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01

1812 Chang-Seong Hong 일본의 도원道元(Dogen)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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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g-Seong Hong18to nnDsgamlfelnoctciermbeerid n2u0t1g8  ·
일본의 도원道元(Dogen)선사 

철학자 가운데도 문장이 훌륭해서 읽을 때마다 그 지성의 예리함뿐 아니라 문장의 수려함에도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17세기 프랑스의 데카르트 같은 이는 ‘이렇게 명문을 구사하는 철학자였기에 근대철학을 더 성공적으로 시작했을 것’이라는 찬사가 붙을 정도로 맑고 매력적인 문장을 구사했다. 유럽에서 유명했던 많은 귀족 여성들이 –스웨덴의 여왕까지 포함해서– 평생 독신이었던 데카르트를 흠모했던 이유를 알 것도 같다.^^ 미국에서의 대학원생 시절 나는 근대철학이 전공은 아니지만 그의 라틴어 및 불어 원전 영어번역을 읽고서 그 아름다움에 감탄해 그의 책 <명상 Meditations> 영역본을 철학전공도 아닌 친구들에게 선물했을 정도였다. 물론 명문장은 그 영향력 때문에 가끔은 위험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나는 한때 독일어가 영어보다 쉬웠던 적이 있었는데, 10대와 20대 초반에 천하의 명문인 철학자 니체의 글을 읽을 때마다 심장이 뛰어 잠을 못 이룬 날도 많았다. 그런 니체의 철학과 바그너의 음악이 나치 독일의 국가 이데올로기와 음악이 되어 불행한 역사의 일부분을 구성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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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불교 공부를 주로 영어로 된 책들을 통해서 해 왔는데, 지금까지 읽은 모든 책들 가운데 지적으로 가장 세련되고 또 문장이 가장 훌륭한 것은 13세기 일본의 도원道元(Dogen) 선사의 글이다. 비록 영어번역을 통해서만 읽었지만, 발췌된 영문번역만 보아도 그의 글은 정말 숨 막힐 정도로 아름답다. 글의 내용은 중국이나 한국에 이미 몇 세기 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 많지만, 도원은 같은 내용이라도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아름답게 표현해 내고 있어서 그의 글은 한번 자리에 앉으면 다 읽지 않고서는 자리를 뜨기 어렵게 한다. 최소한 영어권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동아시아 역사상의 위대한 선사라면 단연 도원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의 책들 영어번역본을 구해 놓고도 분량이 많아 아직 체계적으로 읽지는 못하고 있는데, 내 전공인 형이상학과 심리철학 공부가 바빠서 이번 생에 시간을 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나를 더 놀라게 한 사실은 도원의 저술 상당부분이 한문이 아닌 중세 일본어로 쓰여졌다는 점이다. 한글이 창제된 시기가 15세기 중엽이었고 한글로 된 중요한 학술서가 나오기 시작한 때는 솔직히 20세기 이후라고 보아야 하는데, 역사에 길이 남을 일본어로 된 도원의 저술이 나온 것이 13세기였다는 점에 나는 대단히 충격받았다. 기적처럼 훌륭한 최고의 글인 한글을 가지고서도 오백년 동안 아무 제대로 된 독창적 저술도 완성하지 않았던 한국이 일본에 비해 어쩔 수 없는 인구나 영토 그리고 경제의 크기에서뿐이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뒤지게 되었다는 점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16세기의 퇴계와 율곡은 훌륭했지만, 그들이 한글로 저술을 완성했다면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이 읽고서 모두가 다 얼마나 많이 학문을 발전시킬 수 있었을까. 왜 그렇게 한글과 같은 최고의 자산을 가지고도 활용하지 않는 고집을 부렸을까, 어리석게도! 우리 정말 무명無明을 떨치고 분발해야 한다.
도원선사의 글 다섯 줄을 영어번역과 함께 소개해 보겠다. 비판불교의 마츠모토 시로는 도원이 기체론基體論(dhatuvada)을 결국 떨치지 못했다고 보고 있지만 그와 같은 대학 선배 교수인 하카마야 노리야키는 도원은 말년으로 갈수록 비판불교 입장에서 보아도 무리 없는 사상을 전개했다고 본다. 밑의 다섯 줄만 보면 하카마야 교수가 옳은 것처럼도 보인다.
“To study the Buddha’s Way is to study oneself. To study oneself is to forget oneself. To forget oneself is to be enlightened by all things. To be enlightened by all things is the dropping away of one’s mind and body, and the mind and body of others. No trace of Awakening remains, and this no-trace leaves traces endlessly.”
“불도佛道를 공부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공부한다는 것이다. 스스로를 공부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잊는 것이다. 스스로를 잊는다함은 만물萬物에 의해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만물에 의해 깨닫는다는 것은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그리고 다른 이들의 몸과 마음을 내려놓아 여읜다는 것이다. 깨쳤다는 자취는 아무 곳에도 남지 않지만, 이 무無자취는 끝없이 자취를 남긴다.”
한국에서 유행하는 마음공부가 지향해야 할 목표가 사실은 아뜨만이 아니라 무아無我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또 화엄의 법계연기法界緣起와 중관의 <윤회가 열반> 그리고 금강경金剛經의 향취가 물씬 풍기는 구절들이 뒤따른다. 선문 및 대승의 후기 견해가 점점 더 소급해서 초기 대승의 견해로 귀결되는 듯한 숨은 논리전개가 흥미롭다. 위에서 비판불교론자들의 타겟인 불성론佛性論을 읽을 수도 있겠지만, ‘불성’을 창조적으로 재해석해서 기체론(dhatuvada)이 아닌 방향으로 받아들인다면 그리 나쁠 것도 없겠다.
한편 도원이 한국 선문禪門의 주류인 간화선 계통의 임제종이 아니라 묵조선 계통인 일본 조동종의 창시자라고 해서 무조건 깔보아서는 안 되겠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아직도 일본 사람의 업적을 인정해 주면 친일매국노라는 소리를 듣는가? 나는 미국에 사니까 친미일지는 몰라도 친일한 적도 매국한 적도 없다. 오히려 이곳에서 강의할 때 일본 흉 봤다가 나중에 항의 받은 적이 있다.







90정승국, Gokin Moo-Young and 88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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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찬국

일본어를 못하는 입장에서 도겐 선사의 한국어 번역본이 달랑 얇은 단행본 한권뿐이라는 것이 아쉬웠던 적이 많았습니다. 교수님의 글을 읽고나니 일본어를 배우기 전에 영어로나마 속히 읽어봐야겠다는 셀레임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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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g-Seong Hong

제가 이곳 학생들에게 소개하는 도원선사의 다른 구절도 하나 더 올립니다. Awakening is like the moon reflected in water. The moon does not get wet, nor is the water broken. Though its light is vast and great, it is reflected in a tiny bit of water. The whole moon and the sky are reflected in dewdrops on the grass, or in just a drop of water. Awakening does not obstruct people, just as the moon does not break the water. A person does not obstruct Awakening, just as the drop of water does not obstruct the moon. The depth of the water is equal to the height of the moon. However long or short is the duration of the reflection, one realizes in the vastness or smallness of the water, the breadth and brightness of the moonlight in the 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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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찬국

Yumaa Hill 이리 아름다운 문장을 바로 옮겨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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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제동

손찬국 제가 번역한 <보리수가지치기:비판불교를 둘러싼폭풍>(2015,씨아이알)도 도겐에 관한 중요 쟁점을 논하고 있는 필독서입니다.ㅎㅎ 그리고 기호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일본인 인명은 일본음으로 읽어서 도겐이라고 표기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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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제동

그리고 지난 여름에 일본 동양대학에서 제1회 도겐연구국제심포지움에 저도 발표자로 참여했는데 제 다음 차례로 발표하신 UCLA의 William Bodiford 교수님이 최근에 <정법안장> 판본을 본격적으로 재검토하면서 영역을 새롭게 하고 있고 얼마 안 있어서 출간한다고 하셨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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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Yong Na

공과 연기에 대한 명문입니다. 영문이라도 구해서 번역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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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감천

묵조가 진짜 불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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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Bin Park

도겐선사의 생애를 다룬 영화 zen을 보고 너무나 감명을 받아서 한국어 자막을 만들어 돌린 적 있습니다. 거기에도 교수님께서 소개하신 글이 잠깐 나오지요.
도겐선사의 정법안장을 가려뽑은 <수증의>는 제가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한 번씩 읽곤 합니다. 첫 서문부터 명문장입니다.
"삶을 밝히고, 죽음을 밝히는 것은 불가의 일대사 인연이다. 삶과 죽음 가운데 부처가 있다면, 삶과 죽음이 없다. 다만 삶과 죽음이 곧 열반임을 마음에 새겨서 삶과 죽음으로써 싫어할 것도 없으며, 열반으로써 기뻐할 것도 없느니라. 이때에 처음으로 삶과 죽음에서 벗어나는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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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g-Seong Hong

또 다른 멋진 단락을 이곳에 소개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도 비슷한 취지의 단락 영문번역을 제 학생들에게 소개해 줍니다. 불교문화에 익숙치 않은 미국학생들도 도원선사에 대한 강의를 세 시간 정도 듣고 나면 학기말에 멋드러진 에세이들로 과제물을 제출하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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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ho Jang

박영빈 어허...이런 글을 800년 전에.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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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om-Soo Kim

한글자막은 여기에 있는데 CD1 CD2 라고 되어 있어서 어떻게 하나 했는데 찾아 보니 유튜브에
딱 맞는 동영상이 두개 올려져 있군요. 다음 댓글에 있습니다.
http://m.blog.daum.net/cj2614/6253947



BLOG.DAUM.NET
불교영화 - ZEN(2009) 자막 (수정본)불교영화 - ZEN(2009) 자막 (수정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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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om-Soo Kim

다운로드해서 위의 한글자막과 맞추니.. 한글자막이 뜹니다.
CD1 과 CD2 유튜브 주소는 다음 댓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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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om-Soo Kim

이건 CD2 인데 유튜브 검색때 올린 사람 이름과 같은 이름의 CD1 으로 하면 처음 것도 검색됩니다.
다운로드 후 한글 자막과 이름을 꼭 같이 하면 한글 자막이 뜰 것입니다.
아래 링크는 일본어.
https://youtu.be/gBLyWGqIkJY



YOUTUBE.COM
Zen, La vida de Dogen - cd2Zen, La vida de Dogen - cd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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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om-Soo Kim

지막 만들어 주신 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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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만항

브레이즈박사 필링붓다를 번역하면서 도겐 선사의 수증의 문장에 감탄한 기억이 새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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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 Kyeong Yu

왜 나에게는 도원선사의 그 다섯줄이 진정한 사랑에 대한 글로 읽히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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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만항

마지막 문장 31. 이른바 모든 부처님이란 석가모니 부처님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마음 그대로가 부처[卽心是佛]" 이다.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부처님들은 함께 성불할 때 반드시 석가모니 부처님이 된다. 이것이󰡒마음 그대로가 부처이다가 가리키는 참뜻이다.󰡒마음 그대로가 부처이다󰡓라 말하는 것은 누구를 의미하는가? 응당 주의 깊게 참구하여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부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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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g-Seong Hong

제가 과거에 한번 쓴 영어로 된 불교철학강독 교재에서도 인용한 구절이네요. 감사합니다. 한가지 덧붙일 것은, 이 교재의 편집자들은 한자문화권에서는 '마음'이라는 단어의 뜻이 너무도 다양하게 쓰여 왔어서 그 정확한 뜻을 헤아릴 길이 없다(hopeless)고 불평아닌 불평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서양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단어의 뜻을 분명히 하지 않는 것이 그 단어의 제대로된 쓰임새를 보전하는 길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저는 한국출신이어서 그 정도는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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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ng Un Sunim

몇 년전 도원선사 열반 550년을 맞아 일본 조동종의 대본산인 총지사에 초청되어 방문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자세히 알지 못했던 도원선사의 가르침을 듣게 되니 새롭네요. 한국 불교의 역사에서도 도원선사 못지 않은 고승들의 저술이 적지 않다고 생각하는데요. 다만 도원선사는 영문번역가들이 한 몫을 했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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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un Reu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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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lla Kim

I think Dogen is interesting and profound. By the way in the phrase, dropping off the mind and body, what does mind here efer to and what does body denote? if there is no distinction between them, what remains? than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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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g-Seong Hong

좋은 질문 고맙습니다. 언어를 어느 차원에서 사용하느냐에 대한 질문으로 이해해 보겠습니다. 선문의 전통에서는 주로 우리 일상에서 사용하는 언어로 대화가 이루어지기 마련이니, 여기서도 우리가 보통 말하는 몸과 마음, 심신으로 쉽게 받아들이는 쪽이 적절하다고 봅니다. 선은 일상의 대화로 '심오한' 진리를 다루는 매력 만점의 수행법이기도 하니까요. 위의 대화에서 도겐이 공, 진제와 속제, 법계연기 같은 단어를 써서 가르침을 폈다면 모든 매력이 사라졌겠지요. 김선생님이나 저같은 철학교수들이 인기가 없는 이유와도 관련있을 겁니다.^^ (물귀신 작전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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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현

도겐 선사에 대하여, 일본 조동종의 개조라는 것, 그리고 저 영화 한편 본 것 말고는 아는 것이 없었는데 이렇게 또 교수님 올려주신 글을 보고 관심이 생기네요.
다른 얘기입니다만 서구화 근대화 이전에도 일본의 지적 풍토는 좀 놀라운 데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빨리어 경전이 소개된 이후에야 ‘대승비불설’이 논란이 되고 그랬는데, 일본에서는 이미 18세기 초에 상공인 집안 출신 지식인 도미나가 나카모토가 아함의 일부가 붓다의 친설이고 대승경전은 아니라는 연구를 해서 논란을 일으켰던 일이 있었구요. 이런것들도 그 시대 일본의 인쇄, 출판문화가 꽤나 발달했기 때문에 가능했지 않았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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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ho Jang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10156989628362059&id=728397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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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ho Jang

도원선사 소개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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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Moon

출가생활도 강조 하셨죠. 그 출가란 염리심과 자비심이 철처히 바탕이 된 출가.그래서 그런가 계율수행도 훌륭하신분으로 더욱 다가 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