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16

불교언론-25. 안정애착 - 법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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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안정애착

 황옥자 교수 승인 2015.07.21 15:42 댓글 0기사공유하기



아이가 보내는 작은 신호에도 민감하라



처음 본 아이와 우연히 눈이 마주쳤는데 이 아이가 환한 얼굴로 방긋 웃을 때 우리 마음도 덩달아 환해짐을 느낀다. 곧 아이의 부모를 쳐다보게 된다. ‘아이가 참 밝구나’라는 생각과 더불어 부모도 그렇게 밝은 사람인지 확인해보고 싶은 호기심에서다. 우리는 누구나 밝고 안정된 사람을 좋아한다. 그러나 이러한 특성은 어느 날 갑자기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아기 때부터 점진적으로 길러지며 엄마와 상호작용의 질에 의해 가장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울기·웃기·매달리기·옹알이 등

자녀 행동에 반응하며 스킨십

긍정적 애착관계는 정서 발달



아기는 매우 연약한 존재로 태어나지만 감정을 표현하고 상호작용하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초기에는 부모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며 돌봄과 보호를 받으며 생존하게 되는데 신기할 만큼 아기는 누군가 자신을 보살펴주고자 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신호체계를 잘 사용한다. 예컨대 울기, 웃기, 매달리기, 옹알이, 쳐다보기 등은 부모로 하여금 관심과 돌보고자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행동들이다.



옷을 입고 외출하려는 엄마를 보면 아이는 떨어지지 않으려고 매달리며 운다. 이때 엄마가 아이의 울음을 무시하거나 야단친다면 아이 마음은 실망과 불안으로 가득 채워질 것이다. 하지만 “엄마와 떨어지기 싫구나, 예쁜 아가야! 엄마가 빨리 일마치고 돌아올 테니 조금만 기다려 줄 수 있지?”라고 말해준다면 아이는 엄마가 하는 말의 의미는 자세히 모를지라도 표정을 보고 안심한다. 이것이 아이의 신호에 부모가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이며 이런 경험이 많이 쌓일수록 엄마와는 긍정적이며 안정된 관계를 이루게 된다. 이를 일컬어 보울비(John Bowlby)는 ‘애착’이라고 명명했다. 아이가 안정애착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엄마의 양육행동이 중요하다. 아기가 보내는 작은 신호도 놓치지 않고 민감하게 알아채어 그에 맞는 반응과 양육을 하기, 안아주기와 같은 신체적 접촉하기, 아이에게 따뜻하고 긍정적으로 상호작용하는 부모의 태도 등이 중요한 변인들이다.



영아기에 형성된 안정애착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강한 힘으로 작용하며 인지, 정서, 사회성은 바로 안정애착을 기반으로 발달해간다. 그러기 때문에 영아기 동안 부모로부터 안정적이고 충분한 돌봄을 받지 못하면 아이는 제 발달에 장애를 초래할 수 있고 불안정한 정신건강의 시작도 바로 이시기의 부모와 관계에서 시작한다. 안정애착아는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자신감이 있으며 새로운 일에 호기심을 갖고 도전하거나 탐색하려는 적극성이 있다. 청소년기에는 또래친구와 좋은 관계를 형성하며 남을 배려하고 매사에 적극적이면서 자신감이 있다. 이러한 특성은 대부분의 부모들이 추구하는 인간상이며, 행복을 위해 지녀야할 성품이기도 하다.



‘맛지마니까야’ 사자후 품에는 안정적이고 올바른 부모역할이 왜 중요한지 예를 들어 설명한 부처님 말씀이 있다.



“한 마리의 암탉이 있다. 열 개나 열두 개의 계란을 올바로 품고 올바로 온기를 주고 올바로 부화시키면, 그 암탉은 ‘오, 나의 병아리들이 발톱이나 부리의 끝으로 껍질을 쪼아서 안전하게 껍질을 깨고 나와야 할 텐데’라고 원하지 않더라도 병아리들이 발톱이나 부리의 끝으로 껍질을 쪼아서 안전하게 껍질을 깨고 나올 수 있다.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용맹을 수반하는 조건들을 갖추면 그는 껍질을 깨고 나올 수 있으며, 올바로 깨달을 수 있으며, 위없는 안온을 얻을 수 있다.”



이처럼 초기의 부모역할이 올바르고 안정적으로 수행된다면(因), 자녀는 순리에 따라 자연스럽게 바른 인격을 갖춘 사람으로 성장해간다(果)는 의미의 말씀은 왜 자녀를 안정애착아로 키워야 하는지 그 실상을 자각하게 만든다.



황옥자 동국대 명예교수 hoj@dongguk.ac.kr





[1303호 / 2015년 7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