는 ‘한국철학사’ 관련 책으로는 한국철학사연구회가 쓴 『한국철학사상사』(한울, 1997), 한국철학회가 엮은 『한국철학사』(3권, 동명사, 1999), 최영진의 『한국철학사: 16개의 주제로 읽는 한국철학』(새문사, 2009), 이종우의 『한국철학사: 외래사상 대 토착사상의 갈등과 유형』(이담북스, 2011), 이규성의 『한국현대철학사론: 세계상실과 자유의 이념』(이화여대출판부, 2012) 등이 있다. 기존의 한국철학사와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가? 예컨대 이종우 역시 한국철학의 “한국철학사도 세계의 철학이 반영돼 나타나고 있다”라고 지적한다.
“지금까지 많은 연구자들이 한국철학의 독자성이나 고유성을 찾는 데 관심을 기울이다보니 상대적으로 동아시아의 지성사적 맥락을 소홀히 한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동아시아 지성사의 흐름을 도외시한 철학사 기술은 한국철학의 범주를 너무 좁히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적절한 기술 방식이 아니라고 본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한국철학에 독자성 고유성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고유성이나 독자성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철학이든 그 사유를 통해 한국인이 당면했던 구체적 현실을 고민했다면 독자성은 바로 거기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
△ ‘한국철학사’라고 하면, 다른 분야가 그러하듯 개념과 범주, 문제의식, 방법론 등을 별도의 장으로 두고 기본방향을 잡는 서술구조를 취할 텐데, 이번 책에는 이와 관련된 독립된 장을 두지 않았다. 조금 불친절한(덜 전문적인) 것 아닌가?
“덜 전문적이라고 한 것은 정확한 지적이다. 그게 이 책의 단점이자 장점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은 학술적인 내용을 기술하고 있지만 전공자들을 위한 논문이 아니라 대중교양서다. 그래서 학술적 측면에서 보면 비어 있는 부분이 많을 것이다. 또 이런 주제는 미리 정해놓고 글을 쓰기보다는 글을 다 쓴 다음에 정리하는 것이 더 좋다고 본다. 적절한 시점에 이와 관련된 주제를 학술지에 발표할 생각이다.”
△ 다소 중복되는 질문일텐데, 원효와 지눌, 정도전, 이황, 조식, 정제두, 홍대용, 정약용 등이야 ‘한국사상사’에 친숙한 이들이라 공감할 수 있지만, 근대 일제강점기 마르크스주의철학자 신남철, 박치우를 복권하고, 종교 사상가로 알려진 유영모, 함석헌을 ‘철학자’ 반열에 올렸다(그렇지만 이들을 ‘철학사’에 호명해낸 것은 선생님이 처음은 아니다). 물론 박종홍도 조명했다. 나아가 처음으로 장일순을 철학자로 호명했다. ‘철학사’라는 통사적 흐름으로 볼 때, 이들을 한 흐름으로 엮을 수 있는 ‘틀’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책에서 비슷한 내용을 다룬 부분이 있다. 예컨대 정몽주 같은 경우에도 철학관련 글을 거의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철학사 기술에서는 다루기 어렵다. 하지만 성리학의 특징은 자기성찰이 철저하고 실천에 무게를 두는 데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정몽주 같은 유학자도 얼마든지 성리학적 가치를 실천한 철학자로 분류할 수 있다. 같은 이유로 신남철, 박치우를 비롯한 마르크스주의자나 유영모, 함석헌, 장일순 등 또한 자신이 읽은 글을 구체적인 현실에서 실천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철학자로 기술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 본문에서 밝혔듯 선생님은 “사적 고찰을 통해 철학의 연대기를 충실하게 구성하는 일보다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철학자들의 사유가 오늘날 우리의 삶과 얼마나 가까운 곳에 있는지 밝힘으로써 오랫동안 우리 스스로에 의해 그리고 서구의 시선에 의해 일방적으로 타자화된 사유를 지금 살아 움직이는 삶의 문법으로 복원하는 데” 집중했다. 이 부분, 설명이 조금 필요할 것 같다. 그리고 이런 의도는 어느 정도 충족했다고 판단하는지?
“현대 한국인의 삶에서 전통시기의 철학자들의 사유를 발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예를 들어 원효의 화쟁 철학을 설명하면서 예로 든 정규직·비정규직의 문제나, 이규보의 사유를 소개하면서 시인 백석의 시를 예로 든 것, 또 박지원의 시를 통해 부자간의 사랑이나 형제애를 이야기한 것은 모두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사례들이다. 이게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지는 독자들의 판단에 따를 뿐이다.
그리고 서구의 일방적 시선에 의해 동아시아의 사유가 타자화됐다고 한 부분에 대해서는 할 말이 참 많지만 짧게 이야기하겠다. 18세기까지 동아시아를 경외했던 유럽인들이 19세기에 접어들면서 갑자기 업신여기기 시작한 것은 제국주의의 등장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은 상식이 아닌가. 급기야 인종주의나 우생학까지 동원하여 동아시아 사회는 멸망할 수밖에 없다는 진단을 내놓고 침략을 합리화 한 것이 타자화의 기원이다. 그런데 현재의 서구사회에서는 그런 관점이 오류였다고 반성하고 있는데, 한국지성계는 아직 기존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묵묵히 한국철학을 연구하는 이들을 위해서라도 기존 프레임을 깨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본다.”
△ 우리가 한국철학사라는 사상의 거대한 산맥과 그 흐름을 이해하는 것은 학문적, 실천적 의미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오늘 우리에게 한국철학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기도 하다. 예컨대 이규성은 ‘세계상실과 자유의 이념’으로 한국철학사의 일단을 조명함으로써, 도래할 한국철학의 가능성을 타진했다. 그렇다면 이번 책을 통해 선생님은 어떤 철학적 지평을 겨냥하려 했는지 궁금하다.
“나는 철학이 삶에 봉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논어』에 “사람이 도를 넓히는 것이지 도가 사람을 넓히는 것이 아니다[人能弘道 非道弘人]”라는 말이 나온다. 나는 이 말이 道가 우선이 아니라 사람이 우선이라는 뜻으로 이해한다. 다시 철학을 전공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 말을 풀이하면 ‘道는 철학이고 사람은 삶’이다. 그렇다면 삶이 철학에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철학이 삶에 봉사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나는 한국철학이 늘 이 긴장을 유지해 왔다고 파악했다. 이 책을 기술하면서 시종일관 구어체, 그것도 높임말을 쓴 까닭은 강의의 결과물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삶에 봉사하는 철학을 염두에 두고 썼기 때문이다.”
△ 그간 선생님은 ‘홀로 또는 함께’ 다양한 글쓰기 작업을 해왔다. 주로 동아시아의 지적 전통을 복원하는 것과 관련된 작업이었다. 유가의 십삼경을 모두 해설하려는 계획도 있는 것으로 안다. 앞으로 어떤 책을 준비하고 있나?
“연구실 한쪽에 왕부지의 대련 중 한 구절인 ‘六經責我開生面’을 졸필로 써서 붙여두었다. 육경이 나에게 새 얼굴을 달라고 한다는 뜻이다. 유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유학의 고전을 모두 해설하는 것이 꿈이다. 지금은 『대학강의』와 『중용강의』를 집필 중인데 한 권은 거의 마무리했기 때문에 올해 안으로 출간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