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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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게 배운다 - 비틀린 문명과 삶, 교육을 비추는 니시오카 쓰네카즈의 깊은 지혜와 성찰  | 나무에게 배운다 1  

니시오카 쓰네카즈 (지은이),시오노 요네마쓰 (엮은이),최성현 (옮긴이)상추쌈2013-04-05




나무에게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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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장본216쪽150*200mm320gISBN : 978899675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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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나무에게 배운다 - 몸의 기억을 물리며 사람됨을 길러 온 장인들의 교육법, 그 어제와 오늘


나무에게 배운다 - 비틀린 문명과 삶, 교육을 비추는 니시오카 쓰네카즈의 깊은 지혜와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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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오직 나무에 빗대어 꿰뚫은 이치. 니시오카 쓰네카즈는 이 책에서 자신이 살아온 삶을, 1300년 동안 이어져 온 목수들의 가르침을, 찬찬히 돌이켰다. 투박하지만 온화한 장인의 목소리에 담긴 이야기들은 결코 에두르는 법이 없다. 나무에 빗댄 깨우침은 자신의 일과 삶을 넘어, 우리 시대의 문명과 교육에 이르기까지 모자라고 어그러진 자리로 어김없이, 단숨에 가 닿는다. 쉽게 읽히지만, 어느 대목을 펼치든, 그 속에는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소중한 가르침이 담겨 있다.


여든 해 남짓 한길을 걸어온 장인의 긴 ‘유언’과도 같은 구술이 여기 있다. ‘머리’가 아니라 ‘손’으로, ‘말/글’이 아니라 ‘몸’으로 1300년 넘게 대를 물려온 궁궐목수들의 기술과 지혜가, ‘마지막 목수’라 불리는 니시오카 쓰네카즈의 입을 통해 둑이 터지듯 쏟아졌다. “실제로 해 보지 않고서는 도무지 알 길이 없는” 장인들의 그 놀라운 세계가 니시오카 쓰네카즈와 시오노 요네마쓰 두 사람의 마주이야기를 통해 비로소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시오노 요네마쓰는 이 날것의 언어를 버무려, 니시오카 쓰네카즈의 세계를 탐험하기에 가장 흥미롭고 감동적인 지도를 그려 냈다.

목차

서문- 장인의 시대를 증언하다


1부 - 나무에게 배운다

천 년을 사는 가람을 짓고 지킨다는 것 ∥ 자연이 가르쳐 주는 대로 하라 ∥ 성깔을 살려 강하고 튼튼하게 ∥ 살아온 만큼 살려서 쓴다 ∥ 솜씨와 더불어 감각을 기르는 일 ∥ 긴 호흡으로 나무를 길러야 한다


2부 - 오래된 것에는 새것이 짊어질 수 없는 것이 있다

아스카 사람들의 마음가짐과 지혜를 배운다 ∥ 오래된 목재는 보물이다 ∥ 목수의 혼이 실린 연장 ∥ 주춧돌, 천삼백 년을 버텨 온 힘의 근원 ∥ 학교나 책에서는 배울 수 없는 것 ∥ 나무를 다루는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일 ∥ 장인과 건물이 학자보다 먼저다


3부 - 싹을 기른다는 것

도제 제도를 다시 살핀다 ∥ 똑같은 것은 하나도 없는 나무를 기르듯이 ∥ 아이의 싹을 찾아내 기르는 어머니처럼 ∥ 제힘으로 뿌리내릴 수 있게 ∥ 쓸모없는 것은 없다 ∥ 섣부른 칭찬은 독이다 ∥ 굽어진 것은 굽어진 대로, 비뚤어진 것은 비뚤어진 대로


4부 - 나무와 더불어 살아오다

엄한 할아버지 밑에서 대목장으로 자라다 ∥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뒤를 잇다 ∥ 아이들에게 대를 물리지 않은 까닭 ∥ 오직 호류지 대목장으로 살다 ∥ 자연을 장구하게 살려 낸 건물을 짓고 싶다 ∥ 뜻깊은 인연을 돌아보다 ∥ 좋은 시대를 만나 이룬 것들

호류지 목수 구전 _ 천삼백 년을 이어 온 소중한 지혜


역자 후기 - 여기 천 년 학교가 있다

책속에서

저는 올해로 여든여섯이 되었습니다만, 이제까지 민가는 한 채도 짓지 않았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집조차도 다른 목수분이 지어 주셨습니다. 민가는, 아무래도 얼마에 언제까지는 일을 끝내야 한다든가, 벌이에 관해 생각하지 않고는 해 나갈 수 없어요. 저는 할아버지가 저의 스승이셨습니다만, 할아버지는 ˝절대로 민가를 지어서는 안 된다˝하고 엄하게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그건, 벌이가 되는 일로 내달리게 되면 마음이 혼탁해지게 된다는 거지요. 그래서 우리는 논밭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일이 없을 때는 농사를 지어 일용할 양식을 거두어들이라는 것이었지요. (15)  접기 - 피치

그런데 성깔이라는 것도 나쁘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사용하는 방법에 달린 문제입니다. 성깔이 있는 나무를 쓰자면 번거롭지만, 잘 사용하면 그쪽이 오히려 좋은 일도 있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이지요. 기질일 강한 자일수록 생명력 또한 강하지요. 저는 그렇게 느끼고 있어요. 성깔이 없는 부드러운 나무는 약합니다. 힘도 약하고 쓸 수 있는 기간도 짧습니다.

오히려 개성을 파악해서, 그것을 살려서 쓰는 쪽이 강하고 오래 갑니다. (28)  접기 - 피치

학자가 있고 건축물이 있는 게 아니라, 건축물이 있고 비로소 학문이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스카 양식이라든가 하쿠호 양식이라고 합니다만, 그것은 뒷날 붙여진 이름이지요. 그렇지요. 뭐든지 계산이나 형식에 끼워 넣어 생각하기 때문에 매사가 사리에 어긋나게 되는 것입니다. (79) - 피치

목수가 존경받지 못하게 된 것은 1867년부터 19812년까지 이어진 메이지 시대 때부터입니다. 그 시대에, 건축물과 건축학자로 나눠지고, 일꾼과 학자로 갈라진 뒤부터입니다. 서양 학문이 들어오고 건축학이라는 것이 위세를 떨치며, 직접 나무를 다루는 목수가 아닌 사람들, 곧 설계사들이 설계를 하게 되고부터입니다. 하여간 메이지 시대 이후부터 건축학자라는 것이 생겼고, 건축 설계 사무소가 생기며 분업이 됐습니다. 설계는 설계 사무소, 견적은 견적이라는 식의. (78)  접기 - 피치

하지만 나무는 살아 있습니다. 계산대로는 되지 않습니다. 한 그루 한 그루 성질이 다릅니다. 그것이 본디 나무의 모습입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라난 장소나 기후, 바람과 햇볕을 받은 양이나 세기가, 그리고 성질까지 다 다른 것입니다. 그것을 모두 똑같은 것으로 계산하고, 그 설계도대로 하면 좋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지어진 건물은 그 뒤 몇십 년, 몇백 년, 건물에 따라서는 천 년 넘게 서 있도록, 남겨지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편백나무를 써서 탑을 지을 때 적어도 삼백 년 후의 모습을 생각해 가며 짓습니다. 삼백 년 뒤에는 설계도 같은 모습이 될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서까래와 들보를 올리는 것입니다. (80)  접기 - 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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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신문 

 - 한겨레 신문 2013년 4월 12일자

저자 및 역자소개

니시오카 쓰네카즈 (西岡常一)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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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나라 현에서 니시오카 가문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예닐곱 살 무렵부터 현장을 드나들며 호류지 대목장 재목으로서 일을 배웠다. 스승이자 할아버지였던 니시오카 쓰네키치의 뜻에 따라 이코마 농업 학교를 졸업한 뒤, 두 해 동안 농사를 지었다. 천삼백 년 전에 지어져 지금도 창건 당시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호류지를 평생에 걸쳐 돌보며 수많은 선인들의 기술과 지혜를 배웠다. 궁궐목수들의 우두머리로서 오래된 일본 건축물의 수리와 재건에 참여하며 몸에 새긴 그 아름답고 심오한 가르침을 《나무한테 배워라 ― 호류지와 야쿠시지의 아름다움》 《궁궐목수 대목장 니시오카 쓰네카즈 ― 구전의 무게》 같은 책으로 남겼다. 여든여덟이 되던 1995년,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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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나무에게 배운다> … 총 3종 (모두보기)

시오노 요네마쓰 (?野米松) (엮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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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아키타 현 가쿠노다테 마을에서 태어났다. 도쿄 이과 대학 이학부 응용 화학과를 졸업한 뒤, 일본 곳곳을 돌면서 어부와 기술자들의 이야기를 소중히 듣고 받아써 왔다. 사라져 가는 전통문화와 몸에서 몸으로, 일에서 일로 전해지는 ‘손의 기억’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애쓰고 있다. 1992년 《옛 지도》를 시작으로 네 차례나 아쿠타가와 상 후보에 올랐고, 2003년 《여름 연못》으로 일본 그림책 대상을 받았다. 같은 해, 국제 천문 연맹은 그의 업적을 기려 소행성 11987에 ‘요네마쓰 Yonematsu’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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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다시, 나무에게 배운다>,<나무에게 배운다> … 총 2종 (모두보기)

최성현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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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살고 있다.

자급 규모의 논밭 농사를 자연농법으로 짓고 있다.

1일 1엽서를 쓰고 있다.

자연농법의 철학과 실제를 탐구하는 작은 모임 지구학교(cafe.daum.net/earthschool)를 열고 있다.


《힘들 때 펴보라던 편지》 《오래 봐야 보이는 것들》 《산에서 살다》 《시코쿠를 걷다》 《좁쌀 한 알》 《바보 이반의 산 이야기》와 같은 책을 썼다.

《반야심경》 《자연농법》 《짚 한 오라기의 혁명》 《자연농 교실》 《나무에게 배운다》 《돈이 필요 없는 나라》 《여기에 사는 즐거움》 《어제를 향해 걷다》와 같은 책을 우리글로 옮겼다. 접기

최근작 : <지구별 생태사상가>,<그래서 산에 산다>,<시골 엄마의 선물> … 총 36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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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분야 : 환경/생태문제 22위 (브랜드 지수 4,022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자를 든 사제’ 니시오카 쓰네카즈의 경전, 《나무에게 배운다》

숲 속의 나무처럼 많던 장인들이 하나 둘 쓰러진 뒤, 단 한 사람 니시오카 쓰네카즈가 남았다. 1300년을 이어 온 절 호류지에서, 오직 나무와 더불어 평생을 살아온 사람. ‘손의 기억’을 배우고 잇는 그 길 위에서, 그는 입에서 입으로, 손에서 손으로 긴 시간 전해 온 소중한 지혜 속으로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고, 열매를 맺었다. 호류지의 마지막 대목장으로서 1000년을 넘나드는 가르침을 배우고 물리며 그가 얻은 깨달음은 비틀린 문명과 삶, 교육을 비추는 묵직한 은유들로 넘쳐 난다. 여든여섯, 살아온 삶이 그러하듯 곧고 간명한 말 속에 담긴 지혜는 깊고 또렷하다. 작은 몸놀림 하나, 말 한 마디, 허투루 뱉는 법이 없었던 ‘자를 든 사제’ 니시오카 쓰네카즈의 이야기를 기록의 대가 시오노 요네마쓰가 마음을 다해 엮었다. 책장 곳곳에 오래 곁에 두고 되새길 만한 잠언들이 가득하다.


오직 나무에 빗대어 꿰뚫은 이치, 일본을 사로잡다

일본의 초대형 종합상사 이토추ITOCHU의 회장 니와 소이치로는 NHK 〈나의 1권, 일본의 100권〉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그 어떤 경영서보다도 가치 있는 책”이라고 이 책을 소개했다. 프로야구 홋카이도 니혼햄 파이터스의 구리야마 히데키 감독은 새롭게 팀을 맡자마자 이 책부터 꺼내 읽었다. 니시오카 쓰네카즈의 이 마지막 구술본을 두고, 누군가는 ‘신의 목소리’라는 헌사를 아끼지 않았다.

《나무에게 배운다》는 1993년 소시샤草思社에서 처음 나왔고, 2005년 신초샤新潮社로 출판사가 바뀌어 다시 나온 뒤 지금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폭넓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 왔다. 목수들이나 고대 건축에 관심 있는 독자들의 필독서를 넘어, 교대 입학생에게 교사와 선배가 추천하는 책, 유아교육과 학생들의 필독서, 소아과 의사들이 엄마들에게 추천하는 책, 대학원 경영철학 수업 필독서, 대학생 교양 교육을 위한 참고서, 도쿄 대 젊은 졸업생 모임 산시로 회 추천 필독서로 자리 잡았다.

여든여섯, 평생을 말 없는 나무와 이야기를 나눠 가며 나무를 생명 있는 건물로 바꿔 온 사람. 더는 몸이 말을 듣지 않아 비로소 연장을 손에서 놓은 한 궁궐목수의 낯선 세계가 20년 동안이나 독자들의 마음을 이토록 사로잡은 까닭은 무엇일까.

니시오카 쓰네카즈는 이 책에서 자신이 살아온 삶을, 1300년 동안 이어져 온 목수들의 가르침을, 찬찬히 돌이켰다. 투박하지만 온화한 장인의 목소리에 담긴 이야기들은 결코 에두르는 법이 없다. 나무에 빗댄 깨우침은 자신의 일과 삶을 넘어, 우리 시대의 문명과 교육에 이르기까지 모자라고 어그러진 자리로 어김없이, 단숨에 가 닿는다. 쉽게 읽히지만, 어느 대목을 펼치든, 그 속에는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소중한 가르침이 담겨 있다.


한국 출간과 복간을 결정지은 감명과 찬사의 힘

20여 년 전 최성현 선생은 일본어로 된 이 책을 읽고는, 가까운 이들을 만날 때마다 책을 읽고 감동했던 부분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그가 별 뜻 없이 건넨 이야기를 뜻밖에도 사람들은 귀 기울여 들어 주었다. 눈을 반짝이며 이 책의 내용을 궁금해 하던 친구들. 지금이야 널리 알려진 번역가지만 그때는 거의 무명에 가까웠던 최성현 선생이 이 책을 번역하게 된 것은 그러한 관심 덕분이었다. 결국 이 책은 《나무의 마음 나무의 생명》이라는 제목으로 1996년 한국에서 처음 나왔다. 그 뒤 10여 년이 흐르면서 그 출판사는 문을 닫았고, 《나무의 마음 나무의 생명》 또한 절판되었다. 하지만 독자들의 감명과 찬사만큼은 줄곧 끊이지 않았다.

〈녹색평론〉은 이 책이 나오자마자 29호(1996년 7-8월)에 ‘나무의 두 가지 생명’(《나무에게 배운다》가운데 ‘살아온 만큼 살려서 쓴다’)이라는 장을 옮겨 실었다. 이 글은 훗날 《녹색평론선집3》에도 실린다.

늙은 목수의 꾸밈없는 철학과 깊은 통찰이 일으킨 울림은 컸다. 누군가는 한 마디 한 마디, 옮겨 적고 싶은 구절들로 가득하다고, 기록해 두고, 삶의 지침으로 삼고 싶은 잠언들로 충만한 책이라고, 그렇게 썼다. 어느 건축가는 자신의 삶을 바꾼 책이 있노라고, 오래도록 곁에서 스승이 되어 준 이 책을 소개했다. 니시오카 쓰네카즈가 나무를 대하듯이, 적소를 찾아내기엔 아직 이른 때, 다만 각기 만만치 않은 아이들의 성깔이 제대로 깊어지도록 지켜 봐 주고 싶은 한 교사는 자신의 교육산문집 제목 《성깔 있는 나무들》에 그 뜻을 담았다. 여행 작가 김남희 씨는 “좋은 목수의 조건에 대해서라면 니시오카 쓰네카즈가 이미 다 말했다.”고 썼다. 전우익 선생은 《나무의 마음 나무의 생명》을 권하면서 “평생 이 책만 읽고 있어도 된다.”고 하셨다. (전우익 선생은 이 책이 한국에서 번역되기 전인 1993년에 이미 일본어로 된 이 책을 읽고 〈녹색평론〉10호에 ‘목수의 가르침’이라는 글을 쓰신 적이 있다.)

그렇게 한국에도 니시오카 쓰네카즈의 가르침을 마음에 품고 소중히 되새김질하는 독자들이 있었고, 절판된 이 책을 찾는 이들 또한 꾸준했다. 그 간절함과 애정 덕분에 2013년 이 책을 한국 독자들 곁으로 다시 되돌릴 수 있게 되었다.


세계 최고最古의 목조건축물 호류지를 지켜 온 마지막 대목장 이야기

자를 든 사제, 뛰어난 목수인 동시에 독실한 불교 신자, 독종, 귀신, 마지막 목수…….

다채로운 별칭만큼이나 대단한 목수였다. 시오노 요네마쓰는 니시오카 쓰네카즈를 일러 “생활 그 자체는 물론, 신념, 기술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것을 겸비했던 호류지의 마지막 대목장”이라고 말했다.

태평양전쟁에 끌려가 떠돌던 때에도, 그는 자신이 보았던 대륙의 사찰이나 탑을 일본의 아버지에게 그려 보냈다. 전장에서도 머릿속에는 오직 호류지뿐이었다. 전쟁이 끝나자 그가 가장 먼저 달려간 곳 역시 호류지였다. 집도, 가족도, 자신의 안위도 그에게는 늘 뒷전이었다. 결핵에 걸려 살날을 기약할 수 없을 때조차 그는 호류지 목수로서의 삶을 놓지 않았다. 호류지 없는 니시오카도, 니시오카가 없는 호류지도 생각할 수 없는 삶. 그에게 호류지는 온 세계이자 가치, 삶 그 자체였다.

607년에 창건된 뒤 670년에 불타 692년 언저리에 다시 재건된 절 호류지法隆寺. 주춧돌을 세우고, 그 위로 서로 다른 나무를 하나하나 짜 맞춰 세워 올린 건물은, 13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창건 당시 그 모습 그대로 일본 나라 현 이코마 군 이카루가 마을, 그때 그 자리에 힘차게 서 있다.

“그렇습니다. 호류지는 제가 무슨 일을 하든 본보기가 됩니다. 알 수 없는 일이 생기면 호류지 구석구석을 보며 다닙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그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단번에 아스카 장인의 영역에 다다를 수는 없는 일입니다. 모든 기초가 호류지에 있습니다. 아스카 장인들에게 있습니다.”

그들은 아스카 장인들의 정신을 잊고, 벌이가 되는 일로 내달리는 일이 없도록 늘 삼가며 애썼다. 건축 일이 없는 동안에는 하루하루 농사를 지으며 ‘땅의 생명’을 마주했고, “신이나 부처를 숭상하지 않는 자는 사원이나 사찰 건축을 입에 올리지 말라.”는 구전에 따라 불교 경전을 읽었다. 그러는 틈틈이 늘 호류지를 살피고 돌보았다. 이것이 바로 오래도록 목수들의 교과서로 꼽혀 온 호류지를 짓고 지켜 온 호류지 대물림 목수들의 삶이었다. 1300년이 넘게 목숨처럼 지키고 물려 온 구전이 그들의 재산이자 양식이었다. 그 구전을 먹고 자란 마음가짐과, 거기에 기대어 익혀 온 기술 역시 입에서 입으로, 손에서 손으로 대를 이어 물려 왔다. 호류지를 지어 후대에 물린 아스카 장인들로부터 1300년, 그 무리의 마지막 대물림 목수가 바로 니시오카 쓰네카즈이다.

1978년에 나온 니시오카 쓰네카즈의 《호류지를 지탱하는 나무法隆寺を支えた木》 일부는 일본 중등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장인의 시대를 증언하다, ‘손의 기억’을 기록한 구술과 채록의 교과서

여든 해 남짓 한길을 걸어온 장인의 긴 ‘유언’과도 같은 구술이 여기 있다. ‘머리’가 아니라 ‘손’으로, ‘말/글’이 아니라 ‘몸’으로 1300년 넘게 대를 물려온 궁궐목수들의 기술과 지혜가, ‘마지막 목수’라 불리는 니시오카 쓰네카즈의 입을 통해 둑이 터지듯 쏟아졌다. “실제로 해 보지 않고서는 도무지 알 길이 없는” 장인들의 그 놀라운 세계가 니시오카 쓰네카즈와 시오노 요네마쓰 두 사람의 마주이야기를 통해 비로소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시오노 요네마쓰는 이 날것의 언어를 버무려, 니시오카 쓰네카즈의 세계를 탐험하기에 가장 흥미롭고 감동적인 지도를 그려 냈다.

그 흔한 필명 하나 두지 않은 채, 우리로 치면 ‘돌쇠’나 ‘개똥이’처럼 촌스럽고 우직한 이름 ‘요네마쓰米松’를 외곬으로 지켜 온 사람. 그는 아쿠타가와 상 후보에 네 차례나 오를 만큼 빼어난 문학적 재능을, 자신의 삶을 스스로 기록할 수 없는 이들을 위해 온전히 바쳤다. 오래도록 일본 곳곳을 돌며 장인들의 삶을, 사라져 가는 전통 문화를 기록해 온 그의 헌신과 공적을 기려, 2003년 국제천문연맹은 소행성 11987에 ‘YONEMATSU'라는 이름을 헌정했다.


니시오카 쓰네카즈의 잠언 ;

1300년 동안 대를 물리며, 살을 보태고, 키를 키워 온 궁궐목수들의 지혜가 이 한 권에 오롯이 담겨 있다. 늙은 목수가 읊조리듯 풀어 놓은 이야기는 조각보처럼 다채롭고 아름답다. 평생 나무의 마음을 헤아려 온 이가 헤아린 세상의 이치 또한 뿌리 깊은 나무처럼 굵고 단단해서, 어느 대목을 펼쳐서 읽든 놀라운 가르침과 만날 수 있다. 쉽고 깨끗한 입말로 풀어낸 길지 않은 책이지만, 나뭇결을 찬찬히 다듬듯 오래도록 삭여야 하는 대목들로 가득 차 있다. 1300년, 가늠할 수 없는 아득한 시간의 길이만큼이나, 근원에 다다른 그의 깨달음은 크고, 드넓고, 깊다.


+ 문명 _ 진보의 잣대는 ‘새로움’이 아니다

요즘 사람들은 과학이 발달한 이 시대에 그런 옛날 기술 따위는 케케묵은 것이라며 상대조차 하지 않으려 하지만 그건 뭘 모르는 생각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콘크리트는 반영구적이라고 믿었습니다. 연구자나 학자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콘크리트 건물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콘크리트라면, 재료가 석회와 모래와 물입니다. 그 결합체가 그렇게 오래 지탱할 수는 없다고 저는 봅니다. 최소한 삼백 년 정도 버텨 주면, 그것으로서도 좋은 건축 재료라 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 정도가 되기도 그리 쉽지 않습니다. 철근을 넣더라도 반영구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학자들은 옛 건축물의 재건에 철근을 사용하여 수명을 반영구적으로 하자는 얘기를 해 왔습니다.

모두가 새로운 것이 옳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옛것이라도 좋은 것은 좋은 것입니다. 메이지 시대 이후입니다, 경험을 믿지 않고 학문에 치우치게 된 것은.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 삶 _ 긴 눈으로 보고 생각하라

옛날에는 집을 지을 때 나무도 심었습니다. 이 집은 이백 년은 갈 테지, 지금 나무를 심어 두면 이백 년 뒤에 집을 지을 때는 안성맞춤일 테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삼백 년이라는 시간 감각이 있었던 것이지요.

심은 나무가 자라기까지 기다렸고, 또 마구 쓰고 버려서는 안 된다는 정신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있었습니다.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나무의 성질을 살려서 알뜰하게 쓴다, 이것은 매우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 당연한 생각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나무를 살립니다. 낭비하지 않습니다. 나무의 성깔도 좋은 쪽으로 쓰기만 하면, 오래 버틸 수 있는 건물, 튼튼한 건물이 됩니다. 우리는 그래서, 그걸 위해 기술을 전하고, 구전을 가르쳐 온 것입니다. 조금 더 긴 눈으로 세상사를 보고 생각하는 생활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좌우간 한 번 쓰고 버리는 생활이 기본이 되어 버렸습니다.


+ 건축 _ 나무와 인간 생명의 합작이 진짜 건축이다

나무는 대자연이 낳고 기른 생명입니다. 나무는 죽어 있는 물건이 아닙니다. 생물입니다. 사람 또한 생물입니다. 나무나 사람이나 자연의 분신입니다. 말 없는 나무와 이야기를 나눠 가며 나무를 생명 있는 건물로 바꿔 가는 것이 목수의 일입니다. 나무와 인간 생명의 합작이 진짜 건축입니다.

처마로 나와 있는 나무는 오랫동안 비바람을 맞으면 아무래도 끝이 상해 들어갑니다. 그래서 안쪽을 길게 남겼습니다. 앞이 썩거나 하여 상하면 거기를 잘라내고 뒤쪽에 남아있는 부분을 앞으로 내밀어 맞출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렇게 고치면 또 한참 동안 갈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입니다. 나무를 소중하게, 되도록 오래 살려 쓴다고 하는 것은.


+ 교육(가르침) _ 진정한 가르침은 본보기여야 한다

연장 갈기는 남에게 배울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제가 제자인 오가와한테 한 일은, 이렇게 하면 된다며 제가 깎은 대팻밥을 보여 준 것뿐입니다. 우리 할아버지도 그랬습니다. 대패란 이런 것이라며, 나무 위에 대패를 놓습니다. 그리고 그 대패를 곰방대 꼭지로 걸어 슬쩍 잡아당깁니다. 그런데 대팻밥을 도무지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한데 정말 없느냐 하면, 입김을 훅 불어 보면 대팻밥이 그제야 훌훌 일어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하는 거야.”라고 하실 뿐이었습니다.

기술은 가르치고 배우는 게 아닙니다. 그 사람이 배우고 싶다고 한다면, 개성에 맞춰서 잘 자라 가도록 도와주는 것뿐입니다. 할아버지는 자주 이렇게 말씀하시고는 하였습니다.

“들려주고, 직접 해 보여 주지 않으면 안 돼.”


+ 교육(배움) _ 순진한 마음이 아니면 배움은 일어나지 않는다

목수는 그때그때 시험에 통과하기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는 안 됩니다. 일을 익히면 그것을 가지고 일생 밥을 벌고, 식구를 돌보고, 이웃을 위해 집을 지어야 합니다. 그런데 집을 짓는 건 머릿속 지식이 아닙니다. 자신의 손으로 나무를 자르고 깎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럴 때 머릿속 지식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됩니다.

자기 생각으로 차 있으면 스승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순진한 마음이 아니면 배움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스승을 향해 마음이 열려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전해집니다. 이런 자리로부터 길을 찾아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 교육(배움) _ 배움은 스스로 여는 것이다

억지로 배우는 것은 몸에 좀처럼 붙지를 않습니다. 일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머리로 알고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실제로 해 보지 않고는 모릅니다. 남이 할 수 있다고 자기도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남이 하는 것과 자기가 하는 것은 다릅니다. 직접 해 보지 않고는 자신이 어딜 모르고 있는지, 뭘 할 수 없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게 당연합니다. 모르기 때문에 배우려고 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머리로만 이렇게 하는 거다, 하고 배워서는 익힐 수 없는 일입니다. 일일이, 하나하나 자세히 가르쳐서 되는 일도 아닙니다. 솔직히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스스로 모색하며 노력할 때 비로소 터득이 됩니다. 애써서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고, 직접 해 가는 가운데 툭 터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거군, 이라며 깨닫게 됩니다. 이렇게 익힌 것은 결코 잊지 않습니다.


+ 교육(사람을 기른다는 것) _ 똑같은 것은 하나도 없는 나무를 기르듯이

학교는 가르치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학생을 모두 똑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대합니다. 사실은 다 다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학교 쪽에 좋게 모두 똑같은 것처럼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도제 제도는 애초부터 가르치는 게 아니라 기르는 것이기 때문에 똑같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같을 리가 없잖습니까. 부모가 다르고, 환경이 다른 데서 자란 이들이 똑같을 수가 있습니까? 형제도 다르잖습니까?

그 차이를 처음부터 잘 보고 있습니다. 따라오는 것은 제자 쪽이므로 거기에 맞춰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 교육(사람을 기른다는 것) _ 뿌리를 튼튼하게

통째로 암기하는 것만으로는 새로운 것을 향해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기억력이 좋은 것만으로는 제대로 배울 수 없습니다. 통째로 하는 암기에는 뿌리가 없는 것입니다. 뿌리가 제대로 돼 있지 않으면 나무는 자라지 못합니다. 뿌리만 확실히 서 있다면, 거기가 바위산이든 바람이 심한 곳이든 해 나갈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나무에 비유하고 있습니다만, 사람이나 나무나 기른다는 점에서는 다를 게 없습니다.


+ 일 _ 모든 것은 자연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다

나무의 생명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오늘 이야기한 나무로서의 생명, 곧 수령입니다. 다른 하나는 나무가 목재로 쓰인 뒤부터의 사용 햇수입니다.

편백나무의 사용 햇수가 길다는 것은 호류지를 예로 들면 잘 알 수 있지요. 천 년이 지난 나무가 아직도 살아 있습니다. 탑의 기와를 들어내고 그 아래 있는 흙을 벗겨 보면, 차츰 지붕의 휨이 돌아오고, 대패질을 해 보면 지금도 질 좋은 편백나무 향기가 나는데, 이것이 편백나무의 생명의 길이입니다.

이런 나무이기 때문에 그 수명을 다하도록 돕는 것이 목수의 역할입니다. 수령 천 년의 나무라면 적어도 천 년 이상 가도록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면 나무에게 미안한 일이지요. 그러므로 나무를 잘 알지 않으면 안 됩니다.


구전에도 나무 다루기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대형 목조 건물을 지을 때는 나무를 사지 말고 산을 사라.”

“나무는 나서 자란 방향 그대로 써라.”

“나무 짜 맞추기는 나무의 성깔에 따라 하라.”

다 나무를 쓰는 법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핵심은 자연이 가르쳐 주는 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자연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합니다. 안목이나 기술 또한 마음가짐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고서는 도무지 늘지 않습니다.

먼저 자연의 생명에 감사하며 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 일 _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온 정성을 다해 한다

연장은 목수에게 있어 손의 연장延長과 같습니다. 그 정도까지 연장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목수의 일은 머리로 하는 게 아니고, 마지막에는 자신의 솜씨로 일을 마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끝낸 일에는 거짓도, 감출 방법도 없는, 그 사람의 솜씨가 있는 그대로 드러납니다.

우리들도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느냐 하면, 정성껏 하는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온 정성을 다해 한다, 이것뿐입니다.


+ 기술 _ 기술은 마음과 함께 진보해 가는 것

제자는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는데, 그쪽이 좋습니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됩니다. 책을 통해 얻은 예비지식을 가지고 이런 게 아니겠나, 하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머리로는 기억을 하고 있을지 몰라도, 손에는 아무런 기억이 없기 때문입니다. 머리만이 아니라 몸으로 익히러 오는 것이 제자입니다. 기술은 기술만으로 몸에 붙는 게 아닙니다. 기술은 마음과 함께 진보해 가는 것입니다. 일체지요.


+ 인사人事 _ 굽어진 것은 굽어진 대로 비뚤어진 것은 비뚤어진 대로

구전에, “나무의 성깔 맞추기는 장인들의 마음 맞추기.”, “장인들의 마음 맞추기는 장인들을 대하는 대목장의 따뜻한 마음.”, “백 명의 장인이 있으면, 백 가지 마음이 있다. 그것을 하나로 모으는 것, 이것이 대목장의 기량이자, 가야 할 바른 길이다.”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장인이란 각기 기질이 있는데, 그것을 다뤄야 하는 대목장으로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사람을 대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쓰지 않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자신의 마음에 드는 사람만으로 건물을 짓고자 하는 건 나무의 성깔을 파악하고, 그 성깔을 살려서 쓰라는 구전을 거역하는 일입니다. 성깔이 있는 것은 안 된다는 생각은 잘못입니다. 성깔이란 사용하기 어렵습니다만, 살릴 수만 있으면 오히려 뛰어난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목을 자른다거나, 혹은 없애 버리면, 좋은 건축은 불가능해집니다.


나무를 보는 것도 어렵습니다만, 사람을 보는 것도 어렵습니다. 안 쓰는 쪽이 좋은 사람을 무리해서 쓰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로부터 자주 듣습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다기보다 그런 사람도 쓸데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기질이 있는 사람에게도 신기하게도 그에게 꼭 맞는 일이 반드시 있습니다. 저는 이제까지 오랫동안 대목장 노릇을 해 왔습니다만, 마음껏 부릴 수 없다고 목을 잘랐던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 《나무에게 배운다》는 일본 신초샤가 펴낸 《木のいのち木のこころ - 天·地·人》 가운데 ‘天’ 편을 옮긴 것입니다. 한국에서도 1996년 《나무의 마음 나무의 생명》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적이 있습니다. 《木のいのち木のこころ - 天·地·人》 ‘地’ 편과 ‘人’ 편은 《다시, 나무에게 배운다》라는 제목으로 올해 여름 출간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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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삶의 나침반이다. 삶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그 방향이 맞는 것인지, 혹 쉽고 편한 길만 찾지는 않았는지 고민할 때, 언제든 읽을 것이다.  구매

geniean 2013-05-30 공감 (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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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내 삶의 `경전`이다. 

paha_sapa 2013-04-28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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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앞에서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책. 돈이라는 단 하나의 기준으로 줄 세우는 현대사회에 대한 침묵의 반란. 게다가 술술 읽히는 나무와 목수의 언어들.  구매

물 2016-07-10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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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건축이 달리 보입니다. 사람도 달리 보입니다. 저자가 말하는 `성깔`대로 살고 싶습니다.  구매

ggunggun 2013-04-30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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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기른다는 것, 무언가를 배우고 익히는 것에 대해서 계속 되새기게 된다. 

주난 2013-04-28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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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격화된 공교육에서 탈피하기 새창으로 보기

  오늘날 학교라는 이름으로 대변되는 공교육은 근대의 산물이다. 그 이전에는 사교육이 있을 뿐 공교육이란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근대 국가가 들어서면서 비로소 국가와 민족의 기치 아래 사람들을 재탄생 시켜야할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이러한 과업을 수행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 공교육, 바로 학교다.


 


   이러한 역사성이 기반이기 때문에 학교는 국가의 간섭을 받을 수밖에 없다. 돈을 지급하는 주체이니 당연한 것이긴 하지만 교육이란 활동이 하나의 국가의 이익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는 모습을 지금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간섭을 교사가 어디까지 인정하고 받아들일지는 고민할 필요가 있다. 여하튼 학교는 국가가 필요로 하는 획일화된 ‘인력’으로 만드는 일종의 공장과 같은 역할을 수행했다. 이러한 역할은 다양성과 창의성, 개성이 강조되는 21세기에도 지속되고 있다.


 


   물론 사회에서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기본 교양과 일정 수준의 지적 능력은 모든 사람이 필요한 것이기에 보편성을 갖는다. 따라서 모든 학생에게 동일한 내용과 수준의 교육을 제공하는 것은 학교와 교사의 입장에서 필요한 측면이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 공교육이 지탄을 받고는 있어도 기여한 점은 분명히 있다. 문맹률이 이렇게 낮은 국가는 전 세계를 둘러봐도 드문 편이다. 이는 분명 학교가 자랑으로 삼을만한 자랑거리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처럼 모든 학생이 하나의 진로를 향해 미친 듯이 순위 경쟁을 펼치는 것은 문제다. 이에 대한 문제제기는 오래전부터 있어왔고 지금도 이범과 같은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고 있다. 문제는 문제제기만 있을 뿐 뾰족한 해결책이 그다지 없다는 데 있다.


 


   푸코는 학교가 ‘감옥’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여기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가끔 교사로서 하는 일이 교도관, 경찰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고 느낄 때가 있다. 아무래도 다인수 학급에서 교사가 수업과 학급운영을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해서는 통제와 관리가 필요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언제나 그렇듯이 일정 수 이상의 사람이 모이면 제도적 관리와 통제는 필요하다. 이에 대해서 특별히 잘못하고 있다거나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그러나 교육이란 활동은 사람을 대하는 것이고 관리와 통제를 하다보면 내가 무엇을 위해 앞에서 떠들어대는지 헷갈리는 경우가 많다. 내가 수업을 하는 것인지 조용히 시키는데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정신이 멍해지는 때가 요즘 들어 많아지고 있다.


 


   그런 와중에 ‘나무에게 배운다’ 란 이 책을 읽은 것은 나름 시의적절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든다. 이 책은 과거 대목장이었던 ‘니시오카 스네카즈’ 씨가 구술한 것을 정리한 것으로 그의 경험과 삶이 고스란히 묻어나온다.


 


   일본인이 쓴 책이라 잘 모르는 부분도 있지만 대목장으로서 그의 나무에 대한 태도와 목수로서 대목장으로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방법에 대한 이야기는 가슴 깊이 와 닿았다.


 


   저자는 나무도 성깔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살아있는 생명체니 나무 역시 인간처럼 개성이 있다는 것이 신기한 일은 아니다. 다만 나무에 대해 잘 모르고 관심이 없다보니 잘 느끼지 못했다.


 


   성깔이라는 것이 일반적으로 부정적으로 사용되기는 하지만 이는 사용하는 방법에 달린 문제다. 성깔이 있는 나무를 쓰자면 번거롭지만 잘 사용하면 그쪽이 오히려 좋을 수도 있다. 성깔이 있는 나무는 생명력 또한 강하다. 우리가 위인이라 부르는 사람들을 보면 나름 다 한 성깔 한 사람 아닌가? 성깔을 살려 나무를 사용해야 비로소 천년을 버틸 수 있는 건축물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기술이 발전하면서 편리한 도구들이 등장했고 굳이 나무를 제련할 때 그 성격을 신경 쓸 필요가 없어졌다. 나무의 성격이 아예 나오지 않도록 합판으로 바꿔버리고 다루기 쉬운 나무를 찾는데 노력을 기울인다. 마치 말 잘 듣는 학생을 찾고 학생들의 개성을 살리지 못하고 획일화된 교육내용을 전달하는데 급급한 내 모습과 같아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어떤 유행에 따라 획일화된 방법론을 적용하는데 급급한 학교의 모습도 마찬가지 아닐까? 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방법의 획일화는 다양한 목재의 성질을 제거하여 합판으로 만드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무를 대하는 것과 학생들을 대하는 것을 동일선상에 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나무가 개성이 있다 하더라도 목수와 나무의 관계는 주체과 객체가 명확한 편이다. 반면 교사와 학생 간의 관계는 비록 학교라는 제도적 틀 안에서 제약을 바고 있긴 하지만 주체와 객체가 불분명한 측면이 있다. 때로는 교사가 학생에게 배울 때도 있고 학생 역시 교사를 능동적으로 대한다는 점에서 저자의 주장을 넘어선 교육철학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다.


 


   대목장으로서 저자의 경험 역시 많은 생각과 과제를 던져준다. 대목장은 다른 목수들보다 우월한 능력을 지녀야함은 물론이고 다른 목수, 미장이, 석수장이들을 조화시켜 건물을 완성시켜야 한다.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를 떠올리게 하는 저자의 이야기는 교사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어떻게 보면 이상적인 교사는 이 대목장의 모습 아니겠는가? 다양한 학생들의 개성을 조화시켜 하나의 학급을 꾸려나가고 그들을 길러내는 것은 전문성이 필요한 일이다. 거기에 학생들이 갖추어야할 보편적 교양 역시 가르쳐야 하니 쉬운 일이 아니다. 애정과 사명감이 없다면 걸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러한 대목장과 같은 모습을 갖추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저자는 주로 절 건축물을 상대로 솜씨를 발휘한 듯하다. 그래서인지 책에 나오는 에피소드 중에 불교 경전을 읽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하나의 수업을 잘 하기 위해서는 자료를 찾고 멋진 수업기법을 연구하는 것으로 충분할지 모른다. 그러나 한 명의 수업 장인이 되기 위해서는 학생들의 개성을 길러주고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을 가르치는 것은 이러한 노력에 다양한 독서와 경험이 덧붙여지지 않으면 안 되는 것 같다.


 


   교컴지기 함영기 선생님은 새학기를 맞이하여 어떤 연수를 듣는 다던가 특별한 준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책을 읽고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누며 자신을 가다듬는데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스킬도 필요하긴 하지만 그 이전에 한 명의 인간으로서 자신을 가다듬는 것, 이른바 ‘수신’이 교사의 전문성을 기르는 데 꼭 필요한 것 아닐까? 우리학교가 독서모임을 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가 아닌가 싶다. 기술적 측면만 보면 책 읽고 독서모임 했다 해서 수업이 변하지는 않는다. 특히 이번에 읽은 이 책은 목수의 삶과 자세 이야기기 때문에 당장 적용할만한 뭔가는 발견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고 모임을 하는 것은 바로 ‘수신’을 위해서 아닌가 싶다.


 


   자유주의자로서 나는 아무래도 애들의 의견에 좀 휘둘리는 경향이 있다. 굳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면 허용해야지 하는 생각이라 그렇다. 그게 내 문제점인 것 같다. 아직 아이들은 독립된 개인이 아니다. 민주시민으로서 준비된 존재도 아니다. 그 과정에 있는 아직은 보살핌과 교육을 받아야하는 존재다. 아이들의 개성을 잘 길러주면서도 가르쳐야 할 것을 잘 구분하여 반드시 가르칠 수 있도록 자신을 다듬을 필요가 있겠다. 아이의 인권에는 자유권도 있지만 교육권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교육의 의미에 대해 더 고민하고 노력할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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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로그스 2014-03-20 공감(4) 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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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고백을 듣는 거인 새창으로 보기 구매

책을 덮자마자 작년 가을에 서현의 <배흘림 기둥의 고백>을 읽고 난 후 느꼈던 전율이 


나를 기습했다.말못하는 기둥의 고백에 웬 전율이냐고?더군다나 건축이론서로 분류될 법한 책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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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rthes 2013-05-02 공감(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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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함께 살기 새창으로 보기





숲책 읽기 71






나무와 함께 살기


― 나무에게 배운다


 니시오카 쓰네카즈 글


 최성현 옮김


 상추쌈 펴냄, 2013.4.5.






  나는 나무하고 함께 삽니다. 내가 아이와 심은 나무가 있고, 우리 집 나무에서 가지를 쳐서 옮겨심은 나무가 있습니다. 아직 우리 땅은 그리 넓지 않아서 나무가 몇 그루 없지만, 아침 낮 저녁으로 우리 나무를 돌아봅니다. 아이들도 날마다 나무를 마주하면서 인사를 합니다. 날마다 나무를 들여다보면, 얼마나 자라는지 헤아릴 수 있고, 겨울눈이 날마다 어느 만큼 부풀다가 어느 날 비로소 한꺼번에 터지는지 알 수 있어요.




  우리 집 나무는 마을에서도 좀 늦게 꽃이 피고, 이 고장에서도 좀 늦게 꽃망울이 터집니다. 다른 집이나 마을에서는 훨씬 일찍 동백꽃이 피고 매화꽃이 터지지만, 우리 집은 다른 집이나 마을과 견주면 보름 남짓 늦게 꽃송이가 열려요. 그러나 그리 대수롭지 않습니다. 천천히 피어나는 꽃은 한결 오래도록 꽃내음을 나누어 줍니다. 찬찬히 피어나는 꽃은 더 짙고 깊은 꽃내음을 오래오래 우리한테 베풀어 줍니다.






.. 자연이 가르쳐 주는 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자연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합니다 … 책을 읽는다거나, 지식을 지나치게 채워 넣게 되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자연이나 자신의 생명에 관해서는 무지해집니다 … 스스로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연을 스스로 깨우쳐야 합니다 … 한 그루의 나무라도, 그것이 어떻게 해서 씨앗으로 뿌려지고 어떻게 다른 나무와 겨루며 컸을까, 거기는 어떤 산이었을까, 바람이 심한 곳은 아니었을까, 햇빛은 어느 쪽으로 받았을까, 저라면 이런 생각을 합니다 ..  (20∼21, 22∼23쪽)






  나는 아이들과 함께 이 마을에서 땅을 차츰 넓혀서 나무를 심어서 누릴 자리를 꾸준히 늘릴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나무가 우거진 숲처럼 보금자리를 가꾸면, 우리는 언제나 맑으면서 밝은 바람을 마실 수 있어요. 나무가 잘 자란 보금자리에서는 볕이 더욱 따스하고, 그늘이 더욱 시원하며, 노래도 웃음도 훨씬 싱그럽습니다.




  나무가 있기에 벌과 나비와 새가 함께 어우러집니다. 나무가 있으니 수많은 새가 우리 집을 거쳐서 다리쉼을 하다가 다시 날아갑니다. 나무가 있어서 우리 집은 멀리서 바라보아도 쉽게 알아볼 수 있습니다. 나무가 있는 만큼 아이들은 나무를 둘러싸고 놀 수 있습니다.




  가만히 보면, 우리는 먼 옛날부터 나무하고 함께 살았습니다. 나무 열매를 얻기도 하지만, 나무를 베어 집을 짓고 살림을 짭니다. 나뭇가지를 끊어서 잘 말린 뒤 장작으로 삼습니다. 나무는 사람과 함께 노래하면서 더욱 푸르게 우거지고, 사람은 나무와 함께 춤추면서 더욱 아름답게 보금자리를 가꿉니다.






.. 나무가 살아온 만큼 나무를 살려서 쓴다고 하는 건 자연에 대한 인간의 당연한 의무입니다 … 나무는 대자연이 낳고 기른 생명입니다. 나무는 죽어 있는 물건이 아닙니다. 생물입니다 … 옮겨 심을 때, 그 나무를 그대로 경쟁시키면 이천 년 이상 자랄지도 모른다는 생각 따위는 아예 하지 않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나무를 키워 조금이라도 더 많은 나무를 키워 내자는 생각이기 때문에 별 수 없는 일이지만 … 오래된 나무는 놀랍게도 만져 보면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  (39∼40, 45, 59쪽)






  니시오카 쓰네카즈 님이 나무한테서 배운 이야기를 입으로 들려주어 빚은 《나무에게 배운다》(상추쌈,2013)를 읽습니다. 글쓴이는 나무를 만져서 집(또는 궁궐)을 짓는 일을 했다고 합니다. 언제나 나무와 한몸이 되어 움직였고, 늘 나무와 한마음이 되어 삶을 바라보았다고 합니다.




  이 책은 일본에서 ‘큰 나무장이’ 한 사람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한국에도 나무장이는 무척 많습니다. 다만, 한국에서는 나무장이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 적이 몹시 드뭅니다. 한국에서는 나무장이뿐 아니라 여느 시골사람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일도 몹시 드물어요.




  시골에서 흙을 만지는 사람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신문이나 방송에 나오는 일은 매우 드뭅니다. 아이를 낳고 돌보는 사람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귀담아서 들으려고 하는 사람도 퍽 드뭅니다. 밥을 짓고 빨래를 하며 살림을 꾸리는 사람이 들려주는 이야기로 책을 짓거나 학교를 세우려고 하는 사람은 그야말로 찾아볼 수 없습니다.






.. 정말로 좋은 연장은 끝까지 사용합니다. 감상용 미술품 따위와는 달리 목수의 연장은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것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 자연석에 세운 기둥 밑바닥은 모양이 가지각색입니다. 지진이 와서 흔들리더라도 힘을 받는 방향이 다릅니다 … 같은 게 하나도 없기 때문에 마음에 들면 소중히 다룹니다 …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쓰지 않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자신의 마음에 드는 사람만으로 건물을 짓고자 하는 건 나무의 성깔을 파악하고, 그 성깔을 살려서 쓰라는 구전을 거역하는 일입니다 ..  (69, 76, 101, 133쪽)






  나무장이 니시오카 쓰네카즈 님은 나무만 다루지 않습니다. 손수 흙을 짓습니다. 스스로 먹을 밥을 스스로 얻습니다. 스스로 누리는 집을 스스로 짓습니다. 다만, 옷까지 스스로 짓지는 못하는구나 싶은데, 집과 밥과 옷을 스스로 지을 줄 알 때에, 비로소 삶을 스스로 짓습니다. 집과 밥과 옷을 스스로 짓지 못한다면, 삶을 스스로 짓지 못해요.




  학교를 오래 다닌들 삶을 짓지 않습니다. 교사나 교수가 되어 일을 하기에 삶을 가르치거나 물려주지 않습니다. 농사꾼이 가장 훌륭하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 흙을 지으면서 살림을 이룰 줄 알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흙을 지을 적에는 해와 바람과 물을 알아야 하고, 해와 바람과 물이 살찌우는 뭇목숨을 알아야 하며, 해와 바람과 물이 어우러져서 이루는 숲과 들, 이른바 풀과 나무를 알아야 할 테지요.






.. 자기 생각으로 차 있으면 스승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순진한 마음이 아니면 배움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 틀에 맞춰 지식만을 집어넣으며 경쟁을 시키는 방법이 교육이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 통째로 암기하는 것만으로는 새로운 것을 향해 나아갈 수 없습니다 … 집을 짓는다면 거기 살 사람들의 마음이나 생각을 받아들이고, 그 뜻을 짐작하여 지으라는 것입니다 ..  (93, 112, 119, 184쪽)






  손수 삶을 짓던 옛사람이 ‘나무’라는 낱말을 지었습니다. ‘숲’이라는 낱말과 ‘풀’과 ‘꽃’이라는 낱말도 손수 삶을 짓던 옛사람이 지었습니다. 임금이나 지식인이 이런 낱말을 짓지 않았어요. 임금이나 지식인은 그저 중국에서 한자를 끌어들여 중국을 섬겼을 뿐입니다. 오늘날 대통령이나 권력자나 지식인은 중국 한자말이나 일본 한자말이나 영어나 여러 서양말을 섞어서 지식을 자랑할 뿐입니다.




  삶을 짓기에 말을 짓습니다. 삶을 누리기에 이야기를 누립니다. 나무 한 그루를 만지면서 집을 짓던 나무장이는, 나무가 자라는 숲에 보금자리를 이루어 손수 삶을 가꿀 때에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운 집을 지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줍니다.




  나무한테서도 배우고, 흙과 물한테서도 배우며, 해와 비와 바람한테서도 배웁니다. 아기한테서도 배우고, 이웃한테서도 배웁니다. 우리는 누구한테서나 삶을 배우고, 누구한테서 사랑을 베풉니다. 함께 짓는 삶이요, 함께 사랑하는 하루입니다. 나무 한 그루에서 비롯한 연필과 종이가 예쁘게 만나 책 한 권이 태어납니다. 4348.3.20.쇠.ㅎㄲㅅㄱ






* 군말


‘번역’을 어떻게 손볼 수 없을까? ‘직역’이 아닌 ‘번역’이 되어야 할 텐데. “한 그루의 나무” 같은 안타까운 일본 말투가 너무 자주 나온다. 그리고 누가 누구한테 무엇을 가르친다고 할 적에는 ‘-에게서 배운다’고 한다. ‘-에게 배운다’가 아니다. ‘위’나 ‘속’이라는 말도 너무 잘못 쓴다. “자연석 위에 세운 기둥”이 아니라 “자연석에 세운 기둥”이고, “일본 문화 속에서”가 아니라 “일본 문화에서”이다.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숲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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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5-03-20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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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치 2016-10-13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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