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 어렵지 않으나 더 중요한 건 ‘무아집’ : 전체기사 : 뉴스 : 한겨레
무소유 어렵지 않으나 더 중요한 건 ‘무아집’
등록 :2010-11-12 09:10
휴심정
무소유 즉문즉설 (3) 이남곡 좋은마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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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개입한 부 재분배, 진보의 본질 아니다
사람만이 대안…밤 깊을수록 새벽 멀지 않아
생명평화결사와 <한겨레>가 마련한 세번째 즉문즉설은 9일 오후 7시 서울 정동 프란체스코 교육회관 대성당에서 펼쳐졌다. 강사는 전북 장수 좋은마을 이남곡(66) 대표였다. 1979년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남민전) 사건으로 4년간 옥살이를 하고 나와 법륜스님의 정토회가 설립한 최초의 단체인 불교사회연구소 소장을 지냈다.
무아집·무소유를 모토로 살아가는 경기도 화성 ‘야마기시 실현지’공동체에서 8년 동안 산데 이어 전북 장수의 좋은마을을 일구어 7년째 무소유적 삶을 실현해온 그는 이 시대의 대표적인 진보 지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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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상대로 200여 명의 청중들은 ‘이 시대 무소유의 길을 묻다’는 주제에 걸맞는 질문을 쏟아냈다. 그는 60평생 새로운 문명을 탐구해온 순례자이자 지성답게 “금세기말에 무소유의 사회가 도래할 것”이라며 이런 사회를 위한 구체적인 진보들의 ‘연습 방안’까지 제시했다. 다음은 즉문즉답이다.
하고 싶은 것을 능력껏 하고, 필요한 만큼 쓰고 사는 사회
-선생님의 책 제목이 <진보를 연찬하다>이고, 공자의 <논어> 읽기 모임도 ‘논어 연찬’이라며 ‘연찬’이란 말을 많이 쓰는데, 연찬이 무엇인가.
=원래 야마기시(일본에서 유래한 공동체마을)에서 쓰던 것인데, 요즘은 정당에서도 쓰더라. 연찬은 단정하지 않고 고정하지 않고 모든 것에 대해 끝까지 열어놓고 함께 찾아가 깨달아가는 것을 말한다. 공자의 <논어>를 보면, 당시부터 연찬으로 연상할만한 내용이 나온다. 공자는 ‘군자는 세상 모든 일에 옳다고 하는 것이 따로 없고 옳지 않다고 하는 것이 따로 없이, 오직 의를 따를 뿐이다.’ (君子之於天下也 無適也 無莫也 義 之 與 比)고 했다. ‘무엇을 의(義)라고 단정하면 그것은 이미 의(義)에서 어긋난다. 그러나 고정하지는 않지만 끝까지 의(義)를 추구하며 그 의(義)에 따르겠다’는 것은 지금까지의 전통적인 사회적 실천에서 보면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말이다. 그러나 오늘과 같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소통하고 어떻게 올바른 의사를 형성할 것인가에 대해 참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공자는 또 ‘내가 아는 것이 있는가? 아는 것이 없다. 그러나 누구든 나에게 물어 오면 텅 빈 데서 출발하여 그 양 끝을 들추어서 끝까지 찾아보겠다.’(吾有知乎哉 無知也 有?黑吸叛?空空如也 我 叩 其 兩 端 而 竭 焉)고 했다. 표현상의 겸허가 아닌 진정으로 ‘내가 단정해서 안다고 말할 것은 없다’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불가지론(不可知論)이라는 또 하나의 단정에도 빠지지 않는다. 인간의 이성의 능력을 최대로 발휘하여 끝까지 진리를 탐구하려는 태도를 잘 나타내고 있다. 그래서 연찬은 20세기 야마기시 선생에 의해서 발견된 것이 아니고 인류의 지혜 탐구와 소통의 방식으로 보면 된다.
-왜 얼마든지 성공 지향적인 삶을 살 수 있었던 당신이 그런 무소유적 삶의 길을 걷게 되었는가.
=모든 사람이 함께 행복해지는 세상을 만들려는 로망이 청년시절부터 있었다. 인류 최고의 로망이 무소유사회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 로망을 지금껏 잃지 않고 살아왔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능력껏 하고, 필요한 만큼 쓰고 사는 사회가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총수요 초과하는 총공급이 가능해 나눠 써도 충분해
-그런 무소유사회가 가능하다고 보는가.
=우주의 자연계 안엔 원래 소유라는 것은 없다는 우주적 이치가 있다. 금세기 말이 되면 무소유 사회에 바탕을 둔 시스템의 사회가 될 것으로 믿는다. 아직은 무소유를 보편적인 시스템으로 운영하기엔 무리가 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능력껏 하고 자기가 필요한만큼 자유롭게 쓸 수 있어야 한다는 로망은 마르크스조차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금세기 안에 무소유 사회가 실현되리라는 것은 제 로망만은 아니다. 객관적인 조건들이 갖춰지고 있다. 민주화라는 시스템에 의해 노골적인 억압이나 착취가 사라져가고 있다.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좋은 여건이다. 또 부의 양극화와 생태계 파괴 때문에 잘 안보이겠지만 1970년대 후반 인류에겐 총수요를 초과하는 총공급이 가능해졌다. 충분히 나눠 써도 될만한 물건들이 있다. 이것은 무소유 사회를 가능하게 하는 물적 조건을 갖춘 것이다. 마르크스 시대엔 상상도 할 수 없던 조건이다.
-그런 조건이 갖춰져 있다고 해서 이기적인 인간들이 그런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
=과거 억압에서 해방되자니 이기심이 문제가 되고 있지만, 인간의 집단 지성이 이기심을 넘어서는 쪽으로 나아가게 할 것이다. 무소유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우리에겐 세 가지 연습이 필요하다. 첫째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남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될만큼의 의식이 성장해야 한다. 공자가 70에 도달한 의식이다. ‘마음 먹은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다’(종심소욕불유구 ·從 心 所 慾 不 踰 矩)는 정도가 되어야 한다.
두번째는 ‘능력껏 일하는 것’이 경쟁에만 의존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경쟁에 의해서만 능력이 극대화하는 것이 아니다. 경쟁에서 발현되는 것은 행복감을 가져다주지 못한다. 승리하더라도 자유롭지 않고 늘 불안하다. 하지만 공자의 <논어>에서 말한 충(忠)처럼 자발적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발견해 자기 내면이 몰두해 발현되는 능력은 몰아의 경지에서 행복해질 수 있다.
세번째는 ‘필요한만큼 사용하는 것’에 대한 연습이다. 과거의 낡은 소비 방식에서 벗어나 단순 소박한 삶의 연습이 필요하다. 이것은 ‘내핍하고 살아야지’하는 차원이 아니다. 욕구의 질이 달라져야 한다. 영적인 세계, 예술적인 세계에 눈을 떠 그렇게 즐기다보면 대량 소비가 아니라 단순 소박한 삶에서 더 큰 행복을 느끼게 된다.
많이 일한 사람이 적게 쓰고 적게 일한 사람이 많이 쓰려 한다면
-패권국가들이 이런 사회를 허용하겠는가.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가 보편화한 것은 패권국가가 만들었다기보다는 개성이 개화되는 세계인들의 의식의 흐름과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진정한 진보를 꿈꾼다면 이런 흐름을 연습장으로 잘 활용하면서 비전을 만들어가야 한다.
개인주의의 시대가 끝나면 다시 집단주의로 회기할 것으로 보는가.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공인(公人)주의’가 도래할 것으로 본다. 불교적으로는 세상의 모든 존재가 연결돼 있고, 기독교적으로는 신이 창조한 하나의 세계, 과학자들이 말하는 하나의 생명이라는 자각을 한 사람을 공인이라고 부르고 싶다. 이제 민주화라는 제도와 물적 토대가 만들어져 보통사람들이 자기 중심성을 넘어서도 될만한 조건들이 갖추어졌다.
-무소유공동체인 야마기시마을에서 살다 지금은 장수의 좋은마을에서 살고 있는데, 가족에서부터 무소유가 가능하던가.
=우리 부부는 한통장으로 살았다. 내가 소비를 많이 하는 편은 아니지만, 통장에서 쓰고 싶을 때는 마음대로 쓰고 불편함이 없었다. 그런데 아내가 100일 전 세상을 떠나고 큰아들이 통장을 관리하면서부터 좀 다르긴 하더라.(웃음)
-더 능력있고 많이 일하는 사람이 적게 쓰고, 일도 하지 않는 사람이 많이 쓰려 한다면 문제 아닌가.
=나도 이것을 가지고 많이 노력해보았다. 공자를 이것은 용서의 ‘서(恕)’로 표현했다. ‘나는 옳고 너는 틀렸어도 용서한다는 게 아니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이것은 사람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안된다. ‘서’는 사랑이다. 가족 안에서부터 이를 연습해야 한다. 가족 중에 장애를 가졌거나 능력이 없더라도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이를 넘어서지 않는가. 이런 사랑이 가족의 범위를 넘어서 실현될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야마기시 공동체에서 나온 이유는 운동의 보편성 회의 들어
-야마기시 마을에서 8년을 살았는데, 그곳에선 자급자족이 가능하고, 능력껏 일하고, 필요한만큼 쓰고, 무소유적 삶이 가능했는가.
=야마기시는 공동체라는 말을 쓰기보다는 야마기시실현지라고 자칭했다. 무소유사회를 꿈꾸던 사람들이 그런 삶을 구현해보기 위한 만든 것이었다. 그곳은 소유가 없다. 분배나 급료도 없다. 고도의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자기의 능력만큼 일하고, 필요한 만큼 쓰는 무소유 공동체다.
-그런데 왜 그곳을 나왔는가.
=하기 쉬운 얘기는 아니다. 현재도 그곳에서 생활하는 분들이 있으므로 폐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그곳에서 8년 생활을 해보니, 이 운동이 보편성을 뛸 수 있을지 회의가 들었다. 어떤 운동이든지 지구상 어디서든 적용 가능한 것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왔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시점에 두 아이들의 교육과도 맞물려 있었다. 큰아이는 야마기시 안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대안대학에 3년 동안 다녔다. 3년 간 전공이 오이였다. 오이라는 작물에 대해 연찬하고 깨닫는 과정이었다. 혁명적인 교육인데, 극단적이다. 이 아이가 그곳을 졸업하고 나서 일반 정규대학에서 제대로 공부해보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하지만 그 당시만 해도 야마기시실현지에선 아이들을 외부에 있는 대학에 보내지 않았다.
-무소유적 삶을 위해 소유에 대한 욕망만 줄이면 되는가.
=소유하지 않는 것은 사실상 크게 어렵지 않다. 무소유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아집이다. 아집이 있는 상태에선 제대로 된 연찬도 되기 어렵다. 내가 옳다는 전제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인류는 제도의 자유와 물질의 궁핍으로부터 자유를 얻기 위해 노력해왔다. 하지만 그런 제도와 물적 토대가 어느 정도 갖춰진 이제 무엇이 중요한가. 21세기엔 관념의 자유가 더욱 더 절실해 질 것이다. 아집으로부터 자유를 추구하는 경향이 높아질 것이다. 아집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밝은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
보수도 반성하고 비전을 얘기하는데 하물며 진보는…
-야마기시즘의 원조인 일본인들보다 한국 사람들은 창의적이고 독립적인데 반해 규칙을 따르기 싫어하고 리더로 나서려는 경향이 강한데, 이것이 공동체를 힘들게 하지 않는가.
=한국인들이 개별적 주체성이 강한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장점이나 단점으로 취급하기보다는 특성으로 봐야하지 않겠는가. 소공동체로 살아가는 것은 별로 권장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동업을 하지 않았으면 친하게 계속 지낼 수 있었던 사람들이 동업을 하면서 사이가 나빠지는 경우가 많다. 한국인들이 개별적 주체성이 강한 특성이 있다면 그 특성에 맞게 해가야 하지 않겠는가. 100일 전 세상을 떠난 제 아내와는 그런 의미에서 동지이자 도반이다. 아내(서혜란 전 여성민우회 부회장)가 꿈꾸던 것은 ‘선물의 사회’였다. 품앗이만 해도 댓가를 기대하는 것이다. 누구네 집에 가서 일을 해줬는데 노동을 되갚지 않는다면 다음엔 서로 싸늘해질 것이다. 댓가를 바라지 않고 누군가 여유가 있는 쪽이 일을 해주고, 무언가를 선물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아내는 그런 유통시스템을 꿈꾸었다. 불교에서 말하는 무주상 보시다. 댓가를 바라지 않고 보시하는 것이다.
-G20 반대를 위한 노동운동가들의 집회에 참여하고 왔다. 암울한 현실에서 역사를 대긍정하는 말이 와닿지 않는다.
=진보세력은 정부가 분재에 직접 개입에 소득과 부를 재분배하는 것을 진보라고 하는데 그게 진보의 본질이 아니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성은 보수쪽에서도 나오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시장의 인간화’이다.
노동쪽이 자본쪽과 대립하며 이익집단에서 벗어나 다음 세상의 주역이 되려면 다음 세상을 기획하고 운영할 비전을 길러야한다.
최근 여당의 유력한 다음 대통령 후보가 ‘어떤 나라가 우리나라의 모델일까 찾아보니, 결국 모델을 다른 나라에선 찾을 수 없고, 우리 스스로 모델이 되어야 한다’고 하는 얘기를 들었다. 놀라운 얘기다. 진보진영에서 그런 비전을 얘기해야 한다.
-금세기말에 무소유사회가 올 것이라는 희망을 믿고 싶지만 한쪽에선 말세라는 이 세상에서 그게 가능하겠는가.
=말세와 종말이라는 비관론은 별 의미가 없다. 그쪽보다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나아가는 게 의미가 있다. 지금 인류는 과거와 다른 시대에 직면했다. 모두 노동하는 세상도 아니다. 이제 20%만 일하고 80%는 노동하지 않는다. 앞으로 5%만 일하고 95%는 노동하지 않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인간이 자기 중심적인 자치만을 지키려다보면 자멸할 것이다. 이런 기로의 시대에 우리는 야만으로 돌아가느냐, 진정한 진보로 나아가느냐. 동물과는 다른 지적 능력을 지닌 인류 집단지성의 선택을 믿는다.
마음의 세계와 사회적 실천의 세계가 따로 놀았기 때문
-부처님이나 예수님도 말했지만 만들지 못한 세상 아닌가.
=부처님도 무소유를 얘기했고, 예수님은 더 과격하게 무소유를 얘기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현실과 이상이 만나지 못하고 평행선을 그은 것은 마음의 세계와 사회적 실천의 세계가 따로 놀았기 때문이다. 21세기는 마음과 현실의 세계가 함께 만나는 시대다. 진정한 혁명적인 변화기에 접어든 것이다.
지금은 보수적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 속에서 과감한 기부자들이 나오고 있다. 고무적인 현상이다. 노동세력 안에서도 새로운 비전이 싹터야 한다. 그래서 상승 작용이 일어나야 한다. 대안이 없다고 하는데 사람이 대안이다. 만인회를 한번 만들어보자. 쓸만한 인재들이 전부 사적 이익만을 위해 모두 대기업에 가서야 되겠는가. 만약 1만 명이 결집해 매달 회비 1만 원씩만 내면 1억이다. 그러면 매달 300만 원씩 주는 실무자 30명을 키울 수 있다.
엔지오의 실력은 결국 실무자들의 실력이다. 대기업처럼 월 500만 원은 주지 못하더라도 만약 300만 원을 줄 여력이 된다면 의미있고, 하고 싶은 일을 하려는 젊은이들이 많을 것이다. 이들이 새로운 사회를 준비해가도록 뒷받침해줄 수 있어야 한다. 억압된 세상에서 해방되려는 욕구가 강해지다보니 더욱 더 소유와 아집과 이기심이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밤이 깊을수록 새벽도 가까워진다. 요즘 세상이 닫히기보다는 열려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전망을 갖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보자.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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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락경 목사 ‘무소유 즉문즉설’ 네번째 강연
16일 오후 7시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수도회 교육회관에서 즉문즉설 네번째 강사로는 임락경(65) 목사가 나선다. 그는 개신교 목사이지만 단지 목사로만 규정짓긴 어렵다.
‘맨발의 성자’로 불렸던 이현필(1913~64)의 제자인 영성수도자이면서 30년째 중증장애인들을 돌보고 있는 사회복지가이자 유기농 농부 겸 민간요법계의 재야의사이기도 하다.
17살 때부터 빛고을 동광원에서 이현필의 가르침을 받으며 결핵환자들과 15년을 지냈던 그는 군인으로 복무했던 강원도 화천에 터를 잡아 1980년부터 시골교회를 꾸려가면서 중증장애인 등 30여명을 돌보는 한편 유기농 된장과 간장을 만들고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고 있다. 정농회 회장, 북한강유기농업운동연합 초대회장, 화천군 친환경농업인연합회 초대 회장, 상지대 초빙교수를 지냈으며, 감리교 제2연수원에서 ‘임락경의 건강교실’을 10년째 강의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세상을 쟁기질하는 바보들의 시골집 이야기>, <돌파리 잔소리>, <촌놈 임락경의 그 시절, 그 노래, 그 사연>, <먹기 싫은 음식이 병을 고친다>, <흥부처럼 먹어라 그래야 병 안난다> 등이 있다.
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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