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학교 교장의 ‘마을’ 이야기 – 웹진 「대산농촌문화」기획특집, 다시, 농촌
귀농학교 교장의 ‘마을’ 이야기3 일 전에 by 박기윤
2020신년호
그 많던 청년은 어디로 갔을까?
귀농한 지 6년여 지난 2010년경 우리 동네에 젊은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 조사해 본 적이 있다. 당시 청년회 가입 조건이 만 55세 미만이었는데, 회원 수가 자그마치 50명이 넘었다. 150여 가구의 3분의 1이 청년이었으니 굉장히 젊은 마을이었다. 그것도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들이 아니라 동네 토박이가 대부분이었으니 전국적으로도 특이한 곳이었다. 마을의 초등학생, 유치원생의 수가 100명을 넘었고, 중·고등학교가 잘 유지되고 있었다. 그 바탕에는 20년 넘게 마을의 소득을 지탱해 온 애호박 농사가 있었다. 외지에서 직장 다니며 월급 좀 받아봐야 집세 내고 생활비 쓰면 남는 것이 없는데, 그보다는 고향으로 들어와서 농사짓는 게 더 유리한 상황이었다. 즉, 먹고살 만하니 청년들이 고향을 떠나지 않았고, 그 자식들은 부모들이 다니던 학교를 다니는 순환구조가 형성되었다. 학교가 유지될 정도의 어린이와 청년이 있고, 그 부모 세대인 노인이 건강하게 함께 살아가는, 지금 기준으로 보면 참 이상적인 마을이었다.
2005년의 기록. 어린이와 청년이 있던 마을.
그때부터 10여 년이 지난 우리 마을은 어떤 모습일까? 초등학교는 매년 신입생 모집을 걱정해야 하고, 중·고등학교는 이제 존폐를 고민하는 상황이 되었다. 몇 년 전에는 우리 지역의 고등학생들이 폐교를 반대하는 서명운동에 나서 이슈가 되기도 했다. 작년 마을 대동회 때 참석했던 한 귀농인은 젊은 사람은 이장밖에 없고 노인들만 모여 있는 자리라 난감해서 화장실에 가는 척하며 나와 버렸다고 한다. 이렇게 된 데에는 소득 작물이던 애호박 농사의 쇠퇴가 기본으로 깔려있다. 30여 년 한 작물을 짓다 보니 연작장애도 많고, 무엇보다 인큐라는 비닐봉지 재배법이 확산되면서 일교차가 심한 지역적 장점이 의미가 없어진 탓도 크다.
그렇다면, 소득만 예전처럼 받쳐주면 우리 지역이 지속 가능한 모습을 유지할 수 있을까? 여전히 동네에 살고 있는, 당시 청년이었던 5060세대는 살림살이가 전보다 더 나아지고 씀씀이도 커졌는데, 왜 대동회나 부역 등 마을 행사에 얼굴을 내밀지 않을까? 도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가?
우리 농촌과 농민을 망하게 하는 것 중 하나가 보조사업이고 다른 하나가 지역개발
사업이라고 생각한다. 마을을 만들겠다는 것 자체가 기존의 농촌과 농민이 문제가
있으니 새롭게 바꾸겠다는 말인데, 이는 농민과 농촌을 계몽의 대상으로 보는 근본
적 한계를 가진 것이다.
‘마을’을 만든다고?
우리 동네가 마을 개발 사업에 눈을 뜬 것은 2004년부터다. 강원도형 마을 만들기 사업인 ‘새농촌건설운동’을 시작으로 녹색농촌체험마을, 산촌생태마을,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을 거쳐 산림복합경영, 산림탄소순환마을 시범사업까지 130억 원이 넘는 자금이 투입되었다. 사업 주체의 형태도 개발위원회, 영농조합법인, 마을기업, 사회적기업 등 유행하는 모든 틀을 활용했다. 개인에게 보조금을 밀어주어 살기 좋은 농가의 본보기를 만들겠다는 방식에서 마을이나 조합법인 등 단체를 지원하는 형태로 바뀌었다가, 몇 개 마을을 묶어서 개발하는 권역 사업으로 정부의 지원 방식이 바뀌는 그 틀과 지침을 따라가며 사업을 진행해왔다. 그렇게 농림부, 산림청, 농어촌공사 등 행정 그리고 교수, 박사 등 전문가들의 분석과 컨설팅을 따라 그 많은 돈과 시간, 지역 주민들의 노력을 투입한 우리 마을은 2004년보다 더 주민이 행복하고, 마을공동체가 살아있는 공간이 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현실은 150여 가구당 1억 원씩 나눠줘도 되는 돈을 쏟아붓고도 마을의 지속 가능성은 더 낮아지고, 공동체성은 오히려 사라져버렸다.
이런 마을이 전국적으로 우리 마을밖에 없다면 지역 주민들의 이기심이나 노력 부족 등으로 인한 실패 사례로 들면 되겠지만, 과연 그러한가? 과거의 사례뿐 아니라 현재 지자체나 정부에서 홍보하는 마을들 중에서 내일 당장 지원이 끊겨도 자체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곳이 몇 군데나 될까? 이렇게 마을 만들기사업이 들어간 대부분의 마을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면에서 비슷한 상황이라면,정부 주도의 지역개발 사업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 마을 만들기 사업은 도대체 왜 하는가. 이렇게 해서 만들려고 하는 마을은 어떤 마을인가.
농촌에서는 온갖 공동 노역과 의식개혁 활동을 해야 한다.
허상을 좇는 ‘마을 만들기 사업’
나는 우리 농촌과 농민을 망하게 하는 것 중 하나가 보조사업이고 다른 하나가 지역개발 사업이라고 생각한다. 그중 보조사업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가 있어왔고, 그 결과 직불제나 농민기본소득 등 대안도 제시되었다고 본다. 하지만 지역개발 사업은 어떠한가. 농특위에 컨설팅업체 출신이 들어가는 것을 보아도 정부가 바뀌거나 프레임이 바뀌는 것 관계없이 여전히 진행 중인 것 같다.
그러면 정부 주도의 지역개발과 마을 만들기 사업은 무엇이 문제인가? 마을을 만들겠다는 것 자체가 기존의 농촌과 농민이 문제가 있으니 새롭게 바꾸겠다는 말인데, 이는 농민과 농촌을 계몽의 대상으로 보는 근본적 한계를 가진 것이다. 그러니 농촌은 21세기 새마을운동의 대상이 되어 온갖 공동 노역과 의식개혁 활동을 해야 한다. 마을 도서관을 하나 만들려고 해도 먹고살기 바쁜 도시민들은 가만히 있어도 구청에서 시에서 알아서 다 해주는 데 반해, 놀고먹는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농사짓고, 소 밥 줘야 할 시간에 꽃길도 만들고, 쓰레기도 직접 줍고, 선진지 견학에, 하다못해 서비스 교육까지 받아야 한다. 이런 짓을 최소 3년에서 10년 정도 하고 나면 마을과 관계되는 일은 꼴도 보기 싫고 마을 사람들끼리 모이는 것조차 두렵다.
게다가 어떤 사업이든 간에 최종 목적은 마을 사람들의 살림이 좋아진다는 건데, 정부 지원사업 대부분이 업자들과 컨설팅회사나 돈을 벌지, 직접적으로 지역에 돈이 떨어지는 일은 없다. 그러니 처음에는 마을 사람들이 ‘뭔가 생기는 게 있겠지’라는 희망을 갖고 열심히 참가하지만, 그 사업을 마감할 때쯤 되면 실익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알게 되거나, 마을의 집행부 누군가가 돈을 먹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어느 쪽이든 마을은 분쟁에 휩싸이고 후유증을 앓게 된다.
선진지 견학을 다니는 농민들.
자, 여기 농촌공동체, 마을공동체라는 근사한 용어가 있다. 마을 만들기 사업은 마을공동체 회복이 목표이고, 마을이 공동으로 해야 하고, 수혜의 대상도 마을이다. 건물을 지어도, 농기계나 시설을 들여다 놓아도 공동소유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공동으로 일하면 망한다고, 동업하면 큰 일 난다고 100여 년간 머릿속에 박아놓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동업해야 착한 마을이란다. 그것도 소득 1억 원이 넘는 대농가와 500만 원도 채 못 버는 가구가 섞여 있는, 공통점이라고는 같은 마을에 산다는 것밖에 없는 이 자본주의 대한민국의 농촌에서 말이다. 이 있지도 않은 공동체라는 것을 회복하겠다고 관광, 체험, 교육(인성학교), 에너지 자립을 거쳐 이제는 복지, 치유, 사회 적농업까지 ‘농업의 다원적 기능’을 들먹이면서 실상은 한 분야를 강조하는 사업을 계속 추진해 왔다. 공동체라는 것은 누군가의 희생을 전제로 한다. 모두의 희생이든, 한 사람의 희생이든. 마을공동체도 마찬가지인데 특히 여성들의 희생이 바탕이 된다. 논밭에서 여성이 해 온 따끈따끈한 들밥을 지나가는 이웃과 함께 나누어 먹고, 마을잔치나 행사 때 부녀회원들이 부엌에서 음식을 해대는 게 아름다운 농촌의 정서가 살아있는 것이라면 그런 공동체는 당신들이나 만들어라.
정부 사업은 대부분 시범사업을 통해 모델을 만들고 그 방식을 확산한다. 그런데
이 방식은 정해진 사업 틀에 맞추느라 각 지역과 현장의 특성을 살리지 못한다. 사
람이 다르고 환경이 다른데 한 현장(마을)에서 성공했다고 다른 현장에서 성공하리
라는 보장은 할 수 없다. 오히려 정부가 개입하기 전에는 잘하고 있던 마을이 자기
의 개성을 빼앗기고 여러 마을 중의 하나가 되고 마는 경우도 있다.
지역과 현장의 요구에 따른 직접지불방식으로
정부 사업은 대부분 시범사업을 통해 모델을 만들고 그 방식을 확산하는 형태를 취한다. 그런데 이 방식은 결국 정해진 사업 틀에 맞추느라 각 지역과 현장의 특성을 살리지 못하고 전국이 다 그 모양 그 꼴이 된다. 마을마다 현장마다 사람이 다르고 환경이 다른데 한 현장에서 성공했다고 다른 현장에서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할 수 없다. 오히려 정부가 개입하기 전에는 잘하고 있던 마을조차 자기의 개성을 빼앗기고 여러 마을 중의 하나가 되고 마는 경우도 있다.
만약 사업 방식을 바꾸어, 어떤 마을에 매년 5천만 원 씩 10년간 돈을 직접 지급한다면 어떨까? 어떻게 쓰든지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대신 3년에 한 번씩 중간 평가를 통해 사업 이전보다 더 마을이 활력이 있는지, 인구는 늘어났는지, 삶의 만족도가 향상되었는지, 마을의 공동체성이 더 강화되었는지 등 수치가 긍정적이면 계속 진행을 하고, 문제가 있으면 보완하는 방향으로 가는 방식이다. 사업비 방식이 아니라 일종의 상금 방식의 운영인데, 어떻게 하든 지금처럼 정해진 사업의 틀에 맞춰 1~2년 내로 예산을 전부 집행하는 것보다는 더 좋은 성과가 나타날 것이라 확신한다. 그리고 그래봤자 10년 동안 겨우 5억 원의 돈을 썼을 뿐이다.
내가 이장이라면 나는 우선 중고 승합차를 한 대 사겠다. 그리고 여기저기에 흩어져 살고 있는 노인네들을 아침마다 마을회관으로 모셔 오겠다. 여기서 건강체조나 마사지도 하고, 마을 농산물로 식사도 대접하고, 영화관이나 병원이나 시장에도 모셔 드리겠다. 간단한 집수리나 공동급식, 운전 등 일을 할 사람은 동네 사람들을 채용해서 급여를 지급하겠다. 이렇게 10년이 지나면 우리 마을은 어떻게 변할까? 이렇게 사람에게 투자하여 내부 사람이 살기 좋은 마을이 되면, 자연히 여러 사회적 기능이 살아나지 않겠는가? 마을마다 현장마다 다양한 요구들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그런 방식은 불가능한가?
※필자 박기윤: 화천현장귀농학교장.
2004년 귀농해서 농사짓고, 술 마시고, 사람 사귀는 한편
한국에서 제일 힘든 1년 과정의 귀농학교를 운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