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6/09

알라딘: 퇴계와 율곡, 생각을 다투다 이광호 (지은이)

알라딘: 퇴계와 율곡, 생각을 다투다


퇴계와 율곡, 생각을 다투다 
이광호 (지은이)홍익2013-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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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es Point : 366

8.7 100자평(0)리뷰(9)

324쪽

책소개
40여 년간 유학의 진리를 연구하고 이를 현대 인문학으로 정립하기 위해 노력해온 저자 이광호 교수가 퇴계와 율곡 두 학자가 서로 존중하되 자신의 신념을 날카롭게 내비치는 왕래편지와 시문을 최초로 한데 모아 편집하고, 현대인이 읽기 쉽게 풀어썼다. 이들의 사상과 교류를 통해 학문적 즐거움은 물론 삶의 지혜와 시대정신을 배울 수 있다.

퇴계와 율곡은 서로 화목하게 지냈으나 애써 같아지려 하지는 않았다. 퇴계는 은거하여 내면을 완성하려 했고, 율곡은 관료로서 나라에 헌신하려 했다. 따라서 퇴계에게 율곡은 도덕의 본원에 충실하지 않은 젊은 천재로 보였을 것이며, 율곡에게 퇴계는 당대 제일의 학자로서 세상에 해야 할 일이 많음에도 한 발짝 물러나는 나약한 지식인으로 보였을지 모른다.

율곡이 서른다섯이고 퇴계가 일흔이었던 1570년에 주고받은 편지를 보면, 특히 퇴계의 율곡에 대한 실망은 너무나 커서 강한 어조로 율곡의 학문 태도를 비판하고 경계의 말도 서슴지 않았다. 이에 따라 자연히 율곡의 마음도 퇴계에게서 멀어졌으리라 짐작된다.

그러나 결국 둘의 목표는 같았다. 삶에 대한 깊은 성찰과 그에서 비롯되는 원칙과 태도로 도(道)가 실현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역사적 사명에 따른 각자의 소신을 어떻게 아울러 협력하고 성과를 내게 할 것인가? 퇴계와 율곡이 서로에게 던지는 질문 속에서 우리 시대의 가치를 어떻게 이끌어내고 스스로 답할 것인가? 이 책이 던지는 고민과 궁리는 다시 돌아올 역사 앞에 놓인 독자들 자신의 몫이다.


목차


머리말
해제

1장. 율곡과 퇴계가 주고받은 시
1. 율곡이 도산의 퇴계를 방문하여 주고받은 시
2. 퇴계와 율곡이 편지로 화답한 시
3. 퇴계가 율곡을 위하여 지은 시
4. 이숙헌에게 드리는 시

2장. 율곡과 퇴계가 주고받은 편지

1. 율곡의 첫 번째 편지-별지, 퇴계의 답서를 부록함
(《栗谷全書》1, 권9 〈上退溪先生別紙附答書〉戊午[1558년])
2. 퇴계의 첫 번째 답서
(《退溪全書》1, 권14 〈答李叔獻珥○〉戊午[1558년])
3. 퇴계의 두 번째 답서-별지
(《退溪全書》1, 권14 〈答李叔獻珥○別紙〉戊午[1558년])
4. 퇴계의 세 번째 답서-별지
(《退溪全書》3, 속집 권3 〈答李叔獻別紙〉[1558년])
5. 퇴계의 네 번째 답서
(《退溪全書》1, 권14 〈答李叔獻〉戊午[1558년])
6. 퇴계의 다섯 번째 답서
(《退溪全書》3, 속집 권3 〈答李叔獻〉甲子[1564년])
7. 퇴계의 여섯 번째 답서
(《退溪全書》3, 속집 권3 〈答李叔獻〉[연도 미상])
8. 율곡의 두 번째 편지
(《栗谷全書》1, 권9 〈上退溪先生〉丁卯[1567년])
9. 율곡의 세 번째 편지
(《栗谷全書》1, 권9 〈上退溪先生〉戊辰[1568년])
10. 율곡의 네 번째 편지
(《栗谷全書》1, 권9 〈上退溪先生〉庚午[1570년])
11. 퇴계의 일곱 번째 답서
(《退溪全書》1, 권14 〈答李叔獻〉庚午[1570년])
12. 퇴계의 여덟 번째 답서-문목에 답함
(《退溪全書》1, 권14 〈答李叔獻問目〉[경오년])
13. 율곡의 다섯 번째 편지-문목
(《栗谷全書》1, 권9 〈上退溪先生問目〉[1570])
14. 퇴계의 아홉 번째 답서-물음에 답함
(《退溪全書》1, 권14 〈答李叔獻〉[1570])

3장. 퇴계가 사망한 뒤 율곡이 퇴계를 위하여 지은 글
1. 만사
(《退溪全書》4, 陶山輓祭錄, 輓詞)
2. 제문
(《退溪全書》4, 陶山輓祭錄, 祭文, 文人 李珥)
3. 퇴계 이(李) 선생에게 제사 드리는 글
(《栗谷全書》1, 권14, 祭退溪李先生文 壬申)
4. 퇴계 이(李) 선생에게 제사 드리는 글(성호원을 대신하여 지음)
(《栗谷全書》1, 권14, 又 代成浩原作)
5. 유사
(《退溪全書》4, 言行錄 권6, 遺事)

나오는 말
접기


책속에서


우리나라의 유학을 현대적인 사상으로 재창조하기 위해서 넘어야 할 일차적 과제는 퇴계와 율곡의 사상에 대한 정당한 재평가와 새로운 이해이다. 두 분의 사상이 크게 달랐다는 것은 결코 약점이 아니다. 크게 다르면 큰 만남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퇴계의 삶의 방향은 항상 궁극적 진리 곧 하늘을 향하고 있다. 그러나 궁극적 진리인 하늘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마음속에서 빛나게 활동하고 있다. 하늘 진리에 대한 앎과 실천을 통하여 사람의 삶과 하늘을 하나로 연결 짓는 것이 퇴계의 철학적 과제였다. … 율곡의 관심은 이와 달랐다. 율곡의 삶의 방향은 크게는 넒은 우주를 향하고, 땅에서 살아 움직이는 현실을 향하고 있었다. 그의 관심은 천지를 넓게 바라보며 넓은 세상을 바로잡아 사람이 살만한 올바른 세상으로 만드는 데에 있었다. 율곡에게는, 현실정치를 바로잡기 위하여 노력하기보다는 마음과 인간 내면의 문제에 치중하는 듯한 퇴계의 삶과 학문이 바람직한 삶으로 보이지 않았다. 접기

율곡이 퇴계를 존경하고 퇴계가 율곡을 아꼈지만 서로 마음으로부터 존중하는 마음은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퇴계 입장에서 율곡을 보면 도덕의 본원에 충실하지 못한 것으로 보였을 것이며, 율곡의 입장에서 퇴계를 보면 세상에 해야 할 일이 많고 많은데 물러나기만 좋아한다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두 분에게는 각각 주어진 역사적 사명이 있었다. 접기
퇴계와 율곡의 서로 다름은 주고받은 편지를 통하여 확인된다. 그러면 그들의 후학들은 서로 다른 만남을 아름다운 사랑으로 승화시킬 수 있었던가? 필자가 느끼기에 서로 다름은 확인되지만 조화를 이룬 흔적은 그렇게 뚜렷하지 않다. …서로 다른 만남, 어긋난 만남은 항상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를 변증적으로 넘어서며 큰 조화를 이루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 듯하다. 오늘날은 세계가 하나가 되니 모든 다른 것들이 한꺼번에 드러나게 되었다. 이 다름을 조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서로 다른 만남을 조화로운 만남으로 끊임없이 승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

- '해제' 중에서 접기
나는 이틀을 머물고 헤어졌다. 임영에 있을 때 퇴계선생이 편지와 시(詩)를 부치셨다. 그 편지에서 말씀하셨다.
“세상에 영재의 수가 어떻게 한이 있겠습니까? 다만 기꺼이 옛 학문에 마음을 두려고 하지 않아서 흘러가고 돌아오지 않으니 모두가 그렇습니다. 그중에 스스로 세상에 만연한 풍속을 초탈한 사람이 있더라도 어떤 경우는 재주가 못 미치거나 어떤 경우는 나이가 이미 늙었습니다. 그대 같은 경우는 재주가 뛰어나고 좋은 나이이니, 올바른 길로 출발한다면, 훗날 성취할 바를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오직 부디 더욱 원대함을 자신에게 기약하고, 작은 얻음으로 자족하지 마십시오.”

그 시(詩)는 다음과 같다.

예부터 이 학문에 세상 사람들이 놀라고 의심하니 ,
이익을 얻으려고 경전을 궁구하면 도와는 더욱 멀어진다네.
고맙게도, 그대 홀로 쇠미한 도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으니,
사람들 당신 말 듣고 새로운 앎 생겨나게 하시오.
또 시(詩)에서 말씀하셨다.
돌아와 오래 방향을 잃었던 자신을 한탄하고,
고요히 머무름에 겨우 틈새의 빛을 엿보았네.
권하노니, 그대는 제때에 바른 길을 추구하고,
궁향(불교)에 발을 들인 것을 탄식하지 마시오.
나는 다음과 같이 화답하여 보냈다.
도(道)를 배움에 어느 누가 의심 없는 지경에 이르겠는가?
병의 근원을 아아! 내가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였구나.
접대에 응하여 차가운 토계(兎溪)의 물 마신 것 생각하니,
마음과 간(肝)이 시원하게 되는 것을 스스로 알 뿐이네.
이른 나이 생계 마련에 사방을 분주히 다니다가,
말은 주리고 사람은 수척해진 뒤에야 비로소 자신을 반추하였네.

석양은 본래 서산 위에 있으니,
나그네가 어찌 고향 먼 것을 근심하리오.
- '1장. 2. 퇴계와 율곡이 편지로 화답한 시' 중에서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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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이광호 (지은이)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서울대학교 철학과에서 동서철학을 배우고, 민족문화추진회 한학연수과정과 한국고등교육재단 태동고전연구소 한학연수과정을 수료했다. 《주자의 격물치지설에 관한 고찰》로 석사학위를, 《이퇴계 학문론의 체용적 구조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림대학교 철학과 교수, 연세대학교 철학과 교수를 역임하고 퇴직했다. 서암학술(SBS) 재단 해외파견교수로 선발되어 미국 뉴욕주립대학교 방문교수가 되었고, 절강대학교 한국연구소 초빙교수를 지냈다. 태동고전연구소 소장,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부원장,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한국동양철학회 회장, 국제퇴계... 더보기

최근작 : <퇴계의 길에서 길을 묻다>,<다산학 공부>,<고전 강연 3> … 총 32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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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천재 율곡과 35세 연상의 석학 퇴계가 나눈
왕래 편지와 시문을 모아 최초로 소개하는 책!

사람의 도리에 대한 아주 다른 통찰, 그리고 시대를 가르는 문답

조선이 낳은 위대한 사상가, 퇴계와 율곡. 친근할 정도로 익숙한 이름이지만 정작 그들 사상의 핵심이 무엇인지 제대로 아는 이는 드물다. 수양을 통한 자기완성에 더 많은 관심을 두었던 퇴계 이황과 사회와 자연을 전체적으로 바라보며 배우고 이해하고 바로잡고자 했던 율곡 이이는 35세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아끼고 존중했지만 기질과 생각과 지향점이 아주 달랐다.

퇴계는 이상을, 율곡은 현실을 지향한다. 퇴계가 인간의 내면성을 중시한다면 율곡은 외적인 성취를 중시한다. 이것들은 서로 멀리 떨어져 보이지만 인간의 삶에 어느 하나도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40여 년간 유학의 진리를 연구하고 이를 현대 인문학으로 정립하기 위해 노력해온 저자 이광호 교수는 두 학자가 서로 존중하되 자신의 신념을 날카롭게 내비치는 왕래편지와 시문을 최초로 한데 모아 편집하고, 현대인이 읽기 쉽게 풀어썼다. 그리하여 독자들은 이들의 사상과 교류를 통해 학문적 즐거움은 물론 삶의 지혜와 시대정신을 배울 수 있게 되었다.

‘커다란 생각은 어긋난 곳으로부터 흘러 흘러 큰 지점에서 다시 만난다!’

조선을 대표하는 천재 사상가들의 치열한 토론을 통해
삶의 근본과 세상의 물리를 깨닫게 되는 책

지금껏 알려지지 않았던 퇴계와 율곡이 주고받은 글들을 하나의 흐름으로 살피는 것이 왜 어지러운 현 시대에 큰 의미를 가질까? 퇴계와 율곡은 서로 화목하게 지냈으나 애써 같아지려 하지는 않았다. 퇴계는 은거하여 내면을 완성하려 했고, 율곡은 관료로서 나라에 헌신하려 했다. 따라서 퇴계에게 율곡은 도덕의 본원에 충실하지 않은 젊은 천재로 보였을 것이며, 율곡에게 퇴계는 당대 제일의 학자로서 세상에 해야 할 일이 많음에도 한 발짝 물러나는 나약한 지식인으로 보였을지 모른다.

율곡이 서른다섯이고 퇴계가 일흔이었던 1570년에 주고받은 편지를 보면, 특히 퇴계의 율곡에 대한 실망은 너무나 커서 강한 어조로 율곡의 학문 태도를 비판하고 경계의 말도 서슴지 않았다. 이에 따라 자연히 율곡의 마음도 퇴계에게서 멀어졌으리라 짐작된다.

그러나 결국 둘의 목표는 같았다. 삶에 대한 깊은 성찰과 그에서 비롯되는 원칙과 태도로 도(道)가 실현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역사적 사명에 따른 각자의 소신을 어떻게 아울러 협력하고 성과를 내게 할 것인가? 퇴계와 율곡이 서로에게 던지는 질문 속에서 우리 시대의 가치를 어떻게 이끌어내고 스스로 답할 것인가? 이 책이 던지는 고민과 궁리는 다시 돌아올 역사 앞에 놓인 독자들 자신의 몫이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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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최고의 학자들의 만남



조선 중기 35년의 차이를 두고 두 학자가 태어났다. 그리고 그들은 만난다. 조선 중기 유학사에서 활짝 꽃이피는 순간이다.



우리나라 지폐에도 나와 있는 두 인물은 유학사에서도 큰 자리를 차지하는데, 율곡이 퇴계를 찾아가면서 만나게 된다. 그리고 이들이 나눈 시와 편지가 남아 있어 우리들에게 그들의 사상에 대해서 알려주게 된다.



35세 연상인 퇴계는 율곡에게는 스승과 같은 존재인데, 율곡은 편지를 통해 퇴계에게 질문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답을 퇴계가 하는데, 이들의 논의가 지금 내 수준에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번역의 문제도 아니고, 이는 유학 개념에 대한 지식의 부족 때문일 수가 있다. 이들은 중용의 몇 구절, 또는 중국 학자의 학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기에 이들의 논의를 따라가기엔 너무도 벅차다.

다만, 이들이 이런 편지들을 통하여 어떻게 자신들의 주장을 펼쳐나가고 있는지, 과연 접점은 없었는지를 살펴볼 뿐이다.

뒤로 갈수록 이 책의 해설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퇴계와 율곡은 어긋나고 있다는 생각을 지니게 된다. 율곡이 묻은 형식을 취하고는 있지만, 가만 보면 자신의 의견을 고쳤다고 보기는 힘들고, 퇴계 또한 몇몇 부분에서는 자신의 생각을 수정하고 있지만, 전체적인 틀에서는 자신의 생각을 고수하고 있다.

범속하게 분류를 하면 퇴계는 주리론(主理論)에, 율곡은 주기론(主氣論)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고, 퇴계는 영남학파, 율곡은 기호학파라고 할 수 있을텐데...

주리론이 서양의 관념론에 가깝다고 한다면, 주기론은 서양의 경험론에 가깝다고 해야 하나. 이들은 서양의 역사에서도 늘 평행선을 그리며, 때로는 만났다가도 또 평행선을 그었던 철학 사조 아니었던가.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였으리라.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주기론에서 이야기하는 기(氣)역시 서양에서는 관념에 해당하지 않겠는가. 다만 실천적인 활동을 기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우리가 기가 허약해졌다고 말할 때 기는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활동을 하고 있는 그 무엇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에 비해 리(理)는 이런 기보다도 더 추상적인 무엇이니, 그것은 유학에서 말하는 태극과도 통하는 것인지...우리 삶의 원리라고 해야 하는지.

해설을 보면 퇴계는 유학의 진리에서 철학을 하고 있고, 율곡은 실천의 차원에서 철학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 현실정치에서는 율곡이 더 힘을 발휘했으리라는 것은 이들이 이와 기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알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다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퇴계가 죽을 때까지 편지를 주고 받는다. 비록 그 양이 많지는 않았지만, 율곡은 퇴계를 학문에서는 자신보다 앞선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었으리라.



퇴계 역시 능력있는 젊은이인 율곡에게 학문의 진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으리라. 이런 만남. 이런 관계. 그것이 우리나라 유학을 꽃피우게 만든 동력이 아니겠는가.



여기에 퇴계는 기고봉과도 편지를 통해서 논쟁을 하게 되니... 다양한 논쟁을 통해서 문화는 더욱 융성해지고, 생각은 더욱 정교해진다고 할 수 있다.



즉, 말을 막아서는 안되고, 생각을 막아서는 안된다. 말과 생각은 터뜨릴 수 있게 해줘야 하고, 이런 말들과 말들이, 생각과 생각이 서로 부딪치면서 좀더 좋은 무언가를 만들어갈 수 있게 해야 한다.



그것이 이 책에 시사하는 바가 아닐까.



조선시대에도 그랬는데, 지금 민주화된 시대에는 이런 일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단지 퇴계와 율곡의 사상이 어떻다, 어떤 지점에서 차이가 나고, 나는 어느 편에 더 마음이 간다 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이런 토론이 우리 사회에서도 자연스레 일어날 수 있게 해야 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 이것이 책을 읽는 의미를 살리는 길이 된다.



우리의 전통 철학에서 많이 멀어져 왔다. 가끔 옛 성현들의 글을 읽기도 하지만, 잘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는 참으로 어렵다. 좀더 친숙하게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도록 이렇게 번역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 접기
kinye91 2013-11-29 공감(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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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와 율곡의 사상의 차이를 엿보다 [퇴계와 율곡, 생각을 다투다]


학창 시절 역사 시간에 윤리 시간에 혹은 도덕 시간에 배웠던 퇴계 이황의 주리론과 율곡 이이의 주기론. 네모 칸 메꾸기에 바빴던 당시는 그들의 사상에 대한 관심보다는 누가 무엇을 주장하고, 또 누구는 무엇을 주장했다까지가 배우고, 익히고, 외우는 전부였다. 그러다 보니 주리론이 무엇인지, 주기론이 무엇인지는 시험이 끝나고, 내가 더 이상 관심을 가지지 않아도 되는 순간 머리 속에서 지워져 버렸다.
그렇게 잊어도 굳이 사는데 필요하지도, 불편할 것도 없었다.

그러다가 철학에 대한 관심이 서서히 생기기 시작하면서 어렵지만 철학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했다. 인문학의 관심과 더불어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동서양 철학과 관련된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사실 아무리 책을 읽는다 하여도 개념조차 정리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지만 그래도 계보를 따라가면서 왜 그러한 이론이 나오고, 그 주장을 뒤를 이은 학파는 어떻게 이어받았고, 하면서 조금씩 정리해가면 명확하게 이해하기는 힘들 지라도 그럭저럭 힘겹게 나아갈 수는 있었다.

최근 가장 주목을 받고 있고, 가장 많이 읽은 책이 아마도 <논어>가 아닐까 한다. 기업인들이 많이 읽었다는 이유도 있을 것이고, 현대인의 처세에 부합되게 해석되는 내용도 많다 보니 논어는 자기계발서로 대중의 사랑을 받으며 여러 가지 버전으로 선을 보이고 있다. 요즘은 더불어 맹자와 노자, 장자의 책도 두루두루 사랑을 받고 있는 것 같다. 아직 두루 읽어 볼 엄두가 나지 않아 좀더 시간을 두고, 조금씩 도전을 해보리라고 마음을 먹고 있었던 참이다.

그러다가 이 책 [퇴계와 율곡, 생각을 다투다] 책을 읽게 되었는데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의 사상가들에 대한 책은 아직 많이 소개되지 않았다는 생각까지 미치었다. 물론 유학을 근본으로 나라가 세워진 조선이 사상적으로 중국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는 없었겠지만, 그 유학사상을 우리만의 관점으로 해석해내고, 풀어낸 위대한 사상가는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 고지에 있었던 대표적인 분이 퇴계와 율곡이었을 것이다. 물론 두 분의 견해는 점점 벌어져 차이를 좁힐 수 없는 격차를 보였으나 이 두 분으로 시작된 조선 유학의 계보는 조선의 후기까지 이어져 정약용 때 정점을 찍으며, 조금씩 학문의 한 부분으로 축소가 되었을 것이다.

이 책은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가 35년 차이에도 불구하고 사상적으로 대립하고 언쟁을 했던 9번의 편지를 주축으로 하고 있다. 퇴계가 내면세계와 내면세계의 근원인 초월적 하늘에 관심을 기울였다면, 율곡은 객관세계와 객관세계의 근원인 초월적 이법에 관심을 기울였다고 한다.



책의 처음에는 이율곡의 학문에 대해 이황은 나이에 비해 영민한 학문의 수준에 대해 칭찬도 하고, 금강산으로 들어갔다가 나와서 지탄을 받을 때도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으니 앞으로 더욱 정진하라고 위로도 해주고 감싸 안아주기도 했다. 그러나 이율곡이 묻고, 퇴계가 답하고, 다시 반론하는 과정의 편지의 내용을 보면 서로 다른 관점의 이견 차이를 좁힐 수 없었다.
정복심의 <심학도>에 대한 이해를 둘러싼 심한 견해 차이를 보일 때 퇴계는 정복심에 대해 함부로 비판하는 것을 경계하면서 더 나아가 율곡의 학문하는 태도에 전반적으로 문제가 많음을 지적하면서 마지막 편지까지 끈내 의견차를 좁히지 못했다고 한다.

물론, <인설도>가 <심학도>의 앞에 있어야 한다는 율곡의 주장에 퇴계는 그의 견해를 받아 들여 <성학십도>에서 수정을 한 것처럼 율곡의 주장을 수용하기도 하였으나 둘 사이의 주장은 끝내 좁혀지지 않았고, 결국 주리파, 주기파라는 학파로 나뉘게 되는 논쟁의 씨앗이 되기도 했다.

책은 두 분의 편지와 이를 좀더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을 단 역자의 해설, 그리고 원문 순으로 실려 있다. 물론 두 분의 편지에서 언급된 원전이나 원문에 대한 내용은 주해석으로 달려 있다. 그럼에서 역자의 해설이 외국어같은 편지의 내용의 이해를 돕는데 도움이 된다. 역자는 두 분의 편지의 대립이 세상에 좀더 빨리 나오지 않은 것을 의아해 하며, 그러한 일을 하게 된 것을 사명처럼 얘기한다.






유학을 고루하게 생각하지 않고, 좀더 옛 성인의 사상적 지표로 여기고, 관심을 갖다 보면 그 분들의 관점으로 당시의 사회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은 너무 어렵고, 힘들지만 조금씩 그 간격을 좁혀나가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며, 이 책은 그러한 나의 미약한 노력에 힘이 되어 주고 있다.
- 접기
책으로여는길 2013-09-15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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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와 율곡, 생각을 다투다



퇴계이황과 율곡이이.. 자연스럽게 주리론-영남학파, 주기론-기호학파라는 수식이 떠오른다. 거의 나에게는 맹자- 성선설, 순자-성악설 같이 공식같은 느낌인데.. 문제는 이 공식이 막상 시험때는 헛갈린다는 정도? 조선시대 유학자를 대표하는 두분의 학설이자, 두 학파의 분열과 갈등을 가져온 그 이유를 제대로 배워보거나 알려고 한적이 없었던 거 같다.
500년의 유구한 역사를 갖고 있는 조선왕조는 유학을 정치의 근본으로 삼은 국가였다. 하지만 그 엄청난 문화적 유산은 현대에 이어지지 못하고, 대부분 나와 비슷한 수준의 암기정도로 남아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유학을 현대사상으로 재창조하고자 하는 이광호님은 조선중기 성리학의 거두 퇴계와 율곡이 갖고 있던 견해의 차이를 [퇴계와 율곡 생각을 다투다]로 풀어냈다. 풀어냈다고 하기에는 책 내용이 조금 어렵다고 느껴지지만.. 그보다는 나의 부족한 소양이 문제일듯 하다.
유학의 핵심을 거칠게 말하자면 수기안인(修己安人),내성외왕(內聖外王)이라고 할 수 있는데, 퇴계와 율곡은 내성외왕(內聖外王)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랐다. 퇴계는 유학을 인간의 마음으로부터 시작하여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며 성인이 되어가는 자기 완성의 학문으로 이해한 반면 율곡은 사회와 자연을 전체적으로 바라보며 배우고 이해하고 바로 잡고자 했던 것이다.
사실 처음 두 분이 만났을때.. 퇴계는 35살이나 어린 율곡을 자신이 완성하지 못한 학문을 그가 성취하여 주기를 기대했다. 그래서 자신의 뜻과 다른 길로 나아가는 율곡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그에게 진리에 대한 이해를 달리해볼 것을 권유해보기도 하고 율곡의 독서자세를 꾸짖어 보고 경계하고 비판하는 마음을 놓지 않은 것이 아닐까? 하지만 좋은 소리도 세 번 하면 듣기 싫다고 하는데 이미 길을 달리한 율곡의 마음이 불편한 것은 당연한 이치였을 것이다.
두분의 견해차이의 극치였다는 <心學圖(심학도)>는 주자 심학의 기본 설계를 보여주고 있는데.. 율곡은 그 항목과 배치를 논리적으로 문제삼으며 심지어 비슷한 말의 반복이라고까지 이야기 했다. 그리고 퇴계의 학문을 평하며 주자의 학설을 신봉하고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하여 의양지미(依樣之味, 모방하는 맛)라 하였는데, 이전에 읽었던 퇴계의 글이나 이 책에서 접했던 그의 서찰이나 시등을 볼때 조금은 박한 평가가 아닐까 한다.



비는 늘어진 은죽처럼 시내 기슭 가볍게 두드리고,
눈 구슬 곷 되어 나무 몸 싸매네.
말은 진흙 벌에 빠져 가는 길이 아직 힘들겠지만.
맑은 날을 부르는 새소리에 풍경 비로서 새롭네.
재차 권하는 술잔이 어찌 그리 얕은가.
이제부터 나일랑 잊고 의 맺어 더욱 친하게 지내보세



퇴계가 율곡에게 전한 시에서.. '나일랑 잊고 의맺자' 라는 글귀가 책을 읽는 내내 떠올라 안타깝기도 했다. 하지만 소낙비를 은죽(銀竹)이라 하여 대나무 줄기에 비유하는 것처럼.. 유학자들은 자신의 굳센 의지와 도도한 절개를 대나무로 많이 상징했다고 하는데.. 어쩌면 하늘에서 무심히 떨어지는 빗줄기에도 유학자의 마음가짐을 떠올렸던 퇴계와 거기에 뒤질바 없었던 율곡의 올곧음이 느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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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2013-09-14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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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와 율곡 생각을 다투다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


우리에게는 너무도 유명한 두 인물 혹은 그 시대의 학자로
대한민국에 살며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자세히 알고있는 사람도 혹은 이름
만 들어본 사람도있을것이지만 그만큼 많이 알려진 두 인물에 대한
숨겨진 이야기가 있는 책이 이책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숨겨진 이야기인가 하면
이 당대의 두 지성이 동시대에서 비록 나이차이가 났지만
서로의 견해를 주고받았는것이 숨겨진 이야기였다
나는 이 두인물의 왕래나 서신교환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도 않았으며
또한 실제로 그러한 왕래가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기때문에
이책에 대한 궁금증은 더 커졌다


당대의 두 학자가 생각을 다투다니 과연 무슨 내용일까?
이책의 초반 도입부에서는 이분야를 연구한 저자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퇴계가 하늘을 지양했다면 율곡은 땅을
퇴계가 원칙이라면 율곡은 이상향을 주장했다는것이다

원래 학문이라는 것이 많이 배우면 배울수록 정도가 없다고 한다
이 두 학자가 의견이 달랐던 것도 어쩌면 많이 알기때문에 그런 간극이 생긴것이 아닐
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읽게 되었다

물론 내용이 이러한 쪽을 공부하지 못한 나에게는 어려웠지만 분명
교훈이 되는 내용도 있었고 신기한 점도 많았다

두 사람이 비록 생각과 지양점이 달랐으나 서로 존중하는 모습
때로는 서로의 학문을 질책하지만 문답을 그치지 않는 모습
개인적으로 서로의 건강과 안부를 묻는 모습
그리고 율곡이 자신의 과오를 퇴계에서 말하자
실수는 성인들도 한다며 위로해주는 모습들
이 기억에 남았다

비록 나에게는 다소 어려운 책이었지만

이런 색다른 면때문에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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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종스님 2013-09-14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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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와 율곡, 생각을 다투다」이광호 편역, 홍익출판사



저 유명한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 이 두 분의 명성은 이미 알고 있으나 그들의 사상에 대해서 문외한인 나에게 책 제목 <퇴계와 율곡, 생각을 다투다>는 매우 흥미롭고 도전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어, 율곡은 퇴계의 제자이며 둘 다 위대한 성리학자 아니었나? 두 분이 생각을 다투었다니 무슨 의미일까?’ 이런 질문을 하며 책을 읽어 나갔습니다. 얼마 전에 율곡의 <격몽요결(擊蒙要訣)>을 읽은 터라, 성리학(性理學)에 대한 관심이 부쩍 생겼습니다. 퇴계의 <성학십도(聖學十道)>와 율곡의 <성학집요(聖學輯要)>에 따르면, 학문은 스스로 성인(聖人)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워 하늘과 땅의 이치를 깨닫고 인간답게 사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분은 나이(35세 차이) 뿐 아니라 기질과 생각 그리고 지향점이 달랐습니다. 편역자인 이광호 교수는 ‘해제’(여는 글)에서 두 사람이 “같은 유학자이지만 유학에 대한 이해의 관점이 매우 다르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힙니다. 퇴계는 “궁극적 진리 곧 하늘을 향하고”(p. 12) 있었던 반면, 율곡은 ”땅에서 살아 움직이는 현실을 향하고 있었다“(p. 13)고 말합니다. 과연 퇴계와 율곡이 주고 받은 시와 편지, 그리고 이 분들과 관련된 문서들을 통해 이런 것들을 확인할 수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이 분들이 주고받은 시(詩)에서, 서로 생각이 달라도 자신을 겸손히 낮추고 상대를 배려하고 존경하는 옛 선비의 멋스러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두 분 사이에 오간 편지의 내용은 차분히 읽어도 다 이해하기 어렵군요. 내가 유학 특히 성리학에 관해 오리엔테이션이 잘 되어 있지 않아서 그럴 것입니다. 편역자의 해설이 크게 도움이 됩니다. 예를 들어, 유학(儒學)의 도는 지선(至善)이라 하는데, “지선에 대한 인식을 격물치지(格物致知), 곧 사물에 나아가 앎을 얻는 것”(p. 53)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친절하게 밝혀줍니다. 사실, 두 분의 차이는 이기론(理氣論)을 주축으로 하는 성리학의 본질에서 나온 것이 분명합니다. 관념론과 경험론, 유심론과 유물론의 대립처럼, 퇴계 이황으로 대표되는 이(理)를 중시하는 이상주의와 율곡 이이로 대표되는 기(氣)를 중시하는 현실주의가 대립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 두 큰 봉우리가 함께 통합되고 어우러진다면, 성리학은 지금도 여전히 인간과 세상을 깊이 이해하는 길을 열어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책, 매우 단단하고 마음에 듭니다. 퇴계나 율곡의 시와 편지, 글들을 먼저 차분히 번역하고 자세한 각주와 해설로 이해를 돕습니다. 그리고는 원문(原文)인 한문 전문을 실었습니다. 편역자의 해설과 여러 글들로 이 책의 가치는 커졌습니다. 책표지도 멋집니다. 홍익출판사답습니다. 퇴계의 <성학십도(聖學十道)>와 율곡의 <성학집요(聖學輯要)>를 완독한 뒤, 다시 이 책을 꼼꼼히 읽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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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7joy 2013-09-14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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