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mgok Lee - 2년전 글이군요.
Namgok Lee
30 January 2018 ·
살다 보면 개인의 일생에서도 전혀 상상도 안했던 일이 일어나는 경우가 있는 것을 실감할 때가 있다.
내가 60세 이전에 죽었다면, 공자나 유학은 나와는 인연이 없었을 것이다.
내가 50세 이전에 죽었다면 무소유 사회의 실험에 동참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50대에 무소유 사회의 실험 즉 야마기시와 만남을 통해 연찬(硏鑽)에 접하고 우연히 시작한 논어 강독 모임에서 공자를 발견하면서 60대 중반부터 근 10여년 인문운동의 주요 소재로 공자를 활용하고 있다.
연찬(硏鑽)이라는 소통과 탐구 방식을 접하지 않았더라면 공자를 만났더라도 아마 달랐을 것이다.
처음 논어 강독을 하다가 실망하고 중간에 그만 두었을 가능성도 크다.
나에게 그 순서는 절묘한 것이었다.
우연 같지만, 지금 생각하면 우연을 넘어서는 그 무엇이 느껴질 때가 있다.
당분간 논어와 공자를 더 활용하게 될 것 같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와 중국을 비롯해 역사에 끼친 공과가 크고 지금까지도 영향을 많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주목하고 접근하는 테마는 일반적인 것과는 다르다.
‘수구반동’ ‘봉건제의 옹호자’ ‘인본주의’ ‘민본’ 등 그 공과가 주로 공자나 유학이 끼친 정치와 관련이 많다.
지금도 비난이나 옹호에 이런 측면이 많이 거론된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그런 차원의 공자가 아니다.
그의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은 통찰이다.
그는 무지(無知)의 자각을 출발점으로 하면서도
불가지론이나 종교에 빠지지 않고 인간의 지적 능력을 신뢰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단정(斷定)과 고정(固定)이 없이 철저히 구명하려고
한 축의 시대 제1기 르네상스의 대표 주자의 한 사람이었다.
현대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데, 여전히 아니 오히려 과거보다 훨씬 더 중요하게 다가온다.
정치권력과 유착하여 부정적인 여러 현상들을 낳게 한 것으로부터 공자를 해방하는 것은 비단 유교권 문화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축의 시대 동서양의 다른 선구적 사상에도 마찬가지라고 나는 생각한다.
특히 한국에서 사문난적(斯文亂賊) 류의 폐단으로부터 공자와 유학을 벗겨내는 일은 그 뿌리를 바르게 하는 것으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매우 중요한 일이라 보고 있다.
아마 내가 더 살면서 또 누구를 무엇을 만나게 될지 모른다.
건강과 정신활동이 가능한 동안 또 다른 세계를 만날 수 있다면 좋겠다.
설렘이 사라지면 굳는 것이고 굳는 것은 죽어 가는 것이다.
새벽의 단상이다.
현대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데, 여전히 아니 오히려 과거보다 훨씬 더 중요하게 다가온다.
정치권력과 유착하여 부정적인 여러 현상들을 낳게 한 것으로부터 공자를 해방하는 것은 비단 유교권 문화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축의 시대 동서양의 다른 선구적 사상에도 마찬가지라고 나는 생각한다.
특히 한국에서 사문난적(斯文亂賊) 류의 폐단으로부터 공자와 유학을 벗겨내는 일은 그 뿌리를 바르게 하는 것으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매우 중요한 일이라 보고 있다.
아마 내가 더 살면서 또 누구를 무엇을 만나게 될지 모른다.
건강과 정신활동이 가능한 동안 또 다른 세계를 만날 수 있다면 좋겠다.
설렘이 사라지면 굳는 것이고 굳는 것은 죽어 가는 것이다.
새벽의 단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