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11

정치/경제/사회 게시판 - 요모타 이누히코, 박유하를 변호하다

정치/경제/사회 게시판 - 요모타 이누히코, 박유하를 변호하다


요모타 이누히코, 박유하를 변호하다
dazzling

http://theacro.com/zbxe/5339500
2017.07.07 12:36:36
5206

시사

http://parkyuha.org/archives/5344

위안부이슈는 여성주의 시각의 담론을 널리 알릴 필요가 있어요. 어느 한 문단 빠뜨릴 게 없이 글이 좋네요. 그 중 한국가부장문화의 부끄러운 자화상은 극렬히 비판받아야 함.

한국에서는 1970년대부터 80년에 걸쳐, 몇 편의 위안부 영화가 제작되었다. 1974년 시점에서 나봉한 감독(불명)에 의해『여자 정신대』라는 작품이 촬영되었다. 필름은 남아있지 않고, 영화연구가인 최성구 씨가 최근 발굴한 신문광고를 통해서만 간신히 그 존재를 알 수 있을 뿐이다. 영어 제목을 Bloody sex라 하며「위안부 8만명의 통곡. 영화 역사상 최대의 충격을 가진 문제의 대하 드라마」라는 선전문구가 기재되어있다. 박정희 군사정권 하에서는 여성의 나체를 포함한 에로틱한 영화표현은 엄격한 검열 대상이였다. 때문에 제작자와 감독은 일본군은 역사적 만행을 규탄한다는 도덕적 구실 아래, 에로틱한 묘사를 듬뿍 담은 필름을 제작한다는 발상을 했다. 한국인에 의한 강간장면은 안 되지만, 일본의 광기의 군대가 강간을 한다면 역사적 사실로써 표상이 용서받는다는 한국인의 민족감정을 역으로 이용한 제작 자세를 알 수 있다.

내가 실제로 한국의 극장에서 볼 수 있었던 위안부 영화는 이상언감독의 『종군위안부』다. 1980년대 초반 일이었다. 이 감독은 야구선수 장훈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은 사람으로, 필모그래피를 참고하면, 아마도 소재를 고르지 않고 주문에 따라 감독하는 사람인 듯하다. 『종군위안부』는 호평이었기 때문에 시리즈화 되었다고 들었다. 제작의도는 『여자 정신대』의 연장선상에 있다. 조선인의 무고한 처녀들이 납치되어 위안소에 갇혀, 밤낮으로 일본군인에게 강간당한다. 그러나 영화 도중부터는 일본인 병사라는 사실은 아무래도 좋은 것이 되면서, 단순한 남녀의 성행위만이 몇 번이고 이어진다. 이러한 영화가 한국에서 사회적으로 규탄당하지 않고, 당당하게 제작된 것은, 아마도 위안부 문제에 관여하는 지식인들이 자국의 영화라는 미디어를 철저히 경시하여, 그 존재를 모르거나, 학문적 대상으로 논할 가치가 없다고 경시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http://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01597808

2009년 3월 8일, 일본군 ‘위안부’의 명예와 인권을 위한 <전쟁과여성 인권박물관>의 착공식이 서대문 독립공원에서 거행되었다. 그러나 서울 시로부터 박물관의 사업 인가를 받고 착공식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독립 유공자단체의 반대와 비용 부족 등의 이유로 끝내 공사가 진행되지 못했다(국민일보, 2010년 8월 11일자). 광복회를 비롯한 독립유공자단체는 기자회견을 통해 독립공원 내에 ‘위안부’ 기념관을 건립하는 것은 “독립 운동을 폄하시키는 것으로 순국선열에 대한 명예훼손”이라고 주장하였다(국민일보, 2008년 11월 3일자). 여기에서 독립유공자단체의 가부장적인 시각을 일일이 지적할 여유는 없지만, 이 논쟁이 던지는 의미는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다시 요모타 이누히코 씨의 <박유하를 변호하다>로 돌아가면 이런 단락도 나와요.

박유하는「제국의 위안부」마지막 부분에서 정창화가 1965년에 감독한 『사르빈강에 노을이 진다 』라는 영화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 책 중 영화에 대한 언급이 있는 유일한 곳이다. 무대는 미얀마의 일본군 주둔지이다. 조선인 위안부 여성이, 그녀가 배치된 「친일파」학도병 장교에게 말을 건다. 자신은 간호사가 된다고 듣고 이 곳에 속아서 왔다. 당신은 아직 일본제국주의가 신사적이라고 믿고 있는가라고 그녀는 말한다. 이 장면으로부터 판명되는 것은, 영화가 제작된 1960년대에는 한국인은 위안부를 둘러싼 90년대에 확립된 공식적 기억과는 다른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 위안부는 모든 비참함의 근원에 일본제국주의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지만, 자신이 이곳에 있는 것은 강제연행의 결과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사르빈강에 노을이 진다』는 (오늘날, 「예술적 영화」범주 안에 들지 못했기 때문에 한국의 영화연구가가 이에 대해 언급하는 일은 없지만) 이렇게 강제연행의 신화가 집합적 기억으로서 인위적으로 형성되기 이전의, 일반한국인의 역사인식을 알기 위한 귀중한 자료로 존재하고 있다.


저도 고작 몇 년 전에는 위안부할머니들의 서사는 일본경찰이 백주대낮에 한국 소녀들을 강제로 연행해가는 풍경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치만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 논란 때문에 좀 더 실재한 사실에 근접하게 됐던 거예요. 저만 무지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요모타 이누히코 씨가 상위의 단락에서처럼 직접적인 강제연행이 아니라 간호사가 될 줄 알고 취업했다가 위안부로 전락하고 만 에피소드를 한국영화에서 발견한 것만으로도 진실한 역사인식이 존재했음을 증명하는 거라며 반색하는 모습을 보니 정대협은 그동안 무슨 일을 벌인건가...라는 생각도 들어요. 정대협의 주장이 그렇게 일방적으로 극단적이기만 했나요. 이거는 제가 잘 모르는 부분이에요. 그것이 사실이라면 과연 정대협의 치열했던 정치성이 '온전히' 할머니들을 위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나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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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mewhere unwritten poems wait, like lonely lakes not seen by any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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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08 14:40:18
dazzling


"한국의 진보 미술계는 미술의 인문주의와 보편성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이들이 말하는 진보, 이들이 공감하고 눈물을 흘리는 인간의 비극은 민족주의의 틀을 넘어서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가 현대미술사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미술이 언제나 기존의 인식과 관념을 깨뜨리면서 나아가는 것 아니었던가. 그런 점에서 한국의 진보 미술은 현대적이지도 않고 진보적이지도 않다. 결국 한국 진보 미술의 과제는 민족주의라는 한국 좌파 일반의 굴레를 벗어나는 것이다. 한국 미술의 진보는 이러한 의식의 개혁과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민족주의에 의해 침윤된 일면적 피해 서사의 조형물로서의 소녀상의 극복은 민족주의 예술관으로부터 벗어나 인문주의 예술관으로 나아가는 길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만이 한국의 진보 미술이 진정 진보적으로 되는 길이라고 믿는다."

-최 범, '소녀상과 한국 미술계의 의식구조',
<'위안부' 동원과 재현의 정치학> 심포지엄(7월 1일) 발표 원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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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소녀상이 예술작품이라는 생각을 미처 못하고 있었는데 조형물이니까 예술품이 맞네요. 역시 예술하는 분들이 사고가 많이 열려 있고 자유로와요.


2017.07.08 20:00:00
에밀졸라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일제시대는 한쪽만 과장된 역사죠
식민 지배를 받았던 나라에서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지만 진보가 그것을 이용한다는 것은 아이러니죠

일본의 식민지배 시대에 한국사람의 평균 수명 유아사망율 교육등이 엄청나게 발전했다는 것은 실증적인 사실이죠
그리고 일본이 조선에 엄청난 투자를 했고 실제 총독부 건물이나 서울역사 그리고 공립학교를 보면 당시 일본보다 별로 뒤떨어지지도 않죠
또 조선을 다른 여타 식민지 국가와는 다르게 취급하고 대우도 일본사람 다음으로 했고 판검사 도지사 군수등을 조선사람으로 임용한 사례는 다른 제국주의 국가의 사례에서는 찾아보기가 힘들죠
그렇다고 일본에게 고마워해야하느냐 아니죠
그건 조선을 영구지배하기위한 투자의 개념이니까요


위안부 역시 여러가지 형태였죠
그중 하나를 가지고 일본 우익은 자발적인 매춘이거나 상인들의 행위이다라고 하는 것이고
그런데 한국전쟁때 월남전때도 군인 상대로 매춘은 있고 그것은 당국의 보호를 받았죠
물론 일본군처럼 야만적이거나 강제적이지는 않았죠


저는 고노 담화로 한일간 과거사는 정리 되었고 우리 정부가 그걸 빌미로 일본과 관계 악화를 하는건 반대입니다,
그냥 일본의 공식입장은 고노담화처럼 일본 정부가 스스로 조사해서 강제성 인권유린이 있었다고 했으니 그걸 공식결론으로하고
여타 망언이나 행동에 대해서는 개인의 일탈로 치부하고 고노담화 공문을 발송하는 것으로 끝내야하는데
일본 우익도 그렇고 우리 좌파도 그렇고 정부도 그렇고 국내 정치에 이용을 하죠
위안부 할머니들은 진즉에 우리 정부가 챙겨서 충분한 보상을 했어야 하는 일이고 지금이라도 그렇게 해야 일본이 돈 몇푼으로 장난질을 치지 않죠
저는 식민지 시대 과거사나 위안부에 있어 일본보다 우리 정부의 처리가 더 못마땅합니다,
한마디로 빌미를 주고 어리석은 대응을 하고 있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