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자의 한중일 정원 삼국지
집안에 무릉도원을 들여놓다
입력 : 2013.11.09
일상에 찌든 사람들이 잠시나마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곳을 찾고 있습니다. 도심 빌딩들 사이의 작은 공간과 아파트 단지 내 외부 공간, 교외 전원주택 마당, 한적한 농촌지역 곳곳에 주민을 위한 더 많은 쉼터가 필요합니다. 정원은 이 쉼터들의 상징입니다. 한·중·일 정원 문화 전문가인 박경자 전통경관보전연구원 원장이 세 나라의 전통 정원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면서 우리 전통정원의 현대적 재해석을 위한 여행을 떠납니다./편집자주.
우리는 예부터 자연을 즐기고 가까이 하려는 마음에서 빼어난 경치를 즐기고 그 기억을 시문, 그림으로 남겼다. 집안의 뜰에 연못을 파고 사람이 축소해서 만든 진짜가 아닌 가산(假山)을 중심으로 정원(庭園)을 만들고 즐기기도 했다.
이화원, 만수산 후면에 있는 해취원, 무석의 기창원을 본뜸중국 강남 지방의 정원을 두고, 인간화된 경지를 말하기를 ‘누가 강남 풍경이 아름답다고 하는가? 옮겨진 하늘과 축소된 땅이 당신 가슴 속에 있다’고 했다. 정원 속의 강남 풍경인 아름다운 자연이 가슴 속 깊이 감동적으로 살아 있다는 뜻이다
빼어난 정원석 훔쳐왔다는 기록도
자연을 정원 안으로 끌어들이는 차경(借景) 수법은 일본과 한국 전통 정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일본 교토의 엔츠지(圓通寺)에서의 히에이산 차경, 영주 부석사에서의 파노라믹한 소백산맥 차경 등은 그 수려한 경치에 우선 마음의 갈증이 풀린다.
이승소(李承召)는 15세기 세종부터 성종 때의 문인이다. 그는 삼탄집(三灘集)의 ‘석가산시서(石假山詩序)’에서 가산을 만들어서 정원을 꾸미고 시를 짓고 즐기면 경치와 마음이 어우러져, 태산이 크고 가산이 작으며 못이 작고 바다가 크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겠다고 했다.
“나는 이미 늙었소. 기력이 없어 일어서는데도 사람이 부축해주어야 하오. 하물며 산에 올라갈 힘이 있겠소? 그렇지만 산수에 대한 벽(癖)은 이미 천석고황이 되어 간단히 치료할 수가 없소. 방안의 앉은 자리나 누운 자리에서도 창문으로 바라보고 마주하고 싶은 마음에 가산을 만든 것이오. 푸른 샘물이 주위를 감싸게 하고, 아름다운 풀을 심고, 봉우리를 교묘하고 빼어나게 만드니, 영롱하여 볼만 하다오. 시를 짓고 즐기면 경치와 마음이 어우러져, 태산이 크고 가산이 작으며 못이 작고 바다가 크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겠소.”
정원석인 괴석에 얽힌 에피소드가 있다. 17세기 인조와 숙종 때의 문인인 한태동의 시와유고(是窩遺稿)에 있는 속괴석기(續怪石記)에는 괴석을 빌려 주었는데 돌려주지 않아서 몰래 훔쳐오게 하였다 한다.
‘내 친구 정계(鄭啓)에게는 남에게 빌려준 괴석이 있었는데, 내가 정군에게 달라고 하여 허락을 받았다... 빌려간 사람이 아까워하여 주지 않았다. 세 번이나 왔다 갔다 하였는데, 갈수록 더욱 숨기는 것이었다... 저 보관한 사람은 스스로 굳게 지키고 있다 생각하겠지만, 밤중에 힘 있는 사람이 이미 짊어지고 달아난 줄도 모를 것이다...’
신선 놀이터를 못 안에 들인 안압지
안압지(월지) 동쪽 호안에서 본 북쪽 호안과 중도 전경경주의 신라시대 대표적 고적인 안압지는 왕궁의 정원으로 상징성이 뛰어난다. 못 안의 세 섬은 도교의 신선사상에 나오는 불로장생하는 신선들이 산다는 삼신산(三神山)을 상징하고 있다. 동쪽에 곡선으로 굴곡진 호안에 만들어진 언덕은 중국 고사에 나오는 초(楚)나라 선녀들이 살았다는 무산십이봉(巫山十二峰)이다. 이 무산십이봉은 현재 중국 양쯔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 경치를 가깝게 느낄 수 있다.
일본 교토, 료안지의 가레산스이 정원일본 교토의 료안지(龍安寺) 가레산스이(枯山水)정원은 상징성과 축약성이 뛰어난 선종(禪宗)정원이다. 작은 돌과 모래무늬로 산과 바다 즉 자연을 표현하고 우주전체를 상징한다. 작은 돌, 작은 나무 만으로도 자연과 우주를 상징했던 남송(南宋) 산수화의 잔산잉수(殘山剩水) 기법에서 비롯되었고 일본정원에서 매우 유행했다.