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초극론 - 일본 근대 사상사에 대한 시각, 일본의 현대 지성 5
히로마쓰 와타루 (지은이),김항 (옮긴이)민음사2003-05-30
원제 : '近代の超克'論 - 昭和思想史への一視覺 (1989년
Sales Point : 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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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품절 확인일 : 2010-10-31
책소개
이 책은 1942년 잡지「문학계」에서 개최된 '근대의 초극 좌담회'에 대한 해설임과 동시에 넓게는 1920년대부터 1945년 패전할 당시까지의 일본 지성사를 진단하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의 제목인 '근대의 초극'은 당시 일본 지성계를 대표하는 키워드였으나,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금기시되어 온 용어이기도 하다.
당시 지성인들은 일본의 전쟁은 침략 전쟁이 아니라, 서구 제국주의의 지배로부터 아시아를 해방시키기 위한 성전(聖戰)이라고 주장했는데, 이는 전후 침략 전쟁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 고발되었다. 지은이는 전후엔 논의조차 사라져버린 이 주제를 다시 끌어내어 '근대의 초극'은 당시 일본 사상계를 대변하는 키워드임과 동시에, 언제라도 다시 부활할 수 있는 무서운 이데올로기임을 보여주고 있다.
목차
서문
1. '문학계' 좌담에 대하여
2. 고오사카 마사아키의 견해를 다시 읽는다
3. '세계사의 철학'과 세계 대전의 합리화
4. 전시 '일본 사상' 비판의 한 이정표
5. 국가 총동원 체제와 역사의 간지(奸智)
6. 미키 기요시의 '시무의 논리'와 애로(隘路)
7. 민족주의적 자기기만
8. 절망의 여염(餘炎)과 낭만주의적 자조
9. 교토 학파와 세계사적 통일의 이념
10. 철학적 이념과 현실의 어긋남
(해설) 근대의 초극에 대하여 - 가라타니 고진
(옮긴이 후기) 지금 이곳의, 혹은 이미 지나간 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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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히로마쓰 와타루 (廣松涉)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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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에 태어나 1994년에 세상을 떠났다. 도쿄대 교양학부 교수를 역임했으며, 사물적 세계관에서 탈피한 사건적 세계관, 사지 구조론, 공동 주관성 등을 축으로 서양 근대 사상과 비판적 대화를 계혹해 왔다. 1960년대 후반의 신좌파 중 특히 분트(공산주의자 동맹) 파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했다. 지은 책으로 <마르크스주의의 지평>, <존재와 의미>, <자본론의 철학>, <유물사관의 본모습>, <과학의 위기와 인식론> 등이 있다.
최근작 : <근대초극론> … 총 27종 (모두보기)
김항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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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부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연세대학교, 서울대학교, 도쿄대학교에서 수학했고, 표상문화론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된 관심은 문화이론 및 한일 근현대 지성사이며 지은 책으로는 『말하는 입과 먹는 입』(2009), 『제국일본의 사상』(2015), 『종말론 사무소』(2016)이 있고, 옮긴 책으로 『예외상태』(2009), 『정치신학』(2010) 등이 있다.
최근작 : <뉴래디컬리뷰 2021.겨울>,<[큰글자도서] 제국일본의 사상 >,<레드 아시아 콤플렉스> … 총 22종 (모두보기)
전전과 전후의 단절... 그러나 연속
현대 일본은 전전과 전후를 분리하여 사고하려고 하고 그런 사고 속에 전전의 가해자에서 벗어나 전후의 피해자로 자리매김하려고 한다. 물론 가해자의 책임과 반성을 회피하기 위해서. 그러나 이러한 피해자되기는 경제부흥의 여파로 자신감을 회복한 이후 다시 전전의 자심감을 표현하는 논리로 전환하고 있다. 그 논리가 전전의 논리를 계승하는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과거 지식인의 논의가 현재에도 여전히 계승되고 있다는, 그리고 과거사에 대한 반성의 불철저성을 근대 일본 지성사를 찬찬히 살펴보면서 밝히고 있다.
대장장이 2003-08-15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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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도 사상이 있는가
아침신문에서 고른 '오늘의 책'은 '일본사상사'들이다. <현대일본사상론>과 <근대 일본사상사>가 동시에 출간됐는데, 일본문학이나 사상을 챙겨둘 만한 여유는 없지만 마루야마 마사오에서 멈춰있는 '교양'을 업그레이드해야 할 필요성은 느끼게 된다. 최근에 한 학술발표회에 참석했다가 알게 된 사실인데, 일본에는 일본인이 (즉 일본인의 시각에서)직접 쓴 <한국문학사>가 단 한권도 없었다(몇몇 한국인/재일동포가 쓴 오래 된 문학사들만이 남아있다). 우리의 경우는 사정이 어떠한지(우리 나름의 시각으로 쓴 일본문학사가 얼마나 되는지) 알지 못하지만 여하튼 '가까운 이웃'이란 말이 무색한 게 현실이다. 미래적인/전향적인 한일관계에 대해 말들은 많지만 일단은 서로의 전통과 생각에 대해 좀 알아야 되지 않을까 싶다(<한국문학사>의 표지에 욘사마를 쓰는 건 어떨까? <한국문학사>를 읽고 있는 욘사마!). 자꾸만 거꾸로 가는 듯싶은 사상사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경향신문(06. 12. 07) ‘근대 일본사상사’ 등 번역출간…日 다시 전체주의로 갈까
일본에 또다시 내셔널리즘이나 전체주의가 부상할 것인가.’ 이에 대한 해답을 얻는 방법은 그들의 사상의 궤적을 보는 것이다. 그런 연유인지 일본 근·현대 사상사 서적이 최근 잇달아 번역돼 나왔다. ‘근대일본사상사’(소명출판)와 ‘현대일본사상론’(논형)이다.
두 책은 집필 방식이나 사상계를 보는 관점이 다르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군국주의로 치달을 수밖에 없었던 일본 근·현대 사상계의 어제와 오늘을 더 총체적으로 드러내보인다. ‘근대일본사상사’는 지식인들의 사상에, ‘현대일본사상론’은 민중의 사상에 초점을 맞춘다. ‘근대일본사상사’가 막번체제 말기~전후(1950년대 후반)를, ‘현대일본사상론’은 전후~현재를 다루고 있어 시기적으로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근·현대 사상흐름 비판적 추적교과서 검정제도 위헌소송을 주도한 것으로 유명한 이에나가 사부로 전 도쿄교육대교수가 엮은 ‘근대일본사상사’는 일종의 개론서다. 마루야마 마사오, 다케우치 요시미 등 전후 일본 사상학계를 대표하는 당시로선 소장학자들이 집필에 참여했다. 1959~61년 지쿠마서방(筑摩書房)이 낸 ‘근대일본사상사 강좌’ 시리즈의 제1권 ‘역사적 개관’을 연구공간 ‘수유+너머’가 옮겼다.
이 기획은 패전에도 불구, 한국전쟁의 어부지리 등에 힘입어 고도성장의 기틀을 마련한 일본사회가 “더 이상의 전후(戰後)는 없다”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전전(戰前)의 군국주의로 회귀하려는 경향을 보인 것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됐다. 군국주의 패전의 역사를 ‘일부에 의한 실수’로 치부해 버리려는 태도 뒤에는 어떤 정신구조가 있는 것일까.
해답은 일본이 서양문명과 본격적으로 만난 메이지시대 ‘문명개화기’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 문명개화론자 후쿠자와 유키치는 “‘나라독립’이라는 목적을 위해 ‘문명개화’라는 수단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해소했다. 국내 민주주의를 강조한 자유민권론자들도 어느덧 하나 둘 정한론에 동조했고 청일전쟁이라는 경험 속에 일본 지식계 내 국내민주주의 주장은 국권의 우월함에 완전히 밀렸다.
저자들이 일본 사상사에서 주목하는 중요한 가치는 가족과 국가이다. 가족과 국가의 위계로 촘촘히 짜여진 도덕 교육은 천황제를 만들어낸 것이기도 했고, 천황제의 결과 더욱 강화된 것이기도 했다. 1910년대 이후 일본 지식계의 중요한 한 축을 형성했던 사회주의자들이 이른바 ‘쇼와 10년대(1930~40년대)’라고 부르는 시기에 대규모 전향해버린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뛰어난 공산주의자로서 단 하나뿐인 어머니에게 심려를 끼칠까봐 걱정했다”는 것이나 “내 안에 자리잡은 국제애의 본능은 내 안의 자기보존 본능과 도저히 맞설 수 없을 정도로 부서지기 쉽고 빈약하다”는 당시 지식인들의 말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이에 비해 ‘일본현대사상론’은 야스마루 요시오라는 필자가 자신의 사상사 연구를 정리한 것으로 제자인 박진우 숙명여대 교수가 번역한 것이다. 야스마루는 마루야마로 대표되는 근대주의자들과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들을 동시에 비판했다. 그에게 민중은 마루야마 등이 말하는 계몽의 대상이나 몽매한 주체도 아니고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강조하는 투쟁하는 인민도 아닌 생활세계에서 지혜를 발휘하는 생활자일 뿐이다.
국가중심주의가 만든 천황제그는 일본사회의 보수화가 현저해지는 70년대 중반 이후에 특히 주목한다. 쇼와 천황이 입원한 후 죽음에 이르기까지 일반적인 동조를 강요한 자숙과 조의의 표현으로 상징되는 권위적 질서가 어떻게 형성됐는지 그리고 여기에 대응하는 민중들의 사상은 어떠했는지가 주요 관심사다.
저자는 “일본 근대화의 원동력이 됐던 에너지인 민중의 힘은 그들의 가장 일상적 생활규범이었던 근면·검약·정직·효행 등과 같은 ‘통속도덕’에서 나왔다”고 말한다. “통속도덕의 실천이라는 광범한 민중의 자기단련·자기해방의 노력 과정에서 분출된 비대한 사회적 에너지가 사회질서를 밑에서부터 재건한 일본 근대화의 원동력이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통속도덕의 진지한 실천에 의해 평온한 생활을 희구하는 민중의 평범한 이상이 현실세계의 난관에 부딪혀 난파하게 됐을 때 민중은 스스로의 이상을 표현하기 위해 종교라는 매개를 찾게 됐다. 상징천황제가 파고들 수 있었던 사정이다.
근·현대 일본 지식계와 민중의 정신구조 형성 과정을 비판적으로 추적하는 이 책들의 생각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일본 내 다수는 아니다. 하지만 그런 얘기를 하는 학계 내 목소리 역시 약하지 않다. 어쩌면 일본사회의 앞날을 그리 절망적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가 아닐까.(손제민 기자)
06. 12. 07.
P.S. 과문하지만 일본사상사에 관한 책 몇 권을 꼽아본다. 가노 마사나오의 <근대 일본사상 길잡이>(소화, 2004)는 일단 '길잡이'란 말이 눈에 들어온다. 저자는 생소하지만 역자가 일본사상사 전문가라는 점이 믿음을 준다(같은 저자의 <일본의 근대사상>(한울, 2003)과는 어떤 관계인지 모르겠다. 여하튼 분량이 입문서로서는 적격이다). 그리고 물론 일본사상사의 '천황' 마루야마 마사오의 책들이 기본서들이겠다. 여러 권이 번역돼 있지만 가장 얄팍한 <일본의 사상>(한길사, 1998)을 '입문서'로 골라둔다. 그리고 예전에 '최근에 나온 책들'에서 한번 다룬 바 있는, 히로마쓰 와타루의 <근대초극론>(민음사, 2003). '일본 근대 사상사에 대한 시각'이 부제이고, "이 책은 1942년 잡지 문학계'에서 개최된 '근대의 초극 좌담회'에 대한 해설임과 동시에 넓게는 1920년대부터 1945년 패전할 당시까지의 일본 지성사를 진단하고 있는 책이다." 당대의 키워드이기도 했던 '근대의 초극'론으로 일본의 현대사상을 재구성하고 있다. 가라타니 고진의 해설이 붙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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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6-12-07 공감 (11)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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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나온 책들: 에피소드(21)
사담 후세인이 체포되었다는 것이 어제오늘의 톱뉴스이다(*이 글은 2003년 12월 중순에 씌어졌다). 부시가 재선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어제 문득 들었지만(*예감은 언제나 실현된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체포되는니(우리의 KAL기 사건처럼 타이밍을 맞춰서), 미리 체포되는 게 낫다는 생각도 해본다. 어차피 곧 연말이니까 두주쯤 지나면 잊혀질 것이다. 아니다! 그에 대한 재판이 남아있다!...
연말연시는 비교적 좋은 책들이 나오는 계절이다. 주머니가 좀 넉넉해지는 시기인 만큼 (실제적인 통계는 갖고 있지 않지만) 책에 대한 소비도 다소 헤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눈길이 가는 책들이 많이 나왔고, 책 소개의 주기도 빨라졌다.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는 건(가장 먼저 나온 것이기도 하지만), 케밀 파야의 <성의 페르소나>(예경)이다. 지난주 한겨레 서평에서 가장 크게 다루어진 책이다.
원제는 'Sexual Personae'(1990)이고, 번역서의 분량이 916쪽에 이르는 방대한 책이다(원서도 718쪽에 이른다). 지난주 구내서점에 포장된 채로 들어왔길래 무슨 책인가 궁금했었는데, 알고 보니 학교 도서관에서 자주 보던, 다소 싸구려틱한(!) 표지의 책이었다. 인터넷교보에 자세히 소개가 되어 있고, 몇 군데에서 신간리뷰로 다루기도 했으니까 찾아보시면 될 듯하다.
한겨레 고명섭 기자에 의하면 "서구 문화의 역사를 바로 이 3중의 이분법으로, 다시 말해 디오니소스=자연=여성 대 아폴론=문명=남성의 대립으로 이해함으로써 논란을 불러일으킨 책이다." 논란만 불러일으켰다면, 그저 호사가적 관심거리만 될 터이지만, 내가 제임슨의 신간과 함께 이 책을 주문한 것은(내일쯤 책을 받아봐야 내용을 알 수 있을 거 같다), 해롤드 블룸의 추천사 때문이다. 그는 이 책이 말의 좋은 의미에서 '센세이션Sensation'이며, 이에 비견할 만한 책이 없다는 호평을 하고 있다. 나는 거물들의 그런 말에 잘 넘어간다.
두번째 책은 민음사에서 나오는 '일본의 현대지성' 시리즈의 7번째 책인 나카무라 유지로의 <공통감각론>이다(*<문화의 두 얼굴>, <근대초극론> 등도 이 시리즈의 책들이다). 어제 영풍문고에 들렀을 때에도 실물은 보지 못했지만, 이 시리즈의 책은 모두 읽을 만하다는 경험적 판단에 근거하여 추천할 수 있다. 알라딘의 소개글에 의하면, "이 책은 커먼 센스 commom senses, 상식, 공통감각의 문제에서 시작하여, 네덜란드의 화가 에스헤르, 초현실주의자 마그리리트 등의 회화론, 지각 심리학의 역전 시야에 대한 지각 문제, 그리고 데카르트파 언어학과 촘스키의 생성문법의 이론까지, 심지어 베르그송의 기억의 문제까지 논의를 확대시키고 있다." 저자는 바슐라르, 푸코 등을 일어로 번역한 바 있는 일본의 중진학자이고, 역자는 마루야마 게이자부로의 <존재와 언어>(민음사)를 번역했던 고동호 교수이다.
세번째 책은 박홍규 교수의 <에드워드 사이드 읽기>(우물이있는집)이다. 이쯤되면 박교수의 놀랄 만한 생산력에 경탄을 금할 수 없는데, <오리엔탈리즘>의 역자이기도 한 그가 올 한해 (번역서를 제외하고) 낸 책들은 내가 기억하는 것으로 모두 7권이다. 이전에도 그런 얘기를 한 듯하지만, 이에 견줄 만한 글쓰기의 생산성이라면, 강준만 정도를 꼽을 수 있을 뿐이다. 사실, 두 사람의 글은 스피디하게 읽힌다는 점에서도 공통적이다. 어쨌든 지난번에 타계한 에드워드 사이드를 추모하는 저작 한권 정도는 서가에 꽂아둘 만하다(*다른 입문서로는 2005년에 나온 <다시 에드워드 사이드를 위하여>가 있다). 굳이, 박교수의 흠을 덧붙여 지적하자면, 교정이 섬세하지 않다는 것. 하긴 우리 출판계에서 교정이 잘 돼 있는 책을 손에 꼽는 것이 더 빠를 것이다.
네번째 책은 남미문학의 거장인 페루 작가 바르가스 요사(Llosa)의 <세상종말전쟁>(새물결)이다. 나는 그의 책 가운데 <나는 훌리아 아주머니와 결혼했다>(문학동네, 초역판은 다른 제목이었다)를 부분적으로 읽고, '대단한 구라'라는 생각을 한 바 있는데, 이번에 나온 신간은 그의 최고작이라고 한다. 당연히 한번쯤 읽어봄 직하지 않은가. 아마도 올해 번역돼 나온 남미문학 작품 가운데 가장 중요한 작품이지 않나 싶다. 우리에게 알려진 작가들 가운데는 가브리엘 마르케스나 카를로스 푸엔테스 정도가 그와 견줄만한 생존작가들이다.
다섯번째 책은 프란스 드 왈의 <보노보>(새물결)이다. 보노보에 대한 화보들이 실려 있는(그래서 책값이 256쪽에 35,000원이다) 이 생태 연구서는 제인 구달의 말을 빌면 "이 4번째 거대 유인원의 진가를 세상에 알려줄 책"이다. 4대 유인원이란, 침팬지, 고릴라, 오랑우탄, 그리고 덩치가 작아서 '피그미침팬지'라고도 불리는 이 보노보를 말한다.
내가 보노보에 대해서 처음 알게 된 건, 인류학자 리처드 랭햄(하버드대 교수)과 과학저술가 데일 피터슨의 <악마 같은 남성>(사이언스북스, 1998)에서였다. 거기서 야만적인 폭력성을 드러내는 다른 가부장적 영장류들과 달리 보노보는 온화한 가모장적 사회를 형성하며 살아가는 것으로 소개되었다. 요컨대, 우리의 '오래된 미래'가 거기에도 있었던 것이다. 그런 보노보에 대한 드문 연구소개서인 만큼 관심을 둘 만하다.
참고로, 보노보는 동성애도 즐기는 프리섹스주의자들이라고. 저자인 영장류 학자 드 왈은 <정치하는 원숭이: 침팬지의 정치와 성>(동풍, 1995)의 저자이기도 하다(*이 책은 <침팬지 폴리틱스>로 다시 나왔다. 드 왈(드 발)의 최신간은 작년 12월에 나온 <내 안의 유인원>이다).
이 책들을 언제 다 읽을 것인가?!...
2003. 1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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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6-05-18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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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942년 잡지「문학계」에서 개최된 '근대의 초극 좌담회'에 대한 해설임과 동시에 넓게는 1920년대부터 1945년 패전할 당시까지의 일본 지성사를 진단하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의 제목인 '근대의 초극'은 당시 일본 지성계를 대표하는 키워드였으나,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금기시되어 온 용어이기도 하다.
당시 지성인들은 일본의 전쟁은 침략 전쟁이 아니라, 서구 제국주의의 지배로부터 아시아를 해방시키기 위한 성전(聖戰)이라고 주장했는데, 이는 전후 침략 전쟁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 고발되었다. 지은이는 전후엔 논의조차 사라져버린 이 주제를 다시 끌어내어 '근대의 초극'은 당시 일본 사상계를 대변하는 키워드임과 동시에, 언제라도 다시 부활할 수 있는 무서운 이데올로기임을 보여주고 있다.
목차
서문
1. '문학계' 좌담에 대하여
2. 고오사카 마사아키의 견해를 다시 읽는다
3. '세계사의 철학'과 세계 대전의 합리화
4. 전시 '일본 사상' 비판의 한 이정표
5. 국가 총동원 체제와 역사의 간지(奸智)
6. 미키 기요시의 '시무의 논리'와 애로(隘路)
7. 민족주의적 자기기만
8. 절망의 여염(餘炎)과 낭만주의적 자조
9. 교토 학파와 세계사적 통일의 이념
10. 철학적 이념과 현실의 어긋남
(해설) 근대의 초극에 대하여 - 가라타니 고진
(옮긴이 후기) 지금 이곳의, 혹은 이미 지나간 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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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마쓰 와타루 (廣松涉)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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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에 태어나 1994년에 세상을 떠났다. 도쿄대 교양학부 교수를 역임했으며, 사물적 세계관에서 탈피한 사건적 세계관, 사지 구조론, 공동 주관성 등을 축으로 서양 근대 사상과 비판적 대화를 계혹해 왔다. 1960년대 후반의 신좌파 중 특히 분트(공산주의자 동맹) 파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했다. 지은 책으로 <마르크스주의의 지평>, <존재와 의미>, <자본론의 철학>, <유물사관의 본모습>, <과학의 위기와 인식론> 등이 있다.
최근작 : <근대초극론> … 총 27종 (모두보기)
김항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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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부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연세대학교, 서울대학교, 도쿄대학교에서 수학했고, 표상문화론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된 관심은 문화이론 및 한일 근현대 지성사이며 지은 책으로는 『말하는 입과 먹는 입』(2009), 『제국일본의 사상』(2015), 『종말론 사무소』(2016)이 있고, 옮긴 책으로 『예외상태』(2009), 『정치신학』(2010) 등이 있다.
최근작 : <뉴래디컬리뷰 2021.겨울>,<[큰글자도서] 제국일본의 사상 >,<레드 아시아 콤플렉스> … 총 22종 (모두보기)
전전과 전후의 단절... 그러나 연속
현대 일본은 전전과 전후를 분리하여 사고하려고 하고 그런 사고 속에 전전의 가해자에서 벗어나 전후의 피해자로 자리매김하려고 한다. 물론 가해자의 책임과 반성을 회피하기 위해서. 그러나 이러한 피해자되기는 경제부흥의 여파로 자신감을 회복한 이후 다시 전전의 자심감을 표현하는 논리로 전환하고 있다. 그 논리가 전전의 논리를 계승하는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과거 지식인의 논의가 현재에도 여전히 계승되고 있다는, 그리고 과거사에 대한 반성의 불철저성을 근대 일본 지성사를 찬찬히 살펴보면서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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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도 사상이 있는가
아침신문에서 고른 '오늘의 책'은 '일본사상사'들이다. <현대일본사상론>과 <근대 일본사상사>가 동시에 출간됐는데, 일본문학이나 사상을 챙겨둘 만한 여유는 없지만 마루야마 마사오에서 멈춰있는 '교양'을 업그레이드해야 할 필요성은 느끼게 된다. 최근에 한 학술발표회에 참석했다가 알게 된 사실인데, 일본에는 일본인이 (즉 일본인의 시각에서)직접 쓴 <한국문학사>가 단 한권도 없었다(몇몇 한국인/재일동포가 쓴 오래 된 문학사들만이 남아있다). 우리의 경우는 사정이 어떠한지(우리 나름의 시각으로 쓴 일본문학사가 얼마나 되는지) 알지 못하지만 여하튼 '가까운 이웃'이란 말이 무색한 게 현실이다. 미래적인/전향적인 한일관계에 대해 말들은 많지만 일단은 서로의 전통과 생각에 대해 좀 알아야 되지 않을까 싶다(<한국문학사>의 표지에 욘사마를 쓰는 건 어떨까? <한국문학사>를 읽고 있는 욘사마!). 자꾸만 거꾸로 가는 듯싶은 사상사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경향신문(06. 12. 07) ‘근대 일본사상사’ 등 번역출간…日 다시 전체주의로 갈까
일본에 또다시 내셔널리즘이나 전체주의가 부상할 것인가.’ 이에 대한 해답을 얻는 방법은 그들의 사상의 궤적을 보는 것이다. 그런 연유인지 일본 근·현대 사상사 서적이 최근 잇달아 번역돼 나왔다. ‘근대일본사상사’(소명출판)와 ‘현대일본사상론’(논형)이다.
두 책은 집필 방식이나 사상계를 보는 관점이 다르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군국주의로 치달을 수밖에 없었던 일본 근·현대 사상계의 어제와 오늘을 더 총체적으로 드러내보인다. ‘근대일본사상사’는 지식인들의 사상에, ‘현대일본사상론’은 민중의 사상에 초점을 맞춘다. ‘근대일본사상사’가 막번체제 말기~전후(1950년대 후반)를, ‘현대일본사상론’은 전후~현재를 다루고 있어 시기적으로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근·현대 사상흐름 비판적 추적교과서 검정제도 위헌소송을 주도한 것으로 유명한 이에나가 사부로 전 도쿄교육대교수가 엮은 ‘근대일본사상사’는 일종의 개론서다. 마루야마 마사오, 다케우치 요시미 등 전후 일본 사상학계를 대표하는 당시로선 소장학자들이 집필에 참여했다. 1959~61년 지쿠마서방(筑摩書房)이 낸 ‘근대일본사상사 강좌’ 시리즈의 제1권 ‘역사적 개관’을 연구공간 ‘수유+너머’가 옮겼다.
이 기획은 패전에도 불구, 한국전쟁의 어부지리 등에 힘입어 고도성장의 기틀을 마련한 일본사회가 “더 이상의 전후(戰後)는 없다”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전전(戰前)의 군국주의로 회귀하려는 경향을 보인 것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됐다. 군국주의 패전의 역사를 ‘일부에 의한 실수’로 치부해 버리려는 태도 뒤에는 어떤 정신구조가 있는 것일까.
해답은 일본이 서양문명과 본격적으로 만난 메이지시대 ‘문명개화기’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 문명개화론자 후쿠자와 유키치는 “‘나라독립’이라는 목적을 위해 ‘문명개화’라는 수단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해소했다. 국내 민주주의를 강조한 자유민권론자들도 어느덧 하나 둘 정한론에 동조했고 청일전쟁이라는 경험 속에 일본 지식계 내 국내민주주의 주장은 국권의 우월함에 완전히 밀렸다.
저자들이 일본 사상사에서 주목하는 중요한 가치는 가족과 국가이다. 가족과 국가의 위계로 촘촘히 짜여진 도덕 교육은 천황제를 만들어낸 것이기도 했고, 천황제의 결과 더욱 강화된 것이기도 했다. 1910년대 이후 일본 지식계의 중요한 한 축을 형성했던 사회주의자들이 이른바 ‘쇼와 10년대(1930~40년대)’라고 부르는 시기에 대규모 전향해버린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뛰어난 공산주의자로서 단 하나뿐인 어머니에게 심려를 끼칠까봐 걱정했다”는 것이나 “내 안에 자리잡은 국제애의 본능은 내 안의 자기보존 본능과 도저히 맞설 수 없을 정도로 부서지기 쉽고 빈약하다”는 당시 지식인들의 말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이에 비해 ‘일본현대사상론’은 야스마루 요시오라는 필자가 자신의 사상사 연구를 정리한 것으로 제자인 박진우 숙명여대 교수가 번역한 것이다. 야스마루는 마루야마로 대표되는 근대주의자들과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들을 동시에 비판했다. 그에게 민중은 마루야마 등이 말하는 계몽의 대상이나 몽매한 주체도 아니고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강조하는 투쟁하는 인민도 아닌 생활세계에서 지혜를 발휘하는 생활자일 뿐이다.
국가중심주의가 만든 천황제그는 일본사회의 보수화가 현저해지는 70년대 중반 이후에 특히 주목한다. 쇼와 천황이 입원한 후 죽음에 이르기까지 일반적인 동조를 강요한 자숙과 조의의 표현으로 상징되는 권위적 질서가 어떻게 형성됐는지 그리고 여기에 대응하는 민중들의 사상은 어떠했는지가 주요 관심사다.
저자는 “일본 근대화의 원동력이 됐던 에너지인 민중의 힘은 그들의 가장 일상적 생활규범이었던 근면·검약·정직·효행 등과 같은 ‘통속도덕’에서 나왔다”고 말한다. “통속도덕의 실천이라는 광범한 민중의 자기단련·자기해방의 노력 과정에서 분출된 비대한 사회적 에너지가 사회질서를 밑에서부터 재건한 일본 근대화의 원동력이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통속도덕의 진지한 실천에 의해 평온한 생활을 희구하는 민중의 평범한 이상이 현실세계의 난관에 부딪혀 난파하게 됐을 때 민중은 스스로의 이상을 표현하기 위해 종교라는 매개를 찾게 됐다. 상징천황제가 파고들 수 있었던 사정이다.
근·현대 일본 지식계와 민중의 정신구조 형성 과정을 비판적으로 추적하는 이 책들의 생각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일본 내 다수는 아니다. 하지만 그런 얘기를 하는 학계 내 목소리 역시 약하지 않다. 어쩌면 일본사회의 앞날을 그리 절망적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가 아닐까.(손제민 기자)
06. 12. 07.
P.S. 과문하지만 일본사상사에 관한 책 몇 권을 꼽아본다. 가노 마사나오의 <근대 일본사상 길잡이>(소화, 2004)는 일단 '길잡이'란 말이 눈에 들어온다. 저자는 생소하지만 역자가 일본사상사 전문가라는 점이 믿음을 준다(같은 저자의 <일본의 근대사상>(한울, 2003)과는 어떤 관계인지 모르겠다. 여하튼 분량이 입문서로서는 적격이다). 그리고 물론 일본사상사의 '천황' 마루야마 마사오의 책들이 기본서들이겠다. 여러 권이 번역돼 있지만 가장 얄팍한 <일본의 사상>(한길사, 1998)을 '입문서'로 골라둔다. 그리고 예전에 '최근에 나온 책들'에서 한번 다룬 바 있는, 히로마쓰 와타루의 <근대초극론>(민음사, 2003). '일본 근대 사상사에 대한 시각'이 부제이고, "이 책은 1942년 잡지 문학계'에서 개최된 '근대의 초극 좌담회'에 대한 해설임과 동시에 넓게는 1920년대부터 1945년 패전할 당시까지의 일본 지성사를 진단하고 있는 책이다." 당대의 키워드이기도 했던 '근대의 초극'론으로 일본의 현대사상을 재구성하고 있다. 가라타니 고진의 해설이 붙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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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6-12-07 공감 (11)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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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나온 책들: 에피소드(21)
사담 후세인이 체포되었다는 것이 어제오늘의 톱뉴스이다(*이 글은 2003년 12월 중순에 씌어졌다). 부시가 재선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어제 문득 들었지만(*예감은 언제나 실현된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체포되는니(우리의 KAL기 사건처럼 타이밍을 맞춰서), 미리 체포되는 게 낫다는 생각도 해본다. 어차피 곧 연말이니까 두주쯤 지나면 잊혀질 것이다. 아니다! 그에 대한 재판이 남아있다!...
연말연시는 비교적 좋은 책들이 나오는 계절이다. 주머니가 좀 넉넉해지는 시기인 만큼 (실제적인 통계는 갖고 있지 않지만) 책에 대한 소비도 다소 헤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눈길이 가는 책들이 많이 나왔고, 책 소개의 주기도 빨라졌다.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는 건(가장 먼저 나온 것이기도 하지만), 케밀 파야의 <성의 페르소나>(예경)이다. 지난주 한겨레 서평에서 가장 크게 다루어진 책이다.
원제는 'Sexual Personae'(1990)이고, 번역서의 분량이 916쪽에 이르는 방대한 책이다(원서도 718쪽에 이른다). 지난주 구내서점에 포장된 채로 들어왔길래 무슨 책인가 궁금했었는데, 알고 보니 학교 도서관에서 자주 보던, 다소 싸구려틱한(!) 표지의 책이었다. 인터넷교보에 자세히 소개가 되어 있고, 몇 군데에서 신간리뷰로 다루기도 했으니까 찾아보시면 될 듯하다.
한겨레 고명섭 기자에 의하면 "서구 문화의 역사를 바로 이 3중의 이분법으로, 다시 말해 디오니소스=자연=여성 대 아폴론=문명=남성의 대립으로 이해함으로써 논란을 불러일으킨 책이다." 논란만 불러일으켰다면, 그저 호사가적 관심거리만 될 터이지만, 내가 제임슨의 신간과 함께 이 책을 주문한 것은(내일쯤 책을 받아봐야 내용을 알 수 있을 거 같다), 해롤드 블룸의 추천사 때문이다. 그는 이 책이 말의 좋은 의미에서 '센세이션Sensation'이며, 이에 비견할 만한 책이 없다는 호평을 하고 있다. 나는 거물들의 그런 말에 잘 넘어간다.
두번째 책은 민음사에서 나오는 '일본의 현대지성' 시리즈의 7번째 책인 나카무라 유지로의 <공통감각론>이다(*<문화의 두 얼굴>, <근대초극론> 등도 이 시리즈의 책들이다). 어제 영풍문고에 들렀을 때에도 실물은 보지 못했지만, 이 시리즈의 책은 모두 읽을 만하다는 경험적 판단에 근거하여 추천할 수 있다. 알라딘의 소개글에 의하면, "이 책은 커먼 센스 commom senses, 상식, 공통감각의 문제에서 시작하여, 네덜란드의 화가 에스헤르, 초현실주의자 마그리리트 등의 회화론, 지각 심리학의 역전 시야에 대한 지각 문제, 그리고 데카르트파 언어학과 촘스키의 생성문법의 이론까지, 심지어 베르그송의 기억의 문제까지 논의를 확대시키고 있다." 저자는 바슐라르, 푸코 등을 일어로 번역한 바 있는 일본의 중진학자이고, 역자는 마루야마 게이자부로의 <존재와 언어>(민음사)를 번역했던 고동호 교수이다.
세번째 책은 박홍규 교수의 <에드워드 사이드 읽기>(우물이있는집)이다. 이쯤되면 박교수의 놀랄 만한 생산력에 경탄을 금할 수 없는데, <오리엔탈리즘>의 역자이기도 한 그가 올 한해 (번역서를 제외하고) 낸 책들은 내가 기억하는 것으로 모두 7권이다. 이전에도 그런 얘기를 한 듯하지만, 이에 견줄 만한 글쓰기의 생산성이라면, 강준만 정도를 꼽을 수 있을 뿐이다. 사실, 두 사람의 글은 스피디하게 읽힌다는 점에서도 공통적이다. 어쨌든 지난번에 타계한 에드워드 사이드를 추모하는 저작 한권 정도는 서가에 꽂아둘 만하다(*다른 입문서로는 2005년에 나온 <다시 에드워드 사이드를 위하여>가 있다). 굳이, 박교수의 흠을 덧붙여 지적하자면, 교정이 섬세하지 않다는 것. 하긴 우리 출판계에서 교정이 잘 돼 있는 책을 손에 꼽는 것이 더 빠를 것이다.
네번째 책은 남미문학의 거장인 페루 작가 바르가스 요사(Llosa)의 <세상종말전쟁>(새물결)이다. 나는 그의 책 가운데 <나는 훌리아 아주머니와 결혼했다>(문학동네, 초역판은 다른 제목이었다)를 부분적으로 읽고, '대단한 구라'라는 생각을 한 바 있는데, 이번에 나온 신간은 그의 최고작이라고 한다. 당연히 한번쯤 읽어봄 직하지 않은가. 아마도 올해 번역돼 나온 남미문학 작품 가운데 가장 중요한 작품이지 않나 싶다. 우리에게 알려진 작가들 가운데는 가브리엘 마르케스나 카를로스 푸엔테스 정도가 그와 견줄만한 생존작가들이다.
다섯번째 책은 프란스 드 왈의 <보노보>(새물결)이다. 보노보에 대한 화보들이 실려 있는(그래서 책값이 256쪽에 35,000원이다) 이 생태 연구서는 제인 구달의 말을 빌면 "이 4번째 거대 유인원의 진가를 세상에 알려줄 책"이다. 4대 유인원이란, 침팬지, 고릴라, 오랑우탄, 그리고 덩치가 작아서 '피그미침팬지'라고도 불리는 이 보노보를 말한다.
내가 보노보에 대해서 처음 알게 된 건, 인류학자 리처드 랭햄(하버드대 교수)과 과학저술가 데일 피터슨의 <악마 같은 남성>(사이언스북스, 1998)에서였다. 거기서 야만적인 폭력성을 드러내는 다른 가부장적 영장류들과 달리 보노보는 온화한 가모장적 사회를 형성하며 살아가는 것으로 소개되었다. 요컨대, 우리의 '오래된 미래'가 거기에도 있었던 것이다. 그런 보노보에 대한 드문 연구소개서인 만큼 관심을 둘 만하다.
참고로, 보노보는 동성애도 즐기는 프리섹스주의자들이라고. 저자인 영장류 학자 드 왈은 <정치하는 원숭이: 침팬지의 정치와 성>(동풍, 1995)의 저자이기도 하다(*이 책은 <침팬지 폴리틱스>로 다시 나왔다. 드 왈(드 발)의 최신간은 작년 12월에 나온 <내 안의 유인원>이다).
이 책들을 언제 다 읽을 것인가?!...
2003. 1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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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6-05-18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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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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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을 보고야 만 자의 씁쓸함
등록 :2015-06-26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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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정희진의 어떤 메모
<근대초극론>, 히로마쓰 와타루(廣松涉) 지음
김항 옮김, 민음사, 2003
일본 교토의 리츠 칼튼 호텔 지점 건물은 소박하다(안 들어가 봐서 내부는 모른다). 몇 걸음 건너 맞은편에 작은 가게가 있다. 이 도시는 간판이 크지 않아서 무슨 사무실인지 한 번에 파악되지 않는 곳이 많다. 쇼윈도에 수십개의 ‘예술 접시’가 사각형으로 전시되어 있어서 처음엔 당연히 미술관인 줄 알았다. 그다음엔 화원, 한의원인 줄 알았다가 동물 병원으로 ‘판명’되었다.
내게 그 가게는 ‘일본’을 상징한다. “일본인은 본심을 알 수 없다”는 혼네(ほんね, 속마음)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가 아니라 ‘잘 모르는 나라’다. 일본에 대한 무지는 식민성과 관련이 있다. ‘해방’ 후 점령자가 교체되면서 남한은 미국의 51번째 주를 자처, 그들과 동일시하면서 일본으로부터의 탈식민 투쟁(성찰과 공부) 대신 손쉬운 비하를 택했다.
<근대의 초극(超克)>은 1920~1945년에 걸친 근대성 극복을 주제로 한 일본 지식계의 논쟁을 마르크스주의 석학 히로마쓰 와타루가 해설한 유명한 책이다. 비서구 일본의 입장에서 서구에서 시작된 근대성(민주주의, 자본주의, 자유주의)을 극복하자는 논의는 복잡할 수밖에 없다.
근대 자본주의는 서구에서 시작되었지만(모더니즘) 아시아의 일본에서 더 발달했다(포스트/모더니즘). 공간과 시간의 불일치. 나는 포스트모더니즘을 공부하는 지름길은 일본 연구라고 생각한다. 주지하다시피 탈아입구(脫亞入歐, 아시아를 벗어나 서구로 진입한다)는 개화기 일본의 강박이었다. 일본은 추월에 성공했다. ‘원본’인 서구를 초과 달성한 것이다. ‘근대의 초극’ 논쟁은 제국이 되고자 했던 일본이 자신을 알기 위해 얼마나 몸부림쳤는지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수십권의 전집을 낼 만한 걸출한 지식인들이 탄생했으며 일본 특유의 인문학적 토대가 마련되었다.
일본은 따라잡으려는 대상을 치열하게 논파했다. 유럽의 역사가 인류의 역사가 된 것은 근대에 이르러서다. 서구가 비서구를 규정하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서구를 열심히 연구하다 보면 질문은 결국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나를 알기 위해서는 나를 만든 이들을 거쳐야 한다. 비서구, 여성, 장애인… 모든 타자들에게 인생이란 이렇게 멀고 복잡한 우회로이다. 이는 피식민자의 자기 찾기는 전통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로의 이행, 자신을 다시 구성하는 과정임을 깨닫게 해준다.
근대 유럽의 철학과 역사, 미술, 음악에 두루 정통했던 고바야시 히데오는 이렇게 말했다. “근대의 초극을 우리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근대가 나쁘니까 다른 무엇인가를 가지고 오자는 이야기가 아니므로 근대인이 근대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은 근대에 의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일본) 고전으로 통하는 길이, 근대성의 벼랑 끝이라고 믿는 곳까지 걸어가서야, 열렸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히로마쓰의 해석은 “그의 말에는 서구 문명의 밑바닥을 보고야 말았다는 자부라기보다는 오히려 적막감을 동반한 안도감 같은 것이 존재하며, ‘보고야 만 자의 씁쓸한 감정’이 묻어난다. 그것은 결코 단순한 국수주의적 자만심이 아니다. 깨인 상대주의, 단순한 회의주의가 아니라 어디엔가 깊게 빠졌다가 나온 사람 특유의 고뇌와 적막감이 함께하는 깨달음이다.”(184쪽)
지배(이데올로기)에 의해 규정받는 자기 개념과 싸워야 하는 타자로서 울컥하지 않을 수 없는 구절이다. 무엇인가에 깊이 빠졌다가 나온 사람 특유의 “고뇌와 적막감”. 나도 처음 여성주의를 공부할 때 그랬다. ‘남자들의 책’(더구나 동서양!)을 다 읽어야 한다는 조급함과 강박이 지나간 후 찾아오는 허탈감.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극복, 사랑, 혐오… 목적이 무엇이든 상대를 알기 위해 “벼랑 끝까지 걸어간” 적이 있는가. 나는 한국 사회에서 학문이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주류 의식’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약자만이 가질 수 있는, 자신에 대한 의문에 뛰어들 수 있는 인식론적 특권. 끝을 보고야 마는 것은 최고의 저항이다. 자신을 해명하기 위해 끝을 보려는 이들은 비교나 절충하는 방식으로 살지 않는다. “끝을 보고야 만 사람의 씁쓸함”. 진실은 달콤하지 않다.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연재[토요판] 정희진의 어떤 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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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마쓰 와타루, 『근대초극론』, 김항옮김, 민음사, 2003.
12. 26일 『근대초극론』을 읽다. 책은 그다지 흥미롭지 않았다. 넓은 의미의 ‘탈근대’ 혹은 ‘근대초극’의 논리가 지닌 반동성에 대한 비판이란 일정부분
이미 익숙한 주제이기 때문이기도 하고(한국에 있어 저널의 차원에선 탈근대에 대한 논의가 유행할 때 항시 ‘유행에 대한 비판’도 짝을 이루며 유행했
었고 그것이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비판적 논리와 겹치는 부분이 많다는 점에서), 이 책이 추적하고 있는, 근대초극론과 천황제파시즘의 연루란 것도
일본 근대사 자체에 대한 관심과 다소 동떨어진 위치에서 읽었을 때는, 두뇌 속에서,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즉 일반적인 사항 정도로 축약되어 버리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근대비판과 초극에 관한 의식이 한국에서는 어떤 굴절과정을 겪으며 연속되고 있었던가’란 궁금증을 가져보았는데, 그런 위치
에 있는 인물들의 저작을 조금씩이나마 직접 접해보고 비평해 보는 과정이 일반적인 차원으로 요약되어버릴 포괄적인 논의들에 접근하는 것보다 바
람직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읽으면서 가장 인상적인 문장은 저자가 인용했던 비평가 가토 슈이치의 다음과 같은 발언이다. 그 발언이 세계구조의 편제상 열등한(?) ‘동양’에서의
사상적 발화상의 교착(膠着)지점을, 현상적인 기술로서 잘 요약해준다는 이유에서다. ; “일본 낭만파가 말의 기교를 가지고 사람들을 매혹시켰다면, 교
토학파는 논리의 기교를 가지고 사람들을 매혹시켰다. 일본 낭만파가 전쟁을 감정적으로 긍정하는 방법을 궁리해 냈다면, 교토 학파는 똑같은 전쟁을
논리적으로 긍정하는 방법을 제공했다. 일본 낭만파가 몸에 맞지 않는 외래 사상의 어색함을 거꾸로 뒤집어 국수주의를 고취하는 데 열중했다면, 교토
학파는 외래 논리가 지닌, 생활과 체험과 전통과 동떨어져 어디든지 적용할 수 있다는 편리함을 적극적으로 이용해서 금세 ‘세계사의 철학’을 날조해
냈다. 일본 지식인들에게 따라붙기 마련인 사상의 외래성을, 교토학파의 ‘세계사의 철학’만큼 극단적으로 과장해서 희화화한 경우도 없을 것이다. 논의
가 구체적인 현실과 맞닿으면 철저하게 엉터리가 된다는 점과, 이와는 대조적으로 논리 자체는 아주 그럴 듯하다는 점에서, 그러한 사상의 외래성이
선명하게 드러난다.”(191쪽)
아래는 한번 읽은 ‘기억’을 유지놓기 위한 의무적인 정리인데, 1의 첫 문장을 쓸 때 신문의 <책 소개>란 처럼 정리할까하다, 2로 넘어가면서는 그냥 날
위해 정리해 두자는 식으로 책 내용의 대강을 요약했다.
1. ‘근대초극론’은 협의로는 일본에서 1942년 《문학계》란 잡지를 통해 이루어진 좌담을 지칭하는데, 거기에는 교토학파의 인물들, 일본 낭만파,《문학
계》동인등 당시 일본을 대표하는 지식집단들이 참여했다. ‘근대초극론’의 의미를 확장하자면 일본에서의 ‘서양=근대’의 시스템이 지닌 현실적 아포리
아를 넘어서려 했던 시도들 전반을 의미할 수도 있겠다. 광의의 의미로 파악했을 때, ‘근대초극’이란 여전히 매우 현실적인 문제라 할 것인데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전체적인 구성이란 바로 서양에서 18~19세기에 걸쳐 형성되었던 이념적·제도적 토대에 근거하고 있으며, 동시에 현실의 불안정 역
시 바로 ‘근대’가 내포하고 있는 거시적인 틀의 문제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차원에서 『근대초극론』이 다루고 있는 문제, 즉 일본에서 1940년대에 전
개되었던 ‘근대에 대한 비판과 극복’이란 과제가 어떻게 그 한계에 봉착했고, 변질되었는지를 따라 가보는 독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토대에 대
해 재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2. 히로마쓰 와타루는 ‘어떻게 근대초극에 대한 담론이 일본 제국주의의 이데올로기로 기능할 수 있었는가’에 대해 묻고 있는데, 그가 이 주제를 다루
기 위해 접근하고 있는 줄기는 크게는 네 가지의 계열이다. (1) 금융자본주의가 봉착한 모순과 국가독점자본주의로 이행하는 국면, (2) 니시다 기타로
로부터 교토학파로 이어지는 이른바 ‘세계사의 철학’, (3) 미키 기요시로 대표되는 전향 좌파의 근대초극의 논리, 즉 협동주의 철학, (4) 맑스주의의 좌
절이란 분위기에서 태동한 일본낭만파의 논리.
관념적인 차원에서만 생각해 본다면 이 책의 1장과 2장에 실려 있는 ‘근대성 비판’의 논리는 흔히 현대에 무슨 거창한 타이틀을 건 좌담회에서 제시되
는 논의 틀과 별반 다르지 않은 내용을 담고 있다. 그 정도로 당시의 논의수준으로서도 그것은 꽤나 선진적인 셈이며, 지금으로서도 공감할 수 있는 내
용들이다. 이론들은 자본주의·자유주의·개인주의에 대한 극복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지금의 이른바 "탈(Post)-"로 표상되는 담론들과 커다란 차이를 지
니고 있지는 않다. 핵심은 일견 이 시기를 둘러싼 담론들이 일견 파시즘을 부정하면서(외견상 심지어는 정부의 탄압을 받아가면서도) 파시즘으로 성립
되었던 경위이다.
아무튼 간에 위의 네 계열 중, 현실을 해석하는 이론으로서의 이 세 가지 계열이 결국은 (1)이 나타내는 현실적 국면, 즉 ‘천황제 파시즘’의 옹호논리로
둔갑하게 되는 과정에 대해 저자가 결정적인 굴절점으로 생각하는 것은 ‘국체’(즉 천황제)란 사회·경제·정치적인 실제에 대한 ‘이론’의 억압 내지는 외
면이다. 각각의 계열이 지닌 문제는 다음과 같다.
(2)계열 : 교토학파가 제시한 ‘세계사의 철학’은 유럽중심의 보편사관을 비판하며, 동시에 서양의 근대가 만들어놓은 인간중심주의와 기계화, 소외란
문제에 대한 새로운 ‘인간학’을 표상한다. 인간존재의 사회성, 민족, 국가등을 사고하는 문제에 있어 마르크스주의를 수용하면서도 그들은 성급하게 그
‘불비’와 ‘결락’을 비판하며 기각하며 휴머니즘으로 넘어가 버린다. 따라서 그들은 ‘근대초극’을 위한 구체적인 이론적·실천적인 방향에 대해 모색해야
할 필요가 있었을 때, 상당히 추상적인 차원으로 비약하게 되는데, 결정적인 것은 그들이 현실 사회에 대한 비판과 초극을 모색해야 했을 때, 구체적인
현실로 대결했어야 할 ‘天皇=國體’란 문제지점을 외면하였다는 점에 있다. 정치·경제적인 매개를 배제한 상태에서 나타났던 그들의 형식은 걸맞는 내
용이 지니지 못했던 셈이다. 결과적으로는 전시상황 속에서 ‘서양=근대’란 질병에 대항하는 세계사적인 이념을 실천하는 동양의 대표자로서의 일본의
위치를 옹호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서양 제국주의와 어떠한 차이도 없는 일본의 아시아 지배란 현실을 외면 내지는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그로 변질된
다. 감성적인 차원에 대한 긍정 및 유기체적 발상은 일본 낭만파와 연속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3)계열 : 전시체제란 국외적 상황, 그리고 재벌과 정당간의 야합으로 특징 지워진 금융자본주의적 체제의 한계·모순(공황으로 인한 농촌경제 붕괴 및
계급투쟁의 격화)이란 국내적 상황 속에서 군부는 쇼와유신에 착수한다. ‘사적 소유’의 절대적 인정, ‘보이지 않는 손’으로 요약할 수 있는 전형적인 자
유주의 경제시스템은 중앙 국가에 의한 통제경제(국가 독점 자본주의 : 사유재산의 상한선 설정, 토지국유화, 대자본의 국영화)로 이행하게 되는데, 군
史
[독서일기] 히로마쓰 와타루ㅣ근대초극론
노백성
2005. 12. 27. 22:45
이웃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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韜光養晦
5/24/23, 8:24 PM [독서일기] 히로마쓰 와타루ㅣ근대초극론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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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가 내세웠던 논리는 ①천황친정, ②자본주의 타도, ③계급대립 극복, 국위의 세계적 발양이다. 금융자본주의로부터 국가독점자본주의로의 이행, 그
리고 ‘천황제 파시즘’의 성립이 이 시기 역사의 국내적인 정세였다. 대대적인 좌파 탄압 속에서 일본 공산당은 거의 괴멸단계에 이르렀는데, 이 때 대
대적인 좌파들의 전향이 시작되었다. 전향이란 단순한 ‘배신’의 문제였다기 보다는 ‘논리적인 이유’에 근거한 전향이었다.
전시체제의 대중적 민족주의의 흐름 속에서 좌파적 실천론자들은 대중적 실천이란 의식 속에서 ‘천황제 타도’란 구호를 폐기하며, 교조적인 지시를 내
리던 코민테른에 대한 반감을 폭발시킨다. 이 당시 좌파들의 논리적인 전향을 가능하게 했던 이론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미키 기요시의 ‘협동
주의 철학’이다. “그는 소위 블록 경제로의 길을 밟아가고 있던 당시의 세계정세를 인식하면서 ‘일본과 만주와 중국을 포함하는 동아협동체’를 구상하
고 ‘동양적 휴머니즘’을 기반으로 하는 ‘게마인 샤프트(공동사회)’와 ‘게젤샤프트(이익사회)의 종합’으로서의 고차원적인 광역체제를 지향했다.”(137쪽)
그와 같은 전향좌파들에게 있어서는 “국가총동원, 통제경제의 형태로 자유주의와 공산주의를 넘어셨다는 망상, 나치즘 같은 전체주의가 아니라 천황
을 정점으로 하는 협동체 국가라는 망상이, ‘근대의 초극’ 논의를 존립시킬 수 있었던 이유”(118쪽)였던 셈이다.
우익과 군부에게 있어 ‘황군의 위기’, ‘황국의 위기’를 통감하고 ‘천황 곁의 가신’, ‘정치기구와 결탁한 경제권력’을 제거하여 천황친정을 복구하자는 복
고적 주장이, 좌파에게 있어서는 일종의 자본주의 극복이란 표상으로 나타나고, 그것이 ‘근대초극론’이란 환상으로 봉합되었던 셈이다.
(4) 계열 : 야스다 요주로를 대표로 하는 일본낭만파는 ‘근대초극’에 관한 논의에서 대중적으로 흐르던 어떤 정서를 표상해 준다. 그들은 마르크스주의
운동의 좌절과 전향이란 현실의 부산물이다. 당시 서양이론의 최첨단의 정수로 이해된 마르크스주의를 포기한다는 것은, 그 당사자들에게 있어 서구
근대문명의 모든 사상과 가치관을 단적으로 초월하는 것으로 당사자들에게 인식되었다. 현실적인 실천의 장에서의 패배를 매개로 한 환멸과 냉소의
탈출구는 서구문명의 한계를 반성적으로 자각한 국수적인 미의식이었다. 절망한 그들의 내면이란 결과적으로 도착적인 현실(혁명?) 긍정으로 나타나
는데, 그들은 “절망적인 뻔뻔함”(183쪽)을 가지고, 일본의 만주국 건국의 슬로건인 ‘오족협화’, ‘황도낙토’등에 ‘근대초극’적인 공감을 표했다.
‘근대=서양’이란 질병에 대한 전면적 부정은 결과적으로 비유럽적이고 동양적인 원리에 대한 주목으로 현상하는데, 그러한 근대초극론은 정작 그것은
해결해야 될 ‘현실의 문제자체’(아포리아)를 이데올로기적으로 이미 해결된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었고, 문제적 현실을 추인하는 기능을 했다.
히로마쓰 와타루의 평이다 ; “돌아보면 당시의 ‘근대의 초극’에 관한 논의는, 일본이 세계 일대 강국이 된 정황을 기반으로 한 민족적 자각을 투영하면
서, 메이지 유신 이래의 유럽화와 그 귀결에 대한 자기 비판적인 심정을 계기로 존립했다.”(216쪽), “논리로는 장대한 과제의식을 표명한 추상태로 제
시되었고, 정서로는 일종의 낭만주의적인 국수주의에 의해 겨우 생기를 띠고 있었다는 사실이, ‘근대의 초극’을 주술과 같은 통일적 슬로건으로 만들어
준 요인일 수 있었다.”(222쪽)
근대초극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