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16

나는 왜 오늘도 여전히 이신(李信)에 대해서 말하려고 하는가? - 에큐메니안

나는 왜 오늘도 여전히 이신(李信)에 대해서 말하려고 하는가? - 에큐메니안


나는 왜 오늘도 여전히 이신(李信)에 대해서 말하려고 하는가?한국교회 에큐메니즘의 전개와 李信 신학 1
이은선 명예교수(한국信연구소, 세종대) | 승인 2018.10.27



이 글은 원래 작년 종교개혁 5백주년을 맞이해서 그 전해 돌아가신 지 35주기가 되는 선친 이신(李信, 1927-1981) 목사님을 기리면서 펴낸 글을 근간으로 한다
(김성리 외, 『환상과 저항의 신학: 이신(李信)의 슐리얼리즘 연구』, 동연, 2016). 

이렇게 1년이 지나서 다시 여기에 가져와서 약간의 보완과 더불어 소개하고자 하는 것은 그 때 성찰된 생각들이 또 다른 5백년을 향하고 있는 한국 교회와 사회를 위해서 좀 더 공유되었으면 하는 바램에서이다. 물론 개인적인 선친의 이야기이기도 해서 꺼려지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이번에 그분의 묘소를 일산기독묘지에서 충청도 괴산의 소수로 이장하면서 그의 생과 사상이 한국적 신학의 유산으로서 좀 더 보편적으로 해석되고, 다양하게 다루어졌으면 하는 소망을 가졌다.

이 책이 나온 후 1년간의 변화를 생각해 보면 나 개인적으로는 그동안 재직하던 대학을 조금 일찍 떠나서 한국여성신학자로서 ‘聖․性․誠의 여성통합학문’을 염두에 두면서 여러 궁리 끝에 <한국信연구소>라는 이름을 내세우게 되었다. 

여기서도 나는 ‘信’이라는 이름을 가져왔는데, 그것으로써 육신의 아버지 이신(李信)을 기리고 이어간다는 의미도 있지만, 더 나아가서는 오늘 우리 시대 인류 삶의 문제가 바로 이 ‘믿음’과 ‘신뢰’, ‘공감’과 ‘상상’, ‘환상’의 문제에 집약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보다 통합학문적인 탐구와 성찰을 통해서 우리 믿음의 가능성을 다시 찾아내는가 라는 점에 집중하고 싶었다. 그것은 이제 오늘 우리의 ‘신학’(神學)은 ‘신학’(信學)의 물음이 되어야 한다는 표현으로서 어떻게 우리가 서로 간에 좀 더 신뢰할 수 있고, 믿을 수 있으며, 깊이 공감하고, 또한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과거와 미래를 상상하고 환상하면서 보다 인간다운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을까의 물음을 묻고자 하는 의식이다. 나는 이신의 삶과 신학, 시와 그림이 바로 이와 유사한 생각 속에서 배태되었고, 그래서 오늘 우리 시대에도 그 문제의식과 탐구의 길이 결코 녹슬지 않았다고 본다.

▲ 이신 목사/신학박사(1927.12.25-1981.12.17)


오늘 한반도의 삶에서 남북의 통일과 평화가 절체절명의 관건이 되었다. 그 일에서 중국과 미국, 일본과 러시아 등, 한반도 주변 우리 시대 최고 강국들의 각축이 심하다. 이미 이 한반도에서 그 각축이 일제식민지와 6.25전쟁이라는 끔찍한 비극을 불러왔고, 잘못하면 다시 한 번 유사한 위기 앞에 놓여있는 상황에서 한국의 천주교는 로마의 교황을 찾아가고, 개신교는 미국 교회에게 SOS를 친다. 그런 노력의 한 편에서 남한의 한 정당은 정부가 9월 평양공동선언과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합의서를 의결한 것에 대해서 위헌소송을 제기하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우리의 이러한 행보들이 앞으로 어떤 열매를 맺어낼 것인지 매우 주목되는 상황이다.

이런 모든 일을 염두에 두면서 이신의 신학을 다시 한 번 소개하고 싶었다. 물론 당시 그의 시대는 오늘 우리의 구체적인 상황과는 많이 다르고, 그 시대적, 신학적 한계에 이어서 또한 나의 해석에도 치우친 면도 많이 있겠지만 그래도 함께 공유하며 더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이 시작하는 말의 마무리로서 나는 지난 2011년 이신의 30주기를 기리는 말로 썼고, 지난 여름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노회찬 의원을 생각하며 다시 패북에 올렸던 언어를 가져오고자 한다. 이 말의 원 출처는 스위스의 페스탈로치인데, 그는 18세기 프랑스 대혁명 전후의 민중의 고통을 가장 근본적으로 완화시킬 수 있는 토대로서 바로 우리 인간성 안에 내재한 초월에 대한 깊은 믿음을 발견한 사람이었다. 그것으로써 그는 당시 국가교회로부터 파면을 당했고, 모두로부터 배척과 비웃음을 받았지만 그는 그 믿음과 저항, 환상의 행보를 고독으로 맞서면서 나아갔다.
“나는 여기 그 이상을 원했던 한 인간을 알고 있습니다. 그 안에는 순진과 무구의 기쁨이 놓여 있었고, 아주 소수의 죽을 운명의 인간만이 알고 있는 인간에 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의 가슴은 친절을 위해서 만들어졌고, 사랑과 신뢰는 그의 본성이었으며, 가장 은밀한 내면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코 세상의 작품이 아니었고 세상의 어느 구석에도 맞지 않았습니다. 세상은 그를 발견하고서 그의 죄 때문에, 또는 다른 사람의 죄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를 쇠망치로 부숴버렸고, 마치 미장이가 쓸모없는 돌을 보통인 돌로 쓰려고 깨는 것과 같이 그렇게 깨버렸습니다. 그는 깨어지고 죽어가면서도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보다 인간에 대한 믿음을 더욱 가지고 있었고, 소수의 죽을 운명의 인간만이 알고 있는 한 목적을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그는 일반적으로 소용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또한 그 자신도 그것을 원하지 않았지만 바로 자신의 목표를 위해서는 어떤 다른 사람보다도 더한 사람이 되었습니다.”(미주 1)


1. 이신의 ‘믿음’(信)에 대하여

이신에게 있어서 제일 소중했던 것은 ‘믿음’을 지키는 일이었던 것 같다. 그는 젊은 시절 자신의 이름을 부모님들이 지어준 이름(李萬修)에 더해서 ‘믿을’ 신(信) 자(字)의 이신(李信)으로 할 정도로 ‘믿음’을 사는 일에 집중하였다. 그가 제일 소중하게 생각한 말이 “신뢰의 그루터기”라는 말이었다고 생각하는데,(미주 2) 그는 왜 그렇게 ‘믿는다’는 일을 중요하게 여겼을까?

우리가 전해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일제 강점기에 부산에서 상업학교를 마치고 은행에 취업했다가 그만두고,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서울로 올라와서 감리교신학대학에 입학했다. 믿음의 학인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믿음을 찾아 나선 그의 행보는 더 이어져서 6.25가 발발하고 고향 전라도로 내려가서 그곳에서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 환원운동’을 만나면서는 속해있던 감리교회를 떠난다. 그리고 그 그리스도의 교회 환원운동에 헌신하게 된다.



후일 1980년경 『기독교백과사전』을 위해서 쓴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 환원운동의 전개」라는 역사서술에 보면, 그는 이러한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 환원운동도 한국 가톨릭교회의 시발과 마찬가지로 한국인 스스로의 선행된 자각에서 비롯되었음을 밝힌다. 그 서술에 따르면 한국 개신교에서의 ‘그리스도의 교회’ 운동은 신앙에서 다양한 교파나 그 교파에서의 신조를 따르기 보다는 원래 초대 교회의 순수한 믿음을 회복하는 일이 긴요하다고 보고, 그것을 깨달은 소수자에 의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일본 식민지 시절의 혹독했던 상황에서 감리교회나 구세군에 속해있던 소수 목회자의 자각이 있었고, 그것이 미국 그리스도의 교회 환원운동과 연결되면서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가 본격화되었다고 밝힌다.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는 일제 말기에 집단적으로 신사참배에 참여하는 것을 가까스로 면하고서 해방 이듬해에 이때야말로 기독교 신앙의 순수성과 일치를 주장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여 다음과 같은 선언문(「기독(基督)의 교회 합동선언문」)을 발표했다고 한다(1946.8월).
“우리 기독의 교회는 신약 시대에 그리스도께서 창립하신 교회로 돌아와서 각각 분열된 기독교에서 신약 시대의 기독의 교회로 같이 돌아오도록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지(聖旨)를 순응하여 합동 통일 운동을 선언하노라. 신자는 말씀에 비추어 각각 교파에 속한 자가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들인데 각각 속한 단체의 헌법 규칙을 존중시하고 분열됨으로 다투고 있으니 성 바울이 기록한 성경 말씀에 위반되는 것은 구구한 설명을 요하지 않는다. ... 다시 조선 교회의 실정을 살펴보면 우리 조선 각 교파가 악마 왜정 시대에 ‘일본 기독교 조선교단’(日本 基督敎 朝鮮敎團)이라는 명칭으로 합동 통일한 사실이 있었다. 그러면 악마에게 굴복하여 신사 참배의 합동 통일은 하면서도 주님 말씀인 성경의 교훈대로 각 교파 신도의 통일을 부인할 수 있을까? 만일 부인한다면 성경 말씀인 주님의 성지를 반역하는 일이다. 삼가 조심하라. 그런즉 합동 통일함에는 어떠한 방법으로 할 것이 아니라 신약 시대의 교회로 돌아가자, 신약 시대의 교회를 찾으면 신약성경에서 찾자.”(미주 3)


여기서 분명히 서술된 대로 어떻게 이제 막 식민지 처지에서 벗어난 변방의 한 미약한 나라의 교회가 그것도 그 복음을 전해 받은 지도 얼마 안 되는 어려운 처지에서 교회 전체의 2천여 년 역사를 모두 뒤로 돌리는 일을 생각하게 되었을까? 어떻게 그들은 기독교 초대교회의 ‘원형’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창하게 되었으며, 신약성서의 ‘그리스도의 교회’가 가르쳐준 대로 다시 그 본래적 하나 됨과 교회 일치를 이루어야 한다고 호소하게 되었을까? 이러한 일은 오늘 한국 개신교가 오랜 분열과 갈등을 뒤로 하고 다시 여러 형태의 에큐메니즘을 말하는 시점에서도 어려운 일이다. 특히 오늘날 한국과 한국 교회가 크게 성장하여 더 이상 서구 교회나 교파나 교단 등에 좌우되지 않고 개별적으로 개체 교회의 존재 가능성이 훨씬 커진 상황에서도 힘든 일인데, 이신은 이 일을 이루는데 온 힘을 쏟으면서 자신의 믿음의 일을 수행해 나갔다.

그래서 더욱 묻게 된다. ‘믿음’을 가진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그것은 신약성서 히브리서의 유명한 언명인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히11:1)가 지시하는 대로 몸은 현재에 있으면서 그의 의식으로는 과거의 어떤 ‘선험’이나 ‘원형’에 대한 뚜렷한 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거나 아니면 지금 뚜렷이 보이지는 않지만 앞으로 미래에 이루어질 어떤 일에 대한 확고한 상(像)을 가지고 있어서 그 일의 성취를 위해서 애쓰는 것을 말한다. 믿음은 이렇게 지금/여기에 있으면서 과거와 미래, 이미 있음과 아직 아니의 공간을 통합하고, 아니 그보다 그 시공간 자체를 창조하는 일인지도 모르기 때문에 인류 동서의 많은 성찰적 지성들은 이 믿음이야말로 진정으로 인간 고유의 일이고, 마치 ‘언어’처럼 인간에게 고유하게 ‘선험적’으로 놓인 어떤 “선험성”을 말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간 존재의 “신적 속성”을 지시하는 것이라는 의미이겠다.(미주 4) 그래서 이 믿음을 가리키는 동아시아의 언어인 ‘신’(信)도 ‘인간’(人)과 ‘언어’(言)의 합성어로 이루어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믿음의 일은 여느 보통의 인간사의 일과는 달리 현재를 떠나는 일이기 때문에 주로 현재에 몰두하는 일반 사람들로부터 잘 환영받지 못한다. 오히려 배척을 당하고, 미움을 받으며, 몰이해와 배타 속에서 소외를 겪는다. 이신은 인간 삶에서 참으로 소중한 일이 ‘믿음’을 지니는 일이고, 그것이 인간 삶에서 그렇게 근본적인 일(“그루터기”)이기 때문에 거기서의 자유, “신앙적 주체성”을 찾는 일이야말로 참으로 긴요한 일이라고 보았다. 그는 그 일을 위해서 많은 고통을 겪었고, 고독하고 빈한한 삶을 살았다.

그의 딸로 태어나서 어른이 되고 보니, 특히 오늘날과 같이 외부적으로 드러나는 신앙생활의 유무와 상관없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실질적인 유물론자가 되어서 살아가는 초자본주의 시대에 살다보니 사람들이 그 드러나는 것 이전 또는 너머에 있는 ‘진실’을 위해서, 아직 그 의미가 분명하지 않고 잘 보이지 않는 어떤 ‘뜻’을 위해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실감한다. 오늘의 물질주의와 자본주의 시대에는 그러한 믿음의 일을 위해서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자신에게 돌아올 물질적 이득과 소득을 포기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이라는 것을 더욱 깨닫기 때문에 나는 아버지의 삶을 반추해 보면서 나 자신은 그러한 믿음을 거의 못 배운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생전에 그가 많이 좋아했고, 그래서 주저 두 권을 번역해내기까지 한 러시아의 사상가 N. 베르댜예프(1874-1948)에 따르면 오늘 우리 시대는 온통 부르주아지의 노예성에 사로잡혀 있는 시대이다. 그것은 ‘돈’과 ‘자아’에의 노예성인데, 여기서 인간은 세상에 깊이 뿌리를 박고 스스로 서 있는 이 세상에 만족하고 있다. 부르주아는 세계의 허영과 허무함에 대해서는 무감각하며, 경제적 발전의 무한을 인정하나, 그가 인정하려는 무한은 그가 인식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의 것일 따름이라고 지적한다.(미주 5) 이신은 이러한 부르주아 사회의 깊이 없음과 불신, 자아에의 집중을 비판하면서 다시 인간 존재의 선험성과 초월성을 강조하며 그 세계에 대한 확고한 믿음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어냈다. 그런 아버지의 삶을 반추하면서 나는 그가 어떻게 그러한 믿음에 이르게 되었을까를 묻는다.

인간 의식의 고양을 한껏 추구했던 20세기의 인지학자(人智學者) 루돌프 슈타이너(1861-1925)는 “어떻게 하면 더 높은 인식의 세계에 도달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어린 시절에 너무 일찌감치 추상적이고 이론적인 공부에 내몰린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 오히려 더 물질에 집착하고, 믿음과 상상력이 떨어지고, 빈약하고 이기적인 사람이 된다고 지적하였다. 몸과 선한 의지로 세상에 튼실하게 발을 딛고 서기 전에 서둘러서 추상의 세계로 내몰렸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온갖 현실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믿음으로 사셨던 아버지 이신은 어린 시절, 특히 그 어머니로부터 몸과 마음과 감정을 잘 배려 받았기 때문에 그 일이 가능해졌는가?

사실 내가 알고 있는 우리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아주 조금이고, 그 분은 원래 할아버지의 첫 부인이 낳은 아이들이 모두 죽자 속임수로 다시 결혼한 할아버지로 인해서 힘든 삶을 사셨다고 한다. 그 가운데서도 4남매의 양육을 위해 혼신을 다하시다가 6.25 전쟁의 와중에 급작스럽게 돌아가신 분이었고, 그 속에서 첫 자손으로 태어나신 아버지가 성인이 되어서 믿음의 전회를 감행했던 일들도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으로 매우 어려운 시기에 이루어진 것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더욱 이러한 질문을 한다. 그러면서 나는 생각하기를, 이것은 어쩌면 앞에서 언급한 인간 ‘언어’에 대한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믿음’이라는 것도 나라는 주체의 능동성보다는 그보다 먼저 내가 믿어지는 선험성과 수동성이 함께 하는 것이고, 이 수동적이면서도 능동적이고, 강요당하면서도 자유로운 두 가지 속성, “서로 반대되는 두 성질의 통일성”이기 때문에 믿음이 “신적 속성”을 가지는 것이 아닌가 여겼다.
“믿음은 우리에게 앞서 주어진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 믿음을 갖기 이전부터 이미 믿음의 대상이었다. 인간은 자신이 대상이 되었던 그 믿음을 통해서 어떤 대상을 믿을 수 있다.”(미주 6)





“인간은 자기 스스로의 의지가 아니라 앞서 주어진 자유로 인해 자유로운 존재다.”(미주 7)


이신은 이 믿음으로 해방 직후의 극심한 혼란기에 직장을 그만두고 신학을 택했고, 6.25전쟁의 와중에 어머니를 잃고 가족이 흩어지는 경험 속에서 가난한 ‘그리스도의 교회’로 들어갔으며, 그 교회에서도 외국 선교사들과 성서해석과 성령 이해의 차이로 그나마 안정된 자리를 떠나야 했다. 40대의 늦은 나이에 어린 자식들과 부인을 두고 미국 유학길에 오른 일, 돌아와서도 여전히 안정과 안위대신에 산동네 무허가촌의 궁핍한 삶에 머물렀고, 나중에는 그 거처도 유지할 수 없게 되자 지방의 산골로 내려가신 일. 이런 모든 일들이 그의 믿음의 선택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당시 미국 유학까지 한 박사였지만 주변에는 항상 가난한 민중과 학벌이 높지 않은 변방의 목회자들뿐이었다. 심지어는 병이 들어 위급한 상황이 되었지만 병원에 가는 대신 기도원으로 들어가셔서 그곳의 한 좁고 허름한 방에서 돌아가셨다. 그러면서도 그는 ‘천은’(天恩)을 말하며 가족들에게 잘 지낼 것을 당부하고 기쁜 모습으로 가셨다.

어디에서 그런 믿음의 지속하는 힘이 나왔으며, 어디에 근거해서 그는 그런 어려운 가운데서도 읽고, 쓰고, 선포하고,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리는 일을 그만두지 않으면서 또 동료들을 모아 세상의 달라짐과 교회의 변화를 위해서 끊임없이 시도하는 삶을 살 수 있었을까? 이 모순된 상황이야말로 그의 믿음이 단순한 그의 의지가 아니고 ‘신의 의지’이고, 그 믿음이 ‘신적 기원’을 가진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비록 오늘날의 우리는 이 기원을 갖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내 앞에 먼저 주어진 것에 대한 의식을 잘 하지 못하면서 모든 것을 자아의 주관으로 돌리고, 그래서 신도, 전통과 권위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

하지만 그래도 이 믿음이 하나의 ‘기적’(a miracle)처럼 보이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마치 한나 아렌트가 인간 삶을 어쩔 수 없이 ‘조건 지어진 존재’(the human condition)로 보지만 그 삶의 활동 중에서 인간에게 가장 고유한 것은 “행위”라고 하면서 그 행위는 “결과의 예측불가능성”과 “과정의 환원불가능성”, 그리고 “작자의 익명성”이라는 불행한 요소를 가짐에도 불구하고 인간 역사를 가득 채우는 “기적”이라고 본 것과 유사하다.

미주
(미주 1) J. H. Pestalozzi, Auswahl aus seinen Schriften, Bd.1, Hrg. von A.Bruelmeier, Bern/Stuttgart 1977, p.278-279.
(미주 2) 李信 지음, 『슐리얼리즘과 영靈의 신학』, 이은선․이경 엮음, 동연, 2011, 300쪽.
(미주 3) 같은 책, 346쪽.
(미주 4) 막스 피카르트, 『인간과 말』, 배수아 옮김, 봄날의 책, 2013, 17쪽.
(미주 5) 니콜라스 A. 베르댜예프, 『노예냐 자유냐』, 이신 옮김, 늘봄, 2015, 244쪽. 이 책은 원래 이신이 돌아가시기 2년 전인 1979년 가을에 번역 출간되었던 것을 2015년 필자에 의해서 다시 수정 보완되어서 출판사 늘봄에서 재간되었다.
(미주 6) 막스 피카르트, 같은 책, 33쪽.
(미주 7) 같은 책, 100쪽.


이은선 명예교수(한국信연구소, 세종대) leeus@sejo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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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믿음의 ‘고독’(性)에 대하여

믿음의 행위는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고, 과정을 다시 뒤로 돌릴 수 없으며,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과거나 미래와 관계하는 일이므로 현실에서 많은 장애와 어려움을 만난다. 그것은 시간과 시대를 거스르는 일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그런 믿음의 삶에서 ‘가족’은 어떤 의미가 될까? 믿음 삶의 또 다른 근거일까 아니면 한없는 장애와 걸림돌일까? 우선은 믿음의 사람에게도 가족은 자신의 길을 가는데 가장 가까이에서 위로를 주고, 이해와 힘을 주는 지지대와 기반이라고 여겨졌을 것이다. 그래서 바로 그 가족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이해를 얻지 못하고 비난 받는다면 그 실망과 좌절은 가장 클 것이다.

아버지 이신의 경우도 그러했을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그는 신학대학을 가기 위해서 아버지와 심한 갈등을 겪어야 했고, 그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부모님을 통해서 혼인하게 된 아내와 자신의 생각을 깊이 나눌 수 없다고 여겼을지 모른다. 두 분은 서로 무척 애틋해 하셨지만 자주 다투셨다. 사실 아버지 이신은 부인뿐 아니라 자식들에게도 찬찬히 길을 설명하고 그들의 의견을 듣고 이끄는 분이 아니었다. 자신 동생들과 자식들의 삶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중요한 선택들을 주도하셨지만 갈등이 있었고, 반목도 있었다. 그런데 내가 어른이 되어서 가족을 꾸리고 나름의 뜻을 붙들고 살려다 보니 아버지 이신의 고통과 좌절이 어떠했으리라는 것을 더 잘 상상해 볼 수 있다. 이렇게 믿는 자가 겪는 어려움 중에서 가까운 가족들로부터 받는 괴로움이 제일 큰 것이었을 것이라고 상상해 본다면 믿는 자는 그래서 참으로 ‘고독한’ 자이고, 그런 면에서 고독을 가장 친한 친구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는 것 같다. ‘가족’이라는 것은 사실 믿는 자로 하여금 가장 강하게 ‘현재’에 함께 할 것을 요구하는 자이고, ‘일상’을 청하는 존재이므로 그 충돌을 잘 예상할 수 있다.


이신은 1970년대에 저술한 신학 논문「고독과 저항의 신학-키에르케고르와 본회퍼 신학의 비교 연구」에서 키에르케고르를 초월자 앞에서의 열정과 믿음의 삶을 위해서 “세상의 그 어떤 고독과도 비교할 수 없는 고뇌가 따르는” 삶을 산 자로서 소개하고 있다.(미주 1) 많이 회자되듯이 키에르케고르는 어느 날 인지하게 된 자신 가계(아버지) 내의 ‘죄’에 대한 첨예한 의식으로 깊이 사랑하던 약혼자와의 결혼도 포기하고, 자신의 이름을 숨기면서 철저한 고독 속에서 신앙의 의미와 기독자의 믿음이 무엇인가를 밝혀내는 일에 몰두했다. 믿음을 지니고 산다는 일은 과거와 미래를 여기 지금에 가져와서 그 의미성을 현재적으로 살아내는 일이기 때문에 이 신앙의 “동시성”으로 인해서 일반적인 합리성에 균열을 일으키고, 스캔들을 일으킨다. 이신은 두 사상가를 특히 이러한 ‘신앙의 동시성’이라는 개념으로 풀어냈다. 기독교 신앙은 예수와 동시대에 사는 것처럼 그의 믿음과 다시 그에 대한 믿음을 우리 시대에 우리 각자의 신앙으로 재현하는 일이고, 그러기 위해서 지독한 고독과 고통도 참아내야 하는 일이라고 키에르케고르는 보았다. 그런 의미에서 신앙이란 그저 값싼 은총이 아니라 아주 값있는 것이고, “영원한 심각성”을 지니는 일이라고 본 것이다:

“기독교는 영적인 것이다. 영적이란 내면성이요 내면성은 주체적인 것이요 주체적인 것이란 근본적으로 열정적인 것이다. 그 최고 정점은 영원한 행복 속에 있는 무한한 인격적인 열정적 관심 그것이다.”(미주 2)
이렇게 키에르케고르는 신앙을 위한 고독을 기독교의 정수로 이야기했지만 오늘날 이 고독을 따르려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히려 어떻게든 거기서부터 벗어나고자 하고, 그것은 질병과 연약함으로, 그 반대로 유대와 친밀과 소속은 선과 강함으로 찬양된다. 하지만 오늘 우리 인류의 삶이 이제 전통적 의미에서의 생물학적 가족적 삶마저도 심하게 흔들리고 있고, 유기체와 비유기체(로봇)의 구분도 점점 더 모호해지는 상황으로 들어가면서 인간적인 고유함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의 물음 앞에 적나라하게 노출되고 있다면, 오히려 고독과 단독자로서의 삶을 새롭게 의미화해서 또 다른 차원의 생명적 삶을 탄생시키는 계기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즉 오늘날 참된 믿음이 매우 드물어졌고, 그래서 무엇이든 지속하고 약속할 수 있는 힘이 실종된 상황에서 ‘고독’으로 단련되어 몰두할 수 있고, ‘익명’(anonymity)을 견뎌낼 수 있는 더 높은 차원의 해방된 정신과 영적 자유의 정신으로의 고양을 말하는 것이다. 오늘 우리의 삶이 고독을 피할 수 없는 상황으로 들어섰다면, 아니 그 고독이야말로 우리 정신의 더 높은 고양(신앙의 동시성)을 위해서 긴요하기까지 하다면,  키에르케고르나 이신의 믿음을 위한 고독의 메시지를 더 이상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할 필요가 없는, 그와는 반대로 오히려 정신의 참된 자유와 영적 성장을 위해서 받아들일 수 있는 가르침으로 삼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믿는 자의 고독에 대한 이야기는 ‘죽음’과 ‘영생’에 대한 이야기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이신은 1980년 6월부터 1981년 12월 세상을 뜰 때까지 순복음신학교를 통해서 관계 맺게 된 순복음 교회 청년 선교지 <카리스마>에 「카리스마적 신학」이라는 독특한 글을 연재하셨다. 오랜 동안 그가 생각해 왔고, 마침 그것을 본격적으로 드러내고자 했지만 충분히 펼치고 가지 못한 새로운 조직신학으로서의 “영(靈)의 신학”, “초현실주의 신학”에서 그는 삶과 죽음을 논한다. 거기서 그는 밝히기를, 사실 사람은 “생리적으로 종족적으로 혈통적으로”는 오히려 죽지 않고 영속적으로 목숨을 이어가는 것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생물학의 유전법칙에 의해서 그의 유전인자는 계속적으로 자손이나 종족 등을 통해 이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으로서 참 죽음이란 바로 그의 “인격”이 죽는 것을 말하는데, 그에 따르면 사람은 인격적인 존재로서 그것은 “생리적인 법칙으로 말할 수 없는 것이어서 이것은 유전적으로 부모에게서 물려받는 것이 아니요 그 근원이 이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순전히 정신적인 영역이요 자유의 영역으로서 말하자면 영원한 곳에서 날아 들어옴이요 그 인간이 갖는 독특성이요 유일회적인 것”이라고 서술한다.(미주 3)

이신은 인류 문명의 과학적 성과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그러나 그것이 다가 아니라 과학으로 아직 들추어내지 못한 ‘인격’과 ‘영’과 ‘초현실’의 차원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죽음 이해도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생물학적인 죽음은 이제 “생리적으로” 허구이기 때문에 염려할 필요가 없고, 오히려 인간에게 있어서 진정한 죽음인 인격의 죽음에 대해서 관심해야 하는 시대가 온 것임을 밝히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의 믿음에 대한 강조와 고독을 받아들이는 입장, 몸은 불사하지만 오히려 인격의 죽음을 말하는 모든 이야기가 오늘 ‘인공지능’(AI)과 ‘초인간(transhuman)’을 말하는 시대에 더욱 의미 있게 전달될 수 있다는 것을 여기서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돋아나고 또 자라는 생리적인 것의 죽음이 아니라-어차피 이런 생리적인 것은 죽지 아니하는 것이고-그러한 인격의 무한한 가능성의 요소의 멸절滅絶이요 알기 쉽게는 역사적 시간적으로는 그 영원한 씨(種子)가 한 번도 싹터보지 못하고 무서운 혹한 때문에 고사枯死하는 것이요 생존경쟁의 싸움터에 한 번도 써보지 못한 무한한 위력을 가진 불발탄인 것인데 사실은 누구나 다 이런 인격의 영원성을 갖고 있는데도 생존경쟁의 하찮은 이런 일 저런 일 때문에 한 번도 써보지 못하고 아깝게 사장死藏되어버리는 것이요 또 이어가는 이 역사의 휘몰아치는 추위 때문에 한 번도 인격의 아름다운 싹을 틔워보지 못한 채 시들어버리고 마는 것이다.”(미주 4)

앞의 아렌트도 오늘날 사람들이 “영원성”(eternity)에 대한 관심을 모두 잃어버리고 너나없이 모두가 자신의 생물학적 생명에만 관심하는 노동자가 되어버렸다고 지적하였다.(미주 5) 또한 이와 유사한 근대 부르주아 인간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베르댜예프에게서 확실하게 들을 수 있는데, 그에 따르면 부르주아는 자기를 초월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존재이다. 왜냐하면 초월은 그가 지상에 정착하려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며, 그래서 그에게서의 신앙과 종교는 “항상 유한한 종교이며, 유한에 연결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에게 종교의 질은 그것이 이 세상의 조직에 헌신하는 봉사, 이 세상에서 그의 지위의 보존에 대한 봉사에 의해서 측정된다.”(미주 6) 베르댜예프는 이러한 부르주아 인간의 문제는 단순히 사회구조의 문제가 아니라 “영혼의 구조의 문제”라는 것을 강조하는데, 그에 의하면, “부르주아는 피안적 세계의 존재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종말과 최후의 심판에 대해서 아무런 감각도 없다. 그들은 종말과는 인연이 없는 무리들”이기 때문이라고 비판한다.(미주 7)


그런데 사실 서구 역사에서 우리는 이미 플라톤에게서 매우 유사한 관점의 이야기를 들었다. 즉 그가 이상국가를 세우기 위해서 넘어야 하는 세 가지의 파도로서 그 중 그 하나를 ‘처자공유’를 통한 생물학적 가족주의를 넘어서는 일로 지적했다면, 베르댜예프나 이신의 삶과 죽음, 인격에 대한 이야기도 이와 유사한 흐름 속에 놓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신은 사람이 생리적으로 사는 것은 “다만 생식하고 번식하는 것으로 이어가는 삶”이라고 지적했는데, 베르댜예프는 그의 『인간의 운명』에서 이와 유사하게 ‘속’(屬, genus)을 통한 생명의 연속은 “임신을 통해 계속되는 삶을 알 뿐 영원한 삶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는” “일종의 성적(性的) 범신론”이라고 비판했다.(미주 8) 여기에 대해서 베르댜예프는 “인격”personality)이라는 개념을 한없이 고양시켜서 바로 그렇게 생리적으로 계속되는 세계의 삶에 대해서 인격은 “침노”해오며, “돌입”해 와서 그 세계를 “정복”하고 “초극”하는 또 다른 “우주”라고 지시했다. 그래서 그 인격이란 “우주의 일부가 아니고 오히려 우주가 인격의 일부이며 그 질”이고, “인격은 예외이지 법칙이 아니다.”라고 선포했다.(미주 9)

나는 이 이야기들에서 모든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남성가치 위주의 형이상학적 이원론의 흔적을 본다. 물론 베르댜예프 자신도 분명히 밝히기를 자신의 인격주의는 헤겔의 일원론보다는 칸트의 이원론에 더 가깝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19세기 이후의 서구 생철학이 세계 이해에 나름으로 기여했지만 그것은 “우주적이며 사회적인 과정 속에 인격을 해소시킨다”. 대신에 자신의 인격주의는 그에 비해서 그 안에 “모순과 역설”을 담지한 “종말론적 전망”이고, “신비”라는 것이다.(미주 10) 그는 분명한 어조로 “신적-인간성의 이 신비를 동일철학, 일원론, 내재론의 빛 아래서 이해하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하며, “신-인성God-humanity에 관한 진리는 교의적 신조나 신학적 교리도 아니며 경험적 진리 곧, 정신적 체험의 표현이다”라고 언명한다.(미주 11)

이렇게 베르댜예프나 이신이 강조하는 믿음의 종말론적 성격과 인격적 신비의 의미를 나 자신도 어느 정도 동의하는 바이며, 특히 오늘날은 온갖 과학주의의 비등으로 정신이 철저히 객체화되고, 기계화의 위험 앞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인격’과 ‘정신’이라고 하는 것이 특히 지금 이곳의 ‘몸’의 현실이 없으면 ‘힘없는’ 또는 ‘잔인한’ 관념일 뿐이며, 우리가 지금 논하고 있는 ‘믿음’이라고 하는 것도 잘 불러오지 못한다는 것을 그의 ‘딸’로서, 그리고 동아시아의 ‘여성’과 ‘엄마’로서 경험해왔기 때문에 순전히 그저 그들의 입장에 동의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미주 12) 아니 어쩌면 이신 자신도 이러한 인격과 자유와 자기초월에의 한없는 비상과 가치매김에도 불구하고 여기 이곳의 현재로부터 더 온전히 벗어나지 못해서 무척 괴로워하였는지도 모른다. 그는 유학 시절에 고국에 남기고 간 병든 딸이 죽자 「딸 ‘은혜’(恩惠) 상(像)」이라는 시를 지으며 고통스러워했고, 그 이전에 6.25이후 모두 돌아가신 부모님을 대신해서 동생들을 돌보아야 했으며, 가족들의 생계와 네 자녀의 교육을 위해서 죽을 때까지 몸으로 고생하며 가족적 삶을 지켰다. 그 덕분에 우리는 대학 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 나는 그처럼 신학자가 되어서 그의 생각을 밝히고 이어가는 일을 고민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는 오늘 우리 시대가 눈에 보이는 것에만 몰두하고, 대신에 ‘믿는다’는 것이 아주 드물어지고 어떻게든 고통과 아픔은 피하려 하고, 그래서 ‘죽음’은 더욱 외면당하고 억눌려지는 상황에서 진정으로 ‘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영생’과 ‘부활’이 무엇을 말하는지에 대해서 다시 관심을 촉구하고 대면하도록 초대한다. 이신은 인격성의 핵심인 자유는 “고난을 감내하고 고통을 견디는 능력”이며, “고뇌에 대한 능력이 없으면 인격이란 있을 수 없다”는 말을 자신의 삶으로 전한다. 그의 믿음의 고독은 “출발”이라는 제목을 가진 다음의 시에서도 잘 드러나는데, 나로서는 그것을 감당하기가 너무 힘들다:

<출발>

운명을 전당잡고
풍진을 긁어모아 새로운 조형을
마련하려고 적막한 공지(空地)를 향해 출발하나
지평이 너무 낮고
하늘이 묵념만 반복하니
행려자의 가슴은
더욱 심연의 주변만 맴돈다.

길이 아무리 멀어도
자연이 전설을 고수하는 한
초속(超速)의 물체가
시간을 침식하는 논리는
심야의 기적 소리마냥
요란스럽게 굴러가고
증명이 불가능한
이 시대의 예언이
과학의 고독 때문에
오히려 찰나적 충동 속에서
질풍처럼 전달된다.

사색이 어떤 지점으로 고양되면
불투명한 풍토가
비극의 대안(對岸)을 환상적 토질로
변모케 하고
시대적 풍조 때문에
권력을 세낸 무리들이
몽롱한 달그림자 속에서
새로운 투쟁을 계획한다.

이때 그렇게 오랫동안
기도하는
새 풍토에의 출발이
마지막 기적 소리 때문에 결단을 내리고
정오의 태양을 쪼이며
빈손마저 뿌리치고
홀로 떠난다.
그러면 가로수의 그늘이
명상의 은거지를 마련한다.(1968/8/8)(미주 13)


미주
(미주 1) 李信 지음, 『슐리얼리즘과 영靈의 신학』, 193쪽.
(미주 2) Soeren Kierkegaard, Concluding Unscientific Postscript,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68, p.33, 李信 지음, 『슐리얼리즘과 영靈의 신학』, 190쪽 재인용.
(미주 3) 李信 지음, 『슐리얼리즘과 영靈의 신학』, 306쪽.
(미주 4) 같은 책, 309쪽.
(미주 5) 한나 아렌트, 『인간의 조건』, 같은 책,
(미주 6) 니콜라스 A. 베르댜예프, 『노예냐 자유냐』, 252쪽.
(미주 7) 같은 책, 252쪽.
(미주 8) N. 베르쟈에프, 『인간의 운명』, 이신 옮김, 현대사상총서, 1984, 322쪽.
(미주 9) 니콜라스 A. 베르댜예프, 『노예냐 자유냐』, 이신 옮김, 28-30쪽.
(미주 10) 같은 책, 8-12쪽, 44쪽.
(미주 11) 같은 책, 58-59쪽.
(미주 12) 이은선, 「한국 페미니스트 그리스도론과 오늘의 기독교」, 『한국 생물生物여성영성의 신학』,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 2011, 97쪽 이하.
(미주 13) 이신 지음, 『李信 詩集 돌의 소리』, 이경 엮음, 동연, 2012, 33-34쪽.
이은선(한국信연구소, 세종대 명예교수)  leeus@sejo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